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Ⅱ. 누가복음 9:51-11:13의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Ⅲ. 누가의 문학적 기법과 영생 내러티브
Ⅳ. 단락 구조를 통한 영생 해석의 전환
Ⅴ. 나가는 말
I.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contextual chiastic structure)와 영생의 신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누가복음 9:51-11:13을 분석하며, 특히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가 구속사적 메시지와 영생의 본질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탐 구한다.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성경 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기독교 윤리와 사랑의 실 천을 강조하는 교훈으로 이해되어 왔다.1
대부분의 해석은 이웃 사랑과 자 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윤리적 교훈에 집중하지만, 이러한 해석들 대부분 율 법사의 영생 내러티브가 놓인 문맥에서 드러내는 신학적 의미를 충분히 반 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누가복음은 신학적 메시지와 정교한 문학적 기법이 결합된 복음서로 평가된다.2
1) Maurice Ryan, “Revisiting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Studies in Christian-Jewish Relations 16, no. 1 (2021): 14-15; Klyne Snodgrass, Stories with Intent: A Comprehensive Guide to the Parables of Jesus (Grand Rapids: Eerdmans, 2008), 357–360; Reimer, Ivana. “Recontextualizing Luke’s Good Samaritan: Moral Philosophy and Parabolic Narrative,” European Journal of Theology 33, no. 2 (2015): 68–81.
2) Loveday Alexander, The Preface to Luke’s Gospel: Literary Convention and Social Context in Luke 1.1-4 and Acts 1.1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112–115; Joel B. Green, The Theology of the Gospel of Luk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25–29.
따라서 단순히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구조를 활용하여 독자가 하나님 나라와 영생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는 단락 적 교차대칭 구조의 중심에 위치하며,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이 내러티브 의 절정에서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즉,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는 율법사의 질문,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눅 10:25)에 대한 응답으로 등장하며, 단순한 윤리적 교훈을 넘어 영생에 대한 구속사적 메시 지를 포함하는 내러티브적 장치로 기능한다.
베일리(Kenneth Bailey)는 누가복음 9:51-19:48의 여행 기사 전체를 교차대칭 구조로 분석하면서, 하나님 나라, 제자도, 종말론 등의 주제를 강조했 다.3
벅월터(Buckwalter) 또한 누가복음 9:51-19:27에서 제자도를 중심으로 교차대칭 구조의 신학적 깊이를 분석한 바 있다.4
이러한 선행 연구를 바 탕으로, 본 논문은, 누가복음 9:51-11:13을 단락에 집중하여,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의 문맥적 연결성과 신학적 메시지를 심화하여 탐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누가복음 9:51-11:13을 여섯 개의 연속 내러티브 문맥(sequential narrative context)으로 보고, 이를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로 전환하여 분석한 다.5
이러한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는 누가복음의 문학적 배경을 고려하여 여섯 개의 단락이 대칭적으로 배열됨으로써 중심 메시지를 강조하는 서사적 패턴을 의미한다.
리차드 프랫(Richard L. Pratt)은 에피소드를 “문맥으로부 터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전체적인 메시지를 형성하는 최소 단위”로 정의하 며, 이러한 단위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 다.6
3) Kenneth E. Bailey,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오광만 역 (고양: 도서출판 이레서원, 2019), 131–142.
4) H. Douglas Buckwalter, “The Hike of Hikes-Luke’s Travel Narrative (Luke 9:51–19:27),” European Journal of Theology 33, no. 2 (2015): 68–81.
5) 본 연구에서는 누가복음 9:51-11:13을 다음 여섯 개의 내러티브 단위로 구분한다. ① 사마리아 주 민 내러티브(눅 9:51-62). ② 칠십인 파송 내러티브(눅 10:1-20). ③ 신적 계시 내러티브(눅 10:21- 24). ④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눅 10:25-37). ⑤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눅 10:38-42). ⑥ 주기도 문 내러티브(눅 11:1-13).
6) Richard L. Pratt, 『구약의 내러티브 해석』 이승진 외 옮김 (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10), 232.
단락별 카이아스틱 구조 분석을 통해, 각 단락이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통해 영생의 본질을 점진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영생의 신학적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누가의 문학적 의도를 조명할 것이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 지 주요 목표를 설정한다.
첫째,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분석을 통해, 영생의 신학적 본질을 규명한다.
둘째, 누가가 사용한 문학적 기법(인접 문맥 연결, 대칭 구조 등)을 바탕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문맥적 해석을 제시한다.
셋째, 선행 연구인 에스겔 34장과의 상호텍스트성으로 접근하여 예수님 을 신적 목자로 제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해석이 단락적 교차대칭 접근과 어떻게 호응하는지를 밝힌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선한 사마리아 인 비유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사적 초대를 중 심으로 영생의 본질을 조명하는 데 기여함을 밝히고자 한다.
II. 누가복음 9:51-11:13의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누가복음 9:51-11:13의 연속 내러티브 문맥을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로 분석한 것은 독창적이다.7
7) 오영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연구: 내러티브 장면 분석 방법으로,” 철학박사학위논문, (개신대 학원대학교, 2023), 197.
그 구조는 단순한 대칭적 배열에 그치지 않고, 질문과 답변이 상호 보완적으로 대응하여 하나의 통합된 메시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A (9:51-62):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의 모습
B (10:1-20): 영생의 질문2 -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C (10:21-24): 영생의 답변1 -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자
C' (10:25-37): 영생의 질문1 -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B' (10:38-42): 영생의 답변2 - 말씀 듣는 것에서 시작됨
A' (11:1-13): 영생 얻기에 합당한 자의 모습
이 구조는 단락 간 문맥적 연결성을 심화시키며, 영생의 신학적 메시지를 점진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8
8) 누가가 이러한 교차대칭 구조를 명시적으로 의도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학문적으로 열려 있는 논의이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신학 적 의도를 따라 배열하였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 사이에 공감되는 사실이다.누가복음 역시 개별 사건들을 무작위로 나열하지 않고, 구속사적 흐름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드러내는 내러티브 전개 를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섯 단락이 하나의 연결된 맥락 안에서 배열되었다는 점 은 기록자의 편집 의도가 반영된 구조적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락 간 교차대칭 구조 (chiasmus)까지 누가가 명시적으로 의도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누가복음이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이해된다면, 이러한 구조는 성령의 인도 아래 나타 난 내러티브의 문학적 조형으로 수용할 수 있으며, 이는 신학적 해석과 충돌되지 않는다. 따라서 누 가의 명시적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의 기록 안에 나타난 문학적 구조를 신학적 메시지 해석에 활 용하는 것은 정당하고 타당한 해석학적 시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2:20-21에서 예수님은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는 질문(A)을 던지고, 이에 대 한 답변으로 “가이사의 것입니다”라는 설명(B)을 중심에 배치한 뒤, “그런 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결론(A') 을 제시한다.
이 구조는 질문과 답변(A와 A')이 대칭적 관계를 이루고, 중심 (B)이 이를 연결하며 메시지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예시는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에서 질문과 답변이 상호 대응하여 구속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내러티브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바탕 으로 본 연구는 누가복음의 문학적 기법을 염두에 두고 영생의 본질을 탐구 하는 데 있어 단락적 질문과 답변의 구조를 활용한다.
1. 여섯 단락의 분석
누가복음 9:51-11:13의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는 각 단락이 독립성을 가 지면서도 상호 연결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구조는 중심 메시지를 효과 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문학적 기법으로 사용되며, 영생에 대한 질문과 답변 을 중심으로 신학적 메시지를 구체화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하나님의 은 혜와 구속사적 초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초대받으며, 영생의 본질이 단 순히 인간의 노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에서 비롯 됨을 강조한다.
1.1. A: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의 모습(눅 9:51-62)
1) 사마리아 주민 내러티브: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태도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과정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마리아 주민들로부 터 배척을 받는다(눅 9:52-56). 이는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깊은 갈 등과 역사적 앙금을 반영하는 장면이다.9
이 본문은 사마리아인의 거부에 도 불구하고 보복을 선택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통 해 복음의 보편적 적용과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은 제 자들에게 제자도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신다.10
9) Joachim Jeremias, The Parables of Jesus, trans. S. H. Hooke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72), 197.
10) Darrell L. Bock, 『누가복음 1』 신지철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7-58.
사마리아 주 민들의 거부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인간의 저항을 상징하며, 이러한 거부가 초대받은 모든 이들에게 열린 영생의 축복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 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이 초대가 특정 집단에 국 한되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이 본문 은 단순한 역사적 갈등이나 개인적 상황을 넘어,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태도의 본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내러티브로 작용한다.
2)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과 신학적 메시지
누가복음 9:51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환점으 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라는 독특한 표현과 함께 전개된다. 여기서 사 용된 아날렙시스(ἀνάληψις)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의 신학적 초점을 담고 있는 중요한 단어로, 예수님의 승천을 암시하는 동시에, 그 이전에 반드 시 이루어져야 할 영생의 본질을 드러내는 사명을 포함하고 있다.11
11) Darrell L. Bock, 『누가복음 2』 신지철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33-34.
이러한 신학적 암시는 이후 이어지는 단락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영생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라는 신학적 흐름의 서곡 역할을 한다.
특히, 누가복음 10장 이 후 등장하는 칠십인 파송 내러티브(B), 신적 계시 내러티브(C),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C'),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B'), 주기도문 내러티브(A')는 하 나의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를 형성하며, 영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진적으 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본문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과 구속 사역의 전환점이라는 기존 연구들의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본 연구는 이 단락이 영생의 신학적 본질을 조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 목한다.
결론적으로, 사마리아에서의 배척과 초대를 거절한 자들의 이야기 는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하 나님의 은혜와 구속사적 초대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영생의 본 질이 단순한 윤리적 실천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온전한 응 답임을 강조한다.
1.2. B: 질문2 -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눅 10:1-20)
1) 칠십인 파송 내러티브: 영생은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
누가복음 10:1-20의 칠십인 파송 내러티브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영생 의 초대를 강조하는 중요한 단락이다.
예수님은 칠십인을 둘씩 보내어 복음 을 전하게 하셨고, 그들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이를 받아들이 는 자들에게는 축복이지만,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따르는 것이었다 (눅 10:9-12).
특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역의 성과를 넘어, 그들의 이름 이 하늘에 기록된 것 자체를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눅 10:20).
이 본문은 단 순히 제자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두 부류의 운명을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이미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에 응답하게 된다.
반면, 복음을 거부한 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않은 영적 현실을 반영하는 존재들로서,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즉, 복음 의 수용 여부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예정에 따른 응답의 과정이다.
이러한 신학적 강조점은 누가복음 전체에서 중요한 주제 로 자리 잡는다.
특히, 칠십인 파송 내러티브는 이후 이어지는 율법사의 영생 질문(눅 10:25)과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연결되며, 영생을 얻는 길을 이해 하는 핵심적인 배경을 제공한다.
영생은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이며, 그 은혜를 받은 자들이 복음 에 응답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본 단락은 시사한다.
2) 영생 질문으로의 전환과 신학적 메시지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귀신들이 항복하는 놀라운 기적 을 경험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는 말씀을 통해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강조하신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 된다는 것은 단순한 영광의 표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 나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목표와 연결된다.12
11) Darrell L. Bock, 『누가복음 2』 신지철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33-34.
귀신들이 항복하는 기적은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하나 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단락은 “하 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며, 영생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도록 유도된다.
이처럼 수사 의문문은 독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설득력을 높이는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작용한다.13
13) 정소연, “학술적 글쓰기와 대중적 글쓰기에 나타난 수사의문문의 양상과 설득효과 비교연구(1),” 「수사학」 13 (2010): 247-253.
누가는 이러한 질문의 여운을 다음 단락(눅 10:21-24)의 신적 계시 내러티브로 연결하여, 영생이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주어짐을 통해 영생의 본질을 점진적으로 부각한다.
이는 독자 들이 영생의 본질이 단순한 윤리적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에 의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도록 이끄는 신학적 장치이다.
1.3. C: 답변1 -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자(눅 10:21-24)
1) 신적 계시 내러티브: 영생은 하늘의 계시가 수여되는 것
“그 때에”(눅 10:21)라는 표현은 이 단락이 영생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 는 전환점임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11:25-27과 평행 본문인 신적 계시 내 러티브는, 마태복음에서는 고라신과 벳새다의 회개하지 않은 이야기 다음 에 배치되어 있다.
마태는 예수님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회개하 지 않은 이유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4
14) 강대훈, 『마태복음 주석 (상)』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760-765.
그러 나 누가는 신적 계시 내러티브를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 하라”(눅 10:20)는 예수님의 말씀 다음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문맥적 배치 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 영생을 의미하며, 동시에 신적 계시가 하 나님의 주권적 선물임을 부각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되도다”(눅 10:23)라고 말씀하신 표현은, 단순한 축복 선언이 아니라, 제자들이 하나님 의 계시를 받은 자들이며, 영생의 길로 초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제자들 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따르는 자들임을 나타 낸다.
즉, 이 복됨은 단순한 행위적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계시에 의해 허락된 영적 특권이다.
결국, 이 단락은 영생이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들에게 허락된 은혜의 결과임을 강 조하며, 영생의 본질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됨을 명확히 드러낸다.
2) 신적 계시 내러티브의 역할과 신학적 메시지
칠십인의 파송 보고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 면서, 영생의 본질이 하늘에 속한 것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어지는 신적 계 시 내러티브(눅 10:21-24)는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님의 기도와 소원을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영생이 인간의 자격이나 노력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누가는 마태복음과 달리,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내러티브(눅 10:17-20) 직 후에 신적 계시 내러티브를 배치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하늘에 이름이 기 록될 수 있는가?”라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러한 서술 구 조는 독자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 게 떠올리게 하며, 이는 곧 이어지는 율법사의 질문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눅 10:25)와 연결되는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작용한다.
결론 적으로, 이러한 문맥적 배치는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의 신학적 메시지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며, 영생의 본질이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하나 님의 사랑에 기초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누가복음이 독자들에게 전달 하고자 하는 영생에 대한 구속사적 관점을 더욱 부각시키며,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영생의 본질을 분명히 보여준다.
1.4. C': 질문1 -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눅 10:25-37)
1)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 사랑의 본질과 수용의 자세
율법사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눅 10:25)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영생을 “어떤 행위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이 해하려는 그의 인식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즉답을 피하시고 율법사가 스스 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신다.
이에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 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율법의 핵심 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는 이 대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라고 추가 질문을 던진다.
이는 사랑의 대상을 명확 히 하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 음을 반영하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강도 만난 자의 입장에서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보다 “누가 사랑을 베풀었는가?”를 강조하신다.
즉, 율법사의 질 문은 사랑의 대상을 특정하려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라는 단어의 의미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제시하며, 율법사가 사랑을 수용하는 태도를 인식하도록 방향을 제시하셨다.
2) 영생의 신학적 메시지: 영생은 구속적 사랑을 받아들인 자에게 주어짐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 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라고 질문하신다.
이 질문은 율법사로 하여금 강도 만난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유도하여, 그가 비유 속에 직접 참여하게 만든다.
만약 율법사가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면, 강도 만난 자의 상 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라는 질문 속에서 계속 맴돌게 된다.
이는 율법사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행위 중심적이 며, 자기 의에 기초한 영생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 신을 강도 만난 자로 인식하고 이를 수용할 때, 그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강도 만난 자의 입장에서 사랑의 대상은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 즉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다.
이는 곧 영생이 인간의 자격이나 선한 행위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적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님은 율법사의 질문(이웃의 범위를 규정하려는 질문)을 넘어, 사랑 의 본질과 그 근거를 제시하신다.
율법사는 비유를 통해 자신이 강도 만난 자 와 같은 상태에 있음을 인식해야 하며, 사랑의 대상은 단순한 윤리적 관계에 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존재에 의해 규정됨을 깨달아야 한 다.
박노식은 하나님 나라를 “강도 만난 자를 감싸며, 오직 자비의 복음을 통 해 가장 보편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낸 그들을 수용하는 나라”로 정의한다.15
15) 박노식, “누가복음 10:25-37 내러티브 읽기,” 「신약논단」 30/02 (2023): 234.
이러한 해석은 앞서 논의된 “영생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눅 10:20)과 “하 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자만이 이를 얻을 수 있음”(눅 10:21-24)과 긴밀히 연 결된다.
결국,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순한 도덕적 교훈을 넘어서, 영생 이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을 받아들인 자에게 주어진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5. B': 답변2 - 말씀 듣는 것에서 시작됨(눅 10:38-42)
1)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 영생은 영접과 말씀 들음으로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는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ὑποδέχομαι)하는 장면 으로 시작된다.
마르다는 손님 접대를 위해 분주히 일하지만, 마리아는 예수 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을 선택한다.
마르다가 마리아의 행동에 불 만을 제기하자, 예수님은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을 택했다고 칭찬하신다.
전통 적인 해석은 이 본문을 행동(마르다)과 말씀 들음(마리아)의 대비로 이해하 며, 신앙적 태도의 차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16
16) 최영숙, “마르다와 마리아, 공간의 분리 담을 넘다 - 누가복음 10:38-42의 새 해석,” 「신약논단」 29/04 (2022), 438-446. 248
최근 연구에서는 사회적 변혁 관점에서 이 본문을 해석하는 시각도 제시되고 있다.17
그러 나 본문을 교차대칭 구조로 분석하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영 생의 출발점으로서 “말씀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영접하다”(ὑποδέχομαι)라는 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두 번 사용되며(눅 10:38, 19:6), 삭개오 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 장면(눅 19:6)과 연결된다.18
삭개오의 사례는 영접이 단순한 환대(hospitality)를 넘어 구속사적 행위임을 보여주 며, 마르다의 영접 또한 구속사적 행위와 연결된다.
삭개오가 자신의 재물을 내려놓음으로써 신앙적 응답을 보인 것처럼, 마리아의 말씀 들음 역시 “영 생에 대한 신앙적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19
17) 최영숙, “마르다와 마리아, 공간의 분리 담을 넘다 - 누가복음 10:38-42의 새 해석,” 458.
18) Frederick W. Dank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1037. Danker에 따르면, 휘포데코마이 (ὑποδέχομαι)는 데코마이(δέχομαι)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닌다. 데코마이는 일반적인 환대나 수용을 의미하며, 누가복음에서도 제자들을 맞이하거나 사람을 환대하는 상황에서 사용되었다(눅 9:11; 10:8; 10:10). 반면, 휘포데코마이는 보다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수용을 의미하며, 신앙과 관련된 응 답의 의미를 내포한다. 특히 누가복음 10:38과 19:6에서 이 단어의 용법은 구원 역사에서 신학적 중 요성을 강조한다.
삭개오의 경우 예수님을 영접한 행동이 구속사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마르다의 영접 또한 예수님을 향한 신앙적 응답과 개방성을 상징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19) Ulrich Busse, “A Study of Luke 10 in Context,” HTS Teologiese Studies/Theological Studies 61, no. 1&2 (2005): 87-89.
이는 영생의 출발점으로서 말씀을 수용하는 본질을 드러낸다.
따라서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는 단순 한 “일과 말씀”의 대비가 아니라, 영생의 시작점으로서 영접과 말씀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러티브로 해석되어야 한다.
2) 영접과 말씀 들음의 신학적 의미
누가는 이 단락을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와 연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영생을 얻는 중요한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이 단락의 맥락에서 영 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주어지는 선물이며, 말씀을 듣는 행위가 영생의 본질적 시작점임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태도는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며 향유를 부어드리는 행동으로 확장된다.
이는 말 씀을 들음으로써 구속사적 사랑을 받아들인 자가, 그 사랑에 헌신적으로 반 응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리아의 기름 부음은 그녀가 구속사적 사랑을 수용한 결과로서, 예수님을 사랑의 대상이자 헌신의 중심으로 드러 내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신앙적 이해를 넘어, 영생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에 대한 응답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말씀 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수용)과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반응)이 긴밀 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영생을 향한 올바른 자세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보봉(François Bovon)은 누가복음 10:25-42을 이중 계명(a-b-b'-a')의 구 조로 이해하며,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하나님 사랑”(눅 10:27a)에 대 한 주석으로 해석한다.20
여기서 a는 하나님 사랑(눅 10:27a), b는 이웃 사랑 (눅 10:27b)이다.
이에 대응하는 b'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 10:30-37)이 며, a'는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10:38-42)이다.
탈버트(Charles H. Talbert) 역시 본문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해석”이라는 주제로 묶어 해 석하며, 윤리적 가르침의 중심에 이 본문이 있음을 지적한다.21
20) 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1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3), 52-64.
21) Charles H. Talbert, Reading Luke: A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Third Gospel (New York: Crossroad, 1982), 120-126.
그러나 본 연 구는 이러한 해석을 보완하여, 누가복음의 전체 문맥 속에서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를 “영생의 시작점”과 관련된 신학적 메시지로 재해석한다.
단락 적 교차대칭 구조에서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B')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 되는 것”을 질문하는 단락(B)에 대한 신학적 답변으로 작용한다.
또한, 하나 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를 강조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 10:30-37)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영생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처럼 말씀을 갈망하며 탐구하는 자세는 인간이 영생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출발점 임을 보여준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행동을 단순히 대립적으로 보기보다, 마 르다는 “영접의 표지”, 마리아는 “영접 후 말씀 청종의 표지”로 이해할 때, 이 두 요소는 영생을 향한 선행 조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22
22)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삶 속으로 영접하고, 그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는 데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누가가 말하는 영생의 길이다. 이처럼 본문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단순히 대비하기보다, 영생을 향한 신앙 여정의 두 국면으로 통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읽어, 마르다를 부정적인 인물로만 인식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는 그 둘의 역할을 통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는 태도가 함께 있을 때 비 로소 영생의 문이 열린다는 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누가는 단지 두 인물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공존하는 두 신앙의 태도—예수님을 삶 속으로 초청하는 환대와, 그분의 말씀 앞에 멈추 어 서는 경청—를 조명하고 있다. 누가는 이 두 내면의 상호작용 속에서 영생으로 이끄는 복음적 여 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 락은 단순한 윤리적 교훈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영 생이 시작됨을 강조하며,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누가복음 내러티브에서 영생의 신학적 중심성을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1.6. A': 영생 얻기에 합당한 자의 특징 (11:1-13)
1) 주기도문 내러티브: 구조와 의미
누가복음 11:1-13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를 말씀하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단락은 영생 얻기 에 합당한 자의 모습을 기도의 내용을 통해 제시하며,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 의 합당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특히, 예수님께 서 강조하시는 기도의 핵심이 무엇인지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에 대한 구조적 패턴을 통해, 기도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영생을 향 한 여정의 중요한 요소임을 드러낸다.
누가복음 11:1-13의 문학적 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23
23) 오영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연구: 내러티브 장면 분석 방법으로,” 198.
a (11:1):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
a' (11:2-13): 예수님의 답변
b (11:2): 첫 번째 기도의 초점 -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구함
c (11:3-4): 두 번째 기도의 초점 - 필요한 양식, 용서, 시험에 대한 간구.
d (11:5-8):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 - 간청의 중요성.
c' (11:9-10): 두번째 기도의 응답: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
b' (11:11-13): 첫 번째 기도의 응답: 성령을 주심
이 구조는 기도의 내용(간구의 대상, b와 c)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b'와 c')이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앙에 배치된 밤 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d)는 간절하고 지속적인 기도의 태도를 강조하며, 영 생에 합당한 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즉, 영생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나 선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 계 속에서 간절하고 신뢰하는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 임을 강조한다.
2) 영생 얻기에 합당한 자들의 모습과 신학적 메시지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간청하는 비유(눅 11:5-10)는 단순히 끊임없는 기 도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은혜와 자 비를 신뢰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이 비유에서 친구가 도움을 주는 이유는 단 순한 친분 때문이 아니라, 간절하고 끈질긴 요청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원리를 설명하는 동시에, 영생을 얻은 자들이 성령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도의 태도를 상징한다. 성령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합 당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두 가지 핵심 초점으로 구성된다.
첫째, 제자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 라를 구하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으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백성이 되는 출발점이다(b').
둘째, 일용할 양식, 죄 사함, 시험에서 보호를 구하는 기도는 단순한 일상적 필요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지속 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도이다.
이는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거룩함을 유지하 며,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삶을 요청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자가 영생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함을 보여준 다.
누가는 이러한 기도의 구조를 통해 영생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의 모습 (A)과 영생에 합당한 자들의 모습(A')을 대조한다.
이 대조는 성령을 받은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자들임 을 강조한다.
결국, 영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성령을 받은 자가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
성령을 받은 자가 영생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함을 보여준 다.
2.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의 신학적 의미
2.1.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개요와 대칭 분석
영생의 초대와 거절로 시작된 누가복음 9:51-11:13은 여섯 단락으로 구 성되어 명확한 교차대칭 구조를 형성한다. 이 구조는 영생에 대한 질문과 답 오영출•단락적 교차대칭 구조와 영생의 신학적 의미 253 변(C-C')을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배열되며, 각 단락은 고유한 신학적 메시 지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중심에 위치한 영생 논의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구속사적 초대를 분명히 드러내며, 영생이 윤리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와 은혜에 기초함을 강조한다. 1) C-C': 영생의 답변1과 질문1 C'(눅 10:25-37) 단락에서는 율법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 까?”라고 질문한다. 이에 앞선 C(눅 10:21-24) 단락에서는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곧 영생을 얻은 자임을 의미한 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며, 이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 계시라는 수단을 통해 제자들에게 선물로 수여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 랑이 계시로 나타났으며, 이를 받은 자들이 영생을 얻게 된다. 따라서 C' 단 락에서 제기된 율법사의 질문(“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에 대한 답변은 C 단락에서 이미 주어진 셈이다. C' 단락의 핵심 비유인 강도 만난 자의 구원은, 단순한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긍 휼(σπλαγχνίζομαι)을 통한 사랑의 수여로 이루어진다.24
24)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현하는 동사로, 예수님의 공감 사역은 계급, 인 종, 성별, 문화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물이 평등하게 주어짐을 보여준다. 김성희, “예수의 공감 사 역-마가복음의 σπλαγχνίζομαι를 중심으로,” 「신약논단」 20/03 (2013): 713-715.
즉, 죽음을 기다리는 강도 만난 자가 생명을 얻는 과정은 영생을 얻는 것과 유비적으로 연결되며, 이는 긍휼의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수여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내적 해석은 영생이 단순한 윤리적 행위나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과 긍휼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임을 강조하는 단락적 해석과 조화를 이룬다.
2) B-B': 영생의 질문2와 답변2
칠십인이 돌아와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 다”라고 보고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셨다(눅 10:20).
여기서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은 곧 그들이 영생을 얻은 자임을 의미한다.
제자들이 본 것은 현상적 차원에서 땅에서 이 루어진 일이지만, 예수님은 이를 하늘의 차원과 연결하여 해석하셨다.
그렇 다면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곧 영생이라면, 이제 땅에서는 “어떻 게 하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 다.
이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눅 10:25)라는 율법사의 질 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질문이다.
따라서 B 단락(눅 10:1-20)은 영생에 대 한 질문 단락으로 기능한다.
반면, B' 단락(눅 10:38-42)에서는 마르다 마리 아 내러티브를 통해, 영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됨 을 보여준다.
즉, B' 단락은 영생에 대한 답변 단락으로 작용하며, “어떻게 하 면 하늘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누 가는 두 번의 영생에 대한 질문을 통해,
첫째, 영생의 궁극적 원인(제일 원인, prima causa)으로 신적 계시를 제시한다.
둘째, 계시를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 을 따르는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 말씀을 듣는 것이 영생의 시작임 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B 단락)이 영생의 궁 극적 차원이라면, 이를 위해 땅에서 첫 발을 놓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 씀을 듣는 것임을 누가는 명확히 보여준다.
3) A-A':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와 합당한 자
A(9:51-62) 단락에서는 사마리아 주민의 거부와 초대받은 자들의 결단 부족 사례를 통해, 영생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의 특징을 제시한다.
이에 대응 되는 A'(11:1-13) 단락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이름 과 나라를 간구하며 성령을 받을 것을 약속받는 장면을 통해, 영생에 합당한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대조는 단순한 태도의 차이가 아니라, 영생의 초대에 대한 두 부류의 반응을 대비시키는 신학적 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나 누가 는 단순히 영생을 얻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구함으로써 성령의 수여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즉, 영생을 소유한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간구하는 지속적인 신앙적 태도를 가져야 하며, 이는 성령을 받는 자리로 인도된다.
누가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구 하는 것이 성령을 수여받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분명히 한다.
2.2.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와 영생의 신학적 의미
독자들이 본문을 해석할 때 자신의 인지적 틀(윤리적 관점, 현대적 도 덕 기준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보니 하우 (Bonnie Howe)는 독자들이 텍스트를 이해할 때 자신의 인지적 틀(cognitive framework)에 따라 해석하며, 이는 종종 본문의 원래 의도와 거리를 두게 만 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25
즉, 독자들은 자신의 윤리적 관점이나 문화적 배 경을 본문에 투영하여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단순한 도덕적 교훈으로 축 소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누가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메시지를 의 도적으로 전달한 저자로서, 그의 문학적 기법과 신학적 의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본문의 신학적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인지적 틀을 넘어서 저자의 본문의 원래 의도(textual intent)를 분석해야 한 다.
양재훈은 “문맥적 읽기는 텍스트 외적 요소를 고려하면서, 전체적인 문 맥 속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텍스 트의 신학적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6
25) Bonnie Howe, Because You Bear This Name: Conceptual Metaphor and the Moral Meaning of 1 Peter (Leiden: Brill, 2006), 91–94.
26) 양재훈, “문맥적 읽기와 성서 번역- 탕자들의 비유(눅 15:11-32) 번역 제안,” 「성경원문연구」 39 (2016): 189.
이러한 문맥적 접근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포함한 누가복음 9:51-11:13의 전체 내 러티브를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속에서 해석하도록 이끈다. 단락적 해석을 통해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생은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며,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둘째, 영 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으로 시작된다.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 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모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셋째, 영생은 하나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하는 삶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의 뜻 을 깨닫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넷째, 누가복음의 각 단 락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 내러티브가 구속사적 메시지를 강화하도 록 설계되었다.
결과적으로, 단락적 해석은 영생이 비록 하나님의 영역에 속 한 것이지만, 마리아처럼 말씀을 청종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성령의 도우심 으로 현재 하나님의 합당한 백성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본 연구에서 제안한 구조가 신뢰할 만한 해석 도구임을 입증하며, 영생은 단 순한 윤리적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임을 강조한다.
III. 누가의 문학적 기법과 영생 내러티브
1. 누가의 문학적 기법: 내러티브의 구조적 아름다움
누가복음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정교한 문학적 기법을 통해 신학 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특히,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는 누가복음 의 특수자료로서, 완결된 플롯을 가진 독립적 내러티브이다.
이 내러티브는 표면적으로 윤리적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누가는 이를 구 약과 무관하게 해석하는 것을 방지하고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신학적 의미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내러티브 간 구조(Inter-Narrative Structure), 상호텍 스트성 그리고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라는 세 가지 문학적 기법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는 단순한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복음 서 전체의 신학적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조적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 다.
특히, 이 내러티브는 구속사적 내러티브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되며, 영생의 신학적 본질을 강조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1.1. 내러티브 간 구조(Inter-Narrative Structure)를 통한 중심 이미지 부각
기존 연구에서 상호 본문성(Intra-textuality)은 동일한 본문 내에서 단어, 개념, 주제, 서사 구조 등을 반복하여 신학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문학적 기 법으로 정의되어 왔다.27
27) Kent D. Palmer, Intratextuality: Exploring the Unconscious of the Text, independent research paper, (2002): 1. 258
그러나 상호 본문성은 동일한 본문 내에서 개념적 반복과 연결성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독립된 두 개 이상의 내러티브 간의 구조적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 에서는 독립된 내러티브들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중심 신학적 이미지를 부 각하는 방식을 “내러티브 간 구조”(Inter-Narrative Structure)라고 명명한다.
즉, 내러티브 간 구조는 단순한 개념적 반복이 아니라, 내러티브 단위 자체를 상호 연결하여 구속사적 메시지를 강화하는 문학적 기법이다.
특히, 누가복 음에서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린 내러티브(눅 7:11-17) 및 베다니에서의 왕위 즉위식 내러티브(눅 19:28-40)와 연결되며, 이를 통해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신 학적 의미가 더욱 심화된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린 내러티브에서 예수 님은 단순한 기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신적 목자로 등장한다. 이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살리는 장면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며,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신적 목자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베다니에서의 왕위 즉위식 내러티브는 예수님 이 자신의 양들을 살리기 위해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베푸는 모습을 부각하 며, 이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메시지를 구속사적 맥락에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누가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중심 초점 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더욱 분명히 한다.28
28) 오영출, “누가의 문학 장치로 접근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기독교철학」 39 (2024): 205-206.
특히, 누가가 내러티브 간 구조 를 활용하여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를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과 연결한 것 은, 에스겔 34장과의 상호텍스트성을 구현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구약 에스겔 34장에서 예언된 신적 목자임을 드러내는 구속사적 메시지가 더욱 강화된다.
1.2. 상호텍스트성을 통한 구약과 연결29
29) 본 논문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윤리적 교훈으로 오해되어온 전통적 해석의 틀을 넘어서고자 하며, 이를 위해 누가가 의도한 내러티브의 신학적 맥락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누가는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에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문맥적 배치,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세 가지 문학적 기법을 정교하게 적용함으로써, 이 내러티브가 단순한 윤리 교훈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상호텍 스트성은 단락의 교차대칭 구조, 그리고 문맥적 전개와 더불어 이 비유가 문학적으로 정교하게 짜 인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구약과의 연 결은 단순한 배경 정보가 아니라, 비유 전체의 신학적 깊이를 강화하는 요소로 기능하며, 그 의미상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적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는 “우리는 이 비유를 너무 단순하게 보 아왔구나”라는 해석자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을 유도하려는 누가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신적 목자를 보내어 상처 입은 양들을 싸매 고(하바쉬, חבש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하바쉬”(싸 매다)는 단순한 물리적 치유가 아니라,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사망을 가져다 주는 깊은 상처의 치료를 의미하며, 신적 목자의 구속 사역과 직접적으로 연 결된다.
누가는 상호텍스트성을 활용하여 에스겔 34장과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연결함으로써,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예 수님은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감 싸는 장면을 묘사하시며, 그 상처를 “트라우마”(τραῦμα)라는 특별한 용어 로 표현하셨다.
이는 단순한 외상(外傷)이 아니라, 영적인 상처, 즉 죄와 사 망의 현실 속에서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고통과 연결된다.30
30) 오영출, “에스겔 34장과 상호텍스트적으로 접근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기독교철학」 41 (2024): 322-324.
특히, 예수 님은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를 설명할 때 “카타데 오”(καταδέω)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이 단어는 칠십인역(LXX)에서 에스 겔 34:16의 “하바쉬”(싸매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즉, 예수님이 비유 속에 서 사용하신 “카타데오”와 “트라우마”라는 표현은 에스겔 34장의 신적 목 자의 치료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이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적 의도 가 반영된 신학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자신이 에스겔 34장에서 예언된 신적 목자임을 계시하셨다. 이는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 할이 단순한 인간적 자비가 아니라, 구약의 신적 목자 예언을 성취하는 구속 적 사랑의 실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강도 만난 자를 구하는 선한 사마리아 인은 단순한 선행의 모델이 아니라, 구약에서 예언된 신적 목자의 역할을 수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단순한 도 덕적 교훈을 넘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은 에스겔 34장의 신적 목자 예언이 선한 사 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자기 계시적 장치로 작용하 며,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구속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신적 목자로 확증된다.
게하드손(Birger Gerhardsson)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에스겔 34장의 신 적 목자 이미지와 연결되며,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를 돌보시는 신적 목자임 을 강조한다고 주장하며, 이 비유가 단순한 윤리적 메시지를 넘어 구속사적 의미를 확장한다고 설명한다.31
31) Birger Gerhardsson, The Good Samaritan - the Good Shepherd (Lund: C. W. K. Gleerup, 1958), 14- 22.
결론적으로, 누가는 상호텍스트성을 활용 하여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신학적 메 시지를 더욱 심화시킨다.
특히, 화자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계시의 도구로 도 입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강도 만난 자를 자비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묘사하며, 이를 통해 영생이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와 자비를 받아들임으로써 주어진다는 영생의 신학적 본질을 강조한다.
1.3. 교차대칭 구조를 통한 본문의 원래 의도 구현
연속된 내러티브가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로 전환되면서, 감추어졌던 영 생의 본질이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드러났다.
누가가 본문 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본문의 원래 의도는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를 통해 확 인되며, 이는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자가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달했음을 강조한다.32
32) 오영출, “에스겔 34장과 상호텍스트적으로 접근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326.
이러한 구조 는 독자들이 영생의 신학적 본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문 학적 기법으로 작용한다.
본 연구는 질문과 답변이 대칭적으로 대응되는 교 차대칭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영생 내러티브가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 라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사적 사랑에 대한 수용적 응답을 강조하는 방식으 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교차대칭 구조는 텍스트의 논리적 일관 성을 유지하면서도 중심 메시지가 강조되도록 돕는 중요한 문학적 기법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본문의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도 록 돕고, 텍스트의 신학적 통일성과 구속사적 흐름을 더욱 공고히 한다.
성일호는 “chiasmus는 단순한 단어 배열을 넘어, 문장의 논리적 흐름과 주제적 초 점을 강조하는 데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33 교차대칭 구조 가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입증하였다.
33) 성일호, “교차대구법의 수사학적 기법,” 「역사와 사회」 37 (2007): 5.
본연구에서 제 안한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는 누가복음 내러티브의 신학적 깊이를 명확히 드러내며,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과 은혜의 메시지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 해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는 내러티브 간 구조와 구 약과의 상호텍스트성을 통합적으로 반영하여, 독자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 획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중요한 문학적 도구로 기능한다.
2. 인접 문맥을 통한 영생의 신학적 메시지
누가복음 9:51-11:13의 연속 내러티브에서 인접 문맥은 단순한 이야기의 배열을 넘어,34 영생의 본질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속한 선물임을 드러 내는 구조적 장치로 작용한다.
34) Tannehill은 누가복음이 단순한 개별 사건들의 나이 아니라, 통일된 서사 구조를 갖춘 작품이 라고 주장한다.이에 대해 Powell은 이러한 통일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내적 연결성, 인물 역할 의 발전, 그리고 일관된 목적성을 제시한다. Mark Allan Powell, What Are They Saying About Luke? (Mahwah: Paulist Press, 1990), 11.
누가는 각 단락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독자 들이 영생이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주제임 을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 성읍에서 예수님의 초대를 거 절하는 장면(눅 9:51-56)은 영생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칠십인 파송 내러티브(눅 10:1-20)는 하나님의 초대가 여전히 유효하 며 이를 전파하는 사명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 두 장면은 영생 의 신학적 의미를 “초대와 거절”이라는 대조적 이미지로 전달하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칠십인의 사역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 를 명확히 드러낸다.
칠십인의 파송에서 제자들이 경험한 기적과 그로 인한 기쁨은 예수님의 가르침,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눅 10:20) 로 이어진다.
이는 영생이 단순히 사역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신적 계시 내러티브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기쁨”과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자의 복됨”이라 는 두 주제를 연결하며, 영생이 인간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은혜에 의해 시작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접 문맥은 독자들에게 영생이 단 순한 윤리적 실천이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와 은 혜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강조한다.
누가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하는 영생의 근원적 의미”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러 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이 러한 독자의 궁금증에 대해, 누가는 율법사의 질문을 내러티브에 배치하여 독자들이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대리 체험하도록 구성한다.
독자는 율법사 를 통해 “영생을 얻는 길”을 묻는 대리 질문자의 역할을 확인하며, 이 질문 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와 이에 대한 응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또한,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는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 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앞선 단락에서 영생이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선물 임을 논의한 맥락을 고려하면, 이 질문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된 영 생을 어떻게 수용하는지를 묻는 것이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강도 만난 자가 자비를 베푸는 사마리아인의 손길을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을 얻는 모습을 통해, 영생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받아들이는 “수용 행위”와 깊 이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연결된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장면은 누가복음에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던 사건을 떠올 리게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상징하며, 이를 구체적 으로 보여주는 것이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모습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태도는 강도 만난 자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 을 받아들이는 장면과 연결되며, 영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 지만 인간의 응답과 수용을 요구한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어지 는 주기도문 내러티브는 영생을 얻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구 하며 성령을 받는 것을 통해 영생에 합당한 자로 세워지도록 권고한다.
이를 통해 영생은 단순한 윤리적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고 성령 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누가는 각 단락 간의 인접 문맥을 통해 독자들에게 영생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속한 선물임 을 강조하며, 이를 수용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믿음과 응답의 책임을 분명 히 한다.
이러한 문맥적 연결은 구속사적 메시지를 심화하며, 영생이 단순한 윤리적 실천이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와 자비를 받아들이 는 여정임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IV. 단락 구조를 통한 영생 해석의 전환
1. 전통적 윤리 해석과 단락적 구속사적 해석의 비교
전통적 해석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윤리적 교훈으로 이해하면서,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러한 접근은 신앙 과 행위의 조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윤리적 해석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인접 문맥과 연결되지 않는 이러한 해석은, 영생의 본질과 영생을 수용하는 자세 를 간과할 위험이 있다.
반면, 단락적 해석은 누가복음 9:51-11:13의 문맥과 구조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영생에 대한 구속사 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영생의 본질이 단순한 도덕적 실천을 넘어,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와 은혜에 기반하고 있음을 분 명히 한다.
단락적 해석은 비유를 독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사 의 질문,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눅 10:25)라는 문맥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예수님이 강조하신 영생의 본질적 요소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2. 신학적 결론과 단락적 해석의 기여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손길을 통해 인간에게 수여되는 선물로, 이는 하늘에 속한 것임을 강조한다.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상처 입은 양 을 치료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으며, 이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구체 적으로 드러난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며, 강도 만난 자는 자비의 손길을 수용하는 인간의 태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영생은 하나 님의 계시와 주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서 시작되며, 이는 말씀에 청 종하고 순종하는 행위를 통해 구체화된다. 말씀을 청종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손길을 인정하며 이에 반 응하는 삶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시작 되고 성취되며, 인간의 구체적 반응과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 다. 본 연구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신학적 및 학문적 기여를 한다.
첫째,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의 제안이다.
영생을 묻는 독자들의 질문에 단순히 “믿음”이라는 신학적 대답을 넘어, 영생이 하늘에 속한 것이지만 말씀 청종 이라는 구체적 수단을 통해 열려 있음을 제안하였다.
이를 통해 영생의 본질 적 신학적 메시지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었다.
둘째, 영생의 신학적 함의의 강 화이다.
단락적 교차대칭 접근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에스겔 34장 과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하며, 이 비유가 영생의 본질과 구속사적 메시지전달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함을 확인하였다.
이는 단락적 해석이 단순 한 문학적 분석이 아니라, 본문이 전달하려는 신학적 초점과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구속사적 초대의 재해석이다.
영생은 단순한 윤 리적 교훈이나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 의 초대이다.
이 초대는 인간이 이를 수용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말씀 에 청종하고 순종함으로써 응답하게 되는 구속사적 행위로 이해된다.
이는 기존의 윤리적·교훈적 접근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이 구속사 적 맥락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추가적으로, 본 연구는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를 통해 영생의 신학적 메시 지를 분석하며, 본문 해석의 정당성과 신학적 메시지의 일관성을 통해 구조 의 적합성을 역으로 입증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문학적 기법으로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도구로 작용 함을 학문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 내러티브의 신학적 깊이를 드러내는 새로운 틀을 제안하며, 문학적 기법의 학문적 활용 가능성을 확장 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단락적 해석을 통해 에스겔 34장과 선한 사마리 아인 비유를 연결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인간의 반응이라는 신학적 메시지를 더욱 풍성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생이라는 선물을 통해 실현되는지를 설명하며, 신 학적 해석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조화롭게 나타나 는지를 보여준다.
V. 나가는 말
본 연구는 누가복음 9:51-11:13의 연속 내러티브를 단락적 교차대칭 구 조로 분석하여, 영생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사적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선물임을 명확히 밝혔다.
이를 통해 영생의 본질이 단순한 윤리적 실천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에서 비롯된 것임을 신학적으로 규명하였다. 누가복음 은 영생을 도덕적 교훈의 차원에서 제한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 속에서 실현되는 사건으로 강조한다.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는 영생이 하 나님의 계시와 사랑이 먼저 주어지고, 인간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지 는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신적 목자로서의 예수 그 리스도의 구속사적 자비가 강도 만난 자에게 먼저 베풀어짐을 나타내며, 영 생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 는 태도에서 시작됨을 강조한다.
본 연구는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를 활용하 여 영생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주어지는 선물임을 밝히고, 내러티브 간 구조 (Inter-Narrative Structure)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과 속죄 사역과의 연관성 을 규명하였다.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에스겔 34장 간의 상호텍스트 성을 연결함으로써 구속사적 메시지의 신학적 깊이를 더욱 확장하였다.
이 를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단순한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신적 목자 로서 예수님의 사역과 연결된 구속사적 초대임을 입증하였다.
더 나아가, 영생은 단순한 미래의 보장이 아니라 현재적 실현의 성격을 가진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표현은 단순한 미래의 영광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변화된 삶을 살 아가는 데서 그 의미를 찾는다.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는 이러한 영생의 출 발점을 상징하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헌신적 행위는 말씀 청종이 가져온 실천적 사랑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는 영생이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구속사적 사건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누가는 영생의 공 동체적 차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구원에 국한되지 않고, 공 동체 속에서 실현된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숙해 가는 여정을 나타내며,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랑이 개인의 구원을 넘어 공동체와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누가복음의 문맥적 구조와 구속사적 메시 지를 통합적으로 탐구함으로써, 기존 비유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생의 신학적 의미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명하였다.
이를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 비 유를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 아닌, 영생과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랑을 중심으 로 하는 신학적 초대로 해석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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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록
본 연구는 누가복음 9:51-11:13을 중심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들 어있는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를 문맥적 관점과 문학적 관점 및 신학적 관 점에서 분석한다. 기존의 전통적 해석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주로 윤 리적 교훈과 이웃 사랑의 본보기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이를 누 가복음 내러티브의 전체 구조 속에서 구속사적 메시지로 재해석하고, 영생 의 신학적 본질을 탐구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 를 중심으로 한 누가복음의 연속 내러티브를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로 변형 하여 분석하며, 이를 통해 영생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상호 호응하며 신학적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본 연구는 내러티브 간 구조(InterNarrative Structure),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그리고 문맥적 내러티브 분석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선한 사 마리아인 비유가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대와 은혜를 기반으로 한 영생의 본질을 전달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또한, 마르다 마리아 내러티브를 통해 영생이 인간의 응답과 말씀 청종을 포함하는 신앙 적 여정임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문맥적 접근과 문학적 기법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누가복음의 신학적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영생의 신학적 본질을 심화한다는 점을 강 조한다. 이를 통해 영생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하 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키워드 : 누가복음 9:51-11:13, 단락적 교차대칭 구조, 영생, 상호텍스트성, 율법사의 영생 내러티브, Inter-Narrative Structure.
Abstract
The Contextual Chiastic Structure and the Theological Meaning of Eternal Life: A Study on Luke 9:51–11:13
Young-chool Oh (Church of the Life of Grace)
This study analyzes the eternal life narrative, including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in Luke 9:51–11:13 from contextual, literary, and theological perspectives. Traditional interpretations have primarily understood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as an ethical lesson and an exemplary model of neighborly love. However, this study reinterprets the parable within the overall structure of Luke’s narrative as a redemptive-historical message and explores the theological essence of eternal life. To achieve this, the study transforms the sequential narratives of Luke into a contextual chiastic structure, revealing how the questions and answers regarding eternal life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reinforce the theological message. In particular, this study integrates Inter-Narrative Structure, Intertextuality, and contextual narrative analysis to demonstrate that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in the Lawyer’s Eternal Life Narrative is not merely an ethical teaching but a portrayal of the divine invitation to eternal life based on God’s grace and redemption. Additionally, through the narrative of Martha and Mary, the study highlights that eternal life involves human response and obedience to God’s word as part of a faith journey. Ultimately, this research underscores that contextual analysis and literary techniques do not conflict but rather function complementarily, thereby reinforcing Luke’s theological message and deepening the understanding of the essence of eternal life. Through this approach, the study seeks to enrich the 272 「기독교철학」 제42호 theological comprehension of eternal life and contribute to the broader discourse on its redemptive-historical significance.
Key words: Contextual Chiastic Structure, Inter-Narrative Structure, Intertextuality, Eternal Life, The Narrative of the Lawyer’s Eternal Life, Luke 9:51–11:13
논문투고일: 2025.03.07 논문심사일: 2025.04.09 게재확정일: 2025.04.23
기독교철학 제42호 (2025)
http://www.scpk.or.kr/download.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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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에서 본 기독교 자연신학의 문제와 비전-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삼위일체 자연신학을 중심으로-/임영동.백석문화大 (0) | 2025.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