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컴 묘역의 일곱송이 장미
-- < 전쟁으로 폐허된 이 땅에서 구호와 재건을 이끈 美장성의 휴머니즘을 기린다 >--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은 1023일간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된다. 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폭탄은 피했지만 난리통까지 벗어나진 못했다.
이틀 뒤인 6월 27일 저녁 장교 한 명이 부산시청을 찾아와 군인가족을 위한 거처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후 거의 매일같이 새벽 5시만 되면 부산역은 열차편으로 도착하는 피
란민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은 해방 직후 해외동포들이 밀려들면서 인구 폭발을 경험한다. 그래봐야 28만명 정도
였는데 전쟁 막바지에 부산은 인구 100만명의 도시가 된다.
미군 기름종이와 양철 조각으로 비만 가릴 정도의 지붕을 얹은 판자촌들이 공동묘지에까지
빼곡히 들어섰다. 작은 부주의는 화재로 이어져 당시 부산은 불산이라 불렸다.
◇ 이 어지럽던 시기 미2군수사령관으로 부산에 온 미국 장성이 있다.
리처드 위트컴.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육군보병 장교로 참전했고, 2차 대전 때엔 노르망
디 상륙작전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오마하전투에 투입됐다. 미국이 환갑이 다 된 그를 한국
전쟁에 소환한 것은 장기전에 지친 유엔군에게 군수물자를 원활히 보급해 전투력을 보강
하고,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휴전을 성립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불산이라는 부산에서 대화재로 인한 참사를 목격한다. 1953년 11월 27일 저녁 영주동
판자촌에서 발생한 불이 시속 11.8㎞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주택 3132채 소실.
이재민만 3만명에 달했다.
현장을 둘러본 위트컴은 사령관 직권으로 군수물자를 푼다. 추위에 갈 곳 없는 시민들을
위해 천막을 치고 침구류와 옷과 식량을 나눠준다. 상부의 허가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범죄인지 알았다. 법적으론 군수물자 무단 전용이었다.
미 하원 청문회에 서게 된 위트컴, 여기서 대반전이 이뤄진다.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워싱턴 의사당에 기립박수가 터졌다.
◇ 그는 더 많은 구호품을 안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영도를 시찰하던 중 보리밭에서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는 산모를 보고 병원 건립
을 추진한다. 그렇게 탄생한 게 메리놀병원. 윤인구 초대 부산대 총장이 종 모양의 캠퍼스
배치도를 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그를 미쳤다고 했다.
위트컴은 "당신의 꿈을 내가 사겠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장전동에 50만평 용지를
확보해줬다.
밴 플리트가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면 위트컴은 전후 재건의 영웅이었다.
그는 전역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가슴 한구석에 돌덩이 같은 응어리가 있었다.
장진호에서 전사한 미 해병 1사단 병사들의 유해를 송환하는 일이었다.
그 작업을 같이할 33세 연하의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한묘숙. 소설가 한말숙 씨의 언니.
여러 차례 중국과 북한을 넘나든 탓에 박철언이 '정체불명의 여인'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분이다.
위트컴은 사재와 연금을 모두 털어넣었다. 한남동 13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유일한 재산
이었다. 부인이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를 비밀리에 만나 유골송환 작업을 진행하던
1982년 7월 12일 위트컴 장군은 용산 미8군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한다.
그리곤 유언에 따라 한국 땅에 묻혔다.
향나무로 단장된 13만4000㎡의 유엔기념공원엔 한국전쟁의 희생자 총 2315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위트컴은 여기에 묻힌 유일한 장군이다.
< 남들과 똑같은 크기의 묘석 >
40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찾은 그의 무덤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묵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 옆에 철 지나 시들어버린 장미꽃 일곱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 손 현 덕 / 매일경제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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