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현대 사회는 이성의 도구화, 소외와 불안의 일상화와 심화, 공동체
의 해체, 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 타자-지배층에 대한 사회적 약자,
서양에 대한 동양, 남성에 대한 여성, 비장애인에 대한 장애인 등-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구조화 등의 문제를 야기하였다. 현대성이 야기
한 이러한 문제들이 21세기 오늘에도 상존하는 한, 포스트모더니즘
은 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유효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현대
성[modernity]이 낳은 위기와 모순을 반성하면서 인간중심주의,
서구중심주의, 가부장주의, 과학기술만능주의, 이성중심주의, 동일성
의 사유를 해체하려는 한 이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후기 자본주의의 물질적 논리를 떠받들거나 주체
와 역사마저 소거한 채 역사종말론적인 사고를 지향한다면, 더구나
한국의 상당수 포스트모더니스트가 행하였던 것처럼 한국의 현실을
*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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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호도하고 역사를 관계의 그물망에 던져버리고 사회정치적 실천을 회
의론의 미궁에 빠뜨리면서 천민자본주의와 정경유착, 군사독재에 의
한 인권 탄압과 노동에 대한 억압 등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구시대의 담론으로 매도하는 한 이에 철저히 반대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문예이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서구적 현대를 부정하거나 해체하고 이와 구별되는 ‘또 다른 현대’,
혹은 ‘현대로부터 탈출’을 모색한다. 이런 면에서 또 다른 현대로서,
혹은 서양적 현대의 반대편에 있는 패러다임으로서 동양(사상)은 서
양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탈현대성의 철학에 대
해 핵심 개념을 이성중심주의에서 그 해체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하여
생태론으로, 동일성의 사유에서 차이의 사유로 전이한 것으로 간주하
고 각각에 대해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단 우리의 것에 관한 논의가 세계적 보편성을 가지려면 서양 사상
과도 대화를 하여야 한다. 필자는 하버마스가 왔을 때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의 태도를 보여 준, 흔히 ’서구이론의 수입오퍼상’으로 불
리는 한국 지식인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한 바 있다.1) 그러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식의 국수주의적 태도는 고물상을 자처하는 짓이
자 배제와 폭력의 출발점이다. ‘동일성에 바탕을 둔 우열과 배제의
논리’가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20세기의 야만을 낳은 동인이기 때문
이다. 동양(사상)에 관한 논의가 ‘우물 안 개구리의 떠벌림’으로 끝
나지 않으려면 서양 철학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단순히 동
양사상과 서양철학이 유사한 개념 몇몇을 等値시키는 데서 벗어나
‘형이상학적 보편성’을 찾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때문에 “동양사상에
1) 「서구 문예비평 이론 수용의 功과 過」, 韓國詩歌硏究 제4집, 1998년
12월호와 「한국 인문학의 위기, 지식인에게도 책임 있다」, 인물과 사상 ,
199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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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9
서 대안을 찾자”는 것은 동양사상의 위대성이나 ‘동일성’을 논하는 것
이 아니라 ‘차이’란 관점에서 논의하여야 한다. ‘동일성’이 동일성 안
에 모든 차이들을 포획해버리고 환원시켜 다른 것을 배척하는 것이
라면 차이는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자기도 드러내는 것이다. 차이의
관점에서 동양사상을 논할 때 ‘형이상학적 보편성’을 찾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양자를 會通시킬 수 있다.
2. 현대성과 탈현대성의 개념범주
인류는 ‘주술의 정원’인 중세에서 벗어나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를 열었다. 현대의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무지몽매함과
야만이 지배하던 세계를 이성과 과학을 통해 혁파하고 합리성의 원
칙과 과학에 근거하여 다시 디자인하였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발전을 바탕으로 생산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져 60
억 명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다. 몇 차례
의 혁명을 거쳐 중세를 지탱하던 여러 체제를 무너뜨리고 5%에 불
과한 왕족과 귀족만이 누리던 자유와 권력, 지식을 만인의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다 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명제는 계몽주의 지
식인의 구호에서 생활의 원리가 되었으며, 이를 구조화한 각종 법규
와 정책, 체계와 담론 등이 실행되었다. 신의 종속에서 벗어나 예술
이 자기 목적성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왕궁에 초청된 소수자만이 향
유하던 문화를 매스미디어를 매개로 대중들과 소통하게 하여 대중들
이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중문화 시대가 열렸다. 인류는 전혀
새롭게 맞은 현대의 장에서 자유와 물질적 풍요를 누렸고 인간다운
삶을 실천하였으며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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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현대의 토대는 위성, 컴퓨터, 생명공학
등 고도의 테크놀러지(high-technology)의 발전과 세계화를 바탕
으로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로, 자
본주의 사회에서 후기자본주의(late-capitalism) 사회로 급속히
이행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의 기획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성
찰이 따랐다. 궁극적인 실체로 인도해주리라 여겼던 이성은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것으로 새롭게 이해되었고, 중세의 야만에서 인류를
구원한 것으로 여겼던 합리성은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기제로도
작용함이 밝혀졌다. 물질적 풍요는 삶의 양을 확대하기는 하였으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이는 정신적 빈곤과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위기를 야기하였다. 산업화와 자본화로 파생된 物神化와
소외는 현대의 개인이 겪어야 하는 가장 비극적인 병리현상이 되었
다.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는 자본과 국가의 억압 속에서 제 구
실을 하지 못하였고 계급 간 국가와 민족간 갈등과 대립은 더욱 구조
화, 첨예화하고 있다. 자율성을 구한 예술은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소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었으며, 반면에 대중문화는 자본과 결합
하면서 상품화하여 대중을 조작하고 소외를 심화하여 문화상품의 소
비자, 일차원적 인간(one-dimensional man)으로 전락시켰다.
이에 현대의 기획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 또는 부정이 하나의 사
조로 나타났다. 이 중 탈현대의 철학은 입장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크게 보아 전쟁과 학살, 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 소외와
억압과 갈등을 심화한 현대성의 철저한 부정이 강한 흐름인 가운데
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더니티를 완성하고자 하는 사조도 강하며
양자를 절충한 입장도 있다.
이처럼 중세와 현대, 탈현대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여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중세, 현대, 탈현대를 비교할 수 있는 양상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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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11
다양하다. 이에 이를 먼저 토대와 상부구조로 나누어 본다. 모더니
티는 토대이고 모더니즘은 상부구조이며, 토대가 상부구조를 최종심
급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토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력과 생
산양식이다. 상부구조에서 중세와 현대, 탈현대를 가르는 변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聖의 세계와 俗의 세계의 관계, 대상의 이해원리,
진리 내지 이데아의 개념, 삶에 대한 자세, 자연의 이해방식, 자아
및 주체에 대한 관점, 예술에 대한 관점, 세계체제, 세계의 표상하는
방편이다. 이것이 중세와 현대, 탈현대에 따라 어떤 변모양상을 나
타내는지 개괄적으로나마 살피고 가고자 한다.2)
<표 1> 중세․현대․탈현대 개괄3)
중세 현대 탈현대
상
부
구
조
신 중심 인간 중심 생태론적 패러다임
神聖의 지배 이성과 합리성의 원칙 이성중심주의의 해체
신이 진리 진리의 절대성과 보편성 진리의 상대성, 불가지성
미신과 주술 과학 과학(적 진리)의 불확정성
善, 또는 神이 美
예술의 세속화와 자기목
적성 추구
예술의 異種性, 混種性과
해체
신에게 복속된 자아 주체 상호주체성
생의 공간 현실 시뮬라시옹
로마와 중국 중심주의 유럽중심주의 세계화와 지역화
중심의 문자 국가의 문자 이미지
2) 우리는 21세기의 지평에 서서 21세기가 만든 패러다임과 선입관의 틀에
따라 중세와 현대를 바라본다. 우리가 재구한 중세라는 것도 중세에 관한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하여 유추한 것들이다. 재현은 현실과 다르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이는 이데올로기와 형식과 기호의
매개를 통해 재현된다. 더구나 필자가 재현해내는 중세는 타인들이 재현한
것의 재현이다. 이는 실상과 상당한 괴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한계가 있
음에도 탈현대적 성찰을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좀더 나은 사회를 전개
하기 위함이다. 중세와 현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
기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비전에 따라 바라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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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중세 현대 탈현대
토
대
봉건체제 자본제 후기자본제
전산업사회 산업사회 탈산업사회
중세는 장원을 중심으로 농노가 생산을 담당한 봉건적 생산양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이다. 현대는 노동자가 생산을 담당하고 자본가가
이들의 잉여노동을 착취하여 자본 축적을 이루는 자본제 사회이다.
탈현대 사회는 우주항공공학, 로봇 공학, 생명공학 등 첨단 과학기
술이 잉여가치를 생성하고 창출하는 고도산업사회이자 독점 자본주
의가 다국적 자본주의로 이행한 후기자본제 사회다.
중세가 장원경제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라면, 현대는 산업혁
명을 기점으로 전기, 연소기관을 동력으로 하여 산업의 획기적 발전
을 이룬 시대이다. 탈현대는 화석연료, 전기, 연소기관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을 이루는 데서 벗어나 전자와 컴퓨터와 인터넷을 바탕으로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고 상호 교환하는 시대다.
중세는 신 중심의 사회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란 성경의 말씀
처럼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신의 의지와 간계에 따라 우주 삼라만상
을 지배하고 통제한다고 생각하였다. 현대는 신을 죽이고 인간이 자
신의 비전에 비추어 세계를 기획하고 의지를 따라 세계를 변화시키
는 사회다. 탈현대는 이런 인간중심주의가 인간의 의도와 이해관계
에 따라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여 현대화, 산업화하는 바람에 전
3) Jeff Lewis, Cultural Studies-The Basics(London: Sage Pub,
2003), Table 1.1 The Modern / The Postmodern을 일부 참고 하였
으나 필자 나름대로 중세와 현대, 탈현대에 대하여 파악한 것을 토대와 상
부구조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루이스의 표는 토대와 상부구조를 구분하
지 않은 채 현대와 탈현대만을 다루었고 중세와 비교는 없으며 범주가 모호
하다. 루이스와 필자의 구분이 겹치는 부분은 진리의 절대성과 상대성, 유럽
중심주의와 세계화, 보편법칙과 해체, 현실과 시뮬라시옹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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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13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라는 모순을 야기했다고 판단하고 인간과 자연
이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패러다임을 지향한다.
중세는 신성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신이 곧 이데아였으며, 신성에
어긋나는 것은 이단이었다. 반면에 현대에 들어 인간은 자신이 이성
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이성을 통하여 이데아를 궁구할 수 있다고 생
각하였다. 현대 사회는 한 마디로 말하여 인간이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고 기획하고 실천한 사회다. 탈현대에 들어 인
간은 이성이 오히려 도구화하고 있으며 이성으로 이데아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 이성중심주의를 해체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중세시대
에 신이 곧 진리였다면, 현대는 이성을 통해 보편적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다양한 방면에서 이를 추구한 시대이다. 탈현대는 진리
를 확정지을 수도, 진리에 이를 수도 없음을 깨닫고 상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시대다.
중세가 마녀사냥에서 보듯 미신과 야만이 지배하던 주술의 정원이
었다면, 현대는 이에서 벗어나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행동하는 사회
다. 탈현대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의 원리를 통하여 뉴튼 역학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과학의
이데올로기화와 도구화에 대해 성찰하고 과학적 진리를 명확하게 규
명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과학적 진리의 상대성,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시대다.
중세란 예술이 자기 목적성을 가지지 못하고 신에게 복속된 시대다.
중세에서 예술은 신, 또는 종교적, 또는 관념적 이상을 구현하는 수단
이다. 그러기에 善이 곧 美였다. 반면에 현대는 예술이 신의 복속에서
벗어나 세속화하여 자율성과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예술 그 자체의 아
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다. 탈현대는 이런 현대적 예술의 경향을 해체
하고 異種性(heterogeneity)과 混種性(hybridity)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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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중세 시대에 인간의 자아는 신에게 복속되어 있었다. 신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만 인간은 생의 활력을 찾고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인간은 신의 구속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주체를 형성하
고 주체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구성한다. 주체는 프랑스 대
혁명과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 중세를 무너뜨리고 주체의 의지대로
현대화를 기획하였으나 이 주체가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낳아
전쟁과 학살의 세기를 열자 탈현대에서 상호주체성의 관점에서 인간
과 사회를 바라본다.
중세 시대에 삶은 이승, 또는 천국과 대립되는 생의 공간이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생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 가서 영
원한 구원을 받는 것이었다. 반면에 현대는 지금 현재 생을 영위하
고 있는 이 순간의 구체적 장을 현실이라 인식한다. 현대에선 현실
을 세 가지, 곧 ‘지금 여기에서 사실로 나타나는 일과 사물’, ‘실재
객관적으로 현존하는 존재’, ‘원본에 해당하는 무엇’으로 본다. 그러
나 탈현대에 와서 이는 전복된다. ‘지금’에 과거, 현재, 미래가 겹쳐
져 있으며 현재란 과거와 미래의 재현에 불과하며, 실제로 객관적으
로 현존하는 존재라 생각한 것은 가상에 지나지 않으며 원본이라 여
긴 것이 실은 模本이다.
유럽의 중세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사회였다면, 동양의
중세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회다. 반면에 현대는 유럽에서 이루어
진 현대화와 산업화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시대이다. 탈현대는 유럽
중심주의가 무너지고 세계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역화가 이루
어지는 시대다.
중세에 유럽에선 라틴어, 동양에선 한자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표
현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민족어는 기층문화의 장에서만 소통되었다.
반면 현대는 민족과 국가란 개념을 설정하고 각 민족어들이 국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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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15
중심으로 공용어를 이루어 표현과 소통의 수단이 되는 시기다. 이와
달리 탈현대는 문자의 우월성이 사라지고 이미지로 사유하고 소통하
는 것이 점점 문자를 대체하는 시대다.
이처럼 현대는 어느 한 편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 나라마다
현대의 기획과 수용, 구현은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때문에 탈현대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기 곤란하다. 여기서 필자는 현대성의 기획이
야기한 위기와 모순, 합리성과 자본주의를 두 축으로 비약적 발전을
해 온 현대적 삶과 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로서, 산업사회에서 탈산업
사회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후기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전이한
시대에서 달라진 세계를 읽고 해명하는 논리학이자 이에 대한 대응양
식인 동시에 표현양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기로 한다.
3. 이성(중심주의)의 해체와 道
중세시대엔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란 성경 의 말씀대로 전지
전능한 신, 신의 대리자인 교황만이 모든 진리와 허위를 가리는 존
재였다. 아무리 신앙심이 강한 신부라도 교황청에서 파견한 심판관
이 이단이라고 결정하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
온 처녀라도 마녀라고 심판을 내리면, 화형을 당해야 하는 세상이었
다. 인간 주체는 신에 종속되었고 신성이 선과 악, 진리와 허위를
판별하는 유일한 준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페스트에서 인류를 구원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이성이
었다. 시체를 불에 태우고 시체를 만진 사람들의 손을 알코올로 소
독한 곳에서는 더 이상 페스트가 번지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은 이
성을 가진 주체였으며 이 이성으로 허위와 진리를 판단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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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궁극적 진리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인식에 이르자 인간은 신의 종속
에서 벗어나서 그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고 주체가 되어 세계에 대응
하였고 그의 뜻에 따라 세계를 새로이 구성하였다. 중세가 마감하고
현대가 열린 것이다. 인류는 이성의 법칙에 따라 허위를 비판하고
진리를 추구하였다. 도덕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정의를 세우고, 심미
적 합리성을 통해 예술이 신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기 목적을 달성하
도록 하였다. 악마가 부리던 마술을 퇴치하여 대다수 질병을 정복하
고 평균수명을 두 배로 늘린 것, 그것이 바로 ‘이성의 힘’이다. 이처
럼 세상이 암흑과 무지몽매함 속에 빠져 있을 때 이성은 계몽의 빛
이자 해방의 빛이었다.
하지만 합리성을 추구한 현대 사회는 많은 모순과 부조리를 낳았
다. 목적 합리성 자체가 수단화하면서 인간을 무지와 야만에서 해방
시켜 준 이성은 계몽성을 잃고 도구화하였다. 니체의 말대로 “절대적
인 것을 신봉하는 모든 것은 모두 병적이다.” 우리가 유리알처럼 명
료한 이성을 통하여 궁극적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현대적 사
고의 착각이었다. “이성은 이제 억압하고 동시에 스스로 억압되는 주
체성으로서, 도구적 점령의 의지로서 폭로된다.”4) 더 나아가 어느
시대에 진리라고 간주하는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며 그 시대에 ‘진리’
를 결정하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라 권력이다.
하버마스가 목적적 합리성을 비판하면서도 이성의 계몽적 힘은 중
시하여 소통적 합리성으로 대안을 삼는 것과 달리, 포스트모던 철학
을 대표하는 데리다는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를 해체하고
자 한다. “이(différance)가 군림하는 왕국은 없지만 이는 모
든 왕국을 전복시키기 위하여 선동한다.”5)라는 말처럼 데리다는
4) 위르겐 하버마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 이진우 옮김(서울: 문예출판사,
1994), 22쪽.
5) 자끄 데리다, 해체 , 김보현 편역(서울: 문예출판사, 1996),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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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17
이를 통하여 그리스 철학에서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모든 형
이상학을 해체하려 든다. 그가 이를 통하여 해체하려 한 것은 음
성중심주의(phono-centrism)와 이성중심주의로 쓰여진 모든 텍
스트이다. ‘불, 뿔, 풀’이 음운의 차이로 의미가 갈리고 다른 낱말이
되듯, “언어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6) “이러한 차이들은 이 자체가
실체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만들어내는 효과다.”7)
‘나무’의 의미나 실체는 나무에 없다. ‘나무’의 의미는 풀과 차이를
통하여 ‘목질의 줄기를 가진 다년생의 식물’이라고 일시적으로 드러
날 뿐이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유연상에 의하여
‘푸르른 이상, 하늘과 땅의 중개자, 자연, 부드러움’ 등으로 의미망을
넓히고 나무를 정의한 글 속의 ‘목질, 줄기, 가지다, 다년생, 식물’의
기표 또한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의미를 延期한다. ‘나무’가 ‘풀’과 대
비시키면 ‘목질의 줄기를 가진 다년생의 식물’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쇠’와 대비하면 ‘자연, 목질의 부드러움’ 등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각각의 기호에는 그 기호가 그것이 되기 위하여 배척하였던 다른 낱
말의 흔적이 스미어 있다. 의미는 기호에서 직접적으로 現前하지 않
는다. 기호의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호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불어에서 ‘différer’라는 동사는 ‘차이가 나다’와 ‘연기가 되다’라는 두 가
지 뜻을 가진다. 하지만 이의 명사형인 ‘différence’는 ‘차이’라는 뜻만 가
진다. 이에 데리다는 ‘en’과 ‘an’이 모두 [ã:]으로 발음된다는 것에 착안하
여 ‘e’를 ‘a’로 대체하여 ‘différance’란 단어를 스스로 만들고 이 낱말은
‘차이’와 ‘연기’ 두 가지 의미를 다 함유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대해
差異와 延期를 결합하여 ‘差延’으로 번역하거나 差異를 그대로 사용하였으
나, ‘이’가 원래의 의미에 부합한다. 이 책의 번역본에서도 차연으로 쓰고
있으나 용어를 통일하기 위하여 ‘이’로 고쳐 사용하였다. 이후의 인용에서
도 마찬가지다.
6) Ferdinand de Saussure,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tr. Wade
Baskin(NewYork: Philosophical Library, 1959), p.118.
7) 데리다, 앞의 책,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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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의미는 모든 기표의 연쇄를 따라서 散種(dissemination)되어 있
다. “나는 김구선생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에서 김구 선생의 가치는
‘김좌진, 여운형, 이승만, 박정희’ 등 부재한 것에 의해서 드러나며
부재한 것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김구 선생의 가치와 의미는 천
차만별로 달라진다. 의미는 어떤 하나의 기호에 의하여 완전히 현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전과 不在간의 일종의 끊임없는 교차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언어기호는 공간화에 따라 차이가 나고 시간에 따라 지연
되어 무의미를 생성하기에 이는 공간에 따라 차이가 나고 시간에
따라 현전을 연기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세계란 이가 드러난 것,
이의 체계 속에 쓰여져 드러난 것, 현전과 부재가 끊임없이 교차
하여 일어나는 유희에 불과하다.8) 세계가 이이고 언어기호의 진정
한 속성 또한 이럴진대 사람들은 언어기호에 고정성과 동일성을 부
여하려고 한다. 고정되고 동일하지 않은 세계를 고정되고 동일한 언
어기호로 표현하려 하니 그것 자체가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
텍스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글이란, 어린 아이들이 셀룰로이드에
풀칠을 하여 나무판에 붙인 후 글을 쓴 뒤에 그 셀룰로이드 종이를
들면 글자가 사라지고 그러면 다시 쓰고 또 셀룰로이드 종이를 들어
지우고 다시 쓰고 하는 행위를 반복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것에 불과
하다. 마지막 남은 글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지만 지워진 글들은 흔
적으로 남아 있다. 텍스트의 의미, 진리는 확정지을 수 없다. 차이,
부재와 현전의 교차, 상호보충에 따라 드러나고 끊임없이 연기된다.
한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의 변형 속에서만 산출되고 다른 텍스트
와 차이를 통하여 의미를 드러내며 이 의미는 다시 지연된다. 탈현
8) Jacques Derrida, Writing and Difference, tr. Alan Bas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 ⅹⅵ-ⅹⅶ 참조
하여 필자 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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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19
대적 사고를 하면 이성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없으며 확정할 수 있
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라고 이르는 도는 늘 도가 아니며 이름이라 부르는 이름
은 늘 이름이 아니다”9)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억지로 자호를 지어 道라 부
르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大라 할 뿐이다”10)
道는 소리도 없고 들을 수 없으며 볼 수도 없으며 홀로 우뚝 서
있으며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에
두루 어디에나 번져 있어 우주가 운행하는 것에서부터 나뭇잎이 떨
어지고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에도 스며있다. 태초에 어떤 원
리에 따라 빅뱅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우주를 만들고 우주가 삼라만
상을 만들었듯, 천지가 만들어지기 전 우주가 혼돈일 때부터 도는
있었다. 이것은 형태가 없이 無이지만, 모든 만물이 이에 따라 이루
어졌으니 이들은 만물의 모체이다. 이들은 어디에나 번져 나가고 이
루지 않는 것이 없고 크고도 크고 멀고도 멀어 이를 이성으로 알 수
도, 무엇이라 이름 부를 수가 없다. 언어로는 이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11) 道는 본질도, 실체도 아니다. 사건도 존재도 아니다. 개
념이나 원리는 더욱 아니다. 인간의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서 道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언어기호나 인간의 생각 저 너머에 있어 언어
9) 老子, 道德經, 「第1章 體道」: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10) 老子, 위의 책, 「第二十五章 象元」: “吾不知其名, 故强字之曰道, 强爲
之名曰大”.
11) 같은 책, 「第二十五章 象元」을 참조하여 재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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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기호나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를 표현할 수도, 이에 다다를 수도 없
다. 정작 이는 비어있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불교 또한 문자와 언어, 그리고 이에 얽매여 六識으로 세계를 바
라보는 것을 해체하고 如來藏을 통해 眞如實體에 이르고자 한다.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一이 될 수 있는가? 一도 있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心이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이니 무엇이라고 지목할 지는 모르겠으
나 억지로 이름 붙여 一心이라고 하는 것이다.12)
우리나라 고유사상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도란 하나일 따름이라.) 하나에서 비롯하되 하나에서 비롯
함이 없느니라.”13)
“天은 허울도 바탕도 없고 처음도 끝도 없으며 위, 아래 사
방도 없고 겉도 속도 다 비어서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
며 무엇이나 담지 않는 것이 없다.”14)
“한얼님의 도는 모습이 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지 않고
12) 元曉, 大乘起信論疏(이하 ‘疏’로 약함) , 卷1, 韓國佛敎全書(이하 ‘韓
佛全’으로 약함) , 제1책, 741-상-중: “然旣無有二 何得有一 一無所
有 就誰曰心 如是道理 離言絶慮 不知何以目之 强號爲一心也”.
13) 天符經: 一始無始一. 이를 ‘無’에서 끊어 ‘一始無 始一析三極無盡本’
로 보아 “하나는 없음에서 비롯하며, 비롯된 하나는 셋으로 쪼개어져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一終無
終一”과 대구를 이루고 이는 ‘一’에서 끊어 읽어야 하므로 “一始無始一”로
끊어 읽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14) 三一神誥, 第一章 「天訓」 姜天奉 譯解, 한국사상대전집 27권(서울:
양우당, 1988), 37쪽: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
在 無不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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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21
말씀하며, 하지 않으면서 하시느니라.”15)
三才에서는 삼재에서는 一과 天을 만유 진리의 본체로 보고 있
다. 모든 것을 이루는 바탕이면서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비어 있
으면서도 모든 것을 수용하는 실체로 본다. 그리고 이 천과 일은 말
을 떠난 것이기에 말이나 이성으로는 이에 이를 수 없다. 한얼님의
도가 모습과 말과 함을 떠난 것이면서 모든 형상을 나타내고 어떤
진리든 드러내며 어떤 것이든 행함을 말하고 있다. 한얼님의 도란
말이나 형상, 행위를 넘어선 것이면서도 모든 것을 드러냄을 밝힌
것이다.
엄격히 말하여 이, 도와 일심, 천은 언어기호로 ‘이, 도, 일
심, 천’이라 부르는 순간 그것이 아니다. 진리를 펴고 중생들에게 이
를 전달하려니 억지로, 이에 이르는 한 방편으로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 없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는 이
를 나타낼 수 없지만 이를 드러내기 위하여 억지로 ‘e’자를 ‘a’자로
대치하거나 道나 一과 心, 天을 끌어들여 그리 명명한 것이다. 이
와 道와 一心, 天은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없고 확정지을 수 없음은
물론 언어기호로 표명할 수 없기에 안다는 것에 대해 해체해야 한다
는 점에서 유사하다. 서양의 현대 철학이 이성을 통해 이데아에 이
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데 비하여 동양 철학은 인간의 이성
과 이해 저 너머에 궁극적 진리가 있음을 전제로 사유한다. 그러기
에 동양 철학은 이성중심주의를 해체하려는 탈현대의 철학과 만난다.
이와 일심은 이성중심주의와 언어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진리, 실체,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그렇지 않음을 드러내면
서도 정작은 자신은 비어있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고 이름으
15) 神理大全, 「神道」, 위의 책, 52쪽: “神道無形形 無言言 無爲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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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로는 이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음도 통한다. 하지만 동양, 특히 和
諍의 사유는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효는 해체만 하는 것이 아니
라 先領言句 後領義理의 방법을 통하여 언어기호를 통하여 궁극적
실체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16)
水雲 崔濟愚는 不然과 其然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해하
기 어려운 것은 불연이요, 이해하기 쉬운 것은 기연이다.”17)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기연이라면, 불연
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불가능하고 경험할 수 없는 세계다. 그
렇다면 불연은 앞의 이, 道, 一心, 天과 통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연과 기연이 이분법적 대립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
험을 통해 경험 너머의 진리를 깨닫고, 우리 앞의 사물에서 깨달음
을 얻듯 경험을 통해 궁극적 실체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4. 생태론과 不一不二
중세가 신의 권위에 복속된 사회였다면 현대는 이의 종속에서 벗
어나 인간 스스로 판단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며 세계를 인간의 의지
에 맞게 기획한 인간중심의 사회이다. 인간중심주의의 바탕은 이항
대립주의(binary opposition)이다. 서양의 현대인은 세계를 인간
과 자연으로 나누고 인간에 우월권을 주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자
연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개발할 권리를 부여하였고 이 권리에 따라
16) 이에 대한 상세한 논증은 졸고, 「원효의 화쟁사상과 탈현대철학의 비교연구」,
元曉學硏究院, 元曉學硏究, 제6집, 2001년 12월.을 참고 바란다.
17) 東經大全, 「不然其然」: “難必者 不然 易斷者 其然”(尹錫山 註解 東經大
全(서울: 동학사, 1996)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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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23
자연을 인간의 목적에 맞게 변형생성한 것을 문명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항대립적 사유에는 하나가 다른 것보다도 우위를 차지하
고 지배하는 폭력적 계층질서가 존재한다.”18) 데리다의 지적대로 이
성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서구의 형이상학은 정신 / 육체, 이성 / 광기,
주관 / 객관, 내면 / 외면, 본질 / 현상, 현존 / 표상, 진리 / 허위, 기의 / 기
표, 확정 / 불확정, 말 / 글, 인간 / 자연, 남성 / 여성 등 이분법에 바
탕을 둔 야만적 사유이자 전자에 우월성을 부여한 폭력적인 서열제
도이며, 처음과 마지막에 “중심적 현존”을 가정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홍수를 막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댐을 쌓는 것이고 다
른 하나는 물이 흐르는 대로 물길을 터주는 것이다. 서구 사회는 인
간과 자연을 이항대립으로 나누고 인간에게 우월권을 주었기에 전자
의 방식을 택하였다. 댐을 쌓듯 인간 주체가 자연에 도전하여 자연
을 개발하고 착취하는 것을 문명이라 하였고 이것으로 그들은 17세
기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댐은 물의 흐름을 방해하여
물을 썩게 하고 결국 거기에 깃들여 사는 수많은 생물을 죽이고 심
지어는 주변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처
럼 인간중심주의에 바탕은 둔 현대의 기획은 인류가 멀지 않은 시기
에 공멸할지도 모를 ‘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를 야기하였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인간이 전 지구의 중심에 서서 자연을 착취
하고 개발하는 것을 문명으로 여긴 인간중심주의와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기계적 세계관에서 환경위기가 비롯되
었다고 본다. 이들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유
기적인 생태적 세계관으로 지구촌이 전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사회생태론, 에코페미니즘, 심층생태론 등 여러 대안이 모색되
18) Jacques Derrida, Positions, tr. Alan Bass(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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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고 있다.
동양 철학은 無二의 사유를 하기에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없다.
身土不二, 物我一體, 梵我一如를 추구한다. 동양의 숲에서 보면
자연과 인간은 본래 하나다.
법성은 원융하여 두 가지 相이 없나니
모든 법이 움직임이 없어 본래부터 고요하다.19)
하나라고 하는 것은 능소(能所)가 없는 것인데 장차 이를 억
지로 나눈다. 하나를 관할 수 있다면 관해진 하나가 있다. 만약
몸과 마음으로부터 모든 법을 총섭하여 남길 것도 버릴 것도 없
이 확실히 능소를 떠났으면 능히 하나를 관한 것이다. 즉 이 몸
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 관한 바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20)
중생들에게 세계는 둘이다. 인간은 밝음과 어둠에 따라 낮과 밤을
가른 이래 자기 앞의 세계를 이데아와 그림자, 진리와 허위, 본질과
현상, 무(無)와 존재 등 둘로 나누었다. 둘로 보니 세계는 분명하게
이해되었고 이렇게 나눈 것에 이름을 붙여 사유도 하고 서로 소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본질과 현상, 주와 객의 구분이 없는
것인데 억지로 그리 나누어 분별한 것이다. 밝고 분명하게, 특별히
어느 사물을 쳐들지도 않고 이리저리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법에 따
라 바라보는 것이 관(觀)이다. 분별을 떠나 하나를 하나대로 관하면
그렇게 하여 관해진 하나가 있다. 법은 곧 내 몸과 마음이기에,21)
19) 義湘, 華嚴一乘法界圖, 韓國佛敎全書(이하 韓佛全으로 약함),
제2권, 1-上: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20) 法界圖記叢髓錄, 卷上之一, 韓國佛敎全書, 제6권, 769-中: “所
言一者 無能所中 且强分之 有能觀一 有所觀一 謂若了自身心總攝諸法
無側無遺絶能所, 則爲能觀一, 卽此身心住處 爲所觀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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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25
내 몸과 마음이 여러 법을 총섭하여 주와 객의 이분법을 떠나면 하
나인 세계의 실체를 관하게 된다. 이렇게 세계의 실체를 관하면 모
든 법이 이것과 저것으로 움직임이 없이 본래부터 고요함을 깨닫게
된다.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인간 또한 자연에서 나서 자
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부분에 불과하다. 미세한 미생물이 지구 전
체 대기의 균형에 관여하듯 하나하나의 인간은 자연의 온 생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새싹이 하나 돋는 데도 온 우주가 관여한
다. 서양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딱정벌레 한 마리가 인간의 발에 밟
혀 생명이 끊어지면 죽은 것이다. 하지만 동양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개미가 그 몸뚱이와 더듬이와 다리를 해체해선 가져가 여왕개미를
먹이면 여왕개미는 쑥쑥 개미 알을 낳고 남은 껍질에도 수 억 마리
의 미생물이 어디에선가 와 생명의 하모니를 펼치니 딱정벌레는 죽
은 것이 아니라 개미와 미생물로 변한 것이다.
노자는 人爲를 배격하고 無爲自然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한다. 한
강에 콘크리트 호안을 둘러 한강 물이 오염되게 만들고 1급수 물고
기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인위라면, 그 호안을 벗겨내 물이 흐르면
서 자연정화가 되어 물고기가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무위이다.
이러기에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워두는 것[虛]
이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여 있는데 바퀴통의
구멍이 있기 때문에 수레가 수레로서의 효용을 지닌다.”22) 바퀴통의
구멍이 있어 수레가 효용을 발하듯, 그릇과 방이 빈 공간이 있어 그
릇과 방의 구실을 하듯, 자연에는 비워둠이 있어야 자연은 자연으로
서 구실을 한다. 그러기에 비워둠이 없는 강물이 자연 정화력을 잃
21) 法界圖記叢髓錄, 卷上之一, 韓國佛敎全書, 제6권, 769-中: “法
者是我身心也”.
22) 老子, 道德經, 11章: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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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고 썩어버리듯 비워둠을 두지 않으면 인위의 폐해가 나타나기에 비
워두어 다시 무위자연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것이다.23) 이것이 무위
가 비워둠이고 비워두어야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치이다. 현재
지구촌 사회가 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글 겪고 있는 것은 이 비워둔
자연마저 개발하고 착취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생태적 대안은 콘
크리트 호안을 걷어내고 자연하천으로 되돌리듯 비워둠을 다시 두는
것이다.
無二, 不一不二는 차이를 통하여 공존을 모색하자는 사유체계이
다. 씨는 스스로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나 열매와의 “차이”를 통하
여 의미를 갖는다. 씨와 열매는 별개의 사물이므로 하나가 아니다
[不一]. 국광 씨에서는 국광사과를 맺고 홍옥 씨에서는 홍옥사과가
나오듯, 씨의 유전자가 열매의 거의 모든 성질을 결정하고 열매는
또 자신의 유전자를 씨에 남기니 양자가 둘도 아니다[不二]. 씨는
열매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空하고 열매 또한 씨 없이 존재하지
못하므로 이 또한 空하다. 그러나 씨가 죽어 싹이 돋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자라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
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씨를 낸다. 세계는 홀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을 空하다고 하여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의상의 말대로 하나 중에 일체 있고 일체 중에 하나 있다(一中一
切多中一).24) 하나는 일체와 관련지을 때 하나이다. 하나에 열이
있고 인다라망의 구슬처럼 하나에 일체가 담겨 있으니 하나가 전체
이다. 국화 꽃 한 송이에서 무상(無常)을 읽고 연기의 법을 깨닫듯
23) 예를 들어 10여년 전의 안양천은 구로공단에서 폐수를 버려도 늘 맑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100톤의 폐수를 버렸어도 당시 안양천이 120톤을 자
연정화할 능력이 있다면 20톤의 비워둠 때문에 맑은 냇물, 곧 자연을 유
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24) 義湘, 華嚴一乘法界圖, 東國大學校 佛典刊行委員會 編, 韓國佛敎
全書, (서울: 동국대출판부: 1979) 제2권, 3-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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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27
하나에서 전체를 보니 하나가 곧 전체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무한한
조화가 연기 아닌 것이 없으니 전체가 곧 하나이다. 우주 삼라만상
일체가 인다라 망의 구슬 속에 담겨 있으니 일체가 하나이다.
댐을 쌓는 것이 현대적, 서구적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대안이라면,
물길을 터서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를 심는 것은 화쟁의 不一不二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된 대안이다. 화쟁의 패러다임을 가졌던 최치원은
홍수를 막기 위하여 물길을 트고 숲을 조성하였다. 지금도 지리산 자
락의 함양군 함양읍 대덕동에 가면 낙엽활엽수림으로선 유일하게 천
연기념물(제154호)로 지정된 上林이란 숲이 있다. 1,100년 전 신
라 진성왕(887년~896년) 때 이곳의 태수인 고운 최치원이 위천의
홍수를 막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숲이다. 지금도 폭 200~300미터,
길이 2킬로미터에 걸쳐 200년 된 갈참나무를 비롯하여 114종, 2만
여 그루의 활엽수목이 원시림과 같은 깊은 숲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하여 씨와 열매의 관계처럼, 물은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는 물을
품어 천여 년 간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유지할 수 있었다.
무이의 사유는 우열이 아니라 차이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투
쟁과 모순이 아니라 자신을 소멸시켜 타자를 이루게 하는 상생의 사
유체계이다. 서구의 이항대립의 철학이 댐을 쌓아 물과 생명을 죽이
는 원리를 이룬다면, 무이와 불일불이는 그 댐을 부수고 물이 흐르
는 대로 흐르며 물은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람은 물을 흐르게 하는 원
리이다.
이처럼 무이와 불일불이는 심층생태론이나 사회생태론을 초월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의 환경위기를 낳은 근본 원인과 모순에 대한 첨예한
인식과 실천이 없다면 이는 당위적, 선언적 공리공론에 그친다. 지
금 여기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환경위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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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이 또한 불일불이로 언제인가는 포용될 것이라며 실천을 행하지 않
는 이는 추상적 관념으로 전락한다. 신비주의로 빠질 경향도 짙다.
동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전제왕권 사회나 농업사회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새로운 개념의 합리성’으로 보완하여야 한다.
최치원은 상림을 만들어 천여 년 동안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을 맑게
유지했지만 그가 부임한 그 해의 홍수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최치
원은 선생은 상림을 조성하기 전에 둑을 쌓았다. 이처럼 동양만으로
부족하다. 둑, 서양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이 결합되어야 한다.
5. 차이의 철학과 辨同於異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외친 이후 서양
철학은 오랜 동안 주체 중심적, 동일성의 사고를 하였다. 내가 어떤
동일성을 가져 나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그 동일성을 가지는가? 내
가 대상이나 타자와 만날 때 나는 그 대상이나 타자와 대립적인 위상
에 놓이는가? 동일성은 타자와 나를 구분하고 대립시키는 데서 비롯
되기에 필연적으로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담론을 형성한다.25)
25) 동일성의 사유는 타자에 대한 배제의 담론과 실천을 낳는다. 히틀러의 유
태인 대학살,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킬링필드 등은 모두 동일성의 사유를
극단화하여 실천해서 빚어진 야만의 예들이다. 폴 포트를 만난 이들은 그
가 온화하고 겸손하며 지적이면서도 따스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캄보디아 인구의 1 / 4인 정도인 170만 명의 무고한
국민을 킬링필드로 보냈을까? 그의 뜻만큼은 숭고하였다. 캄보디아 농촌을
보고서 그는 캄보디아 전체를 농촌처럼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며 순박한 인
심을 가진 공동체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순수한 농촌 공동체
를 동일성의 사유로 지향하였기에 안경을 낀 사람도 ‘도시스러움’을 갖고
있다고 처형할 정도로 타자-‘도시적인 것’-를 철저히 배제하고 이를 추구
하는 사람들에게 야만적인 폭력을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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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29
라캉은 서양을 지배해 온 주체중심, 동일성의 사유를 비판한다. 욕
망은 어디로부터 기원하는가? 이는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온 결핍에
서 비롯된다. 18개월 이전의 아기는 상상계(imaginary stage)에
머문다. 그는 이미지에 속박된다. 젖을 빨면서 어머니와 자기가 하
나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외계, 주체와 객체 간에 뚜렷한 구별이 불
가능하다. 18개월이 지나면서 아기는 거울의 단계(mirror stage)
로 진입한다. 아기는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 모습을 보고 자기가 어
머니와 다른 몸을 가진 주체라고 비로소 생각한다. 거울 속에 비친
대상이 나를 형성하는 것이다. 아이는 조각난 몸의 고뇌에서 하나의
전체성으로 자신을 통일시킨다. 어머니의 한 조각으로 알고 있던 아
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일관되고 자기 통제가 가능한 총체로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시기이다. 아기는 거울 속의 자기를 보면서 내면세계
와 주위세계와의 관계를 정립하여 자기 동일화를 이룬다. 이 아기는
곧 ‘아버지의 이름(the-name-of-the-father)’을 받아들이면서
사회화하는 상징의 단계(symbolic stage)로 진입한다. 언어와 상
징을 수용하여 이제 말을 시작한다. 인간은 욕망을 억압하고 언어기
호와 도덕, 윤리를 수용하면서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언어는 화
자 개인을 초월하는 사회문화적 상징체계이므로 무의식은 자아로부
터 독립된 질서와 체계를 갖는 큰 타자의 담론이다. 그러기에 무의
식은 큰 타자(아버지의 이름, 법, 기표)의 담론이며 타자는 다른 장
소에서 나타난 주체의 다른 모습이다. 라캉은 이를 “나는 내가 존재
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
에서 존재한다.”26)라고 한마디로 압축하여 주체중심주의의 사유에
있었던 현대 철학자들에게 외친다. 그러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
26) J. Lacan,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trans. A. Sheridan(Harmondsworth: Penguin, 1977),
p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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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 이에 기반을 두고 발전시켜 온
서구의 현대 철학은 전복된다. 나는 타자가 내재화한 것이며 타자는
다른 장소에 나타난 나의 다른 모습이다.
데리다는 이를 형이상학적으로 발전시켜 동일성에 바탕을 둔 서구
철학을 비판한다. “恣意性(arbitrariness)은 기호의 체계의 충만
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들 사이의 차이에 의하여 구
성될 때만 일어나는 것이다.27) 의미작용은 낱말이나 사물의 충만한
본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차이, 구조 속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동일성은 하나의 다른 것이 또 다른 것으로, 대립
의 한 용어가 다른 용어로 옮겨가는, 전복되고 모호한 통로에 불과
한 차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동일하다고 믿은 것은 차연 속의
타자이며, 타자 속의 차연에 불과하다.” 같은 것은 다른 것의 다른 것
이고, 다른 것은 자기와 같은 것이다. …… 타자는 절대적으로 자아일
때만, 즉 어떤 면에서 나와 동일자일 때만 다른 것이다28) ‘현존의 순
간’이란 실제로는 不在와의 차이적 관계(differential relation)에
의해 산출된다. 진리의 기반은 훗설의 체계 내에서 비진리의 영역으
로 배제시키려 했던 것에 의해 구조화한다. …… 현존은 오직 동일
성 내부의 다른 것, 즉 異他性(alterity)에 의존함으로써만 스스로
존재한다.29)
이렇듯 탈현대의 철학은 동일성을 차이로 전복시킨다. 차이가 동
일성에 선행하며 형이상학이 근원으로 내세우는 동일성은 차이작용
의 결과로서 생산될 뿐이다. “동일성이란 본질적인 차이와 특수한 역
27) Jacques Derrida, Speech and Phenomena and Other Essays on
Husserl’s Theory of Sign, tr. David B. Allison(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73), p.139.
28) J. Derrida, Writing and Difference, p.127.
29) Michael Ryan, Marxism and Deconstruction-A Critical Articulation(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2),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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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31
사적 ‘분할(segmentation)’을 초월하는 일반적 범주-그 자체로
차이의 동일화(an identification of difference)-로 관념화할
수 있는 것인데, 사회적 관계는 결코 이런 동일성-개인-으로 환원
할 수 없는 타자성을 구성한다. …… 단순히 한 “사물”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하나의 “관계”라고 말하는 것은, 異他性이 동일성에 선
행하며 이를 생산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30)
폴 포트나 일본군의 대학살에서 보듯 동일성의 사유는 타자에 대
한 배제와 폭력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차이의 사유는 타자에게서
자기를 발견하며 타자와 차이를 통하여 자기를 찾는다. 그러기에 진
정으로 사랑을 하는 이들이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게로 가 상대방을 닮으려 하는 것처럼 차이의 철학은 타자와 평화스
러운 공존을 모색한다.
원효는 8세기경에 緣起와 空의 철학을 바탕으로 차이의 철학을
논한다.
“같다는 것은 다름에서 같음을 분별한 것이요, 다르다는 것
은 같음에서 다름을 밝힌 것이다. 같음에서 다름을 밝힌다 하
지만 그것은 같음을 나누어 다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다름
에서 같음을 분별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을 녹여 없애고 같
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같음은 다름을 없애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같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다름은 같음을 나눈 것이 아니기에 이를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다르다고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들이
같다고 말할 수 있고 같다고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들
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에는 둘도 없고 別도 없는 것이다.”31)
30) Michael Ryan, op. cit., p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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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원효의 말대로 동일성이란 것은 타자성에서 동일성을 갖는 것을
분별한 것이요, 타자성이란 것은 동일성에서 다름을 밝힌 것이다.
동일성은 타자를 파괴하고 자신을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동일성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타자성은 동일성을 해체하여 이룬 것
이 아니기에 이를 타자라고 말할 수 없다. 主와 客, 현상과 본질은
세계의 다른 두 측면이 아니라 본래 하나이며 차이와 관계를 통하여
드러난다. 주체에는 이미 타자가 들어와 있고 타자 또한 주체를 형
성한다. 화쟁은 주와 객, 주체와 타자를 대립시키지도 분별시키지도
않는다. 양자를 융합하되 하나로 만들지도 않는다. 어느 한 편에 치
우치지 않으면서 중간도 아니다. 주와 객, 주체와 타자가 서로를 비
춰주어 서로를 드러내므로 스스로의 본질은 없고 다른 것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진리란 것은 진리가 아닌 것과 차이를 통하여 진
리를 드러내고 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와 차이를 통하여 진리가 아니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효의 辨同於異는 차이의 철학과 통한다. 차이의 철학이 異他性
을 동일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밝혀 놓는 데 그치고 있다면, 원효의
철학은 眞俗不二를 통하여 異他性이 利他性으로 전화할 수 있는
근거를 당위적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제시한다.32)
31) 元曉, 金剛三昧經論, 卷中, 韓佛全, 제1책, 626-상: “同者辨同
於異 異者明異於同 明異於同者 非分同爲異也 辨同於異者 非銷異爲同
也 良由同非銷異故 不可說是同 異非分同故 不可說是異 但以不可說異
故 可得說是同 不可說同故 可得說是異耳 說與不說 无二无別矣”.
32) 제5장의 내용은 졸고, 「원효의 화쟁사상과 탈현대철학의 비교연구」, 元
曉學硏究, 제6집, 元曉學硏究院, (2002년 2월) 의 내용과 겹친다. 필
자가 미천하여 차이의 철학에 대해선 원효 말고 다른 깨달음을 아직 얻지
못하여 자기표절을 하고 말았다. 양해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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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33
6. 맺음말
탈현대성을 지향하는 철학을 핵심 개념 위주로 살펴보고 동양 사
상이 어느 면에서 가능성을 갖고 또 어느 면에서 한계를 갖는 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동양 철학은 이성 너머의 진리를 추구하고 생태론
적 자유, 차이의 사유를 하기에 탈현대의 철학과 상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업을 할 때 전제되어야 할 것은 현재적 맥락
화이다. 요즘 우리 사상이나 동양철학으로 21세기의 대안을 모색하
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그러나 “동양 사상이 대안이다.”라는 주장에
서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보편성과 오늘의 현실맥락을 배제
한’ 당위적이고 선언적인 공리공론에 그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동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인권과 민주라는 현대의 긍정적 가치를
부정하고 동양의 전제정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비합리적인 중세
의 농업사회로 퇴행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현재의 고통을 감
내하는 것이 더 낫다. 현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21세기 이 땅의 모
순에 대한 비판과 대안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지극
한 이론이라 하더라도 현재적 의미는 없다. 오늘날의 복잡해진 사회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현들의 현학적이고 신비적
인 은유의 유희로 그칠 뿐이다. “동양의 전통사상이 덧없는 공허함이
나 신비주의적인 외형을 가지는 경향이 있고, 동양의 현인들이 심오
하게 사유하고 느꼈다는 사실이 ‘그들 저서가 모호하다’는 비판으로
부터 그들을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라는 머레이 북친의 비판은 새겨
들을 만하다.
지금 여기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환경위기와 소
외, 물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데 이 또한 不一不二로 언제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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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포용될 것이라며 실천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추상적 관념으로 전락
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주장대로 이성중심주의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한 원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이성을 무시한다면 ‘지
금 여기에서’ 생명을 무차별로 학살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비판할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버마스의 말대로 합리성이 없다면
유토피아를 실현할 방법 또한 없다. 최치원이 상림을 조성하기 전에
둑을 쌓은 것처럼, 동양 철학은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구
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편은 서양의 합리성에서 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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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35
<국문초록>
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이도흠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서구적 현대를 부정하거나 해체하고 이와 구별되
는 ‘또 다른 현대’, 혹은 ‘현대로부터 탈출’을 모색한다. 이런 면에서 또 다른
현대로서, 혹은 서양적 현대의 반대편에 있는 패러다임으로서 동양(사상)
은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대화가 가능하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탈현대성의 철학에 대해 핵심 개념을 이성중심주의에서 그 해체로, 인간중
심주의에 대하여 생태론으로, 동일성의 사유에서 차이의 사유로 전이한 것
으로 간주하고 각각에 대해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논하였다.
하버마스가 목적적 합리성을 비판하면서도 이성의 계몽적 힘은 중
시하여 소통적 합리성으로 대안을 삼는 것과 달리, 포스트모던 철학
을 대표하는 데리다는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를 해체하고
자 한다. 세계란 이가 드러난 것, 이의 체계 속에 쓰여져 드러
난 것, 현전과 부재가 끊임없이 교차하여 일어나는 유희에 불과하다.
道, 一心, 眞如, 天, 不然 등은 이성중심주의와 언어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진리, 실체,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그렇지 않
음을 드러내면서도 정작은 자신은 비어있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고 이름으로는 이를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는 면에서 통한다.
하지만 동양, 특히 和諍의 사유는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효는 해
체만 하는 것이 아니라 先領言句 後領義理의 방법을 통하여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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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기호를 통하여 궁극적 실체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전지구 차원의 환경위기는 인간이 전 지구의 중심에 서서 자연을 착
취하고 개발하는 것을 문명으로 여긴 인간중심주의와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기계적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비
판하는 서양의 지식인은 사회생태론, 에코페미니즘, 심층생태론 등 인
간과 자연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생태적 세계관으로
지구촌이 전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양 철학은 無二의 사유를 하
기에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없다. 身土不二, 物我一體, 梵我一如를
추구한다. 동양의 숲에서 보면 자연과 인간은 본래 하나다. 無二와 不
一不二의 사유는 우열이 아니라 차이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투
쟁과 모순이 아니라 자신을 소멸시켜 타자를 이루게 하는 상생의 사유
체계이다. 서구의 이항대립의 철학이 댐을 쌓아 물과 생명을 죽이는
원리를 이룬다면, 무이와 불일불이는 그 댐을 부수고 물이 흐르는 대
로 흐르며 물은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람은 물을 흐르게 하는 원리이다.
폴 포트나 일본군의 대학살에서 보듯 동일성의 사유는 타자에 대
한 배제와 폭력을 전제로 한다. 이에 대해 레비나스, 라깡, 들뢰즈
등은 차이의 사유를 내세운다. 차이의 사유는 타자에게서 자기를 발
견하며 타자와 차이를 통하여 자기를 찾는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사
랑을 하는 이들이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로 가 상
대방을 닮으려 하는 것처럼 차이의 철학은 타자와 평화스러운 공존
을 모색한다. 원효의 辨同於異는 차이의 철학과 통한다. 차이의 철
학이 異他性을 동일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밝혀 놓는 데 그치고 있다
면, 원효의 철학은 眞俗不二를 통하여 異他性이 利他性으로 전화
할 수 있는 근거를 당위적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주제어
탈현대, 현대성의 위기, 이성중심주의, 이, 화쟁, 道, 一心, 不一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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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37
<Abstract>
The Possibilities of Eastern Philosophies
as Postmodernism
Lee, Do Heum
Postmodernists deny modernity. They try to overcome the
crisis of modernity. Eastern and modern philosophy have widely
divided opinions on an important point. So, Eastern philosophy
hold in common on an essential ideas with postmodernism.
Postmodernism deconstruct logo-centrism. Taoism and Buddhism
deny that truth is understood through reason. Taoism and
Buddhism admit that tao or dharma is not spiritually awakened
by words and man’s understanding. Tao and ilsim(一心) hold in
common on an essential ideas with Derrida’s différance.
Based on the binary opposition, by separating man and nature
and by giving to the human being a absolute superiority, Modern
man has challenged nature, developing and exploiting it under the
name of modernization. However, it has led to a global
environmental crisis, the western society can not avoid to the
responsibility of this modern disasters.
If constructing a dam is a modern paradigm of the western
world, there is another way to control by letting the water flow
out freely. While dams make water to spoil and harm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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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environment, trees absorb rain and purify water. We can
understand the latter by example of hwajaeng’s paradigm that
gave us a lesson, “not-one-and-not-two.” In the Shilla dynasty
that adapted hwajaeng philosophy, Chi-Won Choi(Queen Jinsung
era 887~896), a governor of this ancient Korean state made
waterways and a wood by planting trees to prevent eventual
water-flood 1,100 years ago. Even today, Koreans conserve this
wood of broad leaves as a natural treasure, “Sanglim”.
Eastern philosophy is comparable to post-modern thought
characterized in deconstructing any dichotomy, division, and
linguistic symbols, all attempt which want return to the one
source. Futhermore, it not only deconstructs binary opposition, but
proposes a specific way to reach ultimate truth. Eastern philosopher
offers a way to retain our everyday lives while reaching
realization. They suggests a method for which modernism and
post-modernism may exist not as two, but as one.
Key-words
postmodernism, the crisis of modernity, logo-centrism, différance,
hwajaeng, tao, ilsim(一心), not-one-and-not-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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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사상으로서 동양 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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