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본 연구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제기한 사회개혁에 관한 논의를 통해 당대 지식인 관료의 현실 인식과 더불어 현실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관의 창출을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이상사회에 대한 지향성과 연계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조선의 개국은 새로운 왕조 국가의 탄생(정치권력의 교체)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조의 정치적 정당성을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의 대립과 충돌,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통해 확보하는 일련의 역사를 가진다.
이 점에서 훈구세력을 비롯한 문벌귀족의 지원과 견제 속에서 대두되는 사회의 안정과 경제의 발전을 위한 개혁의 논의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갈등의 긴장관계가 노정된 변곡의 역사성을 가진다.1)
이 점에서 우리는 개인과 사회 사이에 형성되는 힘의 역학관계를 역설하는 카아(Edward H. Carr)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칙성에 근거한 역사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카아는 역사의 의미와 가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관계의 객관성”2)을 확보하는 것에 있음을 말한다.
또한 그는 개인의 행위가 가지는 역사성을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잠재된 의식의 집단적 상태와 같은 “집단의 불만”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3)는 말로 대변한다.
1) 역사의 서술과 역사의 과정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객관으로서 역사적 사료와 역사 사료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기술하는 역사가 스스로의 문제가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데이빗 베빙턴 저, 김진홍, 조호언 옮김, 역사관의 유형들,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7, 서문).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의 해석은 우리의 역사인식 속에 다양한 영역의 가치들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2) 에드워드 카 지음,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2007, 180쪽.
3) 에드워드 카 지음,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2007, 80쪽.
다시 말해, 카아에게 있어 역사의 진보는 현실의 문제를 공유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가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상호관계적인 형태로 공유될 때 집단적인 상태의 잠재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개인의 행위는 “집단의 불만”을 대변하는 역사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개인의 행위는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는 동력으로 기능하는 역사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왕조의 쇠퇴기를 상징하는 “중쇠(中衰)”는 당대의 지식인 관료들이 공유했었던 순환론적인 역사관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사례에 해당한다.4)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왕조의 융성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불안정한 사회의 정세를 안정적으로 도모하는 가운데 궁핍해진 국가 경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당대 지식인 관료들의 노력들은 爲民과 安民에 대한 사고로 전화되어 나타난다.
이 점에서 국가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 民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제기된 당대의 시무(時務)책은 아래로 民을 위하고, 위로는 王을 위하는 2중적인 의미구조를 견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도의 실현을 학문하기의 기본 이념으로 삼는 성리학적 정치사회 속에서 시무책은 왕권을 강화하는 중앙집권적인 사회질서의 확립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민과 왕의 정치적 권력의 관계성은 종속적 또는 대립적인 형태의 권력구조를 갖는 한계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신진관료들에 의해 제기된 시무책은 사회, 경제적으로 民의 삶이 안정화될 때 비로소 왕의 정치적인 목적성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구조를 토대로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를 개혁할 것을 역설한다.5)
4) 資治通鑑, 「孝獻帝 初平 三年」, “故微文譏刺, …[생략]…, 方今國祚中衰.”; 栗谷全書, 「經筵日記」, “自古爲國, 若至中葉, 則必狃安而漸衰.”
5) 이와 같은 양상은 최치원의 <時務十條>, 최승로의 <時務二十八條>를 비롯하여 이황의 <戊辰六條疏>, 이이의 <萬言封事(甲戌萬言封事)>, 류성용의 <陳時務箚(陳時務箚 壬辰十一月 在定州)>, 박세채의 <時務萬言封事>, 심광세의 <癸亥時務疏> 등 다수의 時務관련 疏와 箚刺가 있다.
이 점에서 새로운 왕조의 탄생과 함께하는 성리학의 수용과 사회질서체계의 확립, 그리고 民의 삶을 기반으로 하는 임금의 자질과 지위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예컨대 이색과 정도전과 권근, 유성원 등에 의해 제기된 安民과 爲民의 정치는 궁극적으로 왕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새로운 왕조 국가의 건국과 함께 하는 이들의 정치활동은 정치적 권력의 새로운 재편과정을 거치면서 安民과 爲民의 논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론의 정치문화를 확대한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사림(士林)의 등장을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조식과 이황, 이이가 중심이 된 조선 중기 언론정치의 개혁과 확대, 그리고 본격화된 사림의 정계진출은 박세당, 서명응, 홍대용, 정약용, 홍석주, 최한기와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사상체계의 확립을 독려하는 정치적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조선 유학자의 사회개혁론과 대동사회의 인식 양상에 대한 연구를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그 중 하나로, 조선 유학사상의 발전과정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연속성을 유가, 불가, 도가사상의 3교합일이 가지는 융화(融化)적 세계관을 통해 고찰한다.
그리고 이것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수용과 발전과정 속에 노정되어 있는 유가와 도가, 그리고 불가사상의 교섭을 사회ㆍ정치적인 측면에서 규명하는 작업이 된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성리학의 변용은 정주학 중심의 성리학으로부터 벗어나 조선 유학사상의 체계를 확립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점에서 탈(Post)주자학적 세계관에 기인하는 조선 유학사상의 확립 과정에 대한 연구는 실학사상의 발전과정을 체계화 하고 그 의미를 구체화 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
둘째로, 조선 초기 지식인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진 제도의 개편과 사회개혁에 대한 논의를 安民과 爲民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것은 정치적인 힘의 역학관계가 기능하는 사회개혁의 의미를 새로운 정치 이념의 대두와 함께하는 사회구조의 변화관계 속에서 규명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이것은 왕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주학 중심의 성리학적 사회질서체계 속에서 새롭게 제기된 安民과 爲民의 논리가 가지는 의미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규명하는 작업이 된다.
끝으로, 조선 유학자들의 사회개혁론에 나타나는 대동사회에 대한 인식 연구는 조선 유학자들의 정치철학에 기능하고 있는 도가적 세계관6)의 의미와 가치를 분석하고, 그 사상적 원형을 성리학적 사유체계 속에서 분리해 내는 작업에 해당한다.
6) 이와 관련해 삼봉의 사상에 나타나는 도가의 해석과 의미를 연구한 이종성은 삼봉의 사상체계에서 도가와 도교의 경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경계의 구분을 통한 엄밀한 연구가 선행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이종성, 「삼봉 정도전의 도가철학 해석의 관점과 그 한계 비판」, 동서철학연구 88집, 한국동서철학회, 2018, 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는 논의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특정하게 지목된 종교로서의 도교가 언급되지 않는 이상 도교와 도가를 구분하지 않고 도가라는 개념으로 통일하여 사용한다.
다시 말해, 언론을 통한 공론의 정치문화의 확대 과정 속에서 安民과 爲民에 기초한 사회개혁사상을 확장시킨 조선 유학자들에게 있어 현실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은 사회,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당위의 목적성이 강화된 성리학의 사회질서 속에서 당면하는 현실의 문제는 정치적 이념의 간섭으로 인해 문제의 본질은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삶의 주체들이 당면하고 있는 실존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조선 유학자들의 사회개혁론에 나타나는 대동사회에 대한 인식 연구는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실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타개하는 새로운 관점의 세계관을 체계화한다.
이 점에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대동사회에 대한 인식연구는 실학사상의 발전과정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규명하는 작업이 된다.
2. 려말선초 斥佛論의 역사적 다의성
개인의 인격을 위한 수양의 목적성이 강조되었던 선진시대 유가사상과 달리 주자에 의해 정립된 신유학, 즉 성리학은 유가사상이 가지는 전통적 의미의 목적성을 사회, 정치적인 측면의 공공성으로 확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교화와 감화의 왕도정치가 강조되었던 선진시대의 유학사상과 달리 새로운 사회질서의 확립을 위한 절대군주로서 왕권중심의 정치를 강조했던 성리학은 후한(後漢)대에 이르러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안착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선 유학사상의 기틀을 제공한 주자 성리학의 전래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 이루어진다.
그리고 당대의 성리학은 특정한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사학적 성격의 학문으로 공유된다.
하지만 12세기 고려의 예종과 인종대에 사학적 성격을 가지는 성리학이 국가의 주도에 의해 체계화되는 관학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학의 관학화 양상은 숙종대에 이루어진 사회개혁의 정치사황과 맥을 함께 하는 것으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관료체제의 확립은 문벌귀족과 외척세력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왕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숙종의 아들인 예종에 의해 강화되는 양상을 갖는다.7)
7) 문철영, 「고려중기 사상계의 동향과 신유학」, 국사관논총 37, 국사편찬위원회, 1992, 63쪽.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고려시대 이루어진 중국 성리학의 수용은 정치적인 측면의 목적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왕권의 강화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학문으로 무장한 신진 관료들의 양성8)은 문벌귀족과 훈구대신을 비롯한 외척의 정치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경학 중심의 학문풍토를 안착시키는 것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고려의 몰락과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 국가의 건국 과정을 함께한 권근의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은 고려 중기 이후 경학 중심의 학문풍토9)를 대변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더욱이 권근의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권문충공이 經禮에 대한 이치를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讀書分定, 入學圖說, 五經淺說 등을 집필하여 六經의 깊은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생략]…, 공의 문장은 경술을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백가를 두루 섭렵하고 있기에 문채가 특출하다. …[생략]…, 당시 길재서와 김제주가 나와 각자 자신이 지은 오경을 전수하였는데 이 모두가 양촌으로부터 나왔다.”10)
8) 高麗史 卷74, 「選擧志」, “睿宗二年, 制曰, 置學德賢, 三代以降致治之本也.”
9) 강문식, 권근의 경학사상 연구, 일지사, 2008, 130쪽.
10) 陽村集, 「陽村權文忠公遺文重刊序」, “本朝權文忠公, 又考定經禮作讀書分程, 入學圖說, 五經淺說, 闡明六經之奧, …[생략]…, 公之文章 本之以經術 參之以百家, 蔚然文彩特出, …[생략]…, 於是有吉注書, 金祭酒, 亦各五經傳授, 皆出於陽村.”
는 말로 높이 평가하는 허목(許穆)의 말에는 중국 성리학의 수용과 변모의 과정에서 기인하는 주체적인 형태의 학문관에 대한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경(서경, 예기, 주역, 시경, 춘추)에 대한 주자의 해석이 정론으로 인식되고 있던 시점에 권근의 독자적인 오경 해석은 주자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식인의 역할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의 영역을 넘어 지식인인 동시에 정치에 참여하는 관료로서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바라는 선진적인 형태의 지식인 관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조선 후기 선조와 숙종 재위시기에 활동한 허목(1595∼1682)이 정주학을 중심의 경학을 실천한 권근(1352∼1409)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특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사림의 활발해진 정치와 학문의 활동성과 함께 하는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확립과정을 염두에 놓고 그 관계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권근의 독자적인 학문하기는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기 보다 정주학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으로부터 탈피하고 있는 조선 유학자의 능동적인 학문하기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권근에 대한 허목의 평가를 개별적인 사안에 해당하는 개인적인 평가로 한정하거나11) 권근을 주자 성리학의 세계관을 답습하고 있는 (고려)조선성리학자의 전형12)으로 이해하는 것은 실존의 한 시대를 살아간 현존재로서 권근이 가지는 역사적이고 실존적 의미를 축소하는 것에 해당한다.
11) 이와 연관하여 강문식은 권근에 대한 허목의 높은 평가를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한다. 첫째, 당대에 팽배해 있던 반주자학적인 학문 활동에 대한 주류 세력들의 불신 과 배제의 가치를 고려할 때 권근에 대한 허목의 평가는 이례적이다. 둘째, 程朱의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운 오경을 해석을 통해 왕권을 강화한다는 목적을 지닌 허목의 학문하기는 권근의 학문하기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학문 및 정치적 지향이 자신의 입장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권근에 대한 허목의 평가는 높게 나타난다. 강문식, 권근의 경학사상 연구, 일지사, 2008, 132쪽.
12) 안장리는 권근에 대한 평가를 “이는 성리학을 뿌리내리려는 조선 초기 상황에서 성리학으로 무장한 국왕을 만들려는 성리학자 권근의 기본적인 의도였다.”는 말로 대신한다. 또한 그는 도현철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즉, “유교 단일 사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을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하였다(도현철, 「권근의 유교정치이념과 정도전과의 관계」, 역사와 현실 84, 한국역사학회, 2012, 67쪽).” 안장리, 「권근이 추구한 유교국가의 국왕상 고찰」, 圃隱學硏究 15집, 포은학회, 2015, 136쪽.
더욱이 이것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으로 대변되는 조선 유학사상의 발전에 기능하고 있는 유가, 불가, 도가사상의 교섭이 가지는 의미와 더불어 조선 유학자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학문하기가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역사발전의 연속성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이 점에서 권근으로 대변되는 려말선초 선진적인 유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불교(불가)에 대한 태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불교와 유가의 교섭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성리학 중심의 사회질서체계 속에서 불교에 대한 권근의 중립적인 태도는 이례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기술에 관한 역사 해석의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불교에 대한 권근의 이중적인 태도는 권근의 학문관에 대한 평가의 다양성을 열어 놓는다.
그러므로 권근의 학문관에 대한 개방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불교에 대한 권근의 태도를 그의 학문관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초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색(李穡)에게 사숙한 권근의 학문관은 그 개인에 한정된 것이기 보다 이색과의 학문교류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의 특수성이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석가모니(불가)의 가르침은 나라 밖에서 들어온 것이다. …[생략]…, 그 도가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심히 석가모니(불가)의 가르침을 거절하지 않고 함께 좋아하는 것은 무릇 그 취할 바가 있기 때문이다.13)
13) 牧隱藁, 「麟角寺無無堂記」, “釋氏域外之敎也, …[생략]…, 無恠其道之見尊於世也, 余是以不拒釋氏甚, 或與之相好, 蓋有所取焉耳.”
상기의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불가의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지위에 대한 이색의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바가 있다”는 말로 대변된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이색의 중립적인 태도는 권근의 말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즉, 백정(栢庭) 승려와 관계가 있는 공민왕(恭愍王)의 선양을 기리는 시(詩)에서 불교의 심원한 지혜를
“物과 我의 일체성을 인식하는 불교의 심원한 禪心(早信禪心同物我)”
이라는 말로 높이 평가하는 것과 “심원한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조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애석함(祖意玄深不可知)”을 토로하는 말14)을 통해서도 당대 선진적인 유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불교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엿볼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소신이 생각하건대, 불교를 배척하는 것은 유학(유학자) 의 근본이기에 옛날부터 군왕은 이에 대해 논하지 않고 버려두었습니다. 하물며 주상께서 관대한 은혜를 베푸는 것은 광망한 유생이 용서를 받을 것이 있기 때문이겠습니까?”15)
라는 말로 김초(金貂)의 척불소(斥佛疏)에 관한 처벌의 철회를 요청하는 정몽주의 상소는 정치적인 측면의 권력다툼을 넘어 당대 지식인 관료들에게 공유되고 있었던 불교에 대한 인식16)과 불교의 사회, 정치적 지위17) 가 표명되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14) 陽村集 卷3, 「贈栢庭禪師」, “庭前栢樹碧參差, 祖意玄深不可知, …[생략]…, 早信禪心同物我, 將因淨智報君親.”
15) 高麗史節要 卷35, 「恭讓王[二]」, “臣等以謂, 斥詆佛氏, 儒者之常事, 自古君王, 置而不論, 況以殿下寬大之恩, 蕞爾狂生, 在所優容, 乞霈寬恩.”
16) 이와 연관하여 호조 판서 정사척(鄭士倜)의 “불법은 국가를 복되게 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숭상하여야 될 것입니다”는 말은 불교의 사회적 의미를 대변한다. 高麗史節要 卷35, 「恭讓王[二]」, “前戶曹判書鄭士倜, 亦上書, 以爲, 佛法福利國家, 宜當崇奉, 王嘉納其言.”
17) 이와 연관하여 “우리는 태조 이후로 대대로 불법을 숭상하고 믿었는데, 지금 김초가 불교를 배척하는 것은 선왕이 이룬 법을 깨뜨리는 것입니다.”는 말은 불교의 정치적 지위를 대변한다. 高麗史節要 卷35, 「恭讓王[二]」, “自我太祖以來,歷代崇信佛法, 今貂斥之, 是破毀先王成典.”
더욱이 현실지향적인 유학사상의 특징을 고려할 때 불교와 연관된 유학사상의 발전과정에서 정치적인 측면의 영향관계는 조선의 유학사상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점에서 조선의 건국을 분기점으로 하는 려말선초 유학자들의 각기 다른 학문관은 왕권의 강화라는 성리학의 기본 이념 아래 독존유술(獨尊儒術)의 형태로 변모하는 양상을 가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리학 중심의 사회질서체계의 강화는 불가의 교리를 비롯한 도가사상을 금기시하는 학문풍토를 양산하는 한편 불교와 도교를 비판과 견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 시대의 왕조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졌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심문천답(心問天答)(1375)과 불씨잡변(佛氏雜辨)(1394) 으로 상징되는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사회적으로 팽배해진 성리학 중심의 학문질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심문천답(心問天答)과 불씨잡변(佛氏雜辨)에 나타나는 불교에 대한 정도전의 태도는 다른 차이를 가진다.
즉, 조선의 개국 이후에 집필된 불씨잡변의 경우, 불교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요소가 표출되는 양상을 가진다.
다른 한편으로 일정정도 불교와의 교류가 있었던 시기에 집필된 심문천답(心問天答)에 나타나는 불교에 대한 비판 태도는 비교적 온건적인 형태를 갖는다.
그리고 불교비판에 대한 정도전의 상이한 태도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측면의 이해관계가 개입하고 있는 성리학의 불교비판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에서 나타나는 척불론(斥佛論)의 기본 입장은 義理가 없는 불교는 人倫을 파괴하기 때문에 불교의 잘못된 점을 義理적 측면에서 규명해야한다는 말로 요약된다.18)
그리고 이것은 심문천답序를 쓴 권근의 “도가 밝지 못한 것은 이단이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유자가 선현이 남겨 놓은 귀중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 폐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생략]…, 일찍이 노자와 불가의 간사하고 사악한 해로움을 분별하여 오래도록 어두웠던 도학을 열고 세간에 패배한 공리설의 막아 바른 도의로 돌아가게 한다는 삼봉 선생의 말이 있다. …[생략]…, 선생의 유작이 세상을 바로잡는 것에 관련이 있고 중요하기 때문에 오늘 내가 편차하는 것이다.”19)
18) 三峯集 卷9, 「佛氏雜辨序」, “佛氏之敎, 所以無義無理, …[생략]…, 又著是書示予曰, 佛氏之害, 毀棄倫理, 必將至於率禽獸而滅人類, …[생략]…, 憤不自己, 作爲是書.”
19) 三峯集 卷9, 「佛氏雜辨序」, “道之不明, 異端害之也, 吾儒尙賴先哲之訓, 以知異端之蔽, …[생략]…, 三峯先生嘗有言曰, 辨老佛邪遁之害, 以開百世聾瞽之學, 折時俗功利之說, …[생략]…, 此先生之作所以關於世敎爲甚重, 而吾今日編次之意也.”
는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비교적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권근을 비롯해 강격한 형태의 척불론을 표명하고 있는 정도전이 공통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遊方과 出家 같이 불교의 탈세속적인 수행법이 가지고 있는 반사회성과 반인륜성에 대한 내용이다.20)
20) 이정주, 성리학 수용기 불교 비판과 정치ㆍ사상적 변용, 고대민족문화연구원, 2007, 50쪽.
그리고 이것은 정주학적 성리학체계에 기초한 왕도정치를 표방하는 동시에 역성혁명을 통한 새로운 왕조국가 탄생이라는 특수한 정치 상황을 고려한다면 려말선초에 표면화 되고 있는 불교배척은 당대 지식의 관료들의 실존적인 역사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한다면 려말선초에 나타나는 척불에 대한 논의들은 정치권력의 투쟁관계 속에 나타나는 정치적인 명분을 넘어선다.
그리고 이것은 새롭게 재편된 정치권력구조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현실과 직면한 지식인 관료의 현실 인식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정도전과 권근으로 대변되는 려말선초 조선유학자에게서 나타나는 불교와 도가사상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의 양상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사상의 통일과정에 대한 당대 지식인 관료들의 이해와 학문하기의 태도를 대변한다.
또한 이것은 현실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 도가, 불가의 병존 가능성에 대한 당대 지식인 관료들(유학자)들의 사회, 정치적 인식을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더욱이 이것은 다양성을 기저로 하는 사회의 문화구조 속에서 발생 가능한 창의성, 즉 성리학의 수용단계에서 실학사상으로 이어지는 조선 유학사상의 발전과정이 가지는 역사적 변곡을 연속성에 기초하여 고찰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사회, 정치의 시대상황 속에서 사회의 기층 세력으로 현실의 정치에 참여하는 유학자들에게 있어 사상의 변화는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실재의 삶을 영위해 나아가는 실존의 문제인 동시에 신념의 문제이며 나아가 세계관에 대한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권근과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유학자에게 나타나는 각기 다른 정치적 행보와 함께 하는 사상의 변화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담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변모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자각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조선의 건국은 새로운 역사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학문을 독려한다.
이 점에서 조선 개국 이후 척불론을 중심으로 하는 권근과 정도전의 변화된 사상을 비교하는 것은 성리학과 다른 조선의 유학사상이 가지는 분기점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업이 된다.
3. 성리학의 전환점 모색
고려 왕조의 쇠퇴와 더불어 새로운 왕조 국가의 탄생과정에서 권근과 정도전의 정치적 행보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 주된 이유는 조선의 개국과정과 함께하는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정주학 중심의 성리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불교의 폐단을 규탄하는 척불론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공유 가능한 사상의 접점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개국과정에 나타난 정도전과 권근의 서로 다른 정치행보와 같이 이들의 사상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변화하는 사회의 상황과 현실의 정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정도전과 권근의 정치사상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가진다.
이정주는 정도전의 불씨잡변에 대한 집필 배경을
“태조 7년 이전 정도전이 불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생략]…, 정도전은 전형적인 유가사상가로서 농경사회에 적합성 여부에 모든 가치 판단 기준을 두고 있다. …[생략]…, (이와 같은 측면에서) 정도전이 追薦 등의 불교식 喪祭禮를 비판하였던 것도, 낭비가 많아 傾家ㆍ破産케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1)
는 말로 설명하는 한편
“정도전의 불씨잡변은 불교 철학에 대한 애정이나 충분한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불교를 배격해야한다는 목적의식의 소산”22)
21) 이정주, 성리학 수용기 불교 비판과 정치ㆍ사상적 변용, 고대민족문화연구원, 2007, 178쪽.
22) 이정주, 성리학 수용기 불교 비판과 정치ㆍ사상적 변용, 고대민족문화연구원, 2007, 177쪽.
이었음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견해는 조선 초기에 본격화된 抑佛崇儒의 사회문화의 기조 속에서 정도전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한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척불에 대한 정도전의 변화된 태도는 태조 재위기(태조 3, 1394년)에 저술된 「 심기리편(心氣理篇)」의 내용을 비교해 볼 때 그 변화의 정도는 급진적인 형태를 갖는다.
또한 이것은 정도전의 척불론을 선봉으로 하는 불교배척이 조선 초기 사회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일반화 하는 역사의 곡해를 낳기도 한다.
이 점에서 조선 초기 배불론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태조(생몰기1335~1408, 재위기 1392~1398)가 아닌 태종(생몰기 1367~1422, 재위기 1400~1418) 때부터라는 견해는 정도전의 사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다시 말해 척불정책의 시행은 그 이전 시대에서도 있었지만 태종과 같이 국사를 등용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사찰의 재산을 몰수하는 한편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등 도첩제의 시행을 통해 승려제도를 철저하게 견제한 것은 태종 재위기에 이루어진다.23)
더욱이 정도전은 주자가 비판한 漢唐의 부국강병론과 공리적 사조에 대해서는 포용적으로 수용하지만 주가가 강조한 주자가례, 사창제, 향약 등에 관해서는 정도전의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24)
는 것은 성리학에 대한 정도전의 능동적인 수용의 자세를 대변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형식적인 측면의 단편적인 요소, 즉 불씨잡변에 거론되고 있는 내용만으로 불교에 대한 정도전의 입장을 척불론자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어폐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비록 그가 理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불교의 心과 도가의 氣를 포섭하고, 해석하려고 했다25)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기리편」에는 유가와 다른 사유방식을 가진 사상체계(불가의 心과 도가의 氣)에 대한 정도전의 능동적인 인식의 과정이 표명되고 있다.26)
23) 리기용,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34집, 한국철학학회, 2012, 15쪽.
24) 리기용,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34집, 한국철학학회, 2012, 14~15쪽.
25) 理를 중심으로 하는 心과 氣의 관계를 시도했다는 것은 정도전에 대한 권근의 평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三峯集 卷10, 「序」, “儒主乎理而治心氣, 本其一而養其二, 老主乎氣。以養生爲道, 釋主乎心, 以不動爲宗, 各守其一而遺其二者也.”
26) 이종성, 역사 속의 한국철학,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125쪽.
또한 이것은 반대급부 유가의 사유방식과 다른 형식과 내용을 가진 사상체계와의 교섭이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氣, 心, 理에 대한 교섭의 절충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권근의 말은 정도전을 포함한 당대의 지식인 관료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상의 교섭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불가(석씨)와 도가(노씨)는 明心, 養氣說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삶아 어리석은 세상을 속이고 유혹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불가와 도가의 가르침을)즐겨 듣고 그것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가끔 道를 아는 자가 (불가와 도가로 인한 폐해를)역설하여 그것을 물리치기는 하지만 (유학자들은)우리의 道에 맞지 않다고 배척할 뿐이다. 결국(도가와 불교의 가르침을) 듣는 자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말지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삼봉)선생만이 도가와 불가의 근본 의미를 밝히고 성리학의 바른 道로써 (도가와 불교를)절충하였다.”27)
상기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불가와 도가, 그리고 유가의 절충을 모도한 정도전에 대해 권근의 평가는 높게 나타난다.
그리고 유가와 불가, 도가가 가지는 사회적 측면의 공효성(功效性)은 성리학의 道에 의해 새롭게 체계화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 점에서 권근과 그를 통해 대변되는 정도전의 척불에 대한 입장(도가와 불가의 폐단)은 어리석은 세간의 사람들을 현혹(誑誘)하는 행위에 그 시작점이 있고, 그 교설의 주요한 이론은 明心과 養氣에 있음을 공유하고 있다.
더욱이 불가와 도가의 교설행위에 수단으로 기능하는 주요한 이론, 즉 明心과 養氣은 도가와 불가 본연의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함께 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훔친다(竊)”는 말로 표현된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다면 분명 척불에 대한 정도전의 기본 입장이 일관성을 가지고 역설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불씨잡변과 「심리기편」, 「심천문답」에 나타나는 정도전의 척불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일관성을 갖지 않는다.
더욱이 불씨잡변에 나타나는 불교와 도가의 비판이 理에 의한 氣와 心의 통일이라는 기본 테제 속에서 확대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정도전이 범하고 있는 불교와 도가의 해석상에 오류에 대한 비판은 유효성을 가진다.
더욱이 「심리기편」, 「심천문답」과 달리 불씨잡변에 이르러 불교와 도교에 대한 강경한 비판이 이루어진 이유를 되새겨 본다면 척불에 대한 정도전의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히 정치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심리기편」, 「심천문답」에 나타나는 정도전의 척불은 “성리학적 理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당시의 세태에 대한 비판”28)을 내포하고 있다는 견해는 불씨잡변을 통해 정도전이 수행하고자 했던 목적의식의 이면을 시사한다.
27) 三峯集 卷10, 「序」, “彼老釋竊明心養氣之說, 誑誘愚俗, 故人多樂聞而信從之, 往往知道者雖力言以闢之, 但斥其不合於吾道者而已, 故聞者猶未知其孰爲得失也, 唯先生先明二氏之旨而後折以吾道之正.”
28) 리기용, 「삼봉 정도전의 벽이단론과 그 해석 문제-심문천답과 심기리편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34집, 한국철학학회, 2012, 8쪽.
그리고 이것은 정도전이 “왜? 그토록 불가의 心과 도가의 氣를 理의 세계관속에 포섭하고 질서화하려 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전환된다.
정도전에게 있어 理의 문제는 현실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의 실재에 관한 문제와 연관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이념으로서 성리학이 지향하는 理의 질서가 실재의 현실에서
“실현되었는가? 또는 실현될 수 있는가?”
에 대한 물음의 형식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목적에 대한 지향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실재(物)하는 현실에 대한 논의가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理의 질서는 목적의 당위성을 의무적으로 요청(전제)하게 된다.
반대로 이것은 목적의 당위가 현실의 실재를 질서화(구속)하는 논리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당위의 법칙성 속에 있는 모든 실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는 법칙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당위의 목적성이 요청된 세계에서 현실의 실제성은 필연의 의무를 가질 필요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요청된 당위의 목적은 “그래야만 한다.”는 형식의 바람의 의미인 동시에 윤리적인 성격의 내용을 가진다.
반면에 현실의 실제성은 현상과 질료의 문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질료인 현상의 실재성이 가지는 몰가치적인 사물의 본성은 윤리적인 당위의 목적성에 대응하는 인과성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해석의 개입만을 허용할 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정도전에게 있어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의 법칙성은 모든 현실의 실재에 부여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른바 모든 만물이 호응하여 변화한다는 것은 그 어떤 사물이 올 때 마음이 그것에 응하여 각각 그 마땅한 법칙에 따라 알맞게 처하여 그 마땅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 아들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효자가 되게 하고 적자가 되지 않게 하며, 여기에 신하된 사람이 있으면 충신이 되게 하고 난신이 되지 않게 한다. 사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는 밭을 갈고 사람을 떠받지는 못하게 하며, 말은 물건을 싣되 사람을 물지는 못하게 하며, 호랑이는 함정을 만들어 사람을 물지 못하게 하나니, 대개 그 각각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 이치에 인하여 처하게 하는 것이다.”29)
29) 三峯集 卷9, 「儒釋同異之辯」, “然所謂酬酢萬變者, 其於事物之來, 此心應之, 各因其當然之則, 制而處之, 使之不失其宜也, 如有子於此, 使之必爲孝而不爲賊, 有臣於此, 使之必爲忠而不爲亂, 至於物, 牛則使之耕而不爲牴觸, 馬則使之載而不爲踶齕, 虎狼則使之設檻置阱而不至於齩人, 蓋亦各因其所固有之理而處之也.”
는 말로 요약된다.
또한 이것은 현실의 모든 실제성이 당위의 목적성에 의해 의미화 된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이것은 당대의 유학자들이 지향했던 이상사회를 대변하는 것인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 관료로서 정도전이 밝히고 있는 궁극적인 학문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당위의 목적성이 강조되는 것은 현실사회의 실재성은 그러지 못하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리학이 가지고 있는 목적론(명분론)적 세계의 이념과 현실사회의 실재가 괴리된다는 것에 대한 실존적인 인식은 정도전으로 하여금 사회의 기층세력으로서 지식인이 가져야할 사회적 책임과 함께 정치에 참여하는 관료로서의 소명의식을 강화하게 된다.30)
이와 연관하여 채웅석(한영우)은
“권근이 유배기에 쓴 글에서 그 지역에 살던 농민들의 생활이나 그들의 주체적 활동양태에 대하여 이러다할 언급을 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신분적 위계질서의 확립을 강조하면서 일반민을 관과 사족의 지배와 교화대상으로 취급하였던 것과 연관된 특징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그 점은 정도전이 유배기에 「소재동기」와 같은 평민들의 생활기록을 남긴 것, 그리고 위계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능력을 중시하는 신분관을 지녔던 것과는 비교된다.”31)]
고 말한다.
다시 말해, 권근과 정도전의 현실인식에 대한 차이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민생과 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유무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도전에게 있어 현실의 실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배경과도 연관성을 가진다.
이 점에서 정도전이 가지는 현실사회의 실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理를 중심으로 하는 心과 氣의 질서화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정도전에게 있어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의 법칙성으로 전환되어진다는 점에서 民의 삶에 투영된 理는 불가역적인(所以然) 당위의(當然之則, 不容已)의 윤리성32)으로 전환되어 나타난다.
30) 이와 연관하여 우리는 정치적 좌절을 경험한 많은 유학자(선진적 지식인 관료)들의 유배기에 집필한 시(時)들을 접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정도전의 경우, 유배기에 집필된 다수의 詩ㆍ文은 「錦南雜詠」와 「錦南雜題」에 실려 있으며 그 내용의 주제는 자연미의 추구, 자아의식(좌절, 고독감), 현실인식(사회비판), 사대부상의 모색(義와 理의 중시)으로 나누어진다(노향옥, 三峰 鄭道傳文學의 一考察 : 流配期作品을 中心으로,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58쪽). 그리고 권근의 경우, 유배기에 집필된 다수의 詩ㆍ文은 「南行綠」에 실려 있으며 그 내용의 주제는 悲憂(고독함), 自嘆(좌절감), 현실지향(사회비판), 歸田園(自然美), 和樂과 禪趣味(安貧樂道)로 나누어진다(김원준, 「권근의 여말 유배기의 시 양상」, 泮矯語文硏究, 반교어문학회, 2005, 30쪽).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권근과 정도전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지식인 관료로서의 사명감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1) 채웅석, 「려말 권근의 유배ㆍ종편 생활과 교유」, 역사와 현실 84집, 한국역사연구회, 2012, 153쪽; 한영우, 정도전 사상의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3, 188쪽.
32) 최천식, 「정도전과 권근의 마음이론 비교연구」, 철학연구 80집, 철학연구회, 2008, 28-29쪽.
그러므로 理의 功效性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불가의 心과 도가의 氣에 대한 정도전의 비판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를 갖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도전의 척불론은 괴리된 현실사회의 실제성과 당위적 의미의 목적적 세계가 서로 호응할 수 있는 기제를 心과 機에 대한 논변을 통해 해명한다.
또한 이것은 성리학이 발전시키지 못한 현실의 실제성에 대한 주관과 객관을 문제를 불교의 心과 도가의 氣에 대한 사유의 포섭을 통해 해명한다는 점에서 정도전의 척불론에 나타나는 불교비판과 함께 하는 心과 氣에 대한 논변은 성리학의 사상체계를 보완해 가는 외연의 확장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도전과 달리 권근의 경우에는 척불에 대한 인식의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권근은 직접적인 현실의 실제성에 대한 논의보다 간접적인 형태의 성격을 가지는 행정체제의 개편을 통한 사회 및 정치구조의 변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사회의 변화를 위한 개혁의 대상과 방법이 가지는 상이성에서 비롯되었을 뿐,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安民과 爲民에 대한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권근이 지향하는 경학을 통한 최상의 정치에 대한 기본 입장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권근은 최상의 정치가 이루어진 상태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최상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경학의 필요성을 「시천경록(詩淺經錄)」에서 밝히고 있다.
비록 권근은 자신이 추구하는 최상의 정치
“백성들이 느긋하니 흡족하여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알지 못하는”33)
것임을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역설하고 있지만 권근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회상에 대한 원류는 도가철학 고유의 無爲와 自然의 정치론34)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욱이 이와 같은 최상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경학 공부의 핵심은 “心術을 바로잡는 것에 있다.”35)는 권근의 말은 자신의 사상체계에 깊이 관계하고 있는 도가사상의 지위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3) 孟子, 「盡心章句上」, “民日遷善而不知爲之者.”
34) 老子, 「17章」, “太上下知有之, …[생략]…, 百姓皆謂我自然.”; 莊子, 「應帝王」, “老聃曰, 明王之治, 功蓋天下而似不自己, 化貸萬物而民弗恃, 有莫擧名, 使物自喜立乎不測.”
35) 陽村集 卷12, 「記類」, “然其要只在乎正心術而已.”
4. 대동의 이념과 실제
고려 왕조와 더불어 새로운 왕조 국가의 관료로서 활동한 정도전과 권근의 사회개혁에 관한 의지는 대상과 방법의 측면에서 다른 내용을 갖지만 이들의 문제의식을 추동시키는 공통된 동력은 사회, 정치적으로 고양된 民의 지위에 대한 인식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王 중심의 은혜적 정치가 가지는 단선적(획일적)인 정치구조로부터 벗어나 다자성이 전제된 다층적인 형태의 정치구조로 전개되는 조선의 정치, 사회에 대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조선의 정치구조의 변화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기본 이념을 두고 있는 정치구조와 같은 성격을 같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의 명분론에 입각한 엄격한 신분제의 사회질서체계에서 정치적인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의사표현의 기회를 직분의 차등 없이 부여한다36)는 것은 사회 전체에 큰 파급효과를 가진다.
이 점에서 사학과 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식인 유학자들의 활발한 언론활동은 조선의 정치구조를 한 층 고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37)
더욱이 조선 초기를 거치면서 본격화된 조선 중기 사림의 정계진출과 이로 인한 공론정치38)의 확대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관료로서의 소명의식을 고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36) 三峰集 卷10, 「經濟文鑑 下」, “若天下之得失, 生民之利害, 社稷之大計, 惟所見聞而不係職司者, 獨宰相可行之, 諫官可言之爾. …[생략]…, 諫官雖卑, 與宰相等. …[생략]…, 立乎殿陛之前, 與天子爭是非者, 諫官也.”; 大東野乘, 「己丑錄續」 <壬午九月十七日茂長幼學吳鼎勳等上疏>, “正人者百世之標準, 而士論者國家之元氣也, 所以扶持而培植之者, 豈非聖朝之所當汲汲者乎.”; 古文眞寶後集, 「上范司諫書」, <歐陽脩(永叔)> “諫官雖卑, 與宰相等, 天子曰不可, 宰相曰可, 天子曰然, 宰相曰不然, 坐乎廟堂之上, 與天子相可否者, 宰相也. 天子曰是, 諫官曰非, 天子曰必行, 諫官曰必不可行, 立乎殿陛之前, 與天子爭是非者, 諫官也.”
37) 성종 이후 사림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정치의 확립은 국가의 언론 기관(사간원, 대간, 언간 등) 외에 향약을 중심으로 하는 향촌 유생의 언론활동을 활성하기도 한다. 김희, 「朝鮮 前期 政治文化에 나타난 公論의 의미 고찰」, 간재학논총 13집, 간재학회, 2012, 295쪽.
38) 太祖實錄 卷2, 「太祖元年 11月 丙戌,」 “夫公論, 國家之元氣也, …[생략]…, 此固天下之公論其不可一日之或息.”
이 점에서 조선 중기에 활발한 정치활동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위한 사회개혁의 방안들을 천명한 이황과 율곡은 정도전과 권근의 경우와 같이 王과 民에 대한 병존의 의식을 기반으로 왕권의 강화를 역설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활동은 조선 초기와 다른 양상을 가진다. 다시 말해, 다층적인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공론정치의 확대,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권력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관료(신진유학자, 사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더욱 세분화되고, 조직적인 형태로 변모해 간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사회의 정치발전과 성숙이라는 긍정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정치적 권력투쟁의 이해관계 속에서 명분의 언쟁만이 양산되는 혼란한 정치상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이황과 이이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성리학적 세계의 질서와 괴리된 현실의 사회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그 개혁의 대상성이 왕이라는 특정한 인물에 한정되는 제한성을 가질 뿐이다.
이황의 사회개혁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경학사상이 중심된 수신론과 군주론, 그리고 교육론에 역점을 둔다.39)
반면 이이의 사회개혁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정치, 경제, 교육, 국방, 그리고 사회(신분제)에 관한 문제로 나누어진다.40)
그리고 이황과 달리 율곡의 문제의식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이황과 이이의 정치적 행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41)
39) 예문동양사상연구원, 윤사순 편저, 퇴계 이황, 예문서원, 2002, (목차 참조)10- 13쪽.
40) 예문동양사상연구원, 황의동 편저, 율곡 이이, 예문서원, 2002; 이동인,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백산서당, 2002, (목차참조)5-7쪽.
41) 이황에게서 정치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은 성학십도를 헌정하면서 술회한 “내가 나라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는 말로 대변된다. 또한 이것은 여러 번의 士禍를 거치면서 좁아진 이황의 정치적 입지와도 연관성을 가진다. 예문동양사상연구원, 윤사순 편저, 퇴계 이황, 예문서원, 2002, 213-214쪽.
특징적으로 율곡의 경우, 국방과 경제개혁에 대한 논의는 「東湖問答」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주된 내용은 과도하고, 불평등한 부역과 과세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율곡의 비판과 개선책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서 율곡이 밝히고 있는 당대 사회의 국방과 관련된 부역의 폐해는
“무엇이 역사불균(役事不均)의 폐단인가, 이른바 정군(正軍), 보솔(保率), 나장(羅將), 조예(皂隷) 등 부역(役)에 응하는 제원들을 장번(長番)을 세울 때 둘, 셋, 또는 여섯, 일곱으로 나누어 (불균등하게) 세우니, 어떤 이는 침포(侵暴)를 감당하지 못하여 도망가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며 자신을 보전하기도 한다. 모두가 나라의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것과 저것의 차별을 두어 괴로움과 즐거움을 다르게 한단 말인가.”42),
“그래서 전에는 백 집이 살던 마을에 이제는 열 집도 채 남아 있지 않고, 전에는 열 집이 살던 마을에 이제는 한 집도 남아 잇지 않아 마을이 적막하고 인적과 밥 짓는 연기가 끊어지지 않은 곳이 없다.”43)
는 말로 대변된다.
또한 불합리한 과세에 대한 폐해는
“진상을 많이 하는 폐단이 무엇인가 하면, 오늘날 진상이라 함은 모구가 임금께 바치기에 합당한 것이 아니다. 자질구레한 것들도 바치지 않는 것이 없고 물과 뭍의 산물을 빠짐없이 긁어모으지만 정작 御膳에 오를 만한 것을 추리면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옛 성왕은 한 사람으로써 천하를 다스렸지만 천하로써 한 사람을 봉양하지 않는다.”44),
“비록한 들판이 황폐해져 있는데 백성이 이를 경작하면 단 몇 마지기의 땅에 대해서 1백 결에 대한 세를 독촉하는지라 그저 보습을 둘러메고 응시만 하고 감히 개간을 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묵은 땅이 점점 넓어져 눈에 보이는 곳이 모두 황폐해진다.”45)
42) 栗谷全書 卷15, 「雜著二」, <東湖問答>, “何謂役事不均之弊, 今之所謂正軍, 保率羅將皁隷諸員, 凡百應役之類, 或立長番, 或分二番, 或分三番, 至六七番, 或不堪侵暴而逋竄, 或稍得安業而自保, 同是赤子, 有何彼此而使憂樂不同耶.”
43) 栗谷全書 卷15, 「雜著二」, <東湖問答>, “昔年百家之村, 今無十室, 前歲十家之村, 今無一室, 邑里蕭條, 人煙敻絶, 無處不然, 若不更張此弊, 則邦本顚蹶, 無以爲國矣.”
44) 栗谷全書 卷15, 「雜著二」, <東湖問答>, “何謂進上煩重之弊, 今之所謂進上者, 非必盡合於上供也, 細瑣之物, 莫不畢獻, 水陸之產, 搜括無遺, 而眞擇其可進于御膳者, 則亦無幾焉, 古之聖王, 以一人治天下,不以天下奉一人.”
45) 栗谷全書 卷3, 「疏箚」, <諫院陳時事疏>, “但今沃野荒蕪, 民有起耕者, 則纔飜數畝之土, 便督百結之稅, 故荷耜熟視, 莫敢開壤, 以此陳地漸廣, 極目蕭然.”
는 말로 대변한다.
이와 같이 율곡의 사회개혁의 내용은 국가의 불합리한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민의 고충을 해결하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의 제도적인 측면의 행정개혁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율곡은
“관리들은 태만하고 백성들은 어리석고 무디어 매번 재해로 인한 경작세를 면제하는 것을 명예를 삼고 있으니, …[생략]…, 어찌 국가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겠는가.”46),
“교활한 관노와 앙큼한 아전들이 사사로이 물건을 갖추어 두고…[생략]…, 비축한 물건으로 백배의 값을 받아내니, …[생략]…, 국가의 효용성에는 털끝 하나만큼의 보탬도 안되고, 민간의 살림은 텅비게 되었다. 만약 이 폐단을 고치지 않는다면 나라의 근본이 뒤집혀 나라를 다스릴 바가 없게 될 것이다.”47)
46) 栗谷全書 卷8, 「啓」, “吏怠民頑, 每以給災爲要譽之資, …[생략]…, 國用安得而不匱哉.”
47) 栗谷全書 卷15, 「雜著二」, <東湖問答>, “姦猾之隷, 桀黠之吏, 私備百物, …[생략]…, 然後索其百倍之價, …[생략]…, 國用不加毫末, 而民閒已空杼柚矣.”
는 말로 국가행정의 관료체계의 개편을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역과 세금에 관한 율곡의 비판은 군사는 물론 경제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사회의 문화에 관계하는 동시에 정치에 관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율곡에게 있어 국가의 모든 영역에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民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황이 지향하는 왕도정치의 기본 이념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왕도의 요점은 농사와 잠업에 있고, 사유의 신장은 의식에서 비롯된다. 백성들은 굶주리거나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야만 도덕 교화를 숭상하고 예의를 숭상할 것이다.”
는 이황의 말은 이상적인 성군의 정치가 실현된 상태를 대변한다.48)
그리고 이것은 왕의 정치적 목적은 安民과 爲民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상사회에 대한 인식은 도덕율의 당위성에 의해 촉발되기 보다는 현실에 대한 부정의 의식을 토대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이황의 논변은 현실사회의 실제와 당위의 가치가 가지는 괴리의 간극을 표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율곡에게서 나타나는 이상사회에 대한 인식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징적으로 이이는 하, 은, 주대 이래 선왕의 도가 완전하게 구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성을 인식하고 있다.49)
그리고 이이는 성군의 덕을 통한 이상정치의 구현만이 성리학의 정치 이념을 완수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이황과 달리 완전함이 (부분)결핍된 현실의 사회일지라도 仁義禮智에 의거하여 사회 나름의 질서를 유지해 간다면 그 사회도 왕도와 더불어 치평(治平)의 사회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少康의 개념을 사용한다.50)
48) 예문동양사상연구원, 윤사순 편저, 퇴계 이황, 예문서원, 2002, 219쪽.
49) 禮記, 「禮運第九」,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생략]…, 故外戶而不閉, 是謂大同, 今大道旣隱, 天下爲家, …[생략]…, 如有不由此者, 在埶者去, 衆以爲殃, 是謂小康.”
50) 이에 대한 보다 엄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小康과 少康에 대한 차이를 인지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 것은 현실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개혁하기를 희망하는 이이의 정치철학을 고려한다면 현실에 대한 부분 인정으로서 少康(다소 편안한)에 대한 의미부여는 충분한 맥락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와 연관된 선행연구로 강정인과 이종성의 논문이 있다. 강정인, 「율곡 이이의 정치사상에 나타난 대동(大同)ㆍ소강(小康)ㆍ소강(少康)-시론적 개념 분석」, 한국정치학보 44집, 한국정치학회, 2010, 13쪽; 이종성, 「율곡 대동사회론의 철학적 지향과 해석의 전 환」, 동서철학연구 81호, 한국동서철학회, 2016.
이것은 현실에 대한 실제성을 이념의 당위적 법칙성으로 질서화 하려는 기존의 유학자들과 다른 차이를 가진다.
다시 말해, 少康에 대한 인식이 전제된 이이의 현실 이해는 이념(가치)에 대한 해석보다 사실에 대한 인식이 강조된다고 말할 수 있다.
5. 새로운 사회의 이념으로서 실학의 전환 가능성
이이의 학문관과 더불어 정치활동 속에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실학과의 연계성을 논함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것은 이이의 학문관에 기초한 실천론 속에 ‘근대적 지향성’이라는 테제가 성립하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홍원식은 의리학과 예학으로 대변되는 修己으로부터 벗어난 경세치용의 治人이 오늘날 쟁점이 되고 있는 실학에 대한 논제임을 밝히며51) 북학파 실학자로 대변되는 홍대용의 학문관은 왕도론적 경제론을 견지하고 있는 이이의 주기론적 세계관과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52)
이 점에서 우리는 실학이라는 학문이 유효성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주요한 요소들에 대한 의미를 먼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로 실학의 학문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효용성(실효성)에 있다.
그리고 실학의 효용성은 현재라는 공간 속에서 발현되는 실질의 공효(功效)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실학은 술(術)에 대한 의미를 강조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서 본다면 앞서 제기한 ‘근대적 지향성’에 기초한 실학의 해석법은 총론의 측면에서 긍정될 수 있지만, 각론의 세부에서는 부합하지 않는 또는 설명될 수 없는 내용이 있다.
그 단적인 사례로 ‘근대’라는 개념은 시간에 대한 분기가 전제된 문화적인 개념으로 ‘근대’는 객관의 사실에 대한 내용이기보다 해석의 의미가 작용하는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근대의 기준은 해석자에 의해 언제든지 그 의미가 수정될 수 있는 임의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해명은 時宜에 기초한 務實의 경세론53)은 홍대용의 부국론54)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51) 홍원식, 「율곡학과 실학의 차별성에 관한 연구-홍대용 등 북학사 실학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43, 2011, 230-233쪽. 52) 홍원식, 「율곡학과 실학의 차별성에 관한 연구-홍대용 등 북학사 실학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43, 2011, 243쪽.
53) 栗谷全書 卷5, 「疏箚」, <萬言封事 >, “政貴知時, 事要務實, 爲政而不知時宜, 當事而不務實功, 雖聖賢相遇治, 效不成矣.”
하지만 이것이 실학인가에 대한 내용은 별개의 문제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실학이 가지는 학문의 특성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실질의 효용을 발휘할 때 비로소 개념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실학은 실리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넘어 실질적 행위의 내용까지 포함하는 실질적 효용의 실천(행위) 론을 강조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安民과 爲民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행위 되는 時宜에 기초한 務實은 홍대용의 경세론에 나타나는 安民의 부국론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다시 말해 국부의 확충을 통한 安民을 완성하는 것은 爲民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인 동시에 왕의 정치적 지위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맹자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최상의 덕치는 “백성들이 느긋하니 흡족해 하며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알지 못하는”55) 국가를 이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홍대용이 주장한 신분세습의 폐지와 함께 하는 四民制度 및 耕者有田에 기초한 균전제56)는 이이의 경세론이 가지는 지향점과 많은 부분에서 공유 가능한 접점을 가진다.
54) 홍대용의 부국론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부의 분배와 민생고, 그리고 낳은 생산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洪大容, 湛軒書內集 卷3, 「林下經綸」.
55) 孟子, 「盡心章句上」, “民日遷善而不知爲之者.”
56) 김인규, 홍대용,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사상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8, 193쪽.
더욱이 이황과 달리 (부분)결핍의 사회를 인정하는 이이의 少康 이상사회론에 기초해 볼 때 厚生의 安民을 위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행정체제의 개편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현실사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일상의 삶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대한 저항의 의식이 사회, 정치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북학파로 분류되는 홍대용, 박지원, 유득공, 박제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토지제도, 행정체제의 개편을 통한 厚生의 安民 도모는 일상의 삶에 대한 문제가 사회,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더욱이 四民制度의 신분제 개편이 가지는 사회적 실효성을 노동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생산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가는 것은 삶의 주체성을 확보해 가는 일련의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질서 속에서 북학파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제도개혁(사회적 균등의 평등성)은 사회, 정치적으로 제한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적 사고를 지향하는 이이의 제도개혁은 조선 후기 홍대용과 박세당의 현실 인식과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세계관이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이들이 역설하는 제도의 개혁이 안정적인 民의 삶을 위한 일상의 내용으로 일관된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내용과 형식을 갖는 民의 삶이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6. 결론
지금까지 조선시대 유학자의 사회개혁론에 나타나는 이상사회에 대한 인식을 권근과 정도전, 이황과 율곡, 홍대용과 박세당의 학문관과 사회개혁사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고려의 쇠퇴와 조선의 건국이라는 변혁의 역사를 함께한 권근과 정도전의 경우, 이들의 사회개혁에 대한 의지와 이상사회의에 대한 내용은 불교에 대한 비판과 입장의 변화에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권근과 정도전에게 있어 척불은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된다.
하나는 불가의 心과 도가의 氣에 대한 포섭을 통해 미흡한 성리학의 세계관을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불교와 도교의 사회적 폐단을 근절하기 위한 비판에 해당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安民과 爲民에 대한 명분을 토대로 시작된 척불론에서 부각되고 있는 民의 사회, 정치적 지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려말선초 정도전과 권근에게서 나타나는 척불에 대한 입장은 일관되지 않는다.
더욱이 정도전의 경우는 불교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급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불론을 필두로 하는 정주학적 성리학의 확장은 理를 중심으로 불가와 도가의 고유한 사유방식을 포섭하는 사상적 통일의 과정을 단행한다.
이 점에서 이색, 권근, 이이에 의해 특화되기 시작한 安民과 爲民에 대한 논의는 왕과 민의 정치적 관계구조를 새롭게 구조화시키는 토대를 마련한다.
그리고 爲民과 安民을 중심으로 하는 공론정치의 확대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사림의 성장을 독려하는 한편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확립을 독려하는 정치적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조선 유학사상에서 강화되고 있는 安民과 爲民의 정치론은 왕만(중앙집권적 절대군주체제)을 위한 정치논리로 귀결되지 않는다.
또한 이색과 정도전, 권근이 중심이 된 성리학의 수용에서부터 북학파로 분류되는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정립까지 安民과 爲民의 목적성을 담지하고 있는 조선 유학사상은 하나의 일관된 사상적 계보를 갖는다.
이 점에서 사회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문제의 해결을 실리적인 측면에서 시도하는 조선시대 지식인 관료들의 선진적인 학문하기는 실학사상을 정립시키는 사상적 토대가 된다.
더욱이 실제적인 사고의 형식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실학상은 현실에 대한 참된 앎(있는 그대로의 인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선진적인 지식인 관료들에 의해 제기된 爲民과 安民에 토대한 이상사회론에는 실존적 사유의 형식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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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요약
본 논문의 목적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사회개혁론에 나타나는 대동사회에 대한 인식 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爲民과 安民의 개념이 중심이 된 조선시대 유학사상의 발전과정에는 도가와 불가사 상에 대한 성리학의 비판과 수용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도가와 불교사상에 대한 성리학의 비판적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성리학의 외연 확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한 다.
이 점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이루어진 도가사상에 대한 비판적 해석의 수용은 도가와 실학사상의 학문적 연계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상기의 주제를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첫째, 유가, 불가, 도가의 융화(融化)적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선 유학사상의 발전과정과 비교하여 살펴본다.
그리고 이것은 고려시대 성리학의 수용에 서부터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과정 속에 나타나는 유가와 도가, 불가사상의 교섭(융 화)을 규명하는 작업이 된다.
둘째, 조선 초기 지식인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진 제도의 정비와 사회개혁에 대한 논 의를 安民과 爲民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조선시대 활발해진 언론과 공론의 정치 문화 속에서 강화된 安民과 爲民의 논리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이해관계(역학관계)의 권력구도를 형성하는 동시에 사회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셋째, 조선 유학자들의 사회개혁론에 나타나는 대동사회에 대한 인식을 분석한다.
이것은 조선 유학자들의 정치철학에 기능하고 있는 도가적 세계관에 대한 의미를 사상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도가적 세계 관의 수용과 변용은 이상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불어오는 계기가 된다.
주제어: 사회, 개혁론, 이상사회, 대동, 도가
【Abstract】
A Study on the Confucian's Perception of Society Reform and Daedong Society in Joseon Era.
Kim, Hee(Ulsan Univ.)
The purpose of this paper has been constructed on a study of cognitive perception of the Daedong society (Ideal Society) which is shown in reformism among Confucian scholars in the Joseon Era. In the development process of Confucius philosophy in the Joseon period in which the Wee-Min(爲民) and An-Min(安民) ideas held the central place, Neo-Confucianism was predicated on criticism and acceptance of Taoism and Buddhism. This points to the social extension of Neo-Confucianism through its criticism and acceptance of Taoism and Buddhism. Furthermore, from the fact that Silhak scholars’ critical understanding on Taoist thoughts was pervasive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can be proven that Silhak was academically affiliated with Taoism. For this, analyses of the study are divided into three domains. First, social meanings that the Confucian, Buddhist and Taoist conciliatory world view retain are examined by comparing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Confucius ideas in Joseon. This approach gives an explanation for an ideological negotiation (conciliation) among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hat is presented from the point of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in the Koryo Dynasty to the development of it in the Joseon Dynasty. Second, discursive argument over social reform, as well as institutional reform led by bureaucratcy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is analyzed around the concepts of Wee-Min and An-Min. This process attempts to investigate social meanings of reform which proceeded in the complexity of political dynamics. Third, the perceptive study of the Daedong Society materialized in the reformism by Confucian scholars in Joseon performs a task to isolate a Taoist world view embedded in their political philosophy. Keywords: Society, Reformism, Ideal Society, Daedong, Taoism
2019년 02월 07 접수 2019년 03월 18일 심사 완료 2019년 03월 22일 게재확정
동서철학연구 제91호, 2019. 3.
DOI: 10.15841/kspew..91.20190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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