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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선시감상 4/고완수.중앙승가대

선시감상 4


고완수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蘇東坡
골짜기 시냇물은 부처님의 설법이요
푸르른 산빛은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리요
지난 밤 여래의 팔만사천법문을
다음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까
소동파


이 시는 명대의 시인 소동파의 오도송으로 알려져 있다 소동파가 여
산에 가서 동림 상총 선사를 만나고 난 뒤 계곡을 내려오다가 계곡의 폭
포소리에 마음이 열려 토해낸 시라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 시와의 인연이
있다 년 월 초파일 휴가를 얻어 기차를 타고 지리산 화엄사 연기암
에 가서 일박을 한 적이 있다 익산을 지날 때는 마침 보리가 익어 황금물
결을 이루고 있었다 푸른 보리 라는 영국 콜레트여사의 성장소설을
본적이 있는데 푸른 보리는 대를 상징한다 세의 소년과 소녀사이
의 미묘한 심리를 표현한 소설이다 푸른 보리에서 황금보리로 성장한 때
라 소년시절에 읽은 푸른 보리 가 연상되었다 지리산의 밤은 고요하
면서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수많은 정서가 물밀 듯 왔다가 밀
려가곤 했다
다음날 아침 주지 종원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를 한잔 마시고 나올
때 차 한통을 주신다 화엄사에서 만든 차였다 마침 주련을 보니 이 시가
새겨져 있었다 지리산 화엄사계곡의 우렁찬 물소리에 딱 맞는 시다 이
것을 영문학에서는 라고 말한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분위기
에 맞는 시라는 뜻이다
중앙일보에 실린 이은윤기자의 기사를 보니 바위에 붉은 글씨로 계
성산색 溪聲山色이라고 새겨놓은 필체가 아주 웅건하다 자연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은 물소리 바람소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숲의 빛깔 꽃의 향기 등이 모두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설법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무정설법 無情說法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만이 설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는 자연물도 설법을 한다는 것이다 이 시는
그런 면에서 보면 무정설법을 잘 표현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기쁨이 솟아난다 선사들이나 거사들이 아
름다운 자연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는 것은 공감이 간다 내가 즐기
는 강을 바라보기 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그런데 이 시에 반하는 시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선시감상


山色人我相
流水是非聲
山色水聲離
聾啞居平生
呑星 선사
산빛은 아상 인상이요
흐르는 물은 시비의 소리로다
산색과 물소리 끊어진 곳에서
귀머거리 벙어리 되어 평생을 살리라
탄성 선사


수년전에 입적하신 탄성스님은 조계종단에서 어려울 때마다 소임을
맡아 해결하고는 곧장 괴산 공림사로 내려가셔서 선에 드신 선객이다 얼
마나 시비에 휘말렸으면 푸른 산빛이 아상 인상금강경에 나오는 말로
자기에 대한 집착 등으로 이것이 있으면 보살이 될 수 없음이요 계곡의
물소리가 사람들의 시비를 따지는 소리로 들렸겠는가 이는 비유라 하더
라도 극단적 비유라 하겠다 산빛과 물소리 끊어진 곳에서 귀머거리 벙어
리되어 평생을 살리라하는 임종게를 남긴 것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
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같은 자연을 보고도 이를 부처님의 설법으로 보는 선사들
이 있는가 하면 시비와 분별로 보는 이들도 있으니 여기에 선시를 보는
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경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선시 감상에 집중해 왔다. 현재는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교학과에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