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리스톨 그룹의 합류 ###
5월 26일, 브리스톨 그룹이 태스크 포스와 합류한다. 82식 구축함 브리스톨, 42식 구축한 카르디프, 21식 프리게이트 액티브, 아벤저, 린더급 프리게이트 미네르바, 페넬로페, 안드로메다가 그들이다.
도착 즉시 임무가 주어지는데, 몇 척은 항모그룹과 행동을 같이 하고, 몇 척은 산 카를로스로 향한다. 세필드, 아덴트, 안텔로프, 코벤트리의 손실로 생긴 공백을 이들이 맡는다.
RFA 급유함 올나는 이들 함정에 급유를 시작하고, 사우즈 조지아섬에서 막 도착한 타이드스프링과 합류한다. 이어서 시킹, 벡세스 헬기를 적재한 컨테이너선 아틀랜틱 코즈웨이(아틀랜틱 컨베이어의 자매선)가 도착하는데, 한 대의 헬기도 아쉬운 상태인 영국군의 갈증을 해소시킨다.
42식 구축함 카르디프의 도착으로 손상을 입은채 산 카를로스만에 머물러 있던 글라스고우는 항모그룹으로 후퇴하여 수리선 “스티나 시스프레드”의 수리를 받고 다시 임무에 들어간다.
### 구스그린 1 ###
(1) 톰슨 준장의 고민
상륙해안이 점차 안정을 찾고 아르헨티나군의 이렇다할 반격도 없다. 또한, 아르헨티나공군의 공습도 주로 영국 함정들에 집중되어 해안에 상륙한 영국군은 오직 후속 작전을 위한 편성과 보급에 열중이다. 상륙한 병사들도 점차 포클랜드의 차가운 날씨와 풀숲과 바위로 이루어진 험한 지형에 적응한다.
그동안 호화여객선에서 지내다가 차다찬 바람이 불고 거친 땅에 참호를 파고 들어앉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3코만도여단이 상륙 교두보를 확보할 무렵 제5보병사단을 태운 호화여객선 QE2가 포클랜드에 가까이 온다.
산 카를로스에 상륙한 영국군의 고민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헬기와 보급이었다. 스탠리로 향한 길은 험한 바위와 황량한 볼모지나 다름 없는 지대로 완전군장한 보병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당초 헬기를 이용하여 공중이동을 계획했으나 아틀랜틱 컨베이어호에 적재된 헬기들이 파괴되어 이제는 도보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보병 자신들도 문제였지만 이들에게 지원할 각종 장비, 보급품의 수송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톰슨 준장은 스탠리로 향할 묘안을 짜내느라 온 시간을 다 보낸다.
톰슨준장의 제3코만도여단은 모두 5개 경보병대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대대는 탱크, 중포, 장갑수송차, 방공포 등의 중화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이 부대들은 참호전을 하는 부대가 아니라 빠른 기동성을 이용하여 기습, 포위 등의 방법으로 적을 공격하여 중무장 부대가 올 때까지 버텨주면 되는 경보병부대였다.
600명으로 구성된 경보병대대나 코만도에서 125명 정도만이 실질적인 전투를 치루는 병사들이고, 나머지는 지원 또는 예비 병력이다. 이들 병력들은 지휘, 조정, 통신, 탄약, 식량, 방공, 의료, 정비 등을 맡는다.
경보병대대는 8문의 81mm 박격포를 가진 1개 화력지원소대를 보유한다. 이것이 이 대대가 보유한 유일한 중화기이다. 중포 지원은 배속된 다른 부대에서 담당한다. 이 8문의 박격포는 분당 88(각각 11발)발 또는 시간당 5000발이 넘는 포탄을 쏘아 올릴 수 있다.
발사 속도를 조절한다고 가정하더라도 1900발(2만 파운드)의 포탄을 소모하는 양이다. 이것을 수송하려면, 시킹 헬기가 5대 필요하고, 치누크라면 1대 분량이다. 탄약을 수송하는 헬기도 돌아가기 위해서는 연료도 필요하고 방호, 정비 등도 필요하다. 이렇듯 단 125명의 전투 요원을 위한 보급만을 생각해도 그 양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또한 톰슨준장에게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었으니....
자신의 상관이 될 무어 중장 뿐만아니라 런던의 지휘부와의 갈등이었다. 포클랜드의 상황을 잘 몰랐던 건지, 아니면 일부러 무시했던 지간에.....런던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작전 지시를 내리며 간섭하기 시작한다. 무어 중장도 자신의 역할이 소외되거나 나중의 과실이 작을지 모른다는 근심으로 슬슬 톰슨 준장과 마찰을 빚는다.
5월 17일, 아센션섬에서 열린 회의에서 톰슨 중장에게 제약을 주는 결정이 내려졌다. 톰슨 부대의 작전을 “포클랜드 탈환”에서 “포클랜드 탈환을 위한 상륙”으로 전환한다. 이것은 스탠리로 진격하기 전에 제5보병여단을 기다리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로 산 카를로스에 상륙한 톰슨 부대는 어떤 방향으로 전투를 전개할지 혼란에 빠진다.
원래의 영국군 지상 작전 계획은 제3코만도여단(제2, 3공수대대 포함)과 1개 방공대대가 맡는 것으로 계획되어져 있었다. 제5보병여단은 포클랜드가 영국군에 접수된 후, 주둔부대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5월 21일에서는 전투임무도 같이 하는 것으로 바뀐다.
무어 중장의 제5보병여단이 포클랜드의 주둔군 역할만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제3코만도여단과 같이 전투에 참가하려고 한다. 무어중장은 톰슨준장에게 자신의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즉, 제3코만도 여단은 제5보병여단이 상륙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어서 잇단 영국 함정의 손실로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하루 빨리 보고 싶은 런던에서는 톰슨준장에게 액션을 취하라고 지시한다. 아직 무어 중장의 부대는 멀리 있었고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부대가 제3코만도 여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런던에서는 연이은 손실로 인한 침울한 분위기를 일거에 만회할 이벤트를 하루 빨리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단 조건을 하나 달았는데, 전력의 일부(20%)만 사용해서 작전을 벌이라는 것이었다.
- 산카를로스의 상륙정_1.jpg
### 구스그린 2 ###
(2) 공격계획
톰슨준장은 심사숙고 끝에 구스그린에 대한 공격 작전 계획을 세운다. 제2공수대대를 구스그린과 다윈의 아르헨티나 분견대를 공격하는 사이, 제45코만도와 제3공수대대는 도보로 켄트산으로, 제42코만도는 헬기를 이용하여 켄트산으로 직접 이동하고, 제40코만도는 산카를로스에 남아 보급 작전을 엄호하기로 한다.
한편, 5월 26일, 아르헨티나군은 제12보병연대 일부를 헬기를 이용하여 켄트산에서 구스그린으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움직임은 켄트산 부근에서 활동 중인 SAS 정찰대에 탐지되어 영국군 지휘부에 전달된다. 톰슨 준장은 이러한 아르헨티나군의 재배치가 영국군에 대한 반격을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 당시 구스그린은 산 카를로스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아르헨티나군 거점이었다.
제2공수가 구스그린 공격에 동원된 이유는 그 부대가 구스그린에 가장 가까운 서섹스산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제2공수대대에게 내려진 작전계획은 “기습 후 철수” 로, 가능한 많은 피해를 안겨주고 재빨리 철수하는 작전이다. 사실, 이러한 작전은 해병에게 익숙한 작전이지만, 공수부대에게는 그리 익숙한 작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틀랜틱 컨베이어의 피격과 그로 인한 막대한 헬기 손실, 아르헨티나군 제12보병연대의 이동으로 인해 초기 작전 계획은 제2공수연대로 하여금 구스그린과 450m 짜리 비행장 점령으로 바뀌었다. 구스그린은 포클랜드에서 스탠리 다음으로 큰 지역으로 적지 않은 아르헨티나군의 병력이 방어를 하고 있었던 곳이다. 문제는 작전이 확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제2공수대대 말고는 다른 지원 병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격을 전담할 제2공수대대장 존스 중령는 구스그린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는데, 특히 새로 이동한 아르헨티나 제12보병연대에 대한 정보는 더욱 부족했다.
제2공수대대 병력은 각자 60kg에 달하는 배낭에 추가로 각자의 무기를 휴대하는데, 각종 중화기는 놓고 이동해야한다. 왜냐하면, 헬기들은 이들을 지원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고, 블루, 로얄중대의 시미터, 스콜피온 경전차들과 “진창의 말”로 잘 알려진 볼보사가 만든 BV들도 구스그린의 험한 지형에서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은 그 지역의 강력한 방어진지와 바다속의 무성한 해초들과 아르헨티나군이 설치한 지뢰들로 거의 불가능하였다.
제2공수대대를 지원할 유일한 부대는 화력지원을 담당할 세 개의 부대였다.
첫 번째가 제8포병대의 절반 규모로서 3문의 105mm 곡사포와 병력이 5월 27일, 헬기편으로 구스그린에서 11마일 떨어진 카밀라 크릭 하우스 근처 진지로 배치된다.
두 번째가 HMS 애로우로 함포지원을 담당한다.
세 번째는 새로 편입된 제809비행대소속 해리어 전폭기들로서 항공지원을 맡는다.
아르헨티나군이 포클랜드를 점령하면서 최초로 구스그린에 배치된 부대는 푸카라 공격기 부대였다. 구스그린의 잔디 활주로는 20mm, 35mm 대공포를 장비한 제601대공포 부대 일부가 페드로자 지휘하에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제25보병연대 C중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약 세 문의 105mm 곡사포가 있었다. 그리고 5월 26일 헬기로 수송된 제12보병연대(이탈로 피아기 중령 지휘)일부가 4문의 야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군은 대부분 신병들로 이들의 전투력은 다소 의문이었다. 더구나 이들 짬뽕부대의 지휘관인 오마르 파라다는 그의 본대와 함께 스탠리에 주둔하고 있어서 구스그린 전투가 벌어진 후에 그가 할 일은 오로지 무전기를 붙잡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구스그린과 다윈에 배치된 아르헨티나군의 전력은 제2공수대대와 엇비슷하였다. 따라서 공격하는 제2공수대대보다 잘 조성된 진지에서 방어 전투를 치룰 아르헨티나군 입장이 훨씬 유리하였다. 더구나 제2공수대대는 어떠한 차량도 없이 오직 도보로 움직이는 경무장한 부대였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벌어지게 될, 첫 지상전은 영국 제2공수대대에 좋지 않은 결과를 준다.
### 구스그린 3 ###
(3) 첫 정찰과 해리어의 피격
5월 26일, 제2공수대대는 서섹스산을 제42코만도 병력에게 물려주고 첫 목표지점인 카밀라 크릭 하우스를 향해 움직인다. 카밀라 크릭 하우스는 구스그린의 마을 주민들이 가내공장으로 이용하는 곳인데 당시에는 비어 있었다.
8마일에 걸친 행군로는 습지, 풀숲들로 이루어져 60kg의 완전군장을 한 제2공수 병력은 죽을 맛이다. 행군 동안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105mm 포탄이 간간히 떨어진다. 다음날 새벽 무사히 첫 목적지에 도착한다.
5월 27일, 날이 밝자 2개의 정찰대가 아르헨티나군 정탐을 위해 나선다. 그들은 지협 양쪽으로 정찰에 들어가는데 시계가 불량한 지역이다. 그곳에서 세 개의 새로운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발견한다. 이 진지에는 영국군에 위협을 줄 수 있는 105mm 곡사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정찰대 중에는 해리어 GR.3를 유도하는 항공관제요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여단 본부의 공군 연락장교를 통해 항공지원을 요청한다.
해리어 GR.3 지휘관이기도한 공군중령 피터 스콰이어와 비행대장 밥 아이베슨은 허미즈를 이륙한다. 항공관제요원의 유도에 따라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공습하는데, 첫 번째, 두 번째까지 저공 비행을 하며 아르헨티니군 목표를 찾지만 잘 위장된 진지여서 목표를 정확히 발견하지 못한다.
세 번째 비행도중 아이베슨의 해리어GR.3는 아르헨티나군의 35mm 대공포에 피격되어 조종석에 불이 붙는다. 피격된 해리어 전폭기는 조종불능에 빠지고 급격히 고도를 잃는다. 그의 해리어가 겨우 100피트 상공에 다다를 때, 아이베슨은 사출핸들을 힘껏 잡아당긴다. 캐노피가 날아가고 사출좌석이 공중으로 솓구치며 낙하산이 펼쳐지고는 불과 10-15초만에 지상에 떨어진다.
그는 척추에 충격을 받았고 캐노피에 의해 눈에도 부상을 당하였다. 다행히 그가 떨어진 곳은 아르헨티나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숨기고 무전기를 이용해 구조를 요청하는데, 이틀 후 헬기편에 무사히 구조된다.
해리어 전폭기의 공습 후, 정찰팀들은 아르헨티나군에 노출되고 교전이 벌어져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철수 도중 아르헨티나군의 정찰조가 탄 랜드로버를 노획하는데 이들로부터 구스그린의 아르헨티나군에 대한 사정을 조사할 수 있게 된다.
### 구스그린 4 ###
(4) 공격 개시
카밀라 크릭 하우스에서 낮을 보낸 제2공수연대는 5월 27일 23시에 구스그린 협곡 북쪽 끝단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두 문의 박격포를 카밀라 크릭 하우스에 배치하고 105mm 곡사포를 준비시키며 또한 HMS 애로우로 하여금 엄호사격을 위해 협곡 서쪽의 브렌톤 로치지역에 위치하게 한다.
5월 28일 02시 30분까지 각 중대는 모든 준비를 마친다. B,D중대는 번트사이드 폰드 서쪽에, A중대는 동쪽에 위치한다. 정찰팀과 수색대로 구성된 C중대는 이들을 엄호하기 위해 협곡 북서쪽 끝단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깜깜한 야간에 모든 전투 준비가 완료된다.
전투개시 명령이 떨어지고, A중대는 아르헨티나군이 있을 만한 번트사이드 하우스를 공격한다. HMS 애로우의 4.5인치 함포 지원 사격이 시작되고 번트사이드 하우스 부근은 폭발과 섬광으로 환하게 타오른다. A중대는 밀란 대전차 미사일과 66mm 로켙을 비롯한 각종 화기가 불을 뿜는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르헨티나군은 한 명도 없었고 단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네 명의 주민들만 있었다.
번트사이드 하우스는 아르헨티나군의 전방 초소역할을 수행 하고 있었는데, 사격이 시작되자 그들은 모두 구스그린으로 도망간게 틀림 없었다.
04시 30분, 하클리 소령이 지휘하는 A중대를 존스 대령의 TAC(전술 본부 중대)가 뒤따라 전진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목표는 코로네이션 포인트의 아르헨티나군 진지였다. 그런데 그 지점은 아르헨티나군이 한 명도 없었고 05시 20분 영국군이 총 한 발 안쏘고 점령한다.
1개 소대가 그곳에 남아서 A중대의 다음 목표인 다윈을 공격할 때, 화력지원을 담당하게 된다. 남은 A중대 병력은 다윈을 포위하기 위해 작은 만 주위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미 아르헨티나군의 주 저항선을 돌파했다고 믿었는데,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30분 후, A중대는 전선을 B중대에 맡기지만 곧, 다시 D중대가 맡는다. 니메 소령이 지휘하는 D중대는 목표가 확보되자 곧 B중대를 통과하여 전진하려고 했으나, 결국 B, D중대 모두 같이 움직이게 된다. 이들 두 중대는 어둠 속에서 무심코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지나게 된다. 곧 D중대는 아르헨티나군과 교전을 벌이고, 이 사이 B중대는 첫 목표인 번트사이드 하우스를 아무 희생 없이 점령한다.
한편, 교전을 벌이고 있던 D중대는 05시 정각 그들의 첫 목표인 코로네이션 봉우리를 점령한다. 이렇듯 두 중대는 차례로 점령해 나가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존스 대령의 작전원칙은 아르헨티나군이 재집결하고 반격할 시간을 최대한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야간 전투에서는 공수부대원들의 두 가지 특징 즉, 독창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전투원 개개의 능력과 용맹성에 의지하는데, 이제 날이 밝고 잘 이루어진 방어진지에서의 아르헨티나군 화력으로인해 공수연대의 진격은 저지되고 희생자들도 늘어간다. 보병전투에서의 가장 중요한 기선 제압 효과는 이제 사라지고 전장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전술이 필요하게 된다.
### 구스그린 5 ###
(5) 존스 대령의 죽음
A중대가 다윈만 주위로 이동하기 시작할 때, 작은 언덕에 잘 조성된 아르헨티나 진지에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들의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아주 작은 두 개의 언덕에 깊은 참호를 파고 들어앉아 영국군에 사격을 가한다.
기습을 받은 A중대는 잽싸게 길옆 풀숲이 무성한 도랑으로 몸을 피한다. 이곳에서 고립된 A중대는 거의 두 시간 이상을 전진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있는다.
이렇게 옴짝 달싹 못하는 A중대와 TAC중대는 뭔가 타개책이 필요했다. 존스 대령은 화력지원팀의 엄호하에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아르헨티나군의 총격으로 크리스 덴트 대위, 대이빗 우드 대위, 데이빗 하드만 중사가 쓰러진다. 이러한 희생에 다른 작전을 생각해야 했는데...
존스 대령은 본인이 뭔가 솔선수범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잠긴다. 그는 즉시 주변의 풀섶에 불을 놓아 연기를 발생시켜 연막차장을 이용하여 아르헨티나군의 진지에 대해 측면 공격을 시도하기로 한다. 존스 대령은 베리 노먼 중사와 몇 명을 선발하여 공격을 시도하기로 하고, 언덕 정면의 오른편에 나있는 도랑을 이용하여 전진한다.
그는 언덕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는데, 이들 뒤 30야드 떨어진 곳의 아르헨티나군 두 번째 참호선에 노출된다. 노먼중사는 존스 대령에게 뒤쪽을 조심하라고 외치나 언덕의 아르헨티나군 진지를 향해 스털린 기관총을 발사하는 존스 대령은 이를 듣지 못한다. 존스 대령은 아르헨티나군의 좋은 목표가 되어 뒤쪽으로부터 사격을 받는다. 곧 땅에 쓰러지고 노먼 중사가 접근하여 쓰러진 대령을 끌고 내려오나 곧 숨진다.
존스 대령은 부하들에게 인기있고 다이나믹한 대대장이었다. 그는 솔직담백하고 때로는 거침없은 태도로 종종 상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행동에 당연한 그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용감하고 솔선수범한 행동으로 빅토리아 십자메달을 받는다.
공수부대가 아닌 다른 부대에서는 대대장의 죽음으로 사기저하에 빠져 우와좌왕할지 모르지만, 제2공수대대는 달랐다. 대대 두 번째 서열인 크리스 키벨 소령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중책을 떠맡게 된다. 키벨 소령은 공격방향을 바꾸기로 한다. 우선 A중대를 하클리 소령에게 맡겨 다윈 힐의 상황을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이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B중대는 보카 하우스에 위치한 아르헨티나군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키벨 소령은 협곡 서쪽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는 D중대를 보카 하우스 오른편으로 보내어 해안쪽으로 기어가 목표로 접근하라고 지시한다.
B중대는 보카 하우스에 밀란 대전차 미사일 공격을 한다. 밀란 대전차 미사일은 영국 공수부대의 벙커 버스터 역할을 담당한다. D중대는 DPMG로 엄호하는데, 영국군의 공격을 받은 보카 하우스의 아르헨티나군은 항복한다. 이 전투에서 아르헨티나군 12명이 죽고 약 20명이 포로로 잡힌다. 나머지는 구스그린으로 도망갔다.
보카 하우스전투에서 성공을 거둔 D중대는 잔디활주로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 받는다. 그리고 B중대는 협곡을 따라 좀더 남쪽으로 이동하여 구스그린을 포위하려고 한다.
키벨 소령의 작전은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이제 한 가지만 남게 되는데....
대대장이 전사한 다윈 힐에서의 전세가 바뀌게 된다. A중대 2소대는 느리지만 꾸준히 완편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결정적 행동은 존스 대령이 피격된 오른편에서 시작되는데...
TAC중대와 3소대는 2소대가 아르헨티나군의 관심을 돌리는 사이 유리한 장소로 움직인다. 마침내 GPMG를 아르헨티나 참호쪽으로 설치하는데 성공하고 이제부터 데이빗 아볼스 중사의 활약이 시작된다.
아볼스 중사와 바렛하사는 66mm 로켙을 가지고 움직인다. 아볼스 중사는 존스 대령을 저격한 참호를 향해 66mm 로켙을 정확히 발사한다. 3소대는 이러한 엄호사격하에 참호를 점령하며 전진한다. 아볼스 중사는 계속 66mm 로켙을 발사하며 아르헨티나군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마침내 아볼스 중사의 활약에 아르헨티나 진지가 영국군에 점령당한다. 이곳에서 모두 18명의 아르헨티나군이 사망했고 74명이 포로로 잡힌다. 이 중 37명은 부상당한 상태였다.
키벨 소령의 마지막 장애물이 걷히고 구스그린으로 향하는 주요 거점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6) 막바지 공격
한편, 예비대 역할을 하고 있던 C중대에게 A중대를 지나 선봉을 맡게 한다. A중대에 C중대소속 1개 소대가 편입되고 이들은 구스그린을 향해 전진한다.
A중대는 다윈 리지에서 이동하던 중 아르헨티나군의 포병사격을 받고 여러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들 부상자들은 주로 중대본부 요원들이었다. 폴 파라 대위와 콜린 코너 대위는 즉시 전진할 것을 명령하고 다행히 큰 손실 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한편, 보카 하우스에서 출발한 D중대는 지뢰지대로 인해 전진이 지연되고 C중대와 겹친다. 이 두 중대는 구스그린 끝단에 위치한 건물과 학교에서 아르헨티나군과 전투를 치루게 된다.
약간의 오해가 발생하여 제2공수대대 병력을 주춤하게 만드는데, 구스그린 잔디활주로의 아르헨티나 지휘소에 백기가 걸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D중대 1소대장 베리 대위는 항복협상을 위해 나서는데, 설리반 중사, 스미스 하사가 동행한다.
그들이 접근할 때, 영국측에서 기관총 한정이 불을 뿜는다. 이들이 협상하러 가는걸 모르고 공격하는 중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즉시 아르헨티나군의 반격이 시작된다. 이들 세 명은 아르헨티나군의 사격으로 즉사하고 다른 몇 명이 부상당한다.
곧 영국측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약 30분만에 상황종료된다.
한편, D, C중대는 학교와 주변 건물에서 아르헨티나군의 사격을 받는다. 이들 중대원들은 M79와 WP, LMG를 사용하여 무력화 시킨다.
이 때, 양측 항공기가 전투에 참가한다. 두 대의 MB-339A와 두 대의 푸카라 공격기가 스탠리 공항에서 날아와 제2공수대대에 공습을 가한다. 이 중, 한 대의 푸카라 공격기는 네이팜탄을 투하하나 다행히 빗나간다.
이들 항공기는 영국군의 대공사격을 받고 한 대의 푸카라 공격기와 한 대의 MB-339A가 추락한다. 푸카라 파일럿이 비상탈출하는데 곧 그는 영국군의 포로가 된다.
19시 25분, 세 대의 해리어 GR.3 전폭기가 구스그린의 아르헨티나 대공포진지를 공습한다. 두 대의 해리어 GR.3는 BL755 클러스터 폭탄공격을, 한 대는 로켙공격을 가한다. 이 공격으로 35mm 오리콘 대공포 진지 한 곳이 완전 파괴된다.
안개가 밀려오고 어둠이 깔리자 키벨 소령은 즉시 진지 구축을 지시한다. 해리어 전폭기들의 공습 후, 키벨 소령은 그곳에 114명의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공습을 중지하기로 한다. 대신 아르헨티나군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여 항복을 하도록 유도하기로 한다.
### 구스그린 7 ###
(7) 아르헨티니군의 항복
키벨 소령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아르헨티나군 제12연대 B중대가 헬기편으로 켄트산에서 구스그린 남쪽 1마일 지점에 공수된 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제2공수대대에 포위된 구스그린의 아르헨티나군을 구원하여 남쪽으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포위된 두 명의 아르헨티나군이 덤불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지원 병력과 접촉한다.
아르헨티나군 B중대는 어둠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구스그린으로 침투한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한 것은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축 늘어진 아르헨티나군이었다.
영군군도 보강이 이루어지는데 제42코만도 J중대원들이 헬기편으로 협곡끝단에 공수된다. 그러나 이들은 전투가 모두 끝난 후 구스그린에 도착하게 된다.
키벨 소령은 항복권유를 위해 두 명의 포로를 구스그린으로 보낸다. 협상은 밤새 계속된다. 아침이 밝아오고 해리어 전폭기들이 시위 기동을 하며 아르헨티나군을 압박한다. 아르헨티나군에게는 병력 수도 적지 않았고 물자도 부족하지 않았으나 영국군에 포위되어 사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항복하던가, 아니면 결사항전하던가 인데 아르헨티나 지휘관 페로자와 피아기 중령은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09시 30분, 키벨 소령과 만나고 항복조건에 합의한다. 구스그린에서 총 1,500명의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한다. 이들 포로는 놀랜드 수송선편에 몬테비데오로 수송되어 아르헨티나에 인계된다.
구스그린 전투에서 아르헨티나군 피해는 사망 45명, 포로 1,500명, 반면 영국측 피해는 제2공수대대에서 15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다. 여기에 영국 공병 1명, 파일럿 1명도 사망했다. 주민의 피해는 없었다.
구스그린 전투는 포클랜드전 발발 후, 지금까지 가장 큰 전투로 기록된다. 당시 여러 관계자들은 구스그린 전투에서 영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존스 제2공수대대장도 승리할 확률을 단지 75%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제2공수대대의 승리는 이러한 통계적 수치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요소에 기인한다. 즉, 병사 개개인의 전투기술과 용맹성, 존스 대령과 같은 지휘관의 능력, 키벨 소령과 같은 후임자의 능력과 같은 요소들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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