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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제사 뒷날 / 박상률

아버지 기일을 맞아 진도 고향 집에서 자고 있는 새벽

쩌렁쩌렁  울리는 마을 확성기가 새벽잠을 깨운다

 

 다를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장이 아침 문안드립니다

 요즘 좀도둑이 성헌께 낮에 들에 가실 적엔

 사립 문단속 잘 허시기 바랍니다

 사촌 줄 것은 읍서도 도둑맞을 것은 있다 안 헙니까

 또 수상한 사람이나 짐차가 산이나 들에

 어정거리면 바로 신고 바랍니다

 며칠 전에 박 씨 선산에 동자석을 다 뽑아가 불고

 밭둑 길가에 내 논 양파와 마령서 자루를 다 가져가 불었습니다

 에, 그리고 여름철을 맞아 위생 관리를 철처히 허시기 바랍니다

 먹다 둔 음식은 파리나 쥐가 못 끌게 단속 이정스럽게 허시고

 먹을 땐 상했는가 냄시 잘 맡아보고

 집 안팎에 모기 벌가지 못 살게 물구덩 있으믄 메워버리시기 바랍니다

 저녁엔 모깃불 대신 일반 약국에서 파는 모기약 풍겨서 모기헌티 안 뜯기게 허시고

 쥐 잡는 데는 개만 믿지 말고 농약사에서 파는 쥐약 사다가 놓으시기 바랍니다

 늘 말씸 드리지만

 모기 파리약은 일반 약국에 있지만 쥐약은 농약사에 있은께 참고허셔서

 두 번 걸음 하지 않도록 허시기 바랍니다

 이상, 이장이 알려 드렸습니다요

 아 참, 박 씨 집에서 엊저녁에 제사 모셨은께 아침 식사는 거그서 허시기 바랍니다

 

이장의 아침 방송이 끝나자

계란차가 일찌감치 마을에 들어와 진도 아리랑 가락을 쩌렁쩌렁  울린다

  

  가는 님 허리를 아드득 잡고

  하룻밤만 자고 가라고 사정을 허네

  아리 아리랑 서리 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 시집국가 공인 미남』(실천문학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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