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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스크랩] 1차 & 2차 세계대전 원인과 기간 그리고 결과 히틀러 유대인 학살 이유는?

1차 세계대전 & 2차 세계대전
원인과 기간, 그리고 결과. 히틀러 유대인 학살 이유는?

어제는 8월 15일 광복절이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역사적인 날이었는데요. 이 시기쯤 전세계적으로 2차세계대전이 종식되기도 했던 날이기도 하네요. 어제 tv에서 2차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이 방영이 되어 유심히 시청했었는데 몰랐던 사실들이 많더라구요. 오늘은 다른거 다 치우고 과거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원인과 기간 그리고 그러한 전쟁이후의 결과 등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며 이때 가장 핵심인물이었죠? 바로 히틀러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했던 잔인했던 독재자 히틀러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1914년부터 4년동안 지속되었던 1차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유럽의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이 된게 시발점이 되었는데요 1918년 11월11일 독일이 항복하면서 끝을 맺은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3개국이 연합을 맺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동맹이 되어 펼친 전쟁으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20세기 들어서 인류가 겪은 가장 큰 전쟁이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등 자본주의 경제가 독점단계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경제력의 판로를 필요로 했고 이 국가들은 식민지를 만들어 세력을 넓히기 위해 경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범하고 만주국을 세우고 중국을 통째로 먹어치우려고 하고 동남아 지역을 휩쓸었던 이유이기도 하겠네요. 중국의 만주와 우리나라 한반도를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러일전쟁을 했던것도 어찌보면 우연은 아닌데요 러일전쟁의 배후에 있던 나라들은 바로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이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제국주의의 국제적인 대립에 있어 중심은 동아시아의 러시아와 영국간의 항쟁이었다고 합니다. 러일전쟁에 패배한 러시아는 후퇴하고 진로를 발칸반도와 중동으로 향해 제 1차 세계대전 시작까지 제국주의 열강의 국제 대립 무대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지배영역으로 옮겨졌고 대립의 주역이 된 국가는 영국과 독일이었다고 합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후 전세계는 새로운 전개로 향해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중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협상이 성립이 되었고 이 두국가는 세계각지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 이집트와 모로코를 서로 상대국의 보호령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협정을 맺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부터 어찌보면 영국과 프랑스는 참 많이도 티격태격싸웠는데 20세기에도 이런짓을 했었네요. 이뿐만 아니라 영국과 러시아간의 협상도 성립이 되었는데요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3국 동맹을 맺은걸 대항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세력의 균형을 잡기위해 동맹을 맺은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와의 대립에서 프랑스에 접근을 하는 바람에 독일은 고립되고 말았다고 하네요. 3국동맹과 3국협상..대립의 주축은 영국과 독일. 독일은 프랑스의 모로코 보호령화를 반대하며 난리를 쳤지만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만 더 좋아진 꼴이 되기도. 1차 세계대전 전 영국과 독일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대립하였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일찌감치 발칸으로 진출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슬라브계 제민족 결집을 노렸고 오스트리아는 이부분이 무서워 독일의 지지하에 범게르만주의를 주장하며 대항. 1908년 투르크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불가리아가 독립을 하였고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이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었죠. 러시아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러일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와의 동맹국인 독일과의 마찰이 두려워 독일 오스트리아 병합정책에 지지성명을 하고 말았다고 하네요.

 

 

여기까지는 어찌보면 아직 시작도 안한겁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된 사건이 시작되는데요 1914년 발칸지역에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방문을 했는데 이때 세르비아의 자객애 의해 피살이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오스트리아는 발끈하여 세르비아를 타도하고 발칸에서 열세를 만회하고자 국교를 단절하고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에 대해 총동원령을 내려 국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사이를 조정해 달라는 영국의 요청을 무시하거나 거부했던 독일은 강경한 태도를 바꿔 오스트리아-러시아 교섭에 응할것을 권유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려 큰 전쟁으로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독일은 러시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독일은 프랑스의 벨기에 중립 침범을 비난하여 선전포고를 해놓고서도 벨기에에 침범, 결국 영국도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차세계대전은 이탈리아를 제외시킨 유럽전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먼저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러시아를 공격할 계획. 전쟁이 시작하면서부터 프랑스로 침입해 파리로 진격하였지만 결국 저지되었고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던 독일군은 생각보다 빨리 프로이센으로 진격한 러시아군을 대패시켰습니다. 이 전투는 바로 타넨베르크전투인데요 하지만 동쪽과 서쪽 승리를 거두지도 못하고 참호전으로 바뀌게 되어 결국 교착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때쯤!! 일본은 연합국측으로 참전하여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독일의 세력을 빼앗기 시작, 중국에서 큰일을 저지르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오스만투르크는 독일과 유대적 강화를 해오고 있었던 국가였는데 갑자기 동맹국측으로 참전, 영국과 프랑스 연합함대는 격렬한 공격을 했지만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최초로 독가스를 영국군에게 사용했는데 더 큰 관심은 바로 이탈리아였다고 합니다. 3국동맹에 있지만 중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런던 밀약에 의해 미수복지와 달마티아등 영토를 받기로 약속받고 오스트리아에 선전 연합국측으로 참전을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때당시 이탈리아는 군사력이 약해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햇다고 하네요. 불가리아가 동맹국으로 참전해 독일 오스트리아군과 협력을 맺어 세르비아를 점령했고 루마니아가 연합국에 들어갔지만 결국은 제압. 장기간의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 동맹국은 90만명, 독일은 60만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지상에서는 힘을 못썼던 영국은 해전에서는 우세했었는데요 영국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이기도 했던 독일이지만 영국의 막강한 해군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고 합니다. 도거뱅크 해전과 유틀란트 해전이 있는데 승패가 나지 않았던 전투였다고 하네요. 하지만 영국의 우월함은 여전했다는! 신병기로 등장한 전차는 영국에 이어 프랑스와 독일이 뒤를 이었고 정찰용으로 쓰던 비행선은 독일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각 국가들은 정당방위 전쟁이라고 떠들어대며 국민들에게 알렸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운동이 불면서 전쟁반대결의도 생겼는데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자세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1917년 막바지로 접어들었는데요 독일은 잠수함전을 개시 영국주변의 중립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상선을 경고없이 격침해 식량과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영국과 경제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의 참전을 초래하는게 분명해져 단기간에 성공을 시키지 못하면 독일의 패배가 짙어지는 도박이었습니다. 독일의 잠수함들은 예상을 깨고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미국의 참전만 부추겼을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패배한 독일은 소련 정권이 성립하자 즉각 정전을 제안 소련정부의 평화 호소와 비밀외교의 폭로로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 끝을맺어갔으며 독일과 러시아는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한 부담을 덜은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대공세를 펼쳤지만 미국의 증원을 얻은 연합군이 반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동맹측이 붕괴되고 불가리아와 오스트리아 오스만투르크의 항복이 이어졌고 독일에서도 독일혁명이 일어나자 제정도 붕괴 임시정부는 연합국과 휴전조약을 맺게 됩니다. 5년동안 이어진 1차 세계대전은 혁명만 유발시킨채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어버렸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알리는 강화회의는 파리에서 개최되었는데 세계정치에 주도권을 잡으려는 미국의 제국주의 요구의 표출이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3대국이 주도한 강화회의는 윌슨 대통령의 이념으로 독일에 복수해 약화시키고 패권을 잡으려는 영국과 영국의 제국주의적 현실앞에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베르샤유 강화조약은 독일에게 가혹한 짓이었는데요 독일은 해외식민지를 모두 잃고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반환, 벨기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 약간의 영토를 할양하며 인구의 15%와 유럽 영토의 10%를 잃었습니다. 군비제한이 부과되며 오스트리아와의 합병도 금지시켰고 배상으로 1329억 마르크가 결정. 베르사유조약을 시작으로 구제국을 해체하고 단일 소국가로 하였고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발칸과 동유럽의 작은 국가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핀란트 발트3국을 만들었고 패전국이나 비유럽 세계의 식민지에는 비적용, 동유럽에서 신국가 건설도 동맹제국을 약화시키고 소련을 묶어두려는 의도에서 실행된 것이라고 합니다. 국제연맹의 설립을 정하였는데 제안국이었던 미국은 가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일과 소련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연맹은 평화유지 목적을 달성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베르사유 체제 그 자체가 영국과 프랑스만 좋아지는 것 밖에 안되었고 국제적 대립이 발생하는것을 방지할수 없었던 이유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1차 세계대전이 종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죠. 바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겁니다.

1939년부터 45년까지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와 태평양 등등 전세계적으로 펼쳐진 전쟁이 시작되고 만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동맹국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이 주축이 되어 뻘짓을 시작했고 1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인 영국과 프랑스, 미국, 소련이 중심으로 연합국을 형성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불러 일으킨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에서 비롯되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을 하며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소련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불씨가 더 커져버린 이 전쟁은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가 조약을 맺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수천만에 이르는 인명피해가 났고 정치와 사회, 문화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1945년 국제연합이 창설되었는데 승리한 국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경제 질서 회복을 위해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로 자리를 잡으면서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소련은 동유럽과 몽고, 북한 등에 공산주의를 심어주었고 중국도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나중에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한 자본주의, 소련과 동유럽, 중국을 중심으로한 공산주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60년대까지 패전국의 식민지 상태였던 나라들도 주권국가로 독립을 하면서 국제관계에서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 1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위기단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자본주의국가로 기초가 약했던 현실. 일본은 국내정책의 정돈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동북을 침공했고 만주국을 만들어 자본주의 발전의 기반을 얻으려고 하였고 국제연맹이 만주국을 부인하자 일본은 연맹을 탈퇴하였습니다. 독일은 베르사유 체제 타파를 외치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 제네바 군축회의 결과에 불만을 가져 국제연맹을 탈퇴하였습니다. 재군비를 선언하고 라인란트 비무장지대에 진주해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 베르사유 조약의 힘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도 에티오피아에 침공 결국 정복하였습니다. 침략이 확대되고 반 파시즘, 민주주의 옹호를 주장하는 운동이 활발해졌으며 에스파냐와 프랑스에 인민전선정부가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개입으로 내란이 벌어졌고 중국은 시안 사건을 계기로 항일민족통일전선이 결성, 일본은 중일전쟁을 도발시키도 했습니다. 독일과 일본은 방공협정을 체결하였고 이탈리아까지 가해세 반소를 외쳤고 파시즘화와 대외침략을 추진, 공산주의를 겁내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지배층으로부터 그 침략을 용인받으려 했습니다.

 

 

1937년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을 결의한 히틀러는 나치스 체제를 강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고 독일은 동부와 중부 유럽진출을 위한 전략적 지위를 확보했지만 체제가 붕괴되었습니다. 소련의 중립을 확보한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였는데 2주도 안되 폴란드 군대를 격파, 폴란드 침공을 성공한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에 화평을 제의했지만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서부전선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아 반년동안은 전쟁이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련은 독일의 군사력과 침략성을 보고 기겁해 국경방위선을 서쪽으로 확대, 소련군은 폴란드에 있어서 러시아인 보호 명목으로 폴란드에 침입해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폴란드를 분할하였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각각 상호원조조약을 체결, 3개국가는 소련령으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소련과 핀란드와의 전쟁도 많았던 시기였는데 국제연맹은 최초로 소련을 제명시켰습니다. 독일은 파리를 목표로 진격, 결국 점령하였고 이탈리아도 갑자기 참전해 남프랑스를 침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국토의 절반이상을 잃은 드골은 자유프랑스위원회를 결성하였고 히틀러는 영국 본토 상륙작전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해협의 제공권을 둘러싸고 영국 공군을 제압하지 못해 결국 무기한 연기시키고 말았다고 합니다. 동방제국의 건설- 바로 히틀러의 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터키를 거쳐 중동으로 진출하려고도 했는데 무솔리니도 돌연히 그리스로 침공 결국 2주도 안되 독일의 원조를 요청했고(정말 힘이 없었네요) 히틀러는 그리스에 침입해 영국군을 격퇴, 발칸제국을 제압하고 소련에 대한 공격일을 명령. 한편 소련은 일본과 중립조약을 맺고 스탈린이 새 수상이 되어 예상하지 못한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핀란드 모든 전선에서 소련을 침입해 레닌그라드로 진격하였습니다. 중부군은 모스크바로 진격, 남부군은 우크라이나로 진격. 히틀러는 소련군 주력을 2개월내에 격파하고 우크라이나와 캅카스의 자원을 확보할수 있을거라 예상했지만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와 함께 정체되어버렸습니다. 소련군의 반공이 시작되며 결국 좌절을 하게 만들었는데요 그해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중일전쟁의 늪에 빠져들어 영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악화되어버렸는데 독일이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항복시키고 영국 본토 상륙을 시도하자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와 함께 동맹을 체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령의 인도차이나를 침공했습니다. 미국은 수출제한과 미국 영국과 결속해 장제스 정권에 대한 원조강화로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시작되자 북진론을 거론하며 소련과의 전쟁을 준비해 관동군이 만들어졌지만 일본정부는 남진을 결정 인도차이나 남부에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는데 미국은 일본자산을 동결하였고 석유수출도 금지시켜버렸습니다. 미국의 행동으로 일본은 자극을 받았고 진주만을 기습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가미가제라고 자폭비행기죠 자살까지하며 미국을 당황시킨 어마어마한 사건인데 사흘뒤 이탈리아와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942년 미국과 영국 중국 그리고 소련등 26개국이 연합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고 광복군을 창설 태평양전쟁이 발생하자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군대를 연합군쪽으로 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에서 많은 나라들에게 민폐를 끼쳤습니다.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다양하게 피해를 주었는데요 진주만 공격과 함께 말레이반도에서 영국 전함을 격침하며 해권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에도 상륙해 싱가포르를 점령했고 영국 극동군을 항복시키기도 했습니다. 수마트라섬과 자바섬을 점령해 네덜란드 군을 항복시켰고 인도에 대한 이간 공작을 위해 미얀마에 침입해 양곤을 함락시키기도 했씁니다. 1942년 대동아공영권의 건설방침을 제시했지만 남진의 목적의 하나 전략 물자 확보에 있었기 때문에 대동아공영권은 유럽의 식민지지배에 대체되는 새로은 일본 식민지적 체제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에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반일저항운동이 시작했고 이 운동을 계기로 아시아의 민족해방 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히틀러는 유럽을 인종론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재편성하려고 했습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에 독일에 의한 민간 정부가 설치되었지만 독일에 편입할 예정. 룩셈부르크와 알자스로렌, 단치히등 독일에 합병되었고 폴란드와 러시아는 열등인종으로 취급된 슬라브계 주민과 유대인을 강제 이주시켰고 독일인을 식민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게슈타포라는 히틀러의 국가 비밀경찰을 만들어 유대인 문제의 최종적 해결을 명령받고 독일의 지배가 있는곳에 있는 유대인을 모두 잡아들여 420만명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가 한 짓중에 가장 잔혹한 짓이었죠. 노동자의 강제징용을 시작해 750만명의 독일 공장으로 송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기나긴 전쟁의 전환이 시작되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을때 독일타도에 전력을 다했던 영국과 미국. 하지만 영국과 소련은 대립중이었다고 합니다. 소련이 유럽에서의 제 2전선을 요구하면서 영국은 북아프리카 작전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중동과 인도등 대영제국 식민지체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북아프리카 전선이 긴박해 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탈리아군의 원조로 간 롬멜장군이 이집트 카이로로 진격하고 있었던거죠. 적군이었지만 최고의 장군이라고 칭송받았던 롬멜. 역사상 최고라고 불리더라구요. 어쨌든 유럽의 제 2전선에서 독일군을 떠맡은건 소련. 스탈린그라드에서도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은 결국 항복하는데 독일군부 내의 히틀러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던 시기. 그리고 이탈리아는 영국과 미국과의 강화를 획책하기 시작해서 였는데 독일과 소련은 히틀러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투였다고 합니다. 총동원 체제를 취했지만 실패하게 되었고 결국 대세를 만회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시칠리아섬에 상륙 이탈리아에서는 국왕을 중심으로 군부와 보수파, 무솔리니를 감금하고 바돌이오 내각을 성립시켰습니다. 영국 미국과의 교섭을 시작해 무조건 항복하였고 남 이탈리아로 피신했던 국왕과 바돌리오 정부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는 구출하고 북이탈리아에서 공화파시스트 정부를 수립, 결국 전쟁이 발생합니다. 내란상태에서 국왕과 부수파의 권위는 상실되었고 결국 왕제폐지가 되어버렸습니다.

 

1943년 일본은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차단하려 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일본 해군기동함대의 주력이 상실되었습니다. 태평양에서 전략적 주도권은 미군이 장악하였는데 미국군대는 과달카날섬에 상륙 일본군을 몰아내었고 끊임없이 반격해 근처 섬까지 향하였습니다. 미얀마의 일본군은 인도에 침입하려 했지만 대패하였고 사이판섬을 점령한 미국은 일본본토를 공습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맥아더 총사령관은 필리핀 탈환을 위해 레이테섬에 상륙, 일본해군은 전력을 다해 막으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중국내에서도 중국 공산당에 의해 간신히 점과 선을 확보하는데 그쳤습니다.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영국과 미국 소련은 제2전선의 실시에 의견이 일치,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영국 미국 연합군은 북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고 성공시켰습니다. 결국 파리 시민이 봉기를 들어 파리가 해방을 맞이하고 드골장군도 입성하게 되었죠. 독일의 보수파는 반 히틀러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고 소련도 진격을 시작 결국 영토를 해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유럽의 동맹제국은 동요하시 시작해 루마니아는 소련과 휴전협정을 체결 독일에 선전하였고 불가리아역시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은 부다페스트를 함락시키며 소련군의 진격과 함께 동유럽제국에 저항운동을 하는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국가들은 임시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독일군을 몰아내기 시작, 히틀러는 반격을 시도했지만 괴멸당하기 일수였고 소련군은 베를린을 향해 돌입 결국 패망을 직감하고 자살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이 4월29일 항복하면서 무솔리니도 밀라노 근교에서 살해, 유럽의 전쟁은 종결이 되었습니다.

 

1944년 미국 폭격기 B-29가 일본을 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은 마닐라를 탈환하고 이오섬에 상륙, 같은해에 오키나와에 상륙하고 주민 9만여명이 희생되어가며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의 처리방침을 명시하며 항복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무시하자 결국 큰 일을 감행하는데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 소련은 만주에서 일제히 일본군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일본도 항복을 결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하였습니다. 국체수호 고집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일왕은 국민들에게 방송하였고 미군은 결국 일본 본토를 점령해 2차 세계대전은 종결됨과 동시에 대한민국도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정말 전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 전쟁이었습니다. 연합국이 49개국, 동맹국이 8개국 중립국은 6개국. 동원병력만 1억명이상이고 전사자만 2천여명이 넘고 민간인 희생자역시 2500만명 이상이었습니다. 동원병력수만해도 1차세계대전에 비교했을때 2배, 전사자는 5배, 민간인 희생자는 50배 정도였으니 인류에겐 재앙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큰 민간인 희생자는 500만명인 유대인들이었는데 유대인 총 숫자의 70%에 가까운 유대인들이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패전국인 일본과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은 식민지를 잃었는데 잘되었죠. 하지만..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40년동안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대립이 시작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바로 냉전의 시대. 어찌되었던간에 이러한 재앙의 중심에는 히틀러가 있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히틀러에 대해 시작해 볼까 하는데요 아돌프 히틀러, 독일의 정치가이며 독재자였죠.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 유태주의자였던 그는 1933년 독일 수상이 되었고 결국 국가원수가 되며 총통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고향인 히틀러는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히틀러는 13살에 아버지를 잃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 실업학교를 퇴학하고 미술대에 진학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고 18살에는 어머니를 잃게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산과 그림엽서등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는데 당시 오페라와 바그너에 심취했고 도서관을 다니며 독학으로 지식을 습득 이때 정치사상이 형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시절 가낭하고 불우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사치스러웠다고. 마르크스 주의를 반대했고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증오, 히틀러는 1차세계대전때 독일군에 지원해 무공을 세워 1급 철십자장을 받았고 독일이 패전하고 뮌헨에서 공산혁명이 실패하는데 히틀러는 군대에 정치교육을 받고 반 혁명사상으로 독일노동자당이라는 반 유대주의적인 작은 정당에 가입. 말빨이 좋아 선전활동을 전개해 당을 확장시켰고 군에서 제대해 당의 선동가로 정치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군부와 보수파와 손잡고 민족공동체를 건설 베르사유조약 타파와 민주공화제 타도 유대인 배척을 역설했고 대중집회를 자주 열어 민중의 지지를 얻기도. 총선거에서 나치스는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성장하였고 독일민족에 의한 유럽제패를 실행시키고자 제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1934년 총통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고 처음 프랑스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 전후를 계기로 패전을 거듭하며 1945년 베를린 함락전 자살을 했습니다.

 

예전부터 유대인들은 차별을 겪었던 민족이었죠. 음모론도 참 많았는데 프랑스 혁명의 반대파들은 자유와 평등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유대인이라고 했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세계 곧곧에서 유대인들의 음모론이 참 많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마르크스나 레닌은 유대인이었다고 하네요. 유대인이 세계정복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을 유대인이 벌인짓이라고 음모론이 퍼졌고 히틀러도 이거에 홀렸는지 유대인으로 부터 유럽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나봅니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는 민족이지만 많은 부를 가졌던 사람들이었죠. 그나라 인구의 3%가 유대인이라면 부의 30%이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자국민 우월주의에 빠져 유대인을 학살하기도 했다는 이유도 있겠구요. 유대인 자본가들이 독일 경제를 좀먹으면서 독일 경제발전이 이루어 지지 않았고 독일인들은 반감을 가졌다고도 하네요. 유럽인들은 돈가지고 노는거 빌려주고 이자받는걸 매우 싫어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걸 했다고. 유대인들은 부자가 되고 유럽인들은 또 그걸 싫어했고 암튼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하는데 정확하게 나와있는건 없더군요.

 

출처 : 한일역사연구
글쓴이 : 정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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