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도 내가 앉아 오줌 누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래야 환경과 여성을 모두 생각할 수 있는
완전 소중한 남자가 된단다.
유홍준이라는 잘나가는 이름을 가진 어떤 시인이
진보적이고 문제적인 강정구 교수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앉아 쏴!에 사회적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래도 난 못한다.
내 핏속에 들어있는 단 한 방울의 기억 때문에라도
할 수가 없다.
내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또 그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어디 풀숲에 서서 오줌을 갈기다
얼핏 풍겨오는 여인네의 비릿한 냄새에
제대로 털지도 못하고 쫓아갔을 것이고
돌칼을 든, 그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짐승과 열매를 찾아 들판을 달리다
당당히 오줌을 지려 표식을 남겼을 것이다.
오줌은 유랑의 기록이고 수컷의 운명이다.
라면 봉지에 떨어지는 오줌발 소리에
부르르 몸 떨며 즐거워하고
사람 없는 평일이면 산에 올라
봉우리마다 오줌 방울을 날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나의 여자여,
그대의 생활에 포섭되지 못하는
조금의 나를 남겨주면 안되겠니?
―계간『문학과 의식』(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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