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이야기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윤석산.한양대


1. 서 론
지금으로부터 147년 전 경주 근향의 작은 마을인 현곡면(見谷面)
가정리(柯亭里)에 살던 수운 최제우(1824~1864)에 의하여 동학
이 창도된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운은 오랜
구도의 생활 끝에 경신년(1860) 4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므로,
세상에 동학이라는 새로운 가르침을 내놓게 된다.
이때 수운이 겪었다는 ‘종교체험’은 한울님이라는 신을 만나고, 또
한울님과 대화를 하였으며,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
는다는, 일종의 신체험(神體驗)이며 신비체험이다. 이와 같은 수운의
종교체험은 동학 창도에 가장 구체적이고 또 직접적인 동인이 된다. 즉
동학의 창도는 수운의 종교체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동학,
오늘의 천도교는 창도의 원년을 다른 종교들과 같이 창시자의 탄생일에


*302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맞추지 않고, 수운이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한 경신년 4월 5일로 삼고
있다.
종교체험 이후 수운은 일 년 가까운 시간을 수련을 하며 지낸다.
즉 수련을 통해 자신이 받은 도를 궁구하고 또 체계를 세워나간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의 글인 「포덕문」, 「용담가」 등을
쓰기도 한다. 이때 쓰여진 「포덕문」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문으로
된 것으로, 훗날 ?동경대전?이라는 동학의 중요 경전에 포함이 되었
고, 「용담가」 등은 한글 가사로 된 것으로, 훗날 또 다른 동학의 경
전인 ?용담유사?가 된다.
이와 같이 수운은 자신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道)’를 보다 세
상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가르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당시의 문
화적 상황으로 보아 지식의 논리적인 전달에 보다 적절한 문자였던
한문으로 기록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대중에게 유용하게 펼칠
수 있는 글인 한글 가사로 노래지어 불렀다.
또한 수운의 가르침을 받고 훗날 동학의 2세 교주가 된 해월(최시
형, 1827~1898)은 이 도를 근거로 하여 많은 가르침의 설법을 편
다. 그런가 하면, 해월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뒷날 동학의 3세 교주가
된 의암(손병희, 1861~1922) 역시 많은 가르침의 설법을 펴게 된
다. 이 두 사람에 의하여 펼쳐진 설법은 천도교 시대에 들어와 『해
월신사 법설?, 또 ?의암성사 법설?로 지칭되며, 오늘 천도교의 중요
한 법설집이 된다.
따라서 동학사상이 지닌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시대를
달리해서 펼쳤던 이들 두 동학의 경전과 두 종의 법설이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됨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본 글은 이들 두 경전과 두 종
의 법설을 근거로 하여,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동학사상의
전개 양상을 찾아가고자 한다.
수운이 펼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그리고 해월의 ?법설?은 일컫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03


는바 동학 시대에 펼쳐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의암은 1905년 동학을
오늘의 천도교로 개명을 하면서, ‘동학’이라는 재래적 신앙을 ‘천도교’라
는 새로운 종교의 모습으로 체계화시켜 나간다. 따라서 수운과 해월이
동학시대에 펼쳤던 사상을 동학사상의 어제로 간주한다면, 새로운 종교
의 모습을 갖추고자 펼쳐나간 의암의 사상은 오늘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지 아래 수운과 해월이 펼친 사상을 어제로, 의암이 체계화하고
또 펼친 사상을 오늘로 상정하고 연구를 진행시켜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은 다만 시간상의 흐름일 뿐이지, 동학의 사상
이 어제에서 오늘로 발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운이 종교체험을 통
하여 깨달은, 혹은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道)’를 수운은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므로, ‘도의 학문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종
교체험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도’는 논리적이기보다는 직
관적인 것이고, 그러므로 매우 주관적이고 또 추상적이었을 것이 분명
하다. 그러므로 수운은 이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도라는 이름의 가르
침’을 세상에 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를 객관적으로 체계화시키
고 학문적으로 논리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가 하면, 스승인 수운이 밝히고 또 체계화시킨 ‘도’를 해월은 자
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또 생활 속에서 실천하
고자 노력을 한다. 그러므로 해월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도를
보다 실제의 생활 속에서 펼치고자 노력한다. 이와 같은 해월의 노력
은 결국 ‘도의 생활화’를 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후 해월로부터 도
통을 물려받은 의암은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따라 동학을 새로운 종교
의 모습으로 바꾸어 나간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교체제를 받아들이고
또 교리를 체계화하는 등 ‘도의 종교화’를 꾀하게 된다. 즉 수운, 해월,
의암 등에 의하여 무극대도(無極大道)라는 천도(天道)를 ‘동학’이라
는 학문으로 체계화하고, 이 도를 실생활 속에서 펴나갔고, 나아가 종
교적으로 체계화하므로, 오늘의 천도교라는 종교를 이룬 것이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04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2. 도의 학문화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운은 경신년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통해 한울님으로부터 도를 받은 이후 세상을 향해 자신의 가르침을
펴는 것을 유보하고, 거의 일 년 가까운 시간을 공부에만 열중하며
보낸다. 이 기간을 『동경대전? 중에 “幾至一歲 修而度之”, 곧 ‘거의
일년 간을 닦고 헤아렸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수련을 통해 마음을 닦고 [修]’,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치를 헤아리
며 [度]’ 일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수운은 종교
체험을 통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를 보다 분명하게 밝히고 또 체
계화하기 위하여 수련을 통해 보다 깊은 경지에 들어가 그 이치를 살
피고 헤아렸던 것이다.
특히 수운은 처음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은 이후, 과연 이
‘도’가 어떠한 것인가, 이가 과연 무엇인지를 몰라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처음 한울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한울님께 “서도(西
道)로서 세상의 사람들을 가르칠까요?”1)라고 묻기도 한다. 또한 처
음 도를 받고 나서, 과연 이 가르침이 어떠한 것인가 알 수 없어 당
황했던 심정을 ?용담유사?에 술회하기도 한다. 이때의 심정을 “문의
지심(問議之心) 있지마는 어디 가서 문의하며, 편언척자(片言隻字)
없는 법을 어디 가서 본(本)을 볼꼬.”2)라고 토로하고 있다.
이렇듯 수운은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통해 한울님이라는 신으로부터
받은 ‘도’가 과연 무엇인가? 심지어는 이 도가 정말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올바른 가르침인가를 알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그


1) ?동경대전?․「논학문」,‘曰余亦無功故 生汝世間 敎人此法 勿疑勿疑 曰
然則 西道以敎人乎’.
2) ?용담유사?․「교훈가」.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05


러므로 이와 같은 도의 실체를 궁구하기 위하여 수련을 지속하게 되
고, 일 년 가까운 시간을 보다 더 깊은 경지에 몰입하여, 살피고 또
그 이치를 헤아리게 되었던 것이다.
「수덕문(修德文)」을 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암시하는 부분들이 또한
있다.
처자를 거느리고 용담으로 돌아온 날은 기미년 10월이요,
운수를 타고 도를 받은 때는 경신년 4월이라. 이 또한 꿈같은
일이요 형상하기 어려운 말이로다. 주역괘(周易卦)의 대정수
(大定數)를 살펴보고, 삼대(三代) 시절의 경천(敬天)을 했던
그 이치를 자세히 읽어보니, 이에 오직 옛날 선비들이 천명
(天命)에 순종한 것을 알겠으며, 후학들이 잊어버린 것을 스
스로 탄식할 뿐이로다. 닦고 단련하니 자연한 이치 아님이 없
더라. 부자(夫子)의 도를 생각하면 한 이치로 된 것이요. 오
직 우리 도로 말하면 대체는 같으나 그 세세함에서는 다른 것
이니라. 의심을 버리면 사리의 떳떳한 것이요. 예와 지금을 살
피면 인사의 할 바니라.3)
경신년 4월 꿈과 같이 도를 받고, 참으로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상태 속에서 자신이 받은 도를 보다 분명하게 구명하기 위하여, 수운
은 이를 보다 깊이 있게 궁구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도를 학문적
으로 궁구하기 위하여 주역도 살펴보고, 또 하․은․주(夏殷周) 삼대
의 성현들이 하늘을 공경했던 이치도 살펴본다. 이렇듯 일 년 가까운
시간을 도를 헤아리고 살피는, 수이탁지(修而度之)의 노력을 한 결
과, 자신의 도가 다름 아닌 우주 자연의 법칙4)이며, 이 자연 법칙에


3) ?동경대전?․「수덕문」.
4) ?동경대전?․「논학문」,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06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의하여 다함이 없이 순환 반복하는, 우주만상이 하나의 생명 순환의
고리로 이어진 무왕불복(無往不復)의 이치5)에 의한 것임을 수운은
깨닫게 된다.
나아가 선천을 지켜온 공자의 도를 살펴보니, 이 역시 천도에 의한
하나의 이치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천도를 궁구하는 방
법, 즉 ‘학(學)’에 있어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체계
를 잡아나간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도와 공자의 도가 ‘대동이소이
(大同而小異)’하다고 말하고 있으며6), 나아가 기존의 유교도 불도
도 아니오,7) 또 서학도 아닌, 이들과는 다른 ‘동학’이라고 이름하게
된다.
이렇듯 수운은 본래 자신이 받은 ‘도(道)’와 이 도를 궁구하는 ‘학
(學)’을 나누어서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학과
는 어떻게 다른가를 묻는 자리에서도 “도는 비록 천도이나, 학은 곧
동학이다.”8) 라고 대답한다. 서학이 천명한 도도 역시 천도이지만,
서학은 서학의 방법으로써, 나는 나 스스로 체득한 동방의 학문적 방
법으로써 천도를 궁구하기 때문에9) ‘나의 학은 동학이다.’ 라고 대답
을 했던 것이다.
수운은 바로 이렇듯 자신의 도를 궁구하고 밝힐 학문적 바탕을 마


5) ?동경대전?․「논학문」, ‘轉至辛酉 四方賢士 進我而問曰 今天靈 降臨先
生 何爲其然也 曰受其無往不復之理’.
6) ?동경대전?․「논학문」, ‘覺來夫子之道則 一理之所定也 論其惟我之道則
大同而小異也’.
7) ?용담유사?․「교훈가」,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 했던가. 윤회같이
둘린 운수 내가 어찌 받았으며’.
8) ?동경대전?․「논학문」, ‘道雖天道 學則東學’.
9) 특히 수운은 이 대목에 이르러 ‘내가 동방에서 태어났고, 또 동방에서 도를
받았으니(生於東 受於東)’ 어찌 서학이라고 이름하겠느냐고 답한다. 이는
곧 동방에서 태어나고 동방에서 받았으니 동방의 학문적 방법으로 도를 궁
구한다는 의미와 통한다고 하겠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07


련하고, 이를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따라서 ‘동학이라는
이름의 부여’는 다름 아닌 수운이 경신년 4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통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그 첫
단계라고 할 수가 있다.
이어서 수운은 ‘시천주(侍天主)’를 자신의 핵심사상으로 세상에 천
명한다. 경신년 4월 한울님을 만나 대화를 한다는 신비체험을 통해
수운이 가장 먼저 받은 것은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라는 ‘오심
즉여심(吾心卽汝心)’10)의 심법(心法)이 된다. 일년 가까운 시간의
수련을 통해 수운은 바로 이 오심즉여심의 심법의 묘체를 깨닫고, 나
아가 이를 통해 한울님이라는 신이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
라, 자신의 마음에 모셔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내 안에 모
셔져 있다.’는 의미의 ‘시천주(侍天主)’를 중심사상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시천주는 ‘사람과 신과의 관계 지음’이다. 즉 선천의 가르침과 같이
‘신’이라는 궁극적 존재가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인 공간에 있으므로,
나와는 분리되고 그러므로 나를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더불
어 숨 쉬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을 밝힌 새로운, ‘나와 신과의 관계 지
음’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나아가 이러한 시천주에 의한 신은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참나’이며, 동시에 내가 태어난 나의 근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우주만유 모두 근원적으로 무궁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
므로, ‘나와 만유와 우주’는 궁극적으로 한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주공동체적 삶의 구체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천주는 곧 무궁한 존재인 한울님을 내 안에 모셨으므로,
궁극적으로 무궁한 우주와 더불어 ‘무궁한 나’11)가 될 수 있는, 그러


10) ?동경대전?․「논학문」,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曰吾心
卽汝心也.
11) ?龍潭遺詞?․「興比歌」, ‘무궁히 살펴내어 무궁히 알았으니 무궁한 이 울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08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한 ‘동학의 인간관’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또한 우주는 곧 모든 생명
체와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라는 ‘동학의
우주관’을 이루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이 우주의 근원적인 섭
리가 곧 신의 작용이며, 동시에 신이 현현된 면모라는 ‘동학의 신관’
을 확립하게 된다. 이와 같이 수운은 시천주라는 중심사상을 통하여
자신의 도를 펼칠 동학적인 ‘인간관’, ‘우주관’, ‘신관’ 등을 마련하므로
자신의 도를 체계화시켜나갔던 것이다.
아울러 수운은 이러한 시천주 사상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
로 평등하다는 만인평등주의를 암암리에 암시하기도 한다. 즉 당시
사회적으로 그 신분이 천한 사람이나 존귀한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
민, 천노(賤奴)를 막론하고, 모두 본원적으로 한울님이라는 무궁한
존재를 모시고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무궁한 존재’로서 평등
하다는 평등사상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천주 사상은
신분의 차별이 분명한 당시 봉건사회 속에서 보다 획기적으로 수운이
자신의 도를 대사회적인 면으로 펼칠 매우 강력한 기틀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수운의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빈천의 삶에서 위
기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으며, 잠재되어
있는 민중이 새롭게 눈을 뜨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12) 아울
러 당시의 혼란으로 점철되는 시대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부귀에 해당되는 집권층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빈천
한 민중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켜주기도 한다.
그러나 수운이 제시하는 ‘민중적 자각’은 한울님을 내 안에 모셨다
는 시천주에의 올바른 깨달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즉
수운이 「주문」에서 ‘시(侍)’에 대하여 스스로 해의한 바와 같이, ‘안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

12) 졸저, ?용담유사 연구?(모시는 사람들, 2006.) 163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09


과 밖으로 한울님 마음과 기운을 회복하므로, 한울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에’13) 비로소 이 민중적 자각이 가능한 것이 된다. 따라서
수운의 가르침에 의한 ‘민중적 자각’이란 단순히 체제 혁명을 기도하
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습관적인 삶을 새로운 질서에 의한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바꾸는, ‘삶의 개벽’을 의미하고 있다.
시천주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이룩해야 한다는, 수운의 당시
사회를 향한 가르침은 자신이 경신년 4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통해
바라보았던 우주적 비밀인 ‘시운(時運)’14)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세
계를 열어가고자 하는, ‘후천개벽사상’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즉 수운은 한울님과 만난다는 종교체험을 통해 우주적 비밀인 ‘시운’,
곧 ‘성운(盛運)과 쇠운(衰運)이 교체되는 시점’을 보게 된다. 그러므
로 이내 시운에 의하여 쇠운의 시대가 가고 이내 곧 성운의 시대가
올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은 새로운 시운이 이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未知時運), 수운의 말을 비웃고
헐뜯는다.15)
‘미지시운(未知時運)’, 곧 이내 시운에 의하여 새로운 세상인 후천
(後天)의 세상이 올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수군
거리고 또 비방을 하니, 참으로 그 안타까운 심정을 지나, ‘매우 두렵
다(甚可畏也)’라고 수운은 말한다.


13) 수운은 「논학문」 중 ‘주문의 시(侍)’를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
知不移’라고 해의하고 있다. 이를 ‘안과 밖으로 한울님 마음과 기운을 회복
하므로, 한울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이에 대
하여, 졸저,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모시는 사람들, 2004. 217-220쪽
참조).
14) 수운이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제기했던 ‘시운’, ‘천운’ 등을 신비적이고 주술
적인 요소로 보는 견해도 있다.(박명규, 「동학사상의 종교적 전승과 사회
운동」, ?한국의 종교와 사회변동?, 문학과 지성사, 1987. 58쪽.
15) ?동경대전?․「포덕문」, ‘惜哉 於今世人 未知時運 聞我斯言則 入則心非
出則巷議 不順道德 甚可畏也’.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10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그러므로 수운은 이 후천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상
의 사람들이 새로운 시운에 의하여 이내 성운의 시대가 올 것이니,
세상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정심수도(正心修道)에 임할 것을 촉구한
다.16) 즉 후천의 새로운 운이 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올바르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준비로 사람들 모두 정심수도에 임하여, 세상
사람 모두 ‘천지와 더불어 한울님의 덕에 부합할 수 있는 삶(與天地
合其德)’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수운의 생각이다. 즉 새로운
차원의 삶인 후천개벽이란 다름 아닌 세상의 사람들이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정[氣有正而心有定]하여,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
德)할 수 있는 군자의 덕을 회복하므로,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 성운
(盛運)의 세상17)이기 때문이다.
즉 수운은 자신의 도를 통해 ‘시천주’의 가르침을 펴고, 나아가 이
시천주의 가르침과 시운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의 삶인 후천개벽의
당위성을 세상에 천명한다. 또한 이와 같은 새로운 시운을 맞이하기
위한 마음을 닦는 정심수도, 이를 위해 수운은 자신의 도의 요체가
담긴 ‘주문(呪文)’을 짓게 된다.18) 이 ‘주문’은 곧 ‘도에 이르는 길이
요, 동시에 자신의 도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가장 뚜렷한 글이기도 하


16) 특히 수운은 ?용담유사?를 통해 교도와 일반에게 “正心修道 하여내어 春
三月 好時節에 또 다시 만나보자”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때의 춘삼월 호
시절은 새로운 차원의 삶인 후천개벽의 시대를 의미한다.
17) ?동경대전?․「논학문」, ‘君子之德 氣有正而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
人之德 氣不正而心有移故 與天地違其命 此非盛衰之理耶’.
18) ‘呪文’은 처음 「포덕문」에서는 한울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수운은 말한다.(受
我呪文 敎人爲我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그러나 「논학문」에서는 ‘呪
文’을 수운이 직접 지었다고 말한다.(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
作不忘之詞). 그러므로 혼선을 빗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수운이 결정적
인 종교체험을 통해 한울님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이를 일 년 가까이 修而
度之하며 다듬고, 또 그 의미를 궁구하여 다듬어 체계화시킨 것으로 풀이
가 될 수 있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11


다. “차제도법(次第道法)이 오직 이 주문 스물한 자뿐”19)이라고 단
언하듯 말하고 있음을 보아 이는 더욱 분명하다.
또한 수운은 바른 마음의 회복과 그 실천을 위한 수도법으로 ‘수심
정기(守心正氣)의 수도법’을 내놓기도 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앞 선 성인의 가르침이지만, 수심정기는 내가 오직 다시 정한 것이
다.”20)라고 말하므로, 본래 하늘이 사람에게 품부한 덕목인 인의예지
를 우리의 삶 속에서 올바르게 드러내고 또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심
정기에 의한 올바른 수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수운의 지론이다. 즉
본래 한울님으로부터 품부받은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고, 이 회복한
마음 지키는 것이 ‘수심(守心)’이라면, 이 회복한 한울님 마음을 올바
르게 실천하는 것이 곧 ‘정기(正氣)’가 된다. 수운은 ‘시천주’, ‘후천
개벽’, ‘주문’ 등과 함께 도에 이르는 길인 수도법인 ‘수심정기’를 정하
여 보다 자신의 가르침을 체계화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수운은 경신년 종교체험을 통해 한울님으로부터 ‘도’를
받은 이후, 일 년 가까운 시간을 ‘수이탁지(修而度之)’하며, 자신의
도를 세상에 펴기 위하여 이를 보다 체계화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천주’를 중심사상으로 삼고, 시천주의 삶인 ‘후천개벽’을 이야기하
고, 이어서 이에 이르는 ‘주문’을 지으므로, 자신의 가르침을 체계화
한다. 이어서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고 실천하는 수도법인 ‘수심정기’
의 법을 정해 교도와 일반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폈던 것이다.
수운의 이와 같은 ‘도의 학문화’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받은 도를
보다 객관적으로 체계화하므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쉽게
자신의 가르침을 펴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선천이라는 낡고 타락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삶인 후천을 열어가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19) ?동경대전?․「논학문」,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20) ?동경대전?․「수덕문」, ‘仁義禮智 先聖之所敎 守心正氣 惟我之更定’.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12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3. 도의 생활화
수운으로부터 도를 물려받은 해월은 관의 추적을 피해 36년간이라
는 장구한 시간을, 산간 오지 마을 50여 곳을 전전하며 살아간 인물
이다. 특히 조선조 정부는 혹세무민의 죄명으로 수운을 체포하여 대
구(大邱) 장대에서 처형을 한 이후, 남은 동학의 주요 지도자를 색
출, 검거하기 위한 체포령을 내린다. 그러므로 해월은 이와 같은 관
의 지목과 추적을 피해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지에 펼쳐져 있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오지를 숨어 다니며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해월은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었다. 관의 추적 속에서도 한
시도 잊지 않고 수련에 임하였고, 또 쫓기는 생활 속에서도 흩어진 동
학교도들을 모아들이고 조직하여, 마침내 1893년 보은취회(報恩聚
會)에서는 3만여 명이라는 교도가 모여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
을 벌릴 정도로 그 교세를 넓히고, 또 교단의 조직을 공고히 했다.
이 당시 해월은 실상 학식도, 또 가진 것도 없으며, 신분도 낮은,
빈천(貧賤)의 삶을 사는 한 중년의 사내일 뿐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교도들이 관의 추적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해월을 따랐던 것은
다름 아닌, 해월이 수운으로부터 ‘도’를 물려받은 사람이었으며, 또한
스승인 수운으로부터 받은 도를 근거로 세상을 향해, 세상을 구할 새로
운 가르침을 폈던 실질적인 동학의 후계자이며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해월이 산간 오지를 숨어 다니며 교도들에게 펼친 가르침
은 바로 해월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하고 또 생생하게 체험한 사실들
에 의한 것들이 된다. 그러므로 일상 속에서 매일 같이 먹는 ‘밥’21)에
서부터,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22), 그리고 숲속에서 우는 ‘새소


21) ?해월신사 법설?․「천지부모」, ‘天依人 人依食 萬事知 食一碗’.
22) ?해월신사 법설?․「천지부모」, ‘何獨人衣人食 日亦衣衣 月亦食食’.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13


리’23)까지,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일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도를
펴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가정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며느리에서 어린아이까지 모두 도를 설명하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해월은, 사람이 하루하루 생활 속에 행하는 일 그
자체가 바로 한울님(事事天)이요, 사람이 생활 속에서 매일같이 만
나고 또 사용하는 사물이 곧 한울님(物物天)이라는, 도를 일상의 차
원에서 해석하고, 또 설명하고 있다.
또한 도를 독실하게 닦으라는 수련을 권하는 자리에서도, ‘도에 대
한 간절한 생각을 배 주릴 때에 밥 생각하듯이, 추울 때 옷 생각하듯
이, 목마를 때에 물 생각하듯이 하라.’24)고 설파하므로, 자신이 관의
추적을 피해 산간 오지를 헤맬 때 뼈저리게 체험했던 ‘배고픔과 추위
와 목마름’이라는 인간적인 고통을 그대로 도 닦음에 원용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일상과는 별개인 양, 현실적 삶을 초월하는
자리에만 자리하고 있다고 인식되기 쉬운 ‘도’를, 보다 일상의 삶 가
까이 끌어드리고 있다. 즉 ‘도는 고원난행(高遠難行)한 곳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일용행사(日用行事) 모두가 도 아님이 없다.’25)는, 해월
의 생각은 궁극적으로 ‘도의 생활화’를 꾀하는 근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해월의 도에 관한 생각은 부부의 문제, 가정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인의 문제에서 비롯되어 조상에 대한 제사의 문제라는
가정사(家庭事), 나아가 사람이 살아가며 행해야할 문제인 실천윤리
의 문제, 우리가 매일같이 먹고 산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에까지,
매우 다양하고 또 폭넓게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해월은 먼저 가정사의 문제로 「내수도문(內修道文)」, 「내칙(內則)」,


23) ?해월신사 법설?․「영부 주문」, ‘天地萬物皆莫非侍天主也 彼鳥聲 亦是
侍天主之聲也’.
24) ?해월신사 법설?․「독공」, ‘道之一念 如飢思食 如寒思衣 如渴思水’.
25) ?해월신사 법설?․「기타」.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14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부인수도(婦人修道)」, 「부화부순(夫和婦順)」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내수도문」은 내수도(內修道)인 부인이 가정살림을 하면서 지켜야 할
일곱 조목을 해월이 직접 적은 글이다. 첫째 조목에 명기한 “부모님께
효도하고, 남편을 극진히 공경하오며, 내 자식과 며느리를 극진히 사
랑하오며.”는 봉건사회에서의 유교적 덕목을 그대로 재현한 것에 불과
하다. 그러나 “하인을 내 자식과 같이 여기며, 육축이라도 다 아끼며,
나무라도 생순을 꺾지 말며.”에 이르면, 동학의 시천주에 의한 사사천,
물물천의 사상이 깃든 새로운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둘째 조목에 명기한 바와 같이, “가래침을 뱉지 말며, 코를 멀
리 풀지 말며, 침과 코가 땅에 떨어지거든 닦아 없이 하고.” 등은 선
구자적인 위생관념에 의한 것 정도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침을 멀
리 뱉고, 코를 멀리 풀고, 물을 멀리 뿌리면 곧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니 부디 그리 아시고 조심하옵소서.”에 이르게 되면, 또 다
른 차원에서의 부인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 된다. 이는 곧 “땅을 어머
니의 살”26)이라는 가르침을 편 해월의 경물(敬物) 사상이 그대로 가
정생활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내칙」은 포태한 부인이 지켜야 할 일들을 적은 글이 된다.
즉 “낙지초(落地初)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적자(赤子)의 마음과 포태
할 때에 한울님의 이치기운(理致氣運)이 부모님 육신을 받아 이루어
진 유형의 생명”27)인, 어머니 태중(胎中)의 생명이 한울님 마음과
기운을 잃지 않고 올바른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포
태한 부인은 나쁜 기운이 있는 음식도 먹지 말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바른 마음을 가지라는 가르침이 이에는 담겨져 있다.
또한 「부인수도」는 제자들이 해월에게 ‘어떤 연유에서 부인들에게


26) ?해월신사 법설?․「성․경․신」, ‘惜地 如母之肌膚’.
27) ?해월신사 법설?․「영부 주문」, ‘內有神靈者 落地初 赤子之心 外有氣化
者 胞胎時 理氣應質而成體也’.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15


수도하기를 장려하는가?’를 묻는 물음에 답한 글로서, 부인은 비단
가정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모두가 어머니의 포태 중에 나고 또
성장한 것과 같이”28), 부인, 곧 여성은 바로 우주의 태어나고 자라나
는 모든 일을 주관하는 주인임을 암시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가장 보편적인 일상사의 하나인 ‘부부(夫婦) 사이의 문
제’에서도 해월은 “도를 통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내외가 화순(和
順)하느냐, 화순하지 못하느냐.”29)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남녀가 화순하지 못하면 천지가 막히고, 남녀가 화순하면 천지가 크게
화하니, “부부가 곧 천지”30)라고 설파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해월은 「내수도문」, 「내칙」, 「부인수도」, 「부화부순」 등의
법설을 통해 부인과 가정의 일들, 또 포태한 부인의 몸가짐이나 마음
가짐 등의 행동거지에서 부부 사이의 일에까지, 모두를 자신의 도에
입각하여, 그 가르침을 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부인
이 주관하는 가정사, 즉 아이를 낳고 키우며, 또 부모를 봉양하는 문
제, 또는 부부 사이의 화순(和順) 등이 단순한 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성하고 거대한 차원의 우주적인 일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해월은 도라는 문제를 하향적으로 하나
의 단순한 가정사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도
를 실천하므로, 우리의 속화된 일상을 성화(聖化)된 삶으로 이끌고
자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이와 같이 해월은 ‘일상의 성화’를 통해
삶을 성화시키고, 그러므로 보다 경건한, 나아가 차원을 달리하는 삶
을 이 지상에 이루므로 새로운 후천의 삶을 열려고 했던 것이다.


28) ?해월신사 법설?․「婦人道通」, ‘活人者 亦多矣 此人皆是 母之胞胎中
生長者如也’.
29) ?해월신사 법설」․「부화부순」, ‘道之通不通 都是在 內外和不和’.
30) ?해월신사 법설?․「부화부순」, ‘夫婦卽天地’.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16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또한 해월이 지닌 도에의 실천은 선천 오만 년을 견지시켜왔던 ‘제
례(祭禮)’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제례는 인간사회에 있
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라는 매우 중요한 통과
의례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제례의 의식에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
는 시대적 철학이 담겨져 있다. 해월은 이와 같은 제례 의식에 제물
을 폐하고 ‘청수일기(淸水一器)’만을 설하라는 매우 파격적인 제례법
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곧 제례에 있어 비록 청수 한 그릇이라도
그 ‘정성’이 중요하다는, 매우 실질적인 면을 강조한 제례법이다.
그런가 하면, 해월은 선천 시대의 제례법인 ‘향벽설위(向壁設位)’
를 과감하게 ‘향아설위(向我設位)’로 할 것을 제안한다. 조상의 영혼
이, 또는 한울님이 나와 분리된 ‘저쪽의 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사람․민중 안에, 노동주체․생명주체인 이쪽에, 내 속에 살아 있
음31)을 웅변한 것이 바로 이 ‘향아설위’이다. 따라서 해월은 이와 같이
내 안에, 우리 안에 살아 있는 한울님을 우리의 삶 속에 부활시키므
로 해서 실질적 도의 생활화를 실천했던 것이다.
해월의 ‘도의 생활화’는 가정사의 문제, 또 제례의 문제에서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고, 또 사물을 접해야 하
는가 하는 문제인 「대인접물」, 나아가 생활 속에서 경계하고 행하지
말아야 할 생활윤리인 「십무천(十毋天)」에까지 확대 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대인접물」은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어떻게 접해야 하는가의, 생활
속에서 행해야 할 매우 실천적인 면이 강조된 설법이다. 특히 해월의
이 설법 안에는 오늘 천도교의 실천윤리가 되는 ‘사인여천(事人如
天)’의 가르침을 담고 있어 주목이 된다. 그런가 하면, ‘만물이 시천
주 아님이 없다.(萬物 莫非侍天主)’는 ‘접물여천(接物如天)’32)의


31) 김지하, ?밥?, 분도출판사, 1984. 58쪽.
32) 白仁玉, 「人乃天解」, ?천도교회월보?(제2권 제6호, 1911).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17


가르침까지 담고 있어 자연스럽게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
物)의 삼경사상(三敬思想)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해월은 자신의 도를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일상으로, 또
사람과 사물 사이라는, 보다 일상적 삶의 문제로까지 끌어오게 된다.
따라서 해월은 우리가 사물과 행하는 ‘일상의 일’ 역시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잘 알려진 일화에 의하면, 해월이 관군에 쫓
기면서도 한 시도 일감을 손에서 놓지를 않자, 제자들이 왜 그렇듯
일을 하시느냐고 물으니, “언제 한울님이 잠시라도 쉬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해월은 바로 이렇듯 일상에서 행해지는
‘일’에 신성성(神聖性)을 부여하므로, 사람들에게 ‘일의 중요성’을 일
깨워주고 있다.
그러므로 해월은 스스로 자신이 행했던 화전(火田)을 일구고 또 농
사를 짓는다는 노동 역시 궁극적인 면에서 도를 행하는 것이며, 새끼를
꼬는 일도 곧 신성한 도를 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해월의 생각은 우리의 일반적인 귀(貴)와 천(賤), 그리고 속
(俗)과 성(聖)의 개념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고 또 바꾸어 놓
은 것으로,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오던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사
상의 일대 전환이기도 한 것이다. 해월은 이와 같이 생각의 대전환을
통하여, 근로를 천시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근로라는 ‘일의 중요성’
을 일깨워 주게 되고, 모든 일상사에까지 도를 실현시키므로 인간의
일상적인 근로(勤勞)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성스러운 것인가
를 깨닫게 하여, 근대시민사회를 열어갈 수 있는 그 기초를 마련하기
도 한다.33)
그러나 이와 같은 해월의 가르침은 도의 차원을 다만 일상으로 끌
어내린 것이 아니라, 선천 오만 년 동안 가로막고 있던, ‘도와 사물


33) 申一澈, 崔海月의 汎天主義 世界觀(『韓國思想』24집, 한국사상연구회,
1998) 40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18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사이의 벽’34), 나아가 ‘도와 생활 사이의 벽’을 과감하게 허물므로 해
서, 새로운 도에의 생각을 열어놓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해월은
일상적인 삶을 행함이 곧 내가 모신 한울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십무천(十毋天)」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자신을 속이므로 궁극적으로 한울님을 속이는 것을 경계하는, 무기
천(毋欺天)’, ‘타인을 거만하게 대하므로 궁극적으로는 한울님을 거
만하게 대하게 됨을 경계하는, 무만천(毋慢天)’, ‘내 몸을 상하게 하
므로 궁극적으로는 한울님을 상하게 됨을 경계하는, 무상천(毋傷
天)’,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므로 궁극적으로는 한울님을 어지럽게
함을 경계하는, 무난천(毋亂天)’, ‘나의 삶을 굴욕스럽게 하므로, 궁
극적으로 한울님을 굴욕스럽게 만듦을 경계하는, 무굴천(毋屈天)’ 등
등35)은 궁극적으로 나의 삶이 한울님과 일분의 간극도 없다는 가르
침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삶이 한울님과 일분의 간극이 없으므로, 결
국 한울님의 도 역시 나의 삶과 일분의 간격도 없이 우리의 삶 속에
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해월이 지니고 있는 ‘도와 생활과의
관계’라고 하겠다.
해월은 스승인 수운의 참형 이후 36년간이라는 긴 시간을 산간 오
지를 전전하며, 이 산간 오지에서 수많은 사람과 그 사람들의 삶, 그
리고 자연과 자연의 오묘함을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은 실질적인 만남
을 통해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받은 시천주의 가르침을 보다 일상생활
의 면에서 적용하고 해석하므로, ‘도의 생활화’를 이룩하게 된다. 그
러므로 가장 가까이 민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이들에게 ‘삶의 신
성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생활의 성화(聖化)’를 이루어야 함을 설파


34) 오문환, 「해월의 사물 이해」, ?동학의 정치철학?(모시는 사람들, 2003) 82쪽.
35) ?해월신사 법설?․「십무천」, ‘1. 毋欺天, 2. 毋慢天, 3. 毋傷天, 4. 毋
亂天, 5. 毋夭天, 6. 毋汚天, 7. 毋餒天, 8. 毋壞天, 9. 毋厭天, 10.
毋屈天’.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19


하게 된다.
해월의 이와 같은 ‘도의 생활화’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가장 일상적
인 삶, 일상의 생활이 새로운 질서로 바꾸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새
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는 신념에 의한 것이다. 즉 도의 생활화를
통해 삶의 신성성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생활의 성화를 이룩함으로
써 후천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해월은 굳게
믿고 또 실천해 나갔던 것이다.


4. 도의 종교화
의암은 그 성격이 호방하여, 젊은 시절 매우 호탕한 생활을 한 사
람이다. 그러나 동학이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새로운 세상인 지상천
국을 건설하는 커다란 목적을 지닌 도라는 말을 듣고는, 동학에 입도
를 하게 된다.
동학에 입도를 한 이후 의암은 지금까지의 생활을 일시에 청산하고,
전도인(傳道人)으로부터 받은 주문 스물한 자를 매일 삼만 독(讀)씩
읽고 외우며, 지극한 수련으로 일관된 생활을 3년간이나 지속해 나간
다. 이후 의암은 스승인 해월을 모시고 공주 가섭사(伽葉寺), 익산
사자암(獅子庵), 그리고 풍천 용문사 등에 들어가 독공(篤工) 수련
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의암의 지극한 종교적인 수행은 훗날 그가
그 많은 업적을 이루게 하였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동학혁명 당시에 의암은 동학군의 통령(統領)으로 진두지휘를 하며
활약을 하기도 한다. 이후 해월을 모시고 관의 추적을 피해 원주(原州),
여주(驪州) 등지를 전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위난의 시대에 의암은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20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해월로부터 도통(道統)을 전수받고 천도교의 3세 교주가 된다.
해월이 조선조 정부에 체포되어 처형을 당한 이후, 더 더욱 어려워
진 교단을 의암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재정비하는 한편, 당시 새로운
기운으로 들어오는 근대에 대한 열망과 함께 교단의 면모를 혁신하고
자 노력한다. 특히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의암은 문명개화를 통한 근
대화와 자강(自强)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진보회(進步會)라는 민회를
결성하여, 정치 체제의 개혁 세력으로서의 활동을 기도하기도 한
다.36) 그러나 일제의 획책과 함께 이용구 등의 배반으로 친일 세력인
일진회(一進會)와 통합을 추진하는 등, 그 본질이 퇴색되게 된다. 그
러므로 의암은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고, 과감히 이들 친일 세력
을 모두 축출하는 결단을 내리므로 교단을 일신하는 계기로 삼는다.
동학을 천도교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몇 가지 면에서 중
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이전까지 탄압을 받아야 했
던 동학이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천도교라는 종교로 합법화하므로,
정당하고 자유롭게 신앙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37) 그러나
이와 같은 외적인 사실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동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천도’를 궁구하고 또 신앙하던 ‘토속적인 신앙집단’이 매우 근대
적인 교단, 곧 ‘천도교단’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의암은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므로, 수운에서 해
월로 전승되던 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집단을 근대적 종교의 모습으로


36) 당시 진보회의 강령은 ‘황실 존중으로 독립을 견고히 할 것,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것. 정부를 개선할 것. 군정과 재정을 정리할 것.’(?천도교
회사 초고?․「인통」) 등을 강령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보아 의
암은 進步會를 통해 정치 개혁, 사회 개혁 등을 꾀하였다고 보겠다.
37) 동학이 천도교라는 종교로 大告天下한 이후, 그 전까지는 조선조 조정으
로부터 左道, 賊黨의 수괴로 지목받아, 變姓名하고 일본에 머물던 의암이
1906년 1월 아무런 제재 없이 4만여 명의 천도교인들의 열렬한 환영 속
에서 釜山으로 귀국을 했고 또 서울에서 8만 여명으로부터 還國歡迎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실감나게 하는 사실 중의 하나이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21


바꿔나가게 된 것이다. 즉 ‘도의 종교화’를 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러므로 서구적 근대종교의 모습을 본 따서, ‘시일(侍日)’이라고 명명
을 한 매 일요일마다에는 종교의식을 위한 집회를 정기적으로 갖는
다. 그런가 하면, 근대식 건물로 교당 신축을 계획하고, 대교구 및 교
구, 전교실 등을 두어 중앙집권적인 교단 조직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외양은 모두 서구 종교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이
된다. 그러나 동학시대부터 시행해 오던 ‘주문(呪文)’, ‘청수(淸水)’,
‘기도(祈禱)’38) 등의 종교적 수행 및 의식은 그대로 살려 지속시키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특히 ‘성미(誠米)’의 제도를 두어 서구 기독교
의 십일조나 연보와 같이 교단의 재정을 담당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 내적으로는, 집에서 부인네가 조석으로 밥을 지을 때, 가
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한 수저씩 더 뜬 쌀을 한
달 동안 모아 교회에 받치는 것으로, 이는 정성스럽게 길 떠난 아들
을 위해 조석(朝夕) 뜨던 우리의 오랜 민간적 신앙을 그대로 이은 것
이 된다.
또한 그 내적인 조직에 있어서도 동학시대부터 시행되어 온 ‘연원제
(淵源制)’를 그대로 유지하므로 이원적인 조직체를 이룩한다. 그러므
로 그 외양에 있어서는 속지제(屬地制)인 교구제를 표방하고 있지
만, 그 내부적으로는 동학시대부터 내려오던 속인제(屬人制)인 연원
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의암이 동학을 천
도교로 개명하므로 도의 종교화를 꾀하면서, 그 외양으로는 서구의
제도와 체제 등을 답습하고 또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내적으로는 재
래적인 신앙인 동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38) 천도교단은 개인 신앙을 위한 五款을 정하게 되는데, 이가 ‘呪文, 淸水,
祈禱, 侍日, 誠米’이다. 이 중 ‘呪文, 淸水, 祈禱’는 동학시대부터 전해
오던 것이고, ‘侍日’은 새로이 서구적 종교제도를 본 따서 제정한 것이 된
다. 그러나 ‘誠米’는 서구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이 안팎으로 담겨진 것이
된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22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이후 의암은 ‘도의 종교화’를 위하여 교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
게 된다. 즉 한편으로는 체제를 확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
대에 맞는, 나아가 그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교리 확립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는 곧 제도와 체제 형성이라는 종교적 외형에 못
지않는, 교리, 수행 등의 개발과 확립이라는 종교적 내면을 공고히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천도교로 대고천하(大告天下)를 한 다음 해인, 1906년에 들어 교리
를 해설한 ?천도교전(天道敎典)?, ?천도교지(天道敎志)?, ?교우자성
(交友自省)?, ?천도태원경(天道太元經)? 등을 차례로 발간한다. 이어
1907년에는 천도교의 중요한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이를 주
해 형식으로 쓴 ?동경연의(東經演義)?를 간행하여 수운, 해월 이후 목
판(木版)과 필사(筆寫)로 전해오던 경전을 활자화(活字化)하여 교인

들에게 보급한다. 또한 교리를 보다 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성훈연의(聖
訓演義)?, ?삼수오지(三壽要旨)?, ?대종정의(大宗正義)?, ?관감록(觀感
錄)?, ?천도교문(天道敎門)?, ?현기문답(玄機問答)?, ?천약종정(天約宗
正)? 등을 발간한다. 1912년에는 ?도경(道經)?, ?무체법경(无體法經)?,
?후경(後經)? 등을 발간하기도 한다.39)


이들 교리서들은 수운․해월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여, 이를 신앙
의 측면, 또는 철학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또 의미를 재해석하고 부연
한 교리서들이 된다. 특히 1907년 발간된 ?대종정의(大宗正義)?는
오늘 천도교의 종지(宗旨)가 되는 ‘인내천(人乃天)’이라는 용어가 처
음으로 보이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40) 인내천은 수운의 시천주, 해
월의 심즉천(心卽天), 인시천(人是天)을 계승하여, 동학을 근대적


39) 이에 대한 자료는 최기영․박맹수 편 ?韓末 天道敎 資料集?, (국학자료원,
1997)을 참고한 것임.
40) ?大宗正義?, ‘大神師는 吾敎의 元祖라. 其思想이 博으로 從하여 約히
倫理的 要點에 臻하니 其要旨는 人乃天이라. 人乃天으로 敎의 客體를
成하며 人乃天으로 認하는 心이 其主體의 位를 占하야……’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23


인 종교로 탈바꿈하면서 내세운 대표적인 표어이며,41) 천도교의 종
지가 되는 용어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운은 ‘한울님을 모셨다’는 시천주(侍天
主)로 가르침의 요체를 삼았다. 이후 해월은 인시천(人是天), 또는
인즉천(人則天)으로 해석을 하였고, 의암 때에 이르러 ‘사람이 한울
님을 모시고 있으니, 이에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인내천’을 내놓게 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의미에서 인내천은 갑자기 등장한 용어가 아니
며, 더더구나 여타의 많은 연구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천주
(天主)’에서 ‘주(主)’를 배제하므로, 한울님의 의지적인 성격을 제거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42)
‘인내천’은 수운의 ‘시천주’를 바탕으로 하고, 해월의 ‘인시천’을 이
어서, 이를 보다 구체적이고 또 적극적으로 나타낸 용어라고 하겠다.
즉 수운의 ‘시천주’에 의하여 ‘사람이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이 바
로 한울님(人是天)’이며, 또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인내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내천(人乃天)은 다만 ‘사람이 한울
님’이 아니라, ‘사람이 이에〔乃〕한울님’이라는, 유한적인 사람이 내
안에 모신 무궁한 한울님을 깨달으므로, 비로소 이룩될 될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한다.
의암이 이와 같은 인내천을 가장 핵심적인 교의로 채택한 것은 비
록 새로 천명한 천도교가 그 외양에 있어서는 서구적 종교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 내면으로는 당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서구의
기독교가 지닌 타력적(他力的) 신앙을 배제하고, 동학 본래의 자력


41) 김용휘, 「侍天主 思想의 變遷을 통해 본 東學 연구」(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12) 113-115쪽.
42) 이에 관해서는, 졸고 「교단사적 입장에서 본 천도교 100년」,
?동학학보? 제10권 1호(동학학회, 2006. 6) 293-294쪽에서
상론하고 있음.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24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적(自力的)인 신앙을 강조하기 위함43)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의암은 인내천에 이르는 수도법으로 ‘이신환성
(以身換性)’을 강조하게 된다. “사람의 일시적인 객체인 신(身)을
사람의 영원한 주체인 성(性)”44)으로 바꾸므로, 스승인 대신사(수
운)와 같은 삶을 이룩하기를 강조하고 있다.45) 곧 ‘육신 관념을 성령
으로 바꾼다.’는 ‘이신환성’은 자력적 신앙에 기초한 수도법으로, ‘사
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인내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성심수련을
강조한 수도법이기도 하다.
또한 의암은 ?무체법경(無體法經)?을 통해 인간을 성(性), 심
(心), 신(身)의 삼단(三端)으로 설명하므로, 수련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다. 특히 성과 심과 신의 관계에서 “성품이 있고라야 몸이 있
고, 몸이 있고라야 마음이 있다.”46)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몸이
없으면 성품이 어디에 의지해서 있고 없는 것을 말하며, 마음이 없으
면 성품을 보려는 생각이 어디에서 생길 것인가. 무릇 마음은 몸에
속한 것이니라. 마음은 바로 성품으로써 몸으로 나타날 때 생기어 형
상이 없이 성품과 몸 둘 사이에 있어 만리만사를 소개하는 요긴한 중
추가 된다.”47)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암의 성, 심, 신 삼단에 관한 논리적 전개는 궁극적으로


43) 김용휘, 위의 논문, 122쪽.
44) ?의암성사 법설?․「이신환성설 1」, ‘性은 卽人의 永年主體요 身은 卽人의
一時客體니라.’
45) ?의암성사 법설?․「이신환성설 2」, ‘사람은 누구나 各自 本來의 性品을
깨달으면 血覺性의 善惡强柔에 있어서 千萬年前人이나 千萬年後人이나
現代人이 同一한 것을 知할지니 此를 覺한 者 大神師요 此를 不覺한 者
凡人이니라.
46) ?의암성사 법설?․「성심신 삼단」, ‘有性有身 有身有心’.
47) ?의암성사 법설?․「성심신 삼단」, ‘無身 性依何而論有無 無心 見性之念
起於何處 夫心 身之屬也 心是生於 以性見身之時 無形立於 性身兩間
而 爲紹介萬里萬事之要樞’.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25


천도교가 지향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란 성, 심, 신 중 어느 하나
라도 결여되면 결코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된
다. 이는 즉 의암이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을 하면서, 그 외형적으로
는 서구의 근대적 종교의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그 내면적으로는 동
학이 처음부터 천명하던, 일컫는 바 유불선(儒佛仙)의 모든 진리를
아우르는 가르침48)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따라서 천도교가 지향하
는 유불선 모두를 아우르는 무극대도를 어느 한 부분이 아닌, 통전적
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공부, 성품공부, 나아가 몸공부를 올바르
게 해야 한다는, 그러한 수도법을 ?무체법경?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수도법에 의하여 주문 수련을 지극히 하면, ‘나’라
는 유형과 ‘한울님’이라는 무형이 어떠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또
마음과 성품과 사물이 어떠한 관계를 이루고, 그러므로 해서 궁극적
인 도의 상태에 어떻게 이르는가 하는, 그 단계를 의암은 「십삼관법
(十三觀法)」49)을 통해 매우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십삼관법」은 ‘주문을 생각하고 한울님의 감화를 보는 것(念呪觀
感化觀)’으로 그 첫 단계를 삼는다. 주문을 열심히 읽고 감화를 받게
되면, 두 번째 단계인 ‘나는 없다고 보고, 한울님만 있다고 보는(我
無觀 天有觀)’, 유형천(有形天)으로 들어간다. 이 단계가 지나면 이
어서 ‘나는 있고 한울님은 없다고 보는(我有觀 天無觀)’, 무형천(無
形天)으로 들어간다. 이어서 ‘성품은 없고 마음만 있다고 보는(性無
觀 心有觀)’, 마음공부에 들어가게 되고, 그 다음 단계로 ‘마음은 없
고 성품만 있다고 보는(心無觀 性有觀)’, 성품공부로 들어가게 된
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지에서 ‘성품도 있고, 마음도 있다고 보는(性
有觀 心有觀)’, 새마음, 새성품 공부의 단계로 들어가게 되고, 이에


48) ?도원기서?, ‘此道 以儒佛仙三道兼出也’.
49) ?의암성사 법설?․「십삼관법」.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26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이어서 ‘나를 먼저 보고 한울님을 뒤에 보는(我先觀 天後觀)’, 비로소
나의 본연이 곧 한울님이라는, 한울님 모셨음을 자각하는 단계에 이르
게 된다. 그러므로 이어서 ‘나도 있고 한울님도 있다고 보는(我有觀
天有觀)’, 자천자각(自天自覺)의 단계에 이른다. 이어 ‘나도 있고 사
물도 있다고 보는(我有觀 物有觀)’, 사사천(事事天) 물물천(物物
天)의 단계로 들어간다. 이 단계에 이어 ‘자유를 보고 자용을 보는(自
由觀 自用觀)’, 나와 사물 등, 모든 구애(拘碍)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이 자유자재의 상태에 이르는, 자유심(自由心) 단계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중생을 보고 복록을 보는(衆生觀 福祿觀)’ 단계, 이어서
‘세계를 보고 극락을 보는(極樂觀 世界觀)’ 단계인, 우주의 근원과 만
유를 체득하는 경지인 지어지성(至於至聖)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도법과 수련의 단계는 궁극적으로 자력적 종교에서 가
장 중요시되는, 도를 깨닫고 또 도에 이르기 위한 종교적 수행의 제
시이기도 하다. 즉 의암이 이러한 수도법을 마련하고 자력적 종교로
서 길을 택한 것은, 다만 시대적 요청에 의해 단순히 근대적 종교의
형태인 천도교로서 개명을 하므로, ‘도의 종교화’를 꾀했던 것이 아니
라는 면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스승인
수운과 해월이 꿈꾸던 후천의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도의 종
교화’를 꾀하였고, 또 이를 이룩하고자 노력했던 한 근거이기도 하다.
의암은 비록 그 외형적으로는 당시 처해진 시대적 상황과 또 요청
에 의하여 서양의 근대적인 종교의 제도 등을 받아들여 ‘종교화’를 꾀
하였지만, 그 내적으로는 수운과 해월에 의하여 견지되어온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서 ‘인내천’의 종지(宗旨)를 세우고, 이 종지에 의
한 수도법 등을 마련하므로, 자력적 종교로서의 천도교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적 수련과 수도를 통해 마음공부, 성품
공부, 몸공부를 하므로, 위난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삶인
후천을 열어가고자, ‘도의 종교화’를 펼쳐나갔던 것이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27


5. 결 론
동학․천도교는 이제 140여년뿐이 되지 않은, 그리 길지 않은 역
사를 지니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길지 않은 역사를 지
니고 있음에도, 근대 100년이라는 격변의 시대와 함께 많은 역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학은
때로는 관의 지목으로 ‘금지의 가르침’이 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일제
의 탄압으로 인하여 고난과 아픔의 시간을 견디는 시간도 있었다.
동학의 교조 수운은 혼돈과 좌절의 시대인 조선조 말기에, 그 시대
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질서를 이룩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 구도의
생활을 통해, 마침내 경신년 4월 한울님이라는 신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는다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종교체험 이후 수운은 자신
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를 보다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세상에 펴기
위하여, 거의 일년 가까이 수이탁지(修而度之)의 시간을 보낸다.
수운의 바로 이와 같은 시간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한울님이라는
신으로부터 받은 도를 보다 체계화해 나가던 기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도라는 매우 직관적이고 또 추상적인 가르침을 객관화하고 또 체
계화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본 글에서는 이와 같은 수운의 노력을
‘도의 학문화’라고 명명하였다. 즉 수운은 분명하게 ‘도’와 ‘학’을 구분
하였고, 그러므로 직관에 의한 주관적이고 또 추상적인 도를 보다 객
관적이고 또 학문적인 체계를 마련하고자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러
므로 수운은 자신이 펼치는 도와 학에 관하여, ‘도는 천도’이지만, ‘학
은 동학’이라고 천명하기도 한다.
수운은 자신이 펼치는 도의 체계화를 위하여 먼저 ‘학(學)’의 이름
을 ‘동학’이라고 명명한다. 이어서 ‘시천주’를 중심사상으로 삼고, 이
를 근거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이루고자 하는 ‘후천개벽사상’을 세상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28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에 내놓는다. 아울러 후천의 세상에 이르기 위한 수도법인 ‘수심정기’
와 도의 요체를 이루는 ‘주문’을 내놓는다. 그러므로 이들을 통해 자
신의 도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즉 수운은 새로운
차원의 삶인 후천을 열어갈 도를 밝히고, 또 이 도를 학문적으로 체
계화하므로 동학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수운으로부터 도를 전수받고 동학의 2세 교주가 된 해월은, 관의
지목으로 인하여 오랜 동안 도피의 삶을 산다. 깊고 깊은 산간 오지
를 떠돌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질박한 삶 속에서 도의 실체
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도의 생활화’를 꾀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우
리가 매일 같이 먹는 ‘밥’에서부터,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 그리고
숲속에서 우는 ‘새소리’까지,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일상의 모든 것들
을 자신의 도를 펴는 대상으로 삼게 된다. 또한 한 가정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며느리에서 어린아이, 또 부부의 문제, 조상에게 행하는
제사, 나아가 생활 속에서 실행하는 실천윤리까지 모두 도를 설명하
는 대상으로 삼게 된다.
그러므로 「내수도문」, 「내칙」, 「부인수도」, 「부화부순」, 「향아설위」
등, 일상생활에 그 뿌리를 둔 법설들을 세상을 향해 펴게 된다. 또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어떻게 접해야 하는가의, 생활 속에서 행해야
할 매우 실천적인 면이 강조된 설법인 「대인접물」, 「십무천」 등의 설
법을 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과는 다른, 초월된 관념인 양
생각되고 있는 ‘도’를 일상적 삶의 깊은 곳까지 끌어드리므로 ‘도의 생
활화를 꾀한다.
궁극적으로 해월이 꾀하였던 ‘도의 생활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 도
를 실천하므로, 우리의 속화된 일상을 성화(聖化)된 삶으로 이끌고
자 하는 데에 그 본의가 있는 것이다. 즉 해월은 ‘일상의 성화’를 통
해 우리의 삶 자체를 성화시키고, 그러므로 보다 경건한, 나아가 차
원을 달리하는 삶을 이 지상에 이루므로 해서, 새로운 후천의 세상을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29


우리의 삶 속에 열어가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해월이 꾀한 ‘도의 생활
화’는 바로 이와 같은 면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해월로부터 도를 받아 동학의 3세 교주가 된 의암은 동학의 시대를
접고 천도교의 시대를 새롭게 연 인물이다. 이는 곧 당시 처해 있던
시대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암은 서구적 종교의 제
도를 받아들이므로 체제를 정비하고, 또 교리를 체계화시키므로 ‘도의
종교화’를 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재래적 신앙인 동학을 천도교
라는 서구 근대적 종교의 모습으로 바꿔나간다는, ‘도의 종교화’는 그
외양상 서구의 제도와 체제를 따르고 있지만, 실상 그 내면적으로는
수운과 해월이 견지해 오던 자력적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데 주력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리를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도 의암은 ‘인내천’
을 종지로 삼게 되다. ‘인내천’은 수운의 ‘시천주’를 바탕으로 하여, 해
월의 ‘인시천’에 이어, 이를 보다 구체적이고 또 적극적으로 나타낸
용어이다. 또한 인내천은 다만 ‘사람이 한울님’이 아니라, ‘사람이 이
에〔乃〕 한울님’이라는, 유한적인 사람이 내 안에 모신 무궁한 한울
님을 깨달으므로, 비로소 이룩될 될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한다. 따라
서 의암이 이와 같은 인내천을 가장 핵심적인 교의로 채택한 것은 비
록 새로 천명한 천도교가 그 외양에 있어서는 서구적 종교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 내면으로는 당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서구의
기독교가 지닌 타력적(他力的) 신앙의 모습을 배제하고, 동학 본래
의 자력적(自力的)인 신앙을 견지하고 또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의암은 인내천에 이르는 수도법으로 ‘이신환성(以身換性)’을
강조하게 되고, 또 ?무체법경?, 「십삼관법」 등을 통해 수련법을 보다
체계적으로 마련한다. 나아가 진정한 신앙적 수련과 수도인 마음공부,
성품공부, 몸공부를 강조하게 되고, 이를 통해 진정한 도에의 깨달음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30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에 이르므로, 위난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삶을 열어가고
자 노력했던 것이다.
특히 의암은 일제로부터 국권을 수탈당한 이후, 나라의 독립을 위
하여 3․1 독립운동을 준비한다. 이 준비의 과정에서 500명 가까운
중요 교역자들에게 일곱 차례에 걸쳐 ‘이신환성(以身換性)의 수련’을
실행시키기도 한다. 또한 의암으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4세 교주가
된 춘암(박인호, 1856~1940)도 일제의 침탈이 극에 달해 있던
1938년, 일제의 멸망과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무인멸왜기도(戊寅
滅倭祈禱)’를 교인들에게 비밀리에 시달하여 실행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대사회적인 면에서도 천도교는 철저히 자력적인 신앙의 방향에
서 그 운동을 펼쳐나갔던 것이다.
일찍이 해월은 “도란 때와 짝해 나가지 못하면, 사물(死物)과 다름
이 없는 것”이라는 ‘용시용활(用時用活)’의 도법을 펼친 바 있다. 동
학의 스승들이 펼친, ‘도의 학문화’, ‘도의 생활화’, ‘도의 종교화’는 단
순한 동학사상의 시대적 변천만은 아니라고 본다. 즉 용시용활에 의
한 시대적 적용의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따라서 오늘과 같이 위기의
식이 팽배되어 있는 현대라는 이 시대에, 동학을 이은 오늘의 천도교
는 스승들이 펼친 용시용활의 도법을 깊이 절감하고, 시대와 짝해 나
갈 가르침을 마련해야 함은 물론, 이를 위해 천도교 본연의 종교적인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줄로 믿는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31


<참고문헌>
?東經大全?.
?龍潭遺詞?.
?海月神師 法說?.
?義菴聖師 法說?.
?道源記書?.
?大宗正義?.
白仁玉, 「人乃天解」, ?天道敎會月報?, 제2권 제6호, 1911.
?天道敎會史 草稿?.
김지하, ?밥?, 분도출판사, 1984.
박명규, 「동학사상의 종교적 전승과 사회운동」, ?한국의 종교와
사회변동?, 문학과 지성사, 1987.
최기영 ․ 박맹수 편 ?韓末 天道敎 資料集?, 국학자료원, 1997.
申一澈, 崔海月의 汎天主義 世界觀, ?韓國思想? 24집, 한국사상연
구회, 1998.
오문환, 「해월의 사물 이해」, ?동학의 정치철학?, 모시는 사람들,
2003.
김용휘, 「侍天主 思想의 變遷을 통해 본 東學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12.
윤석산,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모시는 사람들, 2004.
윤석산, 「교단사적 입장에서 본 천도교 100년」, ?동학학보? 제10권
제1호, 동학학회, 2006, 6.
윤석산, ?용담유사 연구?, 모시는 사람들, 2006.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32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국문초록>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윤석산
본 논문은 동학사상의 전개를 살펴보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 동
학사상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동학의 시대와 천도
교의 시대로 나누었다. 그러므로 동학의 가르침을 편 스승들인 수운,
해월, 의암의 동학사상 전개의 특징을 찾아보고자 했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은 경신년 결정적인 종교체험 이후 일년 가까
운 시간을 수련을 하며 보낸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도를 학문적
으로 체계화한다.
수운은 도의 학문화를 통해 ‘시천주’를 중심사상으로 삼는다. 이
시천주를 근거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이루고자 하는 ‘후천개벽사상’
을 세상에 내놓는다. 아울러 후천의 세상에 이르기 위한 수도법인
‘수심정기’와 도의 요체를 이루는 ‘주문’을 내놓는다. 그러므로 이들을
통해 자신의 도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나갔다.
수운으로부터 도를 전수받고 동학의 2세 교주가 된 해월은 ‘도의
생활화’를 꾀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매일 같이 먹는 ‘밥’에서
부터,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 그리고 숲속에서 우는 ‘새소리’까지,
모두를 자신의 도를 펴는 대상으로 삼게 된다. 또한 한 가정의 구성
원을 이루고 있는 며느리에서 어린아이, 또 부부의 문제, 조상에게
행하는 제사, 나아가 생활 속에서 실행하는 실천윤리까지 모두 도를
설명하는 대상으로 삼게 된다.
해월이 꾀하였던 ‘도의 생활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 도를 실천하므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33
로, 우리의 속화된 일상을 성화(聖化)된 삶으로 이끌고자 하는 데에
그 본의가 있다. 즉 해월은 ‘일상의 성화’를 통해 차원을 달리하는
삶을 이 지상에 이룩하므로, 새로운 후천의 세상을 우리의 삶 속에
열어가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해월로부터 도를 받아 동학의 3세 교주가 된 의암은 동학의 시대
를 접고 천도교의 시대를 새롭게 연 인물이다. 이는 곧 당시 처해
있던 시대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암은 서구적 종
교의 제도를 받아들이므로 체제를 정비하고, 또 교리를 체계화시키
므로 ‘도의 종교화’를 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도의 종교화’는 그
외양상 서구의 제도와 체제를 따르고 있지만, 실상 그 내면적으로는
수운과 해월이 견지해 오던 자력적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시키
는 데 주력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동학의 스승들이 펼친, ‘도의 학문화’, ‘도의 생활화’, ‘도의 종교
화’는 단순한 동학사상의 시대적 변천만은 아니라고 본다. 즉 용시용
활(用時用活)에 의한 시대적 적용의 적극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주제어: 도의 학문화, 도의 생활화, 도의 종교화, 시천주, 용시용활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34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Abstract>
A Study of the Past and Present of Donghak
Thought
Suk San Yoo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development of
Donghak thought. I have divided Donghak history into two
periods, to better investigate the development of Donghak thought.
One is the Donghak period, the other is the Chodogyo period. I
researched the first three leader’s (Suun, Haeweol and Uaim)
thinking as they were the developers and masters of Donghak
Suun, who was the founder of Donghak, received a defining
religious experience in April 1860 where he met Hanulnim
(God). He then spent almost a year in spiritual training, during
which time he scientifically systematized the Tao that he had
receive from God.
The main thought that developed through the systemization of
the Tao was “serving God within me” (侍天主). He revealed that
the “post-cosmic creation” (後天開闢) was based on this concept
of “serving God within me” which would create a new system
of life. He also revealed the “keep a good mind and have a right
spiritual force” (守心正氣) as the method to reach the “postcosmic
creation” (後天開闢). He also revealed that “incantation”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동학사상의 어제와 오늘 335
(呪文) was the core of Tao. Therefore he systematized Tao
scientifically.
Haeweol, who was a second leader of Donghak, practiced the
principles of Tao in his life. Haeweol taught us that the daily
meal, the sun and the moon, and bird-singing in the forest, are
all objects which explain Tao. Also, the family, which consists
of a husband and wife, the children, the daughter-in-law, and
even the problems between a husband and wife are also an
explanation of Tao; as are sacrificial rites and practical ethics,
and every part of ordinary life.
Haeweol’s desire was to change an ordinary life into a holy
life through practice of Tao. Haeweol wanted to build a life of
new dimension on the earth through a holy life, and to open
the new post-cosmic creation in our life.
Uaim, who became the third leader, studied Tao under the
tutelage of Haeweol, Due to the incursion of Western society,
Uaim changed Donghak, which means Eastern Learning, to
Chondogyo, which means The Heavenly Way. Political and
social upheaval in those days demanded a new way of thinking.
Uaim incorporated Western religious methods of worship,
creating a new systematized way of practicing Tao religious
doctrine. He changed the ancient Tao philosophy into a Western
style religion. It follows Western system and order on the
outside, but maintained the original religious beliefs of Tao on
the inside.
This resulted in Tao spreading out into ordinary life, and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9:01 AM
www.earticle.net
336 동학학보 제10권 2호(통권 12호)
becoming a major religion. While on the outside it may appear
that he changed Donghak’s thought, this is not true. It is
instead, a positive change in the practice of Tao in keeping
with the changing times(用時用活).
Key Words: systematized the Tao scientifically, practice Tao in life,
change Tao to a religion, serving God within me,
change Tao keep up with the changing times
[Provi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