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II. 시적 이미지의 현상학과 상상력의 힘
III. 가능성의 세계
IV. 활빈당의 상상력과 가능성의 세계
V. 나가는 말
I. 들어가는 말
이 연구의 목적은 바슐라르와 리쾨르의 철학에서 상상력의 힘과 가능성 을 꿈꾸는 인간 개념을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시적 이미지’와 ‘살아 있는 은유’라는 주요 개념을 통해 이 두 프랑스 철학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 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될 ‘가능성의 세계’라는 공통된 지향점은 이 연구 후반부에 보게 될 조선 후기 활빈당의 상상력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해석에 일정 부분 적용될 것이다.
상상력이나 가능성을 꿈꾸는 행위는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보면 ‘가 능태(dynamis)’로써 인간 행동에 도전적 힘을 제공하며, 의미 영역에 머물 지 않고 실천 영역으로 나아가게 하며, 궁극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현실태 (energeia)’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상상력은 개인과 집단의 상상력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리쾨르의 『텍스트에서 행동으로(1986)』 제3부(이데올로기, 유토피아, 정치)에서 볼 수 있듯이 상상력은 은유와 의미 단계를 넘어서서 사회적 상상력으로 확장 되며, 이 사회적 상상력은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이든 유토피아적이든 새로 운 차원에서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인이 된다.1
그래서 리쾨르는 인 간 행위와 상상력의 상관관계 연구에서 “상상력이 없으면 행동도 없다(pas d’action sans imagination)”2 고 단언한 바가 있다.
또한, 사회적 상상력은 문학적 상상력과 결부하여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 본 연구의 또 다른 전제이다.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는 사회적 상상력의 두 표현”3 이라는 리쾨르의 말처럼, 문학적 상상력도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유토피아적 측면 모두를 내포한다.
1) Ricoeur, P., Du texte à l’action. Essai d’herméneutique II, Seuil, 1986, 379-392 참조.
2) Ricoeur, P., Du texte à l’action. Essai d’herméneutique II, 224.
3) Ricoeur, P., Du texte à l’action. Essai d’herméneutique II, 379.
예를 들어,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은 율도국(栗島國)으로 대표되는 이상 사회나 이상 국가만을 묘사하지 않고, 사 회적 부패와 척박한 민중의 현실도 묘사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기획투사로서 의 유토피아와 현실 비판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두 양태를 잘 보여준다.
리쾨르처럼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한다면, 상상 력과 가능성에 관한 이 연구 역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혁신적 대안을 제안하려는 노력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허균의 홍길동이나 활빈당은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여 새로운 세상을 이 루고자 했던 혁신적 사상’의 실행자로 이해할 수 있는데, 동학농민전쟁 이후 어떻게 현실 세계의 활빈당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는가를 고찰함으로써 이들 의 상상력이 어떻게 가능성의 세계와 만나 현실로 표출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I. 시적 이미지의 현상학과 상상력의 힘
바슐라르는 초기 저작 『과학적 정신의 형성(1938)』에서 이성적으로 사 고할 권리와 사고의 즐거움을 옹호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후기 저작들에서 창작 활동과 시적 공상의 권리 역시 주장한다.
그렇다면 ‘바슐라르는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가졌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 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어떻게 이성과 상상력을 통합할 수 있었는가?’ 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의 이와 같은 비밀을 밝히기 전에, 우리는 잠 시 『공간의 시학(1958)』에 명시된 시적 상상력에 대한 그의 현상학에 익숙 해지도록 노력해 보자.
『공간의 시학』에서 바슐라르는 한편으로는 시적 이미지의 주관성에 대 한 탐구,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이 꿈꾸는 방식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
후 자를 다시 설명하면, 어떻게 위대한 시인이 시적 이미지를 다른 영혼에 전 달하는지에 관한 탐구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미지의 풍부함과 힘, 그리 고 이미지의 통주관성(transsubjectivité)에 대한 의미”4 를 꿰뚫고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바슐라르가 즐겨 사용한 ‘통주관성’ 개념에 주목해 보자. 왜 그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é)’이나 ‘상호성 또는 대인관계 (interpersonnalité)’ 개념보다 통주관성 개념을 선호할까?
이 물음은 바슐라르와 관계 철학자들(이를테면 마틴 부버나 프랑시스 자크 등) 5 사이의 근본 적인 차이로 귀결된다.
상호주관성이나 상호성 개념에 중점을 두는 부버는 ‘나-너(je-tu)’의 순수한 관계를 강조하고, 자크는 말하는 주체 사이의 관계 를 강조한다.
반면에 바슐라르는 통주관성 개념으로 하나의 시적 의식이 다 른 의식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언어나 의사소통 행위가 전자에게 원초적이라면, 시적 행위가 후자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어 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비록 말하는 주체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가 바슐라 르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을지라도, 주체들 각자의 열정을 나누는 데 있어 서 언어가 지닌 중요한 역할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바슐라르의 언어 문제에 좀 더 집중하면, 사회생활에서 언어의 기능에 대한 베르그손의 부정적 평가와 거리가 있음을 보게 된다.
베르그손 철학에서 사회적 언어의 요구들은 표층적 자아를 상징화하고 굴절시킴으로써 의식이 심층적 자아와 순수 지속을 직관하지 못하게 막는다.
반면 인식론의 철학 자 바슐라르는 언어의 가치 있는 역할에 공감한다.
이처럼 과학에 걸맞은 인식론적 개념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그가 노년에는 시 철학자로서 시적 이미지와 언어의 상관성에 주목했던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6
4)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PUF, coll. ‘Quadrige’, 1992, 3.
5) 전종윤, 「대화철학과 대화주의-마틴 부버와 프랑시스 자크를 중심으로」, 『해석학연구』 제25집, 2010, 1-22 참조.
6)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7: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는 명상할 수 없다.”
그의 철학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한편 과학적 언어가 정확한 의미를 가져야 함을 강조하 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시적 언어가 “기의적 언어보다 조금 더 높은 단 계”7 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슐라르는 베르그손의 입장을 비판하며 “언어-도구 논증을 버리고 언어-현실 논증을 채택하는 미시적 베르그손주의는 언어의 실제 삶에 관한 많은 문서를 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8 이라고 주장한다.
바 슐라르에 따르면 베르그손의 오류는 시적 언어의 역동적인 힘을 잊은 데서 비롯된다.
이원론9 에 갇힌 베르그손은 자신을 심층적 자아와 표층적 자아 라는 상반된 두 개의 자아로 규정한다.
전자는 의식과 직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반면, 후자는 언어와 이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베르그손 철학에서 시적 언어의 자리는 직관 개념이 차지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으리라.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보자.
바슐라르의 ‘통주관성’ 개념은 전통적 지 식과 학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다시 말해, “상식의 모든 장벽, 모든 현명한 생각”10은 우리가 한 영혼에서 다른 영혼으로 시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소위 ‘통주관성’을 인정하지 못하게 막는다.
과연 왜일까?
바슐라르에 따르면 비 판 정신은 “상상력의 원시성”11을 파괴하고, 현명한 생각은 일시적이고 특 이하며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의 출 현은 우리가 이러한 요소들에 의존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7)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0.
8)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0.
9) 유명한 이원론으로 알려진 베르그송은 두 극성 사이의 변증법적 이동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예 를 들어, 심층적 자아는 표층적 자아와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자아의 이 가지 특성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화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베르그손 철학에 비해 바슐라르의 철학은 변증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의 철학에서 합리성과 상상력의 변증법을 상상할 수 있었다.
10)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3 : “이 유일하고 일시적인 사건, 단 하나의 시적 이미지의 출 현이 어떻게 상식의 모든 장벽, 모든 현명한 생각, 움직이지 않는 행복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혼, 다 른 마음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반응할 수 있는가?”
11)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0.
이는 상상의 세계는 이성적 노력, 과학적 사고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시 적 영역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과학적 접근 방법을 버려야 한다.12
대신 시적 이미지를 환영하기 위해서는 몽상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이미지는 마음, 영 혼, 그 실재에 파악된 인간 존재의 직접적인 산물로서 의식에 나타나기 때문 이다.”13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시적 이미지가 우리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바슐라르는 시적 이미지가 형성되는 개인의 의식에 초점을 맞춘 다.
즉, 주관성은 시적 행위의 기원을 이루는 요소이다.
의식과 영혼의 ‘개념 들’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이 기원은 과학적 사고에 의해 객관적으로 결정 될 수 없다.
사실 상상력의 통주관성 덕분에 우리는 다른 주관성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문학 작품, 특히 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수많은 주관적 경험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는 것은 독자에게는 부차 적인 일이다.
독서 행위는 우리에게 “책을 만든 사람의 작품에 참여하는 듯 한 착각”14을 주지만, 독자의 수용 행위는 작가(또는 시인)의 창작 행위와 같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학 작품이나 시를 창작하는 법을 배우려면 좋은 독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독자로서 우리는 바슐라르가 상상력을 어떻게 구상하는가에 관해서 그 의 책에서 보게 된다.
『공간의 시학』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공간의 이미지, 특히 ‘행복한’ 공간에 관한 것이다.
바슐라르는 자신의 작업에 ‘토포필리아(tophophilia, topophilie)’, 즉 특정 장소에 대한 애착이라 는 이름을 붙였다.15
12)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 “과학 철학의 기본 주제를 중심으로 모든 생각을 형성한 철 학자, 현대 과학의 성장하는 합리주의의 축인 능동적 합리주의의 축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따라온 철학자는 시적 상상력이 제기하는 문제를 연구하려면 자신의 지식을 잊고 철학적 연구의 모든 습 관을 깨뜨려야 한다”(강조는 필자의 것).
13)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2.
14)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38.
15)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7: “그들[우리의 앙케트들]은 소유 공간, 반대 세력으로부터 방어되는 공간, 사랑받는 공간의 인간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가 말하는 토포필리아(場所愛)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집이다.
하지만 단순한 집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이고, 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실제 집 을 통해 우리는 상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집은 인간의 꿈이 가장 먼저 펼쳐지는 장소이다.
한편으로는 이미지의 모태이며, 다른 한편으 로는 꿈을 꾸도록 격려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집은 위대 한 요람”16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살던 집을 상상하는 것은 과거에 안주한 것을, 이 집의 존재와 연 결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어릴 적 살던 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
때때로 그 기억이 어둡기도 하고 때때로 선명하기도 하다.
기억이 선명 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억이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 이 바로 우리가 경험한 추억들이다.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새롭고 그림 같 은 방식으로”17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상상은 개인의 행위이다.
상상을 통해 개인의 의식은 잊힌 세월을 초월하여 생생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으며, 아주 작은 세부 사항을 묘사하고 그리거나 심지어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18
16)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26.
17)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5.
18)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31: “나 혼자만이 지난 세기의 내 추억들 속에서, 그 독특한 내 음—받침 망 위에서 말라 가는 포도알들의 내음을 나 혼자만을 위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깊은 벽 장을, 열 수 있는 것이다. 포도알의 내음! 설명의 가능성의 한계에 있는 그 내음을 맡기 위해서는 여 간 많이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이다.
하지만 상상력은 단순히 회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투사적 경험으로 이끈다.
한마디로 상상력은 새로 운 상상, 새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새롭고 끊임없는 상상력 덕분에 우 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된다.
그런데 소중한 삶이 반드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풍 요로운 삶은 우리에게 창조적 상상력을 억누르고 모든 시적 책임을 포기하 도록 부추기곤 한다.
소중한 삶을 위해서는 오히려 겸손하고 고독한 삶을 선택해야 한다.
먼저 겸손한 삶이란 “빈곤의 영광”19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헐 벗은 몽상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독의 삶이란 곧 은둔자의 삶을 의미한다. 은둔자는 신과 함께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한다.
조용 한 침묵 속에서 그는 신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오두막에 머물며 창문 을 통해 신이 창조한 찬란한 자연을 관조한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다음과 같 이 우리에게 충고한다.
“지상의 낙원에서 실제로 살기 위해서는 지상의 낙원을 잃어야 하고, 그 이미지의 현실에서, 모든 열정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승화 속에서 그것을 경험해야 한다.”20
그렇다면 바슐라르에게서 무소유의 기쁨을 배워야 할까?
은자의 오두막 에 살면서 소유에 대한 걱정 없이 멋진 풍경을 관조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비록 우리는 독자에 불과하지만, 상상력의 현상학자가 창조한 시적 이미지 를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한다는 것은 시적 이미지를 창조하 는 것이며,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명하는 행위이다.21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바슐라르에게서 진정한 상상력의 미덕을 배울 수 있으리 라!
바슐라르는 백일몽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의 낯 섦”22을 직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조언한다.
상상력은 우리를 낯 선 세계로 이끈다.
즉, 상상력은 “신선함, 그 자체의 활동”23으로 우리를 매 번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19)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46.
20)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47. Cf.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69: “어디에나 있 지만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 집, 그것이 꿈꾸는 집의 모토이다. 마지막 집에서는 실제 집과 마찬가지 로 생활의 꿈이 제한된다. 항상 다른 곳에 대한 꿈을 열어 두어야 한다.”
21) Cf.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58: “이미지가 새로워지면 세상도 새로워진다.”
22)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29.
23)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29.
이를 위해 한편으로 화석화된 습관을 거부하고 평 범한 일상을 과감히 쫓아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 라도 새로운 상황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시인의 순수함을 공유하면서 이 세상 앞에서 항상 ‘경이로움에 대한 자각’을 유지해 야 한다.
III. 가능성의 세계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서 우리는 “상상하는 것이 항상 사는 것보 다 더 크다”24라는 놀라운 문장을 읽는다.
물론 이 문장은 많은 것을 시사하 지만, 그중 상상력의 힘을 인식하도록 독려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바슐라르는 현실에 대한 이미지의 초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상상의 이미지는 현실의 검증을 받지 않는다”25.
현실은 실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이미지는 이러한 감각적 한계 안에 갇혀 있지 않는다.
이미지는 현실 너머의 것을 창조하고 비현실을 가능성의 통로로 만든다.
이 런 의미에서 창조적 상상력의 이미지는 세상의 새로운 측면, 현실을 보는 새 로운 방식,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게 한다.
한마디로, 상 상한다는 것은 삶의 감각을 창조하고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바슐라르에게 상상력의 힘은 리쾨르가 확립한 ‘살아있는 은유(la métaphore vive)’의 ‘휴리스틱한 힘(la force heuristique)’26과 직접적으로 연 관되어 있다.
24)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90.
25)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89.
26) 휴리스틱스 또는 유리스틱스(고대 그리스어 εὑρίσκω, “내가 발견하다”)는 불완전한 지식에서 문 제를 해결함으로써 “발명하고 발견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러한 유형의 분석은 제한된 시간 내 에 수용 가능한 솔루션을 도출한다. 이는 최적의 솔루션과는 다를 수 있다.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eman)에 따르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불완전 하지만 적절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절차이 다. (https://fr.wikipedia.org/wiki/Heuristique 참조)
바슐라르는 은유 개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미지에 대 한 그의 정의는 리쾨르의 살아있는 은유 개념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이미지와 살아있는 은유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바슐라르는 상상력의 현상학에서 ‘은유’ 개념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리쾨르의 해석학에서 은유는 중요한 개념이며, 세상 을 살만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다.
바슐라르에게 상상력은 시적 이미지의 창조이며, 시인이 창조한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의 영혼과 양심을 정화한다 고 말한다.
시적 이미지는 일시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깊이 새겨져 있다.
상상력의 현상학자는 이미지를
“존재의 현상, 말하는 존재의 구체적인 현상 중 하나”27
라고 간주하지만, 그의 눈에 은유는
“깊고 다양한 실제 뿌 리가 없는 [...] 조작된 이미지”28에 불과하다.
즉, 그는 이미지와 은유 사이 에 근본적인 대립이 있다고 본다.
이미지는 시적 가치가 있는 반면에 은유는 미묘하고 때로는 모호한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상에 불과하기에 가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은유는 ‘일시적인 표현’으로 피상 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에, 은유는 ‘가끔’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슐라르가 은유를 평가절하한 것은 다소 놀랄만한 일이다.
그에 게 특이한 이미지는 인간 정신의 응축으로 연구의 대상이 될 만큼 밀도가 높 은 현상으로 보이지만, 은유는 그에 비해 동일한 정신적 밀도를 갖지 못한 단 지 표현에 불과하다.
바슐라르의 이런 관점은 ‘그러한(tel)’과 ‘처럼(comme)’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처럼’이라는 단어는 모방을 의미할 뿐이며, 은유의 개념과 동일한 현상학적 불명예를 함의한다.
‘처럼’과는 대조적으로 ‘그 러한’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게 유용해 보인다.
“몽상을 꿈꾸는 바로 그러한 주체가 되는 것”29은 의미 있는 일이다.
27)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80.
28)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79.
29)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115(강조는 필자의 것).
다시 말해, ‘그러한’은 위대한 시인들이 창조한 시적 이미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렬한 열망’을 함의한다.30
독자는 시 작품을 읽고 다시 읽음으로써 작 가가 겪었던 시적 경험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이라는 단어는 독자가 작가의 시적 경험, 감정 및 애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감히 ‘공동 저자(co-auteur)’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내포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지의 통주관성 덕분에 가능하다. 바슐라르의 관점과 달리 리쾨르의 은유 개념은 의미론과 해석학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결합한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은유는 수사학적 과 정이다. 물론 은유와 수사학의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리쾨르의 은유 개 념은 고전 수사학 분야로 축소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리쾨르 철학에는 수사 학에서 의미론으로, 그리고 의미론에서 해석학으로의 전환이 있기 때문이 고, 이러한 전환을 통해 그의 은유 개념의 정의가 점점 더 풍부해졌기 때문이 다.
고전 수사학에서 은유는 ‘(대상)지시 단위(unité de référence)’31를 지정 하기 위해 “담론의 문채들 가운데 하나의 낱말로 분류”32되었고, 의미론적 관점에서 은유는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내 마음은 호수여. 그대 노 저어 오오’라는 은유적 문장을 예로 들어 보 자. 이 은유적 표현을 통해 화자는 한편으로는 수신자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표현하고 싶어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함의를 생산하고자 한다.33
30) Cf.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p. 115: “하지만 현상학자의 계획은 더 야심 차다. 그 는 이미지의 위대한 몽상가들이 살아온 그러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Mais les projets d’un phénoménologue sont plus ambitieux : il veut vivre tel que les grands rêveurs d’images ont vécu.)”
31)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Seuil, 1975, 7.
32)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7(강조는 필자의 것).
33) 은유는 순전히 수사학적 목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은유가 지시하는 이미지가 일상적인 언어 사용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화자의 마음에 호소력을 발휘한다. 또한 은유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 하는 역할을 하는데 화자는 이를 활용하여 다른 현실을 묘사하기도 한다.
주지하듯이 ‘호수’라는 은유는 특정한 의미를 함의는 데, 그것은 그의 마음이 항상 수신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는 수신자에게는 이상 하게 보일 수 있지만, 화자가 말하는 것과 유사한 지시를 불러일으키는 의미론적 혁신을 가져온다.
즉, 화자는 자신의 마음이 호수처럼 넓고 평화롭고 포 근하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의미론적 혁신을 만들어낸다.
은유의 세 번째 이자 마지막 단계는 해석학적 관점인데, 이 단계에서 은유는 현실을 재정의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휴리스틱한 힘으로 등장하며 독자적인 지시 기능을 지 닌다.
다시 말해, 은유의 간접적인 지시 기능은 일상 언어나 과학 언어의 직 접적인 지시 기능과는 다르다.
후자는 직접적·서술적 언어의 일부이지만, 전 자는 언어의 객관화 기능을 초월하여 언어 외적 실재에 도달한다.
이런 의미 에서 은유의 시적 지시 문제는 논리적 일관성과 경험적 검증의 문제로 환원 될 수 없다.
은유는 지시 단위, 의미론적 혁신, 이중적 지시, 현실의 재기술, ‘…처럼 보다(le voir-comme)’ 등과 같은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은유의 특징 중 특히 ‘…처럼 보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리쾨르에게 은유의 본질 적인 특징일 뿐만 아니라 바슐라르의 이미지와도 일치하는 특징이기 때문이 다.
리쾨르에 따르면 ‘…처럼 보다’는 “의미와 이미지를 하나로 묶어주는 직 관적인 관계”34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에 따르면 ‘…처럼 보다’ 개념은 이미지와 의미를 연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호한 어떤 형태를 표현하고 싶을 때 “나는 이것을 본다” 또는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본다”라고 말 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이것을 다음과 같이 본다”라는 것은 “이 이 미지를 가진다”라는 뜻이다.35
34)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269.
35)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269.
36)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269.
즉, 비트겐슈타인의 ‘…처럼 보다’는 상상 의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처럼 보다’는 ‘그림적 사고(a picture thinking)’로 고려되는데, 이는 ‘언어의 그림적 힘’을 입증한다.36
리쾨르에게 ‘…처럼 보다’는 반은 생각이고 반은 경험이기에, 그것을 경험이자 행위로 파악한다. 먼저 ‘…처럼 보다’는 경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이미지들의 내재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리고 그것은 행위이다.
왜냐하면 “은유적 의미에 대한 상상의 개입”37을 다 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처럼 보다’는 문학 작품의 은유적 이미지를 파악 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리쾨르는 “그러므로 독서 행위에서 실행되는 ‘…처 럼 보다’는 언어적 의미와 회화적 풍부함 사이의 연결을 보장한다”38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처럼 보다’는 성공 또는 실패에 노출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강 요되거나 진부한 은유를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지만, 살아있는 은유 를 발견하게 되면 의미론적 혁신을 창출하는 힘 때문에 그것을 환영하고 그 것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다.
“은유를 통해 혁신은 적합하지 않은 속성을 통 해 새로운 의미적 적합성을 생산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39
그렇다고 ‘…처럼 보다’ 개념만으로는 ‘살아있는 은유’를 특징짓기는 불 충분하다.
이 개념은 시적 언어의 지시 기능과 관련하여 “…처럼 있다(être comme)” 개념과의 상관적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처럼 있다’ 개념의 용법은 무엇인가?
리쾨르에 따르면 ‘…처럼 있다’ 개념은 한편으로 “용어들 사이의 비교 용어”40이며, 다른 한편으로 “동사에 포함되며, 그 동 사가 수식하는 힘”41이다.
37)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270.
38)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270.
39) Ricoeur, P., Temps et récit I, L’intrigue et le récit historique, Seuil, 1983, 11.
40)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12.
41)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12.
다시 말해 ‘…처럼 있다’ 개념은 언어와 세계 사 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힘이며,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이다.
이를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은유가 지닌 특성의 변화에 대해 살 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전 수사학에서 은유는 ‘지시 단위’를 의미하고, 의미론적 관점에서는 ‘무례하고 기괴한 예측’이 된다.
해석학적 관점에서 은유는 마침내 모든 휴리스틱한 힘, 곧 현실을 재정의하는 힘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세 번째 수준의 은유가 특히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무엇 일까?
바슐라르에 따르면 은유의 이러한 특성은 상상력의 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은유는 시의 실타래를 하나로 엮어주기 때문에 시에서 중요한 요 소가 된다.
그래서 리쾨르는 “각각의 은유는 축소된 시”42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은유적 기능이자 특성은 ‘…처럼 보다’의 영역에 국한 된다.
즉, ‘…처럼 보다’는 의미와 이미지 사이의 직관적인 연결에서 비롯된 다.
두 번째 수준의 은유와 달리 세 번째 수준의 은유는 ‘…처럼 있다’의 개 념에 해당하며, 이는 ‘…처럼 보다’의 개념과 상관적이다.
리쾨르에 따르면, “‘…처럼 있다’는 것은 ‘있다’와 ‘있지 않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있었고 이 것은 있지 않았다.”43
즉, ‘…처럼 있다’는 관계적 의미와 실존적 의미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처럼 있다’는 지시적 측면과 존재론적 측 면 모두로 특징지어진다.
그렇다고 이 개념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 다.
오히려 ‘있다’와 ‘있지 않다’ 사이의 긴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긴장은 의미의 전달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은유적 언표행위에 의미의 새로운 지평 을 여는 힘을 부여한다.
따라서 ‘…처럼 있다’ 개념을 통해 은유의 세 번째 단계는 은유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은유적 진술의 지시적 차원을 발견한다. 지시적 차원 은 “언어 외적 현실”44에 도달한다.
그 까닭은 한편으로 은유적 발화는 “직 접적인 묘사가 불가능한 현실”45을 재기술하고, 다른 한편으로 은유적 지시 는 “현실의 양상, 특성 및 가치를 언어 안으로 가져오기”46 때문이다.
42) Ricoeur, P., Du texte à l’action. Essai d’herméneutique II, 20.
43)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88.
44) Ricoeur, P., Du texte à l’action. Essai d’herméneutique II, 23.
45) Ricoeur, P., Temps et récit I, L’intrigue et le récit historique, 13.
46) Ricoeur, P., Temps et récit I, L’intrigue et le récit historique, 13.
따라서 은유적 표현은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역동적인 비전에 대한 접근”47을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리쾨르는 살아있는 은유를 “이중 지시”48라고 규 정하는데, 이는 “의미의 이익”49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즉, “의미의 이익과 지시의 이익”50 모두를 가져온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리쾨르는 아리스토텔 레스 철학에 빚진다.
리쾨르는 “존재 의미들에 대한 사변적 회복에서 지시의 존재론적 설명의 열쇠”51를 찾는다.
47)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76.
48)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76.
49)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76.
50)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76.
51)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89.
52)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08.
53)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391.
그는 존재의 다의성이라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논지를 받아들여 “은유적 언표행위의 지시는 행위와 힘으로서의 존재를 작동시킨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존재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학 과 윤리 사이에 교차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행위와 힘의 존 재론은 은유적 지시를 정의할 수 있게 해준다.
시인은 이러한 존재 개념을 사 용하여 현실을 예술 작품으로 보게 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비극 작가 는 “신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삶을 보도록”52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 로써 작가의 의지에 따라 우리의 현실은 “거대한 인공물처럼 눈앞에 나타나 게”53 된다.
이런 방식으로 살아있는 은유는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불러일 으켜서 현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궁극적으로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 로 만들어 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슐라르의 이미지는 거주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
즉, 바슐라르에 따르면 거주 공간에 대한 친밀한 이미지는 전 세계로 확 장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리쾨르에서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거주 가능한 공간을 늘리는 것이 이 두 철학자의 공통 목표이다.
우리는 이를 ‘가능성의 세계’의 지향점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시 말해, 바슐라르와 리쾨르는 가능성의 사상가이며, 그들이 내세우는 이미지와 살아있는 은유는 칸트적 의미에서 생산적 상상력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의 세계를 창 조하는 데 있어서 생산적 상상력의 역할은 필수 불가결인 요소이다.
결론적으로 바슐라르의 상상력 개념은 리쾨르의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리쾨르의 상상력 개념은 현실을 다시 그리는 ‘휴리스틱한 힘’으 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힘은 개인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역도 다 시 그리는 힘이다.
즉, 유토피아적 관점을 지닌 생산적 상상력은 새로운 사회 적 열망을 투영함으로써 오늘날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개인의 영역에 서는 창조의 원천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등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이 대목에서 리쾨르의 상상력과 가능성의 세계 개념과 그의 ‘부활 신앙’ 과의 연계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헤겔을 계승하여 ‘부활은 물리적 육체가 아닌 다른 육체를 갖는 것’이요 ‘부활은 역사적 육체를 얻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사회적 상상력 측면에서 ‘가능성의 세계’는 역사적 전통으로 확립되고 계승됨으로써 공동체에서 죽음을 넘어서 부활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삶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라는 부활 신앙—그것은 신이 부여한 생명을 경외하는 일이며 죽음의 순간까지 살아있고자 하는 일이다—을 피력함으로 써 그가 제시하는 상상력이나 가능성의 세계는 죽음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자세를 함의한다.
즉, 그는 “죽음 앞에 선 삶은 위대한 삶”54이라 고 강조하면서 죽음의 순간까지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의 자세가 곧 가 능성의 세계이자 살만한 세계를 꿈꾸는 태도라고 본 것이다.
54) 폴 리쾨르,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변광배·전종윤 옮김, 그린비, 2012, 270.
“저는 헤겔을 계승해 기독교 공동체—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육체가 된 공동체—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부활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부 활은 물리적 육체가 아닌 다른 육체를 갖는 것입니다. 즉 부활은 역사 적 육체를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한다 해서 제가 완전히 이단에 속하는 것일까요?”55
“부활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에서 삶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이 나의 내세인 타인 속에서 수평적으로 연장된 다는 의미와 ‘신의 기억’ 속에서 수직적으로 스스로를 초월한다는 의 미가 그것입니다.”56
리쾨르는 죽음의 순간에 신께 이렇게 고백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나 님, 제가 죽을 때, 저를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57
‘정의로운 제도들 가운데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위하여 좋은 삶을 추구하고자’58 죽음의 순간까 지 애쓴 그가 한 말이 함의하는 바는 첫째, 신께 모든 것을 내맡김이며, 둘째, 자신의 존재 욕망과 실존하려는 노력을 타인들과 살아 있는 자들에게 넘김 이다.59
55) 폴 리쾨르,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283.
56) 폴 리쾨르,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298.
57) 폴 리쾨르,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293.
58) Ricoeur, P., Soi-même comme un autre, 202.
59) 폴 리쾨르,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293 참조.
IV. 활빈당(活貧黨)의 상상력과 가능성의 세계
세계사를 읽어보면 동서양 공통으로 역사적 전환기가 몇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세 봉건 사회가 해체되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던 시기를 하나의 전환기로 본다면, 도적이나 화적 혹은 의적의 활동이 두드러 진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중세 사회의 해체기에 상징적 의적의 대표적 인물로 서양에서는 로빈 후드를, 조선에서는 홍길동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전환기에 왜 유독 의적이 많이 출현했을까?
다시 말해 전환기의 의적을 탄생시킨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었고, 누가 과연 의적의 출현을 요구 했던 것일까?60
조선의 역사로 국한하여 이 문제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19세기는 역사적 전환기였고, 중세 사회가 해체되는 격변의 시기였다.
이때 “상품화폐경제와 농민층 분해가 가속화되면서 국가권력과 지주층의 농민 수탈, 자연재해, 농 촌 과잉 인구 등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수많은 빈농”61이 발생했다.62
빈 곤과 배고픔에 고통받던 이들은 소작농과 단순 농업노동자로 전락하거나 유 민으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876년 개항 이후 일제 침탈기와 일제 식민지시기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무엇보다 조 선의 3대 빈민층이자 특수세민(特殊細民)이라 불린 춘궁민(春窮民)과 화 전민(火田民), 그리고 토막민(土幕民)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생겨났다.63
국가의 무능력한 방기, 지주의 수탈, 그리고 일제의 악랄한 침략행위 때 문에 농사지을 터전을 잃고 빈곤화된 농민 상당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생존마저 위협받는 극악한 상황에 부닥치자 급기야는 도적이 되거나 화적 집단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를 ‘화적의 시대’라 부르게 되었는데, “화적이 ‘없는 날이 없고 없는 곳이 없다’라고 표현된 정도”64였다.
60)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김영식 외, 『조선의 멋진 신세계』, 서해문집, 2017, 9-35 참조.
61)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11.
62) 변주승, 「조선후기 유민정책 연구」, 『민족문화연구』 제34호, 2001, 51-86 참조; 변주승은 이 논문 에서 농민층의 광범위한 유망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탐색하는 의적(특히 활빈당) 출 현의 간접적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농민층의 流亡 현상이 전시 기에 비해 더욱 잦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조선후기 유민 발생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농업생산력의 발달은 농민층의 분화를 가져와 빈 농층과 몰락농민층이 양산되었다. 그리고 廣作 경영의 성행과 인구증가는 이들의 경작지 확보를 더욱 어렵게 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과중한 부세 부담은 빈농층과 몰락농민층의 유망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빈번한 자연재해는 이들의 유망현상을 더욱 확대시켰다.” (변주승, 「조선후기 유 민정책 연구」, 51)
63) 전종윤, 「제3자의 문제와 토막민(土幕民조): 리쾨르와 레비나스 철학을 중심으로」, 『기독교 철 학』 제35호, 2022, 257-291 참조.
64)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13.
명화적(明火賊)이라 불린 화적은 지배층의 언어였고, 빈민의 입장이나 ‘의적’ 자신의 처지에서는 구빈(救貧)을 목적으로 하는 활빈당(活貧黨)이 었다.
억압과 수탈에 저항하여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목적 으로 삼았던 조선 후기의 활빈당은 허균의 소설에서 유래한 전설 같은 인물 홍길동과 활빈당을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맹감역이 이끄는 활빈당 이 1902년 12월경 충청북도 회인에 사는 부자 정인원에 돈을 요구하면서 보 낸 격문”65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경기 감악 이하 오천칠백일흔 두 명 활빈류다. 옛날 고래지풍으로 길동 선생 이후로, 이칠성, 그 후로는 맹 감역이니, 편답팔도뿐 아니라 열국에도 편답하고 이제 궁궁(弓弓)에 거하 노라. 우리도 막비국은(莫非國運)이요 천하를 얻은 후에는 이 허물을 면할 사.”66
이처럼 소설 속 홍길동과 활빈당을 계승한다는 것은 우리가 앞서 고찰한 바처럼 바슐라르의 시적 이미지와 리쾨르의 살아있는 은유를 통한 새로운 세계를 발명하는 행위이자 현실을 새롭게 그림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는 행 위이다.
허균의 소설을 실현 불가능한 공상적 이미지로 축소하고 현실을 재 구성하는 힘과 무관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1900-1906년 경의 활빈당 활동 역시 무의미한 것이자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게 된다.
“(…) 韓末 活貧黨 활 동은 소설이 독자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친 보기 드문 실례라는 점에서 주 목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 문학은 인간을 재현할 뿐 아니라 형성하기 도 하며 그것은 한 사회의 변화에도 작용한다.”67
65)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33.
66) 「활빈당발영」,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32-33에서 재인용(강조는 필자의 것).
67) 장양수, 「방각본 <홍길동전>이 한말 민중운동에 미친 영향」, 『국어국문학』 제112호, 1994, 171(169-190).
이와 같이 소설이 제공하 는 시적 이미지와 살아있는 은유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이자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활빈당과 조선 말에 실재했던 활빈당 사이에는 다 음의 <표 1>에서 보듯이 분명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었다.
<표 1> 홍길동과 활빈당 비교68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허균의 소설 속 활빈당과 홍길동이 신분 차별 격파에 주목했다면, 조선 말(1900~1906) 활빈당은 빈부 격차와 지배층의 수탈에 대항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민중운동의 한 형태로 보는 역사학자들의 시각이 적지 않다.
먼저 활빈당에 관한 연구의 선구자 오세창은 활빈당 활동이 1900년 2월경 충청도 지역에서 시작하여 경기, 강원, 영남, 호남으로 파급되었다고 소개한 다.
특히 활빈당의 선언과 강령 등을 분석해 활빈당 투쟁의 목적을 동학혁명 의 혁명적 모토를 계승한 반봉건·반제국주의 투쟁이었다고 본다.69
그리고 강재언은 활빈당을 농민집단의 한 부류로 보았고, 이들의 지향점을 민족적 이고 계급적 요구에 대한 실현으로 분석한다.70
그 외에 박찬승은 조선후기 반봉건 투쟁이 동학농민전쟁(1984)을 거쳐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였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71
68)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34.
69) 오세창, 「활빈당고(1900-1904)」, 『사학연구』 제21호, 1969, 259-280 참조.
70) 강재언, 「활빈당투쟁과 그 사상」, 『근대사상사연구』, 한울, 1983 참조.
71) 박찬승,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동학농민전쟁·항조·활빈당』, 경인문화사, 2008, 401- 354 ,459 참조.
“조선의 사회·경제가 외래 자본주의 체제하에 예속되는 것을 저지하고, 또 그같은 외래 자본주의체제에 종속·변용되면서도 여전히 강고하게 잔존하는 봉건적 사회·경제체제를 변혁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제 위에서 전개된 민중운동들 가운데 하나가 1900~1906년경의 이 른바 ‘활빈당’ 운동이다.”72
특히 박찬승의 연구는 ‘대한제국기의 활빈당의 활동과 지도부’에 관한 소중한 자료를 제공한다.73
이렇듯 허균의 소설 속 상상의 세계를 현실에서 실현하기를 꿈꿨던 활빈 당은 기존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전복을 위한 투쟁이었고, 수탈과 압제로 고 통받는 빈민층으로 내몰린 ‘제3자’74의 사회변혁 운동이었다.
물론 부호와 관아를 대상으로 했던 무력에 의한 약탈 등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즉, 활빈당 이 아무리 좋은 명분75을 내세웠다지만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측면을 무 시할 수는 없었다.
다음은
“1902년 12월 충청도 회인의 부자 정인원에게 보 내진 「활빈당발영」이 대장소(대장소) 맹감역(孟監役)의 이름으로 발령된 것”76
으로서 이런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세 가지를 잘한다. 돈 안 주면 집에 불을 지르고, 유부녀을 겁탈하고, 무덤을 파헤친다.”77
72) 박찬승,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동학농민전쟁·항조·활빈당』, 401.
73) 박찬승은 대한제국기 활빈당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근거 자료로 당시의 “『황성신문(皇城新 聞)』·『매천야록(梅泉野錄)』·『속음청사(續陰晴史)』, 그리고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 使館記錄)』·『한반도(韓半島)』 등을 활용”하였지만, 본인은 “1890~1906년 사이 활빈당운동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되어 체포된 자들(약 200명)에 관한 재판기록들이 규장각에 소장된 『사범품보 (司法稟報)』 128책”의 공초(供招)기록들을 통해 활빈당운동의 진면목을 탐색했음을 밝힌다. 박 찬승,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동학농민전쟁·항조·활빈당』, 403.
74) 조선 후기와 일제 식민지기의 3대 빈민층—춘궁민(혹은 세궁민), 화전민, 토막민—을 제3자로 보 고, 그들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과거 에-의해-영향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에 빚진 존재로서 부끄러운 전통일지라도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포함하여 그들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후손의 책무이 다.
75) 활빈당의 명분(모토, 구호)
76) 박찬승,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동학농민전쟁·항조·활빈당』, 419.
77) 「활빈당발영」, 배항섭, 「도덕의 사회사 활빈당-의적에서 의병으로」, 『역사비평』 제19호, 1992, 346 에서 재인용.
[이미지 1] 『활빈당발영』(1·2면), 1902년 12월, 종이에 먹, 30.4×256.0cm78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법과 도덕을 넘어서서 잔인하기까지 한 방법을 동원한 활빈당의 공격은 양반가나 부잣집의 관점에서 보면 폭력과 잔학함 그 자체였다.
반면에 활빈 당의 주요 공격 대상이 빈농들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자들로 어쩔 수 없이 활빈당이 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자 가진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야 한다.
가난하고 억압받던 빈민이 기득권층에 대항할 수단이 거의 없는 형 편에서 체제에 순응하고 법적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론은 그 힘 을 잃게 되었다. 허균의 소설 속 홍길동과 활빈당이 그러했듯이 조선 말의 활빈당이 의적 이라 칭함을 받은 이유는 관아, 부호, 사찰, 장시 등을 습격하여 재물과 곡식 을 약탈하고 빼앗은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뿐 만 아니라 1900년대 이후 활빈당은 빈민의 편에 서서 가난한 상인, 행인, 민 가를 습격하는 등의 도적 행위를 삼갔다.79
78) 김일근 교수 소장. (https://blog.naver.com/museuminfo/222314321948 참조).
79) 박찬승, 「활빈당의 활동과 그 성격」, 『한국학보』 제35호, 1984, 139 참조: “실제로 경상좌도 활빈 당은 그들이 ‘活貧黨’임을 자처하였던 1900·1901년의 경우 행인이나 행상에 대한 약탈행위는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으며(1902년 이후도 극히 소수), 양반·부호가에 대한 약탈로 시종하였다.”
한 마디로, 부유층과 관료 및 상 인에게는 도적이거나 범죄자였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의적이었다.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조선 후기 활빈당을 이해하면, “활빈당은 홍길동의 뒤를 이어 국운이 열리는 때에 새로운 천하를 얻고자 부호를 약탈한 것”80 이다.
비록 ‘국운이 열리는 때’라는 전제를 두고 있지만 활빈당의 지향점을 ‘새로운 천하’로 규정한 김영식81의 관점에 견주어보아 상상력의 힘과 가능 성을 꿈꾸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이자 ‘가능성의 세계’를 지향 하고,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새로운 사회적 열망’을 투영한다고 주장한 본 연구와 상당한 공통점이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80)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33(강조는 필자의 것).
81)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9-35.
V. 나가는 말
이 연구에서 필자는 한편 바슐라르의 통주관성 개념 덕분에 시적 의식이 다른 의식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밝혔다.
즉, 독자는 위대한 시인들이 창조해 낸 시적 이미지를 공동 저자로서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적 경험, 감정 및 애정 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또한 필자는 시적 이미지는 현실 너머의 것을 창조하며, 비현실을 가능성의 통로로 만들며, 세상의 새로운 측면, 현실 을 보는 새로운 방식,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 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를 통해 필자는 다른 한편 리쾨르의 살아있는 은유 개념 덕분에 언어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힘이자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의 의미 를 소개하였다.
다시 말해 ‘…처럼 있다’의 은유적 개념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며, 언어 외적인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의미의 영 역을 실천의 영역, 즉 행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고 밝혔다.
이런 의미에서 가능성의 세계는 그저 열리지 않는다.
바슐라르의 조언처 럼 세상의 낯섦을 끊임없이 직시해야 하며, 화석화된 습관과 평범한 삶에 안 주하지 않으며, 아무리 불리한 상황일지라도 그것에 새롭게 대항할 준비를 하며, 위대한 시인이 공유해준 삶의 경이로움을 부단히 자각해야 할 것이다.
또한 리쾨르의 충고처럼 살아있는 은유의 휴리스틱한 힘, 즉 현실을 재정의 하는 힘에 동의하며. 세상을 작가가 지시하고 제시하는 ‘…처럼 보는’ 일에 참여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며, 거주 가능한 공 간을 늘림으로써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일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허균의 소설 속 활빈당의 이미지가 조선 후기에 의적 활 빈당으로 실제화될 수 있었던 까닭을 설명했는데, 빈민이자 구빈의 대상자 였던 절대적 약자들의 유토피아적 꿈, 즉 현실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기존의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전복이라는 대의를 위한 투쟁과 제3자를 위한 사회변 혁 운동 등—와 새로운 천하, 곧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열망 등이 어우러진 결 과물로서 나타난 것이 활빈당 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강재언, 「활빈당투쟁과 그 사상」, 『근대사상사연구』, 한울, 1983. 김영식, 「활빈당이 바로잡으려 한 나라」, 김영식 외, 『조선의 멋진 신세계』, 서해문집, 2017, 9-35. 박찬승, 『근대이행기 민중운동의 사회사. 동학농민전쟁·항조·활빈당』, 경인 문화사, 2008. 변주승, 「조선후기 유민정책 연구」, 『민족문화연구』 제34호, 2001, 51-86. 오세창, 「활빈당고(1900-1904)」, 『사학연구』 제21호, 1969, 259-280. 장양수, 「방각본 <홍길동전>이 한말 민중운동에 미친 영향」, 『국어국문학』 제112호, 1994, 169-190. 전종윤, 「대화철학과 대화주의-마틴 부버와 프랑시스 자크를 중심으로」, 『해석학연구』 제25집, 2010, 1-22. _____. 「제3자의 문제와 토막민(土幕民조): 리쾨르와 레비나스 철학을 중심 으로」, 『기독교 철학』 제35호, 2022, 257-291. 폴 리쾨르,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 변광배·전종윤 옮김, 그린비, 2012. Bachelard, G., La poétique de l’espace, PUF, coll. ‘Quadrige’, 1992. Ricoeur, P., La métaphore vive, Seuil, 1975, _____. Temps et récit I, L’intrigue et le récit historique, Seuil, 1983. _____. Du texte à l’action. Essai d’herméneutique II, Seuil, 1986, _____. Soi-même comme un autre, Seuil, 1990.
초 록
이 연구의 목적은 바슐라르와 리쾨르의 철학에서 상상력의 힘과 가능성 을 꿈꾸는 인간 개념을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시적 이미지’와 ‘살아 있는 은유’라는 주요 개념을 통해 이 두 프랑스 철학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 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될 ‘가능성의 세계’라는 공통된 지향점은 조선 후 기 활빈당의 상상력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해석에 일정 부분 적용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한편 바슐라르의 통주관성 개념 덕분에 시적 의식이 다른 의 식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밝힐 것이다.
즉, 시적 이미지는 현실 너머의 것을 창조하며, 비현실을 가능성의 통로로 만들며, 세상의 새로운 측면, 현실을 보 는 새로운 방식,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를 통해 나는 다른 한편 리쾨르의 살아있는 은유 개념 덕분에 언어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힘이자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 의 의미를 소개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은유는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며, 언어 외적인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의미의 영역을 실천의 영역, 즉 행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고 밝 힐 것이다.
키워드 : 상상력, 가능성의 세계, 시적 이미지, 살아있는 은유, 바슐라르, 리쾨르
Abstract
The power of imagination and the human being who dreams of possibilities
Chong-yoon Chun( Jeonju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and analyze the power of imagination and the concept of the human being who dreams of possibilities in the philosophies of Bachelard and Ricoeur. In the process of analyzing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se two French philosophers through the key concepts of ‘poetic image’ and ‘métaphore vive’, the common orientation towards a ‘world of possibilities’ will be found and applied to the interpretation of the imagination and the new world in the late Joseon Dynasty. To this end, I will show that, on the one hand, thanks to Bachelard’s concept of transsubjectivity, poetic consciousness can be transmitted to other consciousnesses; that is, poetic image is a force that creates something beyond reality, that turns the unreal into a channel of possibility, and that allows us to discover new aspects of the world, new ways of seeing reality, and new ways of living in this world. In this study, I will introduce the meaning of ‘métaphore vive’ as a force that builds bridges between language and the real world and a force that reconstructs reality, thanks to Ricoeur’s concept of ‘métaphore vive’. In other words, I will show that ‘métaphore vive’ open up new ways of seeing the world to us, giving us the ability to extend the realm of meaning into the realm of practice, the realm of action, by showing us realities outside of language.
Key words: imagination, world of possibilities, poetic image, métaphore vive, Bachelard, Ricoeur
논문투고일: 2025.03.28 논문심사일: 2025.04.11 게재확정일: 2025.04.23
「기독교철학」 제42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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