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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과 변형(1/27,권정임/한신대)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의 코뮌주의 기획을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재생산 시스템
에 대한 기획으로 비판적으로 변형하면서, 이 재생산 시스템의 계기의 하나로 기본
소득론을 전개한다. 특히 자연에서 유래하는 부의 일부를 생태자원에 대한 모두의
공유 몫으로 지급하는 생태기본소득론을 전개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자본?과 ?고타강령비판?의 코뮌주의관을 비판적으로 변형한다. 특히 마르크스가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도 부의 원천으로 명시한다는 사실에 연계하여, 생태기본소득론을 전개
한다.
그런데 특정한 생태자원에 대한 생태세수를 재원으로 하는 생태기본소득은 자본
주의에서도 실행 가능하다. 이 형태의 생태기본소득이 의도하는 생태적·분배정의
차원의 효과가 서로 상충되지 않으면서 극대화되어 생태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나아가, 생태세수에 기초하는 생태기본소득이 탈자본주의적 요소와 결합
한 ‘해방적 기본소득’의 형태로 도입되어야 함을 보인다.


주요 용어: 생태적 재생산이론, 생태기본소득, 해방적 기본소득, 생태세, 마
르크스.


1. 들어가며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본소득1)을 지급해야 하는 경제적·윤리적 근거로,
부가 직접적인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자원”, “경제적·기술적 유산”(Fitzpatrick,
1999: 187) 또는 “전승된 역사적·사회적 자원”(곽노완, 2010b: 174) 등에서 유래
한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특히 자연에 대한 “공동소유권”(Fitzpatrick, 1999: 187),
정확하게 말해서 공동향유권 또는 공유권2)은 토지를 비롯한 생태자원에서 유
래하는 부의 일부를 공유 몫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곧 생태기본소득의 근거
로 제시된다. 16세기 바이브스(Juan Luis Vives)와 18세기의 페인(Th. Paine), 그리
고 19세기의 헨리 조지(H. George) 등에게서 그 맹아가 보이는 생태기본소득론
은, 현대에 이르러 헨리 조지를 계승하고자 하는 지공사회(Geonomy Society), 로
버트슨(J. Robertson), 데일리(H. E. Daly) 및 유럽 녹색당 다수 등이 보다 체계적
으로 전개하고 있다.3)
그런데 생태기본소득론의 특징은 생태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생태자원의
‘공유’를 명시하고 이에 기초하여 보다 정의로운 분배를 이룬다는 사실에 머무
르지 않는다. 생태기본소득론자들은 생태자원에 대해 조세, 곧 생태세를 부가
하여 생태자원을 아끼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생태세의 일부로 생태친화적
인 기술을 개발하여 산업을 생태친화적으로 전환하는 생태적인 효과까지 기획
하고 있다.4) 나아가 기본소득을 통해 사람들이 삶과 노동을 생계 절박성에서
1) 무조건적 기본소득(이하 기본소득)이란 무조건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는, 원
칙적으로 생계유지에 충분한 소득이다. 현금형태와 현물형태가 있다.
2) 자연은 그 누가 창출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따라서
곽노완(2010a: 154)이 주장하듯이, 공동소유가 아니라 공동향유(common pleasure)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3) 이들은 자연을 모두의 공유물로 보며, 따라서 자연에서 유래하는 부 역시 모두가
향유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공통적이다(Füllsack, 2002: 103). 데일리의 경우는 예
외적이다. 그는 자연을 공유물로 보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양가적 내지 모순적이다(권정임, 2012: 30).
4) 이 글에서 ‘생태적’은 ‘생태학적’ 또는 ‘생태친화적’이라는 두 의미를 갖는다. 문맥
상 뜻이 분명하거나 두 의미 중의 하나를 강조하지 않는 경우, 특별히 구분하여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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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하여 영위함으로써 생태친화적인 노동 방식과 삶의 방식 또는 문화가 확
산될 것을 기대한다. 이때 기본소득의 양은 ‘충분’해야 이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태적 효과는 산업정책을 비롯한 다른 사회경제정책
들과 결합함으로써 더 증폭된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기본소득의 다른 재원들에 대한 논의, 나아가 이에 연계되는 사회경제적 효과
에 대한 논의와 중첩된다. 결국 생태기본소득론자들은 생태기본소득의 실시를
통해 사회경제 전체를 생태친화적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러한 정황은 생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생태친화적 사회, 곧 생태사회
및 그 재생산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의 일부로 통합되어 전개되어야 함을 의미
한다. 또한 이는 생태기본소득론과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생태사회론이 현재
주도적인 사회형태, 곧 자본주의 사회경제에 대한 일정한 이해에 기초하여 전
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생태사회의 형성과 그 재생산에 대한 이론, 곧 생태적 재생산이론의 일부로
생태기본소득론을 통합하여 전개하고자 하는 이 글에서의 연구는 따라서, 자본
주의 사회경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연구한 고전적인 이론가, 곧 마르크스의 저
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는 또한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생산수
단5)의 공유에 기초하는 그의 코뮌주의 사회가 생태사회로서 기획되기 때문이
다. 나아가 ?고타강령비판?의 분배정책에 기본소득론으로 발전될 수 있는 맹
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도 부의 원천으로 명시함
으로써, 생태기본소득론을 구성할 수 있는 단서를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에서 자본주의 사회경제를 그 ‘재생산’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생태
사회로서의 코뮌주의 역시 그 재생산에 대한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함을 시사
하기 때문이다.
기하지 않는다.
5) 마르크스에게 “지구”로 상징되는 자연은 노동의 “일반적 대상”(II.5/130; 23/193)이
자 “노동수단의 근원적 창고”(II.5/131; 23/194)이다. 결국 그에게서 넓은 의미에서의
생산수단은 자연이다. 마르크스의 원전으로부터의 인용은, 왼편에 MEGA의 권수와
쪽수를, 오른편에 MEW의 권수와 쪽수를 표시한다. MEGA를 참조하지 않았을 경우
에는 MEW의 권수와 쪽수만을 표기한다.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15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고타강령비판?과 ?자본?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변형하여, 생태기본소득론을 구성하고 생태적 재
생산이론의 일부로 제시한다(2, 3, 4절). 이어서 이렇게 창출된 생태적 재생산이
론과 생태기본소득론에 기초하여, 생태사회 또는 코뮌주의로의 이행를 촉진하
는 “해방적 기본소득”론(Blaschke, 2008: 9; Kargl, 2006: 136)으로서의 생태기본소
득론을 구성할 것이다(5절).
2. 코뮌주의 분배원리와 기본소득
마르크스는 기본소득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다. 따라서 기본소
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쟁에서, 마르크스의 코뮌주의 기획에 기본소
득에 비견될 만한 단서가 존재하는지 자체가 주요 쟁점의 하나를 이룬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코뮌주의 사회를 “모두에게 동일한 노동의
무”(Arbeitszwang)(4/481)가 부과되는 사회로 제시한다. ?자본? I권에서도 마르크
스는 “노동일 단축을 위한 절대적 한계”로 “노동의 보편성”(II.5/429; 23/552)을
설정함으로써, 모든 개인들을 위한 자유시간의 증대를 위해 모두에게 동일한
노동의무를 부여하는 듯이 보인다. 이런 측면을 부각할 때, 슈웨이커트(D.
Schweickart)의 해석처럼 마르크스가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한 권리”가 아니
라 “노동에 대한 도덕적 의무”(Howard, 2005: 128에서 재인용)를 강조하고 있다
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나아가 엘스터(J. Elster)의 주장처럼 기본소득은
결국 “게으른 자들에 의한 근면한 자들의 착취”(Howard, 2005: 128에서 재인용)
로 보인다.
반면 시장사회주의자 호워드(Howard, 2005: 131)와 독일 좌파당 내 ‘연방노동
공동체 그룹’의 블라슈케(Blaschke, 2006: 13)는 ?자본?이 제시하는 코뮌주의의
목적, 곧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적 기본소득론을
전개한다. 기본소득이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한 “물질적 보장”(Blaschke, 2006: 13)
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블라슈케는 나아가 기본소득을 ?고타강령비판?이 제
시하는 코뮌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의 ‘필요에 따른 분배’에 연계하여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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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워드, 특히 블라슈케와 유사하게 이 글에서 전개되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마르크스 저작의 비판적 독해와 재구성 역시, ?자본?과 ?고타강령비판?을 중
심으로 한다. 자본주의 사회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연구성과와 그의 코뮌주의
관이 이 두 저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제시되기 때문이
다. 그 결과 이 두 저작이 마르크스의 다른 저작들에서 제시되는 견해들에 대한
해석과 마르크스가 열어젖힌 이론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먼저 ?고타강령비판?에서 전개되는 코뮌주의 분배원리부
터 재구성해보자.
?고타강령비판?에 따를 때 코뮌주의에서 소비재의 개인적 분배는 사회의 총
생산품 중에서 다음의 두 부분을 공제한 후에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다음 회기의 사회적 총생산을 위해 “경제적 필연성”(19/19)을 이루
는 부분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ㄱ) 사용된 생산수단 대체분, ㄴ) 생산확장을 위한 추가부분, ㄷ) 흉작, 자연재
해로 인한 교란에 대비하는 예비- 또는 보험기금.
두 번째는 “경제적 필연성” 영역에도 소비재의 순수한 개인적 분배 영역에
도 속하지 않는 다음의 영역들이다.
ㄱ) 보편적인, 그러나 생산에 직접적으로 속하지는 않는 관리비용, ㄴ) 학교나
의료시설 같은 욕구의 공동 충족을 위한 부분. 이 부분은 사회발전과 함께 점점
증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ㄷ) 노동할 수 없는 자 등을 위한 기금 등(19/19)
총생산품에서 이 부분들을 공제하고 남는 부분이 개인적 소비재로서 분배된
다. 그런데 개인적 소비재의 분배와 관련하여 ?고타강령비판?은 코뮌주의를
“첫 번째 국면”과 “보다 높은 국면”(19/21)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코뮌주의의 첫 번째 국면은 이제 막 자본주의에서 출현하여 경제적·윤리적·
정신적인 모든 관계에서 아직 자본주의적인 요소에 사로잡혀 있는 국면으로
제시된다. 이에 따라 분배원리 역시 “개인적인 노동량” 또는 “노동시간”이라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17
는, “등가상품들의 교환”에서와 “동일한 원칙”으로 설정된다. 즉 노동량 또는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원리가 제시되며, 이에 기초하는 개인적 소비재에 대한
“평등한 권리”는 “부르주아적인 권리”(bürgerliches Recht)로 제시되고 있다
(19/20). 이 부분에서 마르크스는 “개인적 노동”이 생산을 위해 ‘사회적으로 필
요한 평균노동’을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총노동의 구성부분”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19/20). 동시에 분배“척도”로서의 ‘노동’이 동일한 “강도”와 “길
이”(Ausdehnung)(19/21)를 지녀야 한다고 요청함으로써 양가성을 보인다. 개인적
으로 상이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이 ‘사회적 평균노동’으로 환산됨을 함축하
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들의 노동들의 양적 비교가 요청됨을 고려할 때, 또한
이를 통해 “최소한의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이 “유지”될 필요성(곽노완, 2006:
46)을 시사함을 고려할 때,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에서 분배원리로 제기되는
노동성과를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노동’으로 환원된 노동성과로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일관된다.6)
반면 코뮌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에서는 “필요에 따른” 분배가 설정된다
(19/21).
판 파레이스 등이 시사하듯이(Van der Veen and Van Parijs, 1986: 156) 이 ‘필요
에 따른 분배’에는,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또한 원칙적으로 생계에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고자 하는 기본소득의 이념이 통합되어 있다.7) 반면 코뮌주의
6) 곽노완이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의 분배원리를 개인적 노동시간에 따른 노동성과
로 해석하면서 그 모순성을 비판한다면(곽노완, 2006: 43), 라이터는 이 분배원리를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으로 해석하면서 “일반적 사회적 행위들”의 생산적 기여가 양
적으로 측정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실현 불가능한 기획으로 비판한다(Reitter, 2005:
2). 필자는 이 분배원리의 해석과 관련하여서는 라이터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코뮌주의를 ‘특정 대상의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 같은 “객관
적-사실적”(objektiv-sachlich) “기초”(Reitter, 2005: 3)와 완전히 분리하여 사유하면서,
“기본소득”만을 코뮌주의의 유일한 분배형태로 보는 그의 입장(Reitter, 2011: 476)
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코뮌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단편들을 일관되게 재
구성할 때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과 관련하여 코뮌주의는, 그 자립화 곧
화폐의 무한증식이 더 이상 경제의 목적이 아니며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가 불가
능하다는 점, 또한 사회적 평균노동량에 따른 교환이 사회경제 전체를 규제하는 원
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구분된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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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국면의 분배원리는, 슈웨이커트와 엘스터의 마르크스 해석이 보여주는 노
동중심주의를 강화하고 기본소득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
은 점들은 코뮌주의 일차국면의 분배원리가 실제로 노동성과만으로 이루어지
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첫 번째는 개인적 분배 이전에 노동이 불가능한 자들을 위한 기금과 학교나
의료시설 같은 욕구의 공동 충족을 위한 부분을, 총생산품에서 미리 공제한다
는 점이다. 이는 노동의 제공이라는 조건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의 생계를 보장
할 뿐만 아니라, 학교나 의료시설 같은 보편복지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
서 기본소득의 이념과 일맥상통한다.8) 이런 측면에서 마르크스의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의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원리는, 사실상 보편복지 이념 또는 “필요에
따른 분배”(Van der Veen and Van Parijs, 1986: 157)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9)
7) 마르크스의 논쟁상대인 푸리에(Ch. Fourier)가 자연공유를 근거로 “모든 구성원에게
생계를 보장하는 최소수입”(Füllsack, 2002: 106), 곧 기본소득의 지급을 주장함을 고
려할 때, 마르크스 역시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고타강령
비판?에서 정식화되는 코뮌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에서의 ‘필요에 따른’ 분배법칙
은, 어쩌면 이러한 영향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8) 여기서의 보편복지는 현물형태로 지급되는 기본소득, 곧 현물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다. 현물기본소득에 대한 상세한 고찰을 위해서는, 판 파레이스(Van Parijs, 1995:
41-45)와 곽노완(2010a: 158) 참조.
9)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의 분배원리와 관련하여 호워드는,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원
리가 보편복지 이념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러면서 노동성과
에 따른 분배원리를 초기 마르크스의 소외론에 연계하여 해석한다. 즉 ‘소외된 노동
의 산물’에 대한 부당한 취득에 대한 혐오가, “불로소득”(unerarned income)(Howard,
2005: 128)의 취득에 대한 반감이라는 형태로 ?고타강령비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다(Howard, 2005: 127). 그러나 불로소득에 대한 후기 마르크스의 반감마저 소외론
을 비롯한 초기 마르크스의 철학과 이론으로 소급하여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
해 보인다.
반면 초기 판 파레이스는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의 분배원리에 이미 부분적일지라
도 ‘필요에 따른 분배원리’가 통합되어 있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Van der Veen and
Van Parijs, 1986: 157). 이에 연계하여 그는 보다 높은 단계의 코뮌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부분의 점진적 증대”(같은 글)로 본다. 결국 그는
‘분배’와 관련하여서는 이 양 국면의 코뮌주의를 연속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는 생산수단의 소유형태와 ‘생산’과 관련하여 그가 코뮌주의의 양 국면을 단절적으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19
두 번째는 위의 추론이 시사하듯이 마르크스가 코뮌주의의 이 첫 번째 국면
의 분배원리, 곧 동일한 양의 노동이라는 동일한 척도에 기초하는 “평등한” 권
리를, 사실상 “불평등한 권리”로 본다는 점이다. “불평등한 개인적 소질”이라
는 “자연적 특권”이나 가족구성과 수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한 노동양은
동일한 소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동일한 노동양을 수행
하지만 부양가족이 적은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 보다 소득을 “사실상”
“더 많이”(19/21)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이러한
“잘못된 일들”이 코뮌주의의 일차국면에서는 피할 수 없다고 본다. “권리는 경
제적 형태와 그에 의해 제약되는 사회의 문화적 발전보다 결코 높을 수 없기”
때문이다(19/21). 결론적으로 마르크스는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를 불충분한 것
으로 보며, 코뮌주의 일차국면이 갖는 경제적 제약에 의해 강제되는 한시적인
것으로 한정한다. 즉 그러한 경제적 제약이 없다면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게 됨을 시사한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가 실제로 코뮌주의 일차국면을 특징짓는 경제적 제약
및 이에 의해 한정된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 곧 “부르주아적인 법의 협소한 지
평”(19/21)이 해체되는 조건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코뮌
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의 분배원리는, 사실 코뮌주의 일차국면을 제약하는 “경
제적 형태”가 해체되면서 분배원리 역시 전환된 결과이다. 코뮌주의 일차국면
의 경제적 제약과 분배원리를 해체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의 대립을 비롯한 노동분업의 철폐.10)
로 해석하는 것과 일관되지 못한다. 그에 따르면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생산
수단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나 보다 높은 국면에서는 이 집단적 소유가 부정된다(Van
der Veen and Van Parijs, 1986: 172. 주3). 이러한 해석은 물론 ?고타강령비판? 원문
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논증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코뮌주의의 보다 높은 국면에서
생산수단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총생산품은 사회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것으로 해석
하는 점에 대해서도, 엄밀한 논증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10) 물론 이때의 노동분업이란 여러 해로운 결과를 동반하는 자본주의적인 노동분업
을 비롯한, 병폐를 초래하는 분업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초/중기 때와는 달
리 후기에 마르크스는 ‘노동분업’을 ‘특수한 시기’의 그것, 예를 들어 자본주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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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동이 단순한 생계수단만이 아니라 으뜸가는 삶의 욕구가 되는 것.
3)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함께 그들의 생산력도 증대하여 조합적인 부의 모
든 원천이 넘쳐흐르는 것(19/21).
코뮌주의 일차국면의 경제적 제약과 분배원리를 해체하는 이러한 조건을 고
려할 때, ?공산당 선언?과 ?자본? I권 및 ?고타강령비판?이 시사하는 코뮌주의
사회에서의 ‘보편적인 노동의무’ 자체가 한시적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물
론 오늘날도 ‘필요에 따른 분배’를 실시할 수 있는 이러한 조건들이 모두 충족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꽤 많은 나라에서의 생산성은, ‘필요에
따른 분배’의 한 방식으로서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의 지급이 나아가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이 세
가지 조건의 실현을 촉진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본소득론자들이 강조하
듯이, 기본소득의 수혜가 노동자들이 선별된 좋은 일자리를 보다 적은 시간 동
안 수행하게 하여, 자신들의 전면적인 발전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증가시키
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역량을 증진시키고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개선하
여 생산성을 제고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르(Gorz, 1980)
와 판 파레이스(Van der Veen and Pan Parijs, 1986) 등이 강조하듯이, 당장 ‘필요에
따른 분배’, 곧 기본소득을 실시하여 자본주의 내부에서 코뮌주의적 분배정책
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나아가 이러한 코뮌주의적 분배정책을
전개해야 하는 당위의 근거가 된다.
이때 이러한 해석은, 지금 당장 모든 소득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여 해체하
자는 주장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코뮌주의에서 그 분배형태로 기본소
득만을 실시하고자 하는 주장을 시사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자본?에서 두드
러지듯이, 마르크스는 코뮌주의 사회에서 모든 개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의
증대를 위해 생산성의 부단한 증대를 요청한다.11) 노동성과에 기초하는 수입
노동분업과 동일시하지 않는다(II.3.1/243, Kwon, 2006: 218).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분업의 폐지를 모든 사람들이 각종의 일을 모두 하는 것으로, 또는 전문성을 부정하
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정성진, 2009: 40).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21
의 보장은 생산성 증대의 강력한 요인이 된다. 나아가 생산성 증대는 총노동시
간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전체 사회경제와 기본소득 재원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곽노완이 주장하듯이(곽노완, 2010a: 162), ?고타
강령비판?이 제시하는 코뮌주의의 두 국면의 분배원리는 통합되어 시행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으로 보인다. 즉 노동성과에 따른 분배와 기본소득이 동시에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스러워 보인다.12)
물론 마르크스에게 코뮌주의란 분배차원으로 한정되어 이해되지 않는다. ?
정치경제학비판 요강? 「서문」이 보여주듯이, 그에게 분배란 생산과 교환 및 소
비와 상호 연관되고 계기하면서 병존하는 통일적인 과정의 한 부분이자
(II.1.1./35; 42/34) 전체 사회경제 시스템의 재생산과정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권정임, 2009a: 69). 이는 그에게서 코뮌주의적인 분배가 코뮌주의적인 생산, 나
아가 코뮌주의 사회경제의 재생산 시스템 차원에서의 동학과 연관되는 동시에
그 동학의 한 계기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코뮌주의적 분배의 한 방식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전체 사회경제 시스템의 코뮌주의적 이행과 그 재생산, 정확하게
11) 코뮌주의에서의 생산력 발전에 대한 마르크스의 옹호가 노동시간의 축소를 위한
생산성의 증대, 곧 단위시간당 생산량의 증대임을 고려할 때, 또한 인간과 자연 간
의 생태적인 신진대사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이 있음을 고려할 때(II.5/409;
23/528), 생산력 발전에 대한 그의 옹호는 무조건적인 생산지상주의나 경제성장주
의로 해석될 수 없다.
12) 블라슈케 역시 곽노완과 유사하게 코뮌주의적인 소득으로 성과에 따른 보수, 곧
그의 “능력보수”(Fähigkeitsentgeltung)와 기본소득이 결합된 형태를 지지한다. 그런
데 그는 “능력보수”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순수하게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첫 번째는 노동성과의 평가기준이 더 이상 “노동시간”이나 “생산품량” 같은
양화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협업” 같은 질적인 것이라는 가정이다. 두 번
째는 후기 고르에 연계하여 역시 양화 불가능한 ‘비물질적 노동’이 생산에서 차지
하는 비중이 점점 증대한다고 보는 점이다(Blaschke, 2006: 13). 그러나 “자유로운
협업” 등의 창출이 노동성과의 향상을 동반한다고 가정할 때, 이는 양화 불가능한
성과가 아니다. 또한 고르의 ‘비물질적 노동’, 곧 과학기술 또는 일반지성 및 연합지
성에서 유래하는 부는, “능력보수”가 아니라 기본소득의 원천이다. 블라슈케와 달
리 필자는 코뮌주의에서 총소득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환산된 노동시간에 비
례하는 노동성과급 및 지속 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기본
소득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22 2012년 제9권 제4호
말해서, 확대재생산의 계기로서 전체 사회경제 시스템 및 그 재생산과 연관하
여 구상되고 도입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실제로 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생태사회로의 이행을 기
획하는 현대의 논의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분배차원의 변화, 곧 기본소득의 실
시만으로는 생태사회로의 이행과 그 재생산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소
득의 실시에 기초하는 경제외적인 자유로운 행위들이 생태적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Füllsack, 2002: 163). 또한 기본소득의 실시가 산업, 나아가 사회경제 전체
의 생태화를 촉진하리라는 사실에 대한 보장도 없다.
기본소득의 도입이 생태사회로의 이행 및 그 재생산을 견인하려면, 기본소
득의 재원과 기본소득 실시 효과가, 전체 사회경제의 재생산에 대한 생태적으
로 합리적인, 곧 생태합리적인 조절에 대한 구상과 함께 계산되고 계획되어야
한다. 이는 최소한 기본소득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전체 사회경제의 재생산이 이러한 합리성에 기초
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고려하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경제의 재생
산은 궁극적으로는 사회 총자본의 무한한 이윤 추구에 종속되어 진행되며, 생
태합리적인 조절은 이를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진다(권정임, 2009a:
74). 이는 생태사회로의 이행 및 그 재생산을 위한 기본소득론이 탈자본주의에
대한 전망 또한 포괄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제와 관련하여, 마르크스, 특히 ?자본?의 마르크스는 다음
과 같은 점에서 해결의 전망을 준다. 첫째는 자신의 코뮌주의를 생태사회로 제
시함과 아울러 이 생태사회를 ‘생태합리성’만이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 나아
가 모든 개인의 전면적 발전, 곧 자유로운 “지적·정신적·미적 발전”(Williams,
1976: 90) 또는 ‘문화’ 발전의 조건을 촉진한다는 의미에서 ‘문화적 합리성’과
중첩되는 것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새로운 사유 방식의 도입을 통해,
‘합리성’ 또는 ‘합리적 조절’에 대한 새로운 모형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자본주의 사회경제를 그 ‘재생산’ 내지 ‘확대재생산’의 관점에서 연구함으로써,
코뮌주의에 대한 연구 역시 ‘재생산’ 내지 ‘확대재생산’의 관점에서 수행되어
야 함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다음 절에서 살펴보자.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23
3.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기본소득: ?자본?의 코뮌주의관에 대한 비판
적 변형
우선 ?자본?이 제시하는 생태사회로서의 코뮌주의에 대한 전망부터 살펴보
자.13)
?자본? III권에서 마르크스는 코뮌주의사회를, ‘자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
어 모든 개인의 “능력 발전”이 “자기목적”(II.4.2/838; 25/828)으로서 전개될 수
있는 사회로 제시한다. 또한 이 목적 또는 소위 “자유의 영역”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 곧 코뮌주의 경제 또는 소위 “필연성의 영역”으로, “사회를 형성하는
(vergesellschaftet) 인간들 또는 연합한 생산자들이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최소
한의 힘의 지출을 통해” “자신들의 인간적 본성이 갖는 품위에 적합한 조건
아래”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공동으로 통제”(같은 글)하는 경제를 제시한다.
?자본? I권에서 코뮌주의의 과제 중의 하나로,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자연
과의 “신진대사를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으로” “완전한 인간적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창출할 것”(II.5/409 이하; 23/528)을 제시한다는 점
을 고려할 때, ?자본? III권의 이 단편이 제시하는 코뮌주의 경제의 특징은 무
엇보다 ‘생태친화성’과 ‘휴머니즘’14)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
된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으로” “완전한 인간적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창출”한다는 표현은, 결국 생태합리성과
휴머니즘을 따르는 신진대사가 코뮌주의적인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근본원
리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마르크스가 코뮌주의 경제의 또 다른 계기로 “최소한의 힘의 지
13) 이 부분에 대한 보다 상세한 고찰을 위해서는 권정임(2009a: 76-78) 참조.
14) 코뮌주의적 생산을 “인간적 본성이 갖는 품위에 적합한 조건들” 아래에서 수행되
는 것으로 기획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마
르크스의 휴머니즘의 특수한 전개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은 무
엇보다 인간의 “지적·정신적·미적 발전”(Williams, 1976: 90)으로서의 근대문화의 한
측면과 연계된다. 따라서 휴머니즘에 대한 그의 옹호는 곧 인문적 문화에 대한 옹호
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을 위해서는 권정임(2008b: 80) 참조.
24 2012년 제9권 제4호
출”, 곧 경제적 합리성 또는 효율성을 들고 있다는 것은, 그가 생태합리성과
휴머니즘에 기초하는 코뮌주의 경제를 경제적 합리성과 중첩되는 것으로 여김
을 의미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경제적 합리성을, ‘생태합리성과 휴머니즘
에 기초하는 신진대사’라는 코뮌주의 경제를 규제하는 근본원리의 하위원리로
간주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코뮌주의 경제가 “사회를 형성하는 인
간들”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와 중첩되는 것으로 여긴다.15)
결론적으로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코뮌주의란,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능력
발전”을 위해, 연합한 인간들 또는 개인들이 인간과 자연 간의 신진대사를 생
태적 관점, 경제적 관점, 휴머니즘 또는 문화 발전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조
절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16) 또한 이때 경제적 합리성이 생태합리성
과 휴머니즘에 종속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코뮌주의관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이라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다음의 두 계기에 의해 보다 체계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단서를 획득한다.
첫 번째는 중후기 마르크스 이론의 새로운 근본전제들17), 무엇보다 약한 비
결정론과 전체론(holism)이다. 약한 비결정론이 “현실이 ‘우연’이나 결정론적 법
칙이 적용되는 영역만이 아니라 ‘확률적 법칙이 적용되는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입장”(권정임, 2010: 58)이라면18), 전체론은 “대상을 그 구성요소와
15) 이처럼 코뮌주의 경제를 생태적 연관만이 아니라 휴머니즘적인 문화 및 정치와
중첩되는 것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코뮌주의관은 사실상 토대/상부구
조 이분법을 내용적으로 넘어서고 있다. 권정임(2008b: 78) 참조.
16) ?독일이데올로기?이후 마르크스의 주관심은 유적 차원에서의 ‘인간’보다는 ‘개인’
및 개인의 발전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들” 또는 “생산자들”보다는 ‘개인들’이라
는 범주가 보다 적절하다.
17) ‘근본전제’란 특정 이론이 전제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대답 방식, 곧 근본적인 사고
방식을 의미한다. 문제틀(Problematik)이라고도 한다. 바슐라르, 알튀세르, 하인리히
등의 과학철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산물이다. 권정임(2008a) 참조.
18) 반면 강한 비결정론은 모든 것을 우연의 소치나 자의적인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엄밀히 말해서 마르크스는 때로 결정론, 곧 “과거와 현재의 상태 및 자연법칙에 따
라 …… 미래는 …… 확실하게”(권정임, 2010: 56)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인 관
점으로 후퇴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타강령비판」이 “흉작,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교란”을 예비하는 “비축기금”을 “경제적으로” “필연”(19/19)적인 것으로 고찰함을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25
그들 간의 관계 및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를 통해 ‘전체적’으로 연구하는”(권정
임, 2009b: 41) 사유 방식이다.19) 이 근본전제들에 따를 때 마르크스에게서 ‘합
리적 조절과 통제’란, 근대과학적인 조절과 통제, 곧 대상을 ‘몇 개의 본질적인
법칙에 환원하여 수행하는 조절과 통제’나 ‘결정론적인 완전한 조절과 통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환원론적이며 “예비의 원칙에 의해 보완되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가능한 최대의 합리적 조절”(권정임, 2010: 82)이다.20) ‘사회’에 적용할 때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규모의 모든 조직들, 궁극적으로는 모든 개인
들 간에 효과적인 되먹임(feed-back) 연결망이 형성되어 ‘계획’과 이에 대한 ‘사
전적인 검토’ 및 ‘사후적인 정정’이 사회의 모든 규모에서 부단하게 수행되는
기제를 동반하며 이를 통해 작동하는”(권정임, 2010: 83) 조절이다. 이런 의미에
서 “계획의 수립자와 정정자 또는 보완자 및 집행자가 사실상 일치하여 ‘모든
개인’이 되는 직접민주주의”(권정임, 2010: 83)적인 정치형태를 통해 작동한
다.21) 나아가 계획의 집행을 관찰하게 하여 오차나 실패를 보완·정정할 수 있
게 하는 기제, 곧 ‘시장’을 동반한다. 물론 이때의 시장이란 자본주의 경제에
기초하는 자본주의적인 시장이 아니라, 코뮌주의에 기초하는 코뮌주의적인 시
장이다.22) 따라서 자본시장은 부재하며, 생산수단의 단일한 사회적 공유라는
부각할 때, 기본적으로는 약한 비결정론의 입장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보다
상세한 고찰을 위해서는 권정임(2010) 참조.
19) 유기체의 중앙화된 신경체계 같은 구성요소들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전체’를 전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체론은 유기체론과는 구분된다. 스머츠(Smuts)에게서 전형
적으로 나타나는 유기체론은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로 귀결된다.
권정임(2009b: 41) 참조.
20) “예비의 원칙”이란 스체스클레바-두퐁(Czeskleba-Dupont, 1995: 83)에게서 유래한
다. 이 글에서는 명시적으로 약한 비결정론과 연관하여 이 원칙을 보다 구체화하고
자 하였다.
21) 직접민주주의적인 조직들과 그 작동 방식은 이 글의 직접적인 주제가 아니다. 따라
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이 글에서의 언급은 단지 이 원리적인 측면으로 제한된다.
22) 가장 추상적인 차원에서 시장은, 교환 당사자가 미리 예정되어 있지 않은 ‘등가교
환의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강남훈 논평에서). 그러나 어떤 대상이 거래 대상이
되는지, 거래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 합의’에 그 어떤 종류의 강제성도 없는지 등은
이러한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시장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문제
26 2012년 제9권 제4호
전제 아래 수행되는 기업 간의 거래 및 기업/소비자 거래로 구성된다.23)
두 번째는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를 “자본주의 경제의 재생
산 방식에 대한 해명이라는 문제의식”(권정임, 2009a: 73) 아래 연구한다는 점과
관련된다.24)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의 재생산 방식”의 해명이
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수행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확대재생산됨을 보임
과 아울러, 자본주의 경제의 소재적 기초, 곧 자연의 재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확대재생산에 의해 제약됨을 보인다. 이러한 연구관점과 연구결과를 코
뮌주의 연구에 적용할 때, 코뮌주의 경제는 코뮌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과
축적”(곽노완, 2006: 49)임과 동시에 그 소재적 기초, 곧 자연의 생태적 재생산이
어야 한다. 결국 코뮌주의 경제, 나아가 이와 통합된 코뮌주의 사회는 계속적인
재생산과 더불어 그 생태적 특성도 점점 더 강화되는 생태적인 재생산 시스템
의 형성이라는 전망 아래 연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코뮌주의적 시장의 형성을 포함하는 코뮌주의 사회경제의 생태적 재
생산 시스템의 창출과 관련하여 코뮌주의적인 분배의 한 형태로서의 기본소득
이 갖는 의미와 기능은, 블라슈케가 부각한 측면, 곧 기본소득이 코뮌주의의
목적인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물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으로 제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생태합리성과 경제적 합리성 및 문화 발전의 조건을 촉
진한다는 의미에서 문화적 합리성이라는 코뮌주의 경제의 세 가지 합리성과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능력 발전”이라는 코뮌주의의 목적이, 기본소득의 지급
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시장의 제도적 조건과 전제들을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정황은 ‘시장’이 언제나 자본주의 같은 특정한 경제 시스템을 조건으로 형
성되고 작동함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이정전이 보여주는 것 같은(이정전,
2012) 현재의 시장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 제도적 전제와 조건, 곧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이다. 따라서 대안 모색 역시 탈자본주의 또는 코뮌주의 경제에 대한 모색
과 함께 찾아져야 한다.
23) 기업 간 거래는 인정되나 기업별 독립적 소유가 일절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글이 지지하는 코뮌주의와 코뮌주의 시장은, 부분적으로나마 기업별 독립적 소
유를 인정하는 시장사회주의 및 그 시장과 차별화된다. 이 글의 코뮌주의 경제관은
기본적으로 곽노완(2006)에 기초하고 있다.
24) 이 문단의 내용은 권정임(2011: 33)을 참조하고 있다.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27
을 통해 중첩되면서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은 코뮌
주의로의 이행과 그 확대재생산의 핵심계기의 하나를 형성한다. 기본소득과 생
태합리성 간의 연관부터 살펴보자.
자본주의에서 기본소득의 지급은 생계의 임노동 의존성을 약화함으로써, 경
제성장만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생태적인 경제성장이데올로기의
근거를 침식시킨다. 기본소득의 지급은 또한 현존하는 반생태적인 산업에 대한
생계 의존성을 약화시켜, 자본주의에서건, 코뮌주의에서건, 생태친화적인 산업
과 생활 방식 또는 문화를 촉진하고 생태정책에 대한 동의를 쉽게 확산시킬
수 있다.
기본소득은 또한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강화한다. 우선 자
본주의에서는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과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통해, 분
배부정의를 시정한다. 이때 이는 다음 두 측면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강화한다.
첫 번째는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동기를 약화하고 노동동기를 강화한다는 점이
다.25) 두 번째는 “부동산과 주식가격의 하락을 촉진하여 토지와 생산수단을 사
회적 공유로 전환하기에도 유리한 조건을 창출”(곽노완, 2010b: 176)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부’를 자연의 생산력 및 전승된 역사적·사회적 자원 등에 기초하는
‘사회적 노동’이 창출함을 고려할 때,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는 합리적이다.
또한 생산수단의 이러한 공유는 코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한다. 코뮌주의에서
는 전체론적 관점에서 사회경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는 경
제적 합리성을 더욱 강화한다.
나아가 코뮌주의에서도 기본소득은 경제적 합리성을 강화한다. 코뮌주의에
서는 “자연적·사회적인 공유재산에서 유래하는 순수익”(곽노완, 2010b: 176, 강조
25) 전통적인 선별복지체제에서는 노동소득이 복지수당보다 적지만 노동소득이 있어
복지수당을 못 받게 될 경우, 노동을 포기하고 복지수당을 선택하는 복지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반면 기본소득은 노동소득과 무관하게 지급된다. 따라서 노동을 하는
만큼 소득이 증대하여 전통적인 복지체제에 비해 노동유인 효과가 크다. 이 효과는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선별복지보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근거의 하나이다. 이러한
효과는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과세를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경우 더욱 증
대할 것이다. 이에 대한 정량적 분석을 위해서는 강남훈(2010: 318) 참조.
28 2012년 제9권 제4호
는 원문)을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통해 분배정의를 달성함과 아울러, 공유
재산을 보다 경제적으로, 곧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알뜰하게 사용하는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또한 원하는 일자리에서 보다 인간적인 노동조건 아래, 보다
적은 노동시간 동안의 노동을 가능하게 하여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의 수급을 통해 노동자가 일자리를 선별하고 노동조건을 보
다 인간적으로 변화시킴과 아울러 노동시간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나아가,
첫째, 노동 자체가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 곧 문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다 많이 확보하여 경제의 문화화를 촉진한다.26) 둘째, 모든 개인의 “능력 발
전”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이 자유로운 시간을 위한 물질적 수단을 동반하
면서 증대시킨다. 결국 기본소득의 도입은 마르크스의 코뮌주의의 목적, 곧 각
개인의 “지적·정신적·미적 발전”의 조건을 창출하고 확장한다는 의미에서 ‘문
화적 합리성’을 강화한다.
나아가 기본소득에 기초하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은 다시 생산성의 증대로
이어져서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의 양을 증대시키거나 더 많은 자유시간을 확
보하게 할 수도 있다.27)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은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4/482) 코뮌주의적 재생산 시
스템의 핵심계기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코뮌주의 기획이 반생태적인 무
조건적인 경제성장에 기초한다고 볼 수는 없다. 코뮌주의에서의 생산력 발전에
대한 그의 옹호의 핵심이 노동시간의 축소를 전제로 하는 생산성의 증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코뮌주의적인 생산이란 그에게 생태친화적인 ‘물질적·기술적
26) 마르크스는 아마도 코뮌주의에서 ‘필연의 영역’, 곧 경제가 ‘문화의 영역’과 겹치
는 부분이 많을수록 이상적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코뮌주의
경제’가 ‘문화’와 동일할 것을 요청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게 경제란 무엇보다
전체 사회경제와 그 구성원의 재생산을 위해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영역이기 때문
이다. 이 필연영역과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영역, 곧 문화 간의 완전한 중첩
이란 순전한 우연에 불과할 것이다. 권정임(2011: 21) 참조.
27) 소위 ‘필연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에 대한 관계가 시사하듯이, ?자본?에서 개인
의 발전은 생산력 발전과 연계되는지와 무관하게 자기목적으로서 정당화된다. ?독
일이데올로기?등을 비롯한 그의 이전 저작에서 보이는 개인 발전과 생산력 발전
간의 연계는 따라서 ‘의무’라기 보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29
기초’28)에 기초하여 생태합리적으로 진행되는 생산이기 때문이다.
4. 생태적 재생산과 생태기본소득
코뮌주의 사회경제의 생태적 재생산 시스템의 형성과 관련하여 기본소득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특별한 의미와 기능은, 부의 근원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
과 결합하여 더욱 강화된다. 추상노동의 자립적 형태, 곧 화폐형태의 부의 무한
한 증식만을 추구함으로써 사실상 노동만을 부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 역시 부의 원천임을
명시한다(II.5/24; 23/58; 19/15). 나아가 일반지성(II.1.2/582; 42/602) 곧 과학기술,
개인들 지성의 합 이상의 사회적 지성으로서의 연합지성(II.4.2/331; 25/267), 그
리고 “생산조건”(II.4.2/837; 25/828)29) 역시 부의 원천으로 본다. “생산조건”을
“역사적·사회적으로 축적된 과학과 기술 및 사회간접자본의 결과”(곽노완,
2010b: 174)로서 “역사적·사회적 자원”(곽노완, 2010b: 174)으로 볼 때, 마르크스
는 1절에서 언급한 기본소득의 경제적·윤리적 근거, 곧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
자원”, “경제적·기술적 유산” 또는 “전승된 역사적·사회적 자원” 역시 부 창출
의 근거라는 사실을 사실상 선취하고 있다.30)
부의 근원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한편으로는, 그의 코뮌주의적 재생산 시스
템의 조건의 하나가 생산수단의 공유라는 사실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다
른 한편 이러한 통찰은, 코뮌주의 사회경제의 생태적 재생산 시스템의 형성과
관련하여 기본소득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의미와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자연
28) 생산의 ‘물질적·기술적 기초’란 마르크스가 사용하는 생산의 “물질적 기초”(II.3.6/
2017)와 “기술적 기초”(II.6/373; 23/403)를 통합한 범주다. 생산의 소재적·기술적 기
초를 표현한다.
29) “사회의 현실적인 부는 …… 잉여노동의 길이만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 및 노동이
수행되는 …… 생산조건에도 의존한다”(II.4.2/837; 25/828).
30) 마르크스의 이러한 선취성에 대해서는 최근 호워드(Howard, 2005), 곽노완(2010b)
등이 부각하고 있다.
30 2012년 제9권 제4호
및 일반지성과 연합지성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유산이 “자본의 무상의 자연적
생산력”(Gratisnaturkraft des Kapitals)(II.4.2/833; 25/754)으로 자본에 합체됨에 따라
(II.5/491; 23/636), 사실상 거의 자본가의 몫으로 귀속되던 자연자원과 사회경제
적 유산에서 유래하는 부를, 기본소득의 형태로 모두에게 분배함과 아울러 부
의 이러한 원천을 합리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에 알맞게, 부의 원천으로서의 자연 또는 생태자원과 관련된 마르
크스의 견해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또한 이에 기초하여 생태기본소
득론을 전개해보자.
?자본?과 ?고타강령비판?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대상화된 추상노
동, 곧 화폐형태의 부의 증식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진정한 또는 “사실상의 부”(sachlicher Reichtum)(19/15)는 사용가치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또한 이 사실상의 부의 “원천”은 “노동”만
이 아니라 “자연”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다(19/15). 코뮌주의
적 재생산 시스템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의 이러한 비판이 함축하는 것은, 코뮌
주의에서는 부의 원천으로 ‘노동’만이 아니라 ‘자연’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
일 것이다. 그런데 자연 역시 부의 원천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생산에 대한 자
연의 기여를 양화해 가격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를 동반한다.
이미 서술하였듯이 이 글은, 기업의 성과나 계획의 달성 여부 등을 측정하여
조절하기 위한 코뮌주의적인 시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코뮌주의적 시장의
거래 대상들 역시, 가격을 지님을 의미한다. 따라서 코뮌주의에서 가격의 척도
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살펴보았듯이 ?고타강령비판?은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분배되는 소비
재 양의 척도라는 형태로, 개별노동자의 ‘직접적인 개별노동시간’과 ‘사회적으
로 필요한 평균노동으로 환산된 노동시간’이라는 양가적인 답변을 시사한다.
이때 후자로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된다는 점도 제시하였다. 이를 적용할
때 코뮌주의적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상들의 가격의 기준은 일단, 그 물건을 생
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연의 생산적 기여 또는 자연자원은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니
다. 따라서 생산, 정확하게 말해서, ‘사용가치’의 생산에 대한 ‘자연의 기여’는,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31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비례하는 ‘가격’으로 표현되어 양화될
수 없다. 그런데 코뮌주의에서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을 통해 측정되
고 비교되는 ‘경제적 합리성’은, 전체 사회경제의 재생산을 규제하는 원리 중
의 하나에 불과하다. 나아가 생태합리성과 휴머니즘에 종속되어 제한적으로만
작동한다. 이러한 사태연관은 첫째, 코뮌주의에서 경제적 합리성의 측정기준,
곧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이 생산품 가격의 유일한 기준이 아님
을 의미한다. 둘째, 코뮌주의 사회경제를 생태적 관점과 휴머니즘적인 관점에
서 합리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나아가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비례하는 가격을 갖지 않는 대상, 예를 들어 자연자원
을 가격으로 양화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사실 마르크스는 코뮌주의에서 자연자
원의 가격결정과 관련하여, 다음의 두 기준을 시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살펴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가 자연을 “사실상의 부”, 곧 사용가
치의 원천의 하나로 인정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이러한 인정은 자연이 지속적
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생태적으로 재생산되어야 한다는 경제적·윤리적
인 요청을 함축한다. 사실 마르크스는 ?자본? 3권에서 “지구”, 곧 자연을 “보다
개선하여 이어지는 세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II.4.2/718; 25/784)라고 요청하
고 있다. 자연자원의 생태적인 재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러한 시사는 결국,
코뮌주의에서 자연자원의 가격결정의 첫 번째 기준이 해당 자연자원의 생태적
대체를 포함하는 생태적 재생산비용임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살펴본 ?자본? 3권에서의 인용이 시사하듯이, 마르크스가 자연을
미래세대를 포함한 인류 전체의 공동의 향유 대상으로 본다는 점과 관련된다.
이는 물론 자연에 대한 모두의 공유 몫, 곧 생태기본소득이 자연자원의 가격결
정의 두 번째 기준임을 의미한다.31)
결론적으로 코뮌주의에서 자연자원의 가격결정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두 변
31) 판 파레이스(Van Parijs, 1995: 41-45)와 곽노완(2010a: 158)이 강조하듯이, 생태기본
소득으로는 현금기본소득만이 아니라 맑은 공기, 깨끗한 주거환경 같은 현물기본소
득 역시 중요하다. 코뮌주의에서 생태현물기본소득은 자연의 생태적 재생산과 밀접
히 연관되어 구상됨으로써, 자본주의에서보다 더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32 2012년 제9권 제4호
수는, 자연자원의 생태적 재생산비용과 모두에 의한 자연공유의 몫, 곧 생태기
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는 앞에서 재구성한 맑스의 코뮌주의
연구의 기본구도, 곧 전체 코뮌주의 사회경제의 생태적·경제적·휴머니즘 차원
에서의 합리적 재생산이라는 구도와 일관됨과 동시에 그 일부를 형성하는 것
이기도 하다.
코뮌주의에서는 자연자원에 대해 이처럼 합리적인 가격이 설정됨으로써 자
연의 생산적 기여가 경제 시스템에 의해 사실적으로 또한 합리적으로 승인된
다. 그 결과 자본주의에서처럼 자연자원이 ‘무상의 선물’로서 남용되거나 자본
가의 막대한 이윤의 원천으로 기능하는 것이 방지된다.32) 코뮌주의에서 자연
에서 유래한 부의 일부는 자연의 재생산에 사용되어 자연의 생태적 재생산을
경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또한 생산에 대한 자연의 기여를 통
해 창출된 부의 일부가 자연에 대한 공유의 몫, 곧 기본소득으로서 모두에게
분배되어 분배정의가 달성된다.
연합지성을 비롯한 역사적·사회적 자원의 생산적 기여에 대해서도 유사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역사적·사회적 자원에서 유래
하는 부 역시 사실상 이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자본가에게 독점이윤의 형태로
귀속된다. 물론 이 독점이윤은 코뮌주의에서는 역사적·사회적 자원의 재생산
비용과 역사적·사회적 자원에서 유래하는 기본소득의 형태로 분배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이러한 분배는 역사적·사회적 자원의 확대재생산을 한층 가속화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코뮌주의에서 자연자원의 추출과 가공에서 유래하는 생산물의
가격은, ‘노동의 기여 + 생산수단의 기여 + 생태 자원의 기여 + 역사적·사회
32) 사실 자본주의에서도 노동이 투하되지 않아 가치를 갖지 않는 자연자원이 가격을
갖는 경우가 있다. 수요가 매우 크거나 독점적인 소유권이 설정되어 있는 자연자원,
예를 들어 석유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자원의 가격은 사실 그 탐사비와 채
굴비를 훨씬 넘어선다. 이때 발생하는 독점이윤은, 자본가나 지주 또는 정부에게
귀속된다. 코뮌주의에서는 물론 자연자원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이 해체되어 자연
자원은 모두의 공유 대상이 된다. 나아가 원칙적으로 모든 자연자원에 대해, 생태적
대체를 포함하여 그 생태적인 재생산이 고려된다.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33
적 자원의 기여 = 노동보수 + 감가상각비 + 사용된 자원의 생태적 재생산비
+ 사용된 역사적·사회적 자원의 재생산비 + 코뮌주의적 확대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다른 비용33) + 생태기본소득 + 역사적·사회적 자원에서 유래하는 기
본소득’이다.
다른 한편 코뮌주의에서 자연자원의 추출과 가공에서 유래하는 대상의 가격
에는, 화석연료 같은 특정 자원의 사용량을 통제하고자 할 때 특별히 부가되는
‘생태세’가 경우에 따라 첨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거두어진 생태세 역시
해당 자원의 재생산 내지 대체자원 개발비용과 생태기본소득으로 나누어 지출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음 절에서 재론하겠지만, 생태세를 생태기본소
득의 지급과 결합하여 실시할 경우, 생태세 도입에 대한 다수의 동의를 획득하
게 하여 생태세의 실시를 용이하게 한다. 이 글에서처럼 생태기본소득을 기본
적으로 자연에서 유래하는 부에 대한 공유 몫으로 정의할 때, 생태세수에 기초
하는 기본소득은 생태기본소득의 특수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에 대한 자연자원의 기여에 대한 이러한 가격책정과 이에 기초하는 자
원의 재생산과 생태기본소득은, 코뮌주의적 재생산 시스템을 생태친화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시스템으로 이끌 것이다. 첫째, 해당 자원의 생태적 재생산이
체계적으로 고려되기 때문이다. 둘째, 생태기본소득의 지급으로 인해 분배정의
의 실현에 일조하는 한편 자연에 대한 공유의식과 함께 생태적인 문제의식 또
한 함양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기본소득은 물론 자본주의에서도 실시될 수 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생
태기본소득은 물론 생태세수로 제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절에
33) ?고타강령비판?에서 개인적 소비재의 분배 이전에 미리 공제하는 ‘사회적 필요분’
을 의미한다. 이 중 “사용된 생산수단 대체분”, “학교나 의료시설 같은 욕구의 공동
충족을 위한 부분”, “노동할 수 없는 자 등을 위한 기금”은 위의 등식의 항목 중
“감가상각비”와 해당 자연자원과 역사적·사회적 자원의 “재생산비” 및 “기본소득”
분이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이 등식의 마지막 항목, 곧 “코뮌주의적 확대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다른 비용”은 사실상, “생산확장을 위한 추가부분”, “흉작, 자연재해로
인한 교란에 대비하는 예비- 또는 보험기금” 및 “보편적인, 그러나 생산에 직접 속
하지는 않는 관리비용”이다.
34 2012년 제9권 제4호
서 살펴보게 되듯이, 생태기본소득은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무엇보다 생태적 효
과와 분배정의 차원의 효과를 가지므로, 자본주의에서 실시되어야 한다.34)
그런데 생태기본소득이 생태세수로 제한되는 이 경우에조차 생태 및 분배정
의 차원에서의 효과를 상호모순 없이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제한을
철폐하는 탈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경제적·문화적 효과
를 포함하여 탈자본주의적 요소와 결합된 생태기본소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 탈자본주의적 계기에 의해 보완되는 생태기본소득의 실시를 통해
결국 코뮌주의와 코뮌주의적인 생태기본소득을 견인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에
서 생태기본소득은 “해방적 기본소득”으로 기능해야 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이
에 대해 살펴보자.
5. 나가며: 해방적 기본소득으로서의 생태기본소득
자본주의에서 생태기본소득은 그 재원 조달 방식에 따라 크게 두 형태로 대
별된다. 첫 번째는 탄소배출권 같은 특정자원의 사용권(certificate)을 경매하여
얻는 수익을 재원으로 하는 형태이다.35) 두 번째는 특정자원에 조세를 부가하
여 그 세수를 재원으로 하는 형태이다. 각각 데일리36)와 로버트슨37)에게서 그
34) 그 좋은 예로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긴급한 과제의 하나, 곧 탈핵에 대한 강남
훈의 전략을 들 수 있다(강남훈, 2012). 그는 생태세와 생태기본소득의 결합을 통해
분배정의를 개선함과 아울러, 전기요금의 상승에 의해 유인되는 전기사용의 경감을
통해 핵발전소의 점차적 폐기라는 생태적 효과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 또한 이
를 통해 자신의 탈핵 전략이 보다 많은 동의를 획득할 가능성, 따라서 실현될 가능
성을 높인다.
35) 이 형태는 다시 해당 자원의 모든 단위를 경매하는 형태와 일정한 양 이상부터
경매하는 형태(cap&trade)로 나뉜다.
36) 엄밀하게 말해서 데일리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아니라, 수입이 충분하지 못한
가구에만 지급하는 조건부 기본소득 또는 보장소득을 주장한다. 자원사용권의 경매
및 이에 기초하는 조건부 보장소득은 그가 제안하는 생태세와 생태기본소득의 한
형태이다. 그는 이러한 조처들을 통해, 생태적 효과를 달성함과 동시에 소득세를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35
맹아적인 형태를 찾을 수 있다.
자원사용권의 경매는 경쟁력이 높은 기업에 의한 독점 가능성과 투기 가능
성, 입찰에 담합 등의 부정행위가 개입할 가능성 등과 같은 약점을 갖는다. 이
중 투기는 이를 방지할 제도적 조건을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에 도입하여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사용권을 이를 꼭 필요로 하는 기업들
에 팔고 남는 사용권은 유상환수하여, 사용권에 대한 기업들 간의 사적 거래를
금지하여 해결될 수 있다(권정임, 2012: 36).38) 이러한 조치는 결국 개별기업이
사용권에 대한 투기를 통해 다른 기업과 민중들을 수탈39)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시장에 탈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
찰과 관련하여 담합 같은 부정행위가 개입할 가능성은 코뮌주의에서조차 근절
될 수 없다. 이는 자원사용권의 경매수입을 재원으로 하는 생태기본소득은, 탈
자본주의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시행되는 경우에도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주재원으로 하는 자신의 보장소득기획을 보완하고자 한다. 상세한 고찰을 위해서는
데일리와 콥(Daly and Cobb, 1994: part three), 권정임(2012) 참조. 다른 한편 판 파레
이스는 탄소배출권의 경매수입에 기초하는 지구적 규모의 (생태)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다(Vanderborght, Y. and Van Parijs, 2010).
37) 로버트슨은 기본소득을, 시민권에 기초하여 무조건적으로 또한 개별적으로 지급
되는 “시민소득(citizen’s income)”(Robertson, 1996: 1)의 형태로 옹호한다. 그 재원으
로 자연에 의해 창조된 가치와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도시 중심지의 가치 같은 사회
에 의해 창조된 공동자원이나 가치에 대한 조세를 제안한다. 나아가 그는 자연과
사회가 창조한 공동자원과 가치를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그
는 이 공동자원과 가치를 시민들이 향유하지 않는 것을 실업, 빈곤 및 사회적 배제
같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의 근본원인으로 본다(Robertson, 1996: 4). 물론 이때 그
는 자본주의 경제관계에서 유래하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간과한다.
38) 이를 위해 자원사용권에 해당 사용권을 구입한 기업의 이름이 나오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39) ‘착취’는 노동과정을 통한 ‘경제적 빼앗음’을, ‘수탈’은 “직접적인 노동 밖의 시공
간에서 발생하는”(곽노완, 2010b: 164) 모든 빼앗음을 총괄한다. 마르크스에게서 유
래하는 개념으로 곽노완이 확장하였다. 착취가 자본가이득으로 나타난다면, 수탈은
이자와 지대, 금융·부동산투기소득, 공적 자금 수취 등으로 나타난다(곽노완, 2010b:
171).
36 2012년 제9권 제4호
반면 생태세에 기초하는 생태기본소득은, 자원사용권의 경매에 기초하는 생
태기본소득이 갖는 이러한 약점이 없다. 강남훈(2012)이 보여주듯이, 생태세 징
수와 생태기본소득을 결합하여 시행하는 방안은 생태세의 역진성을 보완하여
조세저항을 돌파하면서 생태세를 실시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중
요하다.40)
그런데 데일리의 경우처럼 자원사용권의 규모가 생태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
될 때에는, 자원사용권의 경매에 기초하는 생태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재분배
효과만이 아니라 해당 자원의 생태적인 가용한계가 준수된다는 생태적인 효과
또한 보장된다. 반면 생태세에 기초하는 생태기본소득의 경우, 생태적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생태세의 납부가 오히려 지구의 대기정화력
등과 같은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정당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유층은
여전히 자원을 남용하고, 빈곤층은 상승한 자원가격 때문에 곤경에 빠지게 되
고 자연환경은 악화될 수조차 있다는 것이다(Füllsack, 2002: 175). 그러나 이러한
약점은 탄력적인 세율을 통해 시정 가능하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의
생태적 허용한계량 가까이 실제의 탄소배출량이 근접해 오면, 자동적으로 아주
높은 세율이 부가되는 방식으로 조세를 운영하면 해결된다고 보인다.
생태기본소득의 이 두 형태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할 때, 생태세수
에 기초하는 생태기본소득의 실시가 자원사용권의 경매수입에 기초하는 생태
기본소득의 실시보다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적다는 측면에서 보다 바람직
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생태세수에 기초하는 생태기본소득은, 불로투기소득
에 대한 고율의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과 결합할 필요성이 있다.41)
40) 로버트슨이 생태세 징수와 기본소득을 결합하여 시행하고자 하는 주요동기는, 생
태세가 가진 역진성을 시정하는 것이다(Robertson, 1996: 5). 이때 이 동기에는 생태
세 실시에 대한 조세저항을 돌파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함축되어 있다고 보인다.
동일한 이유로 로버트슨이 시사하는 생태세와 기본소득의 결합에 대해, “기본소득
에 찬성하는 대부분의 녹색당들이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Fitzpatrick, 1999: 194).
41) 데일리와 로버트슨은 모두 착취와 수탈을 비롯한 자본주의 경제관계에서 유래하
는 문제들을 간과한다. 예를 들어 데일리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착취와 수탈을 구분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37
그래야만 기본소득이 ‘충분’해지는 정도에 따라, 자본주의에서도 생태세수의
더 많은 부분을 생태적 재생산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생계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생태정책에 대한 다수의 동의를 기대하기 힘
들다. 따라서 ‘충분한’ 기본소득의 보장은 ‘충분한’ 생태정책의 조건이다. 이는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고율의 조세에 기초하는 기본소득과 결합하지 않는 경우,
자본주의에서 생태적 재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생태세수가 극히 제약되어 분배
정의 차원의 목적과 생태적 목적이라는 생태기본소득의 두 목적이 충돌하여
모순을 형성할 가능성을 함축한다.
반면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고율의 조세에 기초하는 기본소득과 결합하여 생
태기본소득이 실시될 경우, 생태적 재생산을 위해 보다 많은 생태세수가 사용
될 뿐만 아니라 이 두 형태의 기본소득이 갖는 경제적·생태적·분배정의 차원의
효과가 상호 되먹임되어 강화된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자본주의적인 착취와
수탈을 철폐하여 자본주의에 의한 생태적·경제적·분배정의 차원의 제약을 해
체한다는 의미에서, 코뮌주의를 예비하는 탈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것
이다.
이처럼 탈자본주의적인 요소, 곧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고율의 과세에 기초
하는 기본소득의 지급과 결합하여 생태기본소득이 실시될 때, 또한 이때 생태
하지 않음으로써 불로투기소득과 노동소득에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여, 자본주의에
고유한 분배부정의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노동동기를
사실상 떨어뜨린다. 로버트슨의 경우 자본주의적 착취와 수탈에 대한 간과는 무엇
보다, 금융자본을 포함하는 자본의 이윤이 근거하는 착취와 수탈에 대한 간과로 표
현된다. 그는 생태세를 비롯한 공동자원에 대한 조세를 통해 대체되는 기존의 조세
로, “소득, 고용, 이윤과 부가가치에 대한 세금”(Robertson, 1998: 2), 나아가 “아마도,
경우에 따라”라는 단서를 달기는 하지만, “금융자본에 대한 세금”(Robertson, 1998:
4)을 꼽고 있다. 이때 그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구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융
자본을 비롯한 자본의 이윤과 자본소득 같은 착취와 수탈에 근거하는 소득, 곧 타인
이 창출한 가치를 빼앗아오는 행위에서 유래하는 소득을,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는
행위에서 유래하는 소득’으로 보는 오류를 범한다. 그뿐만 아니라 착취와 수탈에서
유래하는 이러한 소득에 대한 세금을 공유자원에 대한 조세를 통해 대체하여 면제
함으로써, 이들 자본에게 또 다른 수탈의 계기를 준다.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할 공유자원에 대한 조세의 일부를 사실상 이들 자본이 가져가게 되기 때문이다.
38 2012년 제9권 제4호
세수의 일부가 생태적 재생산을 위해 사용될 때, 전체 사회경제의 계속적인 재
생산과 더불어 그 생태적 특성과 분배정의는 강화되어 갈 것이다. 그뿐만 아니
라 불로투기소득이 점차 사라지고, 선별된 인간적인 일자리가 증대하면서 생산
성도 증대하여, 사회경제의 계속적인 재생산과 더불어 경제적·문화적 합리성
도 증대되어 갈 것이다.
전체 사회경제의 이러한 재생산과 더불어 마르크스가 코뮌주의 사회경제의
전망으로 제시했던 생태적·경제적·문화적 차원의 합리성이 강화되는 효과는
물론, 코뮌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비약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체’
사회경제에 대한 전체론적인 합리적 계획, 물론 예비의 원칙과 직접민주주의적
인 조절에 의해 보완되는 합리적 계획과 그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경제가 ‘생태적으로’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뮌주의로의 이행
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연에서 유래하는 부의 일부가
체계적으로 해당 자원의 재생산이나 생태친화적인 대체제 개발을 위해 사용되
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부는 생태기본소득으로 모두에게 분배된다. 이는 모두
의 생태의식을 함양시켜, 생태친화적인 생활 방식과 생산방식의 확대재생산으
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탈자본주의적 요소와 결합하여 실시되는 생태기본소득
의 실시는, 이를 동반하는 전체 사회경제의 재생산과 더불어, 이러한 코뮌주의
로의 이행을 촉진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공유’의식의 증대와 함께
생태의식만 함양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생산수단에 대한 공유의식도 함양될
것이다. 이는 토지소유와 불로투기소득에 대한 고율의 과세로 인해 급격히 하
락한 토지와 주식 등을 매입하여 ‘사회적 공유’로 전환하기에 충분한 ‘동의’를
획득하게 할 것이다. 생태적·경제적·문화적 및 분배정의 차원에서 합리적인 사
회를 형성하기 위해, 오늘날 생태기본소득은 코뮌주의를 예비하는 탈자본주의
적 요소와 결합된 “해방적 기본소득”의 형태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2012년 9월 27일 투고, 10월 5일 심사, 10월 9일 게재 확정)
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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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재생산이론과 생태기본소득 41
❒ Abstract
Ökologische Reproduktionstheorie und ökologisches
Grundeinkommen
: Kritik und Transformation von Marx
Kwon, Jeong-Im
In diesem Artikel geht es um die kritische Transformation Marxsches
kommunistischen Projekts in ein ökologisch nachhaltiges Reproduktionssystem.
Anschliessend daran wird das Grundeinkommen als ein Moment dieses
Reproduktionssystems dargestellt. Dabei geht es besonders um das ökologische
Grundeinkommen, das aus einem Teil des von der Natur stammenden
Reichtums besteht. Dafür werden Spätwerke von Marx, besonders sein Kapital
und seine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kritisch erforscht und transformiert.
Eine Form des ökologischen Grundeinkommens, das durch Ökosteuer
finanziert wird, kann auch im Kapitalismus durchgeführt werden kann und
muss. Im letzten Teil dieses Artikels geht es um die Erforschung dieser Form
des ökologischen Grundeinkommens, die als ein emanzipatorisches Grundeinkommen
mit dessen fortzusetzeden Reproduktion den Übergang zur
ökologischen Gesellschaft befördert.
Schlagwörter: ökologische Reproduktionstheorie, ökologisches Grundeinkommen,
emanzipatorisches Grundeinkommen, Ökosteuer, Mar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