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들어가는 말
2. ‘리동기이’와 ‘기이리이’에 대한 문인들의 문제제기
3. ‘기이리이’에서 ‘리’와 ‘기’의 존재론적 의미
4. ‘리동기이’에서 ‘리’와 ‘기’의 존재론적 관계
5. ‘리동기이’와 ‘기이리이’ 유지와 그 의의
6.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주자(1130∼1200)는 1186년과 1188년 두 차례 대대적으로 사서집주(四
書集註)를 수정했다.1) 이 과정에서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중용장구(中
庸章句)≫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었던 ‘리동기이(理同氣異)’의 관점은 ≪맹자(孟
子)≫ <고자(告子)> 장(章)을 수정하면서 부각되었던 ‘기이리이(氣異理異)’
논리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가 모든 사물에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가
개⋅소⋅사람의 성(理)이 다르다는 언급은 모순처럼 보인다.
주자 문인들은 ‘리동(理同)’이었다가 ‘리이(理異)’가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
다. 그러나 주자는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가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주자는 문인들이 제기했던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는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주자가 ‘리동기이’와 ‘기이리이’ 명
제가 공존해야 하다는 입장을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 명제를 모순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은 아닌가?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자가 ‘리동기이’와 ‘기이리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리동기이’와 ‘기이리이’ 명제에서 ‘리’와 ‘기’의 의미와 이 둘의 관계에 대해 존재
론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먼저 문인들이 제기했던 문제제기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두 명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리’와 ‘기’의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주
자 철학에서 두 명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2. ‘리동기이’와 ‘기이리이’에 대한 문인들의 문제제기
주자는 ≪맹자≫ <고자>장을 수정하면서 형기(形氣)가 다르면 ‘리’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주자는 새로운 해석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리동(理同)’과 관련된 일원처(一原處)에 대해서 고민했으며, 이러한 문제에 대
해 문인 정정사(程正思)에게 털어 놓고 있다.
≪맹자≫에서 “그렇다면 개의 성(性)과 소의 성이 같고 소의 성과 사람의 성이
같습니까?”라고 합니다. 개⋅소⋅사람은 형기(形氣)가 이뤄지면서 지각하고 운동
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동일하지만 형기가 이미 달
라졌다면 태어나면서 하늘에서 얻는 리 또한 달라집니다. 사람의 경우엔 온전함을
얻어서 선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물은 가려진 부분이 있어서 온전함을 얻을 수 없
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입니다. ……… <고자>의 한 단락을 이와 같이 개정하려고
하는데, 예전의 논의를 없애버리면 아주 간단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일원처(一原處)
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듯 하니 상세하게 봐 주길 바랍니다.2)
2) ≪朱熹集≫ 卷50 <答程正思>17, “然則犬之性猶牛之性, 牛之性猶人之性與? 犬牛人之形氣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3
사람과 개⋅소의 성(性)이 같지 않다는 것이 주자의 견해이다. 동물과 사람
모두는 공통적으로 지각하고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만, 각각의 형체를
갖추면서 하늘에서 얻는 ‘리’ 또한 달라진다. 형체가 갖춰지면서 ‘리’가 개별 사
물 안에 들어 와 있는 것이 성이다. 사람은 온전한 ‘기’를 품부 받아 ‘리’가 가려
지지 않기 때문에 인의예지(仁義禮智)인 성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다. 반면에
사물은 ‘기’가 가려서 그러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만이 바른 ‘기’를 얻어서 인
의예지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다.3) 이와 같이 ‘기’에 의해 성(理)이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는 ‘리’가 만물의 뿌리이자 모든 조화의 중심축(樞紐)이라는 ‘리
일(理一)’, 즉 ‘리동(理同)’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4) 이것이 주자가 우려했
던 측면이다.
‘리’는 치우치거나 바르거나 통하거나 막혀 있다(偏正通塞)고 할 수 없다. 오
히려 ‘기’가 그렇다. ‘리’는 ‘기’의 영향을 받아 치우칠 수도 있고 막힐 수도 있
다.5) 이것이 ‘기이리이(氣異理異)’의 의미이며, 주자가 ≪맹자≫ <고자> 장
을 수정하면서 강조한 논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리는 ≪중용장구≫와 ≪대
학장구≫에서 줄곧 유지했던 ‘리동(理同)’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문
인의 질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용장구≫에서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면서 각기 리를 품부 받아 건순(健順)⋅
오상(五常)의 덕으로 삼는다.”라고 했으며, ≪중용혹문≫에서는, “사람과 사물이
기품(氣稟)의 다름은 있지만 리가 같지 않은 적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맹
자집주≫에서는, “기로 말하면 지각과 운동하는 능력은 사람과 사물이 같지만, 리
로 말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품부 받는 것인데, 어찌 사물이 얻어서 온전히
旣具, 而有知覺能運動者生也. 有生雖同, 然形氣旣異, 則其生而有得乎天之理亦異. 蓋在人則
得其全而無有不善, 在物則有所蔽而不得其全, 是乃所謂性也. ……… 告子一段, 欲如此改定,
仍刪去舊論, 似已簡徑. 但恐於一原處未甚分明, 請看詳之.”
3) ≪孟子集注≫ <離婁>下, “人物之生, 同得天地之理以爲性, 同得天地之氣以爲形; 其不同者,
獨人於其間得形氣之正, 而能有以全其性, 爲少異耳.”
4) ≪朱子語類≫ 卷1, “太極只是一箇理字.” ≪太極解義≫, “上天之載,無聲無臭,而實造化之樞紐,品彙之根柢也.”
5) ≪朱熹集≫ 卷62 <答杜仁仲>1, “理固不可以偏正通塞言, 然氣稟旣殊, 則氣之偏者便只得理
之偏, 氣之塞者便自與理相隔, 是理之在人, 亦不能無偏塞也.”
4 ≪中國學論叢≫ 第40輯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두 설은 다른 듯 합니다. 어째서 기가 가지런하
지 않게 되면 품부 받은 리 또한 [기에] 따라 달라집니까?6)
≪중용장구≫와 ≪중용혹문≫에서는 모든 사물이 품부 받은 ‘기’가 달라도
‘리’는 같다고 하는데, ≪맹자집주≫에서는 ‘기’ 때문에 ‘리’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황상백(黃商伯) 역시 이 두 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
한다. 사람과 동⋅식물은 다른 기를 품부 받아서 각기 다른 형체를 갖추지만
모든 사물에는 ‘리’가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리’와 관련된 건순(健
順)⋅오상(五常)의 덕을 모든 존재가 갖출 수 있다. 이와 달리, 주자는 ≪맹자
집주≫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을 사람이 아닌 다른 사물이 온전하게 갖
출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형기(形氣)에 따라 ‘리’ 또한 달라지기 때문
이다. 이러한 논리는 문인 황상백이 보기에도 모순으로 비춰졌다.
당시에 주자가 제기한 ‘기’의 차이가 ‘리’의 차이를 수반한다는 ‘기이리이(氣
異理異)’의 논리는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맹자집주≫
와 ≪대학혹문≫에서 다루고 있는 성(性)에 대한 언급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구심에 진계(陳枅)는 자신이 답한 내용이 적
절한지 주자에게 확인하고자 한다.
선생님께서는 ≪대학혹문≫에서, “리로 말하면 모든 사물은 근원이 같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에는 귀천의 차이가 없다. 기로 말하면 바르고 통한 것을 얻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어 사물이 된다. 이 때문에 귀하기도 하고 천하기도 하
여 고르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가 고르지 않더라도 얻어
서 태어날 때 사람과 사물은 모두 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리가] 같다고는 하지만
얻어서 성(性)이 되는 것에서는 사람과 사물이 많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각과
운동하는 것은 기이고 인하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운 것은 리입니다. 지각과
운동은 사람과 사물 모두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물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갖추
6) ≪朱熹集≫ 卷46 <答黃商伯>4, “中庸章句謂, 人物之生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
德. 或問亦言, 人物雖有氣稟之異, 而理則未嘗不同. 孟子集注, 以氣言之, 則知覺運動人與物
若不異也. 以理言之, 則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哉? 二說似不同, 豈氣旣不齊, 則所賦
之理亦隨以異歟?”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5
고 있다고 해도 어찌 온전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저는 ≪맹자집주≫와 ≪대
학혹문≫의 내용에서 동이(同異)점이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했는
데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7)
사람과 동⋅식물은 각기 다른 ‘기’를 품부 받아 그러한 형체를 갖지만, 동시
에 모두 동일하게 ‘리’를 갖추고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리동기이(理同氣異)’의
관점이다.8) 그러나 주자는 ≪맹자집주≫에서 온전하고 바른 ‘기’를 품부 받느
냐 치우치고 막힌 ‘기’를 받느냐에 따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온전하게 발현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구분된다고 강조한다. 진계(陳枅)는 주자의 이러한 생각
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모든 사물이 ‘리’를 갖추고 있다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형체를 이루면서 ‘리’가 각기 다른 형체 안으로 들어와 각기 다른 성
(性)이 되면서 사람과 사물이 구분된다. 인의예지를 개나 소와 같은 동물이 온
전하게 갖출 수 없는 것은 형기(形氣) 때문이다.
진계(陳枅)의 대답은 다른 사람들의 의문을 잠재울 수 있었을까? ‘리(太極)’
는 모든 사물에 동일하게 존재하지만, 각각의 형체에 깃든 ‘리’인 성(性)은 형
기(形氣)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다. 이와 같이 ‘리’가 모든 존재에 다 똑같이 내
재되어 있다고 했다가, 각기 다른 사물에 다르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주자의 문인들이나 세간의 의심
을 받았다. 주자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
異理異)’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했는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리동기
이’와 ‘기이리이’의 명제에서 ‘리’와 ‘기’가 각각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서로 어
떤 관계인지 분석하고자 한다.
7) ≪朱子語類≫ 卷4, “是以先生於大學或問因謂 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有所不能齊者, 蓋以
此也. 然其氣雖有不齊, 而得之以有生者, 在人物莫不皆有理. 雖有所謂同, 而得之以爲性者,
人則獨異於物. 故爲知覺, 爲運動者, 此氣也, 爲仁義, 爲禮智者, 此理也. 知覺運動, 人能之,
物亦能之, 而仁義禮智, 則物固有之, 而豈能全之乎! …… 有以集注·或問異同爲疑者, 答之如
此, 未知是否?”
8) 이 부분에서는 ‘기이리동(氣異理同)’이라 해야 ‘기이리이(氣異理異)’와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리동기이(理同氣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주자가 ‘리동기이’ 명제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이 ‘리동(理同)’에 있기 때문에, ‘리동기이’를 그대로 따르고자 한다.
6 ≪中國學論叢≫ 第40輯
3. ‘기이리이’에서 ‘리’와 ‘기’의 존재론적 의미9)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에서 ‘리’는 다른 의미를 지
닌다. 주자 철학 내에서 ‘리’는 모든 사물에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는 존재였다
가, 형체를 이루면서 형기(形氣)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다. 이것이 두 명제가
모순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모든 사물이 공통적으로 ‘리’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
하는 동시에 개의 성(性)⋅소의 성⋅사람의 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진래
와 오하마 아키라는 그 이유를 기질(氣質) 때문이라고 한다.10) ‘리’가 모든 사
물에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다가 기질의 영향을 받아 달라질 수 있는가? ‘기’와
9) ‘리’와 ‘기’라는 낱글자 안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존재론과 관련된 의미가 있고, 가치의
의미도 있다. 존재론적으로 ‘리’가 가지는 의미는 원리나 원칙을 들 수 있으며, ‘기’는 물질
적 재료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달리, 가치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리’는 인의예지(仁義禮
智)와 같은 사덕(四德)이 이에 속하며 ‘기’는 이러한 ‘리’와 대비 관계인 물욕(物欲)과 같이
형기(形氣)에서 오는 이기적인 욕구와 관련이 있다. 이승환 교수는 ‘리’와 ‘기’ 낱글자의 중
의성에 착안하여 주자의 ‘리’ ‘기’를 존재론적 관점과 가치론의 관점으로 구분해서 볼 것을
제안한다. 전자를 존재론적 ‘승반론’, 후자를 도덕심리학적 ‘성향 이원론’이라 한다. 이를
근거로, 논자는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리’
와 ‘기’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이승환(2012), ≪횡설과 수설≫, 휴머니스트, pp.27∼30.
구연상 교수는 우리말 “존재론”을 독일어의 “온톨로기(Ontologie)”와 비슷하다고 본다.
“온톨로기(Ontologie)”에서 “On”은 “있는 것” 또는 “있음”을 나타내며 “logos”는 론(論) 또
는 학(學)의 뜻이라고 소개한다. 따라서 존재론은 “있는 것에 대한 론”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에 근거해서 본다면 주자의 ‘리동기이’와 ‘기이리이’에 대한 논의는 세상의 “있는
것”에 관한 논의이므로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구연상(2009), <낱말풀이를 통해 본 존재론적 차이>, ≪존재론 연구≫ 19집, p.132.
10) 진래 교수는 ≪태극해의≫시절의 ‘리동기이(理同氣異)’ 설이 ≪맹자≫ <고자> 장을 해석
하면서 강조되었던 ‘기이리이(氣異理異의)’ 관점과 충돌한다고 하며, 그 원인을 기질(氣
質)이라 한다.
陳來, 이종란 外 옮김(2002), ≪주희의 철학≫, 서울: 예문서원, pp.117∼118.
오하마 아키라 교수는 ‘리’가 절대성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지러지거나 부족하
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가 ‘기’가 ‘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리’와 ‘기’를 합리(合離)의 관점에서 해석할 것
을 제안한다.
오하마 아키라, 이형성 옮김(1997), ≪범주로 보는 주자학≫, 서울: 예문서원, pp.29∼
39.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7
‘리’가 어떠한 관계이기에 기질, 즉 ‘기’가 ‘리’에 영향을 주는가?
주자는 ≪맹자≫ <고자>장을 수정하면서 사람의 성(性)과 다른 동물의 성
이 같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2장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주자는 문인 정정
사(程正思)에게 형기(形氣)가 달라지면 하늘에서 얻는 ‘리’ 또한 달라진다고 했
다.11) 그러나 문인 황상백(黃商伯)은 ≪중용장구≫에서 모든 사물이 똑같이
‘리’를 품부 받았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사람이외의 다른 사물이 인의예지(仁
義禮智)를 온전하게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이 두 논리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털어 놓았다.12)
형체가 갖춰지면서 각기 다른 ‘리’를 갖는 것은 ‘기’의 영향 때문이다. 그래서
주자는 ‘기’에 따라 성(性)이 바뀐다고 한다. 모든 사물이 성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기’를 품부 받았느냐에 따라 바뀐다. 이것으로 성이 바뀌는 데 ‘기’
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 ‘리’가 ‘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러한
논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리’는 형이상의 존재이며 ‘기’는 형이하의 범주에 속
해 있는데, ‘기’가 ‘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그것은 ‘리’와 ‘기’의 존재론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태극(太極)은 ‘리’의 다른 이름이다. 이러한 태극은 모든 사물에 내재해 있
다. 그렇다고 해서 일정한 형태나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며 소리나 냄새⋅그림
자나 메아리와 같은 것으로 표현할 수도 없다.14) 그러나 형이상의 범주에 속
했다고 해서 현실에서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어떤 것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
다. 주자는 ‘리’의 이런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리(태극)’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는 형이상의 것이지만 현실에서 실제
로 접할 수 있는 이치라고 한다.15) 즉, 현실에서 인간이 직접적으로 감지할
11) ≪朱熹集≫ 卷50 <答程正思>17, “有生雖同, 然形氣旣異, 則其生而有得乎天之理亦異.”
12) ≪朱熹集≫ 卷46 <答黃商伯>4, “中庸章句謂, 人物之生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
德. …… 孟子集注, …… 以理言之, 則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哉? 二說似不同.”
13) ≪朱子語類≫ 卷59, “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這性便也隨氣轉了.”
14) ≪朱子語類≫ 卷1, “理卻無情意, 無計度, 無造作.” ≪太極解義≫, “上天之載,無聲無臭.”
15) ≪朱熹集≫ 卷50 <答陸子靜>4, “周子所以謂之無極, 正以其無方所無形狀. 以爲在無物之
前, 而未嘗不立於有物之後. 以爲在陰陽之外, 而未嘗不行乎陰陽之中. 以爲通貫全體無乎不
8 ≪中國學論叢≫ 第40輯
수 없지만 현상과 완전히 괴리되어 아무 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도 아니다.16)
그렇다면 ‘리’는 어떻게 현실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현실에
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
를 맺고 다시 씨앗이 되었다가 싹이 트는 것과 같은 일정한 패턴은 어떻게 실
현될 수 있는가? 우선 씨앗이 있어야 하며 적절한 온도⋅햇빛⋅수분 등이 필
요하다. 이와 같이 ‘리’가 현실에서 드러나기 위해서는 물질적 재료가 필요하
다. 그것이 ‘기’이다. ‘기’는 형이하의 범주에 속한 기(器)이며 모든 존재가 생기
는 데 있어서 물질적 재료의 역할을 한다.17) ‘리’가 현실에서 드러나기 위해서
는 이러한 물질적 재료인 ‘기’에 깃들어야 한다.18) 주자는 이러한 ‘리’와 ‘기’의
관계를 사람과 말로 비유한다.
양(陽)이 움직이고 음(陰)이 정지해 있는 것은 태극(太極) 자체가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치상으로 움직임과 정지해 있음이 있다
는 것일 뿐이다. 리는 볼 수 없지만 음양 때문에 알 수 있다. 리가 음양 위에 타고
있는 것은 사람이 말 위에 올라 탄 형상과 비슷하다.19)
태극(太極)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현실에서 직접 감지할 수 없으며,
스스로 움직이거나 멈추어 있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작용을 할 수 없다. 이러
한 태극을 현실에서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주자는 음양(陰陽)을 통해 알
在, 則又初無聲臭影響之可信也. ≪朱子語類≫ 卷94, “無極而太極, 只是一句. 如沖漠無朕, 畢竟是上面無形象, 然卻實有此理.”
16) ≪朱子語類≫ 卷94, “無極是有理而無形. 如性, 何嘗有形? 太極是五行陰陽之理皆有, 不是空
底物事. 若是空時, 如釋氏說性相似.”
17) ≪朱熹集≫ 卷58 <答黃道夫>,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18) ≪朱子語類≫ 卷4, “人之所以生, 理與氣合而已. 天理固浩浩不窮, 然非是氣, 則雖有是理而無
所湊泊. 故必二氣交感, 凝結生聚, 然後是理有所附著.” ≪朱子語類≫ 卷4, “性只是理. 然無那天氣地質, 則此理沒安頓處.”
19) ≪朱子語類≫ 卷94, “陽動陰靜, 非太極動靜, 只是理有動靜. 理不可見, 因陰陽而後知. 理撘
在陰陽上, 如人跨馬相似.”
이승환 교수는 “理有動靜, 故氣有動靜”을 “動靜할 수 있는 이치가 있기 때문에 기가 動靜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와 같이 해석해야 백화의 어법에 적합한 해석이며, ‘리’를 과잉
형이상학화하지 않는 해석이라고 한다.
이승환(2012), ≪횡설과 수설≫, 휴머니스트, pp.239∼232.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9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를 사람이 말 위에 올라탄 형상으로 비유한다. 사
람이 어딘가를 가기 위해 말에 올라탔다면, 사람은 자신의 목적지로 말을 인도
해 주는 역할을 하며 말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직접 목적지로 달려간다. 태극
은 형이상자로 직접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는 것과 같은 작용은 할 수 없지만,
이러한 작용은 음양이 한다.20) 이와 같이 ‘리’는 작용할 수 있는 ‘기’에 의존해
야 현실에서 드러날 수 있으며, 그래야 사물이 생긴다.21)
‘리’는 ‘기’에 의존해야 현실에서 드러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형이상의 범
주에 속한 ‘리’가 형이하의 ‘기’의 영향을 받는 것이 가능한가? 형이하의 ‘기’가
형이상의 ‘리’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씨앗의 예를 다시 생각해 보자.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패턴이 유지되는 것은 ‘리’가 가진 속성과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속성은 세상
이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론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질적 재료는
이러한 패턴 안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같은 종류
의 씨앗이더라도 어디에 심어졌느냐에 따라 성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햇빛이 잘 들고 비옥한 토양에 파종되었다면 적절한 시기에 꽃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성향을 지닌다. 반면에 응달이면서 척박한 땅에 심어졌다면 꽃이
피는 시기도 늦어질 것이며 좋은 열매도 맺히기 힘든 성향을 가진다. 같은 씨
앗이더라도 어떤 물질적 조건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다른 성향을 지닌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주변의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과 같이, ‘기’는 ‘리’가
발현되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 사람은 사물과 달리 바르고 온전한 ‘기’를 품부
받아 ‘리’가 온전하게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온전히 발
현시킬 수 있는 성향을 지닌다. 이러한 논리라면 현실에서 비도덕적인 상황이
20) ≪朱子語類≫ 卷5, “蓋太極是理, 形而上者. 陰陽是氣, 形而下者. 然理無形, 而氣卻有跡. 氣
旣有動靜, 則所載之理亦安得謂之無動靜”
21) 이것은 ‘리’의 ‘기’에 대한 의존성이다. 이 명제는 이승환 교수가 제안하는 존재론적 승반론
의 하위 명제 중 하나이다. 승반론은 승반자인 ‘리’가 승반기초인 ‘기’를 떠날 수 없으며,
승반기초의 차이는 승반자의 차이를 필함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승반론에는 ‘리’와 ‘기’
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하위 세 명제가 있다. 그것은 ‘리’의 ‘기’에 대한 존재론적
의존성, 환원 불가능성, 공변(共變)이다.
이승환(2012), ≪횡설과 수설≫, 서울: 휴머니스트, pp.74∼77.
10 ≪中國學論叢≫ 第40輯
란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비도덕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주자는 그 이
유를 ‘기’로 설명한다.
사람의 본성(性)은 모두 선하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선한 사람도 있고 태어나면
서 악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이것은 품부 받은 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천지
의 운행은 만 갈래로 무궁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해와 달
이 맑고 밝으며 기후가 온화하고 바른 때에 이러한 기를 품부 받아 태어나면 밝고
맑고 도타운 기질(氣質)이 되어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해와 달이 어
둡고 추위와 더위가 평상시와 반대라면 천지의 어그러진 기 때문이며, 만약 사람
이 이러한 기를 품부 받는다면 좋지 않은 사람이 된다. 어찌 의심하겠는가! …… 나
의 본성이 선하지만 성현(聖賢)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품부 받은 기에 의해 해를 입
어서이다. 마치 품부 받은 기가 강한 쪽으로 치우치면 줄 곧 강폭하고, 유약한 기
에 치우치면 줄 곧 유약한 것과 같다.22)
‘리’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으므로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품부 받은 ‘기’가 달라서이다.
‘리’가 ‘기’에 깃들면서 사람으로 태어날 때 어떤 ‘기’를 품부 받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품이 달라진다. 해와 달이 맑고 밝아 기후가 온화한 때에 이러한 ‘기’
를 품부 받아 태어난 사람은 맑고 밝은 기질(氣質)을 얻어 현명하고 온화하다.
그러나 해와 달이 어두워서 추위와 더위가 뒤 엉켜 평상시와 다르고 어그러졌
을 때 이러한 ‘기’를 품부 받은 사람은 어두운 기질 때문에 어리석거나 나쁜
사람이 된다. 이와 같이 강폭한 ‘기’를 많이 받으면 강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
진 사람으로 태어나고, 유약한 ‘기’를 치우치게 많이 받으면 유약한 성향을 가
진 사람이 된다.
사람이라는 형체를 갖추고 태어나려면 형이상의 ‘리’가 형이하의 ‘기’에 의존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리’는 ‘기’의 영향을 받는다. 청⋅명⋅돈⋅후(淸 ·明⋅
22) ≪朱子語類≫ 卷4, “人之性皆善. 然而有生下來善底, 有生下來便惡底, 此是氣稟不同. 且如天
地之運, 萬端而無窮, 其可見者, 日月淸明氣候和正之時, 人生而稟此氣, 則爲淸明渾厚之氣,
須做箇好人. 若是日月昏暗, 寒暑反常, 皆是天地之戾氣, 人若稟此氣, 則爲不好底人, 何疑! …… 看來吾性旣善, 何故不能爲聖賢, 卻是被這氣稟害. 如氣稟偏於剛, 則一向剛暴, 偏於柔,
則一向柔弱之類.”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11
敦⋅厚)와 같은 ‘기’의 속성은 ‘리’에 영향을 미친다. 주자는 이러한 ‘리’와 ‘기’의
관계를 그릇에 담긴 물로 비유한다.
사람과 사물의 성(性)은 본래 같지만 품부 받은 기는 다르다. 마치 물이 맑지만,
흰색 그릇에 담으면 흰색의 그릇 색과 같아지고 검은 색 그릇에 담으면 검은 색과
비슷해지며 푸른 색 그릇에 쏟으면 푸른 색을 띄는 것과 같다.23)
물은 맑고 투명한 색이다. 하지만 어떤 색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물의 고유한 성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릇의 색깔이 어떠
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물을 푸른색 그릇에 따르면 푸르게 보이듯이, 형이
상의 ‘리’는 깃들어 있는 형이하의 ‘기’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리’와 ‘기’의
관계는 공변(共變)이다.24)
‘기’의 차이들은 ‘리’의 차이를 수반한다. ‘기’의 편전(偏全) 때문에 사람과 사
물이 구분되며, ‘기’의 청탁수박(淸濁粹駁)의 차이는 다양한 성품을 가진 사람
이 되는 데 영향을 준다. ‘기’가 가장 맑고 순수하면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만, 품부 받은 ‘기’가 가려 남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지혜
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25)
장수⋅요절하는 운명을 타고 나는 것도 ‘기’와 관련이 있다. 안회(顔回)는 현
명했지만 요절했다. 그러나 간악한 도둑은 오히려 장수하기도 한다. 공자와 같
은 성인(聖人)도 청명(淸明)한 ‘기’를 타고나서 현명하기는 했지만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이 모든 존재론적 이유가 ‘기’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26) 이러한 ‘기’의 차이는 능력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기’가 음양
23) ≪朱子語類≫ 卷4, “人物性本同, 只氣稟異. 如水無有不淸, 傾放白碗中是一般色, 及放黑碗中
又是一般色, 放靑碗中又是一般色.”
24) 공변(共變)은 존재론적 승반론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승반자인 ‘리’는 승반기초인 ‘기’를
떠날 수 없으며, 승반기초인 ‘기’의 차이는 승반자인 성(性)의 차이를 필함한다. 그래서 성
(理)은 기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주자의 공변이다.
이승환(2012), ≪횡설과 수설≫, 서울: 휴머니스트, p.258.
25) ≪朱子語類≫ 卷4, “然就人之所稟而言, 又有昏明淸濁之異. 故上知生知之資, 是氣淸明純粹,
而無一毫昏濁, 所以生知安行, 不待學而能, 如堯舜是也. 其次則亞於生知, 必學而後知, 必行
而後至. 又其次者, 資稟旣偏, 又有所蔽, 須是痛加工夫, 人一己百, 人十己千, 然後方能及亞於
生知者. 及進而不已, 則成功一也.”
12 ≪中國學論叢≫ 第40輯
(陰陽) 오행(五行)으로 분화되고 운행되면서 맑은 ‘기’가 있기도 하고 탁한 ‘기’
가 있기도 하다. 맑은 ‘기’를 타고 난 사람과 탁한 ‘기’를 타고 난 사람은 성품이
다르다. 또한 ‘기’는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어느 한 쪽만 두텁기도 하다. 그래서
의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둡고 이해관계에만 능통하며, 온갖 기예를 잘
부릴 수 있어도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서는 둔한 사람이 있다. 또한 자신의
부모에게는 극진히 대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남에게 미치지 못해서 박하게 행
동하는 사람도 있다.27)
‘기이리이(氣異理異)’ 논리를 통해 다양한 성품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탁하고 잡박한 ‘기’를 타고난
사람은 항상 비도덕적인 행동만 하고 책을 이해하는 능력을 적게 타고난 사람
은 평생 책을 잘 이해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은 자신이 품부 받은
‘기’의 구속을 받으면서 살아야만 하는가? 자신의 모든 능력을 그대로 받아들
여야만 하는가? 이러한 문제점은 다시 ‘리동기이(理同氣異)’ 논리를 통해 보완
될 수 있다.
4. ‘리동기이’에서 ‘리’와 ‘기’의 존재론적 관계
‘리’가 현실에서 드러나기 위해서는 물질적 재료이자 직접적인 작용을 할 수
26) ≪朱熹集≫ 卷56 <答鄭子上>14, “人生有壽夭, 氣也. 賢愚亦氣也. 壽夭出於氣, 故均受生而
有顔子盜跖之不同. 賢愚出於氣, 故均性善而有堯桀之或異, 然竊疑天地間只是一氣. 所以爲壽
夭者此氣也. 所以爲賢愚者亦此氣也. 今觀盜跖極愚而壽, 顔子極賢而夭, 如是則壽夭之氣與賢
愚之氣容或有異矣. …… 此說得之. 貴賤貧富亦是如此, 但三代以上氣數醇濃, 故氣之淸者必厚
必長, 而聖賢皆貴且壽且富, 以下反是.” ≪朱子語類≫ 卷4, “夫子雖得淸明者以爲聖人, 然稟得那低底·薄底, 所以貧賤.”
27) ≪朱子語類≫ 卷4, “氣稟所拘, 只通得一路, 極多樣. 或厚於此而薄於彼, 或通於彼而塞於此.
有人能盡通天下利害而不識義理, 或工於百工技藝而不解讀書. 如虎豹只知父子, 蜂蟻只知君
臣. 惟人亦然, 或知孝於親而薄於他人. …… 這箇又是二氣·五行交際運行之際有淸濁, 人適逢
其會, 所以如此.”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13
있는 ‘기’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이 생긴다. 이러한 ‘리’와 ‘기’의 관계는
다시 공변(共變)으로 이어진다. ‘기’는 치우기도 하고 온전하기도 하며 맑기도
하고 혼탁하기도 하며 순수하기도 하고 잡박하기도 하다. 다양한 ‘기’는 여러
사물이 생겨나는 존재론적 요소이다. 이러한 ‘기’의 차이는 성(性)의 차이로 이
어지며, 이것이 소의 성과 개의 성 그리고 사람의 성이 다르다는 주장의 근거
이다. 이것은 공변(共變)의 논리로, 다양한 사물로 나뉘어 달라지면서(分之殊)
‘리’ 또한 달라진다는 의미이다.28)이와 같은 공변의 논리는 물과 물을 담는 그
릇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 하늘이 리를 부여하여 같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 품부 받은 것은 다를 뿐이다. 마치 같은 강물을 작은 국자로 뜨면
한 국자만큼만 얻을 뿐이고, 한 사발 퍼 가면 한 사발만큼만 얻는다는 것과 같다.
한 통 · 한 항아리와 같이 각기 뜨는 그릇에 따라 [물의 양이] 달라지므로, 리 또한
[기]에 따라 달라진다.29)
사물과 사람은 모두 똑같이 ‘리’를 품부 받는다. 그러나 사람과 사물이라는
형체를 갖추면서 ‘리’는 달라진다. 주자는 모든 사물이 동일하게 ‘리’를 품부 받
았다는 것을 여러 크기의 그릇 안에 들어 있는 물로 비유한다. 그러나 국자에
물을 뜨면 아주 조금 얻을 수 있고 큰 항아리에 물을 담으면 많이 담을 수 있듯
이, 그릇의 크기에 따라 물의 양은 달라진다. 작은 그릇에는 물이 적게 들어
있는 것과 같이, ‘리’를 온전하게 다 담을 수 없는 것도 ‘기’와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기이리이(氣異理異)’ 논리에 의하면, 사물과 달리 사람이 온전하고 바른
‘기’를 품부 받아서 ‘리’를 온전하고 바르게 갖추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리’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이리이’의 논
리를 확장시킨다면 인간만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한 능력을 최대
28) ≪朱熹集≫ 卷58, <答徐子融> 3, “是雖其分之殊, 而其理則未嘗不同, 但以其分之殊, 則其
理之在是者, 不能不異.”
29) ≪朱子語類≫ 卷4, “人物之生, 天賦之以此理, 未嘗不同, 但人物之稟受自有異耳. 如一江水,
你將杓去取, 只得一杓, 將碗去取, 只得一, 至於一桶一缸, 各自隨器量不同, 故理亦隨以異.”
14 ≪中國學論叢≫ 第40輯
한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기질(氣質)이 잡박하거나 탁하면 현명
한 판단을 할 수 없으며,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친 능력을 타고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러한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개선의 여지도
없이 살아야만 하는가?
인간이 타고난 능력이나 성품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채 살아가야 한다면, 주
자철학은 운명 결정론에 가까울 것이다.30) 또한 ‘리’의 존재론적 의미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 ‘리’는 ‘기’에 의존해서 ‘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그 어떤 것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리’는 ‘기’와는 다른 속
성을 지녔다. 일정한 패턴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이 일정한 패턴이 유지될
수 있는 존재론적 근거이다. 즉, 어느 해에는 기온이 낮아서 꽃이 늦게 피는
때도 있지만 늦게라도 꽃은 핀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형체이지만 모든 사물
에 ‘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논리는 ‘리동기이(理同氣異)’이다.
‘리동기이(理同氣異)’의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리동(理同)’이다. 맑은 ‘기’를
타고 나면 지혜롭고 혼탁한 ‘기’를 품부 받아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아름다운
‘기’를 얻었다면 어진 사람이 되지만 악한 ‘기’를 받았다면 어질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원래부터 밝은 본체는 하늘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혼미해 질 수 없
다. 기질(氣質)에 가려 있더라도 잠깐의 깨침이 있으면 본체를 밝힐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명덕(明德)이 내재되어 있어서 이다.31) 인간이라면 모
두 똑같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인 명덕32)을 갖추고 있으며, 이것은
‘리동’의 논리이자 모든 사람이 기질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30) 인간은 ‘기’라는 질료적 조건을 품부 받았지만, 후천적 노력을 통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장수와 요절과 같은 운명을 제외하고는 덕을 갖춘 군자
가 되고 싶어 한다면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이승환(2007), <주자 수양론에서 性과 성향: 기질변화설의 성품윤리적 의미>, ≪동양
철학≫ 28집, pp.148∼149.
31) ≪大學或問≫, “淸者智, 而濁者愚, 美者賢, 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 然而本明之體,
得之於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 而
其本體已洞然矣. …… 然其所謂明德者, 又人人之所同得, 而非有我之得私也.”
32) ≪朱子語類≫ 卷14, “或問, 明德便是仁義禮智之性否? 曰, 便是.”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15
는 주장의 존재론적 근거이다. 모든 사물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성(性)은 ‘기’에
의존하지만, 사물의 본체라는 의미에서 봤을 때 ‘기’와 섞일 수 없다. 왜냐하면
‘기’의 정미하고 조잡함(精粗)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리’는 존재하
기 때문이다.33)
‘리’가 ‘기’에 의존한다고 하더라도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와 ‘기’가 서로 섞일 수 없기 때문이다. ‘리’는 일정한
패턴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원리⋅원칙을 의미한다. ‘리’는 질료의 의미를 갖는
‘기’와는 다르다. 주자는 이러한 ‘리’와 ‘기’는 엄연히 다르므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에는 리도 있고 기도 있습니다. 리는 형이상의 도(道)이며 사물이 생겨나는
데 근본입니다. 기는 형이하의 기(器)이며 만물을 낳는 재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 반드시 리를 품부 받은 후에 성(性)이 있게 되고, 반드시
기를 품부 받은 후에 형체를 갖추게 됩니다. 성과 형체가 한 몸에 있다고 하더라도
도와 기 사이는 명확히 구분되므로 뒤섞어서는 안 됩니다.34)
모든 사물은 ‘리’와 ‘기’로 이루어져 있다. ‘리’가 ‘기’에 의존해야 사물이 생긴
다. ‘리’는 형이상의 도(道)이며, 이러한 ‘리’가 사물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성(性)이다. ‘기’는 사물이 생기는 데 재료인 형이하의 그릇(器)으로, 형체를
갖추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물이 생겨나기 위해 ‘리’와 ‘기’가 있어야 형체를
이루고 성이 갖춰진다. 하지만 ‘리’와 ‘기’는 엄연히 형이상과 형이하의 것으로
각기 다른 범주에 속해 있다. 따라서 ‘리’와 ‘기’는 서로 환원될 수 없다.35) ‘리’
33) ≪朱子語類≫ 卷4, “未有此氣, 已有此性. 氣有不存, 而性卻常在. 雖其方在氣中, 然氣自是氣,
性自是性, 亦不相夾雜. 至論其遍體於物, 無處不在, 則又不論氣之精粗, 莫不有是理.”
34) ≪朱熹集≫ 卷58 <答黃道夫>1,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是以人物之生, 必稟此理然後有性, 必稟此氣然後有形.
性其形雖不外乎一身, 然其道器之間分際甚明, 不可亂也.”
35) ‘리’와 ‘기’가 서로 환원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일정한 질서나 목적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리’를 ‘기’로 환원해 버린다면 ‘기’라는 물질적 재료의 무질서한
상태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환(2012), ≪횡설과 수설≫, 서울: 휴머니스트, p.76.
정신은 물질을 토대나 재료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과 물질은 존재론적으로 구분되어
16 ≪中國學論叢≫ 第40輯
와 ‘기’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음양(陰陽) 그 자체와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변역의 과정이 계속되는 이유(道)를 동일 시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굽혀졌다 펴졌다 하는 이유는 리가 반드시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역(易)≫
<계사(繫辭)>에서,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 한다.”라는
구절에서 음양 그 자체는 기이지만,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과 같이
순환되는 과정이 그치지 않는 것은 도 때문입니다.36)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순환되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은 도(理) 때문이
다. 순환의 과정은 ≪역≫ <계사>에서의 “한 번 음(陰)이 되고 한 번 양(陽)
이 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며,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게 하는 것은 ‘리’이다.
일정한 질서가 유지는 되는 것은 음양 안에 ‘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렇다고 해서 음양 그 자체를 ‘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37)
있다. 하르트만은 정신이 아래의 물질 경계를 넘어서는 오류를 범하면 ‘정신주의’가 되고,
물질이 위의 정신 경계를 넘어서면 ‘물질주의’가 된다고 지적한다. 하르트만의 정신이 물
질을 재료로 삼고 있지만 서로의 경계는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은 ‘리’와 ‘기’가 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하다.
손동현(2001), <하르트만의 성층이론과 김재권의 수반이론>, ≪예술과 현상학≫, 서
울: 철학과 현실사, p.395, p.403.
‘리’와 ‘기’의 관계도 일방적인 의존관계는 아니다. ‘리’가 ‘기’에 의존한다고 해서 주자 철학
에서 ‘리’의 역할이 축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리’와 ‘기’는 엄연히 다른 범주에
속해 있으며, ‘리’와 ‘기’가 서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된
다고 한다면, 사계절이나 싹이 트고 꽃이 피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될 수 없으며 잡박한
‘기’를 타고 난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만 계속할 것이다. 주자철학은 운명 결정론이 되어
버릴 것이다.
36) ≪朱子語類≫ 卷95, “其所以屈伸往來者, 是理必如此. 一陰一陽之謂道, 陰陽氣也, 其所以一
陰一陽循環而不已者, 乃道也.”
37) ≪朱熹集≫권36 <答陸子靜>5, “一陰一陽之謂道, 此豈眞以陰陽爲形而上者哉? 正所以見一
陰一陽雖屬形器, 然其所以一陰而一陽者, 是乃道體之所爲也. …… 直以陰陽爲形而上者, 則又
昧於道器之分矣.”: 주자는 형이상의 ‘리(太極, 道)’와 형이하의 ‘기(陰陽, 器)’를 엄격히 구
분해야 함을 강조했으며, 이 부분은 육상산(陸象山)과 충돌했던 측면이기도 하다.
주광호 교수는 육상산(陸象山)이 형이하와 형이상을 구분하지 않는 이유를 그의 형이상학
에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무극(無極)과 태극(太極) 논쟁에서 육상산이 주자에게 주장했
던 것과 관련해서 음양(陰陽)에 대한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상산은 무극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리’로서의 태극은 우주에 가득 차 있으며 우리의 마음 안에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형이상학은 도⋅기(道⋅器)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육상산이 음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17
‘리동기이(理同氣異)’ 명제만으로는 다양한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설명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를 통해 다양한 ‘기’가 사람과
동물⋅식물이 구분되는 이유와 다양한 성품이나 능력을 지닌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이리이’ 논리는 인간이 기질(氣質)의 구속에
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는 ‘리동기이’ 논리를 통해 극복
될 수 있다. ‘리’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모든 사물에 내재되어 있다는
논리는 인간이 기질(氣質)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이다. 왜
냐하면 ‘리’는 기질이라는 물질적 요소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기’가 아니며
형이상자로서 일정한 질서가 유지되고 모든 사람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내재한다는 존재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에서 ‘리’와 ‘기’가 어떤 의
미인지⋅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통해, 두 명제가
서로 보완해 주는 관계라는 데에 접근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주자 철학 내에
서 이 두 명제가 공존하면서 철학적 완성도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자가 두 명제와 관련해서 어떤 공부론을 제시했는지에 접근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5. ‘리동기이’와 ‘기이리이’ 유지와 그 의의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에서 ‘리’와 ‘기’의 의미와
관계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 두 명제는 서로 보완해 주는 관
계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자의 문인들은 이 두 명제가 모순인
것은 아닌지 계속적으로 질의한다. 그렇다면 주자가 문인들의 질문에 어떻게
양을 도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현실 안에 태극이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마음에⋅우
리의 마음에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주광호(2008), <朱熹와 陸九淵의 無極太極 논쟁>, ≪철학연구≫ 36집, pp.493∼494.
18 ≪中國學論叢≫ 第40輯
답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광(輔廣)이 선생님께 여쭤봤다. “사람과 사물이 천지의 리를 품부 받아 성(性)
이 되고, 천지의 기를 받아 형(形)이 됩니다. 사람의 성품이 다른 것은 기가 어둡
거나 밝거나 또는 두텁거나 얇다는 차이가 있어서입니다. 사물로 말한다면 품부
받은 리가 온전하지 않아서입니까? 또는 품부 받은 기가 어둡고 가려서 그런 것입
니까?” 그러자,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품부 받은 기가 다양하면 리
또한 다양하다. 개나 말은 그런 형기를 가졌으므로 그런 행동만 할 수 있다.” 보광
이 또 물었다.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太極)을 갖추고 있다면 리가 온전하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답하셨다. “온전하다고 해도 괜찮고 치우쳤다 해도
괜찮다. 리로 말하면 온전하지 않을 수 없지만, 기로 말한다면 치우치지 않을 수
없다.”38)
주자의 문인 보광(輔廣)39)은 사람과 동물이 구분되고 다양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질의한다. 다시 말해, 동물이나 식물이 되는
이유가 품부 받은 ‘리’ 자체가 온전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기’의 영향을 받아
서 그런 것인지 질문한다. 주자는 ‘기’가 ‘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개나 말이 행해야 하는 것(性), 또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형기(形氣)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일원처(一原處)인 ‘리동
(理同)’에 위배되는 언급이며, 보광 역시 헷갈렸던 것으로 보인다. 보광의 이러
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주자는 두 가지 견해, 즉 ‘리동기이(理同氣異)’ ‘기이
리이(氣異理異)’ 명제 모두 모순 없이 공존한다고 본다.
‘기이리이(氣異理異)’의 논리는 사람과 동⋅식물이 다른 이유와 사람의 성품
이나 능력이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
38) ≪朱子語類≫ 卷4, “問, 人物皆稟天地之理以爲性, 皆受天地之氣以爲形. 若人品之不同, 固是
氣有昏明厚薄之異. 若在物言之, 不知是所稟之理便有不全耶, 亦是緣氣稟之昏蔽故如此耶?
曰, 惟其所受之氣只有許多, 故其理亦只有許多. 如犬馬, 他這形氣如此, 故只會得如此事. 又
問, 物物具一太極, 則是理無不全也. 曰, 謂之全亦可, 謂之偏亦可. 以理言之, 則無不全, 以氣
言之, 士毅錄作以不能推言之. 則不能無偏.”
39) 주자 철학은 1197년 위학(僞學)이라 해서 금지 되었지만, 보광(字는 漢卿이다.)은 계속
주자의 곁에 있었던 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60세 이후 주자 만년에 늘 함께 했던 제자였
다.
市來津由彦(2002), ≪朱熹門人集團形成の硏究≫ 東京: 創文社, pp.356∼366.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19
논리는 타고난 성품 또는 기질(氣質)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
다. 그러나 4장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리동기이(理同氣異)’ 논리는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시⋅공간의 제한을 받
지 않는 ‘리’가 모든 동⋅식물과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형이상의
‘리’를 형이하의 ‘기’로 잘못 인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자는 문인들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두 명제가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자의 의도
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은 기질(氣質)의 구속을 받으면 객관적 지식을 갖지 못한다. 즉, 이치에
대해서 정확하게 궁구할 수 없어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인지 판단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물욕(物欲)에 더 쉽게 빠질 수 있다.40)
즉, 사욕(私欲)도 기질의 구속 때문에 발생한다. ‘기’가 청명하면 ‘리’가 잘 발현
되고, ‘기’에 의해 가려지거나 막히면 천리(天理)를 기준으로 한 공평한 판단을
하지 못하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41) 주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제시한다. ‘격물치지’를 통해 객
관적인 지식을 얻어야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격물’은 모든 사물의 이치를 다 궁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일에 대해서
극치까지 궁구하면 나머지 모든 일에 대해서 유추할 수 있다. 주자는 사람이
이와 같은 추론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리동(理同)’의 논리에 두고 있다.42) 모든
존재가 제각각의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물에는 동일하게 ‘리’가 갖추어
져 있다. 그러므로 내가 품부 받은 이치에 대해서 궁구한다면 세상의 모든 이
40) ≪大學或問≫, “以其稟之異, 故於其理或有所不能窮也. 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 知有不盡,
則其心之所發, 必不能純於義理, 而無雜乎物欲之私.”
41) ≪朱子語類≫ 卷4, “但得氣之淸明則不蔽錮, 此理順發出來. 蔽錮少者, 發出來天理勝; 蔽錮多
者, 則私欲勝”
42) ≪朱熹集≫ 卷15 <經筵講義>, “又曰, 窮理者, 非謂必窮天下之理, 又非謂止窮得一理便到,
但自一身之中, 以至萬物之理, 理會得多, 自當脫然有悟處. 又曰, 格物, 非欲盡窮天下之物, 但
於一事上窮盡, 其他可以類推. …… 蓋萬物各具一理, 而萬物同出一原, 此所以可推而無不通
也.” 주자는 8조목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를 정자(程子)의 말에 두고 있다. “格物∼而通其餘矣”는 정자가 언급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20 ≪中國學論叢≫ 第40輯
치에 대해서 유추할 수 있다. 주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설명한
다.
예를 들어, 여기에 네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각기 다른 리를 갖추고 있어서 나
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없고 다른 사람은 나에게 구할 수 없다. …… 각기 다
른 리를 갖추고 있지만 동일한 리에서 다 같이 나왔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그릇
에 물이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발에도 물이 있고 저 사발에도 물이 있다. …… 그러
나 그릇이 깨져 물이 흘러나오면 물 일 뿐이다. 이것이 유추하여 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많이 궁리한 후에 저절로 관통할 수 있는 것은 일리(一理)
이기 때문이다.43)
사람들은 ‘리’를 잘 실현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는 ‘리’가 갖추어져 있다. 이와 같이, 물이 각기 다른 그릇에 담겨
있지만 그릇이 깨져 물이 흘러나오면 모두 같은 물이다. 다시 말해, 사람과 사
물은 기질(氣質)의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고, 인간 역시 기질의 맑고 탁
함에 따라 물욕(物欲)에 쉽게 빠질 수 있기도 하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도 있
다. 그래서 성인(聖人)이 되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리’를 동일하게 갖추고 있으며, 특히 사람은 온전한 ‘기’를 타고
났기 때문에 심(心)의 능력44)을 통해 세상의 온갖 이치에 대해 다 알 수 있
다.45) 기질의 차이 때문에 다양한 성품과 능력을 지녔지만 모든 이치에 대해
서 인식할 수 있다. 그 근거가 ‘리동(理同)’⋅‘일리(一理)’의 논리이다. 이것이
43) ≪朱子語類≫ 卷18, “如此四人在坐, 各有這箇道理, 某不用假借於公, 公不用求於某, …… 然
雖各自有一箇理, 又卻同出於一箇理爾. 如排數器水相似. 這盂也是這樣水, 那盂也是這樣水, …… 然打破放裏, 卻也只是箇水. 此所以可推而無不通也. 所以謂格得多後, 自能貫通者, 只爲
是一理.”
44) ≪大學或問≫,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
能齊也.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 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
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 여기서 허(虛)는 온갖 리를 구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령(靈)은 모든 리를 파악해서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모든 존재가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리’가 모든 존재에 다 통해 있으며
이러한 심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리동(理同)’의 논리이다.
45) ≪朱熹集≫ 卷15 <經筵講義>, “但其氣質有淸濁偏正之殊, 物欲有淺深厚薄之異, 是以聖之
與愚, 人之與物, 相與殊絶而不能同耳. 以其理之同, 故以一人之心而於天下萬物之理無不能
知.”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21
‘리동기이(理同氣異)’의 논리가 적용된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인간과 다른 사물이 품부 받은 ‘기’는 다르지만
모두에게 ‘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주자는 하늘에 있느냐 인간에게 있
느냐에 따라 성(性)과 명(命)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동일하다고 한다. 사람과 사물이 품부 받은 ‘기’는 다르지만 ‘리’는 다를 수 없다
는 것이 ‘천명지위성’의 의미이며, 주자는 이 명제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46)
주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천명(天命)의 성(性)은 사람과 사물이 모두 함께
받은 것이기는 해도, 성현(聖賢)들이 이 명제에서 초점을 둔 것은 일반적인 사
람인 나 자신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주자는 내 안에 갖추어져 있는 성을 잘
발현할 것을 강조한다.
하늘이 명하여 준 성(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일 뿐이다. 인(仁)의 성을 따르
면 부자(父子)지간의 사랑으로부터 백성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데까지 모두
도(道)이다. 의(義)의 성을 따르면 군신(君臣) 사이의 분별로부터 어른을 공경하
고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는 데까지 모두 도이다. 예(禮)의 성을 따르면 공경하고
사양하는 절문(節文)이 모두 도이다. 지(智)의 성을 따르면 옳고 그름 삿됨과 바름
에 대한 분별 모두 도이다. 성에는 한결같이 리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도란 밖에
서 구하지 않아도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47)
하늘이 명해 준 성(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인의예지의 성을 잘 따르
면 비슷한 상황에 잘 확장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도(道)이다. 이러한 인의예
지를 확장시켜 실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갖추어져 있는 성(인의예지)을 따르는 것으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으
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의예지를 온전하게 갖추
46) ≪中庸或問≫, “蓋在天在人, 雖有性命之分, 而其理則未嘗不一, 在人在物, 雖有氣稟之異, 而
其理則未嘗不同, 此吾之性所以純粹至善, 而非若荀·揚韓子之所云也.”
47) ≪中庸或問≫, “蓋天命之性, 仁義禮智而已. 循其仁之性, 則自父子之親, 以至於仁民愛物, 皆
道也. 循其義之性, 則自君臣之分, 以至於敬長尊賢, 亦道也. 循其禮之性, 則恭敬辭讓之節文,
皆道也. 循其智之性, 則是非邪正之分別, 亦道也. 蓋所謂性者, 無一理之不具, 故所謂道者, 不
待外求而無所不備.”
22 ≪中國學論叢≫ 第40輯
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인의예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갖추
어져 있다고 한다. 이것이 주자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해석하면서 강
조하고자 했던 측면이자, 성선설(性善說)을 유지하고자 했던 의도라 할 수 있
다.
‘기이리이(氣異理異)’ 명제를 통해 인간이 동⋅식물과 다르며 다양한 성품의
인간이 있는 존재론적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논리를 확장시키
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기질의 구속을 받으면 “인간이
품부 받은 기질(氣質)에 갇힌 채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이다. ‘기이리이’
의 논리에 의하면,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는 사람은 개선의 여지도 없이 평생
비도덕적인 행위만 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능력의 한계를 계속 안고 살아
야 한다. 둘째, 성리학의 근본인 성선(性善)을 포기하게 된다. 성선설을 포기
하게 된다면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48)는 명제는 폐기되어야 한다. 그
러나 주자는 ‘기이리이’ 논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리동기이(理同氣異)’ 논
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일원처(一原處), 즉 ‘리동(理同)’과 관
련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인간이 실현할 수 있으며 ‘천명(天命)의 성(性)’에
대한 논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는 말
주자는 ≪맹자≫ <고자>장을 수정하면서 ‘기’의 차이는 ‘리(性)’의 차이를
수반한다는 ‘기이리이(氣異理異)’ 논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문인들은 이것이
≪대학장구≫와 ≪중용장구≫의 ‘리동기이(理同氣異)’ 논리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같은 질문은 주자 60대 후반까지 이어졌지
48) ≪朱子語類≫ 卷4, “如孟子道性善, 不言氣稟, 只言人皆可以爲堯舜.” ≪朱子語類≫ 卷4, “孟子恐人謂性元來不相似, 遂於氣質內挑出天之所命者說與人, 道性無有
不善, 卽子思所謂天命之謂性也.”
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23
만,49) 주자는 둘 다 인정한다. ‘리동기이’와 ‘기이리이’의 논리가 공존해야 한다
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다. 이러한 의도는 ‘리’와 ‘기’를 햇빛으로 비유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성(性)은 말하기 정말 어려운데 같다고 해도 되고 다르다고 해도 된다. 마치 틈
새로 들어오는 햇빛과 같은 것으로, 햇빛은 틈새의 길고 짧음과 크기의 차이에 따
라 다르지만 이것은 햇빛일 뿐이다.50)
주자 역시 ‘리’와 ‘기’의 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형
체 안에 들어 와 있는 ‘리’인 성(性)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그 어려움을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대한 비유로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틈새
로 들어오는 햇빛은 틈새가 길면 길게 늘어지고 짧으면 짧게 들어오며, 틈새의
크기에 따라 햇빛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적게 들어오기도 한다. 틈새의 형태
나 크기에 따라 햇빛이 들어오는 모양과 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햇
빛이라는 고유한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형이상의 ‘리’는 형이하의 물질인 ‘기’
에 깃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가 항상
일관되게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51)
주자는 ‘리동기이(理同氣異)’와 ‘기이리이(氣異理異)’ 두 명제의 공존을 강조
했다. 이러한 주자의 견해는 이 두 명제에서 ‘리’와 ‘기’가 어떤 의미인지 서로
49) 주자가 ≪맹자≫ <고자> 장을 수정하면서 문인들의 ‘리’ ‘기’에 대한 질의가 시작됐다.
이것은 ≪朱熹集≫ 卷50 <答程正思> 17이며, 이때가 주자 나이 58세(1187)였다. 그리
고 ≪朱熹集≫ 卷46, <答黃商伯> 4는 69세(1198)이다.
陳來(2007), ≪朱子書信編年考證≫, 北京: 三聯書店.
50) ≪朱子語類≫ 卷4, “又曰, 性最難說, 要說同亦得, 要說異亦得. 如隙中之日, 隙之長短大小自
是不同, 然卻只是此日.”
51) ‘리’가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니는 것은 ‘리일분수(理一分殊)’와 관련된 논의이기도 하다.
이향준 교수는 <주자 리일분수(理一分殊)의 은유 분석>에서 ‘리일분수’를 주자의 비유를
통해 분석한다. ‘큰 그릇 은유’에서는 초점이 리의 동일성(理一)인 보편성에 있으며, ‘작은
그릇 비유’의 초점은 ‘리’의 특수성에 있다고 한다. 그는 후자에서 ‘리’가 분수(分殊)로 전화
될 때 ‘기’를 상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예로 율곡(栗谷)의 ‘리통기국(理通氣局)’을
들고 있다. 이것으로 봤을 때, 주자 철학에서 ‘리동기이’와 ‘기이리이’ 명제는 긴장관계 속
에 공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리’가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데 ‘기’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향준(2005), <주자 리일분수(理一分殊)의 은유 분석>, ≪동양철학≫ 24집, pp.77-80.
24 ≪中國學論叢≫ 第40輯
어떤 관계인지 존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격
물치지(格物致知)’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명제를 해석하는 주자의 입장
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선(性善)이나 기질(氣
質)의 변화에 대한 논의들이 심(心)과 관련된 논의이며, 심이 어떤 역할을 하
는지 등에 대해서는 접근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접근이 주자의
공부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리동기이’와
‘기이리이’ 명제와 심의 관계 또는 공부론과의 연관성 등은 향후 연구 과제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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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리동기이(理同氣異)’⋅‘기이리이(氣異理異)’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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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paper aims at explaining Zhu Xi’s ‘LitongQiyi(理同氣異)’ and ‘QiyiLiyi(氣
異理異)’. When Zhu Xi was 58 years old, he modified Gao Zi(<告子>) chapter of
Mencius(≪孟子≫). In the process of modifying it, Zhu Xi’s disciples began to
question about ‘Li(理)’ and ‘Qi(氣)’. Because it is likely that ‘Li’ isn’t coherent.
First, all existence have the same ‘Li’, but ‘Qi’ is different(理同氣異). Second, ‘Qi’
is different, so ‘Li’ also alters(氣異理異). They thought that The two propositions
of ‘Li’ and ‘Qi’ are contraction. However, Zhu Xi admitted The two propositions
of ‘Li’ and ‘Qi’. Because he thought that two propositions complete each other.
The two propositions of ‘Li’ and ‘Qi’ are ontological subject. Through
ontological analyzing those, it could be confirmed why Zhu Xi admitted The two
propositions of ‘Li’ and ‘Qi’.
KEYWORDS: Zhu Xi, ‘Li(理)’, ‘Qi(氣)’, ‘LitongQiyi(理同氣異)’, ‘QiyiLiyi
(氣異理異)’, ontology, Superven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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