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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스크랩] 중관사상(中觀思想)

중관사상(中觀思想)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1. 대승불교의 출현과 중관학

 

학자들은 인도불교의 특징을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논의해 왔습니다. 동일한 인도불교이지만 시대별로 큰 특징의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도불교는 크게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로 구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불교가 끝나고 부파불교가 일어나고 다시 대승불교가 순서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초기불교 시대에도 이미 대승의 사상이 싹트고 있었고, 대승불교가 흥기한 이후에도 부파불교는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대․소승이 공존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다만 편의상 시대별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다루고 있을 뿐입니다.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성립한 이후에도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사상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른바 초기대승불교, 중기대승불교, 후기대승불교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같은 대승불교이지만 시기별로 사상적 특징이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전 시대의 불교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파불교가 안고 있던 문제점이 부각되었기 때문에 대승불교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부파불교 중의 혁신주의자들은 부파불교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상운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 계율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출가․재가 구별을 세우지 않으며, 형식적 평면적인 교리보다도 오히려 제1의적인 높은 입장에 서서, 고통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구하는 업보적 타율사상의 속박을 벗어나 고락을 초월한 무아의 실천을 행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인격완성을 위한 수행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세인의 구제 지도를 목적으로 하는 수행이었으며, 또한 타락 침체한 불교를 그 본래의 입장으로 환원시켜 불교의 참 정신을 발휘시키고자 한 복고 혁신의 운동이었다.”[미즈노 고겐, 『원시불교』, 김현 옮김(서울: 지학사, 1985), p.34.] 

 

이러한 대승불교 운동은 많은 동조자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보수파 중에서도 이에 찬성하여 참가한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가자가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는 증거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집단이 일방적으로 주도한 운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아무튼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이 새로운 사상운동에 찬동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대승불교 운동은 삽시간에 인도의 여러 지방으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대승불교 성립과 아울러 많은 대승경전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즈노 고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파불교의 삼장성전(三藏聖典) 외에 새로운 이상을 담은 대승경전이 다수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경전은 붓다가 직접 설한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빠른 것도 실제로는 불멸 후 4-5백 년을 경과한 시기에 나온 것이다. 그 작자들이 누군가는 오늘날 전혀 판별되지 않지만, 작자들은 아마도 경전을 위작(僞作)한다고는 생각지 않고, 붓다의 참 정신을 감득하고, 그것이 붓다의 실제의 말임을 확신한 가운데 저술한 것이리라. 현존하는 초기 대승경전이 그것이다.”[미즈노 고겐, 위의 책, pp.34-35.] 

 

이렇게 편찬된 많은 대승경전이 출현하자 불설과 비불설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합니다. 현존하는 대승경전에 그와 관련된 내용들이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승불교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라고 해도 그 전체가 동일한 주장만을 내세운 것은 아니고, 근본적 입장은 일치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몇 가지 다른 특징을 지닌 유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미즈노 고겐, 위의 책, p.35.]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 성립 시기에 대승불교 사상이 철학적으로 체계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조직하는 철학적 작업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작업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와 그의 제자 아리야데와(Āryadeva, 阿利耶提婆)입니다. 그들이 체계화시킨 대승불교의 철학을 중관학(中觀學) 혹은 중관사상(中觀思想)이라고 부르며, 그러한 교의(敎義)를 따르는 무리를 중관학파(中觀學派, Madhyamaka)라고 부릅니다. 그 후 미륵(彌勒, Maitreya, 270-350), 무착(無着, Asaṅga, 310-390), 세친(世親, Vasubandhu, 320-420) 등이 주도한 새로운 학풍을 유가행파(瑜伽行派, Yogācāra)라고 부릅니다. 이 중관학파(中觀學派)와 유가행파(瑜伽行派, Yogācāra)는 인도의 대승불교철학을 대표하는 이대조류(二大潮流)인 것입니다. 여기서는 중관사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중관학과 중도

 

중관학(中觀學)이란 무엇인가? 중관학을 마드야미까(Mādhyamika) 혹은 마드야마까(Madhyamaka)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은 중관학이나 중관사상은 물론이고 중관학파나 중관논사까지 모두 의미합니다. 마드야마(Madhyama)는 가운데 또는 중간을 의미하는 형용사 마드야(madhya)에 최상급어미 마(ma)가 결합된 것인데, 그 의미는 ‘가장 가운데의 또는 가장 중간의’라고 풀이되며 여기에 2차 접미사 까(ka)가 부가됨으로써 사상이나 학파, 또는 논사를 의미하는 마드야미까 혹은 마드야마까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김성철, 『중관사상』(서울: 민족사, 2006), p.27.]

 

중관학은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나가르주나에 의해 창안된 불교학의 한 분야입니다. 김성철 교수는 “중관학에서는 초기불전의 연기설(緣起說)과 무기설(無記說)에 근거하여 대승불전인 반야경에서 가르치는 공(空)을 논증한다. 원시불교의 가르침은 그후 500여 년 간 전개된 아비달마교학은 모두 중관의 가르침을 통해 비판적으로 결실(結實)되었고 이런 중관의 결실이 있었기에 유식(唯識)과 여래장과 밀교, 천태와 화엄과 선(禪) 등 시대와 지역에 부응하는 다양한 대승불교사상들이 발아할 수 있었다.”[김성철, 위의 책, p.27.]라고 말했습니다.

 

중관(中觀)이란 문자 그대로 ‘중도(中道)에 대한 관(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도는 중관학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한역 아함경(阿含經)이나 니까야(Nikāya)에도 중도의 가르침이 가득합니다.[김성철, 위의 책, p.28.] 그런데 초기불교의 중도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전법륜경』에 나오는 ‘고락중도(苦樂中道)’이고,[Vin Ⅰ, p.10.] 다른 하나는 『가전연경』을 비롯한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에 나오는 ‘유무중도(有無中道)’[SN Ⅱ, p.17.] 혹은 ‘단상중도(斷常中道)’[SN Ⅱ, p.38.]입니다. 전자의 ‘고락중도’는 실천적 입장이지만 후자의 ‘유무중도’나 ‘단상중도’는 ‘견해’의 문제로서 이론적 사상적 입장입니다.[히라카와 아키라, 『인도불교의 역사』 상권, 이호근 옮김 (서울: 민족사. 1989), p.63.] 중관학에서 가르치는 중도는 사상적 중도에 해당합니다.[김성철, 위의 책, p.29.]

 

그러나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은 초기불전에 나타난 중도사상만 다룬 것이 아닙니다. 물론 중도라는 말 속에 불교의 온갖 교설이 다 포함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은 초기불교의 연기설(緣起說)과 무아설(無我說) 및 이제설(二諦說)에 토대를 두고 발전시킨 사상체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야스이 고사이, 『중관사상연구』, 김성환 옮김 (서울: 문학생활사, 1988), p.9.]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은 불교에 철학적인 기초와 종교적인 깊이를 더해 주었다는 점에서 불교사상사에서 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다. 중관사상의 교의(敎義) 조직과 내용에 대해 예전에는 주로 삼론종(三論宗)의 주석서에 의해서 연구되었지만, 최근에는 범본(梵本)과 서장본(西藏本)의 자료에 의한 인도 찬술의 주석서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야스이 고사이, 위의 책, p.9.]

 

중관사상의 핵심은 공사상(空思想)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空, śūnya)’이라는 용어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특히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는 이 말은 자성(自性, svabhā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ṛti), 자아(自我, ātman) 등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152.] 이를테면 ‘자동차’는 운전하여 달릴 수 있는 사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동차는 실제로 수많은 부속품들의 조합에 불과합니다. 자동차라는 본질은 자동차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에는 본질적으로 ‘자동차의 자성’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공’이라는 말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가르주나를 비롯한 대승의 사상가들은 ‘자동차의 자성’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특히 자아와 같이 인간 내면의 본질로 간주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본질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아라는 말에 집착되어 있는 인간의 잘못된 생각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본질,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공(空)’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또한 우리들이 언어에 대해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개념 분별로서 잘못된 망상을 없앨 것을 공사상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3.] 

 

이러한 ‘공’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공사상(空思想)이라고 하며, 이러한 공사상을 강조한 사람들을 공론자(空論者, śūnyavādin)라고 부르며, 그들의 주장을 공론(空論, śūnyavāda)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공론자는 나가르주나 이후 중관파(中觀派, Mādhyamika)를 형성하여 공사상을 전개해 가며 그들은 스스로를 공성론자(空性論者, śūnyatāvādin)라 불러 ‘사물에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입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54.]   

 

3. 중관학파의 역사적 전개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나가르주나이며, 이 나가르주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中論, Madhyamakakārikā)』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일반적으로 중관사상(中觀思想)이라 말하며, 또 그 중관사상의 흐름을 이어받는 불교 논사들을 중관파(中觀派, Mādhyamika)라 부릅니다. 나가르주나는 『중론』 외에도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저술은 『중론』입니다. 『중론』에 대해 많은 주석서가 씌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2.]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계승한 대표적인 제자는 아리야데와(Āryadeva, 阿利耶提婆, 170-270)와 라훌라바드라(Rāhulabhadra, 羅睺羅跋陀羅, 200-300)입니다. 아리야데와는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선양(宣揚)하여 특히 외도(外道)의 사상을 심하게 비판한 까닭에 그로 인해 논적(論敵)에게 암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리야데와는 『사백론(四百論)』, 『백론(百論)』, 『백자론(百字論)』 등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론』은 나가르주나의 『중론』, 『십이문론(十二門論)』과 더불어 중국에서 삼론종(三論宗)의 기본 전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었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62-163.]  

 

라훌라바드라는 나가르주나와 아리야데와의 제자로서, 이미 『중론』에 대한 주석서를 지었다고도 전해지지만 남아 있지 않고, 그의 현존하는 저술로는 『반야바라밀다찬(般若波羅蜜多讚)』, 『법화찬(法華讚)』 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아리야데와와 라훌라바드라는 나가르주나와 함께 초기 중관파로 분류되며,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선양하고 중관사상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3.]

 

초기 중관파에 이어서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중관파를 형성시키며 아울러 중관사상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는 사상가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이 곧 중기 중관파의 논사들입니다. 그리고 이 중기 중관파의 논사들에게 공통되는 점은 모두가 나가르주나의 『중론』에 대해 주석서를 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야등론광석(般若燈論廣釋)』을 지은 아왈로끼따브라따(Avalokitavrata, 觀誓)에 의하면 『중론』의 주석가는 8인으로, 나가르주나 자신의 주석 외에 붓다빨리따(Buddhapālita, 佛護, 470-540), 짠드라끼르띠(Candrakīrti, 月稱, 600-650), 데와샤르만(Devaśarman), 구나슈리(Guṇaśrī), 구나마띠(Guṇamati), 스티라마띠(Sthiramati, 安慧, 510-570경), 바바비베카(Bhāvaviveka, 淸弁, 500-570) 등이 주석서를 남겼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역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청목(靑目, Piṅgala, 400이전)이 주석한 『중론』과 무착(無着)의 『순중론(順中論)』 등이 있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3.]

 

그러나 이들 주석가들 가운데 실제 중관사상의 역사적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붓다빨리따, 바바비베카, 짠드라끼르띠 등입니다. 붓다빨리따는 『중론』의 주석서로서 『근본중론주(根本中論註)』를 남겼지만 그의 주석 태도는 후에 바바비베카에 의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바바비베카는 그의 『반야등론(般若燈論)』에서 붓다빨리따의 주석 태도를 비판하고 논리식에 따른 주석 태도를 취하였지만, 이러한 논리 중심의 태도는 후에 다시 짠드라끼르띠의 『쁘라산나빠다(Prasannapadā, 明句論)』에서 비판됩니다. 이러한 비판은 티베트에서 중관파를 바비비베카 계통의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Svatāntrika)’와 붓다빨리따, 짠드라끼르띠 계통의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Prāsaṅgika)’로 구분하는 계기가 됩니다.[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63-164.] 

 

이 중기 중관파의 뒤를 이어 나타나는 중관파가 후기 중관파로 분류되는 논사들로서, 그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즈냐나가르바(Jñānagarbha, 智藏, 700-760), 샨따락쉬따(Śāntarakṣita, 寂護, 725-783), 까말라쉴라(Kamalaśīla, 蓮華戒), 아띠샤(Atīśa)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중 즈냐나가르바는 후기 중관파의 개조로 간주되는 인물로서 그의 주저인 『이제분별론(二諦分別論, Satyadvayavibhaṅga)』의 제목에서도 보이듯 중관파의 중요한 문제가 후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이제설(二諦說)’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샨따락쉬따는 날란다(Nālandā) 승원(僧院)의 대학장(大學匠)으로서 후기대승불교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미 『섭진실론(攝眞實論, Tattvasaṁgraha)』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지어 인도의 모든 사상을 불교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으며, 또한 주저인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 Madhyamakālaṁkāra)』을 저술해 자신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들 후기 중관파의 논사 가운데 특히 샨따락쉬따, 까말라쉴라, 아띠샤 등은 티베트의 불교 전래와 교단의 확립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 후기 중관파의 사상은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뒤에도 티베트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4.] 

 

중국에서의 중관사상은 서역(西域)의 꾸마라지와(Kumārajīvā, 鳩摩羅什, 344-413)가 나가르주나의 저술을 번역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꾸마라지와가 번역한 나가르주나의 『중론』과 『십이문론』, 아리야데와의 『백론』은 삼론으로 중시되어 후에 삼론종(三論宗)으로 발전하고, 특히 수(隋)나라 길장(吉藏, 549-623)에 이르러 삼론종은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길장은 앞의 세 논서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해 전26부에 달하는 저술을 남기고 있으며, 특히 중관의 기본 개념인 이제(二諦)에 대해 『이제장(二諦章)』을 저술해 자신의 이제에 대한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길장에 의해 대성한 삼론종은, 당(唐)나라의 현장(玄奘, 602-664)에 의해 유식계통의 법상종(法相宗)이 성행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게 되어, 삼론교학에 대한 연구는 미미해졌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164-165.]

 

이 삼론에 대해서는 고구려의 관법사(貫法師)․인법사(印法師)․혜관(慧灌) 등이 연구하였다고 전해지며, 특히 혜관은 일본에 삼론종을 전달해 일본 삼론종의 초조(初祖)로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신라에서도 원효(元曉)에 의해 『이제장(二諦章)』, 『삼론종요(三論宗要)』, 『중관론종요(中觀論宗要)』 등과 같은 중요한 중관사상 계통의 저술이 지어졌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65.]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77호, 2010년 02월호, pp.10-12 -

 

출처 : 팔리문헌연구소
글쓴이 : 마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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