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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국가주의 시선과 그 극복양상을 중심으로/손진은


국가주의 시선과 그 극복양상을 중심으로.hwp


-국가주의 시선과 그 극복양상을 중심으로

 

손진은**

 

 

 

차례

 

 

 

1. 들어가는 말

2. 한국 전쟁 체험과 현대시의 대응 양상

2.1. 전쟁동원과 참상의 현실

2.2. 생명의 신비와 인간성의 부활의지

2.3. 전쟁체험의 구조화와 비판적 주체의 확립

3. 나가는 말

 

[국문초록]

1950년대의 한국시는 한국 전쟁이라는 특수한 체험을 거치면서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며 수많은 전쟁시를 산출했다. 이 글에서는 전쟁동원과 참상의 현실, 생명의 신비와 인간성의 부활의지, 전쟁체험의 구조화와 비판적 주체의 확립으로 나누어 국가주의 시선이 어떻게 작용하고 또 극복되어 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 발표된 전쟁시들은 상당수가 참전 독려와 멸공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전쟁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또 한 가지 유형은 전쟁의 폐허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과 전쟁의 공격성을 대비시키는 경향이다. 전쟁의 비극성을 자연으로 치유하려는 것은 전쟁극복을 위한 손쉬운 해결방법이다. 이 꽃 시편들은 국가주의 시선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반공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순수문학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이들 시편들에서도 국가주의 시선은 은밀하게 작동한다.

다음으로 국가주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적 경향인데, 이는 전봉건의 시에 이르러서 이루어졌다. 전봉건의 시는 전장이라는 폭력적 상황 앞에 내던져진,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무력함을 통해 전쟁체험을 구조화한다. 마침내 시인에게 주체는 죽음의 상황과 동일시되고 그로부터 새롭게 생성된다. 이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주체 파악이다.

 

주제어 : 전쟁시, 국가주의 시선, 반전인식, 생명의 신비, 비판적 주체, 전봉건, 부활의지

 

 

1. 들어가는 말

 

한국전쟁은 남북한 공히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와 상처를 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북한은 인구의 28.4%272만여 명을 사상(死傷)과 난민으로 잃었고, 남한은 133만여 명을 주로 사망자로 잃었다. 그 외에도 물적, 정신적 피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전쟁의 상황을 비롯한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여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응전과 도전으로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속성을 가진다. 1950년대의 한국 전쟁시는 바로 시를 통해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그들이 견디어내야 했던 고통과 절망, 의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이 점에서 1950년 한국 전쟁시를 현재의 시점에서 다루는 것은 의의 있는 일로 평가된다. 그동안 1950년대 한국 전쟁시의 연구는 연구자들의 입지가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부터 크게 자유롭지 못했으며, 시대의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단독 정부 수립 이래 한국은 반공규율사회로 전환되면서 우리 사회 전반과 개인의 의식은 반공주의에 의해 구조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전쟁을 사상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일선 군인의 자세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나 정서도 전시체제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무장되었으며 기존의 제도나 교육의 방식 역시 재편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국가주의의 틀이 어떻게 전쟁기 시에 스며 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의식화와 이에 따르는 형상화 과정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성질의 것이라 판단된다. 거기에는 우선 전쟁체험을 형상화해야 할 당사자들인 문인들의 상당수가 납북 혹은 월남을 선택함으로써 일어난 문단의 이동현상, 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상황 속에서 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한 형태인 종군작가단의 결성과 기관지(혹은 잡지)의 발행, 전시판 문예지로의 변모, 나아가 국민을 의식화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인 전시독본의 발행 등의 요소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창작자와 평가자들의 특정 이데올로기 선택과 이해 내지 포용 정도, 언어예술적인 가치나 탐색의 성숙도 및 미학적인 성취도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이 글에서는 1950년대 한국 전쟁과 그 시적 대응 양상을 살피기 위한 연구 대상을 1950년대에 창작되거나 그 시대의 상황을 노래한 시, 한국전쟁과 관련성을 가지면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시는 물론, 반전의식과 전쟁이 남기고 간 고통과 상처와 그 치유를 향한 전망을 다룬 시들, 나아가 민족동일성과 분단의 극복을 위한 시들로 한다.

그동안의 논의에서도 국가주의 시선을 다룬 논문들은 있었다. 그 논문들에 나타나는 국가주의는 신라정신’ ‘화랑등 국가주의를 지탱하는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거나, 반공이데올로기로 모아지는 국가시선이 시작품에 어떻게 구체화되어 드러나는가, 즉 반공담론의 시적 내면화의 문제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연구들에서는 국가주의 시선의 극복양상을 살피는 일에는 눈길이 미치지 못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이 논문에서는 국가주의 시선이 적용된 경우는 물론 외면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나 국가주의 시선이 은밀하게 적용된 경우, 나아가 국가주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경우 세 가지 경향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기로 한다.

이 글은 한국 전쟁과 현대시의 대응 양상을 1)전쟁동원과 참상의 현실 2) 생명의 신비와 인간성의 부활의지, 3)전쟁체험의 구조화와 비판적 주체의 확보 등 세 가지로 나누어 국가주의 시선이 극복되어가는 과정을 시를 통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이렇게 분류한 것은 각항에 나타나는 시들에서 국가주의 시선 극복의 점진적 양상이 드러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

 

 

2. 한국 전쟁체험과 현대시의 대응양상

 

2.1. 전쟁동원과 참상의 현실

 

전쟁기에 발표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작품들은 시대상황의 절박함 때문에 목적의식을 강하게 지니는 특징을 지닌다. 이 유형의 작품에서는 적을 무찔러야 할 악으로 바라보는 주체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적의 희생은 당연시되고 아군의 병사들에게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죄의식, 공포 등을 제거시켜 준다. 따라서 이 시기에 발표된 전쟁시들은 대부분 전투정신의 고취, 적에 대한 적개심 고양, 조국애의 함양 등을 내용으로 참전의 의지와 투쟁정신, 멸공의식의 고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전쟁의 현장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전면화하고 자유 민주주의 사상의 주입과 반드시 승리한다는 낙관적 믿음을 고취하며, 패전과 염세근성을 근절하기 위한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이런 의식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전투가 벌어진 현장체험을 형상화한 시들이다. 장호강의 戰鬪詳報抄-쌍용고지쟁탈전은 살기 위하여 동족을 처참히 죽여야 하는 전투현장의 비정한 양상을 보여준다. 치고 받고 물고 뜯고 때리는 전투상황은 처절함이 극에 달한다. 또 종군기자로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의 체험을 형상화한 박인환의 한 줄기 눈물도 없이, 신호탄등의 작품에는 전쟁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영순의 ?연희고지?(정민문화사, 1951)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들은 적의 침략과 무자비를 격퇴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냄은 물론, 세기의 비극같은 작품에서는 UN군의 한국참전의 정당성과 김유신,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자 했던 신의와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는 전쟁으로서의 가치라는 국가주의적 시선이 드러나 있다.

 

총아!

너는 네 몸이 불덩어리로 녹을 때까지

원수들의 피를 마셔라

 

검아!

너는 네 몸이 은가루로 부서질 때까지

원수들의 살을 삼켜라

 

- 내 가슴에도 원수의 총알이 쏟아져오면

내 사랑하는 조국의 여윈 제단 앞에

몸소 방울 방울 깨끗이 드리오리니

 

이리하여 우리 세넋이 거듭 한몸 되면

방방곡곡 피여나는 무궁화 되고

사시장천 노래하는 불사조 PHOENIX 되어

백의겨레를 무궁토록 찬미하오리

 

- 장호강,총검부

 

시적 주체는 6.25 전쟁에 자원하여 참가한 지휘관, 즉 국가가 동원한 사람이다. 따라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누구보다도 앞서서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럼으로써 가장 직접적인 국가주의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섬뜩하기까지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연에서부터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며 이념적 폭력이 기능하는 것을 우리는 본다. 그것은 전쟁을 수행하는 상대방 타자원수라 명명하는 데서 드러난다. 북한군은 절대적인 악의 상징이며 부정성의 전형성으로 묘사된다. 이는 이 시가 국가주의라는 호출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쓴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실제 전투경험을 진술하고 묘사한 그의 시집 도처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2연은 국가를 위한 희생의 자세를 보여준다. 국가를 위한 헌신적인 복무는 선물이자 특혜라는 주장은 참전시의 경우 벗어날 수 없는 한계라 할 수 있다. “은가루로 부서질 때까지/원수들의 살을 삼켜라에서는 이 시적 주체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당시 전쟁시를 쓰는 시인들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이 시에서 총검의 의인화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는 제한된 작품성과 관련된다. 3,4연에서 피의 방울 방울불사조 PHOENIX’는 개인의 희생을 장엄하게 재구성시켜 국토 수호를 위한 전쟁의 이념을 숭고하게 탄생시켜 국가주의를 관철시킨다. 숭고의 감정은 대상을 미화시키며 시적 공간을 칭송의 어조로 만든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수난은 애국이라는 숭고한 이념을 통해 극복된다. 전쟁터에서 갖게 되는 화자의 숭고한 감정은 방울방울제단에 바치는 피가 우리 민족의 상징인 무궁화가 되게 한다. 이러한 수사는 개인 위에 있는 국가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상정됨으로써 가능하다. 결국 시인은 총과 검, 그리고 나의 가슴이 하나가 되면 몸은 거듭하여 무궁화로 피어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가 될 것이라는 장엄한 믿음을 토로한다. 여기서 주체가 새벽마다 갈고 닦는 총과 검은 주체의 분신으로 지금은 불구대천의 원수와 결전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구국의 일념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전쟁에 대한 윤리적 정당화는 우선 우리 앞에 닥친 국난을 일사불란하게 극복해야 하는 국가나 민족에 의해 선구성된 이데올로기(반공)에 기인하고 있으며,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할 상황에서의 불가결한 요구이기도 했다. 아울러 전쟁의 참상에 상처받고 지친 사회구성원들에게 그것의 원인과 책임을 설명해주는 이론이자 단서가 되었고, 나아가 후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반공주의는 한국인들의 의식세계에 깊이 내면화되었다는 반증이 된다.

종군작가들을 포함하여 전쟁의 현장에서 쓰여진 많은 작품들이 대부분 문제작이 없다는 점과 현실적인 명제가 작가들에게 문학의 현실적인 생명연소를 여과하지 못한 채 강요된 긍정으로 나아가야 했다는 자기반성에서 보듯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적대감에 바탕을 둔 맹목적인 전쟁독려에서 벗어나 전쟁참상을 고발하고 반전의식을 드러내는 작품들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떵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드메를 골라

고히 파묻어 떼마져 골라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리면

가로막히고

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 구상, 초토의 시 8

 

적군묘지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는 전쟁현장에서 죽음을 맞은 북한군의 무덤을 만들면서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인간의 무모한 투쟁욕을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민을 통해서 인간적 동질감을 확인하고 전쟁의 모순을 환기함은 물론 개인의 희생에 대한 불합리와 함께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전쟁참상의 토로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불떵이를 안고에 나타나는 우리 모두 다/원수를 겨눠라같은 적대적 표현, 결사항전의 애국심으로 무장한 군인의 정신세계에서 한 걸음 진전된 의식을 드러낸다.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적의 무덤을 만들고 떼마저 입히는 모습에서 우리는 비극적인 전쟁의 체험자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개탄하고 적군까지도 사랑하는 인류애를 품고 있는 면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가 반전의식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시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시선은 시혜자의 자세에서 말미암는다. 시적 주체는 은연중에 시혜자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초토의 시?에 이 시와 함께 실린 다부원에서에서도 드러난다. “스스로의 뉘우침에 우는 듯/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병사라는 표현에서 보듯 적군의 죽음 앞에서조차 국가주의에 포획된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논리라면 괴뢰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것을 죽어서라도 뉘우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밑바탕에 깔린 체제 우월의식에서 기인한 전쟁진술의 일환이다. 전쟁수행의 종군문학은 문학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전선의 소식을 알림은 물론, 전선병사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국가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종군작가들은 직접 전쟁현장에 던져진 병사와 다를 것이 없는 국가가 동원한 사람이다. 이 시는 다부원에서에서보다 더 나아가 반전의 목소리가 작품을 상당 부분 나타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추수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 시에서 동족 간의 화해의 염원은 북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으로 형상화되는데, 이런 의식을 만들게 한 계기는 죽음이다. 죽음은 이념적 대립에 의한 미움을 넘어서서 민족애와 관용과 사랑을 불러일으킬 만큼 크고 너그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 시에 나타나는 사랑이나 관용이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안에서 작용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적군의 죽음마저 사랑으로 껴안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삶과 죽음에 관한 시적 리얼리티에 섣부른 의미를 부여하여 그럴 듯한 포즈로서의 시가 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감정을 절제하고 일정한 거리에서 대상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적 토로와 함께 휴머니즘을 배면에 깔면서 화자의 처연한 감격을 실존의식에 적당히 버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전장의 본질과 실체를 시화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초래한 생명의 훼손을 고발하고 이데올로기가 행사하는 폭력에 회의하는 주체를 생산했다는 점에서는 진보로 볼 수 있다. 이는 종군문인이나 현역군인들의 작품에서 나타났던 맹목적인 적대의식을 극복하고 반전의식을 구체화하는 다른 작품을 낳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계엄령’ ‘린치’ ‘아우성가득한 전쟁기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일어난 전쟁이 국민 전체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형상화하고 있는 최광렬의 012298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2. 생명의 신비와 인간성의 부활의지

 

참혹한 전쟁이 지나가고 나면 폐허의 현실만이 남게 된다. 아수라장이 된 현실은 곧 그 참담함 때문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을 유발한다. 이러한 때에 자연의 발견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이 때 자연은 찬미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의미를 띠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의 자정력으로 폐허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시에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박정온은 집들이 타는 냄새저 무서운 총탄이 빗발치던/검은 땅 속을 헤치며/사람마다찾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희망의 이름으로 씨를 뿌려둔/그런 것이어도 좋다이 흙 속에 묻힌(?최후의 서정?, 정음사, 1957.6)에서 가능성을 타진한다. 아래의 시들은 그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荒蕪

戰場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송이

뉘의 委囑으로 피어났기에

상냥함을 발돋움하여 하늘과 맞섬이뇨

 

그 무지한 砲聲爆音高喊

마지막 殺戮의 피에 젖어 그렇게

육중한 지축이 흔들리었거늘

너는 오히려 靜謐 속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랐기에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푸르른 天心에의 길 위에서 한 점 웃음으로

지우려는가

 

- 박양균,

 

������문예? 195256월 합병호에 발표된 박양균의 등단작이다. ?문예?194981일에 창간된 순문예지로, 해방기 좌파 문학인들과의 대립 속에 문단주체세력으로 성장하였던 모윤숙, 김동리, 조연현 등의 우파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이전 발간되던 잡지, 동인지 등의 문학 매체들이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대부분 폐간되던 시점에서 살아남은 매체인 만큼 ?문예?는 전시 상황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새로운 담론의 구성을 요청받고 있었다. 순수문학을 표방하던 이 매체에 전시판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이 매체가 전쟁 속에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전달매체로 변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출판 행위 일체가 국가주도의 기록사업 일환으로 반공이데올로기의 확대재생산과 근대국가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문예? 전시판은 곳곳에 전의와 굳은 이념이 담긴 글들을 실었다. 박양균의 이 발표된 이 지면은 전시판은 아닐지라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전시판과 이데올로기의 작동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 시를 읽는 키워드는 맞선다’, ‘지운다라는 동사이다. 시인은 사물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세밀한 묘사를 통하여 가혹한 현실상황과 자연()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킨다. 전쟁의 폐허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은 자연의 생명력과 건강성을 일깨움은 물론 생명의 신비와 함께 인간성의 부활과 소망까지를 노래한다. 그 꽃은 전장에서 피어나 전장에 뿌리박고, 그 전장과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무기와 반대되는 상징을 가진다. 포성과 폭음과 살육의 피에 젖은 전장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 송이가 상냥하게 피어나 하늘과 맞서는 것이다. 그것은 살상무기와는 달리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부드러움으로 자라며, 푸르른 천심의 길, 즉 자연의 섭리에 따라 한 점 웃음으로전쟁의 상흔을 지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인간을 말살시키는 엄청난 현실의 상흔을 치유하는 소생의 의미를 담지한다. 즉 이 시는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고발과 탄식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무상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시는 ?문예?가 추구하는 순수문학의 표상에 가깝다. 순수문학은 문단주체세력이 내세우는 주된 지향이다. 그렇다면 ?문예?는 어떻게 미적 자율성을 내세우는 순수문학과 전쟁 수단으로 도구화된 전쟁문학을 합일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문단주체세력에게는 공산주의가 그들이 내세우는 주된 표상인 순수문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공주의와 순수문학은 공산주의의 침략 앞에서 쉽게 결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서정주의 아래 시는 생명 가진 것과 안 가진 것을 막론하고 뚫어버리는 무기의 폭력성과 비극성에 사용되는 이미지를 꽃에 차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생명의 신비와 치유기능을 형상화한다.

 

꽃아,

저 거지

고아들이

달달달 떨다 간 원혼을 헤치고,

그보다도 더 으시시한

그 사이의 거간꾼

왕초며

건달이며

꼭두각시들의 원혼의 넝마들을 헤치고,

새로 생긴 애기의

누더기 강보 옆에

첫국밥 미역국 내음새 속에

피어나는 꽃아,

쏟아져 내리는

기총소사 때의 탄환들같이

벽도 인육도 뼈다귀도

가리지 않고 꿰뚫어 내리는

꽃아.

꽃아.

 

-서정주,

 

이 시는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을 국제정치나 이데올로기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지양하고 민중의 생존전쟁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인물은 두 개의 대립군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거지, 고아’/‘거간꾼, 왕초, 건달힘없는 자’/‘힘있는 자의 대립이며, 또 하나는 거지, 고아, 거간꾼, 왕초, 건달’/‘꼭두각시의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좌우를 떠나서 전쟁이 양산한 존재, 생존에 신경을 쓰는 이름 없는 민중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민중들의 원혼들은 차마 이곳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남은 자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그 원혼들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서정주가 고안해낸 방식이 꽃이 피어나는 형상을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의 장면과 동일시하는 비유체계이다. 왜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 땅의 수많은 장삼이사들이 벽도, 인육도, 뼈다귀도 가리지 않고 꿰뚫어내리는탄환 앞에 달달달 떨며쓰러졌지만, 꽃은 그 총탄보다 더 강렬한 공격성으로 피어나면서 전쟁의 참혹과 비참을 덮고 생명성을 일깨운다. 새로 생긴 순한 생명인 꽃의 개화를 기총소사 때의 탄환들같이라는 예기치 않은 비유를 통해 전쟁과 생명의 대비를 뚜렷하게 살려내면서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힘을 제공하고 있다. 또 하나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 시가 한국전쟁체험이 내장된 장소성을 드러내 주며, 장소상실을 극복하는 제의로서 창조된 자연의 세계, 재생의지를 보인다는 점이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사회적 고통을 드러낼 수 있는 미학적 장치가 갖춰져 가는 상황 속에서 가능하다. 6.25가 우리 민족에게 준 고통은 얼마나 크며 얼마나 많은 개인에게 외상으로 작용했는가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베라 슈와츠는 공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개인적 고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수용할 수 있는 보다 우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슬픔에 대해서 침묵하고자 하는 경향은 유불선의 공통적인 특징으로서 조화에 대한 갈망이라고 설명한다. 서정주 자신이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극심한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의 의미는 외면적으로는 고통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눈앞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서정주의 50년대 시에서 고통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데, 한국전쟁은 서정주에게 지금까지 겪은 어떠한 시련과 고난보다도 격심한 충격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같은 지점에서 다른 문제 제기 즉 50년대 서정주 시에 얼핏 보이는 고통의 희박화가 내면적으로는 전쟁의 격렬함과 황폐함에 맞서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의를 갖는다. 이런 고통의 간접화경향은 이 시를 통해 보듯 자연을 통한 정신적 회생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후의 궁핍한 현실 속에서 가난한 삶에 지쳐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사랑을 일깨워주고 있는無等을 보며, 上里果園, 등의 시편으로 진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 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도 읊고 싶구나

 

지난 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와

그 얼마나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또 어떨건가

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이병기, 냉이꽃

 

1954년에 창작하여 이듬해 11일에 발표한 작품이다. 가람은 초기에는 서경위주의 정감 제시가 두드러지는 작품을 썼다. 그의 시들은 대부분 자아와 세계가 갈등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과 경()이 융화된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그려낸다. 그러나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투옥되어 수감생활을 한 후에 시대에 대한 그의 인식이 보다 예각화되어 나타난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가람의 시세계가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첫째 수는 시와 삶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전쟁으로 황폐해질 때로 황폐해진 현실에서 밤마다 자는 잠세 때 밥으로 표상되는 식과 주의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때로 시도 읊고 싶은 문화적인 욕망도 채우지 못하는 탄식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읊는 시는 현실 비판의 모습을 띤 직설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현실비판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첫째가 인간을 총알받이로 만드는 전쟁에 대한 비판이고, 그 다음은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에 대한 비판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련성을 갖는다. 둘째 수에 나타나는 자연은 통시적 동일성을 지니면서도 끝없이 새로움을 주는 대상이다. 이는 그의 시관과도 연관된다. “같은 山水花鳥를 보더라도 그것이 다 다른 줄 아는 이라야 한다. …… 무슨 물건이든지 그것의 다른 성격이 있다. 이 다른 성격을 보고 아는 그 사람이 시인일 수 있다.” 시인은 지난 봄 진달래와 올 봄의 진달래”,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 꾀꼬리그 얼마나 다를까마는이라고 하여 이를 구별하는 것이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새롭다고 않는가로 이 사실을 부정한다. 곧 해마다 피고 우는 진달래와 꾀꼬리가 새롭게 느껴지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자연 속의 사물들은 사시사철 신선한 느낌으로 시인의 오감에 닿아오고, 그러기에 시인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시를 쓰는 시인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수에서 현실비판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자연 가운데 하나인 태양은 불타는 존재이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고불변인데 반해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는 그렇지 못하다고 운을 뗀 뒤, 그것이 바로 인간 자신이 만든 대량살상무기인 수소탄 원자탄 때문임을 밝힌다. 그리고는 그러한 첨단 살상무기를 만드는 인간의 뛰어난 지혜로도 작은 냉이꽃 한 잎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시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연은 계절과 섭리에 따른 절대선의 지배를 받아 충족된 세계를 이루고 있는 데 비하여 인간은 수소탄과 원자탄으로 전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존재이다. 시인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과 그 섭리를 깨트리는 인간의 욕망을 생명의 신비와 대비시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의 폐허를 경험한 인간이 여전히 무언가 배울 수 있는 대상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의 이름이 드러나거나 않거나 간에 이 세편의 시들이 공통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은 먼저 꽃이 무기와 대척점에 서 있는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의 폭력성과 비극성을 닫고 일어날 의지를 자연에서 발견함으로써 살아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려는 의도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꽃은 생명일반으로서의 자연을 넘어 이름 없는 민초들의 생명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 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듯이 그 생명은 하나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미감과 능력을 발휘한다. 그 꽃무리는 들이나 산모퉁이를 가득 채운다. 이 꽃무리는 아무리 거대한 포탄이라도 그 생명을 멸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기다. 이는 이 땅 민초들의 생명력과도 같다. 이는 이 시인들이 6.25 전쟁을 민중의 생존경쟁으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후의 처참한 풍경들은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비극적인 것이었으며,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을 이 세 시인들은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자연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극복한다. 우리는 여기서 50년대 전후 시에서 왜 이런 경향의 시들이 여러 시인들의 작품에서 나왔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꽃 시편들은 표면적으로는 국가주의 시선과 관련이 없다. 의도적으로 기획된 공통된 지침이나 이데올로기가 작동되지 않는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개인적인 취향에서 선택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쉽게 허락하는 순수문학적인 소재이다. 이런 연유로 시인들은 자연을 반전의 소재로 적극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 고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수용할 수 있는 보다 우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베라 슈와츠의 말처럼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 눈앞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편들이 전쟁체험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왜냐하면 전쟁의 비극성을 자연으로 위무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안일한 해결방법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미적 자율성을 내세우는 순수문학과 전쟁 수단으로 도구화된 전쟁문학은 공산주의가 순수문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쉽게 합일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시편들에서도 국가주의 시선은 간접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들 시가 가지는 특징이자 한계로 작용한다.

 

2.3. 전쟁체험의 구조화와 비판적 주체의 확립

 

전봉건은 한국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그 체험을 형상화한 시인 가운데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존재이다. 그의 시만큼 국가주의 시선을 벗어나서 전쟁의 비극성을 건조하면서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예는 드물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도 참혹함을 과장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고자 했다. 한국 전쟁 체험시에서 그가 전장에 참여하여 쓴 시는 죽음에 직면한 리얼리티, 즉 전장이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인간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적 진실을 가진다. 이는 전장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시들이 대체로 휴머니즘을 배면으로 깔면서 화자의 처연한 감격, 섣부른 실존인식을 내세우거나 시적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감정적 토로에 그치는 점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아울러 허무주의와 실존이라는 관념을 적당히 버무려 시를 만들거나, 추상적인 현실 인식 속에 진술을 적당히 늘어놓은 전쟁시와 달리 그는 전장의 실체와 본질을 예각화하여 보여준다. 이를 우리는 전쟁체험의 구조화라는 말로 명명할 수 있다. 그 구조화의 본질은 폭력적 세계 앞에 내던져진,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무력함이며 아울러 살아남은 자가 밝히는 죽은 자에 대한 시적 책임이다. 이는 저격수의 총구에 노출된 채 전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군번으로 익명화하면서 어떤 인간적 정감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 묘사하는0157842, 산야에 가득한 초연 아래 많은 사람들이 DDT를 맞은 이처럼 죽어가고 있음을 겹쳐서 묘사하고 있는 JET.DDT, 죽음의 전장으로 병력을 실어나르는 GMC와 주검이 되어 전장으로부터 나오는 AMBULANCE의 교차 속에 모든 것이 죽음으로 치닫고 있음을 극대화하여 묘사하고 있는ONE WAY- 이 길로는 가기만 합니다등에서 드러나는데, 이들 시에서 압축된 거리는 삶과 죽음에 팽창된 거리라 할 수 있으며, 인간 존재의 모습은 한 개의 점과 같이 응축된다. 죽음과 불모의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전봉건은 현란한 어휘와 격한 감정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고 도식적인 수사 역시 배제한 채 시를 이끌어가고 있다. 전쟁은 주체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하는 압도적 우위의 상황이며 세계에 대응하는 시인은 주체로서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5시나는호()속에있다수통수류탄철모붕대(繃帶)압박붕대대검그리고M1나는내가호속에서틀림없이만족하고있다는사실을다시한번생각해보려고한다BISCUITS를씹는다오늘은이상하게530분에또피리소리다9시방향3시방향나는BISCUITS를다먹어버린다6시밝아지는적능선으로JET기가쉽게급강하한다나는잠자지않은것과BISCUITS를남겨두지않은것을후회한다620분대대OP에서연락병이왔다포켓속에뜯지않은BISCUITS봉지가들어있다623분해가떠오른다나는야전삽으로호가장자리에흙을더쌓아올린다나는한뼘만큼더깊이호밑으로가라앉는다야전삽에가득히담겨지는흙은뜯지않은BISCUITS봉지같다

-BISCUITS전문

 

시적 화자는 지금 여기에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하나만을 즐긴다. 무목적적이고 무지향적 상황 속에 떨어진 인간은 미지의 운명에 내몰린 짐승과 같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며 비스킷 봉지 하나에 만족하고 또 후회할 정도로 단순한 삶을 산다. 어제나 오늘 내일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무의미함 그 자체일 뿐이다. 이 시는 전쟁에 직면한 인간들의 행동과 생각의 실체를 보여주는 시적 리얼리티로서의 의의가 있다. 전장 체험시에 나타나는 전봉건의 유희(장난) 역시 사상적 담론을 띠고 드러나는 시적 전략으로서의 유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는 죽음의 등가물인 소총이 환기하는 긴장을 가지고 유희한다. 그는 유희를 통하여 조준대상이 되는 자신을 상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죽음을 건너다본다. 놀이의 의미는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행위가 된다. 전장에서의 유희는 공포와의 유희이며, 허구적인 위험과의 유희이며, 자신의 죽음을 가상과 허구의 자리에 두려는 몸부림으로서의 유희이다. 그러나 놀이에 지치면 유희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현재 운명과 다시 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상황을 보더라도 전봉건의 시에서는 국가주의적 시선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전장이 야기하는 공포와 불안이지 좌와 우의 이념이 아니다. 그것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전장에서 쓰여진 이런 시들에서 이렇게 냉정하고 철저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우리 전장시의 큰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는 불확정적으로 다가서는 죽음이 인간에게 제시하는 의미에 대한 시적 성찰을 보여준다. 웃으며 달리다가 죽음으로 끝난 그의 이야기는 희극과 같다.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전쟁은 사람으로 하여금 비극인지 희극인지 분별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아넣는다는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고찰될 수 있는 완충지대3은 뜻밖에 인간을 엄습하는 죽음, 우리의 것이 아닌 죽음, 아무것도 성숙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를 빼앗아가는 죽음에 대한 시적 성찰과 살아있는 자의 무력함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시에서부터 전봉건은 무명의 주검으로부터 구원과 생성이라는 새로운 시적 지향성을 정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들에게서 우리의 죽음에 의미를 주어달라는 음성을 듣는 시적 화자의 태도에 기인한다.

전봉건 시인은 마침내 암흑을 지탱하는에서 친구의 죽음과 나란히 있는 에로스의 의미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피묻은 흙, 죽음으로 뒤덮인 흙은 한량없는 암흑의 흙이지만 그것은 자양과 감미로움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찬란한 기원과 죽음에 대한 줄기찬 거부와 무지개처럼 솟는 성욕으로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항아리가 있다. 친구가 죽기 전에 손을 뻗어 가리킨 에로스적 세계는 죽음으로써 모든 존재가 부재의 상태로 공허하게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욕망으로 충일한 삶의 원천으로서의 세계이다. 따라서 주검이 어둠과 같은 흙에 들어 흙에서 다시 싹을 틔우는 새로운 생명으로의 약속과 기대로 더욱 활기한 생명력을 확보하게 된다. 흙은 삶과 죽음이 통합된 원천이며 삶의 에로스적 욕망으로 환기되는 항아리의 질료이다.

전봉건은 스스로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이유와 가치를 주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시인은 절망의 극복으로서의 구원이라는 소명의식 속에 깃든 시의 길을 찾았던 셈이다.

 

당신이

나를 부르고

천사가

나를 부르고

온 사람이

다 나를 부르고

온 천사가

다 나를 불러도

담겨지지 않는다

그 목소리에

내 이름은

담겨지지 않는다

19506월의 어느 날

동틀 때 날아온 총알 맞아 죽은

한 어린 아기

나는 이름없는 그 아기의

썩은 살

썩은 피 먹고

꽃인 것이다.

 

-고전적인 속삭임의 꽃11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비판적 주체가 확립되고 있는 것을 본다. 주체는 죽음의 상황과 동일시되고 그로부터 새롭게 생성된 존재이다. 나와 의미 있는 존재인 당신, 지상의 영역을 벗어난 천사, 불특정 다수인 동시대인들과의 소통은 단절된다. 그러면서 역사적 죽음과 희생의 제의에 의해서 생성된 새로운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다. 즉 이는 그들의 죽음과 나의 삶이 미래에도 늘 함께하는 역사성 속에서 가치를 더해간다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주체 파악이다. 이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주체의 자리를 마련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시인은 총알 맞아 죽은/한 어린 아기썩은 살/썩은 피 먹고/꽃이 된다. ‘타자가 된 나로서 새로운 주체를 확보하고 타자의 미래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주체는 죽음과 고통, 살아 있음의 환희가 통합된 자리에 위치한다.

 

눈 내린 광장을

한 마리의 표범의 발자국이 가로질렀다

나는 그렇게 나로부터 출발해갔다

만월이 된 활처럼 팽창한 욕망

너는 희한한 살기를 뿌리면서

내달았다. 검은 한 점이었다.

나의 모든 꿈의 投企인 너

그 후 몇 번인가 너를 보았다

창이 무너져내리는 전쟁의 거리에서도

너는 귀마저 떨어져 웃고 있었다

그 때마다 돌멩이가 꽃을 낳았을 것이다

모래밭은

꽃밭을 낳았을 것이다

 

-天上樂器표범부분

 

이 시는 나/너의 관계양상을 통해 주체의 자리가 어떻게 확보되어 현실의 긴장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보여준다. ‘로부터 출발한 의 꿈이 투기(投企)된 대상인 는 표범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이 표범으로 변용된 꿈은 불모의 상황에서 꽃과 꽃밭을 만들어내는 극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이 시는 전쟁의 거리-불붙는 암흑이라는 상황을 내면의 본질로 전환시켜 보여준다. 젊은 표범은 전쟁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주체의 의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주체의 모습으로 암흑, 불모의 상황이 보여주는 고정된 무시간성을 파괴하는 힘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주체의 능동성은 어둠/꽃이라는 극단적 대비상황을 통해 구축된 것으로 또 다른 변주인 돌멩이/’, ‘모래밭/꽃밭으로 이어진다.

전봉건의 시들이 보여준 시적 주체의 탐색과정은 객관적 상황이 허물어진 전장의 현실에 대응하려는 시적 인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과장된 목소리나 허황한 수사 없이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고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시선 속에서 전후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볼 때 주체의 확립을 통해 현실의 비극적 상황에 길항하려는 전봉건의 시적 탐색은 가장 중요한 자리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전봉건은 현실을 개혁하고자 시 밖에서 행동하는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주의 시선에서 벗어나 전투행위 장면의 현장성을 통해 반전의 태도를 내면화한 의미 있는 시인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전쟁시가 전쟁을 독려하고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주입, 옹호하려는 행태를 보이거나, 그 이데올로기의 지침 안에서 창작활동을 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쟁과 대비하여 생명의 신비와 인간성의 부활의지를 다룬 여타의 전쟁시들이 무기와 자연의 비교적 단조로운 대립을 통한 순수 서정의 양상을 보인 것과는 달리 전봉건의 전쟁시는 구체적인 전쟁체험을 통해 극적 현장성을 확보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불모의 체험을 전쟁에 직면한 인간들의 행동과 생각의 실체를 통해 보여주는 시적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현실과 자아의 분열상을 극복해내는 새로운 주체를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1950년대 한국 전쟁시의 우뚝한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3. 나오는 말

 

1950년대의 한국시는 한국 전쟁이라는 특수한 체험을 거치면서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며 수많은 전쟁시를 산출했고, 이 전쟁시들은 끊임없이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일성을 회복하는 역사적 전망과 미학적 수준을 담지해 나갔다. 전쟁에 대한 시적 응전력은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났지만 이 글에서는 전쟁동원과 참상의 현실, 생명의 신비와 인간성의 부활의지, 전쟁체험의 구조화와 비판적 주체의 확립으로 나누어 국가주의 시선이 어떻게 작용하고 극복하여 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 발표된 전쟁시들은 상당수가 참전 독려와 멸공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전쟁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심지어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며 인간적 동질감을 확인하는 시들에서도 근본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추수하는 현상을 보인다. 왜냐하면 적군의 죽음마저 사랑으로 품어내는 이들 시에 나타나는 자비심이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안에서 작용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시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이 드러나면서 국가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유형은 전쟁의 폐허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과 전쟁의 공격성을 대비시키는 경향이다. 그 꽃은 무기와 반대되는 상징을 가지는데, 생명의 신비와 함께 현실의 상흔을 치유하는 소생의 의미를 가진다. 이 꽃 시편들은 국가주의 시선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반공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순수문학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시인들은 반전의 소재로 적극 차용하고 있다. 전쟁의 비극성을 자연으로 치유하려는 것은 전쟁극복을 위한 손쉬운 해결방법이다. 순수문학과 전쟁문학은 공산주의가 순수문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쉽게 결합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시편들에서도 국가주의 시선은 은밀하게 작동한다.

다음으로 국가주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적 경향인데, 이는 전봉건의 시에 이르러서 이루어졌다. 전봉건의 시는 전장이라는 폭력적 상황 앞에 내던져진,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무력함을 통해 전쟁체험을 구조화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유희 역시 시적 전략으로서의 유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마침내는 시인에게 주체는 죽음의 상황과 동일시되고 그로부터 새롭게 생성된다. 시인은 역사적 죽음과 희생의 제의에 의해서 생성된 새로운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다. 즉 이는 그들의 죽음과 나의 삶이 미래에도 늘 함께하는 역사성 속에서 가치를 더해간다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주체 파악이다.

전봉건의 시에서 전쟁의 현실에 직면한 시적 주체의 태도가 현실적 고통에서 비켜서 있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존재의 파괴로부터 인간과 시를 구원받으려는 정신적 노력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고통의 치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후시인들이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시적 사유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탐구한 현대성이 지향하는 유토피아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현대사회의 모순된 삶의 상황에서 내면적 질서와 통일을 염원하는 유토피아 지향은 불확실한 미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계몽적 이성의 회복을 전제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문명의 위기를 자연에 대한 기술적 통제를 위한 도구적 이성의 확대에서 찾고 본래적 이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파괴된 공동감각의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전후현실에 대한 당대 시인들의 공통된 인식기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서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하고 절망적인 시대에서도 이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시적 응전력을 보일 수 있었고, 미학적으로도 그 수준을 담지하면서 1950년대 한국시는 그 소임을 감당할 수 있었다.

[ABSTRACT]

 

A Study on the Poetic Attitudes about the Korean War:

with Emphasis on Overcoming the Nationalist's Viewpoints

 

Sohn, JinEun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hed new light on how the nationalist's viewpoints operated in poets' mind and how it was overcome by them during and after the Korean War in the 1950's.

Many a war poems were written during and after the Korean War. They usually deal with the compulsory mobilization, the horrible scenes from the war, the mystery of life and the revival of humanity, the structuralization of war experiences, and the recovery of the critical spirit of poets.

During and just after the Korean War, most of the war poems published in the battle field were outright exposed to national ideologies which put stress on anti-communism, the encouragement of participation in the war, and the national expectations for a victory over North Korea. Those poems really showed how the nationalist's viewpoints worked at that time.

On the other hand, some other poems tried to contrast a flower with the brutality of the war. These kinds poems opposed to the war by placing stress on the preciousness of life. It is quite natural that poets should try to cure the tragedy of war by showing the beauty of nature.

It was not until the appearance of some war poems of a Korean poet Jeon Bong-Geon when Korean poets began to be liberated from the nationalist's viewpoints. In his war poems, the poet Jeon Bong-Geon tried to find new identity with beautiful flowers in full bloom at the battlefields by identifying himself with those beautiful flowers. We can say that he succeeded in recovering his critical spirit as a historical existence.

 

Key words : War Poems, Nationalist's Viewpoints, the Negative View on War, the Mystery of Life, the Critical Spirit of Poets, Jeon Bong-Geon, the Will of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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