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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양태근.한림대



목차
1. 서론
2. ‘중국철학’의 성립과 분화
3. 펑유란의 철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
4. 펑유란의 개념, 중국철학, 철학의 철학
5. 결론


‘중국에 철학이 존재하느냐?’와 같은 중국철학의 합법성과 같은 문제의식의 시작
은 이러한 개념들이 처음 중국에 도입되던 시기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러한 논의가 더욱 깊이 있는 심도를 가지려면 바로 펑유란(馮友
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우리는 펑유란의 개인적 사상의 발전
경로를 따라 ‘중국철학’과 ‘철학’에 대한 미시적인 개념사적 이해를 하려고 한다.
펑유란의 철학 발전 경로는 중국철학사를 통해 ‘중국에서 철학의 발견’을, 또한
‘신이학(新理學)’이라는 경로를 거쳐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
다. 펑유란은 이렇게 ‘철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구미와 중국 전통을 넘어서는 새
로운 철학을 기대한다. 이러한 철학이 가능하기 위해서 펑유란은 개념의 논리 분
석적 이해를 통한 각성을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을 추구한다. 펑유란의 중국철학
과 철학의 추구는 이러한 대화합을 바라는 개인의 학문적 성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238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논문분야 중국 근현대 사상사, 중국 근현대 학술사, 중국철학사
주 제 어 펑유란(馮友蘭), 중국철학, 철학, 개념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39


1. 서론
구미에서 수입된 철학이라는 개념이 중국에서 정립하기까지는 전통 학술
체계의 기존 서술체계에서, 이른바 번역어를 통한 격의적(格義的) 이해 단계
를 거쳐 새로운 학문체계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거친다. 특히 이러한 일련
의 과정 속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인물은 후스(胡適, 1891~1962)와
펑유란(馮友蘭, 1894~1990)으로, 우리는 두 사람의 중국철학사라는 텍스트의
성립을 통해 중국에서의 서구로부터 수입된 현대식 학문체계로서 중국철학
사와 중국철학이 중국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이러한 과정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 존재하고 있지만, 본 논문은 펑유란의 철
학 개념에 대한 이해와 개념 정립 과정이 그 자신의 사상적 성장과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변화하였음에 주의를 기울여 개념사적 시각에서 논의
를 진행해 보려고 한다. 특히 구미철학 개념이 펑유란의 사상체계 형성 궤적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또한 중국사상 토양 아래 중국철학사는 어떻게 가
능한 것인지와 관련한 논의를 통해 구미철학 개념이 어떻게 중국화되어 가는
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펑유란이 어떻게 중국철학사 연구에서
중국철학과 철학 연구가 가능한가?’라는 시대적 명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자
신의 고뇌를 중심으로 이러한 그의 관점과 충돌하던 과학주의와의 관계를 통
해 그가 넘어서야 할 이론적 충돌들을 역사적 시각으로 추적하려고 한다. 이
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한 개인의 저작 속에서 개념의 정립 과정이 내포하
고 있는 다양한 당시 학술 세계와의 교류와 소통이 어떻게 개념 변화를 가져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개념이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우리가 개념을 하나의 의미의
틀이라고 본다면, 이 개념틀 안의 내용물은 개인의 사상과 사회 환경의 복잡
한 유기적 변화의 궤적을 포함하게 된다. 즉 개념사 연구를 통해 우리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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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사상의 성장과 고뇌를 읽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개념을 둘러
싼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충돌과 변용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본고에서
펑유란 개인 사상의 성장 과정을 추적해 보면, 자연스럽게 동일한 개념어임
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거나 자신의 언설과 논의의 대상
의 변화 혹은 상대와의 논쟁 대응 과정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동일한 개인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어의 틀
(본문에서는 개념, 중국철학 혹은 철학)은 변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역사적 환경
과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그 내용은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다. 이러한 변화의 역사적 고찰은 바로 개념사가 가지는 가장 명확한 연구
주제일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1) 또한 통계학적 개념사 연구를 진행하
면 당시 이 개념을 사용한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의 중층 스펙트럼을 추적
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동시대 통계
학적 연구로 범위를 넓히게 되었을 때는 불가피한 오류들이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기에 더욱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본 논
문은 이러한 개념사 연구가 가지는 특성에 주의하면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
다. 특히 중국 전통사상이 해체되고 중국철학사와 중국철학으로 재편되는 과
정이 과연 중국철학의 합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와 관련한 문제의식에 주의
를 기울이려고 한다.


1) 본인의 이와 같은 관점은 ‘특정 주장 속에서 개념들이 사용된 방식의 역사’를 중시하는 언어
적 콘텍스트주의(linguistic contextualism)와 비교적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연구
들의 목표인 한 시대의 언어적 콘텍스트와 그것의 시대적 변동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한
가? 혹은 그와 같은 거시적 이론의 성립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 때문
에 본고는 펑유란의 중국 근현대 학술사 특히 중국철학사의 성립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의
철학 개념과 경쟁 혹은 대척점에 서 있던 과학, 역사 등과의 비교·분석을 진행하려고 한다.
개념사 연구와 관련하여 언어적 콘텍스트주의의 간략한 소개는 다음의 연구를 참조할 수 있
다. 김현주, 2007, 「근대 개념어 연구의 동향과 성과」, ?상허학보? 제19집, 207~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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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국철학’의 성립과 분화
본문에서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펑유란 저작에
서 보이는 철학 관념의 본질과 그 철학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가 가지는 의미
의 분석 작업이다. 중국에서 philosophy의 번역어로서 일본 번역어인 철학
의 사용에 대한 고찰은 기존 학계에서 이미 광범위한 고찰과 연구가 진행되
었다.2) 당연히 본 논문은 중국에 철학 개념의 도입과 변화를 지적하려는 것
이 아니라 이러한 철학 개념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펑유란의
개인적 철학 개념의 확대와 관련한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특히 최근 중국철
학의 정당성 혹은 합법성과 관련한 중국 학술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논의와 논쟁3)을 통해서, 우리는 펑유란의 철학 개념 도입이 가지는 학술사
적 의미를 좀 더 세밀히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평유란은 중국철학사라는 텍스트의 정립 시기 현대적 중국철학사의 기
초를 놓은 후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그렇지만 철학이라는 개
념의 확산과 정립이라는 학문 분야에 국한해 본다면 후스가 철학사에서 사상
사 연구로 전환한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연구를 중국철학과
철학 정립에 노력한 펑유란이야말로 철학이 어떻게 중국 학술계에서 전파되
고 수용되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고 분
석해야 할 때 가장 적합한 연구 방향일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철학과 관련해서 우리는 중국


2) 이와 관련한 최근 한국 학계에서의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치아오칭쥐, 2010, 「현
대중국의 중국철학 연구」, ?철학논집? 제21집, 5~59쪽;양일모, 2013, 「중국철학사의 탄
생:20세기 중국철학사 텍스트 성립을 중심으로」, ?동양철학? 제39집, 129~156쪽.
3) 이러한 논의의 대표적 참고 논문은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陳來, 2001, 「世紀末‘中國哲學’
研究的挑戰」, ?現代中國哲學的追尋?, 北京:人民出版社, 350~365쪽;鄭家棟, 2002, 「中
國哲學的合法性問題」, ?中國社會科學文摘? 第2期[http://www.confucius2000.com/poetry/
zgzxdhfxwt.htm(2015. 10. 20. 검색)];鄭家棟, 「“中國哲學史”寫作與中國思想傳統的現
代難局」[http://www.scu.edu.tw/philos/062301.doc(2015. 10. 20.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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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학문의 합법성과 관련하여 다음의 두 가지 입장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천라이(陳來)를 대표로 하는 중국철학에 대한 긍정적 입장과
정자동(鄭家棟)을 대표로 하는 중국철학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의식의 제출
이다. 이러한 논쟁의 가장 중요한 지적은 바로 정자동이 지적한 중국철학의
합법성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서구의 철학은 일관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중국이라는 사상적 토양은 이와는 다른 방향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이것은 펑유란과 진위에린(金岳霖, 1895~1984)이 1930년대에
지적한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철학의 존재는 중국사상이 서구철학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그 존재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후스의 철학 소멸
주장에 대해 펑유란은 철학의 존재 의의를 재확인하면서 서구철학과 중국철
학의 상보 가능성을 지적한 것처럼, 천라이 역시 펑유란과 같은 논의의 연장
선에 서서 서구철학의 보편성과 중국철학의 특수성이라는 논점을 통해 그 상
보 가능성에 주목한다. 즉 천라이가 펑유란의 주장의 계승이라고 본다면, 정
자동이 한 중국철학사와 중국철학의 합법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한편으로는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중국 본위의 학술체계 건립이라는 현 시대적 요구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4)
우선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1929년 6월 18일 다퉁대학(大同大學)에서 진
행한 「철학의 장래」라는 강연 원고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후스는 이 강
연 원고에서 과학이 장차 철학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보기
에는 ‘과거의 철학은 유치하고 착오투성이이며 혹은 실패한 과학’이었다. 또
한 과거 철학의 핵심 구성 요소였던 우주론·본체론·지식론은 현대적인 천
문학·물리학·생물학·생화학·심리학·과학방법 등으로, 도덕철학은 사회
4) 중국철학사라는 현대 학술 분야의 창립자라고 할 수 있는 후스는, 1930년대 펑유란과의 논
전을 통해 이미 사상사로서 철학사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후스는 정자동이 지적
한 중국철학의 합법성과 관련한 논점을 넘어서서 1929년에 이미 중국철학뿐만 아니라 철학
이라는 학문 역시 존재 의미가 없어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유명한 허린
(賀麟)의 경우 “철학의 영역에서 후스를 축출해야 한다”는 감정적 비판을 제출하기도 하였
다(賀麟, 1990, ?哲學與哲學史論文集?, 北京:商務印書館, 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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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류학·유전학으로, 정치철학은 경제학·통계학·사회학 등으로 대체
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고대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는
철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왜 현대원자론을 규명한 혹은 전자를 발견
하여 전기의 음양을 밝혀낸 과학자들은 철학자가 아닌지를 질문한다. 그는
“철학가를 인류지식사상사로 편입시켜야만 비로소 그들의 과거 성적을 측
정해 볼 수 있고 그들의 장래 지위를 계산해 볼 수 있다”5)고 보았다. 즉 철
학은 특별한 어떤 학문의 분야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류 사상의 일부분일 뿐
이라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철학자라는 사람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
류의 가장 진보한 과학 지식과 사상은 제외하고 자신들을 과학의 제재를 받
지 않는 철학가’6)로 여긴다고 보았다.
비록 생활의 각 방면에서 계속하여 이론가들이 나타나 기존의 이론을 비
판하고 이미 발견된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제출할 것이지만, 이런 것
은 새로운 현대 학문 분야의 이론가들이며 이런 사람들이 바로 미래의 철학
가라고 보았다. 즉 이론물리학이나 새로운 사회과학, 새로운 인류의 문제들
과 관련한 이론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미래의 철학자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화 과정 역시 자연과학의 방법론이나 사회과학의 통계화
같은 과학적 검증을 거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바로 과거의 현학귀
신들일 뿐이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즉 후스는 광대한 인류의 사상 궤적이 현
대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철학 역시 인류의 사상 활동의 일부분일 뿐이며, 그
러한 사상 활동 역시 검증된 절차를 통해 증명되고 반증되면서 끊임없이 검
증을 거쳐 과학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후스는 단호하게 미래에는 오직 하나의 지식만이 있으며 그것은 바로 과
학 지식이라고 보았다. 철학은 보편적 인류 사상 활동의 일부분으로 미래에
는 첨예해진 과학 학문 제 분야 속으로 편입될 것으로 본 것이다.
5) 胡適, 2004, ?胡適日記全集 第五冊?, 臺北市:聯經, 630쪽, 631쪽.
6) 胡適, 2004, 앞의 책, 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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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1917년 9월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베이징대학(北京大學) 교수로
부임하고 또한 ?중국철학사대강(中國哲學史大綱)?을 통해 중국에 철학사라는
학문 분야의 초석을 세운 후스는 왜 철학의 자연소멸을 이야기하게 된 것일
까? 후스가 철학자를 현학귀신이라고 지칭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후스
관점의 변화는 1923년 「과현논전(科玄論戰)」[과학과 현학(인생관) 논전)]7)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군다나 고대역사에 대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한 고사
변(古史辨)운동의 조력자였던 후스가 1928년 안양 은허 지역에서 출토된 대
량의 갑골문·청동기 등의 문물을 통해 ?사기?에서 언급된 고대역사 사실이
증명되자, 자연스럽게 고대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고고학적 발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 역시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8) 또한 당시 후스
와는 밀접한 관계에 있던 푸쓰녠(傅斯年)의 영향이었다는 지적도 있다.9) 특
히 ?노자? 연대 문제로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 펑유란 등과 진행한 논
전을 통해 후스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이야말로 ?사기?에서 서
술한 것처럼 ?노자?가 공자보다 먼저 개인 학술 저작과 강학을 하였을 것이
라는 자신의 관점에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자신이
주장하던 ?노자? 시기가 공자보다 먼저라는 주장의 명확한 증거는 당시에
7) 「과현논전(科玄論戰)」과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葉其忠, 1996, 「1923年?科玄論戰?:評價之評價」, 中央研究院近代史研究所集刊 第26期, 181~234쪽;
허증, 2011, 「1920년대 “과학, 현학” 논쟁과 “구망(救亡)” 의식」, ?대구사학? 제103집, 239~
277쪽.
8) 당시 후스가 구제강(顧頡剛)의 의고(疑古)에서 신고(信古)로 돌아서게 된 것과 관련하여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岳南, 2008, ?陳寅恪與傅斯年?, 西安:陝西師範
大學, 291~318쪽. 1929년 3월 14일 구제강은 자신의 회고 「我怎樣編寫古史辨的」에서
후스가 자신에게 신고로 돌아섰음을 알렸을 때의 충격을 다음처럼 회고한다. “ ‘지금 내 사
상은 변했네. 난 더 이상 고대를 의심하지 않고 고대를 믿어보려고 한다네.’ 나는 이 말을
듣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現在我的思想變了, 我不再疑古了, 要信古了?我聽了這
話, 出了一身冷汗……後來他回到北大, 作了一篇《說儒》……這就是他為了?信古?, 而
造出來的一篇大謊言, 正和漢代方士化了的儒生一樣)(劉起釪, 1986, ?顧頡剛先生學述?,
北京:中華書局, 262쪽).
9) 王汎森, 1990, ?中國近代思想與學術系譜?, 石家莊:河北教育出版社, 465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45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대규모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새로운 판본의 출
토 가능성에 주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논전을 통해 서
구‘철학사’라는 학문 분야의 이식 작업의 주요 성과이자 현대 학술체계로의
전환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핵심 텍스트가 후스에서 펑유란의 텍스
트로 옮겨 가게 된다. 즉 후스와 펑유란의 ?노자? 시기 논전은 중국 전통
학술 세계의 시조인가를 결정하는 상징성을 가진 인물로 후스는 노자를, 펑
유란은 공자를 보았던 것이고, 적어도 당시에는 펑유란이 승리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10) 결국 이것은 ‘누가 새로운 현대 학술체계의 시각으로 전통을
해석하느냐?’와 같은 민감한 학술계의 경쟁에서 승리자를 결정하는 논전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결코 피할 수 없는 논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철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와 중국철학사 텍스트의 성립 과정에서 후스의 ?중국
철학사대강?과 펑유란의 ?중국철학사(상)?라는 텍스트의 경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전통 학문의 현대적 해석 권력과 같은 학술 세계의 헤게모
니를 누가 갖느냐와 같은 첨예한 갈등 구조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갈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과현론전」은 자연스럽게 당시 중
국 지식인을 두 지향점, 즉 과학과 철학(玄學)으로 갈라서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중국철학’과 ‘철
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성립과 발전 및 정립 과정 중에 최소한 「과현론전」이 중
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중국에서 철학 개념과 학문 분야의 성립 초기에 과
학이라는 시대적 과제와의 경쟁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17~1929년
사이 후스가 ?중국철학사대강?을 출판하고 5·4운동, 「과현론전」을 거치
10) 비록 당시에는 펑유란의 주장인 공자가 중국 전통 학술의 시조이며 노자보다 먼저 존재했
다는 의견이 대세였으며, 또한 이러한 관점이 거의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노자 ?도덕경?의 고대 판본이 공자보다 먼저였음이 확정적인 것으
로 보인다. 중국철학사 텍스트 성립 시기 후스와 펑유란의 논전은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양태근, 2015, 「胡適과 馮友蘭의 老子 시기 논전을 통해 본 ?中國哲學史?의 성립 과정
과 歐美 철학 연구방법론 영향 고찰」, ?동방학지? 제171집, 326~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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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결국 철학의 자연소멸을 논하기까지 중국 근현대 학술사상계에는 대단히
급진적인 변화가 발생하였음을 우리는 이러한 과정의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과현론전」이 보여 주듯이 ‘인생관은 과연 과학으로 대체될 수 있
을까? 과학이 할 수 없다면 철학은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까?’라는 문제의식의 제기는, 철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자기 성찰적 질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달리 보면 과학으로 구성된 신세계 질서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의 제출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 펑유란은 과학주의의 대두에 대해 자신의
새로운 관점들을 더욱 깊이 있게 성찰하면서 결국 새로운 형태의 철학체계를
세우는 길로 나아간다.
?중국철학사?라는 저작을 통해 중국 전통 학문체계를 현대적 분과체제 철
학으로 전환하는 시대적 변화를 이루었던 후스와 펑유란이 실험주의와 신실
재론으로 중국철학사를 연구하면서 ‘중국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서
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후스는 철학이 과
학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중국사상사 연구로 전환한 것에 비해, 펑
유란은 중국철학 연구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과학으로 철학을 대체해야 한
다는 후스의 주장과 과학주의가 대세를 이루던 중국 사상계에서 펑유란은 어
떤 대응을 하였으며 그의 학문적 체계는 어떻게 중국철학과 철학을 구성하였
는지를 우리는 그의 다양한 저작을 토대로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3. 펑유란의 철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
펑유란의 학술 역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의 사상 형성 과정이 중국철학
사, 중국철학 그리고 철학[신이학(新理學):펑유란 개인의 철학체계]의 완성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진로는 당시 중국 학술계 내
부의 주류라고 할 수 있던 과학주의와 역사학 등의 대척점에 있었던 것 역시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47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즉 펑유란 자신의 철학 이론의 성립 과정은
이러한 충돌과 극복해야 할 대상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1) 철학과 과학
펑유란이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유학하던 1921년 10월 ?신조(新朝)?에 발
표한 문장, 특히 그 자신이 유학 시절 초기 가장 좋아했다는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11)에 대한 해석은 좀 더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펑유
란은 철학사를 통해 볼 때 방법론의 상이함이 결국 다양한 학파와 논쟁을 만
들어 낸다고 하면서 베르그송의 경우 본체론은 변화(change)를, 방법론에서
는 직관(直覺, intuition)을 특색으로 한다고 보았다.12)
펑유란은 유럽의 지식주의(智識主義, intellectualism)가 기본적으로 사물에
대한 지각(perception)을 개념(concept)화한 후 이를 정의하지만 이러한 정의
와 개념에 집착하면, 그 개념이 무엇이면 바로 그 사물이 바로 그 무엇이라
고만 보는 위험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는 실재(reality)13)는 활동과 나뉠 수
없는 전체로 보아야 하며 베르그송의 직관은 바로 이러한 비지식주의(nonintellectualism)
의 중요한 일원이라고 설명한다. 생물의 진화에는 두 가지 경
로가 있으며 본능을 따르는 벌과 개미 그리고 지식(intellect)을 따르는 인류로
나뉘며, 인류는 바로 가장 발전한 형태로 지식을 통해 비로소 과학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식은 사물을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살아 있는
것을 생명이 없는 개념으로 변화시키지만, 사람이 그러한 생명이 없는 개념
에 집착하면 결국 ‘실재’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철학은 바
11) 펑유란은 유학 초기 컬럼비아대학에서 실용주의와 러셀의 신실재주의 사이를 오락가락했
지만 가장 좋아했던 것은 베르그송이었다고 회고한다(馮友蘭, 2000a, ?四十年的回顧?, ?三
松堂全集 14?, 鄭州:河南人民出版社, 1002쪽).
12) 馮友蘭, 2000c, 「柏格森的哲學方法」, ?三松堂全集 11?, 鄭州:河南人民出版社, 11쪽.
13) 펑유란은 실재를 이곳에서는 진실(眞實)로 번역하고 있으나 본문의 통일성을 위해 모두
실재로 번역·사용하였다.
248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로 전체로서의 실재를 대상으로 하기에 철학방법은 지식을 근본으로 한 분석
이 아니라 본능을 근본으로 한 ‘직관’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14) 이러한
직관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하나
는 사물의 둘레에서의 관찰이고 또 하나는 사물의 내부에서의 관찰로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직관이라고 보았다. 또한 사물 내부에서의 관찰은 일종의 동정
적 지식(intellectual sympathy)으로 자신을 그 사물과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
이라고 보았다.15) 이러한 동정적 지식이야말로 펑유란의 중국철학사가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동정적 이해’가 베르그송의 영향일 수도
있음을 알려 준다. 또한 펑유란은 베르그송의 실례를 들어 문장을 쓸 때 우
선 제목을 연구하고, 재료를 수집하고, 사상을 노트에 정리해 보는 예비 과
정을 거쳐 심대한 고통 속에서 우리 자신을 그 제목이 갖는 마음속에 위치하
게 한 후, 충동(impulse)을 통해 창작을 하게 됨을 설명하면서 철학의 직관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16) 이러한 관점 역시 펑유란이 향후 철학은 문학
의 창작과 유사하다는 관점을 제기하는 것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17) 이
러한 철학의 직관이 예술적으로 보이고 과학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과학
의 발명 역시 직관에서 오는 것으로, 이러한 발명은 모두 죽은 개념에서 얻
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발명가들은 구체적 사
례를 통해 가설(hypothesis)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세 단계를 거치는
데, 특히 가설을 세우는 것은 마치 문장을 쓸 때처럼 충동을 통해 얻어진다
고 보았으며, 즉 이러한 과정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과학 역시 직관에서 온
다고 보았다.18) 펑유란은 과학과 철학 모두 직관에서 만날 수 있으니 베르그
송이 과학을 중요시 않는다는 것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또한 철학은 문장이
14) 馮友蘭, 2000c, 앞의 글, 13~14쪽.
15) 馮友蘭, 2000c, 앞의 글, 15쪽.
16) 馮友蘭, 2000c, 앞의 글, 16쪽.
17) 馮友蘭, 2000b, 「對於哲學一點意見」, ?三松堂全集 11?, 鄭州:河南人民出版社, 363쪽.
18) 馮友蘭, 2000c, 앞의 글, 17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49
며 과학은 그 문장을 쓰기 위한 자료와 사상을 정리한 노트와 같고 실재는
바로 제목과 같다고 보았다. 심지어 과학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개념이고,
사실 우리가 언어로 말하는 것은 결국 죽은 개념일 수밖에 없으며 베르그송
이 이야기하는 ‘변화’ 역시 죽은 개념일 뿐이니, 베르그송은 개념을 불필요하
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궁극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임을
설명한다. 또한 펑유란 자신은 베르그송에 대한 신실재론자인 스폴딩(Edward
Gleason Spaulding, 1873∼1940)의 “분석을 반대하면서 분석을 한다”는 비평이
나 러셀의 “언어가 불완전하다면서 언어를 이용해 책을 쓴다”는 비판은 베르
그송의 본의를 오해하였다며 적극 변호하고 있다.19)
우리는 이와 같은 펑유란의 베르그송 철학의 소개를 통해 과학과 철학이
어떻게 하나의 체계 속에서 공존할 수 있을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비록 이
것이 과연 베르그송의 진정한 의미인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은 바로 펑유란이 베르그송의 철학 소개에서 철학
과 과학의 공존이 가능함을 발견하려 한 사실이다. 즉 펑유란의 사상 발전
과정을 고찰하면 우리는 그의 사상 성립 초기 철학과 과학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였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펑유란 자신은 철학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펑유란은 「철학과 철학사에 대한 의견(對於哲學及哲學史之一見)」에서 철학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정리한다. 그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욕구를 가지고 이러
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좋다(good)고 한다”20)고 정리하면서 인간은 좋지
않은 것(evil)을 피하고 이상적인 인생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철학의 용
도와 목적이니 이상적인 인생을 추구하는 것, 바로 좋은 것(good)을 추구하
19) 馮友蘭, 2000c, 앞의 글, 17~18쪽.
20) 펑유란은 선이라고 하여도 좋다고 하면서 선이라고 할 경우, 도덕적 의미가 너무 강해서
만약 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맹자의 가욕지위선(可欲之謂善)의 선의 의미를 차용하
겠다고 정리한다(馮友蘭, 2000a, 「對於哲學及哲學史之一見」, ?三松堂全集 11?, 鄭
州:河南人民出版社, 64쪽).
250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는 것이 철학이라고 보았다. 중세를 거치면서 철학과 종교의 구별, 과학과의
구별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으며 과학 연구는 여전히 현상 세계에 국한된다고
보는 칸트, 베르그송과 이와는 달리 과학적 기계주의, 객관적 진리, 미와 선
의 존재를 주장하는 스피노자 등과 같이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또한 철학은 good을 추구하고 과학은 true를 추구한다고 보았다. 특히 각종
학설의 목적은 경험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를 세우는 것으로 그 방법
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논리와 과학방법을 반
대하는 사람들 역시 과학과 논리학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21) 비록 펑유
란이 철학과 과학 모두 동일한 근본적인 사상방법, 논리적 분석과 과학적 분
석을 사용한다고 보았지만 과학과 철학을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철학을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세 분야로 나누면서 현재의 언어로 나누어
본다면 우주론, 인생론, 지식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정리한다. 특히 우
주론이 달라지면 결국 그에 따른 인생론도 달라지고 철학은 이상적인 인생
을 추구하면서 우주론과 세계관을 정립하려 하니 반드시 과학을 종합하여
보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중국철학에서는 지식 문제를 중요한 철학 문제로
여기지 않았지만, 이것이 중국철학이 철학으로 이해되기에 커다란 장애가 되
지는 않는다고 보았다.22) 펑유란이 이렇게 중국철학이 철학으로 인정받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한 것에는, 이른바 형식체계와 실질체계의 이분법에 근
거한다. 펑유란은 중국에는 비록 구미의 정교한 형식적인 체계의 철학은 없
을지 모르지만, 마치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통해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듯이
중국 전통사상에도 실질적 내용으로서의 체계는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므
로 중국철학 연구의 과제는 형식적으로는 체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사
상에서 실질적인 철학의 체계를 분석해 내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23)
21) 馮友蘭, 2000a, 앞의 글, 67쪽. 특히 펑유란은 이곳에서 후스의 논지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펑유란 역시 당시 후스와의 사상적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22) 馮友蘭, 2000a, 앞의 글, 68~69쪽.
23) 馮友蘭, 2000e, ?中國哲學史(上)?, ?三松堂全集 2?, 鄭州:河南人民出版社, 252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51
비록 철학과 과학 모두 논리적 과학적 분석 및 연구방법을 사용하지만, 과
학은 유일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철학은 유일한 좋은 것을 추구한다고
본다. 혹은 유일한 어느 개인의 어느 한 철학자의 유일한 좋음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개인에 따라 학파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와 특수
한 면목과 특수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
를 서로 충분히 인정해 주어야 하며, 결국에는 사회적 다양성의 통합을 통해
최종적 대화합(大和)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24) 물론 이러한 화합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인정하였다고 해서 이것이 펑유란의 궁극적 지향점이었
다고 볼 수는 없다. 펑유란의 관점에서 철학은 다양한 철학적 관점이 존재하
며 이러한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펑유란
이 철학과 과학이 함께할 수 있다는 화해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
실을 통해, 펑유란 개인의 철학적 진전이 과학과 역사 등의 동시대적 주요
개념들과의 경쟁과 충돌을 거치면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2) 철학과 역사
펑유란 철학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역사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
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실재 존재했던 역사 본연의 모습인 실재로서의 역
사와 그러한 활동에 대해 역사가에 의해 서술된 역사(written history)가 있다
24) 본 절에서 논의 중 「對於哲學及哲學史之一見」과 「一種人生觀」을 동시에 분석한 이유
는 펑유란 자신이 「對於哲學及哲學史之一見」에서 자세한 논의는 「一種人生觀」을 참조
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글에서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또한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상호 인용·보완하고 있다(馮友蘭, 2000d, 「一種人生觀」, ?三松堂全集 2?, 鄭州:河南人民出版社, 35~36쪽). 물론 펑유란이 언급한 ‘대화합이 가
능한가?’와 관련해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이 자신과 다른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의 문제는 해결해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후스와 펑유란이 익숙한 실험
주의의 과학적 실험실의 연구방법론에서 강조하는 것은 진리가 오직 새로운 진리로 대체
되기 전까지의 한계적 효용성을 가지기에 이러한 화해의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52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고 보았다. 또한 펑유란은 베이컨을 인용하면서 철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언하다. “역사는 바로 철학의 실현이며 철학은 역사의 정신이
다.”25)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철학은 하나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철학
은 그 자신의 특별한 정신을 가지고 특별한 면모를 보인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한 시대, 한 민족에게는 각자 그들의 철학이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세계
에는 ‘철학’이 없다. ‘한 학파’의 혹은 ‘한 시대’의 철학이 있는 것으로 ‘철학’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것과 같다. 장차 어떨지는 모르
겠지만, 그러나 역사가 있은 후에 지금까지 세계에는 ‘철학’이란 없었으며 오직 ‘여
러 철학들’(there is no philosophy as such;there are only philosophies)만이 있
었다. 현재 철학가들이 세운 도리들을 모든 사람이 그것이 옳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고, 옛 철학가들이 세운 도리들을 모든 사람이 그것이 옳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한편으로는 철학사를 연구하고
이를 통해 각 위대한 철학체계가 세계와 인생에 대해 세운 도리들을 보고, 또 한편
으로 실제의 세계와 인생을 직접 관찰하면서 스스로 도리를 세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26)
펑유란이 설명하는 것처럼 만약 철학 역시 다양한 철학 중의 하나일 뿐이
며, 역사 역시 실제 존재했던 역사와 서술된 역사로 나누어 볼 수 있다면 과
연 서술된 역사의 좋고 나쁨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 이에 대해 펑유란은
실제와 서술 간의 합치를 제안한다. 역사와 서술된 역사의 구별은 철학사에
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실제로서의 철학사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서술된 철학사이며 이러한 철학사의 근거 자료들 역시 완전하다고
25) 馮友蘭, 2000a, 앞의 글, 71쪽.
26) 馮友蘭, 2000a, 앞의 글, 71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53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른바 서술된 역사와 서술된 철학사는 영원히 다시 쓰
일 뿐이다”27)라고 그 한계성을 지적한다. 그 때문에 연구자들은 가능한 원시
자료(original source)를 통해 그러한 한계성을 극복하려고 하여야 할 뿐만 아
니라 실제 사실 간의 선후·인과(antecedent and consequent)관계를 고찰하여
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관점을 지속하여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추론
에 다다를 수 있다. 즉 역사와 철학사의 연구들이 비록 서술된 역사 자료들
중 가능한 원시 자료를 통해 그 원래 실제로서의 역사에 다가가야 하지만,
자료의 한계로 인해서 실제로서의 역사와 철학사의 완전한 재현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의 서술된 역사 모두 단지 한 시대 혹은 한 학자, 한
학파 학자들의 의견들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와 철학 모두 단
지 일정 부분의 실제와 논리적 분석 및 추측 혹은 사상들로 재구성되어진 창
작과 유사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과학과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는 그 궤
를 달리하는 학문 활동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역사 연구마저 어느 학파 어
느 학자의 철학의 구체적 실현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러한 논지는 자연스럽
게 당시 진행되던 중국에서의 사학과 철학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
가 있다. 즉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실증적 역사 연구는 과학 연구임에
비해 중국에서의 철학의 연구는 현학귀신으로 비판하던 것에 대한 대응 논리
일 수 있으며 본문에서 논의 된 호적을 대표로 하는 실증적 역사연구가 철학
을 존재 가치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 대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역사연구가 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과학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학술적 흐름으로 당시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었다고 본다면 펑유란이
철학과 과학을 과학적·논리적 분석방법으로 그 연구방법이 같다고 보던 시
각에서 점차 철학과 과학이 서로 다른 영역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하게 된 것에는 이러한 당시 시대적 상황의 영향 특히 경쟁과 충돌이 있
27) 馮友蘭, 2000a, 앞의 글, 73쪽.
254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었음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4. 펑유란의 개념, 중국철학, 철학의 철학
1) 개념과 각해(각성)28)
펑유란은 중국 고대철학사를 저술하던 시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어조
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문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
만 이른바 ‘정원육서(貞元六書)’29) 시기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확신에 찬 확정
적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이를 통해 그가 자신의 철학체계
에 대해 확신하면서 논의를 진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는 펑유란
자신의 철학체계를 완성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기에 우리는 그가 중국철학
사 연구에서 중국과 구미철학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어떻게 진행
하였는지를 그의 논의를 따라 추적해 보려고 한다. 그의 새로운 철학 신이학
은 전통사상의 핵심 방법론이라고 할 격물지치(格物致知)를 구미의 논리분석
방법과 개념으로 치환하고 논리적 이해를 통한 깨달음을 자신의 철학체계의
핵심 통로로 삼았다. 하지만 이러한 변이 혹은 치환의 과정을 단순 대체로
보아서는 결코 펑유란의 논지를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없다. 펑유란 자신이
28) 각해(覺解)를 어떻게 번역하고 이해해야 하는가와 관련해서는 ‘개념에 의한 깨달음’이라는
황희경의 번역어가 있다(황희경, 1997, 「馮友蘭 철학에 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
위 논문, 110~114쪽;이상돈, 2010, 「馮友蘭의 新理學과 朱子學 이해」, ?동양철학? 제
34집, 34쪽 각주 21). 하지만 해(解)는 개념의 이해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다다르는 이
(理)에 대한 이해이며, 각(覺)은 깨어 있는 이해의 활동을 진행하는 일종의 심리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각성이라는 단어가 한국어 용법상 그나마 유사한 용어로
볼 수 있기에 각성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려고 한다.
29) 펑유란의 ?정원육서(貞元六書)? 중 ?신이학(新理學)?, ?신원인(新原人)?, ?신원도(新原
道)?, ?신지언(新知言)?으로 그의 이론체계는 완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
다. 이외에도 ?신세훈(新世訓)?, ?신사론(新事論)?이 있다.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55
헤겔 변증법 정반합 중 합으로 자신을 가리킨 것처럼 중국 전통사상·구미
철학·신이학이라는 정반합 과정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즉 중국철학과
철학의 개념적 이해는 어떻게 중국에 현대적 학술체계를 도입해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느냐라는 시대적 소명 의식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개념사적 의미
가 좀 더 깊이 있게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펑유란은 우선 “사람들은 이(理:이치를 따지는)의 지식을 가리켜 개념이라
고 한다”, “사물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개념에 의지해야 한다”30)고 정의한다.
또한 칸트의 “지각 없는 개념은 빈(空) 것이며, 개념 없는 지각은 맹목적이다”
를 인용하면서 개념은 빈 것일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는
하나의 이름(名言)의 지식은 경험 속에서 인증(印證)을 얻는 것으로, 그것을 통
해 그 이름이 대표하는 개념과 그 개념이 대표하는 이치(理)를 파악할 수 있다. 그
래서 이렇게 경험과 개념이 연합하여 의의를 가지며 이러한 이름과 경험이 연합하
게 되니 비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인증을 얻은 사람은 그러한 경험과 이름에
대해 일종의 활연관통(豁然貫通)의 이해를 가지게 된다.31)
즉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체험적·실질적 경험의 합
치를 거쳐 비로소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활연관통을
통해 의미를 합치한다는 것은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라고 볼 여지가 있어 당시 후스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32) 하지만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이 바로 ‘중국철학’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펑유란은 정리하고
30) 馮友蘭, 2000c, ?新原人?, ?三松堂全集 4?, 鄭州:河南人民出版社, 467쪽.
31) 馮友蘭, 2000c, 앞의 책, 468~469쪽.
32) 이에 대해 후스는 일단 활연관통의 절대적 지혜를 희망하는 것은 바로 과학의 반면이며
과학은 구체적 물리를 추구하는 지식이라고 지적하면서, 활연관통의 대오각성을 추구한다면
절대로 과학이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胡適, 1995, 「清代學者的治學方法」, ?胡適
作品集 4 問題與主義?, 臺北:遠流出版社, 158~159쪽).
256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있다. 또한 ‘철학은 무엇 때문에?’와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으니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인생은 왜 무엇 때문에 있느냐?’와 같은 질문에는 답할 수 없
다고 보았다. 철학이 이야기하여야 할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며, 우리가 그러한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해는 개념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이해를 진행하는 자각은 일종의 심리 상태로, 우리가
이해의 활동을 할 때 우리 자신이 깨어 있는 명각(明覺)한 상태를 바로 자각
이라고 한다고 보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펑유란이 베르그송의 철학을 소개할 때 철학과 과학의
발명 역시 직관에서 오는 것으로, 이러한 발명은 모두 죽은 개념에서 얻어지
는 것이 아니라 지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설명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개념은 죽은 것이고 개념은 빈 것이라는 베르그송이나 칸트의 생각을
넘어서서 그는 개념과 이름, 그 이름이 가지는 이치(理)의 합치 즉 경험과 개
념의 합치를 통한 이치의 온전한 이해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
나 이러한 관점의 가장 핵심적인 논지는 바로 개념의 이해를 통해서 다음 단
계인 분석과 이해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또한 개념은 이름, 경험에 대한
논리 분석적 합치에 의해 활연관통의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2) ‘중국철학’과 철학 연구의 두 가지 방법론
개념과 경험의 합치와 그와 관련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일보한 철학의 연
구가 가능해진다는 펑유란의 기본 생각은 어떻게 중국철학 연구에 사용될
수 있을까? 펑유란은 기본적으로 중국철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중국철학사
(상)?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른바 중국철학이라는 것은 바로 중국의 어떤 학문과 어떤 학문의 어떤 부분이
서양의 이른바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칭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른바 중국철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57
학가라는 것은 중국의 어떤 학자가 이른바 서양의 철학가라고 호칭될 수 있는 사
람을 가리킨다.33)
또한 그는 ‘왜 중국이 철학 연구를 해야 하고 반대로 중국의 의리(義理)와
같은 전통적인 학문으로 서양의 의리를 연구하지 않느냐?’라는 질의에 결과
적으로 근대 학문체계가 서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바로 이
러한 부분이 과연 중국에 ‘중국철학’이 가능하냐의 합법성 문제가 제기되는
원인일 것이다. 즉 중국 경학(經學)과 자학(子學)이라는 전통사상 속에서 서
양철학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발견하여 중국철학사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정립한다는 것이 결국 서양 학문체제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판의
중요한 논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당시 펑유란의 ?중국철
학사(상)? 심사보고서를 통해 더욱 명확한 두 가지 방향성의 문제로 제기된다.
진웨린(金岳霖)은 펑유란의 ?중국철학사(상)?에 대한 「심사보고 2(審査報
告二)」에서 우선 중국에 철학이 있느냐와 관련하여 철학에는 실질과 형식이
있으며, 이 두 가지 모두에 부합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중국철학과 관련하여서는 중국 국학의 특별한 학문으로 보거나 중국
철학을 중국사상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지만, 당
시 서구 영향 아래에서 가능한 것은 중국에서 철학을 발견한다는 태도로
중국사상을 보아야 할 것이며 결국 중국철학사는 바로 중국이라는 지역의
철학사가 된다고 보았다.34)
또한 천인취에(陳寅恪, 1890~1969)는 「심사보고 1」에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고대 문헌 자료들은 산실되기도 하고 그 내용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연관 자료의 종합과 수집을 통해 그 체계를 세우고 정리를 진
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처한 시대, 환경, 학설의 영향 아래 고대를
33) 馮友蘭, 2000e, 앞의 책, 249쪽.
34) 金岳霖, 2000, 「審查報告二」, ?中國哲學史(上)?, 馮友蘭, ?三松堂全集 2?, 鄭州:河南
人民出版社 617~618쪽.
258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바라보게 되므로 “지금 중국 고대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체로 지금 자신
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렇게 저작한 중국철학사는 바로 지금 자신
의 철학사이다. 그 논의의 논리가 정연한 체계일수록 옛사람들의 학설의 진
상과는 더욱 멀어진다”35)라고 평한다. 또한 중국 고대사의 자료들은 유가(儒
家) 경전이든 제자(諸子)의 경전이든 한 시대, 한 작자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
에 지금의 학자들은 당연히 종관(縱貫)의 시각을 가지고 한 학파의 저작 혹
은 전승된 어록을 살펴보아야 하며 단순히 그 횡적 절단을 통해 보려 한다면
사학의 기본 이해가 모자란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유명한 두 편의 평가 보고서는 대단히 중요한 중국철학의 두 가지 진로
를 지적한다. 우선 진웨린의 경우 중국철학은 바로 중국에서 서구 구미철학
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내용을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찾아내어 논의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특히 펑유란은 중국철학의 임
무를 형식적 체계가 없어 보이는 중국 전통사상에서 중국철학의 실질적 체
계를 찾아내는 것으로 보았지만, 진웨린은 철학이라는 형식과 실질에 부합되
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천인취에의 경우 철학사 연구가 가지는 제한적 의미를 대단히 심도 있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고대 저작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 텍스트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전승된, 누적된 학파의 의견임을 확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
라 철학사 연구가 가지는 이금해고(以今解古: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이해한
다)의 위험을 지적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펑유란은 “이른바 서
술된 역사와 서술된 철학사는 영원히 다시 쓰일 뿐이다”36)라는 시각을 갖고
있기에 천인취에의 시각은 펑유란의 관점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5) 陳寅恪, 2000, 「審查報告一」, ?中國哲學史(上)?, 馮友蘭, ?三松堂全集 2?, 鄭州:河南
人民出版社 613쪽.
36) 馮友蘭, 2000a, 앞의 글, 73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59
즉 천인취에가 이야기하는 동정적 이해는 바로 그 시대적 상황과 한 학파
혹은 개인이 가지는 시대적·사회적 환경의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를 진웨린과 비교하여 보면, 상당히 중국 본위적
이며 역사적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이
평가서를 통해 ‘중국철학’의 두 가지 방향성, 곧 중국 본위와 철학 본위의
두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펑유란은 어떠한 길을 걸어간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펑유란의 중국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두
질문과 이에 대한 대답을 참고할 수 있다. 우선 ‘중국철학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장래의 중국철학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게 될까?’ 이
에 대해 펑유란은 중국철학의 철학으로서의 당위성 그리고 미래의 세계 철학
과 관련하여 1948년 영문으로 쓰인 「중국철학과 미래 세계 철학(中國哲學與
未來世界哲學)」을 발표한다. 그는 이곳에서 형이상학 중 특히 플라톤과 칸
트를 유가와 도가의 일부 사상과 비교하면서 중국철학은 철학과 근본적으
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한다.37) 즉 펑유란은 중국철학이 가능하며, 특
히 중국의 의리지학(義理之學)이 바로 중국철학이라고 보면서 자신의 신이학
이라는 관점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38)
펑유란은 중국철학의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방법론과 관련하여서는 필머
노스럽(Filmer Stuart Cuckow Northrop, 1893∼1992)의 관점을 인용하면서 개념
37) 馮友蘭, 2000e, 「中國哲學與未來世界哲學」, ?三松堂全集 11?, 鄭州:河南人民出版社,
589~592쪽.
38) 이러한 관점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최근의 천라이(陳來)는 중국의 의리지학(義理之學)이
바로 중국철학이라고 본다(陳來, 2001, 앞의 논문, 359쪽). 하지만 여전히 중국철학이 구
미철학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며 다른 부분도 있다고 본다. 천라이는 이것을 철학의 보편
성과 특수성이라는 관점으로 화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철학을 구미철학으로 연구하고 중
국철학 대신 중국사상 연구라는 현대적 학술 규범을 만드는 것이 좀 더 나은 것이 아니냐
는 비평은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후스가 중국철학 연구에서
중국사상 연구로 전환한 이유이며 현재 ‘중국철학’의 합법성에 질의를 제기하는 일련의 학
자들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60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에는 두 유형이 있으며, 하나는 직관을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39)
펑유란은 중국철학은 직관의 개념을 사용하고 이것이 바로 부(負)의 방법
이고, 구미철학은 가설의 개념을 사용하고 이것이 바로 정(正)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우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는 특히 중
국의 도가, 불교와 같은 경지에 관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언설로는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그것은 무엇이 아니다와 같은 부정적 정의를 통해서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중국의 도가와 불교의 선종의 관점에
서 보자면 구미의 신비주의는 여전히 덜 신비주의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이
와 달리 논리 분석의 방법은 형이상학의 정(正)의방법론으로 보았다. 이 부
분이 바로 중국철학 영역에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이러한 이유 때
문에 장차 중국철학은 점점 이성주의 논리 분석적 연구 방향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며 구미철학은 조금 더 신비주의 쪽으로 다가가면서 상호 보완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40) 이러한 그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펑
유란의 기본 관점은 바로 중국철학의 신비주의적 요소는 구미보다 더 멀리
나아간 것이며 상대적으로 중국철학의 논리 분석적 요소는 구미보다 부족한
것이니 향후 두 철학적 방향이 서로 상호 보완하며 좀 더 통합된 세계 철학
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철학의 본질과 이에 대한 이해의 방법은 어떠
한 경로를 통해서 가능한 것일까? 당연히 펑유란은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와
경험의 합치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러한 분석적 이해는 정부(正負)의 방법론
을 통한 각성(覺解)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펑유란은 이러한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중국철학을 바라보며 자연, 공리,
39) 馮友蘭, 2000d, ?中國哲學簡史?, ?三松堂全集 6?, 鄭州:河南人民出版社, 24~25쪽,
287쪽.
40) 馮友蘭, 2000e, 앞의 글, 591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61
도덕, 천지의 네 가지 경지(境界)를 제안한다.41) 이러한 경지는 인륜과 일용
생활 속에서 개인의 각성(覺解)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펑유
란이 제기한 이 네 가지 경지는 각성(覺解)의 많고 적음을 통해 자연·공
리·도덕·천지의 경지로 순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자연의 경지에서 사
람은 아무런 이해 없이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지만 공리의 경지에서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하고 도덕의 경지에서는 자신을 버리고 도덕적 목적을 위
해 행동하며, 마지막 단계인 천지의 경지에서는 천지와 하나가 되어 자신이
천지간의 한 사물이면서 천지간의 일들을 행하는 최고의 경지라고 보았다.42)
즉 펑유란은 중국의 의리지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것을 구미의 논리 분석방
법과 철학으로 재해석하면서 ‘중국철학’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신이학(新理學)은 바로 중국과 구미 철학의 통합이며 그의 철학적 진
41) 이와 관련하여 더욱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정인재, 1992, 「현대중국학자
들의 유가에 대한 해석」 , ?동아연구? 제25집, 1~30쪽;김진근, 2007, 「중국철학사 연구
방법론에 관한 하나의 고찰」, ?유교사상연구?제28집, 312~322쪽;이상돈, 2010, 앞의
논문, 27~54쪽.
42) 馮友蘭, 2000c, 앞의 책, 504~505쪽. 펑유란이 언급하고 있는 신비주의는 논리 분석을
통해 특히 정부(正負)의 방법론을 통해 경험과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즉 펑유란 자신은
중국과 구미의 분석철학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구미 분석철학의 방법론으로 중국철학을
재해석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세운 것이기에 그의 철학 이론이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타
당성은 있는지와 같은 논의는 본 논문이 분석하려는 대상이 아니었다. 펑유란이 주장하는
창조주 역시 감각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과 관련하여, 사실 펑유란이 지적하는 감각이란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논리 분석을 통한 개념의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 되는 각성의 경
지에서 일어나는 이해를 가리킨다. 당연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감각과는 다
른 것임을 밝혀 둔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성을 통해 진행된 이해가 보편적으로 성립 가능
한가?’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이에 대한 이론적 비판이 진행 중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논
의는 주 41과 49의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본 논문의 경우 그의 철학 개념의 수용 및
정립이 가지고 있는 개념사적 분석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그의 이러한 개념 성
립이 사실은 당시 중국사상계의 핵심 개념이자 사회적 현상의 주류였던 과학, 역사, 심지
어 후스와 같은 당시 주류 사상과 경쟁 과정의 산물이며, 우리는 이러한 개념 성립 과정의
고찰을 통해 펑유란의 개념 속에 녹아 있는 당시 사회의 충돌과 경쟁 관계를 파악하면서
개념사 연구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자연히 펑유란의 개념, 그가 설계
한 신이학이라는 철학체계의 옳고 그름 혹은 그 이론에 대한 분석은 본 논문의 주요 목표
가 아니었음을 밝혀 둔다.
262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로는 바로 이러한 각성(覺解)을 바탕으로 새로운 철학적 세계의 이해와 탐색
에 있다고 하겠다.
3) 철학의 철학
펑유란이 자신의 ?중국철학사(상)?에서는 왜 중국 전통의 의리지학으로
서구의 학제 혹은 학문 제 분야에서 그와 같은 의리지학을 찾지 않느냐고 질
문했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중국사상 전통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것이었으
며 이를 자신의 연구 방향으로 설정한다. 즉 진웨린(金岳霖)의 관점과 그 궤
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뇌를 바탕으로 펑유란은 1928
년 8월 새로운 신이학을 제안한다.
우리가 현재 말하고 있는 것, 이학(理學)은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치를 따지
는 학문을 가리킨다. 만약 이학이 우리가 말하는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라고 한다
면, 이학은 철학의 철학(哲學底哲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
것은 이전에 이른바 이학의 의미는 아닐 것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체계를
신이학이라고 부르려고 한다.43)
그의 신이학은 먼저 철학과 과학의 구별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그는 ‘철
학은 미성숙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쁜 과학’44)이라는 비판에 대해 반
론을 제가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정리해 나간다. 그는 문장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베르그송과 비판철학 역시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리 분석에 치중한
철학 논의를 시작한다. 특히 존재의 본연의 모습을 진제(眞際)로 자연의 모
습을 실제로 구분하면서 진제가 실제를 포함하는 것으로, 진제는 철학의 관
43) 馮友蘭, 2000b, ?新理學?, ?三松堂全集 4?, 鄭州:河南人民出版社, 4쪽.
44) 馮友蘭, 2000b, 앞의 책, 5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63
념·명제·추론·형식논리를 포함하면서 반드시 실제와 경험에 국한될 필요
는 없으며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그는 실제에 치중
할수록 과학에 가까워지며 진제에 치중할수록 철학에 가깝다고 보았다. 이러
한 펑유란의 사상을 주광친(朱光潛)은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설명한다. 즉 진제
는 시간과 공간 일체를 초월하는 이(理)이며 실제의 최후의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것은 기(氣)이다. 진제의 모든 이치의 전체를 가리켜 태극이라고 하
며 무극(無極)은 물질의 기초이니 모든 것은 무극에서 태극으로, 기에서 리로
형상화하여 간 것으로, 이것이 바로 실제 세계이며 진정한 철학의 대상은 형
이상학, 즉 진제에 대한 이해라고 보았다.45)
이러한 진제에 대한 이해는 바로 현실 세계의 각종 경험과 지식을 개념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고, 또한 논리 분석과 해석을 통해 실제를 이해하는 것으
로 이로써 진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또한 펑유란은 과학인
물리학이 형이상학을 논하고, 심리학이 지식론을 논하느니 그냥 물리학을 연
구하고 심리학을 연구하는 것이 옳다고 정리한다. 마치 본문에서 언급한 후
스의 「철학의 장래」에서 언급된 이론물리학과 심리학이 철학적 논의를 대체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논지를 통
해, 우리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철학이 직면한 즉 과학주의의 철학 비판에
대응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펑유란이 보기에는 철학이 비록 실제를
넘어서는 연구이지만 여전히 경험 세계를 통해서 철학의 관념·명제·형식
논리를 향해 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경험이 과학의 증명을 통
해 성립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았다. 철학 자체의 논리 분석
의 정합으로 충분한 것으로 본 것이다. 또한 현실 세계의 통치와 변혁과도
밀접하게 연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세계를 바라보며(觀), 철학의
철학으로 사물을 바라보니(以理觀物),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심관(心觀)이며
45) 朱光潛, 2000, 「馮友蘭先生的?新理學?」, 馮友蘭, ?三松堂全集 5?, 鄭州:河南人民出版
社, 483쪽.
264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정관(靜觀)으로 진제에 대한 논리적 이해와 ‘인도(人道)’적 근거를 바탕으로
동정적 이해를 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즉 사회과학이 주장하는 현실 참여와
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의 관점은 당시 과학과 민주로 대변되는 과학적 태
도로, 민주정치에 적극 참여하던 후스와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현실 정
치에 참여하던 공산주의와 같은 각종 사상과 의도적 거리를 둔 것으로 보인
다. 펑유란은 철학과 과학 모두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과학에
기반을 둔 철학은 매번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견에 따라 수정되어져야 하
는 종속적 관계에 그치지만 자신이 제안하는 진제에 다가가는 철학은 과학의
이론에 기반을 두지 않기에 그와 같은 종속 관계에 있지 않으며 오직 형이상
학만이 철학 중의 가장 철학적인 부분으로 영원히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고
보았다.46)
심지어 그는 “과학은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진보할 수 있지만 철
학은 마음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것으로 진(眞)은 이치를 하나하나 모두 알아
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이치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 비록 진은 불변의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분석과 해석하면
서 진을 알게 되기에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이해 방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
한 현대처럼 논리학이 진일보한 경우 과거 사람들보다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기에 “한 시대에 비록 완전히 새로운 철학은 없지만 완전히 새로운 철학자
는 가능하며 비교적 새로운 철학도 가능하다”47)고 보았다. 이외에 우리가 주
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펑유란이 언급하고 있는 진의 이해, 철학의 철학이
바로 이학(신이학)으로 이치를 따지는 학문이며 형이상학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형이상학이 구미의 형이상학(metaphysics)과
는 다르다고 정리한 사실이다. 펑유란은 유심론에서 언급하는 우주의 마음,
우주의 정신,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 역시 감각의 대상으로서 형이하학이
46) 馮友蘭, 2000b, 앞의 책, 11~15쪽.
47) 馮友蘭, 2000b, 앞의 책, 15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65
라고 보았다.
우리의 지식은 감각에서 시작되며 감각의 대상은 사물과 사물들 모두 형이하학
이다. 우리는 감각의 대상에 대해, 사물들에 대해 이지적 분석을 가하고 그것을 통
해 형이상학을 알게 된다. 사물에 대한 분석은 ‘격물(格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렇게 사물의 분석을 진행하기 때문에 형이상학을 알게 되는 것이니 이것
을 ‘치지(致知)’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48)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펑유란이 초기 베르그송의 영향 아래 과학적
지식과 동정적 이해를 통한 철학의 가능성을 추구하던 시기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중국철학의 격물치지를 통해 구미의 형이상학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제안했음을 알 수 있다. 펑유란이 반복하여 설명하
는 것 즉 철학, 철학의 철학, 철학 중의 철학은 바로 진제의 이해를 통한 형
이상학 즉 신이학을 가리키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철학 체
계를 서구의 철학 개념과 중국 전통사상의 기초 아래 신이학으로 체계화하여
과학주의에 대척점에 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펑유란의 이러한 논리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체계의 구상은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그의 철학체계에서 중요시하는 논리 분석이 러
셀 혹은 비엔나학파의 논리 분석방법과 그 이론적 기본 인식과는 상당한 거
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49) 또한 논리 분석 실증주의가 형이상학을 경험 세
48) 馮友蘭, 2000b, 앞의 책, 33쪽.
49) 후쥔(胡軍)은 러셀과 비엔나학파는 기본적으로 명제와 사실의 대응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펑유란은 경험 사실을 형식과 내용으로 나누어 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대
상의 구체적 내용의 변화는 무시하고 오직 형식에 대한 논리 분석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
판한다. 심지어 펑유란이 경험 사실의 논리 분석을 통해 형이상학체계를 연역해 내려는
시도는 인식론과 형이상학 간의 구별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
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였다. 胡軍, 1996, 「馮友蘭 ?新理學? 方法論批判」, ?21世紀?, 83~86쪽[http://www.cuhk.edu.hk/ics/21c/issue/articles/038_960216.pdf(2015.
10. 20. 검색)].
266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계의 과학 명제를 통해 분석하려는 오류를 보이는 것처럼, 펑유란 역시 경험
의 사실부터 형이상학의 세계를 탐지하려는 방법이 과연 그의 생각처럼 가능
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더군다나 중국철학의 인생의 신비주의
적 경지와 인식론의 방법론을 통해 소통과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느냐의 이
론적 가능성 역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50)
또한 펑유란의 이러한 이론화 작업에 대해 천인취에(陳寅恪)의 평론을 참
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천인취에가 보기에는 우리 자신이 처한 시대, 환
경, 학설의 영향 아래 고대를 바라보게 되므로 “지금 중국 고대철학을 이야
기하는 것은 대체로 지금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논의의
논리가 정연한 체계일수록 옛사람들의 학설의 진상과는 더욱 멀어진다.”51)
당연히 펑유란의 신이학이 더욱 논리 정연한 체계를 이루어 낼수록 사실은
‘중국철학’과 ‘철학’은 중국 전통의 옛 학설의 진상과는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어떻게 보면 펑유란은 자신이 제기한 것처럼 올곧이 한
길을 걸어간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그 자신이 언명한 것처럼 “철학
을 연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한편으로는 철학사를 연구하고 이를 통해 각 위
대한 철학체계가 세계와 인생에 대해 세운 도리들을 보고, 또 한편으로 실제
의 세계와 인생을 직접 관찰하면서 스스로 도리를 세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
이다”52)에서 말하듯이 중국철학사를 연구하고 실제 당시 세계를 관찰하고
바라보면서 새로운 철학세계를 세우는 길을 걸어간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
까? 그의 철학 연구가 보여 주는 중국철학과 세계철학의 합치에 대한 기대는
바로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일 것이다.
50) 胡軍, 1996, 앞의 글, 86~87쪽.
51) 陳寅恪, 2000, 앞의 글, 613쪽.
52) 馮友蘭, 2000a, 앞의 글, 71쪽.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67
5. 결론
펑유란은 ‘중국철학사’와 ‘철학’이라는 개념과 학문이 중국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철학과
라는 학문 영역의 성립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의 시대 환경 아래 중국에서 그의 철학 발전 경로는 중국철학사를 통해
‘중국에서 철학의 발견’을, 또한 ‘신이학’이라는 경로를 거쳐 자신의 철학체계
를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적어도 그의 사상체계 성립 초기에는 철학과
과학이라는 영역에도 과학방법, 즉 논리적 분석방법이라는 공통된 통로에 주
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펑유란이 다양한 연구와 저작
과정 또한 「과현논쟁(科玄論戰)」과 같은 과학주의의 대대적인 영역 확대와
철학에 대한 공격을 거치면서 점점 더 확고한 자신의 철학체계를 추구하게
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와 저작을 통해 철학만의 고유
한 영역인 형이상학이 존재함을 강조하면서 과학과는 다른 새로운 철학의 영
역을 완성하여 간다. 특히 중국에서의 철학 발견을 넘어서서 독특한 자신의
철학체계를 완성하면서 철학이라는 학문의 중국화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
게 된다.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철학사상 속에서 개념들이 자라나고 성
장하고 발전하며 꽃을 피우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펑유란을 통해
‘중국철학’과 ‘철학’ 그리고 개념, 경험, 실제와 진제의 체계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신이학을 볼 수 있었다.
펑유란은 어떤 시대에도 다양한 철학의 연구 경로가 가능하며 이러한 다
양한 경로는 개인에 따라, 학파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와
특수한 면목과 특수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를 서로 충분히 인정해 주면서 결국에는 사회적 다양성의 통합을 통해
최종적 대화합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어쩌면 펑유란의 중국철학과 철학의 추
구는 이러한 대화합을 바라는 개인의 학문적 성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
까?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철학은 없을 것이다. 펑유란은
268 _ 개념과 소통 제16호(2015. 12)
철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구미와 중국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철학을 기대했
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노력을 보면서 한 시대의 한 철학자의 고뇌가 담긴
철학의 길은 바로 그가 바라던 다양성의 대화합을 향하던 지난한 탐구의 길
을 가리키고 있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접수일(2015. 11. 11), 심사 및 수정일(1차 2015. 12. 14, 2차 2015. 12. 22), 게재확정일(2015. 12. 22)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6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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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과 철학 개념 고찰 _ 271
* Professor at the Department of Chinese Studies, Hallym University
Abstract
Feng Youlan’s Approach to Chinese Philosophy
and Its Underlying Concepts
Taekeun Yang*
■ Keywords:Feng Youlan, Chinese philosophy, philosophy, philosophical concepts
Feng Youlan w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pioneers responsible for
establishing Chinese philosophy as a modern academic discipline, offering
a novel approach to understanding its fundamental concepts, and he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introducing Western philosophy to China.
Despite his success in establi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