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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스크랩] [이태승 위덕대 교수의 불교란 무엇인가] 35. 공사상의 전개


 
35. 공사상의 전개 "空 철저히 체득해야 반야지혜 완성" 緣起 이해와 空의 구현 바탕 대승불교 이타행. 자비행 실천 대승불교의 철학적 전개는 반야바라밀다 즉 반야지혜에 대한 규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반야지혜의 규명에 기치를 올린 사람이 용수(龍樹)이며, 이 용수에 의해 대승불교는 철학적인 체계를 갖춘다. 이 용수에 의해 체계화된 대승불교의 철학을 특히 중관철학(中觀哲學)이라 하며, 오랫동안 인도의 불교사상을 대표하였다. 그렇다면 용수에 의해 체계화된 대승불교철학의 근본내용은 무엇인가. 용수의 철학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불교의 근본체계로서 삼학(三學)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학이란 계(戒).정(定).혜(慧)의 체계로, 심신을 통제 조절하는 계율, 마음의 세계를 관찰하고 관조하는 선정, 그리고 지혜가 생겨나는 체계를 말한다. 이 체계는 초기불교이래 대승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근본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 삼학에서 보듯 지혜는 선정에 의한 내적 정신세계의 깊은 성숙에 의해 생겨난다. 그렇지만 선정에도 다양한 단계가 있어 그로부터 생겨나는 지혜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반야지혜는 부처님이 얻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지혜를 말한다. 선정에 의한 깊은 정신세계는 우리의 의식세계를 말하는 까닭에, 반야지혜가 생겨난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세계가 부처님과 같은 상태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수에 의하면 반야지혜는 공(空)을 체득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공이란 무엇인가가 '없다' 라는 의미로, 가령 불이 있는 곳에 물이 없는 경우 물이 공하다 라고 한다. 예를 들어 무아(無我)라고 하는 경우와 같이 아가 없다는 것은 아가 있다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없는 것을 지칭하는 까닭에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이라는 말은 대승불교 이전부터 쓰여진 말로, 용수는 반야지혜를 일으키는 근본 개념으로서 이 말을 사용하였다. 다시 말해 용수는 공에 대한 완전한 이해, 공의 상태를 체득한 정신세계를 체험하고서야 반야지혜가 생겨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용수가 반야지혜는 공의 체득에서 이루어진다고 한 것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불교의 근본 교리로써 연기(緣起)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용수는 부처님이 깨달음의 체험을 통해 본 연기의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곧 세계는 연기의 세계로서, 연기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관계되어 생겨나는 것이지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것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용수는 연기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우리의 의식상에서 철저하게 구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곧 의식상에서 무엇인가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모든 것은 관계된 것이고 서로 의존하는 것으로 사유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상에서 연기적인 사고가 철저해져 모든 것이 서로 관계하여 존재하는 것을 가장 완전하게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 공을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의 체득이야말로 반야지혜를 갖춘 인간으로 전환하는 계기이며, 이것을 통해 대승의 보살은 부처님과 같은 이타행과 자비의 실천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용수는 반야지혜를 규명함에 있어 공에 대한 이해와 그 체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세웠다. 곧 철저한 공의 체득과 구현이 의식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반야지혜가 드러나는 것이고, 반야지혜를 얻은 사람이 대승의 이타행과 자비행을 실천하는 보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의 체득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삶이 부처님이 가르친 바와 같은 연기의 삶이며, 이 연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공에 대한 체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용수는 반야지혜를 규명함으로써 대승불교도가 지향하는 목표에 대해 이론적인 체계를 세워 대승의 철학적 이념을 공고히 하였다.
[글 :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 불교신문 기사 발췌] ☞ 이태승 교수의 '불교란 무엇인가' 목차目次 바로가기 : 관세음보살 ☜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가장 행복한 공부' 無量光明 합장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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