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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디지털 도시화와 탈/재물질화 /이현재.서울시립大

 1. 디지털 도시화와 공간개념의 혼란

 

도시공간이라고 할 때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이버공간에서 공간은 연장을 갖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은유적인 의미인가?

도시공간이 물질성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영토를 갖는다는 것인가?

에드워드 소자는 디지털 매체의 도입, 정보화 등과 함께 나타난 도시공간의 변화를 4차 혁명 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도시 공간에 대한 이해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학자들의 논의 는 매우 혼란스럽다. 디지털화와 더불어 도시공간이 탈영토화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탈물질화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의미인가?

디지털 도시화와 함께 도시공간이 탈영토화된다고 할 때 탈영토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또한 탈물질화를 의미하는가?

개념적 혼란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러한 물음들에 답을 하기 위해 필자는 이 글에서 우선 에드 워드 소자와 함께 디지털 도시화가 무엇인지, 도시공간의 탈/재영토화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데서 출발하고자 한다.

나아가 필자는 탈/재영토화가 곧 탈/재물질화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데이비드 하비와 함께 절대적, 상대적, 관계적 공간 개념을 구분하고 각각의 공간이 서로 다른 물질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캐런 버라드와 함께 “실재적이면 서도 상상적인 것”이 뒤얽힌 다양체로서의 디지털 도시공간은 관계적 공간 개념을 통해 더 잘 설명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신유물론자인 버라드에게 공간은 물리적, 사회적, 가상적 공간들이 서로 얽혀 있는 물질이며, 얽혀 있는 다양한 파동들이 반복적 내부-작용 속에서 경 계를 지속 또는 변형시키는 “사회적-물질”이다.

이로써 필자는 디지털 도시화가 유클리트적 의미의 탈영토화이자 물질 개념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재물질화 과정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2. 디지털 도시화와 탈/재영토화

 

디지털 시대 도시는 더이상 연장과 부피를 가진 물리적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게 된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매체의 등장과 함께 도시는 영토에 기반한 장소라기보다 네 트워크의 결절지로 파악되기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도시란 “시장의 법칙에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 또는 상징적으로 만나는 공간”1)이며 만남을 위한 건조 환경이 집약된 곳으로 이해되었다.

 

   1) Balibar and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 1990=1995:64

 

글로벌 시티나 글로벌폴리스 담론에서도 도시는 로스엔젤레스나 서울 등 어떤 지도 위의 고정된 좌표나 지역 즉 영토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정보도시론을 제시한 마누 엘 카스텔에 따르면 정보혁명과 함께 우리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도시적인 삶은 이제 고정된 물리적 장소와 밀착된 공동체뿐 아니라 정보흐름의 네트워크에서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카스텔은 이러한 공동체의 해체적 재편과정을 “공동체가 상호작용을 조직화하는 중심형태로서 의 네트워크로 대체된 것”으로 파악한다.2)

N. 로즈에 따르면 이러한 네트워크는 “가상의 공동 체, 즉 로스가 말하는 ‘개개의 성원이 활동가의 언사, 문화적인 생산물, 미디어 이미지라는 비 지리적인 공간에 의해 구축된 동일화를 통해서 하나로 연결되는 경우에 한해 존재하는’ 공동 체”3)다.

체임버스 또한 메트로폴리스가 영토에 기반한 공동체에서 네트워크의 결절지로 변화 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기존의 도시는 경계가 뚜렷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단위로서 농촌 공간과 쉽고도 명확히 구분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서양의 메트로폴리스는 그 ‘다른 곳들elsewhere’을 자기 자신의 상징적 구역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기솔과 교외는 전화,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기타 대중매체 등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이 결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계들이 분산적으로 들어서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도시들은 조밀한 메트로폴리스 네트워크 속에서 점차 교차점, 정거장, 결절점으로 변해가고 있고, 이러한 네트워크의 경제적, 문화적 리듬과 그 유연적 중심 감은 더 이상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그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다.”4)

 

에드워드 소자는 『포스트메트로폴리스』 2부 도입 부분에서 자신의 “포스트메트로폴리스”의 “포스트”에서 가장 우선적인 의미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밝힌다.5)

26쪽. 포스트메트로폴리스 로의 전회는 포스트포드주의적, 포스트케인즈주의적 산업양식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지만 무엇 보다도 웹, 인공지능, 넷스케이프, 디지털 커뮤니티 등으로 나타나는 정보혁명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올랄퀴아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자는 오늘날 도 시와 몸 그리고 정체성은 “컴퓨터 화면과 비디오 모니터의 지형”에 점점 더 깊이 얽혀가고 있 다고 한다.6)

그리고 “포스트메트로폴리스(postmetropolis)”의 형태가 탈영토화 (deterritorialization)와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의 상호작용 속에 있다고 설명한다.7)

그렇다면 여기서 소자가 말하는 탈영토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탈영토화란 “영토적 와해”8)이자 “지리의 종말(end of geography)”이다.

이것은 오늘날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그 영향이 오늘날처럼 강렬하고 광범위했던 시대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9)

그러나 여기서 탈영토화는 장소를 완전히 초월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대한 밀착성이 약 화되는 것을 지칭한다(refers to the weakening attachments to place).”10)

포스트메트로폴 리스는 메트로폴리스에 비해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에 덜 밀착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소자는 탈영토화를 “시뮬레이션”의 세계의 등장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2) Castells, M., The Internet Galaxy, Oxford Uni. Press, 2001:127

     3) 요시하라 나오키, 『모빌리티와 장소』, 이상봉/신나경 옮김, 심산, 2008, 71쪽에서 재인용

     4) Chambers, I., Border Dialogues: Journeys in Postmodernity, Londen;Routledge, 1990:53(소 자, 28~9쪽에서 재인용)      5) 에드워드 W. 소자, 이현재/박경환/이재열/신승원 옮김, 『포스트메트로폴리스2』, 라움, 2019, 28쪽.

    6) 소자, 32쪽.

    7) Edward Soja, Postmetropolis, 2000:151

    8) 소자, 31쪽.

    9) ibid., p.152

    10) ibid., p.251

 

소자는 포스 트메트로폴리스에서 벌어지는 가장 비범한 일은 “도시와 도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낡은 이해방 식”이 시대착오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본다.

소자의 『포스트메트로폴리스』의 마지막 장은 “심 시티(sim city)”인데 여기서 소자는 지시체가 부재하는 시뮬레이션의 사이버공간으로 나아간 다.

그는 디지털화와 함께 시뮬레이션의 세계는 점점 보드리야르가 말한 세 번째, 네번째 시 뮬라크럼 단계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본다. 즉 우리는 궁극적으로 실재의 재현도, 모사도 아닌 그 자체가 기원이 되는 시뮬레이션의 세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도시는 현실 (실재)과 상상이 뒤섞였다기보다는 “현실의 기호와 시뮬레이션이 실재 그 자체를 대체하게 된 다.”(316)

 

“시뮬레이션은 더 이상 하나의 영토도, 지시되는 존재도, 실체도 아니다. 이는 기원이나 실체 가 없는 현실, 하이퍼리얼의 모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영토는 더 이상 지도에 선행하 지도, 그것을 견뎌내지도 않는다. 따라서 지도가 영토에 선행한다. 시뮬라크라의 선행, 즉 지 도가 영토를 만들어낸다. ”(보드리아르, 시뮬라시옹, 1983:1-2, 소자, 311재인용)

 

이렇게 보면 새로운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 시대에 “도시공간의 딱딱한 물질성은 증 발”하는 듯하다.

크리스틴 보이어는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말 그대로 전통적인 서구의 기하 학적 공간, 노동, 도로, 건물, 기계를 새로운 형태의 도해로 대체”

했다고 본다.

보이어는 냉소 적으로 묻는다. 

 

“한 때 우리의 아이콘과 이미지를 저장했던 공간적 용기를 궁극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삭제하는지 (...) 우리의 기억이 한 때 깊이 감동을 받던 밀랍이 탈물질화되 는 것인지 (...) 상징적으로 폭발하여 사이버공간이라는 희생적 영역, 무의 영역이 되는 것인 지”를.

 

그러나 소자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 도시적 삶이 경계가 모호한 탈영역적 네트워크에 의해 영 위된다고 하더라도 영토적 도시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몸을 가지는 한 여전 히 물리적 장소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자에 따르면 포스트메트로폴리스는 탈영토화되면 서 동시에 재영토화되고 있다.

상품 역시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를 위한 물리적 공간을 필 요로 한다.

인터넷을 가동시키기 위한 라인과 저장고자 필요하다.

그러나 그 영토화의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

가령 상품이 가게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시대에, 도심은 슬럼으로 변모하는 반면 도시의 외곽에는 창고업체 및 택배사가 들어선다.11)

도시의 영토나 지리가 바뀌는 것만이 재영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자가 말하는 재영 토화는 영토와 시뮬레이션이 만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에 소자는 포스트메트로폴리스에서 도시는 중심적이라기보다 다공질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실재의 도 시와 시뮬레이션된 도시, 시골과 도시,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흐릿해진다고 설명한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접속은 시골에서도 도시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시뮬레이션된 도시는 현실 도시 의 건설, 운영 등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어느 것이 더 원본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소자는 이 러한 도시 공간을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라고 명명하는데 이는 “실재하면서도 상상된 것(real-and-imagined)의 뒤섞임의 증가와 혼란을 규정하고 개념화하는데 폭넓게 사용되는 용어”12)이다.

 

    11) 2장의 여기까지는 Hyun-Jae Lee, “Digitalpolis and ‘Safe’ Feminism: Focusing on the Strategies of Direct Punishment and Gated Community”, Journal of Asian sociology, Vol. 52, Number 1, March 2023, pp.85~90을 번역하여 정리한 것임.

   12) 에드워드 소자, 포스트메트로폴리스 2, 310쪽.

 

3. 세 가지 공간 개념으로 살펴 본 도시공간의 탈/재물질화

 

그렇다면 이러한 포스트메트로폴리스, 디지털 도시공간의 탈/재영토화는 탈물질화를 의미하는 가? 만약 물질이 기하학적이고 평평하면서 단일한 유클리트적인 대상을 의미한다면 디지털 도 시 공간은 탈물질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물질이 비유클리트적이면서도 중첩이 가능 한 에너지나 파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디지털 도시 공간은 재물질화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이 다. 필자는 후자를 주장하기 위해 이 장에서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리고 사회지리학자 하 비와 르페브르의 다양한 공간 개념을 살펴보고 여기서 물질적이라는 것이 후자의 의미로 읽힐 수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어떻게 도시 공간이 “실재하면서도 상상된 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아인슈타인은(1960:XIII, 슈뢰르 31) 공간에 대한 대립된 두 가지 이해가 존재해왔다고 정리한 바 있다. 그 하나는 물리적 대상의 ‘용기’로서의 공간인데 이 경우 공간은 물체보다 우선적인 상위의 실재(realitaet)으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 공간은 물체세계의 저장성질 (Lagerungsqualitaet)로 이해되곤 했는데 이 경우엔 반대로 물체가 없는 공간은 생각할 수 없다. 마르쿠스 슈뢰르는 이를 각각 “절대주의적 공간”과 “상대주의적 공간”으로 정리한다. 절대주의적 공간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잘 나타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 르면 장소는 “어떤 것을 포괄하는 물체의 경계”로서 “대상물 (자체)의 어떤 조각이 아니며”, “그 사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13)

공간은 물체를 담고 있으나 이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경 계 또는 장소이다.

공간은 물체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존재한다.

절대적 용기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부터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뉴턴의 절대공간으로 이어 진다.

절대공간이란 “공간은 외적 사물과는 관계없이 상상 동일하며 부동하고, 그럼으로써 변 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14)

여기서 공간은 물체와 상관없이 동질적이며, 부동의 상태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

따라서 절대공간과 연관된 수용기 공간 개념은 “명확하고 정확하 게 경계 짓고, 확신과 결연함을 가지고 분류지울 수 있다”15)는 특징을 갖는다.

뉴튼에 따르면 인간의 몸 또는 절대공간의 한 척도에서 받아들여지는 상대적 공간과 달리, 절대공간은 “신의 감관”16)에 의해 지각된 공간이다.

슈뢰르에 따르면 사회학에서 절대적 용기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용기-공간 컨셉트를 이용하면 공간적인 배치가 행위자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 다.17)

 

  13) Aristoteles 1995:81, 211a, 212a. 슈뢰르 35쪽.

  14) 슈뢰르, 39쪽.

  15) 42쪽.

  16) 41쪽.

  17) 196쪽

 

여기서 공간은 행위자 또는 물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물리적 구조이 다.

그러나 용기-공간 개념은 행위자나 대상들이 공간에 미치는 영향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와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상대적 공간은 어떠한가?

상대적 공간은 물체 또는 대상들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뉴튼에 반대하면서 라이프니츠는 시공간이 어떤 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실재가 아니라고 본다.

그에게 시공간은 “인간 정신의 구성적 창조적 힘에 뿌리내려있는”(Cassirer 1969:158) “현상(인식)의 이념적 질서형식”이다.

공간이 공존의 질서 형식이라면 시간은 순차적 질서를 위한 형식이다.

그에게 공간은 물체들 간의 “위치관계”이 다.18)

어떤 물체는 어떤 다른 물체에서 볼 때 이 장소 또는 저 장소에 있는 것이다.

이에 따 르면 어떤 공간은 내가 볼 때는 이곳에 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저 곳에 있다.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물리학적으로 밀고 나아간 사람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공 간과 그 속에 존재하는 물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자체로 변화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용기 공간 개념을 비판하면서 공간을 물체세계의 저장성질이나 관계적 질서 로 파악한다.

물체가 없는 공간이 무의미하기에 공간은 언제나 그 때 그 때의 관찰자의 기준 에 따라 “상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

상대적 공간 개념에서 인간의 몸이 중요한 것은 몸이 기준과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빨리 달리는 몸은 느리게 달리는 몸과 다른 공간을 구성한다.

사회학자들은 상대적 공간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도시공간을 단순한 용기 공간이 아닌 사회적 관계와 행위자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또는 양자가 상호작용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짐멜은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으로 생산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인간의 사회 생활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하비투스를 만드는 것은 하 비타트이지만 하비타트 역시 일정한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다.19)

나는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 해 물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공간의 개념이 획득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도시의 물리적 지 리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사회적인 것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산된 것이 된다.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에서 공간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음 을 설명한다.

 

“만약 공간을 절대적인absolute 것으로 간주한다면 공간은 물질과 독립적인 존재를 지닌 ‘물 자체’가 된다. 그렇다면 공간은 우리가 현상들을 집어넣거나 또는 개별화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게 된다. 상대적 공간relative space이라는 관점은 공간이 대상들 사이의 관 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오직 대상들이 존재하고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이 존재 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공간을 상대적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도 있는데 나는 이를 관계적 공간relational space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라이프니츠의 방식을 따라 이는 한 대상 이 자기 안에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를 이미 포함하고 나타내고 있는 한에서만 그 대상이 존재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상들 안에 포함된 것으로서 볼 수 있는 공간이다.”20)

 

     18) 슈뢰르, 44쪽.

     19) 101쪽.

     20) D. Harvey, Social Justice and the City, London: Edwartd Arnold, 1973, p.13. 번역은 데이비 드 하비, 임동근/박훈태/박준 옮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문화과학사, 2008, 192~3쪽에서 재인용.  

 

만약 도시 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건조환경과 같은 것으로만 이해된다면 디지털 도시화는 탈영토화와 동시에 탈물질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도시 공 간은 철학과 물리학적으로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절대적 공간을, 사회학적으로는 물리적 공간 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유클리트적인 이 상대적 공간을 물질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공간은 유 클리트적인 의미에서의 영토와 지리가 아니며, 사회적 관계가 구성해 낸 비유클리트적인 지리 이다.

이 역시 물질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하비는 하비는 절대적, 상대적, 관계적 공간을 각각 르페브르가 말하는 물질적 공간, 공간의 재현(개념공간), 재현의 공간(체험공간)과 교차시키는 가운데 상대적 공간의 물질성을 설명한다.

하비에 따르면 절대적 공간 또는 용기-공간 개념과 관련된 물질적 공간이란 “물리적 접촉과 감각에 기반한 지각과 경험의 공간”이다.21)

절대적 물질적 공간은 우리가 몸을 갖고 있기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경험되는 요소들, 순간들 그리고 사건들은 물질성으 로 구성된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벽, 다리, 계단, 바닥, 도시, 대륙, 물리적 경계와 장벽, 폐 쇄적 주거단지 등의 물리적 공간은 절대적 물질적 공간이다.

가족들이 사는 집이나 각종 단체 들이 들어 선 건물들, 건물과 교통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 그리고 발 딛고 구획할 수 있 는 국가의 영토 역시 물질적 공간들이다.

그러나 하비는 상대적 공간도 물질적으로 경험된다고 설명한다.

그가 제시하는 <표 1> 공간성 의 일반 행렬에 따르면 상대적 공간에서의 물질성은

“에너지, 물, 공기, 상품, 사람, 정보, 화 폐, 자본의 순환과 흐름” 등과 관계되어 있다.

그에게는 고정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조 환경, 영토만큼이나 에너지, 상품, 화폐, 자본의 흐름도 물질적이다.

후자의 물질은 어디 에 담겨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고 관계하면서 사회적 물리적 공간을 만든다.

그가 제시하는 사례에 따르면 자본주의 개발업자들은 교환관계의 논리에 따라 부지의 상업적 개발 여부를 판 단한다.

여기서 부지는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와 관련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 가 치라는 관점에 따라 판단되고 구성된다.

가령 상업적 가치의 측면에서 지도를 그린다면 그것 은 문화적 가치의 측면에서 그린 지도와는 다른 위상학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그 지리는 절 대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이지만 물질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적 공간은 에너지 아니면 화폐 등 하나의 물질적 관점에만 기반하여 기술 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상대적 공간은 다양한 물질들이 중첩될 때 만들어지는 공간을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상대적 공간은 가상세계 또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시뮬레이션, 다양한 흐름의 중첩을 물질적인 것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비가 라이프니츠로부터 이끌어내는 관계 적 공간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비에 따르면 상대적 공간은 주로 아인슈타인과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여 기서 공간은 여러 개 중 우리가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의 관점에서 상대화되 고 있는지에 따라 공간적 틀이 결정적으로 달라진다는 의미에서”22) 상대적이다.

이와 달리 관 계적 공간은 그 공간에 들어오는 도로와 건물, 사람들이 현재, 과거, 미래의 공간에서 맺고 있 던 관계로부터 축적된 경험적 데이터와 이질적 영향들이 응결된 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관 계적 공간으로서의 도시는 “도시과정에서의 집합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적 공간 개 념을 통해 비로소 도시 공간은 도시과정에서의 다양한 관점과 경험들이 중층적으로 응결되는 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절대적, 상대적, 관계적 공간 개념으로 갈수록 측정은 더 불확실하게 된다.

따라서 과학적 관 점이나 실증주의 거친 유물론적 성향을 가진 자들에게 관계적 공간 개념은 “저주”(198)일 수 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은 관계적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개 념에 주목하지 못했던 다른 지리학자들과 달리 하비는

“도시과정에서 집합적 기억이 갖는 정 치적 역할”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 개념을 연구한다.

집합적 기억들의 중층적 관계 들을 포함하는 도시공간은 절대적 공간 개념을 전제로는 설명할 수 없고, 상대적 공간 개념만 으로는 그 복잡성과 순환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관계적 공간으로 이해된 도시공간은 상상된 것과 실재적인 것들의 “뒤섞임”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비는 <표1>에서 가상공간과 심리지리학 역시 관계적 공간이 재현된 곳 으로 본다.

그렇다면 관계적 공간은 물질적이기보다 그저 상상이나 은유에 불과한 것이 아닌 가? 하비에 따르면 관계적 공간 역시 나름의 의미에서 물질적이다.

그의 정리에 따르면 관계 적 공간에서의 물질성은

“전자기장의 흐름과 장, 에너지, (...) 에너지 잠재력, 소리, 냄새, 미 풍을 타고 표류하는 감각”

등과 연관되어 있다.23)

 

         23) 하비, 217쪽.

 

여기서 물질은 전자기장의 흐름과 장에 나 타나는 파동과 같은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캐런 버라드의 설명에 따르면 입자와 달리 파동은 한 시점에 여러 개의 파동이 존재할 수 있으며 서로 중첩되면서 회절된다.

 

4. 버라드의 공간 개념과 “사회-물질성”

 

관계적 공간을 통해 서 볼 때, “실재적인 것이자 상상된 것들의 가증되는 뒤섞임”으로서의 디 지털 도시화는 고정된 물체, 흐름을 넘어서 파동으로 재구성된 물질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으 며, 이런 점에서 디지털 도시화는 유클리트적 물질성의 탈물질화이자 동시에 비유클리트적 파 동적 물질성으로의 재물질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재물질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는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캐런 버라드의 공간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버라드는 유물론의 역사에서 공간은 오랫동안 운동하는 물질을 위한 저장고 또는 환경으로 이 해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물론은 물리적 공간이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 는 구조임을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어떻게 그러한 물리적 공간이 구성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유물론자들은 자본 관계와 같은 하나의 물질적 관점에서 공간을 분 석하였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물질적 관점이 어떻게 사회적이고 물리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 는지를 보여주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다른 관점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나아가 그 뒤섞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역시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버라드는 공간을 스스로 변화 하는 “하나의 행위자”로 구성하고자 한다.

필자는 버라드가 관계적 공간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가 설명하는 공간 개념은 바로 하비가 말한 관계적 공간에 해당하며, 그 공간 의 행위성을 갖는 물질성은 파동들의 회절과 내부-작용을 통해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그가 말하는 시공간은 관계적 공간 개념과 연관된다.

그가 인용하는 황마 공장의 사례를 보자.

그에 따르면 황마 공장 노동자들의 몸은 계급적 측면에서, 종교적 측면에서, 젠더적 측 면에서 상대적으로 각기 다르게 구성되는 시공간들이 아니다.

황마 공장 노동계급의 몸은 이 미 구조적으로 “계급, 젠더 그리고 공동체에 의해 생산된다.”24)

 

     24) Barad, p.228.

 

그들의 몸은 계급, 젠더, 공동 체 그리고 종교적인 것과 함께 구성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황마 공장 역시 그곳에서 일하 는 노동계급의 사람들과 건물 그리고 기계들이 현재, 과거, 미래의 공간에서 맺고 있던 다양 한 관계로부터 축적된 경험적 데이터와 이질적 영향들이 응결된 지점이다.

이것은 바로 하비 가 말했던 관계적 공간 개념이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공간이다.

버라드는 이런 방식으로 파악된 노동자의 몸이나 공장과 같은 시공간을 물질이라고 이야기한 다.

그러나 여기서 그가 말하는 물질은 사회나 담론과 완전히 구분되는 유클리트적 물질이 아 니다.

생산과 관련되는 계급만 물질적인 것도 아니다.

그에게 젠더는 순수한 문화가 아니라 생산과정이나 노동의 배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런 점에서 계급만큼이나 물질적이 다.

버라드에게는 나아가 그에게는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인 기계장치도 역시나 물질적이다.

어떤 기계를 쓰는가는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는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물질로서의 시공간은 이질적 요소들이 함께 얽혀 있는 것이니 단 일체가 아니라 다양체다.

“노동자, 기계, 관리자들은 얽힌 현상들, 관계적 존재자들”이며 서로 의 구성을 돕는다.”25)

또한 버라드는 물질로서의 시공간을 담론적이면서도 물질적인 “사회적 물질들”26)이라고 표현 한다.

여기서 물질은 항상 담론적이거나 사회적인 것과 함께 존재한다.

어떤 물질들도 개입된 물질이며, 이 개입에 의해 회절된 물질이다.

입자는 관측 장비를 통한 관측이라는 행위가 주 어지는 순간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입자는 관측이 라는 담론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이 개입된 물질들이다.

마찬가지로 버라드는 경제적인 것만을 물질적인 것으로 보는 맑스주의 전통과도 결별한다.

그에게는 경제 역시 문화-물질이다.

그에 게 작업장이나 기계는 사회, 문화 등의 담론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물 질-담론적 장치”27)이다.

작업장은 문화-물질이다.

디지털 도시가 실재적인 것이자 상상된 것 이듯, 작업장은 물질적인 것이자 담론적인 것이다.

나아가 버라드는 이러한 시공간이 물질-담론적 실행에 의해 “물질이 반복되는 반복적 내부- 작용의 과정”이라고 본다.

즉 물질은 반복적 수행을 통한 물질화이다.

 

“이런 물질-담론적 장치들의 내부-작용은 관리법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천을 포함하며, 젠더, 공동체 그리고 계급의 위상학적 주름작용에 의해 특수하게 표시되는 공간 또는 구조를 생산한다. 즉, 그 공장의 공간성은 내부-작용의 동역학과 구조적 관계들의 재배치와 주름작용 을 통해 생산된다.”28)

 

물질로서의 시공간은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인 채 반복됨으로써 지속되지만 동시에 그 뒤섞임 을 통한 회절을 통해 변화가 오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황마공장 노동자들의 몸과 황마공장이라는 시공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는 물질이다.

여기서 몸과 시공간은 뚜 렷한 경계를 갖는 고정된 지점으로서의 영토(물질)가 아니라 얽힘과 회절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버라드는 하비의 영향을 받는 도나 해러웨이를 인용하는 데, 해러웨이에 따르면 몸을 절대적 차원에서 경계가 뚜렷한 시공간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몸 에 대한 물신화이다.

해러웨이는 이와 달리 몸을

“형성중인 신체와 우발적 시공간”으로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29) 이로써 몸을 포함한 물질적 시공간은 “비선형적, 인과적 그리고 비 결정론적”30)이 된다.

반복의 수행 과정에서 경계는 바뀔 수 있다.

“구조적 관계들은 반복적으 로 개정되는 우발적 물질성이다.”31)

 

    25) p239.

    26) Barad, p.237.

    27) ibid., p.225

    28) p.237(박준영 번역 참고)

   29) Haraway 1997, 294. Barad, p.224에서 재인용.

 

이로써 버라드는 물질로서의 시공간을 정신이나 문화가 담기는 용기가 아니라 항상 문화와 함 께 존재하는 다양체로, 복잡한 얽힘의 반복적 내부-작용을 통해 지속되거나 변화하는 행위자 성을 가진 물질로 재규정하게 된다. 

 

5. 디지털 도시화와 탈/재물질화

 

앞서 필자는 디지털 매체의 도입과 함께 “실재적이자 상상된 것이 뒤섞인” 공간이 증가하는 것을 디지털 도시화라고 설명하면서 이 과정이 탈/재영토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 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도시화의 공간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상대적 공간 개념을 넘어 관계적 공간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물리적, 사회적 나 아가 상상적 이미지들이 뒤엉키는 디지털 도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영토를 강조 하게 되는 절대적 공간이나 특정한 자본의 흐름과 같은 특정한 사회관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상대적 공간 개념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필자는 관계적 공간도 재구성된 물질성 을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유클리트적 절대 공간이 단일하고 경계가 뚜렷한 물리적 영토와 관 련된 물질성을 갖는 반면, 상대적, 관계적 공간은 역동적 에너지의 흐름이나 복잡한 회절을 포함하는 파동의 물질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재구성된 물질로서의 시공간을 캐런 버라드 의 “사회-물질성”으로서의 공간 분석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버라드에 따르면 “사회-물 질성”으로서의 시공간은 이질성들이 뒤엉킨 다양체들이 그 반복적인 내부-작용을 통해 경계를 지속하거나 변화시키는 과정 중의 물질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도시화를 분석 해 볼 때 “실재적이자 상상된 것이 뒤섞인” 디지털 도시공간은 탈영토화되었지만 탈물질화된 것은 아니며, 재물질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2023가을 포스트휴먼 연구회/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합 학술대회 자료집

 

 

2023년 가을 포스트휴먼 연구회_한국철학연구회_연합_학술대회 자료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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