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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이준모의 생태 노동론과 동학 해석/황종원.단국大

Ⅰ. 머리말

Ⅱ. 생태 노동론

Ⅲ. 생태 노동론적 동학 해석

Ⅳ. 맺음말

유교사상문화연구 제100집 / 2025년 6월

 

 

Ⅰ. 머리말

 

현대 한국사상계에서생태적사유와실천을하고, 그활동가운데동학의 생태 철학적인 의미에크게주목한사람들은적지않다.

그래도그중에서사 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많은 사람이 장일순 (1928~1994)과 김지하(1941~2023)를 거론할 것이다.

장일순은 산업화 초 기에이미그것이초래할생명의대규모살상을직감하고동학, 기독교, 노자, 불교 등을 회통(會通)한 사상을 기반으로 생명 살림 운동을 벌였다. 김지하 의경우는감옥에서의특별한생명체험이계기가되어, 장일순의생명사상, 윤노빈의 동학 해석, 그리고 신과학운동 등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아 생명과 동학에 대한 생태주의적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생명 살림의 문화운동을 주 창하였다. 장일순과김지하의사상과실천에는간단히말해다음과같은공통특성이 있다.

  첫째로 위에서 언급했듯 이들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모두 동서양 사상 의회통을시도하였다.

장일순은 동학사상을기반으로기독교, 노자, 불교사 상이 모두소아의 자기중심성을 최대한 벗어나이웃과뭇생명을섬기는삶 을 살라고 가르친다고 역설했다.

김지하 역시 신령(神靈)의 기화(氣化)라는 동학적 개념을 우주의 자율적, 창조적 진화라는 서구 신과학 이론과 결합해 설명해 동서양 학문의 종합 가능성을 모색했다.

   둘째로 장일순과 김지하의 실천은 공히생태노동론적이다. 장일순은산업사회의생명파괴적생산양식 을 비판하며 생태적 농사와 도농간직거래를자연과사람을살리는방도라 생각했다. 김지하는 신(神)이 생명 살림의 ‘일’을 하거니와, 이 신을 섬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그를 따라 생명을 살리고그열매를나누는거룩한삶을 살아야 한다고했다.

이런 공통된생각에서이두사람은초기‘한살림운동’ 에 깊이간여했다.1)

 

     1) 장일순과 김지하의공통된특성에관해더상세한서술로는황종원, 「현대한국생태 사상의특징과세계철학적의의」, 한국학의현재와미래, 민음사, 2025, 244~248 쪽 참조. 

 

생태철학연구자의시선으로볼때장일순과김지하의사상은대단히독특하고 실천역시선구적이지만, 철학적으로충분히논증적이고체계적이지못 하다는 점에서는아쉽다.

그런데 이약점은그들과거의동시대에활발히활 동한이준모의생태철학적사유내용으로보완할수있다.2)

 

     2) 이준모(1935~현재)는 생태 노동론적 관점에서 동서양 철학과 종교를 연구한 인물이 다. 독일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철학박사학위를취득했고, 한신대학교기독교교 육과에서재직했다. 1990년대 그의 생태노동론적 견해를알수있는대표적저서로 는 생태철학(문사철, 2012), 종교생태학 (문사철, 2012), 생태교육철학 (문사 철, 2012), 생태노동 (문사철, 2012), 생태노동과 우주진화 (문사철, 2016), 생 태학적교육학 (시대와민중, 1996), 노동의 철학과 인간교육 (한신대학출판부, 1 990) 등이 있다. 한편, 만년의 사상적 변화를 알 수 있는 최근 논문으로는 「기술과 영성– 방법적단초를위한하나의서설」 (철학논고 창간호, 단국대학교철학연구 소, 2019), 「희망의 철학」 (철학논고 제3집,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2021), 「귀신 론의 생태철학적 함의」 (철학논고 제6집,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2023) 등이 있 다.

 

그렇게말할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준모는 생태위기의근본원인과그극복의열쇠를인간이자연을 다루는 노동 양식, 달리 말해 기술의 문제라고명확히보기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는 오늘날 인류가 봉착한 생태적 재앙의 직접적 원인은 상공업기술에있고, 이재난극복의가능여부는생명살림의생태적농사를 복원하여 이 기술적 전범을 상업과 공업에도 적용, 확산하여 인간사회의 기 술 전체를생태적으로변화시킬수있느냐에달려있다고여긴다.

이러한생 각은 장일순, 김지하의 실천방향과기본적으로일치하면서도그들의실천적 방향이 어째서 옳은지를 명료화한다.

다음으로그역시동서양철학및종교사상의대화와소통을부단히시도 하며, 동아시아에서는 동서양 학문의 참다운 종합이 동학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는데있다.

그가동서양철학과종교간대화를시도하는까닭은생태적 노동론의정립을위해서이다. 그의고찰에따르면서양의철학전통, 특히그 가집중적으로다루는칸트와헤겔의철학에흐르는논리는기본적으로상공 업적이며, 이것과 생명, 생태의 논리는 대립, 모순 관계에 있다.

반면 동양의 주류 사상인 노장철학과 정통 유학 사상 저변에 흐르는 논리는 무위자연의 채집 노동, 혹은 무위와 인위를 절충 혹은종합한농사논리이다.

그리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이 본격화하던 시기에 흥기한 19세기의 동학사상에는 서양 의 상공업 논리와 동양의 농사 논리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일종의 생태 논리가 간직되어있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사상의노동논리가동학에이 르러 생태적으로 종합, 지양된다는 생각은 동학을 기반으로 동서양 종교와 학문의 회통을시도한장일순, 김지하의사상과통하면서도이를철학사적으 로 논한다는 점에서 장일순, 김지하의 그것에 비해 더체계적이다. 이준모의 생태철학이 현대 한국생태사상의흐름속에서갖는위와같은 의미를고려하며본문에서는이준모생태노동론의기본관점과견해를밝히 고그의철학의결론격에해당하는동학해석에어떤특징이있는지해명하 고자 한다.

이를 위해우선그가어떤근거에서생태위기의근원과그문제 를푸는핵심고리를노동양식내지는기술에서찾고있는지, 중국전국시대 의노자와장자, 맹자와중용 등에대한그의재해석을중심으로논할것 이다.

그다음으로는 그가어떤근거에서19세기의동학사상이 서양의상공성 논리와 동양의 농성논리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해  생태노동의  논리를편다고 하는지 살필 것이다.

 

Ⅱ. 생태 노동론

 

이준모는학문활동의전시기에걸쳐노동에관해철학적사유를해왔다. 그가 그랬던 이유는 무엇보다 노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고생각했기때문이다.

“인간의인간됨은인간이자연에노동을가하 여 자연을 변모시키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한 마디로인간은노동을통하여자신을형성해왔고또형성해가고있는것이 다.”3)

 

     3) 이준모, 노동의 철학과 인간 교육, 한신대학출판부, 1990, 3쪽.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노동하지 않을수없는데, 어떤형태의노동 이든지 종국에 그것은 자연을 변모시킨다.

목수가 쓰임새에 맞게 나무를 변 형시켜 책상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도심의 사무실에서 하는 갖가지 정신노동도결국은자연의에너지를끌어다쓴다는점에서역시자연을변모시킨 다. 한편, 노동은 자연뿐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 자신도 변화시킨다.

중국의 현대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 하는 여러 사유의 형식들, 예컨대 수학, 논리, 시공간 개념, 인과(因果)의 범주” 등은 모두 인류 가 오랜역사속에서사회적노동을한덕분에갖추게된능력이다.4)

즉인 간은 노동을 통해 점차다른동물과는구별되는인간다운여러지성적사유 의 능력을갖추게된것이다.

그런데위와같은인간의인간다운능력은실은생명이라면보편적으로지 닌 자기중심성의 인간화된 특수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식물의 그것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인간은 자연물이지만 자연물에서 분리되어 자연물과 노동의 관계를 가지고 이 관계를 통해서 다시 자연물과 통일된다.

이 신진대사(新陳代謝)의 과정과 주체를 우리는 생명이라고 부르려 한다. 인간은 생명을 가진 자연물이다.

생명은 자연과 분리되어 노동을 통해서 다시 자연과 통일되는 운동 과정이다.

그리고 생명은 이 운동 과정을 주관하는 능동적 주체다. 이와 같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동물 은 구별할 수 없는 존재다. …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라. 그는 흐르 는 물에 몸을 맡기지 않고 오히려 물의 힘을 거슬러,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하여 그 가 원하는 대로 헤엄쳐간다.

그는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자기중심적 존재다. 이 자기중심성이 바로 생명의 본질인 것이다.

생명은 그의 몸과 그 몸 밖에 있는 자연 물들을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한다.5)

 

     4) 李澤厚, 實用理性與樂感文化, 三聯書店, 2005, 6쪽. 예컨대 수학의 더하고(+) 빼는 (-) 연산 능력은 어떤 것을노동대상과결합하거나분리하는과정에서발달하게되 었고, 사회적이고객관적인공간관념도노동주체가공간속에있다고간주하는대 상을 통제, 지배하려는 생각에서 생겨난 것이다.

     5) 이준모, 생태학적 교육학, 시대와 민중, 1996, 14쪽. 

 

인간의몸도분석해보면돌처럼물리적인요소로환원될수있고, 그점에 서인간도자연물일뿐이라고할수있다.

그렇지만다른한편으로인간은원 시시대부터 자연물, 예컨대 돌과 거리두기를 하여 그것을 쪼개고 갈고 다듬 어 돌도끼를 제작하고, 그것을 간접적으로 자연을 매개하는 도구로 삼아 사 냥해 음식물을 먹고 배설함으로써 다시 자연물과 통일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준모는 노동을 자연과 교감, 소통하는 신진대사의 과정이라 하고, 그 노동 과정을 자기중심적으로 행하는 주체를 생명이라 칭한다.

그런데 인간에게만 이생명의자기중심성이있는것이아니다.

인용문에서예시로들듯, 물고기 를 비롯한모든동식물이다자기를유지하기위해부단히자연물을이용하 여그것을재조직, 재구성한다.

이렇게 모든 생명은자기중심적운동, 인간적 견지에서보면광의의생명노동을한다는점에서같다.

하지만인간은이생 명 노동을다양한도구를가지고했으며, 그과정에서갖가지지성적인능력 을 배양했다는 점에서여타동식물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인간에게 갖가지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기술적능력과자연을대상화 해파악하는지적능력이발달했다는사실은축복인동시에재앙의근원이다. 이지적, 기술적능력덕분에인류는물질적풍요와육체적편리함을누릴수 있었다.

그 점에서는 축복이다.

그렇지만 이 풍요로움과 편리함이 자연의 희 생을대가로했다는점에서그것은재앙의불씨를안고있다.

인간은이기술 의양면성가운데어느한측면에주목하여그것을찬미하거나비판할수있 다.

이준모는 기술에 대한 이 두상반된태도를다음과같이설명했다.

 

상공성 유토피아는 기술이 계속하여 부(富)를 축적하고 부를 즐길 수 있게 해 주기를, 그리고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 이 즐김 과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발전에 대하여 상공성 유토피아는 “이것이다, 그 래 이것이다”, 이렇게 그렇다고 하는 태도를 취한다.이는 기술 긍정주의다.상공성 유토피아는 상공업 사회의 구성원이 기술이 가져다주는 즐김과 지배에 자신을 완 전히 동일화시킬 것을 강요한다. 드디어 사회는 획일적인 논리, 동일성(Identität) 의 논리로써 사회 구성원을 기율(紀律)한다. 농성 유토피아는 기술에 대해 이와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이것이 아니다. 절대로 이것이 아니다’라는 비동일성 (非同一性)의 논리다. 이렇게 상공성 유토피아의 논리는 동일성을, 농성 유토피아 의 논리는 비동일성을 논리로 삼는다.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자기의 울타리를 친다. 이 울타리야말로 두 유토피아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친 둘레에 갇히게 하는 폐쇄성을 이루는 것이다.6)

 

      6)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1998), 생태철학, 문사철, 2012, 40~4 1쪽.

 

    인용문에서 ‘유토피아’라는 말은 유토피아 의식, 즉 사회적 이상에관한생 각을뜻한다.

그리고‘상공성’, ‘농성’의 ‘성(性)’은 ‘본질’이라는 뜻이다. 좀 더 상세히 말하면 이준모가 성(性)을 “한 시대와 사회에서 인성(人性)과 물성 (物性), 그리고 정신성(精神性)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정하는 근거”7)라고 한 설명으로 미루어, 상공성이란 인간이 본래 자기중심적이어서 본성상 상업적 즐김과 공업적지배를추구하게되어있다고여기고, 이런즐김과지배를본 질로 삼는 상공업 사회의 시대정신을 가리킨다.

이 상공업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이상은기술적편의의극대화이며, 따라서이기술자체를적극 적으로긍정, 찬미한다.

그리하여상공업사회의구성원이라면누구든향유와 지배를 위해앞다퉈경쟁하며, 모두‘나’를 중심으로 타자를통일할 뿐이라고 가르친다.

반면 농성이란 약한 생명을 측은히 여겨 돌보고 기르려는 정신을 뜻하거니와,8) 이 정신을 간직한자는자기중심적인향유와지배의기술을강 하게 비판하는논리를펴며, 욕심없이자연의자연성을최대한따라가는사 회를 이상적 사회로 간주한다.

 

     7) 이준모, 위의 책, 40쪽.

     8) 이준모는 농성의 전형적인 예로맹자의측은지심을들었다. 즉그는“맹자는농업사 회의농성이‘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고했다.(이준모, 위의 책, 같은곳.) 이 설명을근거로농성을약한생명을측은히여겨돌보는정신이라풀이 했다.

 

농성 유토피아이다.

인류는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이 상공성과 농성유토피아의식을따 로따로키웠다.

역사적으로인류는최초에는채집을위주로생활하다가, 작물 을 심어재배하는인위적인행위를개시했다.

이농사의감행이성공을거두 어 잉여생산물이창고에쌓임은자본의축적이시작됨을의미하는데, 이부 의축적은다시생산기술의혁신을가져와마침내상공업사회로전환되거나 그 전환의 조짐이 보였다.

이 역사적 변화가 사상적으로 상공성 유토피아와 농성 유토피아를 태동시켰음을 이준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서양 유토피아들의 특징은 그 내용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점이 있 다.

그것은 이들이 한결같이 농업사회가 상공업사회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전환 가 능성이 생겼을 때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농업사회의 오랜 지속은 부(富)의 축적과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이 재력(財力)에 힘입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는 꿈이 태동한다.

상공업적 유토피아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상 공업적 기술을 거부하는 자연 유토피아도 일어난다.9)

이상 사회에대한꿈은상공업기술의발달에따라생겨났다. 서구에서유 토피아 소설은 중세 농업사회가 근대 상공업사회로 전환되는 시기에 출현하 였는데, “이 소설에서 인간은 이 기술 국가를 세우는 기술 주체의모습을띤 다.

자연은 이 기술국가를건설하는물적토대일뿐이다.”10)

이 인간중심주 의적인 상공업 문명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중국의 전국시대에도 있었다.

이 가능성은철학적으로이시기에이익추구를옹호하였던묵가학파가거대한 세력을 이루고 인간의 욕망 추구와 자연 이용을 상당한 수준에서 긍정했던 순자 사상이 출현한데서간접적으로확인된다.11)

다만 동아시아 전통 사회 에서는 이전환이전면적으로이루어지지않고, 장기간농업사회를유지했다 는 점이서구와는다르며, 바로이때문에상공업적인향유의욕망과지배의 기술을 비판하며, 자연의 자연성을 따르는 삶을 이상적으로 보는 ‘자연 유토 피아’ 의식이 면면히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자나 장자의 사상이다.

노자는“허(虛)에 이르기를 끝까지 하고고요함(靜)을지키기를독실히하 면 만물이 병작(竝作)해 나는 돌아감을 본다12)”고 했는데, 이준모는 여기서  ‘만물이 병작한다’는 구절을 “만물이 협동하여 작업한다13)”고 해석한다.

 

    9) 이준모, 위의 책, 39쪽.

   10) 이준모, 위의 책, 44쪽.

   11) 이준모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논했다. “묵가는당시생산력발전의추동력이되는 기술을 담당한 기술자 집단이다. 이들은 일종의 기술자의 결사체(結社體)를 만들어 기술자의 자기해방을시도한다. 새로운생산양식의상황이가능하게해준생산성의 제고, 그리고 이것의효과로서의물질적풍요는그들의당연한목표였다. 맹자를비 롯한 당시의 유가는 이러한 의지를 ‘이(利)’의 추구로서 배격하였다.” (생태노동과 우주진화, 문사철, 2016, 55~56쪽.) “순자가 이해한 생명의 본성[性]은 …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나타난다. … 순자는‘지인(至人)’이 알아야 할 지식은 물(物)이 어떻 게생(生)을 얻는가[物之所以生]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물(物)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 는가[物之所以成]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동양 고전철학의 체계와 동학의 생태교 육철학의 체계」(1997), 생태교육철학, 문사철, 2012, 151쪽.) 순자는 인간의 물욕 을 충족하려는 관심에서 출발해 자연물을 대상화해 그법칙을알아내지식을축적 하는 활동을긍정한다는 뜻이다.

     12) 老子 16章: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13) 이준모, 「자연과 인간의 협동노동」(1992), 생태노동, 문사철, 2012, 139쪽. 

 

사람 들이 자기중심적 향유의 욕망을 비워내고 마음의 평안함을 더해가면 만물은 협동해 일하게되어, ‘나’는 자연이 생명성을 회복함을 보게된다는 뜻이라고 이해한것이다.

그는만년에화학비료를쓰지않는농사를직접지으면서이 ‘만물의 협동 노동’이라는 개념의 함의를 좀 더 생생히 설명한다.

 

고추 농사를 짓는데, 개미들이 진딧물을 날라 와서 고추 배에다가 갖다 놓는다. 그러면 진딧물들은 식물의 액을 빨아먹고 단물을 똥으로 눈다. 개미들은 그것을 빨아 먹으려고 그렇게 진딧물을 날라 온다. 진딧물 암놈은 날개가 없어서 혼자 고 추 배로 올라갈 수 없으니, 반드시 개미가 옮겨줘야 한다. 협동 노동이다. 그러면 고추에 진딧물 떼가 새까맣게 들러붙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와글와글 엄청나게 많은 조그만 거미들이 올라와 진딧물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물론 다는 못 잡아먹지만 남아 있는 것들은 몇 마리 안 된다. 그래서 고추가 시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렇게 개미, 진딧물, 거미하고 협동 노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땅에 서 통치자는 이준모다. 그런데 이준모는 노장철학적으로 말하면 무위의 통치를 한 다. 진딧물도 안 잡고, 화학비료도 안 뿌린다. 물론 밭을 갈고 물을 주는 일은 한 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만물이 스스로 화한다[自化].14)

 

    14)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HK+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재난 의 시대, 생태적 지혜와 공생의힘, 보고사, 2022, 34쪽.

 

어떤 개체의생명유지와성장도홀로이루어지지는않는다.

고추, 진딧물, 개미, 거미 사이의관계는국부적, 표면적으로보면그저먹고먹히는약육강 식일 뿐인것같지만, 전체적, 심층적으로 보면종의유지와상생, 전체생태 계의 균형과조화를목표로협력해일하는질서가더본질적이다. 농사는이 자연의 노동하는 힘들을 이용해 생명을 길러그열매를먹거리로삼는노동 이다.

이 노동하는방법인기술의힘은인간이자기뜻대로자연을통제할수 있을 정도로 세다.

따라서 인간을 자연의 ‘통치자’라 부를 만하다. 그렇지만 자연의저협력적공생의질서를근본적으로깨뜨리지않으려는농사꾼은자 연이자신의자연성, 자발성, 주체성을최대한발휘할수있도록인위적개입 을 최소화하는 무위의통치를한다. 생태적 농사를 짓는 것이다. 장자는 노자와 사상적으로 다른 면이 있지만, 적어도 자연 지배의 욕망과  기술에 비판적이라는 점에서는같다.

예컨대 이준모는그의저술에서자주 장자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인용한다. 황제가 말했다. “나는 선생께서 지극한 도에 통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히 묻 건대 지극한 도의 정수가 무엇입니까? 나는 천지의 정기를 취하여 오곡의 생장을 돕고 백성을 기르며, 또 나는 음양을 관리해 뭇 생명을 이루어주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광성자가 말했다.

 

“그대가 묻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바탕이지만, 당 신이 관리하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찌꺼기요. 그대가 온 세상을 다스린 뒤로 구름 기운이 모이기 전에 비가 내리고, 초목은 누렇게 되기 전에 떨어지고, 일월의 빛은 더욱 황폐해졌소.”15)

 

이준모는 이단락을이렇게설명한다. “자연지배의‘자기의식’은 자연력을 자연에 따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생산의 이익만을 위하여이용하려고한다.

그결과는자연의파괴이다.”16)

 

     15) 莊子, 「在宥」: “曰: ‘我聞吾子達於至道, 敢問至道之精. 吾欲取天地之精, 以佐五穀, 以養民人, 吾又欲官陰陽, 以遂群生, 爲之奈何?’ 廣成子曰: ‘而所欲問者, 物之質也. 而 所欲官者, 物之殘也. 自而治天下, 雲氣不待族而雨, 草木不待黃而落, 日月之光益以荒 矣.’”

     16) 이준모, 「자연과 인간의 협동노동」, 앞의 책, 152쪽. 

 

황제는오곡이자라 나는일을돕고백성을기르려는목적에서도의정수가무엇이냐고물었지만, 광성자는 천지의 정기를 취하고 음양을 관리하고 싶다는 대목에서 황제에게 자기중심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래서 황제가 알고자 하는 지식은 사물의 심층적 바탕이지만, 관리하고자 하는 기술은 사물의 표피적 법칙임을 지적하며, 그런 태도로 자연을 대함으로 인해 갖가지 생태적 재앙 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의 서술을 통해상공성유토피아와농성유토피아의대비가선명해졌 다.

그런데이대목에서한가지짚고넘어갈것이있다. 바로농성의개념문 제이다.

앞서 농성을 욕심을 최소화하여 자연의 자연성을 최대한 따라가는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모든 농사가 반드시 무욕과 무 위의 기술인것은아니다. 이점에서자연의자연성을최대한따라가는정신 을 농성이라 칭하기에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이 점을 간파하여 이준모는 만년에 기술의 역사적 전개를 “채집성(性) 농사-상공성(性) 농사-상공 업”17)으로 삼분한다.

 

채집성 농사란 자연의 자연성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열 매나 곡식을얻기위한인위적기술을최소화하여짓는농사, 오늘날개념으 로말하자면자연농을뜻한다. 반면상공성농사란더많은먹거리를얻기위 해 농작물에 갖가지 인공적 조작을 가하여 자연의 자연성, 자발성을 약화하 는 농사를 가리킨다. 물론 이런 농사는 현대에는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그 조짐은 이미과거에서부터있었다.

이준모는쌀농사를예로들어이점을흥 미롭게 설명한다. 도대체 쌀, 그리고 오곡의 농사라는 것 자체도 쌀과 곡식을 본래의 자연성에서 인간을 위한 인위적 자연성으로 바꾼 것이다. 본래 쌀은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찾 아드는 지역에서 자라던 다른 풀들과 같은 풀이었을 것이다. … 물론 인간이 쌀을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쌀은 곤충과 새에게 음식물이 되기에 적합한 기 초 식물이다.

다시 말하면 쌀의 생명 섬김의 폭은 넓다. 쌀은 메뚜기와 참새에게 먹힐 것을 계산하고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한 열매보다 엄청나게 많은 열매를 생 산하는 것이다. … 그런데 인간과 쌀의 관계는 곤충과 새에서와 같지 않다. 인간은 곤충과 새와는 달리 생명 섬김의 쌀의 논리를 확대하여 인간 자신만을 섬기도록 강요한다. 인간은 다른 풀들과 나무들을 제거하고 오직 쌀만을 생산하는 논으로 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자연으로 있는 쌀알의 크기와 맛을 변화시켰다. 인간은 자기만 먹으려고 쌀에다 해충제를 뿌린다.18)

 

     17) 이준모, 「기술과 영성」, 철학논고 창간호, 단국대학교 철학연구소, 2019, 8쪽.

     18)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 앞의 책, 57~58쪽.

 

쌀은 본래인간뿐아니라, 여러 종류의새나곤충에게도먹거리가되는데, 이 사실을받아들여, 새나 곤충도웬만큼쌀을먹도록허용한다면그농사는 채집성농사에가까울것이다.

반대로인간이더많이먹고즐기기위해자연 을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단일한 하나의 제품인 쌀만을 심고, 쌀의 성질 을 인위적으로 개조하고, 심지어 다른곤충이나새는못먹게살충제를뿌리 면 그것은상공업과 하등다를바없는상공성농사가된다.

이렇게 농사는 상반된 두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준모는 정 통유학자들이지식과기술을논할때이두길사이에서배회하고있음을논증한다.

지혜[智]에 대해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뚫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지혜로운 자 가 우의 물을 흐르게 한 것같이 한다면 지혜에 대해 싫어할 것이 없게 된다.

우가 물을 흐르게 한 것은 그 무사(無事)를 행(行)함이었다. 만약 지혜로운 자가 그 무 사를 행한다면 지혜 역시 위대하다.19)

인용문에서맹자는우(禹)의치수(治水)가위대한지혜의발휘로생각되는 까닭은 기술적으로 무사(無事), 즉 무위의 원칙을 최대한 따르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우가 물이스스로흐르는대로최대한놔두면서적당히물길을 조정하는 인위적 기술을 발휘함으로써 홍수의 재난에서 벗어났다는 이 전설 은인간삶의편의를추구하면서도자연을적당한수준에서도덕적으로고려 하는 기술의모범을보여주는듯하다.

이준모는이점을충분히긍정한다.20)

하지만 맹자는 치수를 할때우왕으로대표되는통치자가발휘한지혜와기 술을 강조할뿐, 백성이한역할은언급하지않는다.

 

즉“맹자는민이해방을 위하여 수행하는 일을 어떤 천과도 연결시켜 말하지 않는다.”21)

 

백성이야말 로온몸으로천지만물과협동노동을직접수행하는계층임에도민본주의를 주창한맹자조차도이점을분명히말하지못했다.

그리고이점은인간과천 지가 협력해만물을화육(化育)하는 세상을 그리는 중용 역시 마찬가지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성실해야 자기 본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자기의 본 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으면 사람들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하게 할 수 있다. 사람 들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하게 할 수 있으면 물(物)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하게 할 수 있다.

물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하게 할 수 있으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 다.22)

 

   19) 孟子, 「離婁下」: “所惡於智者, 爲其鑿也. 如智者若禹之行水也, 則無惡於智矣. 禹之 行水也, 行其所無事也. 如智者亦行其所無事, 則智亦大矣.”

   20) “그것은 도가적 무위를행하는노동행위이다. 그것은우왕이황하의홍수를막는노 동을할때물의자연성에따라하였듯이하는것을뜻한다. 이렇게해서얻는지식 은 기술적 편리함을 내포하고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적 운동에 따르는 지식인 것이다.” (이준모, 생태노동과 우주진화, 60쪽.)

   21) 이준모, 위의 책, 75쪽. 

 

중용의 저자는 삶에서 지성(至誠)의 태도를 매우 중시한다.

이 태도를 습관화해야 내면의 덕성이 온전히 발현되고, 타인의 공명을 일으켜 그 역시 덕성을 온전히발휘하게된다.

나아가지성의태도는자연물을대할때도견 지되니, 그러면 자연물의 자연성 역시 온전히 발휘된다.

이렇게 지성의 태도 로이웃과자연을대할때인간은비로소천지의화육을방해하지않고그일 에협력할수있게된다.

이렇게위단락은인간과자연이협력해일함, 즉협 동해 노동하는 세상에 대한 전망을 어렴풋이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용도 맹자와마찬가지로이일을수행하는중요한주체가백성임을다시금숨기고 있다.

 

“중용은 이러한 민의 노동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용 에서도 민의 노동은 밀알의노동으로숨겨져있다.”23)

 

    22) 中庸 22장: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 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23) 이준모, 앞의 책, 89쪽. 인용문에서 ‘밀알’은 기독교 성서에서 ‘자기’를 죽이고 신을 섬기는 자를상징한다. 요한복음 21장 24절에서 예수는 말했다. “밀알 하나가 땅 에 떨어져서죽지않으면한알그대로있고, 죽으면열매를많이맺는다.” 따라서 인용문에서 백성이 하는 밀알의 노동이란 백성이 수많은사람을먹여살리는자기 희생적인 거룩한 노동을 해왔음을뜻한다. 

 

정리하자면인류의주된노동양식이채집에서농사를거쳐상공업에이르 는 동안인간의철학적사유또한상공성기술을옹호하거나그것을비판하 며 채집기술의합리적핵심을고수하는상반된입장이있었고, 양자를절충 하는 견해도있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경우, 묵가와 순자, 노자와 장자, 그리 고 맹자와중용이 그 각각의 사유를 대표한다.

앞서서술했듯인류역사에서상공성과농성혹은채집성은각기폐쇄적으 로 원환을 이루면서 분열되어 있다.

그런데 이준모는 자연에서는 이 기술이 생명 살림을 목적으로유기적으로 통일되어있다고주장한다.

 

농성은 생명을 먹여 살리는 자연의 뜻이 기술로 나타난 것이다. 지렁이는 흙을 먹는다. 지렁이는 흙을 먹어 그 속에 있는 생명력을 걸러내는 기술을 발휘한다. 지 렁이는 흙을 먹음으로써, 흙이 다시 미생물에 의해 먹힐 수 있도록 살린다. 흙은 지렁이를 먹임으로써 흙 본래의 생명성, 즉 살아 있는 흙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  이 생명의 공업은 운동을 본질로 한다. 지렁이는 흙을 입으로, 몸 속으로, 다시 밖 으로 유통시켜야 한다. 이 흙은 다시 미생물의 먹이가 되기 위해 미생물의 몸으로, 그리고 다시 밖으로 유통된다. 이 흙은 이제 식물의 뿌리에 흡수당하여 식물을 살 릴 수 있는, 생명력이 한층 강화된 살아 있는 흙이 된다. … 상업이라 불리는 유통 성은 본래 …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기술에 필수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기능인 것 이다. … 기술은 이처럼 공업과 상업이 결합된 것이다. 이 기술은 본래 생명의 기 술, 인간의 수준에서는 농성의 기술이다.24)

 

      24)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 앞의 책, 42쪽. 

 

지렁이는 살기 위해 흙을먹는데, 그 과정에서 흙을 유기화하여 생명성을 갖춘흙으로거듭나게한다.

이렇게지렁이가흙을새로운형태로변형, 가공 함은 인간의 수준에서 말하자면 일종의 공업적 기술의 발휘이다.

생명성을 갖춘 흙이다시미생물에먹힘으로써생명력이한층강화된흙이되는것역 시 공업기술과유사하다.

그리고 이 흙이변형, 가공되는 과정은 동시에 흙 이 지렁이와 미생물의 몸 안과 밖으로, 나아가 식물의 뿌리에서 열매에까지 유통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점에서상업적이기도하다.

즉자연에서도공업 과 상업 기술은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이 상업과 공업 기술이 흙, 지렁이, 미생물, 식물을 모두 살리는 일에 쓰이고 있다는 점, 즉 생명 살 림의 목적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상공업사회에서의 그것과는 그 성격이 판이 하다.

이렇게자연에서농공상기술이유기적통일을이루고있다는사실의발견 은 상공업 문명을 생태적 문명으로 전환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문명 전환의 문을여는데무엇보다생명살림의농성, 혹은채집성농사기술을전범으로 삼아, 그것과 상공업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일이 긴요하다는 점을 일 깨워준다.

그래야만 상업과 공업이 더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향유와 이를 위한 자연지배만을추구하지않고, 자연과이웃을살리려는대의아래유통 과 가공이라는 상공업본연의기능을제대로발휘할수있다. 

 

Ⅲ. 생태 노동론적 동학 해석

 

앞서는이준모생태노동론의기본골격을중국전국시대의노자, 장자, 맹 자, 중용 등에 대한 그의 재해석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이제는 그 내 용을바탕으로그가어떤근거에서최제우와최시형의동학사상이가장분명 하게 생태노동론적 특징을보인다고주장하는지살펴보겠다.

이준모는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에서 다른 전통 사상은 제쳐 두고유독동학만을‘생태적유토피아’라고칭한다.

 

“우리는동학을생태적유 토피아라고 규정하려고 한다. 동학은 ‘후천개벽(後天開闢)’을 말한다. 따라서 동학은 유토피아다. 그러나 동학은 이 유토피아가 실현 가능하다고 한다. 그 근거는 생태적 농성에 있다.”25)

 

그가 이렇게 유독 동학에 ‘생태적’인 특징이 가장 명확하게 보인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있을까?

우선 거의 모든 생태철학 혹은 종교생태학이 그렇듯 생태적 사유는 생태 재난에 대한 또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데, 동학 사상가들은 비록 생태 재난이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를 폭력적으로 거세게 압박하여 이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던 시절을살면서이모순이자연마저불 안케 하리라는 직감을하였다.

지금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이다. 천지도 편안하지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 하지 못하며, 강물과 물고기도 편안하지 못하고 날짐승과 들짐승도 다 편안하지 못하니, 유독 사람만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안일하게 도를 구하겠는 가.26)

 

     25)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 앞의 책, 80쪽.

     26) 海月神師法說, 「開闢運數」: “斯世之運開闢之運矣. 天地不安, 山川草木不安, 江河 魚鼈不安, 飛禽走獸皆不安, 唯獨人 暖衣飽食安逸求道乎.” 

 

생태 위기의 징후가본격화하는산업화의시대도아닌데이같이발언했다 는것자체가대단히놀라운데, 이준모는이최시형의깊은통찰이스승최제 우의시천주(侍天主) 사상과 서학비판에힘입어그것의실천적본질을밝혀 낸 덕분이라고 말한다.

 

“최제우의 해의(解義)가 이천식천(以天食天)에 미치었다 하더라도 그 실천적 본질은 최시형에 의해서 비로소 밝혀졌다고 하겠 다.27)”

 

이준모의 이 말은 최시형의 「이천식천」 장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는 가운데 한것으로그구절은아래와같다.

 

이천식천(以天食天)은 곧 하늘의 기화작용으로 볼 수 있는데, 대신사께서 시 (侍) 자를 해의(解義)하실 때에 내유신령(內有神靈)이라 함은 하늘을 이름이요, 외유기화(外有氣化)라 함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을 말한 것이니, 지묘(至妙)한 천 지의 묘법(妙法)이 도무지 기화(氣化)에 있나니라.28)

 

최제우는 동학의 중심사상을시천주(侍天主)로 요약하고 모실 시(侍) 자 의의미를‘내유신령’과 ‘외유기화’라고 설명했다.

내외의 기준을 인간의 몸이 라고간주한다면이는하늘님의인간내재성과자연내재성을강조하는말이 라 할수있다.

그런데최시형은신령이곧하늘이고, 기화는‘이천식천’이라 고 하여, 내유신령과 외유기화의 두 구절을 종합해서 보면 결국은 하늘님이 ‘이천식천’으로 기화 작용을 일으킨다는 뜻이라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준모는 이 ‘이천식천’의 기화 작용을 하늘님이 자신의 기운을 내어주어 만물을 먹여 살리는자기희생적생명양육의일이라해석한다.29)

 

    27) 이준모, 「기술과 영성」, 앞의 책, 49~50쪽.

    28) 海月神師法說」, 「以天食天」.

    29) 최시형의 ‘이천식천’설을 많은 사람은‘하늘로써하늘을먹는다’고해석한다. 그런데 이해석은기껏해야최시형이「이천식천」 장에서‘이질적기화’, 즉이종간의먹고 먹힘을 설명하는 데만 합당할 뿐이다. 즉 다음과 같은 구절 말이다. “하늘은 하늘 전체를 키우기위하여… 이질이된자는이천식천으로써서로기화를통하게하는 것이니…” 문제는 이런 해석으로는 「이천식천」 장의 내용을 총정리하는 위 본문의 인용문이무엇을뜻하는지제대로이해되지못한다는데있다. 이준모는이점을지 적하며, 첫 번째천(天)은 하늘님으로, 식(食)은 ‘먹음’이 아니라 ‘먹임’으로, 두 번째 천(天)은 만물로 각각이해함으로써‘이천식천’을하늘님이자연안에서자신의기운 으로만물을먹여살리는자기희생적일을한다고해석했다. 이에관한보다자세한 설명은 이준모, 생태노동과 우주진화, 314~315쪽 참조.

 

최시형이하늘님을천지 와 등치시키고전통유학과마찬가지로그것을부모에빗댈뿐아니라, 빈번 하게 천지를포태(胞胎)에 비유하고, 천지의 기운을 어머니의젖에비유하는 것 등을보더라도이러한해석은대단히설득력이있다.

최시형은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듯, 하늘님 역시 자연의 생명을 기르기 위해자신의기운을내어주는숭고한존재로생 각했다.

그런데 동학이 흥기하던 시대에 서양인들은 자연을 결코 그런 존재 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만을 위해 근대적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 했을 뿐이다. 최제우는 서도와 서학, 즉 서구인의 종교적 신념과 근대 학문 사이의 심각한 자기모순을 밝혀 이점을지적한다.

서양인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 도무지 천주를 위하는 단 서가 없고 오로지 자신을 위한 도모만을 축원한다.

몸에는 기화하는 신[氣化之神] 이 없고, 학문에는 천주의 가르침이 없다.

형태는 있으나 자취는 없으며, 생각하는 듯하지만, 주문은 없다. 도는 허무에 가깝고 학문은 천주의 학이 아니니, 어찌 다 른 점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30)

 

    30) 東經大全, 「論學文」: “西人, 言無次第, 書無皂白, 而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 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 無異者乎?”

 

서양인의 언사가 뒤죽박죽이고 시비 판단도없는것으로여겨지는까닭은 그것이 근대 과학기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과학기술에 관한 서적 에는 물론천주를섬기는어떤단서도있을리없다.

모두인간자신만을위 한 계책들일 뿐이다. 이에 최제우는 서양인의 몸에는 자신의 기운으로 만물 을 생육하는 신(神)이 없다고 선언한다. 이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럴듯한 기 물은있으나, 거기에천주가일한자취는없고, 무엇인가열심히사유하는듯 하지만, 거기에 천주를 위하는 기도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주를 믿는다 는 도(道)는 현실에서는 아무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허무한 도에 가깝고, 서구의 근대 학문은 천주를위하는학문과아무관련이없게된다.

그런데 이준모는 최제우의 위 단락을 설명할 때 서구인의 ‘몸에는 기화하 는 신이 없다’는 말을 문제 삼는다.

‘시천주’가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천주를자기몸안에모시고있는존귀한존재임을뜻한다는점, 그리고최제 우 자신이“서양 사람은 도가이루어지고 덕을세웠으니, 조화(造化)를 행함 에이르러서는이루지못하는일이없고, 무기로공격해싸우니, 그들의앞에 는 아무도없다”31)고 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위와 같은 말은절대화 할수없다.

서양인들역시천주로부터생명과기운을얻어그힘을발휘한다 는점에서는기화하는신이있다고해야한다.

하지만그힘으로무기를만들 어 온세상을공격해취하려한다는점에서그들에게동학에서말하는천주 처럼자신의기운을내어주어만물을먹여살리는정신은없다.

이점을이준 모는다음과같이논한다.

 

“첫째, 서학에는기화지신(氣化之神)이 없다. 둘째, 서학은 하늘님의 기술을 ‘제 몸을 위하는 방도’로 쓴다. 그런데 둘째 명제는 ‘뒤틀린 형태’로 ‘기화지신’이 있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최제우의 생각에는 서학의 기술도 천주에게 ‘빌어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32)

 

최제우가말하는서학의기술로만든기물이란아마도총칼로무장한상선 (商船) 정도였을 것이다.

놀라운 점은 최제우가 이 정도만 보고도 상공업은 자기중심적 이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타자를 지배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하늘의 뜻과는 어긋난 형태의 기술임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준모는 상공업사회의 한복판에 살면서 그 기술의 성격을 철학적으로 더욱 적나라하 게파악한헤겔의간지(奸智) 개념을자주거론함으로써최제우의위와같은 서학 비판을 옹호하기도 했다.

 

자연 자신의 행위들, 예컨대 용수철이 지닌 탄력성이라든가, 물이나 바람은 이 것들의 감각적인 현존에 있어서 이것들이 본래 하려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하도록 사용된다. 이것들의 맹목적인 행위는 합목적적인 것이 되고 이들 자 신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변한다. … 여기에서는 충동은 완전히 노동으로부터 물러 난다. 충동은 자연이 스스로를 비비게 만들며 자신은 조용히 관망하며 적은 수고 를 들여도 전체를 다스릴 수가 있다. 이것은 간계이다. 뭉뚝한 폭력은 간계의 뾰족 한 끝으로 공격당한다. 이처럼 맹목적인 힘을 측면공격하여 그것이 제 스스로에게 대항하도록 하며, 그것을 공격하여 일정하게 규정된 것으로 파악하며,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도록 운동하게 하며 자기를 지양하게 만드는 것은 간계의 명예이 다.33)

 

   31) 東經大全, 「論學文」: “西洋之人, 道成立德, 及其造化, 無事不成, 攻鬪干戈, 無人在 前.”

   32) 이준모, 「기술과 영성」, 앞의 책, 38쪽.

   33) G.W.F. Hegel, Jenaer Realphilosophie, in Frühe politische systeme, Verlag Ul stein, Frankfurt/M.-Berlin-Wien 1974, 220. 이준모, 「최제우의 주문과 이돈화의 ‘신인철학’ 비교 연구」, 생태철학, 문사철, 2012, 143~144쪽에서 재인용.

 

자연의 행위를 맹목적이고 뭉뚝한 폭력으로규정하는것부터가자연을단 지 수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로만 간주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상공업 적인 시각이다.

상공성 인간은 자신이 직접 자연과 접촉해 노동하지 않고도 저 ‘뾰족한’ 공업적 간계의 기술로 자연이 인간의 상업적 욕망을 충족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면서도이성의그와같은간계를명예롭게생각한다.

이준모는 이러한 서양 근대의 과학기술 논리를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 개념을 빌 려비판한다.

 

“서양의 과학논리는최제우의말을빌리면하늘님의‘무위이화’ 에순종하는척하면서실은배신하는, ‘하늘님을위하는듯하면서도’ ‘다만제 몸을 위하는방도’만을 생각하는 학문이라는의미가되겠다.”34)

 

상공성 인간 은 자연의 법칙을 파악해 따라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러는 척하면서 인 간만을 위해 자연을 속여이용한다는뜻이다. 이준모가 빌려 쓴 ‘무위이화’는 최제우가 서학과 구별되는 동학의 종지를 개괄할때제시한개념이다.

 

서학은동학과“‘도는 같으나이치는아니다.’ 말 했다. ‘어째서 그런가?’ 말했다. ‘우리의 도는 무위이화이다. 그 마음을 지키고 그기운을바르게하며, 그본성을따르고그가르침을받으면변화는자연스 러움속에서생겨난다.’”35)

 

      34) 이준모, 위의 책, 144~145쪽.

      35) 東經大全, 「論學文」, “‘道則同也, 理則非也.’ 曰: ‘何爲其然也?’ 曰: ‘吾道無爲而化 矣. 守其心, 正其氣, 率其性, 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최제우는 도가적 무위자연 사상을 계승하여, 그것 을 서학과구별되는동학의가장중요한행위원칙으로삼았다.

그런데이준 모는 이무위자연이 인간노동행위의원칙도포함한다는점에착안하여위 와 같이말하였다.

그리고 이도가적무위자연의기술은이준모의생태노동 론적개념으로표현하면곧채집성농사기술, 즉자연의자연성을최대한따 라가는 기술이다.

이 채집 기술은 농사에 가장잘간직되어있다.

농사는 생 명을다룸으로인해다른노동과는달리차마어쩌지못하는마음, 즉생태적 공감 능력이 길러지기쉽기때문이다.

이준모는 동학에서 이측은지심과 가장가까운덕목으로공경[敬]이 있음을발견한다.

최시형이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을 거론해 삼경설 을 제시했듯, 동학에서 말하는 공경의 대상은 전방위적이다.

그런데 사람이 공경의윤리를실천해야하는근거는어디에있는가?

이준모는이물음에대 한 답을바로앞서언급한최시형의이천식천(以天食天)설에서 찾는다.

 

동학이 말하는 하늘님을 모시는 기화, 기술은 ‘하늘로써 하늘을 먹이기’ 위함이 다. 어머니는 자식을 먹인다[食]. 어머니는 젖을 먹인다. 젖이 아이의 몸으로 들어 가 생명력이 된다. 어머니는 이 젖을 자신의 몸을 내주어 만들었다. … 젖은 하늘 이다. 그것은 하늘 마음의 하늘 기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늘로써 하늘을 먹임’ 은 ‘하늘로써 하늘을 섬김[以天奉天]’이다. 최시형은 자연의 만물이 이처럼 자신을 내주어 다른 만물을 섬기며 이렇게 모든 물(物)들이 하늘 마음으로 하늘님을 모신 다고 하였다. … 이러한 ‘봉’은 이와 짝을 이루는 자기부정, 즉 ‘경(敬)’을 불러일으 킨다. ‘경’은 이천식천을 통한 이천봉천에 대해 공경스럽게 대함이다. … 최시형의 ‘경’은 자신을 내주어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리는 천(天)의 봉(奉)에 대해 취하는 태 도와 행위다. 이 ‘타자를 위한 존재’ 앞에서 ‘자기를 위한 존재’는 자기를 낮춘다. ‘경’은 이처럼 섬김을 받는 ‘천’이 섬기는 ‘천’ 앞에서 섬기는 천(天)을 천(天)으로 인정함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을 부정함이다.36)

 

사람이 다른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연 또한 공경해야 하는 까닭은 자연이 자신의 기운으로만물을먹여살리기때문이다.

자연의만물이자기안의기 운을햇빛, 공기, 열매, 살등의다양한형태로다른만물에제공하는것은마 치 어머니가 자신의 젖을 내주어 아기를 먹여 기르는 것에비견할 수있다.

그것 역시거룩한자기희생의행위이기때문이다.

이점을분명히하기위해 이준모는 ‘하늘로써 하늘을 먹이는’ 행위를 최시형이 다른 곳에서말한‘하늘 로써하늘을섬김[以天奉天]’이라고도 표현하였다.37)

 

     36)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 앞의 책, 83쪽.

     37) 海月神師法說, 「靈符呪文」: “以心治心, 以氣治氣, 以氣食氣, 以天食天, 以天奉天.” 

 

만물이 다른 만물을 먹 이는행위는일종의받듦, 즉섬김[奉]의표현이다.

누군가자기를낮추어남 을 위해헌신한다면 그 사람에게 공경하는 태도와 행위가 생겨나듯, 만물을 섬기는 자연에 대해서도 인간은 공경의 실천을 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이준 모는 최시형의 이천식천설, 이천봉천설 등에서 자연의 거룩한 자기희생이라 는 의미를발견하고, 이를 동학적 경천(敬天), 경물(敬物) 윤리의 근거로 삼았다.

이준모는이‘경천’과 ‘경물’의 실천이 채집성농사의토대위에서만사회적 으로전면확산할수있다고생각한다.

 

한사회의노동양식이생태적농사의 기반 위에서야생태윤리도보편적규범으로화할수있다는뜻이다. ‘이천식천’의 ‘봉’이 ‘경’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농업적 토양 위에서만 가능하다. ‘무위이화’는‘비와 이슬의 은택’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살 릴 수 없고 ‘비와 이슬의 은택’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무위이화’의 뜻이다. 그 리고 이 ‘무위이화’는 곡식과 열매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서양의 기술은 바로 이 ‘무위이화’를 잊고 상공업을 위해 농업을 착취한다.38)

 

한 사회가 광범위하게 생태적 농사를 지어야만 사람들이 널리 비와 이슬 등을 하늘이 내리는 ‘은택’으로 간주하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자연이 자신의 기운을 내어주어 섬기는 일을 해 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곡식이나 열매는 농사를 짓 는과정에서자연스스로일하게하는무위의계기가없다면결코얻을수없 음도알게된다. 서구근대에발흥해오늘날세계를생태위기로몰아넣고있 는 상공업 기술은 이무위자연의 계기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리하여 농사마 저 상공업적 농사로 변질시켜자연생명을착취한다.

이같이반(反) 생태적인상공업기술이세계를지배하는현실을생태적농 사만으로 타개할 수는 없다.

자연이 생명 살림의 목표를 중심으로 자연력의 형태 변화와유통이통일되는기술을발휘하듯, 인간사회역시농성을기반 으로 농공상기술이유기적으로연결되고통일되어야한다. 이준모는최시형 의 성론(誠論)에서 이러한 사유의 단서를 발견한다.

 

사계절에 차례가 있어 만물이 번성하고, 주야가 바뀌어 일월이 분명하며, 고금 이 장구하여 이치와 기운이 변하지 않으니, 이는 천지의 지성으로 쉼이 없는[天地 至誠無息] 도이다. … 농부가 힘써 농사를 지어 의식이 풍족하고, 상인이 부지런히 노고하여 재물의 쓰임이 다하지 않고, 노동자가 부지런히 일하여 기계가 고루 갖 추어지니, 이것이 인민이 지성을 잃지 않는 도이다.39)

 

     38)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 앞의 책, 85쪽.

     39) 海月神師法說, 「誠敬信」: “四時有序萬物盛焉, 晝夜飜覆日月分明, 古今長遠理氣不 變, 此天地至誠無息之道也. … 農夫力穡衣食豊足, 商者勤苦, 財用不竭, 工者勤業機 械俱足, 此人民至誠不失之道也.”

 

최시형은 맹자, 중용의 성론(誠論)을 계승해 천지가 생명을 낳고기르는 일에 성(誠)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 천지의 일에협력하는인간도마 찬가지로 지성(至誠)의 태도를 기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유학에서의 성론 과는 사뭇달리, 최시형은지성의태도를길러야할 자들로 농부, 상인, 노동 자등을지목한다.

이들이지성의태도를기르는공통된방법은물론주로노 동을 통해서인데, 유학에서의 ‘지성’이 ‘내’가 아닌, 타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도모할 때 견지해야 할 태도임을 고려한다면, 노동 과정에서 지성의 태도는 농사에서 가장 쉽게 기를 수있음을인정할수있을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농사만이 생명을 기르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준모는 바로 이 지성의 농사 를전범으로삼아상공업또한지극정성으로자연을위하는상업과공업으로 변모해나갈수있다고생각했으며, 이점을동학의여러개념을운용해아래 와 같이논했다.

 

하늘로써 하늘을 섬겨 먹이는 경(敬)은 선천(先天)의 운동이다. 이 운동으로 하 늘님을 모시게 되면 이제야 ‘조화가 일정하게 정해진다[造化定].’ 이 정해진 조화 는 선천에서 후천으로의 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후천에서도 ‘하늘로써 하늘을 먹이 는’ 선천의 하늘 논리가 되풀이될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천식천의 농사가 이천봉천의 섬김과 경(敬)이 됨으로써 선천과 후천 사이에 다 리가 놓인다는 것이다. 최시형은 이를 ‘하늘로써 하늘을 변화하게 함[以天化天]’이 라고 하였다. … 오늘날 상공업적 기술은 밥 먹임이 지니는 ‘무위’의 요소를 간과하 고 기술 가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러한 기술의 환상이 강화되면 될수록 자연 파괴는 가속화되고 생명은 병들 뿐이다. 동학은 이러한 상 공업적 기술이 생명 먹임의 농사에 봉사할 수 있도록 ‘고쳐 정하는[更定]’ 것이 다.40)

 

   40) 이준모, 「유토피아 비판과 생태적 유토피아」, 앞의 책, 86~88쪽. 

 

생태철학적인관점에서말하자면선천시대란자연이자연력을내어주어 인간을 먹여섬겨온역사인데, 이시대의끝자락에이르러서야사회는 비로소 자연이그와같이자기희생을해온존재임을자각하는바탕위에서자연 을공경하기시작한다.

그리고이자연공경의태도를바탕으로‘조화(造化)’, 즉 자연과 인간이 협력해 일하는 기화(氣化)의 원칙과 방향이 점차 새롭게 정해진다. 생태적 노동 혹은 생태적 기술의 원칙이 사회적으로 점차 확립되 고확산하는것이다.

이원칙과방향이확고해졌을때인류는자연지배의역 사에 종언을 고하고 인간과 자연이평등한관계속에서살아가는후천시대 를열수도있다.

물론이는쉽지않다.

그래서이준모는후천시대에도자연 이인간을위해자신을어느정도는희생하는일이계속될지어떨지알수없 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섬기고 공경하는 생태적 농사를 짓는 데서 후천 시대로의 이행이시작될수있다는점은명백하다고강조한다.

이준모는이같은이행을동학의‘이천화천(以天化天)’이라는말을빌려요 약한다.

최시형은“우리도의뜻은하늘로써하늘을먹여하늘로써하늘을변 화하게 하는 데 있다”41)라고 했다.

 

      41) 海月神師法說, 「靈符呪文」: “吾道義: 以天食天, 以天化天.” 

 

천주 모심의 이치를 자각한 동학도들이 하늘같이 존귀한 사람들을 먹여 살려 이들역시모심과공경의삶을살도록 안내하는 것이 동학의 중심 교의라는 뜻이다.

이준모의 생태노동론에서 이 구절은생태적농사를짓는공동체가그경험속에서무위자연의기술, 즉채 집성 노동의 중차대함을 부단히 깨달아 생명 살림의 대안적 삶을 삶으로써 상공업 기술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의 생활태도와기술개발의방향을생태 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요컨대 그는 인류가생태적문명으로전환하려면사람들이인간과자연이 협동노동하는채집성농사의현장에서생태적정신과기술의모범을발견해 야 하며, 이로부터 상공업 역시 생태적 기술로 변모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농사뿐만 아니라 상업과 공업도 그렇게 생명 살림의 생태적기술로변모해야한다는사유의단서가동학에보인다는점에서그것 은 생태적이라 칭할 수있다고여겼다. 

 

Ⅳ. 맺음말

 

본문에서는 이준모생태노동론의기본적내용을중국전국시대의노자,  장자, 맹자, 중용에 대한 재해석의 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했으며, 이를 바 탕으로 그가 어떤 근거에서 동학을 가장 생태적이라 칭하는지 밝히고, 동학 에서 한걸음더나아가그것을어떻게생태노동론적으로재해석했는지살 펴보았다.

이제 그의 생태 노동론과동학해석이어떤의미가있는지간략히 밝히는 것으로 이글을맺고자한다.

오늘날 생태 위기의 근본원인에대한 학계의 진단은 각양각색이다.

환경 오염을 초래하는기술에서부터그것을뒷받침하는인간중심주의적인세계관, 인간의자기중심적탐욕과분노, 무지, 인간의자연지배뿐아니라인간사회 안의 갖가지 차별을 당연시하는 여러 제도적장치와관념등을지적하는견 해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생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 는철학적견해들은인간이자연에대해힘을행사하는직접적계기, 즉노동 의 문제에대해충분히주목하여그것을깊이사유하지못하고있다.

자연의 생명성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하는 것도, 반대로 생명성을 복원하는 일도직접적으로는한사회가주로어떤노동을하느냐, 즉사회적노동의양 식이 어떠하냐에크게좌우된다.

이준모는바로이노동양식의문제에주목 하여 인류의역사와철학사상을농성과상공성, 혹은채집성과상공성의틀 로설명하였다.

또이농성, 상공성등의‘성(性)’이 한 시대의정신을뜻한다 고 함으로써 노동의 방법인 기술과이기술을고안하고운용하는한시대의 정신은떼려야뗄수없다는관점도제시했다.

이러한견해는생태위기의원 인진단과출구모색의핵심고리가노동양식내지는기술에있음을분명히 하면서도 정신의 중요성도 충분히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 둘가운데어느한 측면에 치우쳐 있는 기존생태철학의사조들에 시사하는바가크다.

하지만이준모의생태노동론에서더욱빛나는대목은자연의운동을인간 사회의노동이나기술에유비하면서자연안에서협동노동의모범을발견하 는부분이다.

현대생태철학이생태위기의원인은어느정도그심층에서파 악했으면서도, 그 위기를 벗어날 출구는 제대로 찾아 제시하지 못하는 까닭 은 바로생태적기술의전형을주로인간사회안에서만찾으려한데있다.

이준모는 자연의 운동을 생태노동론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동양철학의 기화 (氣化), 무위(無爲), 만물병작(萬物竝作) 등을 노동론적 관점에서 재해석하 고, 이를 생태적 농사체험으로입증함으로써생태적기술의희망을보다분 명한 형태로제시했다.

바로본문에서몇차례언급한생명살림을목적으로 농공상이 유기적으로 연결, 통일되는 기술 말이다.

다음으로 이준모의 생태노동론적 동학 해석 역시 그 학술적, 실천적 의의 가적지않다.

동학을바라보는관점에따라동학사상전체혹은핵심이생태 적인 데있지않다고볼수도있다.

그러나적어도19세기의동학사상, 특히 최시형의 사상중에는생태적사유가매우풍부하고, 서구근대와의접촉속 에서그것이이루어졌다는점에서그것은전통철학에비해서도더욱생태적 인 색채를짙게띤다.

이준모는 이 점에주목하여동학의시천주사상, 최제 우의서학비판을상공성비판으로재해석하고, 최시형의이천식천설, 이천봉 천설에서 자연의거룩한자기희생이라는종교생태학적함의를발견했다.

나 아가 동학의 성경(誠敬) 윤리를 생태적 정신과 기술의 원칙으로 해석함으로 써 그것이생태노동론적으로재해석될수있는여지를마련했다.

이러한이 준모의동학사상에관한생태노동론적재해석은한국현대생태사상의흐름 속에서 장일순과 김지하의 생명 운동, 생명 사상과 대의를함께하며, 철학적 으로 그것을 더욱체계화했다고도 할수있다.

물론 현대사회의생태적전환에관한이준모의철학적사유에미진한부 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생태적 국가론이라 칭할 만한 생태적 정치사상이 다. 생명 살림을목적으로생태적농사를모범으로삼아상업과공업등사회 전반의기술이생태적으로변모하는사회가자연스럽게도래하기를기다리기 에는 생태재난의현실이너무도엄중하다.

생태적정신으로충만하여그기 술이 만개하는사회로전환하기위한정치적각성과실천, 그리고생태국가 운영의 철학을모색하고제시해야한다.

이준모의생태노동론을비판적으로 볼 때얻게되는후속과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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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글은현대한국의생태철학자이준모의생태노동에관한기본적인관 점과 그것을 토대로 한동학해석의특징을밝히는것을목적으로한다. 이준모는오늘날생태위기의직접적원인이농성(農性)과상공성(商工性) 의극심한분열에있다고본다. 인간의자기중심적향유와이를위한자연지 배를 부단히추구하는상공업적영성은기술발전을찬미하는데반해, 약자 를 측은히여기는농성은기술발전에비판적이다. 이농성과상공성은역사 적으로, 사상적으로 분열, 대립했다. 그 선명한 대립의 사례로 이준모는 중국 전국시대를 든다. 묵가와 순자는 상공업적 색채를, 노자와 장자는 채집적 농 사에관한사유를각기자신의철학사상에담고있다. 그리고맹자, 중용은 양자를 절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준모는 이러한 상공성과 농성의 분열을 지양하는데생태위기극복의열쇠가있으며그극복의희망은생명살림을 목적으로 하여 변형 기술과 유통기술을유기적으로통일한자연의생명운 동에서 발견할 수있다고말한다. 이준모는 이 같은 생태 노동론을 토대로 19세기 동학사상을 재해석했다. 동학사상이 어떤 다른 전통 사상보다 더생태적인이유를그는당시조선의 서구 근대와의충돌과그에대한동학의서학비판에서찾았다. 그는최제우 의시천주(侍天主) 사상에근거한서학비판이본질적으로는서구근대의상 공성에대한비판이라평가했다. 또최시형의‘이천식천(以天食天)’설이 자연 의 자기희생적 특성을 표현한다는 해석을 기반으로, 그것을 사람이 자연을 공경해야(敬) 하는 근거라고 했다. 그밖에 최시형의 성론(誠論)이 전통 유학 과는 달리 농민, 상인, 노동자의 노동 태도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생태 노동론적 사유의 단서도 발견된다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준모는 인류가 생태적 문명으로 전환하려면 자연과 인간이 협동해노동하는채집적농사의현장에서생태적정신과기술의모범을발견 해야하며이로부터상공업역시생태적기술로변모하도록이끌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주제어: 이준모, 협동 노동, 상공성, 농성, 채집성, 동학

 

<Abstract>

Rhie Tschum-Mo’s Ecological Theory of Labor and His Interpretation of Donghak Hwang Jong-won This study aims to elucidate the fundamental perspective of contemporary Korean eco-philosopher Rhie Tschum-Mo on ecological labor, as well as the distinctive features of his interpretation of Donghak based on that perspective. Rhie identifies the root cause of today’s ecological crisis in the severe rupture between agrarian spirituality (農性) and commercial-industrial spirituality (商工性). While the latter relentlessly pursues the domination of nature for human self-centered enjoyment and celebrates technological advancement, the former—characterized by compassion for the vulnerable—remains critical of such progress. Historically and philosophically, these two spiritualities have remained divided and antagonistic. As a vivid example of this dichotomy, Rhie refers to the Warring States period in China: thinkers such as Mozi and Xunzi embody commercial-industrial tendencies, whereas Laozi and Zhuangzi articulate a philosophical orientation grounded in foraging-based agriculture. Mencius and the Zhongyong (Doctrine of the Mean) exhibit a tendency to mediate between the two. According to Rhie, overcoming this divide is key to addressing the ecological crisis. He argues that hope for ecological restoration lies in a life-centered movement of nature, in which transformative technologies and distributive practices are organically integrated to serve the purpose of sustaining life. Building upon this ecological theory of labor, Rhie reinterprets nineteenth-century Donghak thought. He locates the ecological character of Donghak in its historical confrontation with Western modernity and its critical stance toward Western learning (Seohak). Rhie evaluates Choe Je-u’s teaching of Si-cheon-ju (侍天主, “serving the Lord of Heaven”) as an implicit critique of the commercial-industrial spirituality inherent in Western modernity. Furthermore, drawing on Choe Si-hyeong’s idea of “feeding Heaven with Heaven” (以天食天), Rhie interprets this as an expression of nature’s self-sacrificial character, which grounds the ethical imperative of revering (敬) nature. He also identifies  in Choe Si-hyeong’s discourse on sincerity (誠論) an early conceptual seed of ecological labor, noting that it diverges from classical Confucianism by emphasizing the working attitudes of farmers, merchants, and laborers. In conclusion, Rhie argues that in order for humanity to transition toward an ecological civilization, we must recover the ecological spirit and technological ethos embodied in the cooperative labor of foraging agriculture—where nature and humans work together. From this foundation, even commercial and industrial practices must be transformed into ecologically integrated technologies.

 

Keywords: Rhie Tschum-Mo, cooperative labor, commercial-industrial spirituality, agrarian spirituality, foraging agriculture, Donghak

 

 

유교사상문화연구 제100집 / 2025년 6월

투 고 일 : 2025년 5월 28일    심사완료일 : 2025년 6월 18일     게 재 확 정 일 : 2025년 6월 24일

 

이준모의 생태 노동론과 동학 해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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