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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노인의 삶/받은 글

곡주 한 사발 주고받을 친구가 그리운 시대 풍경.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세상은 어느새 사람보다 개가,
부모보다 반려동물이 더 존중받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젊은이는 사라지고 노인만 가득한 전국 농촌에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을 넘어 서울 한복판과
1기 신도시 분당의 학교까지 신입생이 없어 폐교하는 사이,
개·고양이 유치원과 호텔이 성행하는 시대를 넘어
앞으로 반려견 대학교가 생긴다 한들 그리 놀라운 일도
생경한 모습도 아닐 것 같은 시대다.

죽은 반려동물에게 인간이 조문하고,
화장 봉안당엔 애완의 영정사진이 빛나는 시대.
정작 인간은 그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조용히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원룸은 늘고, 1인 가구가 넘쳐나도
인구 총량은 줄어들고, 아이 울음 대신
개 짖는 소리만 골목을 메운다.

어떤 이는 개, 고양이를 넘어 파충류에게조차
우리 또는 내 아들, 딸 가족이라 칭하며
혼자 사는 외로움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한다.

2024년 기준 336개 대학이 향후 수년 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암울한 예측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배울 곳은 넘치지만,
가르칠 이도, 배워야할 이도 소리 없이 살아진다.

부모가 되기는 쉬워도,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지하고 가난한 부모는 설 자리가 없다.
아파트마다 집들이, 생일, 잔치가 사라지니
교자상과 병풍은 폐길 쓰레기장에 나뒹군다.

‘가족’이란 말은 이제 단체 사진 속 장식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을 예매하고,
어른들은 줄을 서서 헤맨다.

맛집을 찾아 할인받는 젊은 세대와 달리
최신 정보 습득에 어려운 노년은 단골집만 찾는다.

우대 금리를 알지 못한 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노인들.
그 모습이 왠지 짠하다.

지하철 안은 핸드폰 불빛으로 가득하고,
옆에 선 어른은 민망해 출입문 쪽으로 피한다.

예식장은 주례도 없고,
노래와 괴성이 울려 퍼지며
하객들은 밥표만 챙겨 식당으로 향한다.

장례식장은 조화만 가득한 무인 자동화 시대,
한 줌의 재로 변해 수납장에 안치되면 인생은 끝이다.

이쯤 되면 묻고 싶다.
우린 정말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짐승만큼의 정과 예의조차 사라진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래도,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웃던 친구가 그립다.

앞으로 전설 속에서는 볼 수 있는
아득한 옛날도 아닌 그 시절엔,
돈보다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 가득 따뜻한 정이 먼저였고
SNS 대신 눈빛으로 위로하던 그때가.
이제 세상 탓하기보다,
남은 생을 영글게 살아가자.

슬퍼하지도, 비관하지도 말고,
그저 시대를 바라보며 한숨 한 잔,
막걸리 한 잔으로 씻어내자.

출생신고보다 사망신고가 많은 시대,
유모차는 반려동물용으로 더 많이 팔리고,
기저귀는 노인용으로 더 잘 팔린다는 통계치.

그래도 말이다.
그런 시대 눈살 찌푸리기보다
절친한 벗과, 거나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라진 시대를 한탄하지 말고, 즐기며 살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