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부지 서른, 울 엄니 스물 셋 꽃아씨, 아부지 투덕한 살집만 믿고 신접살림 차렸다는디, 기둥 세우고, 짚과 흙 찰박찰박 벽 다져, 오로지 두 양반 손으로 집칸 올렸다는디, 부쳐먹을 땅뙈기가 없는 기라
내사 남아도는 게 힘이여 붉은 동빛 박지르며 집을 나서면, 이윽이윽 해가 지고, 어둠별 묻히고야 삽작을 밀고 들어섰다는디, 한 해 두 해 불어나는 전답, 울 엄니 아부지 얼굴만 봐도 배가 불렀다는디......
늘어나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울 엄니 이태가 멀다 실제 배가 불렀다는디, 갈이질에, 새끼들 가동질에, 하루 해가 지는지 가는지 하 정신 없었다는디, 울 아부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
그 징헌 꽃이 셋째 딸년 나였더란다 첫국밥 수저질이 느슨할밖에......
임자 암 걱정 말어 울 아부지 구렛나룻 쓰윽 훑었다는디, 스무날을 넘기자 사랑방 올린다고 밤새 불을 써 놓고 퉁탕퉁탕 엄니 잠을 깨웠드란다 모름지기 사내 자슥 셋은 되야혀 그때 되믄 계집애들이랑 분별하여 방을 줘야 않겄어!
그렇게 맨몸으로 생을 일궜던 울 아부지, 성 안 차는 아들 두 놈 부려놓고
이젠 여기 없네.
- 시집『뜨거운 발』(애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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