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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루터의 율법과 복음: 유언적 관점에서(한병수/아세아연합신학대)

I. 서론
역설의 신학자로 불리는 루터의 신학을 어떠한 도식 속에 담아내
는 작업은 지난하다. 그러나 (물론 다양한 키워드가 있겠지만) 루터 자
신이 밝힌 율법과 복음의 구분법이 루터의 신학을 관통하고 있음을 부


* 약어
WA: Luther, Martin. D. Martin Luthers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 Weimar, 1883ff).
WADB: Luther, Martin. D. Martin Luthers Werke, Deutsch Bibel (Kritische
Gesamtausgabe, Weimar, 1883ff).
LW: Luther, Martin. Luther’s Works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and
Phildelphia: Fortress Press, 1955f).
LL: Luther, Martin. Dr. Martin Luthers Sämmtliche Schriften (S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1880).
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인하는 사람은 없다. 루터는 마태복음 주석에서 “성경 전체와 신학 전
체의 인식이 율법과 복음의 올바른 이해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였
다.1) 그에게 “율법과 복음의 고유한 가치”는 “기독교의 참된 원리”2)
가 발견되는 원천으로 “기독교에 있어서 최상의 핵심적인 항목”이
다.3) 다른 곳에서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올바른 구분이 참된 신학자를
구분하는 최고의 시금석, “기독교의 최상위 예술,” 그리고 “모든 기독
교 교리의 총화”(summam totius Christianae doctrinae)라고 묘사했다.4)
율법과 복음의 구분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소유한 자는 누구라도
“성경의 박사”가 된다고 루터는 단언한다.5) 나아가 율법과 복음 사이
의 영적인 관계성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자에서
영을 식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6) 기능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 사이
의 올바른 구분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실한 보편적 신학”(universam
sinceram Theologiam)을 보존하는 것이며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모든


1) WA 7:502.
2) WA 40:223.
3) WA 40:670.
4) LE 9:798; WA 38:8-42; WA 40:205-6, 209, 511, 527를 참조하라. 그러나 에벨링은 칼 바
우어, 칼 홀, 에리히 제베르그 등의 한계를 가리키며 루터의 종교개혁 신학의 기원을 발
견하기 위해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아니라 “루터의 해석학적 변혁”(hermeneutische
Wandlung Luthers)”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Gerhard Ebeling. “Die Anfänge von
Luthers Hermeneutik,” Die 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48 (1951):172-230. 루터
신학의 구조를 다루었던 이양호도 율법과 복음의 구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양호, “루터 신학의 구조,” 「신학논단」 24 (1996), 131-157. 김선영도 루터의 성경해석 원
리들 중의 하나로 “법과 복음”을 언급하긴 하였으나 유언적인 접근법은 아니었다. 김선
영, “루터의 성경해석 원리들: 예수 그리스도, 법과 복음, 믿음과 사랑,” 「한국기독교신
학논총」 94 (2014), 91-116. 손규태는 비록 루터에게 있어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다
루기는 하였으나 본 논문이 다루는 유언적인 접근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손규태, “루
터에 있어서 율법의 제3용법,” 「성공회신학논총」 5 (1991), 7-52.
5) LL 9:802.
6) WA 3:11.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기에 영적이다.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9


인간의 모든 규율들과 교의들”을 초월하게 한다.7) 이와 관련하여 교
황주의 및 분파주의 인물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이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을 훼손하고 혼잡하게 만든 것에 있다는 것이 루터의 진단이
다.8) 율법과 복음의 구분에 대한 왜곡 혹은 오해는 전 성경에서 우리
를 혼돈에 빠뜨릴 수 있다고 루터는 경고한다.9) 이처럼 루터에게 기독
교 교리를 율법과 복음으로 구분하는 것은 “순수한 진리를 가르치고
보존하는 최고의 방식”이다.10) 그러나 문제는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omnium difficillimum)이라는 것이
다.11)
루터에 따르면, 율법이나 복음의 개념은 “유언”(testamentum)12)
이 “죽게 될 자의 마지막 폐하여질 수 없는 의지”이며 “그리스도 안에
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모든 기적들과 은총의 간명한 이해”라는 독특
한 의미에 의존하고 있다.13) 구약 서문(1545)에서, 루터는 구약과 신
약을 규정함에 있어서 “유언”이란 개념에 의존한다.14) 나아가 칭의,
구원, 상속, 지복은 모두 “유언”에 포괄되어 있다고 강조한다.15) 이러
한 루터 자신의 언술에 근거하여 본 논문은 유언의 관점이 바로 율법


7) WA 40:511.
8) Ibid. “Contra Papistae, quia doctrinam Legis et Evangelii prorsus commiscuerunt et
confuderunt... Hoc idem accidit hodie Sectariis.”
9) WA 3:579.
10) WA 39-I:361.
11) WA 40-I:528.
12) 여기서 저자는 루터가 testamentum을 유언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유언”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개혁주의 진영에서 testamentum을 “언약”으로 이해
하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13) WA 6:357.
14) WA DB 8:28-29.
15) WA 10-I:344: “das testament hatts allis ynn sich, rechtfertigung, selickeytt, erbe unnd
hewbtgutt.”
1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과 복음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탐구하는 최상의 열쇠라고 주장한다.
유언의 관점은 복음의 유사어인 “약속”(promissio)이 루터의 신학
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제임스 프로이스(James S. Preus)
주장16)과 구별되고, “사중적 의미와 문자-영의 반정립”(das des vierfachen
Schriftsinnes, das andere der Gegensatz von litera und spiritus) 개념
이 루터에게 종교개혁 돌입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칼 홀(Karl Holl)과 게르하르트 에벨링(Gerhard Ebeling)의 해석학적
방법론적 접근과도 구별된다.17) 물론 사중적 의미에 기초한 문자적/
영적 해석학18)과 문자-영의 반정립19)이 그의 성경해석 곳곳에서 발


16) James S. Preus, From Shadow to Promise: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from
Augustine to the Young Luther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9), 1-6. 루터
는 “유언이 약속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Neque enim aliud est Testamentum quam
promissio)고 했는데 이는 약속이 루터에게 복음이나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다. Cf. WA 2:518; WA 40:463.
17) Gerhard Ebeling. “Die Anfänge von Luthers Hermeneutik,” in Lutherstudien 1
(Tübingen: j. C. B. Mohr, 1971), 1-68; Karl Holl, “Luthers Bedeutung für die Fortschritt der
Auslegungskunst,” In Gesammelte Aufsätze zur Kirchengechichte I (Luther)
(Tübingen: j. C. B. Mohr, 1948), 544-582. 루터의 신학에 대해 에벨링이 해석학적 접근법
을 취한 이유는 그의 신학이 해석학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고, 해석학적 탐구의 대상
을 “말씀-사건”(Wort-Ereignis)으로 이해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는 스캇 켈서의 박사학위 논문 “Word and Faith in the Formation of Christian Existence: A
Study in Gerhard Ebeling's Rejection of the Joint Declaration” (Marquette University: 2010)
를 참조하라.
18) 루터는 비록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사중적인 의미(quadriga)를 도입하긴 하지만 그것
의 문제점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WA 3:12.
19) 루터는 “내가 예전에 ‘하나님의 의’라는 단어를 미워했던 증오에 버금가는 분량의 사
랑을 가지고 그 가장 감미로운 언어를 높였다”(Iam quanto odio vocabulum ‘iustitia Dei’
oderam ante, tanto amore dulcissimum mihi vocabulum extollebam)고 말한 이후에 “나는
뒤늦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영과 문자를 읽었다”(Postea legebam Augustinum de spiritu
et litera)고 밝힌다. 그러나 그 글을 읽으면서 루터는 의의 “전가”에 대한 아우구스티누
스의 불명료한 해석으로 인해 만족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문자와 영의 구분이 루터로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11


견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주장들이 약간의 일리는 있지만, 루터의 해
석학 혹은 신학이 거기에 ‘주된’ 의존성을 가지지는 않는다고 본 논문
은 주장한다. 사실 루터는 사중적 의미를 성경에 돌릴만한 어떠한 근
거도 없으며(keyn Grund), “성경은 율법과 영의 구분을 용납하지 않는
다”고 말하기도 하였다.20) 오히려 그의 해석학은 성령의 증거에 의존
하고 있다.21) 율법과 복음의 구분은 성령에 의해서만 간파될 수 있으
며22) 루터의 글 전체에서, 특별히 그의 라틴어 전집 서문에서 성령은
은총과 복음의 수여자로 묘사된다.23) 즉 “성령이 없이는 율법과 복음
의 구별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24) 성령은 하늘과 땅에서 성경
의 가장 순일하신 저자요 감독이다. 그리고 성경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과 사역은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의 순일한 의미로 갖는다
고 증거한다.25) 이런 사실에서 루터는 해석학적 통일성을 발견한다.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을 맡기신 선지자들 및 사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은 것도 성령에 의해서다.26) 본 논문은 루터의 신학에
서 성령의 이러한 중요성을 강조하려 한다.
케네스 하겐(Kenneth Hagen)과 프란크 니만(Frank B. Niemann)27)


하여금 종교개혁 신학으로 전향하게 한 이유라고 보기에는 증거가 빈약하다. WA 54:
179-187쪽을 참조하라.
20) WA 7:651-2. 루터의 신학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법의 한계에 대해서는 Scott H.
Hendrix, Ecclesia in Via (Leiden: E. J. Brill, 1974), 9-11쪽을 참조하라.
21) WA 54:186.
22) WA 3:12: “Et a Spiritu sancto hoc tantum habet Ecclesia et non ex humano sensu.”
23) WA 54:179-187.
24) LL, 9:802: “ohne den Heiligen Geist ist es unmöglich, diesen Unterschieb zu treffen.”
25) WA 7:650-1.
26) WA 54:51.
27) Kenneth Hagen, “The Problem of Testament in Luther’s Lectures on Hebrews,” Harvard
Theological Review 63 (1970): 61-90; idem, “From Testament to Covenant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The Sixteenth Century Journal 3/1 (April, 1972): 1-24; idem, A
1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이후로, 루터의 신학은 일방적인 유언의 신학으로 특징지어 졌다. 신
학의 이러한 특성은 개혁주의 진영에서 쌍방적인 성격의 언약을 존중
하는 언약의 신학과는 어느 정도 구별된다.28) 하겐과 니만이 올바르
게 지적한 것처럼, 성경이해 혹은 신학을 관통하는 율법과 복음의 관
계성에 대한 루터의 관점은 유언의 일방성 개념과 깊이 결부되어 있
다. 그래서 에벨링이 찾고자 했던 종교개혁 신학의 샘으로서 루터의
“신학적 통일성과 전체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터 신학의 유언적
성격을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29) 그러나 루터 학자들은 이것에 대
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본 논문은 다른 루터 학자들
에 의해서는 시도되지 않았고 하겐이나 니만에 의해서도 다소 미흡하
게 다루어진 유언적 접근법을 논하고자 한다. 논문의 구성은 먼저 루
터의 신학을 관통하는 율법과 복음의 구분법을 논하고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어떻게 유언의 개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면서
율법과 복음 사이의 조화와 대조가 루터의 신학에 공존하고 있음을 순
서대로 논하고자 한다.


Theology of Testament in Young Luther: The Lectures on Hebrews (Leiden: Brill,
1974); Niemann, B. Frank. Luther’s Theology as a Theology of Testament 1513-1520
(Marguette University, 1973).
28) Kenneth Hagen, “From Testament to Covenant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Sixteenth
Century Journal 3-1 (April, 1972), 1-24.
29) Gerhard Ebeling. “Die Anfänge von Luthers Hermeneutik,” Lutherstudien 1 (Tübingen: j.
C. B. Mohr, 1971), 1-68.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13


II. 본론
1. 율법과 복음의 구분법
루터의 신학에서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두 가지의 구분법이 공존
한다. 하나는 원리적인 구분 혹은 기능적인 구분이며, 다른 하나는 문
헌적인 구분 혹은 연대적인 구분이다. 그러나 첫번째 구분이 신구약의
연대기적 구분과 결부되어 있고 두번째 구분이 신구약의 기능적 구분
과 무관하지 않아서 두 종류의 구분법은 엄밀하게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보인다. 그래서 여기서는 두 구분법의 상호관계 속에서
각각의 구분법을 다루고자 한다.


1) 원리적 기능적 구분
율법과 복음의 구분은 루터가 자신의 라틴어 전집출간 기념으로
쓴 아래의 종합적인 진술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때 알아야 할 것은 구약은 율법의 책인데 인간이 행하여야 할 것들
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고 이러한 율법이 어떻게 준수되고
파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들과 설명들을 제공한다. 반면, 신약은
복음 혹은 은혜의 책이며 인간이 어디에서 율법을 성취할 힘을 얻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나아가 신약에는 은혜에
대한 가르침과 더불어 육신을 다스리는 율법들과 계명들에 대한 다른
교훈들도 제공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문자가 아닌] 영이 완성되
지 않았으며 은혜만이 다스리고 있지 않아서다. 이와 유사하게 구약
에도 역시 율법만이 아니라 율법 아래에 있었던 경건한 족장들과 선지
자들이 우리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머물게 하였던 어떤 약속들


1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과 은혜의 말씀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주된 가르침이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죄용서를 통한 은혜와 평화의 선포이듯,
구약의 주된 가르침은 진실로 율법의 교훈과 죄의 고발과 선행의 요구
이다.30)
율법과 복음의 기능적인 구분에 대하여 루터는 신약과 구약을
“책”(das Buch)의 문헌적인 특성과의 연관성 속에서 규정한다. 이 구
분에 따른 가장 중요한 논점은, 연대기적 혹은 문헌적인 측면에서 구
약과 신약으로 구분될 수 있다면, 원리적인 혹은 기능적인 면에서는
율법과 복음이 구약에도 신약에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31) 율법과
복음의 기능적인 구분에 의하면, 율법과 복음은 쓰여진 것이냐 선포된
것이냐(scriptus vel locutus), 즉 문자냐 영이냐(littera vel Spiritus)에 의
해 결정된다. 루터에 의하면, 성경이란 명칭은 “쓰여진” 율법에만 할
당되며 복음은 “선포된” 가르침 및 선언과 관계한다.


(1) 복음에 관하여
그리스도 예수는 어떠한 것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가르침
을 “성경”이라 명명하지 않고 복음 즉 새로운 언약이라 하였으며, 그
복음은 자신의 입술로(mit dem mund) 언급된 말씀에 의해서 전파된
것이라는 점을 루터는 강조한다.32) 이러한 가르침과 선포는 구약의


30) WA DB 8:13.
31) 이런 기능적인 맥락에서 보면, 율법과 복음의 구분에서 “구분”(Unterscheidung)이란 말
은 분할이나 양자택일 혹은 대체의 개념이 아니라 언제나 대립적 공존의 관계를 말한다.
Cf. Gerhard Ebeling, Luther: An Introduction to His Thought (Philadelphia: Augsburg
Fortress Press, 1970), 117; 손규태, “루터의 율법과 복음: 율법의 제3사용을 중심으로,”
「기독교사상」 16/6 (1972), 94-102.
32) WA 10-I:17.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15


책에서도 발견된다. 루터에 의하면,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 즉 “여인의
씨, 그리스도”(Des Weibes samen, Christum)가 필요함을 가르쳤다.33)
아담과 아브라함 또한 이 약속을 받았다고 루터는 지적한다. 나아가
모세의 교훈만이 아니라 모든 선지자와 시인들의 선포도 모두 하나님
이 “이 백성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시고 자신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
고자 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34) 루터
에게 “복음은 그 자체가 성경에서 우리의 안내자요 교육자다.”35) 복음
에 대해서는 신약과 구약 사이에 어떠한 대립도 없다고 단언한다. 모
든 선지자와 복음은 분리됨이 없이 “한 교회에 있으며 한 영 안에 있으
며 한 믿음 안에”(in una Ecclesia, in uno spiritu, in una fide)36) 있기 때문
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의 모든 구절들은 구약과 신약 모두의 권위
에 의해서 해석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37) 성경의 이러한 유
기적 통일성 때문에 루터는 잘못 이해된 성경의 한 마디는 성경 전체
에 모호함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38)
(2) 율법에 관하여
루터는 구약에 세 종류의 율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방을 위한
세상적인 법(weltliche Gesetze), 외형적인 하나님 경외에 대한 법(von


33) WA DB 8:13.
34) WA DB 8:13-15.
35) WA 10-I:17: “das Euangeli selbs tzeyger und unterrichter ist ynn die schrifft.”
36) 루터에게 믿음은 구약과 신약에서 다르지가 않다. 그런데도 하겐은 믿음이 신구약의
차이라고 말한다. Hagen, A Theology of Testament in Young Luther: The Lectures on
Hebrews, 119쪽을 참조하라.
37) WA 4:179-180.
38) WA 3:579: “Unum verbum male intellectum in tota Scriptura confusionem facere potest.”
1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eusserlichen Gottesdienst), 그리고 믿음과 사랑에 관한 법(vom glauben
vnd von der Liebe).39) 루터에게 믿음과 사랑에 관한 법은 나머지 두 종
류의 법보다 우월하다(über). “모든 율법이 믿음과 사랑을 지향하기 때
문에 어떠한 율법도 무효할 수 없으며 만약 율법이 믿음 혹은 사랑과
충돌할 경우에는 율법으로 머물 것이다.”40) 이처럼 율법의 효력은 기
능적인 차원에서 믿음 혹은 사랑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루터의 법
이해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 적용된다.
기능적인 구분에 있어서는 루터에게 율법의 제3 사용41)이 있다
는 게 사실이다. 루터가 보기에 쓰여진 율법과 선포된 복음은 하나님
의 동일한 약속을 전달하는 다른 유형들일 뿐이다.42) 그러므로 율법
의 교훈과 그리스도 예수의 은총에 관한 가르침은 모두 아담에게 주어
진 것으로서 교회 안에서 영원히 그리고 날마다 선포되고 학습되지 않
으면 안된다는 게 루터의 입장이다.43) 나아가 루터는 복음의 선포적
인 개념이 유언의 증인이신 성령의 증거44)와 유언의 대상인 택자들의


39) WA DB 8:17-19.
40) WA DB 8:19.
41) 루터는 율법의 제3사용을 주장한 적이 없으며 멜랑히톤 및 이후의 루터주의 학자들이
말한 율법의 제3사용도 율법의 첫번째와 두번째 기능의 교회적 적용일 뿐이라고 주장
하는 입장도 있다. 특별히 Timothy J. Wengert, Reading the Bible with Martin Luther:
An Introductory Guide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3), 22-46쪽을 참조하라. 이
주제는 본 논문의 논지를 넘어선다. 이 주제의 자세한 논의를 원한다면, 손규태의 논문
(“루터의 율법과 복음: 율법의 제3사용을 중심으로,” 「기독교사상」 16/6 (1972), 94-102)
을 참조하라. 그에 의하면, 루터에게 율법의 제3용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Werner Elert, Hans Asmussen, Gehard Ebeling, Rudolf Bring, Eduard Kinder, Helmut
Thielicke 등이 있으며,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 중에는 W. Jöst, K. Barth, E. Brunner, H.
Soe, H. Gollwitzer 등이 있다.
42) WA 56:166.
43) WA 45:145. cf. LW 47, 108.
44) WA 57-III:213.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17


들음 및 믿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45)


2) 연대기적 문헌적 구분
루터는 기독교적 자유에 대한 논문(1520)에서 구약과 신약의 독
특한 구분을 시도한다. 먼저 루터는 성경 전체를 “계명과 약속”(praecepta
et promissa, or verheiszt und gebeut)으로 분류한다.46)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행하여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나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
하여 우리에게 율법이 명한 모든 것들을 행할 능력을 제공한다. 율법
이 가르치는 것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과 그런 자신의
무능력에 절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하나님의 복음이 가르
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율법의 일들을 “쉽고
간결하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율법
의 요구가 완성되었고 그래서 쉬워졌기 때문이다.47) 이러한 이유로
“계명”은 구약을 형성하고 구약이라 불리우며, “하나님의 약속”은 신
약에 속하였고 신약이라 불리운다. 나아가 루터의 신학에서 율법은 구
약에 제한되고 복음은 신약에 제한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우
리는 율법과 복음의 기능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을 규정하고 있음을 확
인한다. 그러나 이 구분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계명과 계명의 성취는
모두 하나님께 속하였다. 그분만이 홀로 명하시고 구분만이 홀로 이루
신다.”48) 이 문구에 의하면, 인간은 율법에 관여할 여지가 없어진다.


45) WA 3:178, 508, 523; WA 4:9-10; WA 7:53.
46) WA 7:23, 24, 52, 53; LL 9:803.
47) WA 7:53.
48) Ibid., “ut sint omnia solius dei, tam praecepta et plenitude eorum. Impse solus praecipit,
solus quoque implet.”
1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그러므로 루터에게 율법은 인간에게 “무용하다”(inutilia). 나아가 율
법 자체가 구약이고 복음 자체가 신약이기 때문에 신자에게 구약은 필
요하지 않고 신약만 필요하다. 이처럼 율법은 복음과 대립되며 구약책
과 신약책은 기능적인 면에서 분리된다. 루터가 율법을 말할 때에 그
것은 하나님과 인간에 의해 명하여진 모든 것들(도덕법, 의식법, 실정
법, 심지어 십계명 전부)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
요하다.49) 심지어 루터는 약속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술하고 계
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서술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루터
는 율법의 무용성을 성화되는 것(sanctificatur)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50) 이런 점에서는 루터에게 율법의 제3사용이 없다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 자신의 초기 시편 강해와는 대조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루터에겐 율법과 복음을 이해하는 두 종
류의 구분법이 있다. 첫 번째는 기능적 혹은 원리적 구분이고 두 번째
는 연대기적 혹은 문헌적 구분이다. 첫 번째 구분의 핵심은 율법과 복
음이 신구약 모두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고, 51) 율법은 구약이고
복음은 신약이란 주장은 두 번째 구분의 핵심이다. 첫 번째 구분에는
루터에게 율법의 제3 사용이 있고 두 번째 구분에 의하면 율법의 제3
사용이 루터에게 없다. 그러나 이러한 두 구분이 루터의 신학에서 공
존할 수 있는지 모순되는 것인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러한 구분을 유발한 가까운 배경들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


49) WA 2:468; WA 57:192; WA 56:67.
50) WA 7:53.
51) 신구약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바울에게 의존하고 있다. WA 10-I:13; WA DB 8:29:
“Darumb nennet auch S. Paulus Mose gesetz, das alte Testament, Christus auch, da er das
newe Testament eynsetzet.”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19


구하고 필자는 루터에게 이러한 구분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보다 깊은
출처로서 “유언”의 개념이 있다는 추론의 여지를 남기고자 했다.


3) 유언적 구분
루터의 유언 개념은 자신의 독창적인 고안물이 아니다. 성경에 의
존하되 제롬과 크리소스톰과 같은 교부들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는
루터가 그렇게 개념화한 유언의 구조를 따라 유언의 본질, 유언자인
삼위일체 하나님, 유언자며 중보자인 그리스도, 유언의 대상인 택자,
유언의 증인인 성령과 유언수납 방식인 믿음, 그리고 유산이신 하나님
을 순서대로 다루고자 한다.52) 이러한 여섯 가지 유언의 요소들은 서
로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요소들을 상호관계 속에서 설명
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언의 구조적 개념을 가지고 율법과 복음
에 대한 루터의 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설
명하려 한다. 이 유언적 접근법은 교의학적 신학자가 아니라 주석가인
루터에게 앞서 언급한 두 종류의 구분법이 조화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보증하진 않는다. 율법과 복음에 대한 루터의 구분은 신약과 구약의
구분보다 더 난해한다. 왜냐하면 율법과 복음의 구분 문제는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것처럼 성령과 믿음과 삼위일체 교리와 예정론도 깊
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구분은 루터의 저
작들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1) 유언의 본질
루터는 구약에 나오는 “베리트”( )를 “계약”(pactum) 혹은


52) WA 2:519-520. 루터의 유언 개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적 사역과 유사성을 보인
다는 것이 흥미롭다.
2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언약”(foedus)으로 번역한다.53) 그에게 “유언”(testamentum)은 성경
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54) “약속,” “계약,” “언약” 등과 크게 구
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단어들이 가리키는 실체는 “동일한
것”(rem eandem)이고55) “유언”은 “약속” 자체이기 때문이다.56) 사도
들의 가르침을 따라57) 루터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을 가리키기 때문에 성경을 그리스도 예수와의 연관성 속
에서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58) 이러한 생각은 루터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통일성을 그리스도 혹은 그의 유언에서 찾게 만들었
다.59) 이 유언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은총에 의해 특화되기 때문에 루
터의 신학을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으로 규정하는 것은 합당
하다.60)
루터는 언약과 계약과 유언 사이의 실체적 동일성을 말하지만 동
시에 유언의 본질을 “죽을 자가 자신의 유산을 언급하고 상속자를 지
명하는 약속”으로 규정하며 다른 용어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61) 즉


53) 이 두 라틴어 단어는 루터의 독일어 성경에서 “계약”(der Bund)으로 번역된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의 창세기 17장 7절, 13절, 19절과 출애굽기 34장 28절 및 예레미야
31장 31절을 참조하라. 보다 자세한 논의는 Ernst Kutsch, Verheissung und Gesetz:
Untersuchungen zum sogenannten Bund im Alten Testament (Berlin: Walter de
Gruyter, 1973), 189-206쪽을 참조하라. 그리고 루터의 “유언” 이해에 대해서는
Niemann, “Luther’s Theology as a Theology of Testament, 1513-1520,” 48-52를 참조하라.
54) WA 6:514.
55) WA 9:446-7.
56) WA 2:519: “Testamentum est ipsa promissio.”
57) WA 2:321: “Quod Apostolus promissiones dei testamentum vocat.”
58) WA 6:514: “Hoc testamentum Christi praefiguratum est in omnibus promissionibus dei ab
initio mundi.”
59) WA 56:5.
60) WA 3:356. 같은 맥락에서 하겐은 루터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이 “유언의 신
학”(theologia testamenti)을 뜻한다고 하였다. Hagen, A Theology of Testament in
Young Luther: The Lectures on Hebrews, 118쪽을 참조하라.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21


다른 용어들은 “살아있는 유언자” (victurus testator)가 약속의 주체지
만 “유언”이란 용어는 “유언자의 죽음”(mortem testatoris)과 관계하고
있기에 유언은 언약 및 계약과는 구별된다.62) 그러나 하나님은 불사
의 존재이기 때문에 유언자인 그가 죽지 않는다면 유언은 무효하게 된
다. 이러한 이해 때문에, 루터는 크리소스톰의 이해를 따라 영원 속에
서 결정된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과 죽음의 필요성은 유언의 본질 때
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63)
나아가 루터는 제롬처럼 그리스도 예수께서 불사적인 신으로는
신성을 따라 계약을 맺으셨고 죽게 될 자로서는 인성을 따라 유언을
맺으신 것이라고 이해한다.64) 이와 유사하게 루터는 성경에서 하나님
이 자신의 약속을 유언으로 말하셨을 때 그는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될
것이며 그 유언을 다시 약속이라 말하셨을 때에는 그가 영원히 살 것
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65) 나중에 다룰 것이지만
이러한 계약과 유언 사이의 기독론적 구분은 율법과 복음을 구별함에


61) WA 6:513; WA 10-I:342-343; WA 8:521. Cf. Joannis Altenstaig, Lexicon Theologicvm
qvo tanqvam clave Theologiae fores aperivntvr, et Omnivm fere Terminorum
(Colonir Acrippine: Sumptibus Petri Henningii, Bibliopolae sub, 1619), 905-907: “Vna dicitur
testamentum nuncupatiuum, & sine scriptis, & est illud, in quo testatoris & haeredis, &
legatoriorum nomina, & omnia quae in eis continentur coram testibus nuncupantur …
Testamentvm Dei dicitur sacra scriptura veteris testamenti, inquantum Deus promisit illi
populo bona future, & inquantum illa promissio erat confirm‎anda & complenda per mortem
testatoris.” 유언에 대한 알텐쉬타이히의 정의는 루터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 언
약과 유언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62) WA 6:514: “Nam ubi testamentum est, mors testatoris intercedat necesse est.”
63) WA 57-III:211. Cf. WA 6:514.
64) WA 2:521. 이러한 이해와 유사한 언약에 대한 구조적 이해는 불링거, 올레비아누스,
고마루스 같은 개혁주의 인물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Cf. Stephen Strehle, Calvinism,
Federalism, and Scholasticism (New York: Peter Lang, 1988), 134-176.
65) WA 8:521.
2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한다.66) 이 기독론적 구분은 루터의 신학
에 대한 프로이스의 유언-약속 동일시 접근법 속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된다.


(2) 유언자인 삼위일체 하나님
루터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구약 전체의 “유언자”(Testator)
다. 이유는 하나님이 율법과 복음을 정립하신 분이시고 율법과 복음
방식으로 자신의 유언을 전달하고 분배해 주셨기 때문이다.67) 하나님
은 유언을 남기시기 위해 유언의 대상이 가진 어떠한 요구나 공로에
의존하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 혹은 유언은 일방적
인 것이며 그 자체가 자비이며68)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취득된 권익
이 아니라 선물”(nit beneficium accptum, sed datum)이다.69) 그리고 유
언은 세상의 기초가 세워지기 전에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를 따라 정


66) WA 2:552. 그러나 하겐은 언약과 유언의 구분을 간과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
다. “With his theologia crucis Luther lines up covenant with testament, just as in his earlier
work he identifies promissio and pactum and testamentum.” Kenneth Hagen, “From
Testament to Covenant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8. 또한 하겐은 pactum이 testamentum과
다르지 않은 이유를 라틴 벌게이트 역본이 (pactum)를 testamentum으로 번
역한 것에서 찾았다. 이런 벌게이트 관행이 루터로 하여금 pactum과 testamentum을 혼
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롬은 비록 동일한 를 pactum과 testamentum으로
번역하긴 하였으나 pactum은 주로 구약에서, testamentum은 신약에서 번역어로 삼았다
는 사실을 본다면, 하겐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Kenneth Hagen, Luther’s Approach
to Scripture as seen in his Commentaries on Galatians 1519-1538 (Tübingen: J. C. B.
Mohr, 1993), 82.
67) WA 2:519: “Deus est testator: impse enim promittit et legat”; WA 3:144, 278: “Legem
Evangelium statuit Dominus”; WA 55-I:390: “tradiderunt et disposuerunt testamentum
eius legem evangeliumque.”
68) WA 25:13: “Ergo promissio est pura misericordia, quia meno sollicitavit, ut promitteret.”
69) WA 7:364.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23


하여진 일이기에 “가장 확실한 은혜”이다.70)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루터에게 “미래에 있을 모든 일들에 대한 영원 속에서의 미
리 정하심”(preordinatio ab eterno omnium futurorum)을 의미한다.71)
그러나 유언의 시간성에 대해 루터는 유언과 상속을 예리하게 구분한
다. “믿음이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수여하는 의는 영원한 의인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유언의 내용인 구원과 속죄와 용서는 영원하다.”72) 유언
은 시간적인 것이지만 유언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상속물은 영원하
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새 유언은 영원하다” 혹은 “그것은 새롭고
영원한 유언이다”73) 같은 루터의 언급들은 유언 자체가 아니라 그 유
언으로 말미암는 상속의 영원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려된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에 대한 루터의 이해에는 두 가지의
역설적인 엉김이 포착된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은 영원한 것
인가 시간적인 것인가?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은 그의 인
성과 신성 혹은 창세 전 약속의 무시간성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
가? 둘째, 유언을 정하시는 하나님의 자유와 유언의 유효성을 위한 성
자의 성육신과 죽으심의 필연성은 루터의 신학 체계에서 어떻게 공존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역설적인 의문을 대하는 루터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진술로 정리된다: 성경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리
스도 예수의 두 본성과 대비해서 이해할 때 의문이 풀어진다. 즉 성경
에 등장하는 모든 모순적인 진술들은 루터에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70) WA 25:13.
71) WA 56:166.
72) WA 4:246.
73) WA 6:357: “testamentum novum eternum est”; WA 4:246: “es sei ein new, ewig
testament.”
2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어떤 정형화된 “유형”(species)이나 “말쑥한 모
양새”(decor)를 가지시지 않아서다. 그분은 오직 그의 인성과 신성의
구분 속에서만 조화롭게 이해되는 분이시다.74)
이처럼 유언적 접근법의 첫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책으로 기록된
신구약 전체의 유일하고 동일한 유언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율법 혹
은 십계명과 복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율법의 조성
자”(legis conditorem)다.75) 유언적인 관점에서, 이것은 신구약에 하나
님 외에는 다른 어떠한 유언자도 없다는 의미이다. 초기 저작(Dictata
super Psalterium 1513-1515)에서 루터는 유언자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
이 전해지되 율법과 복음으로 분배가 되었다고 명확히 주장했다.76)
여기서 루터는 시편 해석에서 기독론적 의미만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의미도 강조했다. 즉 그는 “하나님 그리스도”(Deus Christus)께서 모든
시편들 안에 예언되고 “시편 전체를 통하여”(per totum psalmum) 말하
시되 “성부 및 성령과 더불어”(cum patre et spiritu sancto) 말씀을 하셨
다고 이해했다.77) 나아가 루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본성에 따라 취
하여진 위격 속에서 삼위일체 전체를 따라 말씀을 하셨다”고 진술한
다.78)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


74) WA 57-III:201-202.
75) LL 9:798; WA 40:505.
76) WA 3:278; WA 55-1:390.
77) WA 3:268; WA 55-1:380, 598. 하겐은 루터의 기독론이 기초하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
님이 그의 신학 전반에 명시적인 방식과 암시적인 방식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
다. Hagen, Luther’s Approach to Scripture as seen in his “Commentaries” on Galatians
1519-1538, 9, 85, 131.
78) WA 55-1:16: “loquitur in persona assumpte nature ad totam trinitatem.” Cf. WA 55-1:52,
112, 637.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25


님을 가르치는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뜻이 만든 것이라고 루터는 주장
한다.79) 나아가 “율법은 영적으로 이해될 때 복음과 동일한 것”(Lex
autem spirituraliter intellecta est idem cum Evanglio)80)이라고 한다. 왜
냐하면 그림자인 율법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과 그의 은총을 담
지하고 있고 그리스도 예수는 “율법의 자궁에서”(ex utero legis) 나오
셨기 때문이다.81) 다른 곳에서 루터는 “율법이 복음의 시초”(lex fuit
initium Evangelii)라고 하였다.82) 이처럼 초기 루터에게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어떠한 대립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루터의 갈라디아 강해(1519, 1535)에서 우리는 율법의 유
언자에 대한 독특한 언급을 만난다: “유언자는 하나님의 인격 안에 있
는 천사였다”(Testator fuit angelus in persona dei); “시내산에서 모세와
백성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인격 안에서 천사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83) 비록 이러한 표현들이 루터의 다른 글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서 언급된 “유언자”가 단순한 전달
자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루터의 신학에서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시간, 저자, 중보자에 기
초하고 있다.84) 특별히 중보자와 관련하여, 율법에 대한 복음의 우월
성은 율법이 “종된 천사들을 통하여”(per servos Angelos) 제정된 반면


79) WA 55-I:678: “fecit voluntates suas legem, in qua docuit quid vellet et placitum est coram eo.”
80) WA 3:96; WA 55-I:92; James S. Preus. From Shadow to Promise: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from Augustine to the Young Luther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9), 153-175. 플로이스는 루터의 시편 주석을 연구하며 루터의 해석학적 관점
과 해석학의 중세적 전통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81) WA 3:244.
82) WA 3:605.
83) WA 2:552; WA 40:495.
84) WA 40:494.
2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에 복음은 “주님 자신을 통하여”(per ipsum Dominum) 제정된 것이라
는 사실에서 찾아진다.85) 이를 확증하기 위해 루터는 율법이 수여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한 자가 주님 자신인지 아닌지에 관한 문제를
논하면서, 벌게이트 라틴본의 오역을 지적한다. 즉 출애굽기 3장 2절
의 벌게이트 본문에는 율법 수여자가 “주님”으로 표기되어 있다
(apparuitque ei Dominus in flamma).86) 그러나 자신의 독일어 역본에
서 루터는 벌게이트 역본의 “주님”(Dominus) 대신에 히브리어 텍스트
( )를 따라 “주님의 천사”(der Engel des HERRN)로 번역했
다. 여기서 루터는 모세가 아닌 천사를 중보자로 간주한다. 루터 자신
은 평소 하나님 자신만을 말씀의 유언자, 저자, 발화자로 이해했기 때
문에 천사를 율법의 유언자와 저자로 여기는 듯한 이 대목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87) 그러나 루터가 이중 유언자 문제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며, 만약 율법의 유언자를 천사로 여긴다면 이를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구별되는 것이라고 여긴 원인으로 삼았다
는 유추도 가능하다. 유언에 대한 루터의 이해에 따르면, 천사가 육체
를 입거나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천사가 율법의 유언자라 한다면 율법
은 유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천사가 율법의 유언
자란 의미는 처음부터 율법은 유효한 것으로서 주어지지 않았다는 주
장도 가능하다. 이러한 이해는 기독교적 자유에 대한 자신의 논문에서
루터가 ‘하나님 자신만이 계명을 명하시고 이루시는 분’이라고 한 테
제와도 연결된다.
루터에게 율법 혹은 계명은 두 가지의 이유로 신자들을 위한 하나


85) WA 40:494: “Lex igitur longe inferior est Evangelio, quia ordinate per servos Angelos,
Evangelium per ipsum Dominum.”
86) WA 40:494.
87) WA 4:9.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27


님의 말씀일 수 없다. 첫째, 율법의 유언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이
기 때문이다. 둘째, 천사는 죽을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죽음으로
말미암는 유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서다. 이러한 이유로 루터에게
율법은 무용하며 신자에게 무의미해 졌다. 루터에게 구약의 율법은 천
사와 모세에 의해서 주어졌고, 구약의 약속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
다. 이러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모세를 모든 기독인의 교사(ein
Lerer der Christen)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정확히 가르치고 있다88)고
한 사실은 주지해야 한다. 루터의 글에는 이처럼 서로 상충되는 듯한
표현들이 공존한다.


(3) 유언자며 중보자인 그리스도
루터는 그리스도 예수가 신성을 따라서는 유언자며 인성을 따라
서는 유언의 중보자가 되신다고 주장한다.89) 유언자일 뿐만 아니라
유언의 중보자도 되시는 것은 유언이 유언자인 그리스도 자신이 죽어
야만 유효하게 되며 이를 위해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중보자로 오셔야
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과 죽음의 필연성은 이렇게
유언의 본질적인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나아가 루터는 이러한 관점으
로 모든 성경과 만물을 이해하려 한다. 즉 성경의 모든 구절들과 세상
의 모든 피조물은 “모든 것의 목적이요 중심”(finis omnium et centrum)
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90)
유언의 중보자에 대해 루터는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중보자며
율법의 중보자는 천사 혹은 천사보다 못한 모세라고 명확히 주장한
다.91) 이 구분은 유언의 대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루터는 모세


88) WA 54:85.
89) WA 40:494.
90) WA 3:368; WA 2:521; WA3:647.
2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의 율법인 구약이 모세를 통해 유대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다.92) 즉 모세는 유대인의 율법 수여자요 교사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
서 구약이 이방인인 루터와 무관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루터는
모세가 신약 및 자연법과 동의하는 부분에 있어서 모세를 자신의 율법
수여자로 여기고자 한다.93) 루터는 성경에서 말씀을 신자에게 속한
말씀과 신자에게 속하지 않은 말씀으로 분류하기 때문에94) 모세의 계
명이 자신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고 자연과 정확히 일치하는 한 신자에
게 속한 말씀이며 이를 지키려는 태도를 취하였다.95) 여기서 루터는
성경을 복음과 율법으로 구분하되 율법은 자연법과 유대인의 법을 포
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 보건대 구약에서 루터가 거절하는 것은
유대인의 법이지 신약 혹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자연법에 해당
되는 구약의 부분마저 거절한 것이 아닌 듯하다.
이처럼 모세가 비록 유대인의 율법 수여자라 할지라도 루터는 모
세의 율법에 자연법과 하나님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
다. 이러한 구약의 긍정적인 이해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여전히 구약에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즉 구약은 유월절 희생양(das Osterlamb)
의 죽음으로 비준된다는 유언적 이유로 인해 율법은 무효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루터에게 구약은 유언자인 하나님의 죽음이 아니라


91) WA 40:495.
92) WA 6:357: “Das alte testament war ein vorsprechen durch Mosen gethan dem volk Israel.”
93)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과 본성의 빛(ratio aut lumen naturae)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은혜와 영광의 빛(lumen gratiae et lumen gloriae)으로만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고 루터
는 진술한다. WA 18:785-6.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율법의 자연법적 요소와 복음적인
요소가 루터가 말하는 율법의 이중적인 기능(usus legis politicus seu civilis /theologicus
seu spiritualis)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논문의 논지를
벗어난다. WA 40-I:430-535.
94) WA 16:385.
95) WA 16:380.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29


희생양의 죽음으로 유효하게 되기 때문에 구약은 “유언”(testamentum)
이 아니라 “계약”(pactum)일 뿐이었다.96) 그리스도 대신에 희생
양을 유언자로 삼았다는 사실이 구약을 “덧없고 일시적인 것”(zeitlich
und vorgenklich)으로 만든다고 한다.97)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유언자
의 죽음에 의존하고 있는 유효성과 무효성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짐
승의 피로 비준되는 율법의 유산은 약속의 땅으로 표상된 “덧없고 일
시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비준된
복음의 유산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 자신이다. 루터가 보기
에 구약에 있는 짐승의 희생은 육체적인 약속과 육체적인 유언과 육체
적인 상속자와 연결되어 있다.98) 이런 맥락에서, 유언의 일시적인 유
산이 짐승의 죽음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유대인은 가나안 땅과,
가나안의 축복과, 육체의 죄사함을 유산으로 상속할 뿐이고 영적인 축
복과 죄사함을 상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루터는 주장한다.99) 이와는
달리, 영적인 상속자들은 그들의 유언자인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유산100)으로 죄용서와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모든 소유와 은택을 상속한다.101)


(4) 유언의 대상인 택자
유언의 대상은 유언을 만드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다. 그
러나 루터는 이 믿음을 “택자들의 신앙”(eyn glawben der auszerwerlet-


96) WA 6:357.
97) WA 6:357-8.
98) WA 2:552: “quia carnalis hostia carnali promissioni et carnali testamento et carnalibus
haeredibus conveniebat.”
99) WA 3:437; WA 57-III:213.
100) WA 40:224.
101) WA 10-I:13.
3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en)이라 부른다. 이는 유언자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신앙이 오직 유
언의 대상인 택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102) 그래서 루터는 “이것
(유언)이 예정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haec materiam praedestinationis
tangent)이라고 조심스레 지적한다.103) 이는 유언자인 그리스도 예수
께서 모두를 위해 유언을 남기지 않으시고 예정된 자들만을 위해서 남
기셨기 때문이다.104) 하나님의 은총과 유언에 명시된 복의 상속자는
미래의 믿음과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된 자들이다.105)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유언의 상속자와 택자를 연결하되 하나님의 자녀들 혹은 약속
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
함을 강조한다.106) 그래서 유언의 상속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
이되 특별히 “선택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고 표현한다.107) 이스
라엘 백성을 이해할 때에도 루터는 그들 중에서 남은 자 혹은 하나님
의 사랑을 입은 야곱을 “선택된 자”라고 명명한다.108)
유언의 대상이 택자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우리는 유언자의 직무
인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과 죽으심이 택자들을 위한 것임을 확인한
다.109) 크리소스톰의 입장과 결을 같이하며, 루터는 유기자에 대해서
도 언급하되, 그리스도 예수께서 일부의 사람들은 상속자로 부르시고
다른 일부에 대해서는 상속권을 주시지 않았다고 진술한다.110) 택자


102) WA 54:521-522: “verleucken sie auch die erben. Denn die erben sind alleyn, welche dem
testament glewben.”
103) WA 57-III:212-3.
104) WA 18:772.
105) WA 10-I:342.
106) WA 56:394.
107) WA 8:521.
108) WA 56:107. 남은 자들에 대한 은혜의 선택을 강조하기 위해, 루터는 유실된 라틴어
문구 “secundum Electionem gratie”를 자신의 라틴어 텍스트에 추가했다.
109) 이것은 칼빈의 제한적 속죄 개념과 다르지가 않다. Cf. John Calvin, CO 55:310.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31


가 하나님의 백성 혹은 유언의 상속자가 되기 이전에 성령의 필수적인
임재(tzuuor da seyn)가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도 루터의 언급에서 발견
된다.111) 성령의 선행적인 역사 없이는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
이 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다. 성화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영원 전에
상속의 대상으로 선택되지 않은 어떠한 사람도 선이나 공로적인 일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펼친다.112) 예정에 대
한 이해의 난해함 때문에 루터는 ‘실천적 삼단논법’ 관점에서 하나님
을 경외하고 믿는 자들을 예정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113)
그러나 자신을 포함한 택자에게 예정과 선택의 문제는 너무나도 달콤
한 주제라는 사실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114)


(5) 유언의 증인인 성령과 유언수납 방식인 믿음
유언의 증인과 관련하여 루터는 요한복음 15장 24절과 사도행전
3장 15절에 근거하여 성령이 유언의 증인이 되신다고 주장한다.115)
이는 성령만이 “영감을 통해”(per inspirationem) 그리스도 예수의 유
언을 선포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116) 물론 유언의 전달에는 사람들
의 역할도 개입한다. 사실 “영감을 통해”라는 구절은 성령의 증언과
믿음 사이의 결합을 촉구하는 말이다.117) 유언의 전달은 성령이 영감


110) WA 57:211: “Tale autem testamentum alios quidem haeredes habet, alios autem
exhaeredat.”
111) WA 10-I:369.
112) WA 56:394.
113) WA 57:213: “Ideo loquendo humilius his tantum legavit, qui timent nomen eius et credunt
in eum.”
114) WA 56:381.
115) WA 57-III:213.
116) WA 3:12, 523. Cf. WA 25:13-14.
117) WA 57:77.
3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을 통해 증언을 하시고, 선지자들 및 사도들의 믿음을 통해 수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루터는 “마음의 믿음”을 “유언을 수납하는”(ein
glaube des hertzen, solch testament antzunehmen) 수단으로 이해한
다.118) 나아가 루터는 유언 및 그것의 성취를 다음과 같은 어법으로 예
정과 연결한다: 유언이 세상 속에서 성령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반포
되고 시간 속에서 구현되는 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의논과 태고적 정
하심”(certo consilio et premeditate ordinatione Dei)에 의존하고 있
다.119) 루터의 신학에서 성령의 증거와 인간의 믿음과 영원한 예정이
유언을 중심으로 만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루터는 유언의 증인과 대상을 논하되 유언을 수납하는 방편인 믿
음의 들음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과 결부시켜 이해한다. 먼저
하나님의 중보자요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들음이 없이는 인식되
지 않는다. 이는 “말씀의 본질이 들려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Natura enim verbi est audiri).120) 루터는 “들음”(auditu)을 “믿
음”(fidei)과 연결하며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은 “믿음의 들
음”(auditu fidei)으로 알려지고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루터에게 “믿
음의 들음”은 “쓰여지지 않고 선포된 복음”과 연결된다. 즉 쓰여진 율
법과 선포된 복음은 “믿음의 들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조화된다. 그리
스도 예수의 선포는 율법의 문자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구약과 신약을
통해 “믿음의 들음”으로 인해 영적으로 들려지고 이해된다.121) “율법
은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를 가지라고 우리에게 명령하고 복음은 그것
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제공하는 것”이라는 도식이 신약만이 아니라


118) WA 6:360.
119) WA 56:166.
120) WA 4:9.
121) WA 3:258.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33


구약에도 있다는 사실은 이 유언수납 수단인 “믿음의 들음”에 의해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122) 첫째, 믿음은 쓰여진 말씀인 율법과 선포
된 말씀인 복음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불릴 수 있다. 믿음으로 인해 구
약과 신약은 서로 대립되지 않고 동전의 양면처럼 조화된다. 둘째, 믿
음이 없으면 율법과 율법의 행위, 할례, 입양, 성전, 예배, 약속, 심지어
하나님과 그리스도 자신도 전적으로 무용하게 된다.123) 이런 맥락에
서 믿음은 “모든 덕들의 실체”(substantia omnium virtutum)로 간주된
다.124) 유언의 궁극적인 유산인 그리스도 예수도 이 믿음으로 말미암
아 우리의 본질이 되신다고 루터는 주장한다.125) 셋째,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게 한다. 이처럼 루터는 믿음의 개념을 확장시
켜 모든 영적인 은혜와 선물과 덕과 공로와 행위의 본질이요 기초요
원천이요 재료요 첫 열매로 간주한다.126) 율법과 율법의 행위가 선포
된 복음으로 변화되고 무용에서 유용으로 바뀌는 것도 유언을 수납하
는 믿음을 통해서다.


“모세의 율법은 선포된 것이든 기록된 것이든 영적으로 취급되
는 한 살아있는 언어이며 더 이상 죽은 문자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복음도 육적으로 취급되는 한 죽은 막대기며 모세의 율법에 관하여 언
급되는 모든 것들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127) 나아가 루터는 믿음을
복음이요, 율법의 영이요, 성경의 참된 이해로 간주한다.128) 믿음은


122) WA 56:338: “Lex precipit Charitatem et Ihesum Christum habendum, Sed Euangelium
offert et exhibit vtrunque.”
123) WA 40:217.
124) WA 4:167f.
125) WA 53-III:153: “per fidem et Christus nostra substantia.”
126) WA 3:649.
127) WA 3:457.
128) WA 3:259; WA 4:68.
3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신약과 구약 사이의 어떠한 분리의 벽도 허무는 은총이다. 신약의 사
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성육신과 다가오는 영광 속에서 성
화되듯, 구약의 사람들도 다가오는 성육신 속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화를 경험했다.129) 루터의 신학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들 중의 하나
인 “동시에 의인이요 동시에 죄인”이란 욥의 개념은 이 믿음과 결부시
켜 이해해야 한다.130) 이러한 믿음의 중요성 때문에 루터는 믿음이 그
리스도 예수의 가르침 전체라고 말하였다.131) 교회는 이 믿음 위에 세
워진다.132) 이런 맥락에서 믿음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Summa summarum)
로 이해된다.133)
이처럼 율법과 복음 혹은 문자와 영의 기능적인 구분은 유언을 영
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간주되게 하는 바로 이 성령의 증거와 믿음의
수납에 의해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134) 모든 계명들의 가르침이
더 이상 문자나 선진들의 굳은 전통이 아닐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증거
와 믿음의 수납을 통해서다.135)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유언의 증인
인 성령의 사역이 유언을 수납하는 신앙에 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
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 루터는 자신의 갈라디아 주석


129) WA 3:508.
130) WA 2:145-152; WA 2:497-98; WA 56:258, 260. Cf. Uuras Saarnivaara, Luther Discovers
the Gospel (Sain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43), 74-87.
131) WA 3:178: “Christi autem doctrina una est: ‘una fides.’”
132) WA 3:651: “tota Ecclesia ponitur supra firmam petram (id est super fidem Christi).”
133) WA 40:217.
134) 프로이스는 “문자와 영의 해석학적 분리가 구약과 신약 사이의 분리”라고 주장하고,
하겐은 “그들의 관계가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변증적인 성격도 가진다”고 주장한다.
Preus. From Shadow to Promise: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from Augustine to the
Young Luther, 1-6; Hagen, A theology of Testament in the Young Luther the Lectures on
Hebrews, 68-70.
135) WA 2:469: “Quare nisi doctrina fidei, qua cor purificatur et iustificatur, reveletur, omnis
omnium praeceptorum eruditio literalis et paterna traditio est.”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35


(1515-1516)에서 “믿음의 들음”이 듣는 행위나 듣는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믿음의 들음으로 말미암아”(ex auditu fidei) 구절
도 “믿음으로부터”(ex fide)나 “믿음의 행위로부터”(ex opera fidei)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유언의 증인이
신 “성령 자신이 믿음과 행위 이전에 주어지기”(spiritus ipse ante fidem
et opera detur) 때문이다.136)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리
스도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바울이 강조한 것처럼, 루터도 행
위나 믿음에 대한 성령의 선행성을 강조한다. “율법은 영적이며 성령
을 따라서는 의를 수행하고 육신을 따라서는 심판을 수행한다”137)는
말도 율법의 행위에 대한 성령의 선행성을 강조한다.138) 모든 율법은
문자인 동시에 영인데 문자일 것인지 영일 것인지의 여부는 유언의 증
인이신 성령의 선행적인 은총에 의해서 결정된다.139) 나아가 원죄와
선행에 있어서의 인간적인 무능에 대한 절망을 인식하는 것이 율법의
영적인 기능과 영적인 이해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것도 성령의 선행적
인 사역에 의존한다.140) 이러한 이해는 율법의 실존적인 성격, 즉 율법
은 “인간이 누구이고 누구였고 다시 누구여야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
다는 율법의 성격과 연결되어 있다.141) 즉 성령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136) WA 57-II:77. 헨드릭스와 하겐은 성령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유언의 증인으로
사려했기 때문에 믿음의 들음 이전에 이루어진 성령의 사역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Hendrix, Ecclesia in Via, 155-215; Hagen, A Theology of Testament in the Young Luther
the Lectures on Hebrews, 71-90.
137) 에벨링은 율법의 긍정적인 성격을 간과했다. 그에게는 율법이 “타락한 인간성의 실
재” (die Wirklichkeit des gefallenen Mensheseins)였다. Gerhard Ebeling, Wort und
Glaube (Tübingen: J.C.B. Mohr, 1962), 65.
138) WA 4:379: “Lex enim spiritualis est et iustificationes agit in spiritu, sed iudicia in carna.”
139) WA 57:96.
140) WA 31-II:69.
141) WA 45:146: “was der mensch sey, was er gewest ist, und was er wider warden sol.” 루터
3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서 우리가 누구여야 하는지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나아가 루터는 율법의 모든 계명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
님의 백성의 본성과 실체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경의 적정한 깨
달음과 사물의 온전한 지각이 성령을 통해 주어지기 때문이다.142) 달
리 말하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계명들을 모든 진심과 성실
로(mit ganzem Ernst und Fleisz) 가장 합당하게(erst rechte) 준수하길 원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대한 기쁨과 사랑을 우리에게 주입하
는 분이시다.143)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원하는 의지
(will mit willen)를 갇는다는 것144)은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마음에 새
겨지는 것을 의미한다.145) 성령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자원성이 없다
면 누구도 “마음의 심연에서” (von hertzen grund) 비롯되는 순종을 요
구하는 율법을 충족시킬 수 없다.146) 나아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순
종하지 않았을 때의 공포와 형벌에 의해 강요되는 의무가 아니라 그리
스도 예수의 은총에 대한 기독교적 삶의 결과적인 표현이요 감사의 형
식으로 행해지는 것이어야 한다.147) 이런 면에서 루터는 성령이 우리
에게 사랑을 주는 분이시고 사랑의 행위를 산출하기 위해 우리와 결합
되는 사랑 자체라고 하였다.148)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율법의


는 이러한 실존적 기능을 율법의 가르침(die Lere des Gestzes)이며 이는 단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의 행위적인 기능과는 구별된다.
142) WA 7:659; WA 42:272, 273.
143) WA 45:147; LL 9:807. Cf. WA 10-I:358.
144) WA 10-I:338, 360: “Christus mit seyner benedeyung macht solche leutt durch seyne
gnade und heyligen geyst.”
145) LW 47:111. Cf. WA 57-III:196.
146) WA 7:5-6. Cf. WA 56:271; WA 40-II:168: “Lex enim sine Spiritu sancto non potest
impleri.”
147) LW 47:111.
148) WA 9:42, 43.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37


요구와 형벌에 있어서는 율법의 외인이나, 그들의 삶은 “살아있고 온
전한 율법 자체”(lex ipsa viva et plena)이다.149)
나아가 구약의 사람들이 성화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신
비로운 방식에 의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해서다.150) 이런 점에
서 루터는 구약에서 아담과 모든 신실한 사람들이 성자의 성육신 이전
에도 신약과 동일한 복음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와
믿음이 “영적으로”(spiritualiter) 구약의 사람들을 위해 복음의 빛과 의
로 “성령의 보내심을 통해”(per missionem spiritus sancti) 날마다 나타
났기 때문이라 하였다.151)
비록 신약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말씀, 은혜, 구원은 비록 사도들
에 의해 외적으로 선포되나 내적인 선포는 성령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라고 루터는 주장한다.152) 이와 관련하여 루터는 모세의 율법과 하나
님의 복음을 구별하되 전자는 “우리에게”(ad nos) 오되 “문밖에 머물
지만”(foris manet), 후자는 “우리 속으로”(in nos) 들어와 우리 안에 믿
음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된다(intus accedit)고 주장한다.153) 다른 곳에
서 루터는 성령의 가르침이 의비하는 바에 대해 설명할 때 율법이 우
리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고 하였다.154)
루터는 신약과 구약에 있는 유언의 모든 대상 즉 택자들이 단일하
고 동일한 유언과, 단일하고 동일한 하나님과, 동일한 신앙과 동일한
축복을 가졌다고 주장한다.155)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신구약의


149) WA 57-III:192.
150) WA 57-III:194: “Et sic mystice significant sanctificationem spiritus, qua efficiuntur nova
creatura.”
151) WA 40:538; WA 3:523.
152) WA 57-III:196. Cf. WA 54:35.
153) WA 4:9.
154) WA 57-III:196, 217: “legem simul intus spiritualiter et foris corporaliter servabant.”
3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모든 유언의 대상에게 알려지는 것은 동일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다.
“오직 믿음” 이전에 “오직 성령”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 먼저 내적으
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누구도 선포된 복음을 듣거
나 믿을 수 없다.156) 달리 말하면, 복음이 필히 알려지는 유언의 대상
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만세전에 선택의 은혜로 말미암아 유언의 증인
을 통하여 내적으로 복음을 듣는 하나님의 사람이다.157) 그러므로 “율
법만 증거되고 문자만이 취급되고 이후에 영이 선포되지 않는 곳에서
는 생명이 없는 죽음, 은혜가 없는 죄, 위로가 없는 비참만 있다”고 루
터는 진술한다.158) 유언의 증인이신 성령이 있는 율법은 더 이상 은혜
가 없는 문자가 아니다. 신구약을 불문하고 “율법이 영적으로 이해될
때에는 복음과 동일하다”(lex spiritualiter intellecta est idem cum
Euangelio). 즉 “영적인 율법과 복음은 동일하다”(lex spiritualis et euangelium
idem sunt).159)


(6) 유산이신 하나님
유산 혹은 유언의 증여물에 대해 루터는 유언자인 하나님 자신께
서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remissionem peccatorum,
iustitiam et vitam aeternam)160)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소유
(alle seyne gutter und wolthat)161)를 주시기로 약속을 하셨다고 생각한


155) WA 10-I:343.
156) 루터의 삼위일체 이해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의존하고 있다. WA 54:28-100; WA
17-I:394.
157) WA 18:772; WA 56:394.
158) WA 7:657. Cf. WA 54, 44.
159) WA 4:134.
160) WA 40:224.
161) WA 10-I:13.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39


다. 이는 “최고의 선”(summum bonum)이신 하나님 자신이 유언의 가
장 고귀한 유산이 되신다는 의미이다.162) 루터는 말한다. “복음이 당
신에게 가깝다. 그 안에 그리고 그것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왕국 즉
모든 은총과 더불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당신 위에 머물러 있고 지
금까지 현존하고 당신에게 제공되고 있다.”163) 나아가 루터는 이러한
유산의 상속은 그것이 인간의 의지나 행위와 무관한 하나님의 의도와
예정에서 온 것이기에 필히 성취되는 것이라고 확언한다.164)
III. 결론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신학
의 총화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진리의 이해를 위한 최상의 항목
이며, 성경의 박사가 되는 시금석이 되며, 나아가 교황주의 및 분파주
의 인물들의 본질적인 오류를 극복하는 방편이며, 진실한 보편적 신학
을 보존하는 열쇠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루터 자신의 진술에서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루터의 신학 전체를 관통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
된다.


162) WA 10-I:14: “szo ist Christus deyn und dyr tzur gabe geschenckt.”
163) LW 20:182.
164) WA 18:772. 루터에게 “필히”(necessitate)는 여기에서 efficit necessitas consequentiae
를 의미한다. 결과의 필연성(necessitas consequentiae)과 결과되는 것의 필연성
(necessitas consequentis) 사이의 구분은 전적으로 무익한 것이며 궤변가의 고안물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Cf. WA 18:720-2. 루터는 “성찬”에 대해서도 이상에서 밝힌 유언
의 구조를 따라 이해한다. 유언의 상징인 빵과 포도주 아래에는(unter) 유언의 유산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진실로 현존하며”(darunder Christus fleischt warhafftig ist) 죄
의 사함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하였다. Cf. WA 6:359-365.
4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본 논문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홀과 에벨링과 프로이스 및 하겐
이 주장한 해석적 접근법, 약속 접근법, 언약 접근법과 구별되는 것으
로서, 율법과 복음이 루터 안에서 어떻게 구별되고 있는지를 보다 충
분하게 설명하기 위해 “유언적 접근법”을 취하였다. 먼저 율법과 복음
의 이중적인 구분법을 소개한 이후에 유언적 접근법을 진술하되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유언”을 “약속”과 “계약”과 “언약”과 구분하고 이 용
어들이 서로 통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언자가 죽어야 한다는 유
언의 본질에 의해서 구분됨을 논하였다. 이 유언의 본질은 율법과 복
음의 구분에 있어서 유언자의 죽음이 유언의 유효성을 낳는다는 점에
서 결정적인 소요였다. 그리고 유언의 요소들을 일별했다. 유언은 유
언자인 하나님과, 중보자인 그리스도 예수와, 유언의 대상인 택자와,
유언의 증언자인 성령과 유언수납 방식인 믿음과, 유언의 유산인 하나
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유언의 개념에 입각하여 율법과 복
음의 유언적 구분을 시도했다.
루터의 글에서 율법은 구약의 책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고 말하
여진 선포가 아니라 쓰여진 문자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맥
락에서 복음도 신약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었고 문자의 본질로서 영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이해가 루터의 글에 혼재
되어 있지만 유언적인 관점에서 보면, 율법과 복음의 구분에 대한 루
터의 사상이 보다 명료하게 이해된다. 즉 율법은 유언이며 하나님이
비록 이 유언의 저자시나 죽음이 없는 천사라는 중보자를 통해 모세에
게 주어졌기 때문에 유언의 효력 혹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상속물을 인
간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복음은 유언이며 하나님이 저자시며
육신으로 오셔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가 중보자며 영원 전 택자에게
주어진 것이며 성령의 증언과 믿음의 들음으로 그 유언이 전달되고 그
효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런 복음은 구약에도 있다. 율법이 영적으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41


로 이해되면 복음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구약에도 성령의 증언하는 역
사로 말미암아 동일한 믿음의 들음으로 유언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를
멀리서 바라보며 그의 죽으심을 따라 유언의 효력을 누렸던 택자들이
있었다고 루터는 주장한다.
구약이 주로 책과 율법으로 간주되나 구약의 시대에도 택자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유언과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상속물인 그리스도
자신을 성령의 증언과 믿음의 들음으로 수납할 수 있었기에 율법만이
아니라 복음도 구약에 있다는 루터의 이해는 루터가 그렇게도 중요시
한 율법과 복음의 구분법을 이해함에 있어서 유언적인 접근법의 중요
성을 적잖게 시사한다. 또한 이런 유언의 관점에서 우리는 루터의 십
자가 신학이 신구약을 관통하고 있음도 확인한다. 유언적 접근법이 루
터의 신학을 다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연구들이 오해한 부
분의 교정과 간과한 부분의 보완을 위해 유언의 개념적 구조에 따른
루터신학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언에 대한 루터
의 개념이 일관된 표현이나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지 않아 명료한 이해
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 유언적 관점으로 루터의 신학을 조명할 때
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한계임을 밝힌다.


4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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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45
국문초록
루터의 율법과 복음: 유언적 관점에서
본 논문은 율법과 복음의 구분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논구한다.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의 접근법 즉 원리적 기능적 구분, 연대기적 문
헌적 구분, 그리고 유언적 구분이 가능하다.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구
분이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신학의 총화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진리의 이해를 위한 최상의 항목이며, 성경의 박사가 되는 시
금석이 되며, 나아가 교황주의 및 분파주의 인물들의 본질적인 오류를
극복하는 방편이며, 진실한 보편적 신학을 보존하는 열쇠라고 말하였
다. 이러한 루터 자신의 진술에서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루터의 신학
전체를 관통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된다. 본 논문은 이것을 이
해하기 위한 홀과 에벨링과 프로이스 및 하겐이 제시한 다양한 관점과
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율법과 복음이 루터 안에서 어떻게 구별되고
있는지를 보다 충분하게 설명하기 위해 “유언적 접근법”을 취하였다.
먼저 율법과 복음의 이중적인 구분법을 소개한 이후에 유언적 접근법
을 진술하되 위한 첫번째 단계로 “유언”을 “약속”과 “계약”과 “언약”
과 구분하고 이 용어들이 서로 통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언자가
죽어야 한다는 유언의 본질에 의해서 구분됨을 논하였다. 이 유언의
본질은 율법과 복음의 구분에 있어서 유언자의 죽음이 유언의 유효성
을 낳는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유언의 요소들을 일별
했다. 유언은 유언자인 하나님과, 중보자인 그리스도 예수와, 유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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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인 택자와, 유언의 증언자인 성령과 유언수납 방식인 믿음과, 유
언의 유산인 하나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유언의 개념에 입
각하여 율법과 복음의 유언적 구분을 시도했다. 율법은 유언이며 하나
님이 비록 이 유언의 저자시나 죽음이 없는 천사라는 중보자를 통해
모세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유언의 효력 혹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상속
물을 인간에게 제공하지 못하지만, 복음은 유언이며 하나님이 저자시
며 육신으로 오셔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가 중보자며 영원 전 택자에
게 주어진 것이며 성령의 증언과 믿음의 들음으로 그 유언이 전달되고
그 효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언적 관점에 입각한 율법과 복
음의 구분에 대한 루터의 이해이다.
한병수|루터의 율법과 복음 47
Abstract
Luther on Law and Gospel:
A Testamental Perspective
Han, Byung Soo
Assistant Professor
Asian Center for Theological Studies and Mission
Yangpyeong, Korea
This article deals with Luther’s understanding of the
distinction between Law and Gospel. Luther’s approach to this
issue may be explained by principle or functional perspective,
chronological or documentary perspective, and testamental
perspective. Luther is convinced that to know the distinction
between Law and Gospel is the summa of theology to properly
understand Scripture, the supreme article for the knowledge of
Christian truth, a cornerstone to be the doctor of Scrirpture, and a
key for the preservation of true catholic theology. From this, it is
obvious that the idea of the distinction between Law and Gospel
penetrates Luther’s theology. To see Luther’s view on the
distinction, this article takes a testamental perspective in which
Luther regards testamentum as the covenant between God and the
elect, God as the Testator of testamentum, Jesus Christ a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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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tor of testamentum, the elect as the object of testamentum,
Holy Spirit as the Witness of testamentum, faith as the means to
receive testamentum, God himself as the legacy of testamentum.
From this perspective, Law is the testamentum originated by God
but given to Moses through angels who are immortal, accordingly
having no validity of testamentum and no legacy, but Gospel is
testamentum originated by God given to the elect by means of
Spirit’s testimony and their faith through Christ who in flesh
became mortal and consequently validates testamentum by his
death and thereby gives himself as the legacy of testamentum to
the elect. This is the summary of Luther’s testamental perspective
on the distinction between Law and Gosp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