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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의 대화: 김 교신과 우치무라 간조를 중심으로/구미정.한가람연구소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의 대화: 김 교신과 우치무라 간조를 중심으로

 

구 미정 ㅣ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1. 들어가는 말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새삼 ‘국가’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계기였다. 국가는 운명이라고,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받고, ‘국민’의 일원이 되어 국가의 보
호를 받으며 사는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오던 습성에 제동이 걸렸다.
여전히 국가를 ‘종교’마냥 맹신하는 사람이 있기(많기)는 하지만, 그
사건을 “국가가 국민들을 산 채로 수장시킨” “명백한 살인”사건으로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감언이설도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
기에 역부족이다(유 용주, 2014:114).
한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당하여 한때 국가를 믿었던 자신의 순진
함이야말로 ‘죄’라고 고백한다. “나는 그대들을 잘 모릅니다/ …… /
다만 한때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이었습니다/ 나는 나이 많은 시인이
고 그대들은/ 치킨이나 피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날면 하늘

 

42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이 모자라는 새파란 국민이었습니다/ …… / 그대들이 죄 없이 가라
앉는 동안/ 부자들은 돈을 세고 /올드보이들은 표를 계산하고/ 이 나
라는 그대들의 주검을 세는 게 일이었습니다/ …… 그대들에게/ 이
나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나 또한 그런 나라의 금수만도
못한 시인입니다”(이 상국, 2014:121-122).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전제한 뒤,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문제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 이 나
라의 국적을 갖고 있다고 하여 모두가 ‘국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구
미정, 2015:17-41). 국가는 ‘국민’만 보호하지, ‘비국민’까지 보호할
의무가 없다. ‘비국민’은 국가의 관심범위 밖이다. 예컨대 세월호를 타
고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국민’이라면, 국가가 저들
을 산 채로 수장시키는 짓 따위는 감히 하지 못했을 테다. 또 500일
이 넘도록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를 배회하는 유가족들이 ‘국민’
이라면, 국가가 저토록 그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억지소리로 모욕하며
침을 뱉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다.
국가는 항시 국민과 비국민을 이항대립구도로 나누어 관리하고 지
배해 왔다. 국가의 ‘서비스’ 대상이 되는 국민이란 어디까지나 ‘선별
된’ 국민, 곧 자본권력을 장악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잘난
이들’이지, 가난하고 무지하여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이나’ 바라는 ‘못
난이들’이 아니다.1)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본질이 “과잉국가”라는
점이다(김 성주ㆍ이 규석, 2011:96). 국가는 이른바 ‘국가안전’을 위한
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유일한 장치인 ‘헌법’조차
간단히 무시하며 언제든지 초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어쩌면 불행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에만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는 국가란 다만 ‘이데아’일 뿐, 현실에 존재하는 국가는

 

* 이 글은 2013년 5월부터 2016년 5월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후원한 근현대한국
총서 지원사업(과제번호: AKS-2013-KSS-1230004)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으
며, 2015년 11월 27일 향린교회에서 열린 한국아나키즘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ㆍ보완하였다.
1)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산업화 시대의 발전국가론이 노동자를 ‘비국민’으로 탈주
체화한 데 대한 저항에 다름 아니었다(구 미정, 20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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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과잉국가라는 사실 말이다.
큰 틀에서 인류 역사가 인간 자유의 확대를 도모하고 실현하는 방
향으로 전개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다면,2)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는커녕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도착(倒錯) 현상을 빈번
히 경험하는 이 때, 아나키즘(Anarchism)에서 지혜를 구하는 일이야
말로 긴요하고도 지당하겠다. 가장 단순한 정의로 아나키즘은 “반권
력, 무지배를 관철하는 철두철미한 인간(個我)사상”이기 때문이다(이
문창, 2013:5).
이러한 아나키즘의 인간형을 구현한 인물로 예수만한 이도 없다.
예수는 당시 유대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맞서 투쟁하였는데, 그의 눈에
이 타락은 유대교의 가르침이 인간을 강제하는 규율로 바뀌고 유대교
의 의례가 인간을 속박하는 제도로 바뀐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자유
로이 신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종교적 실천이 타율(他律)에
물들게 되었다. 이처럼 도착된 종교현상을 원상회복시키는 게 예수의
투쟁이었다.
헤겔의 말로 하면, “예수는 사람이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데서 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이 신적인 가치라고 생
각했다”(헤겔, 2005:247) 이때의 도덕성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에 터
한 것으로, 어떤 외적 권위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자신의 인
격을 신적인 권위와 같은 위치에 자리 잡게 하는 방식으로 유대교와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헤겔은 기독교
야말로 자유의 이념에 기원을 둔다고 보았다.
이 글은 아나키즘과 기독교, 그 중에서도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를 조망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나타
난 아나키즘 요소들을 찾아보고, 기독교 역사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거
세된 맥락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어서 일제강점기 때 이 땅에 출현한
무교회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밝힌다. 나아가 한국형 무교회주의를
대표하는 김 교신(金 敎臣, 1901-1945)의 생애에서 마지막을 장식하

 


2) 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딱히 어떤 전거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굳
이 들자면 헤겔이 도움이 될 것이다(헤겔, 1982:88). 여기서 헤겔은 프랑스대혁
명을 자유의 신장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 그는 자유를 인간의 상태로, 곧 자
유에서만 인간이 자기를 실현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44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는 노동운동이 일종의 ‘공동체 아나키즘’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도 검토한다. 이 작업은 향후 양자의 대화를 더욱 풍성히 하기 위한
서론적 시도로, 이를 통해 다양한 후속연구가 이어질 것을 희망한다.

 

2. 기독교와 아나키즘
복음서가 소개하는 예수의 첫 행적은 광야에서 40일 간 고행하다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것이다(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마귀의 첫 시험은 ‘밥’과 관련이 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예수에게
마귀가 다가와 유혹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
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이에 예수는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
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
이다’ 하였다.”는 대답으로 간단히 시험을 물리친다. 그러자 마귀는 다
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유혹한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이번에도 예수는 성
경을 인용하며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
께 경배하고 그분만 섬겨라’ 하였다.”는 말로 마귀를 물리친다.
이때 인용된 성경은 모두 구약성서로, 그 중에서도 모세의 가르침
들이다.3) 흥미로운 점은, 밥과 관련해서는 예수가 밥의 가치를 전면부
정하지 않은 채 다만 사람이 ‘밥만 먹고’ 혹은 ‘밥 때문에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반면에, 국가권력과 관련해서는 이를 하나
님과 대립된 것, 사탄에게서 나온 것으로 파악하며 자신은 결코 사탄
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을 긋는다는 사실이다.
누가복음은 바로 그 장면 뒤에 예수의 첫 설교를 배치했는데, 이
또한 구약성서에 바탕을 둔 것이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
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
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
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의 은

 

3) 앞의 대답에 인용된 것은 신명기 8장 3절이고, 뒤의 대답에 인용된 것은 신명기
6장 13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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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누가복음 4:18-19)
여기 나오는 ‘기쁜 소식’(福音)은 그리스어로 ‘유앙겔리온’(euangelion)
이다. 본래 신약성서가 성립된 1세기 로마 제국 시대에 이 단어는 새
로운 황제의 등극이나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복음서 저자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와 연관된 ‘유앙겔리온’을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전유(專有)했다.4) 바로 예수의 등극, 곧 화려하고 웅장
한 로마 황실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신의 아들이 아니요,
초라하고 볼품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가 참 신의 아들이라는 것
이다(박 정신, 2015:7-20 참고). 이 예수는 아우구스투스의 통치와
전혀 다른 통치를 선보일 텐데, 그 나라가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
(Basileia tou theou)다. 이 용어는 명백히 로마 제국(Basileia ton romaion)을
겨냥한 대항개념임에 틀림없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
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
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
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
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마태복음? 20:25-28).
로마 제국이 출현하기 이전, 강대국들의 잇단 침략전쟁과 이에 따
른 식민지 경험으로 유대 민족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유대 민족만
이 아니다. 지중해 연안의 약소국들이 다 그랬다. 『다니엘서』는 그
시대를 위로하는 책이다. 저자 자신이 책을 쓸 당시인 기원전 160년
대 초 시리아의 상황 대신에 그보다 300년 전 가상적인 메소포타미아
의 상황 속에서 살았던 다니엘이라는 유대인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
웠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강대국에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당하는 치

 


4) 로마 제국의 통치의 원천은 군사력과 경제력, 정치력,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힘이
었다. 이 마지막 것을 가히 ‘제국의 신학’(imperial theology)이라 말할 수 있는
데, 이에 대해서는 크로산(2014), 128쪽을 볼 것. 또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성격 및 하나님 나라와 로마 제국 사이의 긴장과 대립에 대해서
는 호슬리(2014), 129-164쪽을 볼 것.
46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욕과 고난, 이를테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거나 풀무 불에 던져지는 따
위의 고통을 유대 민족 전체의 고통으로 형상화하면서, 네 청년이 그
고난의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잘 견뎌낸 것처럼 유대 민족도 그럴 수
있기를 희구하는 내용이 핵심 골자다.
특히 7장에 보면, 그동안 유대 민족이 겪었던 식민지배의 경험이
네 마리 짐승들에 빗대어 표현되어 있는 게 흥미롭다(보그ㆍ크로산,
2011:92-94). 먼저 등장하는 ‘사자’는 바빌로니아 제국이다.5) 유다
나라를 멸망시켜 디아스포라로 이끈 장본인이다. 두 번째 나오는 ‘곰’
은 메대 제국이고,6) 세 번째의 ‘표범’은 페르시아 제국이며,7) 네 번째
의 ‘괴물’은 마케도니아 제국이다.8) 이 네 번째 제국은 앞의 세 제국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무섭고 흉악한데,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마케
도니아 창병부대를 바라보는 약소국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 지
역을 이처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제국주의적 침략이 일찍이 없
었다는 뜻이다.9)
이처럼 처절한 식민지배의 경험 속에서 유다 민족은 ‘인자’(人子)를
고대했다. 앞선 제국들의 식민 통치를 심판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
는 세상’을 열어줄 구원자 말이다. 이를 신학적으로 ‘메시아(Messiah)
대망사상’이라고 부른다. 메시아가 히브리어라면, 그 말의 그리스어 번
역은 ‘그리스도’(Christos)다. 언젠가는 구세주(救世主)가 나타나, 그간
겪었던 ‘짐승들의 통치’ 말고 반드시 인간다운 통치를 보여줄 것이라
는 기대감이 지중해 세계에 팽배했는데, 이런 지도자상을 일컫는 고유
명사가 ‘인자’다.
예수가 태어날 무렵, 그리스 공화정을 끝내고 로마 제국을 연 최초

 

5)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이 보였으나,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다니엘서 7:4)
6) “다른 짐승 곧 둘째 짐승은 곰과 같았는데, 뒷발로 서 있었다.”(다니엘서 7:5)
7) “그 뒤에 내가 또 살펴보고 있는데,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것은 표범처럼 생
겼다.”(다니엘서 7:6)
8) “그 뒤에 내가 밤의 환상을 계속 살펴보고 있는데, 넷째 짐승이 나왔다. 그것은
사납고 무섭게 생겼으며, 힘이 아주 세었다. 이 짐승은 쇠로 된 큰 이빨을 가지
고 있어서, 그것으로 먹이를 잡아 먹고, 으스러뜨리며, 먹고 남은 것은 발로 짓
밟아 버렸다. 이 짐승은 앞에서 말한 짐승들과는 달리,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
다.”(다니엘서 7:7)
9) 기원전 160년대의 그리스-시리아 제국은 심지어 또 하나의 제국으로 계산되지
도 않았다. 어차피 알렉산더 제국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정도
정체(政體)는 마케도니아라는 짐승의 뿔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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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황제 옥타비아누스(BC 63-AD 14)가 스스로를 ‘아우구스투스 사
바스토스’(Augustus Savastos)라고 칭한 것은 이러한 민심을 읽었다는
증거다. 그는 자신이 지중해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준(Pax Romana)
구세주(Savastos)로, 헌법보다 위에 있는 ‘지존무상’의 통치자(Augustus)
라고 선포하며 그러한 칭호를 제정했다. 예수가 공생애에 들어섰을 무
렵 로마 황제는 옥타비아누스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BC 42-AD
37)였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인 헤롯 안티
파스가 갈릴리 호수의 명칭도 ‘디베랴’로 바꾸고, 호수 서쪽에 ‘디베
랴’ 도시를 건설한 일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조명하면, 그 자
체가 불온하지 않을 수 없다. 현존질서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든다. 예
수의 혁명적인 가르침의 알짬인 산상수훈(山上垂訓)에 잘 나타나 있
다. 현존질서에서는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슬피 우는 사람’
등등이 불운하거나 불행한 사람,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사람으로 폄훼
되지만, 예수가 열어젖힌 새로운 질서에서는 이들이야말로 ‘복 있는
사람’으로 부상된다(누가복음 6:20-21; 마태복음 5:1-12). 반전(反
轉)도 이런 반전이 없다.10)
그러나 아나키스트로서 예수의 면모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
는 다른 무엇보다도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마가복음 12:17)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이 나
온 문맥은 ‘그들’이 예수를 책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예수에게 보내어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
가복음 12:14) 물은 게 계기다. 그들이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로 구성된 교권주의자들이다. 평소라면 앙숙이었을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도 악을 도모하는 일에서만큼은 서로 손을 잡는다. 이에 예수
는 데나리온(로마 은전) 한 닢을 가져오라 하더니, 그 동전에 새겨진
초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당시 로마 주화에 황제의 초상이 새
겨진 것은 그 주화의 소유권이 황제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이 뜻을 뒤집으면, 황제의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10) 예수의 산상수훈에 나타난 전복적 성격에 대해서는 스타센ㆍ거쉬(2011)를 볼 것.
48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그것 말고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땅과 땅 위의 모든 것”은 다 “하
나님의 것”이다(신명기 10:14). 심지어 돈은 “일만 악의 뿌리”(디모데
전서 6:10)로서 ‘칼’과 결합되기 일쑤이니, “칼을 쓰는 자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52)는 예수의 말은 로마 권력에 대한
저주요 심판이나 마찬가지겠다. 예수가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요컨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모든 소유, 곧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은 세상 제국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표시다.11) 이 여인의 ‘계시적’ 행동이 십자가를 지기로 한
예수의 결단을 지지하고 고무했음은 물론이다.
예수는 세속의 어떤 권력이나 권위도 용인하지 않았다. 당대의 종
교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되어 어떻게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있는
지 버젓이 보았기에, 그 자신이 신성모독 혐의로 불법재판에 회부되었
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침묵은 재판 절차에 묵묵히 복종하는
이의 태도로 볼 수 없다. 불의한 재판 절차에 대한 적극적 항의요, 불
의를 일삼는 종교적ㆍ정치적 권위에 대한 전적 부정의 의미다.
예수 사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의 뜻을 철저히 받들었다. 예
수의 가르침, 곧 ‘복음’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
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
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
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
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사도행전 2:44-45).

 

11) 여기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진정한 헌금의 의미를 가르
치는 맥락에서 해석되어왔다. 다시 말해 진정한 헌금이란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을 드리는 행위로서 섬김과 제자도에 연결된다는 것이다(이를테면 Neinham,
1963:334-335). 이처럼 다수의 학자들이 가난한 과부를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인물로 보는 반면에, 소수의 학자들은 이 본문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外
飾)을 일삼는 서기관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를테면
Wright, 1982:256-265; 김득중, 2006: 327-330). 그러나 탈식민주의적 관점
에서 본문을 읽으면, 과부의 행동은 단순히 서기관을 비판하는 수준이 아니라,
로마 제국(세상 제국)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이 여인은 “사회경제적 위
상으로 세상 제국주의 제도 하에서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라도, 하
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여 아는 자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궁극적으로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자
이다”(김 성희, 2007:361). 이러한 정체성은 로마 제국의 체제와 그 제국에 힘
입어 살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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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초대교회의 정체를 ‘기독교 마르크시즘’로 설명하는 이도 더
러 있지만,12) 차라리 ‘기독교 아나키즘’이 더 적절할 것이다. 주로 정
치적 지배에 경도된 마르크시즘과 달리, 아나키즘은 모든 영역의 지배
를 부정하기 때문이다(박 홍규, 2012:94). 마르크시즘과 아나키즘이
모두 프랑스 혁명기에 출현하였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음에도, 전자
의 기본 파토스가 ‘평등’이며 그 출발점이 ‘사회’인 데 반해, 후자의
파토스는 ‘자유’이며 그 출발점은 ‘개인’이라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김 성주ㆍ이 규석, 2011:105) 아무리 ‘공동의 복지’
를 위한다는 고상한 명분을 내세워도 그것이 하나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로 귀결된다면 결코 허용하지 않는 게 아나키즘의 대의인 한(윗
글, 98-99 참고),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고자 분투하는 목자-예수야말로 아나키스트의 원형이라 하겠다.

 

3.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와 아나키즘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의해 불온사상으로 낙인찍혀 금기시되어 있
던 시절,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순
교를 불사하며 저항했다. 그러나 자기들의 신앙이 로마 제국의 국교라
는 막강한 권력을 획득하자,13) 갑자기 이전의 신념을 철회하고 일체
의 ‘다른’ 신앙과 사상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다시 헤겔의 용어에 기
대면, 기독교는 예수가 맞서 투쟁하였던 바로 그 “실정적(實定的) 신
앙”14)의 자리를 꿰차는 반동적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12) 기독교와 마르크크시즘의 대화는 꽤 풍부한 편이다. West(1958), Bonino(1976),
McGovern(1980), 고 재식(1985), 박 순경(1983), 박 봉배(1976) 등을 볼 것.
13)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과정, 또 이에 따라 예수가 하나님이 되는 과정
을 비판적으로 서술한 글로 루벤슈타인(2004)을 볼 것.
14) “실정적 신앙은 특정한 종류의 종교적 교리의 체계인데, 실정적 신앙에 따르면
이 계율들은 우리가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주저해서는 안 되는 어떤 권위에 의
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우리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진리로 여겨지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진리,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진리였던 진리,
그래서 종종 객관적인 진리라고 불리는 진리의 체계가 이 개념에 포함된다”(헤
겔, 2005:346-347).
50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이런 연유로, 예수와 아나키즘 혹은 초기 기독교와 아나키즘의 연
결고리는 쉬이 찾아볼 수 있으나, 제도종교 혹은 권력종교로서의 기독
교는 도리어 아나키즘의 주적(主敵)이 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
이다.15) 혹자는 기독교를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으로 구분하여, 실정적 신앙으로 둔갑한 것은 가톨릭일 뿐, 프로테스
탄티즘, 곧 개신교는 그에 항거하기 위해 나왔으므로 전혀 그렇지 않
다고 항변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그다지 성공적
이지 못했다.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성직제도 자
체를 극복하지는 못한 이율배반을 낳고 말았다(김 진호 외, 2012:7
장). 그러니 바쿠닌(Mikhail Bakunin) 같은 무신론적 아나키스트가
‘신은 악이다’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도 충분히 일리 있는 ‘반항’이라
하겠다(하 승우, 2008 참고).
‘무교회주의’는 한 마디로 미완의 종교개혁을 더욱 철저화 하기 위
해 대두되었다. 그런데 얼핏 듣기에 ‘무교회주의’는 그 어감이 상당히
부정적이다. 마치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 옮긴 번역용어가 ‘정부를
타도하겠다는 발상’ 쯤으로 들리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아나키
즘을 번역하면서 무정부주의라거나 반민주주의 혹은 비권위주의 등,
‘무’(無), ‘반’(反), ‘비’(非) 따위의 부정적인 접두사를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박 홍규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박 홍규,
2013, 46). 그가 생각하는 아나키즘은 ‘자유ㆍ자치ㆍ자연’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된다. ‘자유롭게, 자치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나키즘의 바른 이해란다.16)
이 대목에서 무교회주의의 주창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5)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이 문창 역시 아나키스트들이 비판하는 것은 “사
도 바울 이후 국가권력과 밀착하여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성장, 발전하여
온 교회에 대해서이지 그 이전 로마 제국 등의 국가권력과 투쟁하며 많은 순교
자를 낸 원시기독교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이 문창, 2013:17-18).
16) 아나키즘이라는 용어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이를 대체하자는 움직임은
이미 서양 사람들에 의해서도 전개되었다. 예컨대 프랑스 아나키스트인 프루동
(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은 스스로를 ‘연합주의자’(federalism)라고 불렀
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가운데 반사회주의 계열은 ‘상호주의’(mutualism)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사회주의 계열은 처음에 ‘집산주의’(collectivism)를 사용하
다가 후에 ‘공동체주의’(communalism) 또는 공산주의(communism)로 바꾸었다
(박 홍규, 2013: 46-47의 달음 5 참고).
? ? ? ? ? ? ? ? ? 현상과인식 2016 ? 51

 

1861-1930)에 대해 살펴봐야겠다. 우치무라는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
어났다. 그의 나이 7-8세 쯤 ‘명치유신’이 일어났으니, 일본에 대대적
인 ‘서양화’ 바람이 불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셈이다. 사무라이
집안의 자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우치무라 역시 서양의 기술문명을
습득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 여겼다. 클라크(William S. Clark)17) 선교
사가 세운 삿포로농업학교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거
기서 클라크 교장의 청교도 정신에 감명을 받고 개종까지 하게 될 줄
은 그 자신도 미처 몰랐을 테다. 학교 전체에 풍기는 기독교 냄새가
싫어, 일본 귀신(가미)에게 기독교를 없애달라고 빌기까지 한 그가 아
니던가(간조, 1973:19).
우치무라는 1876년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일곱 명의 형
제들끼리 일주일에 세 번씩 모여, 서로 돌아가면서 성경공부를 인도하
는 소그룹을 만들었는데, 예배도 없고 찬송도 없이 그저 성경책만 놓
고서 각자 연구한 내용을 나누는 이 방식이 후에 우치무라의 ‘트레이
드마크’인 무교회주의로 발전했다. 그에게 무교회주의는 독일의 마르
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을 완성시키는 제2의 종교개혁이었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중세 가톨릭교회의 엄격한 성직제도에 반대하여
‘만인사제주의’를 주창했음에도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가지 성례전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또 개신교회가 이 성례전의 집행 권한을 오로지
안수 받은 목회자에게만 허용함으로써 ‘저지된 운동’으로 끝나버렸다
고 평가했다. 그리하여 성서에 나타난 교회상을 복원하자는 것이 그의
무교회주의인데, 이는 “제도가 아닌 사랑의 사귐이며 조직 또는 단체
가 아니라 영혼의 자유로운 친교”를 의미하는 것으로(윗글, 151), 예
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인간에게도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기
독교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이 두드러지게 표출된 일화가 ‘불경사건’(不敬事件)
이다. 미국 유학 후 우치무라는 도쿄제일고등중학교(지금의 동경대학
교 교양학부)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90년 10월에
<교육에 대한 칙어(勅語)>가 헌법에 이어 반포되었는데, 이는 국가와

 

17) ‘소년들이여, 야망을 품어라!’(Boys, be ambitious)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식물
학자다.
52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천황, 그리고 도덕의 근원을 하나로 이어 묶어 신민(臣民)의 윤리를
강요하려는 의도였다(박 영신, 1977:207).18) 1891년 1월 9일, 학교에
서 이 칙어에 참배하는 의식이 거행될 때, 우치무라는 자기가 가르치
는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 앞에서 단호히 칙어참배를 거부했다. 이것이
유명한 ‘불경사건’이다.
그에게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독립의 정신’과 통하는 것이기 때문
에,19) 한낱 인간이 만든 칙어에, 그것도 인간을 국가와 천황의 노예로
굴종시키는 칙어에 참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러일전쟁이
발발할 즈음에는 아예 ‘비전론’(非戰論)을 주장하고 나섰으니,20) 일본
인들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반일분자’요 ‘매국노’라 욕할 일이었다. 결
국 그는 학교를 사임해야 했다.
여기서 무교회주의와 아나키즘의 뚜렷한 접점을 보게 된다. 우치무
라가 ‘독립의 정신’이라 표현한 것을 아나키즘으로 바꾸어 읽어도 전
혀 무리가 없다. 우치무라의 ‘독립’은 “외국선교사로부터의 독립에서
시작하여 일본 국체론적 정통으로부터의 독립, 교회로부터의 독립으로
발전하고, 끝내는 조직 일반, 제도 일반을 거부하는 ‘독립’에까지” 이
르는 광범위한 정신의 해방과정을 가리키기 때문이다(石田雄, 1977;
서 정민, 1992:109에서 다시 따옴).
이 지점에서 그의 국가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치무라는 ‘불
경사건’ 때 분명 국가에 맞섰다. 그러나 바쿠닌처럼 열렬하게 국가 자
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부정한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비판한 것은 어디
까지나 일본의 ‘국체’(國體)이지, 그 이상이 아니다.21) 오히려 그는 누
구보다도 애국심이 강했다고 제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는 두 개의 제

 

18) 명치 일본의 정치적 교조화의 도구였던 학교 교육과 칙어에 대해서는 Passin
(1965), 7장을 볼 것.
19) 마사이케는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의 3요소로 ‘영적인 것, 일본적인 것, 독립적
인 것’을 꼽는다(政池仁, 1977:344; 양 현혜, 2009:129에서 다시 따옴).
20) 內村鑑三(明治 36), 6쪽과 양 현혜(2009), 142-144쪽 참고; 서 정민(1992),
106-107쪽도 볼 것.
21) 일본의 국체는 1889년 제국헌법에 잘 반영되어 있다. “대일본 제국은 황공하옵
게도 황조인 아마테라스오미가미가 개국한 나라로서 그 신의 후예이신 만세일계
의 천황이 …… 과거로부터 무궁하게 통치하신다. 이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
는 우리의 국체다”(박 정신, 2008:116).
? ? ? ? ? ? ? ? ? 현상과인식 2016 ? 53

 

이(J), 곧 예수(Jesus)와 일본(Japan)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다는 것이
다.
우치무라가 애국심과 애국주의를 구분했다는 게 중요하다. 국가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국가주의는 반드시 배격되어야 했다.(박 규환,
2014 참고) 박 영신이 정확히 지적한 바와 같이, 우치무라가 받아들
인 “프로테스탄트적 하나님 인식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영광을
위하여, 전통적으로 굳어진 사회질서에 커다란 지렛대를 갖다 대어 흔
들어 이를 감히 바꿀 수 있는” 그런 ‘돌파’(breakthrough)의 힘이었다
(박 영신, 1977:207).
우치무라에게 애국심은 국가가 잘못 하는 일에 반기를 들며, 국가
가 잘못 가는 방향에 제동을 거는 정의로운 실천과 다르지 않다.22)
이것이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믿은 “근저적(根底的) 급진주
의”야말로 우치무라 사상의 알짬이었다(윗글, 같은 쪽). 우치무라의 제
자들로, 훗날 ‘조선식 무교회’를 실험하게 되는 김 교신 등이 우치무
라에게 배운 것도 바로 그런 깨달음이었다.23) 우치무라의 ‘일본식 기
독교’는 김 교신으로 하여금 나야말로 “아무런데도 조선인이로구나!”
를 절감케 하였다(김 교신, 1927:1-3; 노 평구, 2001:19). 『김 교신
평전』을 쓴 전 인수는 김 교신의 일본 유학을 한 마디로 결산하라면
바로 이 깨달음이라고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동해안을
가로지르는 연락선 갑판 위에서 있던 김 교신은 비로소 사해동포의
허상, 조선인도 일본인과 다르지 않다는 꿈을 깰 수 있었다. …… 다
른 조선인과 구별됨으로써 조선인을 초극하여 세계인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그가 이제 자신을 진정 다른 조선인과 일치시키고 조선인 콤플
렉스를 극복한 것이다”(전 인수, 2012:39).

 

22) “자, 누가 더 그 나라의 애국자요, 그 나라의 미래를 꿈꾸는 자인지 바라보자.”
로 시작되는 우치무라 자신의 글에 이러한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간조, 1922;
서 정민, 1992:104에서 다시 따옴).
23) 우치무라는 조선 청년제자들 중 유독 김 교신을 총애했다. “장차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사람은 어쩌면 조선사람 중에서 나올지도 모르겠다”(간조, 1922; 구니
지, 2012:31)고 말했는데, 여기 나오는 ‘조선사람’이 바로 김 교신이다.
54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4. 김 교신의 무교회주의와 아나키즘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가 이 땅에서 처음 출현한 시기가 공교롭게
도 모두 1920년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24) 식민지 조선에 아나키즘이
소개된 것은 「조선일보」가 1921년 6월 28일부터 7월 5일까지 9회
에 걸쳐 “빡쿠닌(바쿠닌) 主義”를 다룬 것이 최초였다(박 종린,
2008:32-34 참고). 그런가 하면 무교회주의는 우치무라의 제자들인
여섯 명의 조선 청년들, 곧 김 교신ㆍ함 석헌ㆍ송 두용ㆍ정 상훈ㆍ유
석동ㆍ양 인성에 의해 1927년에 첫 선을 보였다. 이들이 우리도 한번
가장 ‘조선적’이면서 가장 ‘기독교적인’ 신앙공동체를 만들어보자고 의
기투합한 게 한국형 무교회주의의 시작이다.
1920년대는 일본 식민통치 세력이 통치전략을 ‘문화통치’로 바꾸고
기독교의 비정치화를 획책하던 시기였다. 조선총독부의 3대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919-1927 재직)가 파란 눈의 선교사
들을 모셔놓고 이른바 ‘영적인 사업’에만 몰두하시라 권고했을 때, 정
작 속내는 따로 있었다. 정치적인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뜻이었다.25)
이러한 상부의 지령에 순응하여 당시 제도교회들은 외래에서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과 날카로운 단절을 도모하는 한편(박 정신, 2008: 98
-107 참고), 무교회주의 역시 일본에서 수입된 불온사상이라 매도하
며 자신들의 ‘친일’(親日)을 은폐해 나갔다.26) 무교회주의에 대한 오
해와 공격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확대재생산되자, 할 수 없이
김 교신(金敎臣, 1901-1945)이 입을 열었다. 한국 무교회의 창립 멤
버 중 ‘리더’로, 이들이 발간하던 월간잡지 「성서조선」의 주필을 맡
은 이가 김 교신이다.

 


24)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통치전략이 ‘문화통치’로 선회하면서, 이른바 조선
에서도 ‘주의의 시대’(the period of isms)가 도래하였다(박 정신, 2015:80)
25) 박 태영의 논문은 이 땅의 역사적 콘텍스트에서 거론되는 ‘정교분리’가 미국에
서 배태되고 실천되는 ‘정교분리’와 다름을 흥미롭게 논증한다(박 태영, 2014).
26) 1920년대는 이 땅의 주류교회들이 민족주의 세력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이른바
‘비정치화’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친일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때다(박 정신,
2008:5강). 아울러 이 시기는 그 이전의 ‘별난 예수쟁이’들, 곧 사회개혁의 의지
로 가득 찼던 기독교 공동체가 보통의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화 과정’
에 들어선 때이기도 하다(박 영신, 1987: 10장; 박 영신, 2012:109-129도 볼
것).
? ? ? ? ? ? ? ? ? 현상과인식 2016 ? 55

 

우리에게? 무교회를? 논하는? 이? 중에는? 우리가?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무교회주의를? 전공한? 사람인? 줄? 아나? 이는? 대단한? 오인(誤認)이다.?
근래에? 공산당? 노국(露國-러시아를? 이름)에서? 훈육받은? 청년들이?
그? 주의를? 선전할? 사명을? 띠고? 월경(越境)하거나? 혹은? 군관학교?
교육받은? 청년들이? 침입하여? 모종의? 운동에? 헌신한다는? 보도에? 놀
란? 경험을? 가진? 인사들은? 우리의? 무교회도? 곧? 그렇게? 추상하고야?
만다.? 그러나? 우리가? 10년에? 걸쳐? 우치무라? 선생에게? 배운? 것은?
무교회주의가? 아니요,? ‘성경’이었다.? ‘복음’이었다.? 설령? 우치무라?
선생의? 내심에는? 무교회주의란? 것을? 건설하며? 고취하려는? 심산이?
있었다? 할지라도? 내가? 배운? 것은? 무교회주의가? 아니요,? ‘성서의? 진
리’였다.? 그러므로? 무교회주의에? 관한? 왈가왈부의? 변론을? 당할? 때
는? 우리는? 대개? 유구무언하니,? 이는? 우리가? 전공한? 부문이? 아닌데?
저편에서는? 훨씬? 열정적으로? 공구(攻究)한? 문제인? 듯이? 보이는? 까
닭이다(김? 교신,? 1936:1;? 노? 평구,? 2001:249).?
김 교신은 ‘무교회주의’에서 ‘주의’가 붙는 것에 불편해 한다. ‘복음
주의’와 ‘복음’ 혹은 ‘개혁주의’와 ‘개혁’을 구분하지 못하는 맹목적 기
독교인들이 허다한 오늘, 새삼 빛나는 지성이 아닐 수 없다. 김 교신
의 목소리는 마치 자기를 어느 ‘주의’(ism)에도 가두지 말라고 항변하
는 듯하다. ‘주의’는 닫힌 생각이며 굳어진 교의로, 살아 있는 진리를
도리어 화석화한다. 그러니 자기를 무교회‘주의자’라고 단정하여 부르
지 말란다. 자기는 그저 자기일 뿐이란다. “영웅이 못 되어도 ‘나는
나’요, 신학설이 변천하여도 ‘나는 나’다. …… 무교회를 논(論)하든지
신앙을 의(議)하든지 우선 ‘나는 나’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할 일이다”
(윗글, 같은 쪽). 말하자면 아무 ‘주의’, 모든 ‘주의들’에 끊임없이 저
항(protest)하는 정신이야말로 무교회주의의 알짬이라는 선언이다.
김 교신이 주도한 ‘조선 무교회’는 하나님과 조선을 사랑하는 모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라는
구호가 이 모임의 정체를 말해준다. 「성서조선」 이라는 잡지 이름은
그 정신의 압축이다.
다만? 우리? 염두의? 전폭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 두? 자이고? 애인에

 

56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게? 보낼? 가장? 보배로운(最珍)?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 둘? 중? 하
나를?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지한? 조선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
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김? 교신,? 1927:1-3;? 노? 평구,? 2001:?
20-21).
김 교신은 “세상에 제일 좋은 것은 성서와 조선”이라고 강조한다
(김 교신, 1935:맨 뒷면; 노 평구, 2001:1, 21). 사랑하는 이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 성서를 조선에 주겠다는 것이
다. 그래서 혹자는 ‘과학조선’을 건설하자 하고, 혹자는 ‘농업조선’을
중흥하자 하며, 혹자는 ‘상공조선’이니 ‘공산조선’이니 저마다 여러 방
편을 제시하지만, 자기는 일절 동의할 수 없단다. “이런 것들은 모두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이슬과 같아서 오늘 있었으나 내일에는 그 자취
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모래 위(砂上)의 건축이라 풍우를 당하여
파괴됨이” 심할 것이므로, 오직 ‘성서조선’만이 답이라고 한다(노 평
구, 2001:22).
이때의 기독교는 ‘전적(全的) 기독교’의 성격을 지닌다. 당시에도
‘무늬만 기독교’, ‘반만 기독교’, ‘일요일에만 기독교’인 신자들이 많았
지만, 김 교신의 기독교는 달랐다. 김 교신 자신의 말로는 “김치냄새
나는 기독교”란다(김 교신, 1935:21-25; 노 평구, 2002:243). 한국인
의 밥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음식이 김치다. 무릇 한국 사람이라면 일
요일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김치를 먹어야 산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
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배운 자나 부
자만 먹는 기독교 말고 가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도 먹는 기독교여야
한다는 게 김 교신의 생각이다.27)
그가 ‘건강한 생활인’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자신이 누
구보다 열심히 성서를 공부했고, 또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나름대로
‘(무)교회’를 이끌었음에도, 소위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교사로 일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 보기로 김 교신은 ‘유한’(流汗) 계급이야말로

 

27) 김 교신과 우치무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 준기는 김 교신의 ‘김치
기독교’에 신학적 상상력을 덧입혔다(정 준기, 1988:173-174).
? ? ? ? ? ? ? ? ? 현상과인식 2016 ? 57

 

심지(心志)가 가상하여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고 만민
구원의 대업이 완성된다고 힘주어 말한다(김 교신, 1936:맨 뒷면; 노
평구, 2001:121). 유한(流汗)이라 했다. 유한(有閑)이 아니다. 생산보
다 소비가 으뜸이 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후자가 더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구슬땀을 흘리며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생산직’ 노동자를 천시(賤視)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김 교신은 성서에서 경애할 만한 인물로 ‘세리’ 마태,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의사’ 누가 등을 꼽는다. ‘노
예’ 빌레몬이 그 뒤를 이으며, ‘천막직공’이었던 바울 및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빼먹지 않는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과 예수 자신도 ‘목
수’로 생계벌이를 했다. 반면에 당대의 지식권력과 종교권력을 대변했
던 유한(有閑) 계급, 곧 전문 사제층은 예수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김
교신에게서도 비난을 면치 못한다.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김
교신 식으로 말을 만들면, 유한(流汗) 계급의 ‘기술’(技術)은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유한(有閑) 계급의 ‘심술’(心術)은 백해무익하다.28)
김 교신의 무교회주의는 다른 말로 ‘생활신앙’이었다. 교회사학자
양 현혜의 표현을 빌면 ‘생애교회’였다(양 현혜, 2009:139). 그가 사람
들, 특히 양정고보 시절의 제자들이나「성서조선」동인 및 독자들과
맺은 관계를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김 교신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관
계를 맺은 사람들은 공장노동자들이었다. 그가 「성서조선」 사건29)
의 주모자로 몰려 옥고를 치르고 교직을 박탈당한 뒤에 고향에 내려
가 취직한 곳이 흥남질소비료공장이었는데, 이곳을 택한 이유는 자신
의 무교회 철학에 따라 노동과 신앙이 결합된 건강한 ‘생활공동체’를
실험하기 위함이었다.
일종의 군수공장으로, 5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징용되어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그곳에서 김 교신이 ‘생활공동체’를 이루기 위
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는 세세히 열거하지 않겠다.30) 다

 

28) 김 교신의 표현으로는 “세상에 귀한 것은 전문가의 기술이거니와 세상에 추악
한 것은 전문가의 심술이로다.”라고 했다(노 평구, 2001:122).
29)「성서조선」 사건이란, 1942년에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과 같은 선상에서, 일
제가 「성서조선」 제158호(1942. 3.)에 실린 “조와”(弔蛙)라는 글을 문제 삼
아, 그 글의 필자인 김 교신을 비롯, 함 석헌 등「성서조선」동인들을 체포, 구
금하고, 「성서조선」을 강제 폐간시킨 사건을 말한다.
58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만 그가 ‘밑에서부터 위로’ 조직하고자 한 이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인
가에 대해서는 따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이 공동체야말로 바쿠닌이
말한 ‘국가 이후의 공동체’, 곧 “정치적 국가의 폐허 위에서 자유의
생산조합과 공동체, 온갖 언어와 국적의 사람들을 무차별로 포옹하는
지역적 연합체의 형제적 동맹이 전적으로 자유에 의해 건설되어 ‘밑에
서부터 위로’ 조직이 이루어지는 때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예언한 바
로 그 공동체가 아니냐 말이다(김 성주ㆍ이 규석, 2012:102에서 다시
따옴).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논(論)할 것이 아니라 생활할 것”이라
는 그의 말이 마침내 몸을 입게 되었다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김 정
환, 1980:217에서 다시 따옴).
김 교신의 무교회주의는 ‘공동체 아나키즘’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테일러, 2006). 공동체 아나키즘은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이 가정ㆍ
학교ㆍ교회ㆍ기업 등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사적 단위들을
통해 영위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처럼 자생적인 중간집단은 국가와
별개의 독립조직으로, 국가에 기원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 중간집단
들에 권력이 분산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국가의 독재가 저지되며 개
인의 자유도 비교적 잘 보장받게 될 것이다. 공동체 아나키스트들은
공동체야말로 국가를 대신할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믿는다.
김 교신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정체화하지 않았다. 다만 각성한
인간주체로, 일체의 권위와 권력에서 자유롭게,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신을 섬기고자 몸부림쳤을 뿐이다. 아울러 그에게 신을 섬기는 일은
인간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였기에, 그의 무교회주의는 자기만족적 개
인구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희생적 사회구원의 매개체로
승화되어, 엄혹한 일제강점기, 그것도 서슬 퍼런 ‘전쟁동원기’31)에 폭

 

30) 거기서 김 교신은 근로과에 배속되어 ‘조선인 노무자 주택 서본궁(사택촌) 관
리계’ 계장직을 맡았다. 조선인으로서는 처음 맡는 직분이었다. 다행히 그 공장
의 간부들은 동경제대 등 명문대 출신이 많고 비교적 온건파여서 김 교신의 행
동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신은 낮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무연탄을
운반하고 땅을 파고, 밤에는 야학을 열어 부녀자들과 문맹자들을 가르치며, 또
매월 8일과 18일에는 서본궁의 부녀자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공동체생활에 대해
일러주는 등 생활개혁운동을 벌였다(전 인수, 2012:177).
31)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제강점기는 세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가 1910년
강제합병부터 1919년 3·1운동 때까지 ‘무단통치기’요, 두 번째 시기가 3·1운동부
터 1937년 중일전쟁 때까지 ‘문화통치기’이며, 세 번째 시기가 중일전쟁부터
? ? ? ? ? ? ? ? ? 현상과인식 2016 ? 59

 

력의 광기로부터 제자들과 조선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구원의 방주’
노릇을 톡톡히 했다.32)

 

5. 나가는 말
우치무라 간조와 김 교신은, 비록 한 쪽은 일본제국의 국민이고 다
른 한 쪽은 일제에게 무단강점 당한 식민지 조선의 비국민으로, 존재
의 좌표가 극과 극이었지만,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신념에서 일본 제국
을 비판했다. 그 신념이 바로 무교회주의다. 무교회주의는 하나님과
사람(個我) 사이에 어떤 권력이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며 제도와 조
직이 주는 안락함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무교회-주의’가 아니라 ‘무-
교회주의’ 혹은 ‘무-교권주의’, 나아가 ‘무-국가주의’로 이해되어야 마
땅하며, 또 그러한 바탕에서 넓은 의미의 아나키즘을 구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김 교신의 무교회주의는 노동과 신앙이 결합된 생활공동체 운
동으로 확장되었는데, 이는 공동체 아나키즘의 한 전형이라 할 것이
다. 그러나 그의 공동체 실험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45년 4월
18일, 하필이면 자신의 마흔 다섯 살 생일에 김 교신은 몸에 이상을
느끼고 조퇴를 한다. 병명은 발진티푸스였다. 이미 발진티푸스에 걸린
공장노동자들을 간병하다가 그도 그만 감염되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
을 앓다가 4월 25일, 해방을 100일 앞두고 김 교신은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
어디 그의 공동체뿐이겠는가. 불행히도 역사는 인간의 모든 공동체
실험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안으로는 인간
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밖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지배를 관철시키고
1945년 광복 때까지 ‘전쟁동원기’이다.
32) 사실 김 교신의 취업 목적은 자기 제자들과「성서조선」에 관련된 젊은 동지들
이 강제징용당하는 걸 막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징용을 피한 제자 중
한 사람이 류 달영이다. 양정고보 시절의 제자로 「성서조선」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던 인물인데, 그대로 두면 징용당할 게 뻔했기에 김 교신이 흥남질소비
료공장으로 불러들였다(류 달영, 2001:135-136).

 

60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자 부단히 획책하는 국가의 욕망 때문에 제아무리 호기롭게 시작한
공동체도 오래 가기 어렵다. 공동체 아나키즘의 한계가 바로 이 지점
일 테다. 용케 밖으로부터의 도전을 잘 넘기더라도 안으로부터의 유혹
을 극복해야 하는 지난한 숙제가 남는다.
그렇다면 무교회주의와 아나키즘의 대화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
는 지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무릇 사람이란 어떤 역사의 시간
을 살고 있든지 간에 권력과 권위, 조직과 제도가 주는 안온함에 쉽사
리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가 아닐까. 김 교신의
무교회가 ‘생활신앙’, ‘생애교회’로 번역될 수 있다면, 그 무교회는 개
인의 인격과 습관 속에 뿌리내린 아나키즘으로도 재번역될 수 있지
않을까.33) 그렇게 각성한 개인들이 하나 둘 모여 함께 현존 지배질서
에 저항하면서 더 많은 자유와 평등, 정의와 사랑이 보장되는 대안질
서(예컨대 기독교적 용어로 하면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고 또 실험
한다면, 그것이 곧 공동체 아나키즘이 되는 게 아닐까. 설령 실패하더
라도, 이런 종류의 실패라면 아름다운 역사로 기억되지 않을까. 진정
불행한 것은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피폐한 우리 영혼의 현
주소가 아닐까.
그러므로 살아있는 자, 저항할 것! 죽음이 입을 벌린 채 살금살금
다가오는데도 ‘가만히 있기’ 없기! 이 명제야말로 진정한 프로테스탄
티즘의 실체이며, 아나키즘의 정수가 아닐까.

 

33) ‘각성한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는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의 것으로, 그는 “사회
습관 중에 포함된 아나키즘, 개인의 퍼스낼리티에 뿌리내리고 있는 아나키즘”을
옹호했다(鶴見俊輔, 1987; 김 성주ㆍ이 규석, 2011:103-110에서 다시 따옴).
? ? ? ? ? ? ? ? ? 현상과인식 2016 ?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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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심사일/게재확정일? ? 2016.03.29/2016.05.07/2016.05.16
현상과인식 2016 201
A Dialogue between Anarchism and Non-churchism
Focusing on Kim Kyo-shin and Uchimura Kanzo
Mi-jung? Koo?
Ph.D. Researcher in Residence
Hangaram Institute for History and Culture
As long as anarchism is the radical philosophy that advocates
self-government without any authorities ruling-over, it can be said
that Jesus is a prototype realizing anarchism in his life and
personality. He struggled to restore the perversion of Judaism letting
the Jewish people to be subordinated to the law, far from trying
to love God freely.
It is misfortune, however, for Christianity to become the
state-religion of Roman Empire in the western history. After its
switching position, Christianity started to misuse and abuse its power
to oppress the other religious beliefs. That is why it became the
main enemy for the anarchists.
This article review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being introduced
anarchism and non-churchism to Korea in the 1920's. And it defines
some points of contact between them focusing on Uchimura Kanzo
and his disciple Kim Kyo-shin. The author concludes to ask what
outputs will come from the further dialogue between anarchism
202 현상과인식 2016 ▶ 봄·여름
and non-churchism. This exploratory study can be useful in these
days when we experience the perversion of the state existing not
for the people but the state itself.
Key? words? ? Anarchism,? Non-churchism,? Reformation,? Kim? Kyo-shin,?
? ? ? ? ? ? ? ? ? ? ? ? Uchimura? Kanzo
구? 미정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의 대화
: 김 교신과 우치무라 간조를 중심으로 · · · · · · · · · · · · · 41
아나키즘은 ‘무지배ㆍ무권력을 관철하는 철두철미한 인간사상’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아나
키즘적 인간형을 구현한 인물로 예수만한 이가 없다. 예수는 인간을 외적 권위(율법) 아래
종속시킨 당대 종교권력에 맞서 투쟁하며 인간의 자유를 끝까지 옹호했다.
그런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가종교가 된 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
니다. 박해 당하던 종교에서 권력자의 종교로 자리바꿈을 하자, 기독교는 예수의 아나
키즘적 특성을 저버리고 곧장 박해를 단행했다. 기독교가 아나키즘의 주적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 출현한 개신교는 가톨릭과 다르지 않냐고 항변할는지 모
르나, 종교개혁이 특히 ‘만인사제론’과 관련하여 미완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란 어렵다. 그러하기에 기독교와 아나키즘의 대화는 필경 제도교회가 아닌 주변부에
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주변부에서 종교개혁을 더욱 철저화 하기 위해 등장한 무교회 운동
에 주목한다.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땅에 전래된 바, 그 역
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작업도 병행한다. 특히 김 교신의 무교회주의의 한 축이었던
노동운동에서 ‘공동체 아나키즘’의 가능성을 추적하고, 아나키즘과 무교회주의의 대화
를 통해 양자가 더욱 풍요롭게 될 가능성을 질문하며 글을 맺는다. 이 시론적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도착현상을 심각히 경험하는 오늘날 매우 유용한 삶의 길을
제시할 것이다.
이? 황직 해방정국의 좌익 유교단체 ‘전국유교연맹’ 연구 · · · · · · · · · 65
이 연구의 1차적 목적은 그동안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해방정국의 좌익 단체
‘전국유교연맹’의 활동과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해방후 유교
계의 건국운동과 통일국가수립운동을 복원하고 나아가 유교와 근대 정치 이념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 전국유교연맹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전국유교연맹은 해
방정국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의 통일국가수립운동을 위한 세력 확대라는 좌파의 조직
적 목적과 유교계 내부에서 김 창숙 중심의 유도회총본부가 우익화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좌파 성향의 유교 민족운동 세력의 의도가 결합하여 결성되었다. 전국유교연맹
결성에는 크게 세 개의 세력이 협력했는데, 하나는 위원장 김 응섭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 지역의 유림 원로 세력이었고 나머지 둘은 좌파 청년 세력으로서 김 태준 영향
하의 명륜학교 졸업생 그룹과 홍 기문 · 이 원조 영향하의 사서연역회 출신들이었다.
전국유교연맹이 유교 혁신과 평등사회 구현을 위해 세 확산에 나서면서 우파인 유도
회가 장악하고 있던 서울과 향촌 유림 사회에 긴장을 야기했다. 전국유교연맹의 실패
는 유교계의 진보적 대안 제시 가능성을 차단시켰고 결과적으로 유교계 전반의 근대
혁신 시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전국유교연맹 연구는 전통 유교가 근대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