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녹도전자, 금문 해독 천부경 4. 조선이 삼한이 된 이유와 그 전 이름은 구리
▪ 앗선(조선)이 삼한이었던 이유
밝달임금(檀君)은 혼자 통치한 것이 아니라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했는데, 이는 불한(卞韓), 말한(馬韓)을 제후국으로 두고 자신은 선한, 또는 신한(辰韓)의 천제로써 통치했다. 여기서 밝달 천제가 하늘 천부인인 불한의 천제가 되지 않고 선한의 천제가 된것은 天一, 地一 太一中 太一 最上貴인 人本主義적 천부경 이론 때문이다. 이렇게 천제국이 신한이므로 삼한을 모두 신한(辰韓)이라고도 했었는데, 이 신(辰) 자는 진(辰) 자와 같으므로 진한 이라고도 했었다. 그리고 고조선이 망하고 진시황의 진나라가 되자 약삭빠른 유민들은 진나라에 아부하고자 진시황의 진(秦) 자를 써서 진한(秦韓)이라 했었다.
그러나 이 진나라가 망하자 또 약삭빠른 유민들은 우리가 중국, 일본을 섬기다가 이제는 일본 잔재어는 쓰면 안 되고 영어는 써도 되며, 또 우리말과 글자가 차츰 영어로 대치되어 미국을 섬기듯, 더 이상 망한 진나라를 받들 필요가 없으니 진(秦) 자와 비슷한 아뢸 주(奏) 자를 써서 주한이라 했던 것이다. 즉, 주(奏) 자는 아래에 天 자가, 붙고 진(秦) 자는 아래에 벼禾 자가 붙어 혼동하기 쉬우니, 약삭빠른 앗선의 유민들은 진한(秦韓)에서 어느새 주한(奏韓)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주한은 첫조선의 선한, 신한 과 아무 관계가 없으므로 새 시대에 아부할 줄 모르고 우리 뿌리, 전통만 지키는 멍청한 유민들은 먼저 원 이름인 신한(辰韓)이라 고집하는 자들도 있으므로 말이 혼동되니 주한, 신한의 복합어 '주신한'이라는 신조어를 다시 만들어낸 것인데, 세월이 흐르자 '한' 자는 생략되고 그냥 주신(奏辰)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신은 참으로 치욕스런 우리 역사의 산물인데, 그런 것도 모르는 사학자들은 우리가 주신 대제국이었다고 큰소리 치고 있는 것이다.
▪ 앗선(朝鮮) 전 우리 부족의 이름은 구리
1. 고구려라는 국호
연속극 주몽을 보니 주몽이 '高句麗'라는 국호를 짓는다. 그리고 그 국호의 뜻을 소서노에게 설명한다.
" 이 高句麗라는 뜻은 높고 밝은 뜻이기 때문에 고구려라 한 것이다."
아니, 高句麗 라는 말 속에 어디 높고 밝은 뜻이 들어있는가?
앗선(朝鮮) 이전의 우리 이름은 구리이다
천부인으로 만든 우리 글자 ㄱ, ㄴ,ㄷ...ㅎ에서 ㄱ의 뜻은 '가장자리'이다. '강가'니 '바닷가'니 '갓길' 모두 가장자리이고, '가죽'도 가장자리이며, 왕겨의 '겨'도 알맹이가 빠진 가장자리인데, 지금 계집은 세종때 까지만 해도 '겨집'(訓蒙字會)이였고, 북한은 물론 경상도에서도 여자를 가장자리라는 뜻의 '가시, 갓인애 > 가시네'라 한다. 또 '굴'이나 '골'도 감둥이 검둥이가 같은 말이듯 같은 말로서 가장자리이다. 즉, 무엇인가 빠진 '껍데기'이다.
따라서 남녀 결합시 남근은 중심이 되지만 여음은 그 가장자리가 되니 여음은 바로 알맹이가 없는 굴이다. 즉, '굴'은 '구무'와 같고 구무는 '구멍'이며 '여음'이고 '골'도 굴이다.
따라서 모음이라곤 아래아점 밖에 없던 옛날에 검둥이, 감둥이, 또는 파릇파릇, 퍼릇퍼릇, 포릇포릇, 푸릇푸릇과 같이 ㅏ ㅓ ㅗ ㅜ 가 혼동되니 굴과 골은 같은것이다. 그러나 지금 '골짜기'는 골이 짜개진 것이니 그냥 '골'은 굴과 같은 구멍이고 여음이다.
이 말은 노자 도덕경 6 장 '谷神不死 是謂玄牝'에도 나온다. 즉, 谷자는 유방 두 개 아래 가랭이가 있고 그 가운데 입(口)이 있는 글자이며, 그래서 이는 생명의 탄생을 말하고 그래서 생명의 신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谷神不死이며, 是謂玄牝은 이는 소 엉덩이에 비수자국과 같은 것이라 한 것이다.
또 사람의 일생은 어떤가?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던 원시말로 생각해보자.
사람은 굴 속에 씨를 뿌리고, 굴 속에서 싹이 트며, 굴속에 있던 태아가 크면 굴 구멍을 나와서, 또 굴구멍(입)으로 먹거리가 들어가야 하고, 또 그 찌꺼기는 역시 굴 구멍으로 배설한다.
우리말에 똥이나 방귀의 냄새를 '구린내'라 한다. 구린내는 '굴인내'에서 나온 말이고, 그 굴은 우리의 '위장'이다.
이렇게 그 굴 안에 씨를 뿌려 굴 안에서 싹이 트고 굴에서 나와서 굴 구멍으로 먹고 굴 구멍으로 배설하던 옛 사람들은, 또 토굴 안에서 살았고 죽어도 땅굴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사람'의 다른 말이 바로 '굴'이고, 이 굴에 우리말에 흔히 붙는, 즉 갑순이, 갑돌이 할 때의 접미사 이가 붙으면 '굴이 > 구리'가 된다.
뭐 짐승도 굴 속에서 살아서 구리가 될 것 같지만, 사람이 짐승의 대표이고 또 사람 입장에서 말하니 구리는 짐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열중 다섯인 굴 그림.
(1)신지녹도문 다섯의 의 '다'
이 신지녹도문은 먼저도 말 했듯이 금문 그림을 더 압축 해 그린 그림이니 이를 보강해 그리면 다음과 같다.
즉 이는 땅굴아래 ㅅ 이니 여기서 땅은 '다' 이고( 다 地 - 훈몽자회) 그 아래 ㅅ 은 사람을 세웠다는 말이니 한울의 정기를 받는 사람은 땅 위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중국인들이 객관적으로 본 근거 문헌을 찾아보자
▪ <진서> 동이전에 의하면 '여름에는 나무 위의 깃에서, 겨울에는 굴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夏則巢居冬則穴處 - 晋書 東夷傳)
▪ 또 삼국지에서도 나온다.
...‘보통 거주하는 굴 구멍의 큰집은 깊고, 사다리는 아홉 개까지 있는데, 이는 많을수록 좋다(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보통 거주하는 굴 구멍의 큰 집은 깊고 사다리는 아홉 개까지 있는데, 이는 많을수록 좋다(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라고 한 부분이다.
즉,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닥다리를 많이 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굴이 깊고 식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사다리들은 그 굴 구멍이 평지가 아니라 굴에서 급경사진 곳, 즉 낭떠러지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으로 글쓴이가 먼저 말한 하느님, 환숫 당시에는 결혼제도도 없었으며 따라서 내 처자식이 없었다는 말이 입증되기도 한다. 즉, 그때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면 현대인들이 그렇듯이 한 가족이 한 굴을 가지고 사는 것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그러나 사다리가 많은 것을 더 좋아했다는 말은 그 굴속에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말이 되고, 이는 내 처자식이 따로 없었다는 말도 된다.
이상으로 볼 때 아래 그림 다섯의 '다' 는 좌측이 터진 尸 자 꼬리처럼 사닥다리를 놓았던 자리 그림일 것이고 그 아래 ㅅ 은 사람이 살았다는 표시 이다.
이렇게 굴 속에서 살던 한아비들은 죽어서도 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땅 굴만 아니라 아예 굴속에다 시신을 안치한다는 말이며, 이는 지금 인도네사아 등 오지에서 사람이 죽으면 절벽, 즉 낭떠러지 에 굴을 파고 시신을 안치하는데 그 입구가 막힌 글자로 진화한 것이 바로 '주검 시(尸)' 자인 것이다.
이는 앗선(단군조선)이전 환숫(환웅) 때부터 우리는 우리 종족의 명칭을 '구리'라 하였고, 이것이 한자로 표현하면서 높다는 뜻의 高 자가 붙어 '고구려(高句麗)'가 되고, 또 고리(藁離)의 음대로 '고려(高麗)'가 되었는가 하면, 이것의 영문표기가 'KOREA'가 되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조상이 구리'라는 중국인의 표현을 보자. 중국인은 한자로 '구리' 표현을 '구려(九黎)', '고리(藁離)', '구이(九夷)'라 하였다.
▪ 왕동령(王桐齡)이라는 중국 사학자는 <이십오사>를 인용하여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였고, 구려는 옛날 천자의 이름(古天子之名)이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고 했다.
▪ <위서(魏書)>에는 '고리(藁離)에서 온 동명(東明聖王)이 세 사람을 만나 흘승골(訖昇骨)에 이르렀다'라는 말이 있다.
▪ 후한시대後漢時代의 공안국孔安國도 '구려국의 군주는 <치우>이다.(九黎君號蚩尤是也)'라 하였다.
▪ <이십오사> 에서는 '구이(九夷)'라 하였다.
이 이외에 더 다수의 기록이 있지만 생략하고, 여기서 한자의 뜻과 음에 대하여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유는 여기에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사건은 환인, 환웅 시대로 한자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 이야기이고, 그 후 환웅의 신하 신지의 제자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다 하나 이도 그림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원시 한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 중국인들이 이 창힐 한자를 토대로 자기네 들이 우리 상고사를 기록할 때 우리말과 글자의 뜻은 상관없이 엇비슷하게 음만 적어놓은 것도 다행이다.
이상을 참고로 위에 중국의 기록인 '구려(九黎)', '고리(藁離)', '구이(九夷', 여기서 구이는 아홉 동이족 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는 '구리'를 쓴다는 것을 그렇게 쓴 것으로 본다. 단, 여기서 '굴'이 한자 굴(窟)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의심 할 수도 있는데, 이는 신지의 제자인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으므로 우리말의 대다수를 본 뜬 것이 한자음이니 한자가 우리말과 같은 것이 많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말에 '구리'라는 말이 남아 있는가?
그 흔적은 '멍텅구리'의 '구리'에 그대로 남아 있고, '심술꾸러기', '장난꾸러기'의 '꾸러기'도 '굴이 > 구리 > 꾸리 > 꾸러기'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위 연속극 '주몽'에서 극작가들이 '구려'의 뜻이 높고 밝게 어쩌구는 완전 우리 역사와 우리 말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 쓴 소치이고, '고구려'는 이 '구리, 구려, 고리'에서 나온 말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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