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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신자유주의시대의주체생산과저항가능성에대한연구: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석승혜



[논문요약]
이 연구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예속된 주체로부터 저항적 실천을 강조하는 푸
코와 호네트의 이론을 비교함으로써, 현재 한국사회에 적실한 저항을 모델을 찾
아보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제도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상
과 태도를 지도하는 이념으로서 의미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주체는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상호인정을 망각한 채 물화된다는 점에서 항시 불완
전한 정체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여기서 푸코와 호네트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인간상으로 윤리적 주체를 제시하
지만, 저항의 준거와 계기, 그리고 사회적 연대에 대해서 그 논점을 달리한다. 간
략히 말해, 푸코는 끊임없이 개별화하는 방식으로 권력의 예속화에 저항할 수 있
다고 주장한 반면, 호네트는 이미 주어진 사회 내에서 저항은 그 규범적 기초에
대한 것이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는 무시와 불의의 경험은 더욱
빈번한 저항의 계기와 연대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 학자의 논의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이들이 강조하는 윤리적 주체와는 달리 배려나 정의에 대한 인식이 미약한
탈도덕화(amoral)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둘째, 개인이나 집단은 불의로 인해 손
상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외집단을 폄하하는 손쉬운 전략을 채택할 수 있으
며, 셋째, 사회에 대한 평등이나 공정성의 기대로부터 비롯되는 신뢰의 하락은 보
편적 연대가 아닌 비도덕적 가족주의와 같이 내집단 편향적인 연대로 전락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이들 학자들이 이미 선진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
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분배문제를 제외하고 인정문제를 다루는 것에는 한계
가 있다.


주제어 : 인정, 물화, 저항, 사회적 연대, 신자유주의
354 사회사상과문화


I. 문제 제기: 왜 푸코와 호네트인가?
오늘날의 사회갈등은 물질적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인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갈등의 양상도 점차 다중화ㆍ혼성화 되어 가고 있
다(김문조, 2013; Hirschmann, 1995). 다수의 학자들은 1980년대 초부
터 풍요와 복지의 자리에 궁핍과 위험이 모습을 드러내고, 전 지구
적인 차원에서 구조적 변화를 보인다는 점에서 ‘다른 근대’가 시작
되고 있음을 예견하였다(Giddens, 2014; Beck, 2006: Bauman, 2010;
Stiglitz, 2014). 이들은 현대사회의 진행 과정을 지구화와 개인화로
요약하는데, 지구화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무력화하고 경제자본의 잠
식과 위험을 말한다면, 개인화는 그러한 위험의 책임을 오로지 개인
이 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가운데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시장 실패를 비판하며
자유시장 원칙으로의 전환을 내세우며 등장하였다. 그리고 신자유주
의 원칙은 단순히 ‘제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바
람직한 인간상과 행위 패턴을 지도하는 ‘이념’으로 확장되고 있다(김
홍중, 2009). 다시 말해, 사회의 모든 국면에 시장의 원리인 경쟁 메
커니즘이 구축되고, 개인은 이를 내면화한 경제적 주체로 변형된다
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적 주체란 자신이 생산을 위해 팔 수 있는 노동력으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특기나 적성과 같은 능력자본을
소유한 일종의 기업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Sennrtt, 2004; 2006;
요시유키, 2012; 2014). 현대사회에서 개인화가 경제적 요구에 따라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지 결코 개인의 독특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분명하다.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일명 ‘스펙 쌓기’에 몰두하지만, 기업은 이들을 값싼
임금으로 손쉽게 활용하고 교체하는 현상이 다반사이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55


불구하고 개인은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질문은 회피
한 채, 그 원인을 자기 노력이나 능력의 부족으로 귀속시키고 만다.
나아가 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사회적 지위 사다리에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으로 오인하며 반론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현대의 불안과 희망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사
회체계를 자유로 착각하고, 그러한 억압을 욕망하는 것이다(Spinoza,
2015; 정정훈, 2011).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예속된 주체로부터 저항을 실천하는 수행
적 주체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가? 즉,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인 비판을 거부한 채 경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무한 질주하는 개
인들로부터 어떠한 저항의 계기와 연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연구는 푸코와 호네트의 주
체 생산과 저항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에
적실한 저항의 모델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푸코와 호네트인가? 지금까지 사회갈등은 자
원 분배와 관련되면서, 이로 인한 갈등은 보편주의적 원칙 하에서
분배의 범주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차이의 문
제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졌고, 새롭게 등장하는 불평등의 정
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답적 논의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다수의 학자들의 논의에서도 나타나며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Midgley, 1995; WelzelㆍInglehartㆍKligemann, 2003; Honneth, 2011;
Taylor, 1992).
이에 반해, 푸코와 호네트는 현대 사회비판을 경제구조보다 좀
더 심층적인 차원인 ‘권력’과 ‘인정질서’에 두고 있다. 푸코는 신자
유주의의 통치성을 개인의 생명과 실존의 문제까지 경제적인 것으
로 치환하는 데에 있다고 보며, 호네트는 물화의 심화로 인해 모든
인간관계가 인정을 망각한 채 도구화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한
가운데 두 학자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인간상으로 윤리적 주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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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하며, 이를 통해 권력의 통치성과 왜곡된 인정질서로부터 저항
가능성을 찾고자 하였다. 이는 기존의 자본환원론적 시각에서 지나
치게 축소되었던 주체의 의미를 복원하고, 불평등에 대한 분배적 정
의에 고착되어 온 한계로부터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의 탐색이라는
점에서 좀 더 진전된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푸코와 호네트는 서로 다른 학문적 전통 위에서 성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배경 지식들을 생략한 채, 동일선 상에서 비교하
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그간 푸코
와 비판이론에 대한 비교연구는 대부분 양자의 차이와 대립을 부각
시키는 데에 집중하여 왔음을 지적하고, 주체의 해방과 자유라는 관
점에서 두 이론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문성훈, 2010; Butler, 2002; Thomson, 1999).
논의의 초점을 간략히 정리하면 첫째, 푸코의 통치성은 스스로를
규율하는 주체로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정의는 이미
통치성의 행사 이전에 자유로운 주체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
한다. 즉, 자유로운 주체들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특정한 주체로 내
면화하고 규율화하는 통치성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
이 자유로운 주체를 인정한다면,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는 ‘권력 관
계’뿐만 아니라 ‘상호주관적 인정관계’를 상정할 수 있다(Thomson,
1999).
둘째, 푸코가 새로운 주체 모델로 제시하는 윤리적 주체는 미학
적인 삶의 완성을 지향하는 주체이다. 이때 미학적 완성은 고립된
주체가 아닌 스승이나 동료라는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윤리적 주체의 형성은 주관적인 만족에 국한되지
않고, 타인과 공유할 있는 소위 ‘공감’의 맥락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비판이론과 접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Teichert, 1992: 25; 문성훈,
2010: 177).
이같이 두 학자의 이론들의 접합 가능성을 바탕으로, 최근 버틀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57
러(Butler)나 문성훈 등의 학자는 푸코의 이론을 호네트의 인정질서
의 틀 속에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버틀러(Butler,
2002)는 푸코의 권력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주체로 만들어지는가
를 보여주지만, ‘왜’ 주체화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시키지 못
했음을 지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틀러는 ‘권력이 인정의 원칙
에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권력은 주체가 사회적 존재임을
보장하는 규칙을 부과하고, 개인이 이러한 규칙을 통해 인정을 획득
함으로써 사회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권력이 통제나 금지의
기능만을 한다면 스스로 주체화할 이유가 없지만, 권력은 주체에게
사회적 존재임을 보장하는 범주와 진리의 법칙을 부과하기 때문에
주체들에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의 권력이론이 생산
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자 한다면 인정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도
입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문성훈(2010)은 미셜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에서 푸코의 권
력 개념을 ‘진위 게임식의 인정질서’라는 호네트의 용어로 등치하고
있다. 푸코가 지적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임의적인 권력행사의 결과이며, 여기서 푸코가 진정으로 저
항하고자 했던 것은 도구적 이성 자체가 아니라 도구적 이성이 자
아 형성의 특권적 원칙으로 삼는 사회적 인정질서에 있는 것이다(문
성훈, 2010: 10). 따라서 푸코의 권력 개념은 호네트의 인정질서라는
개념에 포섭될 수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라는 특정 맥락에서 수많은
갈등과 억압의 도덕적 핵심을 드러내는 호네트의 작업과 일치한다
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저항’을 중심으로 푸코와 호네트의
이론을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다. 호네트는 자신의 인정투쟁 이론이
푸코의 투쟁 이론과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을 결합한 산물임을
밝혔지만, 이들 이론의 결합 가능성 이전에 양자 간의 저항에 대한
논의의 차이점과 호네트에 의한 확장 지점에 대해 알아보는 작업이
358 사회사상과문화
우선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우선, 푸코와
호네트가 비판하는 현대사회의 주체 생산 방식과 주체상에 대해 살
펴보고, 다음으로 푸코와 호네트가 각각 고대 그리스시대와 인간발
달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주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런 다음, 현대 사회의 주체에서 새로운 주체로의 수행 가능성에
대한 두 학자 간의 논의를 각각 저항의 준거, 저항의 계기,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차원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
국사회의 변화 양상에서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유효한지 알아보고
자 하였다.
II. 푸코의 주체 생산에 관한 논의
1. 현대의 주체 : 권력에 의해 훈육된 주체
푸코에게 주체는 지식과 권력에 의해 수동적으로 형성되는 존재
로 다루어졌다. 역사적 맥락에서 권력은 끊임없이 지식을 이용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권력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주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 형성 과정에서 개
인의 개별성과 자율성은 철저히 배제되지만, 개인은 이러한 권력의
전략을 인지하지 못하며 스스로 보편적 인간상을 내면화하게 된다
(Foucault, 2011; Poster, 1990; Dean, 1994; 도승연, 2013).
이같이 푸코는 권력분석에서 타자 지배의 테크놀로지가 자기 지
배의 테크놀로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는데, 이를 연결
하는 핵심 개념이 ‘통치성(governmentality)’이다. 푸코에 따르면, 통치
성이란 특정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사물을 배열하는
기술 혹은 사람들의 행동을 조성하고 행동방식에 영향을 행사하면
서 이를 합리화하는 전략이다(Foucault, 2007: 98; Lemke, 2001; 2002).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59
기술과 전략으로서의 통치성은 개인이 국가나 기관, 혹은 타인과 맺
는 관계가 권력 관계로 경직되고 고정되면 행사되는 지배
(domination)와 달리, 인간의 신체나 안전을 관리․보호하는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개인의 자기규정과 행동 목적과 방식을 지도
하고 통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근대의 자유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안전과 행복은 국가의
관리 대상이며 출산율이나 사망률, 전염병 이병률, 주택보급률 등으
로 측정되어 다양한 사회보험제도와 주택정책에 반영된다. 이는 개
인의 신체, 삶의 형태, 행복과 같은 영역이 사회적인 것으로 관리된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국가에서 통치성이란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장
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특수한 형태
로 권력의 행사를 가능케 하는 제도, 절차, 분석, 계측, 전술의 총체’
라고 할 수 있다(Foucault, 2011: 162, 홍태영, 2012).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파시즘이나 복지국가의 재정 파탄과 같은
통치의 과잉에 따른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위기에서 국가는 경
제 혹은 경제성장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으며, 경제적인 것
이 정치적 주권을 생산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로 전환되었다(요시유
키, 2014: 22~25). 이는 복지국가에서 창출한 사회적인 것이 축소되
고 모든 국면에서 시장 혹은 경쟁 체제를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것
이다. 여기서 개인은 다양한 서비스와 사물들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방임되지만, 개인의 욕망은 최종적으로 집단의 이
익으로 수렴하게 된다(Foucault, 2008: 226).
요컨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은 주권자의 실질적 지배나 정부의
적극적 통제나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이른바 호모 에코
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불리는 기업가적 정신을 가진 개인을
호명함으로써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예를 들어, 개인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신용평가로 등급이 매겨지며, 사회에서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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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상품으로 스스로를 개발ㆍ관리하는 자기 테크닉과 윤리를 구
성한다.
이같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경쟁이라는 사회적 모델에 따라 사고
하는 것은 자기실현, 자율, 자기주도, 책임, 위험감수 등과 같은 새
로운 규범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삶을 대하고 변형시키
도록 한다. 여기서 국가는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양극화나 실업과 같
은 파괴적인 효과에 개입하지 않으며, 경쟁적 메커니즘의 규제자로
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요시유키, 2014: 41~42). 마치 개인들에게
직접적인 권력이 작동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이지만, 권력은 더욱 세
심하고 면밀한 방식에서 개인의 위험과 일상의 문제를 관리해 갈
권한을 부여받는다(신충식, 2010; 도승연, 2013).
이상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는 새로운 통치성에 의해 규율
화된 순응적 존재이다. 이러한 주체로부터 푸코는 근대 국가 이후에
지속되어 온 통치성의 역사를 거슬러,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서
새로운 주체상과 주체화 방식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현행 주체의 형식을 상대화하기 위해서이며,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
로 주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새로운 주체 모델 :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윤리적 주체
푸코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권력이 주체를 예속화하는 과정
을 분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 이전의 다른 주체 형성의 원
리를 찾고자 하였다. 현대 주체의 예속화가 규율이나 시장원리와 같
은 통치성에 따라 훈육된 주체라면, 그러한 통치성이 발휘되기 이전
의 시기인 고대 그리스로부터 새로운 주체의 원형을 발견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고대 그리스 시대 주체는 진리에 이르기 위해 자
기구축을 삶의 중심 문제로 설정하고, 자기배려의 원칙을 통해 완성
해 가는 존재이다. 이때 자기 구축은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61
경제적 인간이 되기 위해 자기를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
을 미학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해 나간다는 점
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일종의 주체형성의 방법으로서 자기배려(le souci de soi)란 말 그대
로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는 성이나 가정관리, 우정에 이
르기까지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성찰과 훈련을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변형시키는 과정인 것이다(Foucault, 2004: 268). 좀 더 구체적
으로 말하면, 개인의 자아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성적 욕망이 전제될
뿐 무규정적 존재이며, 따라서 개인의 자아는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다.
예컨대, 쾌락의 활용에서 개인은 무절제하게 성적 쾌락을 추구하
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고 제한하면서 자율적인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성행위는 신체를 장으로 자기와의 관계를 맺는 작업
이며, 쾌락을 지배하는 것은 자기배려를 의식적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배려는 생활의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 하에서 자기를 양성하고 교정하는 중요한 자기 기술인 셈이다
(심세광, 2011; 도승연, 2007).
자기배려를 통한 자기 변형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정한 진리에 도
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변형은 니체1)가 말하는 ‘자신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일’과 상통한다(Callinicos, 1991). 예술작품으로
서 삶은 낭만주의적 전통에서 현세를 초월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상정하고, 이러한 예술작품처럼 자신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
은 자신에게 일종의 스타일을 주는 것이며, 자신의 삶을 직접 만들
1) 푸코에게 니체가 미친 영향은 빼놓을 수가 없는데, 자기변형은 니체의 자기완
성(self-creation)에 상응한다. 니체에 따르면, 자기창조는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되
어야 할 당위이므로 인간의 자아는 언제나 생성(becoming)의 상태에 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주는 것’은 하나의 위대하고 진기한 예술(art)
이라는 것이다(Nietzsche, 1988).
362 사회사상과문화
어 감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신을 미학적 존재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 오직 개인의 결단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며, 이는 신이나 법, 과학적 진리의 기준에서 자
신을 만들어 나가는 현대의 개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존재적 미학은 소극적인 의미가 아닌 적극적 의미
에서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형성하려는 실천이다. 또한 그것
이 부부, 동료, 공동체 내의 관계 속에서 쾌락을 통제하고 자신을
완성해 간다는 점에서 윤리적 주체를 요구한다.
푸코가 제시하는 새로운 주체는 분명 윤리적인 주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윤리적 주체가 어떻게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을 내포하는가?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주체는 재기배려를 통해 자기와의 관계 속에
서 변형됨으로써 단일한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기배려는 국가나 제도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권력의 개
별화 방식, 즉 권력과 맺고 있는 기존의 관계맺음 방식을 바꾸는 것
이다.
인간은 데카르트의 시간 이후부터 스스로를 인식의 대상으로 전
환시키면서 자기배려의 기술을 상실해 왔다(Foucault, 2007). 자신의
대상화는 곧 자기배려의 기술을 잃어버리며 예속화되어 가는 과정
이다. 따라서 자기배려 기술의 복원은 국가나 제도의 전복이 아닌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통치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근원적
인 방안인 것이다.
III. 호네트의 주체 생산에 대한 논의
1. 현대의 주체 : 자본주의 심화에 따라 물화된 주체
지난 세기 동안 마르크스가 상품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를 거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63
론한 이후, 많은 학자들은 자본주의적 교환경제가 인간들의 관계에
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음에 동의하였다(Simmel, 1991; Weber, 2010).
그 가운데 루카치는 자본주의의 확산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
을 물화시킨다는 주장을 넘어서,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한 단계 높은 주장을 하
였다(이문수, 2012; Luckacs, 1999). 이에 호네트는 루카치의 물화에
대한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대의 주체 생산 방식을 설명하
고자 하였다.
루카치는 물화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물건과 같은 성격을 띠
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물화의 사회적 원인을 자본주의의 상품교환
양식이 상호주관적 행위의 지배적인 형식으로 확장되는 데에 있다
고 보았다(Honneth, 2005: 25). 주체들은 경제적 거래에서 사용가능성
이라는 관점 아래 타인을 지각하는 동시에 자신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에 따라 물화는 인지적 왜곡을 넘어서 행위의 영역에까
지도 영향을 준다. 즉, 주체는 갖가지 사태와 사건에 대해도 ‘관조’
와 ‘초연함’이라는 방관자적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관조는 수동적 관찰자의 태도를 의미하고, 초연함은 행위
자가 행위결과에 감정적으로 감응되지 않고 무관심하게 방관하며
사건을 스쳐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물화는 모든 사람들의 고
정된 행동 습관으로 이행되어, 인간의 제2의 본성이 되고 만다. 그
러나 루카치는 물화된 행위 양식에 대해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은
아니라고 보는데, 왜냐하면 방관자적 태도는 인지의 왜곡으로 나타
난 사회적 사실일 뿐이지 도덕적 부당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Honneth, 2005: 29).
호네트는 이러한 물화에 대한 루카치의 주장은 물화의 근본 원인
으로 자본주의 상품교환이라는 경제적 영역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실제 물화를 인지적, 도덕적, 실천적 차
원을 구분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모든 전략적 행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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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물화된 것으로 과도하게 해석한다고 보았다. 가령, 개인이 다
양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서 전략적 상호작용은 효율성이라는 측
면에서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는 것이지 물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루카치의 물화 개념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
은 ‘물화가 인지나 진정한 실천에 대한 왜곡’이라고 규정지어진다는
점이다(Honneth, 2005: 30~32). 이는 이미 인지가 왜곡된 주체는 어
떤 경험을 통해서도 올바른 실천에 대한 내적 자각에 도달할 수 없
다는 것으로, 새로운 주체로 전환될 계기를 발견할 수 없게 한다.
이에 대해 호네트는 근대 이후에 인지모델이 구축되는 과정은 주
체와 객체의 대립 속에서 정립되었음을 지적한다. 앞서 푸코가 지적
한 바와 유사하게, 코기토의 명제는 인식의 대상으로써 나라는 객체
를 분리할 것을 강요하며, 여기서 주체는 객관적으로 인지된 지식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주관적 의
식을 통해 대상에 관한 객관적 인식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으려면,
주관적 의식과 객관적 인식을 연결할 수 있는 매개항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2) 즉, 대상에 대해 주체가 실존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지
점이 필요하며, 이를 호네트는 상호주관적 인정이라는 보았다. 그는
주체가 물화된 상태로부터 내적 자각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지에 선
행하는 인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인지적 왜곡에
도 불구하고 특정한 경험 속에서 인정 욕구는 자각되며, 이를 통해
2) 데카르트의 주관–객관의 이원론적 인식모델은 주관적 의식은 객관적 인식을
통해 획득된다고 전제된다. 즉, 의식으로 활동하는 주관을 대상과 독립되어 있
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인데, 이는 인식의 객관성을 둘러싼 딜레마를 초래한다.
만약, 객관적 인식을 대상 그대로의 앎이라고 할 경우 의식은 대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존재기 때문에 우리는 대상으로부터 어떠한 앎도 얻지 못한
다는 것이며, 의식이 대상과의 접촉과정에 개입된다고 할 경우 순수하게 객관적
인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이원론적 인식모델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주관성과 대상인식의 객관성을 연결할 수 있는 매개항이 필요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65
물화로부터 초월적 주체의 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호네트는 물화를 한마디로 ‘인정의 망각’으로 정의한다(Honneth,
2005: 49). 우리는 인식이 그에 선행하는 인정으로부터 나왔다는 사
실을 망각하면서 물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듀이나 아도르노와 같은
학자가 인간의 반성적 사고가 질적인 상호작용의 경험, 혹은 사랑하
는 대상과 자신의 근원적 연결에 대한 의식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기원을 망각하면서 병리화의 위험에 빠진다는 주장들과 맥
을 같이한다(Adorno & Horkheimer, 2002).
앞서 루카치가 물화를 자본주의 시장의 확대로 인한 인지의 왜곡
이 방관자적 태도로 연결된다는 일련의 물화 과정과 달리, 호네트는
인정과 인식간의 복합적 관계에서 물화가 인정의 왜곡 혹은 망각으
로 진행된다고 보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인정 망각을 ‘영원
히 사라진다.’는 강한 의미보다는 ‘주의력 약화’라는 다소 약한 의미
로 사용함으로써 인정에 대한 사고는 특정한 상호주관적 경험을 통
해 되살아날 수 있음을 내포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인정 망각의 원인은 특정 목적에만 지나치
게 열심히 추구함으로써 근원적인 동기나 목적(인정)에 대한 주의를
상실하는 데에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우리 사회의 편견이나 이데올
로기, 신념체계 등과 같은 외적 강제로 인해 인정에 대한 주의력이
약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인정은 목적 지향적인 자세가 일면화되는
경우 망각에 처하며, 사회에서 강제되는 사고 체계에 의해 인정은
부정될 수 있다(Honnethe, 2005: 70~71).
이와 같이 인정이 인지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물화가 인지의 왜곡
이 아니라 인간 발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내재된 인정을 망각함으
로써 일어나는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호네트는 물
화의 개념이 진정한 인간적 실천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규범적
함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반박한다. 즉, 물화는 단순히 주체들
의 인지를 넘어서 실천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이미 윤리의 문제가
366 사회사상과문화
된다는 것이다.
2. 새로운 주체 모델 : 인간발달 초기의 공감적 주체
자본주의의 심화에 따라 물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면, 그 이
전에 물화되지 않은 주체와 실천의 형식은 무엇인가? 우선 루카치
가 지적하는 물화에 물들지 않은 주체는 대상을 사용가치가 아닌
질적인 독특성으로 체험한다고 본다. 또한 대상에 대해 관찰자적 태
도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체험하고 협력하는 참여자의 태도
이다. 이는 하이데거(Heidegger, 1995)가 말하는 인식 이전에 상대에
대해 ‘마음씀(염려, Sorge)’으로 서로 공감하는 주체를 말한다(Honneth,
2005: 45).
이같이 주체는 상대방의 태도와 행위를 근거로 자신을 이해하며,
또 자신을 상대방의 관점에 세워보면서 사회적 삶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주체가 상황을 체험하는 것은 마찰 없이 조화롭게 상
호작용을 보전하고자 하는 마음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인정은
곧 마음씀과 연결된다고 본다. 나아가 인정은 단순히 주관과 객관을
연결하는 매개항일 뿐만 아니라 인간발달 과정이나 개념적 범주에
서도 시간적으로 가장 우선한다는 점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간
주한다.
호네트는 인정의 우선성을 인간발달 초기에 아이들이 상대의 관
점을 취하는 능력으로부터 발견하고 있다. 상대의 관점을 취하는 것
은 인간발달 및 사회화 연구에서 아이가 인지능력을 획득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Piaget, 1952; Mead, 2009). 아이는 자기와 대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던 것에서, 준거인(양육자)의 관점을 취함으
로써 자신을 대상과 분리시키고 객관적 세계와 관계 맺기 방식을
습득하게 된다.
성공적인 인지발달에는 우선 준거인들과 자신을 정서적으로 동일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67
시해야 비로소 상대방의 관점을 넘겨받는 게 가능하다. 자폐아들의
경우 인지적 결함이 아니라 준거인과 정서적 공감을 발전시키지 못
하기 때문에 타자를 느끼지 못하는 감성적 맹아에 머무르고 만다
(Honneth, 2005: 53). 이렇게 다른 관점을 취하는 것은 대상의 새로운
측면을 인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정서적 열림 혹은 동일시라는
비인지적 전제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인정이 인식보다
개체 발생적 차원에서 우선한다고 본다.
호네트는 개념적 의미에서도 인정이 인식에 우선한다고 보았다.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 1976)의 논의를 빌리면, 개인은 인지적 태
도만으로 타자의 마음에 접근할 수 없다. 더구나 감정 상태는 당사
자에게도 결코 지식이나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도
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의사소통 행위자는 인지적
주체가 아니라 실존적으로 관여된 주체로 간주해야 하며, 이는 타자
의 감정 상태를 중립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감응함으로써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Honneth, 2005:
59-62). 따라서 인간의 의사소통 행위는 타자에 대한 인정이라는 비
인지적 전제가 개념적으로 우선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선행하
는 인정의 형식이 없다면 갓난아이는 자신의 준거인의 관점을 넘겨
받을 수 없을 것이고, 성인은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에서 상대방의 표
현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인정의 우선성에 대한 증명은 주체의 구성이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타자와 상호주관적으로 관계를 맺으
면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기존의 테일러(Taylor, 2001)와
하버마스(Habermas, 2006)는 개인의 주체성이나 정체성 형성은 대화적
으로 진행되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는 면에
서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매개하는 데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런데 자신의 진정성을 표출하는 것이든, 상호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든, 다른 상황적 요소를 배제한 채 언어를 통해 상호인정이 가능하다
368 사회사상과문화
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주장이다(Taylor, 1992; 2001, Habermas,
1984; 2006; 이문수, 2012).
그에 반해 호네트는 주체가 타자와 관계맺음은 언어 이전에 정서
적 유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러한 관계에서 인정 경험은 자기
정체성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체가
완전한 인격체로 형성된다는 것은 오직 타자의 관점에서 특정한 속
성과 능력이 긍정적으로 부여된 존재임이 인정될 때에 올바른 자기
와의 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김기성, 2013; 이홍균, 2005).
이러한 인정경험은 주체가 맺고 있는 여러 차원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확인된다. 사랑의 경험 속에서는 ‘자기확신(Self-confidence)’의
가능성이, 법적인 인정의 경험 속에서는 ‘자기존중(Self-respect)’의 가
능성이, 나아가 사회적 연대의 경험 속에서는 ‘자기가치(Self-worth)3)’
부여의 기회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Honneth, 2011: 282). 현대사회
에서 물화는 이러한 상호인정의 요구들이 쉽게 무시되며, 이러한 인
정의 불충분함은 개인의 완전한 정체성의 형성을 부인한다는 점에
서 도덕적 문제인 동시에 불인정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가 요구되
는 지점이다.
IV. 현대의 주체로부터 새로운 주체로의 수행 가능성
지금까지 푸코와 호네트에게 나타난 현대의 주체와 새로운 주체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훈육된 주체 혹은 물화된
주체로부터 저항의 계기와 새로운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호네트가 푸코의 투쟁 개념을 수용하여 의사소통체계
위에 재정립한 것이 인정투쟁 이론이라면, 푸코의 저항이론의 한계
3)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자기 존중(self-estee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후의
논문(1997)에서는 자기가치를 대신 쓰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69
에서 호네트의 확장적 논의 지점과, 그리고 이들의 저항 이론이 신
자유주의 사회비판에 어떠한 효용이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준거’의 문제 : 배려(Care)의 원칙과 정의(Justice)의 원칙
푸코와 호네트가 각각 고대 그리스시대와 인간발달과정을 분석한
이유는 근대의 주체 생산과 다른 주체의 구성 방식을 발견하기 위
해서였다. 여기서 푸코와 호네트는 새로운 주체의 실현을 초역사적
원리의 정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쾌락이나 인정과 같은 특수한
욕구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저항은 국가나
제도의 억압에 대한 극복만으로 충분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
적 해방이 덧붙여져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푸코와 호네트
는 자기와의 관계에서 자기배려와 상호주관적 인정이라는 윤리적
실천을 저항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푸코와 호네트는 현대사회의 예속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윤리적
주체를 요구하지만, 그 도덕적 준거에 대해서는 관점을 달리한다.
푸코는 근대의 주체를 지배해 온 원리가 동일성이었다면, 새로운 주
체는 동일자로 포섭될 수 없는 이질적인 다수임을 주장한다. 주체는
결코 단일한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데리다(Derrida, 2014) 역시 차이에 대
해 설명하고 있는데, 사회의 지배적 질서는 선과 악,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 등의 경계를 설정하고, 이러한 인식의 틀에 따라 대
상의 가치를 평가하고 대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다루는 학문이나 지식체계들도 실제 대상과 결코 일
치할 수 없는 일시적인 경계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차이를 생각한다
는 것은 다른 것 혹은 구별되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뜻하며, 이는 동일성을 원리에 억압된 것들의 해방시키는 작업
370 사회사상과문화
과 일치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주체가 자기배려를 통해 차이를 생
성한다는 것은 동일자로 호명하는 통치성을 해체하고 자유에 도달
하는 일이다.
이러한 푸코의 주체형성에 대해 호네트는 ‘정의의 원칙’은 무너지
고 ‘배려의 원칙’만이 남았다고 비판한다. 푸코의 자기배려 원칙은
차이를 통한 미학적 자기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타자 혹은 공동
체와의 관계에서 보편적 지향, 즉 정의의 원칙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이다. 여기서 정의의 원칙과 배려의 원칙은 모두 ‘도덕’이라는 개념
과 관련되는데, 포괄적 의미에서 도덕은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과
좋고 나쁨에 대한 ‘윤리’를 모두 지칭한다. 엄밀히 말하면 전자가
정의의 원칙과 관련된다면, 후자는 배려의 원칙과 관련되는 것으로,
푸코는 후자만을 주체 형성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푸코는 옳고 그름의 보편적 지향을 강조하는 정의의 원칙을 권력에
예속화되는 과정으로 보는 반면, 배려의 원칙은 항시 권력의 동일성
에 반하여 사유와 삶의 양식을 변용하는 실천으로 보았다(요시유키,
2012).
푸코의 차이에 대한 사유는 저항을 담고 있으며, 그 목적은 부정
에 의한 권력이나 체계의 전복이 아니라 개별적인 차이를 보존하고
자 하는 것에 있다. 이에 따라 저항은 일상적인 삶의 정치 패러다임
에서 시작되며, 궁극적으로 ‘자기에의 관계’를 정립하는 윤리적 문
제로 환원된다(심세광, 2011; 서유경, 2003). 이러한 푸코의 저항 이
론은 많은 학자들의 비판을 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비판의 쟁점은 첫째, 푸코가 말하는 저항에 따르면 부정의에 맞
선 집단적 행동이나 복종이나 협력을 거부하려는 적극적인 행동, 그
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들을 모두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웨이츠
(Weitz)는 ‘저항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애매한 상태로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거의 모든 곳에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71
학자들은 거의 아무 곳에도 없다고 본다.’고 지적한다(Weitz, 1998;
주정립, 2011; Hollander & Einwohner, 2004: 534).
둘째, 일상적 저항이 갖는 효용성의 측면에서도 회의적이다. 오늘
날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다양성을 독려하고 개별화하는 방식을 취
한다. 즉, 사람들의 차이에 대한 자유와 관용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통치술일 뿐이라는 것이다(Brown, 2003; McNay, 2009). 신자
유주의 통치성 아래에 추구되는 개인의 다양성은 기껏해야 소비나
자기처세와 관련된 탈정치적인 것이다. 이같이 저항을 보편적인 가
치로의 타자와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고 본다면, 그것은 개인적 가치
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저항의 효과도 정치적이 아닌 존재론적 차
원에서 유효할 뿐이다(Brown, 2003).
무엇보다도 푸코의 저항이론의 한계는 사회를 항구적인 투쟁과
갈등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그 투쟁의 동기를 적절히 분석하
지 못하는 데 있다. 그가 홉스와 니체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데에서
투쟁의 동기를 유추하자면, 니체는 ‘힘의 의지(will to power)’를 말하
면서 그의 한 형태가 지식 의지라고 본다.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한
의지는 그 진리를 통해 일정한 힘을 추구하며 보다 안정된 삶을 확
보하려고 한다.
가령, 우리가 자연과 인간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는 미래를 예
측하거나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없지만, 보편타당한 진리를 안다면
자연을 이용하고 인간과 사회를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
리로써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힘을 증
대시키는 방편이다. 이는 곧 권력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자기보
존4)을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4) 푸코는 ‘성의 역사’ 이후 권력과 주체를 새롭게 사고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스
피노자의 자기보존(코나투스)의 개념적 틀에 더욱 근거하여 접근한다(쥬디스 버
틀러, 2002.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개념은 “각각의 사물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한에서 자신의 존대 안에 남아 있으려고 한다.”는 명제로부터 정의되는데, 이는
372 사회사상과문화
자기보존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자신을 유지하려고 하는
본질인데, 인간은 외부의 다른 사물들과 필연적으로 접촉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물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 존재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지지하고 그렇지 못하고 방해가 되거나 반대되는
것은 저항한다. 즉,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은 곧 힘의 증대라는 적극적인 노력으
로 나타난다. 모든 사물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양태의 존재이기 때
문에 자기완성을 향한 내재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서 중요
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이 긍정적인 자
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보존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확보하려는 외부세계와의 끊임없는 투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
한다(Deleuze, 2001; 홍영미, 2006).
그러나 우리는 자연 상태에서 외부세계와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세계 속에서 마주침이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주체는 어
떠한 준거를 통해 사회적으로 매개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미 존재하는 사회의 규범적 틀 내에서 주체는
사회적 존재로서 완성을 추구하며, 또 저항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자연적 차원이 아닌 규범적 차원에서의 투쟁일 것이다.
규범적 차원에서의 투쟁이라는 것은 보편적 준거를 요구하며, 이
러한 지점에서 호네트는 배려의 원칙과 함께 정의의 원칙이 필요하
소극적 의미와 적극적 의미를 모두 가진다. 소극적 의미에서 코나투스는 모든
사물은 자신의 고유한 양태를 가지며 지속시키려고 한다는 것인데, 가령, 고양
이와 인간은 각기 다른 코나투스의 내용을 가지고 지속함으로써 각각의 자립적
인 사물 그 자체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적극적 의미에서 코나투스는 사물은 자
신을 보존하려는 내재적 노력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능력의 차이가 있으며, 필
연적으로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자기보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자기보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은 사물이 자기 자신의 완전성을 향해 노력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73
다고 주장한다. 헤겔(Hegel, 2008)이 역사철학에서 지적하였듯이,
사회적 투쟁은 자기보존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상태로 이행하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도덕적
충동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실천적,
정치적으로 관철하려는 사회내적 동력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
호 인정받기 위한 주체의 투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박의경,
2013; 이홍균, 2005). 이러한 인정에 대한 욕구는 현 제도로부터 단
계적으로 반복되는 투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차츰 의사소통적으로
실현된 자유의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Honneth, 2011: 32).
여기서 호네트는 의사소통론을 자신의 이론에 비판적으로 수용하
게 된다. 우선 호네트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론에 대해 타자와 상호
주관성을 통해 공통의 지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
지만, ‘일반화된 타자’의 관점에서 의사소통 가능성을 논의함으로써
개인에 따른 특수성과 차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본다. 즉, 모든
인간을 일반화된 타자의 입장에서 동질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정의
원칙의 한계라는 것이다.
반면, 푸코의 저항이론에 대해, 권력이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이라
면 투쟁을 통한 자기완성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
다. 왜냐하면 위계적 지위나 신분 구조 속에서의 인정은 항시 불완
전하며, 주체의 자기완성은 나와 동등한 위치의 타자로부터 인정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호네트는 푸코의 차이에 대한 배려의 원칙과 하버마스의 보
편성에 대한 정의의 원칙은 일상생활에서 양자 모두 간과할 수 없
는 것이며, 양자가 상호 연결된 지점이 ‘인정’이라고 본다. 주체는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인정을 통해 긍정적 자기 정체성을 갖는 동
시에 주체들은 이미 실존적으로 상호개입 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편
성을 갖는 주체로 완성된다.
만약, 어떤 사회가 특정한 정체성만을 보편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374 사회사상과문화
면, 이와 다른 정체성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상실하기 때문에
차이에 대한 인정은 곧 정의의 원칙과 맞물려 있는 셈이다. 요컨대,
호네트에게 저항은 개인의 자연적 자기보존이 아닌 개인적 정체성의
사회적 인정을 목표로 일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저항은 왜곡된 인
정질서에 대응하여 주체들이 자기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도덕적(윤리적) 주체를 요구한다.
그들이 현대사회의 예속으로부터 저항적 실천을 위한 윤리적 혹
은 도덕적 주체를 호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하에서
생산되는 주체의 모습은 이와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사
회에서 정치참여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연구들을 보면, 개인들이 점
차 탈도덕화(amoral)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5)(석승혜ㆍ장예빛ㆍ유
승호, 2015; 최종숙, 2013). 탈도덕이란 부도덕(immoral)과 같이 도덕
에 반한다기보다 배려나 정의와 같은 도덕성 기반이 부재하거나 미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과 타자에 대한 배려에 무관심하
며, 사회적 불의의 문제에 대해서도 둔감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은 새로운 주체로 추동하는 계기들은 우리 사회
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다음과 같다.
2. ‘계기’의 문제 : 우발성(Contingency)과 경험성(Experientiality)
예속된 주체에서 새로운 주체로 전환되는 계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푸코에서 훈육된 주체로부터 자기배려의 윤리적 주체로, 호네
트에서 물화된 주체로부터 공감적 주체로 확장되는 저항의 계기가
5) 최근 한국사회에서 안철수 현상이나 무당파의 증가와 관련하여 이들 집단의 이
념성향 및 도덕성 기반을 알아보자 하는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다. 그중 두드러
지는 현상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성향에 포섭되지 않는 상당수의 중도집단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들 집단은 물질주의 성향이 매우 높은 반면, 배려(care)와 공
평성(fairness)이라는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
타났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75
현실 속에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푸
코에게서 권력의 통치성은 주체와 맺는 관계에 의해 실현되며, 이러
한 점에서 저항은 자기극복 또는 자기통치의 실행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따라 스스로를 경제적
인간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주체들에게 어느 순간 윤리적 주체로 인
식하는 계기가 주어지는가?
푸코가 주체를 포함한 세계의 존재를 보는 시각은 현재성의 철학
과 맥을 같이한다. 현재성의 철학은 존재가 본질적으로 어떠한 목적
과 필연성을 가진다는 사고를 거부하고, 역사적인 우발성에서 파악
한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존재는 이미 우발성 속에 내던져져
있으며, 그런 우발성이 주체의 존재 양태를 규정한다. 우리는 순순
한 자연 상태에서는 타자와의 마주침이 없이 원자와 같이 존재하지
만, 인구의 증가와 정착생활은 우발적인 마주침을 만들고, 마주침의
지속에서 발생하는 언어, 감정, 애정 혹은 투쟁관계가 점차 축적됨
에 따라 특정한 사회구조가 보편적인 것처럼 응고된다(Rousseau,
2010; Lukacs, 1999).
가령,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
람과의 우발적 마주침에서, 전자에 의해 체결된 부당한 계약의 상태
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즉, 금융이나 생산기술, 생산자본은 자본
주의 이전에 독자적으로 존재했지만, 특정의 시기에 이들의 마주침
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
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특수한 시기에 국
한되는 생산 양식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역사적으로 우발적 계기에
의해 권력관계가 형성된다면, 현재의 주체가 존재하는 방식 역시 순
수하게 우발적인 것으로 생성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푸코는 좀 더 직접적인 반성적 사고의 계기를 정상에서 배제된
타자로부터 찾고 있다.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집단들, 즉 광인이나
장애인, 이민자들은 주체에게 충격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가능성
376 사회사상과문화
의 영역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주체가 보편적 존재라고 한다
면, 다른 주체는 이에 균열을 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
재들이다(Derrida, 2014; 서용순, 2014; 문성훈, 2011).
그렇다면 새로운 주체 형성은 정상인의 이면에 비정상으로 분류
되는 타자를 구하는 작업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주체는 동일
자의 논리로 포섭될 수 없는 이질적인 다수들이며, 다른 주체에 대
한 사유 속에서 동일자로 포섭되지 않는 정치적 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확장해 본다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보편화된 경
쟁의 원리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비정
상의 부류를 생산한다.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면, ‘쓰레기가 되는 인
간(wasted people)’으로 지칭되는 타자들의 급증이다(Baumann, 2008;
2010). 이같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타자)의 증가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계기를 더욱 높여 줄 것인가 하면, 결론
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과거와 같이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것
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비공간(non-place)으로 추방해 버리는 통치
전략을 통해 격리된다(Baumann, 2010). 타자의 비가시화는 주체가 새
로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불
안을 증폭시켜 성찰의 기회마저 박탈한다.
푸코에게 나타나는 주체의 반성적 사고에 의한 저항의 계기는
점차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호네트는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저항의
직접적인 계기를 발견한다. 앞서 호네트는 물화를 인정 망각으로
규정하며, 인정은 어느 순간에 깨어날 수 있는 가능태임을 밝혔다.
그런데 물화는 인정의 가장 근본층으로 인간 주체를 인격체로 자각
하는 문제, 즉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속성에 대한 인정을
간과하고 상품과 같이 취급한다는 점에서 무시와 고통의 경험들을
야기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77
이러한 경험은 사회에 의해 무언가 불의의 것, 즉 무언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 일어났다는 경험과 일치한다(Honneth & Fraser,
2014: 200). 사회적 무시나 모멸로 인한 고통은 인정을 획득하고자
하는 본원적인 충동을 촉발하며, 현 상태를 전복할 수 있는 동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현 사회의 모습이 층층이 쌓인 인정관계들 간의
부서지기 쉬운 결합 상태인 만큼, 다양한 차원에서 정당성 없는 도
덕적 무시에 기인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음을 말한다.
호네트가 말하는 불만과 고통의 경험은 개인의 경험 차원에서 이
루어지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규범적 기대에 대한 선이
해를 바탕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사회적’이다. 다시 말해,
인정투쟁은 각기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활동 결과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대한 인정의 부인에 따른 정서적, 감정적 고통이나 분
노의 결과라는 것이다(이문수, 2012).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위나 혁명의 계기는 개인이나 집단이 사적인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인정을 거부당하면서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적
박탈감이다.
이상에서 푸코와 호네트의 저항은 기존의 지배적인 질서를 전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저항의 계기에서 호네트는 보
다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불의의 경험이 지배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반론
의 여지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는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차
별이 지배집단에 의해 강요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부인
되는 상황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이를 긍정적으로 보존하고자 자발
적인 행위라는 것이다(LamontㆍMolnar, 2002). 앞서 지적하였듯이, 신
자유주의 사회에서 모든 국면에서 적용되는 경쟁의 원리는 사회적
으로 배제된 집단을 생산한다. 이는 곧 여러 집단들이 자신의 정체
성에 대한 위협을 지각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회복전략은 저항이
378 사회사상과문화
아니라 외집단을 폄하하는 손쉬운 방식에 대한 선택으로 나타날 수
있다(CraigㆍDehartㆍRichesonㆍFiedorowicz, 2012; BranscombeㆍWann,
1994).
둘째는 무시가 불의에 관한 유일하고 진정한 경험인가이다. 만약,
모든 무시와 고통의 경험이 불의와 관련된 것으로 확정하게 된다면,
모든 정치적 요구는 인정에 대한 요구로 번역되어야 하고, 정의의
모든 기준들 역시 인정의 하위 유형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만다
(Honneth & Fraser, 2014: 306, 김원식, 2009). 또한 푸코와 호네트는
새로운 인간상으로 윤리적 주체를 제시하지만, 이들이 불의의 경험
으로 자각하는 보편적 준거에 대해서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
면 앞서 지적한 한국에서 탈도덕화 현상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통합된 준거가 부재하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불의
에 대한 경험은 그 수준과 지평이 매우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학자들은 인정투쟁의 계기들이 개인의 주관적 경
험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급, 인종, 성별과 같이 집단을
가로지르는 사회적 연대라는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
성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사회적 연대’의 문제 : 개체(Entity) 차원과 인륜(Humanity) 차원
앞서 푸코의 새로운 주체 형성이 동일성이 아닌 개별성의 원리를
추구함으로써 보편성의 결여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자기배려가 이기
적인 개인 윤리가 아니라는 것은 그 대상인 자기에 도달하기 위해
서 타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견지하고 있다. 즉, 그리
스인들의 자기배려는 학파나 종교적 단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공
동체적 학습과 교정의 실천 과정이었다.
공동체 내에서 스승은 ‘개인과 그의 주체적인 구축과의 관계를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79
매개하는 자’로, 무지를 앎으로 이끄는 것보다는 주체의 존재 방식
자체를 변형시키는 타자의 존재이다(Foucault, 2007: 70~72). 그리고
동료들은 지식의 축적보다는 친구들과 우정에 부여하는 신뢰 속에
서 즐거움과 동요의 부재를 확보하며 자신을 계속 점검할 수 있는
만드는 존재이다 결국, 자기배려는 타자로부터 우리 자신을 고립시
키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행위 주체와 타자들의 관계를 조절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가 말하는 자기배려는 신체와 쾌락에 대
해서이고, 이는 개인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사항이므로 저항을 위한
연대의 보편적 토대로서 실효성은 분명하지 않다(Frazer, 2003). 신체
와 쾌락과 관련하여 소규모 시민연대 결성이 가능할지라도, 권력장
치나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정치적 투쟁의 전개는 어렵다. 따라서
푸코의 저항은 국지적 저항(local resistance)에서 효력을 기대할 수밖
에 없으며, 일상적 삶의 정치의 한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Walzer,
1986; 서유경, 2003; 문성훈, 2010).
더구나 일상적인 삶에서의 저항은 더 나은 삶에 대한 낙관적 결말
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폴 윌리스(Willis, 2004)의 하위문화 분석을
보자면, 교육 현장에서 하층 계급의 학생들은 부르조아 교육 장치에
대한 저항으로 그들만의 하위문화를 형성한다. 이들은 남성성에 기
초한 스타일과 태도로 집단 정체성을 구성하며 학교 권력에 도전하
는데, 이는 하층 계급의 육체노동자에게 필요한 문화적 특성들을 습
득함으로써 오히려 계급 재생산에 기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국지적 저항의 한계에 대해 아렌트(Arendt, 2002)는 개체적
차원이 아닌 조직화된 집단 차원의 저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즉, 다수의 의견은 다른 사람들의 동의나 인정을 확보한
다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타당성을 갖는 의견으로 수용된다는 것이
다. 그러한 점에서 푸코가 말하는 자기배려를 통한 자기완성은 개인
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가질 뿐이며, 그것이 개인을 넘어 다수의 의
380 사회사상과문화
견으로 연대를 형성할 수 있을 때 현 체계의 변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호네트 역시 ‘사랑’이라는 상호 인정관계에서 좌절하는 것이 사회
적 투쟁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사랑
의 좌절로 인해 심리적인 상처를 입고 상대자와 갈등을 일으킬 수
도 있지만, 이러한 경험이 당사자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일반
화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리’와 ‘사회적 연대’ 영
역에서 각 개인이 갖는 무시에 대한 경험은, 그 무시가 그가 속한
집단에 전형적인 것으로 해석될 때 집단적인 저항을 초래한다고 본
다(Honneth, 2011).
특히, ‘연대’는 권리 주체인 개인들에게 그들의 고유한 가치를 국
가(가치공동체) 내에서 존중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인데, 특정한 역사
적 시점에 이들의 ‘능력과 속성’에 대한 가치가 부정된다는 것은 집
단적 저항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대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자격
이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권리와 자격의 공동체’가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여기서 개인의 업적에 대한 가치부여는 자립
적인 남성 시민의 경제 활동이 만들어낸 규범적 틀에 기초하고 있
다.
현존하는 업적주의는 특정 집단 중심의 가치 평가의 결과에 불과
하지만 전체 사회의 정당한 기준으로 강제된다(정대성, 2010; 문성
훈, 2010).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심화에 따라 시민적 권리와 자격은
자유로운 경쟁 위에서 개인의 능력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라 여기며,
사회적 배제는 더욱 가중되며 당연시된다. 이같이 고도로 분화된 오
늘날 사회에서는 가치 질서의 확립을 둘러싼 집단들 간의 갈등이
사회적 투쟁의 주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호네트가 말하는 사회적 연대는 엄밀히 두 가지 유형의
연대로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렉(Rehg, 1994)의 표현을 빌리면
‘도덕적 연대’와 ‘특수적 연대’이다. 전자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81
정 망각 이전의 상호공감하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상호 인정에 기반
한 이상적인 공동체의 형태이다. 후자는 가족, 계급, 인종 등 동질성
에 기초한 연대이다. 이는 뒤르켐이 말하는 기계적 연대에 상응하
며, 연대의 힘은 폐쇄적이고 특정한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강수택, 2007).
호네트가 지적하는 무시와 모욕 역시 계급이나 성별, 인종 등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경험으로, 저항을 위한 특수적 연대의 가능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상호인정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저항의 전개
는 도덕적 연대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다. 가령, 여성
운동에서 동등함과 차이에 관한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여성 권리의
문제는 남성의 위상에 동화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차이를 간과하거
나 고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성적 차이와 여성 사이의 차
이의 인정이 중요한 문제이다. 즉, 여성의 인권이 특수한 방식으로
억압되었다는 데에서 출발하는 차이에 대한 문제는 결집의 중요한
동기이지만, 그것의 지향은 보편적인 인간상과 인간의 평등한 기본
권에 있으며, 인권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Honneth and Frazer, 2014: 136-139;
Dean, 1994).
종합하자면, 도덕적 연대는 성, 인종, 계층 등의 위계적 경계를 넘
어서는 연대, 불평등에 저항하는 연대이지만 동시에 이 연대는 인간
이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가정에 근거를 둔다. 그렇지 않고 대부분
강한 내적 결합에 의존하고 타자를 배제하는 동시에 직접적인 이득
을 취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에 불과하다(Zoll, 2008: 211).
기존의 사회적 연대 이론은 사회적 분화가 연대를 촉진하고, 이
러한 연대를 안정화시키지는 방식으로 규범과 제도의 역할에 주목
하였다. 반면, 호네트는 규범과 제도 자체가 특정한 집단에 편향된
기준이라는 점에서 규범의 당위성에 대한 새로운 도덕적 기초를 확
립함으로써 장기적인 도덕적 연대를 기획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개
382 사회사상과문화
인의 사회적 투쟁이란 이미 주어진 사회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나은 상태로 이행하고자 하는 도덕적 충동에서 시작되었다
(Honneth, 2011). 따라서 이는 사회의 규범적 기초를 변혁하고자 하
는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며, 이를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관철하
려는 집단적 연대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도덕적 동기를 갖는 사회집
단들의 투쟁은 특수적 연대로 출발로 출발하지만 상호인정이라는
인륜적 관계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방향성을 갖는 사회변혁이 진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에 대해 사회자본이론(social capital theory)은 신
뢰의 중요성을 강조하여왔다. 사회자본이론에서는 각각 연대는 특정
한 타인에 대한 특수적 신뢰(particularized trust)와 상이한 배경의 낯
선 타인에 대한 보편적 신뢰(generalized trust)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
한 특수적 신뢰로부터 보편적 신뢰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
회화 과정에서 평등(equality)과 공정성(fairness)과 같은 긍정적 세계관
이 학습되고 체화되어야 한다(Seligman, 1997; Uslaner, 2002). 다시 말
해, 개인이 처하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성이 낮고 공정한 제도나 절
차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
제구조가 구축됨에 따라 사회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6)
(Duménil & Lévy, 2014; Piketty, 2014; Standing, 2011; Isaak, 2006).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사회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것이라면, 타인
의 선의(good will)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에 근거한 보편적 신
뢰는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울콕(Woolcock, 1998)은
친밀한 개인적 관계에 기반한 특수적 연대만을 강조하면 ‘비도적 가
족주의’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그러한 사회는 제한된 집단
의 도덕성에 의해 행위규범이 만들어지며, 사회적 제도조차 내집단
6) 사회 불평등 연구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사회경제 시스템의 변화에서가 아
니라 세계화, 유연화를 모두 포괄하여 다루어진다. 이에 본 연구는 사회경제시
스템의 변화와 가치체계를 통칭하여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도록 하였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83
의 효율성을 위한 특수한 방법에 할당되고 만다고 본다. 사실상 개
별적 수준에서 불의의 경험이 사회적 연대의 차원으로 확장되지 못
하면, 저항이 객관적 타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한계에 노출된다.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의 변화 양상으로 노동시장에서 종신고용
제도의 철폐, 능력별 급여도입 등은 비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
의 빈곤화를 낳고 있으며, 나아가 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난
민 등의 여러 영역에서 차별의 지형을 구축한다(Therborn, 2014; 장
귀연, 2013; 조은, 2010; 이성균, 2006). 이들은 직접적으로 빈곤화와
차별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불평등의 심화는 미래에 대한 전
망을 불투명하게 함으로써 자발적인 사회참여를 감소시키며 보편적
연대의 가능성을 낮춘다.
결국, 최근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의 심화와 보편적 신뢰의 감소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무시와 불의의 경험에 불구하고 저항을
위한 연대의 가능성을 낮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웅거(Unger)
는 주체가 사회변화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맥락보존(preservation of
context)적 활동과 맥락초월(context of all context)적 활동의 격차가 줄
어들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마치 아이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안정
하다고 느낄 때 주체형성에 따르는 위험을 더 감수할 수 있듯이, 성
인 역시 기본적 권리와 역량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보완 받을수록
맥락에 더 도전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저항이 항시화 될 수 있다
(Unger, 2012: 388).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업이나 빈곤, 불안
정한 일자리 등의 문제는 이들 간의 격차를 더욱 커짐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를 통한 저항은 단순히 인정의 문제
가 아닌 맥락보존적 활동을 지지할 수 있는 분배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다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384 사회사상과문화
V. 결론
푸코와 호네트는 현대 사회의 심층구조로 권력과 인정질서에 대해
파헤치고, 이것이 훈육된 주체와 물화된 주체를 생산하게 된다고 보았
다. 두 학자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주체의 모습으로 윤리적 실천의 주
체를 제시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주체로의 수행에 대한 관
점은 두 학자 간 차이가 있으며,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항의 준거에서 푸코의 현재성에 대한 사고는 차이의 생
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미약하게 다루어진 반면, 호네트
는 의사소통 행위라는 보편적 기반에서 인정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배려의 원칙과 정의의 원칙을 결합하고 있다.
둘째, 저항의 계기 측면에서 푸코의 타자를 통한 인식론적 전환
은 오늘날 타자들을 비공간화하는 전략에 의해 그 계기는 더욱 희
박해지는 반면, 호네트는 일상생활에서 무시와 고통의 경험은 망각
된 인정에의 욕구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저항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
시하고 있다.
셋째, 저항의 효과 측면에서 푸코의 저항이 비판받아 왔던 일상
적 저항의 국지성에서 호네트는 인종, 성, 계급 등을 가로지르는 집
단적 경험으로부터 보편적 연대로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
에서 사회 제도와 체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심화는 실업, 비숙련 및 비정규
노동자의 증가,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 장애인, 노인 등의 빈곤화를
가져오며, 이들 집단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에 대
한 비판과 저항의 계기 제공하는 동시에 그 대상이 왜곡된 규범적
질서라는 점에서 호네트의 주장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부
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학자의 논의를 한국사회에
적용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사회적
연대로 확장된 저항의 가능성에 대해서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 생산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연구:
푸코(Foucault)와 호네트(Honneth)를 중심으로 385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이들 학자가 새로운 인간상으
로 제시하고 있는 윤리적 주체의 가능성에 대해서이다. 자기배려와
상호인정을 실천하는 주체가 지배질서에 예속화되고 물화된 주체로
부터 벗어난 윤리적 주체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탈도덕
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배려나 정의의 원칙
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거나 미약하다. 이러한 탈도덕화는 호네트가
지적하는 무시와 모욕의 경험으로부터 망각된 인정에의 요구를 일
깨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이 불의의 경험에 둔
감해지거나 혹은 제각각의 해석 기준을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
는 윤리적 주체의 각성과 멀어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혁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둘째, 오늘날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불의의 경험이 항시 사
회적 변혁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성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실재 사
회에서 불의의 경험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대응 방식은 왜곡된
규범을 바로잡고자 하는 실천이 아니라 손상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외집단을 폄하하는 손쉬운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
해, 불의의 경험은 성별이나 인종, 계층의 경계를 넘어선 도덕적 연
대가 아닌 더욱 많은 사회적 경계를 형성하는 부정적 방향으로 나
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저항이 특수적 연대로부터 보편적 연대로의 확장 가능성과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사회로의 진전에 따라 불평등과 빈곤의 확장
은 그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회화 과
정에서 평등이나 공정성에 대한 내면화를 통해 보편적 신뢰를 획득
하게 되며 자발적인 사회참여가 촉진된다. 그러나 최근 불평등의 심
화는 보편적 신뢰를 약화시키며, 오히려 특수적 연대에 기초한 비도
덕적 가족주의 사회로 전락할 위험성을 가진다.
이에 대해 웅거는 긍정적 개혁을 위한 항시적인 저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안정된 생계와 발전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함을 강
386 사회사상과문화
조한다. 즉, 주체의 각성과 저항 가능성은 맥락 보존적 활동과 맥락
변혁적 활동의 격차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Unger, 2012). 현재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체계 변화 속에서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변화 주체들이 사회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 과정까
지는 일정부분 맥락 보존적 활동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분배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확장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본 연구는 푸코와 호네트의 저항이론을 양
립해봄으로써 한국사회에서 급격히 진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변
화 속에서 새로운 주체의 형성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사회는 불평등과 탈도덕화 현상으로 인해 일정
부분 저항의 한계가 노정되어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모멸과 무시의 형태로
극심한 갈등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은 일정부분 한국사회의 역사적
특수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향후 연구는 한국사회
의 신자유주의의 변용과정과 관련하여 주체의 형성의 구체적인 양
상과 저항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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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승혜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연구분야는 문화사회학, 미디어사회학이다. 현재
강원대학교 SSK사업단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주요 논문으로 “한국
의 중도집단은 탈도덕적인가: 이념성향에 따른 도덕성 기반 비교를 중심
으로”, “SNS에서 유명인 네트워크가 이용자의 사회자본에 미치는 영향”
등이 있다.
e-mail: sukmozzi@gmail.com
(2015.11.04.접수; 2015.12.13.수정; 2015.12.17.채택)
DOI: http://dx.doi.org/10.17207/jstc.2015.12.18.4.353
394 사회사상과문화
The study of produce of subject and possibility of resistance in
neo-liberalism:
Comparison of Foucault with Honneth
Seok, Seung-Hye. Kangwon National University
Keywords : recognition, reification, resistance, social solidarity,
neo-liberalism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proper resistance model in Korea through compare with
Foucault and Honneth with a practical possibility of resistance from subordinated agent.
Today neo-liberalism is extending not only being limited in institutional dimension but also
ideological dimension guiding people universal character and attitude. The principle of
neo-liberalism connotes a fetal problem to produce the incomplete agent who voluntarily
obeys power and forget about mutual recognition. Both Foucault and Honneth assert a
ethical subject as a new human character, but they have different opinions in terms of
criteria and the opportunity of resistance, and social solidarity. In summary, Foucault insists
people can resist subordination to power by creating difference, while Honneth argues, if we
already live in normative society, the object of resistance is the foundation of norms as well
as deepening neo-liberalism offers more direct opportunity of resistance by increasing
experiences of disrespect and injustice.
When we try to adapt these theories in Korea, the most critical problem is how to
transfer from individual's experiences to social solidarity. To be more specific, firstly, in
contrast of a ethical subject, recently an amoral phenomenon people have little awareness of
the importance of care and justice has occurred in Korean. Secondly, individuals or groups
may select the easy strategy called out-group denigration for recover damaged identity. In
addition, general trust based on social solidarity comes from the expectation of equality and
fairness. If these values are weak, social solidarity should fall into immoral familism. Finally,
when we deal with the problems of Korean society, the view of recognition without
retribution has limi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