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교와 육사외도
사상의 혼란 시대.........진리 찾는 사문 등장
불교는 인도의 종교철학 전통 위에 성립된 종교다.
불교 탄생 당시 인도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의거한
사상적 전통이 확고하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전통이 긍정적으로 수용되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불교는 베다에 근거하는 전통적인 사상에 대한
논란과 새로운 철학이 생겨나는 와중에 성립되고 발전했다.
기존 브라만 전통에 의문 제기
산자야 등 6인의 사상가 두각
부처님이 출가해 수행정진할 당시 인도에는
새로운 철학적 전통이 성립되고 있었다.
기존의 베다나 우파니샤드에서 강조되는 철학전통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을 표방하려는
새로운 종교사상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사상가들은 사문(沙門)이라 불리는 자들로,
기존의 철학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표방했다.
이들은 아트만에 대한 지식이나 윤회로부터의 해탈 등에 대해
우파니샤드와는 다른 사상을 전개했다. 초기불교경전에 따르면
당시 새롭게 자신의 주장을 표명하는 자들은
362종의 견해 혹은 62종의 견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 사문이 육사외도(六師外道)였다.
육사외도라 함은 '내도(內道. 불교)' 와 다른
종교철학체계를 전개한 대표적 6인을 말한다.
자신의 독특한 종교체험을 통해 당시 종교집단의
지도자이기도 하였던 이들은 초기불교경전에 자주 등장한다.
푸라나 카사파, 파쿠타 카차야나,
막칼리 고살라, 아지타 케사캄발린,
산자야 베라티풋타, 니간타 나타풋타 등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니간타를 제외한 5인의 사상적인 공통점은
대체로 유물론적 입장과 아트만에 대한 부정,
도덕윤리를 부정하는 입장에 서있다는 것.
이것은 아트만과 윤회사상에 의거하는
전통적 철학사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기존의 사상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산자야 벨라티풋타는 진리는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일종의 '불가지론(不可知論)' 을 주장했다고 전하는데,
후일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連)도 처음에는 산자야의 제자였다.
자이나교의 개조인 니간타는 불살생과 무소유를 강조하고,
해탈에 장애가 되는 업(業)의 유입을
막기 위한 철저한 고행주의를 강조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은 종교로
오늘날까지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가 성립하던 당시,
육사외도를 포함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가 난무했다.
이는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철학전통이 권위를 상실하고,
새로운 종교전통이 갈구되었음을 의미한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당시의 다양한 철학적 견해를
'존우화작인론(尊祐化作因論)' '숙명론(宿命論)'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 의 셋으로 분류한다.
우주는 창조주와 같은 절대자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
우리의 운명은 이미 다 결정되어있다는 것, 우리의 삶에는
의지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 등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런 세 가지 견해는 당시의 다양한 견해를
종합적으로 정리. 분류한 것. 이들에 대해 부처님은
사람들을 윤회의 고통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불교가 성립되던 시대는 다양한 인간의 사유체계가
표출되던 시대이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의 시대였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등에 대해
정답 없이 다양한 견해만 난무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부처님 또한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는가' 에 대해 많은 고뇌를 했음에 틀림없다.
출가동기로 알려진 생. 노. 병. 사 등
삶의 근원적 문제만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싯다르타는 출가수행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갈구' 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정신적 수행을 하도록 하는 요소가 되고 있지만 말이다.
[글 :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 불교신문 기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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