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한 언어의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 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織造가 보여주는 현란한 아름다움, 잡체시는 단순히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오늘의 시단에 던진다. 또한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실험되고 있는 형태시들이 기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세상은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며, 우리는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수없는 상호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빈 칸 채우기, 數詩 八音歌 藥名體
일생동안 병고에 괴로왔는데
이월에도 감기 들어 목이 쉬었네.
삼일 밤을 끙끙대며 잠 못 이루니
사대 등신 멀쩡한 몸 헛 것이로다.
오십에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육십인들 어찌 살 수 있으리.
칠정이 날마다 지지고 볶아
팔환에 마침내 의지하리라.
구경도 참으로 보잘 것 없어
십년 동안 한갖 구슬피 탄식하네.
一生苦沈綿
二月患喉撲
三夜耿不眠
四大眞是假
五旬尙如此
六秩安可過
七情日煎熬
八還終當藉
九經眞自獠
十載徒悲咤
앞절에 이어 잡체시의 세계를 한 차례 더 소개하겠다. 잡체시 중에는 일정한 위치에 정해진 글자를 채워넣는 형태가 매우 많다. 위는 《東文選》에 실려 있는 晩翠亭 趙須의 〈數詩〉이다. 매 구의 첫 자에 차례로 숫자가 매겨져 있다. 운자는 그대로 지켜졌으므로 숫자의 질서만을 배제하면 여느 시와 다를 것이 없다. 감기로 잠까지 설치는 고통 중에 병으로 살아온 일생을 돌아보며 허무한 탄식을 토로한 것이다.
數詩는 국문시가에서도 빈번히 나타난다. 〈춘향전〉 중 춘향이 변사또의 곤장을 맞으며 부르는 〈十杖歌〉도 그 좋은 예이다. 특히 개화기 시가에 이 같은 예가 많다. 다음은 〈대한매일신보〉 제 1050호(1909. 3. 18)에 수록된 新島玉이란 이의 〈弔壹進〉이란 작품이다.
壹進會員 너희들도
二千萬中 壹分子로
三戰論에 迷惑밧고
四大綱領 主唱타가
五條約에 宣言폁니
六大洲에 怪物이요
七賊들의 奴隸되니
八域民의 怨讐로다
九秋丹楓 葉落폁니
十月蒼蠅 可憐폁다
百年富貴 求폁다가
千載遺臭 되얏고나
萬歲呼唱 폁지말아
億兆蒼生 비웃鏅다
여기서는 수자의 배열이 1에서 10에 그치지 않고, 백 천 만 억 조까지 확대 부연되고 있다. 당시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매국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 풍자한 내용이다. 수자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시상의 전개 또한 점층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창작 상 장난기를 수반하면서도, 문면은 서슬 푸르다. 바로 이러한 태도 속에 잡체시의 매력이 드러난다.
〈每日申報〉 제1959호(1912. 5.1)에 실린 수원 사는 李元圭란 이가 지은 〈가루지 타령〉이란 언문풍월도 수시의 발상을 십분 활용한 몹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一之一之 글이나 一之
二之二之 金을 二之
三之三之 집신이나 三之
四之四之 브즈런폡야 四之
五之五之 歲月가면 늙을가 돌아五之
六之六之 航業은 水路오 農業은 六之
七之七之 암컷이나 七之
八之八之 쓰고 남거던 八之
九之九之 窮交貧族 가난九之
十之十之 生前事業 成就폁야 流芳百世 폁고十之
한글 독음으로 읽어 보라. 얼마나 놀라운 말장난인가. 지면의 성격 상 더 많은 예를 들 수 없어 유감이지만, 한시에 깊은 소양을 지녔던 이들 개화기 시가의 작가군들이 익숙한 한시의 형태를 응용하여 당시 민중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개 이러한 종류의 잡체시는 일정한 위치에 채워 넣는 글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수평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春夏秋冬 네 글자를 넣으면 四時詩가 되고, 藥草의 이름을 매 구절마다 하나씩 삽입하면 藥名體가 된다. 별자리의 이름을 넣으면 星名體가 되고, 《주역》의 卦名을 넣어 지으면 卦名體가 된다. 앞서 보았던 새이름을 넣은 禽言體도 있다. 이밖에 궁궐 이름, 장군 이름, 새 이름 등 일일이 예거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四時詩의 한 예를 보자.
봄 물은 사방 못에 넘실거리고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 많네.
가을 달은 해 맑은 빛을 비추고
겨울 산엔 찬 소나무 빼어나도다.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寒松
매 구절의 첫자가 春夏秋冬이다. 흔히 陶淵明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明나라 楊愼의 《升菴詩話》에 이미 그의 작품이 아니라 晉 顧愷之의 작품임을 밝혀 놓았다. 봄날엔 넘실대는 못 물, 여름 날 기이한 산 봉우리 모양을 짓는 뭉게 구름, 가을 날의 시릴듯 푸른 달빛, 겨울 산 마루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사시의 광경은 이렇듯 건강하니, 그 속에 살아 가는 인간의 호흡도 따라서 해맑아 진다.
쇠 창으로 지는 해를 당기어 보나
이 일 본시 기약하기 어렵네.
돌밭의 황량함을 일구었어도
세모엔 생각과 어그러지네.
실이 물듦도 슬프다 했다지만
길 막혀도 능히 슬퍼하지 않으리.
대 숲엔 예전 어진 이 있어
맑은 풍도 높아서 따를만 해라.
바가지는 매달려도 먹지 않으니
흰 머리로 깃들어 삶 달게 여기네.
흙 인형이 나무 인형 비웃으면서
떠 내려가 너는 어딜 가려뇨.
가죽 신 신고서 티끌 속을 달려도
高人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네.
감귤로도 먹고 살기 충분하거니
어찌 모름지기 벼슬을 하랴.
金戈挽落日
此事本難期
石田理荒穢
歲暮違所思
絲染尙云慟
途窮能勿悲
竹林有古賢
淸風高可追
匏瓜繫不食
白首甘棲遲
土梗笑木偶
漂流爾焉之
革華走塵埃
恐見高人嗤
木奴足生理
何須鐘鼎爲
조선 중기의 시인 權禝의 〈八音歌 書懷〉란 작품이다. 제목의 '八音歌'란 시의 형식을 말하고, '書懷'는 제목이 된다. 八音歌는 《周易》 팔괘에 맞춘 金(鐘) 石(磬) 絲(絃) 竹(管) 匏(笙) 土(壎) 革(鼓) 木(皯槗) 등의 여덟 악기를 매 홀수 구 첫자에 순서대로 얹는 형식의 잡체시이다. 陳나라 沈炯이 처음 이 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개 이러한 형식은 한 편의 시 안에 12辰이나 八音을 구비함으로써 보다 완벽한 형식미를 갖출 수 있다고 믿은 옛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다.
시의 각 구절들은 모두 전거가 있는 말들이어서 행간의 의미가 깊다. 쇠창으로 해를 끌어 당기는 일이나, 쓸모 없는 돌밭을 일구어 좋은 결실을 기대한 것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하고 애를 써 보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보니 '역시'의 탄식을 금할 길 없다. 예전 墨子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도 슬퍼했다지만, 竹林의 맑은 풍취를 본받아 마음을 닦을 뿐 슬퍼할 것은 없다. 묻혀 사는 초라한 삶이지만 아첨 모리배가 판치는 벼슬길을 어찌 부러워 할 것이랴.
개화기 〈만주일보〉 1919년 10월 1일자에는 사몽이란 필명자가 투고한 〈苦는 樂의 種〉이란 제목의 시가 실려 있는데, 八音歌와 비슷한 발상으로 지어진 실험시이다. 그 첫줄에 '자운'이라 하여 "지금의 우리 고생 장래의 락이로다"는 한 줄이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지금의 우리들은 고생중에 싸였네
금음밤에 불없이 헐덕이는 우리들
의워싸고 있는 것 제일 못된 악말세
우리의 지금 고생 비관말고 힘쓰면
리상저끝 결과가 불원간에 오리라
고생끝에 락이란 예로부터 있는 말
생각하고 깨다라 락심말고 해보소
장차고 무한하든 우리들의 고생이
래두에 끝있을 것 자신하고 분발해
의리없는 저 악마 죄 내쫓아 바리고
락엽진 오얏남게 꽃구경을 합시다
이제는 그전 고생 다없애 바렸다고
로유남녀 다 모혀 지낸 고생 생각해
다정코 자미있게 기쁜 노래 부르세
각 행 첫자가 바로 '자운'이 되며, 전편의 主旨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특이한 형태의 실험시이다. 각 행 첫줄을 주제로 내걸어 놓고, 다시 각 행의 문맥 의미 속에 그것을 감춘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잡체시 중에 흥미로운 것이 藥名體이다. 매 구절마다 藥草의 이름을 하나씩 슬쩍 끼워 넣는 것이 정해진 규칙의 전부다. 물론 의미는 그대로 순조롭게 읽혀야 한다.
半夏에 서울에 머무니
병 아직 안 나았다 말들을 하네.
다만 마땅히 고향으로 돌아가
안개 달빛 앞 호수서 낚시질 하리.
半夏留京口
人言病未蘇
只當歸故里
烟月釣前湖
權禝의 藥名體 시이다. 각 구절마다 각각 半夏 人言 當歸 前湖(胡) 등의 藥名을 슬며시 끼워 넣었다. 일상적 의미로 읽을 뿐 다른 암시적 의미는 없다.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製述官으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행차에 참여 하였는데, 큰 병을 앓은 뒤끝이라 사람들이 많이들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약을 지어 먹노라니까, 그 약방문에 '人言'이란 약초가 있으므로 장난 삼아 지었노라는 것이다. '人言'은 '砒霜'이라고도 하는데 극독을 지녀 극히 소량만으로 약재로 쓰인다. 여기에 쓰인 약재들은 모두 痰이나 감기 따위의 치료제로 쓰이는 것이니, 아마 당시 그가 큰 병을 앓은 뒤끝이라 허하여 기침 감기가 심했던 사정까지도 짐작할 수 있겠다.
구슬로 꿴 고리, 藏頭體와 疊字體
韓忠은 기개가 호방하고 비파 연주 솜씨도 뛰어났던 문사였다. 그가 奏請使로 중국에 가게 되었는데, 용한 점장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평생의 길흉을 점치게 하였다. 점장이는 그의 사주를 따져본 뒤, 시 한 수를 적어 주었다. 내용은 이러하였다.
年壯氣拔天摩 把龍泉幾歲磨 上梧桐將發響 中律呂有時和
傳三代詩書敎 起千秋道德波 幣已成賢士價 生何獨怨長沙
위 6자 8구의 시는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무엇을 예언한 것일까? 시를 받아든 韓忠은 뜻을 알 수가 없어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점장이가 써준 것은 藏頭體라고 불리는 일종의 잡체시이다. 문자 퍼즐의 한 종류로, 그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각 구의 맨 끝자를 破字하여 그 아래 토막을 그 다음 구의 첫자로 사용하면 된다. 즉 첫구의 끝자가 '摩'이니 이를 破字하여 둘째 구 첫자에 '手'를 얻을 수 있고, 둘째 구 '磨'에서는 '石'을 얻게 된다. 같은 원리로 '響'에서 '音'을, '和'에서 '口'를 얻을 수 있다. '敎'에서 '文'을, '波'에서 '皮'를 떼어내고, '價'에서 '賈'를 얻는다. 끝구의 '沙'에서 다시 '少'를 취해 맨 첫자에 이어 붙임으로써 이 퍼즐은 완성된다. 이와 같이 해서 위 시를 다시 원래 상태대로 복원시키면 다음과 같다.
젊은 날 장한 기운 天摩를 내뽑으니
손에 龍泉劍 잡고 몇 해를 갈았던가.
섬돌 위 오동잎은 가을 소리 내는데
그 소리 律呂에 맞고 때와 부합하는도다.
입으로는 三代 詩書의 가르침 전하였고
그 글은 천추의 도덕 물결 일으켰네.
폐백으로 이미 賢士의 이름 이뤘거늘
賈生은 어찌 홀로 長沙를 원망했나.
少年壯氣拔天摩
手把龍泉幾歲磨
石上梧桐將發響
音中律呂有時和
口傳三代詩書敎
文起千秋道德波
皮幣已成賢士價
賈生何獨怨長沙
한 사람의 운명을 예언한 시이므로 행간에 심상찮은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 처음 1.2구는 韓忠이 젊은 날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때를 기다리던 시절을 이름이다. 섬돌 위 오동잎이 가을 소리를 내니, 그 소리가 律呂에 맞고 때에 부합된다는 3.4구는 그가 학문적 온축을 더해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로 성장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5.6구에서는 다시 그의 벼슬길에서의 경륜을 기렸다. 곧 입으로는 詩書의 가르침을 외우고 그 문장은 천추의 道德을 일으켜, 바른 학문과 도덕의 표양으로 내세울만한 인재였음을 말했다. 7구의 皮幣는 예전 賢士를 등용할 때 임금이 하사하는 가죽과 비단 등의 예물이다. 그러므로 7구는 임금의 知遇를 입어 그 이름이 높이 드날림을 말한다. 마지막 8구는 漢나라 때 賈誼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젊은 시절 모함을 입어 먼 곳으로 귀양 가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과연 그는 젊은 나이에 당당히 과거에 급제하여 吏曹正郞, 弘文館 典翰 등의 요직을 거쳐 1518년에 宗系辨誣의 막중한 사명을 띠고 奏請使 南袞의 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 갔다. 그러나 현지에서 南袞과 잦은 의견 대립으로 마침내 그의 미움을 사, 돌아와서는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좌천되었고, 재임 중에 일어난 己卯士禍에 趙光祖 일파로 지목되어 그는 8구의 예언처럼 거제도로 유배되기에 이른다. 이듬해 辛巳誣獄에 다시 남곤의 책략으로 연좌되어 마침내 옥중에서 비명에 죽었다. 金正國의 《思齋瓸言》과 자신의 문집 《松齋集》에 실려 있다.
藏頭體란 글자 그대로 각 구절 첫 글자에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詩體이다. 이를 달리 말해 玉連環이라고도 하는데, 玉이란 '玉篇'의 예에서도 보듯 글자를 말하니, 玉連環이란 글자가 이어져 고리를 이루는 '꼬리따기 노래'라는 뜻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늬 한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감춰진 규칙을 고려하면 각 구의 끝 글자가 놓이는 순간 다음 구절의 첫 글자가 제한되니, 창작 상 고도의 기교와 언어 구사력이 요구된다. 그러면서도 운자는 엄격하게 지켰다.
낙엽 우엔 쓸쓸히 서리 내리고
相如는 병 앓으며 빈 집에 누웠네.
흙 계단 황량한 풀, 가을에도 푸르고
시내가 국화꽃은 늦저녁에 향기롭네.
구름 사이 햇빛은 먼 하늘에 밝은데
바람은 기러길 불어 높은 뫼를 건넨다.
산촌에서 사물 보다 때 늦음에 놀라니
어찌 하면 벌레 소리 멀리로 쫓을건고.
木葉蕭蕭正着霜
相如多病臥虛堂
土階荒草秋猶碧
石澗黃花晩更香
日色暎雲明遠昊
天風吹雁度高岡
山村覽物驚時晏
安得嚊聲不近床
權擘의 〈秋日山齋〉란 작품이다. 소소한 가을날의 감상을 잘 포착하였다. 서리 진 낙엽, 병 들어 빈 집에 누워 있는 고단한 신세이지만, 황량한듯 푸른 풀과 늦저녁에 향기로운 국화를 自任하며 오롯한 몸가짐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을 어찌 머물릴 것이랴. 이 작품 또한 앞서의 규칙이 꼭 같이 적용되고 있는 藏頭體이다. 첫 구 끝 자 '霜'에서 둘째 구 첫 자 '相'이 나왔고, 8구 끝 자 '床'에서 첫 구 첫 자 '木'이 나왔다.
사실 필자가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문집 어디에도 이러한 규칙을 설명해 놓은 것이 없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시를 잡체시의 범주에 넣어 두었는지 조차 의아했었다. 이 규칙을 발견한 것은 엉뚱하게도 일단 번역이나 해 놓고 보자는 마음으로 원문을 옮겨 적던 과정에서였다. 이상하게 구절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글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 규칙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새삼스럽다.
일전에 梅軒 尹奉吉 義士의 기념관에 들렸을 때, 그곳에서 尹義士가 젊은 시절 지었다는 한 수의 흥미있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 시는 이러하다.
썩지 않을 이름으로 선비 기개 밝으니
선비 기개 밝고 밝아 만고에 해맑도다.
만고에 맑은 마음 배움에 달렸으니
배워 행함 속에 썩지 않을 이름 있네.
不朽聲名士氣明
士氣明明萬古淸
萬古淸心都在學
都在學行不朽聲
앞서 본 藏頭體가 앞 구의 끝자를 破字하여 다음 구의 첫자로 삼는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각 구절 끝의 세 글자가 다음 구절에 그대로 반복되고, 4구의 끝 세 자는 다시 첫 구의 첫 부분에 되풀이 되어 꼬리따기로 맞물리는 완벽한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藏頭體의 亞種 쯤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이를 달리 疊字詩라고 한다. 다른 예로
舞臺는 작은 세상이요,
天地는 커다란 舞臺일러라.
舞臺小天地
天地大舞臺
와 같은 구절들은 모두 비슷한 발상에서 지어진 것이다. '小'와 '大'를 중앙에 두고 '舞臺'와 '天地'의 위치를 서로 바꾼 것인데, 의미는 간결하면서도 깊은 함축을 담았다.
思伊久阻歸期
靜 憶
轉漏聞時離別
위 시도 疊字詩이다. 지은이는 宋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秦少游이다. 이 시는 왼쪽 '靜'에서 시계 방향으로 7언으로 끊는데, 뒤의 넉 자 또는 석 자가 다음 구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읽는다.
돌아올 기약 늦는 그대를 생각타가
돌아올 기약 늦어지니 이별을 떠올리네.
이별을 떠올릴 젠 시간도 더디 가고
더딘 물시계 소리 들으며 그대 생각 잠기었소.
靜思伊久阻歸期
久阻歸期憶別離
憶別離時聞遲轉
時聞遲轉靜思伊
秦少游의 아내 蘇小妹가 친정 오라비인 蘇東坡의 집에 다니러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를 그리며 보낸 시이다. 이 시를 받아본 아내와 蘇東坡는 똑같은 詩體로 각각 한 수씩 시를 지어 화답하고, 서둘러 남편에게 돌아왔다. 그녀가 답장으로 보낸 시는 이러하다.
蓮人在綠楊津
採 一
玉漱聲歌新唞
이를 다시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읽으면,
연밥 따는 사람은 버들 나루에 있는데
푸른 버들 나루엔 한 곡조 새 노래.
한 곡조 새 노래, 소리는 옥 같은데
옥같은 노래 소린 연밥 따는 사람일레.
採蓮人在綠楊津
在綠楊津一唞新
一唞新歌聲漱玉
歌聲漱玉採蓮人
가 된다. 남편의 편지를 받았을 때 그녀는 마침 오빠와 함께 호수 위에서 연밥 따는 광경을 보고 있던 참이었고, 연밥 따는 아가씨들이 부르는 노래 가락에 정신을 뺏기고 있던 중이었다.
破字놀음과 析字詩
한시 중에는 앞서 藏頭體와 같이 破字하여 장난을 친 문자 유희가 심심찮게 있다. 다음은 흔히 김삿갓의 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신선은 산 사람이나 부처는 사람 아니요
기러기는 강 새지만 닭이 어찌 새리요.
얼음이 한점 녹으면 도로 물이 되고
두 나무 마주 서니 문득 숲을 이루네.
仙是山人佛弗人
鴻惟江鳥鷄奚鳥
氷消一點還爲水
兩木相對便成林
말인즉 구구절절이 옳다. '仙'은 '人'과 '山'이 결합된 것이니 이를 破字하면 '山人'이 되고, '佛'은 '弗人'이 된다. 또 '鴻'은 '江鳥' 두 글자를 합한 것이고, '鷄'는 '奚'와 '鳥'을 묶은 것이다. 일단 이 네 글자를 破字하여 이를 의미로 풀은 것이 1.2구가 된다. '氷'자에서 점 하나가 녹아 버리면 '水'가 된다. '木'이 두 개 나란히 마주 보면 '林'이 된다. 재미있는 문자유희의 모습이다.
청나라 때 문인 史致儼이 아홉살 때 縣試에 응시하였는데, 현령은
한가로이 문 가운데 달을 보면서 閒看門中月
라는 구절을 출제하였다. 그러자 그는 즉각
생각은 마음 속의 밭을 간다오. 思耕心上田
라는 말로 응대하였다. '閒'은 글자 모양이 '門' 가운데 '月'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思'는 '心' 위에 '田'을 얹은 꼴이니, 절묘한 대구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의미도 새겨둘 만 하니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그밖에
기러기는 강가에 사는 새이고
누에는 천하의 벌레로구나.
鴻是江邊鳥
甹爲天下盤
같은 것도 모두 破字를 활용하여 같은 원리로 지어진 구절들이다.
문을 나서 멀리 보니 산마다 푸르르고
벗을 보낸 뒤부터 달만 보면 반갑구나.
出門遠觀山山翠
朋友相送月月親
는 '出'을 '山山'으로, '朋'을 '月月'로 각각 破字하여 장난친 경우이다. 이러한 장난이 보다 더 진전되면, 다음과 같은 창작으로 이어진다.
해와 달 아침 저녁 환하게 밝고
산 바람에 이내가 절로 이누나.
돌 껍질은 깨뜨려도 단단만 하고
고목은 말랐어도 죽지 않았네.
보고 싶은 그대가 오지 않으매
마음은 천리나 떨어져 있는듯.
시를 지어 黃鶴을 노래하자니
志士의 마음은 끝이 없어라.
日月明朝昏
山風嵐自起
石皮破仍堅
古木枯不死
可人何當來
意若重千里
永言詠黃鶴
志士心未已
宋나라 때 무명씨의 작이다. 산 속을 거닐며 먼 곳에 있는 知己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이제 글자가 조합되는 경위를 알아보자. 처음 다섯 구는 앞의 두 글자를 합하여 세 번째 글자로 만든 것이다. 즉 '日月'이 옆으로 합쳐져 '明'이 되고, '山風'은 아래 위로 '嵐'이 되었다. '嵐'은 산 속에 떠도는 안개 비슷한 푸른 기운, 즉 이내를 말한다. '石皮'는 차례대로 '破'자를 만들고, '古木'은 뒤집어 '枯'가 되었다. 5구의 '可人'은 앞쪽에서 '何'가 되고, 6구는 '千里'는 뒤쪽에서 '重'을 조합하였다. 다시 '永言'으로 '詠'을 만들고, 8구에서는 '志士'로 '心'을 만들었는데 여기서는 글자를 합하지 않고 오히려 빼고 있다. 같은 원리로 글자를 만들어 가면서도 각 구절이 위치나 방식에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었고, 각 구절의 가운데 글자를 組合字로 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런 형태는 좀더 유희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명나라 때 盧단이 장난으로
새가 바람 속에 들어가더니
벌레를 물고 나와 봉황 되었네.
鳥入風中
銜出盤而作鳳
라고 노래하였다. '風'자 속으로 '鳥'가 들어가서는 '盤'을 물고 나왔으니, 결국은 '鳳'자로 된 것이다. 그러자 그 친구 王雲風이 대답하기를,
말이 갈대 물가를 거닐다가
풀을 다 뜯어 먹자 나귀로 변했네.
馬行蘆畔
吃盡草以變驢
라 하였다. '馬'가 '蘆' 곁을 지나다가 '艸'를 다 뜯어 먹었으니 남은 것은 '盧' 뿐이다. 거기에 다시 '馬'를 붙이면 '驢'가 된다. 묘한 장난이다. 더욱이 王雲風에게 '風'자로 농을 걸자, 그는 盧단의 '盧'자로 되받아 응수한 것이어서 묘미가 있다. 김삿갓의 시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하늘이 모자를 벗고 한 점을 얻으며
'乃'가 지팡이를 잃고 띠를 하나 둘렀네.
天脫冠而得一點
乃失杖而橫一帶
무슨 소리일까. '天'이 모자를 벗으면 '大'가 된다. 여기에 다시 한 점을 얹으면 '犬'이다. '乃'가 지팡이를 잃으면 '了'만 남고, 여기에 다시 띠를 하나 둘러 주면 '子'가 된다. '犬子' 쉽게 말해 '개새끼'이다. 부아가 치밀어 욕은 퍼부어 주어야겠는데 툭 뱉는 대신 비꼬아서 말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는 이렇듯 글자를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破字나 合字의 방식을 활용한 隱語나 수수께끼가 많이 전해진다. 《後漢書》 〈五行志〉에는 漢나라 獻帝 때 서울에서 불리웠다는 동요가 실려 있다.
천리초는 어찌 저리 푸르른가.
열흘 동안 점을 치니 살지를 못한다네.
千里草何靑靑
十日卜不得生
무슨 말인가. '千里草'를 한데 묶으면 '董'이 되고, '十日卜'은 '卓'자가 된다. '靑靑'은 푸르게 우거져 왕성한 모양이고, '不得生'은 결국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 노래는 당시 전횡을 일삼던 간신 董卓이 지금은 저렇듯 날뛰고 있지만 마침내는 머지 않아 망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성 讖謠였던 것이다.
고려 말 '十八子得國'의 讖言이 李氏 朝鮮의 건국을 예언했다던가, 趙光祖를 모함키 위해 대궐 오동잎에 꿀물로 '走肖爲王'이라고 새겨 놓아, 벌레가 이를 갉아 먹자 왕에게 바쳐 趙氏가 王을 꿈꾼다고 모함하여 士禍의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것은 다 위와 같은 착상에서 나온 것이다.
다음 시는 唐末 어떤 나그네가 靑龍寺란 절로 스님을 찾아 왔다가, 만나주지 않고 물리치자 절 문에 적어 놓고 갔다는 작품이다.
감실에 새긴 용은 동해로 가고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도다.
글을 숭상하는 이 이제는 없어
돌멩이 부서지고 모래 되었네.
龕龍去東海
時日隱西斜
敬文今不在
碎石入流沙
나그네는 무슨 뜻으로 이런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일까? 제 1층의 뜻은 이렇다. 靑龍寺에 와서 용과 같은 큰스님을 만나 佛法의 大義의 깨닫고자 하였건만, 먼 길을 찾은 객을 절은 문전박대로 쫓아낸다. 고약한 절 인심이다. 그래서 그는 1.2구에서 靑龍寺에 이미 龍이 떠나 버려, 절의 기상도 서산의 落日처럼 기울어 간다고 조소하였다. 큰 바위 같이 중심을 잡아줄 學僧이 없으니 나머지야 돌멩이 부서진 모래알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조소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제 2층의 숨겨진 퍼즐이 있다. 위 시는 자세히 보면 앞에서 본 것과 같이 破字를 활용한 析字詩이다. 1구 첫 자 '龕'에서 반을 끊어 둘째 자 '龍'으로 이었고, 2구도 '時'를 갈라 '日'을 만들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敬'에서 '文'을, '碎'에서 '石'을 따왔다.
뒤늦게야 한 중이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우리들을 크게 욕한 시로구나!"라고 하였다. 그 중은 이 시에 담긴 제 3층의 암호를 읽은 것인데, 그것은 '合寺苟卒' 네 글자이다. 이 글자들은 앞서 破字하고 남은 것들이다. 즉 '龕'에서 '龍'을 떼고 '合'이 남았고, '時'에서 '日'을 취하자 '寺'가 남은 것이다. 나그네는 의도적으로 '合寺苟卒' 네 글자를 남겨 '온 절간에 구질구질한 졸장부' 밖에 없음을 기롱한 것이다. 破字를 활용한 비교적 단순한 析字詩가 이에 이르러 다시 한 단계 더 복잡하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離合體와 문자 퍼즐
硏石은 그대로인데
峴山은 이미 무너져 버렸네.
姜女가 떠나가자
孟子는 오질 않네.
硏石猶在
峴山已頹
姜女己去
孟子不來
蘇東坡가 자신의 벼루 뚜껑에 새겨 놓았다는 내용이다. 峴山의 돌을 캐어 벼루를 만들었다. 하도 많이 캐고 보니 峴山은 모두 닳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캐낸 벼루 돌은 아직도 남아 있다. 姜女가 떠나가자 孟子가 더 이상 오질 않는다는 말은 《孟子》〈梁惠王〉下에서 '爰及姜女'라 한 구절을 가지고 응용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보아도 '姜'에서 '女'가 떠나니 '羊'만 남고, '孟'에서 '子'가 오지 않으니 '皿'만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구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별반 특별한 지시적 의미는 없고, 다만 각 구의 첫 글자에 감추어 둔 비밀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그럴듯한 糖衣를 입혀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제 그 비밀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앞서 藏頭體에서는 글자의 아래 위 반토막을 내어 그 다음 구절에 응용하였는데, 여기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첫구의 좌우 반토막에서 앞쪽을 떼고, 둘째 구에서는 뒷쪽을 떼어, 이를 다시 한데 붙여 한 글자로 만들고, 3て4구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서 다시 한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즉 '硏'에서 '石'을 떼고, '峴'에서 '見'을 떼어 이를 합하면 '硯'이 된다. 또 '姜'에서 '羊'을 잘라 '孟'에서 뗀 '皿'과 합하여 '盖'를 만든다. 이 두 글자를 합하면 '硯盖' 즉 '벼루 뚜껑'이 된다. 그래서 東坡는 시치미를 뚝 떼고 위 네 구절을 벼루 뚜껑에 새겨 둔 것이다.
離合體란 이와 같이 각 구절의 첫 자에서 반토막씩 잘라 둘을 합쳐서 한 글자를 만들어, 이렇게 만들어진 글자의 조합으로 제목을 삼는 형식의 詩體이다. 말 그대로 글자가 일단 떨어졌다가(離) 뒤에 다시 합쳐지는(合) 방식을 말한다. 離合體는 앞서본 藏頭體와 유사하지만, 작시에 있어 더 고도의 숙련이 요구되는 몹시 까다로운 형식이다. 여기에도 여러가지 변이형태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는데, 후대로 갈수록 제한이 까다로와지는 양상을 보인다. 藏頭體와 離合體는 모두 앞에서 본 破字 놀이의 발상 위에 더 까다로운 제한을 얹어 만든 문자유희이다.
이제 본격적인 완성된 형태의 離合體 詩를 한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조선 중기 谿谷 張維의 작품이다.
흘러가는 세월 문득 이 몸 바꾸어
장차 한가로이 노닐만 해라.
천지의 소리를 귀여겨 들으니
귓가엔 떠들썩 칼 고르는 소리로다.
시대에 쓰임 구하려도 이미 늦었고
반쯤 센 터럭만 어지러이 흩날리네.
욕심 많은 저 名利의 사람은
밝은 해에 가벼운 갖옷 뽐내네.
멋대로 놓아두니 즐거워 편안한데
다시 몸소 고기 잡고 나무를 하네.
璞鬼가 범에게 부림 당하듯
사람도 간혹 요귀를 만난다네.
머리 묶고 즐거이 사물을 살펴보면
길하고 흉한 분별 모두 스러지리.
순박하게 겉치장도 마다하나니
나무가 썩으면 무엇을 새기랴.
온 세상은 쫓아 다툼 좋아 하여서
나와는 서로 맞지를 않네.
詩書는 배워봤자 무덤 파는 구실되고
언어도 한갖 싸움을 낼 뿐.
진실로 궁해도 道는 잃지 않으리라
옛사람 이미 아득하지만.
어리석다 마음을 졸이는 사람
마음 속 언제나 애가 타리니.
爌年糬已改
且可閑逍遙
聽取天幡鳴
耳邊喧調刀
干時良已晩
二毛紛飄蕭
沓沓名利子
白日誇蟬貂
弛置樂自便
也復觀漁樵
璞鬼役於虎
人或遭昏妖
結髮喜玄覽
吉凶窮長消
椎樸謝外飾
木朽安可彫
擧世好趨競
與我不相要
詩書資發塚
言語徒婥婥
固窮不失道
古人已寂廖
惑哉內熱子
心裏長如焦
늙으막의 심경을 술회한 전 24구의 긴 시이다. 어지러운 세상, 사람들은 그저 번드르한 갖옷만을 뽐내고,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귀신에게 씌운듯 잊은지 오래다. 《論語》에서는 군자의 삶의 자세를 "궁해도 義를 잃지 않고, 현달해도 道를 떠나지 않는다. 窮不失義, 達不離道"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공연한 허욕에 사로잡혀 속만 태우고 있질 않은가. 위 시는 이렇듯 고요히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담담한 시선이 독자를 명징한 일깨움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이제 각 구절들 속에 감추어진 비밀, 즉 離合의 퍼즐을 풀어보기로 하자. 퍼즐의 열쇠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각 구절의 첫 자에 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각 구절의 첫 자만을 네 구씩 나누어 다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爌且聽耳 干二沓白 弛也璞人 結吉椎木 擧與詩言 固古惑心
이제 각 네 글자의 묶음을 찬찬히 살펴 보자. 앞서 離合體의 설명을 염두에 두고 보면 첫구 '爌'에서 앞쪽 '瓴'만을 취하고, 남은 '且'는 2구의 첫자로 쓴다. 다시 3구 '聽'에서 뒤쪽 '宏'을 취하고 남은 '耳'는 4구의 첫자가 된다. 그래서 떼어낸 두 글자 '瓴'과 '宏'을 합치면 '德'자가 된다. 같은 원리로 5구에서 8구의 조합에서 '水'를 얻을 수 있고, 9구에서 12구까지로 '張'자가 만들어 진다. 13구에서 16구까지는 '維'자를, 17구에서 20구까지는 '持'자를 만들 수 있다. 끝 21구에서 24구까지에서 '國'자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자는 '德水 張維 持國'이라는 여섯 글자이다. 德水는 張維의 본관이고, 持國은 그의 字이니, 결국 위 시에 감추어둔 離合字가 지시하는 바는 '나' 즉 시인 자신인 셈이다. 시인이 말하려 한 것도 바로 '나'의 처세관에 대한 피력이었다.
이렇듯 정격의 離合體 詩는 1구 첫 글자의 앞쪽 반과, 3구 첫 글자의 뒤쪽 반을 떼어 합하고, 떼고 남은 나머지 반은 각각 2.4구의 첫 글자로 써야 한다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다. 이 퍼즐을 풀어 얻은 글자가 바로 그 시의 제목이 된다. 얼마나 놀라운 언어의 유희인가. 말하자면 離合體 한시는 각 구의 첫 글자를 거의 미리 정해 놓고 시를 짓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언어 운용상의 제한과 어려움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위 張維의 시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그런 제한을 받은 흔적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이밖에도 기묘한 잡체시는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시들 속에는 그 어려운 한자를 마치 떡 주무르듯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던 옛 시인들의 풍류가 거나하다. 장난은 장난이되 격조를 잃지는 않았던 것이 잡체시를 지었던 고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이런 창작을 접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도대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습작의 과정을 거쳤으면 이같이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언어를 매만지는 장인의 프로 근성이 이런 잡체시를 낳았다.
오늘날에 있어 잡체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부단한 언어의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 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織造가 보여주는 현란한 아름다움, 잡체시는 단순히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오늘의 시단에 던지고 있는듯도 싶다. 또한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실험되고 있는 형태시들이 기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세상은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며, 우리는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수없는 상호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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