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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국방

트럼프의 질주와 남북관계(25-3-12)/장성윤.통일연구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압 외교(coercive diplomacy)로 국제사회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1)

 

   1) 강압 외교(coercive diplomacy)는 국가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적 협상뿐만 아니라 군사적 위협, 경제적 제재, 정치적 압박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상대의 의지와 정책을 강제로 변경하거나 특정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을 지칭한다.

 

트럼프의 거친 행보는 비단 동유럽과 중동, 나아가 중국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낯선 질주 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동맹과 북한 문제에 트럼프의 정치적 의지가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선택과 실천은 남북관계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지도부 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현재의 남북한 정세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만약 향후 미북관계가 요동치더라도 북한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엄격히 고수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전망과 우리의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1.남북관계: 경색을 넘어 교착으로

 

남북관계는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좌초 직후 경색국면에 접어들었다.

설상가상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북한이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며 남북한 간 물리적 교류와 협력은 중단되었다.

심지어 북한은 우리가 제안한 방역 및 인도적 지원도 거부함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은 더욱 힘들어졌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제안하며 남북관계를 회복하려 했지만, 북한은 이를 ‘현실성이 없다’고 거부했다.

2022년 이후에도 남북한 간 소통 단절은 지속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에 조그만 의지를 보여도 과감한 대북 지원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대화를 외면하고 핵 개발에 전념했다.

급기야 북한은 2023년 12월, 남북한을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핵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 야욕을 드러냄으로써 기존 통일전선에 의한 고려연방제 방식의 통일 을 철회했다. 북한의 반민족·반평화적 행태에 남북관계는 경색을 넘어 사실상 교착에 빠졌다.

지난 6년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우리의 탓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는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었고 대화를 거부한 적도 없다.

2019년 미북관계가 달라졌다면 북한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관계는 경색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2022년 이후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겠다는 결심 대신 대화의 문으로 ‘담대하게’ 들어왔다면, 굳이 민족을 등지거나 통일을 지울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 다.2)

따라서 지금의 남북 교착상황은 미북관계의 영향 및 북한의 판단과 선택의 결과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 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우리 정부가 어떠한 대북정책을 채택하더라도, 북한의 대남기조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당분간 북한이 우리를 철저히 무시함에 따라 우리 스스로 교착상황 타파 기회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북한의 전략적 셈법

 

그렇다면 북한은 남북한 교착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북한은 왜 대남관계를 통한 교착상황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그 내면에는 교착상황을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는 북한의 속내가 포함되어 있다.

먼저 북한은 우리와의 긴장 완화를 강력히 경계한다. 김정은의 궁극적 절대 목표는 독재체제의 수호와 계승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 내 한류 등 정보 유입이 이러한 목표에 심각한 도전으로 등장했다.

북한의 선택은 적대적 2 국가론을 통한 남한 등지기였다. 즉 북한의 대남 전략 전환은 김정은의 장기 독재체제구축을 위한 궁여지책이자 우리의 통일정책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이다.3)

 

    2) 김정은은 최근 직접 핵무기의 ‘기하급수적’ 생산 확대를 3차례나(2022년 12월, 2023년 9월 2024년 9 월) 강조했다.

    3)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전략을 채택한 주요 배경으로 북한 내 한류 확산 현상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 다. 김정은은 정보 유입을 미리 통제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통치 기반의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단순히 한류 확산 차단을 넘어 오히려 청년들의 反남한 적대 의식을 적극적으로 조장함으로써 독재체제가 더 공고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체제변화를 거부 하거나 대남 위협인식을 거두지 않는 한, 한반도 긴장 완화에 관심을 두기보다 우리와의 관계 맺기 자체를 철저히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현재 북한은 교착국면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심지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러·우 전쟁 파병을 통해 정예 병력과 군수물자를 낭비했다.

이는 전쟁 수행 능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은 당분간 무리한 대남 도발을 통한 현상 타파 전략을 채택하기 어렵다.

자칫 확전을 통제하지 못하면 안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한의 정치적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남한 내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 촉발이라는 부가적 편익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남북한 긴장 완화는 세습 정권 연장의 전략적 자해(自害)가 될 것이며, 역으로 위기 조성 또한 안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지금의 현상을 가급적 유지하려 할 것이다.

다만 북한 내부의 反남한 감정 확산과 강화에 도움이 된다면 정치적 강압 차원의 대남 공세와 저·중강도 군사 도발은 충분히 이어갈 것이다.

 

3.미북관계와 남북관계

 

트럼프 2기 남북관계는 미북관계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미북관계의 극적 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북한은 선제적 대미 행보를 자제할 것이다.

김정은은 일단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종전 추진과정에서 보여주는 자국 우선의 노골적 강압 외교 행태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고려한 대미전략을 신중히 구상할 것이다.

현재 김정은이 대미관계가 아닌 대러관계에 더 집중하고 있는 점도 부가적 이유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이 비교적 성공적이라 판단하고 당분간 대러 협력 성과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2025년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는 ‘先 러북관계 강화, 後 대미관계 모색’이 유력하다.

북한 시각에서 판단한 때, 핵 능력 고도화와 제재 무력화에 성과를 확보한 후 대미관계 재구축 여부를 결심해도 불리하거나 늦지 않다.

그럼 미북관계의 변화는 언제쯤 시작될까? 미북 대화가 진행되면 남북 교착국면에 변화는 찾아올까?

우선 트럼프는 중요한 대외 문제를 다룬 후 또 다른 정치적 성과를 위해 한반도에 시선을 돌릴 것이다.

북한도 러시아에 대한 협력 대가를 확보하면 또 다른 이익을 찾을 것이다. 따라서 미북 대화는 최소한 동유럽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4)

하지만 미북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남북관계의 즉각적 변화는 어렵다.

김정은은 우리가 미국 의 식민지이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미동맹에 철저히 구속되어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자신의 지상과제인 핵보유국 지위 확보에 큰 도움도 그렇다고 큰 방해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북한은 아직 하노이 노딜에 대한 분노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상당 기간 대미관계와 상관없이 철저히 우리를 무시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대미·대남 분리 기조’를 강력히 견지하면서도, 아래와 같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경우 대남 행태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은 있다.

  첫째, 북한이 적극적인 통미봉남(通美 封南)을 통해 남북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이다.

이는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후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채,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과 핵 협상 논의를 제안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둘째, 북한은 중요한 대미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를 활용해야만 한다면 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북한의 전략적 행보가 여기에 해당한다.5)

 

      4)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는 ① 중국 문제, ② 우크라이나 전쟁 마무리, ③ 중동 문제 해결 순 서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인 중국견제에 집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고자 한다.

      5) 다만 어떤 경우에도 북한은 자신들이 구축하고자 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과 운신의 폭 을 제한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북한은 아마도 후자보다 전자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두 번째 기회가 어렵지 않고 내심 기대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트럼프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남북관계에 충격을 주는 행동에 덜 신중할 수 있다.

가령 북한이 한반도에 위기를 조성하고 트럼프의 해결사 본능과 영웅 심리를 자극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4.우리의 대응 방향

 

당장 미북관계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추후 양국의 관계 진전이 있더라도 남북관계의 긍정적 변화는 난망하다.

오히려 당분간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북한이 대남 적대 전략을 고수하며 대미 관계를 위해 우리의 안보를 함부로 위협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해 우리의 이해와 역할이 배제된 어떠한 위기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거치지 않고 미국과 북한이 함부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북한이 우리의 정세 주도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취지를 담아 다음과 같은 정책적 고려사항을 제시한다.

 첫째, 최소한 2025년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세의 안정적 관리가 되어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외면하면서도 우리에 대한 핵 강압 수위는 계속 높이며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느 해보다 강력한 도발 억제 태세 확립이 중요하다.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서 우리 군은 흔들림 없는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정치적 격변 상황에도 의연해야 한다.

국민 모두 우리 군이 이러한 임무와 역할을 충심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믿음을 주어야 한다.

오늘의 안보 없이 내일의 평화도, 미래의 통일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국회가 미국과 북한 발 도전적 상황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재 어려운 국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는 고군분투하고 있다.6)

지난 1월 뮌헨안보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 고,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도 개최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오랜 형제국인 시리아와 의 수교가 임박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이제 이러한 외교적 성과를 국회가 적극 뒷받침 해야 한다.

다행히 여·야 정파 모두 굳건한 한미동맹을 외교 안보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1년간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을 여·야 어느 쪽도 두둔한 적 없다.

국회의 결단과 협력은 가능성 여하를 떠나 본분과 의지의 문제이다.

국회에서 한미동맹 강화와 북한의 적대적 대남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를 바란다.

국민이 환영할 것이다.

  셋째, 우크라이나전의 종전 과정에서 냉엄한 교훈을 읽어야 한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국제정치는 혼란스럽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당분간 국제질서는 다극화가 아닌 ‘트럼프 패권 체제’의 성격을 띨 것이다.

트럼프의 강압 외교에 피아(彼我)의 구분은 없다.

따라서 트럼프가 북한을 유독 너그럽게 대할 리 없으니 미북대화를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명민하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내세워 트럼프에 과감히 편승하려 든다 면 사정이 달라진다.

핵이 빠진 미북 대화가 개최될 수 있다.

북한은 트럼프에게 광물 개발과 관광 산업 등 막대한 경제적 유인책을 제시하고, 트럼프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경제 제재를 벗겨주려 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는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없으니 북한이 곧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 호언장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더욱 우리를 외면하게 되고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도 못 느낄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런 소설 같은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의 시대니까! 

 

온라인시리즈25-8

[온라인시리즈 25-08] 트럼프의 질주와 남북관계_최종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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