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호두를 쥐어본 적이 있다 주름이 많고 온기가 있고 굴리면 명랑한 소리가 나는 호두 두 알
불꽃을 간직한 호두
호두껍질 속의 우주,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게 1963년이었다 너는 호두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을까 하지만 호두는 결단코 슬픔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외로움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말조개처럼 굳게 여문
호두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물이 나게 만들고 무논에 볍씨 뿌리듯 배꼽에 벼를 꽂듯이
외로움을 돌려보낼 수 있다면, 그러나 입 없는 발꿈치처럼 세상 호두는 다 무뚝뚝하다 저 혼자 골똘하다
너는 또한 놀란다 오래 묵은 호두 두 알에
묻어나는 기름기와 국릴 때마다 쏟아지는 까만 가루 때문에
어떤 집착과 집요가 이 돌덩이를 파고들게 했을까
정충, 그 불꽃 벌레
한번 불붙으면 150억 년 시간을 태우고도 남을
— 월간《현대시》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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