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마을에 태극기(太極旗)가 걸리고 길거리에선 어느 단체인지 모르지만 태극기를 달자는 홍보가 분주하다. 올해는 광복(光復) 70周年의 해이니, 삼일절을 맞는 의미 또한 남다르다 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태극기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1882년 당시 수신사 박영효에 의해 급조(急造) 되었건, 1949년 국기시정위원회에서 '국기제작법고시'를 했던 간에 2007년에 '대한민국 국기 법'이 제작 되었지만, 태극기를 설명하는 부분에 철학(哲學)이 부족하고, 언뜻 오류(誤謬)도 보여 진다. 우선 왜 태극인가? 에 대한 답이 충분하지 않다. 태극의 의미로 음양에 의한 우주만물의 생성 발전을 말하고 있지만, 태극을 선택한 깊이 있는 철학도 부족한 것 같다.
우선 태극에는 예로부터 두개의 태극이 대표적으로 전해졌다. 하나는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의 하도(河圖)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선천팔괘(先天八卦)에 의한 태극과,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구궁(九宮)수를 짊어지고 나온 거북의 모습을 보고 그린 낙서(洛書)를 중심으로 만든 문왕(文王) 후천팔괘(後天八卦)의 태극이 그것이다. 하도는 복희씨가 우리의 조상됨으로 고기(古記)에서 볼 수 있으니 선택 할 수 있는 것이고, 낙서 또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우리의 옛 조상이 전한 것이라 하니 버려 둘 필요는 없다. 다만 글이 생성되기 이전부터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와 만물의 이치를 그린 것이 하도이고, 글 이후에 만들어졌다 하여 낙서(洛書)이니, 하도(河圖)가 좀 더 오래된 우리 옛 선조들의 사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하도를 근간으로 태극기를 구성하는 것이 옳다 여겨지며, 선천과 후천은 금화교역(金火交易)하는 것이니, 하도에 낙서가 있는 것이고 그림(象)이 있은 연후에 글이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태극기는 왜 태극을 선택 했으며, 팔괘(八卦)중 사괘(四卦)만을 선택 했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하여 역경(易經)을 살펴봄이 바람직 한데, 우선 역(易)을 주역(周易)이라 하지 않음은 주역은 周나라의 易이란 뜻이니 주역이라 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은 주역만이 전할 뿐이고 주의 문왕이 괘사(卦辭)를 달고, 주공이 효사(爻辭)를 달고, 공자가 십익(十翼)으로 찬역(贊易)했으나, 태극과 팔괘는 원래 복희씨의 획역(劃易)으로부터 있어 온 것이며, 天,地,人의 三才는 동북방 사람들의 사유임으로 역경이라 칭하는 것이 역시 바르다 하겠다. 또한 공자는 스스로 술이불작(述以不作:옛것을 서술 할뿐 새로이 창작하지 않음)했다고 하니, 역에서 취했다고 하여 우리 것이 아니란 생각을 우선 버려야 할 것이다.
易은 역이 있어온 때부터 위서(緯書)와 참서(讖書)가 난무 하였지만, 정이천의 의리역(義理易)과 주희의 상수역(象數易)이 대표적인 주석(註釋)의 방법으로 통했다. 하지만 글이 있기 전, 우리의 옛 선조들은 象을 그렸을 것이고 數를 해 아렸을 것이다. 낮이면 태양을 보고, 밤이면 달과 별빛을 좇아 기울고 비워지는 모습을 그렸으며, 산(算)가지를 들고 數를 세어 표시도 하였을 것이다. 배울 학(學)자의 모습은 아이들이 상위에서 산가지(爻)를 세는 모습이니, 象과 數는 면면히 이어지고, 술수(術數)가 더해져, 상수로써 마침내 자연의 변화와 법칙을 터득하게 되어 처음으로 易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주희는 역에서 상(象)과 수(數)를 중시한 것이다. 또한 易에 담긴 의리(義理) 또한 가벼이 할 수 없음에, 많은 현인들이 역경(易經)에 대하여 논한 전(傳)도 의미 있는 것이다.
역에 대한 傳으로 공자의 십익(十翼)만한 것이 없으니, 經속에 남아 전하는바 되고, 우리가 찾는 태극의 이치와 팔괘의 생성을 공자의 십익(十翼)중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易有太極(역유태극)하니 是生兩儀(시생양의)하고 兩儀生四象(양의생사상)하고 四象生八卦(사상생팔괘)니라
→역에 태극이 있으니 그곳에서 두 가지 거동(양의: 陰과 陽) 음양이 나왔고, 음양에서 사상(少陽, 太陽, 少陰, 太陰)이 나왔고, 사상에서 팔괘(乾,兌,離,震,巽,坎,艮,坤)가 나왔다.
象과 數를 논할 때 상이 우선 하는지, 수가 우선 하는지 의견이 분분 하지만, 그것은 닭과 달걀의 우선함의 논란과 같고, 數의 진화(進化)가 象을 얻어가며 형이상학(形而上學)적 四象에서, 형이하학(形而下學)적 八卦로 넘어가며 우주만물의 물상(物象)으로 현시(現示)된다.
이러한 수의 진화과정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주의 원리를 數로 설명한 피타고라스의 사유보다도 앞선 것이며, 사실로써 라이프니쯔에게 이진법의 영감을 주어 현대과학의 총아인 컴퓨터를 탄생하게 했다. 이제마 선생은 여기에서 사상의학을 전개했고, 그 뿐 아니라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 심리학, 헤겔의 변증법등의 서양철학에도 실질적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우리의 한글은 한대(漢代)에 오행(五行)이 접목된 易에서 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공자는 계사상전에서 하늘 하나, 땅 둘, 하늘 셋, 땅 넷, 하늘 다섯, 땅 육, 하늘 일곱, 땅 여덟, 하늘 아홉, 땅 열이라 하여 음양으로 수가 생(生)하고 성(成)함을 밝혔고, 하도에서 얻은 수 10은 55점이고, 낙서에서 얻은 수 9는 45점이니, 합이 100점이며, 따라서 주의 문왕은 하도 태극에 낙서 태극을 올려놓아 64괘 만들어 대연수(大衍數) 50으로 점도 쳐보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괘사(卦辭)에 담아 본 것이다.
어떻든 음양수의 변화와 천지인이 접목된 괘상(卦象)에, 인간사(人間事)를 걸 수 있어 괘(卦)라 이르고, 태극이 분화되어 만드는 수의 조화는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이므로 하늘과 땅 사이의 운행 법도, 즉 하루의 12시(時), 사계(四季), 사방(四方),오행(五行),12月,12律,24節氣,72候,천간(天干)과 지지(地支)등을 설명할 수 있었다. 수로써 설명할 수 있어 술수(術數)이나, 지금은 그 뜻이 와전 된 것은 역을 한낮 점서(占書)로만 취급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역에 태극이 있고, 태극은 변화의 원리인 음양을 낳고, 음양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철학이 담겨진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만물이 걸려있는 팔괘(八卦)를 낳음으로, 이러한 원리를 수로써 설명한 것이 다시 역(易)이며, 때문에 역은 글이 있기 전부터 상(象)으로, 글이 있은 연후에는 지속적으로 인간이 하늘과 땅을 살피고, 자연의 이치를 살펴 긋고(劃易), 쓰고(作易)해서 기록한 것이며, 그래서 역으로 세상만사 자연의 이치를 설명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태극기는 유래와 이유가 어떻든 易에서 취한 것이다. 또 한 역이 한낮 점서로 치부될 비과학적(非科學的) 학문이 아니라 태초(太初)부터 우리 조상들의 경험과 사유가 담겨져 있으며, 상수(象數)의 원리로 동서고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극히 경험과 과학의 원리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經(씨줄)이다.
또한 역이 주역(周易)이라 하여 중국의 사유로 생각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한데, 역은 사계절(四季節)이 분명한 동북(東北)지방 사람들의 사유이며, 때문에 역의 시작은 동북의 艮方에서 시작되며, 정월(正月)이 이에 해당하며, 입춘(立春)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고대에 나라를 세움에 삼통법(三統法)을 따랐는데, 黑통, 白통, 赤통이 그것이다. 삼통법에 따라 예법과 율력(律曆)과 의관의 색을 달리 했는데, 간방은 백통에 해당 하며, 오행의 서쪽 백색과는 다른 해석으로 우리가 백의민족으로 해석되는 관점이다. 또한 중국의 해석으론 은(銀)나라가 백통이니 생각해 볼 일이다.
자 그러면 우리의 태극기가 왜 바탕이 흰색이며, 문양으로 태극과 괘를 그려 넣었는지 유래와 이유가 어떻든 이해가 될 것이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국기가 다윗별인 것을 감안 할 때, 다윗별은 히브리어 모세 오경 중 창세기 1장 1절에서 따온 것이다. 히브리어 창세기 1장 1절을 지면이 허락되지 않고, 오버 하는 것 같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무수히 많은 數의 조합과 기하학의 미언대의(微言大義)로 이루어 져 있어, 1장 1절로써 창세기를 온전히 담아낸다. 그 모습을 형상화(形象化)한 것이 다윗별이다.
우리의 태극기 또한 우리의 옛 선조들이 우주 만물의 창조적 원리를 상(象)과 수(數)로써 태극에 담았으며, 象으로 기물을 만들고 인간사를 설명 했으며, 數로써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고, 글이 있은 연후에 태극에서 합당한 도(道)를 얻은바 되니, 이를 易이라 이르며, 태극을 역에서 취한 것이다. 그리고 역은 우리의 것이니 태극이 우리의 국기로 손색이 없다.
자 그러면 우주생성 원리가 담겨진 태극이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 발전 한다면, 지금 우리 태극기의 문양이 잘못 되어 있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양(陽)의 색이 붉은색인 것은 태양(太陽)의 기운이 적(赤)색의 위치에 있으니 합당하다. 음(陰)의 색으로 태음(太陰)색인 흑(黑)색이 합당하나, 색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색(五色)은 원래 오행(五行)에 근거한 것이고, 한대(漢代) 이전엔 오행을 논한 이는 팔괘를 논하지 않았고, 팔괘를 논한 이는 오행을 논하지 않았다 한다. 때문에 오행을 순전히 우리의 사유라 할 수 없고, 우리의 동쪽이 靑색인 바 되니, 陰으로 청색을 취할 만하다 하겠다. 이렇게 볼 때 바탕으로 흰색을 취함도 어긋나지 않으니, 사방(四方)의 색 가운데 나머지 흑(黑)색을 卦의 색으로 정함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태극기에서 잘못된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첫째 음양과 사상을 담은 태극이 누워져 있다. 선천팔괘방위도(先天八卦方位圖)를 근거해 보아도 태극의 위치가 누워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양은 불의 기운으로 위로 타 오르며, 음은 물의 기운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다만 그림상의 사방(四方)의 모습이 바뀌어 보이는 것은 사람이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모습인 것이다. 또한 前漢의 유학자 동중서는 자신의 저서 번로에서 음양의 출입을 자세히 묘사 했는데 비추어 보면, 우리의 태극기의 태극 위치는 사계(四季)의 모습과 사방(四方)과 12월과 24절기, 천간(天干), 지지(地支)등 數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象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두 번째 잘못된 점은 괘의 위치인데,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발전한 소양(少陽)인 감(坎)괘는 처음 음에서 분화한 것이기에 陽옆에 설 수 없고, 양에서 음으로 음에서 양으로 발전한 소음(少陰)괘인 리(離)괘는 처음 양에서 분화한 것이라 음 옆에 설 수 없다. 때문에 건괘와 곤괘의 위치는 음양 변화에 맞게 서 있으면서, 감괘와 리괘가 뒤 바뀐 것이 우스울 따름이다. 더구나 괘의 방향을 달리하는 후천팔괘에 이르더라도 리괘는 양의 기운이 꽉 찬 태양 옆에 있고, 감괘는 음의 기운이 꽉 찬 태음 옆에 있는데, 우리의 태극기는 음양수의 변화에 비추어볼 때도 리괘와 감괘의 위치가 설명되어 지지 않는다.
세 번째 아쉬운 점은 왜? 팔괘(八卦)중 건, 곤, 감, 리만을 그려 넣었냐는 것이다. 건괘와 곤괘는 그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리괘와 감괘는 다른 괘 보다 그 象이 좋다 할 수 없고, 다만 건, 곤이 선천에서 하지(夏至)와 동지(冬至)에 해당 하는 바, 이괘는 춘분(春分)에 감괘는 추분(秋分)에 해당 하는데, 사시(四時)의 중요성을 감안 하더라도, 우리가 동북방의 艮方에 위치하고, 태극의 시작이나 한해의 시작이나 사계의 시작이 간괘(艮卦)에서 시작됨으로 이괘와 감괘만 못하지 않다. 따라서 팔괘 모두를 그려 넣어도 약간 복잡한 감은 있으나, 균형에 어긋나지 않으니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 태극기에 대한 철학의 미흡한 점을 나름대로 논하고, 태극기의 잘못된 두 부분을 지적하고, 극히 개인적 인 소견(所見)을 한가지로 적었다. 역(易)은 중정(中正)의 학문이기도 하다. 바른 위치를 찾는 것은 합당한 일이며, 득중(得中)하는 일은 힘든 일이지만 추구해야 될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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