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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이성과 감정의 조화 -독일 계몽주의의 ‘감상주의’(Empfindsamkeit) 개념을 중심으로-/이혜진.서울대

초록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보마르셰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을 각색 한 것이다. 각색 과정에서 귀족계급을 직접적이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원작의 피가로의 긴 독백이 빠졌다. 이를 두고 적지 않은 연구자들은 모차르트가 보마르셰의 원작이 가진 체제전복적인 계몽주의 사상을 크게 약화시켰다고 비판하였다. 본고는 피가로의 긴 독 백이 빠졌음에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계몽사상을 반영한다는 대다수 연구자들의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작품이 특별히 독일 계몽주의의 ‘이성과 감 정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모차르트의 이 오페라 에서 백작부인 캐릭터가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구현하는 특별한 방식을 드러내고, 백작 부인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통합과 관련하여 강조되는 인간의 덕목을 독 일 계몽주의의 한 개념인 ‘감상주의’(Empfindsamkeit)와 관련하여 살펴본다.

 

주제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보마르셰, 계몽주의, 독일 계몽주의, 감상주의, 오페라 부파, 이성과 감정, 공동체 감정

 

 

1. 서론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1786)의 대본은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Pierre Beaumarchais)의 ‘피 가로 3부작’ 중 제2부에 해당하는 『광란의 하루 혹은 피가로의 결혼』(La folle journeée ou le mariage de Figaro)(1784)을 원전으로 삼고 있다(앞으로는 『피가로의 결혼』이라고 칭함). 보마르셰의 희곡이 루이 16세에 의해 상연금지를 당하는 바람에 작가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겨우 초연에 성공했을 정도로 프랑스 혁명의 전복적인 성격을 예고하는 작품이었던 것에 반해, 모차르트의 「피 가로의 결혼」은 처음부터 대본가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요제프 2세에 게 보마르셰 희곡의 민감한 부분을 삭제할 것을 약속하고 대본 작업을 시 작한 작품이었다.1)

 

     1) 김미영(2009),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희극성: 그 사회비판 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서양음악학 제12-2호, p. 63. 

 

이 약속에 따라 전 5막이었던 보마르셰 희곡이 전 4막으 로 간추려졌고, 희곡 중 루이 16세의 심기를 건드린 부분이라고 전해지는 제5막 3장의 피가로의 길고 유명한 독백이 다 폰테의 대본에서 잘려 나갔 다. 이 긴 독백과 함께 여기 포함된 다음의 체제전복적인 내용도 함께 사라 진 것이다:

아뇨, 백작님, 당신이 쉬잔2)을 차지하시겠다고요, 어림없죠. 가만히 앉아 당 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2) 보마르셰의 원작에서 나오는 피가로의 약혼녀 쉬잔(Suzanne)의 이름은 모차르트 오페라 에서 수잔나(Susanna)로 바뀐다.

 

대 영주랍시고 당신이 뭐 대단한 재능을 가지 고 있는 줄 아나본데! … 귀족, 재산, 혈통, 지위, 뭐 이런 것들로 기고만장 해진 거지! 그런 막대한 재산을 쌓는 데 당신이 무슨 노력을 했단 말입니 까? 세상에 태어나는 수고야 했겠지만, 그 이상은 하나도 한 게 없죠. 되레평범하기 짝이 없는 위인 아닙니까.3)

 

        3)  피에르 보마르셰(2020), 이선화 역, 『피가로의 결혼』, 도서출판 b, pp. 206-207. 

 

이에, 보마르셰의 원작에 대한 상연 금지 명령을 내렸던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제작을 승낙했다. 이를 두고 모차르트가 보마르셰 원작 의 계몽주의적인 요소를 약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4)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보마르셰의 정치색을 없애고 백작과 피가로 간의 갈등을 단순히 한 여성을 두고 벌어지는 사적인 갈등 구도로 바꿔 버렸다는 의견도 있다.5) 이런 의견에 반해 모차르트를 옹호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차 르트의 음악이 이 삭제된 부분 이상의 체제 전복성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 다. 이들의 공통적 관심은 모차르트 오페라 제1막에 나오는 3번6) 피가로의 카바티나 “그대가 춤추길 원한다면”(Se vuol ballare)을 향한다.

 

        4) 돌라르는 이렇게 밝히면서 “이러한 방향에서 한 가지 극단적인 견해”라면서 노스케의 의 견을 제시한다. “오페라에서 사회적 긴장이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작 곡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무자비한 귀족계급에 의한 하층 계급의 억압을 폭로하려 했다 는 결론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 「피가로의 결혼」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그것은 사회질서의 개혁을 위해서도 혁명을 위해서도 분투하지 않는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 이라면 누구든 모차르트가 편들기 없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 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의 백작은 괴물이 아니며, 피가로는 결코 국가적 영웅이 아니다.”[Frits Noske (1977), The Signifier and the Signified: Studies in the Operas of Mozart and Verdi. The Hague, 1977, 37; 믈라덴 돌라르(2010),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슬라보예 지젝, 믈라덴 돌라르 공저), 민음사, p. 83에서 재인용].

        5) 마사 누스바움(2019), 박용준 역, 「평등과 사랑: 루소, 헤르더, 모차르트」, 『정치적 감정: 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 글항아리, p. 59. 누스바움의 의견은 아니고 누스바움 이 소개하는 익명의(누스바움이 따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연구자의) 견해다.

       6)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은 번호 오페라에 속한다. ‘번호 오페라’(number opera)란 모 차르트 시대를 비롯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지배적이었던 오페라 구성의 한 형식으로, 오 페라가 분리 가능한 여러 악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악곡에 번호가 붙어 있는 형태 를 가리킨다.

 

즉 이 카바티 나가 보마르셰 제5막에서 삭제된 부분의 급진성을 대신 표현하며, 귀족의 춤곡인 미뉴에트 리듬을 이용하여 불평등한 사회적 인습의 수혜자인 귀족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7) 동시에 이 연구들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 혼」의 계몽주의적 특징으로 백작부인과 수잔나라는 여성 캐릭터가 보여 주 는 남성(피가로, 백작)에 대한 우월성을 꼽는다. 남성과 비교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했던 여성을 남성의 우위에 놓음으로써 평등사상의 강조와 함께 남 성주의적인 당시 사회를 비판한다는 것이다.8)본고는 이러한 해석을 직접 적으로 분석하거나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논의를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계급이나 성별에 따른 위계를 전복하는 성격을 띠기 보다는 독일 계몽주의의 특징에 기반하여 공동체의 화합을 중심에 놓는 특 징을 보여 준다고 주장할 것이다. 본고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위 해석과 좀 다른, 마사 누스바 움의 해석이다. 누스바움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이 갖는 계몽주의적 의의를 옹호하는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지만,9) 모차르트 오페라 제4막을 중심에 두고10) 여기에서 백작부인이 보여 주는 용서와 사 랑을 헤르더(Herder)적인 ‘여성적’인 계몽주의로11), 오페라 전체에서 피가 로와 백작이 보여 주는 권력욕과 명예욕의 추구를 남성적인 앙시앵 레짐의 대표적 성격으로 규정한다.12)

 

        7) 믈라덴 돌라르(2010), p. 84; 김미영(2009), pp. 64-69.

        8) 믈라덴 돌라르(2010), p. 86; 김미영(2009), pp. 69-74.

        9) 마사 누스바움(2019), p. 57.

       10) 본고에서 인용하는 누스바움의 저서에 포함된 논문(2019)은 본래 2010년에 “Equality and Love at the End of The Marriage of Figaro: Forging Democratic Emotions”라는 제 목으로 발표되었던 글이다. 이 제목에서 보듯 모차르트 오페라 중에서도 특히 제4막의 피날레를 중심에 두고 있는 글이다.

        11) 마사 누스바움(2019), pp. 79-88. 12 마사 누스바움(2019), pp. 58-66.

 

본고는 누스바움이 해석하듯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이 특별히 여성 등장인물을 통하여 계몽주의의 한 단면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 면서도, 누스바움이 ‘남성적’이라고 규정한 것과 ‘여성적’이라고 규정한 것이 양자택일 되어야 하는 성격의 대립쌍이거나 서로 다른 등장인물에 배타 적으로 귀속되는 성격이 아니라고 본다. 특별히 이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진 인물은 백작부인이며, 이러한 두 가지 성격의 조화 및 보완 관계는 당 대 독일 계몽주의에서 추구하는 바였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또한 이러한 추 구에서 탄생한 개념인 ‘감상주의’의 특징들이 구체적으로 이 오페라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차르트 가 처했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방식으로 모차르트가 원작에서 두 드러지지 않은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보자.

 

2.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 대(對) 모차르트의 「피 가로의 결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사라진 것 중에는 보마르셰 제5막 3장의 피가로의 독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하신 분들한테는 한없이 관 대하고, 비천한 사람들한테는 한없이 엄격한 법률 말씀이군요.”(피가로의 대 사), 13)

“마님, 전 … 귀부인들의 사교계 예법이라는 게 얼마나 품위 있게 거 짓말을 거짓말 같지 않게 하게 해 주는지 확실히 알겠던데요.”(쉬잔의 대 사)14 )

 

           13)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32.

          14)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15. 392  

 

등 귀족계급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사들이 다 폰테의 대본에서 대부 분 사라졌다. 이를 두고 단순히 검열 통과를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도 있겠 으나,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이 처한 작품 외적, 작품 내적 상황을 살펴 보면 이런 대목들뿐만 아니라 제5막 3장에 나오는 피가로의 독백이 빠진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2.1. 작품 외적 상황: 당대 프랑스와 독일의 사회문화적 차이

먼저 작품 외적인 상황을 알아보자. 모차르트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모차르트가 궁정 사람들에게서 구직자나 고용인으로 모욕과 제재를 경험하긴 했으나 이것이 그의 작품에는 전혀 영 향을 주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독일의 문 학과 철학 영역에서는 출판물을 통해 비궁정적인 시민 집단 대중에게 직 접 접근할 수 있었기에 궁정 귀족층의 취미 규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 성이 있었지만, 음악 영역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 다.15) 즉 모차르트가 처했던 사회적 상황에서는 음악가들이 궁정 귀족들에 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차르트 또한 자신의 성공 여부가 전적으로 빈의 궁정과 귀족들의 반응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기획하고 작곡할 당시에 궁정이나 주교와의 계약관계에 매이지 않는 ‘자유 예술가’ 신분이었으며, 빈에서 오페라 부파 가 새로운 인기 장르로 떠올랐던 당시 분위기에 편승하여 다 폰테를 직접 찾아가 협업을 의뢰했었기에,16) 귀족계급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 작품의 주요 소비층으로 겨냥된 궁정 귀족 출신 청중을 사로잡아 빈에서 성공하고자 했던 작곡가 본인의 의도를 달성하는 일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 라 역행하는 것이었다.17)

 

        15) 노르베르트 엘리아스(2018), 박미애 역,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 적 고찰』, pp. 23 이하.

        16) 최용찬(2014), 「혁명의 서곡으로 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모차르트(W.A. Mozart)의 문화적 탈주의 독일 계몽주의적 특성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22, p. 97.

       17)노르베르트 엘리아스(2018), pp. 49 이하.

 

또한 엘리아스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스스로 자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했 고 후대에도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라고 인정하는 점은, 모차르트가 궁정-귀 족적 음악 전통의 틀 안에서 보여 준 무한한 창의성과 가능성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모차르트가 지향했던 음악적 이상 자체가 귀족의 취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18) 즉 귀족적인 것은 모차르트에게 공격하고 끌어내려야 하는 대상이 아 니라, 자신의 예술 활동의 사회경제적인 틀과 함께 작곡 양식의 틀을 제공 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이는 귀족을 공격하고 풍자할 의도를 다분히 가지 고 있었던 보마르셰의 입장과 상반된다. 여기에서 보마르셰가 처해 있던 사회적 상황을 알아보자.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을 국역한 이선화가 보마르셰의 “분신이자 아들이라 칭할 만한 ‘피가로’”라고 표현한 것처럼,19) 보마르셰의 피가로라는 인물에는 작 가의 인생이 투영되어 있다. 문제의 제5막 3장의 피가로의 긴 독백 대부분 은 피가로가 지금까지 겪은 인생 풍파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는데,20) 보마르 셰 자신이 그러한 격변의 인생을 살았다. 시계 제조장인, 음악 교사, 사업 가, 왕실의 비밀 요원, 출판업자, 로비스트, 무기 거래상, 혁명파 위원 등이 그가 거쳐 간 직업이었다.21) 이런 인생을 살면서 보마르셰는 계몽주의의 혁 명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 목적에서 볼테르의 전집을 간행하기도 했고,22) 혁 명이 발발하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하였다.23)

 

         18) 노르베르트 엘리아스(2018), p. 52.

         19) 이선화(2020), 「작가 및 작품 해설」, 『피가로의 결혼』(보마르셰 저, 이선화 역), 도서출판 b, p. 249.

         20) 사실상 이 긴 독백에서 귀족계급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21) 이선화(2020), p. 249.

         22) 피에르 보마르셰 『피가로의 결혼』 제5막 마지막 부분에 등장인물들이 함께 나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피가로의 가사 중에는 “볼테르의 이름만이 영원할지니. 볼테르의 이름 만이 영원할지니.”라는 부분이 있다[이선화(2020), p. 246].           23) 이선화(2020), pp. 257-258.

 

그런데도 그가 평소 신분 의 한계를 느끼고 출세와 부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마다하지 않는 과정 에서 “개인적 이익에 따라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로, 또 구체제와 혁명파 양쪽에 발을 담근 회색분자로”24) 비치게 되면서, 프랑스 혁명 당시에 는 혁명의회로부터 여러 가지 죄목으로 고발당하여 프랑스를 떠나 있는 동 안 재산이 압류되고 가족이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다가 1796년에야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여생을 마친다.25)

 

         24) 이선화(2020), p. 259.

         25) 이선화(2020), pp. 258-259. 

 

상당수가 금서로 지정되었던 볼테르의 전집을 간행하는 것이 위험한 일인 동시에, 그런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계 몽주의를 전파하려고 했던 사람이 혁명파로부터 고발을 당해 고초를 겪었 던 프랑스 사회가 얼마나 격랑의 상황이었는지를 그의 인생이 말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민계급이 옹호하는 볼테르의 글이 금서 로 지정되는 등 분명 앙시앵 레짐의 탄압이 있었지만, 이런 탄압에 맞서서 금서를 출판하고 혁명옹호파를 조직하는 세력이 가시적으로 존재했고, 결 국 그들이 혁명에 성공하고 권력을 잡아서 반대파를 숙청할 정도의 세력이 되는 과정 중에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이 쓰이고 상연되었다는 사실 이다. 4년간 여러 차례의 검열을 거쳐 마침내 1784년에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을 때, 12번의 커튼콜을 받을 정도의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프랑 스에서 67회에 걸쳐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 귀족 계급에 대한 직접적 비판에 동조하는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 준다. 반면에, 프랑스로부터 계몽주의를 수입한 독일어권의 사정은 크게 달 랐다. 프랑스 계몽주의에서 시민계급의 적으로 상정되는 기존 권력 집단 (궁정, 교회)이 독일 계몽주의에서는 적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독일은 프 랑스처럼 앙시앵 레짐이 정치적으로 중앙으로 집중되어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요한 분권 국가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이나 요제프 2세와 같은 계몽전제군주들이 앞장서서 계몽주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그 이 유 중의 하나이고, 시민계급이 자신의 윤리를 정립하면서 궁정의 행동양 식(Verhaltensweise)을 수용할 정도로 계급 간 적대적인 기운이 약하기도 했 다.26) 슈나이더스에 따르면 독일의 ‘계몽주의자’들은 “국가 및 교회와 비판 적인 협동 관계”에 있었다.27) 앞서서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음악계가 문학, 철학계보다 더욱 귀족의 취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 데, 독일어권 계몽주의 자체가 프랑스 계몽주의와는 다른 성향을 띠고 있었 던 것도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이를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와 관련하여 다음 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절대적 통치권을 가진 제후와 (사회 발전의 다른 단계에서 나타나는 귀족, 즉 중세의 봉건 귀족들과 종종 똑같이 취급되는) 궁정 귀족들의 우세는 모차르트 의 청년기에도 끄떡없었고, 합스부르크 제국이나 독일 및 이탈리아 지역들 에서도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그의 생애 내내 확고부동했 다.28)

 

      26) Rainer Godel (2015), „Deutsche Aufklärung“, Handbuch Europäische Aufklärung (hrsg. von Heinz Thoma), Stuttgart: Metzler Verlag, p. 88.

      27) W. Schneiders (2001), Das Zeitalter der Aufklärung, München, p. 90. Rainer Godel (2015), p. 88에서 재인용.

      28) 노르베르트 엘리아스(2018), p. 42. 396  

 

이런 상황에서 보마르셰가 한 것처럼 굳이 귀족을 직접적이고 신랄하 게 비판하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로나, 모차르트가 대표하였던 고전주의적 음악양식 면에서나 여러모로 부적합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보마르셰의 희곡과 모차르트의 오페라 공 히, 창작자가 처한 특수한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2.2. 작품 내적 상황: 음악적 형상화에 따른 내용 및 주제의 변화

혹자는 이제까지 상술된 내용을 토대로 아무리 보마르셰와 모차르트가 처한 상황이 달랐다고 해도 모차르트에게 상대적으로 계몽주의적 의식이 없었다는 비판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을, 계몽주의 사상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시대적 요청에 역행한 것으로 파 악하는 것은 중대한 오해다. 왜냐하면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는 단지 보마르 셰의 원작에서 위험한 부분들을 삭제하는 것 외에도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 고, 그 바탕 위에서 독일 계몽주의적인 또 다른 주제가 제시되고 있기 때문 이다. 5막 길이의 보마르셰 희곡을 전 4막의 오페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축 약과 삭제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축약과 삭제 외에도 보마르 셰 희곡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된 것도 확인된다. 이 확 인 작업은 전혀 어렵지 않은데, 바로 레치타티보와 더불어 등장인물에 의해 불리는 완결된 독창곡(아리아와 카바티나)을 포함하고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 의 형식에 따라, 훗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별도로 자주 연주되게 된 독창곡의 텍스트가 원작의 내용에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독창곡은 (주로 서사적 내용과 행위를 전달하는 레치타티보와 달리) 등 장인물이 많은 경우 고요히 생각에 잠긴 분위기에서 (주로 서정적인) 감정과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기능을 갖는다.29)

 

      29) 이탈리아의 대문호이자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리아 「티토의 자비」의 대본가이기도 했 던 메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 1698~1782)가 18세기 후반까지 통용되었던 이러 한 이론적 규칙을 확립하였다[Sergio Durante (2006), “Aria,” The Cambridge Mozart Encyclopedia (ed. by Cliff Eisen and Simon P. Keef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2].

 

즉 독창곡을 통해 등장인물의 캐릭 터를 감성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으로 인해, 대본 작 업 중에 원작에 없는 새로운 텍스트를 창작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피가로의 결혼」에는 총 14개의 아리아와 카바티나가 있는데, 이 중 에서 보마르셰 대본에 전혀 없고 완전히 새로 추가된 텍스트에 붙여진 곡 은 모두 네 곡이다. 그중 한 곡이 돈 바질리오의 4막 26번 아리아(“나쁜 실 용적 이성이 별로 가치가 없었던 시절”(In quegli anni in cui val poco la mal practica ragion)), 또 한 곡이 수잔나의 제4막 28번 아리아[“아 오세요, 늦지 말고”(Deh vieni, non tardar)], 나머지 두 곡이 각각 제2막과 제3막에 나오는 백작부인의 11번 카바티나[“나의 고통과 한숨에 위안을 주세요”(Porgi amor)] 및 20번 아리아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은 어디에 있나”(Dove sono i bei momenti’)]이다. 이 중에서 돈 바질리오의 아리아가 「피가로의 결혼」 전곡 상연에서조차 자주 누락되 긴 하지만 나머지 세 곡은 사실상 이 오페라에서 감정의 절정을 이루는 동 시에 그 음악적 완성도로 인하여 가장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곡들이라는 사 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피가로의 결혼」의 수용에 있어서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텍스트와 정서는 보마르셰의 원작에는 없는, 모차르트와 다 폰테의 창 조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수잔나와 백작부인이 부르는 이 세 독창곡의 공통점으로 쉽게 눈에 띄 는 것은 귀족의 모습을 한 여성이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백작 부인의 독 창곡 두 곡은 당연히 귀족 여성의 노래이고, 수잔나의 3막 아리아는 평민이 귀족인 백작부인과 옷을 바꿔 입은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다. 앞서 작품 외 적 상황을 살펴보면서 모차르트 음악과 귀족적 취향의 밀접한 관계를 논하 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세 노래의 특징을 귀족에 국한된 것으로 단언하 는 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이 세 독창곡을 지배 하는 정서는 즉 사랑과 부드러움, 고귀함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정서 는 결국 여러 사건을 통하여 인물들 사이에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즉 제3막 의 ‘편지의 이중창’[21번 두에티노 “바람에… 부드러운 산들바람이”(Sull’aria.... Che soave zeffiretto)]에서는 백작부인으로부터 수잔나에게,30)

 

         30) 원작에서 짧게 지나가는 이 부분으로부터 모차르트는 아름답고도 의미 있는 이중창을 398  

 

제4막 피날레의 끝부분 용서 장면에서는 백작부인으로부터 모든 다른 등장인물들에게31) 전파 및 공유되는 것을 음악적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백작부인을 출발점으로 공유되는 이러한 음악적 정서는 그저 백작부인이라는 어느 한 등장인물에 대한 캐릭터 묘사에 그치지 않고 오페 라 전체의 주제를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즉 원작이 구체제의 전복 을 주제로 삼았다면, 오페라는 계급 차를 초월하여 사회 전체의 통합을 주 제로 한다. 위에서 언급한 제4막 피날레의 용서 장면에서는 백작조차도 백 작부인으로부터 시작된 음악적 모티프를 따라서 함께 노래하며 음악적으 로 공동체에 동화되는데, 이러한 음악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보마르셰의 원작에서는 다만 백작부인을 따라서 하인인 피가로와 수잔나가 용서의 뜻 을 밝힌 후에32) 백작이 대화를 통해 피가로와 백작부인의 책략을 구체적으 로 깨닫게 되는 내용이 나올 뿐이다.

 

          31 )이 장면에서 백작부인의 음악적 모티프를 다른 사람들이 이어받으며 음악적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돌라르는 이렇게 요약하였다: “모차르트는 이 순간을 위해서 제의 음악에, 솔로이스트와 코러스가 교환되는 고대 형식에 의지했던 것 같다. 합창단은 백작부인의 모티프를 넘겨받으며 그리하여 공동체는 용서 행위의 주체가 되고 바로 이 행위를 통해 확립된다. 이제 백작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제 모두가 행복할 겁니다”를 노래할 수 있 는 공동체. … 이것은 부르주아 공동체의 단호하게 응축된 유토피아적 순간이다.”[믈라 덴 돌라르 (2010), pp. 80 이하]

         32) 이조차도 모차르트가 음악적으로 구현한 “영원성을 불러내는 숭고한 순간”[믈라덴 돌라 르(2010), p. 81]의 용서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용서다. 이 용서의 성격에 관해 돌라르는 다음과 같이 탁월한 통찰을 하고 있다: “… 피가로와 수잔은 실로 백작부인의 말을 반복 한다. 그들 또한 그를 용서한다. 그들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서 용서하는 주체가 될 권리 를 스스로 취한다. 그들은 잘못된 대우를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을 용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인지한다.”[믈라덴 돌라르(2010), p. 80 각주]

 

피가로가 맡은 이 연극의 마지막(즉 맨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장면을 제외한 마지막) 대사에 작곡해내었다. 이 음악의 특징에 대해 누스바움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이 오 페라의 대본에 담겨 있긴 하지만, 음악은 그들의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훨씬 더 깊 이 끌고 간다. … 그녀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간다. 생각을 교환하고, 서로 의 음높이, 리듬, 심지어 음색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인식하면서 서로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다. … 그들의 음악적 협력은 일종의 친밀한 조율과정을 나타낸다.”[마사 누스바움 (2019), p. 67] 도 공동체적 화합은 전혀 암시되어 있지 않다:

 

“제 아내와 재산만 안 건드 리면, 저한테야 모든 게 축복이고 즐거움이지요.”33)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보마르셰의 원작과 달리 작품 내적 으로 이러한 공동체 지향적인 정서와 사상이 중심에 있기에, 그리고 결국 엔 그 정서의 본래 주인인 백작 부인뿐 아니라 모두가 그 정서 안에서 하나 가 되기에, 상대가 아무리 귀족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비 판하고 풍자하는 대사는 이러한 전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공동체 정서의 중심에 있는 백작부인이라는 인물이 이러 한 고귀하고 부드러운 정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바 로 여기에서 누스바움과 본고의 견해 차이가 드러난다. 누스바움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앙시앵 레짐을 대표하는 남성 인물들과 “민주적 호혜성”으로서 의 “사랑”34)을 구현하는 여성 인물들을 구분하는데, 후자의 여성적 특징은 본고에서 공동체 지향적인 정서라고 규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본고가 누 스바움과 다르게 취하는 태도는 누스바움이 ‘앙시앵 레짐’의 속성으로 규 정한 남성 인물들의 특징, 즉 복수와 책략, 명예, 경쟁 등으로 대변되는 특 징35)이 남성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의 백작부인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33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242.

        34 마사 누스바움(2019), pp. 78 이하.

        35 마사 누스바움(2019), pp. 58-66. 400 

 

2장에서는 이런 특징의 배경에 놓여 있는 이성의 도구적 사용의 예 시를 백작부인이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이성의 사용과 (누스바움이 여 성 인물의 특징으로 규정한) 정서의 통합체라는 점에서 백작부인이 독일 계몽 주의가 추구하는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구현한다는 주장을 전개할 것이다. 이성과 감정의 조화로운 상태는 ‘감상주의’라는 독일 계몽주의의 개념과도 통하는데,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작품이 이 감상주의를 공동체 적 측면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겠다. 

 

3.독일 계몽주의 이념으로 본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 로의 결혼」

3.1. 도구적 이성의 활용

백작부인이란 인물이 계몽주의의 도구적 이성 및 이와 보완 관계에 있 는 감정의 통합을 잘 구현하고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먼저 계몽주의 시대 의 ‘이성’에 대한 관념을 알아보자. 앞서 언급하였듯이 독일의 계몽주의는 프랑스 계몽주의와는 달리 정치 적 사회적 대변혁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적인 운동에 한정되어 있었다. 유 럽 계몽철학의 시작을 알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를 통해 자아(Ich)와 이성(Vernunft)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 시대를 지배하게 된 후, 독일에서는 라이프니츠와 볼프 등의 초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자아의 사고를 더욱 명 확하게, 더욱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교나 정치 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사고하는 자율적인 이성은 ‘무정부적 혼 돈’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성적 사유는 사유의 논리성을 절대화하고 이에 집중했던 것이다.36) 계몽이란 “다른 사람의 지 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37)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는, 유명한 ‘계몽’의 정의를 선포한 칸트(Immanuel Kant)도 “스스로 사유하 기”(자율성)와 “일관적으로 사유하기”(논리성)라는 준칙들을 “보통의 인간 지성” 혹은 “사유자”의 준칙들로 꼽았다.38)

 

       36) 김수용(2010), 『독일 계몽주의』, 연세대학교 출판부, p. 34.

       37) 이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의 유명한 첫 문단에 나오는 표현이다(임마누엘 칸트, 학술원판 전집 제8권, p. 35).

       38) 이렇게 같은 내용의 준칙이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는 “보통의 인간 지성의 준칙 들”(임마누엘 칸트, 학술원판 전집 제5권, p. 295)로,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에서는 “사유자 계층을 위한 준칙들”(임마누엘 칸트, 『학술원판 전집』 제7권, p. 228)로 등장한 다.

 

그런데 18세기 계몽사상의 핵심에 있었던 이러한 이성적 사유의 논리 성은 시민계급에 수용되면서 실용성의 원칙에 입각한 유용론적 사유로 나 타나기도 한다.39) 후에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사용하여 현대 철 학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된 ‘도구적 이성’(instrumentelle Vernunft)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이 유용론적 사유는 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목적을 설정하 는 이성의 본래 기능과 책임에서 벗어나 현실적 이익 추구를 위해 이성을 다만 도구적으로 사용하도록 이끈다.40)

 

         39) 김수용(2010), p. 42.

        40) 김수용은 유용론적 사고에 대해 한탄하는 모리츠와 노발리스의 글을 예시로, 당대에 그 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김수용(2010), pp. 44-45].

 

이제 이러한 독일 계몽주의 시대의 모습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 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볼 차례다. 보마르셰의 원작이나 다 폰테의 대본에서 공통적이며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구적이고 유용론적인 이성 사용의 모습이다. 단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 이 연극과 오페라의 플롯이 그토록 복잡한 것은 백작—마르슬린(오페라에선 마르첼리나) 대(對) 피가로—수잔나—백작부인으로 갈라진 양 진영에서 각각 꾀를 내어서 계획을 세우고 남의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런 도구적 이성 사용의 모습은 모차르트 오페라에서도 피가로의 제 1막 3번 카바티나 “그대가 춤추길 원한다면”(Se vuol ballare)과 백작의 유일 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인 제3막 18번 “법적으로 이미 이겼다고! … 내가 한숨 짓는 동안”(Hai gia vinta la causa! ... Vedro mentre io sospiro)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가사를 보아도 “감춰진 술책을 내가 벗겨 드리지요! 술책을 쓰 고, 수단을 부리고, 여기선 때리고, 저기선 장난치고, 모든 음모를 내가 뒤 집어 엎으리라”(3번 피가로의 카바티나), “그 멍청이(안토니오)를 이용해 봐야 지…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겠군… 한 방 날려야지”(18번 백작의 레치타티 보), “이미 복수하려고 하는 희망 하나가 나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구나, 이것이 나를 기쁘게 해 주는구나”(18번 백작의 아리아)등의 부분에서 직접적으 로 드러나듯, 계략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상대에게 복수하려 는 유용론적, 도구적 이성 사용의 다짐이 드러나 있다. 음악적으로도 두 노 래 모두 타인에 대한 경멸과 복수심, 분노로 가득하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독창곡이 남성 등장인물에 의해 불린다는 점을 강 조하며, 신분은 다르지만 이 두 남성이 권력을 얻고자 하는 목적에서 같다 고 지적한다.41 그리고 그와 대척점에 백작부인, 수잔나, 케루비노 등 여성 의 연대42가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3 그러나 본고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성인 백작부인 또한 자 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성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며 ‘계획’ 혹은 ‘계 략’을 꾸민다는 점에서 피가로나 백작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백작이 골탕을 먹는 부분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중 에서 순전히 말로 이루어지는, 즉 말로 재치를 발휘해 백작의 계획을 좌절 시키는 사건은 두 건이다. 첫 번째 사건은 ‘창문에서 정원으로 뛰어내린 사 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로 백작, 백작부인, 피가로, 수잔나, 정원사 안토 니오가 날이 선 대화를 하는 중에, 피가로가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나’라 고 말하는 사건44이다.

 

       41 마사 누스바움(2019), pp. 60-61.

       42 케루비노는 남성이지만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여성(메조소프라노) 가수에 의해 불리고 연기되며, 다른 두 남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여성적 면모를 갖고 있다.

       43 마사 누스바움(2019), pp. 66-67.

       44 신영주(2004),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이해하기 쉬운 오페라』, 음악춘추사, p. 120;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06. 이 책은 다 폰테가 쓴 「피가로의 결혼」 대본의 각 행 을 이탈리아어와 국역으로 병기한 저작이다. 일반 대역본과 다른 점은, 이탈리아어를 모 르는 독자들도 가사를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단어를 문법적 기능과 의미에 맞게 한국어로 풀이한 후에 완전한 문장 형태의 국역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뛰어내린 사람은 케루비노였는데, 그것이 밝 혀지면 백작부인이 곤란에 처하게 되고 백작부인의 편인 수잔나와

피가로도 그것을 바지 않으므로 피가로가 자신이 뛰어내렸다고 꾸며 내는 것이 다. 이에 수잔나와 백작부인은 함께 속으로 “영리해라! 천재야!”라고 감탄 한다.45 그런데 곧바로 이와 관련된 두 번째 사건이 생긴다. 뛰어내린 사람의 주머니에서 어떤 서류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것이 케루비노가 받은 입대 명령서라는 것이 정원사 안토니오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피가로가 계속 백 작에 대해 승리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뛰어내린 사람이 피가로가 맞는다면, 케루 비노가 가지고 있어야 할 명령서를 어째서 피가로가 갖고 있었는가?’ 이 순간에 당사자인 피가로가 아니라 백작부인이 ‘영리’함과 ‘천재’성 을 발휘한다. 이 사건에 앞서 케루비노의 명령서를 우연히 보고 거기에 필 요한 백작의 도장이 빠져 있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백작부인이 수잔나 에게 작은 목소리로 “도장이.”라고 말하고 수잔나가 그것을 다시 피가로에 게 전달함으로써 피가로가 ‘백작의 도장이 빠져서 내가 그 서류를 갖고 있 었다’라며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46

즉 백작부인이 자신이 속한 진영의 목 적 달성을 위해 도구적 이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에서 피가로와 동 등하고도 유사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때 목적 달성의 여부를 결정 하는 것은 모두 ‘얼마나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말을 꾸며 내는가’이다. 백 작부인의 도장에 대한 아이디어는 피가로가 이미 내뱉은 말(‘뛰어내린 사람은 나다’)에 논리적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제3막 피날레 시작 직전에 케루비노가 발각되면서 뛰어내린 사람이 케루비노였다는 사 실을 백작이 알게 되어 피가로를 추궁했을 때 피가로는 같은 취지에서 이 런 말을 꾸며 낸다: “아마도 … 만일 내가 뛰었으니, 그 역시 똑같은 방법으 로 뛸 수 있을 거예요.”47

 

     45 신영주(2004), p. 121; 피에르 보마르셰(2020)에는 없음.

     46 신영주(2004), pp. 127-128;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09.

     47 신영주(2004), p. 174;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81. “만일 내가 뛰었으니”는 “se hosaltato io”의 번역인데, “내가 뛰었다면” 혹은 “내가 뛰었으니”가 더 자연스럽겠다.

 

백작이 이에 대해 “그놈도 역시?”라고 되묻자 피가로의 대답은 “왜 안 되나요? 난 내가 모르는 일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아 요.”이다.48

 

      48 신영주(2004), p. 174;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81. 

 

즉 논리적으로 둘 다 뛰어내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니 모두 가능하다는, 자신이 앞서 말한 내용에 논리적 일관성의 문제가 없다는, 사 실관계와 무관하게 철저히 논리에 기반한 대답으로 백작을 재차 골탕 먹이 는 것이다. 또한 백작부인은 도구적 이성 사용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는 점에서 피가로 및 백작과 공통점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 이 점에서 세 인물 중 가 장 유능하기까지 하다. 남성들이 각각 세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는 데 반 해 백작부인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끝내 백작의 진정한 사과를 끌 어내고 모두에게 행복과 화합의 시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백작이 수잔나 에게 초야권을 행사하려는 계획은 결국 수포가 되고, 이러한 백작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여장한 케루비노를 수잔나 대신 백작에게 보내어 백작을 망 신 주자는 피가로의 계획도, 케루비노를 여자로 꾸미고 있는 상황에서 백작 이 급작스럽게 백작부인의 방에 들이닥친 사건으로 인해 엉망이 된다. 반면 에 백작부인이 피가로의 계획 좌절 이후에 창안하여 피가로에게는 비밀로 한 채 수잔나의 도움을 받아 실행한 계획은, 즉 백작과 수잔나의 밀회 약속 을 성사시키고 수잔나와 옷을 바꿔 입고 약속 장소에 나가는 계획은 성공 을 거둔다. 포기를 모르고 직접 새로운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백작부 인의 도구적 이성 사용은 자율적이고 탁월하다. 지금까지 보마르셰의 원작과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공통적으로 등장하 는 (백작, 피가로, 백작부인에 의해 구현되는) 도구적 이성 사용의 모습을 살펴보 았다. 그런데 보마르셰의 원작에 없고 모차르트 오페라에는 있는 부분 중 에서 백작부인이 피가로 및 백작과 마찬가지로 도구적 이성 사용의 주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2막 14번 수잔나와 백작 부부의 삼중창에서 골방 속에 숨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두고 이 오페라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 상황을 연출하는 순간 백작과 백작부인이 둘 다 서로에 게 ‘이성’, ‘판단력’ 등을 의미하는 “guidizio”를 반복적으로 소리 높여 외치 는 장면49이다. 이 장면이 있고 난 뒤에 16번 피날레 중 문제의 골방에서 (백 작의 의심과 부합하게) 케루비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잔나가 나온다는 사 실관계를 기반으로 백작부인이 백작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것도 백작부인 자신이 백작에 대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목적을 성공시키는 또 다른 순간이 기도 하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 2막 피날레의 성공은 4막에서 백작부인이 거두는 성공과 질적으로 다르다. 백작은 방금 언급한 장면의 종결부에서 백작부인 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또 백작부인도 백작을 용서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백작은 초야권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모차르트 오페라 4막 피날레에서 백작의 사과는 2막에서의 사과 와 비교도 안 되게 진지하며, 백작 부인의 용서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 차 이는 무엇에서 유래할까? 그것은 2막에서의 사과와 용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백작부부가 각자 단지 자신의 명예 보존을 위해 격렬하게 싸우는 상황50, 즉 도구적 이성이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과 달리, 4막의 사과와 용서의 경우 는 도구적 이성이 아닌, 앞 장에서 살펴본 공동체 감정이 지배적이기 때문 이다.

 

        49 신영주(2004), p. 90; 피에르 보마르셰(2020)에는 없음. 이 14번 삼중창에서 ‘giudizio’는 백작과 백작부인이 동시에 부르는 경우를 1회로 세더라도 무려 14회나 등장한다.

       50 이 장면에서 백작부인은 ‘명예(onore)’를 논하고[신영주(2004), p. 91], 백작은 ‘치욕(적 인)’(infamare)과 ‘복수(하다)’(vendicar)를 언급한다[신영주(2004), pp. 101-102].

 

물론 4막의 사과와 용서의 사건은 백작부인이 발휘한 도구적 이성의 사용(즉 옷을 바꿔 입어 백작을 속이는 계획)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백작부인과 백작 모두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진실로 의 식하는 바탕에서 (전술하였듯) 백작부인의 음악을 나머지 등장인물이 코러 스로 받는 과정을 통하여 음악적으로 공동체의 성립을 표현한다. 4막 피날레의 느리고 단순하며 안정적인 음악과 달리,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2막의 16번 피날레는 빠르고 흥분된 음악을 들 려준다. 또한 2막 피날레 앞에 연결되는 백작부부의 행위를 담은 14번 삼 중창에서는 두 인물이 동시에 같은 모음의 가사 혹은 같은 가사를 부르 며 화성적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부분들이 많은데(같은 가사 혹은 모음이 같 은 가사가 서로 다른 가수에 의해 동시에 연주되면 발음의 통일성으로 인해 각 성부가 합쳐져 만들어내는 화성적 분위기에 더해져 음악적 효과가 배가된다) 그때 가사는 “Chiarissima e la cosa”(그게 정말 확실한 거지)/“Bruttissima e la cosa”(상황이 매우 나쁘게 되었군)(32-34 마디)과 “Consorte mia/mio giudizio, un scandalo un disordine, schiviam per carita”(여보 생각을 잘 하세요, 이건 스캔들이고 혼란 이에요, 제발 그렇게 하지 마세요)(94-100 마디)로 도구적 이성 사용에서의 유불 리에 관한 판단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상대방에 대한 요구를 내용으로 갖고 있다. 또한 2막 16번 피날레에서 공동체 지향적인 대사가 나오긴 하지만(수 잔나, 백작부인: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 사람은 용서받을 가치가 없어요”51), 이는 상대방으로 인한 본인의 명예 훼손에 대해 분노하고 복수를 말하는 와중에 서 백작부인이 백작에 대한 우위를 점하려는 도구적 이성 사용의 모습일 뿐, 4막 피날레에서 백작부인이 몸소 실천하면서 보여 주는 공동체 정신과 그 본질에서 큰 차이가 있다.

 

       51 신영주(2004), p. 109.

 

지금까지 고찰한 내용을 종합하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중심인 물인 백작부인 및 가장 중요한 사건인 4막 피날레의 사과와 용서는 이기적 인 도구적 이성 사용과 공동체 감정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요소의 종합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본고는 이 종합의 모습이 모차르트 오페라에 우연 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성을 감정을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독일 계몽주 의의 특징적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같은 사상이 담겨 있는 독일 계몽 주의의 중요 개념인 감상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 사회 윤리적 덕목이 이 오 페라에서 발견된다는 주장을 전개하고자 한다.

 

3.2. 이성과 감정의 조화: 감상주의(Empfindsamkeit)

3.2.1. 이성을 보완하는 감정

2.에서 언급했듯, 계몽주의가 강조한 이성의 자율적 사용은 이성의 무 정부적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리의 상대화를 막기 위해 어떤 것이 진리임을 입증할 수 있는 논리적 사유가 강조되지만, 논리적 사 유의 대상은 대상화 및 개념적 일반화를 통해 고유성을 잃고 획일화된다는 단점이 있다. 계몽주의를 비판한 현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계몽주의적 사고 가 인간 사유의 즉물화, 탈도덕화, 인식의 교조화, 전체주의 국가의 탄생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았다.52 퓌츠는 계몽주의자들에게 위와 같은 문제들에 관한 비판적 자기성찰이 없었다는 견해는 오해라고 규정하면서, 계몽주의자들이 인류애, 종교 등 공 인된 가치나 제도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이성이 완전히 자율화되어 무정부 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한다.53

 

      52 김수용(2010), p. 49.

      53 Peter Pütz (1978), Die deutsche Aufklärung,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p. 32.

 

그는 자신의 저서 『독일 계몽주의』(Die deutsche Aufklärung) 중 “계몽이 문제가 되다”(Aufklärung wird Problem)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칸트가 이에 대한 답으로 「계몽이란 무엇인 가?」을 발표하여 더욱 널리 알려진) 쵤너(Johann Friedrich Zöllner)의 유명한 질문 “계몽이란 무엇인가?”(1783년 『베를린 월보』)가 단순히 이론적인 정의(定義)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계몽의 길과 목표와 한계에 대한 실천적인 불안으로부터 유래한 질문이라고 설명한다.54 즉 계몽의 가능한 폐해에 관해 당시 지식인 들도 우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 중심성에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의외일 사실 하 나는 독일 계몽주의 시대는 감성 및 감정에 대한 주목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시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의 독주에 대한 이러한 우려 및 비 판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철학계에서는 바움가르텐이 “감성적 인식의 학”(scientia sensitiva cognoscendi)으로서 ‘미학’이라는 새로운 감성의 학문을 창시하였고, 이 학문은 칸트 『판단력 비판』에 의해 확립되는데 칸트는 주관 의 쾌, 불쾌의 감정에 지성과 이성을 매개하는 제3의 능력이라는 지위를 부 여하였다. 문학이나 대중 철학 등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감정을 중시하 는 감상주의가 중요개념으로 떠올랐다. 앞에서 보았듯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은 백작부인 캐릭터를 통하여 유용론적 이성과 공동체적 감수성을 두루 갖추어 이기적이고 도구적인 이 성이 무정부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스스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인물 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성 일변도에서 변화하고자 한 독일 계몽주 의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 본고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이 오페라에 이러한 특징 외에도 감상주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감상주의는 이미 18세기 전반부터 유럽 각 나라에서 공통으로 생겨난 조류(Strömung)에 대한 독일어 명칭인데,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시 표 현으로 “머리”(Kopf)와 “심장”(Herz), 즉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 이었다.55

 

       54 Peter Pütz (1978), p. 25.

       55 Sven Aage Jorgensen, Klaus Bohnen, & Per Ohrgaard (1990),Aufklärung, Sturm und Drang, Frühe Klassik 1740-1789, München: Beck‘sche Verlagsbuchhandlung, p. 172; Gerhard Sauder (1974), Empfindsamkeit Band I: Voraussetzungen und Elemente, Stuttgart: Metzler  Verlag, p. 125.

 

이 조류에 동참한 이론가들은 이성과 감정이 합일(Vereinigung)되어야 한다고, 사고함과 느낌 사이에 평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감상성이 없는 이성(Vernunft ohne Empfindsamkeit)은 “불완전”(unvollkommen) 하다고 생각했다.56 1778년에 발표된 글의 한 부분인 아래의 구절은 이성과 감정의 조화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다: ‘계몽은 차가움을 가져온다’라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감정의 불길은 열 광을 낳는다’라고 또 다른 사람은 말한다. 이 두 사람의 말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이들이 계몽과 감정을 서로 고립시킨다면, 하나를 다른 것 으로부터 독립시켜서 그것 하나만 키워 간다면, 그리고 그들 상호간의 영 향을 없애버리거나 그저 서로 방해하게 한다면, 두 사람의 말은 옳다.—그 러나 이 두 사람이 정신의 계몽과 감정의 경험을 상호 연결시키고 양자를 합일시키며, 그리고 하나를 다른 하나를 통해 확장하고 굳건히 하며, 그리 고 정화시킨다면, 두 사람의 말은 그른 것이다.57

 

      56 Gerhard Sauder (1974), p. 125.

      57 W. Doktor & G. Sauder (eds.) (1976), Empfindsamkeit. Theoretische und kritische Texte, Stuttgart, p. 33, 김수용(2010), p. 54에서 재인용.

 

즉 앞에서 말한 지나친 이성중심적 계몽주의의 폐해에 대한 우려와, 이 성과 감정이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 캐릭터가 이기적인 도구적 이성 사용과 공동체 감정이라는 상반되어 보이 는 두 요소의 종합을 구현하는 모습이, 이러한 감상주의의 이상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3.2.2.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과 감상주의

이제부터는 감상주의에서 중심을 이루는 감정 개념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를 통해 백작부인이 보인 공동체 감정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적 요소 들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감상주의의 기본적인 특징과 백작부인이라는 인물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자. 감상주의는 “가볍게 감동하고 가볍고 부드러운 감각을 획득 하는 능력”(Fähigkeit, leicht gerührt zu werden und leichte, sanfe Empfindungen zu bekommen)으로 정의될 수 있다.58 그런데 이렇게 감각과 감정에 대해 민감 한 수용성을 보이는 능력이 지나치면, 즉 “아주 작은 사소함을 통해서도 너 무 많이 감동하고 흔들리는”59 모습을 보이게 되고 “평형을 이룬 영혼의 상 태”를 해치고 이성과 적대관계가 되게 된다.60 감상주의가 감정과 감각을 강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과한 상태를 ‘과도한 감 상성’(Empfindelei)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과도한 감상성은 ‘내적으로 조화 를 이룬 영혼을 가진 인간, 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적인 인간’이라는 감상주의의 이상을 해친다.61

 

         58 Gert Ueding (ed.) (1994),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Rhetorik, Band 2, Tübingen: Max Niemeyer Verlag. p. 1111. 이 맥락에서와 같이 ‘Empfindsamkeit’를 어떤 ‘능력’으로 정의 하는 경우, ‘~주의’라는 표현 때문에 “감상주의”라는 번역어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안삼환의 번역어를 따라 문맥과 관계없이 ‘감상주의’라고 번역하기로 한다[안 삼환(2016), 『한국 교양인을 위한 새 독일문학사』, 세창출판사 pp. 152 이하].

        59 Gert Ueding (ed.) (1994), p. 1117.

        60 Gert Ueding (ed.) (1994), p. 1117.

        61 Gert Ueding (ed.) (1994), p. 1111.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자신의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느끼고 그에 대해 세밀하게 반성하고 표현하는 인물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 리로 부르는 역)인데, 그중에서도 소프라노가 부르는 백작부인과 메조 소프라 노가 부르는 케루비노의 독창곡에서 특히 그런 섬세한 감정의 의식이 표현 된다. 우선 케루비노부터 살펴보자. 케루비노의 6번 아리아 “더 이상 모르겠 어”(Non so piu cosa son) 와 12번 아리에타 “당신은 아시나요 사랑이 무엇인지”(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부터 살펴보면, 자신의 감정과 감각을 매우 세밀하게 인식하고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번 곡에서 자신이 “모든 여자들”에 의해 “불덩어리가 되었다가는 금방 얼음장이 되어 버리는” “혼 란스러움”을 노래하는 케루비노는 감상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인물이라 기보다는, 과도한 감상성(Empfindelei) 쪽에 가깝다. 즉 “오직 사랑이라는 말, 애인이라는 말만으로도 내 가슴은 혼란스러워지는구나”라고 노래하는 케 루비노의 내면은 매우 작은 사소한 어휘만으로도 쉽게 흔들리는, 내적인 조 화와 평형이 깨진 모습, 즉 감상주의의 이상에 반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12번 곡에서도 케루비노는 자신의 심적 상태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한숨과 비탄이 나오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떨려요. 밤에도 평온을 찾을 수 없고 낮에도 역시 그래요.” 평 온을 모르는 케루비노의 영혼은 감상주의가 추구하는 평형과 조화의 상태 에서 벗어나 있다. 이제 백작부인 차례이다. 백작부인의 11번 카바티나 “나의 고통과 한숨 에 위안을 주세요”(Porgi amor)와 20번 아리아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은 어 디에 있나”(Dove sono i bei momenti)는 공히 백작부인의 깊은 고통과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케루비노의 두 독창곡이 성악 파트, 혹은 오케스트 라 파트에서 빠른 진행으로 불안한 심적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백 작부인의 노래는 음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극히 우아한 상태를 절대 로 이탈하지 않는다. 11번 카바티나에서 “오 내게 내 사랑을 돌려주세요” 에 이어서 나오는 가사인 “아니면 나를 죽게 내버려 둬요”라는 가사는 5번 이나 등장하지만, 죽음을 진정으로 원하는 자포자기의 절망감이라기보다는 ‘사랑을 돌려달라’의 강조로 느껴진다. 음악적으로도 느린 템포인 라르게토 (Larghetto)인데다가 음계의 순차적 진행을 주로 사용함으로써(33-35마디, 40- 42마디)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 한다. 다소 느린 템포인 안단티노(Andantino)로 시작된 20번 아리아의 후반 부(52마디부터)의 템포 지시어는 알레그로(Allegro)로 템포가 빨라지는 동시에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이 역동성은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표 현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탄식의 대상이었던 상황(남편의 배신과 사랑의 상 실)을 변화시키겠다는 이성적 의지 및 그것을 향한 희망의 표현이다.

“아! 항상 그를 향한 변함없는 내 마음으로, 그의 마음이 내게 다시 돌아올 희망 을 내게 주소서, 이 아픈 마음을 다시 바꿔 주세요.”

즉 백작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고 표현하면서도 그에 휩싸여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이 비극적인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타개하겠다는 주체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 이는 감상주의가 지향하는 이성과 감정의 조화로운 상태의 구현이라 하 겠다. 앞서 감상주의의 이상적 인간상을 ‘내적으로 조화를 이룬 영혼을 가진 인간, 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규정하 는 설명을 인용하였는데, 과도한 감상성(Empfindelei)의 문제점은 자신의 감 정과 감각에 지나치게 압도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이룰 수 없게 한 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감상주의에서 인간의 사회적 능력 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상주의 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자우더 (Gerhard Sauder)에 따르면, “계몽주의적 감상주의가 모든 자신의 요소들을 주관에 한정하여 해석하는 대신에 항상, 그리고 대단한 집중력을 가지고 그 요소들이 사회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또한 사회의 번영을 위해 수행하는 기능에 질문을 던지는 일관된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62 그는 또 이렇게 말 한다: “감상주의의 요소들을 통해 감상주의적 인간이 완전해지는 일은 오 직 사회적 상호작용 안에서만 가능하다.”63 이렇듯 감성적 능력과 사회적 능력을 고르게 갖춘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규정한다는 특성은 ‘감상주의’란 표현이 통용되기 시작하여1768년 이후에 다른 표현들을 완전히 대체하기 전까지 관련 분야에서 핵심 어로 사용되었던 ‘다정함’(Zärtlichkeit)이란 표현에도 해당된다.64 즉 다정한 인간은—‘다정함’ 개념에 대한 계몽주의 시대 대표적 저술가인 링엘타우 베(Michael Ringeltaube)에 따르면—“윤리적으로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아름다 운 것과 감동적인 것을 알아보는 성숙한 사람”으로, 그 안에서 감성적인 것 과 윤리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는 인간이다.65 역시 ‘감상주의’를 주제로 연 구한 베크만(Nikolaus Wegmann)은 같은 의미에서 다정함 개념 안에 포함된 “도덕성과 사회적인 적합성”(Moralität und gesellschaftliche Konformität)을 지 적한다.66 자우더가 감상주의를 주제로 한 자신의 책 중 “다정하고 도덕적 인 감각들–덕성과 감상주의적 활동”(Zärtliche und moralische Empfindungen - Tugend und empfindsame Aktivität)이라는 제목의 절을 따로 두고 있는 것처럼, 감상주의의 한 측면은 분명 공동체에 속한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한 덕목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67

 

         62 Gerhard Sauder (1974), p. 197.

         63 Gerhard Sauder (1974), p. 197.

         64 Gert Ueding (ed.) (1994), pp. 1110-1111.

         65 Gert Ueding (ed.) (1994), p. 1110.

         66 Nikolaus Wegmann (1988), Diskurse der Empfindsamkeit. Zur Geschichte eines Gefühls in der Literatur des 18. Jahrhunderts, Stuttgart: Metzler, pp. 42 이하.

         67 Gerhard Sauder (1974), pp. 193 이하. 

 

2.에서 확인했듯,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이 다른 점은 전자가 결국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공동체의 확립을 주 제로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관점과 통하는 감상주의의 주요 감정들을 모차 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백작부인을 위 시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인물들에 해당하는 이러한 감정에는 ‘우 정’과 ‘공감’, ‘행복’이 있다. 차례로 살펴보자. 윤리적 감정을 포함한 것으로 이해된 ‘다정함’ 개념은 1760년대의 많은 저술들에 의해 우정의 덕목으로 생각되기도 했다.68 즉 이 경우 다정함 은 “섬세한 우정의 감각”(das Feine in den freundschaftlichen Empfindungen)을 뜻한다.69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주요 인물들 사이에 신분을 뛰 어넘는 우정의 관계가 성립한다.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던 “편지의 이중창” 이라고도 불리는,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제21번 두에티노(“바람에...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Sull’aria.... Che soave zeffiretto)에서 저 “섬세한 우정의 감각”이 음 악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플롯 상으로는 백작을 속이는 편지를 구 술하고 받아쓰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1994)에서 주인공 듀프레인이 이 음악을 수용소에서 틀었을 때 수감자들이 넋을 잃고 듣는 장면70이 묘사하듯, 모차르트가 이 부분에 붙인 음악은 그 섬세한 아름다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아름다움의 원 천은 두 소프라노 가수가 이루어 내는 음악적 조화인데, 이 조화로운 이중 창은 두 인물의 연합이 단순히 이들의 목표가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그들 사이의 순수한 우정의 감각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이 부분을 단순히 사건의 진행을 전달 하는 식으로 묘사해 놓았을 뿐인 보마르셰의 원작71에서는 이들 사이에 신 분을 뛰어넘는 우정이 존재한다는 암시를 찾을 수 없다.72

 

       68 Gerhard Sauder (1974), p. 194.

       69 작자미상(1762), „Von der Zärtlichkeit in der Freundschaft“, Gerhard Sauder (1974), p. 194에서 재인용.

       70 누스바움도 이 영화를 언급하고 있으며[마사 누스바움(2019), pp. 68-69], 이 장면은 모 차르트의 음악이 영화에 쓰여서 감동을 준 가장 유명한 경우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1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175.

       72 서론에서 언급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비판적 의견, 즉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보마르셰의 정치색을 사적인 갈등 구도로 바꿔 버렸다는 의견은 모차르트가 이처럼 음악을 통해 플롯 상의 행위만으로는 다 보여줄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성공적으로 표현 해 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독일 계몽주의의 ‘다정함’ 개념이 본래 개인적, 사적 인간관계에서 발휘되는 것으로서[Gerhard Sauder (1974), p. 195],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이러한 독일 계몽주의의 특징에 잘 부합한다는 것이다.

 

비단 ‘우정’뿐만 아니라 ‘공감’과 ‘행복’도 보마르셰의 원작에는 없는, 모차르트가 음악을 통 해 구현한 독일 계몽주의적 덕목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다음으로 살펴볼,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감상주의의 요 소는 공감(Mitgefühl)이다. 공감은 흄, 캄페, 스미스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중요하게 다룬 덕목인데, 다른 사람이 처한 감정과 상황에 대한 공감을 통 해서 타인과 감성적으로 연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는 점에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감성적 능력과 사회적 능력이 결합한 ‘감 상주의’의 특징에 잘 부합하는 개념이라고 하겠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공감을 통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이 음 악적으로 표현된 장면은 바로 4막 피날레에서 백작부인이 백작을 용서하 는 장면이다. 백작이 백작부인에게 용서를 구하자 백작부인은 “나는 온화 한 성격이니,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지요.”(Più docile io sono, e dico di sì.)라고 대답하는데, 바로 이 멜로디를 모든 다른 등장인물들이 받아서 “아, 모두가 행복할 겁니다.”(Ah, tutti contenti saremo così.)라고 노래한다. ‘광란의 하루’에 일어났던 복잡한 갈등들이 해소되는 방식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단순한 이 장면이 그래도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바로 모차르트의 숭고한 음악이 모든 등장인물을 하나로 만들기 때문이다. 돌라르는 이 장면 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모차르트는 이 순간을 위해서 제의 음악 에, 솔로이스트와 코러스가 교환되는 고대 형식에 의지했던 것 같다. 합창 단은 백작부인의 모티프를 넘겨받으며 그리하여 공동체는 용서 행위의 주 체가 되고 바로 이 행위를 통해 확립된다.”73

 

      73 믈라덴 돌라르(2010), p. 80.

 

백작부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용서의 주체가 되는 방법이 모차 르트에게서는 백작부인의 ‘음악’적 모티프를 합창단이 반복하는 것이었 다면, 보마르셰의 원작에서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백작부인의 ‘말’ 을 개별적으로 반복한다. 용서를 구하는 백작에게 백작부인이 “조건 없이 당신 청을 들어드리도록 하지요.”(je l’accorde sans condition. 74)라고 하자, 쉬 잔과 마르슬린, 피가로가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각각 “저도요.”(Moi aussi. 75)라고 말하는 것이다.76 원작의 이 장면에 대해 돌라르는 이렇게 쓴 다: “그들 또한 그를 용서한다. 그들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서 용서하는 주 체가 될 권리를 스스로 취한다. 그들은 잘못된 대우를 받았고 그렇기 때문 에 주인을 용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인지한다.” 돌라 르가 적절하게 통찰한 것과 같이, 이 장면은 하층 계급이 스스로 귀족계급 을 용서하는 위치에 선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이다.77 그러나 이러한 종 류의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역학 관계는 공감을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 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모차르트가 보마르셰와 다 른 점은 이 부분에서 모든 인물이(심지어 백작조차도) 같은 음악을 노래하는 합창에 합류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감성적 공감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공동 체가 더욱 굳건해진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감상주의의 덕목은 행 복이다. 앞에서 감상주의가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꾀하려는 조류라는 것 을 확인했는데, 이성과 감정의 조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만족하는”(vergnügt) 영혼, 즉 인간의 현세에서의 ‘행 복’(Glückseligkeit)이었다.78 즉 감상주의의 견지에서 이성과 조화를 이루어 야 하는 감성적 능력이 해야 하는 일은 이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의 모 든 경향성(Neigungen), 윤리(Sitten), 욕구(Begierden)를 정련하는(verfeinern) 것 이었다.79

 

         74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2000), La folle journée ou le mariage de Figaro, Numi Log, p. 429.

         75 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2000), p. 429.

         76 피에르 보마르셰(2020), p. 239.

         77 믈라덴 돌라르(2010), p. 80 각주.

         78 Sven Aage Jorgensen/Klaus Bohnen/Per Ohrgaard (1990), pp. 172-173.

         79 Rainer Godel (2015), p. 133.

 

앞서 언급한 대로 백작부인의 용서의 언어에 동반되는 멜로디를 합창이 받아서 “아, 모두가 행복할 겁니다.”(Ah, tutti contenti saremo così.)라고 노래함으로써 ‘행복’이 이 모든 갈등과 사건들의 종착점이 된다. 지금까지 이 극에 등장한 온갖 계략(이성의 사용)과 다양한 감정들이 결국 서로 조화 를 이루어 행복을 구현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 행복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성립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사실은 “모두가”(tutti) 라는 가사뿐만 아니라 백작부인의 멜로디를 받아 노래하는 조화로운 합창 의 형태에서도 표현된다.

 

4. 결론

지금까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이 보마르셰 『피가로의 결혼』과 다른 독자적인 방식으로 계몽주의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독자적인 방식에는 「피가로의 결혼」이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등 정형화된 형식적 요소로 구성된 고전 오페라 작품이라는 사실 외에도, 모차르트가 살 았고 음악 활동을 했던 독일어권 사회가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와는 매우 달랐다는 사실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독일 계몽주의의 특징 중 에서도 차가운 이성을 따뜻한 감정으로 보완하고자 하는 경향, 머리와 심장 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등장인물 중 백작부인의 캐릭터에서 찾아내었 고, 백작부인을 중심으로 이 공동체가 통합을 이루는 모습이 음악적으로 표 현된 모습을 토대로 (이성과 감정의 조화라는 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는 개념인) ‘감 상주의’에 속한 여러 사회적 덕목이 이 오페라에 담겨 있음을 확인하였다. 모차르트가 한때 독일어권의 대중철학과 문학을 지배했던 감상주의 의 영향을 직접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통 해 이 중요한 작품이 시대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도 보마르셰의 원작과 구 별되는 창조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연구자로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참고문헌

자료

보마르셰, 피에르(2020), 이선화 역, 『피가로의 결혼』, 도서출판 b. 신영주(2004),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이해하기 쉬운 오페라』, 음악춘추사. Beaumarchais, Pierre-Augustin Caron de (2000), La folle journée ou le mariage de Figaro, Numi Log. Kant, Immanuel (1798),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Akademie-Ausgabe Band 7. [칸트, 임마누엘(1798),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학술원판 전집 제7권] Kant, Immanuel (1790), Kritik der Urteilskraft, Akademie-Ausgabe Band 5. [칸트, 임마누엘(1790), 『판단력 비판』, 학술원판 전집 제5권] Kant, Immanuel (1784), “Was ist Aufklärung?”, Akademie-Ausgabe Band 8. [칸트, 임마누엘(1784), 「계몽이란 무엇인가」, 학술원판 전집 제8권]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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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Die Harmonie zwischen  Vernunft und Gefühl bei Mozarts Le nozze di Figaro

In Bezug auf die Empfindsamkeit 

Lee, Hye-Jin*

 

Das Libretto von Mozarts Oper Le nozze di Figaro (1786) gründet auf dem Bühnenstück von Beaumarchais Le mariage de Figaro (1784). Durch diese Adaption wurde ein von Beaumarchais geschriebener Monolog Figaros ausgelassen, der den Adelstand direkt und heftig kritisiert. Dies hat zu der Kritik geführt, dass Mozart die aufklärerische Eigenschaft und das gesellschaftliche Engagement des Bühnenstücks von Beaumarchais geschwächt hat. Der vorliegende Aufsatz stimmt der anderen Ansicht zu, dass die Oper Mozarts den Zeitgeist doch auf ihre eigene Weise widerspiegelt. Zugleich versucht er zu zeigen, dass die aufklärerischen Eigenschaften dieser Oper in Hinsicht auf die Harmonie zwischen Kopf und Herz verstanden werden können, die bei der deutschen Aufklärung als wichtig betrachtet wurde. Diese Harmonie verkörpert sich vor allem im Charakter der Gräfin. Auf der Harmonie bei ihr basiert die gesellschaftliche Integration, die in Mozarts Oper anders als im Bühnenstück von Beaumarchais in den Vordergrund * Lecturer, Department of Aesthetics, Seoul National University  rückt. Die vorliegende Untersuchung bezieht die dabei beobachteten gesellschaftlichen Tugenden auf den Terminus der deutschen Aufklärung, die Empfindsamkeit.

Schlüsselbegriffe  Mozart, Beaumarchais, Le nozze di Figaro, Le mariage de Figaro, Aufklärung, deutsche Aufklärung, Empfindsamkeit, Opera Buffa, Vernunft und Gefühl, Kopf und Herz, gesellschaftliches Gefühl

 

원고 접수일: 2022년 7월 19일, 심사 완료일: 2022년 8월 6일, 게재 확정일: 2022년 8월 9일 420  인문논총 79권 3호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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