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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동리선생문집東籬先生文集 해제/권진호.국학진흥원

동리선생문집東籬先生文集.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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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봉 김성일4) 선생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送鶴峯金先生日本通信使] 기축년(1589) 12월5)


옛 사람 사명 띠고 국문을 나설 적에 古人將命出國門
이미 삶과 죽음 상관하지 않았는데 已置生死度外耳
오늘날 사람들은 이불 들고 입직할 때 今人持被入直日
여종 보고 집안일을 시시콜콜 당부하네 言語刺刺顧婢子
내가 이들 두 사람의 기상을 살펴보니 吾觀二人之氣像
아득히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네 逈然不侔如天地
선생께선 오늘날의 정포은6) 같은 분으로 先生當世鄭圃隱
일찌감치 남아로서 사방의 뜻7) 지녔었지 早有男兒四方志
지난날 주나라의 예악문물 관광할 때8) 昔年曾觀周禮樂


4) 김성일(金誠一, 1538~1593):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 본관은 의성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1568년 문과에 급제한 후 장령·부제학·나주 목사·경상우도 병마절도사·경상우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학봉집이 있다. 5) 기축년(1589) 12월:「동리선생연보」에는 경인년(1590) 3월에 일본 통신사로 떠나가는 학봉 김성일을 전별했다
고 하였다. 6) 정포은(鄭圃隱):포은은 고려말 충신인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호이다. 우왕(禑王) 1년(1375)에 정몽주
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왜구(倭寇)의 침입을 금지시켜 줄 것을 교섭하였는데, 그때 사신다운 풍채가 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매우 존경하였다고 한다. 7) 사방의 뜻:천하를 경략하고자 하는 큰 뜻을 말한다. 고대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桑弧]에
쑥대 화살[蓬矢]을 메겨 천지 사방에 쏘아, 장차 천하에 원대한 일을 할 것임을 기대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예기「내칙(內則)」에, “나라 임금의 세자(世子)가 나면……사인(射人)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
6개로써 천지 사방을 향해 쏜다.[國君世子生……射人以桑弧蓬矢六 射天地四方]”라고 하였고, 그 주에 “천지
사방을 향해 쏜다는 것은 원대한 것에 일이 있다.[射天地四方 其有事於遠大也]”라고 하였다.

동리선생문집 권1 _ 시 |97


멀고 먼 사신 행차 몇 천 리였던가 星駕超超幾千里
금년에 명 받들고 일본에 사신 가니 今年奉使日出地
바다 파도 망망하여 하늘가에 닿으리라 海波茫茫接天起
선생께선 뱃속 가득 다른 것은 전혀 없고 先生滿腹無他物
오로지 시서와 충의만을 품고 있네 只有詩書與忠義
사신답고 사신다워9) 훌륭한 사신이니 使乎使乎眞使乎
조정에선 적임자를 얻었다고 할 만하네 朝廷可謂得人矣
임금의 명이면 물불속도 뛰어드니10) 君命猶能赴湯火
만 리의 푸른 바다는 한 잔의 물이로다 萬里滄溟一杯水
아침에 대궐 떠나 저물녘에 남쪽 가니 朝辭北闕暮南關
역로에는 안개꽃이 아름답게 하늘거리네 驛路煙火搖斐亹
돛대 처음 올리자 오량11)에 바람 불고 椰帆初掛五兩風
바다색은 공중에 떠 원근이 헷갈리네 海色浮空迷遠邇
더운 바람 비를 뿌려 판옥이 울리고 炎風吹雨板屋鳴
한밤중엔 성난 파도 뱃전을 때리누나 夜聞驚濤打船尾
구름 안개 자욱하여12) 고국은 멀어지고 雲煙渺渺故國遙


8) 주나라의……관광할 때:중국 땅에 사신으로 갔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오(吳)나라 공자 계찰(季札)이 예악(禮樂)
에 밝아 노(魯)나라로 사신 가서 주(周)나라 음악을 듣고 열국(列國)의 치란흥쇠(治亂興衰)를 알았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다.(춘추좌씨전 「襄公 29년」) 여기서는 학봉 김성일이 1577년(선조10)에 사은 겸 개종계
주청사(謝恩兼改宗系奏請使)의 서장관이 되어 정사 윤두수(尹斗壽)·질정관 최립(崔岦)과 함께 북경에 사신으로
간 사실을 가리킨다. 9) 사신답고 사신다워:사신을 칭찬한 말이다. 위령공(衛靈公)의 신하인 거백옥(蘧伯玉)이 공자에게 사신을
보내오자, 공자는 “부자(夫子)는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고 물으니, 사신은 “부자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고자
노력하시나 잘 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공자는 그가 나가자 “사신이여, 사신이여![使乎使乎]”라고 칭찬하였다
는 데서 유래하였다.(논어 「憲問」)
10) 물불속도 뛰어드니:주역 「대장괘(大壯卦)」의 정전(程傳) 주석에 “끓는 물이나 타는 불속에 뛰어 들고[赴
湯火] 시퍼런 칼날을 밟는[蹈白刃] 것은 무부(武夫)의 용기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극기복례는 군자의 장대함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한 데서 온 것이다. 11) 오량(五兩):초(楚) 지방 방언으로, 고대의 측풍기(測風器)를 말한다. 닭 털 5냥 혹은 8냥을 장대 위에
매달아 풍향(風向)과 풍력(風力)을 가늠했던 데에서 나온 말이다. 12) 자욱하여[渺渺]:원문의 ‘묘묘[渺渺]가 학봉집에는 ‘묘묘(杳杳)’로 되어 있다.

98|동리선생문집


북극성은 밝고 밝아 손으로도 가리키리 北辰昭昭猶可指
응당 충과 신으로 오랑캐13)를 품어 주고 應將忠信懷鴂舌
다시 왕언을 펼쳐 오랑캐들 교화하리 更敷王言化雕齒
하늘가에 날 저무니 바다와 산 푸르고 天涯日暮海山碧
서불사당14) 그 앞에는 풀들 비단 같으리라 徐巿祠前草如綺
선생께선 어디에서 한 잔 술을 부으려나 先生何處酹一杯
박제상의 충혼15)은 응당 죽지 않았으리 堤上忠魂應不死
이번 길에 뜻밖의 근심이야 없겠지만 此行雖無意外憂
이국땅의 다른 풍토 모름지기 조심하소 須愼殊邦風氣異
서생이 대장부 떠나는 길 전별하며 書生欲別丈夫行
동풍 속 한 웃음에 무한한 뜻이로다 一笑東風無限意
돌아오면 석문정사16) 길에서 절 올리며 歸來一拜石門路
금낭17) 속을 뒤지면서 좋은 시구 찾아보리 披得錦囊好文字


­경인년(1590) 3월에 선생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면서 지나는 길에 고향(안동)을 들렀다. 나는 이시회李時晦와
함께 석문정사石門精舍에 가서 뵙고, 이 졸렬한 시를 바쳤다. 선생이 여러 번 읽어 보더니 손을 들어 읍揖을
하고서 “조정 사대부들의 이별시가 무려 수백 편이지만, 한 사람도 박제상朴堤上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대 시만이 이 일을 언급했구려.”라고 하였다.­


13) 오랑캐[鴂舌]: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에 “왜가리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남쪽 오랑캐
사람[南蠻鴃舌之人]”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남쪽 오랑캐인 일본을 가리킨다. 14) 서불(徐巿)사당:서불은 진(秦)나라의 방사(方士) 서복(徐福)을 가리킨다. 진시황이 서복에게 동해의 삼신산
(三神山)으로 가서 불로초(不老草)를 캐 오라고 하면서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데리고 가게 하였는데, 서복이 일본에 도착하여 그곳에 살면서 돌아오지 않아 일본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 기이신궁산(紀伊新宮
山)에 서복의 묘가 있다고 하며, 또 그의 사당을 세우고서 제사를 지낸다고한다.(사기 권6 「秦始皇本紀」)
15) 박제상(朴堤上)의 충혼:신라 눌지왕(訥祗王) 때 왕의 동생인 미사흔(未斯欣)이 왜국에 볼모로 가 있자
박제상이 왜국에 사신으로 가서 미사흔을 탈출시켜 신라로 돌려보낸 뒤, 자신은 억류되어 있다가 피살당한
일을 가리킨다. 16) 석문정사(石門精舍):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정자로, 1587년(선조 20)에 학봉 김성일이 지은 것이다. 17) 금낭(錦囊):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로, 주로 시고(詩稿)나 중요한 문서를 넣는 주머니이다.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 동료들과 함께 나가 노닐 적에, 종에게 다 해진 비단 주머니를 등에 메고 따라오게
하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써서 그 주머니 속에 넣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李賀小傳)

 

 

 

2.반구정에 오르다[登伴鷗亭] 

 

족종조 순개舜凱의 정자이다.

 

만고에 긴 강물이 넘실넘실 흐르고 萬古長江袞袞流
한 쌍의 백구는 물가 모래섬에 있네 一雙鷗鷺在河洲
반구대 위에 사람 자취 보이지 않고 伴鷗臺上無人見
산 구름만이 홀로 백구와 짝하누나 惟有山雲獨伴鷗

 

 

 

3.다시 부백의 시에 차운하다. 3수[復次府伯韻 三首]


게으름이 도리어 습관이 되어 懶慢還成習
일 년 내내 마을을 나가지 않네 終年不出村
울타리 가엔 푸른 나무만 있고 籬邊惟碧樹
꽃 아래에 맑은 술만이 있누나 花下便淸罇

졸렬함 기를 땐 편안히 누워있고 養拙宜安臥
가난할 땐 성인의 말을 경외하네 居貧畏聖言
은거해도 외려 절로 즐거우니 棲遲猶自樂
형문134)에 찾아오는 객이 없누나 無客到衡門


또[又]
서녘 바람 수옥135)에 불어오고 西風吹樹屋
가을 기운 산 사립에 이르렀네 秋氣到山扉
먼 멧부리 구름 끼어 어둑하고 遠峀迷雲暗
긴 하늘에 새는 홀로 나는구나 長天獨鳥飛
생애가 이로부터 초라하니 生涯從草草
길손의 마음 더욱 혼미하도다 客意轉微微
오히려 채소 싹을 배불리 먹고 菜甲猶堪飽
무심하게 낚시터로 향하누나 無心向釣磯


또[又]
북쪽 길손이 오나라 말을 하고 北客仍吳語
새로운 시는 고담을 배웠네 新詩學古談

배를 사서 달빛 아래 띄우고 買舟乘月下
집을 옮겨 장남136)으로 향하누나 移屋向漳南
길쌈은 가난한 여인에서 나왔고 蠶績從寒女
소치는 책137)은 대남에게 부치네 牛經付大男
덧없는 인생 다행히 일 없어 浮生幸無事
종일토록 술에 취해 단잠을 자네 終日醉眠酣

 


134) 형문(衡門):원래 나무를 가로로 걸쳐서 만든 소박한 문인데, 후세에는 은사(隱士)의 집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진풍(陳風)·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여! 편안히 살 만하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라고
한데서 인용하였다.

135) 수옥(樹屋):뽕나무를 의지해서 이를 마룻대로 삼아 지은 초막집을 말한다

136) 장남(漳南):지금의 중국 하북 동북쪽에 있던 중국 옛 도시이다.

137) 소치는 책[牛經]:상우경(相牛經)을 말한다. 이 책은 소의 양부(良否)를 품별하는 법을 기록한 책으 로, 춘추 시대 영척(甯戚)과 왕량(王良) 등의 저서에 모두 상우경이 있다고 한다

 

 

4.재상 오성 이항복167)의 부고를 듣고 눈물을 훔치며 짓다[聞鰲城李相國訃拭淚而作]

 

공이 이제 떠나자 내 눈물 쏟아지는데 公不少留我涕滂

천제는 어찌 급히 무양168)을 보냈는가 帝心何遽遣巫陽

정영위169)는 돌아갈 날 없다 한탄 말라 令威莫恨歸無日
길이 혼이 일월170) 곁에 깃듦을 보리니 長見魂棲日月傍

 

 

167) 이항복(李恒福, 1556~1618):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 본관은 경주이다. 1580년(선조 13)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 판서·대제학·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세웠다. 1617년(광해 10) 인목 대비(仁穆大妃)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이듬해 관직이 삭탈되고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마쳤다.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사례훈몽(四禮訓蒙)·백사집 등이 있다.

168) 무양(巫陽):고대 신화에 나오는 무당의 이름으로, 천제(天帝)의 명을 받들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인다
고 한다.(楚辭 「招魂」)
169) 정영위(丁令威):한대(漢代)의 요동 출신으로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닦아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속의 인물이다. 그는 뒤에 학으로 변해 고향을 찾아오니, 벌써 천년의 세월이 지나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떤 소년이 활을 쏘려고 하자 공중을 배회하며 탄식하다가 떠나갔다는 전설이 있다.(搜神後記 卷1)
170) 일월(日月):여기에서의 일월은 ‘임금’을 가리킨다.

 

 

5.가난을 노래하다[貧窶行]


스스로 고달픈 맘 이와 같은데 自苦乃如此
인생살이 살아봐야 얼마를 살꼬 人生能幾何
벼슬 구하자니 신이 희롱하고 求官鬼捓揄
벗들 사귀자니 돈이 많지 않네 結交金不多
굶주린 말은 말고삐를 끊어 내어 飢馬繩斷絶
한밤중에 국화 꽃을 먹어대고 夜半喫黃花
초췌한 소 주저앉아 서지 못하여 羸牛卧不起
날마다 점차 뼈만 앙상하다네 日漸骨嵯峨
종 한 명은 도망가서 소식이 없고 一僕走無故
종 한 명은 병이 들어 낫지 않네 一僕病未差
계집 종 발꿈치에 피가 흐르자 赤脚踵流血
눈물 흘리며 서로 부둥켜 안네 涕淚相交加
서릿바람 창과 문을 뒤흔드는데 霜風撼窓戶
밤에 누우니 반폭이불 기우네 夜卧衾半斜
아내는 얇은 옷을 걱정하여 妾憂衣裳薄
터진 손으로204) 물레를 돌리네 龜手親繅車
어제는 관의 아전이 들이닥쳐 昨日吏胥至
마을 거리에 시끄럽게 굴더라 閭里喧于街
관의 문서에 여러 번 도장 찍혀 官書三度印
집집마다 놀라지 않는 이 없네 莫非驚家家
산성은 반나절 올라가야 하고 山城半天上
군량 운반 백성의 화합 해치네 轉粟傷人和
다리 놓느라 정강이 벤듯한데 橋成脛如斮
세운 말뚝 찬 물결에 요동치네 竪木搖寒波
성인께서 편안한 도를 사용하여 聖人用逸道
백성들에게 탄식 없게 했건만 雖使民無嗟
요즈음 최근 십년의 사이에는 邇來十年間
외진 골짝에 호야소리205) 들리네 窮谷聞呼邪
백성의 재산 어찌 흙과 같으며 民財豈如土
백성의 곡식 어찌 모래 같겠는가 民穀豈如沙
고관대작 술과 고기 실컷 먹고 朱門厭酒肉
부자상인 비단도 하찮게 보네 富商輕綺羅
가난한 아낙 베틀질만 하건만 寒女不下機
잠방이로 몸도 가리지 못하네 一褌無掩遮
비록 현철한 사람이 있더라도 雖有贒哲人
난세에 홀로 아름답긴 어렵네 世亂難自姱

세상 운수 참으로 이와 같다면 時運苟如此
호탕하게 나는 노래 부르리 浩浩吾當歌


204) 터진 손으로:원문의 균수(龜手)는 손이 얼어서 거북의 등딱지처럼 얼어서 터진 뭉툭한 손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손이 얼어터지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송나라 사람이 있었다.[宋
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고 하였다.

205) 호야소리:백성들이 부역을 할 때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는 소리를 말한다.

동리선생문집 권2 _ 시 |247

 

 

6.서애 류선생을 애도하는 만시[輓西厓柳先生] 정미년(1607)


스승 만난 그해 일찍 가까이 모시고서 得師當年早摳衣

교육받아 총명한 자질을 연마했네 敎育磋磨穎悟資
얼음 같은 옥은 가을 달빛을 간직했고 氷玉貯藏秋月色
봉황새는 벽오동 가지로 날아 앉네 鳳凰飛下碧梧枝
존심과 수기는 성경誠敬에서 말미암고 存心修己由誠敬
사군과 치민은 효자孝慈로부터 나왔네 事主臨民自孝慈
이윤의 뜻에 안자의 학문을 겸했건만 伊尹志兼顔子學
백성은 복이 없으니 끝내 어찌하리 蒼生無祿竟何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