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의 긍지는 실은 광대한 세계를 정복해서 이것을 조직적으로 통치, 지배한 점에만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 문화의 우월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수입 섭취에 노력했지만, 이 세련된 문화를 가진 그리스인에 대해서는 퇴폐적인 망국민으로서 멸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키케로는 '덕(德)은 우리들 자신에 지(知)는 그들 그리스인으로'라고 한 말에서 이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 철학을 로마에 도입하는 것에 노력하고 자신의 저서가 그리스 철학자의 책의 모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인한 키케로가 감히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의 유덕성이고, 또 국가 및 법의 문제에 있어서의 탁월성이었다. 실로 법에 의한 세계 질서의 건설이야 말로 로마인 천부의 사명으로서 의식한 것이고 바로 법이야 말로 그들의 시였던 것이다.
로마법이 '로마법 대전'이라는 형태로 포괄적으로 편찬된 것은 시대를 훨씬 내려가서 동서 로마 제국 분열 후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 483~565)의 치세 하에서였지만, 원래 소박한 도시법으로부터 출발한 로마법이 시민법과 함께 만민법마저도 포함한 세계법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로마의 지중해 정복의 결과였다. 이 세계국가에 있어서 로마 시민과 시민권을 갖지 않은 자와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거래의 규율을 중심으로 발달한 '만민법'은 물론 세계, 우주를 관통하는 로고스를 주장하는 스토아 철학의 자연법 사상의 영향 하에서 완성된다. 키케로도 만민법은 '자연법의 영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법의 독특한 특색은 어디까지나 법을 도덕으로부터 분리하고 법학의 체계를 철학이나 종교로부터 분리 독립시킨 점에 있었다.
로마인의 노력은 그 법률사상을 철학적으로 구성하고 표현하는 것 보다도 현실을 규제해야 할 법률을 정립하고 적용함으로써 법 그 자체를 진화, 발전시키는 것에 행해졌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로마법의 후세에 대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로마는 세 번 세계를 통일시켰다. 제1차는 무력에 의해 국가를 통일하고, 제2차는 로마(서로마 제국)의 몰락 후 종교(그리스도교)에 의해 교회의 통일을 초래하였으며, 제3차는 중세에 있어서 로마법 계승에 의해 법의 통일을 발생시킨 것으로, 뒤의 2, 3차 통일은 정신의 힘에 의한 세계의 통일이다"라고 한 것은 독일의 법학자 애링의 말이다(『로마법의 정신』, 1852~65).
이와 같이 훌륭히 완성된 로마법은 확실히 로마인의 큰 문화적 소산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역시 무력에 의한 국가통일의 표현이고 법은 힘으로서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무질서와 예속'에 대신하여 로마 시대는 '질서와 예속'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강대한 국가에 의한 추상적 보편의 법의 지배 하에서 사람은 개인적ㆍ추상적 자유의 추구의 경향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로마에 스토아 철학이 번영한 연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층 지식계급에 있었던 일로 일반 서민의 사이에는 동방에서 유입된 여러 종류의 종교 내지 미신이 많이 행해졌다. 거기에서 출현한 그리스도교는 신의 나라의 영광을 전도해 곧 지상의 나라 로마를 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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