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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구조주의의 등장과 사상적 배경/사회문화연구소

데카르트에서 출발한 합리주의는 논증적 사유능력으로서의 이성을 중시하는 것으로서, 특히 근세 이후의 서구사상의 커다란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근대의 합리주의는 인간 이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서구 중세의 신중심주의로부터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로의 전화를 가능케 하였다. 합리주의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조의 기초가 되는 것은 자아가 세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과학적 지성을 구사하는 동시에 이러한 자아는 그러한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결단을 내린다는 지성적 객관성과 의지적 주체성의 이원론이다.

이러한 합리주의의 세계인식의 객관성을 둘러싸고 낭만주의, 실존철학 등의 비합리주의적인 사상이 반기를 들게 되었다. 니체,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에서 출발한 실존철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행하는 전환점에서 나타난 새로운 주장들은 비합리주의의 견지에서 인간을 창조적인 존재이자 역사발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천의 주체로서 파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해서 서구는 자신들만의 척도로서는 세계의 모든 문제가 파악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서구 지성의 자성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서구 중심의 사관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세계사적인 전망을 세웠다는 데 있다. 19세기 역사주의자들이 발견한 역사의 법칙도 결국 그들의 낙천적인 이성에의 신앙을 역사에 투영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역사주의는 인간의 제 사건에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사상하고 주관적인 해석도 포기함으로써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정태적 상태를 그 내적 관계로서 파악할 때만이 객관주의적 방법이 가능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인식의 방법에 대한 실천에 획을 그은 것이 소쉬르(F. de Saussure ; 1857~1913)의 『일반언어학 강의』(1916)를 기점으로 한 구조주의의 등장이었다.

구조주의는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한 사상으로,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되었지만 구조주의 인식방법은 역사주의의 오류에 대한 뼈아픈 반성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구조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분야는 프라그 학파와 소쉬르의 언어, 기호학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야콥슨에게서 영향을 받아 20세기 초에 사회인류학의 영역에서 레비스트로스가 구체화시켰으며, 이것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 1918~1990), 라캉(Jacques Lacan ; 1901~1983), 골드만(Lucien Goldmann ; 1913~1970) 등에게 계승되어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1960년대 프랑스는 드골이 집권하여 우익보수진영이 득세하고 있었다. 전유럽에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프랑스에서는 학생, 지식인, 노동자 등이 68년의 5월 혁명을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2차대전 후의 프랑스적 징조로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의혹과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헝가리, 체코 사태, 중소분쟁은 마르크스주의에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후기 산업사회의 시대상은 역사주의의 오류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전유럽은 사회적 격동기로서 일련의 사태들은 새로운 철학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구조주의이며, 역사주의와 정통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 표면적 갈등 이면의 구조적 모순의 존재, 실존주의적 사고의 한계 등 구조주의가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 이외에 학문적 배경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 당시 학문의 주류는 서구의 인간 중심 학문인 실존주의와 미국중심의 행동주의였다. 이러한 학문은 더이상 유럽의 혼란을 수습할 수 없었다. 구조주의는 이러한 과학적인 실존주의에 대해 과학성을 촉구했으며 지나친 과학주의를 견지하는 미국의 경험주의도 비판하였다. 미국의 경험주의는 주체를 대상에 대립시키고 주체가 추상화시킨 대상의 본질을 지식으로 간주하는 모든 인식론으로서, 관찰 가능한 것만을 과학이라고 보고 인간의 심층구조를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주의와 결합하였다. 바로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를 혁신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 구조주의였다.

구조라는 말은 '구축한다'(to build)의 뜻을 가진 struere에 어원을 둔 단어인데, 쌓거나 배열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대상이 직접 구축되는 행위나 양식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구성부분들이 조정되어 이루어진 복잡한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개념으로서의 구조란 관찰 가능한 건축구조, 분자구조는 물론이고 관찰 불가능한 사회구조, 가족구조, 계급구조 등도 포함하는 구체성, 추상성을 모두 갖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전체성(totality)을 핵심으로 하며 분절적인 부분들을 포괄하여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각 부분은 전체에 비추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Jean Piaget, 『구조주의』, 1970).

일반적으로 사회구조는 대부분 관찰 불가능한 구조를 말한다. 의도적이고 인간주의적인 요소를 지닌 조직일 수도 있고 계급이나 물질관계 등의 비의도적이고 비인간주의적인 전형적인 구조를 말하기도 한다. 가장 전형적인 사회구조는 구조주의 사회인류학에서 말하는 가족구조, 언어사회학에서의 언어구조가 있다. 그리고 알튀세르, 고들리에, 발리바르 등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구조란 직접 관찰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론적 발견에 의해 찾아질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은 상부구조(superstructure)와 토대(base)로 구성되고 표면구조뿐만 아니라 사회관계의 심층구조까지 포괄하는 아주 광범위한 것이라고 한다.

토대는 생산, 분배를 위한 수단의 통제력을 규정하는 계급간의 관계로 구성되며, 상부구조는 토대에 적합한 경제관계를 강화시키며 조화시키는 법적ㆍ이데올로기적ㆍ사회적 제도를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사회구조란 결국 주체로서의 인간을 구속하고 역사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적 구조주의로 해석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주의적ㆍ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루카치, 그람시 등의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여 마르크스주의를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프로이트로부터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의 개념을 빌어와 궁극적인 결정요인은 인간이 아니라 경제구조라고 했다. 그러나 알튀세르, 풀란차스(Nicos Poulantzas) 등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치구조, 이데올로기 구조 등을 경시하지 않는다.

또한 경제가 궁극적인 결정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구조들이 단순히 경제의 반영이라고 하는 환원론적인 견해를 비판한다. 결국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즉 이들 구조는 독립된 발전 경로를 가질 수 있으며, 어느 지점에 가서는 사회의 지배적인 힘으로 대두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행위자는 구조 안의 어떤 위치를 단순히 점할 뿐이다. 즉 행위자들은 이 구조에 구속받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실천에 참여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이 구조적인 체계의 붕괴를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에는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체계내부의 모순에 있었다. 즉 행위자가 직면하는 모순보다는 구조들 상호간의 모순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알튀세르가 인간 주체성에 대한 어떤 인과적 영향을 거부하고 엄격한 구조적 결정론을 주장함으로써 이에 대한 비판이 풀란차스와 밀리반드(R.Miliband)의 논쟁을 통해서 제기되었다. 구조주의는 사회생활에서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역할을 강조하고 진보의 관념이 내재해 있는 역사에 자신들의 사상적 기초를 둔 루카치, 그람시, 비판이론과 정면으로 대립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구조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사회에 대한 엄격한 과학과 휴머니즘 경향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오랜 긴장을 새롭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두산백과>

요약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 현대 철학 사상의 한 경향이다.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매우 폭넓은 지적 분야를 포괄하는 이론으로 언어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미학과 정치이론 등의 발달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곧 구조주의는 단순히 철학의 한 유파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그로부터 비롯된 학문적 방법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구조주의는 사물의 참된 의미가 사물 자체의 속성과 기능에서가 아니라, 사물들 간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세계 안에서 사물은 언제나 다른 사물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그 관계망 안에서 사물이 지니는 위치에 따라 사물의 의미는 규정되며 변화한다. 따라서 사물의 의미는 개별적으로 인식될 수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부분으로 삼고 있는 전체 체계와 구조 안에서 사물의 의미는 비로소 인식될 수 있으며, 체계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의미도 변화한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전체 체계 안에서 사물들의 관계를 기술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포괄하고 그것들의 최종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구조와 체계의 원리를 밝히려 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의 특징을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정신 그 자체의 항구적인 구조를, 정신이 세계를 경험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조직할 수 있기에 소용되는 조직화의 카테고리 및 형식을 분명히 탐구하는 것 (Fredric Jameson, The Prison-House of Language : A Critical Account of Structuralism and Russian Formalism)' 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의 인식과 방법론은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언어학에서 그 계기를 마련하였다. 소쉬르는 언어 현상에서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을 구분한다. 촘스키(Noam Chomsky)의 개념 구분에 따르면 빠롤은 개개의 언어수행(performance), 랑그는 그에 앞서서 존재하며 그것을 생성시키는 언어능력(competence)에 해당한다. 예컨대 일상의 언어 생활은 음성언어와 문자 등을 이용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언어 체계의 규칙들과 약속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랑그는 빠롤을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만 빠롤의 전제가 되며, 그것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그리고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체계'이다. 그런데 기호의 두 가지 측면, 곧 그것이 표시되는 형식(기표, signifier)과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의미(기의, signified)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무’라는 낱말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언어 체계 안에서 다른 낱말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곧 기호는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언어 체계 안에서 다른 기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것의 의미는 전체 체계에서 독립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언어를 역사적인 변화와 관련된 통시적인(diachronic)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공시적(synchronic)인 관점에서, 곧 각 요소들의 상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자기충족적인 체계와 구조로서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소쉬르는 언어학에서 구조주의적 인식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그의 언어학적 모델은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들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레비스트로스(Cloude Levi-Strauss, 1908~2009)는 인류학에 구조주의의 인식과 방법을 적용하였고, 구조주의를 현대 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적 도구가 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구조주의의 방법을 원용하여 신화와 상징, 친족관계를 조직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인류 사회 더 넓게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구조를 밝혀내려 하였다. 그리고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사회에서 의미의 형성을 궁극적으로 구조화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기호 체계에 주목하여, 현대 대중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작용 과정을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소쉬르의 언어학 모델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적용해 구조주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는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며 무의식의 고유한 논리적 구조를 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는 마르크스주의를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실존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인 해석을 비판하려 하였다.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는 한 시대의 지식의 기호체계인 인식성(episteme)이 연속적인 발전이 아니라 비연속적인 비약과 단절의 구조를 지닌다는 것을 논증하며, 문화적 변동을 심층적으로 규정하는 언어와 사상의 무의식적 법칙을 밝히려 했다. 그는 이 인식성이 인간 주체에 앞서 존재하며, 인간 주체의 모든 사상과 행위의 특수한 형태를 조건 짓는다고 규정한다.

이렇듯 구조주의는 언어학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에 이르러 문학, 인류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모든 인문 사회학 분야에 폭넓게 확산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구조주의의 중심적인 개념의 대부분은 언어학과의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구조주의자들은 언어와 기호에 대한 탐구로부터 인간의 사회 문화적 행위를 규정하는 구조적 체계와 법칙을 밝히려 했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구조적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내줄 뿐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조주의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대 사회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지배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주의는 인간 주체에 앞선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실존주의 등의 인간중심적인 사유와 대립하며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른바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로 분류되기도 하는 라캉, 푸코 등의 사상은 탈근대주의(post-modernism) 논의의 형성과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