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분류】불교철학, 심리철학
【주요어】번뇌, 무명, 욕망, 자아의식(아집), 법집
【요약문】불교에서 고통의 원인에 관한 설명은 다양하지만, 이를 후대의
교의에 따라 도식화시키면 번뇌와 업이다. 그렇지만 불전에서 상위범주로
서의 번뇌는 핵심교의와 관련하여 구분하여 제시되고 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개념이 갈애와 무명, 그리고 아견(我見)이다.
갈애는 사성제의 맥락에서 제시되었고, 무명은 12지 연기의 맥락에서 언급
되고 있다. 그리고 아견은 소위 현관론(abhisamayavāda)의 맥락에서 중요
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들 세 가지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가를 설명하면서, 특히 자아의식이 점차 염오의 근원으로 간
주되어지는 이유에 대해 세분해서 살펴보았다.
?무아상경?에서 무상-고-무아의 방식으로 5온에 대한 분석적 관찰이 제안
되었다. 개아의 구성요소를 심적, 물질적 요소로 환원하고, 이를 다시 무상
하고 따라서 고통스러우며 따라서 자아라고 부를 수 없다는 방식으로 관찰
함을 통해 자신의 개체존재, 즉 5온이 자아나 자아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5온과 자아를 비동일시함에 의해 자아에 대한 갈애의 근
거를 박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초기불전의 이러한 설명은 후대에 인집과
법집으로 구분되게 되었다. 개아에 대한 집착으로서의 인집을 ?밀린다왕문
경?에서의 수레의 비유를 통해 설명했고, 이 인집이 미세하고 잠재적인 자
아의식의 발견으로 인해 점차 세분되어갔음을 수면(隨眠) 개념의 설명을
통해 제시했다. 이 ‘수면’ 개념을 자아관념과 관련시키면서 ?유가론?은 유
신견을 분별기와 구생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법집이 가
진 의미와 그것이 대상과 명칭의 동일성에서 생겨난다고 하는 사실을 「보
살지」의 설명을 통해 제시했다.
Ⅰ. 들어가는 말
불교는 모든 생명체가 윤회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으며 이를 통
해 생노병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사태라고 여긴다. 그리고 인과설
에 따라 고통에는 원인이 있으며, 이 원인이 소멸될 때, 고통도 소멸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대에 불교철학을 집대성한 세친(Vasubandhu: 약 5세기 초)은 ?구
사론?에서 고통의 원인은 번뇌와 업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
다. 여기서 번뇌가 현생에서의 불선(不善)한 심리적 작용이라면, 업은
과거 및 현재의 행위와 관련되어 넓은 의미에서 우리를 조건지우는
힘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요소 중에서 업은 직접적으로 재생의 조건
이나 그 구체적 양태를 결정하는 기능을 하지만 그것 자체가 직접적
으로 재생으로 이끌지는 못하는 반면에, 번뇌는 중생을 윤회 자체로
이끄는 보다 근원적 원인, 또는 일차적 동인으로서 간주된다.1) 즉 앙
굴리말라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업이 남아 있다고 해도 번뇌가 끊어졌
다면 더 이상의 생사윤회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번뇌는 해탈하
기 위해서 단절되어져야 할 가장 결정적인 요소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의 어원해석에 따르면 번뇌(kleśa)는 “괴롭힘, 고뇌”2) 등
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의미 대신에 일차적으로
“[마음의] 염오”3)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이 개념이 불교적으로
1) 이것은 ?구사론? 5장 「분별수면품」의 첫 부분에서 명확히 제시되고 있다.
AKBh 277,3-4: karmajaṃ lokavaicitryam ity uktam / tāni karmāṇy anuśayavaśād
upacayaṃ gacchanti antareṇa cānuśayān bhavābhinirvarttane na samarthāni
bhavanti / (“세상의 다양함은 업에서 생겨난다고 설해진다. 그 업들은 수
면(=번뇌)의 힘 때문에 모인다. 수면 없이는 [三]有의 산출과 관련해서 어
떤 가능성도 없게 된다.”).
2) kleśa(Pāli: kilesa)는 M. Monier-Williams의 A Sanskrit English Dictionary
에 따르면 어근 kliś (“to torment, trouble, molest, cause pain”)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pain, affliction, distress”(고통, 괴롭힘, 고뇌)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Böhtlingk와 Roth가 편집한 Sanskrit-Wörterbuch(II 518)도 “Schmerz,
Leiden, Beschwerde”(고통, 고뇌, 번민)의 의미로 풀이한다. ‘煩惱’라는 한역
이나 nyon mongs pa라는 티벳역도 이런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5
변용된 용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초기불전에서
kleśa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번뇌 일반을 나타낸 용어인
upakleśa(隨煩惱)가 금의 불순물과 비교되거나(AN III 16f), 또는 해
와 달을 가리는 구름에 비유(AN II 53f)되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
난다. 번뇌가 심과 상응해서 일어나는 심리작용의 하나라고 한다면
번뇌의 작용이 일어날 때 심은 염오될 것이고 번뇌의 소멸이 이루어
질 때 심은 청정해질 것이다.4)
많은 초기경전에서는 심을 염오시키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번뇌의
다양한 작용에 따라 번뇌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번뇌의
총칭으로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서 루(漏, āsrava), 결(結, saṃyojana),
박(縛, bandhana), 수번뇌(隨煩惱, upakleśa), 취(取, upādāna), 개(蓋,
nīvaraṇa), 불선근(不善根, akuśalamūla) 등이 있고, 또 화(火, agni), 쟁
(諍, raṇa) 등의 비유적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5)
이와 같이 번뇌의 양상은 다양하게 설해지고 있지만, 이하에서는
초기불교 이래 가장 교리적으로 문제되었던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각기 사성제(四聖諦)의 맥락에서의 갈애
(渴愛, tṛṣṇā), 12지 연기설의 맥락에서 무명(無明, avidyā), 그리고 현
관론(現觀論, abhisamayavāda)의 맥락에서 아견(我見, ātmadṛṣṭi)이다.
이들 세 가지는 모두 초기경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지만, 각각의
경전의 설명맥락에서 그 역할은 다르다고 보인다. 또한 이후의 불교
사상의 발전 속에서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 교리적 이해
3) BHSD에서 kleśa는 impurity, depravity(불순함, 그릇됨)로 번역되고 있다.
4) SN III 151: “비구들이여, 항시 자신의 심을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만 한
다. ‘이 마음은 오랜 시간 탐욕에 의해, 진에(瞋恚)에 의해, 우치(愚癡)에
의해 염오되었다.’ 비구들이여! 심이 염오되었기 때문에 중생은 염오되고,
심이 청정해졌기 때문에 중생은 청정하다.”
5) ?유가론?(YBh 167,5-169,21)에서 이들 동의어들은 모두 26종으로 열거되
고 정의되고 있다. 이를 항목별로 분류해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5)
saṃyojana, bandhana, anuśaya, upakleśa, paryavasthāna, (6-10) ogha, yoga,
upādāna, grantha, nivaraṇa, (11-15) khila, mala, nigha, śalya, kiṃcana,
(16) mūla, (17) duścarita, (18-21) āsrava, vigha, paridāha, upāyāsa, (22) raṇa,
(23-24) agni, jvara, (25) vanasa, (26) vinibandha.
6 특집 / 욕망과 행복
에 따라 상이할 것이다. 고통의 원인을 다른 새로운 요소로 규정한다
는 것은 그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고
통의 원인에 대한 경전의 기술의 변화는 불교사상사에서의 인식과 수
행론상의 전환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본고는 고통을
낳는 원인적 요소에 대한 이런 다른 이해가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
으며, 또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Ⅱ. 무명과 욕망
1. 무명(avidyā)
위에서 고통의 원인으로 언급한 세 가지 심리적 요소 중에서 먼저
무명을 보자. 12지 연기의 맥락에서 무명은 첫 번째 항목을 점하는
것으로서 윤회의 근본원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
고, 사실 일상적 차원에서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12지와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설명하고 있는 다른 연기설에서 무명이 포함되
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6) 무명은 어떤 형이상학적
근본원인7)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불선한 심작용에 항시 수반되는
것으로서 고통의 원인과 관련해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포
괄적인 조건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간주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한 포괄적 조건이란 “고통과 그 원인, 그것의 소멸과 그것의 소
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무지가 즉 무명이다.”(SN II 4)라는 경장의
정의에서 보이듯이 고통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 고통 자체를 조건지
6) 12지 연기설은 주로 Saṃyutta-nikāya에서 설해지며 (SN 12.1-3 등), 북
전 불전에서 설해지는 형식이다. 반면 10지 연기설은 無明과 行이 제외된
형식이고 9지 연기설은 10지 연기설에서 六入處가 제외된 형식이다.
7) 여기서 무명을 고통의 근본원인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결코 형이상학적
인 제일원인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지 고통을 영속시키는 데 있어 불가결한 요소로서 기능하든가
아니면 그것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7
우는 어떤 전반적인 조건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아비달마
불교에서 무명을 “사성제에 대한 무지”로 정의하는 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즉, 무명이란 우리가 욕망하고 영원한 것으로 집착하는 이
세계가 실은 무상하며, 고통스러운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며, 어떤 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
는 일반인들의 삶의 양태를 가리킬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명이 어
떤 형이상학적 또는 단일한 심리적 실체로서 간주된 것이 아니라 하
나의 심리적 과정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 이해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실제로 초기경전에서 무명을 연기설의 다양한 맥락에
서 다른 원인을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여
기서 무명의 원인은, 예를 들면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사유하고 그
에 집중하는 것(ayoniśo manaskāra)이나 정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 등
이라고 언급되고 있는데,8) 이는 무명이 실체 개념이 아니라 이런 부
정적인 심리적 과정을 총괄하는 하나의 역동적 과정임을 보여준다.9)
그렇지만 완결된 12지 연기설의 체계에서 무명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수행되고 있지 않다. 대신 무한소급을 회피하려는 현실적인 필
요성 때문에 무명은 이런 모든 부정적인 심리적 과정을 포괄하는 조
건으로서 파악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무명은 점차 핵심적 중요
성을 획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명의 강조는 모든 고통이 올바른 인식의 결여에서
나온다고 하는 당시 불교의 주지주의적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
다고 보이는데, 이러한 이해는 ?전법륜경?에서 고통의 원인으로서 직
접적으로 언급되었던 갈애라는 정서적 번뇌조차도 그 근거를 무명에
서 찾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10) 왜냐하면 12지 연기설에 따르
8) AN V 113.
9) R. Johansson 1979: 135-138 참조.
10) 붓다의 해탈체험과정을 기술한 문헌에 따르면 붓다는 성도체험 후에 12지
연기를 순관과 역관의 방식으로 관찰했다고 전하지만, 이를 역사적인 사
실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며, 오히려 후대에 연기설의 중요성
이 강조됨에 따라 이를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으로 전의시켰다고 보는 편
이 옳을 것이다. 현대학자들은 12지 연기설이 처음부터 현존 형태로 제시
8 특집 / 욕망과 행복
면 감각적 경험에 의거하여 대상과의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에서 감수
작용이 일어나며 이에 의거하여 갈애가 생겨난다고 하는 설명이 있는
데, 만일 대상에 대한 여실한 인식, 즉 그것들의 무상성의 인식을 통
해 이런 애착작용을 중지시킬 수 있다면 갈애도 더 이상 생겨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명이 갈애를 포함한 다른
모든 정서적 요소들의 근거로서 소급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11) 무
명은 이런 포괄적 성격 때문에 모든 일상인의 부정적인 심리작용의
근거로서 간주되고 있다.
2. 갈애
붓다의 최초의 설법이라고 간주되는 ?전법륜경?은 사성제의 맥락
에서 갈애를 고통의 원인으로서의 집성제(集聖諦, samudaya-satya)라
고 설하고 있다.
“오, 비구들이여! 재생으로 이끌고, 쾌락을 향한 탐욕에 의해 수반되
며, 이곳저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바로 이 갈애가 집성제이다. 즉, 욕망
의 대상에 대한 갈애(kāma-taṅhā, 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bhava-taṅhā,
有愛), 비존재에 대한 갈애(vibhava-taṅhā, 非有愛)이다.”12)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학자들은 오히려 12지 연기설이
몇 개의 연기계열의 종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Frauwallner(1953:
197-213)는 12지가 동질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사태에 대한
상이한 외적 형태들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최초의 학자의 하나로서 12지
가 1-7지 계열과 8-12지의 두 계열의 결합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이
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의 추정을 이어받아 Schmithausen(2000)
은 Mahānidānasutta와 그 여러 판본에서 제시되는 12지 연기설을 검토하
면서 그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11) 12지 연기의 맥락에서는 일반적으로 無明(avidyā), 愛(tṛṣṇā), 取(upādāna)의
3지는 번뇌에, 行(saṃskāra)과 有(bhava)는 업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5지가 원인이고 나머지 7지는 결과로서 事 또는 生에 속한다. 이를 유부
의 설에 따라 3세에 적용시키면 무명과 행은 과거세에, 식에서부터 유까지
는 현세에, 그리고 생과 노사는 미래세에 속한다.
12) Vinaya I. 6. 20: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yāyaṃ taṇhā pono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9
여기서 갈애는 세 개의 술어를 통해 기술되고 있다. 여기서 두 번
째와 세 번째 술어는 서로 내용상 연결되어 있다고 보인다. 먼저 “쾌
락을 향한 탐욕에 의해 수반되는(nandirāgasahagatā)” 갈애를 보자. 이
것은 3종의 갈애13) 중에서 감각적 욕망의 대상을 향하고 있는 갈애
를 가리킨다. 욕망의 대상에 대한 갈애가 고통의 원인이라는 점은 그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에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설사 일시적으
로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지칠 줄 모르는 우리의 심리적 욕구의 메
카니즘 때문에 다시금 갈구하게 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일 것이다. 그
렇기 때문에 갈애는 이곳저곳에서, 즉 모든 가능한 욕망의 대상들에
대해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갈애가 보다 본질적으로 고통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재생
으로 이끄는” 갈애와 관련될 것이다. 윤회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불교에 있어 윤회과정 속에서 우리가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생노
병사의 고통은 욕망의 대상에 대한 갈망의 충족 여부에 관계없이 현
존재에 대한 갈망을 고통의 원인으로 보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욕
망의 대상에 대한 갈애 없이도 재생이란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한
고통의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3종의 갈애 중에서
‘존재에 대한 갈애’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에 해당될 것이다. 여기서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재생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비
존재에 대한 갈애’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게틴은 ‘비
존재에 대한 갈애’를 교학에 따라 태어나지 않고 소멸하려고 하는 욕
망으로서,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라는 단견(斷見, ucchedavāda)
과 연결시키면서 해석하고 있다.14) 따라서 그에 따르면 ‘존재에 대한
īdam: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13) 욕애, 유애, 비유애의 셋으로 나뉘어져 설명되고 있는 부분은 팔리 자료
를 제외한 다른 한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 3종의 갈애는 후대 교
학에서 불교우주론에 따른 3계에 배대되어 설명되고 있지만, 이것이 원래
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14) Gethin(1998: 70). 구사론(AKBh 186, 2f.)에서 vibhava-tṛṣṇā는 “삼계에 속
한 무상성으로서, 그것에 대한 희구”(traidhātukī anityatā / tatra prārthanā
vibhavatṛṣṇā /)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비존재에 대한 갈애와 연결된다.
10 특집 / 욕망과 행복
갈애’는 모든 것은 영원할 것이라는 상견(常見, śāśvatavāda)으로 해석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두 갈애를 단견과 상견과 대비
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확대해석된 것으로 보이며, 더욱 ‘욕망의 대상
에 대한 갈애’와 같은 범주로 묶기도 어려워 보인다. 슈미트하우젠의
설명에 따르면15) bhava-taṅhā(有愛)와 vibhava-taṅhā(非有愛)는 bhava-abhava-taṅhā
라는 복합어로서 ‘모든 가능한 존재에 대한 갈애’를 원래 의미했지만,
후에 잘못된 복합어 풀이를 거쳐 현존 해석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갈애가 삼계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모든 종류의 존재에 대한 것이
든, 그것은 모두 정서적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현상적 측면에서 본다
면 직접적으로 주어진 욕망이 일차적으로 문제되어야 하지만, 수행도
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욕망은 그것의 직접성 때문에 제거되기 쉽
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욕망이 향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함
에 의해 이를 제거하려는 전략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이것은 바로
갈애가 향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아’ 관념의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Ⅲ. 자아의식
자아의식이 우리를 윤회와 재생으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은 ?무아상경(無我相經)?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었다.16) 이 경은,
간략히 말하면, 개아는 단지 5온(五蘊)17)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제시
15) 이 설명은 Schmithausen의 개인적 설명에 의거한 것이다. 산스크리트 복합
어 bhava-abhava가 ‘모든 가능한 존재’로 해석된다는 것은 Wackernagel,
Alt-indische Grammatik II.1, Nachtrage 44 참조.
16) 붓다는 그의 5명의 제자들을 위해 처음으로 ?전법륜경?을 설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붓다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었다. 여기서 붓다는
8정도의 교설이 보여주듯이 주로 마지막 항목인 정삼매(正三昧)에 의거하
여 제자들을 지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집중적인 삼매 훈련을 통
해서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자 붓다는 교육방식을 바꾸어 그들에게 ?무
아상경?을 설했고, 이는 큰 효과를 가져왔다. 이 맥락에서 Vetter(1988:
XXXV)가 지적하고 있듯이 ‘무아’의 관찰은 선정수행의 어려움을 극복하
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11
하면서, 이들 5온에 대해 두 가지 논증방식을 통해 자아가 아님을 인
식하도록 설하고 있다. 이들 두 가지 논증18)이란 먼저 5온에 대해 자
재력(自在力) 없기 때문에 자아가 아니라는 주장과, 무상하고 고통스
러운 것이기 때문에 자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먼저 전자를 보자.
“색은 자아가 아니다. 만일 색이 자아라고 한다면 이 색은 소멸하
지 않을 것이며 색에 대해 ‘나의 색이 이와 같이 되어라’ 또는 ‘나의
색이 그와 같이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색
이 자아가 아니며 따라서 소멸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것에 대해
‘나의 색이 이와 같이 되어라’ 또는 ‘나의 색이 그와 같이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다. ...” (SN III 66)
이 논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만일 자아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것은 5온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을 것이며, 따라서 5온을
원하는 대로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현상적으
로 관찰하는 한에 있어, 5온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형성될 수 없기에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증이다.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은 ‘자아’
란 완전하고 불변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아가 우파니샤드에서 주장
하는 것처럼19) 영원하고 불변하며 언제나 동일자로 남아있는 그런
17) 5온이란 개아를 구성하는 요소를 물질적 요소인 색(色, rūpa)과 심리적 요
소인 명(名, nāman)으로 구분한 후에 후자를 다시 수(受), 상(想), 행(行),
식(識)으로 세분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초기불교는 현상세계의 분석에 관
한 한 마음과 물질의 이원론에 의거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원론이란 심-신이 불변하는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실체 이원론적
이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교에서 마음 자체에
대한 이해도 실체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기능적 측면에서의 이해라고 보
이기 때문이다. Siderits(2007: 45)는 이를 지적하면서 불교의 이원론을 “event
dualism”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18) S. Collins(1982: 97-103)는 초기불교에서 자아의 부정을 위해 세 가지 논
리가 사용되었다고 정리한다. 이것은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논증에 세
번째로 ‘자아’라는 용어가 특정한 경험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고 하는
논증이다. 이것은 자아를 경험과 동일시하거나 경험 외부에 있는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경험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논증이다.
19)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BĀU III. 7)에서 Yajñavalkya는 자아를 불멸하
12 특집 / 욕망과 행복
존재라고 한다면, 그런 존재는 적어도 5온의 현상적인 관찰에서 확인
될 수 없다는 것이 붓다의 지적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5온 이외에 개아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는 없는 것이다.20) 이 논증이
초기불교에서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던 반면,21) 불교사상사에서 결정
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후자의 논증방식이다.
여기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색이 영원한지 아니면 무상한지를 묻는
다. 제자들이 색이 무상하다고 대답하자 붓다는 무상한 색이 즐거운
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묻는다. 제자들은 무상한 색은 고통
스러운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붓다는 다시 무상하고 따라서 고통
스러운 색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이다” 또는 “이것이 나
의 자아이다”라고 보아야 하는지 아닌지를 묻는다. 이에 대한 제자들
의 답은 역시 무상하고 따라서 고통스러운 색은 나의 것도 아니며
자아도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답변을 유도한 후
에 붓다는 제자들에게 5온에 대한 그런 인식이 정견이라고 설한다.
이런 인식을 통해 5온에 대한 싫증을 느끼고 그것들에 대한 욕망을
떠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아라한의 해탈로 이끈다고 붓다는
결론내리고 있다.22)
고 모든 요소와 감관을 내부에서 통제하며, 이런 요소나 감관의 대상이 아니
라고 말한다. “그것 (즉 아트만)과 다른 것은 고통스럽다. (tadanyam ārtam)”
아트만은 언어적 대상이 아니기에 단지 부정적 접근(neti neti)만이 가능하지
만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하자면 존재, 의식, 축복(sac-cit-ānanda)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 M. Siderits(2008: 37)는 5온이 개체존재를 구성하는 전체이며 이들 요소 이
외에 다른 요소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exhaustiveness claim’이
라고 명명한다.
21) 이 자재력의 부재에 따른 무아의 논증은 후대에 거의 망각되었다고 Vetter(1988:
37)는 지적한다. 실제로 「성문지」(SrBh 228, 7: ye duḥkhās te ‘nātmānaḥ,
asvatantrāḥ)에서도 단지 자재력의 부재(asvatantrāḥ)라는 문장만이 무상
에 의한 무아의 논증에 뒤따라 제시될 뿐, 어떤 내용적 설명도 없다. 그
렇지만 이 맥락에서 대승경전에서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붓다와 대보살의
자재력의 기술은 무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추적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
이다.
22) SN III 66-68.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13
이러한 무상→고→무아의 논리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자아
란 영원한 것이나 즐거운 것이어야 하지만 현상적으로 관찰되는 5온
에게 영원성이나 낙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자
아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적 의미에서 영
원하고 단일한 자아의 존재는 괄호 속에 묶여지고 판단중지된다.23)
판단중지의 기능은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들 속에 자아라고 불려
질만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통찰하는데 있다. 유한하고 소멸하도록
운명지워진 존재에게 영원성을 투사(projection)함에 의해 그것을 영
원한 자아로서 갈망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일상적 언어사용에 따라 개념적으로 구성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갈애는 사태 그 자체가
아닌 것을 사태라고 ‘욕구’하는 것이다. 반면 갈애의 소멸로서의 열반
이란 바로 이들 5온을 자아라고 하는 파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아상경?의 교설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붓다는 5온이란 심-신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이며, 이 5온을 결코 자아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뿐이다.24) 하지만 이런 비동일시는 자아의 비존재
로서의 ‘무아(anātman)’를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적으로 해석되었다.
1. 개아에 대한 집착(人執, ātma-grāha)으로서의 자아의식
우리는 일상언어적으로 경험의 주체가 존재하고 또 그것은 지속적
23) 여기서 붓다가 그러한 영원한 자아가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묻지 않
고, 다만 전체로서의 개아를 분석해 볼 때 그런 영원한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판단중지’라는 용어에 의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24) 다른 초기경전인 수타니파타(Suttanipāta =Sn)에서는 “나의 소유로 됨
(mamāyita)” (Sn 777, 805), “취착(upādāna)” (Sn 842), 또는 “소유로 취
함(upadhi)” (Sn 1050) 등이 고통의 원인으로서 언급되고 있다. 이런 표
현들은 모두 외적 대상이나 또는 현상적 존재의 구성요소, 즉 오온(五蘊)
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신적 태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Sn의 다른 개소에서(Sn 763-771) 욕망(欲, kāma)이 갈애의 동의어
로서 언급되고 있다.
14 특집 / 욕망과 행복
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어제 감기에 걸렸지만, 약을 먹고 지
금 나아졌다.”고 일상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어제 감기에 걸린 ‘나’
와 약을 먹고 나은 ‘나’는 시간적 경과와 상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불교에서 말하듯 자아가 존재하
지 않는다면, 이러한 경험에서 확인되는 ‘나’의 지속성을 어떻게 설명
할 것이며, 또 자아의 지속성 없이 어떻게 윤리적 행위의 업과를 근
거지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되어 온 주제이지만25) 여기서는 ?밀린다왕문경?에 초점
을 맞추어 설명해 보자.
경험적 자아란 실은 명칭일 뿐이며 그것에 대응하는 어떤 외재적
실재성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밀린다왕문경?에서 유명한 수레
의 비유를 통해 제시되었다. 이 경전은 나가세나(Nāgasena) 비구와
박트리아의 그리스계 왕인 메난드로스(Menandros)와의 대화를 소재
로 편찬된 것이다.26) 여기서 나가세나는 왕과 만났을 때, 그는 ‘나가
세나’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단지 명칭일 뿐이며 실제 어떤 개아도 존
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를 듣고 메난드로스 왕은 그가 무의미한
말을 하고 있다고 조롱한다. 이에 대해 나가세나는 바로 수레의 비유
를 갖고 응대한다.27) 그 요지를 말하면 수레는 바퀴와 바퀴살, 깃대,
25) 국내에서 몇 년 전에 무아와 업의 관계가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김진의 문제제기와 한자경 등의 반론이 있었다. 여기에서 그
문제를 다룰 여지는 없지만, 이러한 논쟁이 형식논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서는 이하 저서를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Pāli 문헌에 나타난 무아
설의 의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로 평가받는 Collins(1982)와
초기불전에 나오는 ‘자아’ 용어의 사용을 분석한 C. Oetke, “Ich” und das
Ich (Stuttgart 1988)기 그것이다. 그밖에도 무아설의 의미에 대한 독일과
영국학자들의 상이한 이해에 대해서는 Ruegg과 Schmithausen이 편집한 The
Early Buddhism and Madhyamaka (Leiden/New York 1990) 참조. 국내
에서의 연구로는 정승석(1999) 참조.
26) O. von Hinüber(1996: 82f.)는 Milindapañha를 paracanonical text에 속하
는 문헌에 배속시킨다. 그는 Fussman의 연구에 의거해서 이 대화가 실제
로 벌어지지 않았고 다만 후대에 편찬되었다고 간주한다. 그 하나의 증거
가 메난드로스 왕이 붓다 당시에 등장했던 여섯 명의 비불교도 사문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내용일 것이다.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15
의자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들 구성요소를 떠나 수레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레란 말은 소통을 위해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가세나’라는 이름은 5온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
재를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나가세나란 개아는 존
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수레의 비유를 통해 경험의 흐름 밖에 존재하는 자아란 단
지 명칭에 지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더 이상 환원되
지 않는, 즉 일차적 존재로서의 5온의 흐름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우
리는 이 교설에서 아비달마의 체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일차적 존
재인 법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 법이 모여 구성된 이차적 존재 사이
의 존재론적 구별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28)
그렇다면 앞의 서술에서 일상경험의 주체로서 파악되는 ‘나’는 이런
이차적 구성체로서의 명칭적 존재일 것이며, 반면 일차적 존재는 심-
신의 연속체로서의 경험 자체의 흐름일 것이다.
위의 대화는 경험 속에서 불변하는 것으로 남아 있는 ‘나’의 동일
성은 부정될 것임을 보여주지만, 나가세나의 의도는 다만 경험적 자
아의 동질성에 대한 근거없는 일상적 믿음을 비판하는데 있었을 것이
다. 그렇지만 만일 경험적 자아가 어떤 근거도 갖지 않는 순수한 개
념적인 것이라면, 이는 불교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듯이 불교를 허무주
의로 해석하는 길을 열어놓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경험적이고 일상적 ‘나’가 어떤 방식으로 5온의 흐름과 관련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왕은 앞의 대화에 의거하
여 경험적 자아는 5온의 흐름과 ‘다른’ 존재라고 하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이에 나가세나는 만일 그렇다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스승도
현자도 없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램프의 비유를 통해 5온의 흐름과 개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29)
27) Milinda’s Questions pp. 34-38.
28) P. Williams(2000), p.113f.
29) Milinda’s Questions p. 55f.
16 특집 / 욕망과 행복
등불을 밤에 비출 때 그것은 계속 빛을 방산할 것이다. 그런데 첫
시간의 빛과 중간시간의 빛, 그리고 마지막 시간의 빛이 동일한 것인
가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우리는 그 관계를 앞의
불빛을 조건으로 해서 나중의 불빛이 생겼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존재요소(법)들의 흐름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 그것들은
전후가 없이 연결되어 하나의 요소가 소멸하면 다른 요소는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식의 요소는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것으
로서 이전의 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불빛은 연료를 재료로 해서 타오르고 있다. 이것은 개아
가 5온을 연료로 해서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
로서, 불빛은 개아를 나타내고 연료는 5온의 흐름을 비유한 것으로 보
인다. 여기서 밤새 비추이는, 마치 단일체로서 지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등불의 빛은 항시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념적 허구에 지나
지 않는다. 그것은 매 순간 각기 다른 연료를 재료로 해서 불타오르는
화염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그 불빛은 매 찰나 ‘다른’ 것이다. 그렇
지만 등불의 빛이 전후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파악도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전의 빛과 이후의 빛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
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는 “완전히 동일하지도 않고, 완전히 다르지도
않은”30) 것으로서, 다시 말해 연기적인 것으로서 설명되었다.
이와 같이 이차적 존재인 개아와 일차적 존재인 5온의 관계를 연
기적인 것으로 해석함에 의해 ?밀린다왕문경?은 개아를 개념적 허구
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인집(人執)이란 개아가 항시 단일체로 존재한다
는 견해를 말하며, 이것의 반대로서의 인무아란 단지 개아의 비존재
만을 의미하게 된다. 개념적 허구라는 표현에는 이차적 존재가 언어
30) 인과의 흐름 속에 도일한 것도 없고 완전히 다른 것도 없다는 생각은
Visuddhimagga XVII 167-8에서 우유와 낙산의 비유를 통해 표현되었다.
우유의 비유는 ?밀린다왕문경?에서 등불의 비유에 이어 나오고 있다.
Gethin(1998: 142-3)은 불교에서 변화란 이차적 성질은 변하지만 일차적
자성은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성질들이 인과적
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17
나 관념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고, 그런 점
에서 불교철학에서의 언어의 핵심적 역할을 보여주고 있지만, 문제는
이를 단지 개아의 비존재에만 한정시킨다면 왜 그러한 인집이 핵심적
장애로 나타나는지를 잘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2. 자아의식의 해석: 미세한 작용 vs. 잠재성
자아의식에 잠재적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유식학파의 발견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연원은 아비달마 학파들 사이의 해석의 차이
에서 유래할 것이다. 우리는 그 해석의 차이를 ‘수면(隨眠, anuśaya31))’
에 대한 해석에서 추적할 수 있다. 아비달마 불교시기에 수면은 마음
을 염오시키는 여러 심리적 요소를 총칭하는 상위범주로서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단지 수면이 잠재적인 것인지 아니면 미세한 것인지
가 문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자아의식과 관련시켜 본다면 자아의
식의 염오성이 가진 질적 차이가 문제시될 것이다.
불전에서 사용되는 anuśaya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
나는 “잠재적인 악으로의 경향성”32)이란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
에 대한 집착”이란 의미이다. 전자가 잠재성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어
떤 표면화된 현실적인 번뇌의 작용을 가리킬 것이다. CPD는 이 단어
의 용례를 구분하여 사람에 대해 사용될 때에는 “집착하다”의 의미
로, 그리고 대상에 대해 사용될 때에는 “잠재되어 놓여있다”의 의미
로 사용되고 있다고 구분한다.33)
어떤 점에서 이러한 두 가지 용례의 차이에 의거하여 아비달마 학
파들은 번뇌에 대한 상이한 해석을 내렸다고 보인다. 이것은 ?구사론?
31) anuśaya는 A Sanskrit 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원래 “잠들어 있다”
는 의미를 가진 anu-√śī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32) 잠들어 있다는 어원에서 파생된 말로서, anuśaya가 보다 번뇌의 잠재성
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BHSD도 이 단어의 의미를 “propensity
(usually to evil), (innate) proclivity (inherited from former births), disposition
(to do something)”으로 풀이함에 의해 잠재적 경향성의 의미로 이해한다.
33) CPD ‘anusaya’ 항목을 볼 것.
18 특집 / 욕망과 행복
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전자가 경량부의 해석이라면 후자는 유부의
해석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먼저 유부의 해석에 따르면, 수면과 번뇌
는 동의어로서,34) 동일한 집착하는 측면을 달리 표현하는 말에 불과
한 것이다. 즉 수면은 단지 번뇌의 미세한 측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유부 논서는 수면을 미세(微細, aṇu), 수증(隨增,
anuśerate), 수전(隨縛, anubadhnanti) 내지 수축(隨逐, anugata)의 의미
로 풀이한다.35) 여기서 ‘미세’의 의미는 수면과 번뇌는 동일한 것이
지만 단지 수면은 번뇌의 미세한 측면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수축의 의미는 기름이 호마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서,
또 수박의 의미는 신심(身心)의 상속을 따라 생겨나기 때문으로 새가
물고기를 따라가는 것으로서 비유되고 있다. 수증의 의미는 아기가
유모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 또는 모유가 아기를 크게 만드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러한 수증의 해석은 명확히 수면에 대한 유부의 이
해가 anuśaya의 집착적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유부가 수면을 번뇌와 동일시하면서 수면을 ‘잠재적인 경향성’ 대
신에 ‘∼에 대한 집착’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그들의 핵심이론인 삼세
실유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구사론?에 따르면 삼세실유론
의 논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업의 인과관계에
따른 것이다. 만일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악업의 결과가 미래
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생겨날 때 이숙인(異熟
因)은 현재에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증은 감각능력(根)
과 감각대상(境)이 만나 인식이 생겨난다는 설명과 관련되어 있다. 만
일 감각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식은 생겨날 수 없기 때문에 따
라서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
는 식은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논증에서 보듯이 만일 수
34) AKBh 278,5. 유부의 해석은 복합어 kāmarāgānuśaya를 Karmadhāraya의
방식, 즉 kāmarāga eva anuśaya로 풀이하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바로
kāmarāga가 anuśaya가 되는 것으로 후자는 전자와 어떤 질적 차이 없이
다만 그것의 미세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35) 이 네 가지 용어의 의미와 그 문헌전거에 대해서는 Ahn(2003: 29f.) 참조.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19
면을 잠재적 경향성으로 해석한다면 과거와 미래에 존재하는 법체의
실유성은 의문시될 것이다. 이것은 삼세실유론의 부정이 수면을 잠재
심으로 보는 주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36)
두 번째로, 수면을 번뇌의 잠재적 측면으로 간주하는 경량부의 해
석을 보자.37) 경량부는 수면을 후에 싹을 생기게 할 수 있는 종자(bīja)
의 은유를 사용해서 번뇌의 잠재성과 현재성을 구분한다. 여기서 수
면이란 힘(śakti)으로서, 잠들어있는 번뇌를 가리킨다. 잠들어 있다는
것은 현재 활동하고(現起) 있지 않은 번뇌가 마치 종자의 상태로 잠
재적인 능력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깨
어있는 상태의 번뇌로서, 즉 번뇌의 현실적인 생기를 말한다. 세친은
종자의 상태를 심신의 상속(ātmabhāva) 속에서 번뇌로부터 생겨나서
후의 번뇌를 생기게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본다면
수면은 과거의 번뇌에서 생겨난 것으로 잠재적인 종자의 상태로 심상
속 속에 보존되어 있다가 후에 번뇌를 현기시키는 능력이다.38) 이러
한 경량부의 종자설은 유식학파에 의해 수용되어 자아의식의 저장소
로서의 알라야식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
히 자아의식과 관련되어 이를 현행하는 작용과 잠재적 능력으로 구분
한 것은 이하에서 서술할 유식학파에서의 유신견의 핵심적 역할을 예
견하는 것이다.
3. 유식학파에서의 인집(人執)의 확대: 잠재성의 측면의 발견
자아의식이 불교의 수행도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후라우발너는 이런 사유를 현관론(abhisamayavāda)이라고
36) 加藤純章(1990), p. 11.
37) AKBh 278,16f. 경량부의 해석은 복합어 kāmarāgānuśaya를 Tatpuruṣa의
방식으로, 즉 kāmarāgasyānuśaya로 풀이하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rāga는 anuśaya와는 다른 것으로서 간주된다.
38) 세친의 수면에 대한 해석은 ?구사론? 「수면품」에서 복합어인 欲貪隨眠
(kāmarāga-anuśaya)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AKBh
277,19-279,4 참조.
20 특집 / 욕망과 행복
불렀다.39)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관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인지적 성격을 가진 번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고 이에 따라 그것
을 대표하는 자아의식의 부정적 성격이 강조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런 특징이 대승불교 유식학파에서 두
드러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아의식과 관련해서 유식학파는 인집에
대한 새로운 확장된 해석을 제시했다.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자아
관념이 고통이나 다른 번뇌의 생기를 위한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는 점이다. 여기서 자아관념이란 유신견(有身見, satkāya-dṛṣṭi)을 가
리킨다. 원래 초기경전(MN I 299)에서 satkāya는 5취온으로서 이해되
고 있고 어떤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변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유신견이란 5취온으로서의 신체가 항상적으로 또는 단
일체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으로 이런 관념이 5취온에 대해 자아(我)
와 자신에 속한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40) 그러므
로 유신견은 5취온을 자아나 자아에 속한 것으로 보는 아견과 아소
견으로 이루어졌다. 아견은 각각의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자아라고
보는 5종의 관점으로서, 그리고 아소견은 각각의 5온에 대해 “5온은
자아를 갖고 있다”, “5온은 자아에 속한다”, “5온 속에 자아가 있다”
고 보는 등의 15종의 견해로 설명된다.41)
그렇지만 ?유가론?은 이러한 전통적인 설명을 넘어 유신견에 핵심
적인 중요성을 부과했다. ?유가론?에서 유신견이 모든 見의 성질을
가진(見性) 번뇌의 근거이며 근본이라고 하는 사실이 반복해서 지적
되고 있는데,42) 이는 유신견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를 보여
39) 현관론(abhisamayavāda)이란 용어에 대해서는 E. Frauwallner(1971) 참조.
40) AKBh 181,20-22 (T 29: 100a1-4).
41) MN I 300; 이 설명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E. Conze(1967: 38)는
Buddhaghosa를 인용하여 ‘5온은 ‘자아이다’고 보는 것은 등불의 빛이 시
각적으로 현현하는 것과 같고, ‘5온은 자아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은 나
무가 그늘을 가진 것과 같고, ‘5온은 자아에 속한다’고 보는 것은 향기가
꽃 속에 있다고 보는 것과 같으며, ‘5온 속에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상자 속에 보물이 있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비유한다.
42) ?유가론? T30: 621c2-3; 626b7-9; 799b14; 841a24-26; 794b25ff; AKBh
461,4; AS 7,9-10.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21
주기 위함이다. ?유가론?에서 유신견에 대한 기존의 설명과는 다른
해석이 처음으로 제시된다. 그것은 유신견을 ‘분별에서 일어난 것(分
別起, vikalpita)’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俱生, sahaja)’으로
구분하는 것이다.43) 분별에서 일어난 유신견은 비불교도들에게 일어
나는 것으로서 ?아비달마잡집론?(ASBh 7.3ff)은 이를 앞에서 설한 5
온에 대한 20종의 자아의식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구생의 유
신견은 일반인이나 모든 동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설
명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생득적인 것으로서, 동물이건 성자이건
태어날 때부터 갖춘 것으로서 파악되고 있는데, 그런 한에 있어 구생
의 유신견은 쉽게 잠재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서 간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잠재성에 의거하여 유신견에 견의 성질을 가진 모든 종
류의 번뇌의 근본이라는 역할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재성으로서의 유신견의 도입은 직접적으로 유부 교학과의
충돌을 의미했다. 유부의 확정된 교리에 따르면 유신견은 예류과를
얻기 이전에, 즉 성자의 단계 이전에 소멸하는 것이다. 유부에 따르
면 모든 인지적 성격을 가진 번뇌는 4성제를 봄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 어두운 밤에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해서 생겨난 그릇된 인식은
밝은 낮에 이를 올바로 관찰함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듯이, 잘못된 인
식은 올바른 인식이 생겨날 때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
된 인식으로서의 유신견도 4성제를 올바로 이해했을 때, 좀 더 구체
적으로 말하자면 고제의 인식에 의해 바로 소멸하게 된다. 이는 유신
견을 오하분결(avarabhāgīya-saṃyojana)이나 3결의 하나로서 예류(豫
流, srotaāpatti), 즉 성자가 되기 직전에 단해진다고 하는 이론으로 확
정되고 있다. 그런데 유식의 주장처럼 다른 견의 근본으로서의 유신
견의 근원적 염오성이 인정된다면, 유신견이 이미 소멸했을 때 어떻
게 이들 견이 유신견 없이도 존속할 수 있는지가 의문시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 문제는 성자에게도 자아의식이 있다고 설하는 ?케마
43) ?유가론? T30: 621b7-10. 양자의 구분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Schmithausen(1979)
참조.
22 특집 / 욕망과 행복
카경?(Khemakasutta, SN III 128)44)과 같은 초기경전의 설명을 고려
했을 때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성자에게는 자아의식이 존재하지 않
는다고 간주하는 유부의 확정된 교설과 이를 인정하는 ?케마카경? 사
이의 모순은 전통적 유부교학의 범위 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였다. 유식학은 앞에서 설명한 은-현(隱-顯)의 모델에 따라 표층적 자
아의식과 심층적 자아의식을 구분하고 후자를 일체 번뇌의 근원으로
보았다. 성자에게도 존속하는 심층적인 자아의식이 이제 핵심적인 번
뇌지로서 의식되게 되었다.45) 따라서 잠재적이고 심층적인 자아의식
은 일회적인 사성제의 관찰로서는 제거되지 않으며, 다만 반복적인
사성제의 관찰, 즉 견도의 단계를 넘어 수도(修道, bhāvanā-mārga)의
단계에서 제거되는 것으로 파악되게 되었다. ?유가론?은 이를 자아의
식이 ‘불분명’(不分別, anirdhārita)46)하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이유로 자발적이고 정서적인 자아의식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뿌리깊
게47)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44) 케마카 비구는 5온이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깨닫고 있
지만 또 오하분결을 제거했지만 [따라서 스스로 有學位의 성자에 속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아라한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는 아직 “나는 ∼이다”라는 미확정한 형태의 애착이나 자아의식, 잠재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SN III 128: api ca me ... pañcasu upādānakkandhesu
asmīti avigataṃ, ayam aham asmīti ca na samanupassāmi. 130: kiñcāpi
... ariyasāvakassa pañc’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nti,
atha kho assa hoti yeva paňcasu upādānakkandhesu anusahagato asmī ti
māno asmī ti chando asmī ti anusayo asamūhato (Schmithausen 1987: n.
918의 텍스트 교정에 따라 인용).
45) 이것은 ?집론?에서 俱生(sahaja)의 유신견의 존재가 ?크세마카경?을 경증
으로 하여 설명되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46) 이 단어가 俱生(sahaja)의 유신견을 지시하며, 또한 구생 개념이 견소단
이 아니라 수소단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Ahn(2003), p. 170,
각주 28 참조.
47) ?유가론?에서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naiḥsargika(任運失念: “저절로, 주의
력이 산실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Ahn 2003: 62ff. 및 172 각주 32
참조).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23
4. 존재요소에 대한 집착(法執, dharma-grāha)으로서의 자아의식
위에서 보았듯이 ‘홍길동’이라는 개아는 5온의 구성체로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유식학파는 이런 자아의식의 잠재적 측면의
발견을 통해 그것의 근원적 염오성을 주장했다. 비록 그것이 염오적
측면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개아로서의 자아관념과 관련된다는 점에
서 인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인집을 넘어 유식학파는 개아를
구성하는 존재요소(법)로서의 5온 조차도 명칭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법아의 반대항으로서의 법무아의 내용이다. 유
식학파에 따르면 이런 법집 관념의 형성에는 ?전법륜경?에서 말하듯
갈애와 같은 정서적 욕망보다는 사유의 분별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
행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유의 분별성이 정서적 욕망에 앞서 자아
관념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자.
분별성이 자아의식의 형성에 결정적이라는 주장은 유식에 의해 처
음으로 설해진 것은 아니다. 앞에서 ?밀린다왕문경?의 설명에서 보았
듯이 일차적 존재와 이차적 존재의 구분에 있어서도 개념적 허구성의
여부는 핵심적인 지표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런 개념성이 모든 존재
에까지 확대, 적용된 것은 반야경과 용수전통에서였다. 제법의 무자성
과 공성을 주장하는 중관학파의 반실체주의적 관점에서 번뇌의 존재
론적 성격은 철저히 부정되었다. 모든 것이 자체적 본질을 갖지 않고
따라서 공하다면, 모든 심리적 요소도 자체적 본성이 결여하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공할 것이다. 중관파는 번뇌의 본성도 무자성이고 공
하다고 하는 관점을 철저히 밀고 나갔다. 이러한 중관의 관점은 ?중
론? 16장 「관전해품(觀縛解品)」에서 아비달마의 실체론적 사고에 대
한 비판을 통해 잘 나타난다. 여기서는 결박과 해탈이 성립할 수 없
음을 서술한 것으로 그 이유는 「관거래품」의 논지와 같이 매 순간
생멸하는 사태에 어떤 고정된 관념을 적용시킬 수 없다는데 있다. 이
미 지나간 결박은 [현재의] 결박이 아니며, 미래의 결박도 [현재의]
결박이 아니며, 현재의 결박도 [주하지 않으므로] 결박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결박이 없다면 그 반대항인 해탈도 성립할 수 없는 것
24 특집 / 욕망과 행복
이다. 따라서 윤회와 열반은 단지 일상적 언어용법에 따라 사용된 것
일 뿐이다. 언어적으로 표현(=가설)되는 한에 있어 모든 것은 세속제
의 영역에 귀속된다고 보는 중관학파의 해석에서 언어와 개념으로 이
루어진 세계는 사실은 분별의 소산으로서 어떠한 자기존재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유식학파는 분별이 모든 윤회세계의 일차적 원인이라는 ?반야경?
의 관점을 계승하면서, 이러한 분별(vikalpa)이 명칭(nāman)과 대상
(nimitta)과 관련하여 어떻게 잘못된 이해를 일으키며 따라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최초기 유식논서인 「보
살지」는 ?전유경(轉有經)?의 다음 게송을 인용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명칭에 의해 이러저러한 요소가 명언되고 있지만,
그것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네. 실로 이것이 제법의 법성이라네.48)
「보살지」는 위의 ?전유경?의 문장을 인용한 후에, 이러한 명칭과
대상 및 그것에 대한 분별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며, 또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제거될 수 있을지를 4심사와 4여실변지의 항목에서 논하고
있다.49) 유식에 따르면 이것은 대상과 명칭의 관계를 우연적인 결합
으로 고찰함에 의해 모든 세간적인 언설과 그것의 의지처이며 대상인
사태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그 사태를 수반하는 분별을 소
멸시키려는 것이다. 이 분별의 소멸이 희론(戱論, prapañca)의 소멸이
며, 희론의 소멸은 곧 대승의 반열반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럼 「보살
지」의 설명을 보자.50)
4종 심사와 여실변지는 8종 분별(分別, vikalpa)을 제거하기 위한
48) BoBh(W) 48,12f.: yena yena hi nāmnā vai yo yo dharmo 'bhilapyate //
na sa saṃvidyate tatra dharmāṇāṃ sā hi dharmatā //.
49)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수행법이 어떤 샤마타의 수행도 전제하지 않는다
는 점이다. 비록 이 수행에 의해 획득되는 단계가 가행위로서 설정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사물에 대한 관찰과 올바른 인식만이 요청되고 있을 뿐
샤마타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50) BoBh(W) 51, 21-55, 3; 「보살지」 489c9-490b1.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25
것이다. 4종 심사란 명(名, nāman), 사(事, vastu), 자성가립(自性假立,
svabhāva-prajñapti), 차별가립(差別假立, viśeṣa-prajñapti)를 잘 조사하
는 것이고,51) 4종 여실변지란 이들 4심사를 여실하게 관찰한 결과이
다. 8종 분별이란 일체의 중생세간과 물질세간을 낳는 것으로서 자성
(自性)분별, 차별(差別)분별, 총집(總執)분별, 아(我)분별, 아소(我所)분
별, 애(愛)분별, 비애(非愛)분별, 구상위(俱相違)분별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자성분별이란 ‘이것은 물질이다’라는 파악과 같이 어떤 것
을 어떤 자성을 가진 것으로 확정하는 방식의 파악이다. 차별분별이
란 ‘이것은 물질의 소멸이다’ 등과 같이 물질의 성립과 소멸 등에 대
해 다양하게 언어적으로 확정짓는 방식이다. 총집분별이란 어떤 것을
단일체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들 세 가지 분별은 분별과 희론을 토
대로 하고 대상으로 하는 사태(vastu)를 낳는다. 반면 ‘이것은 나이다’
라는 아분별과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아소분별 양자는 유신견과
아만이라는 사태를 낳으며, 마지막 세 가지 분별은 탐ㆍ진ㆍ치라는
사태를 낳는다. 그리고 그 관계는 분별과 희론을 토대로 하는 사태가
유신견과 아만이라는 사태의 근거가 되고, 이것은 다시 탐ㆍ진ㆍ치라
는 사태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런 파악에 따르면 적어도 전통적 방식에서 고통의 원인으로 간
주된 탐욕 내지 탐ㆍ진ㆍ치가 아견과 아만에 근거하고 있다는 설명이
된다. 그리고 아견과 아만은 사물이 자성적으로 독립된 실체로서 존
재하고 있다는 분별작용에 근거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사물이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파악 자체가 법아로서의 미세한 자아의식
이며, 이것은 바로 분별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간주되고 있다. 유식에
51) 「보살지」에 따라 4종 심사를 간략히 설명하면, 名심사란 명칭에 대해 명
칭만이라고 보는 것이며, 事심사란 事에 대해 사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자성가립심사란 ‘이것은 색이다’ 등으로 제법의 자성이라고 언어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조사하는 것이고, 차별가립심사란 제법을 有色ㆍ無色 등으
로 차별한 것에 대해 언어적으로 차이가 표현되었다고 조사하는 것이다.
명칭과 사태가 분리된 모습과 결합된 모습을 인식한 후에, 명칭과 사태의
결합에 의존한 것이 고유한 모습과 차별적 모습으로 가설된 것임을 이해
하는 것이다.
26 특집 / 욕망과 행복
따르면 사물을 독립적 존재라고 파악하는 ‘분별적’ 인식은 명칭을 대
상과 동일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명칭과 대상의 동일성 여부의
논의는 유식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였고 「보살지」를 위시한
「섭결택분」의 소위 <五事章>52) 등에서 상세하게 취급되고 있지만,
여기서 이를 다룰 여지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법아로서의 자
아의식이 명칭과 대상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으로 충분할 것이다.
Ⅳ. 결 론
고통의 원인에 관한 불전의 설명은 다양하지만, 이를 후대의 교의
에 따라 도식화시키면 번뇌와 업이라고 설해진다. 그렇지만 문헌에서
상위범주로서의 번뇌는 핵심교의와 관련하여 구분하여 제시되고 있
다. 그들 중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개념이 갈애와 무명, 자
아의식으로서의 아견(我見)이다. 갈애는 사성제의 맥락에서 제시되었
고, 무명은 12지 연기의 맥락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자아의식은
소위 현관론(abhisamayavāda)의 맥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
다. 본고에서는 이들 세 가지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가
를 설명하면서, 특히 자아의식이 점차 염오의 근원으로 간주되어지는
이유에 대해 세분해서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해 보자:
?무아상경?에서 무상-고-무아의 방식으로 5온에 대한 분석적 관찰
이 제안되었다. 개아의 구성요소를 심적, 물질적 요소로 환원하고, 이
를 다시 무상하고 따라서 고통스러우며 따라서 자아라고 부를 수 없
52) <五事章>은 바로 「보살지」 「진실의품」에서의 언어와 대상 및 진실존재와의 관
계를 相(nimitta), 名(nāman), 분별(vikalpa), 眞如(tathatā), 正智(saṃyagjñāna)
의 다섯 개념을 갖고 논의하는 부분으로, 유식 논서 중에서 가장 상세하게 이
문제를 주제화하는 개소이다. 이 개소에서 다루어지는 논의의 중요성은 쫑카파
의 Legs bshad snying po의 「유식장」에서 명칭과 대상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서 상세히 분석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 개소의 연구에 대해서는
Kramer(2005), 高橋晃一(2005), 안성두(2007), 정유정(2010) 참조.
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27
다는 방식으로 관찰함을 통해 자신의 개체존재, 즉 5온이 자아나 자
아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5온과 자아를 비동일시함
에 의해 자아에 대한 갈애의 근거를 박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초기
불전의 이러한 설명은 후대에 인집과 법집으로 구분되게 되었다. 개
아에 대한 집착으로서의 인집을 ?밀린다왕문경?에서의 수레의 비유를
통해 설명했고, 이 인집이 미세하고 잠재적인 자아의식의 발견으로
인해 점차 세분되어 감을 수면(隨眠) 개념의 설명을 통해 제시했다.
이 ‘수면’ 개념을 자아관념과 관련시키면서 ?유가론?은 유신견을 분
별기와 구생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존재요소에 대
한 집착으로서의 법집이 가진 의미와 그것이 대상과 명칭의 동일성에
서 생겨난다고 하는 사실을 「보살지」의 설명을 통해 보여주었다. 어
떻게 명칭과 대상의 동일시가 생겨나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고,
또 불교철학의 유명론(nominalism)적 경향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것
이지만, 이는 본고의 서술범위를 넘어서기에 다른 기회에 다룰 것이다.
안성두
서울대학교
28 특집 / 욕망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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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욕망과 자아의식 31
ABSTRACT
The Problems of the Craving and the Belief in
Self in Buddhism
Ahn, Sung-Doo
The explanations of causes of the suffering in the Buddhist texts
are so diverse that it is difficult to enumerate them all in a short
paper. However, according to the Abhidharmakośa, a famous
philosophical treatise in the fifth century CE, these causes can be
classified into the two concepts of kleśa and karma. Whereas the
latter is secondary in the sense that it forms only the conditions for
the living being the former is regarded as the decisive factor for a
samsaric existence itself.
In the present paper, I choose, among many synonyms of kleśa,
three concepts: ignorance (avidyā), craving (tṛṣṇā) and belief in the
self (ātma-dṛṣṭi). These have been explained respectively in the
context of Pratītyasamutpāda, the Four Novel Truths, and
Abhisamayavāda. I have tried to show how these concepts came to
be formulated in their own context.
In this paper, I focus on ātma-dṛṣṭi, which plays a decisive role
in the search for the center of egocentric behavior and intentions. The
concept in question is proposed in the Anattalakkhanasutta for the
first time; there, it was suggested by the Buddha that a person can
be reduced to the five groups of skandha, and these cannot be identified
32 특집 / 욕망과 행복
with the ātman, the unchanging and underlying subject of all experiences,
because of their impermanence and unsatisfactoriness, and eventually
because they are not identifiable with the ātman. Therefore, one can
more easily eliminate the craving for desires such as self and
rebirth. This type of argument is reinforced in the following
para-canonical text of Milindapaṅha.
Subsequently, however, ātma-dṛṣṭi gained additional importance
through the discovery of its subliminal taspect. This was expressed
through the introduction of the concept of the ‘latencies’ (anuśaya)
of the Sautrāntikas. Yogācārabhūmi applying anuśaya to the concept
of ātma-dṛṣṭi, divides the latter into two aspects: the conceptualized
one (viklapita) and innate one (sahaja). These two aspects are
eliminated respectively in the darśana-and bhāvanā-mārga. As far as
the dharma-grāha is concerned, it is shown here to be strongly
related to the identification of name with the object. This theme is
very closely related to Buddhist Nominalism.
Keyword: Suffering, Cause of Suffering, Ignorance (avidyā),
Craving (tṛṣṇā), Belief in Self (ātma-dṛṣṭi),
Latencies (anuś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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