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하이데거의 해체적 사유
III. 해체개념을 둘러싼 논쟁
IV. 도가의 해체적 사유
V. 맺음말
본 연구는 홍익대학교 신임교수 연구지원비에 의하여 지원되었음.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Hongik University new faculty research support fund.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통권 151호) 7‒40쪽
8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I. 머리말
하이데거와 도가 사이에는 ―엘버펠트(R. Elberfeld)나 마이(R. May)며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여러 측면에서 사유의 근친성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G. 파크스(Graham Parkes)는 하이데거와 노자의
사유가 “예정조화(pre‒established harmony)”라도 된 듯 유사성을 보인다
고 진단하고 있으며, 한국계의 미국철학자 조가경 교수 또한 두 철학자
사이에는 “신비에 가득 찬 상응(geheimnisvolle Entsprechung)”과 철저한
“근친성(Verwandtschaft)”이 있다는 것, 전동진 교수도 “노장사상과 하이
데거의 사상 사이에는 도저히 간과될 수 없는 본질적 유사성이 존재한다.”1)
고 지적하며, 프리쉬만(B. Frischmann)은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철학
사이에 여러 상응점들(Parallelen)이 있다고 지적한다.2) 무엇보다도 하이
데거는 도가의 사유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중국인 샤오(Paul Shih‒Yi
Hsiao)와 함께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해보기도 했는데,3)4) 2차 세계대전
이라는 끔찍한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 작업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었다.
물론 위의 논의와는 달리 하이데거와 도가 사이에서는 유사성 외에
차이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5)
철학적인 내용면에서도 이들 양자 사이에는 도(道)와 ‘존재’의 유사한
의미에서, 침묵(Stille)과 ‘침묵언어’(sygetische Sprache)에서, 무(Nichts,
無)와 빔(虛, Leere)의 사유에서, “부정존재론”에서, ‘길’(道: Weg)의 철학적
1) 전동진, 「하이데거와 노장 사상」, ?하이데거 철학과 동양사상?(철학과 현실, 2001),
142쪽.
2) 하이데거와 도가철학의 근친적 사유세계에 관해선 윤병렬, 「하이데거와 도가철학의
근친적 사유세계」, ?정신문화연구? 제142호(2016), 1‒3쪽.
3) G. Neske(Hg.), Erinnerung an Martin Heidegger (Klett‒Cotta 2003), p. 121, 125;
Hugo Ott, Martin Heidegger (Campus Verlag 1992), p. 326.
4) 하이데거는 ?노자도덕경?의 제 15장에 나오는 한문의 두 구절(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
安以久動之徐生: 누가 능히 탁류를 고요하게 정지시켜서 천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능히 안정한 것을 천천히 생동하게 할 수 있겠는가)을 장식용으로 자신의 연구실
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또한 O. Pöggeler에 의하면 하이데거는 B. Brechts의 노자
시(詩)(Lao Tse‒Gedicht)를 좋아했다고 한다: O. Pöggeler, Neue Wege mit Heidegger
(Alber: Freiburg/München 1992), p. 393.
5) 이를테면 전동진 교수가 지적하듯―동서양의 고대 사유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만
물의 근원으로서의 절대적인 일자”로서의 도(道)는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와는 다소 거
리가 있는 것이다(전동진, 「道와 存在」, ?논문집? 제15집(수원대학교, 1997), 26‒
32쪽.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9
의미에서, 도(道)와 존재의 피지스적 특성에서, “시원적 사유(das anfängliche
Denken)”에서, ‘무위(無爲)’와 유사한 “초연한 태도로 내맡기는
것(Gelassenheit)”에서,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사유(Rückkehr in den
Ursprung)”에서, 반‒형이상학적이고 반‒인간중심주의적인 성격에서 기
타 그 유사성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소고(小考)에서 위에서 언급한 관점 외에도 해체적
사유를 중심으로 하이데거와 도가의 철학에서 그 유사성을 검토해보려고
한다. 도가와 하이데거는 각각 당대의 사유세계(존재망각, 대도폐大道廢
와 실도失道 및 무도無道)에 적극적으로 해체로서 대처하고 대안과 이정표
또한 제시하였다. 주지하다시피 “해체(Destruktion)”라는 개념은 하이데
거가 먼저 사용했고, 근대의 이성중심주의적 사유를 신랄하게 공격한
니체의 사유에서 이미 탈‒근대적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이 개념을 발전시켜 “해체주의”를 정립하였다.6)
하이데거는 서구의 철학사가 본래의 존재의미를 망각하고(Seinsvergessenheit)
형이상학으로 전락한 것에 대해 시종일관 해체를 감행하고
시원적인 존재개념을 획득하는 것을, 나아가 이를 오늘날 우리가 살아
생동하는 것으로 체험할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그런데 도가의 사유도
‘대도(大道)’ 혹은 상도(常道)를 망각하고 자질구레한 규범과 인위적 제도
등으로 전락한 당대의 세계(특히 유가와 법가)에 해체와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런데 이러한 철학자들의 노력은 결코 해체를 위한 해체가
아니라 상실된 본래성을 되찾고 온당한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한 철학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논의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머리말, 하이데거의
해체적 사유, 해체개념을 둘러싼 논쟁, 도가의 해체적 사유, 맺음말.
6) 니체와 하이데거의 사유가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여한 것에 관해선 G. Vattimo, Das
Ende der Moderne(Reclam: Stuttgart 1990), pp. 5‒12. 또 바티모와 유사하게 니체와
하이데거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여한 바를 신승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살
림, 2005), 32‒40쪽.
10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II. 하이데거의 해체적 사유
주지하다시피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는 그의 전후기 사유를 막론하고
줄곧 “존재망각”과 형이상학에로 전락된 존재론의 역사를 현상학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그의 해체적 사유는 전기사유 중에서도 아주 이른 시기부
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나토르프‒보고서(Natorp‒Bericht)”라고 일컬어
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Phänomenologische
Interpretation zu Aristoteles)7)에서도 ‘해체(Destruktion)’개념이 등장하
는데, 하이데거는 이 개념을 언급하고 파악하는 차원을 넘어 해체적
독법으로 사태에 접근하고 있다. 인간의 현존재를 해석하든, 인간의
실존을 해석하든, 고대그리스철학을 해석하든, 나아가 철학사 전체를
누비며 항해하는 모든 곳에서 그가 “현상학적 해석”으로 접근하는 곳에서
는 해체적 독법이 수행되고 있다.8)
하이데거에 의하면 해석학은 아예 “해체의 도상에서만(nur auf dem
Wege der Destruktion)”9) 자신의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 시원적인
것에서부터 왜곡되거나 오해된 채 혹은 망각된 채 전수된 것으로서
지배적인 “해석되어 있음(Ausgelegtheit)”이나 경화된 것을 흔들어 유연하
게 하고, “해체하는 소급을 통해(im abbauenden Rückgang)” 근원적인
동기원천에로 전진해가는 것이야말로 해석학의 과제인 것이다.10) 그런데
시원으로 향하는 “해체적 소급”은 그러나 과거에 대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즉 해체하는 자신의 근원적인 경험을 위해, 자신과
맞닥뜨리는 문제의 관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해석학적 탐구에서 수행
되는 “역사와의 해체적 대결은 이전에 어떠했는지를 예시할 목적으로
추가된 단순한 내용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7) M. Heidegger, Phänomenologische Interpretation zu Aristoteles, in Dilthey‒
Jahrbuch für Philosophie und Geschichte der Geisteswissenschaften, Bd.6(1989),
Hrg. von Frithjof Rodi (Vandenhoeck und Ruprecht: Göttingen, 1989). 앞으로 이
책을 M. Heidegger, Phänomenologische Interpretation zu Aristoteles 로 압축함.
8) 하이데거는 실존자체도 “구체적인 현사실성의 해체에서만 통찰될 수 있다”고 한다(M.
Heidegger, Phänomenologische Interpretation zu Aristoteles, p. 245).
9) M. Heidegger, Phänomenologische Interpretation zu Aristoteles, p. 249. 국내 번역서
로는 마르틴 하이데거(김재철 번역 및 해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
(누멘, 2010), 44쪽.
10) M. Heidegger, Phänomenologische Interpretation zu Aristoteles, p. 249.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11
대한 임시적인 개관도, 나아가 세계사적 관점을 가지고 마련된 흥미로운
기획을 위한 자리도 아니다. 오히려 해체는 현재가 자신에게 고유한
근본 운동에서 자신과 맞닥뜨려야 할 본래적 과정이다.”11)
해체에 관한 하이데거의 기획은 ?존재와 시간?의 서문(Vorwort)에서
도 나타나는데, 그는 본론에서 이 기획을 치밀하게 추진시키고 있다.
그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요」(“Einleitung zu: Was
ist Metaphysik? ”)에서 다시금 그가 ?존재와 시간?의 서문에서 모토로
삼았던 플라톤의 ?소피스트?(Sophistes)의 구절들을 언급하는데, 우리의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이를 인용해보기로 한다:
… δῆλον γὰρ ὡς ὑμεῖς μὲν ταῦτα (τί ποτε βούλεσθε σημαίνειν ὁπόταν ὂν
φθέγγησθε) πάλαι γιγνώσκετε, ἡμεῖς δὲ πρὸ τοῦ μὲν ᾠόμεθα, νῦν δ᾽ ἠπορήκαμεν
… 그대들은 확실히 이미 오래전부터 그대들이 ‘존재하는(ὂν: seiend)’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본래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이전에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믿기는 했지만, 이제 우리는 당혹스러움에 빠져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라는 말로 본래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제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존재’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당혹스러움에라도 빠져
있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답을 구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먼저 이 물음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 마땅하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이어지는 논문의 의도이다.
시간을 모든 존재이해 각각의 가능한 지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논의의 우선적인
목표이다.12)
위의 짧은 서문에는 통속적 견해와는 달리 하이데거가 고대 그리스에서
존재물음이 이루어졌다는 것과 존재론의 역사에서 그러한 물음이 망각되
어져갔다는 것, 그러한 물음이 다시 일깨워져야 한다는 것, 시간을 존재에
대한 물음의 초월론적 지평으로 해명하는 것, 나아가 존재론의 역사를
11) 마르틴 하이데거(김재철 번역 및 해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누
멘, 2010), 45쪽. 하이데거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근본태도를 통해 해석학적
해체의 모범을 펼쳐 보이고 있다. 루터의 근본태도는 동시대에 있었던 후기 스콜라신
학(Duns Scotus, W. Occam, Gabriel Biel, Gregor von Rimini)과 대결을 벌이면서
근원적으로 전유된 그의 바울‒해석과 아우구스티누스‒해석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김재철 번역 및 해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누
멘, 2010), 46‒49쪽.
12) M. Heidegger, Sein und Zeit(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84), p.1.
12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현상학적으로 해체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서문의
존재물음이야말로 다름 아닌 플라톤과 동시에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거인의 싸움(gigantomachia peri tes ousias)”인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로부터 기원된 존재물음은 하이데거가 인용한 ?소피스
트?(Sophistes)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하이데거는 오늘날(즉 하이데거의
당대에) 그러한 존재물음을 제기조차 못하고 있음을 실토한다. 실로
고대그리스 이후 존재‒신론(Onto‒Theologie)에 빠진 중세나 인식론 및
인식형이상학으로 전락한 근대의 사유를 참조해보면 하이데거의 고발은
지극히 정직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는 플라톤의 시대에
도 존재물음이 여전히 생생한 전통 속에 서 있었지만, 이에 반해 하이데거
의 당대는 이미 수천 년에 걸쳐 존재개념이 은폐되고 망각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플라톤은 하이데거가
그토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
세계를 훤히 꿰뚫고 있었던, 그야말로 역설적인 표현에 어울리는 “마지막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Der letzte Vorsokratiker)”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위의 서문에서 무엇보다도 ‘존재’라는 개념의 의미를 망각
한 것에 대해 환기시킨다. ὂν(seiend: 존재하는)이란 개념을 이때껏 잘
이해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알쏭달쏭하여 당혹감에 빠졌다는
플라톤의 지적에 반하여 하이데거의 당대엔 존재물음조차도 제기하지
못하여 당황할 이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서문에서 인용한
?소피스트?의 구절(244a)은 그러기에 결코 ?존재와 시간?을 위한 어떤
장식이 아니라, 존재물음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부각시킨 것이며,13)
소광희 교수가 지적하듯 “책 전체를 꿰뚫고 있는 모토”14)인 것이다.
실로 플라톤은 존재물음에 대한 문제를 ?소피스트?(246a)에서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gigantomachia peri tes ousias)”15)이라고 칭했고
13) 한충수 교수는 「?존재와 시간?의 서문에 대한 고찰」에서 하이데거가 플라톤의 ?소피
스트?를 인용한 구절이 결코 어떤 장식이 아니라, 존재물음과 해체를 다룬 중요한
모토임을 온당하게 지적하고 있다(한충수, 「?존재와 시간?의 서문에 대한 고찰」, ?현
대유럽철학연구? 제48권(2018), 37‒59쪽).
14) 소광희,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문예출판사, 2003), 20쪽.
15) 여기서 거인들의 싸움이란 플라톤이 Sophistes(246 a‒c)에서 설명하듯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들인 거인족들(gigantes)과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 신들과의
싸움을 가리키는데, 전자는 오직 지상적인 것에만 의미를 두는, 말하자면 “바위와 참나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13
하이데거도 ?존재와 시간?의 제1절(§1)16)에서 이를 언급하는데, 이는
이미 고대그리스에서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거인의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ὂν(seiend: 존재하는)이 비은폐 되는
(unverborgen) 경우에 한해서 또한 이미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주목하지 못한다.”17) 하이데거의 이러한 논지는 형이상학이 ὂν에서 비은
폐되어 존재하는 것(das Seiende)에만 주목하고 은폐되어 있는,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의 존재에는 주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하이데거
의 철학적 노력은 철학사가 망각한 존재에 대한 물음을 다시 그리고
새롭게 제기하고 시원적 존재사유를 다시 철학의 지평 위로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존재망각으로 점철된 인류정신사는 결국 심각한 문제와
위기를 초래하여 존재의미가 망각된 자리에 굵직한 사물중심의 세계를
건립하였으나 인류에게 길 안내할만한 사유는 없고 정신의 동공현상과
니힐리즘의 나락에 던져진 상태이다. 특히 근대의 경우 의식과 이성(특히
‘도구적 이성: instrumentale Vernunft)’의 철학으로 변질된 형이상학은
결국 자연을 사물화하고 도구화하여 오늘날의 산업사회로 함몰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세계전체의 황폐화와 니힐리즘은 필연적인 귀결인
셈이다. 그러기에 존재망각과 니힐리즘, 형이상학의 세계에 처한 철학사
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체작업엔 그 의미심장한 중량과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노장의 당대의 주류세력에 대한 해체작업도 하이데거의 경우와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들의 당대에 이미 근원적인 상도(常道)
및 대도(大道)의 의미가 망각되고, 그 망각되고 폐기된 자리에 봉건적으로
형식화되고 경직된, 이데올로기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윤리규범으로서의
무를 손으로 움켜쥐고는 하늘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모든 것을 대지로 끌어내리
고, 만질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그런 것들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반해 후자는
“조심스럽게 높은 곳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며 진정한
존재는 심사숙고하는 사유를 통해 알 수 있는(νοητὰ), 물체 아닌 이데아들”이라고 주장
한다.
16) M. Heidegger, Sein und Zeit(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84), p. 2.
17) 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Die Metaphysik achtet jedoch dessen nie, was sich
in eben diesem ὂν, insofern es unverborgen wurde, auch schon verborgen hat.”(M.
Heidegger, “Einleitung zu: Was ist Metaphysik?”, in Wegmarken(Klostermann:
Frankfurt a.M. 1978), pp. 374‒375).
14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도(道)와 덕(德)이 자리 잡은 것이다. 정치‒사회‒윤리적인 규범으로서의
유가적 도(道)의 틀에 사람들은 얽매이게 된 것이다. 노자에게서의 대도
(大道)가 망각된 자리에 규범적‒형이상학적 유가의 도(道)가 자리 잡은
것은 마치 하이데거에게서 존재가 망각된 자리에 존재자 중심의 세계관과
형이상학이 자리 잡은 것과 유사한 이치다. 노장의 해체적인 사유는
그러나 결코 당대의 주류에 대한 막연한 비판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도(大道)가 망각되고 폐위된 것조차 주목하지 못하고 엄격한 규범으로
만 땜질을 하려는 것에 대한 지적이고 경고이며 해체인 것이다.
?존재와 시간?의 서문에서 밝힌 존재사유와 해체에 대한 메시지는
자연스레 본론에서도 이어져(특히 §4부터) 중요한 테마로 자리 잡았고,
특히 해체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과 방향도 윤곽지어진다. 주지하다
시피 ?존재와 시간?의 6절(§6) 제목은 “존재론의 역사에 대한 해체의
과제”인데, 여기서 해체의 과제가 존재론의 역사에서 엄폐되어버리고
왜곡되어버린 존재론의 역사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는 하이데거에 의하면 어떤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존재물음 자체를 위해서 그 물음의 고유한 역사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면, 그 때엔 경직화되어버린 전통을 유연하게 풀고 전통에 의해서 초래된 엄폐들을
제거하는 일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제를 우리는 존재물음을 실마리로 삼아서 전승된
고대 존재론의 요체를 근원적인 경험에로, 말하자면 그 속에서 최초로 그리고 그
이후에 줄곧 주도적인 존재규명들이 얻어진 고대의 존재론에로 해체해 들어가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존재론적인 근본개념들의 유래를 이런 방식으로 검토하는 일은 그 근본개념들의
‘출생증명서’를 탐구하여 교부하는 일로서, 존재론적인 관점의 나쁜 상대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해체는 또한 존재론적인 전통을 떨쳐버린다는 부정적인(negativen)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해체는 이와 반대로 전통을 그것의 긍정적인 가능성에서,
말하자면 이 전통의 한계 내에서 경계 지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18)
하이데거의 해체에 대한 기획은 ?존재와 시간?이 출간된 1927년의
여름학기에 마아브룩대학교에서 행해진 ?현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선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철학사에서 왜곡되고 엄폐되어버린
존재개념을 거슬러 올라가, 원래의, 그러니까 망각되기 이전의 존재개념
18) M. Heidegger, Sein und Zeit(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84), p. 22.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15
을 회복하는데 주력한다. 하이데거가 해체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존재론적 차이(Ontologische Differenz)”를 망각하는, 존재자를 존재로
오인하는, 존재를 존재자로 대체하는, 그리하여 결국 존재는 망각되고
존재자적 사유로 함몰되어버린, 전통형이상학인 것이다. 그런데 하이데
거의 해체에 대한 철학적인 노력은 위에서 언급된 두 권의 저서에 국한되
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저술에서 끝까지 수행된다. 그의 ?이정표?
(Wegmarken)에서의 “형이상학의 극복(Überwindung der Metaphysik)”
이나 ?기술에 대한 물음?, ?니체?(I,II) 등에서 좀더 집중적인 해체사유를
목격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해체적 사유는 그러나 그의 사유가 존재이해
를 위한 처절한 싸움이이라는 것을 목격하게 한다.
?현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하이데거는 “존재론의 방법(die Methode
der ontologie)”을 현상학이라고 규명하면서19) 존재가 ―마치 노장에게
서 무(無)‒유(有)의 존재방식과도 유사하게― 우선 “존재자의 존재”로서,
즉 존재자의 지반의 형태로 존재하는 존재에로 다가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존재자를 단초로 하지만, “현상학적 환원(phänomenologische Reduktion)”
에 의해 “순진하게 파악된 존재자(naiv erfaßten Seienden)”에게서 떠나
존재에로 향하게 된다고 한다.20) 여기서 “현상학적 환원”은 존재자에
붙잡힌 시선을 존재에로 되돌리는, 말하자면 존재를 이해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21)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 “현상학적 환원”만이 현상학적 방법의
중점적인 주요부분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현상학적
환원과 해체 외에도 “현상학적 구성”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어떤 현저하고 윤곽이 지어진 존재자와는 달리 존재는 ―노장에게서의
도(道)와도 유사하게― 그 접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쉽게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미리 주어져 있고 존재에로 이끄는 힌트의 역할을 하는
존재자를 그 존재와 구조들과 함께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구성(phänomenologische Konstruktion)”22)이라고 규명한다.
“현상학적 구성”은 우리의 시선을 존재 자체에로 적극적으로 이끄는
19) M. Heidegger, Die Grundprobleme der Phänomenologie, GA.24(Klostermann:
Frankfurt a.M. 1975), p. 27. 이 책은 앞으로 GA.24로 압축한다.
20) M. Heidegger, GA.24, pp. 28‒31.
21) M. Heidegger, GA.24, p. 29.
22) M. Heidegger, GA.24, p. 30.
16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존재자를 그 존재며 구조들과 관련해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존재론의 방법으로서의 현상학에는 환원과 구성 및 해체가
주요부분인데, 이들은 내용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속하기에,
그 공속성에서 함께 근거 지어져야 한다.23)
이리하여 원초적 존재개념을 이해하도록 하는 ‘해체’의 긍정적인 역할
을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철학의 구성은 필연적으로 해체인데, 이는 전승된 것을 역사적인 회귀 가운데서
전통으로 되돌아가 해체한 것이다. 이러한 해체는 전통을 부정하거나 공허한 것이라고
선고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이와 반대로 전통을 긍정적으로 취득하는 것을
의미한다.24)
그러기에 하이데거에게서 해체는 시원적 사유를 회복하기 위한 전통존
재론과의 생산적인 대결로서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초적
근원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근원을 되찾는 과정에서 해체는
결코 전통의 답습이나 반복 및 모방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모습을 드러내
고 오늘날 우리의 존재경험을 획득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사용한 ‘Destruktion’라는 개념은 우리말로 ‘해체’로 번역되
고 또 저명한 독일어사전인 Duden이나 Wahrig가 풀이하듯 ‘파괴
(Zerstörung)’라고도 번역되지만, 저 개념의 엄격한 어원에 입각해볼
때 De‒struktion, 즉 굳어진(짜여진) 구조에 대한 분리 혹은 반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해체’로 번역되든 혹은 ‘파괴’로 번역되든
그것은 원초적 존재개념의 망각 내지는 왜곡의 장막을 걷어내어 본래적인
것을 되찾는데 주목적이 있기에 “해체의 긍정적인 경향”을 분명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해체의 긍정적인 경향”을 고려할 때 하이데거의 사유를 이념적
인 ‘해체주의’나 해체를 위한 해체를 일삼는 이데올로기로 증폭시켜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진다. 해체주의의 해체를 위한 해체라거나 아무런
대안도 없는 해체는 무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타자들이 건축한 건축물
을 허무는 데만 골몰하는 해체주의자들의 행위엔 무엇보다도 해체의
23) M. Heidegger, GA.24, p. 31.
24) M. Heidegger, GA.24, p. 31.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17
정당성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III. 해체개념을 둘러싼 논쟁
20세기에서부터 크게 활동하기 시작하고 아직까지 그 영향력이 현재진
행형에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는 인류정신사에서 분명한 긍정
적인 기여도를 갖는다. 전체주의와 획일주의 및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
는 다원주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탈근대’로 번역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지배적인 이성중심주의와
주체중심주의의 일변도에 해체를 감행한 것은 ―이성과 주체를 뿌리째
부인하지 않는다면― 철학사에 분명한 기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의 이성숭배와 주체중심주의에서 발원한 진보사상은 인간의 “도
구적 이성”과 과학적 방법을 맹목적일 정도로 지나치게 신뢰해 왔다.
이러한 근대의 진보사상은 과학기술문명과 물질문명 일변도를 지향하여
정신문화의 빈곤화와 자연에 대한 착취 및 약탈을 일삼아 전 지구의
생태위기는 물론 인류의 “고향상실”(Heimatlosigkeit: 하이데거) 현상을
야기했다. 그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에 대한 해체적 사유는 하이
데거 및 도가의 사유와 공유하는 바가 크며. 이들의 해체적 사유는
분명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근대의 이성숭배와 주체중심주의에서 발원한 진보사상은 오늘날 생태
학적 위기와 환경파괴(이런 현상은 오늘날 전지구적 재앙으로 일컬어진
다),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지배와 착취, 고성능 과학무기와 핵무기로
인한 몰살위기, 산업사회에서의 인간소외, 가치관 전도현상(물질중심주
의) 등등 수많은 새로운 고통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과학기술 및 산업시스템과 연계된 자본주의는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조직적으로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상응하여 인간과 자연의
괴상망측한 관계,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인 지배(인간중심주의)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근대에서 발원한 과학기술문명과 자본주의는 자연의 고유성
과 신비성을 박탈하고, 자연이 오직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구와
18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수단 및 자원으로 사용되어질 것을 강요한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이성의 부식’ 현상이 분명하며 이성이 ‘도구적 이성’에로 전락되었음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근대가 야기한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지배와
착취는 결국 자연의 고유성과 신비성을 박탈한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하이데거와 도가는 끝까지 준엄한 경고장을 보였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긍정적인 기여와는 달리 또 다른 부정적인
요인도 내보인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신의 이념을 극대화하는
과정에 드러난다. 근대가 이성을 도구로 삼아 비합리주의와 비이성에
가한 학대를 포스트모더니즘이 똑같은 레벨로 이성과 주체 및 의미에
대해 가학증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골드문트와 나르찌스(H. 헤세)는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한쪽이 망치를
들고 주도권을 쥐어서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허물고 헐뜯으며 해체를
위한 해체를 일삼으면 그것은 ‘해체’를 넘어 학대이자 복수극인 것이다.
해체를 한답시고 “모나리자”의 그림에 분뇨를 칠한다거나 “추상적
형식주의”로 칭해지는 몬드리안의 사각형 그림을 근대적 유산이라고
몰아붙이고선 이를 헐뜯는 작업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형식이나
체계 및 구조는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역설적으로 “형식이 주는
자유”25)도 있다. 앤서니 헤치는 서정시인이지만, “투명하고 정교하며
형식에 충실”26)하였다. 음악에서 비발디의 협주곡 또한 엄격한 형식을
추구하고 있다.
몬드리안의 예술작품이 근대적 이성을 작품화한 것이라는 오명을
씌워 해체주의자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망치질을 한다. 이런 해체의
선두 주자로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와 핼리(Peter Halley)의
경우에 잘 드러나는데, 특히 “네오‒지오”, 즉 신(新)‒기하 추상을 이끄는
핼리는 몬드리안의 사각형 모형의 예술작품을 푸코가 비꼬는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27)
또 몬드리안의 기하 추상미술에 드러난 사각형의 격자(grids: 格子)
양식의 “원본성”을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허구적인 것이
라고 일축하는데, 그녀에 의하면 사각형의 모형은 모더니즘의 양식을
2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노혜숙 옮김, ?창의성의 즐거움?(북로드, 2008), 294쪽.
26)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노혜숙 옮김(2008), 위의 책.
27) 이광래, ?해체주의와 그 이후?(열린책들, 2007), 102‒103쪽.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19
지배해온 허구적 개념인 것이기에 모더니즘의 운명과 함께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8) 그런데 핼리(Peter Halley)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몬드리
안의 기하양식 작품을 모더니즘의 카테고리에 넣고서 자신의 “네오‒지
오”, 즉 새로운 기하 추상미술을 통해 철저하게 비판하며 짓뭉개고 있다.
그에게서 몬드리안의 사각형 격자는 “이성적 억압 기제”29)로 받아들여지
고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감옥의 이미지에 패러디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전적인 기하추상을 모조한 작품 「토탈 리콜」을 통해
몬드리안의 작품양식, 즉 사각형의 격자를 짓뭉개어버리게 한다.
이를테면 그는 몬드리안이 삼원색으로 작품화한 「노랑·빨강·검정
의 구성」 위에 녹색의 정사각형을 덮어버리게 하여 몬드리안적 원본에
대해 총체적 해체를 요구하고, 그 대신 중앙에 위치시킨 자신의 녹색
정사각형은 “이미 중앙집권적으로 권력화 되어 있는 것이다.”30) 그러기에
핼리의 「토탈 리콜」은 몬드리안의 원본에 대하여 “도발적 <회상recall>이
고 그 질서에 대한 <소환recall>이며 그 지배적 권위에 대한 <철회recall>
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그 원본·질서·권위에 대해 회상하고 소환하
며 그것의 <총체적 철회total recall>를 요구하고 있다.”31)
이러한 해체주의자들의 몬드리안에 대한 “총체적 철회”의 요구, 가혹한
해체, 무자비한 망치질이야말로 미학세계를 전쟁터로 만드는 인상을
안겨준다. 몬드리안의 삼원색과 사각형 및 십자모형은 예술로 되어서는
안 되는가? 뭣 때문에 그의 사각형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의 억압기
제와 같은 감옥으로 비유되어야 하는가. 몬드리안은 도대체 자신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가질 수 없단 말인가. 결국 타자의 타자됨을 인정하지
않는, 타자‒배격 혹은 타자‒사망을 전제로 하는―더구나 예술의 세계에서
―것은 퍽 무모한 짓이다. 한편으로는 다원주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망치질과 사망선고를 하는, 또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상은 은근슬쩍 옳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무책임
한 이중인격적인 태도인 것이다.
해체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이성’을 몽땅 쓰레기통에 넣어 폐기처분하
28) Rosalind Krauss,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The Originality of the Avant‒
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 (MIT Press, 1985), p. 161.
29) 이광래(2007), 앞의 책, 105쪽.
30) 이광래(2007), 앞의 책, 103쪽.
31) 이광래(2007), 앞의 책, 103‒104쪽.
20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든지 혹은 끊임없는 해체의 대상으로 삼기위해 존속토록 해야 할까?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잘 지적하듯이 부식화된 “도구적
이성(instrumentale Vernunft)”은 오늘날의 문명에 대한 폐해를 고려할
때 분명 해체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32) 이성을 비이성이나
반이성과 동일시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과연 이성과 아폴론적 세계를 망치로 때려 부수고, 디오니소스의
세계를 정립하면 그것은 정당한 대안이 되고 세계가 어떤 유토피아로
될까?33)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디오니소스만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어야 하는가.34) 물론 그렇다고 아폴론적 세계관만 정당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H. 헤세의 골드문트와 나르찌스처럼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데리다가 철학사의 전반적인 철학
을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거나, 철학을 이제 버리고서
문학이나 예술로 나아가야 한다는 R. 로티의 (철학적인!)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자가당착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왜 철학을
했을까.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말로 로고스중심주의를 허물겠다는 로고스
중심주의자들이 아닌가.
“철학의 머리를 단두대(guillotine)에” 올려놓아야 하고, “신은 죽었
다”35)고 선언한 니체를 따라 모든 신적인 존재를 단두대에 올려놓는
32) 윤평중,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교보문고, 2005), 42‒53쪽.
33) 아폴론적 사유의 결핍은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결국 디오니소스적 존재 자체의
침몰을 가져온다. 오늘날 미투운동에 걸린 대부분의 거장들― 이를테면 시인 고은,
이윤택, 조민기, 김흥국, 재즈거장 류복성, 오달수, 최용민, 최일화 등등 ―은 대체로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추종하는 직업에 종사하지만, 이성적 성찰의 결핍과 무절제로
인해 쓸쓸한 말로를 걷고 있다.
34) 고대그리스의 신화적 인물인 디오니소스는 니체의 예술철학에서 하나의 신기원을 이
루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만약 우리가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이라고 규명한다면,
이것은 다분히 니체에 의해 각인되고 재창조된 그런 세계관이다. 니체에게서 힘에의
의지로서의 세계는 다름 아닌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광기와 광란의 원형, 파괴하고
창조하는 원형, 삶을 근원적으로 긍정하지만 어둡고 비극적인 생명력의 원형이 니체의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전기의 니체에게서 예술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짝으로, 필연적인 ‘대립 쌍’(Gegensatzpaar)으로 혹은 변증법적 짝으로
등장하지만,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균형은 일그러지고 디오니소스에게만 중량이
쏠린다. 니체는 곧장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형이상학적인 우위(den metaphysischen
Vorrang des Dionysischen)”를 설정하는 등 “비극의 전체적인 영향력에서 디오니소스
적인 것의 우월”을 내세웠다. 급기야 니체는 바그너와의 결별 이후엔 전적으로 아폴론
을 거의 제외시켜버린다.
35) 인간으로서는 “신은 죽었다”라거나 “신은 살아있다”와 같은 명제를 주장할 수 없다.
그것은 이 주장에 대해 입증하지 못하고 전제만 하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저지르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21
그런 오만불손한, 해체를 위한 해체는 하이데거와 노장의 해체적 사유와
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장의 사유를 해체와 관련시킨
다면, 그들의 유가와 법가 및 당대의 주류에 대한 해체는―우리가 앞으로
목격할 수 있겠지만―정당한 사유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위
조작적이지 않는 척도와 더 바람직한 세상을 위한 긍정적인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대체로 해체주의자로 지칭되지만,36) 철학자에
따라 ‘해체’의 강도가 심하여, 철학적 사유와 인식의 요체를 형성하는
‘주체’와 ‘의미’에 대해 사망선고를 하고, 타자의 철학에 대한 허물기와
“무자비한 비판”, 근대성에 대해 적개심에 가득 찬 “파산선고”와 “종언”(리
오타르)37)을 일삼기도 한다. 데리다38)와 푸코39) 및 리오타르40)의 해체주
의도 그 ‘해체’의 강도가 심하여 다른 것과 타자의 것이 끊임없는 해체와
분쟁의 재료로 자리매김 되는 편이지만, 그러나 이 해체의 과정에서
어떤 희망적이고 대안적인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적합한 논증이 이루어지 않기에 결국 무책임한 주장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니체도 결코 신을 죽이지 못했다. 그는 오직 신을 디오니소스와 자라투스
트라로 대체했을 따름이다.
36)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노장사상에 대한 광범위한 해체적 사유에 관해서는
김형효, ?老莊 사상의 해체적 독법?(청계출판사, 1999) 참조.
37) J.‒F. Lyotard,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postmodern?”, in Peter Engelmann,
Postmoderne und Dekonstruktion(Reclam: Stuttgart, 2007) 참조.
38) J. Derrida, Grammatologie, übersetzt von H.‒J. Rheinberger und H. Zischler
(Suhrkamp: Frankfurt a.M. 1983), p. 44.
39) 푸코는 “반이성주의의 유전인자”(이광래, ?해체주의와 그 이후?(열린책들, 2007), 83
쪽)를 가진 니체의 후계자로서 니체와도 유사하게 반이성적이고 반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광래, 앞의 책, 81‒93쪽 참조) 그도 니체처럼 반이성과 반철학을 전위대로
내세워 근대의 이데올로기인 이성중심주의에 비난을 퍼붓고 이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이광래 교수도 “푸코가 반이성을 무기로 삼아 이성의 독단을 거부하고 그것을 해체시
키려고 하였다.”고 술회하는데, 이는 니체와 푸코의 철학적 경향을 읽는 이에겐 쉽게
파악된다.
40) 리오타르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으로 근대이념을 재건하려는 하버마스의 기획에 극단
적으로 반대하여 근대의 기획이 이미 “포기되고 망각되어진 것이 아니라, 파괴되고
청산되었다.”(Lyotard, Jean‒Francois: Le Postmoderne expliqué aux enfants(Galilée:
Paris, 1986), p. 38.)고 선언하였다. 리오타르의 텍스트에서 우리는 ‘파산선고’와 ‘종언’,
‘사망선고’, “계몽사상에 마침표를 찍다.”, “근대는 이제 끝났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리오타르는 근대이념, 특히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이성”을 정치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와 직결시키고, 이런 근대이념을 전범으로 몰아간다. 과연 근대의 철학자들은
저런 이성의 속성을 정치적 전체주의를 위해 부각시켰는가. 그렇다면 리오타르에게서
이성은 곧 반이성이고 야만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가 성립한다. 그러나 히틀러
의 통치 시절에 수난을 당한 야스퍼스조차도 전쟁과 전체주의의 소행을 반이성이라고
규명하지 이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22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염세적인 멜랑콜리를 목격하게 한다.41) 아무런 대안 없는 해체와 수많은
‘종말’ 및 ‘죽음’, ‘파산선고’의 주장은 미래를 어둡게만 한다. 그 어떤
질서나 구조 및 형식과 제도도 해체의 틀에 넣는 것은 결국 사회체계의
와해, 비윤리적 탐미주의, 극단적 개인주의, 극단적 욕망의 주체화로
귀결되고 만다.
가다머(H.‒G. Gadamer)는 데리다가 하이데거의 ‘해체’(Destruktion)
개념을 원용하였으나, 이를 오해하고 잘못 판단하여 ‘파괴’(Zerstörung)개
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42) 그러나 하이데거의 본래적인 해체
개념은 가다머도 잘 밝히듯 결코 어떤 ‘파괴’와 같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적인 것을 되찾고, 형이상학에 의해 차단되고 가리어져버린
것을 제거(해체)하여서는 오늘날의 살아있는 언어로 다시 말하기 위해서
이다.43) 형이상학적 개념에 의해 차단된 것을 해체하고 살아있는 언어로
다시 말하게 하는 것을 가다머는 “해석학적 과제”라고 한다.44)
가다머와 유사하게 문장수 교수도 해체개념의 계보를 언급하면서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에도 또 하이데거의 해체개념에도 어떤 “부정적인
해체나 거부만을 근본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객관적
세계 아래에 은폐되어 있는 토대적 세계를 해명”하고, 나아가 어떤 “객관적
이론적 시선에도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어 있는 미지의 원형에 도달하려는
이상을 지시한다.”고 밝힌다.45) 양운덕 교수에 의하면 데리다의 해체론에
는 “순수한 파괴주의자”46)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는 ‘해체’와 ‘파괴’를 넘어 “철학의 종
말”(Ende der Philosophie, la fin de la Philosophie)을 선언하고 있다.
41) 데리다의 해체주의에서 해체를 위한 해체며 음성중심주의를 대체하는 문자중심주의는
도대체 인류에게 무슨 큰 대안적인 성격을 갖는지 확실치 않다. 김영필 교수는 니체와
하이데거에 비교되는 데리다의 해체를 잘 지적하고 있다: “데리다와 로티(R. Rorty)는
하이데거나 니체의 해체를 지나치게 파괴적으로만 읽고 모든 형태의 객관성과 합리성
을 거부하는 극단적 맥락주의를 고수한다.”(김영필, ?현대철학의 전개?(이문출판사,
1998), 220쪽).
42) H.‒G. Gadamer, “Frühromantik, Hermeneutik, Dekonstuktivismus”, in Gesammelte
Werke 10(J.C.B. Mohr: Tübingen, 1995), pp. 132. H.‒G. Gadamer, “Dekonstruktion
und Hermeneutik”, in Gesammelte Werke 10, p. 145.
43) H.‒G. Gadamer, “Dekonstruktion und Hermeneutik”, ibit, p. 145.
44) Ibit, p. 146.
45) 문장수, ?의미와 진리?(경북대학교 출판부, 대구 2004), 268쪽.
46) 양운덕, 「자크 데리다」, ?현대 철학의 흐름?, 박정호·양운덕·이봉재·조광제 엮음
(동녘, 2003), 346쪽.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23
켄넷 베인즈(Kenneth Baynes)와 제임스 보먼(James Bohman) 및 토머스
멕카티(Thomas MaCarthy)가 공동으로 저술한 ?철학 이후: 종말인가
변형인가?47)에서 베인즈는 전통적인 사상적 패러다임의 상속을 더 이상
거부하거나 많은 수정을 요구하는 20세기의 철학사조를 종말과 변형의
양대 진영으로 구분하는데, 전자에 속한 철학자들로서는 리오타르, 푸코,
데리다 등을 지명하고, 이에 비해 후자로는 하버마스, 아펠, 가다머,
리쾨르, 퍼트넘, 테일러, 매킨타이어 등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베인즈의
분류엔 전자가 주로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로 구성된 반면, 후자
엔 독일과 미국의 사회비판이론가와 해석학자들이 포진하고 또 여기엔
후기 분석철학자들도 가담되어 있다.
우리는 가다머의 논지를 통해서도 잘 파악할 수 있지만,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과 ?현상학의 근본개념들?을 비롯한 수다한 저술들에서
표명하는 해체는 결코 원초적인 존재개념에 대한 파괴나 제거가 아닌,
말하자면 이 원초적으로 정립된 전통을 엄폐하고 가려버린 장애물을
걷어낸다는 긍정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해체는 과거를 공허(Nichtigkeit) 속에 파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체의 부정적인 기능은 명시적이지
않은 채 우회적인 것으로 남아있다.”48) 도가의 법가 및 유가에 대한
해체적 사유에도 결코 부정만을 일삼지 않는, 그 어떤 부자연스런 척도로
국가와 사회 및 인간들을 얽어매지 않는―더 자연스럽고 더 온당하고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한―긍정적인 대안이 전제되어 있다.
IV. 도가의 해체적 사유
이제 해체주의자들의 해체와는 다른, 하이데거의 해체개념을 충분히
고려하였다면,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와 그 노력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검토해보기로 하자. 실로 노자의 ?도덕경?이나 장자의 ?장자?엔
당대의 주류인 유가(儒家)에 대한 비판과 해체적 시각이 날카롭게 드러나
47) K. Baynes·J. Bohman·T. MaCarthy, After Philosophy: End or Transformation?
(MIT Press, 1987), P. 17.
48) M. Heidegger, Sein und Zeit(Max Niemeyer Verlag: Tübingen, 1984), p. 23.
24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있다. 도(道)와 무위자연에 관한 철학사상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사유의 견지에서도 해체적 날카로움은 번쩍인다.
그런데 도가에서의 해체는 그야말로 대안 없는 해체가 전혀 아니다.
도가는 대안의 거울에 비추어 해체를 감행했던 것이다. 도가의 해체는
인위 조작적이고 자질구레하며 부자연한 규범과제도로 사람들을 얽어매
거나 억압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이 모든 부자연한 규범과 제도의
저편에 있는 “죄 없는 자연(Unschuld der Natur)”을 척도 중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도가의 해체에 대한
대안인 것이다.
우선 권력의 기원을 하늘에 두고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신봉하는
유교에 대해 노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관해 고찰해보자. 유교에서는
통치권기원설을 천자(天子)개념에 둔다. 고대 중국에서 통치자는 천지를
주재하는 하늘의 상제(上帝)의 아들, 즉 천자(天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교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늘의 뜻을 빙자하여 권력의 정당화를 굳힌
것이다.49)
그러나 노자는 당시에 통용되었던 권력의 기원설로서의 ‘인격천’ 관념
이나 의지를 가진 ‘의지천(意志天)’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
당대의 권력기반인 주재자로서의 천(主帝天)과 의지천(意志天)을 부정하
는 것은 천지를 진동시킬만한 위험스런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노자는
그러나 서슴없이 “천지는 어질지 않다(天地不仁)”거나 “하늘의 도는 편애
하지 않는다(天道無親)”고 하며, 하늘은 단지 도(道)를 본받아 무위로
자기의 일을 수행할 따름이라고 하였다.50)
노자에게서 천지는 도를 본받아 무위(無爲)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不爲)는 것이다. 이러한 노자의 천 개념은 권력기반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유교의 전통에서 통치자에게만 막대한 권력이 주어진
것은 서로 천자국(天子國)이 되겠다(중화사상)는 춘추전국시대의 필연적
귀결로 보인다. 그러한 일상의 전쟁에서 백성들은 전투력과 생산력의
원천일 따름이어서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했었고, 백성들의 고통만 심해져
49) 중국의 상고시대에는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거북점(卜: 점 복)이나 시초점(筮: 점
서)을 쳤고, 이런 일을 전담하는 사람을 무(巫: 무당 무)와 축(祝: 빌 축)이라고 하였다
(이강수, ?노자와 장자?(도서출판 길, 2009), 75쪽).
50) 노자(남만성 역), ?노자도덕경?(을유문화사, 1970), 제25장.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25
갔다. 노자는 백성들에게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고서 사치를 누린 당대의
통치자들을 “강도의 두목”이라고 하였다.51)
그런데 도가의 직접적인 해체적 견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텍스트에는 얼마든지 해체적 시각으로 읽고 또 이해할 수 있는 장면도
많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최상의 선을 물로 비유한 ?도덕경?의 제8장을
들여다보자:
“최상(最上)의 선(善)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 이로움을 주면서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있다. 그런 까닭에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남
만성 역)
이러한 ?도덕경?의 텍스트 내용은 어렵지 않게 이해되며, 최상의
선에 가깝고 도에 가까이 있는 물의 존재를 도가의 사유세계에 비추어
그 중요성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물이 “모든 생물에
이로움을 주면서 다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있다”는 표현엔 당대의 유가사상과 대립각을 세우는
내용이 들어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사상엔 “모든 생물에 이로움
을 주는” 그런 세계관은 희박할 뿐만 아니라 봉건적 권력지향주의에는
“낮은 곳”은 도무지 선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가의 사유세계엔 직접적으로 표명된 해체적 논지도 수없이
많다. 어쩌면 철학사상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윤리·사회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다 드러난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해지는 노자와 공자의 대면하는 장면을 들여다보자. 사마천에 의하면
공자는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어떤 귀인의 장례에 관해 물었다. 이때
노자는 전송하러 나와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해골까지도 부패했을 것이고 다만 아직 남은
것이 있다면 그들이 남긴 말뿐이라네. (…) 귀인이 세월을 잘 만나면 높은 위치에서
권세를 누릴 수가 있겠으나, 반면에 그가 제대로 세월을 만나지 못하면 어느덧 이
세상을 하직할 뿐이며, 그의 무덤에는 잡초만이 우거질 걸세. 내가 알기로는 정말
재치 있는 상인은 귀중품을 깊숙이 숨겨 놓은 채, 마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51)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53장.
26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듯이 행동하거니와, 이와 꼭 마찬가지로 완전한 덕성을 갖춘 귀인이란 그 외모만을
보면 단지 평범한 사람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네. 그러니 친구여, 자네도 스스로
귀인인 듯이 자처하는 태도와 그 많은 헛된 욕망들, 그리고 한낱 외양으로만 그치는
몸가짐이나 하늘을 날듯한 갖가지 계획들을 떨쳐버리는 것이 좋겠네. 그러한 것들은
어느 한 가지도 자네 자신을 위해서 값진 것이 될 수도 없다는 것, 이밖에 내가
무엇을 더 얘기하겠는가!”52)
위의 대면장면엔 노자의 도가(道家)철학과 공자의 유가적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고, 그 갈등 또한 보인다. 귀인이라고 해서 이미 해골까지
부패한 사람의 장례날 수까지 따지는 것은 노자에게서는 허황된 일이다.
또한 재치 있는 상인의 예를 들어가며 “완전한 덕성을 갖춘 귀인”의
모습을 밝혀 외양으로 귀인인 듯이 자처하는 공자의 태도를 비꼬며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유가에 대한 비판은 도가의
텍스트 곳곳에 나타난다.
당대의 주류인 유가(儒家)의 정치·사회·문화·윤리 등에 대한 직설
적인 비판과 해체도 도처에 흘러넘친다. 주지하다시피 인의예지(仁義禮
智)나 충효(忠孝)의 사상은 유가의 사상과 정치 및 윤리에서 핵심적인
원리이고 규범이다. 그러나 도가는 이를 단번에 일축해버린다. 물론
아무 이유없이 해체를 위한 해체는 결코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도덕경?의 제18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큰 도(大道)가 없어지니 인(仁)이니, 의(義)니 하는 것이
있게 되고, 인간에게 지혜라는 것이 생기니 큰 거짓(大僞)이 있게 되었다. 육친(六親)이
화목하지 않으니 효행이니 자애니 하는 것이 있게 되고, 국가가 암흑(暗黑)하고
혼란하여지니 충신이 있게 된다.”(남만성 역)53)54)
52) 여기선 H.J. 슈퇴리히(임석진 역), ?세계철학사?(분도출판사, 1976), 117쪽.
53) 노자는 ?도덕경?의 제38장에서도 18장과 같은 내용을 언급한다: “상례(上禮)의 정치는
스스로 하려고 애쓴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예법에 순응하지 아니하면 곧 팔을 걷어붙
이고 그들을 강제한다. 그런 까닭에 도를 잃은 뒤에 인(仁)이 소용되며, 인을 잃은
뒤에 의(義)가 소용되고, 의를 잃은 뒤에 예(禮)가 소용되는 것이다. 대체로 예(禮)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은 충신(忠信)이 박약하다는 증거로서, 장차 어지러워지려는 시작
인 것이다.”(남만성 역).
54) 장자는 노자의 제18장과 유사한 내용을 ?장자?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마제>
제9장, <경상초> 제23장, <인간세> 제4장, <외물> 제26장 등에서 대도(大道)가 쇠퇴하
고 난 이후에 인의가 생긴 것과 거짓의 기원을 예로 들어가며 진단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효행이라고 하면 마냥 아름다운 덕목으로만 볼 수 없는 경우를 장자는 <외물>
제26장에서 밝히고 있다: “송나라의 동쪽 성문에 양친을 잃은 사람이 있었는데, 지극한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27
인의예지의 통치가 대도(大道)에 의한 무위정치에 못 미침을 장자는
우임금과 백성자고(伯成子高)의 대화를 통해 들려준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자고는 제후의 위치에 있었다. 그 후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고, 순임금은 우(禹)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었다. 그러자
백성자고는 제후의 지위에서 물러나 농사를 지었다. 우임금이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우임금은 달려가서 그의 아래쪽에 서서 물었다.
‘과거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당신은 제후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고 순임금이 내게 천하를 물려주자, 당신은 제후의 지위에서
물러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감히 묻건대, 어떤 이유에섭니까?’
백성자고가 대답했다. ‘예전에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은 착한 일에 힘썼고, 벌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악을 멀리했소. 그런데 지금은
그대가 상을 주고 벌을 주어도 백성들은 어질지 못하니, 덕이 이로부터 쇠퇴하고,
형벌이 이로부터 세워지며, 후세의 혼란도 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오. 그러니 내
일을 방해말고 그냥 돌아가시오!’ 이 말을 마치고는 두 번 다시 우임금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밭을 갈 뿐이었다.”55)
백성위에 군림하여 권력으로 질서를 잡는 유가의 정치형태와 대조적인
노자의 사상을 장쓰잉은 짧게 잘 드러내고 있다:
“라오즈 철학은 콩즈(孔子)의 ‘克己復禮’와는 대립적이다. 콩즈의 ‘克己復禮’의
주장은, 오직 모든 사람들이 통치자의 禮에 복종할 것만을 요구하고 ‘喪己’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다. ‘貴己’·‘貴身’·‘貴生’·‘爲我’의 주장들은 바로
‘克己’에 대한 하나의 반격이다.”56)
슬픔으로 몰골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졌다. 송나라는 그의 효행을 표창해서 높은
벼슬을 주었다. 그러자 어버이를 여윈 그 나라 사람들 모두가 그를 본받느라고 몸을
여위게 하다가 반 이상이나 죽고 말았다.”(임어당 지음/장순용 옮김, ?장자가 노자를
이야기하다?(자작나무, 1999), 107쪽)고 한다. 이토록 충효나 열녀의 사상을 사회적
이데올로기나 규범으로 강요하다보면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55) 장자, ?장자?, <천지>, 제7장: 여기선 임어당 지음(장순용 옮김), ?장자가 노자를 이야
기하다?(자작나무, 1999), 102쪽. 원문은 다음과 같다: 堯治天下, 伯成子高立爲諸侯.堯
授舜, 舜授禹, 伯成子高辭爲諸侯而耕, 禹往見之. 則耕在野. 禹趨就下風, 立而問焉, 曰: 「昔堯治天下, 吾子立爲諸侯. 堯授舜, 舜授予, 而吾子辭爲諸侯而耕, 敢問, 其故何也?」
子高曰: 「昔堯治天下, 不賞而民勸, 不罰而民畏. 今子賞罰而民且不仁, 德自此哀, 刑自
此立, 後世之亂自此始矣. 夫子闔行邪? 无落吾事!」俋俋乎耕而不顧.
56) 장쓰잉(김권일 역), 「하이데거와 도가」, ?신학전망? 제156권(광주가톨릭대학교,
2007), 96쪽. 여기서 ‘喪己’의 ‘喪’은 죽을 ‘상’이기에, ‘상기’는 자기의 생명을 잃거나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28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이러한 노자의 공자에 대한 대립은 공자의 권력중심사상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오직 모든 사람들이 통치자의 예(禮)에 복종할
것만을 요구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사상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나 정의 및 보편적 윤리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만이 질서의 절대기준으로 삼는다는 권력지상주의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인의예지가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거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이미
대도가 상실하게 된 연유에서다(大道廢).57) 대도가 행해진다면 굳이
인의예지를 강조하거나 강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충신이나 효행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의 이치다. 도가의 입장에서 볼 때 무위자연(無爲自
然)의 도가 실현된다면 인의예지나 충효사상과 같은 형식화된 규범이
강요되거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는 저러한 인의예지나 충효사상과 같은 형식화
된 규범을 능가하는 덕목인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이치가 가능한 것인가? 그런 이치는 그러나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다. 만약 법 없이도 사회가 잘 유지된다면 당연히
법이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칸트의 “목적의 왕국”처럼 이성적인 인격자
들로 구성된 그런 나라라면 법과 같은 규범이 없어도 충분히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를테면 기원전 1750년에 함무라비법전
(Hammurabi Codex)이라는 소위 최초의 성문법이 탄생되었다면, 자랑스
러운 것보다는 수치스러운 것도 반드시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도가는 당대의 주류이자 정치권력의 핵심에 자리 잡은
유가(儒家)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내고 해체를 요구하였다. 군사로
서 천하를 뒤흔드는 것,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아 군마(軍馬)가
도성 밖의 들에서 우글거리는 것, 백성들이 강제노역과 전쟁터에 끌려가
는 것, 과대한 세금징수로 헐벗는 것, 심지어 억압에 시달려 자살을
선택하는 것 등등 전쟁과 탐욕을 일삼는 군주에 비해 초개같은 존재의미
를 갖는 백성의 입장에서 탄식을 쏟아내었다.58)
57) 대도(大道)를 상실한 ‘대도폐’(大道廢: ?노자도덕경? 제18장)와 유사한 용어를 노자는
실도(失道: 제38장), 무도(無道: 제46장)와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
58)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30장, 31장, 46장, 53장, 57장, 73장, 75장.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29
천하를 바르게 한다고 금지하는 일이 많아지면 백성은 더욱 가난하여지
고, 백성들에게 무기를 많이 갖게 하면 국가는 오히려 암흑해진다는
것, 나라에 법령이 많이 발표될수록 도적이 많아진다고 하여59) 노자는
당대인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런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군사가 주둔하
던 곳에는 가시나무가 우거지게 마련이고, 큰 전쟁이 있은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드는 것이다.”(?도덕경?, 30장)
노자가 살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가 시작하는 때로서 봉건질서의
중심인 종주국으로서의 주(周)나라가 쇠미하여지고 여러 제후들이 제각
기 패권(覇權)을 다투어 침략과 전쟁을 일삼던 때이므로 백성들은 전쟁에
끌려가고, 부역에 울고,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 헤매었
다. 그러한 혼란스런 상황을 바라보는 노자는 “제발 좀 백성들을 제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 주었으면, 그 간섭 좀 그만 두었으면 좋으련만”하고
울부짖고 탄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로 패권(覇權)을 쥐겠노라고,
천자국(天子國)이 되겠노라고, 중원을 차지하겠노라고 날뛰던 왕들에게
날마다 전쟁은 일상이었다. 이때 일반 백성들의 존재의미는 마냥 전쟁과
부역에 끌려가야 하는 수단과 재료에 불과했던 것이다.60)
춘추시대엔 욕심이 극에 달한 권력자들에 의해 중국 천하가 사분오열되
기 시작하였는데, 주(周)왕실이 쇠약해지자, 제나라의 환공(桓公)과 진
(晋)나라의 문공(文公)이 앞을 다투어 여러 민족들과 남방의 초국(楚國)을
공격하여 각각 정복활동을 펼쳤고, 이어서 진(晋)과 진(秦), 진(秦)과
초(楚) 간의 전쟁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약 백 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그 후 오나라와 월나라가 ‘오월동주’(吳越同舟 ‒ 원수지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를 탔음이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패권쟁탈을
끊임없이 펼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면 약탈 및
정복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시대를 뜻하는 말로 굳어진 표현이다.61)
이 시대엔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특징답게 쟁탈전이 난무하였으나,
59)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57장.
60) 이런 맥락에서 헤겔의 진단, 즉 “동양에선 왕 한 사람만 자유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왕의 노예이다.”(헤겔의 <역사철학> 서문)는 진술은 틀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61) 노자가 살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동시
에 일컫는데, 춘추시대를 좀 더 자세히 구분하면 B.C.770‒B.C.476의 시기로서 중국
주나라가 뤄양(낙양)으로 천도한 후부터 진나라가 삼분하여 한, 위, 조로 되고, 이들
나라가 독립할 때까지 약 360년 동안의 시대를 말하고, 전국시대는 중국에서 진, 초,
연, 제, 한, 위, 조 등 일곱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이다.
30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사람들의 생명은 초개같이 비참하였다.
노자는 임금이 도를 잃고 전쟁과 탐욕을 일삼으면 도둑의 괴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궁궐은 매우 깨끗한데 전지(田地)는 너무 황폐하
고, 창고는 아주 비었으며, 궁정의 사람들은 무늬 있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좋은 칼을 찼으며, 배가 불러 음식을 싫어할 지경이고, 재물을
남도록 가졌다면, 이것은 도둑질하여서 사치한다고 하겠다.”62)
유가(儒家)적 권력중심주의엔 백성의 존재의미는 지극히 미미할 따름
이다. 백성을 높일 것을 주문하는 윤리적 금언도 유가에 있지만, 어쨌거나
백성은 군주의 수단에 불과하기에 군주의 탐욕이 발동되면 백성은 하수인
이나 노예로 전락되어 전쟁터에 끌려가고 강제노역에 수단으로 사용될
따름이다. 이러한 군주들에 의한 백성의 처참한 상황을 노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백성의 굶주림은 그 위에 있는 군주가 세(稅)를 받아먹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굶주리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위에 있는 군주가
작위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백성들이 가볍게
죽어가는 것은 군주가 삶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백성들이 가볍게 죽어가는 것이다.”63)
노자는 군주가 백성 위에 군림하여 권력과 명령으로 지배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무위정치를 실현하고 백성들을 억압하지 말고
오히려 섬길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유가의 천자관(天子觀)과 권력중심주
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군주들이 자신을 고(孤)나 과(寡)라 하고 불곡(不
穀)이라고 일컬어 자신들을 천한 것으로 근본을 삼을 것을 천명하였다.64)
이러한 군주관(君主觀)에 입각하여 노자는 최상의 정치가 어떤 형태인지
사례를 든다:
62)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53장. 장자도 ?장자?의 제19장 <달생>편에서 부귀를
쫓는 인간은 제사상에 오를 돼지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63)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75장.
64)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39장. 노자는 ?노자도덕경?의 42장과 66장에서도 군주들
이 자신을 낮추어 겸손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토록 노자가 군주들을 향해 자신들을
천한 것으로 근본을 삼을 것을 요구한 것은 단순한 윤리적 측면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근본이고 더 귀중하다는 것을 천명한 것으로서 이는 권력지상주
의인 유가(儒家)의 정치사상을 비판한 것이다.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31
“가장 훌륭한 군주는 아래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그
다음의 군주는 백성들이 그에게 친근감을 가지며 그를 칭찬한다. 그 다음의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한다. 그 다음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군주에게
믿음성이 부족하면 백성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65)
노자는 성인(聖人)의 겸허한 무위정치를 자주 언급하곤 하였다. “성인
은 스스로의 존재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 존재는
밝게 나타난다. 성인은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 옳은 것이 드러난다.”66) 이와 유사하게 노자는 ?도덕경?의 제27장에서
도 성인의 무위자연의 도에 입각한 통치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항상 선으로 사람을 구제하기 때문에 버리는 사람이 없다. 무위자
연의 도에 순응하여 작위(作爲)함도 드러내는 일도 없이 저절로 감화하게 하기 때문이
다.”67)(남만성 역)
그런데 노자와 장자가 ?도덕경?과 ?장자?의 곳곳에서 무위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주류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위이
무불위(無爲而無不爲)”68), 즉 “무위의 경지에서 통치하면 작위하지 않건마
는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이치를 밝히는 것이다. 권력으로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 것을, 작위(作爲)와 억지, 강제와 규범으로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아야 할 것을 노자는 ?도덕경?의 도처에서 역설하고 있다.
노자와 장자는 각자 사상전개에서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도가의
사상을 전개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노장사상”이라고 한다.
장자도 노자 못지않게 당대의 유가적 권력중심주의에 전혀 겁내지 않고
대항하였고, 그러한 권력중심의 정치를 옹호하던 유가사상에 맞섰다.
그는 유가적 봉건주의의 통치자와 제도와 규범을 해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혹자는 장자가 피세주의(避世主義)라거나 수동적 ‘방패’의 위치에
처해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장자에 대한 오해이다.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69)라는 표현은 좀 어색하다.
65)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17장.
66)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22장.
67) 장자는 이와 유사한 내용을 ?장자?의 <덕충부> 제5장에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68) 노자(남만성 역), 앞의 책, 제48장, 57장, 60장.
32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물론 장자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정계진출을 바라지 않았으
며, 심지어 재상의 자리도 단칼에 일축해버린다. ?장자?의 <추수>편에는
기가 막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장자가 복수(濮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데, 초왕(楚王)이 보낸 두 대부(大夫)가
찾아와 왕의 뜻을 전달하기를, 「부디 나라 안의 정치를 맡기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 초(楚)나라에는 신구(神
龜)가 있는데 죽은 지 삼천 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선 그것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廟堂) 위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지만, 이 거북은 차라리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두 대부는 대답했다.「그야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테죠.」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테니까!」”70)
장자는 주지하다시피 “소요유”의 자유인이다. 그는 그 무엇에도 속박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죽은 뼈다귀로 받들어지는 것보다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는 거북을 훨씬 더 선호한 것이다. 유가적
권력지상주의가 깊게 뿌리박혔던 춘추전국시대에 재상인들 자유로웠을
까? “동양에선 왕 한 사람만 자유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왕의 노예이
다.”(헤겔의 <역사철학> 서문)는 헤겔의 진단을 참조하면 권력을 혐오했
던 장자의 태도는 오히려 용기 있는 대꾸인 것으로 보인다. 장자는
권력이나 부귀보다는 자유를 더 원했다.
그가 얼마나 권력을 혐오했는지, 그가 얼마나 세속적인 권력과 명성을
초월해 있었는지는 혜자와의 논변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자의 이러한
권력혐오의 사상을 친구인 혜자마저도 오해하고 망각한 소치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이다. 혜자는 장자가 자신의 권력을 뺏으러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69) 김시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책세상, 2013), 15‒28쪽.
70) 장자(안동림 역주), ?莊子?(현암사, 2016), <추수>편, 제16절(440쪽). 원문은 다음과
같다: “莊子釣於濮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 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持竿不顧, 曰: 「吾聞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以巾笥而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
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
塗中.」”. 신구(神龜)라는 의미는 제사용이나 수호신용으로 쓰이는 “신령스런 거북”으로
보인다.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33
“혜자(惠子)가 양나라의 재상(宰相)이었을 때, 장자는 찾아가 그를 만나려했다.
그런데 어떤 이가 혜자에게 「장자가 와서 당신 대신 재상이 되고 싶어 한답니다.」고
했다. 이에 혜자는 그만 두려워서 사흘 낮과 밤 동안 온 나라 안을 찾게 했다. 장자는
이 사실을 알고 직접 찾아가 그를 만나서 말했다. 「남쪽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원추(鵷鶵)라 한다오. 당신은 그걸 아시오? 대저 원추는 남해(南海)에서 출발하여
북해(北海)로 날아가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멀구슬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감로천(甘露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소. 한데 여기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가 있다가 원추가 지나가니까 혹 빼앗기지나 않을까 해서 위를 올려다보며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거요. 지금 당신도 당신의 양(梁)나라 벼슬자리를 빼앗기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에 내게 ‘꽥’하고 소리를 지를 건가요?」”71)
이러한 혜자의 오해와 음해에 대해 원추(봉황)는 썩은 쥐를 먹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재상자리를 뺏길까봐 벌벌 떨고 있는 혜자는 썩은
쥐를 먹는 올빼미로 비유되었다. 혜자의 태도에 대한 장자의 일갈은
그의 권력과 명성 및 부귀공명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세속의 치졸한
권력과 그 통치가 퍽이나 가소롭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사상은 그런 권력을 한없이 비웃고 조소할 따름이다.
장자는 하늘이 인간에게 준 자유(천방: 天放)와 지극한 덕이 구현되는
지덕(至德)의 사회,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분화되지 않은 사회를 이상시하
였다. 그런데 그의 이상적 사회는 인간들만의 사회가 아니라 “산천초목·
들짐승·날짐승 등 자연물들과 사이좋게 어울려서 넉넉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며”, 동시에 “만물과 공생하며 개인과 사회와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상”이다.72) 그에게는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이 추방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건설 가능한 이상사회다.
장자는 ?장자?의 제9편, <마제>편에서 말을 잘 다스린다고 소문난
백락(伯樂)의 경우를 예로 들어가며 인위조작적인 유가의 정치형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백락이 말을 잘 다스리는 대가(大家)라고 하지만,
말의 참된 본성을 무시하고 “내가 좋은 말을 만들겠다.”고 하여 말에게
낙인을 찍고, 털을 지지고 깎으며, 쇠를 달구어 말을 지지고, 굴레와
71) 장자(안동림 역주), 앞의 책, <추수>편, 제17절(441‒442쪽). 원문은 다음과 같다: 惠子
相梁, 莊子往見之. 或謂惠子曰: 「莊子來, 欲代子相.」 於是惠子恐, 搜於國中三日三夜.
莊子往見之, 曰: 「南方有鳥, 其名爲鵷鶵, 子知之乎? 夫鵷鶵, 發於南海而飛於北海, 非
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鴟得腐鼠, 鵷鶵過之, 仰而視之曰:‘嚇!’ 今子欲
以子之梁國而嚇我邪?」
72) 이강수, 앞의 책, 235쪽.
34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올가미로 머리와 발을 얽어매고, 다리줄로 묶어 늘여놓고 구유와 마판을
만들어 끌어맨다. 그러자 말 중에 죽는 놈이 열 마리 중에 두세 마리가
나왔다. 거기에다 말을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한 채 달음박질을 시키고,
명령대로 잘 움직이게 만들며, 여러 가지 장식을 붙여 보기 좋게 꾸며
주었다. 말의 앞에는 거추장스러운 재갈과 머리장식이 있게 되었고,
뒤에는 채찍의 위협이 따른다. 그러자 죽는 말이 반도 넘게 되었다.73)
위에서 백락은 유가의 통치자들이고, 말은 그야말로 억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백성으로 비유되었다. 백락과 같은 통치자들이 갖가지
강제와 이념 및 제도와 규범을 사용하여 백성들을 얽어맨다면, 백성들은
자기의 본래성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통치자의 인위조작적인 통치행위이다. 장자는 이런
통치행위를 인간세상의 온갖 갈등과 불행 및 전쟁의 근본적인 요인으로
보았다.
유가적 권력지상주의에는 권력만 잡으면, 그 권력자의 명령과 지침에
따라 세상에 법과 질서가 부여되기에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권력만 잡으면 천자(天子)가 되는 것이다. 장자는 ?장자?의 제10편,
<거협>편에서 “허리띠처럼 작은 고리를 훔친 자는 처형을 당하는 반면에,
나라를 훔친 자는 도리어 제후가 되며, 제후의 손안에는 인의(仁義)가
있게 되니, 이것은 인의(仁義)와 성지(聖知)까지 훔친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큰 도적의 방법을 따라 제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고 한다.74)
이와 같이 장자는 큰도둑(大盜)이 나라를 훔치는 경우를 제나라의
전성자(田成子)의 예를 통해 들고 있는데, 실로 이는 춘추전국시대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제나라가 원래 도가의 이상적인 나라를 떠올릴
정도로 소박하게, 자유롭고 평화롭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으나,
어느 날 전성자가 이 나라를 도적질한다.
“…전성자田成子는 하루 아침에 제齊나라 임금을 시해하고 그 나라를 훔쳤다.
그가 훔친 것이 어찌 그 나라뿐이었겠는가? 그 성인의 지혜로 만든 법제도 아울러
도적질하였다. 그리하여 전성자에게는 도적이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몸은 요·순임금
처럼 편안하였다. 작은 나라는 감히 그를 비난하지 못하고, 큰 나라도 감히 벌을
73) 장자(안동림 역주), 앞의 책, <마제>편, 257쪽.
74) 장자(안동림 역주), 앞의 책, <거협>편, 제7장(272쪽).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35
주지 못하여, 12대에 걸쳐 제나라를 차지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나라를 훔쳤을 뿐만
아니라, 성인의 지혜로 만든 법제 또한 훔쳐서 그 도적의 몸을 지켰다는 것이 아니겠는
가?”75)
얼마나 전성자와 같은 통치자가 많은지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백성들은 지식과 제도 그리고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규
범을 도구로 삼아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통치자를 성인이나 천자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못된 통치자들은 성인도
천자도 아니라 도적이다. 노자는 이런 통치자를 “강도의 두목(盜竽)”이라
하였고, 장자는 위의 글에서 밝혔듯 “큰 도둑(大盜)”이라고 규명하였다.76)
그런데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이런 나라들의 지자(智者)라거나 성인이라
고 칭해지는 이들이 저들 도우(盜竽)와 대도(大盜)를 마치 성인인 것처럼
비쳐지도록 포장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제도나 술책에 의한 것이든,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규범에
의한 것이든 인위조작적인 통치형태를 경멸한다. 그에 의하면 춘추전국
시대의 일상적인 전쟁과 탐욕은 인위조작적인 통치가 빚어낸 비극이다.
그런데 이토록 인위조작에 의해 발생한 온갖 문제들을 다시 인위조작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장자에 의하면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붓는 일(是以火救火, 以水救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77)
V. 맺음말
하이데거와 도가 사이에는 많은 사유의 근친성이 있는데, 해체적
사유도 ―우리가 본론에서 타진해보았듯― 그 중에 하나인 것으로 여겨진
다. 그들은 결코 고분고분하게 그들의 철학적 세계관만을 펼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전통적 사유와 당대에 대항하고 해체하면서 사유세계를
75) 장자(안동림 역주), 앞의 책, <거협>편, 제3장(268쪽). 여기 번역문은 이강수, 앞의
책, 238쪽.
76) 이강수, 앞의 책, 239쪽.
77) 장자(안동림 역주), 앞의 책, <인간세> 제5장(106‒107쪽).
36 정신문화연구 제41권 제2호
펼쳤다. 비록 하이데거와 도가를 동서양의 차이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시
대적 간격이 양자 사이를 갈라놓고 있지만, 이들이 심층적으로 해체적
사유의 길을 걸어간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데거가 끊임없이
길고긴 철학사가 “존재망각”과 형이상학에로 전락한 것을 경고했을 때,
그리고 도가가 끊임없이 대도폐大道廢와 실도失道 및 무도無道를 경고했
을 때 당대의 사람들은 ‘존재’와 ‘도’의 대안적 이정표를 읽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 철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돌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
철인들이 제시한 ‘존재’와 ‘도’의 대안적 이정표는 철학의 영역을 넘어
인류의 미래와도 관련이 깊다는 것을 오늘날의 지성인들은 감지하고
있다.
하이데거와 도가(道家)의 해체적 사유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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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7-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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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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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91쪽.
국 문 초 록
하이데거와 도가 사이에는―엘버펠트(R. Elberfeld)나 마이(R. May)의
지적대로―많은 사유의 근친성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전문가들
사이도 많이 논의되는 편이다. G. 파크스(Graham Parkes)는 하이데거와
노자의 사유가 “예정조화(pre‒established harmony)”라도 된 듯 유사성을
보인다고 진단하고 있으며, 한국계의 미국철학자 조가경 교수 또한 두
철학자 사이에 “신비에 가득 찬 상응(geheimnisvolle Entsprechung)”과
철저한 “근친성(Verwandtschaft)”을, 프리쉬만(B. Frischmann)은 하이데
거와 도가(道家)의 철학 사이에 여러 상응점들(Parallelen)을 지적한다.
철학적인 내용면에서도 이들 양자 사이에는 도(道)와 ‘존재’의 유사한
의미에서, 침묵(Stille)과 ‘침묵언어’(sygetische Sprache)에서, 무(Nichts,
無)와 빔(虛, Leere)의 사유에서, “부정존재론”에서, ‘길’(道: Weg)의 철학적
의미에서, 도(道)와 존재의 피지스적 특성에서, “시원적 사유(das anfängliche
Denken)”에서, ‘무위(無爲)’와 유사한 “초연한 태도로 내맡기는
것(Gelassenheit)”에서, “근원으로 되돌아가는(Rückkehr in den Ursprung)”
사유에서, 반‒형이상학적이고 반‒인간중심주의적인 성격에서 기타 그
유사성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소고(小考)에서는 해체적 사유를 중심으로 하이데거와 도가의 철학
에서 그 유사성을 검토해보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해체(Destruktion)”
라는 개념은 하이데거가 먼저 사용했고,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이 개념을 발전시켜 “해체주의”를 정립하였다. 하이데거는 서구의 철학사
가 본래의 존재의미를 망각하고(Seinsvergessenheit) 형이상학으로 전락
한 것에 대해 시종일관 해체를 감행하고 본래적인 존재개념을 획득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그런데 도가의 사유도 ‘대도(大道)’ 혹은 상도(常
道)를 망각하고 자질구레한 규범과 인위적 제도 등으로 전락한 당대의
세계에 해체와 비판의 날을 세웠다.
투고일 2018. 3. 21.
심사일 2018. 4. 16.
게재 확정일 2018. 5. 30.
주제어(keyword) 하이데거와 도가(Heidegger and Taoistic philosophy), 해체적 사
유(deconstructive thinking), 해체(Deconstruction), 존재(Being), 도(Tao)
Abstracts
The Deconstruction of Heidegger and Taoistic philosophy
Yun, Byeong-- yeol
It is a well‒established fact that there is a significant relationship between
the ideologies of Heidegger and Taoism. G. Parkes diagnosed that ideas of
Heidegger and Lao Tse exhibit similarities in the manner of “pre‒established
harmony.” Korean American philosopher Kah Kyung Cho also observed a
“mysterious equivalence (geheimnisvolle Entsprechung)” and a thorough
“closeness (Verwandtschaft)” between the two philosophers, while B.
Frischmann pointed out several parallels(Parallelen) running between the
thoughts of Heidegger and Taoistic philosophy.
The two share many similarities in regard to philosophical content: the
Tao and the being, sygetische Sprache, nothingness (Nichts) and emptiness
(Leere), negative ontology, philosophical implication of ‘the way (Weg),’ physical
nature of the Tao and being, “the primitive thought(das anfängliche Denken),”
the Taoist ‘non‒action’ and its Heideggerian counterpart “serenity (Gelassenheit),”
as well as their anti‒metaphysical and anti‒anthropic natures.
This paper seeks to examine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philosophies of
Heidegger and Taoism with a focus on deconstruction, or Destruktion. As
it is known, the concept of Destruktion was first coined by Heidegger, then
subsequently developed upon by the French postmodernists to produce
“deconstructionism”. Heidegger pointed out the need to dismantle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which had fallen into oblivion of being
(Seinsvergessenheit) and metaphysics, and reclaim its original purpose of being.
Taoistic philosophy also criticized the contemporary world which had forgotten
the ‘greater Tao(大道)’ or ‘eternal Tao(常道)’, but instead become plagued by
petty rules and man‒made instit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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