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제기
노동자 계급의
1. 변혁적 실천이론으로서의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
2.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간의 유기적 운동
3.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의 투쟁노선
1) 전위적 선도투쟁론과 노동운동
2) 대중적 투쟁역량 강화론과 노동운동
3) 단계적 전위역량 조직론과 노동운동
4.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의 조직노선
1) 노동운동 조직논쟁의 토대
2)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 논쟁
3)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논쟁의 의의
맺음말
1980년대는 사회구성체 논쟁 혹은 사회성격 논쟁이 만개하면서, 레닌의
언명처럼, 사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 이론을 모든 방향에서 계승·발전시
켜야 하는 과학의 기초 로 체화하려고 투쟁했던 시대였다. 사회의 변혁적
전략들은 1980년대 초반 이후 사회운동의 대중적 발전과정에서 실천적인
쟁점으로 구체화되고 동시에 체계적인 인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 등 구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북한 경제가 퇴락하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운동진영의 사회구성체 논쟁이 거의 사라짐과 동시에 사회
체제의 혁명적 대안이 부재한 것처럼 간주되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
쟁을 기억하는 것조차 마치 고대사 박물관의 화석화된 유물로 치부되었다.
사회라는 말 대신에 좌파이론에서 자주 사용해 온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라는 말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의미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체론은 사회운동의 과학적 무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 정도로 주변화되었다.
그런데 2009년 한국 사회의 체제논쟁이 학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제기되
었다. 이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회구성체 논쟁이 사라지기 시작한 이후
실로 20여 년 만에 한 사회의 경제구조와 정치구조, 계급관계, 이데올로기
및 이들 상호간의 관계와 대립, 투쟁 등의 문제를 포괄하는 논쟁이었다. 물
론 한국 사회체제에 대한 규정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분단체제, 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 등 매우 다양한 형태1)로 나타나고 있다. 실천전략과
1) 2009년 체제논쟁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진 않았지만, 김종엽은 87년 체제에서 체
제를 단순히 정부 형태 혹은 정부 성격을 나타내는 수준의 레짐(regime)으로 파
악한다. 손호철은 사회체제(social system)로서의 한국체제란 한국의 다양한 모든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 즉 사회구성체를 의미하나 이를 단순화시키면 (정치)경
제체제와 정치체제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조희연은 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는 모두 일차적으로 정치 레짐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 이
유는 87년 6월 민주항쟁, 김대중 정부의 수립, 이명박 정부의 수립이라고 하는
정치적 사건 들을 계기로 하는 각종의 변화들의 상관관계를 정치체제의 수준에서
해명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방식은 결국 주요한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단순히 시기를 구분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못 하고 있다. 또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75
관련해서도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반MB 연합에서
반신자유주의 연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체제
논쟁은 그 자체가 한편으로는 계급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보다 과학적으
로 진단·정립하려는 과정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대처럼 이론과
실천 간의 유기적 관계를 복원시키려는 과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 글은 1980년대 사회변혁적인 이론과 실천적 노선 간의 유기적 관계
를 노동운동의 현장에 투영되었던 정파적 경향성과 노동현장에서 경험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1980년대 노동운동의 노선, 특히 투쟁노선과 조직노
선을 복원하고자 한다. 즉 1980년대 지식인이나 이론가 중심의 사회구성체
론이 어떻게 노동현장의 실천적 무기로 전화되었고, 노동운동 내부에 존재
했던 각종의 실천적 노선, 특히 투쟁노선과 조직노선을 당시의 사회구성체
론과 유기적으로 조응시키려 한다.
1980년대 사회운동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변혁론적 인식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광주민중항쟁이 제반 사회운동세력들에게 심각한 자기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였듯이, 노동운동 내에서도 1970년대 민주노조 활동
및 노동운동 일반에 대한 심각한 자기반성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은 민주노조의 조직형태 및 활동에 대한 것
한 정치적 성격이 강한 시기는 정치 체제로, 경제적 성격이 강한 시기는 경제 체
제로 구분한다면, 정치 체제를 경제적 심급의 운동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해야 한
다. 는 자신의 주장과도 모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김종엽, 손호철, 조희연, 서영
표, 2009).
76 역사와 현실 77
뿐만 아니라 계급적 이념과 과학적 이론에 입각한 정치적 지도의 부재, 민
주노조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는 사회구성체론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었던 사회변혁의 전
략과 전술 등이 만개했었다. 당시의 자본주의적인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계급해방운동, 혹은 군부지배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민중이 주인되는 민중적인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민중민주주의 변혁운
동, 나아가 대외적인 예속성과 분단상태를 극복하고 자주민주통일을 성취
하고자 하는 통일운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은 변혁적 실천의 이론적 무기를 구축하
기 위한 사회성격을 둘러싼 논쟁, 전위당의 적실성을 둘러싼 논쟁, 노동조
합운동의 노선을 둘러싼 논쟁, 대중적인 정치조직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으
로 가시화되었다. 노동운동도 1983년을 전후로 이념논쟁을 전개하였다. 노
동운동은 이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사회구성체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
다. 노동운동의 이념논쟁은 1970년대 및 1980년 초반의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 즉 노동자 계급은 연대투쟁의 축적과정에서 의식의 성장과 투쟁의
선도성을 확인하였지만, 이론적으로 무장된 지도부의 부재 및 과학적 운동
론의 부재로 말미암아 조합주의적 경제투쟁에 머물렀고 계급투쟁의 전략
적·전술적 목표지점을 구축하지 못했다. 2)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배경으
로 하고 있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둘러싸고 2단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제1단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할 것인가 혹은
주변부 자본주의로 규정할 것인가의 논쟁이었고, 제2단계는 신식민지 국
가독점자본주의, 식민지반봉건주의(이후 식민지반자본주의), 신식민지예속
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의 논쟁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주로 지식인을 중심
2) 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정립을 위하여」및 「인식과 전
략」 한국노동운동논쟁사 , 현장문학사, 85~102쪽 참조.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77
으로 전개되다가, 점차 학생운동 출신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사회성격을
둘러싼 논쟁, 전위당의 적실성을 둘러싼 논쟁, 노동조합운동의 노선을 둘
러싼 논쟁, 대중적인 정치조직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3)으로 확대되었다.
노동운동의 투쟁노선과 조직노선도 이 과정에서 실천적인 전략으로 투영
되었다.
1980년대 사회변혁론은 이처럼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어떻게 인식하
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투쟁의 전략적 목표, 혁명역량의 배치, 핵심적인 선
전선동의 전략, 그리고 남북통일전략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
급이 어떻게 추상적인 이념속의 주도계급에서 현실운동속의 주도계급으로
실체화될 것인가 하는 문제, 특히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과제들이 실천적으로 제기되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변혁의 이론적 무기를 구축하는 과정이었고, 노
동운동 내에 정파적 분화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사회구성체 논쟁은 애초부터 정치적이고 변혁적인 것으로서, 한국 사회변혁의
필연성과 가능성, 나아가 그 전략·전술의 근거를 찾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논
쟁은 1945년 이후의, 특히 50년대 초의 비극적인 전쟁 이후의 한국 현대사 속
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그것을 현재화시킨 것은 1960년대 이래의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발전과 그에 따른 계급투쟁의 발전이었다. 그것은 특히
70년대에 반유신(=반파쇼) 민주화운동과 민주노조운동 등으로 전개되고 1980
년의 소의 서울의 봄과 광주민중항쟁의 전개와 좌절을 겪으면서, 그리고 그
경험을 비판적으로 평가·수용하고 새로운 전략·전술을 모색하면서 80년대에
3) 조희연·박현채 편, 1989 한국사회구성체논쟁 제1권-제2권, 죽산 ; 양재원,
1989 「민족민주운동의 활성화가 낳았던 정치노선논쟁」 80년대 사회운동논쟁-
월간 사회와 사상 창간 1년기념 특별전권기획- , 한길사 ; 편집부 엮음, 1988
팜프렛 조직노선 , 일송정 참조.
78 역사와 현실 77
비약적으로 성장 발전한 · 청년·학생·노동자·민중운동의 내부에서부터 시작
되었고, 그러한 운동의 성장에 의해 뒷받침되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4)
그래서 변혁적 활동가들은 노동현장에서 민주노조운동이 활성화되자 투
쟁의 계급적 주체를 형성하고, 그러한 주체들을 사회변혁운동의 주력군으
로 내세우려 하였다. 특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주체형성투쟁의 가능성
을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특기할 현상은 그 동안 중산층 내지 화이트칼라층
그리고 사회안정세력 내지 개량적 변화의 주도세력이라고 불리던 화이트칼라층
이 구조적으로 파생되어 취업구조에서 일정한 비율을 유지시키면서 대투쟁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결성해 감으로써 민주노동운동의 일정한
세력으로 성장해 간 것이다. 대중투쟁을 전개했던 노동자들은 1990년대에 지배
블록의 여러 가지 탄압에 맞서서 전국적인 차원의 민주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계
급으로서 정착시켜 나아갔으며 사회변혁의 중심적 위치에 있음을 자각하기도
하고 기대받기도 하였다. 5)
그러나 사회구성체론이 변혁적 실천이론으로서의 역할보다 비당파적 정
파주의 운동에 기여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사라지고 권력 추수주의 운동 만 남게 하였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1980년대 말 이후의 운동권의 격심한 분열, 분파주의, 청산주의는 단순히 어
떤 사상이론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치부될 수 없는 내적 맥락을 가진다. 그
것은 무엇보다도 학생운동의 급진주의 내에 삼투되어 있던 스탈린주의적 편향
4) 채만수, 2003 「다시, 2003, 한국사회의 구성과 성격에 대하여」한국노동이론정책
연구소 창립8주년 기념 심포지움(9월 27일)
5) 김진균, 1999 「1980년대 : 위대한 각성과 새로운 주체형성의 시대」이해영 편
1980년대 혁명의 시대 , 새로운 세상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79
들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채, 학출들에 의해 노동현장으로 이전·확장되었고,
경쟁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었던 제 정파 간의 노선투쟁과 아울러 생산현장에서
의 정권과 자본의 억압과 전제에 의해 이 편향이 확대 재생산된 데에 기인한다.
현장 실천에서 나타나는 권력기회주의 또는 목적기회주의 는 그 자체로 스탈
린주의의 실천적 전화형태라는 것이다. 이론은 단순히 상황에 따라 변하는 실
천이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해되고, 이로써 이론과 행동의 전략, 전술 간의
매개는 단락된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라는 관점이
ML주의의 정통주의에서도 김일성주의의 혁명전통론에서도 전혀 내면화되지
못한 채, 문서상의 진리로 남았다는 것이, 80년대 사상의 비극일 뿐이다. 6)
이처럼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1980
년대 사회구성체론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실천적 변혁운동의 주체를 형성
하고 과학적 변혁이론을 발전시키는 동력이었다. 사회구성체론에서 제기되
었던 변혁론의 제 쟁점과 기본내용은 이미 광주민중항쟁 및 1980년대 초반
에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1980년대 초반 이후 현재까지 사회운동의
대중적 발전과정, 특히 노동운동에서 실천적인 쟁점으로 구체화되고 동시
에 체계적인 인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학생운동 출신의 활동가들이 개별적인 차원에서 노
동현장 투신운동을 전개하였지만, 1980년대 중반에는 학생운동 내부의 정
파운동조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현장 투신운동이 전개되었다. 정파운동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현장투신운동은 단위 사업장 및 지역단위의 노동자
6) 이해영, 1999 「思想史로서의 1980년대 : 우리에게 1980년대란 무엇인가?」이해영
편 1980년대 혁명의 시대 , 새로운 세상
80 역사와 현실 77
들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 이 운동은 노동자들 간의 혹은 노동조합간의
혹은 청년학생층
중심의 변혁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의식적・조직적 상
호연대의 토대로 작용하였으며, 선진적인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계급의식
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즉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은 노동자 의식으로 무장
함과 동시에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의 주체로 변화되었다.
노동자들이 아주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은 야학과 공개적인 교육프
로그램이었다. 야학은 1970년대 초반 검정고시야학에서 전개되기 시작하
였다. 검정야학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새
로운 배움의 터였고, 대학에 다니는 형과 누나를 만나서 많은 것들을 새롭
게 경험하는 터였다. 노동야학은 1970년대 후반에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학습 자체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대학생과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에게 배우고 사회의 모순에 대해 고민한다
는 점에서 이들의 의식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학생운동 출신의(이하 학
출) 활동가들은 노동현장에 참여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노동야학을 하면
서, 노동자들에게 학교를 졸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간적인 삶의 가치
를 가르쳤다. 그리고 1970년대 대학교수 및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사회의 개별적 활동가들도 노동교육의 주체로 나섰다. 노동자 교육
과정은 노동문제에 관한 의식화, 노동조합운동의 육성·강화, 민주적 노
동운동의 정당성 7) 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배치하였다. 1980년대에 공장에
다녔던 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세상사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
게 사는 건지 느끼게 됐어요.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많이 느끼게 되면서 거기
서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교육을 받고, 책갈피가 가죽 껍질로 되가지
고 아주 조그마한 책자였거든요. 8)
7) 크리스챤아카데미, 1985 「중간집단과 한국사회」 자료집 , 130쪽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81
1980년대 중반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의 다양한 문제
들을 제대로 알고자 방문했던 기관에서 노동자로서의 의식과 인간적인 삶
의 가치를 습득하였다. 아래의 구술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지역의 종
교기관에서도 비슷한 교육운동이 전개되었다. 전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던 박종현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1986년 광주에서 회사를 다니던 중, 궁금한 사항들이 꽤 많이 있었다. 어느
날 전봇대에 YMCA건물에서 노동법과 관련된 강의가 개최된다는 것으로 보았
다. 나는 그 잘 YMCA를 찾아갔다. 아마도 가톨릭 노동청년회였던 것 같다. 그
런데 노동법은 가르쳐 주지 않아서 정말 이상했다. 맨 날 노래나 노동자 의식
과 관련 된 것만 가르쳐 주었다. 당시에 지역에는 민중학교와 같은 것이 존재
하였고, 기노련과 같은 단체가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9)
노동자들은 노동야학 및 노동교육에 참여하면서 학교에 입학하는 것 이
상의 가치가 노동현장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노동자들 스
스로 지식인들의 또 다른 모습, 특히 존재기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간극
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하거나, 자그마한 사실 하나를 과도하게 당위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신념화하는 모습도 체득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이처
럼 교육과 학습을 매개로 노동운동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화되었는데, 그
중심에 학출 활동가들이 존재했었다.
1980년대 상반기 수도권의 공단지역으로 들어간 학출 활동가들은 약 3
천~4천여 명에 달하였고, 이들은 현장 노동자들을 의식화하는 투쟁을 전개
하였다. 학출 활동가들은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 즉 민주노조의
조직형태 및 활동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계급적 이념과 과학적 이론에 입
각한 정치적 지도의 부재, 민주노조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것에 이르기까
8) 황용재, 2007년 6월, 서울에서 인터뷰
9) 박종현, 2010년 4월, 광주에서 인터뷰
82 역사와 현실 77
지 광범위하게 고민했던 학생운동의 결과였다. 역사적으로 학생운동 출신
과 일부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의 다양한 소그룹들을 만드는 주체들
이었다. 그런데 학출 활동가들은 소그룹들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운동의 학맥, 인맥, 정파맥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피고인들은 수명씩 서로 학교 선후배간이거나 친구 사이로 일찍이 나름대로
우리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가진 나머지 개별적으로 인천공단 지역에 학력을 낮
추어 취업하였거나, 취업하려고 다니면서 아는 사람끼리 서로 만나 사귀고, 대
화하고, 취업정보를 교환하며 입수한 유인물을 나누어 보았고, 인천사태 등에
있어서는 개별적으로 참여하였던 그런 정도였다. 요컨대 현장에 취업한 학생출
신 노동자들 사회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만남들이었다. 10)
서클운동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조건하에서, 지연・학연・인맥을 중심으
로 결합한 상태에서 초기 노동운동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그러
나 노동운동의 종파성, 활동의 수공업성, 전망의 협애성은 서클주의의 현
상으로서, 조직이기주의와 주관주의적 조직관의 반영에 의한 조직형식주
의, 종파주의, 기회주의의 근원으로 작용하였다. 1980년대에 노동현장에
참여했던 한 활동가였고, 1990년대에는 노동문제 전문 연구소에서 활동했
던 연구자는 서클운동의 폐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구로 지역의 전자회사에 위장 취업했었는데, 정치노선이 다른 활동가들이 동
일한 단위 사업장에서 활동하였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채 생활해야만 했고, 오
히려 단위 사업장의 노동조합운동과 관련된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곤 했
다. 경쟁적 관계가 심할 경우에, 노동조합운동의 분열이 강화되는 경우도 발생
했다. 11)
10)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1991 변론자료집1 , 223쪽
11) 김혜란, 2005년 10월, 서울에서 인터뷰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83
당시 노동현장으로 침투하려 했던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을 지도의 대상
으로 설정하여 자파세력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경향성 을 지니고 있었기 때
문이다. 왜냐하면 위장취업의 방식으로 현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조직적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인식과 정치
의식의 고양, 그리고 대중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전화시키면서 사회구성체론
과 투쟁노선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자 하였다. 노동운동은 구로동맹 파
업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활성화와 함께 투쟁노선을 정립해야 할 필요
성을 절박하게 제기하였다. 노동자 계급 중심의 변혁에 대한 원칙적인 강
조를 넘어서서 사회변혁투쟁의 대상, 동력, 방법, 경로 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었다. 서울노동운동연합 및
노동현장 참여운동의 주체들은 논쟁의 과정에서 출신 대학별 인맥과 정파
조직을 중심으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은 논쟁
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의 이론적 역량 및 정파조직의 이념적 통일
성을 강화시켰고,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정치적·이론적 헤게모니를 장악하
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아래의 <표1>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사회성격 및 정세인식, 노동자 투쟁
을 둘러싼 주체역량의 평가, 노동운동의 전략·전술적 과제 등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논쟁을 유형화한 것이다.
84 역사와 현실 77
내용
유형
대 상 노동조합운동
사회성격 정세인식 계급주체역량 전략적 과제 과의 연대관계
전위적
선도투쟁론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공세기
선진적
주체의 발전
민중민주공화국
당위적 정치지
도관계
대중적
투쟁역량강
화론
식민지반봉건
주의(식반자)
준비기
대중적
기반의 취약
민주연합정권
추수적 현장지
도관계
단계적
전위역량조
직론
신식민지
예속국독자
대치기
선진적
주체의 미약
반제민중정권
단계적 투쟁조
직관계
위의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의 투쟁노선은 노동운동의 주·
객관적 조건 및 전략적 투쟁과제에 대한 인식의 차별성에 따라 전위적 선
도투쟁론, 대중적 투쟁역량 강화론, 단계적 전위역량 조직론으로, 또한 민
주노조운동과의 연대관계는 이념논쟁의 이론적 내용을 토대로 하여 당위
적 정치지도관계, 추수적 현장지도관계, 단계적 투쟁조직관계로 구분할 수
있다. 위의 <표1>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투쟁노선을 세 가지로 유
형화하였는데, 이는 사회구성체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일반화하는 과정이
자, 노동운동의 투쟁노선과 정파운동세력의 사회변혁적 전략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려는 과정이다.
1) 전위적 선도투쟁론과 노동운동
전위적 선도투쟁론은 대표적으로 제헌의회(CA)세력의 「제헌의회 소집론」,
서노련의 「노동조합운동의 정치투쟁 본령론」, 그리고 인민노련의 「정치적
대중조직론」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한국의 사회적 관계를 신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85
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파쇼대 민중 간의 대립을 주요모순
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선진적인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주요모순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정치투쟁조직을 주체적으로 건설하려 하
였다.
CA세력들은 「혁명운동의 기수를 제헌의회 소집으로(86.6-7)」라는 팜프
랫을 통해 당면 정세를 혁명적 공세기 로 규정한 상태에서 노조운동과 통
일전선운동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직업적 형명가 중심의 전국적인 전
위조직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구로동맹파업투쟁 이후 대거 배출된
선진적인 노동자들과 결합하여 혁명적 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즉 이들은 임시혁명정부의 수립과 민중민주공화국 12)을 위해 혁명적 투쟁
을 전개할 수 있는 선진적 주체들을 전국적인 혁명적 전위조직으로 조직하
고, 이 조직을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하였
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들은 선도적인 정치투쟁노선을 노동
대중과 유리된 것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의 최소한의 성과조차 무너뜨린다고
인식하기도 하였고, 민주노조운동을 혁명적 정치운동의 주체로 대상화하는
노선이자 노동자 대중의 현실과 유리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합은 CA세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대중정치조직론과 정치적 대중조직론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은 당시의
정세를 정치적 공세기로 설정하고, 독자적인 대중적 정치투쟁을 강조하였
다. 이 노선은 CA그룹의 혁명적 관념주의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이하
NL)그룹의 대중적 추수주의 13)를 동시에 비판하였다. 노동자 대중들의 현
실적 문제와 직결되는 광범위한 대중적 정치투쟁과 노동자 대중들을 반정
12) 제헌의회그룹, 1986 「혁명운동의 기수를 제헌의회 소집으로(86.67)
」김용기·박
승옥 엮음, 1989 앞의 책, 257~269쪽
13) 서울노동운동연합, 1985 「노동운동의 현 위치와 과제」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앞의 책, 305~314쪽
86 역사와 현실 77
부 투쟁전선으로 조직화하는 정치투쟁 14)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 노선은
노동자 대중들의 의식수준과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적 투쟁과제에 상응하는
정치투쟁을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과의 연대관계를 구축하려 하였다. 그러
나 이 노선도 CA세력의 혁명적 전위조직론을 비판하고 있지만, 혁명적 전
위조직과 대중적 정치조직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CA세력도 마찬가
지였지만,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이론적 수준의 정치적 지도성만 과도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이러한 투쟁노선은 정치적 조직주체들을 단위 사업장에서 조직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들을 전달벨트로 하는 정치활동이 노동현장에서 전개될 수
있었던 토대였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이러한 투쟁노선을 수용할만한
주체를 대중적으로 형성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정파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은 선도적인 방
식으로 전개되었지만, 노동자 대중들의 현실적인 노동현장의 이해를 구체
적으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노동자 대중들이 그러한 투쟁노선을 실질적으
로 실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주요 이유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실의 노동운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 대중들은 전위적이
고 선도적인 활동가들과 달리 사회변혁적 전략의 계급주체로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2) 대중적 투쟁역량 강화론과 노동운동
대중적 투쟁역량 강화론은 NL그룹의 소그룹 운동론과 밀접하게 연계되
어 있다. 소그룹운동론은 「우리 운동에 제기된 사상상·조직상의 몇 가지
14) 서울노동운동연합, 1985 「노동운동의 현 위치와 과제」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앞의 책, 299~314쪽 ; 편집부, 1988 「정치적 대중조직에 대하여」 팜프렛 조직노
선 , 일송정, 267~279쪽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87
문제에 대하여」, 「전위조직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현 시기 한국 혁명
운동의 조직적 임무에 대하여」등의 팜프렛을 통해 제기되었다.
NL그룹은 한국의 사회적 관계를 식민지 반(半)봉건주의 혹은 식민지 반
(半)자본주의로 규정한 상태에서, 미제국주의대 민중간의 대립을 주요 모
순으로 설정하였고, 또한 노동운동의 제1단계 투쟁과제를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통일전선운동을 토대로 하는 민주연합정권 의 수립
으로 설정하였다.
그래서 이 그룹은 민중민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대중적 정치투쟁과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정치투쟁을 지향하는 전위적 선도투쟁론을 민주노조
운동의 독자적인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 15)이라고 비판하였다. 이 그룹의
활동가들은 혁명적 공세기를 준비하는 차원의 활동, 즉 혁명적 정당의 세
포조직들이 소그룹활동을 토대로 미약한 노동조합의 대중적 역량을 점진적
으로 강화시킴과 동시에 각 공장단위에 혁명적 정치소조를 결성하여 혁명
적 대중조직을 건설 16)하는 활동에 주력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직접
적인 정치투쟁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주체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노동자
대중들을 정치적으로 의식화하고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이 노선은 노동현장의 소그룹을 매개로 하여 활동가 그룹의
개별적 주체와 노동현장의 개별적 활동가들의 상호결합을 추진하였다. 그
리하여 이 노선에 입각한 정파세력들은 노동자 대중들의 현실적이고 일상
적인 이해에 기반하는 정치활동을 전개하였다. 정파세력들이 노동자 대중
들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동원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연대관계를 거부하는
15) 편집부 엮음, 1988 「왜 혁명적 대중조직을 건설해야 하는가」 팜프렛 조직노
선 , 일송정, 217~225쪽
16) 편집부 엮음, 1988 「우리 운동에 제기된 사상상·조직상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전위조직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현 시기 한국 혁명운동의 조직적 임무에
대하여」 팜프렛 조직노선 , 일송정, 128~184쪽
88 역사와 현실 77
대신 계급의식의 수준이 , 매우 낮은 노동자 대중들과의 긴밀한 결합에서
형성되는 연대관계를 중시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적
이해관계와 노동자 대중들의 의식수준에 기반하는 상호연대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적 역량이 강화될 수 있었다.
노동운동의 추수적 현장지도관계, 즉 노동자 대중들의 현실적 수준에 따라
노동운동을 다양하게 지도·지원하는 관계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파운동의 활동내용 및 활동방식, 그리고 민주노조운동과의 연대관계도
노동자 대중들의 불균등한 하향평준화 방식의 추수주의적인 수준에서 구축
되었다. 왜냐하면 노동자 대중들의 제반 이해는 각 단위사업장의 노동조건
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노동자들의 의식 또한 매우 불균등하다고 판단하
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투쟁노선은 노동자 대중들의 불균등한 정치적
의식을 정파주의적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정치적 의식
을 판단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고, 직접적인 파업투쟁 및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표출되는 노동자 대중들의 행위조차 통일전선을 형성
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어 버렸다. 노동자 대중들은 이 과정에서 계급주체로
서의 정치적 정체성보다 계급연합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주체로서의 정
체성을 형성하는 주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단계적 전위역량 조직론과 노동운동
단계적 전위역량 조직론은 「전진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정표」, 「한국
혁명주의자의 당면 조직적 과제에 대하여」, 「남한 혁명운동의 조직노선 상
에 있어서 긴급한 과제」라는 팜프랫에서 제창되었고, 지역노동운동동맹론
으로 집약되었다. 지역노동동맹론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적 연대운동을 강조하였다. 지역적 연대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동일지역 내 동일업종의 중소기업 노동자 일반을 조직화하는 지역별 노동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89
조합의 건설 활동, 지역에 존재하는 노동조합 혹은 서클을 지도하는 활동
가들의 공동협의체의 건설 활동, 노동쟁의의 상호지원활동, 공동 교육프로
그램의 운영활동, 활동가의 인적교류활동, 미조직 사업장의 조직 활동, 주
민운동과의 연대활동 등이었다.
이 노선은 한국의 사회적 관계를 신식민지 예속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
정한 상태에서, 제국주의 세력 대 한국민중 간의 대립을 주요모순으로 설
정하였다. 그래서 이 그룹은 대중추수적인 노동조합투쟁과 선도적인 정치
투쟁을 동시에 비판하였다. 선도적 정치투쟁에 의해서만 대중의 본질적
혁명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대중정치조직 만능주의이고, 또한 대중조
직과의 결합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17) 이 노선의 전략은 전략
적 대치기에 상응하는 정파운동의 활동, 즉 반제민중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전초작업의 일환인 지역노동동맹을 노동현장의 전위역량과 전국적 전위역
량의 동시구축으로 결성하고, 이 조직을 중심으로 민족민중혁명을 통한 반
제민중정권 수립투쟁 18)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이 그룹이 제창했던 지역노동동맹은 노동조합운동을 지도하는 정치적
지역전위조직으로서, 전국적인 노동자 당을 건설하고 해소해 나가는 과도
기적 전위조직으로서 19)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수행하는 지역전위조직이었
다. 즉 지역노동동맹은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역량을 강화하는 활동에 주력
하는 지역 내 정치투쟁의 주체이자 지역 내에서 전국적인 정치적 투쟁을
주도하는 전국적인 정치투쟁의 과도적 주체였다. 그래서 이 노선은 지역전
위조직의 역할을 지역 내 노동조합운동의 연대활동20)을 강화하고, 노동현
17) 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정치적 노동운동의 정립을 위하여」앞의 책, 238쪽
18) 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전진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정표」·「한국 혁명주의
자의 당면 조직적 과제에 대하여」·「남한 혁명운동의 조직노선 상에 있어서 긴급
한 과제」앞의 책, 439~475쪽
19) 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전진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정표」앞의 책, 439~452
쪽 ; 편집부 엮음, 팜프렛 조직노선 , 일송정, 58~74쪽
90 역사와 현실 77
장의 선진적 활동가들을 지역차원에서 정치소조로 조직화 21)하는 데에 비
중을 두었다 이 노선은 노동운동이 . 구로동맹파업투쟁 이후 노동조합운동
의 선진 활동가들의 양적인 성장을 질적인 성장으로 전화시켜 낼만한 조건
을 구비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이 그룹은 선진적 노동자 역량을 전위조직과 노동자 대중조직을
통일시켜 주는 매개자로서 뿐만 아니라 경제투쟁을 정치투쟁과 결합시켜
나갈 계급투쟁의 핵심적 주체로 성장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계기는
지역 내 민주노조운동 간의 연대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선진적인 활동가들과 정치적 서클들을 단계적으로 조직화하는 활동이었다.
즉 노동조합운동의 선진적 활동가들을 단계별로 조직, 즉 지역노동자투쟁
위원회 및 전국적 노동자 투쟁위원회는 노동조합운동의 선진적 활동가들을
정치선동과 대중적 정치투쟁을 매개로 하여 반제반파쇼통일전선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이 그룹은 민주노조운동과의 연대관계를 당위적 정치지도관
계와 추수적 현장지도관계 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단계적 투쟁조직관계로 설정하였다. 지역전위조직은 지역노동자투
쟁위원회로 조직화된 노동현장의 선진적 활동가들을 매개로 노동자 대중들
의 투쟁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지역 내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연대활동
을 전개하였고, 또한 전국적인 조직주체를 결성하기 위한 지역전위조직 간
의 연대활동 및 타계급·계층과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이 그
룹은 민주노조운동과의 단계적 투쟁조직관계 에서 나타나는 지역노동자투
쟁위원회의 절충적 성격, 즉 대중조직으로서의 성격과 정치조직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였다.
20) 송정남, 1986 「지역노동운동의 모색」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위의 책, 149
~161쪽
21) 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정치적 노동운동의 정립을 위하여」위의 책, 238쪽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91
1) 노동운동 조직논쟁의 토대
1987년 투쟁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해방이었다. 노동자들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을지라도, 노동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으로부터도 해방되었던 것이
다. 먼저, 1987년 7월 이후,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는 노동자 대중들에게 보
편화되어 양적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전투성을 동반하는 쟁의행위 양
식 역시 그 이전 시기와는 다르게 보편화되었다는 점이다. 1987년 7~9월
동안 무려 3천여 건 이상의 파업투쟁으로 진행된 노동자 대투쟁의 성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 대중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된 노동자
대중들의 탈법적 연대투쟁을 통해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기본권과 민주노조
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확보하려 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시적이나마 계급역
관계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그
동안 불만으로만 남아 있었던 생존권 확보, 기본권리 확보, 조직주체 형
성 등을 원하는 대로 제시하고, 회사와의 주체적인 협상을 통해 관철시킬
수 있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투쟁을 통해 삶의 주인임을 인정받게 되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회사 밖에서
거리를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투쟁의 주체로 변하였다. 대우조선 노동
조합 및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의 전 위원장이었던 백순환과 경남지역노동
조합협의회 및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홍지욱·김상철
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처음 터져서 정문으로 나와서, 옥포까지 가두투쟁을 나왔지. 거리투쟁, 지게차
앞세우고, 뭐, 다 따라 나온 거지, 다. 그래서 다시 회사 안에 들어가서 종합운
동장이라 해서 거기 모여서, 밤새 노조 설립과정을 … 그리고 회사에 교섭 요구
92 역사와 현실 77
하고 이틀인가 삼일인가 … 정도 지나다가, 쫌 오래 지났나, 한 닷 새, 일주일
지났나? 그러다가 석규 사건이 발생했죠. 마산 창원의 경우, 누구나 할 것 없
이 거리로 나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그 동안의 억압된 불만을 폭발하는 장
이었다. 22)
1987년 7~9월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투쟁의 과정에서 임금인상투쟁
의 연대, 전국조직 결성투쟁의 연대, 선거정치 참여투쟁의 전략적 연대, 제
도개선투쟁의 연대 등을 경험하였다. 노조의 현실적 조직형태는 기업별
노조였음에도 불구하고 각종의 투쟁 사안에 대한 지역 수준에서의 연대를
강화하여 전국적 연대와 계급적 결집의 매개고리 형성, 동일지역·동일업
종 노동자들의 경험 교류의 보편화 및 노동운동탄압에 대한 일상적 공동대
응 등을 전개하였다. 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식과 내
용으로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1987년 대투쟁의 과정에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였
다. 대표적인 것은 전투적인 투쟁, 계급적인 연대,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지
도력, 지도부들에 대한 밑으로부터 통제, 그리고 조합원들의 총회 민주주
의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 인간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1987년 8월 28일, 경동산업 노동자들
은 민주노조의 집행부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들 스스로 투쟁을 전개하면서 인간임을 선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제시
하였다.
민주화 조치 운운한 6·29선언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그 얼마나 기만에 찬 것
인가! 독재정권은 들불처럼 번지는 공장 민주화의 불길을 막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 모든 사람들이 사면, 복권되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데, 유독 해고된 노동
22) 백순환, 2007년 6월, 서울에서 인터뷰 ; 홍지욱·김상철, 2010년 4월, 창원에서 인
터뷰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93
자들만 아직도 외부 세력 운운하면 탄압을 가하고 있다. 노동자는 더 이상 바
보가 아니다. 우리 경동산업 민주노동자 일동은 고 이석규 민주 노동열사의 뜻
을 이어 받아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전면 관철시킴은 물론이요 모든 노동자가
하나 되어 우리의 권리를 되찾을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하
는 바이다. 23)
1988년 11월 12일 100여 명의 전국 노동조합 위원장과 20여 명의 노동
운동단체 대표자들은 노동자들의 다양한 투쟁 및 노동법 개정투쟁의 성과
와 한계를 토대로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상급조직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과 1988년 노동법개정투쟁의 성과를 집적하
고, 노동조합 전국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연석회의에서 최초로
공식화되었던 것이다. 노조위원장들과 노동단체의 대표자들은 누구나 이
문제의식에 공감하였다.
그래서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는 1988년 11월 28일 노동법 개정을 촉
구하기 위해 전국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이 민주당에서 농성할 당시, 전
노협 건설에 대한 제안을 제출하였고, 이어서 전국노운협24)은 1989년 3월
노동조합의 전국적 조직건설과 관련된 구체적인 토론안건을 제출하였다.
다. 전국노운협은 전국회의의 투쟁사업과 전노협 건설투쟁에 긴밀하게 결
합하여, 정책기획 및 대중적 토론을 조직하였다. 토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노동조합의 전국적 조직화의 목표, 현 지역·업종별 협의회의 문제점, 전
국적 노동조합조직에의 참여범위, 노총과의 관계설정, 연대활동의 강화, 탄
압에 대한 공동대처, 정치의식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활동의 강화,
상급조직 간부의 권한·책임의 명확화,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인 지도구
23) 경동산업 민주노동조합 임시집행부, 1987.8.28. 투쟁자료집
24) 1988년에 노조탄압저지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연대투
쟁을 전개하였던 전국 10개, 지역 30여 개 노동운동단체들은 전국노동운동단체협
의회(이하 전국노운협)를 결성하였다.
94 역사와 현실 77
심 노동운동탄압에 대한 , 강력한 연대투쟁, 법·제도개선투쟁의 강화, 여타
계층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 도모 등을 위해 전국
적 조직건설을 추진하자는 것 25)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출신이든 학
출이든 노동운동의 운동권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사이버
노동대학의 이사장인 김승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80년도 물론 70년대 민주화운동 노조운동 했던 부분들도 다 깨지고 다시 온
부분들이니까 사실은 80년 3년 4년 이때 이후 노동자 출신이든 학출이든 운동
권들이 그 역할을 한 거란 말입니다. 우선 그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노협
만들어 지기 전에 87년 대투쟁 과정에도 일부는 했지만 그 때는 좀 부족했다고
자생성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는데 88년서부터 지노협 만들어지고 하는 과정
에는 이미 목적의식적인 부분들이 주동성을 가졌다고 나는 봅니다. 26)
2)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 논쟁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투쟁에 자발적이든 조직
적이든 운동권의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전노협의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활
발하게 전개되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지속되었던 사회구성체론이 민주
노조운동의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는 것으로 부활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전
노협이 결성되는 시점뿐만 아니라 전노협의 조직발전전략을 둘러싼 내용으
로 전화되어 전노협이 해산하는 시점까지 지속되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노
동자 대중들의 제반 이해를 획득하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조직구
심을 형성시켜, 이를 토대로 기업별 노조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과 전
국적이고 통일적인 산별조직을 건설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였
25) 서울노동조합협의회, 1989 「전노협 건설에 관한 제안」김용기·박승옥 엮음,
1989 앞의 책, 737~739쪽
26) 김승호, 2010년 5월, 서울에서 인터뷰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95
다. 모두가 민주노종운동의 조직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논쟁의 다양한 근거들은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의 구성요
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즉 기업별 노조의식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성, 기업
별노조의 수평적 결합체인 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지노협)과 업종협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성, 그리고 투쟁의 과정에서 전국적인 지도·집행력의
필요성 등이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투쟁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제시되었
다. 이러한 조직노선 역시 노동현장의 대중들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선진적인 활동가 중심의 논쟁으로 구분되었지만, 노동현장의 대중들도 전
국노동조합협의회의 건설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였다.
아래의 <표2>는 전국적이고 통일적인 조직주체를 결성하는 시기의 문
제로 표출된 전노협의 조직형태를 둘러싼 건설논쟁의 경향성을 정리한
것이다.
조직형태론 전노협 건설시기 근거
한국노총
민주화론
건설포기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적 역량은 180만 조합원의 10%인
20만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은 독자적인 조직
주체를 건설하기보다는 각 지노협을 해체하여 한국노총
의 시협의회와 통합하고, 그 속에서 민주파 블록을 형성
하여 중간노조를 견인하면서 한국노총 자체를 민주화시
켜야 한다.
전 국 노 동 조
합협의회론
즉각건설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건설을 추진한다
는 전제하에, 각 지노협 및 업종협과 같은 수평적 협의체
를 전국적으로 확대한 전노협을 즉각 결성한다. 전노협
은 전국 노동조합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일정정도의 지도
력과 집행력을 확보하는 시점에서 결성한다. 그리고 진
보적 노동단체들은 전국조직의 구성원으로 직접 참여하
지 않는 상태에서, 공동투쟁사업을 통해 상호연대를 강
화한다.
전 국 노 동 조 시기상조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조직 주체는 연합조직으로 결성되어
96 역사와 현실 77
위 표 에서 알 수 < 2> 있듯이, 각 조직형태론의 경향성들은 전노협 건설
의 방식과 위상 등을 제시하면서 노동운동의 발전방향까지 제기하고 있다.
조직형태는 곧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가치와 목표까지 담고 있었다. 조직
형태의 차이는 노동운동 발전을 둘러싼 각 세력의 정치·이념적 노선의 반
영, 계급주체 형성의 정도, 계급주체 형성의 방향, 민주노조운동의 전술적
방향, 그리고 노동자 정당건설운동의 발전방향과 과제에 대한 인식의 편차
였기 때문이다. 세 가지 조직형태론은 모두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조직의 필
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체역량, 민주노조운동과 노동
운동단체와의 관계, 당면 투쟁전략과 전술 등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들을
제출하였다.
한국노총 민주화론은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 조직을 새롭게 건설하지
말고 민주노조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한국노총에 들어가서 민주노조운동
의 세력을 양적으로 확대하여 접수하자는 전략이었다. 이미 건설되어 있었
던 지역노동조합협의회를 해체하라고 말한 것처럼, 민주노조운동의 독자적
인 조직주체의 건설을 부정한 것이다. 한국노총 민주화론은 1980년대 노동
운동의 대중적 투쟁역량의 강화 및 대중 추수주의적인 투쟁노선을 집적하
고 있다. 이 노선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나 정치의식을 매우 낮
게 평가하고, 그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보았
던 것이다.
반면에 전국노동조합협의회론은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과 1988년
노동법 개정투쟁의 성과로 건설되었던 지노협과 업종협을 민주노조운동의
합총연합론
야 한다. 전국조직의 주체는 단위사업장의 노조와 지노
협・업종협, 일용노동자, 실업자의 대중조직, 그리고 단
위사업장의 노민추 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진보적 노
동운동을 지향하는 단체와 노조 지원 단체 역시 일반 노
동조합과 같은 자격으로 전국조직에 참여하여야 한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97
전국적 조직주체로 상정하였고, 이러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별
노조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80년대 전위적 선도투쟁의 노
선을 추구하거나 단계적으로 정치적 전위역량을 강화시키려 했던 정파운
동, 특히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공개적으로 방식으로 노동운
동을 전개했던 정파세력의 대부분이 이 노선을 지향했다.
한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및 그 활동에 대해 한국노총 민주화론과 다르
게 비판하는 세력들도 있었다. 전국노동조합총연합론을 주장한 사람들이었
다. 이들은 주로 1980년대에 단계적 전위역량 강화노선을 지향했던 세력의
일부였다. 전국노동조합총연합론은 전노협의 건설이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새로운 전국적 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양적
확대를 강조하였다는 측면에서는 한국노총민주화론과 비슷하였다. 전국노
동조합총연합론은 업종별 노조협의회, 일용노동자, 실업자의 대중조직, 그
리고 단위사업장의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등을 전국적 조직의 주체로 설정
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협의회들은 합법적 노조들만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용노조
내 민주적인 세력, 노동조합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을 끌어안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그것이었다. 이를 포괄할 틀이 마련되지
않으면 노동조합운동이 계급적 요구에 따라 정치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노동
조합주의 또는 노사협조주의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제
기되었던 것은 첫째, 각 노조들 내에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활동가가 매우 적다
는 것, 둘째, 기업별 노조는 노동자의 힘을 분산시키고 노사협조주의에 빠져드
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산별노조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매우 어
려운 과제라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수많은 활동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 셋째,
현재의 협의회들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대규모 사업장 어용노조 민주
화투쟁을 적극 지도·지원하기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것 등을 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그 해결방안으로 전국노운협과 노조협의회를 포괄하는 전국노동조합운
98 역사와 현실 77
동연합을 결성할 것을 제의하였다. 27)
그러나 한국노총 민주화론과 전국노동조합총연합론은 노동운동단체뿐만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거부되었다 . 노동자들은 전국적 조직의 필요성을 절
감하고 있었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88년 노동법 개정투쟁의 성과를
조직화하려 하였다. 대부분의 노동운동단체들은 민주노조운동은 대중적 토
대가 취약하기 때문에, 각 지노협을 해체하고 한국노총 내부의 산업별 체
계를 점진적으로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한국노총 민주화론을 비판하였다.
또한 전국조직을 건설할만한 주체역량의 성장을 인정했지만, 지노협만을
토대로 하는 전국조직의 건설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 보다 광범위한 대중
주체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전국조직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던 전국
노동조합총연합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28) 결과적으로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조직발전논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조직주체의 건설을 통해 민
주노조운동의 통일적 발전과 그 토대의 강화 그리고 노동운동의 대중적 조
직을 형성·강화하자는 통일적 입장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한국노총 민
주화론과 전국노동조합총연합론에서 제기하였던 주체의 양적 확대전략 은
향후 ILO공대위의 건설 및 전국노동자대표자회의라는 전국조직을 새롭게
건설해 나가는 논의의 토대로 작용하였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직통합을
중심으로 한 산업별 노조건설전략의 역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27) 김명시, 1989 전노협건설과 노동조합운동의 현 단계 , 백산서당, 42쪽
28) 한국노총민주화론이 다른 이론적 노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장명국, 1989 「노동
조합 전국조직 건설의 방향」 새벽 제4호, 석탑 ; 한종구, 1989 노동조합운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하여 , 백산서당, 69~90쪽 참조.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99
3)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논쟁의 의의
전노협 건설논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산별노조 건설전략을 둘러싼 쟁점이
기도 했다. 산별노조의 건설에 대한 인식은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하 대투쟁) 이후 1990년 1월 전노협을 결성하기 이전까지 민주노조운동
의 지역별 협의체 활동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
었다. 현 시점에서 대투쟁의 성과와 산별노조 결성운동 간의 상호관계를
보기 위해서는 대투쟁의 성과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대투
쟁의 조직적 성과를 넓은 의미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민주노총의 토대
이자 산별노조 결성운동의 또 다른 역사적 당위로 작용했다.
그런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조직적 성과를 좀 더 좁은 관점에서 본
다면, 전노협이 결성되기 이전까지 각 지역별로 협의체를 결성하는 것으로
집중되었고, 조직주체는 지역별 공동투쟁의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많
은 사람들이 대투쟁의 성과를 전자로 귀결시키고 있지만,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역사적 정체성을 대투쟁의 성과에서 찾고 있다
는 점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대투쟁의 실질적인 성과를 좀 더 좁
은 관점에서 강조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투쟁으로 결성된 지역별 협
의체가 지역별 연대투쟁의 실질적 구심체로 존재면서 전노협이라는 전국적
상급단체 또한 투쟁으로 결성해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1988년과 1989년에 전개되었던 많은
지역별 공동투쟁, 특히 경노협·인노협·서노협 시절의 투쟁경험을 무용담
처럼 이야기한다. 이러한 경험은 무용담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인 조직발전의 동력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각 지역 노동조합의 연맹체·연합체들은 전
노협의 조직적 토대였던 연대조직을 결성하였다. 이 연대조직들은 현상적
으로는 1987년 대투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적 연대투쟁의
100 역사와 현실 77
성과였다 전 전노협 조직국장이었던 . 김종배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전노협의 실질적 토대였던 지노협은 각 지역에 존재했던 노동단체들과 활동가
들의 투쟁결과라 할 수 있다. 1987년 대투쟁의 과정에서 긴밀하게 결합했던 단
체와 활동가들은 투쟁과정에서 배출된 선진노동자들의 조직, 선진 활동가들 간
의 교류 형성, 노동조합 간의 일상적 연대 형성, 지역 내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이 각 지노협 결성의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전국노운협이 결성되고 난 이후, 지노협 결성은 가속화되었
다고 할 수 있다. 16개 지노협 중 마창·서울·성남·진주를 제외한 12개 지노
협이 전국노운협에 소속된 지역적 주체들의 결합으로 결성되었다는 점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한국노총 민주화론이나 전국노동조합총연합론이 지역이나 노동현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지노협과 업종협의회를 중심으로 전노협이 건설될
수밖에 없었던 점에 대해서 현재 사이버노동대학 이사장인 김승호는 다음
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전노협도 전노협 중앙만 보면 안 되고 전체를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가
볼 때는. 그럼 지역을 보면 어떤 지역의 지노협이나 업종협의회들이 만들어지
잖아요. 근데 그 부분들이 대부분 보면 그 목적의식성 운동권 이른바 인제 세
칭 운동권이라 하는 부분들이 전부 다 거기에 전부다 사실 산파 역할을 하거든
요 … 그 부분들이 축이 되가지고 자생적으로 올라온 기업들 노조들을 지역적
으로나 업종으로 이렇게 모아내면서 기업별이지만은 기업별을 인제 한계를 넘
어서는 계급적인 어떤 단결을 지향해 나가는 연대 활동들이 됐지요. 그래서 지
역 업종 연대틀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잖아요. 88년 그랬고 그랬죠. 그리고 그
것이 모아져서 딱 한 게 인제 노동자대회로 88년 노동자대회로 다 모아져 보잖
아요. 아, 모아져 보니까 이게 인제 된다,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죠. 29)
29) 김승호, 2010년 5월, 서울에서 인터뷰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101
전국의 지역별·업종별 노동조합협의회 대표자들은 이러한 투쟁의 성과
를 바탕으로 12월 22일, 대전에서 대표자회의를 열고 지속적인 전국노동자
의 단결을 위해 지역·업종별노동조합전국회의를 결성하였고, 그 산하에
당면투쟁의 전국적 공동수행을 위한 임금인상 및 노동법개정전국투쟁본부
를 두기로 결정하였다. 전국노운협의 지도부들은 전국회의의 결성 및 운영
과정에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전국회의는 지노협을 중심축으로
일부 업종별협의체와 노동운동단체를 보조축으로 하여 결성되었지만, 전국
노운협은 노동운동단체의 대표성을 부여받은 상태에서 전국회의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다.
전국회의는 1989년 공동임투와 노동운동탄압 저지투쟁을 저지하면서 단
계적으로 전노협 결성투쟁을 전개하였다. 전국회의는 전노협준비소위원회
결성(제3차 회의, 1989.2.2324.),
전노협준비소위원회 강화(제6차 회의,
1989.5.1718.),
전노협준비소위원회와 전국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
본부를 해체하고 중앙집행위원회 설치(제8차 회의, 1989.7.1920.),
전노
협 건설일정 및 사업계획 확정(제12차, 1989.11.2324.)
그리고 제13차 회
의(1989.12.1112)
에서 전노협 창립준비위원회 체계 및 담당자 확정, 강
령규약의 주요 내용 및 일정 확정을 끝으로 해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국
노운협의 대표 1인은 전국회의의 중앙집행위원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여하
여 1989년 12월 17일 전노협준비위원회가 발족되기 이전까지 전노협 결성
투쟁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1989.11.12)는 전노협 건설의 필요성을
당시 노동조합운동의 한계에서 찾았다. 더 이상 단위노조나 지역적 단결만
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지역·업종별 노동조
합전국회의는 기업별 노조의 협의적 관계로 유지되고 있어서, 전체 노동자
의 이해를 대변하고 투쟁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조직의 강화 및 확
대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는 법
102 역사와 현실 77
적으로 노동조합의 상급단체로 인정되지 않는 임의단체였기에 교섭권과 쟁
의권을 가질 수 없었고 , 이로 인해 지역·업종 전체의 단결을 꾀하기 어려
웠었다.
그래서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는 그 해답을 전국조직의 건설에
서 찾았다.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는 우선 전노협이 건설되면 지
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혹은 노동조합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정말
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해결이 급선무였다. 전노협은 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였던 것이다. 전노협은 전지전능의 신, 만병통
치약이 아니라 오늘의 바람찬 투쟁의 현장에 우리 일천만 노동자가 하나의
대오로 결집하여 경제적·정치사회적 요구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위한
조직적 힘이었다.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는 전국의 노동조합이 전
노협으로 조직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계급의식, 정치의식이 높아진다. 일상활동이 전문화된다. 전체 노동자의 이해
를 대변하고 투쟁해 나간다. 전국적인 단일대오로서 공동투쟁을 해나간다. 농
민, 빈민, 학생 등 광범한 민중민주세력과 연대사업을 강화한다. 30)
이처럼 노동자들은 산고의 고초를 겪으면서 아니 또 다른 산고의 고통
을 각오한 채 노동자 자신의 조직인 전노협을 출범시켰다. 새로운 조직의
출현이 곧 또 다른 조직발전의 시작이었다는 점에 대해 1980년대 중반에
남노련 활동을 했고, 1990년 당시 월간 노동자 의 기획위원이었던 최규엽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노협은 기본적으로 한국노총 내에서의 민주화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진정한 노동조합 전국조직을 지향하는 과도기적 성
30)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 1989.11. 전노협건설로 총진군하자 , 26~32쪽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103
격을 갖고 있다 할 것이다.… 전노협은 이러한 신생 대기업 민주노조들과 업종
별 노조들을 올바르게 조직하여 시급히 산별노조체계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계급의식으로 뭉치고
민주노조와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켜내고, 노동운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1990년 1월 22일에 전노협이 결성되었다. 31)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은 정파운동을 매개로 하여 노동현장에 투영되었
다. 그 주체는 학생운동을 중단하고 노동현장에 참여한 활동가들이이었다.
이들은 노동현장에서 사회구성체론의 다양한 이론을 무기로 노동운동의 투
쟁노선과 조직노선을 정파운동의 일환으로 추구하였다. 학출과 일부 선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의 다양한 소그룹을 중심으로 정파운동을 전개하
였다. 당시 현장으로 침투하려는 학생운동의 활동가들은 장기간 현장투신
을 위해 준비하였고, 이 과정에서 의식화의 교육매체 선전 및 학습, 의식화
전술, 현장 활동가로서의 품성, 소그룹 형성론, 외부세력과의 연계구조형성
등을 집중적으로 훈련하였다. 학출들은 사회구성체론을 무기로 이러한 조
직활동 및 정파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정파운동은 1987년 노동자 대투
쟁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및 민주노총 건설투쟁의 밑거름이자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주체들을 양성하였다. 물론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의 연장
선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및 진보적 노동조합주의를 지향하는 이
론은 이미 1990년 하반기부터 전노협 위기론으로 등장하여 노동조합운동
에 영향을 끼쳤고, 이후 전노협 청산운동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사회구성체론은 혹은 최근의 체제논쟁은 건강한 정파운동과 함
31) 최규엽, 1990 「전노협 건설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 노동자 , 편집부, 194~196쪽
104 역사와 현실 77
께 실천적 변혁운동의 이론적 토대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사회구성체론이 권력 헤게모니에 의해 조작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서는 논쟁과 토론이 공개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음모적이면서도 비밀
리에 추진되는 정파주의적 토론이 지양되어야 한다. 또한 이론적 논쟁과
토론의 결과를 수용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논쟁과 토론의 과정에서 비판은
있는데, 그 성과는 온데간데없다. 토론회는 그저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하
거나 결정의 명분을 쌓는 과정으로 치부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남
기는 최악의 논쟁과 토론만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건강한 정파운동이 혁명
적 이론을 둘러싼 논쟁으로 활성화되고,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여는 디딤
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건강한 정파운동은 함께 투쟁하고 실천하는 과
정에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정파운동을 배격하는 순간, 민주노조운동은 노
동조합주의나 노동자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아주 많다.
* 이 논문은 2007년도 한국연구재단의 중점연구과제에 대한 지원사업(KRF2007- 411-j04602)의 도
움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한국역사연구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최(2010년 7월 9
일)한 4월혁명 50주년 기념학술회의에서 이 논문을 심층적으로 토론해 주신 임대식 선생님과 논문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신 익명의 심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과 노동운동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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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al Formation theory and the Labour Movement in
1980's of Korea-Focus on Struggling and Organizational Line-
Kim, Young-su
The Social Formation theory was a theoretical weapon and a revolutional
theory for activists to change the capitalist system into the socialist system in
1980's. Many activists change a social formation theory into a various strategy
of democratic movements and labour movements. That was named so-called
National Liberty People Democratic Revolution(NLPDR), 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NDR), and People Democratic Revolution(PDR). The activists studied
various revolutional theories, and then participated in the labour movement.
They were activists who left school halfway for the revolutionary movement. So
the social formation theory and revolutional theories influenced the struggling
strategy and the organizational strategy of political factional movements under
the workplaces. But the social formation theory has disappeared from the
theory of labour movement and of democratic movement since 1990's.
Especially, after people experienced the direct election for a president, the
theory of revolutional movement was isolated by many activists and social
movement bloc. We must reinstate the social formation theory for revolutional
movement and decent political faction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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