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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자료

[스크랩] [설악산] - 별빛속으로

 

 

 

○ 설악산 석황사골 '별빛 속으로'

- 절망 위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익스트림라이더, 석황사골 붉은벽에 거벽등반 코스 개척

살다보면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 산에 환장하게 가고 싶은 날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나로 하여금 미치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으며, 또 산이 될 수도 있고, 난(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어느 개개인의 머리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서, 또한 어쩌지 못 하는 것이라서 도리 없이 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중독성을 지녔기에 달리 방법이 없고 그리 해야만 치유된다. 

등산…, 그 중에서도 암벽등반은 지독한 중독성을 지녔다. 이 병에 걸려본 이들은 안다. ‘사랑이 그 어느 날 미친 듯 내게 다가왔던 것처럼’ 바위벽은 부지불식간에 불현듯 나타나 바위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아, 이럴 땐 어쩌란 말인가. 환영처럼 떠오르는 절망의 벽이여, 그리고 나의 희망이여! 바위의 부르심에는 대책이 없나니 내 오래된 벗이여, 얼른 배낭에 침낭과 매트리스, 코펠과 버너, 쇠장비들을 주어 담고 아늑히 펼쳐진 숲길을 넘어 인수봉과 선인봉, 설악의 벽으로 가자. 거기엔 우리의 영혼을 들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나니.

그렇다면 벽에는 뭐가 있단 말인가? 거기엔 억겁의 세월,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퇴적물이 있다. 클라이머는 그토록 오랜 시간이 빚어놓은 파편과 편린을 오르며 거기서 존재의 이유를 찾으며, 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도전 극복했을 때 깊은 희열을 느낀다. 정상에서의 기쁨은 찰라, 오름짓에 대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족으로 족할 뿐, 다만 누가 가지 않은 길을 갔을 뿐이라고 겸손 피운다. 그게 알피니스트의 길이다.

정상은 지상에서 빛이 가장 충만한 곳이다. 클라이머는 어둠을 멀리 한다. 그네들의 본성은 빛이다. 따라서 그들은 빛의 가장 높은 곳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그곳을 가기 위해 그들은 자일을 묶고 서로의 부족한 것을 보완하며 빛 가운데 서고자 한다. 빛은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이상이자 기쁨이다. 그러나 빛의 가장 높은 곳들은 모험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빛으로 가기 위해 벽이 안겨다 주는 절망감과 고독을 이겨내며 빛이 가득한 곳에 서고자 한다. 빛은 또한 대가를 요구한다. 때론 빛을 추구하는 이들의 목숨까지도…. 

▲ 김세준씨가 석황사골 암릉인 몽유도원도 끝자락에 있는 붉은벽의 '별빛 속으로'를 개척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능선이 가리산 ~ 삼형제봉 능선이다.

▨ 클라이머는 늘 고독하다

송창식이란 걸출한 가수가 있었다.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써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비장미가 느껴지는 이 노래 가사처럼 클라이머는 때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줄 알면서도, 자기의 운명이 어찌 될 줄 예견하면서도 자기 앞에 놓인 잔을 기꺼이 마실 줄 아는 이들이다. 그래서 클라이머는 늘 고독하다.

설악산으로 가는 길. 옆 좌석에는 피가 늘 뜨거운 김세준씨(37·익스트림라이더)가 운전하고 있다. 그의 눈빛을 바라보면 마치 화가 빈센트 반 고호의 눈처럼, 태양을 언제나 지향하는 해바라기의 외사랑처럼 항상 이글거린다. 그런 그의 눈빛을 언제 처음 보았을까. 나는 기억한다. 2001년 12월 설악산 갱기폭 좌벽의 ‘웅조철진’이란 루트를 등반할 때 김범수 사진기자의 앵글에 잡힌 한 컷의 클로즈업 사진. 그 눈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아니, 더욱 더 강렬해진 것 같다.

그런 그가 오는 7월27일 인도 히말의 메루피크(6,310m) 동벽 샥스핀을 이번 등반에 동행한 이상우씨(34·봉암산악회)들과 함께 원정 간다. 그네들이 오늘 가고자 하는 골짜기는 석황사골. 요즘 거벽등반가들이 설악산 갱기골 다음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은 갱기골보다 훨씬 늦게 개척됐지만, 석황사골 좌벽에 ‘용틀임(A3)’과 ‘그대 향해(A3)’ 등 4개의 거벽 코스가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최근 들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들은 원정 훈련을 겸한 개척등반으로 이 골짜기를 찾은 것이다.

▨ 처음 가는 길은 늘 막막하다

한계리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은 우리는 바로 석황사골로 향했다. 44번 국도에서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은 아주 평탄하고 부드럽다. 석황사터로 가는 길의 아침 숲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딱따구리 소리. 석황사골로 내리쬐는 그 정겨운 소리도 이내 숲의 정막 속에 갇히고, 나뭇잎들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살랑대자 사내들의 눈에 곱디고운 연둣빛이 스며든다. 그들은 6월의 푸르른 바람을 떨치며 벽으로 거리를 좁혔다.

오늘 할 일은 개척 대상지를 찾는 일. 10여m의 누운 폭포를 지나 몽유도원도(암릉길) 하산길과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루트를 한동안 관찰하다가 이어 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가 물이 사라진 어느 한 곳에서 석황사골 우벽의 천장 루트를 살폈다. 다시 내려와 몽유도원도의 가파른 하산로를 치고 올라 암릉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간 다음, 아침이면 햇살을 받아 붉은 색이 유난히 돋보이는 ‘붉은벽’의 등반선과 암질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두 피치가 나올 법한 바위의 상태는 양호하다. 등반각도 약 110도에 이르러 등반하기에는 무난한 것 같은데, 미세한 사선 크랙이 불규칙하게 발달해 있어 등반선을 이을 수 있을지 의문이 일었지만, 하강하면서 특히 문제가 되는 상단의 선을 자세히 살펴보니 등반이 될 것처럼 보였고, 하단도 그만하면 쓸 만했다. 마지막으로 내려온 김세준씨가 개척이 가능하다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들은 이때까지 업보처럼 메고 다닌 엄청난 무게의 쇠장비들을 벽 아래에 매달아 놓고 산을 내려갔다.

▲ 붉은벽의 '별빛 속으로'제 2피치를 개척 중인 김세준씨에게로 끝도 없는 고도감이 밀려들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하산하면서 붉은벽으로 접어드는 지점을 분명히 기억해둔 것 같았는데, 3명 모두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여기가 아닌가벼’ 하면서 길을 찾다가 많은 시간을 소비한 끝에 벽 밑에 도달한 그들은 드디어 본격적인 등반 채비에 나선다. 첫 피치는 평소 말수가 적고 눈빛이 깊은 이상우씨가 맡았다. 등반선이 얼추 정했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 그는 허허로운 벌판에 선 것 같다. 아니 망망대해에 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 바위꾼은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개척한다

그들은 남들이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여느 길과 다른 성격을 가졌다. 새 길을 연다는 것은 머리칼이 주뼛거리며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건 그 일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인생의 길에 한 번 접어들면 돌이킬 수 없는 길이 있는 것처럼 개척등반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돌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인생의 길과는 달리 등반에 나서면 빼도 박도 못 하는, 어쩔 수 없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죽든 살든 올라야만 답이 나온다.

이상우씨가 가는 길도 그러하다. 일보 전진만 있을 뿐 퇴보가 없는 그 길은 첨예하기 이를 데 없으며, 때로 길을 찾아나선 이의 목숨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가 가는 길은 누구나 쉬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거벽등반계에서 떠오르는 신예로 통하는 그의 오름짓이 생각보다 훨씬 더디다. 그만큼 어렵고도 난해하단 뜻일 게다. 인생을 살면서 때론 무언가 결정할 때가 있다. 만약 그가 바로 앞에서 펼쳐진 상황 속에서 선택을 잘못했다면 어찌 될 것인가. 물론 그 답은 신만이 결정할 사항이지만 당사자로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의탁할 바위꾼은 한 명도 없다. 클라이머에게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그건 자신의 운명을 자기 손으로 개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신이 끼어들 여지란 아주 좁아 최종적인 경우에만 개입한다. 나머지 거의 대부분은 클라이머의 손에 달려 있다. 클라이머는 일반적으로 아날로그식을 좋아하지만 때로 0과 1의 디지털적인 사고방식을 요구받는다. 자신이 오르고 있는 루트가, 만약 자신이 현재 내리고 있는 즉자적인 판단이 생과 사를 가르는 일이라면, 판단의 주체인 클라이머는 잠깐이나마 지독한 고독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특히 수직 이상의 바위각은 고독이며 공포 그 자체다. 왜냐면 인간은 직립(直立)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습관이란 범주로부터 벗어나면 거기서 괴리가 생기고, 만약 그런 각도에서 자신이 이탈한다고 상상하면 누구나 전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머들의 주식(主食)은 고독이다. 서로 자일을 묶어 상호간의 신뢰성을 나눈다고 하지만, 오름짓 뒤안길의 전제는 추락에 따른 부상과 죽음이 내재돼 있다. 때문에, 특히 선등자는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지독한 고독을 감내해야만 한다. 가늠할 수 없는 돌발적 상황 속에서 목을 내놓고 등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 이 살벌한 고도감은 어디서 밀려온 것일까

이상우씨가 절망 위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여 탈론을 걸거나 코퍼헤드를 박거나 리벳을 설치하며, 또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길 찾기에 골몰해 있다. 그는 점점 지상으로부터 멀어져 가고자 하는 빛의 실체에 더욱 근접해갔다. 6월의 바람을 온몸 구석구석 받아들이며 제1피치에 도달했을 땐 화살보다 더 빠른 세월의 그림자가 그의 정수리에 꽂혔다.  

이상우씨가 제1피치를 종료하자 오후의 햇빛이 많이 기울었다. 장비를 회수하며 올라온 김세준씨가 곧바로 등반에 나선다. 그가 등반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제2피치가 더욱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오늘 안에 등반을 마칠 수 있는 희망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시간에 충실할 뿐이다. ‘깨어진 기왓장처럼 어둠’이 내리고 드디어 손을 털 시간이 다가왔다. 그가 도달한 최종 지점에 확보용 볼트를 박고 꼭 필요한 장비를 빼곤 나머지 장비들은 제1피치에 걸어둔 채 하강했다.    

어제 설치해둔 고정로프를 이용해 두 클라이머가 제1피치에 재빠르게 도착했다. 김세준씨가 다시 빛 사이로 나아간다. 등반을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건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간혹 해머 소리만 들릴 뿐이다. 드디어 그가 시야에 들어선다. 그의 움직임이 한층 더뎌졌다. 본격적인 어려운 오버행 구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간의 지루함은 이때를 두고 한 것 같다. 올라가는 이야 등반만 신경쓰면 되지만, 밑에서 확보보는 이상우씨의 기다림이란 이루 상상할 수 없는 것이리라.    

김세준씨가 제2피치 중상단지점에 도착했을 즈음 비로소 그가 등반한 일련의 선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나의 살벌한 고도감은 어디서 밀려오는 것일까.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 속에 존재해온 것일까. 아니면 대대로 유전돼 온 것은 아닐까. 그의 등반 모습을 보면서 무섭다, 두렵다, 오금이 저리다, 죽음과 친밀하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등의 단어들이 치밀어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 앞에 선 사내의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오랜 갈증이 배어 있다.

 

▨ 가보시라. 거기엔 별빛만 가득 하나니

그는 아마도 몰락처럼 다가서는 벽에 목숨을 내맡긴 사람 같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대사 가운데 가장 유명한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처럼, 그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분법의 선상에서 우리 삶이 세파에 모질게 흔들리는 것처럼,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이는 벽 앞에 직면해 그때그때 주어진 냉혹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 있어 만약이란 가정은 사치일 따름이다.  

그가 오른 일련의 등반선이 자일을 통해 유려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선은 그가 오른 시간의 단층이며 그 오랜 세월들이 고여 빚어진 시간에 대해 스스로 적응해 얻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벽만 보고 오를 뿐이어서 자기 앞의 상황만 보고 판단할 뿐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등반선은 엄청난 고도감을 배경으로 멀리 가리봉(1518.5m)과 삼형제봉(1225m)을 잇는 능선이 눈부시게 도열해 있고, 그가 닿을 벽의 정상에는 천 년 세월을 가늠했을 외로운 소나무가 그를 맞이할 것이다.

▲ '용틀임' 제 2피치를 선등하는 이상우씨 등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석황사골.

그가 문득 한 사람의 클라이머로만 보이지 않고 한 폭의 선경(仙境) 속을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는 신선처럼 보인다. 벽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그의 머리 위로 이름 모를 새소리가 번졌고, 미간 사이로 희미한 미소가 흘깃 스쳐지나갔다. 이어 후등자인 이상우씨가 그가 오른 흔적들을 지우며 올라간 뒤 홀링백을 올림으로써 개척등반은 마무리됐고, 그네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벽등반 라인이 될 ‘별빛 속으로’를 완성했다. 이후 그들을 기다리는 건 아득한 평지로의 이동이었다.

며칠 뒤, 우린 다시 석황사골을 찾았다. 2003년에 김세준·이상우·왕준호씨가 개척한 ‘용틀임(A3)’을 등반하기 위해서였다. 이 루트가 있는 골짜기 좌벽에는 3개의 루트가 더 개척돼 있어 최근 들어 거벽등반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는 10여m 와폭 상단을 조금 지나 루트가 나있는 왼쪽으로 가기 위해 암반 개울을 건넜다. 벽은 바로 나타났다.

 

▨ 시간은 모든 것을 객관화시킨다

짧은 첫 피치는 김세준씨가 올랐다. 처음 구간은 쉬워보였으나 차츰 고도를 높일수록 어려워지는지 등반속도는 느려진다. 하지만 이미 개척된 길이라 지난 번 ‘별빛 속으로’를 개척할 때보다는 등반속도는 빠르게 느껴진다. 하긴 그렇다. 아무런 정보가 없이 처음 가는 길과 그나마 여러 번 등반한 흔적이 남아있는 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남이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모험과 고통, 인내를 수반한 것이라면, 이미 만들어진 길은 아무래도 정신적 공황감이 훨씬 덜하다. 김세준씨가 제1피치를 마무리하자 이상우씨가 자신이 개척한 제2피치의 공간 속으로 접어든다.

그의 등반 모습은 한 마리의 맹금류와 같이 날카롭다. 그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벽을 주시한다. 그리고 그는 해머로 벽을 두드린다. 바위소리는 서로 제 각각이다. 톡톡, 탁탁, 퍽퍽, 퉁퉁…. 그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어 환자의 속을 살펴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바위의 소리를 듣는다. 맑은 소리는 암질이 단단하다는 걸 의미하며 소리가 탁한 것은 바위가 떠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는 자기의 갈 길과 일치하는 청음이 나는 곳에 하켄이나 훅을 설치하고 그에 의지해 땅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데….

설치한 장비의 안전 유무를 여러 차례 확인한 그가 거기에 몸무게를 싣자마자 확보물이 빠지면서 순식간에 곤두박질친다. 다행히 확보물이 1개밖에 빠지지 않아 추락 거리는 짧았지만 일순간 그의 표정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 나도 미쳤지. 내가 왜 이 길을 떠났는지 몰라.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이 길. 그래도 난 이 길이 좋아. 극단과 극단 사이에 내가 서있기에….”

사실 인공등반에 있어 A3 구간은 등반자가 설치한 확보물이 매우 불안정해 선등자가 추락하면 확보물 3~4개가 빠지면서 10여m 떨어지기 때문에 등반자가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되는 구간이다. 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뒤, 불가능에서 가능성을 타진하며 그의 남은 피를 소진시킨다.

등반을 계속하던 그가 암만해도 불안한 바위덩어리를 그대로 두고 갈 수 없는지 결국 낙석을 시킨다. 우르르 꽈쾅~. 요란한 굉음이 석황사골을 뒤흔든다. 그가 벽 상단으로 갈수록 쉬워지는지 등반속도가 빠르다. 이 루트를 개척한 이후 많은 이들이 여길 찾았다가 흩날리는 고도감에 못 이겨 알루헤드 등을 박았기 때문이리라.

▲ 이상우씨가 선등하면서 설치한 확보물들을 김세준씨가 회수하고 있다.
등반을 끝낸 그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묻어난다. 이제 그가 할 일이란 골짜기 풍경이 수려한 석황사골을 내려다보는 일만 남았다.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 풍광 속에 그는 거기 서있고, 또 그들은 곧 아래 세상으로 내려갈 터이지만, 그와 김세준씨, 그리고 그들이 속한 익스트림라이더가 부를 희망의 노래는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듯, 극심한 가뭄을 견딘 나무의 나이테가 조밀해지는 것처럼 난 그들이 보다 더 어려운 등반을 통해 더욱 단단하고 강건한 클라이머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그들이 있는 한 우리가 생각한 알피니즘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본래의 길을 찾아갈 것이며, 미래 또한 맑을 것이다. 그네들의 건투를 빈다.
글 사진 김기섭 경원대 산악부 OB



 

■ 등반 길잡이

과감한 결단력 필요로 하는 2피치 등반
다양한 등반 루트가 있는 석황사골

이번에 새로이 개척된 ‘별빛 속으로’와 처음 공개되는 ‘용틀임’은 설악산 석황사골에 있는 거벽등반 루트다. 이 골짜기에는 이 2개 코스 말고도 3개 거벽 등반 코스가 있고, 개척이 가능한 곳이 좀 더 있으리라 본다. 또한 '용틀임’이 있는 좌벽 오른쪽으론 거벽루트 말고도, 2피치의 ‘바기라티 가는 길(5.11d)'과 '환영길(5.10b)’ 등 5개의 자유등반 루트가 있다.

그리고 이 골짜기 우벽엔 5피치가 넘는 ‘코락길’과 ‘체 게바라길’ 등 6개의 자유등반 루트가 있어, 예전에 비해 등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졌다. 게다가 이 골짜기는 44번 도로에서 벽까지 15분밖에 안 걸려 접근이 쉬워 앞으로도 많은 등반가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들머리

석황사골로 가려면 한계 삼거리 검문소에서 옥녀탕휴게소를 지나 장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어 옥녀2교를 지나 거대한 오버행을 이룬 하늘벽을 조금 지나게 되면 도로가 굽어지면서 도로 왼쪽에 관리공단에서 설치한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곳이 석황사골 초입이다.

표지판을 재빨리 지나 완만한 산길을 따르면 평탄한 산죽밭이 나오고, 석황사터로 가는 길과 곧장 가는 길이 갈리는 좁은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엔 삼거리 바로 직전 이를 증거라도 하듯 세 갈래로 자란 나무가 있다. 석황사터로 가려면 오른쪽 길을 택하고 좌우벽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가려면 직진하면 된다. 이 길들은 이후 다시 만난다.

먼저 붉은벽의 ‘별빛 속으로’를 가려면 ‘몽유도원도’(암릉길) 초입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곳으로 조금 접어들게 되면 곧 몽유도원도로 가는 바위가 보이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작은 텐트 한 동을 칠 수 있는 좁은 공간이 보인다. 이곳에서 리지 방향을 바라보고 왼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멧돼지나 산양이 다닌 듯한 아주 좁은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약간 올라서면 길은 평탄해지고 몽유도원도의 왼쪽 골짜기로 가게 된다. 이 골짜기 초입에는 서너 기의 이정표 돌탑이 있다.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골짜기 왼쪽에 돌탑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른쪽을 살펴보면 작은 돌탑이 있고 나무에 노란 슬링이 매어져 있다. 이곳이 초입이다. 이어 사람이 다닌 듯한 가파른 꿀와르의 흔적을 따라 가면 붉은벽이 나온다. 44번 도로에서 약 1시간 남짓 걸린다.

석황사골 좌벽에 있는 ‘용틀임’은 찾기 쉽다. 삼거리에서 직진해 어느 정도 가면 길 왼쪽에 있는 몽유도원도 초입과 만나게 되고, 좀 더 위로 가면 야영지가 나온다. 이곳 바로 위쪽에 약 10m의 누운 폭포를 건너게 된다. 여기서 암반을 따라 조금 가면 너른 암반이 보이는데, 앞에 보이는 개울을 건너 벽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약간 가면 벽의 끄트머리에 닿게 된다. 루트 초입에 2개의 볼트가 있다.         
   

#별빛속으로

제1피치 : 시작지점에 있는 볼트 위로는 자연적인 크랙 라인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위적인 훅 동작으로 10여m 오르면 우향 사선크랙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후 쌍볼트가 있는 제1피치 종료지점까지는 작은 사이즈의 프렌드가 필요하다. 등반 길이는 약 55m.   

▲ 석황사골 '별빛 속으로' 초입에 있는 돌탑. 바로 오를쪽에도 작은 돌탑 한 개가 더 있다.
제2피치 : 전반적으로 단단한 화강암 암질이지만, 보기와 달리 크랙의 깊이가 얇고, 장비 설치가 불확실하다. 그리고 작은 사이즈의 러프나 버드빅이 손가락 반 마디 정도 들어가긴 하지만 더 깊이 박으려면 장비들이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 루트 중간 부분은 세 동작의 훅을 사용해야 하며 상단부로 진입하면 자연적인 크랙을 이룬다. 제2피치는 전반적으로 힘든 오버행을 이루고 있어 강한 체력과 등반 기술이 필요하다. 등반 길이는 약 30m.

하강은 정상에 있는 큰 소나무에 슬링을 걸어 자일 두 동을 이은 후 내려와, 한 번 더 하강하면 된다. 아니면 정상에서 약간 걸어 내려와 큰 소나무에 자일 한 동을 건 뒤, 다른 나무들을 이용해 두 번 더 하면 된다.    

#용틀임

제1피치 : 첫 볼트가 있는 곳에서 자유등반으로 약 10m 등반이 가능한데, 작은 사이즈의 프렌드가 필요하다. 이후 크랙이 얇아지므로 아주 작은 사이즈의 헤드나 버드빅을 사용해 오르면 된다.

제2피치 : 아주 좁은 크랙으로 형성돼 알루헤드 3개를 쓰며 출발해 7~8m를 오르면 등반선이 끊긴다. 이때 등반선을 잇기 위해 왼쪽으로 3~4m 펜듈럼을 해야 크랙으로 진입할 수 있다. 특히 바위 상태가 안 좋은 곳에서 연속적인 버드빅과 몇 동작의 훅을 써야 한다. 등반 길이는 35m.

하강은 제2피치 쌍볼트에서 60m 자일 두 동을 쓰면 지상에 닿는다.

   

#소요시간 및 장비

2인1조 등반시 자일 2동과 해머, 줄사다리 2세트, 점핑세트, 하켄, 프렌드, 너트, 알루헤드, 탈론, 훅 등 거벽등반에 준하는 장비들을 챙기면 된다. 등반 시간은 ‘별빛 속으로’가 약 10~12시간, ‘용틀임’이 6~7시간 소요된다.

#등반 허가

설악산 관리사무소 장수대분소(033-461-3476)에 가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등반허가를 내준다. 직원 퇴근 시간인 오후 6시 이전에 가야하며, 등반자 전원이 가서 허가서에 사인해야 한다. 등반지는 ‘몽유도원도’로 기입해야 허가가 나온다. 허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자마자 곧바로 등반허가가 나온다.

#교통

승용차로 갈 경우 인제, 원통을 지나 한계 삼거리 검문소에서 한계령쪽으로 우회전한다. 옥녀탕휴게소를 지나 약 5분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에 하늘벽이 보인다. 이쯤에서 비상등을 켜고 가다가 하늘벽을 지나자마자 도로가 굽은 곳이 나오고 도로 오른쪽에 공단에서 설치한 ‘출입금지’ 표지판이 보이면 일행을 하차시킨다. 그 뒤 운전자는 장수대 매표소에 차를 주차한 후, 표지판까지 약 5분 걸어내려 오면 된다.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ARS)에서 1일 12회(06:15~23:00) 운행하는 원통행 직행버스 타고 원통에서 하차한다. 요금은 12,000원. 약 3시간20분 소요. 요금 12,000원. 석황사골로 가려면 원통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요금은 15,000원선. 석황사골은 핸드폰 통화가 가능한 곳이므로 등반을 마치고 나올 때는 개인택시(011-362-3513)를 호출하면 된다.

#숙박

장수대 야영장을 사용할 수 있다. 야영비를 아끼려면 옥녀탕매표소(폐쇄) 옆에 있는 대형 주차장(무료)에서 야영한 다음, 아침 일찍 철수하면 된다. 아니면 옥녀탕휴게소(033-463-9301~3)에서 민박하므로 예약하면 된다. 30~40명이 머물 수 있는 이곳의 숙박료는 1인당 6,000원.

출처 : 살며 사랑하며~
글쓴이 : 주여리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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