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
Ⅰ. 들어가기
Ⅱ. 경전에 나타난 16인과 16나한
1.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2. 발타바라와 빈두로
Ⅲ. 빈두로의 두 가지 성격
1. 빈두로의 호법
1) 빈두로의 신통력을 꾸짖음
2) 빈두로와 4대성문
2. 빈두로의 복전
Ⅳ. 500나한의 결집과 존명
1. 500아라한과 결집
2. 500나한의 존명
Ⅴ. 나가기
한글요약
나한신앙은 관음신앙이나 지장신앙 등과 같이 신앙의 대상이 한 분이
아니다.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및 나반존자까지 포함하면, 신앙대상의
숫자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운문사를 비롯한 거조암과 기림사
등의 나한전에는 16나한과 500나한의 존상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본고
는 이 나한신앙들의 성격이 동일한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우선, ��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이하, ��법주기��)를 소의경전으
로 하는 16나한신앙의 성립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는데, 하나는
‘16’의 숫자이며, 다른 하나는 16인의 상수에 관해서이다.
경전에 나타난 ‘16’과 관련한 인물에 대한 용어는, ‘16재가보살’, ‘16현
사’, ‘16정사’ 등이다. 이들 용어와 16나한 성립의 관련성은, ‘16’이라는 숫
자의 공통성과 이들의 상수인 발타바라가 16나한에서는 제6존자로 상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나한의 상수는 발타바라가 아닌 빈두로라
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빈두로사상은 ��법주기�� 성립 이전부터 존재하였지만, 5세기에 한역된 ��입대승론��과 ��치선병비요법�� 등에는 빈두로를 대승이 아닌 성문이라고
설한다. 그런데, 학자들은 ��법주기��가 소승적 성격으로 독립된 신앙이었
던 빈두로신앙을 대승적으로 발전시켰으며, 나아가 나한의 개념도 대승
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들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빈두로가 성문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빈두로는 호법과 복전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호법
은 붓다의 꾸짖음과 4대성문 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지만, 500나한과
함께 봉안된 16나한은 복전보다는 호법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500나한은 붓다의 재세시는 물론 전생담에도 자주 등장하여, 붓다와
다양하고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그러나 본고는 16나한을 함께 봉안하
는 500나한의 성격을 붓다 열반 후 제1차 결집과 관련하여 규명하였다.
즉, 법장을 결집한 500나한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16나한은 호법의 상징이며, 500나한은 법장의 결집이라고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찰에서는 500나한전에 16나한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11
본고에서는 한국 나한신앙의 특징인 나반존자신앙에 대한 고찰은 생략
하였다. 이는 향후의 과제로 하고자 한다.
주제어
나한신앙, 16나한, 500나한,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발타바라, 빈
두로, 법주기, 운문사, 거조암, 기림사.
12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Ⅰ. 들어가기
한국 사찰의 경내에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나한전이나 응진전 등
의 전각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경남 청도군 운문면에 소재한 운
문사에는 500나한전을 비롯하여 16나한전, 그리고 칠성각에는 독성단
이 있으며, 산내암자인 사리암에는 나반존자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과 기림사의 응진전에는 500나한상 뿐만 아
니라, 16나한상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나한신앙은 관음신앙이나 지장신앙과 같이 신앙대상이 한 분이 아
니다. 독성,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등으로 신앙대상의 숫자가 다양
하다. 이와 같은 나한신앙의 특성 때문에 운문사 등에서는 모든 나한
신앙을 한 도량에, 또는 한 전각 안에 봉안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데, 이와 같은 나한신앙에 대하여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독성과 16나한, 500나한 등의 성격은 모두 동일한 것인가? 동
일하기 때문에 한 전각 내에 봉안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16’과 ‘500’
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혹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한 전각 내에 봉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종래의 나한연구는 대부분 16나한상과 500나한도 등을 중심으로 한
도상학적인 연구가 중심이었다. 1) 때문에, 논자의 의문을 해결해 줄
1) 홍윤식, 「조선초기 지은원소장 500나한도와 그 산수화적 요소」, ��미술사
학연구�� 1-13, 1986; 신은미, 「조선후기 16나한도 연구 -화보도상의 수용
과 전개를 중심으로」, ��강좌 미술사�� 27, 2006; 신광희, 「여수 흥국사 십
육나한도 연구」, ��미술사학연구�� 255, 2007; 정은우, 「남양주 흥국사의 조
선전기 목조16나한상」, ��동악미술사학�� 10, 2009; 신광희, 「조선 후기 십
육나한도상의 계승」, ��東岳美術史學�� 10, 2009; 신광희, 「L.A. County
Museum of Art 소장 향림사 <라한도>」, ��동악미술사학�� 11, 2010; 김희
경, 「조선후기 조각승 색난의 십육나한상연구」, ��선문화연구�� 8, 2010; 김
희경, 「수연(守衍) 作나주 다보사 영산전 16나한상(1625)과 그 의의」, ��미
술사와 문화유산�� 2, 2014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13
나한신앙에 대한 근본적이고 면밀한 연구는 부진하였다.
본 발표는 이와 같은 문제점과 의문을 해결하고, 다양한 나한신앙
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경전을 근거
로 한 문헌적 고찰이 중심이며, 연구대상은 16나한과 500나한으로 한
정하고자 한다.
Ⅱ. 경전에 나타난 16인과 16나한
1.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16나한신앙의 성립은 현장이 645년에 한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
소설법주기��2)(이하, ��법주기��)에 의한다. ��법주기��에는 ‘16대아라한’이
라는 용어와 함께, 16나한의 존명과 권속, 주처, 역활 등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에 16나한신앙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논자는 16나한신앙의 성립과정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
고자 한다. 하나는 ‘16’이라는 숫자이며, 다른 하나는 인물, 특히 상수
와의 관련성이다.
우선, ‘16’에 대하여 살펴보자. 경전에는 ‘16’과 관련한 인물들에 대
한 용어가 나타나는데, ‘16재가보살’ ‘16현사賢士’ ‘16정사正士’가 그것
이다.
16재가보살은 ��대지도론��에서 보처보살의 계위를 계승한 보살들에
대한 설명에서 등장한다.
신광희, 「조선 18세기 나한도의 신경향」, ��불교학보�� 72, 2015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2) ��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大正藏49)
14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이름은 발타바라보살, 라나가라보살, 도사보살, 나라달보살, 성득
보살, 수천보살, 주천보살, 대의보살, 익의보살, 증의보살, 불허견보
살,선진보살,세승보살, 상근보살,불사정진보살,일장보살,불결
의보살,관세음보살,문수시리보살집보인보살,상거수보살,미륵보
살이다. 이와 같은 무량한 천 만억 나유타의 보살마하살이 모두 보
처보살의 존귀한 계위를 계승한 분들이다. … 중략 … 이와 같은
보살은 너무 많거늘 어찌 유독 22명의 보살 이름만 말하는가?
… 중략 … 이 중에는 두 종류의 보살이 있다. 재가와 출가이다. 선
수(발타바라) 등 16명의 보살은 재가보살이다. … 중략 … 선수보살
은 무엇이 수승하여 제일 먼저 말한 것인가? … 중략 … 선수보살
은 왕사성에서 오래 산 사람이고, 백의보살(재가보살) 가운데 제일
대보살이다. 붓다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반야바라밀을 설하시기를
원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청하였다. 3)
보처보살의 계위를 지닌 보살들이 무량하지만, 22명만을 들어 말한
이유는 재가보살과 출가보살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타바라보
살부터 일장보살까지가 16재가보살이며, 불결의보살부터 미륵보살까
지는 출가보살인 것이다.
재가보살 중에서 발타바라, 즉 선수보살을 상수로 한 이유는 왕사
성에서 오래 주하였으며, 재가보살 중의 제일이며, 붓다께 반야바라밀
을 설하시기를 가장 먼저 청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보적경��4)에서는 “16명의 재가보살이 있었으니 발타바라가 상수
3) ��大智度論�� 권7, (大正藏25, 111a), “其名曰颰陀婆羅菩薩(秦言善守) 剌那
伽羅菩薩(秦言寶積) 導師菩薩那羅達菩薩星得菩薩水天菩薩主天菩薩大
意菩薩益意菩薩增意菩薩不虛見菩薩善進菩薩勢勝菩薩常勤菩薩不捨
精進菩薩日藏菩薩不缺意菩薩觀世音菩薩文殊尸利菩薩(秦言妙德) 執寶
印菩薩常舉手菩薩彌勒菩薩如是等無量千萬億那由他諸菩薩摩訶薩皆是
補處紹尊位者…중략… 問曰如是菩薩衆多何以獨說二十二菩薩名…중
략… 是中二種菩薩居家出家善守等十六菩薩是居家菩薩…중략… 問曰
善守菩薩有何殊勝最在前說…중략… 以善守菩薩是王舍城舊人白衣菩薩
中最大佛在王舍城欲說般若波羅蜜以是故最在前說”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15
이다.”5)고 간략히 설하고 있지만, 16재가보살의 상수가 발타바라인
점은 ��대지도론��의 내용과 동일하다.
다음은 16현사에 관해서이다.
16현사는 구마라집(344-413)역 ��사익범천소문경��, 불타발타라(359-429)
역 ��불설관불삼매해경��,6) 저거경성(?-464)역 ��치선병비요법��,7) 만타
라선이 503년에 한역한 ��보운경��,8) 등에 출전한다. 대부분은 “발타바
라 등 16현사”라고만 하여, 16명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데, ��사익범
천소문경��에는 16현사의 명칭을 모두 밝히고 있다.
발타바라 등 16현사. 발타바라보살 보적보살 성덕보살 제천보살 수
천보살 선력보살 대의보살 수승의보살 증의보살 선발의보살 불허견
보살 불휴식보살 불소의보살 도사보살 일장보살 지지보살9)
16현사 역시 발타바라가 상수이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보살’이라
고만 해서 재가보살을 지칭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16정사는 ��지심범천소문경��, ��불설해룡왕경��, ��불설장
엄보리심경��, ��불설대방광보살십지경�� 등에서 설하고 있는데, 경전에
4) 보리류지(572-727)가 한역한 ��대보적경��은 독립적으로 성립하였던 49개의
경전을 집대성하여 하나로 엮은 것이다.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2세기에
서 5세기 사이에 성립되었다. (��大藏經全解說大事典�� p.87. (N310 ��大寶
積經��))
5) ��大寶積經�� 권115, 「無盡慧菩薩會第四十五」(大正藏11, 648a), “復有十六在
家菩薩跋陀婆羅而為上首”
6) ��佛說觀佛三昧海經�� 권1, 「六譬品第一」(大正藏15, 645c), “跋陀婆羅十六賢
士”
7) ��治禪病祕要法�� 권상, 「治阿練若亂心病七十二種法」(大正藏15, 335c), “跋
陀婆羅等十六賢士”
8) ��寶雲經�� 권1, (大正藏16, 209a), “跋陀婆羅等十六賢士”
9) ��思益梵天所問經�� 권1, (大正藏15, 33b), “跋陀婆羅等十六賢士跋陀婆羅菩
薩寶積菩薩星德菩薩帝天菩薩水天菩薩善力菩薩大意菩薩殊勝意菩薩
增意菩薩善發意菩薩不虛見菩薩不休息菩薩不少意菩薩導師菩薩日藏
菩薩持地菩薩”
16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따라 상수가 다르다.
구마라집역 ��불설장엄보리심경��과 472년에 길가야가 한역한 ��불설
대방광보살십지경��에서는 ‘발타바라’가 16정사의 상수이다.10) 그런데,
축법호(231-308)역 ��불설해룡왕경��에서는 ‘해박’을 상수로 한다.11)
한편, 축법호역 ��지심범천소문경��은 16현사의 이름을 전부 설하는
데, ‘현호’가 상수이다.
현호 등 16정사. 현호 보사 은시 제천 수천 현력 상의 지의 증의 선
건 불허견 불치원 불손의 선도 일장 지지 이와 같은 무리이다.12)
이상의 고찰을 통하여 몇 가지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등의 용어는 ��법주기�� 이전에만
사용되었다.
둘째,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일부의 상수는 발타바라이다.
셋째, 발타바라는 재가보살이다.
2. 발타바라와 빈두로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등이 16나한신앙의 성립에 직접적인 영
향을 끼쳤다면, 16나한의 상수는 발타바라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그가 아니라면, 해박 내지는 현호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법주기��는 16나한의 존명을 아래와 같이 설하며, 빈도라발
라타도, 즉 빈두로를 상수로 한다.
10) ��佛說莊嚴菩提心經�� 권1, (大正藏10, 961b); ��佛說大方廣菩薩十地經��(大
正藏10, 963b), “跋陀婆羅等十六正士”
11) ��佛說海龍王經�� 권1, (大正藏15, 131c), “解縛等十六正士”
12) ��持心梵天所問經�� 권1, (大正藏15, 1a), “賢護之等十六正士賢護寶事恩
施帝天水天賢力上意持意增意善建不虛見不置遠不損意善導日
藏持地如是之類”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17
제1존자명 빈도라발라타도 제2존자명 가낙가벌차 제3존자명 가낙가
발리타도 제4존자명 소빈타 제5존자명 낙거라 제6존자명 발타라 제
7존자명 가리가 제8존자명 벌도라불다라 제9존자명 수박가 제10존
자명 반탁가 제11존자명 라호라 제12존자명 나가서나 제13존자명
인게타 제14존자명 벌나파사 제15존자명 아씨다 제16존자명 주도반
탁가13)
16나한 존명의 대부분이 ��법주기�� 이외에는 출전이 없기 때문에,
16인의 재가보살, 현사, 정사의 명칭과도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표1>
참조). 다만, 제1존자 빈도라발라타도와 제6존자 발타라, 그리고 제15
존자 아씨다14)는 다른 경전에도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인과 16나한신의 관련성은 16인의 상수인 발타바라가 ��법주기��에
서는 제6존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논거로 한다.
13) ��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大正藏49, 12c), “第一尊者名賓度羅跋囉
惰闍第二尊者名迦諾迦伐蹉第三尊者名迦諾迦跋釐墮闍第四尊者名蘇頻
陀第五尊者名諾距羅第六尊者名跋陀羅第七尊者名迦理迦第八尊者名伐
闍羅弗多羅第九尊者名戍博迦第十尊者名半託迦第十一尊者名囉怙羅第
十二尊者名那伽犀那第十三尊者名因揭陀第十四尊者名伐那婆斯第十五
尊者名阿氏多第十六尊者名注荼半託迦”
14) ��월등삼매경��에 의하면 아씨다는 붓다가 왕사성에서 일생보처보살들과
함께 계실 때, 상수였다고 한다.; ��月燈三昧經�� 권1, (大正藏15, 549a),
“如是我聞一時婆伽婆住王舍城耆闍崛山與大比丘衆百千人俱菩薩八十那
由他皆一生補處阿氏多菩薩摩訶薩而為上首”
18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표1> 16인과 16나한 존명대조표
대지도론
(16재가보살)
사익범천
소문경
(16현사)
지심범천
소문경
(16정사)
법주기
(16나한)
제1 颰陀婆羅
(善守)菩薩
跋陀婆羅菩薩賢護賓度羅跋囉惰闍
제2
剌那伽羅
(寶積)菩薩
寶積菩薩寶事迦諾迦伐蹉
제3 導師菩薩星德菩薩恩施迦諾迦跋釐墮闍
제4 那羅達菩薩帝天菩薩帝天蘇頻陀
제5 星得菩薩水天菩薩水天諾距羅
제6 水天菩薩善力菩薩賢力跋陀羅
제7 主天菩薩大意菩薩上意迦理迦
제8 大意菩薩殊勝意菩薩持意伐闍羅弗多羅
제9 益意菩薩增意菩薩增意戍博迦
제10 增意菩薩善發意菩薩善建半託迦
제11 不虛見菩薩不虛見菩薩不虛見囉怙羅
제12 善進菩薩不休息菩薩不置遠那伽犀那
제13 勢勝菩薩不少意菩薩不損意因揭陀
제14 常勤菩薩導師菩薩善導伐那婆斯
제15 不捨精進菩薩日藏菩薩日藏阿氏多
제16 日藏菩薩持地菩薩持地注荼半託迦
그렇다면, 경전에는 발타바라와 빈두로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A-1 빈두로존자 라후라존자 등 16인의 모든 대성문들은 여러 세계
(渚)에 흩어져 있다.15)
15) ��入大乘論�� 권상, (大正藏32, 39c), “尊者賓頭盧尊者羅睺羅如是等十六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19
A-2 그가 대승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사바 선재 등 500동자들이
그를 위해 대승법을 연설한다. 그로 인해 그는 발타바라 등 16현사
들을 보게 되고, 또 현겁에 미륵 등 천 보살을 보게 되며, 이로 인
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6바라밀을 갖추게 된다. 또
그가 성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존자 빈두로가 그를 위해 4념처법
과 내지 8성도법에 이르기까지 연설하여 90일이 지나면 그는 아라
한도를 얻게 된다.16)
A-1은 견의(350-400)가 저술하고, 437년에 한역된 ��입대승론��이며,
A-2는 455년에 한역된 ��치선병비요법��으로, 울화병의 치료법을 설한
것이다.
A-1에서는 16성문이라는 용어가 나오며, 상수는 빈두로임을 강조
하고 있다.
A-2는 환자가 대승의 마음을 가지면 발타바라와 16현사를 친견할
것이고, 성문의 마음을 내면 빈두로를 친견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발타바라는 대승과, 빈두로는 성문과 연관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5세기 무렵에는 빈두로를 대승이 아닌 성문이라고 하고
있으며, 16성문의 개념은 ��법주기�� 이전에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빈두로사상은 ��법주기�� 성립시기에 새롭게 발생한 것이 아니
라, 이전부터 존재했던 사상인 것이다.
학자들은 말하기를 “빈두로신앙이 처음에는 소승적 요소를 많이 갖
고 단독신앙으로 출발하였지만, 이것을 대승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법
주기��이며, 이 ��법주기��에 근거한 것이 16나한신앙이다. 따라서 기존
의 빈두로 단독신앙과 16나한 중의 빈두로와는 구별해서 생각할 필
人諸大聲聞散在諸渚.”
16) ��治禪病祕要法�� 권상, 「治阿練若亂心病七十二種法」(大正藏15, 335c), “若
發大乘心者闍婆善財等五百童子為說大乘法因是得見跋陀婆羅等十六賢
士亦見賢劫彌勒等千菩薩因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具六波羅蜜發聲聞
心者尊者賓頭盧為說四念處法乃至八聖道分經九十日得阿羅漢道”
20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요가 있다.”17) 또는 “소승적 개념의 나한이 ��법주기��에서 대승적 성
격을 띠는 나한으로 변화하였다.”18)고 한다.
즉, ��법주기��의 성립은 소승적 성격으로 독립된 신앙이었던 빈두로
신앙을 대승적으로 발전시켰으며, 나아가 나한의 개념도 대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빈두로신앙
의 대승적 요소’와 ‘나한의 대승적 개념’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서 비판 없이 수용하기는 어려우며, 이 견해들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빈두로에 대한 고찰을 통
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 빈두로를 상수로 설한 것은 ��아육왕경��이다. 아육왕은 수많
은 대중이 모인 가운데, 첫 번째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야사에
게 물었다.
“첫 번째 자리에는 어찌하여 아무도 없습니까?”
야사가 대답했다.
“그 자리는 첫째 상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또 말했다.
“대덕 말고도 또 다른 상좌가 더 계십니까?”
야사가 대답했다.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 중에 능히 사자후를 하신 분
이 계시는데, 그 분이 첫째입니다. 그 분의 성은 파라타이고 이름은
빈두로라고 하는데, 첫 번째 자리는 바로 그 분이 앉으실 곳입니다.”19)
17) 이선형, 「중국 남송대 십육나한도의 도상연구」, ��미술사학연구�� 59-89,
(1989) pp.64-65.
18) 최성은, 「천안 성불사 고려시대 마애십육나한상」, ��문화재�� 33, (2000)
p.164.
19) ��阿育王經�� 권3, 「供養菩提樹因緣品第三」(大正藏50, 139c), “時阿育王說
此言已有三十萬比丘和合阿羅漢十萬學人二十萬及精進凡夫無數於衆僧
中上座一處無有人坐時阿育王白六通上座耶舍言第一坐處何故無人答言
此是第一上座之處王又白言除大德外更有上座耶答言有佛說弟子中有能
師子吼此為第一姓頗羅墮名賓頭盧第一坐處是其所坐”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21
��아육왕경��은 승가바라(479-524)가 한역하여, 경문 A의 두 경전보
다 시대적으로는 조금 늦다. 때문에, 빈두로가 상수로 자리매김된 것
은 5세기 후반이나 6세기 초가 된다. 이는 7세기에 성립되는 16나한
의 상수가 될 수 있는 경전적 근거가 된 것이다.
한국의 16나한신앙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보인다.
(수로왕) 즉위 2년 계묘 정월(43년)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서울을
정하려 한다.” 이내 임시 궁궐의 남쪽 신답평에 나가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고 좌우 사람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이 땅은 협소하기가 여
귀 잎과 같지만 수려하고 기이하여 16나한이 살 만한 곳이라 할 수
있다.”20)
위의 내용에 의하면, 한국의 16나한신앙은 2세기 중반에 시작되고
있어 상당히 빠르다. 하지만, 16나한신앙은 7세기에 성립되었다는 것
이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이 사료는 상당한 문제성을 보이고 있
다.
때문에, ��삼국유사��의 기록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으며, 16나한신앙
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가 저술된 고려시대에 성행하고 있었던 16
나한신앙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는 본 발표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고자 한다.
Ⅲ. 빈두로의 두 가지 성격
20) ��三國遺事�� 권2, 「駕洛國記」, “二年癸卯春正月王若曰朕欲定置京都仍駕
幸假宫之南新畓坪四望山嶽顧左右曰此地狹小如蓼葉然而秀異可為十六
羅漢住地”
22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1. 빈두로의 호법
1) 빈두로의 신통력을 꾸짖음
빈두로는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불법을 지켜
야하는 호법의 의무가 있다. 이는 붓다가 함부로 신통을 보인 빈두로
에게 내린 명이다. 이에 대하여 경문을 살펴보자.
B-1 너는 어찌하여 그런 신통력을 부리느냐? 내 이제 너에게 벌을
주리라. 너는 언제나 이 세상에 있으면서 열반에 들지 말고 내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켜 멸하지 않게 하라.21)
B-2 내가 천하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세상을 제도하고자함이
다. 그런데, 이제 너는 시간을 잊어버리고 또 한 사람을 죽였다. 인
명은 지극히 중한 것이고 또 우리 도에서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너는 이제부터는 나를 따라와 공양하지도 말고 여러 사람의 모임에
참여하지도 말라. 너는 마땅히 머물러 있다가 뒤에 미륵불이 출세하
시거든 그 때 열반에 들라.22)
B-3 붓다는 갖가지 인연을 들어서 빈두로를 꾸짖으셨다. “어찌하여
비구라 이름 하면서 나형외도의 물건(발우)을 구하고자 아직 구족계
를 받지 않은 사람 앞에서 인간 세상에 없는 성스러운 법을 나타냈
느냐” … 중략 … 가책을 마치시고는 파라타에게 말씀하였다. “이
길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너를 승가에서 내쫒을 것이니, 너는 이 염
부제에 머물지 말아라.” 그는 쓰던 와구와 평상등을 반환하고 법의
와 발우를 지니고서 선정에 들어 염부제에서 몸을 감추어 구야니에
21) ��雜阿含經�� 권23, 「604」(大正藏2, 170a), “時世尊責我汝那得現神足如是
我今罰汝常在於世不得取涅槃護持我正法勿令滅也”
22) ��佛說三摩竭經��(大正藏2, 845a), “佛告賓頭盧我教天下人欲令悉度世今汝
既失期復殺一人人命至重是我道所不喜汝從今已後不得復隨我食及與
衆會若當留住後須彌勒佛出迺般泥洹去耳”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23
그 몸을 나타내었다.23)
B-1은 ��잡아함경��, B-2는 3세기에 한역된 ��불설삼마갈경��, B-3은
��십송률��이다.
B-1은 붓다가 사위국에서 5백 아라한들과 함께 부루나발타나국의
공양청을 받았을 때, 빈두로가 큰 산을 끌고 가는 신통을 부린 내용
이다.
B-2는 B-1을 각색한 것으로 보이며, 빈두로가 붓다를 뵈러 갈 때
큰 산이 빈두로를 따라 갔는데, 임신한 여인이 그 광경을 보고 겁을
먹고 두려워하여 낙태를 한 내용이다.
B-3은 외도인 수제장자가 전단향 발우를 높이 걸어놓은 것을 빈두
로가 신통력으로 발우를 가져온 내용이다.24)
경문 B는 내용이 조금씩 상이하기는 하지만, 빈두로의 호법은 자서
自誓가 아니며, 신통력을 함부로 보인 것에 대한 붓다의 경책이라는
점은 공통하고 있다.
특히, B-3에서는 빈두로를 염부제가 아닌 구야니로 거처를 옮기게
한다. 이는 ��살바다비니비바사��에서도 “구야니의 경우는 붓다가 빈두
로를 그곳으로 보내어 불사를 크게 일으켜 4부대중이 있다.”25)고 한
다. 또한, ��대방변불보은경��에서는 “사천하로 말하자면, 오직 세 천하
인 염부제와 구야니와 불파제와 세 천하의 중간인 바다 섬 위의 사
23) ��十誦律�� 권37, 「雜誦中調達事之二」(大正藏23, 269b), “種種因緣呵責言
云何名比丘為赤裸外道物故未受大戒人前現過人聖法…중략… 呵責已
語頗羅墮盡形壽擯汝不應此閻浮提住賓頭盧受佛教已頭面禮佛足右遶還
自房所受僧臥具床榻盡以還僧持衣鉢入如是定於閻浮提沒瞿耶尼現”
24) 빈두로와 수제장자의 발우에 관한 내용은 ��비나야��, ��사분률��, ��경률이
상��, ��법원주림�� 등에 전한다.; ��鼻奈耶�� 권6, 「二不定及三十捨墮法」(大
正藏24, 877b); ��四分律�� 권51, 「雜揵度之一」(大正藏22, 946b); ��經律異相��
권29, 「難國王因兒婦得解四」(大正藏53, 156c); ��法苑珠林�� 권42, 「聖僧部
第三」(大正藏53, 609c)
25) ��薩婆多毘尼毘婆沙�� 권1, 「總序戒法異名等」(大正藏23, 503c), “如瞿耶尼
佛遣賓頭盧往彼大作佛事有四部衆”
24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람들만이 모두 계율을 얻느니라. 구야니 같은 경우에는 붓다께서 빈
두로를 거기에 파견하여 크게 불사를 지어서 4부 대중들이 있다.”26)
고 하여, 구야니에는 빈두로로 인하여 불사를 지음을 말하고 있다.
2) 빈두로와 4대성문
빈두로 호법은 앞에서 살펴 본 신통력과는 무관한 4대성문과 관련
된 내용이 있다.
C-1 어느 때 붓다는 라열성 가란다죽원에서 대비구 5백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네 명의 큰 성문들이 한곳에 모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다 같이 이 라열성을 살펴보자. 누가 붓다와 법과 승가를 공
양하고 받들지 않아 공덕을 짓지 않고 있는가. 본래부터 마음이 없
는 이라면 마땅히 권유해서, 그로 하여금 여래와 법과 승가와 대목
건련존자 가섭존자 아나율존자 빈두로존자를 믿게 하자.”27)
C-2 어느 때 붓다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 중략 … 그 때 세존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
는 이제 늙어 나이 80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 여래에게는 이 세상을
교화할 수 있는 큰 성문이 네 사람 있다. 그들은 지혜가 끝이 없고
온갖 덕을 두루 갖추었다. 그 네 사람이란 이른바, 대가섭 비구, 군
도발한비구, 빈두로비구, 라운비구이니라. 너희들 네 큰 성문은 결코
반열반에 들지 말라. 내 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뒤에 반열반에 들라.”28)
26) ��大方便佛報恩經�� 권6, 「優波離品第八」(大正藏3, 160c), “以四天下而言
唯三天下閻浮提拘耶尼弗婆提及三天下中間海洲上人一切得戒如拘耶
尼佛遣賓頭盧往彼大作佛事有四部衆”
27) ��增壹阿含經�� 권20, 「聲聞品第二十八」(大正藏2, 646c), “一時佛在羅閱城
迦蘭陀竹園所與大比丘衆五百人俱是時四大聲聞集在一處而作是說我
等共觀此羅閱城中誰有不供奉佛法衆作功德者由來無信者當勸令信如來
法僧尊者大目揵連尊者迦葉尊者阿那律尊者賓頭盧”
28) ��增壹阿含經�� 권44, 「十不善品第四十八」(三)(大正藏2, 788c), “一時佛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25
경문 C는 ��증일아함경��으로, 두 경문의 내용이 각 품에 따
라서 다르다.29)
C-1은 「성문품」으로 호법을 부촉하는 내용은 아니다. 라열성에서
삼보를 믿지 않는 자에게 발심할 수 있게 하는 4명의 성문으로 목건
련, 가섭, 아나율, 빈두로를 들고 있다. 이 4대성문이 ��오분률��에서는
가섭, 목련, 아나율, 빈두로30)의 순으로 가섭과 목련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C-2는 「십불선품」인데, 붓다는 가섭, 군도발한, 빈두로, 라운의 4대
성문에게 호법을 부촉하고 있다. 이 4대성문은 축법호가 한역한 ��불
설미륵하생경��에서는 가섭, 도발탄, 빈두로, 라운31)의 순으로, 동진시
대(317-419)에 한역된 ��사리불문경��에서는 가섭, 빈두로, 군도반탄,
라후라32)의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C-1과 C-2에서 설하는 4대성문의 이름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두 경문 중에 목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시대가 앞선다. 왜냐하면,
목련은 붓다 생존 시에 열반한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련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C-2이 내용이 후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내
용의 전개로 보아도 호법부촉의 C-2가 후대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衆五百人俱…중략… 爾時世尊告迦葉曰
吾今年已衰耗年向八十餘然今如來有四大聲聞堪任遊化智慧無盡衆德
具足云何為四所謂大迦葉比丘君屠鉢漢比丘賓頭盧比丘羅云比丘汝等
四大聲聞要不般涅槃須吾法沒盡然後乃當般涅槃”
29) 동일한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각 품에 따라서 내용이 다른 것은, ��증일아
함경��이 수 많은 경전을 모아서 하나의 경전으로 성립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증일아함경��의 성립연대를 확정할 수는 없으며, 각 품의 성립연
대를 알 수 있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또한 본 경전의 번역 연대도
저본에 따라서 다르며, ��고려대장경��에는 승가발제로 되어 있다.
30) ��五分律�� 권26, 「第五分雜法」(大正藏22, 169c), “時四大聲聞迦葉目連阿
那律賓頭盧”
31) ��佛說彌勒下生經��(大正藏14, 422b), “云何為四所謂大迦葉比丘屠鉢歎比
丘賓頭盧比丘羅云比丘”
32) ��舍利弗問經��(大正藏24, 900b), “我去世後摩訶迦葉賓頭盧君徒般歎羅
睺羅四大比丘住不泥洹流通我法”
26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높다.
이상으로 4대성문과 관련한 빈두로의 호법은 빈두로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4명의 성문과 동등한 입장에서의 호법부촉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조은정은 “4대성문의 개념이 발전되어 16나한신앙이 성립되
었다.”33)고 한다. 그러나 이 설은 논지가 명확하지 않으며 추론적이
다. 논자는 위의 고찰을 통하여, 4대성문의 개념이 16나한신앙의 성립
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대성문은 빈두로신
앙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며, 이와 같은 배경을 지닌 빈두로신앙이
16나한신앙과 결합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34)
2. 빈두로의 복전
빈두로의 성격은 호법 이외에도 중생의 복전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관련내용은 경문 B와 동일하지만, 경문 B에는 복전에 대해서는 설하
고 있지 않다. 빈두로의 복전과 관련한 경문은 다음과 같다.
D-1 또 여러 경율을 상고해 보면, 붓다께서 큰 아라한인 빈두로로
하여금 멸도하지 않게 하고 불법을 전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는 항
상 3천하에서 중생들을 복되게 하고 생사를 벗어나게 한다.35)
33) 조은정, 「조선후기 16나한상에 대한 연구」, ��미술사학연구�� 3-32 (1989)
p.7.
34) 이선형, 「중국 남송대 십육나한도의 도상연구」, ��미술사학연구�� 59-89
(1989) p.61, “16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확
실하지 않다. 이것이 편의적으로 결정된 수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6
이라는 숫자가 불교적으로 중요한 수이며, 대승의 법수인 4의 4배수이기
때문에 어떤 상징성이 부연된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하
여, 4대성문과 16나한의 관련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35) ��法苑珠林�� 권30, 「羅漢部第六」(大正藏53, 511c), “又案諸經律佛令大阿
羅漢賓頭盧不得滅度令傳佛法每三天下福利群生令出生死”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27
D-2 ��사분율��에서 설하였다. 그 때 크기가 지극히 큰 넓은 바위에
앉아 몸을 공중에 날려 발우를 취해 가지고 돌아갔다. 붓다는 그를
꾸짖어 “왜 비구가 외도의 발우를 가지느냐, 또 계를 받지 못한 사
람 앞에서 신통을 부리느냐?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너를 물리쳐 염
부제에서 살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다. 이리하여 빈두로는 부처님의
명령을 따라 서방의 구야니에 가서 4부 대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널
리 폈다. 염부제의 4부 대중은 빈두로를 사모하여 붓다께 말하였다.
붓다는 그의 돌아옴을 허락하셨으나 앉아서 신통을 부렸기 때문에
열반에는 들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명령하여 말세의 4부 대중을
위해 그들의 복전이 되게 하시고, 그도 스스로 맹세하여 ‘3천하에서
누구든지 청하면 다 가리라.’고 하였다.36)
위의 경문 D는 ��법원주림��의 내용이다. D-1의 「나한부」에서는 ‘여
러 경율’이라고만 하였는데, D-2의 「성승부」에서는 ��사분율�� 이라고
인용 경문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사분율��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그 때에 붓다는 무수한 방편으로 빈두로를 꾸짖으셨다. “네가 한 짓
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요, 사문의 법이 아니요, 청정한 행이 아
니요,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바가 아니어늘 어찌하여 속인들
앞에서 신통을 나타내었느냐. 마치 음녀가 돈 한 푼을 위하여 여러
사람 앞에서 제 몸을 드러내는 것 같이, 너도 그리하여서 헌 나무
발우 하나를 위해 속인들 앞에서 신통을 나타내었느냐. 속인들
앞에서 신통을 나타내지 말라. 만일 나타내면 돌길라죄를 범한다.”37)
36) ��法苑珠林�� 권42, 「聖僧部第三」(大正藏53, 609c), “依四分律當時坐於方
石縱廣極大逐身飛空得鉢已還去佛聞呵責云何比丘為外道鉢而於未受戒
人前現神通力從今盡形擯汝不得住閻浮提於是賓頭盧如佛教勅往西瞿耶
尼教化四衆廣宣佛法閻浮提四部弟子思見賓頭盧白佛佛聽還坐現神足故
不聽涅槃勅令為末世四部衆作福田其亦自誓三天下有請悉赴”
37) ��四分律�� 권51, 「雜揵度之一」(大正藏22, 946b), “時世尊無數方便呵責賓頭
盧汝所為非非威儀非沙門法非淨行非隨順行所不應為云何於白衣前現神
28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이와 같이 ��사분율��에서는 빈두로 신통에 대한 꾸지람의 내용만
보인다. ��법원주림��에서 설하고 있는 중생의 복전이 되라고 하는 내
용은 설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빈두로의 복전은 어느 경전에서 시작된 것인가?
빈두로존자가 말하였다. “대왕의 말씀처럼 게타바리 범지는 많은 수
(千千)를 알지 못하여 세지 못하나니, 그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밝음이 없고 착하지 못하여 좋은 복밭이 못됩니다.” 그(빈두로)가 좋
은 복밭이 아니라고 한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밭을 가는
사람이 그 좋은 밭을 구별하지 못하면 그는 좋은 밭을 다루는 사람
이 아니다. 그는 또한 이 좋은 밭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또한 그
에 관심을 갖지도 않나니, 그를 좋은 밭 다루는 이가 아니라고 이른
다. 그는 또한 좋은 밭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고 또한 그에
관심을 갖지도 않나니 그를 좋은 밭 다루는 이가 아니라 이른다.”고
말했다. 또 곡식이 생기는 곳으로 인하여 그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
여 곧 좋은 밭이 있는 것을 아는데, 그런 까닭을 그는 알지 못하니
그를 좋은 밭 다루는 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38)
위는 1세기경에 성립하고, 384년에 승가발진 등이 한역한 ��존바수
밀보살소집론��의 내용이다. 빈두로는 어리석은 중생은 좋은 복전이
될 수 없다고 하여, 복전을 설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빈두로의 복전의 성격은 457년에 한역된 ��청빈두로법��에 계승되고
있다.
足猶如婬女為半錢故於衆人前自現汝亦如是為弊木鉢故於白衣前現神足
不應於白衣前現神足若現突吉羅”
38) ��尊婆須蜜菩薩所集論�� 권6, 「更樂揵度首」(大正藏28, 768c), “如尊者賓頭
盧說如大王所說揭陀婆梨梵志千千不覺不可計數如彼愚人無明不善非良
福田彼非良福田其義云何或作是說如耕田人不別良田彼謂非良田人彼
亦不知有此良田亦不染著是謂非良田彼亦不知有此無是亦不染著是謂
非良田復次穀子所生處別其好醜則知有良田是故彼不知是謂非良田”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29
천축국에서는 우바새, 국왕, 장자 등이 모든 법회를 열면 항상 빈두
로파라타서 아라한을 초청하였다. 빈두로는 이름이고 파라타서는 성
이다. 그는 수제장자를 위하여 신족통을 나타냈기 때문에 붓다께서
는 그를 배제하여 열반에 들기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명을 내려 말
법시대에 사부대중의 복전이 되도록 하셨다.39)
즉, ��청빈두로법��에서는 빈두로가 보인 신족통에 대한 꾸짖음을 호
법이 아닌 복전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선형은 “빈두로는 성문제자 중에 가장 먼저 호법의 사명을
부여받았으며, ��아육왕경��에서도 빈두로가 아육왕때 까지 살아있었던
유일한 제자로서 정법을 지키며 현세에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빈두
로신앙은 16나한신앙이 생기기 이전부터 단독신앙으로 존재해왔다.
즉 인도와 중국의 제소승사와 선종사찰에서는 빈두로를 성승으로 모
셔 음식, 옷, 목욕 등을 공양하는 공양법이 행해졌다.”40)고 말하고 있
다. 하지만, 이상의 고찰을 통하여, 빈두로의 호법은 빈두로 자신의
서원에 의한 호법이 아니며, 4대성문과도 관련성을 지니지만, 빈두로
는 4대성문의 상수가 아니었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도 등에서 빈두로를 상좌로 한 공양법이 행하여졌다고 하
는 점에도 살펴보아야할 내용이 있다. ��범망경고적기��에 “서역의 모
든 소승의 사찰에서는 빈두로가 상좌이고 모든 대승의 사찰에서는
문수사리가 상좌였는데, 대중들이 다 같이 모여서 보살계를 지니면서
갈마를 행하고 계를 설하여 모두가 보살의 법사를 지었으므로 보살
의 율장이 언제나 독송되어 끊이지 않았다.”41)고 하여, 빈두로는 소
39) ��請賓頭盧法��(大正藏32, 784b), “天竺國有優婆塞國王長者若設一切會常
請賓頭盧頗羅墮誓阿羅漢賓頭盧者字也頗羅墮誓者姓也其人為樹提長者現
神足故佛擯之不聽涅槃勅令為末法四部衆作福田”
40) 이선형, 「중국 남송대 십육나한도의 도상연구」, ��미술사학연구�� 59-89,
(1989) p.63.
41) ��梵網經古迹記�� 권상, (大正藏40, 689b), “西域諸小乘寺以賓頭盧為上座
諸大乘寺以文殊師利為上座合衆共持菩薩戒羯磨說戒皆作菩薩法事菩薩
30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승사원, 대승사원은 문수보살이 상좌였다고 한다.
또한, 이선형은 16나한의 대승적 성격을 세 가지로 들고 있는데, 첫
째, 불법수호는 빈두로가 처음인 점, 둘째, 숫적증가로, 이는 4배수를
골격으로 하고, 빈두로 한 명에서 출발하여 4대성문, 16대성문으로 확
산되었다고 하는 점, 셋째, ��법주기��에서 16나한과 권속들에게 호지정
법과 요익중생의 사명을 부촉한 점 등이다.42)
하지만, 16나한의 상수인 빈두로는 대승보살이기 보다는 성문이라
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생의 복전이라는 점만으로 16나한에 요
익중생이라는 이타적 성격의 사명이 첨가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재고
되어야 할 것이다.
Ⅳ. 500나한의 결집과 존명
1. 500아라한과 결집
500나한은 붓다의 재세시는 물론 전생담에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
이다.
붓다의 재세시에는 제바달다가 호재라는 술취한 코끼리를 풀어서
붓다를 해치려고 한 사건,43) 및 주리반특을 가르친 500나한44) 등의
내용에 등장한다.
전생담과 관련해서는 붓다가 사미발의 전생인연을 말씀하시는
律藏常誦不絕”
42) 이선형, 「중국 남송대 십육나한도의 도상연구」, ��미술사학연구�� 59-89,
(1989), pp.61-66.
43) ��雜寶藏經�� 권8, 「101 提婆達多放護財醉象欲害佛緣」(大正藏4, 488c)
44) ��經律異相�� 권17, 「朱利槃特誦一偈能解其義又以神力授鉢九」(大正藏53, 91a)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31
경,45) 붓다가 나무창에 발을 찔린 인연을 말씀하시는 경,46) 붓다가
말먹이는 보리를 잡수신 전생인 연을 말씀하시는 경47) 등에 등장한
다.
이와 같은 붓다와 500나한의 다양한 관계성 중에서, 논자는 붓다
열반 후 제1차 결집과 관련한 500나한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제1차 결집은 수많은 경전에 내용이 전하는데, 기원전후에 성립하
고, 축불념(4세기)이 한역한 ��출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려고 할 때에 대가섭과 아나율에게 말씀하셨
다. “너희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잘 받들고 부처의 말을 공경하고
섬겨라. 너희 두 비구는 바로 열반에 들지 말고, 먼저 계경과 계율
과 아비담과 보잡장을 집성한 뒤에 열반에 들어라.” 이와 같은 말씀
이 있고 나서 사리공양을 열흘 만에 모두 마쳤다. 그들은 함께 모여
이 경전들을 집성하였으며 500나한들은 모두 다 해탈을 얻었다.48)
2세기 중엽에 성립한 ��가섭결경��에도 “존자 가섭과 500나한이 모여
올바른 법률의 내용을 결집하려고 곧 나열기로 나아가 세납이 인정
되는 회합을 가졌다.”49)고 한다. 이외에도, ��비니모경��50) ��선견률비바
사��51) ��아육왕경��52) 등에도 내용이 전한다.
45) ��佛說興起行經�� 권상, 「佛說奢彌跋宿緣經第二」(大正藏4, 166a)
46) ��佛說興起行經�� 권상, 「佛說木槍刺脚因緣經第六」(大正藏4, 170a)
47) ��佛說興起行經�� 권하, 「佛說食馬麥宿緣經第九」(大正藏4, 172b)
48) ��出曜經�� 권1, 「無常品第一之一」(大正藏4, 611a), “佛臨欲般泥洹時告大
迦葉及阿那律汝等比丘當承受我教敬事佛語汝等二人莫取滅度先集契經
戒律阿毘曇及寶雜藏然後當取滅度廣說乃至供養舍利盡耶旬竟便共普會
集此諸經五百羅漢皆得此解脫”
49) ��迦葉結經��(大正藏49, 4c), “尊者迦葉五百羅漢欲合集結正法律義便詣羅
閱祇聚會歲臘”
50) ��毘尼母經�� 권4, (大正藏24, 818c)
51) ��善見律毘婆沙��, 「序品第一」(大正藏24, 675b)
52) ��阿育王經�� 권6, 「佛記優波笈多因緣第六」(大正藏50, 151a)
32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특히, ��오분율��에는 가섭이 제1차 결집을 위하여 노력한 모습을 기
록하고 있다.
가섭은 어디라야 음식과 평상자리와 침구가 풍족하여 넉넉히 충당
하면서 비니를 결집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오직 왕사성만이
풍족하게 베풀어 줄 수 있음을 알고는 곧 대중 가운데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이 가운데서 500아라한은 왕사성으로 가서 안거해야 하
며, 그 밖의 다른 이는 한 사람도 갈 수 없습니다.” 이런 규약을 만
든 뒤에 500아라한은 왕사성에 이르러 여름의 첫 달에는 방사와
침구를 보수하였고, 둘째 달에는 모든 선, 해탈에 노닐었으며, 셋째
달이 되어서야 함께 한 곳에 모였다.53)
500명의 아라한이 한 곳에 모여서 결집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500명이 필요로 하는 음식과 방사를 마련하고, 500
명이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한 달 동안은 선정을 닦기도 하였
다. 가섭은 500아라한 이외의 대중은 왕사성에서 안거를 하지 못하도
록 금하여, 결집에 대한 상당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3. 500나한의 존명
500나한의 존상구성이나 존명 등에 관해서 전부 기록한 경전은 없
다. 다만, 후한시대(25-220)에 한역된 ��분별공덕론��에서는 500나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존제자란 500나한을 말하며, (그들은) 각기 잘하는 바가 있다. 혹은
53) ��五分律�� 권30, 「第五分之九五百集法」(大正藏22, 190c), “於是迦葉作是念
何許多有飲食床坐臥具可得以資給集比尼唯見王舍城足以資給便於僧中
唱言此中五百阿羅漢應往王舍城安居餘人一不得去作是制已五百羅漢至
王舍城於夏初月補治房舍臥具二月遊戲諸禪解脫三月然後共集一處”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33
지혜 제일, 혹은 신족, 혹은 변재, 혹은 복덕, 혹은 수계, 혹은 지족
(知足), 혹은 설법 등이 각각 제일이 된다. 맨 위의 형과 막내인 아
우를 논하고자 한다면, 아야구린이 최장자가 되고, 수발이 제일 막
내가 된다. 이것이 불법의 계위에 있어 다음 가는 중요한 것이다.
만약 총명하고 널리 알아 통달한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곧 바라문의 법이다. 1,250인이라 하는 것은 항상 시종한 사람을 말
한다. 혹은 500인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아뇩달의 청을 받으셨
을 때 뽑힌 500명이 뒤따라서 용궁에 이르렀다.54)
위의 경문에 의하면, 500나한의 상수는 아약구린이며, 마지막 500번
째는 수발인데, 나머지 488명의 존명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500
나한의 상수와 마지막 500번째의 존명을 밝히고 있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아약구린은 붓다가 성도 후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한 5비구 가운데
한 명이며,55) 수발은 붓다의 열반직전에 설법을 듣고 제도된 바라문
이다. 즉, ��분별공덕론��에서는 붓다의 설법을 처음과 마지막으로 듣
고 제도된 자들을 500나한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원전 1세기경에는 성립된 ��나선비구경��에서도 500나한이
등장한다. 나선비구가 찾아간 화전사의 대중이 500명으로 모두 아라
한의 도를 얻은 이들이며, 상수는 ‘알파왈’로 그는 천상천하의 삼세의
일을 알고 있는 자라고 하였다.56) 즉, ��나선비구경��의 500나한은 붓
다 당시의 나한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54) ��分別功德論�� 권2, (大正藏25, 33b), “尊弟子者謂五百羅漢各有所便或智
慧第一或神足或辯才或福德或守戒或知足或說法各據第一欲論先兄
而後弟者以阿若拘隣最長以須跋為最小此佛法階次之大要若以聰哲博達
為元首者此乃是婆羅門法也云千二百五十者舉其常侍從者或云五百人
者佛受阿耨達請時簡五百人可者尋從至龍王宮”
55) ��佛說十二遊經��(大正藏4, 147a), “二年於鹿野園中為阿若拘隣等說法”
56) ��那先比丘經�� 권상, (大正藏32, 694a), “時國中有佛寺舍名和戰寺中有五
百沙門皆得羅漢道其中有第一羅漢名頞波曰能知天上天下去來現在之事
那先年至二十便受大沙門經戒便到和戰寺中至頞波曰所”
34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이와 같이, 경전에는 500나한의 존명이 일부분만 설하고 있다. 그런
데, 중국과 한국에서는 500나한의 존명이 모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
는 유물이나 문헌이 전한다. 물론, 이는 후대에 성립된 것으로, 이들
존명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933년 숭의崇義가 신흥사의 숭복원에 500나한 석상을
조성하면서 존명을 기록했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의 존명은 확인되
지 않으며, 현재 강소성 부근의 건명원에서 1134년에 만들어진 「乾明
院羅漢尊號碑」에 기록된 존명에 근거를 두고 있다.57) 물론 이 존호비
는 현존하지 않고, 17세기 명나라 말기에 다시 새긴 것과 관련문헌들
이 전해지지만, 중국에서는 일관되게 이 존명들이 사용되었다. 일본은
1643년에 쓰여진 ��나한존호비��58)가 유일한데, 이 문헌에 기록된 500
나한의 존명과 구성은 중국의 예와 동일하다.59)
한국에서 500나한의 존명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영천 거조
암에 전하는 ��오백성중청문��이다. 이 문헌은 1805년 영파성규가 편찬
한 것으로 10대제자, 16나한, 그리고 500나한의 존명과 봉청 절차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의식집이다. 서문에 의하면, ‘당시 500나한 조각
상을 보수하고 색을 바꾼 후 500성중을 맞이할 의식을 열고자 하였으
나 일찍이 내려오는 규범이 없어 사방에서 구하던 중 고려말 석왕사
에서 무학대사가 500나한을 모시고 행한 의례집을 한 권 얻게 되었고
이를 근거로 ��오백성중청문��을 정리하였다’고 편찬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고려 말 석왕사에서 무
학대사가 행한 의례집을 근거로 ��오백성중청문��을 정리했다는 내용
으로, 이를 통해 ��오백성중청문��에 기록된 존명이 이미 고려 말에 성
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 말에 사용하던 500나한의
57) 「南宋江陰軍乾明院羅漢名號碑」, ��(明版)嘉興大藏經�� 43 (台北; 新文豊出
版公司, 1987)
58) ��羅漢尊號碑��는 현재 교토 용곡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59) 신광희, 「한국 나한도의 독자성」, ��미술사연구�� 25, (2011) pp.312-313.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35
존명은 이미 고려 1235년 이전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
는 고려시대 1235년에서 1236년 사이에 제작된 오백 폭 <500나한도>
에 기록된 존명과 그 순서가 ��오백성중청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60)
중국의 「건명원나한존호비」에 기록된 500나한은 인도, 중국은 물론
신라의 고승들까지 총망라되어 있으며, 경전에 등장하거나 혹은 실존
했던 인물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한, 붓다 재세시의 제자들과 더불
어 33조사와 고승 중 신이(神異)가 출중한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
다. 반면에, 한국은 ��오백성중청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1 법해(法
海)존자, 제2 전광(電光)존자에서 제500 무량의(無量義)존자에 이르기
까지 거의 모든 존자들의 존명이 개념화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붓
다 재세시의 제자들의 이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과 한
국의 500나한 중 동일한 존명은 3∼4사례에 불과하다. 현재 고려시대
부터 사용되어오는 500나한의 존명이 어디에 근거하여 제작된 것인
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61)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이 있다. 앞에서 논자는 500나한의
성격을 ‘법장결집’과의 관련성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500나한의 상
수는 결집과 관련한 인물, 특히 가섭이나 아난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
나 ��분별공덕론��을 비롯한 일부 경전과 ��오백성중청문��에서도 500나
한의 상수는 결집인물들과 무관하다. 때문에, 혹자는 논자의 주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백성중청문��에서 상수를 법해존자, 즉 ‘법의 바다’라고
존명을 상정한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다. 이는, 한국 500나한의 존명의 근거는 분명하지 않지만, 500나한의
성격을 ‘법장’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
의 500나한은 16나한과 더불어서 ‘법’과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
60) 신광희, 앞의 논문, pp.311-312.
61) 신광희, 앞의 논문, pp.313-314.
36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를 갖는 것이다.
Ⅴ. 나가기
이상과 같이, 16나한과 500나한에 대하여 경전을 근거로 문헌적 고
찰을 하였다.
경전에 보이는 ‘16재가보살’ ‘16현사’ ‘16정사’ 등의 용어는 16나한신
앙과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16’이라는 숫자의 공통성과 그들의
상수인 발타바라가 16나한에서는 제6존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
지만, ��법주기��는 발타바라가 아닌 성문의 빈두로를 상수로 하는데,
그 연유를 빈두로의 개념에서 살펴보았다.
빈두로는 호법과 복전의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빈두로의 호법은 붓다의 꾸짖음과 4대성문의 관련성, 두 가지 측면
이 있지만, 500나한과 함께 봉안되는 16나한은 복전보다는 호법의 성
격을 강조한 것이라고 본다. 중생의 복전이라는 점만으로 16나한에
요익중생이라는 이타적 성격의 사명이 첨가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재
고되어야 할 것이다.
500나한은 붓다의 재세시는 물론 전생담에도 자주 등장하여, 붓다
와 다양하고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그러나 논자는 16나한을 함께
봉안하는 500나한의 성격을 붓다 열반 후 제1차 결집과 관련지었다.
즉, 법장을 결집한 500나한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16나한은 호법, 500나한은 법장의 결집이라고 하는 상
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찰에서는 500나한전에 16나한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것이다.
최성렬은 “16나한과 500나한에는 분명한 차이가 발견되는데, 16나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37
한이 특정 인물이라면, 500나한은 다른 사건에 참여했던 무리들이다.
16나한은 개별성이 강조되고, 500나한은 집합체이다.”62)고 한다. 하지
만, 한국의 나한전에 함께 봉안된 16나한과 500나한을 이와 같은 관
점에서 논하는 것은 불교적 해석이 아니다. 16나한과 500나한의 관계
가 개별과 집합이라면, 16나한의 존명이 500나한의 존명에서도 발견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500나한전에 한하여 고찰한 본 발표는
향후 좀 더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 지은원 소장의
500나한도는 석가삼존과 10대제자, 16나한, 500나한을 한 화면에 그리고
있는 등,63) 500나한전의 존상배치와도 흡사한 나한도를 중심으로 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신앙이 한국불교
문화의 특징인 것인지, 혹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본 발표에서는 제외한
독성신앙,64) 즉 나반존자에 관해서도 향후의 연구과제로 삼고자 한다.
62) 최성렬, 「한국의 나한신앙」, ��불교문화연구�� 7, (2006) p.43.
63) 신광희, 「고려시대 나한도의 특성」, ��미술사학연구�� 275․276, (2012) pp.8-10.
64) 독성신앙에 대한 연구는 다음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이지관, 「那畔信仰
考」, ��가산학보�� 제8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가산학회, 2000); 신은미, 「독
성의 개념정립과 신앙에 관한 연구」, ��미술사학연구�� 283․284, (2014);
강향숙, 「독성각의 나반존자와 빈두로존자의 관계 재고」, ��인도연구�� 19,
(2014)
38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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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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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향숙, 「독성각의 나반존자와 빈두로존자의 관계 재고」, ��인도연구�� 19, 2014.
한국 나한신앙의 특성 / 최복희(오인) 41
Abstract
A Study on the Special Features of Buddha's Disciples(Arhat)
in Korean Buddhism
-Based on the 16 Buddha's Disciples and 500 Disciples-
Choi, Bok-hee(O-in)
(Assistant Professor of Joong-ang Sangha Uni.)
Buddha's disciples are not the object of the belief unlike
Avalokitesvara in Avalokitesvara belief or Ksitigarbha in Ksitigarbha
belief. The number of objects for the belief is diverse such as 16
Buddha's disciples, 18 Buddha's disciples, 500 Buddha's disciples and
Nabanjonja. Therefore, at Buddha's disciples building in Unmun
Temple, Geojoam and Kirim Temple sacred images of 16 Buddha's
disciples and 500 Buddha's disciples are enshrined together. This
study started from the question if those Buddha's disciple beliefs have
the same characteristics.
First of all, establishment of 16 Buddha's disciples belief based on
“Taearahannanjemindarasoseolbeopjugi(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
(“Beopjuhi” hereunder) was reviewed from two perspectives. one is
regarding the number of '16' and the other is regarding 16 Sangsu's.
Terminologies related to number '16' in scriptures are ‘16 Non ‐
Sangha Bodhisattva’ ‘16 sages’ and ‘16 Jeongsa’ and etc. Relationship
between these terminologies and 16 Buddha's disciples lies in that
they have ‘16’ in common and their Sangsu Bhadrapala is appointed
as the 6th Jongja in 16 Buddha's disciples. However, it should be
noted that Sangsu of 16 Buddha's disciples is not Bhadrapala but
Pindola.
Pindola ideology has existed before the establishment of “Beopjugi,”
42 淨土學硏究 26집(2016. 12)
but in “Ibtaeseungron” and “Chiseonbyungbiyobeop” which were
translated into Korean in the 5th century, Pindola is taught as Sravaka
rather than Great Monk. Scholars addressed that “Beopjugi” developed
Pindola belief which was independent belief with minor characteristics
into major, and that it developed concept of Buddha's disciples to
major point of view. For, Pindola has characteristics of Sravaka.
Pindola has two characteristics such as Hobeop and Bokjeon.
Although his Hobeop has two aspects such as scold by Buddha and 4
Great Sravaka, it is considered that 16 Buddha's disciples enshrined
with 500 Buddha's disciples emphasized Hobeop rather than Bokjeon.
500 Buddha's disciples often appear not only in Buddha's current
life but also in Buddha's previous lives, and they have made diverse
and close relations with Buddha. However, this article clarified
characteristics of 500 Buddha's disciples with 16 Buddha's disciples
relating with the First Unity after Buddha's entering into nirvana. In
other words this article dealt with 500 Buddha's disciples who united
scriptures.
As we have reviewed before, 16 Buddha's disciples are symbols of
Hobeop and 500 Buddha's disciples are Unity of Scriptures. Therefore,
in temples in Korea 16 Buddha's disciples are enshrined in 500
Buddha's disciples' building.
In this article review on Nabanjongja belief which is unique in
Korea is not included. We would like to leave it as a future task.
Key words
Buddha's disciples belief, 16 Buddha's disciples, 500 Buddha's
disciples, 16 Non‐Sangha Bodhisattva, 16 sages, 16 Jeongsa,
Bhadrapala, Pindola, Beopjugi, Unmun Temple, Geojoam, Kirim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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