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05회>
오늘 들은 말과 같은 말이 있을 줄을 금성 대군은 미리 짐작하였었다. 만일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다 하면 금성 대군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금성대군은 아침도 아니 먹고 수양 대군 궁으로 달려갔다. 금성 대군이 수양 대군 궁에 가기는 설에 세배 간 뒤로는 처음이다.
그래서 금성 대군이 단신으로 말을 타고 여름 해가 아직 뜨기고 전에 달려드는 것을 보고 수양 대군 궁 사람들은 놀랐다.
금성 대군은 형님인 수양 대군의 붙들어 앉히고,
“형님, 어저께 정인지란 놈이 상감께 선위하시기를 청하였다. 하니 이것이 정가 놈의 생각이요? 형님이 시키신 게요?” 하고 단도직입으로 질문을 발하였다.
수양 대군은 안색을 변하며,
“네가 미쳤느냐. 그게 웬 소리냐.” 하고 뚝 잡아떼었다.
“그렇거든 오늘로 정가를 삭탈관직하고 내어 베이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정가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라 하더라도 세상에서는 형님이 시키신 것으로 알 것이요.
워낙 정가란 할 수 없는 소인(小人)이요, 간신이요. 그놈을 살려 두었다가는 형님까지도 누명을 쓰시리다. 어떡 허실테요? 형님의 대답을 듣고야 가겠소이다.” 하고 금성 대군은 따지었다.
“상감 처분이지. 정인지가 대신이어든 낸들 어찌하나.” 하고 수양 대군은 어디까지든지 모르는 체한다.
금성 대군은 형님의 진의를 의심하는 듯하는 눈으로 수양 대군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형님이 그런 간신 놈들의 꾀에 넘어서 외람한 뜻을 두면 우리 집안은 망할 것이요. 금왕의 숙부로서 군국 대권을 다 잡으시었으니 무엇이 부족하단 말씀이요? 형님이 만일 잘못된 뜻을 품으시면 천하가 명고이공(鳴鼓而攻)할 것이요. 나부터도 형님의 목에 칼을 겨눌 것이외다.” 하였다.
금성 대군은 수양 대군이 잡아떼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지마는 그 이상 더 말해야 쓸데없을 줄 알고 다만,
“형님, 매양 주공으로 자처하지 아니하시오? 부디 주공이 되시오. 그러고 충의를 모르는 간신밸랑 모두 물리치어 버리시오.” 하고 물러 나왔다.
금성 대군이 다녀간 뒤에 수양 대군은 대단히 불쾌하였을 뿐더러 또 놀래었다.
왜 불쾌한 고 하면 안평 대군이 없어진 뒤로 누가 감히 자기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하더니 나이로 말하면 십 사오년이나 어린 금성 대군이 얼러대는 품이 안평 대군 이상인 까닭이다.
괘씸한 것을 보아서는 당장 한 마디로 호령하여 버리겠지마는 금성 대군의 말이 옳고 보니 옳은 말의 힘에는 수양 대군의 패기도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허, 그것도 없애버려야 되겠는걸!” 하고 수양 대군은 나가는 친 아우 금성 대군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안평 대군을 죽이자고 정인지, 권람, 한명회의 무리가 진언할 때에는 골육의 정도 생각하고 세상의 물도 염려가 되었으나, 한 번 이러한 일을 저질러 놓은 뒤인 오늘날에는 그것 다 우스웠다. ‘제왕가(帝王家)에서는 그러한 일은 예사요’하고 권가, 한가들의 말이 과연 그럴듯하게 들리었다.
그것은 그렇다 하고라도 정인지가 어저께 경회루에서 벽좌우하고 왕께 아뢰었다는 말이 이렇게 빨리 외간에 흩어진 것이 놀랍지 아니할 수 없다.
“원, 누가 말을 내었담.” 하고 수양 대군은 매우 초조한 빛을 보인다. 왕이 사람을 시키어 누구누구 하는 사람들에게 정인지의 말을 전하였는가. 그렇다 하면 그 심부름은 누가 하였을까. 이 일을 금성 대군 외에 또 누가 아는가. 수양 대군은 이 생각 저 생각에 매우 신기가 불평하여 조반도 자시는 듯 말 듯하였다.
부인 윤씨가 수양 대군이 수색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나으리 무슨 근심이시오? 천운이 나으리께 돌아왔거든 무슨 근심이시오? 대사를 하시는 양반이 소소한 걱정을 버리시오.”
이것은 수양 대군이 무슨 근심을 할 때마다 그 부인이 격려하는 말이다. 더구나 ‘천운이 나으리께 돌아왔거든’ 하는 것은 입버릇 모양으로 반드시 하는 말이다. 부인의 이 말은 미상불 수양 대군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수양 대군은 그렇게 굳굳한 사람이면서도 어느 한편 구석에는 내약한 데가 있었다. 때로 그는 냉혹하기 철석 같아도 때로는 또 더운 눈물을 흘리는 이였다. 윤씨 부인이며 정가, 한가, 권가 같은 이들이 돕지 아니하였던들 그는 제왕의 사업을 할 생각은 아니하고 외로운 조카님을 도와 주공을 본받았을는지도 모른다.
“벌써 누설이 되었구려.” 하고 수양 대군은 부인을 바라보았다. 부인도 잠깐은 놀란다.
수양 대군은 금성 대군이 와서 하던 말을 하였다.
“그거 누설되었기로 걱정하실 것 있소? 성사하면 더 말할 것 없거니와 만일 일이 틀어지면 정 정승이 한 말이니 정 정승께 밀으시오 그려.” 하고 부인은 태연하다.
수양 대군은 부인의 바르지 못한 생각이 불쾌하여 입을 다물어버리었다.
식후에는 한남군과 영풍군이 와서 금성 대군 모양으로 정인지를 엄벌하고 수양 대군은 어디까지든지 주공이 되어서 어리신 상감의 몸과 자리를 옹호하여야 할 것을 말하고, 다음에는 또 송현수가 와서 그와 같은 뜻으로 수양 대군에게 간청을 하였다. 송현수는 부인의 조름을 못이기어 우선 수양 대군한테 한 번 말이나 하여 보자고 오기 싫은 길을 온 것이다.
수양 대군의 화는 상투 끝까지 올랐다. 은밀하게 한다는 노릇이 이렇게 그날 밤으로 누설이 되니 화가 아니 날 수 없다. 오늘 안으로 몇 놈의 모가지가 날아 나고야 말 것을 수양 대군은 생각하였다. 그 눈에는 살기가 있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06회>
한남군, 영풍군도 수양 대군을 만나 보고 나서는 분개하기는 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왕의 외숙 권 자신도 속수무책이라고 생각하고 다만 일이 되어 가는 양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많고 부인의 지혜를 가진 혜빈도 섣불리 이 사람 저 사람과 뜻을 통하다가 발각이 되면 한남군, 영풍군 두 분 아울러 자기 삼 모자가 화를 면하지 못할뿐더러 왕께까지도 누가 미칠 것을 알았다.
오직 따님을 생각하고 여량부원군 부인이 밖에서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궁중에서는 내시 김 충 등과 궁녀 막산 등이 발을 동동굴러 애를 썼다. 그러나 경계가 엄중하고 염탐이 많아서 비록 뜻이 같다 하더라도 서로 의사를 통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여편네들이 새에 나서서 입으로 말을 전하였으나 힘 있는 대감네들이 겁을 집어먹고 쉬쉬하니 수양 대군을 반대하여 왕을 옹호하는 큰 운동을 일으킬 가망은 없었다.
이래서 온 하루 동안이나 왔다 갔다 하던 끝에 세워진 계획이란 것이 무당을 시키어서 수양 대군과 정인지가 죽어버리도록 예방을 하는 것, 인왕산에 사람을 보내어 칠성과 산천에 왕과 왕후를 위하여 기도를 올리는 것 등이요,
가장 유력한 계획이라 할 것이 지중추 조유례(知中棰趙由禮), 호군(護軍) 성문치(成文(治) 등이 중심이 되어 일변 장사를 사서 수양 대군과 정인지 등을 습격하고 일변 격문을 돌리어 천하에 민심을 일으키자는 것인데 금성 대군을 머리에 떠받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다 준비도 되기 전에 김득상(金得祥)이 어제밤 밖에 나갔던 것이 발각이 되고 경회루에서 정인지가 왕께 선위를 청하는 말씀을 아뢸 때에 먼 발체에서 모시고 있던 내시들과 궁녀들이 왕과 왕후의 목숨을 해하려 음모를 하였다는 혐의로 엄형 국문을 당하게 되었다.
김득상은 대장부라 뼈가 부러지어도 실토할 리가 없지마는 젊은 궁녀 막산이가 매에 못 이기어서 왕후의 명으로 김득상에게 말 전한 이야기며, 늙은 상궁 하석, 고염석의 명으로 궁녀 수동과 함께 기둥 뒤에 숨어 정인지의 말을 엿들었단 말이며, 그 밖에 인왕산에서 기도하는 말, 수양 대군과 정인지를 저주한다는 말까지 다일러 바치어버렸다.
다만 왕께서 시키더니 하여 시키시었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그것은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또 조유례, 성문치 등이 하는 계획은 막산이가 몰랐기 때문에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막산이가 실토하는 중에 든 사람들은 모조리 붙들려버렸다.
사건은 이만하고 말았을 것을 소경 나갈두(羅乫豆)의 처 변씨(邊氏)가 그 남편을 없애버릴 생각으로 그 정부요, 금부(禁府)에 나졸(邏卒) 다니는 홍갑룡(洪甲龍)에게 여량부원군 댁에서 이러이러한 일로 점치려 왔더란 말을 고하여서 내근내(乃斤乃)가 붙들리게 되고, 왕의 유모 아가지(阿加之), 권자신의 비자 아지(阿只), 불덕(佛德), 무녀 내은(內隱), 덕비(德非), 용안(龍眼) 등이 인왕산 기도소에서 붙들리게 되었다.
조유례, 성문치(成文治) 등은 일이 탄로될 줄을 알고 조유례는 장사 김득성(金得誠)을 구종 모양으로 복색을 시키어 데리고 수양 대군을 찾아가고, 성문치는 장사 윤갯동(尹㖋同)을 데리고 정인지를 찾아 갔다. 이것은 기회를 엿보아 각각 하나씩 때려죽이자는 꾀다.
수양 대군은 조유례가 금성 대군 문객인 줄을 알기 때문에 보지 아니하고 궁노를 시키어 그가 데리고 온 구종으로 차린 김득성을 묶어서 죽도록 때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조유례를 욕보이어 금성 대군으로 하여금 분통이 터지게 하려는 뜻이다.
그러나 무예와 여력이 파인한 김득성은 감추었던 철여의를 내어둘러 달려드는 수양 대군 궁노들을 수십 명이나 두들겨 누이고,
“역적 수양 대군 나서라!”
소리를 치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김득성이는 임금의 원수와 아우(김득상)의 원수를 한꺼번에 갚으려는 듯이 성난 범 모양으로 철여의를 두르며 수양 대군 궁 안마당으로 뛰어 들어간다. 만일 수양 대군이 득성의 눈에 번뜻 보이기만 하였던들 득성의 성난 철퇴에 가루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양 대군은 벌써 뒷문으로 도망하고 부인과 두 아들과 맏며느리 한씨(우의정 한 확의 딸)와 여러 비복이 크게 놀래어 좁은 구석을 찾았다.
그래도 부대 부인 윤씨가 태연히 대청에 나서서,
“이놈! 어떤 놈이완데 어디라고 무엄하게끔... 이봐라, 저놈을 끌어내어 단개에 때려 죽이지를 못하느냐.” 하고 소리를 지른다.
“어머님! 어머님!” 하고 열아홉 살 되는 맏 아드님(이름은 숭(崇), 후에 왕세자 된 뒤에 이름은 장(暲)이니, 후에 덕종대왕(德宗大王)이라는 추숭을 받았다)은 황황하게 어머니 윤씨의 소매를 끌어 만류하고 일곱 살 되는 둘째 아드님(이름은 평보(平甫) 아버지 수양 대군이 왕이 되신 뒤에 이름은 황(晄) 세조 대왕의 뒤를 이어 예종대왕(睿宗大王)이 되시었다)은 어머니의 치마에 매어 달리어 득성을 바라보며 울었다.
부인은 두 팔로 두 아들을 안으며,
“이놈 어디 한 걸음만 올라서 보아라 천벌이 내릴 터이니!” 하는 소리에 득성은 기운이 꺾이었다. 어차피 인제는 죽는 몸이니 닥치는 대로 수양 대군 식구를 때려 죽이리라 하였더니 부대 부인 위풍에 눌리어서 수양 대군을 찾는 모양으로 뒤꼍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젖먹이(나중에 월산대군(月山大君))를 안은 수양 대군 맏 며느님 한씨를 만나 철퇴를 들었으나 때리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미처 뒷문을 다 나서서 밖에 매복하고 섰던 수양 대군 궁 호위하는 삼십여 명 갑사(甲士) 한 떼의 포위를 받아 반이나 죽도록 얻어맞고 잔뜩 결박을 지웠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07회>
조유례는 벌써 수족을 묶이어 문밖에 넘어지어 있다가 득성이가 갑사들에게 끌리어 나오는 것을 보고,
“수양은 잡았지?” 하고 물었다.
득성은 못 잡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인다. 흔들때에 이마며 두 귀밑에서 흐르는 피가 빗방울 모양으로 좌우로 흩어진다.
“으으응! 역적을 놓치었구나!” 하고 으쩍 깨문 것이 조유례 자기의 혓바닥이다. 수양 대군을 못 죽이었으니 자기는 죽는 몸이어니와 죽기 전에 국문을 받으면 혹시나 정신없는 소리로라도 금성 대군을 부를까 겁이 나서 차라리 말을 못하도록 혀를 끊어버린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빈발이 반백이나 된 조유례, 그는 결코 국은을 많이 받아 영달한 사람은 아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내려 반백인 수염을 적시고도 땅바닥을 물들이는 피는 그의 임금께 대한 충성이다.
정인지가 왕께 선위를 청한 것보다는 조유례가 수양 대군 궁에 야료한 것이 큰 변이다.
입으로 피를 흘리는 조유례와 전신이 도시 피투성이가 된 김득성은 반은 끌리고 반은 채워서 야주개와 황토마루를 지나 의금부(義禁府)로 왔다. 끌려가는 그들의 다리는 두 마디 세 마디로 부러진 듯하여 바로 서지를 못하였다. 아이들이 구경 삼아 뒤를 따랐다.
금부에는 벌써 성문치(成文治)와 윤갯동(尹㖋同)이 역시 반생반사가 되어 붙들려 와 있다가 조유례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실망한 듯이 고개를 숙여버렸다.
성문치도 장사 윤갯동을 데리고 정인지를 찾아갔으나 정인지 집 대문과 사랑에는 수십 명 갑사가 옹위하고 있어 사람을 들이지를 아니하므로 성 문치는 윤갯동을 데리고 병문 어귀에 숨어 있다가 정인지가 평교자를 타고 나오는 것을 보고 달려들었으나 정인지는 얼른 뛰어내려 길갓집 행랑으로 뛰어 들어가고 중과 부족하여 붙들려온 것이다.
이튿날 우의정(右議政) 한확(韓確), 좌찬성 이사철(左贊成李思哲), 우찬성(右贊成) 이계린, 좌참찬(左參贊) 강맹경(姜孟卿)이 비청에 모여 이번 사건을 의논할제 영의정 수양 대군과 좌의정 정인지는 일부러 의논에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직접 사건 관계자인 까닭인 것도 있거니와 또 하나는 어저께, 당한 일이 자못 창피한 까닭이기도 하다.
뒷문으로 도망한 수양 대군이나 길갓집 행랑에 숨은 정인지나 결코 남보기 부끄럽지 않지 아니하였다.
수양 대군과 정인지가 비록 이 자리에 있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여기 모인 자가 다 그들의 심복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직 한 확이 정인지와 공명을 다투는 일은 있으나.
수양 대군과 정인지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왕과 왕후에게까지 돌리고 싶었으나 왕은 사실상 이번 일을 아시지도 못할 뿐더러 아직 일반의 물론을 두려워하여 동지(同知) 중추(中樞) 원사(院事) 조유례(趙由禮), 호군(護軍) 성문치(成文治)를 역적으로 몰고 그들이 한남군(漢南 君)이 영풍군 선(永豊君璇) 등과 부동하여 금성 대군(錦城大君) 유(瑜)를 왕위에 올리려고 한 것같이 꾸미었다.
이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수양 대군과 정인지가 욕을 당하였다는 소문은 번개같이 퍼지어 ‘고소하다’ ‘통쾌하다’는 생각을 주었기 때문에 만일 이제 조유례, 성문치를 대신할 습격한 죄로 다스린다 하면 세상의 동정은 도리어 조, 성 등에게로 돌아가고 수양 대군과 정인지는 불이익한 처지에 서게 된다.
그러나 조, 성을 역적으로 몰면(그렇게 백성의 눈을 속일 수가 있을까) 몰지 못할 것도 없을 뿐더러 자기네는 도리어 왕을 옹호하는 충성으로서 왕을 위하여 조, 성의 욕을 당한 것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니, 이야말로 저 편의 화살로 저편을 쏘는 격이다 하는 것이 권람, 한명회의 헌책이었고, 또 정부에서도 그럴듯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리하여 조유례, 성문치는 고만이야 왕을 해하려던 음모자로 몰리고 혜빈 양씨, 금성 대군, 한남군, 영풍군 등은 수양 대군한테 찾아갔던 죄로 조, 성의 머리라 하여 삼남 각처로 귀양을 보내었다. 전혀 애매한 사람을 차마 죽이지는 못한 것이다.
윤갯동(尹㖋同), 김득성(金得誠), 김득상(金得祥), 왕의 유모, 이오(李午)의 처 아가지(阿加之), 궁녀 하석(河石), 고염석(高廉石), 김수동(金壽同), 김막산(金漠山), 내시 이 귀(李貴), 김인평(金印平), 김충(金忠), 소경 나갈두(羅乫豆), 송현수(宋玹壽)의 비자 내근내(乃斤乃), 권자신(權自愼), 비자 아지(阿只), 불덕(佛德), 무당 내은(內隱), 덕비(德非), 용안(龍眼) 등은 다 사형을 받았다.
이번 통에 요행으로 벗어난 것은 송현수와 권자신이니 이것은 부득이하여 면하여진 것이다. 왕이나 왕후가 수양 대군을 없이하기 위한 일이면 왕의 외숙과 장인이 참예도 하려니와 금성 대군의 무리가 왕을 없이하려고 하는 일에 그들이 관계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 알 수 없는 일은 이번 통에 영양위 정 종(零陽尉鄭悰)을 유배(流配)한 일이다.
어느 편으로 생각하더라도 그는 이번 사건에 관계한 형적도 없고 또 관계할 리도 없건마는 청천벽력으로 순천부(順天府)에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정 종이 귀양길을 떠나기 전에 경혜공주(儆惠公主)는 오라버님이신 왕께 마지막으로 하직이나 사뢰려 하였으나 국가의 죄인(?)으로는 그러한 특전을 허함이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 어머니의 피를 나눈 단둘 동기인 왕과 공주는 남북 천리에 이별하게 되었다. 그것은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음으로부터 왕은 유폐(幽閉)되나 다름이 없었다. 궐내에서도 마음대로 출입을 못 하시고 어느 한 전각에 계시라는 강제를 받아 왕은 항상 사모 하옵는 조부 세종 대왕께서 즐겨 거처하시던 자미당(紫薇堂)에 숨으시와 왕후와 마주 보시고 우시는 세월을 보내시게 되었다. 그러한 세월도 며칠이 없었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08회>
금성 대군은 순흥부(順興府)에, 영양위는 순천부(順天府)에, 이 모양으로 왕의 편이 될 만한 이들은 다 먼 곳으로 치어버림이 되었다. 왕의 곁에 모시던 낯익은 내시와 궁녀들조차 다 비평에 죽어버리니 궁중은 왕과 왕후에게는 지옥보다도 더욱 적막하였다.
“상감마마, 모두 소인이 경솔하와……” 하고 왕후 송씨는 당신이 이번 일을 저지르신 것을 왕의 앞에 후회하고 운다.
“이만만 하고 말겠소? 이보다 더한 일이 올 터이지. 그렇게 눈물을 흘려서 되겠소. 마음을 철석같이 가지고도 견디어내이기가 어려울걸. 그렇지마는 불서(佛書)에도 인생은 헛된 것이라 하였고, 또 속담에도 우리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 하였으니 꿈이 오래면 얼마나 오래요? 그저 가위눌린 줄 알고 지납시다그려.”
왕은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마치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난 노성한 사람 모양으로 그러나 언제나 이렇게 태연한 생각으로 계실 수는 없었다. 원래 인자하신 성품에 왕후가 슬퍼하시는 것을 보실 때에는 웃는 얼굴을 지으시고 불경 생각도 하시어 태연하신 태도로 위로하는 말씀도 하시지마는 그것도 한때지, 혼자 촛불을 대하실 때나 어원(御苑)에 새 소리를 들으실 때에도 눈물이 앞을 가리움을 금하실 수가 없었다.
조부님 생각, 아버님 생각, 용모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불쌍하신 어머님 생각, 남편 따라 죄없이 먼 시골에 귀양 간 누님 생각, 애매한 원혼이 된 근시하던 내시와 궁녀들 생각, 믿던 숙부 수양 대군 생각, 막막한 앞길, 가엾은 왕후의 신세, 모두 불길한 생각, 피눈물을 자아내는 생각뿐이다. 밤에 주무시다가도 경회루에서 정인지를 꾸짖으시던 꿈을 꾸시고는,
“이놈! 늙은 놈이! 그것이 임금 섬기는 도리냐.” 하고 소리를 지르시고 목을 놓아 우시었다.
“상감, 꿈이시오, 꿈이시오.” 하시고 왕의 옥체를 흔들어 깨우시는 왕후도 울음을 참으시노라고 입술을 물으시었다.
“내가 칼을 빼어서 인지 놈을 치려는 서슬에 나를 깨우시었구려.” 하시고 왕은 아까운 듯이 입맛을 다시었다.
잠을 깨어서 가만히 눈을 감고 계시노라면 죽어버린 늙은 김 충, 김인평, 이 귀 같은 내시들이며 수동, 막산 같은 젊은 궁녀들의 모양이 방안에 어른거리는 듯하여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으신다.
그러다가는 수양 대군과 정인지가 횃불을 돌리고 칼 빼어 든 군사를 데리고 두 분이 주무시는 침전으로 들어와 두 분의 목에 칼을 겨누는 모양도 보인다.
왕은 이러한 불쾌한 환상(幻像)을 떼어버리려고 베개 위에서 머리를 흔드시고, 흑은 잠드신 왕후를 흔들어,
“마마 마마, 자오!” 하고 깨우시기도 한다.
그러한 때에는 두 분 사이에 무서운 생각이 나지 아니 할 만한 말씀, 어리신 때에 지내시던 일, 혼인하신 후에 생긴 일 중에도, 유쾌하던 일을 골라서 말씀하시나 어느덧 차고 무서운 현실 문제에 이야기 끝이 돌아와서는 눈물과 한숨으로, 그리고는 서로 위로하시는 말씀으로 끝을 맺고는 피차에 저편이 먼저 잠드시기를 기다리시었다.
한 번 왕께서 어떤 산 밑, 강가에 정결한 초당을 지으시고 농가 생활을 하신다는 꿈을 꾸시다가 깨어서 왕후를 깨워 그 꿈 말씀을 하시고는,
“그런데 꿈에 그 집에 마마는 아니 왔거든. 그 어째 아니 왔을까. 내가 있는데 마마가 아니 올 리가 있소?” 하고 웃으신다.
“새로 집을 짓는 꿈을 꾸면 흉하다는데.” 하고 왕후는 민간에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였으나 그런 말을 아뢰지 아니하고,
“김씨는 꿈에도 상감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어요?” 하시고 잠깐 질투하시는 생각을 말하였다. 김씨라 함은 왕후와 동시에 권완(權完)의 딸과 함께 후궁으로 들어온 이니 김사우(金師寓)의 딸이다. 왕은 김씨를 특히 사랑하시는 까닭이다. 김씨는 가장 영리하고 아름다웠던 까닭이다.
“마마, 내가 왕위를 버리고 일개 농부가 된다면 마마는 어찌하려오?” 하고 왕은 더욱 잠이 달아나시는 모양으로 왕후께 농담 삼아 말씀하신다.
“상감께서 농부가 되옵시면 소인은 지어미가 되지 아니하오리까... 그런데 왜 그러한 흉한 말씀을 하옵시는지.”
왕후는 심히 염려되시는 모양이다.
“농부 된다는 것이 흉한 말일까. 나는 왕가에 태어나지 말고 농부의 집에 태어났으면 하오. 농부들 속에야 수양 숙부와 같이 무정하고 정인지 모양으로 고약한 사람이 있을라고.
산에고 들에고 마음대로 다니고 백반종탕이라도 마음 편히 끓여 먹고 앉았는 것이 도리어 살찔 것 같단 말이요.” 왕의 말끝은 흐린다.
“그야 상감께서는 인자하시와 백성을 생각하시기에 그러하시거니와... 어찌하여 그런 슬픈 말씀만 하옵시는지.” 하시고 왕후는 지극히 슬퍼하시는 모양으로 몸을 상감 무릎 위에 엎드리신다.
왕은 손을 들어 왕후의 등을 만지시며,
“농담이요. 부러 하는 말이요.” 하고 위로하시나 왕후의 등을 만지시는 손은 떨린다.
왕은 일래에 심히 수척하시었다. 밤에 잠을 잘못 주무시고 수라도 원체 많이 잡수시는 편은 아니시지마는 요새 며칠 동안에 수라를 드시는 듯 마는 듯하시었다. 그래야 왕후 밖에는 왕이 이러하심을 근심하여 드리는 이조차 없다.
내시나 나인이나 모두 권람, 한명회가 고르고 골라서 드린 것들이니 왕이나 왕후를 편안하시게 모신다는 것보다는 두 분의 동정을 염탐하고(설마 그렇기야 하랴마는) 도리어 일부러 두 분의 심사를 불편하시게 하는 듯하다. 그렇게까지는 아니간다 하여도 지밀(至密)에 있는 이로는 두 분께 대하여 정성을 가지는 이는 극히 적었고 설사 있다 하더랃 그런 빛을 드러내는 것은 생명이 위태한 일이었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09회>
이렇게 불쾌하고 답답하고 외롭고 괴로운 세월을 보내시는 왕에게는 날마다 정인지, 신숙주(申叔舟), 이계전(李季甸), 권람(權擥), 이사철(李思哲)의 무리가 번갈아 들어와서, 혹은 달래고, 혹은 타이르고, 혹은 가장 충신인 체하고 울며 간하고, 혹은 위협하여 수양 대군에게 선위하시는 길밖에 없는 것을 귀찮게 아뢰인다
“또 그 말이야?” 하고 왕은 마침내 화를 내시게 까지 되었다. 그러나 저 무리는 예정한 계획이라 화를 내시거나, 말거나 진노하시거나 말거나 그것을 교계할 바가 아니다. 단, 왕을 귀찮으시게 하여 자리에서 물러나시게만 하면 그만인 듯하였다.
왕으로 하여금 선위하시게 한 공을 어떤 사람 하나에게만 돌리는 것이 못할 일이니 나도 나도 공에 한몫 끼이자 하는 것이 이 충신들의 심리다. 이대로 오래 감에 칼을 품고 달려들어 왕의 목을 베어 들고 수양 대군 앞에 공 자랑을 할 사람이 나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 남보다 뛰어나는 공을 세우려다가 자칫하여 모가지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바로 전 사람이 왕께 여쭌 말씀 정도보다 한 걸음만큼 더 나가게 하는 것이 약은 것이었다.
그래서는 갑보다는 을이 더 들으시기 어려운 말씀을 왕의 앞에 아뢰면 병은 을보다 한층 더 심하게 하고 다시 갑은 병보다 더 심하게 하여 이렇게 끝없이 들락날락 점점 더 무엄하게 되었다.
왕께서는 처음에는 괘씸하게도 무섭게도 생각하시었으나, 나중에는 그 무리가 모두 파리떼와 같고 모기떼와도 같아서 귀찮고 성가시기만 하시었다.
저놈들도 사람인가. 인형은 썼지마는 모두 개, 돼지만도 못한 놈들이다. 모두 더럽고 염치없고 음흉하고 간교하고 은혜 모르고 야멸치고, 평소에 그렇게 번드르 하게 공자, 맹자 다된 듯이, 이 윤(伊尹), 주 공(周公) 다된 듯이 굴던 놈들이 일조에, 일조에, 일조에 똥 묻은 개가 다 된 것을 생각하시면 도리어 우스꽝스럽고 통쾌하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얼마큼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도 하시었다.
아무리 여러 신하들이 성가시게 선위하시기를 아뢰어도 왕께서는 한결같이 물리치시었다.
그러나 하루는 정인지가 왕께 최후의 경고를 하였다. 그것은 왕께서 만일 자진하여 선위하시지 아니하시면 ‘국가를 위하여’ 강제로라도 선위하시도록 할 터이니 생각하시라는 것이다.
이때에 정인지는 몸소 들어오지 아니하고 신숙주를 시키어서 말씀하게 하였다. 정인지가 몸소 예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시킨 것은 실로 무례하였으나 그는 병탈을 하였고 또 그렇지 아니하더라도 이제는 왕께서 그런 것을 책하실 힘이 없으시었다.
신숙주(申叔舟)는 정인지의 뜻을 아뢰고 나서는 자기 뜻으로 선위하심이 왕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가장 온편한 계책임을 아뢰었다. 다년 외교관으로 닦은 변설로 신숙주는 어리신 왕의 뜻을 움직임이 컸다.
그의 말은 마치 충성된 신하로서 임금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부득이한 처분을 청하는 은근한 태도를 가지었다. 은근한 태도만 하여도 왕께는 한없이 고마웠다. 그동안 왕께 진언(進言)한 대관들은 군신의 본의를 지키는 것은 처음뿐이요, 왕께서 자기네 말을 거절하실 때에는 가장 무엄한 태도와 말로 지존을 위협하였다.
인정 반복이 어찌하면 이토록 심하랴 하고 왕은 우시었다. 그런데 신숙주는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모양, 귀에 거슬리는 말은 아니 하였다.
“저놈인들 내게 무슨 충성이 있으랴.” 하시면서도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가리지 아니하는 모양으로 은근한 태도만이 고마웠다.
이때에는 왕은 신숙주의 아뢰는 말씀에 화도 아니 내시고 가만히 듣기만 하시었다.
신숙주도 왕께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근심에 잠기신 것을 뵈올때에 가슴에 측은한 생각이 움직이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숙주의 청랑한 기억 속에는 왕께서 왕손으로 계실 때에 세종께서 품에 안으시고 집현전으로 오시와 자기와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을 바라보시고,
“이 어린 것을 부탁한다.” 하시던 것이며 또 문종 대왕께서(문종 대왕은 신숙주의 무리와는 군신지의가 있을 뿐 아니라 죽마고우라 할 만한 친구였다. 문종이 동궁으로 계실 때에 얼마나 신숙주의 무리를 애경하시었다. 공부를 같이 하시고 사업을 같이 하시지 아니하시었던가 승하하시기 얼마 전에 그때 동궁이신 왕의 등을 만지며 눈물겨운 말씀으로,
“부탁한다.” 하시던 것이 역력히 생각난다. 그날 밤에 술이 대취하여 입직청에서 잘 때에 문종 대왕은 손수 어의로 숙주의 무리를 덮어 주시지 아니하였던가. 이것이 얼마나한 은혜며, 얼마나한 우정인고. 그때에 숙주는 잠이 깨어 눈물을 흘리며,
“이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안 버리고 어이하리.” 하고 성삼문과 함께 맹세하지 아니하였던가. 그것이 겨우 삼년 전 일이다. 그런데 신숙주는 수양 대군의 수족이 되어 선왕에게 고명받아 도와야 할 왕을 보좌에서 떠밀어 내는 것으로 갚으려 한다.
나도 뜻을 정하였으니 다시는 “성가시게 굴지 말라고 수상(首相)과 좌상(左相)에게 말하오.” 하시고 신숙주를 내어 보내시었다.
신숙주가 나간 뒤에 왕은 목을 놓아 통곡하시었다. 자미당 첩문을 나서다가 신숙주는 왕의 곡성을 듣고 추연히 배회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세가 이미 이리된 바에 부질없이 왕께 동정하는 양을 보이다가 장래에 화를 사는 것이 극히 어리석은 일인 것을 깨닫고 빨리빨리 걸음을 옮기어 무서운 데서 달아나는 사람과 같았다.
이날 이때의 말할 수 없이 슬픈 인상은 일생 신숙주의 가슴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를 괴롭게 하였다. 그가 임종(그는 오래 살지도 못하였다)에 가장 괴로움 받은 것이 이때 생각이었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10회>
왕후는 불시의 곡성에 놀라시었다. 이날에 두 분은 마주 보고 마음놓고 우시었다. 자미당에서는 느껴 우시는 소리가 온종일을 두고 때때로 울려 나왔다. 비록 무심한 내시들과 궁녀들도 비감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날에 왕은 마침내 큰 결심을 하시었다.
하룻밤을 울음으로 지내신 왕이 잠을 이루시기는 짧은 여름밤이 다 지나고 훤하게 먼동이 뜰 때였다. 왕은 옷도 끄르지 아니하시고 안식에 비스듬히 기대신체 그만 잠이 들어버리신 것이다. 왕께서 잠드시는 것을 보고야 왕후께서도 눈을 붙이시려 하였다.
그러나 왕후는 마침내 잠이 드시지를 못하시었다. 그것은 왕께서 슬퍼하심의 심한 것이 염려될뿐더러 또 왕께서 어떠한 결심을 하시었는지 조금도 발설치 아니하는 것이 근심이 되었다.
어떠한 생각을 하시느냐고 물으시기도 어렵고 다만 한 마디 한 마디 눈치만 떠보려 하나 왕께서는 털끝만치도 왕후에게까지도 뜻을 보이심이 없으시었다. 그것이 왕후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다만 왕후에게 한 가지 대견한 것은 이러한 큰 슬픔이 생긴 뒤로부터 왕이 왕후에 대한 애정이 눈에 뜨이게 깊어짐이다. 어리어서 혼인하신 까닭도 있지마는 왕과 왕후는 그리 정 다우신 내외분은 아니시었다. 왕후가 다소 샘을 가지시는 바와 같이 후궁 김씨에게 대한 애정이 더 많으시었다. 그러하던 것이 최근에 와서는 눈물겹도록 왕후를 측은히 여기시었다.
실상 왕에게 이때에 애정이니 무엇이니 할 여유가 없으시었지마는 이러한 인생의 어려운 일, 아픈 일을 당하시매 본래 인정을 통찰하는 밝은 마음을 가지신 왕은 임금이라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위를 뛰어넘어 벌거벗은 사람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경계를 터득하신 것이다.
이 때문에 정인지 같은 사람까지도 측은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는 양반이시기 때문에 왕은 남보다 갑절 인생의 슬픔을 맛보시는 것이다.
왕은 인정이 많으심으로나 인생을 속 깊이 통찰하심으로나 시인(詩人)이시었다. 그러나 시인만 되시었던들 다행일 것을 시인의 상상력으로 지어내기 어려운 큰 비극의 가장 비참한 주인공이 되시었다.
그래서 왕은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생의 슬픔을 감수할 여가가 없이 당신 스스로의 아픔과 쓰림을 감수하시게 되었다. 그 어리고 연연하고 인자하고 깨끗하고 죄없는 몸이 마음이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수난(受難)을 하심은 너무 애연한 일이다.
윤유월 초 십일. 가뭄은 아직도 끝날 바를 몰라서 대궐 마당에 풀 잎사귀도 노릇노릇 시들 지경이다. 대궐 추녀 끝에 지저귀는 참새들도 더위를 못이기어 입을 벌리고 할딱거리고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던 왜가리, 따오기도 헛걸음을 하고 어원 수풀로 돌아갔다. 더구나 날개도 흔들지 아니하고 마치 날개를 잊어버린 듯이 휘 공중에 떠도는 소리개의 백년 풍상에 다 떨어진 거무데데한 날갯죽지가 숨이 막히는 더위를 내어뿜은 듯하다.
경회루 연당에 비추이는 흰 구름 조각, 그 그림자에 흔들리는 가는 물결 그것조차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듯하거든 몇 천년에 두 번도 있기 어려운 큰 슬픔은 왕의 가슴이야 오죽이나 답답하시었으랴.
돌아보는 이 하나도 없는 참으로 하나도 없는 외로운 처지 잡아먹으려는 흉물에게 에워싸인 처지 그것은 백날 가무는 여름날보다도 더욱 숨 막히는 일이다.
그러한 윤유월 초 십일 오정이 지나서 우의정(右議政) 한 확(韓確)이 왕께 알현하였다. 사흘 만에 뵈옵거니와 왕은 몰라보게 수척하시어 진실로 차마 뵙기 어려웠다. 왕과 연배가 같은 자녀들을 둔 한 확은 왕의 이렇게 초췌하신 양을 뵈옵고 측은한 정이 발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용안이 초췌하옵시니 옥체미년 하옵시니까.” 하고 한 확은 진정으로 왕을 동정하였다. 실상 이번 선위 문제에 대하여 공이 정인지에게 돌아가 장차 세도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한 확은 그윽히 불쾌하게 여기었다. 될 수만 있으면 이번 정인지가 머리가 되어서 하는 선위 문제를 방해하여 정의 세력을 때려 누인 뒤에 서서히 자기가 중심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왜 그런고 하면 한 확은 성격으로 보든지, 수양 대군과 인척 관계로 보든지 그보다도 그 딸을 명나라 황제의 후궁에 넣어 광록사(光祿寺) 소경(少卿)이라는 명나라 벼슬을 가진 것(이것은 당시에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었다)으로 보든지 한 확은 정인지의 하품에 서기를 달게 여기지 아니한다.
“몸보다 마음이 아프오마는 나 같은 사람이 아프거나 쓰리거나 경 같은 사람에게 무슨 상관있소?” 하고 왕은 전에 없이 한확의 말을 빈정거리었다.
“황송하오.” 하고 한 확은 허리를 굽힌다.
“우상은 명나라에도 다녔고 명나라 벼슬도 하였으니 알 만하오마는 그 나라에서는 대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소?” 하고 왕은 이상한 말씀을 물으신다.
“하문합시는 뜻을 소신이 알지 못하오나 황조(皇朝)기로 신하의 도리에야 국조(國朝)나 다름이 있사오리까.”
“같단 말요?”
“예, 같은가 하옵니다.” 하는 한 확은 어떻게 아뢸바, 임금의 뜻이 무엇인지를 몰라 당황하였다.
“그러면 명나라에서도 대신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번갈아 돌며 나며 임금더러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기로 일을 삼소?” 하시고 낭랑하게 웃으신다.
“소신이 지존 앞에 무슨 죄를 범하였사온지?” 하고 한 확은 울고 싶도록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11회
그에게는 그만큼 내약한 구석도 있었거니와 또 왕이 이상하게 태연하신 태도로, 마치 노성한 사람 모양으로 풍자를 하시는 것이 모두 심상치 아니하여 그 태연하신 위엄함과 열일곱 살답지 아니하신 지혜에 놀린 것이다.
“우상이 무슨 죄가 있겠소? 세울 공을 못 세웠으니까 오늘 그 공을 세우려 왔나 보오.”
“소신이 세울 공이 무엇이든지, 만일 소신더러 하라시는 일이 있다 하면 소신이 분골쇄신을 하옵기로 견마지역(犬馬之役)을 다하려 하옵거니와 어리석은 소신이 무슨 일을 하올바를 알지 못하옵니다.”
왕은 한확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아니하는 듯이 눈을 들어 이글이글 불길이 일어난듯 한, 뜰에 까치와 참새가 뛰어다니는 것을 바라보시다가 한 확에게로 얼굴도 돌리지 아니하시고, “흥 내게 견마지역을 하여서 공 될 것이 있소? 좌의정 본을 받아서 새 임금 밑으로 돌아 가야지....”
이때에 마당에 앉아서 무엇을 주워먹던 참새 두 마리가 물고 차고 오르락내리락 서로 싸우는 것을 보시고,
“어, 조놈들이 왜 싸울까. 넓은 천지에 조그만 몸둥이가 무엇이 부족해서 서로 싸울까. 요놈, 고얀놈들로고.” 하시고 궁녀를 시키어 싸우는 참새를 날려버리라고 분부하신다.
한 확도 고개를 들어 뜰을 바라보았다. 궁녀의 ‘후어! 후어!’하는 소리에 싸우던 참새들은 싸움도 원수도 다 잊어버리고 날아서 지붕을 넘어버린다.
“새 임금이라 하옵시니 어쩐 말씀이시온지?” 하고 한 확이 왕께 여쭙는다.
왕은 참새들이 날아가는 양, 붉은 잠자리가 오고 가는 양, 하늘의 구름, 모두 무상을 아뢰는 듯한 자연을 바라보시매 인생만사가 다 귀찮은 것만 같이 생각이 되어 아까보다도 더욱 냉정하신 어조로,
“우상, 내가 만기(萬機)를 수양 숙부에게 맡기려오 한다고 해 놓은 일이 있소. 정인지가 나를 내어쫓은 공을 혼자 차지할 터이니 경이 가서 내 다짐을 받고 왔노라고 하오.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오?” 하시고 또 하하 웃으신다.
한 확은 엄연히 위엄을 갖추어,
“상감께 아뢰오. 아까 정인지가 새 임금 밑으로 돌아갔다 하옵시고 이제 또 만기를 수양 대군에게 맡기신다 하옵시니 그것이 어찌한 말씀이옵신지? 수양 대군은 이미 군국 대사를 다 맡았사온 즉 다시 더 맡기옵실 것은 무엇이오리까.
수양 대군이 매양 주공되기로 자처하오니 설마 이지를 품을 리 없사온 즉, 모르옵거니와 좌의정 정인지가 무슨 무엄한 말씀을 아뢴 것이나 아니온지, 도무지 소신은 어찌 아뢸바를 알지 못하옵니다.
설사 조정에 딴 뜻을 품는 자가 있다 하오면 목을 베어 천하에 보이심이 지당하옵거든 만기를 맡기옵신다 하옵심은 어찌한 성의(聖意) 이온지?” 하고 한 확은 음성에는 충분(忠憤)이 떨리는 듯하다.
이튿날 왕은 정식으로 내시 전균(田鈞)을 우의정(右議政) 한 확(韓確)에게 보내어, 이러한 뜻을 전하였다.
한 확은 어제 아뢴 대로 그러시지 마시기를 전균을 통하여 계청하였다.
그러나 왕의 뜻은 굳었다.
“내 전일부터 이 뜻을 가지었노라. 계교 이미 정하였으니 가히 고치지 못할지라. 속히 모든 절차를 차비할지어다.” 하시는 교지를 다시 내리시었다.
이날은 단종대왕 삼 년 을해(乙亥) 윤유월 십일일이다.
이왕 선위를 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면 정인지배에게 위협을 당하여 창피한 꼴을 당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내 편에서 내어던지리라 한 것이 왕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을 내시느라고 왕은 지난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몇 번을 우시었다. 우의정 한 확에게 선위하신다는 전교를 내리신 뒤에는 부랴부랴 간략한 노부(盧簿)로 종묘에 하직까지 하시었다.
신시(申時)!
정원(政院), 정부(政府), 육조(六曹)할 것 없이 대신으로부터 아래 서리(書吏)에 이르기까지 난리를 당한 모양으로 꿇었다.
신시!
백관은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모였다. 아무도 가슴만 두근거릴 뿐이요, 입도 벙긋하지 못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이 생기지 아니하느냐, 발가락만 달싹하여도 무슨 큰 변이 날 것만 같았다.
부슬부슬 안개비가 온다. 음산한 바람이 이따금 연당에 마르나 남은 물에 가는 물결을 일으킨다.
승지(承旨) 성삼문(成三問)은 명을 받아 내시 전 균(田鈞)을 데리고 대보(大寶)를 가지러 상서원(尙瑞院)으로 달려간다.
삼문이 대보를 내시 전 균에게 돌리고 경회루로 돌아올 때에 사정전(思政殿) 뒷문밖에 서도총부(都摠府) 관노(官奴)를 만났다. 관노는 성삼문에게 절하고 종이 조각 하나를 전한다.
도총부(都摠府) 도총관(都摠管)으로 입직(入直)한 성삼문의 부친 성승(成勝)의 필적이다. 다른 말 아무것도 없고,
“참인가.” 하는 두 자뿐이었다. 물론 오늘 왕께서 선위하신다 하니 참이냐 하는 뜻이다.
경회루 밑 박석 위에 아무것도 깔지도 아니하고 남향으로 옥좌를 설하고 앞에는 정원(政院), 정부(政府), 육조(六曹), 집현전(集賢殿),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의 중요한 대관들이 모였다. 그들 중에도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분명히 아는 이는 몇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다. 다만 왕께서 급히 부르신다고만 들었을 뿐이다. 물론 무슨 일인지 속으로는 다 알았다. 그처럼 창졸간에 이 일이 생겼다.
나중에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좌의정(左議政) 정인지(鄭麟趾)를 데리고 위풍이 늠름하게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수양 대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대관들은 모두 약간 허리를 굽히어 경의를 표하였다.
모두 마음이 그를 무서워하는 생각이 났다. 수양 대군은 일동을 휘둘러보고 옥좌에서 댓 걸음 앞에 읍하고 섰다.
이렇게 기다리기 한참. 음산한 바람만 이슬비를 돌아 연당 위로 오락가락한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12회>
이윽고 왕이 사정전 뒷문을 납시와 초췌하옵신 용안이 경회루를 향하시고 옥보를 옮기시었다. 상감으로는 마지막 걸음을 걸으시는 것이다.
왕은 익선관(翼蟬冠), 곤룡포(袞龍袍)를 갖추시었다. 감개무량하신 모양으로 경회루와 연당과 인왕산을 한 번 돌아보신 뒤에 약간 걸음을 빠르게 하시어 권설한 옥좌에 좌정하신다.
수양 대군, 정인지, 한 확을 비롯하여 대소 관리가 다 이마가 땅에 닿으리만큼 허리를 굽힌다.
승지(承旨) 성삼문(成三問)은 대보를 안고 옥좌에서 두어 걸음 오른편에 시립하였다.
이날에 문관만을 부르고 무관을 부르지 아니한 것은 수양 대군의 의사다. 무신의 곧고 굳센 성정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떤 변을 일으킬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도총관 성승(成勝)이나, 훈련도감(訓鍊都監) 유응부(兪應孚)나, 용양위 대호군 송석동 같은 이는 수양 대군이 이날에 꺼리는 사람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요, 금영대장(禁營大將) 봉석주(奉石柱)도 반드시 수양 대군의 심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권 람(權擥)은 이조판서(吏曹判書)로, 한명회(韓明澮)는 어느덧 병조판서(兵曹判書)로 모두 불차(不次)로 엽등(躐等)하여 의기양양하게 수양 대군 뒤에 서 있다.
우찬선 강맹경(右贊成姜孟卿)은 계유 사변에 도승지(都承旨)로서 수양 대군에게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의 계획을 일러바친 사람이요, 그 밖에 옥좌 앞에 늘어선 대소 관인들은 다 수양 대군이나 정인지와 무슨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신숙주(申叔舟)가 온 것은 물론이요, 승지(承旨), 사관(史官)이 시립하고 박팽년(朴彭年)도 집현전(集賢殿)에 입직하였다가 불리웠다.
박팽년은 성삼문, 하위지(河緯地) 등과 아울러 수양 대군이 자기 사람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 중에 하나다.
왕은 태연하려 하시나 그래도 흥분한 빛을 감추지 못하여 손을 가만두지 못하시었다. 사람들은 무슨 처분이 내리는가 하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왕은 일어나신다. 그 아름다우신 얼굴에 빛나는 눈!
“영의정!” 하고 낭랑한 음성으로 부르시니 수양 대군은 서너 걸음을 추보(趨步)로 옥좌 앞으로 나와 부복한다.
“오늘 대임(大任)을 숙부께 맡기오.” 하시고 예방승지 성삼문을 향하여 국새(國璽)를 올리라는 뜻을 보이신다.
성삼문은 두 팔로 받들었던 옥새를 힘껏 부둥켜 안고 그만 실성통곡한다.
수양 대군은 부복하여 있다가 머리를 들어 성삼문을 흘겨본다.
성삼문은 두 눈에 눈물을 거들 수도 없이 왕명을 거스르지 못하여 슬행(膝行)하여 국새를 받들어 왕께 드린다.
왕은 성삼문에게서 국새를 받으시와 수양 대군에게 전하신다.
시립한 사람들 중에서는 느껴우는 소리가 들린다. 한 확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비록 밖에서는 왕의 선위를 주장하던 무리라도 손에 옥새를 들고 서 계신 왕을 우러러 뵈옵고 그 심사를 미루어 볼 때에는 눈물이 아니 흐를 수가 없었다.
수양 대군은 이마를 조아려 세 번 사양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일어나 옥좌 앞에 꿇어앉아 왕의 손에서 국새를 받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다시 부복하였다. 수양 대군도 마음이 설레고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으나 조금도 슬프지 아니하였다. 손에 오랫동안 바라고 바라던 옥새가 있지 아니하냐. 이것은 꿈이 아니라야 한다.
왕은 명하여 수양 대군을 부축하여 나가게 하라 하시고 당신도 모든 시름,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이, 그러나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옥좌에서 일어나시어 왕의 위엄도 다 끝났다 하는 듯이 걸어 나가신다.
박팽년은 안색이 죽은 사람 같더니 왕이 ‘인제는 왕이 아니시다’ 듭신 뒤에 경회루 연못에 빠져 죽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성삼문에게 붙들린 바 되었다.
“이 사람, 참으소. 비록 신기(神器)는 옮기었다 하더라도 상감께서는 아직 상왕(上王)으로 계옵시니 우리네는 아직 죽지 말고 할 일이 있지 아니한가. 그리다가 성사가 아니되면 그때에 죽더라도 늦지 아니할 것이 아닌가. 이 사람아 참으소.” 하고 손을 마주잡고 통곡하였다.
남산과 낙산에 무지개가 서고 인왕산 머리에 걸린 햇빛이 구름 틈으로 흘러 경회루와 울고 섰는 두 사람을 비추인다.
수양 대군은 곧 근정전으로(勤政殿) 올라가려 하였으나 다시 생각하고 대군청(大君廳)으로 나왔다. 이때에는 벌써 수양 대군이 아니요, 상감마마시어서 백관이 좌우에 시립하고 군사가 겹겹이 시위하였다.
일각이라도 지체할 수 없다. 일변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蒙)을 시켜 선위(禪位), 즉위(卽位)의 교서(敎書)를 봉하게 하고 일변 유사(有司)를 시켜 근정전(勤政殿)에 헌가(軒架)를 베풀어 즉위식 차비를 시켰다. 그동안이 실로 순식간이다.
수양 대군은 미리 준비하였던 익(瀷) 선(蟬) 관(冠),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위의 엄숙하게 백관의 옹위를 받아 근정전 뜰로 돌아가 수선(受禪)하는 의식을 마치고는 정전에 올라가 옥좌에 앉아 백관의 하례를 받고 이내 사정전(思政殿)에 들어가 상왕(上王)께 뵈오려 하였으나 상왕은 받지 아니하시었다.
그날 밤으로 왕(수양 대군)은 근정전에 대연을 배설하고 백관을 불러 질탕하게 노시었다.
오늘 밤에는 군신지분을 파탈하고 놀자. 누구든지 마음대로 마시고 마음대로 노래하고 마음대로 춤추라, 무슨 일이나 허물치 아니하리라 하시었다. 그리고 왕이 친히 잔을 들어 정인지, 신숙주, 강맹경, 한 확 같은 공신들에게 잔을 권하고 좀 더 취하게 되매 몸소 무릎을 치고 노래를 부르시었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13회>
신하들도 한없이 기쁜 듯하였다. 아까까지는 영의정이요, 같은 신하였지마는 지금은 상감이 되신 수양 대군이 손수 권하시는 술잔을 받을 때에 황송하고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고, 우리 성주(城主)께 충성을 다하리라고 술 취하여 어눌한 음조로 맹세하는 것은 저마다였다.
질탕한 풍악이 울려올 때에 사정전(思政殿)에 계옵시던 상왕(上王)께서는 왕대를 돌아보시고 말없이 낙루하시었다. 새 임금을 모시고 질탕하게 노니는 옛 신하들은 흥겨워 옛 주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하여서라도 새 임금의 마음에 들자, 어떻게 하여서라도 옛 임금을 사모하는 표를 보이지 말자 하고 그들은 없는 취흥도 돋우었다. 더구나 정인지, 강맹경 같은 사람들은 회색이 만면하여 새 임금의 성덕을 칭양(稱揚) 하였다.
권람과 한 확 같은 무리는 여러사람들 새에 끼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즐기는 체하면서도 누가 불편한 기색을 가지는가 하고 속으로 치부하여 두었다. 그중에 성삼문, 박팽년의 무리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이 자리에 허 후(許詡)나 살아 있었던들 한바탕 풍파를 일으켰을 것이나 그러한 노인은 이미 씨를 끊었다. 오직 청년 학사들 중에 비분강개한 눈물을 머금고 끓어오르는 창자를 둘 곳을 몰라 할 뿐이다.
잔치가 더욱 질탕하고 군신 간에 취흥이 더욱 무르녹았을 때에 성삼문은 참다 못하여 뒷간에 간다 핑계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였다. 이 개(李塏)도 나오고, 유성원(柳誠源)도 나왔다. 나중에 박팽년(朴彭年)도 나와서 뜰에 서서 서로 손을 잡고 울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오직 김예몽(金禮夢)이 이번 선위, 측위의 교서를 짓는 사람으로 뽑힌 것을 자랑삼아 의기양양하고 홍윤성(洪允成), 양 정(楊汀) 같은 무리가 호기 당당하여 공신의 머리인 것을 자랑하였다.
“숙부!” 하고 왕은 연해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돌아보고 마치 그의 승인을 얻으려는 듯이 환심을 사려하였다. 양녕 대군은 오래 산 것과 공연히 서울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고 내일로 금강산을 향하여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태평건곤이 열린 한편 구석에 거의 아무도 모르게 상왕은 왕대비와 함께 대궐을 빠져 나시어 수강궁(壽康宮)으로 몸을 피하시었다.
왕은 이날 밤을 이 대궐 안에서 지내시기를 원치 아니하시었다. 조부님, 아버님이 계시던 곳이라 떠나기도 어렵지마는 지나간 삼 년 동안 지낸 일을 생각하면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무엇하러 한 시각인들 이곳에 있으랴. 더구나 이제는 남의 집이 아니냐.
“마마, 우리는 나갑시다.” 하고 상왕은 왕대비를 향하여 마치 이사 가자는 예사 사람 모양으로 말씀하신다.
“나가다니 어디를 나가시오?” 하고 대비도 놀라신다.
“기왕 쫓겨나는 몸이 내어쫓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있소? 나가라기 전에 먼저 나갑시다.
수강궁(壽康宮)은 선조께서 동궁으로 계실 때에 오래 계시었으니 그리로 갑시다.
또 혜빈이 바로 얼마 전까지 거기 계시었으니 아직 퇴락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요.”
이 말씀에 대비는 새로운 슬픔이 또 솟아오르시어 그만 방송통곡하시었다.
상왕은 내시 전균(田鈞)을 부르시와,
“내가 지금 수강궁으로 갈 터이니 차비하라.” 하시는 명을 내리신다.
전 균은 황공하여,
“젓삽기 황송하오나 지금 상감께서 잔치를 베푸시와 백관이 다 근정전에 입시하오니 차비를 하라 하옵신들 누구를 불러 하오리이까. 밤도 깊었사온즉 명일로 하심이 어떠하올지.”
“그럴 수 없다. 오늘 밤에 여기서 지날 수가 있느냐. 어서 수강궁으로 갈 차비를 하여라.
차비라야 별 것 있느냐. 네 사람이 타고 갈 것이나 장만하려무나.
아무리 쫓겨나가는 임금 이기로 이 밤에 장안 대도상으로 걸어갈 수야 있느냐. 또 탈 것이라 하여도 나는 이미 서인(庶人)이라 너희들 타고 다니던 것이라도 넷만 내려무나.”
“그러 하와도...” 하고 전 균은 차마 못할 듯이 주저한다.
전 균은 실상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아까까지 왕으로 계시던 양반이 이 밤중에 초초하시게 대궐에서 나가신다는 것도 말이 아니요, 또 그냥 나가시게 하였다가는 새 왕에게 어떠한 변을 당할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상왕의 재촉하심이 심하시므로 부득이 궁녀들 타고 다니는 보교 넷을 준비하여 사정전(思政殿) 앞뜰에 들여 대었다.
상왕은 무엇을 아까와 하시는 빛도 없이 대비와 후궁 권씨, 후궁 김씨 두분을 데리시고 초초한 보교에 오르신다.
전 균 이하로 내시 몇 사람과 저번 통에 갈아들여 지척에 모시던 궁녀 칠팔 인이 울며 네 가마 뒤를 따르고 뒤에 떨어지는 내시와 궁녀들은 울고 땅에 엎드리어 배송한다.
“광화문(光化門)으로 가오리이까?” 하고 여싸온 즉 상왕은 침음양구(沈吟良久) 하시다가,
“건춘문(建春文)으로 나가자.” 하신다. 이 말씀이 뒤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슬펐다.
윤유월 열하루. 송편 개보다도 배가 불룩한 달이 비오다가 개인 하늘에 떠 있다. 근정전 전정에 불빛 조용한 것이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의 눈에 비치인다.
네 분이 타신 가마는 동관과 통안으로 마치 반우 들어오는 행렬같이 소리도 없이 수강궁(壽康宮) 대문에 다다랐다.
텅텅 빈 수강궁은 대문이 열리었을 리가 없다. 본래 수강궁은 창덕궁 가까이 있어서 별궁 모양으로 쓰던 조그마한 대궐이다. 궁을 지키는 군사들도 다 잠이 들어서 한참이나 대문을 두드리기 전에는 일어나지도 아니하였다.
<다시 보는 단종애사(端宗哀史) 제114회>
“누구야?” 하는 졸리운 소리는 마치 사삿집 행랑아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쉬! 상감마마 거동이시다." 하고 문 두드리던 관노(官奴)가 열리는 대문을 좌우로 활짝 열어 제친다.
쓸쓸한 수강궁에는 번 드는 군사의 방 밖에는 볼 켜놓은 방도 없다. 우거질 대로 우거진 뜰, 뜰에서 제 세상으로 알고 우짖던 늦은 여름벌레 소리가 난데없는 사람의 발자취와 등불 빛에 놀라 끊이락 이으락 한다. 달빛이 휑뎅 그렇게 빈 대청들과 방들을 더욱 캄캄하게 만든다.
대비와 두 분 후궁은 두 걸음도 서로 멀어지지 아니하고 상왕의 뒤를 따라서 곰팡냄새 나는 장마 지낸 방으로 들어가신다. 몇 번을 거미줄이 얼굴에 걸리었고 날아다니는 박쥐에게 놀람이 되시었다.
방에는 먼지가 켜켜이 앉았다. 이러한 황량한 곳에 길 잃은 사람들 모양으로 한 줄로 늘어선 사람들의 그림자가 초롱불 빛에 어른어른 춤을 추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 같지도 아니하다.
“이거 어디 사람 앉겠느냐. 방을 좀 훔치어라!”
대비는 이러한 말씀까지 하시게 되시었다. 남치마 입은 궁녀들이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방을 치운다.
초를 사오려 하나 돈이 없다. 한 나라의 왕으로 주머니에 돈을 지니랴. 내시들이나 궁녀들도 궁중에서 돈 쓸 일이 없었다. 관노의 돈을 꾸어서 초를 사왔다. 대관절 이것이 웬일인고. 이런 법도있나 하고 군사들과 관노들도 어찌된 영문을 몰랐다.
새 왕이 상왕께서 수강궁으로 옮아가신 줄을 안 것은 상왕과 대비가 수강궁에 마주 앉으시어 새로운 눈물을 흘리실 때였다. 왕은 상왕이 이렇게 하신 것을 불쾌히 여기었으나 더 어찌할 수 없어서 급히 명하여 상왕이 쓰실 것을 넉넉하게 수강궁으로 보내라 하시었다.
이튿날 윤유월 십이 일은 수양 대군이 왕으로 첫 번 조회를 받고 정사를 하시는 날이다.
차마 그날로 집을 옮기어 대궐로 들어올 수는 없어서 아직 며칠 동안은 수양 대군 궁에 계시기로 하고 아침마다 위의를 갖추어 경복궁으로 오시되 기치와 창검이 황토마루에서 광화문까지 닿았다.
이날에 상왕의 이름으로 이러한 교서가 발표되었다. 그것은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김예몽(金禮夢)이가 지은 것이다. 이번에도 유성원(柳誠源)더러 지으라 하였으나 그는 굳이 사양하였다. 손을 끊기로 맹세한 것이다.
이 교서로 보건대 상왕은 나이 어리시고 일을 모르시므로 덕이 많고 국가에 공로가 큰 숙부 수양 대군에게 무거운 짐을 옮기신다는 뜻이다.
어리신 왕이 그대로 가시면 흉악한 무리들 때문에 장차 종묘와 사직이 위태할 것이니 이때를 당하여 종묘와 사직을 안보할 사람은 수양 대군밖에 없다 하여 스스로 마음이 나시어 선위하신 것 같다.
그렇지마는 실상에 들어가 보면 이렇게 하고 싶어하는 선위가 있을 리가 없다. 또 이 교서라는 것은 정인지가 앉아서 시키고 수양 대군이 한 번 읽어 본 것이요, 왕(상왕)은 한 번 보신 일도 없는 것이다. 만일 상왕이 보시었던들 반드시,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으랴.” 하고 찢어버리시었을 것이다.
후에 왕(수양 대군)은 상왕을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기고 공의온문(恭懿溫文) 태상왕(太上王)이라고 존호를 받들고 대비 송씨는 의덕(懿德) 왕대비(王大妃)라고 하였다.
그리고 매달 삼 차, 일일, 십이일, 이십이일에 왕이 친히 창덕궁에 나아가 상왕과 대비께 문안을 드리기로 하고 칠월에 처음으로 면복(冕服)을 갖추시고 왕후 윤씨(본래 수양 대군 부대부인)와 함께 백관을 거느리고 크게 위의를 갖추어 창덕궁에 뵈오러 가시었으나 상왕과 대비는 받지 아니하시었다.
왕(수양 대군)이 백관을 거느리고 창덕궁에 진알(進謁) 하실 때에 상왕이,
“마땅치 아니하오.” 하고 거절하신 것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첫째로 창덕궁 돈화문 밖에서 왕후와 왕자들과 백관을 거느리고 들어가기를 거절당한 것이 더할 수 없이 창피한 일일뿐더러,
둘째로 이번에 상왕이 왕의 진알(進謁)을 거절함으로 하여 민간에서 상왕의 마음에 동정하는 것이 더욱 간절하게 되었다.
아무리 상왕이 자진하여 금상에서 선위를 하시었다고 선전하더라도 이 사실이 있은 뒤에 그 선전은 아무 효과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누가 상왕에게 이런 꾀를 아뢰었는가. 이것이 반드시 어리신 상왕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니 응당 책략을 아뢴 자가 있으리라는 것이 왕과 한명회의 추측이었다. 그렇지마는 이 말은 상왕께 여쭈어볼 수도 없는 일인즉 다만 많이 사람을 놓아 염탐할 뿐이었다.
상왕이 왕의 알현을 물리친 뒤로 뜻있는 사람들의 불평이 더욱 높아진다. 성승(成勝),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유응부(兪應孚), 박 정(朴靖), 이 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윤영손(尹鈴孫), 김 질(金礩), 권자신(權自愼), 송석동(宋石同), 이 휘(李徽), 성 희(成熺) 등이 금상을 폐하고 상왕을 복위하도록 맹약한 것도 이때 일이다.
이상에 적힌 사람들 중에 성 승(成勝)은 도총관(都摠管)으로 성삼문의 아버지요, 성 희(成熺)는 당숙이요, 박 정, 유응부, 송석동은 다 장신(將臣)으로 병권을 가지었고, 권자신은 상왕의 외숙으로, 윤영손은 상왕의 이모부로 창덕궁에 출입할 수가 있고 나중에 동지를 팔아서 공명을 산 김 질과 이 휘는 다 성삼문, 박팽년 등과 막연한 친구일 뿐더러 그중에도 김 질은 그 장인 되는 정창손(鄭昌孫)과 함께 상왕 복위에 대하여 가장 열렬한 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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