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부터 북베트남군 총참모부 요원과 남베트남 내 각 지역 군 지휘관들은 계속해서 반메투오(Ban Me Thout) 공격계획 토의에 들어갔다. 작전 암호명은 275전역(Campaign 275)으로 정해졌다. 반메투오 공격에 제316사단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결정되었다.
현지에서 공세를 총지휘하는 전선 사령관에 북베트남군 참모총장 반 티엔 둥(Van Tien Dung) 대장(북베트남군의 장성급 장교의 계급구조는 소장, 중장, 상장, 대장으로 되어있고 준장에 해당하는 북베트남군 계급은 대좌임)을 임명하고 군수지원 담당 부사령관에 북베트남군 군수지원 총책임자인 딘 둑 티엔(Dinh Duc Tien) 중장, 참모장에 레 곡 히엔(Le Ngoc Hien) 소장이 임명되었고 참모요원들은 총참모부 내에서 선발되었다. 이 전선 사령부는 사이공 지역 공세 시에도 그대로 편성되었고 현지 지역 군사 지휘관들은 해당지역 공세 시에 부사령관으로 임명하기로 하였다.
북베트남군 총참모장 반 티엔 둥
레 곡 히엔
구정을 며칠 앞두고 남베트남 사람 모두 들떠 있을 때 더구나 사이공에서는 탄(Thanh) 신부가 티우(Thieu)의 부정고발 제3탄을 터트려 신문사를 정간시키고 언론인을 구속하여 남베트남 전체가 뒤숭숭하였던 1975년 2월 5일 반 티엔 둥은 하노이를 출발하였다. AN-24기로 DMZ 북방에 있는 동호이(Dong Hoi)에 도착하여 모터보트를 타고 벤하이(Ben Hai) 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간 후 호치민 통로를 따라 차량으로 중부 고원지대로 향하였다. 둥은 호치민 통로를 따라 남하하면서 작업을 계속하는 청년대원들에게는 담배를, 여성대원들에게는 머리핀을 구정선물로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북베트남군 제316사단도 전 사단이 500여 대의 차량으로 이동 중에 있었다. 일체 무선교신을 하지 않았다. 남베트남군의 무전기에서 북베트남군 제316사단의 행방을 추적할 수 없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감청되었다. 1975년 2월 11일 둥 일행은 반메투오 서쪽에 있는 북베트남군 지역 사령부 옆에 전선 사령부를 설치하였다. 한 달 가까이 면밀히 공격준비를 할 수 있었다.
반 티엔 둥은 1971년 남베트남군이 9번 도로를 따라 라오스 지역을 공격하였던 람손(Lam Son) 719 작전 시와 1972년 북베트남군의 춘계공세 시에도 현지에서 작전을 지휘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반 티엔 둥이 현지로 출발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보안조치가 취해졌다. 하노이 비행장을 출발할 때에는 정장 차림이었다. 예하부대 순시로 위장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떠난 후에도 그의 세단은 7시에 총참모부로 출근하였다가 12시에 돌아오고 다시 오후 2시에 출근하였다가 5시에 퇴근하였다. 둥과 비슷한 용모를 지닌 자가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었음은 물론이다.
배구를 좋아했던 둥이 평상시에 하던 대로 병사들이 관사로 와서 배구를 하였다. 신문에서도 둥에 대한 동정보도가 전과 같이 계속되었다. 구정 때 예하부대 지휘관이나 친지들에 보내는 연하장이나 선물들도 전과 같이 우송하였다. 그가 출발 후에 공산국가들의 경축일에 보내는 축하전문은 미리 다 서명해 놓은 후 출발하였기 때문에 제 날짜에 보내졌다. 관사에 있는 개인비서들도 가끔 꾀병을 부려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가는 소동을 부렸다. 둥이 그대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알리려는 수법이었다.
이러한 철저한 보안조치로 둥의 출정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CIA도 전혀 탐지하지 못하였고 총공세 승리 1주년을 기념하여 북베트남 신문에 둥의 회고록이 연재된 후에야 서방세계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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