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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한국인과 일본인/받은 글

   

남편이 50년 가까운 일본어 교사 생활 중 아쉬웠던 점을 벼르다가 《일본인이 죽는 법》이라는 책을 냈다. 

맑은 날에는 건너편 대마도가 보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일본과는 영국과 프랑스처럼 역사적으로 물리적 충돌도 있었고 국민감정 상으로도 라이벌 관계이다.
나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들으며 자란 한민족이고 남편은 ‘마지막 한걸음이 반이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재일한국인 출신이다. 

우리는 ‘시작’이 중요하고 그들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남편의 둘째 형님은 건축가인데 “일본 사람들은 공사가 다 끝났는데도 손잡이에 묻은 페인트처럼 사소한 것까지 말끔하게 끝내야 공사 완료로 본다.”라며 불평한 적이 있다. 

실제로 완공되었다고 오픈한 건물 여기저기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흔하다. 

우리에게 99.9%는 100%와 거반 같지만, 그들에게는 0.1%가 모자라는 미완이다.
우리말의 꽃길은 ‘이제부터 걷게 되는 탄탄대로’이지만 일본어의 꽃길은 ‘퇴장하는 길, 역할을 다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길’이다.

 우리는 남을 돕는 게 미덕이고 그들은 도움을 받지 않는 게 미덕이다. 

우리말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은 긍정적인 의미이지만 일본적인 시각으로 보면 열 번 찍은 나무의 흔적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그들은 ‘질 때를 알아야만 꽃도 꽃이고 사람도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하기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무라이’라는 말은 뭔가 부조화하여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적과의 싸움에서 막바지에 몰렸을 때 부하들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장수가 할복하는 것도 ‘질 때를 아는’ 사무라이가 택하는 길이다. 

나는 그들의 할복을 열 받아서 그냥 콱 죽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들에게 할복은 절차와 법도가 있는 명예로운 죽음이란다.

 그래서 하급 무사는 할복하고 싶어도 할복할 수가 없단다. 

사무라이가 자기 배에 칼을 꽂고 옆으로 그으면 보조자인 카이샤쿠(介錯)가 뒤에서 목이 나동그라지지 않고 고개만 꺾이도록 기술적으로 단칼에 목을 쳐준다. 

칼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우리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에 미시마 유키오라는 사람이 할복했을 때 ‘뭣 때문에 그렇게 화딱지가 났을까? 

그래도 자기 배를 갈라 죽다니 참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할복하던 날 아침에 자기가 연재하던 소설의 최종회 원고를 잡지사에 보냈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각각 유서를 남겼고 노모에게는 자신의 저작권 일부를 유산으로 남겼으며 뒤에 남은 두 자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해마다 배송되도록 백화점과 계약도 하고 자녀들이 구독하는 잡지의 장기 구독료도 선납해 놓았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그는 문학적 능력도 뛰어났으며 일본 문학사에서 손에 꼽는 천재 작가로 알려져 있고 문체가 아름다운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인기가 있으며 그의 기일에는 해마다 추도모임(憂国忌)이 열린다.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들은 너무도 달라서 어느 부분에서는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어느 날 ‘죽음’에 대한 인식 차이에 대하여 세계관, 종교관까지 거론하면서 남편과 갑론을박하다가 남편에게 한 방 먹었다.
이 땅에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나라 꼬라지가 왜 이러냐고 했을 때 “제대로 믿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면서 “그렇다고 일본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냐?”라고 받아쳤지만 나도 내 말이 궁색하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 게 제일 편하고 일본 사람은 일본에서 사는 게 편하다.

 수년 전 친구 어머니께서 문화적으로는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는 남편이 여기서 사느라고 고생이 많았을 거라고 일깨워주신 이후로 남편 때문에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그 말씀 떠올리며 참는 일도 있다. 

 

-   유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