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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임재해.안동대


• 목 차 •
Ⅰ. 민속신앙과 종교의 유기성과 차등성 인식
Ⅱ. 열린 시각의 종교 인식과 민속신앙의 종교성
Ⅲ. 무당의 신당에 수용된 법당 양식과 불교 인식
Ⅳ. 본풀이에 대립적으로 수용된 미륵과 석가여래
Ⅴ. 제석굿에 수용된 불교 신격과 승려의 두 인식
Ⅵ. 불교 사찰에 수용된 민속신앙의 신격과 인식
Ⅶ. 사찰에서 대행하는 세간의 제의와 민속신앙
Ⅷ. 불교와 민속신앙의 교류와 공유현상 재인식
Ⅸ. 종교간 대화와 교류, 그리고 다중종교주의



한글요약
민속신앙은 시간적으로 종교의 꼭지점이자 공간적으로 종교의 밑자리
를 이루는데도 종교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종교를 ‘철학체계’가 아니라
‘신앙체계로서 종교’ 개념을 받아들이면 민속신앙도 종교로 인정된다. 민
속신앙 가운데서도 신앙체계를 잘 갖춘 무교는 불교와 대등하게 교류관
계를 다룰 만하다.
무교의 신당에는 불상을 중심에 모실 뿐 아니라, 간판을 ‘00寺’라고 하
여 사찰을 표방한다. 사찰의 외형을 갖춤으로써 종교적 위의를 확보하는
한편, 무업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무교의 ‘창세가’는 현실세계의 부조리
를, 미륵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부당하게 차지한 석가 탓으로 노래한다.
석가가 부정적으로 인식된 것은 현실문제의 원인을 설명하는 무교의 세
계관에 입각한 것이자, 석가를 현세불로 믿는 불교의 교리체계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제석굿에서는 불교의 신격을 무신으로 섬기는 종교적 복속 현상이 나
타난다. 그러나 세습무의 별신굿에서는 중도둑잡이 놀이를 곁들임으로써
불교에 포섭되지 않고, 종교적 경쟁자로서 승려의 탁발행위를 도둑에 견
주어 풍자한다. 무교는 불교 신격을 긍정하는 반면 승려의 행태는 비판
적으로 다루는 양면적 인식을 보인다.
불교에서는 무신을 사찰의 주변부에 모시고 있다. 무신을 모신 것은
불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 세간의 민속신앙을 포용한 이타행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특히 여성신앙의 무신들을 주로 모신 것은 세간의 여성들을
사찰에 끌어들여 불교도가 되게 하려는 방편불교의 전략이기도 하다. 사
찰에서 조상제사나 마을의 동제를 대행하고, 승려들이 명리학과 관상학,
풍수학 등의 지식으로 운세를 상담하는 것은 불교의 세속화 현상이다.
불교와 무교는 네 가지 요소를 공유한다. 첫째 신앙 대상을 서로 공유
하되, 종교적 위상에 따라 무교는 불교를 중심화 하고, 불교는 무교를 주
변화 한다. 둘째, 기복신앙을 공유하는데, 이것은 무교의 본디 속성이다.
불교에서도 기복행위를 하지만, 본질에서 벗어나는 까닭에 일부 승려들
은 삼간다. 셋째, 종교적 신이를 공유한다. 무교에서는 굿을 하는 과정에
무당의 신통력이 신이로 나타나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신앙의 공덕으로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11


부처님이 영험을 보이는가 하며, 승려가 현실정치의 예언으로 도승 행세
를 하기도 한다. 넷째, 인과론을 공유하되, 무교에서는 현실문제의 원인
을 반드시 과거에서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불교에서는 현실문제를 과거
의 업보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인과론을 공유하되 문제해결
방식은 다르다.
두 종교의 수용과 공유 현상은, 대등한 관계의 교류가 아니라 이해관
계에 따른 선택적 수용과 공유다. 두 종교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서는 양
방향 소통과 종교간 대화에 의한 진정한 교류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교
리 근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해방의 종교를 추구해야 하며, 새로운 대안
으로 다중종교주의를 추구할 만하다.


주제어
신앙체계로서 종교, 철학체계로서 종교, 무교의 신당, 이타행, 기복신
앙, 인과론, 선택적 모방, 종교간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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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민속신앙과 종교의 유기성과 차등성 인식
민속신앙은 한국 종교사의 출발점이자 밑자리를 이룬다. 한국 종교
사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종교사는 해당 국가의 민속신앙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민속신앙 없는 종교사는 서술 불가능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민속신앙을 서술하지 않고서는 종교사의 시
작을 서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속신앙이 종교사의 밑자리를 이루는 것은 모든 종교들이 민속신
앙의 토대 위에서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민속신앙을 밑자리로 삼아
서 새 종교가 자력적으로 생겨나거나 외래종교가 들어와 새로 터를
잡게 된다. 민속신앙 스스로 체계를 갖추어 종교적으로 성장하는 것
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자생된 민족종교일수록 민속신앙이 공간
적 토대 구실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한국의 무교나
일본의 신도, 중국의 도교, 인도의 힌두교는1) 다 자국의 민속신앙 위
에서 성립된 자민족 종교이다. 그러므로 민속신앙은 자생 종교의 씨
앗이자 밑거름 구실을 하기 마련이다.
외국종교가 전래되어 외래종교로 정착되는 과정에 민속신앙을 밑
자리로 삼기 마련이다. 외국종교가 외래종교로 뿌리내리는 동안 민속
신앙과 두 갈래 대립되는 작용을 한다. 민속신앙의 주체들은 자기 신
앙을 지키기 위해 외국종교에 저항하고 배척하는가 하면, 자기 신앙
을 번듯한 종교체계로 발전시키려고 외국종교 양식을 본받기도 한다.
배타적 저항과 긍정적 수용을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속신앙은
외국종교를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


1) 힌두교는 8세기 베다 힌두교 전통 이전의 민간 힌두교 전통과, 비슈누파
같은 박티 전통 등 다양한 전통을 이어받은 종교이다. 가장 협의의 힌두
교는 8세기 이후 베다 힌두교의 전통을 이은 브라만교에서 성립된 종교
를 뜻한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13


외국종교가 민속신앙을 대하는 태도도 두 갈래로 맞선다. 민속신앙
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타파해야 종교적 정당성이 확립되고 대안종교
로 자리 잡는다고 여겨서 억압하는 한편, 민속신앙의 오랜 전통과 관
행을 끌어들여서 순조로운 포교활등의 방편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따
라서 외국종교는 정착과 포교를 위해 민속신앙을 배척하면서 포섭하
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하면 민속신앙을 핍박하면서 포교에 이용하
는 이중성을 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속신앙과 외래종교는 서로
수용하면서 경쟁하고, 포섭하며 배제하는 양면적 관계를 이루기 일쑤
이다.
민속신앙과 종교의 관계를 통시적으로 보면, 필연적 선후관계를 이
루고 있어서 마치 하나의 연장선 속에서 존재하는 것 같다. 공시적으
로 보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마치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 같기
도 하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주목하면, 민속신앙과 종교는 문화적 위
상이 크게 다르다. 통시적으로 보면 미숙한 아이와 성숙한 어른으로
서 발달단계적 차이를 보이며, 공시적으로 보면 예사 민중과 엘리트
지식인 수준의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 탓에, 결국 민속신
앙은 2)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서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
주교, 민족종교 등 이른바 ‘7대 종단’을 회원으로 한정한다. 민족종교
에 민속신앙이 귀속될 법하지만, 앞의 7개 종단 외에, 수운교, 대종교,
선불교, 갱정유도, 태극도, 증산도, 대순진리회, 증산법종교, 순천도,
청우일신회 등 온갖 교단들이 소속되어 있지만, 민속신앙은 물론 무
교도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속신앙은 종교사의
밑자리이자 꼭지점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다수 민중이
누리고 있는 전통적인 신앙인데도, 왜 종교로 인정받지 못할까? 종교


2) 민속신앙을 흔히 민간신앙이라고 하는데, 근대국가에서는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민속신앙을 민간신앙
이라 일컫는 것은 부적절하다.
1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사회에서 민속신앙이 부당하게 소외된 까닭이다.
제도권의 폐쇄성과 달리, 학계에서는 민속신앙을 종교의 한 유형으
로 인정하고 포괄적으로 다룬다. 종교학자 유동식은 굿의 전통을 종
래와 같이 무속으로 일컫지 않고 종교의 한 유형으로 포착하여 ‘무교
(巫敎)’로 명명하고 종교학 연구의3)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민속신
앙을 아예 민속종교로 호명하면서 민속문화의 여러 영역 가운데 종
교 영역으로 다루기를 주장 하는가4) 하면, 종교학적 방법으로 연구하
기를 제안한다. 그러므로 민속신앙을 민간신앙이나 종교민속이라 일
컫는 경우가 있는데, 민속학의 영역을 나타내는 일관된 용어체계에
따라 “민속신앙이나 민속종교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5) 했다.
미국 민속학자 리챠드 도슨(Richard M. Dorson)이 펴낸 민속학 입
문서 ?민속과 민중생활?에서6) 민속학의 여러 영역 가운데 민속신앙
부분을 ‘민속종교’로 설정하여 목차로 삼았다. 민속종교 영역을 맡아
서 집필한 존 메센저(John c. Messenger)는, 분과학문에 따른 종교
현상을 3 갈래로 나누면서, 인류학과 종교학, 민속학의 연구대상을 아
래와 같이 분별하고 있다.
인류학에서는 원시종교(primitive religion)를 주대상으로 연구하고,
종교학에서는 문명화된 기성종교(civilized religion)를 주요 대상으로
연구하며, 민속학에서는 민속종교(folk religion)를 주요 대상으로 연
구한다.7)


3) 柳東植,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서울: 延世大學校出版部, 1975.
4) 임재해, 「민속학의 연구영역과 방법」, ?韓國民俗學의 課題와 方法?, 서울:
정음사, 1986, PP.218-238에서 민속학의 영역을 민속문학, 민속사회, 민속
종교, 민속예술, 민속물질 등 5개 영역으로 나누고, 민간신앙 또는 민속신
앙으로 일컫는 것을 민속종교라 일컬었다.
5) 임재해, 위의 글, p.233.
6) Richard M. Dorson,, Richard M. Dorson, Folklore and Folklif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2.
7) John C. Messenger, Folk Religion,; Richard M. Dorson, 위의 책, pp.217219.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15


종교학에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만 종교라고 하면, 이러한 구분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 인류학이나 민속학에서 다루는 종교현상은 종
교라고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원시종교나 민속종교라는 말은 인정
될 수 없다. 종교에서 대상을 바꾸어서 무용이나 음악으로 바꾸어도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민속무용과 원시무용은 무용이라 할 수 없고,
민속음악과 원시음악은 음악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 무용과 음악의 범주로 귀속된다.
구체적 생활세계의 여러 현상을 아울러서 ‘문화’로 포괄할 때도 인
류학의 원시문화와 민속학의 민속문화는 문화로 인정되고 있다. 문화
의 한 유형으로 민속문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민속문학과 민속음악,
민속무용, 민속종교, 민속예술도 제각기 문학과 음악, 무용, 종교, 예
술 등의 한 유형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민속신앙을 기존의 종교와 대
등한 관계에서 영향관계를 주목하려면, 민속종교로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종교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논의를 더 진전시켜야,
민속신앙을 민속종교로서 불교와 대등하게 다룰 수 있다.


Ⅱ. 열린 시각의 종교 인식과 민속신앙의 종교성
종교의 범주를 학문적으로 따지는 자리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교들도 배제되기 일쑤이다. 협의의 종교 정의에서는 유교가
배제된다. 한국 유림에서는 최근에 비로소 유교를 종교로 선포하였
다.8) 유교가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18세기 이래로 여전히 쟁점


8) 성균관유도회는 1995년 11월 28일 임시유림 총회에서 종단의 명칭을 성
균관유교회로 바꾸고 공자를 종사(宗師)로 사서오경을 경전으로 하는 종
교로 공식 선포하고 종헌을 제정하였다. <유교의 종교성 논쟁>, 《종교
신문》, 2004년 4월 23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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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고 있다. 초월적인 신관과 내세관을 전제로 종교를 엄격하게 규
정하면, 불교조차 종교로서 요건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여겨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9) 적어도 불교에서는 초월적 존재로서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불교의 교조라 할 수
있는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로서 붓다일 뿐 초자연적 절대자는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와 유교와 신도는 경계가 극히 모호해서
종교인지 삶의 철학인지 명확하게 구분 짓기 어렵다.”고10) 한다.
초자연적 절대자로서 유일신을 믿고 섬기는 것을 종교라고 규정하
면, 종교는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정도로 한정된다. 신학자들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를 정의한 탓이다. 동양종교인 불교와 유교는
유일신과 같은 초월적 신격을 설정하지 않는다. 동양인들에게 종교란
초월적 존재에 의탁하여 자기를 구원하는 신앙체계가 아니라, 스스로
수련하여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어 자기 정화를 이루는 수행체계
인 까닭이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은 하느님 신앙을 종교라고 정의
하는 까닭에, 기독교만 유일종교로 간주하는 편견에 빠져 있다.
유일신을 믿을수록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어서, 이단은 곧 사탄으로
간주되어 마녀재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삶을 바르게
이끌어주는 철학이자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지혜의 가르
침이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인간해방은커녕 종교분쟁과, 종교적 인종
주의(racism)로11) 차별과 적대감을 조성하며, 마침내 종교전쟁의 비


9) 재레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종교와 언어 그리고 건강」, ?어제까지
의 세계?, 서울: 김영사, 2013, p.483, “예컨대 불교와 유교와 신도(神道)를
종교로 여겨야 하느냐에 대한 오랜 논쟁이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있었다.
현재의 추세에 따르면, 불교는 종교라 생각하고 유교는 종교라 생각하지
않지만, 10∼20년 전만 해도 유교는 종교로 여겨졌다. 현재 유교는 삶의
방식, 즉 세속적인 철학이라 일컬어진다.”
10) 재레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위의 책, p.488.
11) 서구 인종주의의 뿌리는 기독교 인종주의에서 비롯된다. 기독교 인종주
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열등인종으로 취급하고 그들을 야만인
으로 규정하여 노예화하는 것을 기독교적 가치와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17


극까지 유발한다. 그러므로 유일신 중심의 배타적 종교 인식은 심각
한 갈등과 분쟁을 유발함으로써, 종교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발휘하
기 일쑤이다.
신학자들과 달리, 종교학자들은 기존의 여러 종교들을 포괄하는 까
닭에 상당히 가치중립적으로 종교를 정의하여, 불교와 유교, 힌두교
등 동양종교도 기독교와 대등하게 종교로 인정한다. 종교학자들보다
더 열려 있는 종교관을 지닌 것이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이다. 종교
를 일정한 체계의 틀, 곧 형식 논리에 가두지 않고,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있는 문화체계의 하나로 보는 까닭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민속신앙은 종교로 인정되지 않는다. 우선 용어
자체가 종교로 호명되지 않는다. 종교(宗敎)는 그야말로 ‘으뜸 가르침’
으로서 삶의 높은 지혜를 담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종교철학은 곧
교리 체계를 구성하며, 교조의 말씀과 행적을 체계적으로 담은 경전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따라서 철학적 경전이 없는 민속신앙이나 제3
세계 소수민족의 원시신앙은 종교가 될 수 없다.
신관(神觀)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유교와 불교는 많은 경전을 갖추
고 있어서 종교로서 요건을 상당히 갖추었다. 따라서 종교학자들은
유교와 불교를 종교로 인정한다. 그러나 종교를 이렇게 규정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많은 철학서를 집필하고 제자들을 양성
한 철학자들의 철학은 왜 종교로 인정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고, 둘은
종교란 결국 교조의 말씀과 사상을 가르치고 익히는 철학 또는 윤리
교육활동인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지혜의 책을 쓰고 설파한 철학자들의 학문활동을 종
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공자의 사상과 철학은 유교로 인정되지만,


판단하였다(이종일, 「타자 이해의 변천: 타자의 발견·반동·재발견」, ?한
국적 다문화교육을 위한 모형 구축?, 대구교육대학교 다문화교육센터 설
립 기념 학술대회 논문집, 대구교육대학교 다문화교육센터, 2010년 1월
29일, pp.72-7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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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의 사상과 철학은 종교로 호명되지 않는다. 칸트나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이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상과
윤리, 철학을 가르치며 무리를 이루어 학파를 형성해도 종교로 자리
매김되지 않는다. 그것은 철학이자 학문활동일 뿐 종교 현상은 아니
다. 그러므로 종교를 문자풀이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사람’이란 말풀이보다 구체적인 사람
을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 종교 또한 말풀이보다 여러 종
교 현상을 귀납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신학자들은 기
독교를 한정하여 종교를 정의하니까, 하느님을 믿는 신앙만 종교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사회의 여러 종
교 현상을 대상으로 종교 개념을 귀납한다. 특히 타문화에 대한 현지
조사를 중요시하는 인류학자들은 소수민족의 신앙까지 종교 개념으
로 끌어들여서 원시종교로 자리매김한다. 종교인류학은 소수민족의
원시종교를 조사연구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종교연구가 개방적일
뿐 아니라 선험적 종교관에서 해방되어 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 종교학과 교수 다니엘 팰스(Daniel L. Pals)는
세계적인 종교 이론가들의 종교론을 8가지로 정리한 결과, 이론가들
마다 관점과 해석, 의견이 서로 다르지만 종교에 대한 정의는 어느
정도 일치를 보인다고 했다. 비록 전문용어와 강조점은 다르지만, 모
두 “종교를 영적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연결되는 믿음들과 실천
들 속에서 찾는 경향”이 12) 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특정
종교를 준거로 연역적인 정의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고대의 종교 현
상부터 현재 제3세계의 다양한 종교 현상까지 아우르게 되면, 자연히
종교에 대한 범주는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대 문명사회
의 종교적 패러다임에서 해방되어야 역사와 민족을 아우르는 종교의


12) 대니얼 팰스 지음, 조병련·전중현 공역, ?종교에 대한 여덟 가지 이론들?,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13, p.535.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19


범주를 온전하게 포착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종교에 대한 열린 인식을 한 두 학자를 보기로
종교 인식을 새롭게 가다듬어보자.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Max
Weber)는 종교에 대한 공시적 시각에서 세계 종교를 폭넓게 정의하
여, “주술적인 것과 구원에 대한 관심 모두를 포함하는 초자연에 대
한 믿음의 체계”로 규정하는 까닭에 “유교와 같은 비구원적 윤리체
계”도13) 종교에 귀속시킨다. 미국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
는 통시적 시각에서 고대 종교 현상을 주목함으로써, 고대의 종교적
사고방식은 “무질서와 악과 고통의 세상에서, 우주적 질서와 의미에
대한 인간의 깊은 갈망에 보다 충분히 응답하기 때문에, 현대의 비종
교적 태도보다 더 의미가 있으며, 그래서 더 ‘정상적’이라고 주장했
다.”14) 그러므로 종교를 보는 상대주의적 시각과 인식이 긴요하다.
종교상대주의에 입각해서 보면, 유교처럼 신관이나 내세관이 불분
명해도, 또는 고대신앙이나 제3세계의 토착신앙처럼 삶의 지혜를 담
은 체계적 철학이 없어도 종교로 귀속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럼
에도 막시즘(marxism)처럼 대단한 철학체계를 갖추고 추종하는 세력
의 규모가 대단하며 역사적 지속성이 있어도 종교로 간주되지 않으
며, 지하국의 금돼지처럼15) 초월적 존재가 상정되고 현실과 다른 초
현실 세계가 설정되어도 종교의 범주에 귀속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
은 철학적 가르침과 초월적 세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
는 사람들의 집단적 태도와 대응양식의 문제이다. 철학적 교리체계와
초월적 세계가 종교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종
교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13) 대니얼 팰스 지음, 조병련·전중현 공역, 위의 책, p.534.
14) 위와 같은 곳, p.538.
15) 지하국대적제치설화((地下國大賊除治說話))에 등장하는 지하세계의 초월
적 존재를 ‘금돼지’ 또는 주둥이 닷발 꼬리 닷발이라고 한다. 최치원설화
에서도 지하국 금돼지가 지하세계의 신격으로 이야기된다.
20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비록 위의 두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도 종교로 인정되는
핵심적 요소가 별도로 있다. 현실적으로 종교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
가 제의(祭儀, ritual, 굿)의 여부이다. 제의는 종교적 의례 양식으로
서, 종교의 여러 요건 가운데 한 요소일 뿐이되, 사실상 종교를 종교
답게 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의를 제대로
인식해야 종교의 실상과 만날 수 있다.
제의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교의 제사, 불교의 불공과 예불·재,
기독교의 미사와 예배, 무교의 굿처럼 신이나 자연 등 초월적인 존재
에게 바치는 종교의식이다. 초월적인 존재를 대상으로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일정한 양식으로 의례를 바치는 의식(儀式, ceremony)이 제
의이다. 따라서 일정하게 양식화 된 제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초
월적 존재와 교리체계를 갖추어도 종교의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실제로 UFO의 존재와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 상당한 지식체계를 갖
추고 집단화되어 있지만, 우주인을 섬기는 양식화된 제의가 문화적으
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종교로 공인되지 않는다.
유교는 현실적인 윤리체계이다. 실제로 공자는 죽음이나 내세에 대
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귀신 섬기는 일과 죽음
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반문의 형식으로 묵살하고 16) 대답하지 않았
다. 물론 ?논어?에서도 사후세계를 믿고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내용이
없다.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여긴 까닭이다.17) 그럼에도 유교가 종교
로서 문제되는 것은 일정한 제의가 형성되어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


16) 先進篇, ?論語?, 「季路問事鬼神」章. 공자에게 제자 계로(季路)가 귀신 섬
기는 일에 대해 묻자, “아직 사람도 잘 섬길 수 없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未能事人焉能事鬼)?”라고 반문했으며, 다시 계로가
죽음에 대하여 물으니, “아직 삶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
는가(未知生焉知死)?”라고 반문했다.
17) 유흔우, 「?論語? ‘季路問事鬼神’章에 관한 연구」, ?孔子學? 31, 韓國孔子
學會, 2016, p.213, “孔子및 儒家에서 ‘죽음’은 삶의 영원한 정지를 의미한
다. 孔子가 子路에게 반문한 것은 인생에서 ‘끝(終)’이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21


는 까닭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성균관과 향교에는 석전(釋奠)과18)
춘추향사를 비롯한 각종 제의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가
정마다 조상들의 제사도 전승되고 있다. 주자가례와 국조오례의(國朝
五禮儀)는 모두 유교에 입각한 제의와 의례 양식을 규범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정교한 제의체계는 종교로 공인되고도 남음이 있다.
종교에서 왜 제의가 중요한가. 제의가 일정하게 규범화된 신앙행위
인 까닭이다. 신앙이 종교의 필수적 구성요소이므로, 신앙 없는 종교
는 존재할 수 없다. 관념적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체계적 양식
이 제의이다. 제의를 올릴 때 비로소 신앙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의 없는 신앙이 없고 신앙 없는 종교도 존재할 수
없다. 신앙의 관념을 구체적인 행위양식으로 표현한 것이 제의이며,
제의로 수행되는 신앙체계가 종교이다. 신앙과 제의는 모두 초월적
존재 곧 신을 전제로 존재한다. 귀신과 도깨비, 요괴도 일종의 신이지
만 사람들이 신앙하지 않고 양식화된 제의가 없으므로 종교가 될 수
없다.
제의는 신앙심을 매개로 한 인간과 초월적 존재 사이의 신통한 소
통 문화이다. 19) 따라서 큰 바위나 나무에 제의를 바치는 것은 불상이
나 십자가상에 제의를 바치는 것처럼, 거기에 신령한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제의는 ‘초월적 존재+의도적 목적+
일정한 의식+비는 행위+기대하는 응답’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을 다 갖추지 않은 신앙행위도 많다. 왜냐하면 일정하게
양식화된 의식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기대하는 응답이 나타나지 않


18)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서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공
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19) 임재해, 「구비문학의 사회적 소통과 정서적 공감 기능」, ?2018 한국구비
문학회 동계학술대회 발표논문집?(2018년 2월 7일, 경상대학교), p.27,
“굿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령의 제의적
소통으로 인간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는 초월적 소통
방식이다.”
22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제의활동은 기본적으로 신과 자연 등 비인간적인 존재와 그 힘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초월적인 존재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활
동은 나머지 조건을 다 갖추어도 제의라 할 수 없다. 사람을 대상으
로 특별한 목적을 이루고자 의식을 갖추어 비는 행위를 하는 것은
제의가 아니다. 정치적 의식이거나 사회적 예절에 지나지 않는다. 유
교는 원래 초월적 신격이나 내세를 상정하지 않지만, 석전을 비롯한
각종 유교적 제의가 있다. 따라서 제의를 근거로 보면, 사후세계를 인
정하고 제사를 바치는 신격도 있는 까닭에 종교로서 요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그러므로 제의는 곧 신앙활동의 구체적 양식으로서 종교
의 여러 가지 요건들을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구실을 한다.
결국 종교(religeon)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제의(ritual)의 정체성에
서 결정된다. 굿을 하면 무교이고, 예불을 올리면 불교이며, 미사를
드리면 천주교인 것처럼, 제사를 올리면 유교이고, 살라트(Salat)를20)
드리면 이슬람이다. 구체적인 신앙행위의 결정체가 제의인 까닭이다.
따라서 제의는 주체의 신앙활동과 신앙대상, 신앙목적 등을 모두 수
렴하고 있는 신앙체계의 구체적 실현인 셈이다. 그러므로 종교에서
제의를 제거하면 신앙 없는 철학이나 윤리체계만 남게 된다.
제의를 제거하면 유교에서는 유학이 도드라지는 것처럼, 불교에서
는 불경학(Buddhist philology)이 오롯이 드러나고, 기독교에서는 신
학이 남게 된다. 불경과 성경, 사서삼경 등 경전의 내용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며 따르는 일은 ‘철학체계로서 종교’이다. 그러나 ‘신
앙체계로서 종교’는 철학적 사상이나 교리체계보다 문화적으로 전승
되고 있는 제의적 양식이 중심을 이룬다. 민속신앙은 교리가 체계적
이지 않은 까닭에 ‘철학체계로서 종교’로는 한계가 있지만, 일정한 제
20) 살라트(Salat)는 이슬람교도들이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해 하루 5차례 예
배하는 일, 금요일 정오에 모스크에서 집단으로 예배하는 일을 뜻한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23


의로 전승되는 ‘신앙체계로서 종교’로는 손색이 없다. 따라서 민속신
앙과 불교가 서로 공유하는 지점은 신앙체계로서 종교이다. 그러므로
철학으로서 교리체계는 제외하고 신앙체계로서 제의 현상에 한정해
서 상호교류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다.


Ⅲ. 무당의 신당에 수용된 법당 양식과 불교 인식
현실 종교문화에서 문제 삼는 종교성은 철학체계보다 신앙체계로
서 제의 현상이다. 제의는 신을 섬기고 빌어서 초월적 힘으로 현실문
제를 해결하려고 불가사의한 영험을 기대하며 행하는 양식화된 신앙
활동이다.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신의 영험을 믿는 마음
때문에 제의행위를 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누리게 된다. 결국 제의
는 인간이 신과 소통하여 현실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일을 초월적 영
험으로 해결하려는 구체적 행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성불론은 신의 영험에 의존하여 타력적으로 성취하
는 것이 아니라, 중생 각자가 스스로 마음을 닦아서 자력적으로 성불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타력적 종교와 구분하여 자력적 종교라
한다. 하지만 중생이 자력적 수행으로 성불하기 어려운 까닭에 ‘불보
살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하여 부처가 있는 극락에 왕생하자는 것이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타력 신앙이다.’ 21) 그러므로 불교에서도 자
력적 수양과 수련의 수행양식에 머물지 않고 타력 신앙으로서 일정
한 제의를 올리는 것이다.
제의는 초월적 문제해결을 타력적으로 기대하는 신앙활동이라는


21) 表一草, 「彌勒信仰과 民衆佛敎」, ?韓國近代民衆佛敎의 理念과 展開?,
서울: 한길사, 1980, pp.342343.
2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점에서 종교의 개념과 상당히 일치한다. 왜냐하면 신앙체계로서 종교
는 사실상 제의를 뜻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완전한 존재인 신의 영험에 의존하여 현실적으로 해
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신통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종교
생활을 하고, 그에 따른 제의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없
는 사회는 존재할 수 있는가?’22) 하는 질문 속에는 철학체계로서 종
교보다 신앙체계로서 종교가 핵심을 이룬다. 왜냐하면 앞의 종교라면,
굳이 ‘종교 없는 사회’를 거론할 것 없이 바로 ‘철학 없는 사회’를 물
으면 되는 까닭이다.
민속신앙도 종교 양식에 맞게 일정한 신앙체계에 따라 제의를 수
행한다. 제의 양식은 크게 세 갈래 유형으로 분별할 수 있다. 하나는
직업적 사제자가 전문적 형식을 갖춘 제의, 둘은 특정 기능의 집단이
공동체의 관행에 따라 정기적으로 하는 집단적인 제의, 셋은 개인이
나 집단이 집 안팎에서 격식을 갖추어 하는 제의, 넷은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소망을 비는 제의가 있다. 첫째 유형은 무당굿이고, 둘째 유
형은 풍물굿이며, 셋째 유형은 고사(告祀), 넷째 유형은 ‘비손’의 형태
이다. 23)
본격적인 제의는 두 유형의 굿이며, 고사와 비손은 굿으로 호명되
지 않는 만큼 제의양식이 간소하다. 그러나 풍물잡이나 무당이 고사
를 할 때에는 고사굿이라 하여 제법 다양한 제의체계를 갖춘다. 이처
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무당굿도 무당의 유형과 지역, 또는 굿거
리에서 따라서 제각기 다르고, 풍물굿도 마을굿과 두레굿, 풋굿 등에


22) 프랑스 대학 입학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éat)’에서 20여 년 전에 출제
된 논술주제이다.
23) 신에게 기원하는 기도의 형태로 두 손을 비비며 소망을 비는 까닭에 비
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집안의 할머니가 칠성이나 삼신 앞에 간소한
상을 차려놓고 비손을 하는 개별적 신앙형태가 있는가 하면, 굿을 할 때
도 무당이나 조무, 제주가 특별한 대목에서 굿의 일환으로 비손을 하기
도 한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25


서 제각기 다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굿문화의 제의 양식이 아니
라 불교의 수용 문제이므로, 불교의 수용 양상을 뚜렷하게 보이는 본
격적인 제의로서 무당굿이 상대적으로 주목된다.
굿은 제의를 일컫는 말이다. 굿을 종교로 호명하면 무교이고, 풍속
으로 호명하면 무속, 문화로 호명하면 굿문화이다.24) 정교한 제의를
갖춘 굿문화는 무교로서 종교적 요건도 두루 갖추었다. 교조로서 여
러 무신이 있는가 하면, 사제자로서 무당, 경전으로서 무경 및 무속신
화, 제의공간으로서 신당과 굿터, 종교의식으로서 각종 굿거리, 종교
적 성물로서 방울과 신칼 등의 무구, 신비체험으로서 신내림과 신들
림, 공수 등이 있다. 무교체계 가운데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거나 불교
의 교리를 수용한 영역은 신당의 구조와 창세가의 세계관, 제석굿의
굿거리, 별신굿의 중마당 등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먼저 무당들이 점사를 보는 집에 차려 놓은 신당을 보면, 사찰의
법당 분위기를 상당히 닮았다. 천장과 좌우 벽의 꾸밈은 물론, 정면에
탱화를 배경으로 모셔놓은 신상과 성물, 제기 등이 대체로 같다. 사찰
의 법당 형식을 본보기로 삼지 않으면 이와 같은 신당이 꾸며지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모시는 신격을 보면, 신당의 정면 가운데에 금빛
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 무당이 모시는 신격들이 모셔져 있다.
신당에 모신 불상은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25) 하더라도 불교의 주요
신격이라는 점에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구체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신당의 전체 구조와 체계는 물론, 가장 중심에 불
상을 모신 점은 무당 스스로 불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24) 임재해, 「굿문화의 정치적 기능과 무당의 정치적 위상」, ?比較民俗學?
26, 比較民俗學會, 2004, pp.233235
참조.
25) 무당에 따라서 석가모니불 외에 관세음보살,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등을
다양하게 모신다.
2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그림1> 사찰 대웅전 법당 <그림2> 무당 송옥순씨 신당


무당 송옥순은 신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25년 전에 신당을 만들면
서 관세음보살을 중앙에 모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 자
기 것을 다 내주며 중생을 구제하는 현실적인 보살이어서 신당 중심
에 모셨다고 한다. 좌우에는 용왕과 산신을 자연신으로 모시고, 그 좌
우에 다시 장군신과 도사의 인물신을 모셨다. 스스로 천신제자라고
하며 천지신명의 이치에 따라, 오른쪽 측면에 따로 단군을 천신으로
모시고 자연신으로 용왕과 산신을 모시는데, 장군신은 특히 각별하다.
장군줄이 세어서26) 내림굿을 할 때 ‘장군!’을 여러 번 외쳤으며 장군
신이 실려서 작두굿을 잘 하게 되었다고 한다.27) 송무당은 작두굿28)
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당은 법당처럼 탱화 앞에 불상을 가장 가운데 배치했지만, 좌우
의 신상은 개인적으로 섬기는 대상을 모셨을 뿐 아니라, 굿상차림처
럼 봉헌물을 잔뜩 차려두었다. 형식과 내용이 닮았지만 신당의 특성
을 드러내고 있어서 법당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무당은 이 신당에서
점사를 보는데, 한갓 점집이 아니라 법당의 위의(威儀)를 갖춘 사찰


26) 송옥순(1954년생) 무당의 13대 할아버지가 장군이어서 장군 줄이 세다고
했다.
27) 2018년 4월 14일 송옥순 무당 신당에서 성주신을 모시는 굿을 조사한
뒤에 신당에 관한 면담조사를 했다.
28) 예사 작두처럼 두 개의 작두 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반달형
작두와 12계단으로 이루어진 작두를 오르내리면서 굿을 하기 때문에 축
제 행사에 곧잘 불려가기도 한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27


처럼 신당의 체계를 갖춘 것이다.
신당의 형태는 신어머니 권은도 무당이 가르쳐준 그대로 25년째 이
어가고 있는데, 정작 신어머니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쌀을 반쯤 채운
두 단지를29) 석가모니불과 대감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과거에는 무당
들이 불교의 신을 모시되 불상이 아닌 단지에다 모셨으며, 요즘도 왕
성하게 굿을 하지 않는 무당은 불상을 모시지 못한다고30) 했다. 불상
을 모시려면 불상 안에다 5가지 복장(伏藏)을 채워서 봉안해야 한다.
따라서 점사도 제대로 못 보고 제자도 못 기르면, 불상을 모신 신당
을 갖출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찰의 법당처럼
번듯한 신당을 갖추는 것은 무당으로서 상당한 위상을 누리는 셈이
다.
신당을 법당 양식으로 갖추는 것은 불교문화의 영향이 큰 경상도
지역에서 두드러진 현상일 뿐, 황해도 무당들은 신당에 불상을 모시
지 않고 무신도를 병풍처럼 배치하며 산신이나 장군신 등 무당의 몸
주신을 모신다. 그러나 신당을 갖춘 뒤에 하는 의식을 ‘점안식(點眼
式)’이라고 하여, 불교용어를 고스란히 쓰는 것을31) 보면, 불교의식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일부 무당 가운데는 아예 사찰이름을 내걸고, 사찰처럼 법당을 조
성하여 점사를 보고 굿당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옥영사(玉迎寺)
는 이름부터 사찰이나 다름없으며, 신당과 굿당 외에 별도로 번듯한
법당까지 갖추고 있다. 법당을 보면, 전면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주불
로 모시고 좌우에 협시불을 모신 형식이 사찰의 법당과 같다. 그러나
사찰의 법당처럼 예불이나 불공을 드리는 것 같지는 않고, 신명테스


29) 편무영, ?한국불교민속론?, 서울: 민속원, 1998, pp.7677에
쌀을 단지나
항아리, 바가지 등에 넣어서 신체로 삼는 사례를 ‘제석단지’ 연구에서 자
세하게 다루었다.
30) 무당이라고 하여 신당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는 것
은 굿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하며,
31) 황해도 굿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남무 장순범씨의 말이다.
2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트와 퇴마 점사 등을
한다.
옥영사에서 신내림
을 받은 무녀 가운데
에는 천궁불사(天宮佛
事)를 표방하고 있는
데,32) 그 주체는 스님
이 아닌 무녀와 만신, 퇴마사로서 사실상 점사와 무업을 주로 한다.
옥영사를 소개하는 사진과 동영상 자료도 굿을 하는 장면이어서 불
사(佛事)의 내용과 무관하다. 법당과 함께 굿당을 여럿 갖추고 신병
과 빙의, 신사주, 신점, 영점, 퇴마 등을 하며, 미녀무당들의 수다방까
지 운영한다.33) 그러므로 옥영사라는 이름과 법당은 사찰의 형식을
겉으로 표방할 뿐 알맹이는 불교와 무관하다. 이런 경우는 지역적 특
징을 벗어나 사찰을 모방하고 있는 셈이다.
무교의 신당은 불교의 사찰, 개신교의 교회, 천주교의 성당과 같은
신성한 제의공간이다. 그런데 무당들이 신당을 사찰의 법당처럼 꾸민
까닭은 무엇일까? 앞의 경우는 무당들이 신당에 단지를 모시다가 경
제력을 갖추면서, 불상을 비롯한 각종 신상을 법당의 주불과 협시불
처럼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무신을 단지나 한지, 바가
지 등의 신체에 모시거나, 신당을 무신도로 그럴듯하게 꾸며왔다. 그
러나 예사 가정에서도 성주를 한지로 모시고, 용단지나 삼신바가지,
조왕중발처럼 단지와 바가지, 중발 등 일상적인 살림살이에 무신들을
모시는 까닭에 가신신앙과 차별성도 없고 종교적 위의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당들은 무교의 종교적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종교적 위상이 우뚝할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익숙하게 된


32) https://blog.naver.com/ogyeongsa7
33) 홈페이지(http://e-won.kr/) 玉迎寺참조.
<그림3> 옥영사 법당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29


불교 양식을 본받게 된 것이다.
사찰은 건물 자체부터 웅장하고 종교적 위엄도 갖추어서 무당들이
부러워하는 종교시설이다. 교단 종교와 달리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무
당들로서는 사찰과 같은 건축구조물을 불가능하지만, 신당을 법당처
럼 꾸미는 일은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큰 무당일수록 신당을 법당
못지않게 조성할 뿐 아니라, 경제력이 있는 무당은 굿당 건물을 사찰
처럼 규모 있게 짓기도 한다.34) 불교의 도량처럼 웅장한 건물을 짓고
신당을 으리으리하게 갖춤으로써 무교의 종교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
도로 판단된다.
뒤의 경우는 아예 사찰과 법당을 표방함으로써, 무교와 불교를 종
교적으로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두 종교의 분별을 헷갈리게 하거나
불교의 외형으로 무교의 실제 사실을 가리는 것처럼 보인다. 사찰 이
름을 간판으로 걸고35) 법당을 갖춤으로써 겉으로 보면 불교 도량이
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가가서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녀들과 만
신, 퇴마사가 각종 무업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내림굿을 받은 무당들은 마치 교단을 형성한 것처럼, 옥영
사를 내세우며 여러 지역에서 굿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불교의
종교적 체계를 본받기보다 불교의 외형을 갖추고 불교의 신뢰성을
이용하여 무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무교를
종교적 형식체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불교 양식을 본보기 삼아 수용
하는 경우와 불교의 외형을 그럴듯하게 갖춤으로써 선입견 없이 무
업을 할 수 있도록 사찰의 외형을 끌어오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무당에 따라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의도


34) 최근에 강원도 화천 상서면에 새로 지은 무녀 이해경의 희방신당(希蒡神
堂)이 그러한 보기이다.
35) 무당들이 신당을 차리고 점사를 보는 거주공간에 간판을 걸면서, 마치
사찰처럼 ‘00사’라고 하는 사례가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판
만으로 절을 사칭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간판 외에는 점집이나
무당집이라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30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를 적절히 조합해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셈이다.
Ⅳ. 본풀이에 대립적으로 수용된 미륵과 석가여래
신당이 법당의 형태에 영향을 받은 것은 외형적인 것이자 표면적
인 것이다. 종교적 알맹이는 공간의 형식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제의
행위와 교리 속에 나타난 세계관이다. 무교의 세계관은 굿을 할 때
노래되는 무속신화 곧 본풀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본
풀이는 무교의 구비경전(oral scripture)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의 제의에서 경전을 읽거나 외워서 구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사찰에서 예불하며 불경을 읽거나 암송하는 것처럼,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며 성경을 봉독하고, 굿판에서도 굿을 하면서
본풀이를 구송하기 마련이다. 본풀이는 최근까지 구송되다가 뒤늦게
기록으로 정착되었지만,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아 진작 무경으로
경전화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경과 도경도 기록 이전에는 성인의 말
씀과 대화로 구비전승되었다. 따라서 종교의 경전은 구비경전에서 비
롯되어 기록경전으로 정착되는 것이36)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굿에서
구송되는 본풀이도 구비경전으로서 종교 일반의 경전과 같은 맥락에
서 포착할 필요가 있다.
큰굿을 할 때 부르는 구비경전을 천지왕본풀이 또는 창세가, 천지
개벽신화라고도 한다. 박봉춘본37) 창세가는 하늘과 땅이 스스로 열
리고 이때 사람도 생겨났다고 하는가 하면, 김쌍돌본 창세가는 미륵


36) 종교 발생의 초기에는 구비경전으로 시작하여 점차 기록경전으로 정착
하게 되다가 교리해석과 분파에 따라 위경이 등장하게 되며, 외국으로
전파되면 번역경전이 나타나게 된다.
37) 赤松至誠·秋葉隆, ?朝鮮巫俗の硏究? 上, 東京: 大阪屋號書店, 1937, pp.369387.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31


을 천지개벽 상황에 등장하는 신격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석가와 미
륵의 역할을 대립적으로 설정하여 현생을 다스리는 석가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미륵은 훌륭한 신격으로 등장하는 반면에 석가
는 세상차지의 욕망에 사로잡힌 신격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무교에
서 받은 불교의 영향을 보려면 여러 이본들 가운데서 김쌍돌본을 다
루어야 효과적이다.
이 창세가에서 미륵은 천지개벽과 함께 제일 먼저 탄생한 신격이
자, 인류시조를 출현하게 하는 인류시조본풀이의 주역이기도 하다. 따
라서 창세가 서두에는 “한을과 따이 생길 젹에/ 彌勒님이 誕生한즉”
이라고38) 하여, 미륵이 태초의 신으로 노래된다. 미륵이 천지를 개벽
시킨 주체는 아니지만, 천지개벽과 동시에 탄생한 신격인 까닭에, 세
계를 만들어가는 주역 노릇을 한다. 불교에서는 미래불이지만, 무교에
서는 태초의 신으로 출현하므로 과거불이다. 미륵의 실체 인식은 의
식(衣食) 생활에서 구체화된다.
미럭님이 옷이 업서 짓겟는대, 가음(감)이 업서
이山저山넘어가는, 버덜어 가는
칙을 파내여, 백혀내여, 삼아내여, 익여내여,
한올 알에 베틀 노코
구름 속에 영애 걸고39)
베를 짜서 칡으로 만든 장삼(長衫)을 마련했는데, “전필(全匹)이 지
개요,40) 반필(半匹)이 소맬너라, 다섯자이 섭힐너라, 세자이 짓일너라”


38) 孫晉泰, 創世歌, ?朝鮮神歌遺編?, 서울: 鄕土硏究社, 1930, p.1,; 김헌선, ?한
국의 창세신화?, 서울: 길벗, 1994, p.230에서 재인용. 다음부터 창세가의
인용출처는 김헌선의 책으로 밝힌다.
39) 김헌선, 위의 책, 같은 곳.
40) 위의 책에서 ‘지개’를 미상이라고 했다. 장삼의 소매가 반필이라고 하는
걸 보면, 전필은 장삼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길이’를 경상도에서는 ‘지래
기’나 ‘찌래기’라고 하는데, 잘못 들으면 ‘지개’로 들을 수 있다.
32 淨土學硏究 29집(2018. 6)


고 노래하는 걸 보면, 미륵은 거인이다. 장삼 길이가 전필이고 소매가
반필이라고 하니 짐작할 만하다. 식생활을 대목을 보면, 체구만 큰 것
이 아니라 먹는 음식의 양도 엄청나서 거인이란 사실이 더 두드러진
다.
미륵님 歲月에는, 生火食을 잡사시와,
불 안이 넛코 생나달을 잡사시와
미륵님은 섬두리로잡수시와,
말두리로 잡숫고, 이래서는 못할너라.
내 이리 誕生하야, 물의 根本불의 根本
내 밧게는 업다, 내여야 쓰겟다.41)
당시에는 불이 없어서 모두 생식을 했는데, 미륵은 익히지 않은 낟
알을 말들이 섬들이로 먹어치웠다. 먹는 양을 보면 어마어마한 대식
가이자 거인신이다. 문제는 식량 감당을 못하는 일이다. 곡식에 물을
부어서 익혀먹어야 양식 절약을 할 수 있기에 물의 근본을 찾고 불
을 발명한다. 미륵은 인간에게 불을 발명해 준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와 같은 문화영웅이다. 그런가 하면 인류시조를 창조하
는 주체 구실을 담당한다. 미륵은 세상이 살 만한 환경으로 조성되자
인간을 만들어낸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미륵님이 금은 쟁반을 제각기 두 손에 들고 하늘에 축수하였다.
2. 하늘에서 금은 벌레가 다섯 마리씩 각각 금은 쟁반에 떨어졌다.
3. 벌레들이 제각기 자라서 금벌레는 남자, 은벌레는 여자가 되었다.
4. 다섯 남녀가 장성하여 부부관계를 맺어 세상사람들이 생겨났
다.42)
41) 김헌선, 같은 책, p.231.
42) 임재해, 「韓國神話의 敍事構造와 世界觀」, ?說話文學硏究? (上), 서울:
단국대학교출판부, 1998, p.96.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33
인류시조 관련 무속신화에는 ‘천지가 개벽할 때 사람도 생겼다’고
하여 미륵과 상관없이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가 다시 흙으로 돌
아가는, 강춘옥 구연의 ‘셍굿’이43) 있다. 박봉춘본의 ‘초감제’처럼, 갑
을병의 순서에 따라 하늘과 땅, 사람이 차례대로 열리는 까닭에 천지
개벽이든 인류시조 출현이든 미륵과 같은 신격이 등장하지 않고 필
요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미륵신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무교에서는
천지개벽론에 따라 천지가 열리면서 사람도 신의 개입 없이 자연스
레 생겨났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전래되고 민중불교가 확산되면서 세간에서도 미륵
신을 믿게 되자, 사람이 생겨나기 전에 미륵이 먼저 출현했을 뿐 아
니라 미륵의 기도에 의해 하늘에서 금은벌레가 내려와 사람이 생겨
났다고 믿게 되었다. 원래 무교에서는 인간이 자력적으로 생겨난 것
으로 인식했으나, 불교의 영향으로 미륵의 개입에 의해 생겨난 것으
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민중불교에서는 미륵이
태초의 신이자 인류시조를 있게 한 최고의 신격으로44) 받아들여진
셈이다.
미륵에 대한 인식은 다음 대목에서 석가와 대비됨으로써 더 구체
화된다. 김쌍돌본에서 미륵에 의해 인류시조가 나타나 인간세상이 조
성되자, 느닷없이 석가가 등장한다. 석가는 미륵이 만들어 놓은 인간
세상을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彌勒님 歲月은 다 갓다. 이제는 내 歲
月을 만들겟다.”고45) 주장한다. 미륵님이 다스리는 인간세상은 태평
했고 미륵 스스로 자기 세월이라고 했지만, 석가가 나서서 자기 세월
이라고 우기는 까닭에 ‘인간세상’을 두고 서로 다툼이 생겨 시합으로
43) 任晳宰·張籌根, ?關北地方巫歌-추가편?, 서울: 韓國文化財管理局, 1966,
pp.12.
44) 임재해, 앞의 글, pp.98105에서
천지개벽과 인류시조의 출현에 대한 미
륵의 역할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45) 김헌선, 같은 책, p.233.
3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결정하기로 했다.
첫째 시합에서 석가가 졌는데도 승복하지 않고 둘째 시합을 제안
해서 석가가 다시 졌지만, 한 차례 더 시합을 요구한다. 셋째 시합에
서는 석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기게 된다. 방에 누워 자는 동안 무
릎에서 모란꽃을 피우기로 했는데, 미륵 무릎에 꽃이 먼저 피자 석가
가 꽃을 꺾어다가 자기 무릎에 꽂아서 시합에 이기려 했다. 그러자
미륵은 석가에게 세상을 내주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세상을 차지한
까닭에 말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축축하고 더럽은 이 釋迦야.
내 무럽헤 꼬치 피엿슴을
너 무럽헤 꺽거 꼬젓서니,
꼬치 피여 열헐이 못가고,
심어 十年이 못가리라.
미럭님이 석가의 너머 성화를 밧기실허,
釋迦에게 歲月을 주기로 마련하고46)
미륵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석가에게 내주고 떠나버린다. 정운학
본47) ‘삼태자풀이’에서도 미륵세상에 석가가 나타나서 부당한 방법으
로 세상을 차지한다.48) 미륵시절에는 세상이 풍요롭고 태평했는데,
석가가 세상을 부당하게 차지하고부터는, 우리가 요즘 겪고 있는 현
실세계처럼 각종 부조리와 모순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적
현실세계의 원인을 현세불인 석가의 부도덕성에서 찾는 한편, 미래불
46) 김헌선, 같은 책, p.234.
47) 任晳宰·張籌根, ?關西地方巫歌?, 서울: 文化財管理局, 1966, 김헌선, 같은
책, pp.286287에
재수록.
48) 이러한 세계관을 근거로 볼 때, 불교의 영향을 받은 김쌍돌본과 정운학
본보다 미륵의 개입이 없는 천지개벽본풀이를 구송한 강춘옥본이나 박
봉춘본이 상대적으로 더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35
인 미륵을 과거불이자 세상을 만들어낸 거인신격으로 왜곡하여 수용
한 것이다.
석가가 현세불인 까닭에 현실세계의 모순을 석가탓으로 돌리며 석
가의 부당한 세상차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상당한 타당성
이 있다. 무교를 비롯한 민속신앙의 세계관에는 인과론적 사유가 자
리잡고 있다. 전생과 현생, 내생이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다. 현실의 고난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라는 사유 속에서 받아
들이고,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여기는 것처럼, 현실세계의
모순 현상도 태초의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설화이자 인류시조신화로 인식되는 ‘목도령 설화’에도 같은 결론
에 이른다.
이 설화에서는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하고, 목도령과 목도령이 구해
준 아이만 살아남는다. 청년으로 자라난 두 사람은 자기들이 정착한
처소의 두 자매를 두고 혼인할 상대를 고르는 경쟁을 하게 된다. 그
런데 목도령이 구해 준 아이는 오히려 목도령을 모함하고 자매의 어
머니를 속여서 자매 가운데 잘 생긴 언니를 차지하려고 한다. 목도령
이 위기에 빠졌을 때, 홍수에서 구해준 개미와 모기떼들의 도움으로
언니를 아내로 맞이하고, 모함한 아이는 아우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남을 구해준 목도령처럼 착한 사람과, 은인을
모함하는 아이처럼 나쁜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게 되었다는 것이
다. 49)
대홍수 이후 현재 인류의 시조를 말하면서, 선악이 공존하는 현실
세계의 원인까지 해명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본풀이의
서사구조 속에 잘 드러난다. 모든 역사적 과거를 그 자체로 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의 현실세계 모순을 설명하는 원인으로 과
거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굿에서 노래되는 본풀이는 천
49) 孫晉泰, ?韓國民族說話의 硏究?, 서울: 乙酉文化社, 1946, pp.166168.
3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지개벽처럼 태초의 우주사를 말하면서, 현실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잘
못에서 찾아 해명할 뿐 아니라, 굿의 전개에 따라 미래의 전망까지
예언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굿을 하면서 기대하고 경험하게 되는 생
활세계의 실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굿을 하는 계기와 굿이 전개
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 본풀이의 세계인식 틀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 종교문화에서는 특정 종교의 신도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사찰이나 교회, 모스크에서 하는 정기적인 제의에 참여하기 마
련이다. 무교에서는 일상적으로 하는 정기적 제의가50) 없는 것은51)
물론, 신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누구라도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위
하여 굿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무교를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의 굿은 당면한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당에게 의뢰하여 이루
어지는 까닭에 일시적이다. 그러므로 무교 신앙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무당에게 굿을 의뢰하면서 발현되는 것이
다.
굿을 하는 계기는 늘 현실문제에서 비롯되지만, 굿의 효과는 현실
문제를 해결한 이후, 곧 미래에 나타난다. 굿에서 노래되는 본풀이는
현실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인류사나, 역사, 가족사에서 찾아 밝히게
된다. 원인을 밝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된
원인을 해결하는 제의적 절차를 수행해야 하고, 제의를 수행하는 무
당이 언제 어떻게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미래의 전망까지 말
하게 된다. 부조리한 현실에서 출발하여 과거 역사를 추적하고, 미래
의 기대를 추론하는 통시적 역사인식의 관점을, 나는 ‘본풀이사관’으
로52) 일컫고 일련의 역사연구를53) 수행했다.
50) 마을굿이나 고을굿, 나라굿처럼 공동체 제의는 세시풍속에 따라 정기적
으로 한다. 여기서는 무당굿에 관한 것이다.
51) 무교에서는 기독교의 일요 예배나 미사, 불교의 재일(齋日)처럼, 정기적
인 제의일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다. 공동체굿에서는 세시풍속처럼 특별
한 명절에 한정해서 굿을 한다.
52) 임재해, 「고조선 ‘본풀이’의 역사인식과 본풀이사관의 수립」, ?단군학연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37
굿의 논리에서 포착된 본풀이사관은 카아(E. H. Carr)가 말하는 역
사처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에54) 만족하지 않고, 현재와
현재의 대화에서 시작하여 현재와 과거의 대화, 현재와 미래의 대화
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의 석가와 미륵을
이러한 세계관의 틀에 수용하여, 석가가 현실불교에서 섬기는 현재불
인 까닭에 미륵을 과거불이자 미래불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
로 미륵이 천지개벽시기부터 출현하여 인간세상을 창출한 주체로 긍
적적 인식을 하게 된 반면, 현재불의 굴레 때문에 석가는 현실세계의
여러 가지 모순을 야기하게 된 주체로 부정적 인식을 하게 된 것으
로 추론된다.
같은 맥락에서 바람직한 미래는 석가의 시절이 끝나고 미륵불이
다시 출현할 때 용화세계로 실현된다.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천지개벽
시절의 행적과 상관없이 미래불로 설정되어 있지만, 무교에서는 태초
의 천지개벽과 인류의 탄생에 이바지한 공적에 따라 미래불로 섬겨
지는 것이다. 따라서 미륵신앙이 민중불교로 확산되면서 민속신앙처
럼 큰 바위만 있으면 미륵으로 섬기게 된다. 안동시 이천동 마애불
도55) 그 정체와 상관없이 으레 제비원 미륵불로 일컬어지고 있다. 미
륵신앙은 불교신앙과 별도로 사찰과 무관하게 민속신앙처럼 민중들
의 생활세계 속에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미륵신앙의 대상으로 섬기
는 돌미륵들은 사찰의 미륵불상과 다른 형상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미륵신앙은 사찰을 떠나 민중들의 민속문화로
구? 21, 단군학회, 2009, pp.351-408 참조.
53) 임재해, ?고조선문화의 높이와 깊이?, 서울: 景仁文化社, 2015.; ?고조선
문명과 신시문화?, 서울: 지식산업사, 2018.
54) E. H. 카아 著, 吉玄謨譯, ?歷史란 무엇인가?, 서울: 探求堂, 1984, p.43,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
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55) 秦弘燮, ?韓國의 佛像?, 서울: 一志社, 1980, p.293에서는 불상이 중품하
생인(中品下生印)의 손모양을 하고 서방정토를 향하고 있으므로 아미타
여래상(阿彌陀如來像)이라 했다.
3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서 마을신앙의 한 양식으로56) 재탄생한 셈이다.
무교에서는 본풀이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미륵과 석가의 관계를 크
게 왜곡하여 수용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는 세상의 탐욕과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깨달은 존재인데도, 오히려 탐욕 때문에
미륵세상을 차지한 현재불로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석가는 과소평가
된 반면에, 미륵은 과대평가된 셈이다. 민속신앙에서도 석가는 배제되
고 전적으로 미륵에 치우쳐 있다. 세간의 미륵신앙은 불교신앙이 아
니라 민속신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속신앙의 주체인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가 석가를 주불로
섬기면서 당대 지배체제의 모순을 비판하고 혁파하기보다 업보로 받
아들이는 현실 수용의 태도가 불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체제
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미륵을 신앙하기 마련이며, 실
제로 민중은 미륵의 이름으로 민란을 일으켜 왔던 것이다. 57) 그러므
로 현실에 영합하는 석가신앙보다 현실 극복의 미륵신앙이 민중의
민속신앙으로 자리잡기 마련이다.
실상과 다른 석가와 미륵의 왜곡 현상은 불교 내부에서 어느 정도
근거를 제공한 국면도 있다. 왜냐하면 석가와 미륵은 사바세계에 태
어나기 이전의 천상계, 곧 도솔천에서도 사제관계를 이루었을 뿐 아
니라, “미륵 보살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사바세계 중생을 교화하는
주세불이 되기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솔천에 더 있
어야 하는 “석가가 중생제도의 열정을 가지고 미륵을 앞질러 현세에
태어난 것”이 문제이다. 이때 “석가는 아직 불타를 완성하지 못한 보
살이었다.” 58) 그러므로 굿에서 수용된 미륵과 석가의 대립적 인식은
56) 주강현, ?마을로 간 미륵? 1, 2, 서울: 대원정사, 1995 참조. 저자는 제주
도 미륵을 시작으로 전국의 미륵과 장승, 당간지주 등 돌로 만든 조형물
을 집중 조사하고 마을신앙의 양식으로 해석하는 방대한 작업을 하였다.
57) 김현, ?전체에 대한 통찰?, 서울: 나남, 1990.; 이재형, <석가님과 미륵님
의 대결>,《법보신문》1330호, 2016년 2월 3일자.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976)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39
전적으로 무교의 세계관이나 민중의 비판적 불교관에 의한 일방적
왜곡이 아니라, 불교의 교리체계를 일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
다.
Ⅴ. 제석굿에 수용된 불교 신격과 승려의 두 인식
무교의 굿거리들 가운데 불교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지니는 것이
승려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는 제석굿이다. 제석굿은 승려를 제석신
으로 모시는 까닭에 불사제석굿, 시준굿, 중굿으로 일컬어질 만큼 불
교적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굿거리이다. 불사굿에서도 불교성이 농후
하게 드러나지만 논의를 집약하기 위해서 제석굿거리만 다룬다.
제석굿을 하면서 부르는 무가가 제석본풀이 곧 ‘당금애기’이다. 무
당은 제석거리에 맞게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쓰고 염주를 목에 걸어서
승려 차림을 한다. 무당의 옷차림을 보면 중이지만, 본풀이에서 일컬
어지는 이름을 보면 제석, 석가, 중으로 다양한 위상을 보인다. 제석
은 도솔천의 최고 신격인가 하면, 중은 불교에 귀의한 출가 수행자이
다. 민중들이 현실적으로 불교를 만나는 것은 제석과 석가가 아니라,
승려에 의해서다. 따라서 제석굿에는 물론, 세존굿에서도 중이 등장하
기 일쑤이다. 제석본풀이가 세간에서는 설화로 널리 전승되기도 하는
데, 이때 이야기의 주인공도 으레 중이다. 그러므로 제석굿을 ‘중굿’이
라고도 한다.
제석이든 석가든 중이든 불교의 보살이나 수행자를 무신으로 모신
다는 것은 무교에서 불교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종교
58) 表一草, 「彌勒信仰과 民衆佛敎」, ?韓國近代民衆佛敎의 理念과 展開?,
서울: 한길사, 1980, p.338.
40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적으로 말하면 이단의 신을 모시는 일이므로 사실상 개종이나 다름
없는 파격이자 파계에 해당된다. 그런데 무교에서는 불교의 신격을
모시는 굿을 하며 거기에 따른 본풀이까지 전승하는 파격을 보인다.
제석본풀이는 제석굿의 구비경전이다. 구비전승의 경전인 까닭에
여러 유형이 있는 것이 장점이다. 서사구조는 거의 일치하지만 이야
기의 주인공이 다른 까닭에 불교적 서사주체에 따라 본풀이를 제석
형과 석가형, 승려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제석형 본풀이를 요약한
다.
1. 천지가 개벽할 때 사람이 만들어지고 석가여래가 탄생하였다.
2. 천상의 제석은 지상으로 귀양와 마부인과 혼인하고 딸을 낳는다.
3. 딸 상남아기가 집에 혼자 있는데 황금사 중이 탁발하러 온다.
4. 중이 떠난 뒤에 상남아기는 쌀 한 톨을 주워 먹고 잉태하게 된다.
5. 잉태를 알아차린 제석에게 쫓겨난 상남아기는 황금사를 찾아간다.
6. 상남아기는 황금사에서 옥동자를 낳아 인간세계를 제도하게 된
다.59)
서두는 천지개벽의 상황을 말한다. 태초에 천지가 열리면서 사람과
석가여래가 함께 출현한다. 다만 사람은 타력적으로 만들어지고 석가
는 자력적으로 탄생한 점에서 인간과 신격의 위상이 구별된다. 적어
도 이 무가에서는 석가가 자력적으로 탄생한 태초의 신으로 인식한
셈이다. 제석은 석가와 상관없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귀양 온다. 천신
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는 종교적 인과론에 따라 일종의 징벌을 받는
셈이다.
환웅은 인간세상을 구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펼치기 위해 환인제
석의 도움을 받아 자력적으로 지상에 내려왔다. 그러나 제석은 죄를
저지른 탓에 타력적으로 지상에 유배된 것이다. 지상에서 마부인과
59) 金泰坤, ?韓國의 巫俗神話?, 서울: 集文堂, 1985, pp.177185.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41
혼인을 하여 딸을 낳지만, 자기 몰래 잉태한 사실을 알고 딸을 쫓아
낸다. 제석은 이중의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하나는 천상에서 죄를 저
질러 지상으로 유배 된 것이며, 둘은 죄 없는 딸을 형식적 규범에 얽
매여서 쫓아낸 것이다. 제석은 이룬 것이 없지만, 쫓겨난 딸은 황금사
로 중을 찾아가서 아들을 낳고 인간세상을 제도하는 영웅이 되게 한
다. 제석보다 중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무교가 불교의 영향으로 제석과 석가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알
고 있지만, 불교체계 속에 존재하는 신격의 위상과 다르게 제석보다
중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이 본풀이에서 석가는 태초의 신으로서 존
재할 뿐 현실세계와 무관하다. 제석은 하늘에서 적강(謫降)하여 지상
에서 부부생활을 하지만 가부장적 권위를 지닌 인간세상의 범부 노
릇을 할 따름이다. 오히려 황금사의 중은 상남아기를 초월적으로 잉
태시키고 영웅적 인물을 낳아 인간세상을 제도하는 성과를 이룬다.
그러므로 석가와 제석, 중의 세 불교적 존재가 무교의 제석굿에 수용
되면서 무교의 세계관답게 재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인도문화에서 발생된 것이라면, 무교는 한국문화에서 발생
된 것이다. 제석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는 것이 적강형태이긴
하지만, 환웅이나 해모수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강림하는 것과 일치한
다. 환웅이 곰네[熊女]와 만나 단군을 낳고, 해모수가 유화부인과 만
나 주몽을 낳는 것처럼, 천신이 지상의 여성과 혼인하여 자녀를 낳는
구조는 제석이 마부인을 만나 강남아기를 낳는 것과 동일하다. ‘마부
인’은 석가의 어머니 마야(摩耶)부인과 이름이 닮은 것을 보면, 불교
를 구성하는 핵심 인물을 한국적 본풀이 체계에 맞게 임의로 끌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유화부인은 순조롭게 주몽을 낳는 것이 아니라, 허락 없이 해모수
와 사통한 까닭에 아버지 하백(河伯)에 의해 쫓겨난다. 그리고 금와
왕의 궁에서 햇볕을 받아 잉태하고 주몽을 낳는다. 마치 강남아기가
42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사통한 죄로 아버지 제석에게 쫓겨나서 황금사의 삼신당에서 세상을
다스릴 영웅을 낳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앞의 부분은 천신 제석이
지상의 여성과 혼인하는 건국영웅의 서사구조와 만나고, 뒤의 부분은
천신과 사통한 딸이 아버지에게 추방되어 세상의 지도자를 낳는 구
조와 만난다. 그러므로 불교의 신격들이 제석굿의 신격으로 좌정하는
과정이 본디 교리체계와 상관없이 한국 고대 건국본풀이 구조의 틀
속으로 변용되면서, 천신의 제석보다 지상의 중이 더 신통한 역할을
한 것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단군신화로 일컬어지는 ‘환웅신시’와 ‘단군조선’ 건국본풀이,
그리고 동명왕전승으로 수렴되는 ‘해모수의 부여’와 ‘주몽의 고구려’
건국본풀이를 염두하면, 제석본풀이의 서사구조가 낯설지 않다. 환웅
과 해모수 등 천신강림의 부계가, 곰네와 유화부인 등 지상의 모계와
혼인하여, 단군과 주몽 등 자녀를 놓고, 그 자녀가 자라서 조선과 고
구려의 건국시조가 된다는 구조이다. 제석본풀이도 이러한 서사구조
의 틀에 수렴되어 있되, 이중으로 60) 겹쳐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제석신사를 일컬어 ‘부루제석신사(夫婁帝釋神祀)’라 하여61) 해모수본
풀이의 해부루를 명시한다. 그리고 사찰에서 섣달 그믐날 제석신 위
패를 모시는데, 위패에 ‘석제환인위제(釋提桓因位帝)’라고 쓴 것은, 환
웅본풀이의 맥락 속에 제석신을 포섭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석가형 본풀이다.
1. 서천서역국 왕이 백일기도로 아들이 태어나자 석가여래라 하였다.
2. 부모가 죽자 석가는 하늘로 올라가 술법을 터득하고 내려와 지상
견문을 한다.
3. 조선의 왕은 딸 당금애기를 낳고 천자에 의해 유배를 가서 집에
60) 제석의 부계와 마부인의 모계 사이에서 상남아기가 나고, 다시 중의 부
계와 모계의 상남아기 사이에서 영웅이 태어나 세상을 제도한다.
61) 이능화 지음, 서영대 역주, ?조선무속고?, 서울: 창비, 2008, p.288.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43
딸만 남는다.
4. 석가는 탁발하다가 날이 저물어 당금애기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5. 당금애기는 석가여래와 자는 중에 아들 셋을 잉태하는 꿈을 꾼다.
6. 잉태를 눈치 챈 가족들에 의해 쫓겨난 당금애기는 토굴에서 세
아들을 낳는다.
7. 세 아들은 당금애기와 서천서역으로 가서 아버지를 찾고 삼불제
석이 된다.62)
태초에 석가여래가 출현하는 제석형과 달리, 석가형에서는 제석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마지막에 석가의 아들이 제석이 되어 무신으로
좌정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제석형에서는 석가가 자력
적으로 출현한 이후 서사적 전개에서 잠적하고 마는데, 여기서는 출
생과정부터 당금애기와 만나 아들을 낳아서 제석이 되게 하는 결말
까지 일관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석가의 세 아들이 삼불제석으로 좌
정하지 않았다면 제석본풀이가 아니라 석가본풀이라 할 만큼 석가가
이 본풀이의 중심을 이룬다.
석가여래가 서천서역국의 왕자로 태어난 것으로 노래한 점에서63)
석가의 실제 출생 역사를 일정하게 수용한 셈이다. 석가가 하늘에 올
라가 술법을 터득하고 내려왔다는 것도 석가가 오랫동안 수련하여
득도한 사실을 무교 본풀이답게 더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따
라서 석가형은 현실 불교사에서 서역국 왕자 출신인 석가와, 조선왕
의 딸 당금애기 사이에 삼불제석을 탄생시키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서역국 출신의 석가여래가 주체 구실을 하는 반면에, 조선의 왕은
당금애기를 낳고 핍박할 뿐 이 땅을 정토세계로 만드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인도불교의 한국 전래과정을
62) 徐大錫, ?韓國巫歌의 硏究?, 서울: 文學思想社, 1980, p.323.
63) 석가모니는 인도 북부 지역 샤키야족[釋迦族] 왕국의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다.
4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재구성한 것이 석가형 제석본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석형보
다 불교체계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석가형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승려형 본풀이는 중이 주역으로 등장할 뿐 불교체계와 상당
한 거리가 있다.
1. 부모가 어린 딸에게 혼자 집을 보게 두고 멀리 출타한다.
2. 중이 탁발을 와서 걸어둔 대문을 술법으로 열고 들어온다.
3. 중은 하룻밤 자고 다음날 딸에게 박씨 세 알을 주고 떠난다.
4. 돌아온 부모는 딸이 잉태한 사실을 알고서 딸을 쫓아낸다.
5. 쫓겨난 딸은 토굴에서 학의 도움을 받아 세 아들을 낳는다.
6. 어머니와 삼형제는 박씨를 심고 넝쿨을 따라 중을 찾아간다.
7. 어머니는 출산의 신이 되고 삼형제는 제각기 무신이 된다.64)
동해안 별신굿 가운데 울진지역 세존굿거리에서 노래되는 이 본풀
이에는 아예 석가나 제석이 등장하지 않고 오직 중만 등장한다. 딸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일컬어지지 않는다. 강남애기도 당금애기도 아닌
예사 딸일 뿐이다.65) 따라서 승려형 본풀이라 할 수 있되, 예사 승려
와 달리 석가나 제석처럼 신이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안으로 빗장을
걸어둔 대문을 술법으로 열 뿐 아니라, 박씨 세 알을 딸에게 주어서
삼형제를 잉태하게 만드는 초월성은 물론, 삼형제가 박넝쿨을 따라
자기를 찾아오도록 하는 예지력도 있다. 중이 제석이나 석가 못지않
은 신통력을 지닌 존재로 노래된다.
불교의 수행자이자 사제자인 승려를 끌어들여 무신의 계보를 확보
하고 종교적 신이를 과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중으로 일컬어
진 승려는 예사 중이 아니다. 본풀이 서두에 “중 하나 나리온다”는
64) 徐大錫, 앞의 책, pp.3040.
65) 동해안 별신굿을 하는 지역과 무당에 따라 세존굿의 본풀이가 차이를
보이는데, 딸의 이름을 당금애기로 일컫는 경우(부산 기장군 두모포 별
신굿)가 있을 뿐 아니라, 중도둑잡이 잡희를 하기도 한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45
구절이 반복되면서 중의 외형을 묘사한 대목이다.
중 하나 나리온다/저 중에 거동 보소/저 시(僧)님 호사 보시오/얼굴
은 서산 배옥이오/눈은 소상강 물결이라/서래 같은 눈은 수팔자로
그려 입고/두 귓박이 축 쳐지고/한 자 한 치 홀 고깔에/두 자 두치
접고깔에/설흔 대자 접 장삼에66)
탁발승의 모습이 아니다. 중이 내려온다고 하여 마치 하늘에서 지
상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묘사할 뿐 아니라 중의 모습을 묘사하며, 얼
굴은 백옥이요, 눈은 소상강 물결, 눈썹은 팔자눈썹이다. 체구는 ‘설흔
대[35]’ 자 장삼을 입었으니, 11m 이상의 거인이다. 따라서 말은 중이
라고 했지만, 사실은 거인신으로서 석가나 제석, 미륵이 중의 행색으
로 나타난 셈이다. 세존굿이라 하는 걸 보면, 중은 승려가 아니라 하
늘에서 내려온 석가세존의 설화적 표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석가형
이 불교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본풀이라면, 제석형은 상당히 무교
적으로 변용되었으며, 승려형은 민중의식에 따라 설화적으로 재구성
된 본풀이라 할 수 있다.
별신굿은 강신무가 아닌 세습무가 전승하는 까닭에 종교성보다 굿
거리의 재미를 더 중요시한다. 동해안 별신굿의 세존굿에는 제석본풀
이 구송에 이어 ‘중도둑잡이 잡희’를67) 하여 중을 풍자하는 한편 구
경꾼의 흥미를 유발한다. 승려형 본풀이를 구송하며 불교적 신성성이
과도하게 부여된 중을, 도둑으로 몰아세우는 잡희를 함으로써 오히려
중을 부정적 존재로 풍자하는 것이다. 세존굿은 무녀가 하면서 본풀
이를 노래하지만, 이 잡희는 남무 둘이 나서서 극적 양식으로 한다.
남무들은 마을에 도둑이 들었다고 나서서, 시주를 얻어가는 스님을
66) 동해안 울진 지방 별신굿 세존굿거리에 노래되는 본풀이의 서두 부분이
다.
67) 세존굿 또는 중굿의 일부로 하는데 ‘중잡이 놀이’라고도 한다.
4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잡아 도둑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을: 중아, 이거 놔라. 이거, 중이 무엇 도둑했노.
갑: 세사(세상에) 대사 중이 돼노이 잡기가 어찌 힘이 드는지.
을: 머 도둑했는동 한번 보래. [중의 자루를 뺏어서 손을 넣어 주무
르며]
갑: 한번 보소. 중들 이거 큰일 났소. 야 대본 대동 안에 지비기 희
러기 있다 하디마는 [자루에서 끄내면서] 이거는 남의 조개 다 훔쳐
있다.68)
남무 갑과 을이 중을 도둑인양 잡아놓고 중이 메고 있는 자루 속에
훔친 물건이 들었다고 하며, 하나씩 꺼내 들고 고발하듯이 소란을 피
운다. 바가지를 꺼내 들고 은촛대를 훔쳤다고 하는가 하면, 길쭉한 찰
떡을 꺼내 들고 소 잡아먹고 소 혓바닥을 빼 간다고 하는 식이다. 위
의 인용대목 말미에 “남의 조개 다 훔쳐” 간다고 하는데, 중이 마을
에서 훔친 ‘조개’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예사 조개이면서 여성을
상징하는 조개이기도 한다.
잡희를 하기 전에 무녀가 구송한 본풀이에서, 중이 탁발을 구실로
처녀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 여러 구실을 만들어서 기어코 하룻밤
자고 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따라서 그 뒤를 이어서 잡희를 하는 까
닭에 중이 훔쳐가는 “남의 조개”는, 곧 “남의 계집” 또는 “남의 딸”을
뜻하는 말로 들린다. 69) 하회별신굿 중마당에서도 중은 부네가 오줌
누는 모습을 보고 유혹하여 부네를 업고 달아난다. 중이 부정하게 여
성을 차지하는 일을 웃음거리로 삼으면서, 민중적 삶의 본성을 긍정
하는 것인데, 이 잡희에서는 중의 행실을 도둑질로 몰아 풍자하는 셈
이다.
68) 崔正如·徐大錫, ?東海岸巫歌?, 서울: 螢雪出版社, 1974, pp.116117.
69) 임재해, 「민속극의 전승 집단과 영감·할미의 싸움」, ?한국의 민속예술?,
서울: 文學과知性社, 1988, p.180 참조.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47
제석은 천상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서 불교를 수호하는 천왕
인 까닭에 불교 최고의 신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당들은 제석
굿을 하며 불교의 최고 신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굿거리를 만들
고, 무신으로 모심으로써, 무교의 종교적 위상을 확보한다. 무교 스스
로 종교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무신의 뿌리가 불교에 있는 것처
럼 노래하는 제석굿의 본풀이는, 무교가 불교에 자진 복속하면서 종
속상황을 깊이 조성하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굿거리에서 세습무들은
본풀이의 불교성과 상반되는 잡희를 함께 한다. 이러한 모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무교의 종교적 계보를 불교에 두고 무신을 석가나 제석의 역사적
후예로 간주하는 것은 여러 모로 무교의 종교적 권위를 보장 받는
일이다. 족보 없는 사람들이 족보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 종교에서
무교와 불교는 다른 체계의 종교일 뿐 아니라 서로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주민들에게 문제해결의 방편으로 굿을 해주고 굿값을
받아 생활하는 무당으로서는, 승려들이 마을에 내려와 염불하고 시주
를 받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기 어렵다. 승려들의 시주가 무당
의 종교 영업에 장애가 되는 까닭에, 무교와 불교의 종교 갈등은 마
치 한의와 양의의 의료분쟁과 같은 양상을 이룬다.
수요자의 신앙 논리로 보면, 탁발승에 시주하고 복 받는 것이 무당
불러 굿하는 일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굿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
는 무당의 처지에서 보면, 단순히 문 앞에서 염불을 좀 하다가 시주
를 받아가는 승려들은 별로 하는 일 없이 재물을 취하는 까닭에 한
갓 도둑으로 간주될 수 있다. 더군다나 굿의 영험을 믿고 굿을 직업
으로 하는 무당들로서는 문 앞에서 잠깐 하는 염불의 영험을 인정하
기 어렵다.
따라서 종교체계의 위상을 갖추려고 불교의 계보에 의존하여 제석
4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신 같은 무신을 모시는 굿을 하지만, 현실적인 종교활동으로서 주민
들을 경쟁관계 속에서 만나는 현장에서는 중의 탁발활동을 부정적으
로 풍자하는 잡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교에서 제석과 같
은 신격은 받들어 섬기는 반면, 승려의 종교활동 행태는 풍자함으로
써, 불교에 대한 양가적 인식을 균형 있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
다.
문제는 중도둑잡이 잡희가 세습무의 별신굿에 한정되어 나타난다
는 점이다. 세습무는 강신무들과 달리, 빙의현상에 의존하는 굿이 아
니라, 학습에 의존하는 굿을 한다. 그런 점에서 탈광대들의 탈굿이나
풍물잡이들의 풍물굿과 만난다. 탈춤의 중마당 또는 노장과장에서는
으레 노장이 미색에 홀려서 파계하는 과정을 연출한다. 그리고 풍물
잡이들도 풍물굿을 하면서 대포수를 도둑으로 가정하여 잡아들이는
도둑잽이굿을 한다. 이러한 잡희들은 굿의 종교성에서 상당히 일탈된
광대들의 놀이굿이다.
탈광대들의 중탈놀이처럼, 세습무들의 중도둑잡이 잡희는 강신무들
의 제석굿과 다른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세습무들은 강신무들의 제석
굿과 달리 제석신의 빙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연출적 행위로 본풀
이를 구송하면서 제석굿을 진행하는 까닭에, 승려를 무신의 조상으로
받들다가 도둑으로 몰아세우는 잡희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파격이 크
게 충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풀이와 잡희의 충돌을 줄이고 자연스레 이어가기 위해,
별신굿에 따라서 독특한 연출을 한다. 무녀가 본풀이를 끝까지 구연
하지 않고 중이 당금애기 방에서 함께 자는 대목까지 구연한 다음에,
남무들이 나서서 잡희를 진행한다. 왜냐하면 중이 온갖 구실을 내세
워 혼자 있는 처녀의 방에서 하룻밤을 자겠다는 것은, 잡희에서 풍자
되는 중의 처녀도둑 심보를 드러내는 데 순조롭게 연결되는 까닭이
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49
Ⅵ. 불교 사찰에 수용된 민속신앙의 신격과 인식
사찰은 불교의 도량이다. 무당의 신당에 사찰의 법당 양식이 긍정
적으로 수용된 것처럼 사찰에도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격들이
다양하게 수용되어 있다. 그럼에도 법당 안에 민속신앙의 신격이 함
께 모셔진 경우는 없다. 사찰에서는 모시는 불상에 따라 전각이 제각
기 다르고 서로 분리된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불상을 모신
전각의 법당 안에 민속신앙으로 섬기는 신격을 모시지 않는다. 그러
나 이 문제를 사찰의 독립적 공간배치 논리만으로 해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불교와 민속신앙 또는 무교의 종교적 위상과 수용태도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는 까닭이다.
사찰의 경내에 모시는 민속신앙의 신격은 산신과 칠성, 삼신, 용왕,
조왕 등인데 모두 무교에서 섬기는 신격이다. 따라서 굿에서는 산신
굿을 비롯하여, 칠성굿, 삼신굿, 용왕굿, 조왕굿 등 다양한 굿거리가
있다. 무교는 만신을 섬기는 까닭에 민속신앙의 여러 신격들을 배척
하지 않는다. 무교는 모든 신들을 인정하고 수렴하여 포용하기 때문
이다. 한국에 여러 종교들이 있되 종교간 분쟁이 없는 현상이나, 한국
을 다종교 공존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현상도 토착종교인 무교
의 열린 신앙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속신앙에서
섬기는 신격은 사실상 무교의 신격이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으로 민속신앙의 대상을 곧 무교의 신격으로 일컬음으로
써, 3절에서 무교의 신당에 수용된 법당의 양식과 불교 신격을 다룬
것과 같은 맥락에서 논의를 진행한다.
불교와 무교는 종교적 신성공간에 서로의 신격을 수용하여 모심으
로써 상호영향을 주고받은 사실이 외형적으로 도드라지게 포착된다.
왜냐하면 유교의 성균관과 향교나, 기독교의 교회와 성당에서는 볼
50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와 무교의
종교간 교류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이룬 셈이다. 그러나 두 종교
의 제의공간에 상대 종교의 신격을 수용하는 방식은 대조적이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무교에서 신당의 조성과 배치는 사찰의 법당 양식을 보기로 삼았
을 뿐 아니라, 신당 안의 정면 중앙에 으레 금빛 불상을 모신다. 불교
신앙의 핵심 대상을 신당의 중심에 집약시켜 놓은 셈이다. 전체적인
형식은 물론 실제 봉안한 주신이 불교의 신격이다. 그럼에도 사찰의
전각을 갖추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외부에서는 기껏 사찰처럼
간판의 이름만 00사를 표방할 뿐 신당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불교적
영향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법당에는 무신들이 모셔져 있지 않다. 사찰의 경내
구석진 자리나 뒤켠 주변부에 산신각과 칠성각, 삼신각이 별도로 자
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각(三聖閣)을 지어서 산신과 독성신(獨星
神), 칠성신을 함께 모시기도 한다. 사찰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우
뚝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또는 대웅보
전, 아미타여래를 모신 무량수전 등의 본전이다. 본전 좌우에 극락전
과 비로전 등 모시는 불상에 따라 일정한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이
런 전각들은 예사 가옥과 달리 규모가 웅장하며 정교하게 건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찰에
가서 세심하게 둘러보지 않으면 이러한 불교 전각만 눈에 들어올 뿐,
무신을 모신 전각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무신의 전각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주변부로 밀려난 위치 탓만
은 아니다. 전각의 규모가 불교 전각에 견주어 매우 작은 까닭이다.
대부분 단칸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고작이어서, 시골마을 서낭당 규모
에 가깝다. 그럼에도 전각 외부는 단청으로 장식되고 안에는 작은 법
당과 같이 신상과 탱화가 모셔져 있고 제단이 갖추어져 있어서 70) 언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51
제든지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릴 수 있다.
사찰에서 무교의 신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주변부로 밀려나 있
으나, 세간의 민속신앙에 견주어보면 대단한 예우이다. 민속신앙은 물
론 무교신앙에서도 산신과 칠성신, 삼신을 이렇게 독립 전각으로 지
어서 깍듯하게 모시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역에 따
라서 산신당을 동신당처럼 지어 모시는 사례는 더러 있다. 이때 산신
당은 서낭당의 당집과 같은 구실을 한다. 그러나 사찰의 산신각처럼
신성공간답게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퇴락한 헛간처럼 초라한
모습의 서낭당 수준이다. 그러므로 무교의 신격들은 사찰에서 가장
잘 모셔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교와 불교를 견주어보면 서로의 신격을 제의공간에 모시는 태도
가 상반되어 있어 퍽 대조적이다. 무교의 신당에서는 불교의 신격을
불교의 법당 양식에 따라 가장 중심에 중요하게 모신 반면에, 불교의
법당에서는 무신이 전적으로 배제될 뿐 아니라, 경내의 주변부에 매
우 초라한 구조물 속에 무신들을 모신다. 요약하면 무교는 불교의 신
을 가장 숭상하는 반면에, 불교는 무교의 신을 상당히 홀대하는 셈이
다. 두 종교간 교류와 수용의 층차를 객관적으로 포착하면 종교적 위
상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무교가 신당의 위상 제고를 위해 불상을 적극 차용한 반면에, 불교
에서는 왜 신성한 도량에 무신들을 모시는 전각을 지어두고 누구든
지 참배하도록 관리하고 있을까. 종교적으로 보면, 연기(緣起) 사상과
모든 중생을 부처로 보는 자비심에 입각해서, 세간의 신앙들을 두루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무교의 만신들 가운데 특정 신
들만 전각을 지어 모시고 있다. 어느 절이나 산신각이 있는 것은 불
교의 산신신앙과, 사찰이 입지하고 있는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산신은 무신이면서 불교에서도 섬기는 신이다. “화엄경에는 열여덟
70) 제단 앞에는 작은 불전함도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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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산신’이 불교의 계율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산신은 부처나 보살보다 격이 낮지만 인간 보다는 격이 높은
신들, 자연신들에 속한다.71) 따라서 ‘아무리 규모가 작은 사찰이라도
경내에 산신을 모시는 제단 마련되어 있다.’72) 사찰들이 대부분 깊은
산 속에 있는 까닭에 산신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산 아래에 사는 사하촌(寺下村) 주민들과 산신
신앙을 공유하는 장점도 있다.
산신과 달리, 삼신과 칠성신은 모두 자녀와 관련된 신으로서 여성
들의 신앙대상이다. 삼신은 아기의 잉태와 출산, 육아를 담당하는 산
육신(産育神)이고, 칠성신은 자녀들의 무병성장과 어른들의 수명장수
를 관장하는 신이다. 가신신앙에서 삼신은 안방에 모시고, 칠성신은
장독대 근처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칠성신과 삼신은
모두 여성들이 주로 섬기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는 아기를
낳아 기르고 가족들의 무병건강을 비는 것만큼 간절한 신앙이 없다.
따라서 사찰의 무신 전각들은 여성들을 사찰로 오게 하는 중요한 매
개 구실을 한다. 실제로 사례조사를 해보면, 대웅전보다 칠성각이나
산신각을 찾아갔다고 한다.
<사례 1>
전재강 교수는 73)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절(안동 광흥
사)에 갔는데, 대웅전을 지나쳐 돌아서 본전 뒤에 있는 칠성각으로
갔다고 했다. 그리고 칠성각에 들어가서 참배를 하고 불전을 넣은 뒤
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영문을 몰라서 어머니를 따라 했는
71) 데이비드 메이슨 지음, 신동욱 옮김, ?山神-한국의 산신과 산악숭배의
전통?, 서울: 한림출판사, 2003, p.135.
72) 데이비드 메이슨 지음, 신동욱 옮김, 위의 책, p.134.
73) 안동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고전문학 및 불교문학 전공(2018
년 5월 4일, 연구실에서 면담 조사).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53
데, 대학생 시절에 다시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갔을 때 여전히 대웅전
을 돌아서 칠성각으로 가는 것을 보고, 절에 오면 대웅전의 부처님을
먼저 참배한 다음에 다른 신들을 참배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 뒤로는 대웅전부터 참배했다고 한다.
<사례 2>
대학원 최수정74) 학생은 어릴 때 할머니(김순자)를 따라 자주 절에
가면, 대웅전에 절을 올리는 참배를 마친 다음에는 으레 산신각으로
가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다니던 청용암에는 산신각 좌우
에 칠성신과 산신을 모셔두었는데, 촛불을 켜고 간단한 예물을 올린
뒤에 기도를 했다. 집안에 큰 일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족
가운데 누가 다쳤을 때 꼭 산신각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제보자가 할머니에게 내력을 물어보니, 할머니 친정의 큰아버지가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그 어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
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칠성신께 기도를 드려서 아들의 병이 나았다
고 했다. 그 뒤로 친정집에는 ‘칠성줄이 세다’라는 말을 들었으며, 손
녀인 김순자 할머니도 칠성신을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따라서 청
용암에 가면 대웅전에서 절을 올린 뒤에는 칠성신을 모셔놓은 산신
각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할머니를 따라
다닌 제보자는 ‘할머니는 절에 가도 대웅전에는 안 가고 산신각에만
간 것’으로 기억했다. 그만큼 대웅전보다 산신각 참배가 더 인상적이
었던 것이다.
위의 두 사례로 보더라도, 여성들이 신앙을 위해 사찰을 찾는 경우,
부처님께 기도드리기보다 오히려 사찰에서 모시고 있는 무교 신격들
에게 기도드리는 경향이 더 비중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무신
74)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민속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2018년 5월 9일,
연구실에서 면담 조사).
5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을 모신 전각은 여성들을 사찰로 끌어들이는 아주 긴요한 종교적 시
설물이다. 전통적으로 유교가 주류인 조선조 사회를 거치면서, 대부분
의 민속신앙은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무교는 남성적인 유교가
해소하지 못하는 것을 메워주기 때문에 여성우호적인 성향을 띤다”
고75) 한다.
그러나 유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무교뿐만 아니라
불교든 기독교든 한국 종교사회에서 신도의 주류는 여성들이다. 어떤
종교든 여성신도들이 없으면 번성할 수 없다. 굿이든 예배든 예불이
든 종교의례를 치르는 제의공간에는 으레 여성신도들의 비중이 높다.
따라서 굿판에서는 물론 사찰에 가든, 교회나 성당에 가든 여성 신도
들의 신앙활동이 훨씬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사찰에서 수많은 무교의
신격들 가운데 전각을 지어 특별히 모시는 신격이 주로 여성신앙에
한정된 것은 여성들을 사찰에 오게 하는76) 가장 효과적 장치이다.
사찰에서 전각을 지어 무신들을 모시게 되면, 불교신앙에 관심 없
는 사람들도 민속신앙을 위해 사찰을 찾기 마련이다. 사찰은 세속과
격리된 별세계처럼 가람을 신성한 체계로 조성한 까닭에, 무신을 섬
기는 이들의 신앙심을 충족시키는 도량으로서 안성맞춤이다. 사례1처
럼 칠성각에만 다니다가 아들의 조언으로 대웅전의 부처님께 우선
참배하게 되거나, 사례2처럼 산신각에 모셔둔 칠성신을 섬기려고 대
웅전 부처님을 잠깐 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신의 전각은 여
성신도들을 부처님 세계로 찾아오게 하는 사찰의 포교 방법이자, 방
편불교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포교활동으로 보면 무신의 전각이 신도확보를 위한 징검다리 같으
75) 최준식, ?무교–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09, p.119.
76) 실제로 내외법이 엄중하던 전통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사찰출입은 허용되
었다. 따라서 사대부들 가운데에는 여성들의 잦은 사찰출입을 문제 삼기
도 했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55
나, 종교사상으로 보면 불교의 연기사상과 자비심에 따라, 다른 종교
와 공존하고 상생하며 그들의 신앙활동에 이바지하려는 이타행(利他
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중생들은 사찰이 아니면, 산신각이나 칠성
각, 삼신각처럼 자신이 섬기는 신을 번듯하게 모신 공간을 만나기 어
렵다. 마땅한 제의 공간 없이 제각기 집안에서 삼신이나 칠성을 섬기
고 산에 가서 산기도를 올리는 민중들에게, 편하고 신성한 제의 공간
을 사찰 안에 마련하여 무상으로 제공한 셈이다.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여기고 배척과 억압의 대상으로 삼는 기독
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불교에서 무신의 전각을 지어 무
교의 신앙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사찰에서 편의를 제공한 것은,
마치 사찰에서 개척교회를 위해 번듯한 교회 건물을 지어준 것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불교의 무교 전각 수용을 민중불교의 지향과
함께 세간의 신앙을 사찰 안으로 포용한 자비와 신앙 공유의 이타행
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한편, 모든 존재의 불성을 인정하며, 모든 현상
은 다른 현상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드라망의 보주처럼 서로
비추고 되비치는 의존관계로 공존하는 화엄사상의 실천으로 볼 수도
있다.
Ⅶ. 사찰에서 대행하는 세간의 제의와 민속신앙
불교 제의에서 무교를 비롯한 민속신앙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77)
77) 金泰坤, 「巫俗과 佛敎의 習合」, ?韓國民俗學? 19, 民俗學會, 1986,
pp.169171에
불교에서 무속신앙의 수용양상을 다루었다. 주목할 만한
사찰의 민속신앙으로는, 내소사(來蘇寺) 주지가 부안군 산내면 입석리
당산제 제관이 되어 당제를 올리고 승려들과 음복을 하며, 대흥사(大興
寺)에서 절 입구의 장승을 거령신(距靈神)이로 부르며 음력 정월 초하룻
날 장승제를 올린다는 사례이다.
5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하는 것은 이 논의에서 새삼스럽게 진전하기 어렵다. 이미 불교민속
에 관한 심층적인 논의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진78) 까닭에, 기
존연구를 넘어설 만한 자료 수집이나 논리를 개척하지 못했다. 불교
신앙과 제의에 관한 공부가 한참 모자라는 탓이다. 다만 최근 조사
사례를 근거로, 불교가 민속신앙을 수용하는 현상은 현재에도 지속적
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사례 하나는 사찰에서 세간의 조상제사를 대신 지내는 일이다. 안
동 와룡면 가구 2리의 충주 지씨(忠州池氏) 문중에서는 충청도 절제
사(節制使)를 지낸 입향시조를 추모하는 정자 우송정을 짓고 제사와
시사를79) 지내며 정자를 관리했는데, 지금은 유하사(遊夏寺)80) 절에
위탁했다고 한다. 사찰에서 우송정 관리와 문중조상의 제례를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백중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대웅전에 갖가지 음식
을 진설해 놓고 합동으로 조상들께 제사를 올린다.81) 주민들의 세시
풍속과 조상제례가 사찰에서 수용되고 있는 현상의 보기이다.
사례 둘은 사찰에서 마을의 동제를 대신 지내는 일이다. 구미 금오
산 지역의 동제를 조사한82) 결과 다섯 개 마을 가운데 갈항마을과
숭산마을에서는 약 30년 전부터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지 않고 사찰
에다 동제를 위탁하고 있다. 사찰은 마을 뒤 금오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갈항리는 갈항사(葛項寺)에83), 숭산리는 선봉사(僊鳳寺)에
78) 홍윤식, ?불교민속학의 세계?, 서울: 집문당, 1996.; 편무영, ?한국불교민
속론?, 서울: 민속원, 1998.
79) 매년 시월 초엿샛날 정기적으로 문중이 모여서 시사를 지냈다고 한다.
80)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79번지 소재 비구니 사찰로서 조계종 16교구 고
운사 말사이다.
81) 안동시 와룡면 가구2리 마을조사, 2012년 10월 12∼15일 2박 3일 동안
민속학과 학생들과 공동조사.
82) 현지조사는 1994년 1월 21일부터 26일까지 약 일주일에 걸쳐서 금오산
일대의 7마을을 조사했는데, 동신당이 있고 동제를 지내는 마을은 5마을
이며, 이 가운데 3마을은 가까운 사찰에 동제를 위임하고 있다.
83) 김천시 남면 갈항리, 금오산 서쪽에 있는 절.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57
서84) 제각기 주민들을 대신해서 동제를 지내는 것이다. 부상리의 경
우에는 동신당이 셋인데, 상당 제사를 백운사(白雲寺)에서85) 먼저 지
내고 중당과 하당 제사만 마을의 제관들이 지낸다.86) 결국 조사대상
다섯 마을 가운데 세 마을이 사찰에서 동제를 대신 지내고 있다.
두 사례를 보면, 사찰에서 유교의 조상제례는 물론, 마을의 동제까
지 맡아서 대행하는 셈이다. 두 제사 모두 불교신앙과 무관한 제의이
다. 조상 제사는 유교 제의이고 동제는 민속신앙이다. 사찰에서 민속
신앙을 받아들인 두 가지 유형인데, 개별사례를 구체적으로 보면, 그
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와룡면 유하사의 경우는 마을의 지씨들이 아니면 사찰 운영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유하사와 지씨 문중이 오랜 인연을 맺고 있
었던 까닭에 그들의 입향시조 제사를 거부할 수 없는 처지이다. 금오
산 아래 주민들은 동제를 예전처럼 정성껏 지내는 일이 여러 모로
힘들고 번거롭다고 여겨서, 마을 뒤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에다 동제
를 위임하였던 것이다. 시조제사와 동제를 위임한 배경에는 마을과
사찰의 가까운 지리적 입지 못지않게 스님들에게 위탁하면 제사를
정성껏 지내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러한 믿음은 종교적 신앙
심보다 마을과 사찰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주민들과 스님들의 잦
은 교류에서 비롯된 신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근거로, 사찰에서 세간의 제의를 대행하는 것이 일
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사찰에서 세간의 제사나 제의를 대행하
는 일이 점차 늘어나는 경향은 사실이다. 장례를 치른 후에 사찰에서
49재를 올리고 87) 사찰에 조상위패를 모시거나 조상제사를 위임하는
84) 칠곡국 북삼읍 숭산리, 금오산 동쪽에 있는 절.
85) 김천시 남면 부상리, 금오산 남서쪽에 있는 절.
86) 임재해, 「금오산지역 동제와 신앙전설 전승의 관련성과 지역성」, 비교민
속학회편, ?민속과 지역사회?, 서울: 민속원, 2007, pp.101141
참조.
87) 구미래,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서울: 민속원, 2009는 사찰에서 이
루어지는 49재의 여러 사례를 조사하고 의례체계를 자세하게 분석하였
5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사례들이 그러한 보기이다. 납골당이나 위패봉안당을 사찰 경내에 번
듯하게 새로 지어서 운영하는 것도 한 경향이다. 아예 사찰이 제례의
대안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위패를 봉안하고 영가를 위한
기도는 물론, 기일에 맞춰 제사 지내고 지장재일과 천도재, 백중기도
때마다 독경과 축원까지 해준다는 것이다.88)
문제는 세간의 제사나 동제 대행 경향을 민속신앙의 수용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제의에서는 남의 조상을 섬기
고 동신을 섬기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사찰에서 남의 조상제사
를 대신 올리고 마을의 동제를 대신 지내는 일은 한갓 세간의 제의
를 대행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당들이 굿주의 의
례를 받아 남의 조상신을 모셔다가 한을 풀어주는 조상굿을 하고, 주
민들의 요청에 따라 마을의 안과태평을 빌어주는 마을굿이나 서낭굿,
별신굿을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스님들이 역술인처럼 사주명리학을 강의하고 직접 사주팔
자나 관상을 봐주는가 하면, 풍수사처럼 길지를 명당으로 잡아주고
아이들 작명도 해주는데, 점을 치고 굿을 하는 점쟁이나 무당의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향성을 비판적으로 보면, “불교는 무속에
의해 가장 많이 변질된 외래종교다”라는89)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산
신각과 칠성각 등을 사찰 경내에 둔 것도 한국불교가 “미신적·무속적
종교”란 성격을 간과할 수 없다고90) 한다. 그러면 불교에서 민속신앙
의 수용을 이렇게만 보고 말 것인가.
이미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사찰에서 무신들의 수용은 사람들을
다.
88) 어현경, <제사, 우리 절에서 지내요 –제례문화 중심에 선 사찰>,《불교
신문》3332호, 2017년 9월 23일자.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505)
89) 金仁會, ?韓國巫俗思想硏究?, 서울: 集文堂, 1987, p.217에서 이런 주장을
했으나,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90) 洪潤植, ?佛敎와 民俗?, 서울: 東國大學校附設譯經院, 1980, p.131.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59
불법에 귀의하도록 하는 포교활동의 슬기이자, 민중불교로서 민속신
앙을 포용하는 이타행의 일환이다. 세간의 제의를 대행하는 것도 같
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찰에 무신의 전각만 지어놓고 제의공
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이 신도들과 함께 산신불공을 비
롯하여 칠성불공, 기자불공, 용신불공. 독성불공 등을 함으로써 불교
의례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밑으로부터의 신앙을 포용하는 민중불교
의 길을 가는 것이다.
세간의 제의대행도 같은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 조상제사든
동신제든 제의주체들이 정성껏 모실 능력이 없어서 그들 스스로 사
찰에 제의를 위임한 것이다. 후손들이 입향시조를 모시는 일은 당연
한 것 같지만, 노인들만 사는 시골마을에서 제물을 장만하고 정자를
관리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특히 산골마을에서 동제를 올리기
위해 한겨울에 새벽같이 제물장보기를 하고 밤중에 제물을 지고 산
중의 동신당을 찾아가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노인
들로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에는 동제
를 한여름 한낮으로 바꾸는가 하면, 91) 아예 중단하기 위해 동신당에
‘천년 제사’를92) 올리기도 한다.
안동 예안 삼계리 오드래기 마을에서는 10년 전에 동제를 중단했는
데, 마지막 동제를 크게 지내고 ‘천년 뒤에 다시 보자’는 내용으로 동
신께 고축을 했다. 주민들은 이 마지막 동제를 ‘천년 제사’라고 일컬
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므로 사찰에서 주민들의 간절한 제의를 대신
담당하는 일이나, 신도들의 운명에 대하여 명리학과 관상학, 풍수학
등의 전문지식으로 상담을 해주는 것은93) 종교적 규범을 넘어서는
91) 임재해, 「동제문화의 지역적 변화와 이면적 지속성의 변증법적 인식」, ?실
천민속학? 27, 실천민속학회, 2016, pp.959에서
이러한 동제사례들을 논
의했다.
92) 안동민속박물관 편, ?안동의 당나무?, 안동: 안동민속박물관, 2015. p.201
참조.
93) 철학교수들 가운데 명리학과 관상학, 풍수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60 淨土學硏究 29집(2018. 6)
불성의 이타행이라 할 수 있다. 세간의 민속신앙 대행이나 운세 상담
은 불교 근본주의 신앙에서 해방된 인간의 얼굴을 한 열린 모습의
불교신앙인가 하면, 민속신앙에 영합하는 불교신앙의 세속화 현상이
기도 하다.
Ⅷ. 불교와 민속신앙의 교류와 공유현상 재인식
논제에서 두 종교의 상호교류를 표방했지만, 실제 논의에서는 종교
적 영향과 수용 또는 변용이 문제로 인식했다. 교류는 서로 대등한
가운데 의도적으로 주고받는 관계, 곧 유기적인 양방향 소통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교와 불교는 대등한 상태에서 유기적 관계를 이루
며 서로 상호 교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 종교의 특정 국면을 부분적으로
닮아간 데다가 종교적 위상도 다르며, 영향을 주고받은 질적 수준도
다르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교류했다기보다 오랫동안 공존하면서
필요에 따라 서로 닮아가거나 끌어안았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닮아가게 되면 영향과 수용의 과정을 동시에 거치게 되고 결
과적으로는 동질성을 공유하는 지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호
관계를 두고 상대적으로 말하면, 불교가 상위 종교로서 무교에 영향
을 미치면서 무교를 변용했다면, 무교는 민속종교로서 불교에 영향을
받으면서 불교를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와 무교는 종
상담을 하여 도움을 주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직업적으로 하는 것이 아
니라 재능 기부나 지적 봉사,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수준에서 머문
다. 승려들의 활동도 같은 논리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
동을 드러내서 광고하고 직업적으로 하여 수익을 챙긴다면, 교수나 승려
의 본디 역할에서 벗어난 일이라 할 수 있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61
교적 위계의 우열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까닭에 대등한 상호교류
를 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영향론보다 수용론에 치중했다. 왜냐하면
영향론은 타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향이란 타자에게 미치는 힘이
다. 그러나 수용은 자력적인 것이자 주체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수용
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변용은 자기 체계에 맞
게 자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더 주체적이다. 따라서 영향을
어떻게 미치고 받았는가 하는 사실보다 수용과 변용에서 주체의 의
도를 주목하려 했다. 그 결과 불교와 무교의 관계는 종교적 위상의
층차에 따라 변용과 수용의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두 종교는 변용과 수용의 차이와 함께 서로 공유하는 지점도 있다.
하나는 가장 본질적인 국면으로서 상대 종교의 신격을 자기 종교공
간에 모신다는 것이고, 둘은 종교적 기능으로서 기복신앙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며, 셋은 모든 종교가 공유하는 지점으로서 종교
적 신이(神異) 곧 신비체험을 인정하고 있다. 넷은 현실문제를 두 종
교 모두 인과론에 입각해서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기타 사소한 관행
의 국면으로서 서로 같은 용어를 쓰며 같은 기물을 제의용으로 사용
하는 점이다.
하나는 상대 종교의 신격을 모시는 일이다. 무당의 신당에 불상을
가장 중심에 모시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사찰 주변부에 전각을 지어
무신을 모시고 있다. 상대 신격을 모시는 일은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
므로 종교 근본주의 시각에서 보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종교의 신격을 받아들인 것은 서로 종교 교류를 위한 것도 아니며,
양방향 소통의 교섭 결과에 따른 것도 아니다. 무교와 불교가 제각기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상대 종교의 신격을 받아들였을 따름이
다. 두 종교 모두 종교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두 종교의 위상이 다른 까닭에 수용방식이 대조적이다. 무
62 淨土學硏究 29집(2018. 6)
교가 상위체계의 종교인 불교의 신상을 중심부에 모심으로써 종교적
위상을 갖추어 신도들에게 신뢰도를 높이려 한다면, 불교는 민속신앙
의 무신들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신앙하는 무신을 사찰 주변부에 배
치함으로써 종교적 포용성을 보이는 한편, 세간의 중생들을 사찰에
끌어들여 신도들을 확충하는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상하
위상이 서로 다른 두 종교가 상대 종교를 수용할 때, 하위종교가 상
위종교를 받들어 윗자리에 모시는 종속성을 보이는 반면에, 상위종교
는 하위종교를 끌어와 아랫자리에 배치함으로서 지배적 위치를 확보
한다.
따라서 서로 상대 종교의 신격을 필요에 따라 모시지만, 그 태도는
물론 의도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상위종교가 하위종교의 신격을 끌어
들이는 것은 좋게 보면 포용이지만 때로는 신도확보의 전략이자 타
종교의 흡수일 수 있다. 실제로 집에서 칠성을 모시고 섬기던 할머니
가 사찰에 가서 칠성을 섬기는 사례가 있다. 이처럼, 산신과 칠성, 삼
신을 섬기며 무당들에게 의뢰하여 굿을 하던 세간의 중생들이, 사찰
의 무신 전각을 찾아가서 개별적으로 무신들을 섬기는가 하면 스님
에게 의뢰하여 산신불공과 칠성불공, 삼신불공을 드리게 된다. 그러므
로 무교의 처지에서 보면, 불교 사찰에서 무신을 모신 것은 무교와
종교적 공생이나 무교신도에 대한 이타행이 아니라, 무교신앙의 흡수
이자 무교신도의 포섭일 수 있다.
무당들이 신당을 법당처럼 꾸미고 불상을 모시는가 하면 아예 사
찰이름을 간판으로 내걸고 무업을 하는 경우, 단순히 무교의 종교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찰의 간판과 불상, 승려 복식
등을 갖춤으로써 사람들이 사찰이나 승려처럼 믿도록 만들기도 한다.
경제력을 갖춘 무당일수록 사찰의 형식과 규모를 갖추려 하는데, 외
형을 불교 양식으로 포장함으로써 손님들이 무교에 대한 미신의 선
입견을 버리게 하는 동시에 무업을 번성하게 하려는 수익전략일 수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63
있다. 그러므로 두 종교의 공유 지점은 종교간 대화와 소통에 의한
교류라기보다 각자 이해관계를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은 불교와 무교 모두 기복신앙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다. 무교는
처음부터 기복신앙의 성격이 짙다. 무교는 신의 영험으로 문제를 신
통하게 해결하기 위해 신에게 빌거나 굿을 하는 신앙이다. 타력적인
문제해결의 신앙인 까닭에 자력적 수행보다 기복신앙이 핵심을 이룬
다. 따라서 무당들은 굿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을 치고 사주팔자도
보며, 생활세계의 여러 고민들을 상담이나 점사로 해결해 준다. 그러
므로 종교적 깨달음보다 신앙의 영험을 기대하는 데 치우치기 마련
이다.
불교에서도 기복신앙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무교신앙과 공유
지점을 이룬다. 원래불교는 스스로 마음을 닦아 자력적으로 행복한
삶을 이루거나 각자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의 종교이다. 그러나 세
간에서는 민속신앙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처럼 부처님 앞에 불공을
드려서 그 공덕으로 현실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 신앙의 대상만 다를 뿐 기도의 의도와 목적, 방식은
무교의 기복성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일부 승려들은 무당처럼 신도들의 기복행위에 응해서 아들
빌기와 입시합격, 사업성공 등을 위한 불공은 물론, 부적을 만들어주
고 점사와 작명 등 역술인의 역할까지 한다. 이러한 기복신앙은 개인
적인 이해관계에 빠져서 종교적 이타성을 외면하게 된다. 따라서 무
교는 기복신앙의 한계 때문에 종교적으로 의미 있게 주목받지 못하
는데, 불교도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면 같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그
러므로 한국불교의 혁신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기복불교를 경계하며
불교의 본디 수행과 이타행의 가치 회복을 촉구한다.
실제로 기복신앙의 관행을 비판하며 불교의 순수성을 위해 사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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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관련 전각을 없애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일부 스님은
이러한 움직임과 상관없이 불교 수행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무
신을 모신 전각을 없애기도 했다. 이를테면, 불교의 수행을 중시하는
고우(古愚) 스님은94) 사찰 경내에 있던 산신각을 부셔서 불에 태워
버렸다고 한다.95) 그러나 기복신앙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인의 무교적 심성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외국에서도 신에게 복을 비는 기도 현상이 일반적인 것을 보면,
상대적 층차만 있을 뿐 기복성은 신앙생활의 일반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셋은 모든 종교가 공유하는 국면으로서 종교적 신이 또는 신비체
험이다. 무당의 신통력, 예수님의 기적, 부처님의 영험과 같이, 종교마
다 일정한 신비주의가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이와 기적, 신비체험이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끄는 동력 구실을 한다. 무당들의 굿에서는 으
레 신내림 현상이 일어나고 과거의 일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신통
력을 보이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물그릇 얹기를96) 하고, 창으로
돼지를 찔러 거꾸로 세우는가 하면 날이 선 작두를 타는 신이한 능
력을 보이기도 한다. 굿을 해서 난치병이 낳았다거나 사업이 번창해
졌다는 것도 일종의 신통한 영험이다.
불교에서도 ������삼국유사? 감통편(感通篇)의97) 기록처럼, 부처님께 공
덕을 드려서 이적이 일어난 사례들이 적지 않다. 현실불교에서도 두
가지 신이가 있다. 하나는 스님의 신통력이고, 둘은 부처님의 영험이
다. 스님이 사람들의 운명을 신통하게 알아맞히는가 하면, 선거철이
94) 고우 스님은 현재 봉화 문수산 금봉암에 머무르며, 조계종 수행지침서 ?간
화선?을 공동으로 편찬하고 ?육조단경?을 집필했다.
95) 고우 스님에게서 불교 공부와 수행을 익히며 불교 관련 연구를 계속하
고 있는 전재강 교수(안동대학 고전문학 전공)의 말씀이다.
96) 반쯤 물을 담은 놋대접 3개를 그릇의 한쪽 전 위에 포개 얹는 것이다.
97) 승려들의 진실한 불심에 대하여 부처나 보살이 신이한 감응을 나타내는
설화들이 집중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65
되면 으레 대통령 당선여부를 미리 알아맞혀서 유명해진 스님들이
화제가 된다. 언론에서도 크게 다룬 까닭에 인터넷에 검색하면 곧잘
드러난다. 고승은 마치 도사처럼 초월적 술법을 하거나 앞일을 훤히
내다보는 예언자로 인식되는 전통이 있다.
부처님의 신이는 사찰의 불상에서도 일어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신비의 수박’ 사례를 보면, 안동시 성곡동의 평화사(平和寺)에서는 해
마다 4월 초파일 관세음보살상 앞에 수박을 올려놓으면 동짓날 음복
할 때까지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스터리 기획물로 언론에
서 보도되었다.98) 팔공산 갓바위는 특히 입시기도에 영험이 있어서
명성이 드높다. 지난해 8월 무더위 속에서도 수능시험 100일을 앞두
고 3백여 명의 학부모들이 갓바위 앞 기도공간에서 다투어 자녀의
대입합격을 기도하는 현상은99) 불교신앙의 신비이다. 아들의 대학입
시를 위해 무당에게 굿을 하거나, 교회에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가는
일이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까닭은 교리체계의 철학적 가르침보다 이러
한 신비주의와 내세에 대한 보장 때문이다. 무교와 불교의 종교적 신
이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공덕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인
식된다. 따라서 종교마다 신앙의 신비와 영험, 불가사의, 종교적 기적
등을 강조한다. 그러다가 보면 종교의 본디 목적보다 영험을 바라는
맹목적 신앙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신앙은
결국 기복신앙과 만난다. 그러므로 불교는 무교와 함께 신비주의를
공유하되, 이것에 집착하게 되면 기복신앙으로 떨어지게 된다.
넷은 현실문제 인식의 국면으로서 두 종교 모두 인과론에 입각해
98) SBS TV, <백만불 미스터리- 썩지 않는 수박>, 2003년 9월 21일, 오후
7시 5분 방영.
99) “연간 250만 명이 찾는 갓바위에는 수능시험이 임박하면 1만 명의 인파
가 몰려와서 앉을 자리조차 찾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김준범, <수능
D-100일, 팔공산 갓바위 폭염 속 합격기원 인파>,《연합뉴스》, 2017년
8월 8일 작성.
66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있다. 인과론의 공유는 종교적 본질 가운데 하나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갖춘 본디 속성인 까닭에 마지막
에 거론한다. 두 종교는 인과론에 입각해 있되 인과관계를 받아들이
는 태도가 서로 다르다. 무교에서는 현실문제의 원인을 반드시 과거
에서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불교에서는 인과응보론에 따라 현실문제
를 과거의 업보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따라서 인과론을 공유하지만
문제해결의 방식은 전혀 다르다.
무교에서는 본풀이로 역사를 되짚는가 하면, 억울하게 죽은 조상이
나 한 맺힌 조상들, 동티날 만한 과거의 행적들을 찾아서 풀어준다.
이처럼 맺힌 것을 푸는 것이 굿이다. 과거의 잘못된 것을 정확하게
찾아 풀어줌으로써 지금의 문제도 해결하고 미래의 전망도 마련한다.
그러므로 과거의 불행한 사실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풀어주는 것이
무당의 신통력이다. 이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문제
의 고리를 찾아 해결하는 것과 같은 까닭에 신통력이 없으면 굿을
할 수 없다.
같은 인과론이지만 불교의 인과응보론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행
의 태도이다. 지금 어려운 일이 닥쳐도 과거의 업보로 받아들임으로
써,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마음가짐의 방식이다. 따라서 과거
의 잘못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신통력이 아니라 현실을 과보로 당
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수양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에 나쁜 과
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생활을 올바르게 하고 마음을 닦아나
가는 수행을 해야 한다. 이러한 수양과 수행이 곧 깨달음으로 가는
불제자의 길이다. 그러므로 초월적 신통력보다 현실적 수행력이 핵심
을 이룬다.
이밖에 사소한 관행의 공유로서 서로 같은 용어를 쓰며 같은 기물
을 제의용으로 100) 사용하는 점이다. 무교에서는 무당이나 무격을 일
100) 불교사나 성불사, 무속용품사, 무교만물사 등의 가게에서 불교용품과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67
컬을 때 무당으로 호명하지 않고 대체로 보살 또는 법사로 호명한다.
일부 무당들은 옷차림도 굿을 하지 않을 때는 마치 불교신도들의 복
식을 닮게 입는 경향이 있다.101) 이러한 공유는 무당들이나 무교 신
앙인들에 의한 일방적 모방으로서 불교계의 뜻과 무관한 일이다. 따
라서 엄격하게 말하면 불교문화의 공유가 아니라 일방적 모방이나
사칭에 해당된다.
굿판에서 내림굿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막 무당이 된 사람에게, 선
배 무당이 “대보살이 되시고 성불하세요”라고 축원하는 말도 더러 듣
게 된다. 좋은 축원의 말이긴 하지만 종교적 교리는 물론 신앙체계로
볼 때도 가당찮은 말이다. 이처럼 무당들이 불제자들의 호명으로 자
신들의 정체를 미화하거나, 불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끌어들여 과대포
장 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한, 무교의 종교적 위상은 불교 종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종교적 가치의 공유가 아
니라, 외피의 모방으로 본질을 가리는 것은 종속신앙의 틀 속에 스스
로를 가두는 격이다.
Ⅸ. 종교간 대화와 교류, 그리고 다중종교주의
불교와 무교 사이의 종교간 영향이든 수용이든 상호교류가 아니라
일방적 선택에 머문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간
대화 없이, 자기 종교의 필요에 따라 상대 종교의 어떤 국면을 부분
적으로 취하는 일이다. 상대 종교의 탐나는 부분을 눈치껏 차용하거
나 모방하여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것은, 어떤 종교정신에도 합당하
무교용품을 함께 팔고 있다.
101) 회색의 생활한복 차림에다 염주를 착용하는 양식이다.
68 淨土學硏究 29집(2018. 6)
지 않고 합리화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온전한 교류로 두 종교가 대등
하게 공존하며 상생하려면, 솔직한 종교간 대화로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불교계는 종단(宗團)이 형성되어 있고 행정체제도 잘 갖추어 있어
서 대화와 교류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무교계는 이러한 조직도 체계
도 갖추어지지 않아서 불교와 대등하게 대화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다종교 공존이 가능한 기반은
무교신앙의 열린 체계에서 비롯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교
와 불교뿐 아니라 한국의 여러 종교들이 교리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
고 인간해방의 종교로 나아가려면, 열린 시각으로 종교간 대화를 끊
임없이 실천해야 한다. 이 학술대회처럼, 종교간 교류 문제를 논제로
한 학술발표도 종교간 대화의 중요한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종교간 대화와 교류를 넘어서 다중종교주의를
지향하는 일이다. 여러 종교 가운데 특정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의 자유인데, 일단 특정 종교를 선
택하면 그 종교만 신앙하도록 제약하는 것이 기성종교의 일반적 속
성이다. 다시 말하면, 법적으로 종교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교리
적으로 여러 종교를 함께 믿을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
교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단일종교의 틀 속에
갇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민속종교는 다른 종교의 신앙생활을 금하거나 억압하지 않
는다. 따라서 민속종교 문화에서는 적어도 이중종교생활이 가능하다.
다른 종교에서도 민속종교처럼 타종교 신앙을 인정한다면, 다중종교
사회로 갈 수 있다. 나는 다문화주의를 비판하고 다중문화주의를 지
향하고 있는 102) 만큼, 종교문화도 다중종교생활로 나아가는 것이 가
102) Jae Hae Lim, ‘New Plans of the Future toward Multiple Culture and
Multicultural Society’, Journal of Multiculture and Education, Vol 1.
No.2, The Convergence Institute for Asian Multicultural Studies,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69
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중언어 사회로 가는가 하면 다중국적
취득이 가능한 것처럼, 배타적 교리체계를 해체하여 누구든 여러 종
교를 함께 신앙할 수 있는 다중종교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민속종
교를 수용하는 불교는 기존의 다른 종교보다 덜 배타적이어서 다중
종교주의 운동에 앞장설 수 있다.
사찰에서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수녀님들 몇 분이 사찰
풍광을 즐기며 경내를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이다. 대웅전이나 석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법당 안을 기웃거리다가 스님과 마주
치면 구김살 없이 합장으로 인사하고, 맑은 석간수를 받아 마시며 명
랑하게 담소하는 모습은, 성당에서 만난 수녀님들보다 더 아름답다.
다중종교생활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장면 하나이
다.
Inha University, 2016, pp.1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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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73
Abstract
Mutual Exchange between Buddhism and Folk Religion
and Reunderstanding of Sharing
Lim, Jae-hae
(Andong National University, honorary professor)
Nevertheless folk religion takes the angular point of religion
temporally and the basis of religion spatially, it is not acknowledged
as religion. However, folk religion is also acknowledged as a religion
when it is accepted as ‘a religion as a religious system’, not
‘philosophical system’. Shamanism, well established with religious
system among folk religions, can be treated equally as Buddhism.
Shamanistic shrine not only enshrines the statue of Buddha in the
center, but also puts up a sign, ‘00temple’, like a temple. By arranging
the appearance of a temple, it prepares the status of religion, using it
as a means of Shamanistic business. To see religious epic song of
Shamanism, ‘Changsega’ introduces Mireuk and Sakyamuni, singing
irrationality of real world blaming Sakya’s greed who unfairly
occupied Mireuk world. The reason why Sakya was negatively
perceived, differently from Mireuk was, because Mireuk is Buddha of
the past who created the world in the beginning, however it became
Buddha of the future, being pushed out by Sakya. Accordingly,
distortion of Sakya in Shamanism was based on the Buddhist doctrine
in some aspect.
In Jeseokgut, divinity of Buddhism is seated with Shamanistic god
offering Jeseoksin, to display religious subjection. However,
74 淨土學硏究 29집(2018. 6)
Byeolsingut of Seseubmu( hereditary shaman) is not occupied by
Buddhism, adding Buddhist monk cops and robbers Play, however, it
satirizes Buddhist monks’ mendicancy by comparing it with theft, as
a religious competitor. Shamanism affirms divinity of Buddhism,
however it reveals a dual cognition by negatively treating Buddhist
monks’ behaviors.
Buddhism also enshrines Musin in the temple, however it builds
and enshrines Jeongak nearby the temple, differently from
Sindang(shaman god-room), which enshrined the statue of Buddha in
the center. The point that the temple enshrines Musin could be
considered as one of the altruistic behavior embracing the folk religion
of the world, beyond Buddhism fundamentalism, on the other hand, it
is also understood as a method of strategical Buddhism intending to
draw the women to the temple to make Buddhists. Recently, they
perform ancestral rites or village ritual. Also, Buddhist monks counsel
about the fortune with their knowledge of Myungrihak, personology,
and geomantic studies. This way, such aspect of Buddhism pandering
to folk religion is secularization of Buddhism.
Buddhism and Shamanism share four factors. First, they share
religious target, however, Shamanism centralizes Buddhism according
to religious status, while Buddhism sets Shamanism around
Shamanism. Second, they share fortune wishing belief, which is the
nature of Shamanism. Buddhism also performs fortune wish according
to Korean religious nature, however some monks refuse it since it is
far from the nature of Buddhism. Third, they share religious miracle.
In Shamanism, shaman’s supernatural power appears through miracle
in the process of gut, however in Buddhism, Buddha appears through
a miracle through the virtue of religious faith, and sometimes
Buddhist monks perform as Buddhist priests with enlightenment on
the politics. Fourth, the two religions share causationism. Shamanism
solves problems in reality by searching the cause from the past,
불교와 민속신앙의 상호교류와 공유 재인식 / 임재해 75
however Buddhism understands the problems in reality as the karma
and accepts them. Therefore, they share causationism, but the way to
solution is different.
The phenomenon of acceptance and sharing between the two
religions is not the exchange in the equal relationship, but it’s mainly
based on the selective imitation along with religious interest. For the
co-existence and co-prosperity of the two religions, true exchange
through bilateral communication and communication between religions
is necessary. To do so, it is necessary to overcome doctrine
fundamentalism and pursue religion for human liberation.
Key words
religion as a religious system, religion as a philosophical system,
Sindang(shaman god-room) of Shamanism, altruistic behavior,
secularization of Buddhism, fortune wishing belief, Korean religious
nature, causationism, selective imitation, conversation between
relig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