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 미국 부통령은 뮌헨안보회의에서 극우정당을 견제하는 유럽 정치의 규범을 비판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일방주의, 자국중심주의는 미-유럽 간 대서양 동맹을 약화하고, 유럽 극우정당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급변하는 대외 환경을 맞아 우리나라는 유연하고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한편, 민주주의 퇴행을 막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 요구된다.
1 들어가며
2월 14일, 밴스(J.D. Vance) 미국 부통령이 뮌 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 연 설에서 유럽의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해 논란이 되 고 있다.
밴스는 러시아·중국 등 외부의 안보위협 보다 유럽 내부의 민주주의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유럽에서 낙태 반대 행동이나 코란 소 각, 반이민 선동 등을 처벌한 사례를 들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고 비판했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확산으로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에는 기성 정당들이 연합하여 극단주의의 확 산을 막는 관례가 있다.
밴스는 연설을 통해 극단 주의에 대한 방화벽(firewall)에 대해서도 차별적 조치로 치부하였는데,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는 극 우 대안당(AfD)에 대한 지지 의사로 받아들여졌 다.
이후 밴스는 숄츠(Olaf Scholz) 총리는 만나 지 않은 채, 대안당 대표만 면담하며 정치적 의도 를 분명히 했다.1)
1) 트럼프 정부의 정부효율부를 관장하는 머스크는 지난 1월 말 AfD 선거 캠페인에 온라인으로 등장하여 AfD가 독일의 희망이라고 추켜세웠다.
밴스의 행보에 대해 유럽 주요 인사들은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숄츠 총리는 “(독일) 내정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독일 국방장관 피스토리우스(Boris Pistorius)는 유럽을 권위주의에 빗댄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스웨덴의 빌트(Carl Bildt) 전 총리는 밴스의 발언이 “(독일) 선거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이라고 비판했다.2)
2) Nina Haase, “Pistorius: JD Vance's criticism 'is not acceptable'”, DW, 2025.2.14.; Anne-Sylvaine Chassany et. al., “Germany in uproar as US scolds staunch European ally”, Financial Times, 2025.2.17.
지난 20여 년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퇴행이 지속되면서,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도 극우정당의 부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이러한 때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유럽 정책과 극우세력에 대한 동조는 유럽 정치에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글은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의 배경과 현황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민주주의의 도전과제를 분석한다.
2 미국의 대(對)유럽 전략 변화
(1) 트럼프 2기 정책 변화와 유럽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는 반이민, 다자주의 반대, 관세 확대, 동맹국과의 안보 협력 약화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이민 정책은 불법 체류자의 대규모 즉각 추방, 수정헌법 제14조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출생자에게 부여되던 시민권 제도 폐지, 고용 기반 비자의 심 사 강화 조치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 가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 지역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했으며, 불법 체류 자 부모와 시민권자 자녀의 격리 수용 재추진, 불 법체류 미성년자 추방유예 프로그램(DACA) 폐지 추진 등 전례 없이 강경한 정책을 신속하게 실행 중이다.3)
3) Nadine Yousif, “Six big immigration changes under Trump - and their impact so far”, BBC, 2025.1.27.; 최지선 등, 「“4년간 불 법이민 200만명 추방”… 국경장벽 높이는 트럼프 충신 3인」, 『동아일 보』, 2025.1.25.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등에서는 고등학 생과 대학생까지 참여하는 반대 시위가 이어졌으 나, 이민 정책 강경화는 최소한 중간 선거가 치러 질 2026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밴스 부통령은 지정학적으로 거리가 있으며, 이 민 배출국도 아닌 유럽에 대해 자국의 이민 정책 기조에 맞추어 이민 정책을 강경화하도록 요구했 다.
이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정당을 경계하 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게는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 이다.
더구나, 2월 23일 독일 조기 총선을 며칠 앞 둔 시점의 연설이라는 점에서 숄츠 독일 총리의 언 급처럼 ‘내정 간섭’으로 인식될 우려도 있었다.
(2) 미-유럽의 경제·안보 갈등 심화
밴스 부통령이 유럽 이민 정책과 민주주의 악화 를 비판한 이유로는 미-유럽 간의 대서양 동맹 약 화와 미국 내 정치 상황을 들 수 있다.
우선,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동맹과의 관계 유지보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한다.
대서양 동맹을 제2차 세계대전의 구시대적 관계로 간주하고, 러·우 전쟁과 같은 유럽의 안보 문제는 유럽이 직접 경제와 안보 비용을 부담하라는 입장이다.4)
이에 따라 NATO 중심의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는 더욱 약화되고, 미국은 자국의 부담을 축소하기 위해 유럽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은 자국의 반이민 및 차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발원지인 유럽에서도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5)
유럽의 사례를 통해 최근 각 도시로 확대되던 이민 정책 강경화에 대한 대규모 시위와 반발을 무마하고자 했던 것이다.
향후 트럼프 정부의 대(對)유럽 정책 변화가 유럽 통합을 약화하고 민주주의를 쇠퇴시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우선, 2월 23일 조기 총선에서 20.8%로 사상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한 독일 대안당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웨덴, 프랑스 등 각국에서 지지세를 확대하고 있는 극우정당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극우정당의 반이민·반인권·반유럽통합적 성격이 다시 유럽의 민주주의 가치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더 나아가 미-유럽 갈등은 유럽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2월 26일 미국은 유럽에 대해 25% 보편 관세 부과를 예고했으며, NATO 방위비 분담금 인상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위기에 처한 유럽이 민주주의, 인권 등에 기반한 ‘규범적 권력’6)의 정당성에 이어 대응 역량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4) Clea Caulcutt et. al., “Trump says Putin will accept European peacekeepers in Ukraine”, Politico, 2025.2.24.
5) Ed Kilgore, “Is Trump Building an International Authoritarian Alliance?”, Intelligencer, 2025.2.25.;
6) 심성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정책과 EU의 규범적 권력」, 『유럽연구』, 제40권 제1호, 2022, pp.137-163.
3 유럽 민주주의 위기의 배경과 현황
(1) 유럽의 난민 위기와 반이민 정서의 확산
현재 미국뿐 아니라 유럽 정치에서 최대 쟁점은 이민자와 난민 문제이다.
1997년 발효된 더블린 조약은 난민이 최초 입국한 국가가 망명 및 난민신 청 등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시리아 내전(2011- 현재) 등으로 난민이 급증하면서 중동·아프리카에 인접한 이탈리아·그리스 등 일부 국가의 사회적· 재정적 부담이 가중되었다.
이에 EU는 회원국들 이 난민을 분산·수용할 방안을 추진했고, 2024년 에 이민·난민협약(Pact on Migration and Asylum)을 체결했다.
‘의무적 연대’로 불리는 이 협약은 난민에 대해 보안검사를 강화하고, 1년 가 까이 걸리던 망명 심사절차를 최대 12주로 단축하 며, 무자격 불법 이주민은 즉시 송환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 차원에서 이민 정책의 강경화는 대규모 난 민 유입을 방지하는 한편, 반이민 정서의 확산과 극우 정치세력의 발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 민자들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유럽에서는 기후변 화, 감염병 확산, 경제위기 등 외부 충격에 대해 이 민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선동이 늘어나고, 극우정 당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 파시즘과 직·간접적 연계가 있으며, 현재는 러시 아·중국과의 연계도 의심받고 있다.7)
7) Tara Varma and Sophie Roehse, “Understanding Europe’s turn on migration,” Brookings Institute, October 24, 2024.
(2) 극우의 부상과 유럽 민주주의의 위기
최근 유럽의 주요선거에서 극우정당의 득세가 두드러졌다.
2022년 9월 스웨덴 총선에서 신나치 운동에서 기원한 스웨덴민주당(SD)이 처음으로 제2당의 위치에 올랐고, 같은 달 이탈리아 총선에 서도 극우 이탈리아형제들(Fdl)이 승리하여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총리 체제가 출범했다.
2023년 11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국경통제와 코란 금지를 내건 자유당(PVV)이 승리하여 극우가 주도하는 내각이 구성되었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의석수가 증가한 데 이어, 뒤이은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도 극우 국민연합(RN)이 최다득표를 기록했다.8)
2024년 9월에는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 성향 자유당(FPÖ)이 1당에 올랐다.9)
2024 년 9월 독일 지방선거에서 극우 대안당이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10) 2025년 2월 조기 총선에서도 대안당은 역대 최다의석을 확보하여 제2당 지위에 오르는 등 2000년대 들어 극우정당의 의회 진출은 물론, 연정 참여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8) RN은 1차 투표에서 최다득표를 하였으나, 결선투표에서 나머지 정당 간 연합 공천에 막혀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9) 나치 고위 장교들이 창당을 주도한 FPÖ는 2024년 총선으로 30% 정도 의 의석을 확보했다. 정당 간에 정부구성 협의가 난항을 겪으며 5개월 넘게 최장기 관리내각(caretaker cabinet) 체제가 지속되었다. 2월 27 일 FPÖ를 제외한 정당 간에 정부구성에 잠정 합의하였다.
10) 사상 최초로 튀링겐 주의회 1당이 되었고, 작센과 브란덴부르크 주에 서는 간발의 차로 2위를 차지했다.
극우정당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유럽 주요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하고 있다.
[그림 1]은 법치, 권력기관 간 견제·균형, 시민권 보장 등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측정하는 대표 적 지표인 V-Dem(Varieties of Democracy)을 통해 지난 10년간 변화를 보여준다.
[그림 1] : 생략 (첨부논문파일 참조)
대부분의 국 가가 2013년 대비 2023년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 하며,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했다.
특기할 만한 점 은 같은 기간 유럽 국가들보다 미국의 하락 폭이 더 컸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2기 출범이 유럽 극우세력에게는 기회요 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월 8일 유럽의 극우정당 대표들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트럼프의 슬로건 을 본떠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ake Europe Great Again)라는 모토로 집회를 열었다.
이슬람 과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주를 이룬 집회에서 극우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유럽정치의 주 변부가 아니라 주류가 되었다며 트럼프 재집권을 환영했다.11)
일주일 뒤 밴스의 뮌헨 연설은 이러 한 유럽 극우세력의 기대에 화답하는 모양새였다.
2월 말 미국에서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열 렸는데,12)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도 대거 참여하였다.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는 밴스의 뮌헨 발언을 두둔하는 연설을 하였 다.13)
11) 송진원, 「트럼프 바람 탄 유럽 극우…"이단서 주류로, 우리가 미래"」, 연합뉴스, 2025. 2. 9.
12) CPAC은 매년 2월 열리는 미국 최대 보수정치행사이다.
13) Ali Bianco, “Italy’s Meloni defends Vance’s Munich speech chastising Europe,” Politico, Feb. 22, 2025. 이 행사에서 트럼프 1기 수석전략관을 역임한 배넌(Steven Banon)이 트럼프의 3선 도전을 제안하며 나치식 경례를 하자, 이에 반발하여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바르델라(Jordan Bardella)는 연설을 전격 취소하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가속화하 는 상승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4 나가며
2월 26일 트럼프 대 통령은 취임 후 첫 각료회의 에서 “유럽연합은 미국을 망치려고(screw) 생긴 조 직이고, 여태까지 그런 역할을 잘 해왔다”고 말했다.14)
이 발언은 트럼프의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유럽과의 전통적인 동맹을 부정하고 적대관계도 불사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자국중심주의와 일방주의는 미국·유럽 간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고, 유럽 극우정당이 세를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나라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유연하고 균형잡힌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유럽에 대한 압박은 무역, 안보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유럽은 EU를 중심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등 독자적인 정치·안보 체제 구축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변화된 환경에 맞춰 대유럽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한편, 한미동맹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 퇴행을 막기 위한 정치권의 협력이 필요하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 2024년의 한국은 전년도에 비해 10계단 급락했다.15)
14) Steven Erlanger, "Indifference or Hostility? Trump’s View of European Allies Raises Alarm," New York Times, Feb. 27, 2025.
15) 이지윤, 「계엄 여파에… 韓 민주주의 지수 22→32위 10계단 급락」, 동아일보, 2025. 3. 1.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을 거치며 사회갈등이 심화하고 극단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급변하는 대외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민통합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이견의 조정을 통한 타협적인 정치를 복원하고, 시민권의 보장, 언론 자유와 사법부 독립 등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할 방화벽을 구축하기 위한 제도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이슈와 논점2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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