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이야기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초기불교와 임진왜란을 중심으로/류제동.금강대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전쟁과 초기 불교
3. 임진왜란과 일본불교
4. 임진왜란과 한국불교
5. 오늘날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국문 초록
불교에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오늘날 세계는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국지전은 계속되고 있어, 여전
히 전쟁이 영구히 종식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호전적이
거나 전쟁 긍정적 사고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불교는 평화 애
호적 종교라는 입장이 일반에 있어서는 상식적인 견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러한 입장에서의 논문들도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어떠한 의미에
서 전쟁에 반대하는가에 대한 천착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류가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 전쟁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러한 어려운 상황, 곧 전쟁을 불가피하게 하는 조
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살펴보는 것도 불교를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입장에서 초기불교에서 붓다는 어떠한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하며, 불가피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 있어서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밝히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 그러한 초기불교의 입장에 기초하여, 임진왜란은 일본
과 한국 양측 불교에서 어떠한 의미로 정당화되거나 방관되
고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이러한 연구는 전쟁 당시 양국의 사
회적 질서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보다 포괄적 연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 임진왜란, 루이스 프로이
스(Luís Fróis), 케이넨(慶念), 사명당(四溟堂)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13

 

1. 들어가는 말
전쟁과 종교는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특정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종교가 전쟁에 개입한
다거나 전쟁을 부추기거나 전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는 무언가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선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
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이다. 예컨대,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
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그러한 비판도 종교라는 것은 원래 그러
지 않아야 하는데, 당시의 기독교는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비판
이 전개되기 쉬운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고 그래서 당연한 것이
라는 논리는 특히 오늘날에 있어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종교는 적어도 전쟁을 부추기거나 적극적
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쟁에 개입하는 경우가 유
사 이래로 적지 않았다. 다른 세계적 대종교들보다도 훨씬 더 평
화를 강조한다고 하는 불교의 경우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
였다.1) 초기불교에서는 다소 순수하게 붓다의 가르침이 유지되

 

1) 이러한 점에서 불교와 전쟁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서 기존의 최근 연구들로는
전쟁에 반대하는 불교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논문들이 두드러진다. 다음의
논문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심재룡, 「불교와 전쟁: 불살생과 대량살생」, (
불교평론 15호, 2003). 전재성, 「불교인은 왜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가?」(
법회와 설법 2003년 4월호). 박노자, 「삼국, 통일신라, 고려의 僧兵史를 통
해본 사명대사 의거의 의의와 인간적·종교적 비극성 - 한국 승가사에서의
불살생계와 국가의 제도화된 폭력 -」( 불교연구 17호, 2000). 또한 일견 받
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불교에서의 평화 강조가 오히려 다른 종교와
의 불화를 초래하고 심지어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다툼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Tessa J. Bartholomeusz, In Defense of Dharma: Just
War Ideology in Buddhist Sri Lanka, (New York: Routledge Curzon,
2002), pp. 103~110.

 


고 있었기에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없었으나, 대승불
교가 발전하고 중국에서 불교가 유입되고 전개되어가면서는 불
교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없을 정
도가 되었다.
특히 오늘날 불교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선불교의 경우는
그 초기 단계부터 전쟁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었
음을 부인하기 어렵다.2) 한국불교에서도 국사교육을 받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불교는 초기도
입단계부터 국가성립에 깊이 관계되어 있었다. 일찍이 삼국 통일
시기에 신라는 임전 태세를 고무시키는 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
였다. 고려의 창업 시기에, 제대로 된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부정
적 입장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고, 견해가 다양하지만, 궁예라는
인물은 스스로 불교의 미래불인 미륵불을 자처하며 군사력을 강
화해갔다.3)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이라는 국시 하에 불교가 억

 

2) 선 사찰로 유명한 소림사 승려들과 당나라 초기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무협 소설이나 영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는 물론 선불교 자체가
호전적인 불교냐 아니냐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선불교의 정통사상은 그렇
지 않다는 시각에서, 호전적 성격의 사례들은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근대 일본에서 선불교의 전
쟁 참여는, 근대 일본의 침략행위가 역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기
에, 선불교에서의 그에 대한 참여도 일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라
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책들을 참조 바란다. Brian Daizen
Victoria, Zen at War,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nc.; 2nd edition,
2006). Brian Daizen Victoria, Zen War Stories, (RoutledgeCurzon;
annotated edition, 2003)
3) 최근의 논문들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허정희, 「신라 화엄불교의 윤리
적 성격에 관한 연구 -원광, 자장, 의상의 구법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선
학 제17집, 2007). 김강녕,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정치적 함의」( 민족사상
제1집, 2007). 김두진, 「신라불교(新羅佛敎)의 신앙(信仰)과 사회(社會) ; 궁
예(弓裔)의 토착 불교사상」( 한국학논총 제30집, 2007).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15

 

압받게 되었으나,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서산대사나 사명대사 같
은 승병장은 왜적에 맞서서 뛰어난 무용을 발휘함으로써, 비록
방어전의 개념이라고는 하지만, 불교의 전쟁 참여적 성격을 뚜렷
이 드러내었다.4)
이처럼 불교가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어떤 종교이건 간에 현
실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혹자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연구하는 것
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실 공간에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라고 한다면 그러
한 불가피성을 단순히 회피하고 부정하는 것보다는, 정면으로 마
주해서 치밀하게 논구하는 것이 문제를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으로 대하는 태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이 오히
려 전쟁의 광기와 폐해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최소화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어떤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때 무조건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면 대화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다. 어떤 상황에서는 대화를 아예 포기하거
나 외면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으나, 그러한 접근으로는 오히
려 현실에서 전개되는 일들에 수수방관하는 입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과연 어느 정도로 참전하는 것이 적당한
것이냐 하는 논의가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일 수 있는

 

4)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국난극복에서의 승려들의 역할에서 호국불교라는 이름
은 한편 명예로운 호칭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어떠한 이유에서건 전쟁 참
여의 명분을 제공하고 승려들이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는 것은 곤
혹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 곤혹
성을 잘 다루고 있다. 박노자, 「삼국, 통일신라, 고려의 僧兵史를 통해본 사
명대사 의거의 의의와 인간적·종교적 비극성-한국 승가사에서의 불살생계
와 국가의 제도화된 폭력」( 불교연구 제17집, 2000), pp. 33~66.

 


것이다.5)
또한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는 전쟁 자체에 대한 이해뿐
만 아니라,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전쟁이라
는 것도 단순히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 참다
운 평화가 없는 상태라고 확대하여 정의할 수 있듯이, 평화란 단
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하기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긍
정적으로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다.
또한 전쟁의 정당성을 종교를 통해서 천착해 보는 것은 인간
과 종교의 관계에서 그 가장 현실적으로 첨예한 문제의 한 측면
을 접근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붓
다 당시의 초기불교에서부터 그 논리적 근거를 살펴보고, 임진왜
란에서는 일본과 한국 양측에서 참전의 입장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정당성이 어떻게 정초되고 있는지를 확
인해보고자 한다. 붓다 당시의 초기불교는 물론이고, 임진왜란도
이미 400여 년 전의 과거의 일이다. 이러한 과거의 일이 서로 얼
마나 관계가 있을 수 있으며, 또 얼마나 현대의 문제 인식과 공
유하는 바가 있을까 의문을 던질 수도 있겠으나, 생각보다 역사
는 반복되는 면이 많고, 시공간을 넘어서 공통적인 요소들도 많
다. 그러기에 불교나 유교나 그리스도교나 오늘날에도 일부 종교
비판론자들의 섣부른 예측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으로 평가되든
긍정적으로 평가되든, 무시못할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5) 전쟁론 분야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는 것도 전쟁에 대한 특히 어떤
부정적 선입견을 일단은 배제하고 치밀하게 논구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
롯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음의 저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이 분야의 고전
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저/유제승 역, 전쟁론 , (책세상, 1998).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17

 

우리의 연구에 있어서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 연구와 더불어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 연구가 요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
기도 한 것이다.

 

2. 전쟁과 초기 불교
불교의 창시자 붓다에게 있어서 전쟁은 우선적으로는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음과 같은 대화는 그러한 붓다의 입장을 잘 말
해주고 있다. 초기불교경전 가운데 쌍윳따 니까야에는 전사의 경
[Yodhājīvasutta]이라는 짧은 경전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붓다와 전사마을 촌장의 대화가 실려 있다.6) 그 대화 내용
이 다소 길지만, 논의 전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촌장] “세존이신 고따마여,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하는데 전력을 다
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
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사람의 무리에 태어난다.’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
까?”
[세존] “촌장이여,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두 번째에도 전사마을의 촌장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을 드렸다.
[촌장] “세존이신 고따마여,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하는데 전력을 다

 

6) 전재성, 「불교인은 왜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가?」( 법회와 설법 2003년 4월
호) 참조.

 


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
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사람의 무리에 태어난다.’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
까?”
[세존] “촌장이여,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에도 전사마을의 촌장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을 드렸다.
[촌장] “세존이신 고따마여,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하는데 전력을 다
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
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사람의 무리에 태어난다.’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
까?”
[세존] “촌장이여, 분명히 나는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
지 마십시오.’라고 그대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촌장이여, 전사가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그의 마음은 이
와 같이 ‘이 사람들을 구타하거나 결박하거나 절단하거나 박멸하거나
없애버려야 한다’라고 저열하고 나쁜 곳으로 향하고 사악한 곳으로 향
합니다. 그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자를 적들이 살해하여 죽인다면 그
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환희라는 지옥이 있는데 그곳에 태어납
니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
야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
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사람의 무리에 태어
난다.’라는 견해를 지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견해일 것입니다. 촌장이
여, 잘못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지옥이나 축생이나 두 가지 길 가
운데 하나의 길이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전사마을의 촌장은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세존] “그래서 촌장이여, 나는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
지 마십시오.’라고 그대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촌장]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에 슬퍼하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19
여 통곡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
으로부터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사람의 무리에 태어난다.’라고
오랜 세월동안 속아 살고 기만당하고 현혹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
져오듯이,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
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
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세존의 앞에 출가하
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7)
이렇게 대화의 전문을 인용하는 데에는, 붓다의 대화법 자체가
대화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
사마을의 촌장의 질문에 대하여 거듭해서 완곡하게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대답하는 붓다의 태도에서, 우리는 전쟁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붓다의 부정적 태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전사마을 촌장의 진심어린 태도에 붓다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소상히 알려준다.
붓다의 입장은 전쟁에서 싸울 태도의 심적 태도가 투쟁심에
불타오르게 되고, 사악하게 되며,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환희”라
는 하늘사람의 무리가 아니라, “환희”라는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
고 말씀하는 가운데 잘 드러난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전쟁을 하
다가 죽거나 “환희”라는 것을 체험할 지도 모르지만, 그 환희는
참된 환희가 아니라, 거짓된 환희요, 지옥에서의 환희에 불과하

 


7) 전재성 역주, 쌍윳따 니까야 제7권,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1), pp.
266-269.

 

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 전사마을의 촌장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자,
붓다는 그에게서 그러한 반응이 있을까봐 처음에 대답을 거절했
던 것이라고 하여, 이러한 주제에 대한 부주의한 논의는 마음만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자상한 면모를 보여준다. 물론, 전사마을
의 촌장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것은, 이어지는 대화에서 명백
하게 되는 것처럼, 참회와 각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붓다의 염려
는 여기서 기우였음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러한 대화는 보편적 차원에서, 힌두교에서 전사계급인 크샤
트리야 계급의 관점에 대한 불교적 반대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
다. 힌두교는 보편적 도덕률이 아니라, 계급에 따른 도덕률을 제
시하는 종교라는 점에서 보편적 도덕률을 주창하는 불교와 상당
히 대립되는 면이 있다. 살생이나 전쟁이 어떤 계급의 사람에 의
하여 수행되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는 힌두교에 비해서, 불교
에서는 누가 하느냐에 무관하게 그 행위 자체의 도덕성 여부를
문제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 차이에서, 힌두교에서는 전사
계급으로서 당연하고 마땅한 책무로 여기는 전쟁을 불교에서는
여전히 문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슬람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
이 성전(聖戰)에 참여하는 것이 천국에 가는 직행 코스라고 생각
하고 있다고 하는 데에서, 붓다의 시대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났지
만, 역사적 상황은 그다지 바뀐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붓다가 전쟁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반대했는가에 대
해서는 해석상에서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붓다 당시 강대국 중의 하나인 코
살라 왕국의 왕 비두다바(Vidudhabha)가 붓다의 출신 부족인 석
가족을 침략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비두다바의 침략 시도에 대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21
해서 붓다는 세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철회시키고자 길목을
막아섰지만, 네 번째에 있어서는 그러한 노력을 포기한다.8) 붓다
는 마침내 업(業)의 인과에 있어서 막을 수 없는 사태임을 인정
하게 되는 것이다. 소극적 포기라고는 하지만, 막을 수 없는 전
쟁이 있으며,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쟁은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 붓다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다.
좀 더 까다로운 사례는 붓다의 말년에 당시 또 하나의 강대국
이었던 마가다국의 왕 아자타샤트루(Ajatashatru)가 밧지(Vajji)
족을 정복하고자 할 때에 붓다에게 사신을 보내어 자문을 구한
사례이다. 붓다는 그 사신의 옆에서 제자 아난다와 이 문제에 관
하여 대화를 나눈다. 우선 붓다는 밧지 족의 모임 개최 문제에
관하여 아난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아난다여! 밧지 족은 자주 모임을 개최하고, 그 모임에는 많은 사람
들이 모인다는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는냐?"
"예, 세존이시여! 저는 틀림없이 밧지 족은 자주 모임을 개최하고,
또 그 모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그러한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
은 없을 것이니라. 그런데 아난다여! 밧지 족은 모일 때도 의기투합하
여 모이고, 헤어질 때도 뜻을 모으며, 또한 일족(一族)의 행사도 뜻을
모아 거행한다는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저는 틀림없이 밧지 족은 모일 때도 의기투합하여
모이고, 헤어질 때도 뜻을 모으며, 또한 일족의 행사도 뜻을 모아 거
행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밧지 족이 모일 때도 의기투합하여 모이고, 헤

 

8) Gail Omvedt, Buddhism in India: Challenging Brahmanism and Caste
(Sage Publications Pvt. Ltd, 2003), p. 134.

 

어질 때도 뜻을 모으며, 또한 일족의 행사도 뜻을 모아 거행하는 것이
계속되는 동안은,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
니라.“9)
이 대화를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수천 년 전에 이미
하나의 공동체가 외적의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붓다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서로 자주 모임을 가지고 그 모임에 많은 사람들
이 모이느냐 하는 것이다.10) 다른 말로 하자면, 인민들 사이의
소통이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 다음으로 붓다가 관심을 두는 것은 전통에 대한 존중이
다.
“그럼 아난다여! 밧지 족은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하거나, 반대
로 이미 정해진 것을 깨뜨리지 않고, 과거에 정해진 일족의 옛 법에
따라 행동한다는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틀림없이 저는 밧지 족은 이미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하거나, 반대로 이미 정해진 것은 깨뜨리지 않고, 과거에 정해
진 일족의 옛 법에 따라 행동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밧지 족이 이미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로 정
하거나, 반대로 이미 정해진 것은 깨뜨리지 않고, 과거에 정해진 옛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밧지 족에게
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11)

 

9) 불전간행회 편/강기회 역, 대반열반경-석존의 열반 (민족사, 1994, 2001),
pp. 16-19.
10) 이러한 붓다의 관심은 논어에서 공자의 언급 가운데, 백성들 사이에서의
신의와, 식량과, 군사력 가운데 백성 사이에서의 신의가 가장 중하고, 군사
력은 가장 덜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도 유사하다고 하겠다.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23

 


여기에서 붓다가 주목하는 것은, “과거에 정해진 옛 법”이라고
하여 전통을 중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지나친 전통의 중시는 문
제가 많다는 것이 오늘날 널리 팽배한 견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전통을 거스르는 것은 지나친 모험과 무
질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 공동체의 안위에 있
어서는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준법정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2) 그 다음으로 붓다가 주목하는 것은 노인에 대한
공경과 부녀자에 대한 배려이다.
"그럼 아난다여! 밧지 족은 일족 가운데 나이든 이들을 경애하고 존
중하며 숭배하고 공양하며, 또한 나이든 이들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틀림없이 저는 밧지 족은 일족 가운데 나이든 이들
을 경애하고 존중하며 숭배하고 공양하며, 또한 나이든 이들의 말씀을
경청하고자 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밧지 족이 일족 가운데서 나이든 이들을 경애하
고 존중하며 숭배하고 공양하며, 또한 나이든 이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자 하는 것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기
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 그럼, 아난다여! 밧지 족은 양가의 부
인이나 규수를 폭력으로 붙잡아 가거나, 또는 구속하거나 가두지 않는

 

11) 불전간행회 편/강기회 역, 대반열반경-석존의 열반 (민족사, 1994, 2001),
pp. 16-19.
12) 여기에서 준법이니 법치니 하는 말들을 사용할 때, 공동체의 안위에 있어
서는, 사회적 약자의 준법보다는, 사회적 강자, 곧 부유한 자들이나 지배세
력의 준법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근대국가에서의 법치
라는 개념 자체가 일정한 법에 의하여 집권세력의 전횡을 제한한다는 데
에서 출발하였으며,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경우에도, 그 의의가 중
요한 것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함부로 무도하게 대하지 못하게 하
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다는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틀림없이 저는 밧지 족은 양가의 부인이나 규수를
폭력으로 붙잡아 가거나, 구속하거나 가두지 않는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밧지 족이 양가의 부인이나 규수를 폭력으로 붙
잡아 가거나, 구속하거나 가두지 않는 것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난
다여!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13)
노인이나 부녀자나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
가 한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혜안이 여기
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그 다음으로 붓다가 주목하는
것은 영지(靈地)에 대한 참배이다.
"그럼 아난다여! 밧지 족은 그들의 성(城) 안팎에 있는 밧지 족의
영지(靈地)를 경애, 존중, 숭배하고 공양하며 아끼고, 봉납 드리는 적
합한 제식(祭式)을 폐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
이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확실히 저는 밧지 족은 그들의 성(城) 안팎에 있는
밧지 족의 영지를 경애, 존중, 숭배하고 공양하며 아끼고, 봉납 드리
는 적합한 제식을 폐지하지 않는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밧지 족이 그들의 성 안팎에 있는 밧지 족의
영지를 경애, 존중, 숭배하고 공양하며, 아끼고 봉납 드리는 적합한
제식을 폐지하지 않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기
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14)

 

13) 불전간행회 편/강기회 역, 대반열반경-석존의 열반 (민족사, 1994, 2001),
pp. 16-19.
14) 불전간행회 편/강기회 역, 대반열반경-석존의 열반 (민족사, 1994, 2001),
pp. 16-19.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25

 

영지에 대한 참배는 선열들에 대한 공경과 함께, 한 사회의 종
교적 건전성과 관계된다고 하겠다. 그 다음으로 붓다가 주목하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이들에 대한 공경이다.
"그럼 아난다여! 밧지 족은 존경받을 만한 이(아라한,阿羅漢)에 대하
여 법에 적합한 대우를 해드리고자 능히 마음을 기울이고, 또한 아직
자기 나라에 오지 않은 존경받을 만한 이가 있다면, 그가 자기 나라를
찾아오도록 노력하며, 그리고 존경받을 만한 이들이 찾아오면 마음 편
히 머물도록 항상 기원하고 있다는데, 너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느
냐?"
"예, 세존이시여! 저는 틀림없이 밧지 족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
사옵니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밧지 족이 존경받을 만한 이에 대하여 법으로
적합한 대우를 해드리고자 능히 마음을 기울이고, 또 아직 자기 나라
에 오지 않은 존경받을 만한 이가 있다면, 그가 자기 나라를 찾아오도
록 노력하며 그리고 존경받을 만한 이들이 찾아오면 마음 편히 머물
도록 항상 기원하고 있음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밧지 족에게는 번영이
기대될 뿐 쇠망은 없을 것이니라."15)
한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데에는, 지혜롭고 존경받을 만한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 좀 더 넓게 말한다면, 탁월한 인재를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
제는, 붓다가 제일 먼저 언급한, 많은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지와
도 연관되는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합리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존경받을 만한 이들에 대한 적합한 대우
를 통해서 그 사회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잡아나가는 것이 그 사

 

15) 불전간행회 편/강기회 역, 대반열반경-석존의 열반 (민족사, 1994, 2001),
pp. 16-19.

 


회의 유지에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곧, 이 대화를 간추린다면, 붓다에게 있어서, 한 나라가 건실하
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준법정신, 노인에 대한 공경과
복지, 여성인권 존중, 종교의 자유,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존중을
통한 합리적 의사소통이 실천되고 있어야 한다고 하겠다. 특히
수 천 년 전에 이미 여성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붓다의 입장
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역으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실천이 없는 국가는 역으로 말하면 무너뜨릴 정당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16) 이 대화의 사례에 있어서도 결국 밧지
족은, 아자타샤트루의 간계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분이 일
어나서 멸망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서, 붓다가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로 열거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침략
을 할 정당성을 주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지나치게 해석한다
고 할 수도 있지만, 부당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이웃나라에 대
해서, 수수방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무력을 써서라도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
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7)

 

16) 오늘날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이 여기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이다. 미국의 침공 자체가 이렇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시 이라크의 집권세력은 미국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세력에
의해 침공당할 업보를 쌓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7)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었던 본회퍼이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2.4~1945.4.9)는 당시 히틀러의 집권상황을 미친 사람이
트럭을 몰고 대로를 운행하면서 행인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있다면, 그
운전자를 제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 미친
사람에 의하여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
다는 것이다. 다음의 책들을 참조 바란다. 엘리자베스 라움 저/ 길성남 옮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27

 

요컨대, 붓다에게 있어서 전쟁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권이 무시되고 민주적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 국가는
타도의 대상이 되어도 어쩔 수 없거나, 타도되어 마땅하다고 해
석할 수 있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3. 임진왜란과 일본불교
위와 같은 초기불교에 대한 조망에서 우리는 임진왜란을 어떻
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서 일본과 한국 양국의 불
교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참전을 어떠한 의미에서 정당화하고 있
는가? 불교사에서 우리가 살필 수 있는 전쟁은 임진왜란 이외에
도 무수히 많을 것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가까운 시기에 불
교 승려들이 적극적으로 참전한 전쟁으로서 임진왜란은 각별한
의의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호국불교적 입장에서의 연구는 비교
적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교적 등한시되어온 일본불교에
서의 입장을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은 불교가 매우 발전한 나라이다. 그런 일본이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근대에는 한반도에 그치지 않고 중국을 비
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그리고 심지어 미국에 대하여 침략 전쟁
을 확대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일본은 불교를 국교로 하는 불교만의 국가는 아니다. 신
도(神道)라고 하는 고유 종교사상이 있어서 불교 도입 초기부터
김, 디트리히 본회퍼 : 나를 따르라 (좋은 씨앗, 2004).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고범서 옮김, 옥중서간(디트리히본회퍼의) (대한기독교서회, 1998).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세력을 꾸준히 유지해왔다는 것을 간
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도 사상의 정점에 천황
숭배가 있고, 여기에서 천황은 하늘의 대리자로서 이 세상 전체
를 통치할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이 나오게 되고, 일본인
의 세계정복을 정당화시키는 일견 황당무계한 입장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다. 천자(天子)가 하늘의 대리자로서 천하를 다스린다는 입장
에서 주변 국가들의 복종을 요구하거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강요
하는 입장은 중국이 강성할 때에는 주변 국가에 대한 압박 내지
정복 전쟁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티베트를 비롯한 중
국 내 소수민족의 문제는 이러한 중국의 중화사상에 그 일말의
단초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불교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별 책임이 없는 것일
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긴 프
로이스 신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관백은 이 사원 외에도 여러 사원의 재건을 명하였다고는 해도 그것
은 신이나 부처에 대해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든가 하는 신심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신불은 가짜이고 제국을 잘 다스리고 인간 상
호 간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생각해낸 것이라고 진술하여,
신불을 매도하고 경멸하였다. 선종(禪宗)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세에는 신의 섭리 따위는 없고, 사후 선악의 보답이라든가 내세를
인정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단지 현세와 하나의 혼돈뿐이어서 만
물은 부패한 뒤에 거기(혼돈)로 환원하여 그것에 의해 같은 것으로
변해간다.”고 설명하는 종교이지만, 관백은 그 종파의 신도였기 때문
에 일본의 다른 종파의 가르침에 포함된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고 생
각하여 신불에 대해서는 조금의 신앙이나 신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
다.18)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29

 

프로이스의 이와 같은 기록에는, 히데요시가 배타적인 선종에
속한 사람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다만, 가톨릭 사제로서의
입장에서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이 기록이 얼마나 사실을
반영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렇다고 하더라도 임란 당시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불교 종파라고 하는 일본 선종은 어떻게 해서 침략전쟁
에 대한 반대 입장이 뚜렷이 제기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논
의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일본에 임제선을 전한 에이사
이(榮西, 1141-1215)부터 일본 특유의 무사도(武士道)와의 영합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선불교는, 일반적
인 불교의 평화지향성과는 달리, 무사도와 한 길을 갔을 뿐만 아
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입장에서는 선불교와 신도가 이름만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한다.19)
이러한 일본 선불교의 호전적 성격과 아울러서 다소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은,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말로 묘사되는
다음과 같은 입장이다.
지금 명나라를 우리 수중에 넣지 않으면 유럽의 여러 나라가 그곳을
분할해서, 명나라도 조선도 일본도 남만인(南蠻人)들 채찍을 맞아가며
노예선을 타게 될 날이 반드시 와요. 내 이를 내다보고 이번 일을 결
심하게 된 것이오.20)

 


18) 국립진주박물관 편, 프로이스 저/오만·장원철 옮김,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부키: 2003), pp. 152-153.
19) 桑田忠親편, 豊臣秀吉のすべて (新人物往来社, 1981), p. 197.
20)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이길진 옮김, 도쿠가와 이에야스 , 18권 (솔: 2002),
p. 12.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의 동기에 대하여 술회하는 이
말은 비록 소설 속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설이 일본에서 엄청난
수의 독자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일본인들의 의식의 일
각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
모두가 이러한 입장이라거나 절대 다수가 그러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일부에는 이러한 시각이 전쟁의 명분을 주고 있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단지 수백 년 전 과거의
한 인물의 입장이 아니라,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의 서술에서 나타나는 입장이라는 사실은, 소설이 오히려 과
거의 역사적 사실보다 더 심각한 중요성을 함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조선에 대한 출병은 그저 탐욕에 찬 침략
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서구의 마수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충정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 박해
의 계기 중의 하나가 일부 천주교 신자들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도 있었듯이, 위의 말에서도 당시 서구열강의 침략을 가장 첨예
하게 느끼고 있었던 일본인들의 입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었다
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이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
하에 우리나라를 침범한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서구제국주의
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겠다는 충정에서 전개된 것으로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화나 합리화가 가증스러운 것이고
매우 조잡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침략욕에
눈먼 사람들에게는 활용하기 좋은 소재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불교에 이러한 호전적 입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
다. 임진왜란 때에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종군승려로서 한반도에
와서 전쟁의 참상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남긴 케이넨에게 있어서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31
그 전쟁은 자국이 일으킨 전쟁이었지만, 그 참상은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명분도 없는 그릇된 행위이기에 백성들의 서글픔은 판단의식을 흐리
게 하여 조선인의 목을 잘라서 네거리에 세워놓도록 만든다.21)
일본에서 온갖 상인들이 왔는데, 그 중에 사람을 사고파는 자도 있
어서 본진의 뒤에 따라다니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서 줄로 목을
묶어 모아서 앞으로 몰고 가는데, 잘 걸어가지 못하면 뒤에서 지팡이
로 몰아붙여 두들겨 패는 모습은 지옥의 아방(阿防)이라는 사자가 죄
인을 잡들이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고 생각될 정도이다.22)
케이넨의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은 명분도 없는 침략전쟁에 불
과한 것이고, 그러한 전쟁에서 온갖 흉악무도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에서는 근대 세계의 전개와 함께 세계사의 격동기
를 맞아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흐름이 한반도 침략
에도 일정 정도의 명분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 불교의 흐름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선종과 정토
진종이고, 각각 다소 다른 입장에서 전쟁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
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3)

 

21) 케이넨, 임진왜란종군기 (경서원, 1997), p. 114.
22) 같은 책, p. 122.
23) 일본 사람들의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이 초창기부터 오늘날까지 어떻게 전
개되어 왔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北島万次, 壬辰倭亂에
관한 日本人의 認識, ( 사명당과 임란 및 강화교섭-사명당 기념 1·2차 학
술회의 자료집 , 사명당기념사업회, 삼성기획, 1999) pp. 243~273.

 

4. 임진왜란과 한국불교
이러한 침략전쟁에 맞서서 당시 조선불교의 대표적 승려였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참전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사명대사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24) 박노자
교수가 말하듯이, 당시 조선의 승려들의 참전은 숭유억불을 국시
로 하고 있던 조선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차원도 있었고,
승려들은 참전과 불법(佛法)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25) 사명대사
의 다음과 같은 시들은 그러한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갈등을 잘
보여준다.
쓸쓸한 객관에서 어금니가 아파
앉아서 지난 일 생각하니 좋은 일 하나 없다.
머리 깎고 중 되어도 언제나 길에 있었고,
수염 남겨 세속 본 받아도 역시 집은 없었다.
연하(烟霞)의 업(業)은 설어서 익기 어렵고
존성(存省)하는 공부에는 채찍질 하지 못하였다.
진퇴의 두 길을 다 그르쳤는데
흰 머리로 어이하여 또 배를 탔는지?26)

 

24) 이 논문에서는 개괄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러한
관점에 따라 추후에 보다 구체적인 연구성과가 축적되기를 기대해본다. 이
러한 연구는 아래 각주 25)에서 달라이 라마와 관련한 언급에서와 같이,
전통적인 호국불교라는 관념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독재정권 유지의 이
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넘어서서, 단지 일개 국가의 안위를
살피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 불법 수호라는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
는가를 천착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25) 박노자, 「삼국, 통일신라, 고려의 僧兵史를 통해본 사명대사 의거의 의의와
인간적·종교적 비극성-한국 승가사에서의 불살생계와 국가의 제도화된 폭
력」(불교연구 제17집, 2000), pp. 33~66.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33

 

남의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였으니
남도 또한 내 형을 죽였으리라
어찌하여 너에게 돌아오는 것은 생각치도 않고
남의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였나?27)
중생을 제도하는 비결 잊지 못하여
마른 몸 세상에 머물러 온갖 방편에 응한다.
범과 용을 항복 받는 일 비록 장하지만,
마침 황벽을 만나면 문득 당황하리28)
박노자 교수도 언급하고 있지만, “황벽을 만나면 문득 당황하
리”라는 말은 사명대사가 참전의 행위 속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옛 선승의 눈에 당황스럽게 보이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머물러 온갖 방편에 응한다”
는 것이 비극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중생을 제도하는 비결”을
찾는 행위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고 여겨진다. 비극적 드
라마에서는 그냥 슬퍼하면서, 감상을 마칠 수 있지만, 비극적 현
실에서는 구체적인 실천적 대응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
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곧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중생제도의 비
결이라는 관점에서 사명당은 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되는 것이다.

 


26) 在馬島客舘左車第二牙無故酸, 痛伏枕呻吟病扄賓舘痛生牙坐筭平生百不嘉,
剃髮作僧長在路留鬚效世且無家, 烟霞事業生難熟存省工未榮未加, 進退兩
途俱錯了白頭何事又乘槎. 「四溟堂大師集」, 권7, 韓國佛敎全書 , 제8책, p.
68하. 한글 번역은 박노자의 상게 논문에 따름.
27) 殺人之父殺人兄人亦還應殺爾兄, 何乃不思反乎爾殺人之父殺人兄, 「四溟堂
大師集」, 권7, 韓國佛敎全書 , 제8책, p. 70상. 한글 번역은 박노자의 상게
논문에 따름.
28) 度生遺訣未甞忘留得枯形應萬方, 伏虎降龍雖活榮適逢黃蘗却蒼黃. 「四溟堂
大師集」, 권7, 韓國佛敎全書 , 제8책, p. 72하. 한글 번역은 박노자의 상게
논문에 따름.

 

5. 오늘날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요컨대, 불교는 원칙적으로는 평화를 애호하는 종교임에 의심
의 여지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현실에 있어서 그 평화를
지키는 길이 무조건적인 비폭력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이 열악한 경우에 직접적인 공격을 옹호하였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정당한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집단의 경우에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받더라도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제
시하기도 함으로써, 무조건적으로 평화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
는, 정당한 질서에 기반한 평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큰 전쟁의 하나
라고 할 수 있고, 동북아시아 역사에 있어서도 한국과 중국과 일
본이 모두 참전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중요성을 갖고 있
는 임진왜란에서 불교가 여러 가지 차원에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관심사가 될 수 있다. 혹자는 초기불교와 한
국불교가 시공간상으로 너무나 떨어져 있는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으나, 어느 곳의 불교이든 근본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불교적 관심사는 붓다에게로 거
슬러 올라가는 차원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29)
전쟁은 어떤 명분에서든 끔찍한 일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
은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케이넨이 생
생하게 묘사하고 있듯이 생사를 가르는 전쟁 속에서는 끔찍하고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가급적 전쟁은 피해

 

29) 추후로도 불교와 전쟁이라는 커다란 주제하에 구체적인 관련 주제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긴요하다고 하겠다.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35

 

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당한 질서 앞에서 그냥 무저항으로 일관
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30)
임진왜란은 이미 400여 년 전의 전쟁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일본은 계속해서 침략 내지 팽창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었고,
급기야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기도 했고, 아시아 전역에 전쟁의 화
를 가져왔다. 지금도 북핵문제와 어울려, 그 기회를 틈타서 재무
장의 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관측도 무시하기 어려운 것
이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럽연합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일종의 경제통합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고, 궁
극적으로 개별 국가가 영원히 존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덧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국가가, 이 글의 앞부분에서 불교
와 전쟁의 관계를 논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정당하지 않은 질서를
강요하면서 인권을 유린할 때 타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임진
왜란 때 조선은 일방적인 침략을 당한 것이 사실이고 이런 질문
을 던지는 것이 지나치게 자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 과연 정

 

30) 간디 같은 경우 무저항운동을 통해서 영국으로부터의 인도 독립을 쟁취했
다고 하지만, 그러한 경우가 과연 보편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수 있
는지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당시 영국이었으니까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
측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 대하여 티베트의 독립 내지 자
치와 관련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달라이라마의 경우에도, 비록 극
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여 대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티베트불
교학자 Robert Thurman과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고 한다.
“단 한 명의 학승 혹은 진정한 수행자가 생존해 있어서, 그가 죽는다면,
전체 티베트에서 불교적 삶의 길을 유지하는 희망을 전적으로 포기해야
할 상황일 경우에, 그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명이나 열 명의 적
을 제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교 자체에 대한 그 마지막 살아 있는 앎[학승 혹은 수행자]을 지킨다는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에 있어서만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Tessa J. Bartholomeusz, In Defense of Dharma: Just War Ideology in
Buddhist Sri Lanka, (New York: RoutledgeCurzon, 2002), p. 29.

 

당한 국가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반문해볼 필요도 있을지 모
른다.31) 물론 당시 일본은 과연 이러한 면에서 어떠한 수준이었
느냐 하는 반문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비유를
들자면, 남이 백보를 도망갔다고 해서 내가 오십보 도망간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남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나의 잘못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하고, 반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포함해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위
기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루고 전쟁을 피하는 길이 무엇인지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새삼 의식하게 되는 것
은, 붓다가 밧지 족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 밧지 족이 강성한 군
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자도 군대와 식량과 백성들 사이의 신의 가운데 가장 먼저 버
릴 것이 군대이고 그 다음이 식량이며 마지막까지 갖고 있어야
할 것이 백성들 사이의 신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외국의 침략에 맞서서 군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모범적인 인권존중과 노인복지와
여성의 권리 존중 등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사
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제대로 된 배려를 하고 있는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1) 이러한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에 일본에게 투항한 사람들에 대
해서도, 지나치고 과장된 추측이 섞였다고 할 수도 있고 과연 당시 일본의
인권적 상황이 우리나라보다 얼마나 나은 것이었겠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단지 조국을 배반하거나 등진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질서와 정의를 추구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
을 수도 있다.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37

 

 

참고문헌
국립진주박물관 편, 프로이스 저/오만·장원철 옮김,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부키, 2003.
김강녕,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정치적 함의」,『민족사상』제1
집, 2007.
김두진, 「신라불교(新羅佛敎)의 신앙(信仰)과 사회(社會) ; 궁예
(弓裔)의 토착 불교사상」,『한국학논총』제30집, 2007.
박노자, 「삼국, 통일신라, 고려의 僧兵史를 통해본 사명대사 의
거의 의의와 인간적·종교적 비극성 - 한국 승가사에서의 불살
생계와 국가의 제도화된 폭력 -」,『불교연구』17호, 2000.
北島万次, 壬辰倭亂에 관한 日本人의 認識,,『사명당과 임란 및
강화교섭-사명당 기념 1·2차 학술회의 자료집』, 사명당기념
사업회, 삼성기획, 1999.
불전간행회 편/강기회 역, 『대반열반경-석존의 열반』,민족사,
1994, 2001.
심재룡, 「불교와 전쟁: 불살생과 대량살생」,『불교평론』15호,
2003.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이길진 옮김, 『도쿠가와 이에야스』, 18
권,솔, 2002.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고범서 옮김, 『옥중서간(디트리히본
회퍼의)』,대한기독교서회, 1998.
엘리자베스 라움 저/ 길성남 옮김, 『디트리히 본회퍼 : 나를 따
르라』,좋은 씨앗, 2004.
전재성 역주, 『쌍윳따 니까야』제7권,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1.
전재성, 「불교인은 왜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가?」,『법회와 설
법』, 2003년 4월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저/유제승 역, 『전쟁론』, 책세상, 1998.
케이넨, 『임진왜란종군기』, 경서원, 1997.
한국 불교전서편찬위원회 편,「四溟堂大師集」, 권7, 『韓國佛敎
全書』, 제8책, 서울, 東國大學校出版部, 1987.
허정희,「신라 화엄불교의 윤리적 성격에 관한 연구 -원광, 자장,
의상의 구법활동을 중심으로-」,『한국선학』제17집, 2007.
桑田忠親편, 『豊臣秀吉のすべて』, 新人物往来社, 1981.
Brian Daizen Victoria, Zen at War,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nc. 2nd edition, 2006.
Brian Daizen Victoria, Zen War Stories, RoutledgeCurzon,
annotated edition, 2003.
Gail Omvedt, Buddhism in India: Challenging Brahmanism
and Caste, Sage Publications Pvt. Ltd, 2003.
Tessa J. Bartholomeusz, In Defense of Dharma: Just War
Ideology in Buddhist Sri Lanka, New York,
RoutledgeCurzon, 2002.
불교에서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소고 139

 


Abstract
A Study on the Justification of War
in Buddhism
- In Early Buddhism an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Ryu, Jei-Dong
HK Research Professor, Geumgang University
Can war be justified in Buddhism? Nowadays, in spite of
the end of the cold war, local wars continue to threaten
humanity, making the hope of warless world into just a
vacant dream. It might be commonsense that Buddhism is a
peace-loving religion, nay, the most or uniquely peace-loving
religion.
However, some concrete investigation on the reasons or
conditions against war in Buddhism, rather than criticizing
war without any reasoning, can be also said to be important
in that it enables the objective study and responsible action
upon unavoidable and real situation of humanity.
In such a context, here we, firstly, investigate from what
grounds the Buddha opposes war, enumerating the conditions
for preventing war and maintaining a sustainable society.
Secondly, we investigate from what grounds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ight possibly have been justified
in Japanese Buddhism and from what reasons the Korean
monks' military resistance to Japan might possibly have been
justified in Korean Buddhism.
Key words: justification of war in Buddhism,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Luís Fróis, Keinen(慶念),
Samyeongdang(四溟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