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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신의 죽음 신학’ 이후 정치신학 : 제프리 로빈스의 급진 정치신학 연구/최경환.연세大

 I. 서론: ‘신의 죽음 신학’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

II. 후기 세속사회와 종교의 귀환

III. 급진신학에서 급진 정치신학으로

IV. 급진 민주주의로 가는 길

V. 정치신학과 민주주의의 만남

VI. 결론: 새로운 정치신학 상상하기

 

 

I. 서론: ‘신의 죽음 신학’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신의 죽음 신학(Death of God Theology)은 1957년 가브리엘 바하니안(Gabriel Vahanian)이 쓴 『신의 죽음』 (The Death of God)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빌 리 그레함(Billy Graham)은 뉴욕시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5월 15일부터 16주 동안 매일 밤 선교집회를 열었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집회에 참석 했다.1

뉴욕의 십자군은 미국 복음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이후 그레함은 미국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다. 바하니안의 책이 출판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사 주간지 「타임」 지는 신의 죽음 운동을 표지 기사로 삼았다. 당시 이 특집기사는 「타임」지 역사상 가장 많은 부수를 팔았다. 하지만 빌리 그레함의 영향 때문인지 「타 임」지는 불과 3년이 지나지 않아 “하나님이 다시 살아났는가?”라는 제목을 표지에 넣었다. 이후 빌리 그레함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부터 조지 W. 부시 에 이르기까지 거의 50년 동안 미국 대통령의 영적 멘토 역할을 해 왔고, 그 의 영향력은 미국 사회와 문화의 저변까지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2

 

    1) Jeffrey W. Robbins, Radical Theology: A Vision for Chang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6), 143. \

    2) Jeffrey W. Robbins, Radical Theology , 144.

 

더욱이 그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미국 복음주의자들을 일깨워 텅빈 공론장을 가득 채우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만 같았던 신의 죽음 신학은 그 유행 기간이 짧았고, 영향력 역시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신학자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요 란하게 신의 죽음을 떠드는 동안,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복음주의는 전방위 적으로 교회와 정치를 장악했다. 도대체 신의 죽음 신학 이후 몇 년 동안 무 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제프리 로빈스(Jeffrey W. Robbins)에 따르면, 신의  죽음 신학은 종교사회학자들의 세속화 테제와 맞물려서 확산되었는데, 세속 화 테제가 무너지면서 신의 죽음 신학도 동시에 그 힘을 잃었다.

따라서 후 기 세속사회의 등장과 함께 신의 죽음 신학은 급진신학(Radical Theology)으 로 진화해야 하며, 이를 통해 더욱 광범위한 후기 자유주의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 로빈스의 주장이다. 로빈스는 급진신학이 신의 죽음 신학이 남 긴 유산을 이어받으면서도 신의 죽음이라는 한정된 주제에만 얽매이지 말 고, 현대철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그 안에 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3

 

    3) 급진신학의 정의와 쇄신에 관한 내용은 Jeffrey W. Robbins, Radical Theology 서론을 참고하라. 

 

무엇보 다 그동안 급진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정치신학의 중요성을 부각 하고, 왜 급진신학자들이 정치 영역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인 경향을 보였는 지 지적한다.

로빈스는 앞으로 급진신학이 더욱 급진적이고, 더욱 민주적이 고, 더욱 정치적인 신학이 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야 하는지를 제시 한다. 이 글은 급진신학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2세대 급 진신학자에 해당하는 로빈스가 급진신학을 어떤 방식으로 확장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급진신학에 대한 로빈스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촉발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다.

그동안 국내 에 거의 언급된 적이 없었던 급진신학의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로빈스 가 중요하게 언급하는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이 오늘날 민주주의와 어떤 방 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주요하게 사용할 자 료는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를 통해 급진신학의 정치적 전회를 제시한 『급진 민주주의와 정치신학』(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2011)이다.

이 책은 로빈스의 기본적인 이론적 골격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후 에 전개되는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소개될 필요가 있다. 2장과 3장에서 는 신의 죽음 신학이 급속하게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후기 세속사회 의 등장으로 설명하고, 이와 맞물려서 등장한 종교의 귀환 논의를 소개하겠 다.

공적 영역에 종교가 다시 등장하게 된 이유를 소개하고, 이어서 급진신학 의 등장 배경도 같이 설명해 보겠다. 로빈스는 급진신학의 내용을 충분히 공 감하면서도 그동안 급진신학이 정치적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정치신학과의 연계성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여기서는 급진신 학이 급진 정치신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로빈스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4장과 5장에서는 로빈스가 자신의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는 칼 슈미 트와 샹탈 무페, 그리고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사상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로빈스는 칼 슈미트로부터 시작한 정치신학의 문제의식을 계승하 면서도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 다 양한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한다.

칼 슈미트의 초월적 주권 개념이 현대 민주 주의와 어떻게 연동될까를 고민한 로빈스는 샹탈 무페와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정치사상가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로빈스가 주장한 급진 정치신학의 특징을 정리하고, 그가 제시하는 정치신학의 가능 성을 소개한다. 앞으로 급진 정치신학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또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4

 

    4) 익명의 논문 심사자들에게 받은 건설적인 비판, 즉 제프리 로빈스의 정치신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 이라든가, 이러한 논의들이 기독교 신학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밝혀달라는 요구 사 항은 마지막 결론 부분에 추가했다.

귀한 제안을 해준 심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II. 후기 세속사회와 종교의 귀환

 

제프리 로빈스에 따르면 세속화 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의 전략이 었다. 근대 자유주의자들은 공사(公私) 분리를 통해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종교의 자리를 개인의 내면으로 몰아냈다. 이들은 종교 를 단지 어떤 명제들을 인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축소하거나 개인적인 신앙 혹은 신념의 영역으로 환원했다.5

세속화는 결국 자유주의와 근대화 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면서 세속화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었고, 이제는 그 효용성도 끝났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로빈스는 신의 죽음 신학의 몰락과 급진신학의 등장 사 이에는 후기 세속화에 대한 새로운 시대 인식이 있었고, 오늘날 철학자들 사 이에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종교의 귀환(The Return of Religion) 논 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한다.

한때 세속화 이론을 적극 옹호하던 피터 버거(Peter L. Berger)는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고, 이제 현대사회는 후기 세속사회로 접어들었으며, 더는 공 적 영역이 종교와 신앙의 사적 영역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근 대성과 세속화에 대한 다층적 분석은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세속시 대』(The Secular Age)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이제는 대부분 종교사회 학자가 후기 세속사회에 대한 시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6

위르겐 하버마스 (Jürgen Habermans), 호세 카사노바(José Casanova), 탈랄 아사드(Talal Asad) 같은 정치철학자들 역시 후기 세속사회에서 어떻게 종교가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됐는지 연구한다.

근대화와 사회적 분화를 통해 종교적 신념이나 단체 들이 점차 쇠퇴할 것이라 예상했던 모두의 기대를 뒤집고, 전 세계적으로 새 롭게 일어나고 있는 종교의 재등장을 주목한 것이다.7

 

    5) Jeffrey W. Robbins, Radical Theology , 145-146.

    6)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 93-95.   

    7) 물론 이런 현상을 단순히 종교의 부흥이나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이라고 말하기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여전히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하고 있으며, 세속화의 중요한 특징들은 강화되고 있다. 동시에 공적이면서도 전 지구적 신앙이 다양한 방식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사 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세속화에서 후기 세속화로 전이된 것이 아니라, 세속화와 후기 세속화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하버마스를 비롯한 정치사상가들의 종교 담론에 관한 연구로는 졸저,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공공신학과 현대 정치철학의 대화』 (고 양: 도서출판100, 2019), 4장과 김승환, 『공공성과 공동체성: 후기 세속 사회의 공공신학과 급진 정 통주의에 관한 탐구』 (서울: CLC, 2021), 2장과 3장을 참고하라. 

 

후기 세속사회는 공론장에 대한 선입견도 변화시켰다. 그동안 자유주의 공론장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로부터도 초연하게 중립성을 지켜야 한 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공론장은 다양한 욕구와 신념의 각축장이 되어버렸 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인정욕구가 분출하는 공론장은 정치의 근원적인 의지이자 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레인 그레이엄(Elaine Graham)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신앙과 이성, 종교와 세속화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간 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모두 공론장이 당연히 중립적일 것이라 는 잘못된 신화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8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정치 는 철저하게 신학적이고 신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의지의 각축장이다.

이 제 공론장에서 종교의 역할과 기능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도 세속화 이후 신앙공동체가 공론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고, 신 앙의 이름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들은 더욱 증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참여 의 권리가 정당화되고 보호를 받게 됐다.9

세속사회에서 종교가 다시 귀환하고 있다는 현실 진단은 종교사회학 자들뿐 아니라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언급되고 있다.

이러 한 논의에는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뤽 마리옹(Jean-Luc Marion)이나 잔니 바티모(Gianni Vattimo)와 같은 이들뿐 아니라, 그동안 종교에 비판적이었던 위르겐 하버마스를 비롯해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그리고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 같은 이들도 포함된다.10

 

     8) Elaine Graham,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Public Theology in the United Kingdom,” in Contextuality and Intercontextuality in Public Theology , eds., H. Bedford Strohm, F. Höhne and T. Reitmeier (Münster: Lit Verlag, 2013), 131-133.

    9) Elaine Graham,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135.

   10) Ola Sigurdson, “Beyond Secularism? Towards a Post‐Secular Political Theology,” Modern Theology 26.2 (2010): 179-180.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들과 같 은 급진적인 무신론 철학자들에게서 종교적인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날 종교와 신학을 연구하는 이들에 게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학자가 되었다.

도대체 이들이 다시 종교에 관심을 두 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상가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신앙에 기반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디우와 지젝 같은 경우, 자 신들은 강력한 무신론자라고 밝히고, 이글턴의 경우 자신을 불가지론자라 고 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종교에서 새로운 정치적 원천을 발견한다는 점 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세속적 시민은 종교인에게서 종교적 상상력, 이 야기, 직관, 통찰력과 같은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종교인들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담론 속에는 정체된 현상을 뚫고 넘어갈 힘 이 있는데, 세속적인 공론장에서는 그것을 세속적인 언어로 번역해서 사용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실제로 철학자들이 사회 변혁의 아이 디어를 종교적인 이미지에서 빌린 사례를 제시한다.

마르크스는 사회해방 에 대한 아이디어를 칸트가 지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 개념을 세속적인 버전 으로 묘사한 것에서 차용했다.

헤겔의 “실증성”, “소외”, “물화”와 같은 개 념은 유대 기독교 전통에 근거한 개념들이었고, 발터 벤야민의 “회억”(回 憶, Eingedenken) 개념도 최후 심판에 대한 신앙을 세속화한 것이라 할 수 있 다.11

 

  11) Maeve Cooke, “Salvaging and Secularizing the Semantic Contents of Religion: The Limitations of Habermas’s Postmetaphysical Proposal,” International Journal for Philosophy of Religion 60.1-3 (2006), 195.

 

약한 공론장에서는 이런 종교적 통찰과 이미지들이 상호 영향을 받으 면서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세속사회에서도 종교는 끊 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희망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후기 세속사회의 역설은 종교가 부흥하는 듯 보이면서도 제도나 기구로 서의 종교는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헨트 드 브리스(Hent de Vries)는 “만약 종교인은 사라지지만 종교적인 것의 실존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 사회는 후기 세속사회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12

중 요한 것은 종교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내용을 담 아낼 수 있는 무형의 형식이다.

근대화와 세속화가 진전되면서 종교의 내용 은 바뀔 수 있어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형식은 여전히 현대사회를 구 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로빈스의 말처럼 종교와 신학은 세속 화 이후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현대인의 사유와 문화 속에 자리를 잡았다.13

 

  12) Hent de Vries, “Introduction: Before, Around, and Beyond the Theologico-Political,” in Political Theologies: Public Religions in a Post-Secular World, eds. Hent de Vries and Lawrence E. Sullivan (New York: Fordham Univ. Press, 2006), 1.

   13) Jeffrey W. Robbins, Radical Theology , 22.

 

만약 신의 죽음에 관한 논의가 근대화와 세속화의 결 과물이라면, 후기 세속사회에서는 신학의 주제와 방향이 전혀 다른 방식으 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급진신학은 종교의 귀환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현 대 사상가들의 논의를 전유해 새로운 신학의 도약을 꿈꾼다.

 

III. 급진신학에서 급진 정치신학으로

 

후기 세속사회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1970년대 이후에는 “‘신의 죽음’ 의 죽음”(death of the death of God)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당시 포스트모던 신학자들은 후기구조주의 혹은 해체주의 담론을 수용하면서 신학의 새로 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14

 

     14) John D. Caputo and Gianni Vattimo, After the Death of God, ed. Jeffrey W. Robbin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들은 신학을 언어나 담론의 한 형태로 설명 한다.

신학에서 지시하는 대상은 어떤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유사한 담 론과의 차이를 통해 드러날 뿐이다.

대표적인 해체주의 신학자 마크 C. 테일 러(Mark C. Taylor)는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학』(Erring: A Postmodern A/ theology)에서 신의 죽음, 자아의 사라짐, 역사의 종말, 텍스트의 닫힘을 포스트모던 무/신학의 의제로 삼았다.

칼 라스케(Carl Raschke)나 찰스 윈퀴스트 (Charles Winquist) 같은 신학자들도 해체주의 사상을 수용해 신학을 재구성 한다.

그러나 이렇게 포스트모던과 해체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신학 자들은 주로 인식론이나 미학,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로빈스의 분석에 따르면, 어떤 면에서 “포 스트모더니즘과 신의 죽음은 좌파 신학자들과 해방신학 그리고 정치 투쟁 을 완화하거나 무력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15

포스트모던 신학이 신 학적인 측면에서는 급진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급진성 이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1990년 대부터 포스트모던 신학은 더욱 보수적인 신학을 수용하는데, 장-뤽 마리옹 이나 급진정통주의(Radical Orthodoxy) 같은 새로운 신학 운동은 정치에 특 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데리다, 레비나스, 마리옹의 종교철학을 수용한 존 D. 카푸토(John D. Caputo), 메롤드 웨스트폴(Merold Westphal), 리처드 카니(Richard Kearney)와 같은 학자들은 하이데거의 형이 상학 비판에 집중하면서 신학보다는 철학적 작업에 더 관심을 보였다.16

 

     15) Noëlle Vahanian, et al., An Insurrectionist Manifesto: Four New Gospels for a Radical Politic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6), 7.

    16) Noëlle Vahanian, et al., An Insurrectionist Manifesto, 8. 

 

이들 가운데 주목할만한 신학적 흐름을 형성한 학자로는 존 카푸토를 꼽 을 수 있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의 쇠퇴와 신 담론의 해체 속에서 신의 죽음 신학에 기대어 급진신학(Radical Theology)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급 진신학은 하이데거, 레비나스, 데리다와 같은 현대철학자들의 논의를 받아 들이면서 신의 죽음 신학 이후의 신학을 전개하는 신학으로서 오늘날 미국 의 종교철학과 정치신학에서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급진신학의 내 용을 소개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은 아니기에 이들의 주장과 사상을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으나 그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7

 

    17) 카푸토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주장하던 급진신학의 내용을 『급진신학을 찾아서』(In Search of Radical Theology , 2020)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John D. Caputo, In Search of Radical Theology: Expositions, Explorations, Exhortations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20) 서론(1-44)을 요약해서 정리했다.

 

급진신 학은 고정된 신념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행되는 사건으로 작동한다.

불 안정성과 미래에 대한 개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의 신학이라 할 수 있 다. 또한 급진신학은 고정된 신학의 본질을 거부한다. 신학은 하나의 유령 (specter)과 같은 것으로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렇다고 급진신학이 기존의 전 통신학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급진신학은 고백적 신학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작용하는 “내부의 타자”로 존재한다.

이를 통해 고백적 신학 내부의 모순과 다원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급진신학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신학의 해체 또는 약한 신학을 들 수 있다. 현상학적 환원을 통 해 신앙 고백과 해석을 넘어선 어떤 체험 혹은 역사적 순간에 우연히 만났던 사건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신을 존재론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부 름”(call)에 응답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건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언제나 가능한 그 무엇, 혹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그래서 약속되는 것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약속과 부름으로 다가오는 사건은 약한 신을 요청하고, 인간은 여기에 책임 있는 존재로 응답함으로 윤리적 존재가 된다. 마지막으로 급진신학은 예언자적 전통 및 해방신학과 연결되며, 민족 주의, 자본주의,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고 비판적으로 관여한다. 카푸토는 이 러한 특징들이 단순히 기존 종교나 제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서부터 윤리적이고 예언자적인 본질을 되찾고자 하는 근원적, 근본적, 급진 적 시도라고 말한다. 카푸토는 포스트모던 사상가들, 특별히 데리다의 철학을 적극 수용해 사 건의 신학이라든가 약한 신학을 전개하고, 이후에 그 내용을 급진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이는 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게 전개된 신의 죽음 담론 이후에 신학이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한 결과였다.

포 스트모더니즘, 존재신론 비판,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와 같은 사유들이 신학 과 접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제시한 것이다.18

최근 급진신학이 하 나의 대안적인 신학으로 소개되면서 그 안에서도 다양한 갈래와 접합 그리 고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 제프리 로빈스는 급진신학을 정치신학과 연결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로빈스는 오 늘날 정치를 상실한 급진신학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그 원인을 신의 죽음 신학이 자유주의와 결합한 것에서 찾는다.19

급진신학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개념을 상실했고, 신의 죽음이라는 주제가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 가 있는지, 또 자유시장 경제와 어떤 관계에 놓였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급진신학은 개인의 자유를 극찬하느라 정치적 보수주의를 무심코 유 지하거나 정치적 저항의 원동력을 상실하기도 했다.20

 

    18) 존 카푸토의 신학을 존재신론 비판과 연결해서 해석한 글로는 윤동민, “존 카푸토의 (신의) 약함 의 현상학,” 「현상학과 현대철학」 92 (2022), 29-61을 참고하고,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에 대한 연구 로는 김동규, “현상학을 통해 신-담론으로: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에 대한 검토-자니코, 레 비나스, 그리고 마리옹,” 「철학탐구」 46 (2017), 129-174을 참고하라.

   19)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 6-9.       20) 미국의 보수적 공공신학자 리처즈 뉴하우스(Richard John Neuhaus) 역시 공공정책과 공론장에서 종교 담론이 배제되면서 오히려 공론장은 위험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공론장이 도덕적으로 빈공간 으로 남아있으면, 종교를 대신하는 세속 권력이 다시 그 빈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Richard John Neuhaus, The Naked Public Square: Religion and Democracy in America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1986), vii.

 

앞서 언급했듯이 후기 세속사회에서 정치적 공론장은 열망의 각축장이 되었다. 하지만 신의 죽음 신학은 종교, 도덕, 정치, 문화의 영역에서 사람들 의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공동선을 끌어모으는 사회적 에너지를 간과해 버렸 다. 이는 신의 죽음 신학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를 심 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세계적인 금융자본과 규제 없이 확산되는 자유무역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대안적인 이데올로기가 필요한데 급진신학은 이 부분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여기서 로빈스의 급진 정치신학은 두 가지 전략을 취한다.

 첫째, 급진신 학은 정치와 신학이 서로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정치신학의 고전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전 유해야 한다. 칼 슈미트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의회민주주의까지 비판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토대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로빈 스는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발전하기는 했지만, 실 제로 “민주주의가 그 급진적인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자유주의와의 역사적 관계를 끊고 그 자체의 개념적 기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1

 

     21)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78-78.

 

칼 슈미트가 자유주의를 비판한 것은 정당하지만 그가 민주주의까지 비판한 것 은 잘못이라는 분석이다.

 둘째, 오늘날 급진신학은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비판적으로 전유한 급진 민주주의 이론가들의 논의를 빌려 새로운 정치신학 을 제시해야 한다.

샹탈 무페나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주권 에 대한 이해를 “경합주의”(agonism)나 “다중”(multitude)에 대한 논의로 전 환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급진신학과 정치신학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 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로빈스가 칼 슈미트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를 통해 어떻게 급진 민주주의를 신학적으로 수용하는지 소개하도록 하겠 다.

 

IV. 급진 민주주의로 가는 길

 

제프리 로빈스는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에서 칼 슈미트 의 정치신학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그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전유한 여러 학 자를 소개한다.

칼 슈미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를 지지한 법학자로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최근에 다시 그의 사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는 그가 자유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슈 미트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를 해소하려는 자유주의가 삶의 역동성과 생명력 을 빼앗는다고 봤다.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수많은 모순 속에서 삶의 충만함 을 선취하는 것이고, 주권자가 인격적 존재로서 필요한 순간에 결단을 내리 고 새로운 순간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는 모든 정치 문제를 일일이 토론하여 협상 자료로 삼는 것 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진리까지도 토론으로 해소하려 한다. 그 본질은 다음과 같은 기대를 갖고 하는 협상이며 어정쩡함이다.

즉 결 정적 대결, 피비린내 나는 결전을 의회의 토론으로 바꿀 수 있고 영원 한 대화를 통해 영원히 유보상태에 머물 수 있다는 기대 말이다.

자유 주의는 이런 기대를 하면서 수다를 늘어놓는 셈이다.22

슈미트는 공적 토론이나 다양한 의견 교환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자유민주주의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가정은 진리를 의견 교환이 라는 끝나지 않는 미래로 계속해서 유보하기 때문이다.

그는 실현되지 않을 희망을 옹호하고 정치적 삶의 실제를 무시하는 민주주의를 공격한다.

따라 서 근대성과 민주주의는 반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은 예외 상태를 결정하 고, 적과 친구를 결정하는 주체의 판단으로부터 시작한다. 주권의 결정이 궁 극적인 권위이며 법의 기초다.23

 

     22) 칼 슈미트, 『정치신학』, 김항 옮김 (서울: 그린비, 2010), 86.

     23) Francis Schüssler Fiorenza, “Political Theology and the Critique of Modernity: Facing the Challenges of the Present,” Distinktion: Scandinavian Journal of Social Theory 6.1 (2005), 95.

 

오늘날 정치사상가들이 칼 슈미트에게 다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자유민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그의 목소리가 후기 세속사회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유주의적 의회제도는 도덕과 종교를 사적 영역으로 제한시켜 왔고, 공적 영역의 최고 의결권을 가진 의회는 합리적 토의를 통해 대중의 의견을 수용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집단적 정체성보다 개인의 자유에 우선권을 두고,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공동체와 특정 집단의 윤 리적 가치에 근거해서 공론을 만들면 불일치만 나온다는 이유로 다양한 인 정욕구와 삶의 형식들을 배제한 결과, 오히려 사람들은 정치참여의 열정을 상실했다. 한마디로 적이 없는 자유주의, 열망이 사라진 민주주의를 만든 것 이다.

오늘날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벤야민, 아감벤, 데리다, 무페와 같은 사상 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이들은 모두 현대 민주주의의 폐해와 한 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모색한다.

아군과 적군, 친구와 적 을 분명하게 나누면서 법과 질서가 가져다주는 안정성을 중지시키는 법 너 머의 정의를 강조하기도 하고, 근대 국가의 예외 상태를 면밀히 조사해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전락한 인간의 상황을 극명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또 한 절차와 합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경합적 이고 다원적인 급진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24

 

    24) 칼 슈미트 이후 정치신학에 관한 논의로는 김항, 『종말론 사무소: 인간의 운명과 정치적인 것의 자리』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6)과 김성민, 『바울과 현대철학』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을 참 고하라. 

 

여기서 로빈스는 특별히 샹탈 무페(Chantal Mouffe)와 안토니오 네그리 (Antonio Negri)의 정치사상에 주목한다.

샹탈 무페는 『민주주의의 역설』 (The Democratic Paradox)에서 칼 슈미트로부터 시작한 민주주의 비판을 통해 급진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소개한다.

통치자의 주권과 결단을 강조하는 칼 슈미트는 자유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대중 민주주의도 같이 비판한다.

그 가 보기에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국가권력을 최소한도로 축소하고,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을 사회적인 세력에 맡기기 때문에 진정한 인민의 정치적 자각을 막는다.

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로 자연스럽 게 연결되는데, 민주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 가능성에 불안을 느낀 이들 이 평등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비겁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25

칼 슈미트는 자 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충돌하고, 자유주의의 논리가 민주주의에 어 떤 위험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샹탈 무페 역시 칼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 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립불가능 을 모순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주 의와 민주주의를 분리해 이 두 사상의 내재적 갈등을 긍정하는 것이다. 무페 는 슈미트의 통찰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 다.26

무페에 따르면 이 역설은 새로운 정치 형태의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역동성을 드러낸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화와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때,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다.

이 역설을 해소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갈등적 성격과 다원주의의 환 원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정치의 경합적 형식(agonistic form of politics)”을 고민하는 것이다.27

 

     25)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67.

     26)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68. 27)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68. 

 

오로지 그 역설적인 성격을 받아들일 때만, 우리는 현대 민주주의 정 치를 접근하기 어려운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방식으 로 구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은 구성 적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상반된 해석들 사이에서 ‘경합적 대결’(agonistic confrontation)로써 가능하다.28

따라서 무페에게 민주주의는 의견들의 합의나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불 안정한 긴장의 협상일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갈등과 역설을 더욱 증폭 시키는 것이고, 이런 의견의 대립과 경합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구상을 꿈꾸 는 것이다.

이처럼 무페는 정치의 본질을 결단과 대립으로 보는 점에서 칼 슈 미트를 따르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생산적 긴장을 긍 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그와 구분된다.

로빈스는 무페의 이러한 경합 적 민주주의 개념을 적극 수용한다.

하지만 슈미트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 결단과 결정을 말하 는 지점에서 주권에 호소한다.

물론, 슈미트는 단일하고 강력한 주권적 통치 자를 상정하고, 무페는 슈미트의 주권 개념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하려 하지만, 결국 둘 다 정치의 본질은 결단이라는 것에 동의한다.29

 

    28) Chantal Mouffe, The Democratic Paradox , 8-9,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68에서 재인용.

    29)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72. 

 

로빈스는 이 점에서 무페가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주권에 대한 근원적인 재고찰을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을 통해 풀어낸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신자유주 의로 인해 새로운 제국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제국의 가장 중요 한 특징은 국가 주권에 입각한 정치에서 탈국가적 혹은 초국가적 주권 개념 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이 국민국가의 범위 를 뛰어넘어 이제는 “제국의 외부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새로운 세계 질서 를 구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권에 대한 이해 역시 새롭게 재편되었다. 더 이상 국민국가 단위의 정치체제를 전제하고선 주권을 이해할 수 없으며, 단 일한 초월적 주권을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 주권에 대한 논의는 내재적 이고 논쟁을 일으키는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30

이러한 제국 시대에 네그리에게 정치권력은 주권자의 예외적 권력이 아 니라 다수의 구성적 권력에 놓여있다. “다중”은 이러한 다수의 생성적 권력, 즉 민중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권력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다. 또한 “다중”은 국가권력이나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그들 스스로 구성적 힘 에 의해 생산력을 소유한다.

네그리가 “정치적 결정은 언제나 오로지 다중 의 결정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행동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31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말을 빌리자면, “저 항(그리고 그에 따른 위협)은 주권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구성 기반이다. 그러므로 주권의 우선성에 맞서는 저항의 우선성을 세워야 한다.”32

여기서 네그리의 정치신학은 신적 주권을 상징하는 초월적 정치신학이 아니라, 인 민들의 저항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주권, 즉 “다중의 구성 권력에 입 각한 내재적 정치신학”을 보여준다.33

로빈스는 ‘저항하는 다중, 저항하는 주권’ 개념을 통해 내재적 주권에 주목하고, 이러한 내재적 정치신학은 다시 헨트 드 브리스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한다. 드 브리스는 칼 슈미트로부터 물 려받은 정치신학에서 주권 개념을 분리함으로 정치신학의 다원성과 내재성 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앞으로 정치신학은 주권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 어떻게 “자본과 정보, 이민과 이주, 신체와 사상” 같은 사유를 설명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34

 

  30)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82.

  31) Antonio Negri, Time for Revolution, trans. Matteo Mandarini (New York: Continuum, 2003), 236,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73에서 재인용.

  32) Michael Hardt, “Jefferson and Democracy,” American Quarterly 59, no. 1 (March 2007): 59,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83에서 재인용.

  33)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84. 34) Hent de Vries, “Introduction: Before, Around, and Beyond the Theologico-Political,” 27.

 

정치신학은 근본적으로 내재적이지만 그 자체의 생성적 잠재력으로 인해 무한한 가능성과 정치적 잠재력을 드러내야 한다.

로빈스가 제안하는 급진 정치신학은 정치적 공간에서 다양한 개념들과 가치들이 충돌하고 대립하는 열린 체계로서의 공론장을 통해 그 성격이 분 명하게 드러난다.

근대 자유주의 전통이 만들어 놓은 세속주의는 종교에게 그들의 언어를 세속적인 언어로 바꾸라고 계속해서 압박했다.

하지만 이런 압박은 결국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분노를 유발했고, 이들이 광장으로 쏟아 져 나와 텅빈 공론장을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론장에서 종교를 퇴출 하면 민주주의가 활력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로 민주주 의는 참여와 변혁의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35

하지만 민주주의는 다원적 이고 갈등을 증폭시킬 때 오히려 그 기능이 잘 유지된다.

로빈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종교는 사회속에서 하나 의 가능성, 하나의 변혁가능한 힘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 힘을 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힘으로 인식할 때, 민주 주의는 더욱 진일보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은 하나의 획 일적인 힘이 아니라 다양한 주권들이 상생하는 힘으로 작동할 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전통, 공동체, 개인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제공하고, 그들이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내고, 공공정책을 형성할 때, 더욱 급진적인 힘 을 형성할 수 있다.36

 

   35)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90.

   36)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91. 

 

후기 세속사회에서 종교는 공론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 어넣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V. 정치신학과 민주주의의 만남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의 동력을 상실한 공론장을 다시 재활성화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속화를 거치면서 종교는 내면의 안정과 평안을 추 구하는 사적 영역으로 후퇴했고, 정치적 책임에는 무관심했다.

공적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지, 공공성에 대한 비판과 열정은 단순히 형식적인 정당성이 나 절차적 합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들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라든가 서로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외부로 표현될 때, 그때 비로소 정치 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런 정치적 열망을 불 러일으키지 못했다.

히틀러의 이발관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칼 슈미트가 오늘날 정치사상가들에게 다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 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세속화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전통주의와 복고주의 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여기서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포퓰리즘과 대 중 주권을 해석하는 유용한 틀로 다시 소환된 것이다.37

 

    37) 마크 릴라는 진보와 근대성에 대한 정치적 반동은 단순히 무지와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정치적 상상력이 결합된 정교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마크 릴라, 『난파된 정신: 정치적 반동에 관하여』, 석기용 역 (서울: 필로소픽, 2019) 참고.

 

슈미트는 자유주의를 거부함으로써 정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도 거부한 다. 그에게 민주주의의 이상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고, 정치 의 주된 목적은 국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인데, 오늘날 민주주의는 정치 를 상실한 채 도덕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로빈스는 민주주의를 급진적 으로 구성하면 칼 슈미트가 주장하는 정치신학을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단 민주주의가 급진적으로 구성되면, 그것은 정치신학의 대안적 개 념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데, 그것은 결정적으로 그 추진력에 있어서 반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급진 민주주의의 필요하면서도 불 가결한 보충물이 된다.

이것은 현대의 세속화 과정의 도가니를 통과 한 탈세속적 정치신학일 것이며, 동시에 종교가 단순히 위안의 원천 이 아니라 한 사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와 이상을 증명하는 정치적으 로 동원되는 힘으로서 종교의 지속적인 힘을 인식하는 신학이 될 것 이다.38

여기서 로빈스가 구상하는 민주적 정치신학은 “주권적 권력에 대한 경 험과 이해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수렴된 다.39

 

  38)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20.

  39)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90. 382 「기독교철학」 제42호 

 

즉 세속화를 우려해 종교가 강력한 정치적 원동력으로 부활하기를 기 대하는 슈미트적 주권 권력을 우회해서, 어떻게 정치신학이 민주주의를 재 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는 종교를 대화의 방 해자로 취급하고, 반대로 새로운 전통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자체가 윤리적 규범을 가진 전통으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로 빈스는 정치신학과 민주주의를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시 샹 탈 무페와 제프리 스타우트의 방법론을 차용한다.

샹탈 무페는 최근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설명한 글에서 개인의 정체성 과 정치적 헌신을 형성하는 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종교적 차이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경합적 모델(agonistic model)은 종교가 민주주의에 이바지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녀는 종교인들 이 정치 영역에서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 단체가 헌법적 한도 내에서 행동하는 한, 특정 대의에 찬성하거 나 반대하기 위해 정치 영역에 개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많 은 민주화 투쟁이 종교적 동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은 종종 종교 단체의 참여에 의해 강화되었다.40

무페는 종교와 같은 포괄적 견해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말하는 경합적 모델이 다른 모델에 비해 더욱 개방적이며, 종교를 정치 영역에 끌어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고 말한다.

존 롤스나 위 르겐 하버마스와 같은 심의 민주주의 모델(deliberative model)은 공적 영역에 서 합리적 토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종교와 같은 분열적 문제는 사적 영역 으로 밀어낸다.

종교에서 주장하는 바는 특정한 관점을 내포한 열정의 표현 이기 때문에 정치적 심의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하지만 무페가 주장하는 경합적 모델은 “정치적 행동의 정당한 동기로서 종교적 정체성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정치적 영역 밖에 두려고 하지 않는다.”41

시민의 자발적 정치참여와 공동선을 향한 능동적 시민의식은 기존의 자유주의 정치 철학이 주장한 심의 민주주의 모델로는 부족하다. 무페는 다양한 형태의 민 주주의를 구성하려면, 경합적 모델이 더 적절하다고 말하고, 여기에서는 “정 동과 열정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42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 정동 과 열정을 어떻게 동원하고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이 열정을 공적 영역에 편입시키고, 이 열정을 민주주의의 설계 에 동원함으로써 다원주의적 경합을 활성화해야 한다.43

 

   40) Chantal Mouffe, “Religion, Liberal Democracy, and Citizenship,” in Political Theologies: Public Religions in a Post-Secular World, 325.

  41) Chantal Mouffe, “Religion, Liberal Democracy, and Citizenship,” 326.

  42) 샹탈 무페, 『경합들: 갈등과 적대의 세계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기』, 서정연 역 (서울: 난장, 2020), 99.

  43) 샹탈 무페, 『경합들: 갈등과 적대의 세계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기』, 41. 

 

따라서 헌정주의 의 원칙을 존중하는 한에서 종교는 민주적 공론의 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숨길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윤리적, 정치적 가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율되고,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를 고민하는 투쟁의 과정일 뿐이다.44

로빈스는 무페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사례로 프린스턴의 도덕 철 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제프리 스타우트(Jeffrey Stout)의 논의를 소개한다.

 

스타우트는 롤스와 같은 자유주의 전통뿐만 아니라 그가 “신전통주의자 들”(new traditionalists)이라고 부르는 탈자유주의 신학자들에 대해서도 동 일하게 비판한다. 세속적 자유주의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종교는 대화를 방해하 는 요소가 아니다. … 하지만 전통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종교 가 민주적 담론이 붕괴되는 것을 막는 토대도 아니다.45

 

  44) Chantal Mouffe, “Religion, Liberal Democracy, and Citizenship,” 326.

  45) Jeffrey Stout, Democracy and Tradition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 10.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89에서 재인용.

 

스타우트의 전략은 이중적인데, 세속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종교의 교 육적 가치를 옹호하고, 공동체 내에서 종교가 어떻게 동원력을 가져오는지 설명한다. 반면 신전통주의자들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허무주의적인 것으 로 묘사함으로 종교 전통과 민주주의를 대결 구도로 만드는 것을 비판한다. 여기서 스타우트는 민주주의 자체를 하나의 전통으로 인식하자고 제안한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전통이다. 그것은 추론의 특정한 습관, 정치적 토 론에서 존경과 권위에 대한 특정한 태도, 특정한 선과 미덕에 대한 사 랑뿐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행동, 사건, 사람에 대한 감탄, 연민 또는 공포로 반응하는 성향을 심어준다. 이 전통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그 러나 그 윤리적 본질은 롤스의 의미에서 정의 개념에 대한 동의의 문 제라기보다는 지속적인 태도, 관심, 성향, 행동 패턴과 관련된 것이 다.46

스타우트 역시 무페와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과 공동선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적 표현이나 가정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으며, 정치 영역에서 종교의 목소리를 배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세속주의 이데올로기와 민주적 사고 는 분리될 필요가 있으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사회는 다원적일 수밖 에 없다는 것이다. 무페가 주장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다원적이고 갈등이 증 폭될 때 오히려 가장 잘 기능한다. 물론 스타우트가 슈미트와 같은 방식으로 정치신학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는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정당한 위치에 대한 탈세속적 재구성의 모델을 제시한다.”47

사람들의 우려처럼 종교는 공론장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종교적 열망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민주주의가 이룬 합의와 토대에 균 열을 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로빈스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괴롭히는 것이 오 히려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열망은 억제 되는 것보다 중재되는 것이 더 낫다.

그러므로 급진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 전통, 공동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를 제공하고, 그들의 열망이 맘껏 경합 을 벌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48

 

   46) Jeffrey Stout, Democracy and Tradition , 3.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89에서 재인용.

  47)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90.

  48)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91.

 

VI. 결론: 새로운 정치신학 상상하기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것은 정치에서 “초월성의 요소를 회복하는 것”이었다.49 18세기까지만 해도 신학적이고 49)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74. 최경환•신의 죽음 신학’ 이후 정치신학 385 형이상학적인 사고방식이 모든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19세기에 이르면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제도가 바뀌고,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등 장하기 시작한다. 슈미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옛 영광을 회복하길 원했고, 강력한 주권자가 통치하는 국가를 통해 그 영광을 재현하려 했다. 그는 자유 주의의 몰락과 근대적 정치 권력의 정당성이 위기를 겪으면서 이 모든 문제 를 해결할 수 있는 단일한 권력, 즉 신적 주권자를 앞세운 초월론적 정치신학 을 내세웠다. 로빈스는 이러한 칼 슈미트의 초월적 신 개념과 주권에 대한 강 한 집착을 비판하면서, 내재적이면서도 민주주의를 더욱 급진적으로 사유하 는 정치신학을 구상한다.

그는 하나의 권력을 다중적 권력으로 분산시키면 서 “구성적 권력의 다원성과 경쟁적 영역들”이 새로운 정치신학이 될 수 있 다고 믿었다.50

신성한 권력과 주권이 나누어지고 쪼개져 그 힘이 다중으로 전환되고, 다중은 새로운 네트워크 권력을 형성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진다. 이 제는 “주권 없는 정치신학”을 통해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신학을 구성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빈스는 샹탈 무페의 급진 민주주의를 통해 새로운 정치신학의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다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 개념을 통해 내재적 정치신학의 가능성을 본다. 그가 제시하는 급진 정 치신학은 초월적 권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다중의 결정 에 의해 도래한다.

공동의 삶 속에 내재한 생성적 힘은 주권적 권력에 저항하 고, “인류 자신의 창조적 능력과 정치적 힘을 긍정한다.”51

 

   50)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81.

   51)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91. 

 

다중이 담지하고 있는 내재적 에너지와 의지가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창발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로빈스의 주장이다. 로빈스는 오 늘날과 같이 약탈적 자본주의의 위협과 다국적 기업의 폭력,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와 에너지 위기, 그리고 국가 시스템의 붕괴 같은 초국적 위기의 상황에서 정치신학은 “인민의 공통된 삶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조정하고” 정치 기획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52

로빈스의 급진 정치신학은 칼 슈미트로부터 시작된 정치신학의 기본 아 이디어를 차용하고, 그 위에 여러 정치사상가들의 논의를 선별적으로 수용 하면서 정동과 열망의 정치신학, 저항하는 다중의 정치신학, 경합적이고 내 재적인 주권의 정치신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로빈스의 급진 정치 신학은 구체적인 내용이나 신학적 개념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치신학의 구성 적 배경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에 국한될 수 있다. 위르겐 몰트만이나 요 한 밥티스트 메츠와 같은 기존 정치신학자들이 전통적인 신학의 주제를 활 용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도출했다면, 로빈스는 오히려 역으로 현대의 선도적인 정치사상가들의 논의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재구성하는 방 식으로 정치신학을 전개한다. 따라서 그의 정치신학에는 기존에 등장하는 신학의 주요 개념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규범적인 명제나 신학적 언명 도 제시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로빈스의 급진 정치신학은 신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일반 정치사상의 논의 속에서 종교 가 차지하는 위치를 새롭게 규명했다고 볼 수 있다.53

 

    52)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83.

    53) 실제로 급진신학을 연구하는 종교철학자들은 자신의 소속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로빈스 역시 신학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종교학자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강하다. 이러한 고심은 John D. Caputo, In Search of Radical Theology: Expositions, Explorations, Exhortations에서 잘 드러난 다.

 

따라서 로빈스의 정치 신학이 기존 신학 담론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보다, 그의 논의 가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고 찰하는 것이 더 유의미할 것이다. 그의 급진 정치신학은 종교적 열망이 민주 주의와 양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명하고, 다양한 이론적 근거를 통해 그 가 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과 방법론을 기독교 신앙과 어떤 방식 으로 접목하고 구체적으로 연결할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로빈스는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에서 세속화에 대한 급진 신학의 비판으로 시작을 했는데, 마지막에서 다시 존 카푸토의 급진신학을 언급함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카푸토의 약한 신학 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주권 없는 신”(God without sovereignty)을 통한 메 시아적 정치를 언급한다.54

메시아적 존재는 권력이나 배제에 저항하고, 가 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연대와 메시아적 공동체를 이 룬다. 카푸토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상상 력이라고 말한다.

 

신이 주권의 존재-신-정치적 건물이라는 견고한 근거로 인식되는 것 이 아니라, 차이, 주변적인 것, 타자, 소외된 사람들과 체계적으로 연 결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성소의 긴 옷이 아니라 벌거벗은 자, 우리 가 운데 가장 작은 자, 가난한 자, 아나윔, 약탈당하고 짓밟힌 자(암 8:4), 전복적으로 “혁명적인” 충동이라고 가정해 본다면?55

 

    54)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74.

   55) John D. Caputo, The Weakness of God: A theology of the Even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06), 34,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75에서 재인용. 388 「기독교철학」 제42호 

 

주권 없는 신은 이처럼 신의 죽음을 계기로 생겨난 탈형이상학적 신학과 나약한 신학으로 연결된다.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가정 가운데 정치신학을 구상한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바뀔까? 분명 초월적인 존재이자 주권적 권력을 가진 신을 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푸토가 말하는 약한 신은 바로 그 약함을 통해 역동성을 드러낸다. 새로운 정치신학은 신의 주권적 권력을 배경 삼아 신학적 승리주의를 외치던 자들 에 대한 저항이다. 로빈스는 앞으로의 정치신학은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죽 음을 잊지 않고, 그와 같이 잊혀지고, 남겨지고, 배신당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56

권력자의 주권에 저항하고, 인류의 창조적 능력과 정치 적 힘을 긍정하는 것이 로빈스가 꿈꾸는 정치적 비전이다. 정치를 위한 새로 운 대안적 공간과 시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중의 내적 역량 에서부터 발산되는 구성적 권력이다. 결국 로빈스가 말하는 급진 정치신학의 비전은 저 너머의 세상이나 다가 올 세상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세계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기대하는 것이다.57

 

   56) Jeffrey W. Robbins, Radical Democracy and Political Theology , 177.

   57) Jeffrey W. Robbins, Radical Theology , 35.

 

지금의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대체하거나 교환하는 것 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을 긍정하고 그 변화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 변화는 이미 다중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열망과 경 합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정치의 근거는 초월론적 주권이 아니 라 변화를 꿈꾸는 다중의 열망과 경합 속에 존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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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록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신의 죽음 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급진 신학은 후기구조주의와 해체주의 담론을 수용하며 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 시했다.

이 신학 운동은 신의 죽음, 자아의 소멸, 역사의 종말, 포스트모더니 즘과 같은 주제를 신학의 중요한 의제로 삼았다.

하지만 급진신학은 후기 세 속사회에 종교가 다시 부흥하는 현상과 종교의 정치참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했다.

제프리 로빈스는 급진신학의 비판적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현대 정치 철학, 특히 칼 슈미트, 샹탈 무페, 안토니오 네그리의 사상을 전유 하면서 종교가 긴급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분석 한다.

로빈스는 이러한 사상가들의 개념을 활용해 민주주의와 주권의 관계 를 재검토하는 급진 정치신학을 제안한다.

그는 다원적이고 갈등적인 민주 주의 비전을 수용함으로써 주권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 다중의 정치 적 주권을 강조한다.

이 글은 정치신학이 초월적인 권위보다는 내재적이고 변혁을 일으키는 힘에 초점을 맞춰 더욱 급진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의 도전, 특히 후기 세속사회에 급진 정치신 학은 권력과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더 잘 대응하고, 적절한 신학적 틀을 재구 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키워드: 신의 죽음, 정치신학, 급진 민주주의, 주권, 다중, 약한 신학

 

 

Abstract 

Political Theology After the ‘The Death of God Theology’ : A Study of Jeffrey Robbins’ Radical Political Theology

Kyoung-Hwan Choi(Yonsei University, Ph.D. student)

Radical theology, which critically inherited the ‘The Death of God Theology’ that emerged in the United States in the 1960s, presented a new direction for theology by accepting poststructuralism and deconstructionist discourse. This theological movement took themes such as the death of God, the extinction of the self, the end of history, and postmodernism as important theological agendas. However, radical theology failed to seriously reflect on the phenomenon of the revival of religion in the late secular society and 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religion. Jeffrey Robbins shares the critical concerns of radical theolog y and analyzes how religion can solve urgent social and political problems by monopolizing the ideas of modern political philosophy, especially Carl Schmitt, Chantal Mouffe, and Antonio Negri. Robbins proposes a radical political theology that re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democracy and sovereignty by utilizing the concepts of these thinkers. By accepting a pluralistic and agonistic model of democracy, he emphasizes the political sovereignty of the multitude beyond the traditional concept of sovereignty. This article argues that political theology should be more radically democratized, focusing on immanent and transformative power rather than transcendent authority. In doing so, it argues that radical political theology can better respond to the challenges of contemporary, especially postsecular, dynamics of democracy, and reconstruct an appropriate theological framework. Key words : The death of God, political theology, radical democracy, sovereignty, multitude, weak theology

 

논문투고일: 2025.02.10 논문심사일: 2025.04.08 게재확정일: 2025.04.23

「기독교철학」 제42호

‘신의 죽음 신학’ 이후 정치신학 제프리 로빈스의 급진 정치신학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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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doi.org/10.23291/jcp.2025..42.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