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동파의 낭만과 취흥의 시가
1. 物我一體的 자연관
2. 道家的 隱逸
3. 達觀的 平常樂
4. 安分과 和平
Ⅲ. 추사의 절제와 관조의 시가
1. 淸靜과 閑暇의 美學
2. 外境과 內面의 조화
3. 物心一體의 경지
4. 실사구시와 주체적 자긍심
Ⅳ. 결론
Ⅰ. 서론
동파와 추사는 공통점이 많다.
예술적으로 시·서·화에 두루 능하고 사상적으로는 유·불·도에 두루 통하는 다방면에 걸쳐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다.
둘 사이의 직접적 교유는 시대 차이로 불가능하지만 평소 동파를 흠모한 추사는 동파의 서체를 모사하는 등, 시간을 초월해 간접적 소통을 이룬다.1)
1) 邊榮文은 동파의 추사에 대한 시각에 대해 “추사는 동파의 학문과 예술에 일찍부터 관심 을 보였지만, 동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간 계기는 젊은 시절 淸나라를 방문하여 평소 흠모 해마지 않았던 覃齋 翁方綱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邊榮文, 「東坡와 秋史의 書藝 美意識 比較硏究」,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6쪽.
한편, 둘은전도가 유망한 인재인데도 당파적 파쟁에 밀려 노년기를 유배지에서 보낸다.
추사는 유배된 자신의 처지를 동파의 해남도 유배생활과 비교하며 그 소회를시로 읊는다.
유배형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인 위리안치 형을 동파와 추사는 각각 절해고도인 해남도와 제주도에서 치른다.
그때 동파는 59세, 추사는 55로당시 기준으로는 고령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유배지의 악조건을 강인한 의지와 샘솟는 창작열, 부단한 자아수련을 통해 극복하고 시가·예술·사상등, 다방면에서 결실을 거둔다.
한편, 적소에서도 동파는 술을 즐기고, 도가의도사들과 어울리며 불교와 도교를 아우른 데 비해 추사는 불교의 승려들과 어울리며 차와 불교에 천착한다.
따라서 동파의 流配詩에는 술의 취흥과 불교를혼융한 도가적 체취가 강하고, 추사의 는 茶禪一如2)를 연상케 하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2) 茶禪一如는 선가에서 참선에 도움이 되는 차의 가치를 높이 이르는 표현으로 茶禪一味라 고도 한다.
본고는 다양한 장르에서 유사성을 공유하는 동파와 추사의 작품 중 流配詩를 통해 그들의 문학세계와 정신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流配詩 중에서도 동파는 술을 주제로 한 시에 집중하고, 추사는 차를 주제로 한 시에 집중해 연구한다.
둘 다 기본적으로는 술과 차를 즐겼고, 유·불·도에 해박한 지식인들이지만 술과 벗하며 한과 감흥을 다스린 동파는 불교를 혼융한 도가사상에 친숙하고, 평소 차를 애용한 추사는 불교적 색체가 강하기 때문이다.
술에 관한 시는 대개 풍류적 취흥과 낭만이 주조를 이룬다. 시에 담긴 마음의 품도 넉넉해지고 시인에 따라 언어의 격식이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대개 바깥을 향해 자신의 속마음을 진솔하고 격의 없이 드러내는 외향성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일상의 형식적 제약이나 긴장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자연스러운 일탈을 꿈꾸는 디오니소스적 체취가 강하다.
반면 차에 관한 시는 정신적청량감과 고요, 한가한 느림의 미학이 주조를 이룬다.
차를 말할 때 의례히 등장하는 茶禪一味나 茶禪一如가 차와 禪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데서도 다시(茶時)에 담긴 정신적 깊이와 품격을 헤아릴 수 있다.
유가나 도가에서는 차와 술 따로 없이 즐기는 데 비해 불가에서는 철저히 금주를 하며 그 자리를 차가 대신한다.
술이 대중적 기호식품인데 비해 茶道를곁들인 차는 고품격의 靈物에 가깝다.
음식물 섭취에 있어서 가리는 것이 많은 불가에서 차는 예외로 애용하는 데서도 차의 정신적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불가의 스님들 시에 茶詩가 많은 데 비해 유가나 도가 계열 시인들의 시에는 술과 그 취흥을 다룬 시들이 많다.
속세에서 유·불·도를 아우른 시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술에 관한 시를 불에 비한다면 차에 관한 시는 정화수에 비할 수 있다.
술에관한 시를 흐르는 물에 비한다면 차에 관한 시는 청정호수에 비할 수 있다.
술에 관한 시가 감정의 폭을 확장한다면 차에 관한 시는 정신의 깊이를 심화한다.
그럼으로써 범상치 않은 정신적 높이를 선보인다.
그렇다고 이런 비유가반드시 불변의 상수일 수는 없다.
술을 마시면서도 절제와 균형을 지키면 다시못지않은 정신적 경지를 담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파의 시에 술에 관한 시와 차에 관한 시가 공존하는 것처럼 추사의 시에도 차를 다룬 시 뿐 아니라 술을 다룬 시, 그리고 술과 차를 동시에 다룬 시들도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시 중에 술과 차뿐 아니라 다양한 소재와 배경을 주제로 한 시들도 많다.
그럼에도 굳이 둘의 시를 술에 관한 시와 차에 관한 시로한정해 다루는 연유는 그들의 문학적 특성을 헤아리기 위한 기준으로 술과 차가 함의하는 상징성을 빌리고자 해서다.
유·불·도에 두루 통달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회통시킨 동파에게 술과 차는대부분의 시인들이 동시에 애용한 것처럼 공통의 기호품이었다. 기본적으로유학자이며 불교를 섭렵한 추사가 술과 차를 가리지 않고 시의 소재나 배경으로 삼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다만 본고는 이들이 시를 추구한 성향에 있어서 술의 속성에 가까운 낭만적취흥이 주조를 이루는 동파의 경우와 차의 특성이 주조를 이루는 추사의 시적경향에 주목하고, 동파는 술에 관한 시를, 추사는 차에 관한 시를 텍스트 삼아각각 변별적 시각에서 그들의 시세계를 조명해 보려고 한다.
이에는 불교를 융합해 도가적 일상을 추구한 소식의 취향과, 유가적 바탕을 견지하면서도 불교 에 깊숙이 접근한3) 추사의 정신 세계적 특징이 구심적 역할을 한다.
3) 완당전집에서 추사가 그 내용을 거론한 경전으로 금강경오가해, 능엄경, 능가경, 유 마경, 관음경, 화엄경, 법화경등이 있다. 추사는 「반야심경」을 사경한 뒤, 사경으로 인 해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번뇌로 들끓는 마음이 항상 청정해지기를 바란다고 하며 사 경을 수행의 한 방편으로 취하고 있다. 류호선, 「불교사학(佛敎史學) 및 응용불교(應用佛敎) : 추사 김정희의 불교시 연구」, 한국 불교학 제46권, 2006, 528쪽.
동파는 적벽부에서 보듯 유배지에서 주로 도가적 인사와 어울리며 초현실적 낭만과 자연친화적 전원생활을 추구했다.
반면, 추사는 유배지에서 다산, 초의, 소치 등 불교에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한국 차의 중흥기를 이룬 茶人이기도 한 이들과의 교유 속에서 불교와 차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소식의 불교와 도가가 혼융된 도가풍의 시에는 술의 낭만적 취흥이 담겨 있는데비해 추사의 시에는 불교적 관조와 성찰을 함유한 차의 특질이 내재되어 있는점에서 둘 사이에 일련의 정서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술과 차의 특성이 둘의 시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파가 낭만적 도가풍의 시가 술의 취흥과 어울린다면 추사의‘실사구시’며 관조적인 시는 차의 속성과 어울리는 변별성을 지니고 있다.
동파와 추사에 관한 연구는 많은 편이다.
또 둘을 비교한 연구도 상당수에 이른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문학이나 사상적으로 수준 높은 경지에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추사가 동파를 흠모하고 후학으로 시대와 국경을뛰어넘어 유작을 통해 시·서·화를 익힌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추사에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서화나 불교, 금석학에 관한 것들이고 시문에 관한 연구는 드문 편이다.
이는 대문장가로 꼽히는 동파가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동아시아에서도 그의 문학이 텍스트로 학습되어 온 데 비해, 추사는 문학보다는 서화 분야로 그 장르가 분류되어 온 데 따른 여파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동파는 문학적 위상이 높은 데 비해 추사는 문학보다도 서화에 후세의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또 그들이 사상적으로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의 연구는 그들을 본격적인 사상가로는 보지 않고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의 공헌도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동파와 추사는 사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와 같은 동파와 추사의 정신세계와 사상을심층적으로 이해할 때, 시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다.
아울러 둘의 시에 대한연구는 동파에게는 그의 문학세계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이며, 추사에게는 지금까지 소홀했던 그의 문학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술의 순서는 소식을 앞서 다루고, 추사를 뒤 따라 다루기로 한다.
연대기적으로 한참 앞설 뿐 아니라 추사에게 시·서·화에 걸쳐 깊은 영향을 준 소식을먼저 다루고 추사를 뒤에 다루는 것이 논고를 진행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Ⅱ. 동파의 낭만과 취흥의 시가
동파는 중국의 대표적 시인 중 하나다.
시뿐 아니라 詞, 賦, 산문, 우언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전 장르에 걸쳐서 다양한 경지를 개척한다.
또 서예와 회화에서도 독창적 예술성을 발휘한다.
그런데 동파의 문학을 다룰 때면 그의 유배지에서의 창작활동을 빼 놓을 수 없다.
적벽부를 비롯한 유배지에서의 작품은 소식 문학의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동파는 황주에 있을 때부터 불교와 도가철학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는 해주와 해남도에서 그의 사고와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가의 도사들은 修道는 修心이며 修心은 修道다.
따라서 마음의 청정이 수행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4)
불교의 핵심 요지 역시 수심이며 청정은 그 마음자리이다.
그런데 도가의 도사들 역시 수심과 청정을 수행의 제일 과제로 삼았다.
내면을 다스리는 데 불교와 도가가 따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식의 아우 소철도 도가의 淸淨과 반야심경은 비슷하다고 했다.
이는 도가와 불교의 수련법에 큰 차이가 없음을 의미한다.5)
4) 任繼兪 저, 권덕주 역, 중국의 유가와 도가, 1993, 486쪽.
5) 임어당, 소동파 평전, 지식산업사, 1990, 128쪽.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유배생활은 궁핍과 고독이 주요 정서를 이룬다.
따라서 암울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사유의 무대를 상상의 세계로 옮겨 범속한 인간세계와는 거리가 먼 초현실의 세계를 그린다. 또 우주자연과의 소통을 통해 세속의 비루한 현실로부터 초연한 달관의 경지를 추구한다.
일찍이 장자는 인간의 평상적 사고로는 넘보기 어려운 비유를 통해 초현실적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리하여 인간의 협소한 안목을 깨고 근원적 이치를 돌이켜보게 한다.
동파는 장자의 도가사상과 우주적 상상력을 대입해 호쾌하고 낭만적인 시세계를 펼치는데 술은 그 윤활유 역할을 한다.
한편, 자연친화적 전원생활을 통해 심신을 정화하고, 현실의 부조리와 욕망으로 부터 초연한 일상의 평안을 노래한다.
동파는 불교적 수행과 도가적 수련을 통해 꾸준히 현실적 욕구와 번뇌를 털어내고, 잡다한 일상사에 초연한 평상심을 누린다.
그리하여 황주나 해주 유배지에서는 유가적 명리에서 벗어나 도가적 전원생활을 꿈꾼다.
또 해남도 유배지에서는 잡다한 현실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초월자의 모습을 보인다. 동파는 적벽부를 비롯한 많은 시문에서 도가적 체취가 짙은 우주적 상상력을 발휘해 초현실 세계를 수놓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망각이나 도피의 공간이 아니라 새롭게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절실한 당면과제로 주어진다.
그는그 과제의 수행 방법으로 꾸준한 수련과 자연친화적 전원생활을 택한다.
그리고 이를 시문에 담아내 낭만적 색체를 강화한다. 여기에 술의 취흥도 한 몫 거들게 된다.
1. 物我一體的 자연관
아래의 시6)는 동파가 황주에서 쓴 시인데 해당화를 보고 자신을 해당화에빗대어 동일화하고 있다.
6) 소식 저, 유종목 역, 소동파 시집. 2,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2, 668쪽.
자연에 대한 섬세한 시선과 정취가 돋보이는 서정으로 그의 자연에 대한 친밀감을 절로 실감케 한다.
나아가 자연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노장사상이 사유와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江城地瘴蕃草木 강을 낀 황주 땅 습기 많고 초목 무성한데
只有名花苦幽獨 오직 이름난 해당화 매우 쓸쓸히 보이더라.
嫣然一笑竹蘺間 대울타리 사이에서 빙긋 한 번 웃으니
桃李漫山總粗俗 온 산 가득한 桃李꽃은 모두 거칠고 촌스럽게 보인다.
也知造物有深意 분명히 알겠도다. 조물주께서 깊은 뜻 있어
故遺佳人在空谷 일부러 佳人을 이 텅 빈 골짜기에 보낸 것임을.
自然富貴出天姿 자연스럽고 부귀한 모습은 하늘이 낸 자태이니
不待金盤薦華屋 금 쟁반에 담아 화려한 집에 모셔 놓을 것도 없다.
朱脣得酒暈生臉 붉은 입술 술 마신 듯 발그레 두 볼 상기되고
翠袖券紗紅暎肉 푸른 소매 엷은 비단 말아 올리니 붉게 살이 비친다.
林深霧暗曉光遲 깊은 숲에 안개 자욱하여 새벽 빛 늦어 날 샌 줄 모르는데
日暖風輕春睡足 날은 따뜻하고 바람은 살랑대어 봄잠 무르녹더라.
雨中有淚亦悽愴 빗속에 눈물 있어 또한 꽃은 더욱 처량하고
月下無人更淸淑 달빛 아래 사람 아무도 없으니 더욱 청초하다.
先生食飽無一事 선생은 배불리 먹고 할 일 하나도 없어
散步逍遙自捫腹 이리저리 거닐며 자기 배를 문지른다.
不問人家與僧寺 남의 집이건 절간이건 물어 보지도 않고
拄杖鼓門看修竹 지팡이짚고가서문을두드리고길게자란대를구경한다.
忽逢絶艶照衰朽 갑자기 절색가인이 노쇠한 내 몸 비추자
歎息無言揩病目 탄식하며 말없이 어두운 눈만 씻는다.
陋邦何處得此花 누추한 고장에 어디서 이 꽃이 났을까?
無乃好事移西蜀 호사가가 서촉 땅에서 옮겨온 게 아닐까?
寸根千里不易致 한 치의 뿌리라도 천리 길을 옮겨오기 쉽지 않으리니
銜子飛來定鴻鵠 씨를 몰고 날아온 건 틀림없이 따오기 일게다
天涯流落俱可念 하늘 먼 곳 흘러온 너나 나나 다 외로운 처지.
爲飮一樽歌此曲 한 동이 술을 마시며 이 곡조를 노래하네.
“也知造物有深意 분명히 알겠도다. 조물주께서 깊은 뜻 있어/
故遺佳人在空谷 일부러 佳人을 이 텅 빈 골짜기에 보낸 것”
이라는 구절은 비록 유배당한 처 지이지만 이조차도 우주자연의 조화로 헤아리는 도가적 긍정의 철학이 바탕을이루고 있다.
서촉은 자신이 꿈속에서도 그리는 동파의 고향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와 머나먼 오지에 유배 중인 자신이나 해당화를 동병상련의 관계로 설정한다.
그러나꽃이 외로울 리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연과의 소통에 일가견을 지닌 그가모를 턱없다.
그러기에 이 외로움은 통상의 언어가 아니다.
해당화, 즉 자연과의소통의 창구인 것이다.
그는 외로움을 언어로 자연에의 친밀도를 높인다. 그리고마침내 외로움을 떨쳐내고 해당화와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한 동이 술을 마시며 이 곡조를 노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술은 자연과의 동화에 취한 것을 말한다.
그는 처음에는 자연과의 소통에 자신의 감정을 매개로 다가가지만 종국에는달관과 탈속의 경지에 이르러 자연의 언어, 즉 우주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동파는 불가와 도가 경전을 두루 섭렵해 받아들이고 스님, 도사와 끊임없이의견을 교환했다.
그중에는 100세를 훌쩍 넘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장수하는 도사들도 있었다.
동파의 암울한 현실은 유가적 수신의 윤리 지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자연과 소통하며 그 속에서 자족과평안을 회복할 수 있었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은 그 텍스트요 효시였다.7)
7) 소철은 형 소식의 철학적 사유에 대해 ”형님은 문장에 있어 하늘에서 그것을 얻었다. 어려 서 나와 함께 모두 아버지를 스승삼아 처음에는 古今의 治亂을 논함에 있어 空言을 하지 않았던 賈誼와 陸贄의 논저를 좋아했다. 얼마 후 ≪莊子≫를 읽고서 탄식하며 “나는 예전 에 마음속으로 알기는 하였으나 입으로 표현을 못했는데, 지금 ≪莊子≫를 보니 내 마음 에 꼭 드는구나.”라고 하였다. 이내 〈中庸論〉을 지었는데 그 말은 미묘하여 모두 고인이 깨치지 못한 것이었다.…… 후에 불가의 책을 읽게 되자 實相을 깨닫게 되었고, 공자와 노 자를 더하니 널리 사물에 통하여 막힘이 없고 넓어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公之於文, 得之於天. 少與轍皆師先君, 初好賈誼, 陸贄書, 論古今治亂, 不爲空言. 旣而讀≪莊 子≫, 喟然歎息曰, “吾昔有見於中, 口未能言. 今見≪莊子≫, 得吾心矣.” 乃出〈中庸論〉, 其 言微妙, 皆古人所未喩.…… 後讀釋氏書, 深悟實相, 參諸孔, 老, 博辯無) 고 말하고 있다. 蘇轍, ≪欒城集≫, 卷 二十四, 〈亡兄子瞻端明墓誌銘〉
아래의 시는 황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쓴 작품인데 아직 유배의 한이 채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기 시작하는 정황이 운치 있게 묘사되어 있다
.<定惠院寓居月夜偶出>8)
8) 소식 저, 유종목 역, 앞의 책, 673쪽.
幽人無事不出門 근심 깊은 사람 일없어 문밖출입 않다가
偶逐東風轉良夜 우연히 동풍을 쫓아 깊은 밤에 배회하네
參差玉宇飛木末 들쭉날쭉한 처마는 나무 끝에서 어른거리고
繚繞香烟來月下 굽이굽이 향불 연기 달 아래 이른다.
江雲有態淸自媚 강 위의 구름, 모습이 있으나 없는 듯 맑고 교태롭고
竹露無聲浩如瀉 대나무에 맺힌 이슬, 소리는 없으나 와락 쏟아지네
已驚弱柳萬絲垂 여린 버들가지 만 가닥 드리웠는데
尙有殘梅一枝亞 아직도 남아 있는 매화 한 가지 낮게 드리웠네
淸詩獨吟還自和 맑은 시 혼자 읊조리고 혼자 화답하는데
白酒已盡誰能借 백주(白酒) 벌써 떨어졌으니 누가 채워줄까?
不惜靑春忽忽過 청춘 홀연 지나가는 것은 아쉽지 않으나
但恐歡意年年謝 즐기는 마음 해마다 쇠할까 두렵네
自知醉耳愛松風 취한 귀가 솔바람 아끼는 것 아노니
會揀霜林結茅舍 서리 맞은 숲에 터를 잡고 초가집을 지으리
浮浮大甑長炊玉 모락모락 시루엔 늘 고두밥 찌고
溜溜小槽如壓蔗 똑똑 떨어지는 소줏고리는 사탕수수 짜는 것과 같겠네
飮中眞味老更濃 나이 들수록 술맛을 진정 알아가지만
醉裏狂言醒可怕 취중의 거침없는 말, 술 깨면 두려워지네
閉門謝客對妻子 문 닫아걸고 객 물리쳐 처자식만 대하고
倒冠落佩從嘲罵 의관 복장 벗어 던지고 마음껏 조롱하고 욕하네
자연 친화는 자연과의 동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 중심의 오만을 떨치고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도가사상의 핵심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에 있다. 노자는 불화와 고통, 번뇌가 끊이지 않은 세속생활의부조리한 요인을 자연의 이치를 외면한 인위적 욕망으로 진단한다.
그리고 이의 해결책으로 무위 자연, 즉 자연의 순리에 따를 것을 제시한다.
이는 우주의 질서인 천지의 道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2. 道家的 隱逸
동파는 아래의 시에서 자연과의 동화를 장자의 호연지기를 빌려 노래하고있다.
<水調歌頭․黃州快哉亭贈張偓佺>9)
9) 소식 저, 유종목 역, 위의 책, 702쪽.
落日繡簾捲 해가 기울어 비단 주렴 걷어보니
亭下水連空 정자 아래 長江은 하늘과 닿아 있다.
知君爲我 그대 나를 위해 새로 지은 정자
新作窓戶濕靑紅 창문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청홍색 칠.
長記平山堂上 平山堂의 일은 지금도 기억나고
攲枕江南煙雨 누워서 바라보던 강남의 안개비
渺渺沒孤鴻 아스라이 사라지던 외로운 기러기.
認得醉翁語 醉翁이 한 말처럼
山色有無中 멀리 산들은 보이는 듯 사라진 듯.
一千頃 일 천 이랑의 드넓은 강물
都鏡淨 거울처럼 맑기만 한데,
倒碧峰 그 속에 푸른 산이 거꾸로 잠기더니
忽然浪起 갑자기 파도가 일어
掀舞一葉白頭翁 일엽편주의 백발노인을 춤추게 한다.
堪笑蘭臺公子 蘭臺令 宋玉은 우습게도
未解莊生天籟 莊子의 天籟를 알지 못하고
剛道有雌雄 바람에 雌雄이 있었다고 하였었지.
一點浩然氣 한 점의 호연지기
千里快哉風 천리의 상쾌한 바람이여!
노자의 삶의 방식은 은자적 취향에 가깝다.
세상의 영욕과 일정한 거리를두고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순수한 자아 본위의 삶이다.
그러나이는 단순한 소외가 아니라 인간사회보다 광범위하고 순수한 자연계와 사이좋게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인간세계의 협소한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광활하고근본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열린 사고인 것이다.
동파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키지는 않았다.
강압에 의해 유배지에 격리되었을 뿐이다.
비록 타의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는 노자의 은자적 삶을 닮게 된다.
유가의 출세 지향적 길이 차단되고 가족 친지와의 거래조차 끊어진 마당에 그가 추구할 삶의 선택지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
내면세계로 침잠해 고통스러운 마음을 달래거나, 현실 밖 외경, 즉 우주자연과의 교유를 통해현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만이 유일한 통로였다.
장자는 무궁한 우주의 영역으로 인생을 끌어올려 유한의 세계에서 발생하는차이와 갈등 모순을 문제 이전의 상태로 환원시켜 문제 자체를 해소해 버린다.10)
10) 위의 책, 44쪽.
이와 같은 장자의 우주적 시야는 유배지의 동파의 시에서 탈현실적 낭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해 창작 의욕을 북돋운다.
위의 시에서 동파는
“정자 아래 長江은 하늘과 닿아 있다.”
고 자신이 속한 정자와 長江, 우주가 하나의 道로 통하는 일체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일 천 이랑의 드넓은 강물/ 거울처럼 맑기만 한데/ 그 속에 푸른 산이 거꾸로 잠기더니/갑자기파도가 일어/일엽편주의 백발노인을 춤추게 한다.”
고 그 깨달음의 묘미와 그에따른 내면의 환희를 만끽하고 있다.
아래의 시에서도 동파는 도가적 공간과 시간관념으로 종횡무진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遷居>11)
11) 蘇軾詩集, 卷 五十八
吾生本無待 내 삶은 본래 기다릴 것이 없으니
俯仰了此世 순식간에 이 세상 마치겠구나.
念念自成劫 생각마다 겁이 되는데
塵塵各有際 먼지마다 각기 세계가 있다.
下觀生物息 아래로 생물이 숨 쉬는 것을 보니
相吹等蚊蚋 내쉰 숨 모기와 같구나.
“생각마다 겁이 되고 먼지마다 각기 세계가 있는”
대목은 장자를 방불케 하는초현실적 상상력의 극치로 동파의 시세계를 한층 깊고 넓게 확장해 주고 있다.
3. 達觀的 平常樂
혜주 유배지에서 쓴 아래의 시는 도연명의 <歸園田去其一>을 화운한 것인데, 도가적 달관에 의한 평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소식의 현실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和陶歸園田居)六首>중 其一12)
12) 소식 저, 유종목 역, 앞의 책, 732쪽.
環州多白水 고을을 둘러싸고 맑은 물이 많은데
際海皆蒼山 바다의 끝을 보면 모두 푸른 산이네
以彼無盡景 저 끝이 없는 경치에다가
寓我有限年 내 유한한 생애를 부치자꾸나
東家著孔丘 동쪽 집에는 공자가 살고
西家著顔淵 서쪽 집에는 안연이 산다
市爲不二價 이 시장의 가격이 고정되어 있고
農爲不爭田 농부는 밭을 위해 싸울 일이 없네
周公與管蔡 옛날 주공은 형제 관숙(管叔), 채숙(蔡叔)과 恨不茅三間 .초가삼간에서 함께 살지 않았음을 한탄했다지
我飽一飯足 나는 밥 한 그릇에도 배부르고
薇蕨補食前 식전에는 고사리로 보충한다
門生饋薪米 문하생들이 쌀과 땔감을 보내 주어
救我廚無煙 부엌에 연기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鬪酒與只鷄 술 한말 과 닭 한 마리를 가지고 취해
酣歌餞華顚 노래하며 남은 여생을 보낸다
禽魚岂知道 새들과 물고기가 어찌 도를 알겠어
我適物自閑 내가 자유자재 하니 모든 사물도 스스로 한가롭도다
悠悠未必爾 유유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聊樂我所然 강제로 하지 않고 그럭저럭 즐기면 살겠구나
“내가 자유자재 하니 모든 사물도 스스로 한가롭다”는 구절은 이 시의 압권이다.
여기에는 자연친화적 정서와 도가적 수련으로 단련된 소식의 자연관이고차원이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너와 나, 자연과 인간, 자연과 우주의 도 사이에 걸림이 없고 구속이 없는 경지야 말로 가장 이상적 삶을 누릴수 있는 일상적 지혜의 진수인 것이다.
동파는 <醉白堂記>에서 韓忠獻을 찬미하며 장자처럼 매사에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견주고 있다.
여기에는 도가적 수행에 따른 자신의 처지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뜻을 이룬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의 절개를 바꾸지 않고 도덕은 옛 사람보다 고 매한 것은 韓公과 白公이 공통적으로 갖춘 바이다. 韓公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 하지 않고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자기와 白居易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방면에 몸을 의탁하려고 한다.
그가 술을 마실 때면 得과 失을 구분하지 않고, 禍와 福을 잊어버리며, 貴賤을 나누지 않고, 어짐과 어리석음 도 분별하지 않고 萬物을 동일하게 본다.
또 天地 自然에 노닐면서도 결코 자신을 白居易와 비교하지 않는다.13)
13) 위의 책, 752쪽.
동파는 황주유배지에서 주석한 東坡易傳에서 자기관리를 위한 수단으로끊임없는 운동을 말하고 있다.
하늘이 어찌 ‘강하기’ 때문에 ‘굳건할 수’ 있겠는가?
‘쉬지 않기’ 때문에 굳건할 수 있다.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고 사용하는 기구는 벌레 먹지 않는다.
그러므 로 장중하고 공경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락하고 방사(放肆)하면 날로 구차해진다.
강해지면 나날이 자라고 구차해지면 날로 사라진다.
[夫天, 豈以剛故能健哉! 以不息故健也. 流水不腐, 用器不蠱, 故君子莊敬日强, 安 肆日婾. 强則日長, 婾則日消]
동파는 변화무쌍한 운동 속에서 우주자연의 순리를 구하는 노장의 사상을한 구절로 집약해 놓고 있다.
장중하고 공경하면 강해지고 안일하면 구차해진다며 늘 흐르는 물처럼 절제의 끈을 놓지 말라.14)는 것이다.
14) 蘇軾, 龍吟 注評, 東坡易傳 15쪽. 15) 蘇軾 저, 曹圭百 譯註 蘇東坡 詞選, 문학과 지성사, 2007, 277쪽.
4. 安分과 和平
다음 작품은 1082년 황주 유배지에서 지은 것으로 詞에 해당하는데, 생사에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일상의 안분을 취하는 현실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滿庭芳>15)
蝸角虛名 달팽이 뿔에서 다투는 허망한 명예
蠅頭微利 파리 머리만한 조그만 이익
算來著甚乾忙 따져보면 무엇 하러 쓸데없이 바쁜걸까
事皆前定 만사가 다 미리 정해져 있거늘
誰弱又誰强 누가 약하고 또 누가 강하랴
且趁閒身未老 한가한 몸 아직 늙지 않았을 때 잠시 동안
儘放我些子疏狂 자유분방하게 마음껏 좀 즐겨야지
百年裏 백년 인생에
渾敎是醉 날마다 취한다 해도
三萬六千場 삼만 육천 번이니
思量 생각해 보세
能幾許 얼마나 된다고
憂愁風雨 우수와 비바람이
一半相妨 절반은 방해하거늘
又何須 또 무엇 때문에
抵死說短論長 죽기로 작정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까
幸對淸風皓月 다행히도 청풍명월을 대했으니
苔茵展雲幕高張 이끼 자리 깔고 구름을 장막처럼 펼쳐보세
江南好 강남은 좋을시고
千鐘美酒 맛있는 술 천 잔에
一曲滿庭芳 滿庭芳한 곡을 부르자
인간사에서 이익이나 명예를 구하는 것은 기껏 달팽이 뿔 위에서 다투는 헛된 짓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부질없는 시비를 따질 것인가 묻는다.
그리고 알고 보면 만사는 이미 운명대로 정해져 있는 만큼 그에 따라 분수를 지키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안분지족의 일상적 지혜를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짧은 생의 태반을 그조차도 우수와 비바람이 방해하는 마당에 나머지시간이나마 제 뜻대로 편안하게 살아보아야 할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해남도에서 유배가 풀려 배를 타고 경주해협을 건너면서 지은 아래의 시에서
“이런 절경 노닐기는 평생 처음이라고”
노래하는 대목에는 그의 동심어린 낙천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六月二十日夜渡海>16)
16) 吳戰壘 著, 유병례 譯, 중국시학의 이해, 태학사,
參橫斗轉欲三更, 삼성 기울고 북두칠성 돌아 새벽이 오려하니,
苦雨終風也解晴. 성가시던 비바람도 멎을 줄 아는구나.
雲散月明誰點綴, 구름 걷히고 달빛 환하니 누가 아름답게 만든 걸까,
天容海色本澄清. 하늘과 바다 모습 본래 깨끗하였다네.
空餘魯叟乘桴意 공자님 뗏목 타시려던 심정 부질없이 흘러넘치고,
粗識軒轅奏樂聲. 훤원씨 주악 소리 대강 알듯 하도다.
九死南荒吾不恨, 황량한 남쪽 땅에서 백번 죽어도 후회 않으리니,
茲游奇絕冠平生. 이런 절경 노닐기는 평생 처음이라네.
“삼성 기울고 북두칠성 돌아 새벽이 오려하니/성가시던 비바람도 멎을 줄아는구나.”
라는 구절에서는 자연의 이치에 대한 확신이 그의 내면세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주해협의 빼어난 풍치도 취흥을 북돋우지만, 그보다
“하늘과 바다 모습 본래 깨끗하였으니/ 황량한 남쪽 땅에서 백번 죽어도 후회 않으리라”
는 우주자연의 본질을 꿰뚫어 본 지혜가 돋보인다.
Ⅲ. 추사의 절제와 관조의 시가
추사는 영조의 딸 화순옹주의 증손자이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와는 친척관계인 노론의 명가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처럼명문세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접하게 된 추사는 출세가도와 학문적 열정을 펼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당쟁의 여파로 일시에 가문이 된서리를 맞는 비운에 처하게 된다. 당시의 나이로 장년기를 지나 차츰노년기에 접어들 시기에 절해고도에 기약 없는 위리안치를 당한 것이다. 이를테면 극에서 극으로의 추락이었다. 그는 생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당장의 울화와 심신의 고통을 다스려야만 했다. 이는 유가적 관습과 실학적 현실성으로 무장된 그가 졸지에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단초이자 무상을 깨우쳐 탈속의 경지를 추구하는 불교에 급속히 기우는 계기로 작용한다. 또 추사는 여덟 살 때 자신의 의지와 달리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가면서어린 나이에 친부모와 헤어져 사는 아픔을 겪는다. 이어서 어머니의 죽음, 첫째 부인의 죽음, 양아버지의 죽음, 스승 박제가의 죽음 등 차례로 사랑하는 인 216 韓國詩歌文化硏究 第47輯 연들과의 이별을 감내하게 된다. 또 정치적 핍박으로 제주도에서의 해배 후에도 다시 함흥으로 적소를 옮기는 파란 많은 노년기를 보낸다. 성격형성기와 사춘기, 노년기 등 중요한 시기마다 그는 정상적인 사고와 정서를 방해하는 상실의 아픔, 고독 등 심리적 압박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유가적 기본정서와 실학자적 학문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심하게 배척 받던 불교에 심취하고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른 심리적 동인일수 있다. 차와 술은 동양에서 보편적 기호음료로 애용해 왔다. 술이 유가와 도가에서통용된 기호품이라면 차는 불가의 기호품이었다. 정신을 청정하고 온전하게다스리는 것이 목적인 불가에서는 졸음을 쫒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차를 상용한 반면, 심신을 혼미하게 하는 음주는 철저히 금지해 왔다. 반면 유가와 도가에서는 음주를 통해 친화를 다지고 지나치게 경직된 격식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음주는 허용해 왔다. 한국과 중국의 시인 중 대표적 애주가로 통하는 정철과 이백을 꼽을 수 있는데 정철은 유학자요 이백은 신선사상에 심취한도가적 성향을 보인다. 유배지에서 도가적 성향에 기울던 동파 역시 적벽부를비롯한 다수의 시에 음주로 인한 취흥이 곁들여져 있다. 한국에서는 유학승들이 중국의 선가에서 차와 다도를 도입해 각각 독자적차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불교를 배척한 조선에 이르러서 차 문화가 급격히쇠퇴하고 관혼장제나 손님 접대 시에도 술이 보편화되었다. 불교의 쇠락과 동시에 쇠퇴의 길을 걷던 차 문화는 조선 후기에 와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다. 그 중심에는 유배지의 적소에서 유달리 차를 사랑한 다산과 추사가 있었다. 여기에 차 문화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초의와 혜장17)이 가세해 한국 차 문화의 신바람을 일으킨다. 추사는 초의와 막역한 우정을 나누었는데 차가 그 매개역할을 했다. 추사는 유배지 제주도애서 해남의 초의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그 대부분 주제가 차일 정도로 차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이는 그의 불교에 관17) 다산초당과 가까이 있는 백련사의 주지스님으로 다산과 교유가 깊었고 차에도 조예가 있 었다. 동파와 추사의 유배시 비교 연구 217 한 지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추사는 초의를 만나기 전부터 차를 마셨다. 20대에 청나라에 갔을 때도 차접대를 통해 다담을 나누었으며 그 이전에도 차에 대해 나름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차에 각별한 애착을 보인 것은 제주도에 유배 온 뒤부터였다. 다산이 위장병을 치료하는데 차를 사용했듯이 추사도 차를 기호음로뿐 아니라 약으로도 음용했다. 정신 수양 차원의 효험에 더해 차의 약리적효과에도 두 실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입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차를 주제로 많은 시를 남겼다. 여기에서 차를 주제로 했다는 것은차의 물질적 가치에 주목했다기보다는 그 정신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음을말한다. 예컨대 다산이“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고 주장했을 때의 차가 지닌 특유의 정신문화적 가치를 말한다. 본 연구는이와 같은 시각에서 추사의 茶詩를 텍스트로 그의 시적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추사의 茶詩가 그의 시적 가치와 경지를 어떻게 높였는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1. 淸靜과 閑暇의 美學
淸靜과 閑暇는 다도의 핵심 요소다. 여기에서 淸靜이 심리적 공간의 해방을이른다면 閑假는 시간으로 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세속의 번거로움에 찌든 정신을 맑고 고요하게 다스리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한가로운 담소의 자리를 마련해 자신과 서로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는 데 음다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유·불·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론으로 삼아온 정신수양은 靜的인 분위기에서 허상을 비우고 근본에의 몰입을 추구하는 것을 이른다.
자기성찰과 삶에 대한 진지한 숙고에 靜的인 분위기는 필수적이다.
맑고 고요함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안정은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게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도 맑고 고요한 마음가짐은 선결조건이다. 그래야만 자신을 질서정연하게 추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빚고 마시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점은 차와 즉석음료와의 차이이다.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차를 빚고 마시는 것은 한가한 놀음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차가 지닌 강점은 그 느림에 있다.
희로애락이 수시로교차하는 인간사에서 절실히 필요한 자기 정화의 수단으로 차가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주함 속의 한가야말로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명제이다.
飮茶에는 맑은 물을 끓여 식히고, 다기를 꺼내 깨끗이 닦고, 마시고 나서는깨끗이 씻어 거두어들이는 과정이 담겨있다.
남이 우려서 내어주는 차를 물이나 커피 마시듯 하는 것은 진정한 飮茶가 아니다.
차를 마시는 것은 차를 우려내는 과정조차 함께 마시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飮茶에는 차를 마시고자하는 자신의 청정한 마음 상태가 중요하다.
차 맛은 청정하고 여유로운 마음의 맛이다.
혀끝으로 느끼는 맛이 아니다. 마음의 맛은 멋으로 승화되어진다.
멋스러움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따라서 입으로만 느끼는 차를 찾다보면 차를 마시는 의미를 잃게 된다.
아래의 시는 추사의 서화에 새겨진 구절인데 淸靜과 閑暇의 미학적 진수를음미하게 한 다.
또 그 격과 깊이에서 탁월한 절제와 함축미를 선보이고 있다.
<茶半香初>
靜座處茶半香初 고요한 자리에 차가 반쯤 익으니 향기 피어나네.
妙用時水流花開 시간도 멎은 곳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차에 관한 추사의 여러 시 중에서도 이 시는 단연 돋보인다.
2행의 짧은 시구 속에 차의 진수를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짧아도, 그렇다고이보다 더 길어도 이 시는 제 맛을 잃는다.
고요한 자리는 인간의 본성이 머무는 곳으로 청정무애의 정신상태를 함축하고 있다.
그 속에서 반쯤 익은 차의향기가 우러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모처럼 안과 밖이 의기투합해 동정일여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시간도 멎은 곳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이다.
정상적인 상식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떻게 시간이 멎은 정지 상태에서 물이 흐르고꽃이 필 수 있겠는가.
시간의 정지는 우주나 사물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불가능의 세계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정지될 수 없고, 시간의 정지는 우주의운행이 마비된 파멸의 상황을 뜻한다.
그런데도 시간이 멎은 상황에서 물이 흐르고 동시에 꽃이 피는 불가해적 비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상상의세계에서 형용모순의 언어적 자유를 즐기는 시의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하고오히려 돋보인다.
여기에서 반쯤 익은 차의 향기가 이토록 그윽한데, 다 익었을 때의 향기는 얼마나 더 황홀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과유불급을 부르는과욕일 뿐이다.
반쯤 익었을 때의 첫 향기야 말로 차의 오묘한 경지를 빌려 시인이 강조하는 절제와 미학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시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두 현상의 상관성에 주목할 필요가있다.
물은 흐름으로 그 청정을 이루고 꽃은 제자리에서 그 향기를 이룬다.
여기에서 물은 흐름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시간의 무상을 이르고, 꽃은 일정한 장소에서 개화를 통해 자아를 표현하는 공간적 요소로 기능한다.
시인은 물의 흐름과 꽃의 개화를 한 데 엮어 절묘하게 시공의 무궁무진한 조화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선시 같지만, 통상의 선시에서 맛보기 어려운 특유의 향기와 풍치를 발산하는 데 이 시의 진수가 있다.
차의 맛과 향기에 취해 자신도, 시간도, 외경도 다 잊은 몰아지경의 주관 속에서만 가능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와같은 황홀경은 선승들이 정진 중에 경험하는 열반적정의 경지에 나타나지만, 때로는 고도의 자아도취적 몰입에 이른 시인에게 주어지는 특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추사는 차를 통해 차와 정신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다선일미의 오묘한 경지를 만끽하고 있다. 추사의 차에 대한 애정과 식견이 얼마나 깊고 그윽한 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차를 끓여 마시며 청정한 기운속에서 안분자족하고 있는 그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청정하고 한가로운가를 헤아리게 된다. 추사의 시를 읽을 때면 시와 더불어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묘미를 곁들일 수 있다.
이는 그가 세한도를 비롯해 격조 높은 진경의 화폭을 펼친 데서연유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실사구시적 안목으로 사물을 탐구하고 마침내사물과 함께 어울려 노니는 物我一體의 경지가 시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이나 글씨에는 시가 담겨있다.
특의 그의 다시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그가 남긴 시·서·화를 필요충분조건처럼 아우를 때 비로소 그의 시에 대한 독해와 감상이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이다.
2. 外境과 內面의 조화
<茶事已訂雙鷄>
一點塵無到此扃 한 점 먼지도 이 문 앞에 이르지 못하여
梅花紅白久通靈 붉고 하얀 매화꽃 신령한지 오래 되었네.
端硯石心同的的 단연석의 돌과 같은 마음은 한결같고
竹鑪茶韻合冷冷 죽로차의 운치는 맑은 기운에 합치되네.
偃盖橫枝多舊蔭 나뭇가지 쓰러져 그늘진 것 많았다면
古雲今雨飽曾經 어둑한 구름 내리는 비 진작 지났으리.
色香妙諦眞孤詣 색향 묘한 이치 진정 홀로 지녔으니
楊補之圖只典形 양보지 그림 단지 그 모습 그대로이네.18)
시인은 한 점의 티끌도 허용될 수 없이 맑고 고요한 경지에서 시를 읊고 있다.19)
18) 김정희 저, 국역완당전집, 솔출판사, 1998, 205쪽.
19) 추사는 <不欺心蘭圖>의 題詩에서 “蘭를 그릴 때 먼저 마음을 속이지 않는 데부터 시작해 야 한다. 蘭草를 그리는 것은 작은 재주이나 반드시 스스로 誠意․正心하는 마음을 가져 야 제대로 난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寫蘭亦當作不欺心始…雖此小藝, 必自誠意正心中來, 始得爲下手宗旨.”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시를 쓸 때의 마음가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경지는 매화가 그 신령함을 이루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은 죽로차를마시는 시인의 심경을 매화가 대변해 주고 있다.
시인은 매화를 빌려 죽로차의청정하고 고결한 향기를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차를 마시는 자신의 맑고 고요한 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맑은 기운을 향기가 북돋우고 있으니 불가에서추구하는 청정무애의 경지나 다를 바 없다.
시인은 매화의 정체를 단연석 같이 단단하고 竹露茶의 맑은 기운에 비길 만큼 정화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요묘한 色과 향은 청나라 때매화그림으로 유명한 楊補之의 그림 솜씨로도 감히 담아 낼 수 없는 것이다.
추사는 매화의 품격을 죽로차에 견주고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죽로차의 진수를 매화를 통해 밝혀주고 있다.
추사가 차를 아끼고 가까이 한 일면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에서 실질적 주체인 죽로차는 외경으로 작용하고 상징적 객체인 매화는 내경을 이룬다.
예컨대 죽로차의 내밀한 함의를 매화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빌려 외경화하고 있다.
죽로차는 매화를 수식하고 매화는 그죽로차를 수식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외경과 내경이 혼연일체가 되어 물아일체의 경지를 이룬다.
따라서 둘의 위치가 바뀌어도 그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둘은 이미 상보적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죽로차와 매화를 일체화해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도 둘인 불교의 진속일여의 요체를 압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3. 物心一體의 경지
<遇作>
不算甛中與苦邊 기쁨과 괴로움을 헤아리지 않고
天風一笠亦隨緣 하늘 바람 부는 대로 삿갓 쓰고 인연 따라 오간다
飄零白髮三千丈 휘날리는 백발이 삼천 리 길
折磨紅塵六十年 홍진에 시달린 육십 년 세월
我愛沈冥頻中聖 나는 세상일 잊으려고 자주 청주를 마시는데
人憐遠謫漫稱仙 사람들 귀양살이 가엽게 여겨 신선이라 칭해주네
蹣跚簷底時行藥 처마 밑으로 절뚝절뚝 약효 내려고 어슬렁거리며
消受茶罏伴篆煙 차 달이는 화로에 篆字같은 연기 솔솔 피어 오른다20)
20) 김정희 저, 국역완당전집, 위의 책 , 207쪽.
인연법은 연기의 이치를 바탕으로 한 불교의 핵심 교리다. 그렇다고 불교의독점 논리만은 아니다.
속세에서도 태고적부터 인연의 실상에 대해서 피부로느끼며 살아왔다. 인류 최초의 사회적 집단인 가족은 인연을 매개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인연에는 좋은 인연도 있지만 때로 악연도 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 된 것은 적대 세력과의 악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절해고도에 위리안치된 절망적 상황도 초의 소치, 이상적, 그리고 많은 제자들과의 아름다운 인연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시·서·화와 사상적 측면에서 평상의 노력만으로는 거두기 어려운 실적을 이루었다.21)
21) 朴珪壽는 “晩年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옛 법에 얽매이 는 태도를 다 벗어버리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一法을 이루게 되니 神이 오 는 듯, 氣가 오는 듯, 광활한 바다 같고 밀려드는 潮水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朴珪壽, 瓛齋集 卷10 「一題兪堯仙所藏秋史遺墨」, “晩年渡海 還後無復拘牽步趣 集衆家 長 自成一法 神來氣來 如海如潮.”
여기에 비록 식물이지만 차와의 인연도 빼 놓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이 시에서 나막신과 삿갓을 신은 모양은 유배시기 동파의 상징적 모습인데추사의 제자인 소치가 추사를 모델로 그린
<阮堂先生海天一笠像>에서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추사는 평소 흠모하던 동파의 해남도 유배시기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동병상련의 위안을 삼고 시, 서, 화의 독창성 개척에 분발한다.
다만 동파가 술과 자연을 벗 삼아 유배의 한과 고통을 달랜 것에 비해추사는 차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꾀한다.
마지막 행 “消受茶罏伴篆煙”은 차가 일상의 기호품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일상의 기호품이면서도 탈일상의 출구를 제공하는데 차의 진가가 있다.
이 시는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늙어가는 자신을 표현하는데 할애하고 있지만 마지막 한 구절에서 대반전을 일으킨다.
우울한 감상에 젖은 자신을 문득 차 항기가 돌이켜 곧추 세워주는 것이다.
만약 마지막 행이없다면 이 시는 평범한 푸념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 차 향기가 느슨해진 시적긴장을 되찾아주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손수 차를 빚어 마시는 한가로움은 시간의 구속으로 부터 자신을 해방해 준다.
또 차를 마시며 다담을 나누거나 홀로 사색을 가다듬는 동안 일상의 타성에 찌든 권태를 잊을 수 있다.
차는 추사의 제주도 유배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그랬기에체면불고하고 초의에게 차를 자주, 더 많이 보내 달라고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때로는 추사도 술을 찾는다.
그러나 세상일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그런 자신을 다스리고 정신을 올바로 차리기 위해 차를 가까이 한다.
추사의 술과 차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이토록 그가 차에 애착을 보인 것은 차의 약리적 호과나 기호음료 기능 못지않게 차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 예술적 효험을 손수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수행의 도반 역할을 차가 대신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를 매개로 시의 깊이와 품격을 한층 더하게 된다.
사물을 단순한 소재나 주제, 배경으로만 보지 않고 사물과 자신이 일체를 이루어 다선일미처럼 그 묘미와 미학을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데 시의 진가가 있음을 추사는 茶詩를 통해 누누이 일러주고 있다.
4. 실사구시와 주체적 자긍심
<汲古泉試茶>
獰龍頷下嵌明珠 사나운 용 턱 밑에 밝은 구슬 박혔으니
拈取松風澗水圖 솔바람 석간수의 그림을 뽑아 왔네
泉味試分城內外 성 안팎의 샘 맛을 시험삼아 가려보니
乙那亦得品茶無 을라 땅도 차를 품평할 수 있겠구만22)
추사는 단순히 차를 마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차나무를 직접 심어 가꾸며초의의 차 제조에 직접 관여하는 적극성을 보인다.23)
22) 김정희 저, 국역완당전집위의 책, 210쪽.
23) 추사는 초의의 茶를 즐길 뿐 아니라 茶의 제조법에 대한 품평을 통해 (“다포(茶包)는 과연 훌륭 한 제품이오. 능히 삼매경을 투득하여 이르렀구려)초의차가 명성을 얻는 데 큰 역할 을 했다.
이 시에는 그와 같은 실학자의 실사구시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러면서도 “獰龍頷下嵌明珠 사나운용 턱 밑에 밝은 구슬 박혔으니 拈取松風澗水圖 솔바람 석간수의 그림을 뽑아왔네”라는 구절처럼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고차원의 은유를 선보인다.
이를테면 자연과학적 시각이 문학적 서술로 자연스럽게 환치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와 차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의시를 이해하는 데 차가, 정확히 말해 차가 상징하는 메타포가 중요한 기능을하는 것이다.
그는 차를 마시며 그 운치를 시로 노래할 뿐 아니라 차와 일체가되어 청정무구의 경지, 즉 詩와 禪이 일체가 된 경지를 즐긴다.
선가에서 차를 빚어 마시는 것은 단순히 차를 달이는 煎茶나 飮茶 행위와는격이 다르다.
차를 빚어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차와 물, 정신의 혼연일체를 이루는 物我一體의 禪的 경지를 이른다.24)
24) 신공은 차와 선을 비교해 “茶禪一味는 다실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는 행위가 선방에 앉 아 조용히 참선하는 행위와 외관상으로 비슷하다는 데 착안한다. 실제로도 그 지향하는 바가 무심의 경지를 찾아가는 행위이므로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공, 청규와 선원문화, 도서출판 부다가야, 2008, 159∼160쪽.
불교에 조예가 깊고, 나름대로치열하게 정신을 다스려 온 추사의 飮茶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을 여러 편의茶詩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옛 샘물”은 事理에서는 근본을, 시에서는 고전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옛 샘물로 차를 빚어 그 오묘한 향기를 음미하는 것은 옛날과 현재의 조우, 다시 말해 옛 것을 바탕삼아 새로운 현재를 이루는 온고지신과 통한다.
이를테면 고전을 바탕으로 자신의 독창적 세계를 개척하는 예술적, 학문적 창조 과정에 비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지난한 현실 속에서 이상적 경지를 수용하는 자신의 예술적/시적 성취를 스스로 검증한 셈이다.
이는 “솔바람 석간수”로 “사나운 용 턱 밑에 밝힌 밝은 구슬을 빚는” 탈현실적 창조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어쩌면 추사가 손수 심어 가꾼 차나무도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지례 짐작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의 시에도 이와 같은 정황을 읽을 수있다.
완당전집 제5권, 與草衣(17) , “茶包果是佳製.有能透到茶三昧耶.”
<酬李幼輿索茶 時自燕還>
休分鷄鶩野殊家 집닭과 들따오기(들오리) 다르다 구분 마소
錦葉由來賽建芽 금산(錦山) 찻잎은 본래 건안차(建安茶)와 비교하네
洌水曾同楊子品 열수는 일찍이 양자의 품과 한가진데
蘇齋還覓高麗花 소재에선 도리어 고려 화차(花茶)를 찾는다네
淸泉白石輸眞境 맑은 샘 하얀 돌은 진경을 바쳐오고
法乳醍醐破細霞 법유와 제호는 가는 노을 깨뜨리네
萬里囊空君莫笑 만리 길에 빈 주머니 그대는 웃지 말고
秪將靑眼對人夸 청안을 가지고서 남에게 자랑하소25)
25) 김정희 저, 국역완당전집위의 책, 203쪽.
추사는 차의 종주국인 중국의 ‘건안차’에 비해 한국의 ‘금산차’가 손색이 없다고 노래한다.
여기에서 집닭은 중국차를, 들오리는 한국차를 비유하는 상징물이다.
비록 중국에서 도입했지만 한국의 차도 중국 못지않다는 다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시에 담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사를 모화사상에 젖은 사대주의자로 폄훼하기도 하지만 이는 국수주의적 편견에서 피상적 단면만 확장해서본 결례다. 추사는 중국의 선진적 문물과 사상은 배우고 받아들이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말고 새롭게 독창적 발전을 꾀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를 몸소 실천해 자긍심을 키운다.
이 부분은 처음에는 중국의 서예를 모사하다가 치열한 연마 끝에 독특한 추사체를 개발한 사실이 입증한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나 필법을 창조해 내는 것은 평상의 주체적 의지만으로는 힘든 과업이다.
따라서 추사의 서체는 그 개성과 솜씨가 중국의 어느명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선물한다.
서화뿐 아니라 그의 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때 심층적 독해가 가능하다.
이 시도 사소하지만 제 것에 대한 긍정적 자각과,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실용적 시각을 통해 주체적 자긍심을 되새기게 한다.
"萬里囊空君莫笑 만리 길에빈 주머니 그대는 웃지 말고/
秪將靑眼對人夸 청안을 가지고서 남에게 자랑하 라”
는 마지막 두 행에는 이런 주체적 소견이 두렷하게 담겨있다.
추사의 주체적 자긍심의 원천은 청정무구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淸眼에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자신과의 꾸준한 다담 속에서 연마된 결실이었다. 굴원, 이백, 도연명, 소식 등이 술을 벗삼아 유려하고 낭만적인 시풍을 과시한데 비해, 추사는차를 도반 삼아 절제와 균형, 청정한 기운이 감도는 정신세계를 시로 담아낸것이다.
Ⅳ. 결론
동파(1036∼1101)와 추사(1786∼1856)는 7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중국과한국에서 활약한 석학들이다.
이들에겐 시간적 차이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중국대륙과 한반도라는 지리 환경적 차이가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인접국가의특성상 정치, 경제, 문화 교류가 활발했으며 특히 한자, 종교와 사상, 척관법, 세시풍속, 가정의례 등, 다방면에서 문화적 동질감을 공유해 왔다.
역사적으로는 대체로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했지만 중국의 일방적 침략과 한국의 방어, 그로 인한 일방적 조공관계 등의 불편한 관계가 반복되기도 했다.
양국의 사대부들은 어려서부터 필수적으로 입신양명의 수단인 유학을 익혀야 했기에 기본적으로 모두가 유학자였다.
이 부분에서는 소식과 추사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비교적 학문과 사상의 표현이 자유로웠던 宋代의 동파가 유·불·도에 두루 통달한 데 비해 유학 이외의 학문과 종교를 배척한 조선에서 추사는 관직에 있을 때는 유학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사상적 통제가 느슨해지고 또 변방의 절해고도에 유배된 후부터 는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한편, 도가는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종교형태의 도교로까지 발전하는데 동파는 노장사상과 더불어 도교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유배지에서는 도가의 승려들과 어울리며 도가적 수련에 매진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시에도 도가풍의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에 불교를 통섭적으로 수용한 도가적 체취가 풍긴다.
그러나 한국에서 도가사상은 노자와 장자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데 그쳤을 뿐 신앙적으로 활성화 되지 는 못했다.
추사의 경우도 도가사상은 노자와 장자 중심의 학문적 탐구 대상이었을 뿐동파처럼 도교와 접하지는 않았다.
불교는 오랜 시간 한국과 중국에서 거국적 신앙으로 자리 잡아 왔기에 동파나 추사도 불교에는 상당한 식견이 있었다.
다만 소식은 불교를 혼융한 도가적기풍에 기울어진 반면, 추사는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며 당대의 선승인 백파와선에 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일 정도로 조예가 깊었다.
동파가 유배지에서 도가승려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적소의 시름과 고독을 달래고 자아를 추스른 반면 추사는 불교의 승려들과 교유하며 차에 각별한 애착을 갖는다.
도가의 승려들과 달리 불가의 승려들은 철저히 술을 금하며 대신 차를 수행의 방편으로 상용했다.
따라서 술이 대중적 기호식품으로 보편화 되어 온 것에 비해 차는 사찰을 중심으로 제한적 전통을 이어왔다.26)
26) 중국인들이 차를 일반 음료처럼 상용하는 경우는 선가의 다도 중심 음다 문화와는 구분해 야 한다. 본고에서의 차에 관한 내용은 후자의 경우다.
동파가 술을 즐긴 반면 추사는 차를 즐겼다.
나아가 추사는 유배시기에 초의, 혜장, 다산, 소치 등 한국 차문화 중흥의 핵심적인 인물들과 긴밀한 교유를가졌다.
따라서 차에 대해 해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를 정신수양의 도반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물론 동파도 때로 차를 마시고 추사도 때로 술을 마셨지만 성격적으로 호방하고 낙천적인 동파가 술을 즐긴데 비해 깔끔하고 염결한 추사는 차를 선호했다.
이런 성향은 두 사람의 시에서도 나름의 특성을이루었다.
동파가 술을 통해 낭만과 취흥을 북돋운 반면 추사는 차를 애용하며정신의 청정을 다스렸다.
술이 외향적이라면 차는 내향적 성향을 상징한다고볼 때 두 사람의 기호적 배경에는 각각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소식의 시에는 유불도를 통섭한 도가적 기풍에 술의 취흥이 배어있으며, 추사의 시에는 불교적 색체가 짙고 차의 신령한 기운이 감돈다.
이 점에 주목하고 본고는 동파의 술에 관한 시와 추사의 차에 관한 시를 텍스트로 삼아 둘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동파와 추사의 정신세계와 사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시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의 시에 대한 연구는 동파에게는 그의 문학세계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이며, 추사에게는 지금까지 소홀했던 그의 문학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동파의 불교와 도가가 혼융된 도가풍의 시에는 술의 낭만적 취흥이 담겨 있는데 비해 추사의 시에는 불교적 관조와 성찰을 함유한 차의 특질이 담겨있다.
허명보다 실질을 추구한 추사의 시에는 사회적 모순을 일깨우는 리얼리즘적요소가 강하다.
한편, 그의 시에 나타난 실학적 요소는 세속의 욕구를 떨쳐내고 궁극의 실재를 추구하는 방향키로 기능한다.
세한도에서 보듯 일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뼈대만 남은 고차원의 정신세계가 시의 주류를 이룬 것이다.
이를테면 밀도 깊은 경제적 언어가 시가의 핵심을 이룬 것으로 특히 제주도에서의 시에서 이와 같은 기풍이 돋보인다.
한편 동파의 시에는 우주적 상상력을바탕으로 한 낭만주의적 성향이 돋보인다.
중국은 예로부터 초현실적 상상력과 낭만이 어우러진 환상문학이 주류를이루어 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의 고통과 번뇌를 해소하는 한편, 우매한현실을 일깨워 왔다, 이런 전통적 문학 형식은 장자를 시원으로 굴원, 도연명, 이백의 시에서 두드러진다.
동파는 이를 한층 문학적으로 심화하는데 이에는유·불·도를 혼융한 회통의 정신이 사상적 바탕을 이룬다.
또 詩·詞·賦·散文·寓言·評說을 망라한 문학 전 장르에 걸쳐 각각 장인의 경지에 이른 천재가 기능적 바탕을 이룬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형식과 내용, 폭과 깊이, 기교와 사유등, 상반된 두 축이 서로를 보완하며 견인하는 이상적 성향을 보인다.
이와 같은 시적 경향은 특히 유배지에서 현실과 유리되지 않으면서도 세속에 초연한달관의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추사는 기교를 철저히 배제하고 궁극의 실질을추구하는데 비해 소식은 풍부한 상상력과 기교를 살려 내용과 사유를 적절히담아내는 활달한 기질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추후 충분한 지면을 통해 이 부분을 확장해 기술할 경우, 한국의 불교와 중국의 도가, 한국의 전통적 시가와 중국의 전통적 시가, 나아가 한국의 반도적 성향과 중국의 대륙적 성향을파악하는데 일련의 실마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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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고는 다양한 장르에서 유사성을 공유하는 동파와 추사의 작품 중 流配詩를 통해 그들의 문학세계와 정신세계를 살펴보았다.
流配詩 중 동파는 술을 주제로 한 시에 집중하고, 추사 는 차를 주제로 한 시에 집중해 고찰했다.
둘 다 기본적으로는 술과 차를 즐겼고, 유·불·도에 두루 통하는 지식인들이지만 술과 벗하며 한과 감흥을 다스린 동파는 불교를 혼융한 도가사 상에 친숙하고, 평소 차를 애용한 추사는 불교적 색체가 강하기 때문이다.
동파가 술을 통해 낭만과 취흥을 북돋운 반면 추사는 차를 애용하며 정신의 청정을 다스 렸다.
술이 외향적이라면 차는 내향적 성향을 상징한다고 볼 때 두 사람의 기호적 배경에는 각각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소식의 시에는 유·불·도를 통섭한 도가적 기풍에 술의 취흥이 배어있으며, 추사의 시에는 불교적 색체가 짙고 차의 신령한 기운이 감 돈다.
이 점에 주목하고 본고는 동파의 술에 관한 시와 추사의 차에 관한 시를 텍스트로 삼아 둘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동파와 추사의 정신세계와 사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시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의 시에 대한 연구는 동파에게는 그의 문학세 계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이며, 추사에게는 書畵에 가려 지금까지 소홀했던 문학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화려한 기교보다 실질을 추구한 추사의 시에는 밀도 깊은 경제적 언어가 시가의 핵심을 이루는데 특히 제주도에서의 시에서 이와 같은 기풍이 돋보인다.
한편 동파의 시에는 우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낭만주의적 성향이 돋보인다.
이와 같은 시적 경향은 특히 유배지에서 현실과 유리되지 않으면서도 세속에 초연한 달관의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추사는 기교를 철 저히 배제하고 궁극의 실질을 추구하는데 비해 소식은 풍부한 상상력과 기교를 살려 내용과 사유를 적절히 담아내는 활달한 기질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핵심어 : 소동파, 소식, 추사, 김정희, 차, 茶道, 流配詩, 도가사상
Abstract|
A Comparison Study on Poetry of Dongpo and Chusa - Using Texts from Liquor Poetry of Dongpo and Tea Poetry of Chusa Kim, hee-sung Dongsin univ, Prof. This paper looked into the literary world and spiritual world of Dongpo and Chusa, poets who share similarities in various genres, through their exile poetry. In exile poetry, this study focused on the liquor poetry of Dongpo and the tea poetry of Chusa. Both poets enjoyed drinking alcohol and tea as intellectuals who mastered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owever, Dongpo was familiar with the Taoist ideology combined with Buddhism because he controlled resentment and inspiration through liquor. Chusa had a strong Buddhist color because he favored tea. Whereas Dongpo boosted romance and conviviality using liquor, Chusa controlled the purity of mind with tea. Since liquor is extroverted and tea is introverted, the personality of the two persons is reflected in the symbolic background. Therefore, Su Shi’s poems have the conviviality of liquor based on the Taoist spirit embracing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Chusa’s poems have divine energy with a Buddhist overtone. While paying attention to this point, this paper examined the poetry worlds of the two poets using texts from the liquor poetry of Dongpo and the tea poetry of Chusa. Poems provide important clues for understanding the spiritual world and ideology of Dongpo and Chusa in depth. Accordingly, Dongpo studied poetry to expand his literary world. Chusa studied poetry to reevaluate his literary value that had been neglected because of calligraphy. The dense economic language is the essence of Chusa’s poetry pursuing substance over splendid skills, and this ethos especially stands out in poems written in Jeju Island. Meanwhile, Dongpo’s poems show a romantic tendency based on universal imaginations. This poetic tendency presents a philosophical state that is aloof about the mundane world while staying close to reality in the place of exile. Contrary to Chusa’s strict exclusion of skills and pursuit of ultimate substance, Su Shi exhibited an outgoing temperament that adequately delivered the content and reason through rich imaginations and skills.
Key words : Su Dongpo, Su Shi, Chusa, Gim Jeong-hui, tea, tea ceremony, exile poetry, Buddhism, Taoist ideology
투고일 : 2021년 1월 13일 심사기간 : 2월 1일 - 2월 12일 게재확정일 : 2월 15일
韓國詩歌文化硏究 第47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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