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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陶淵明의 詩/cafe.daum.net/jangdalsoo/ZAtL/1416

《도연명집(陶淵明集)》에 실린 음주에 화운하다 -퇴계 선생



술 없으면 딱하게도 기쁨일랑 없나니 / 無酒苦無悰
술 있으면 이내 바로 그것을 마신다네 / 有酒斯飮之
한가해야 비로소 즐거움을 얻나니 / 得閒方得樂
즐거운 일 있거들랑 그때 바로 즐겨야지 / 爲樂當及時
훈훈한 저 바람이 만물을 고무시켜 / 薰風鼓萬物
무성한 아름다움 이제 이와 같구나 / 亨嘉今若玆
만물과 내가 함께 즐거움을 누리거늘 / 物與我同樂
가난하고 병든 것을 걱정할 것 있으리 / 貧病復何疑
저 세상 영화로움 내 어찌 모르랴만 / 豈不知彼榮
헛되고 헛된 이름 오래가기 어려워라 / 虛名難久持


나의 생각 닿는 곳 그 자리가 어드메뇨 / 所思在何許
하늘의 끝자락과 대지의 한 모퉁이 / 天涯與地隅
높고도 또 높아라 세상 소리 멀어지고 / 迢迢隔塵響
넓고도 또 넓어라 길은 마냥 이어지네 / 浩浩綿川塗
사람의 인생살이 아침 이슬 같은데 / 人生如朝露
희어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몰아대네 / 羲馭不停驅
손에 있는 녹기금은 / 手中綠綺琴
줄 끊어져 슬픔만 남아 / 絃絶悲有餘
오직 하나 잔 속에 채워진 이 술만이 / 獨有杯中物
외로운 이내 삶을 때때로 위로하네 / 時時慰索居


순 임금도 주 문왕도 오래 전에 세상 떠나 / 舜文久徂世
조양에는 봉새가 이르지 않는구나 / 朝陽鳳不至
상서로운 기린마저 이미 멀리 떠났으니 / 祥麟又已遠
말세는 어두워라 정신없이 취한 듯이 / 叔季如昏醉
낙양과 민중 땅을 멀리서 우러르니 / 仰止洛與閩
현인들이 비늘처럼 뒤이어 일어났네 / 群賢起鱗次
내 어이 때 늦고 외진 곳서 태어났나 / 吾生晩且僻
혼자선 귀한 본성 닦을 길을 모르겠네 / 獨昧修良貴
아침에 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 / 朝聞夕死可
이 말씀 진실로 깊은 뜻이 있구나 / 此言誠有味



우리나라 예로부터 추로라 부르나니 / 吾東號鄒魯
선비들이 모두들 육경을 읽는다네 / 儒者誦六經
그것이 좋은 줄 모르는 이 없건마는 / 豈無知好之
어느 누가 이를 과연 성취해 내었는가 / 何人是有成
높이 뛰어났어라, 정오천이여 / 矯矯鄭烏川
목숨 바쳐 지키며 끝내 변치 않았네 / 守死終不更
뒤를 이은 점필재는 쇠한 사문(斯文) 일으켜 / 佔畢文起衰
도 구하는 선비들 그 문정에 가득했네 / 求道盈其庭
쪽빛에서 나온 청색 쪽빛보다 더 푸르니 / 有能靑出藍
김한훤과 정일두가 서로 이어 울렸네 / 金鄭相繼鳴
그들의 문하에서 섬겨 보지 못했으니 / 莫逮門下役
이내 몸 돌아보며 마음 상해 하노라 / 撫躬傷幽情



술 가운데 묘한 이치 있다고들 하지만 / 酒中有妙理
사람마다 반드시 다 얻지는 못한다네 / 未必人人得
취하여 고함치며 즐거움을 구하는 건 / 取樂酣叫中
그대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아닌가 / 無乃汝曹惑
잠시 잠깐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오면 / 當其乍醺醺
하늘과 땅 사이에 호연지기 가득차서 / 浩氣兩間塞
온갖 번뇌 풀어 주고 인색한 맘 녹이나니 / 釋惱而破吝
괴안국의 영화보다 훨씬 더 나으리라 / 大勝榮槐國
필경 이런 경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니 / 畢竟是有待
바람 앞에 도리어 부끄러워 침묵하네 / 臨風還愧默



도연명(陶淵明)의 시구를 모아서 가정(稼亭 이곡)에 봉제(奉題)하다 -황진(黃溍) 원나라 문인

동방에서 온 선비 한 사람 / 東方有一士
객지에서 천금의 몸을 기르면서 / 客養千金軀
관복 차림으로 새벽닭 울기 기다리다가 / 束帶候鳴鷄
나가서는 임금님 수레를 모시고 따르는데 / 出則陪文輿
대경은 본디 바라던 바가 아닌지라 / 代耕本非望
전원과 잠깐 동안 떨어져 있다가 / 暫與園田疎
전원이 날마다 꿈속에 그리워서 / 園田日夢想
관을 던지고 옛 동산으로 돌아간다네 / 投冠旋舊墟
그가 하는 말이 올봄이 되면 / 興言在玆春
신주도 다시 여가 되려 하는데 / 新疇復應畬
전부는 생각하는 것이 모두 좋아서 / 田父有好懷
문 앞을 지나면 불러서 술도 마시고 / 過門更相呼
풀숲을 헤치고서 함께 왕래도 하고 / 披草共來往
옛날 동네를 두루 돌아다니기도 하고 / 履歷周故居
유유히 추수할 때를 기다리면서 / 悠悠待秋稼
이따금 나의 책을 읽고도 싶으니 / 時還讀我書
농사가 잘될지는 미리 알 수 없지만 / 雖未量歲功
전원생활이 참으로 즐거울 것이라고 하네 / 棲遲固多娛
아무렴 이 일이야말로 더욱 즐겁고말고 / 此事眞復樂
아무렴 이 말이야말로 거짓이 아니고말고 / 此語眞不虛
황조의 사람들 모두 나와 전송하고 / 餞送傾皇朝
귀자는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는데 / 歸子念前塗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되는가 하면 / 前塗當幾許
동해의 모서리로 곧장 가면 된다네 / 直至東海隅
옛날에 공명을 다투던 인사들은 / 古時功名士
경도(京都)에서 모두 활동하였는데 / 事事在中都
멀고 먼 저닉의 마음을 지니다니 / 遙遙沮溺心
그대의 마음은 정녕 어떻다 할까 / 君情定何如



낙전이 도연명(陶淵明)의 시를 보고서 감회가 일어 지은 시에 또 화답함[又和樂全閱陶詩有感之作]

-계곡 장유

연명 선생은 도인이신데 / 淵明有道者
취미로 지은 시 어쩜 그리 훌륭한지 / 餘事還能詩
화락한 그 가락 소호의 운율이요 / 愔愔韶頀韻
심원한 그 생각 희황의 기상이라 / 杳杳羲皇思
이 분 천 년 전에 돌아간 뒤로 / 斯人已千載
정음(正音)과는 날마다 괴리(乖離)되었나니 / 正聲日以離
대갱의 담박한 맛 그 누가 알까 / 大羹孰知味
비리고 썩은 고기 허겁지겁 삼키누나 / 腥腐塡饞飢
뜻있는 선비들 고매한 기풍 사모하며 / 志士仰高風
화운(和韻)을 해 보지만 남는 것은 슬픔뿐 / 攀和有餘悲
그대가 가학을 이었음을 아노니 / 知君繼家學
고아한 시편에 마음속 기약 보이네 / 雅詠發心期

낙전의 선 상공(先相公)의 문집 가운데 화도시(和陶詩)가 있기 때문에 결구(結句)에서 그렇게 말한 것임.



봄날 집에 들어앉아 한가로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나무는 흐드러지게 녹음이 지려하고 샘물도 졸졸졸 흘러가기 시작하네.[木欣向榮 泉涓始流]’라는 구절을 사용하여 운을 나누고 시를 짓다. -농암 김창협


이월이라 날씨가 좋기도 하다 / 仲春天氣佳
순한 바람 맑은 기운 불러 일으켜 / 惠風扇淸穆
봄기운이 북방의 추위 녹이니 / 陽和浹冥凌
온 골짝 눈과 얼음 풀리었구나 / 氷雪罷百谷
얼음 녹은 시냇물이 흘러와서는 / 川流渙渙來
넘실넘실 내 눈을 놀라게 하네 / 搖蕩動人目
물속에 잠긴 고기 마름에 놀고 / 潛魚戲暖藻
물오른 나무에선 여린 싹 돋아 / 柔荑發佳
시절 풍경 두루 보니 느꺼울시고 / 周覽感時物
천지 변화 어찌 이리 빠르단 말가 / 運化一何速


두 번째
아침나절 초가집 들어앉아서 / 終朝坐茅屋
팔 다리 힘들 일 하나도 없이 / 四體無所勤
콩잎무침 아욱국 조촐한 밥상 / 藜藿不盈槃
마주하면 언제나 흐뭇할 따름 / 對之常欣
물어보세 내 과연 무얼 즐기나 / 問我亦何樂
생각 궁리 오로지 성현의 경전 / 游思在典墳
오늘날엔 옛 도를 따라갈 수야 / 古道不可追
그저 높이 기리네 성군 요순을 / 引領望華勛
강개한 마음으로 거문고 타니 / 慷慨撫我琴
목놓은 노랫소리 누가 들을까 / 浩歌誰當聞

세 번째
산골살이 더없이 호젓할시고 / 山居何牢落
사방을 둘러보면 맑고 훤할 뿐 / 四望頗淸曠
키 큰 솔 너른 시내 끼고 자라고 / 喬松夾廣川
흰 구름 겹겹 산봉 덮여 있다네 / 白雲冒增嶂
여느 때도 즐길거리 적지 않은데 / 眺瞻旣多娛
생동하는 봄경치 가슴 설렌다 / 春物復訢暢
들사슴들 떼지어 지나다니고 / 野鹿行命羣
제철 맞은 산새들 지저귀누나 / 時禽語相
뉘라서 내 마음과 서로 같을고 / 誰爲同心者
언제나 그리워라 잊을 수 없네 / 懷哉不可忘

네 번째
어릴 적 소심하여 큰 포부 없고 / 少小無遠志
높은 벼슬 영광만을 바랐었다오 / 頗懷軒冕
그 후에 시대와 맞지 않아서 / 朅來時不偶
바윗골 초가집에 누워 있다오 / 巖處偃柴荊
밤에는 울부짖는 곰들의 소리 / 夜聽熊羆嘷
낮에는 지나가는 사슴의 모습 / 晝看麋鹿行
그러나 새와 짐승 사람 아니니 / 鳥獸非我羣
누구에게 깊은 마음 맡겨 볼까나 / 誰與託幽情
다행히 형제 있어 즐거웁노니 / 幸有兄弟樂
여생을 그런대로 마칠 만하네 / 可以卒平生

다섯 번째
낚시터엔 울퉁불퉁 바위투성이 / 磊磊釣臺石
여울물은 콰알 콸콸 흘러가는데 / 濺濺釣瀨
그 위에 오래 묵은 단풍나무는 / 上有古楓樹
몇백 년을 이곳에 뿌리 박았나 / 託根幾何年
반이나 상해 버린 그루와 줄기 / 株幹半摧折
그래도 사람들은 사랑한다네 / 尙爲人所憐
바위를 기어 올라 조용히 앉아 / 攀援石上坐
하늘 땅 바라보며 옛 현인 생각 / 俯仰念昔賢
시대 서로 달라도 느낌은 같아 / 異代感同調
흐르는 물 굽어보며 탄식한다네 / 臨流一喟然

여섯 번째
봄 산이라 경치도 아름다워라 / 春山有佳色
울창한 숲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 霞氣上蔚芊
일어나 이따금씩 혼자 가 보면 / 振衣時獨往
황량한 골짜기엔 길도 없어라 / 荒谷無術阡
바위틈 샘 가에 편히 쉬면서 / 巖泉恣流憩
손 담궈 찰랑찰랑 장난치기도 / 濯手弄涓
울퉁불퉁 옹이진 천길 소나무 / 磊砢千丈松
봄바람을 맞고서 일렁거리니 / 披拂好風前
보는 기분 너무도 황홀한지고 / 泠然所心善
해 지도록 잊었네 돌아갈 길을 / 日晩不知旋

일곱 번째
농가에 뻐꾹뻐꾹 뻐꾹새 우니 / 田家聞布穀
쟁기 들고 날마다 밭을 갈고는 / 耒耜日就治
서로들 불러가며 봄보리 심기 / 相呼種春麥
봄 농사 이제부터 시작이로세 / 東作自茲
아, 나는 서울에서 자라났기에 / 而余長京洛
애당초 농사일을 모르지마는 / 生不識田事
농사를 짓겠노라 성인의 말씀 / 明農古有言
공밥을 먹을 수야 시인의 수치 / 素食詩人恥
나 지금 부지런히 노력 않으면 / 今我不努力
겨울이 다가올 때 무얼 바라리 / 歲暮將何俟

여덟 번째
집 앞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 / 屋下淸川水
물 깊은 곳에는 배도 띄울 만 / 深處可方舟
반짝이는 흰 자갈 잠겨 있고요 / 磷磷涵白礫
물고기 그 속에서 자맥질하네 / 素鱗中沈浮
봄옷차림 한가로이 배회하다가 / 徐行拂春服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본다네 / 坐石俯長
호수(濠水)의 다리에서 물고기 구경하고 / 從容濠上觀
기수(沂水)와 무우(舞雩) 사이 소요하려던 / 徜徉沂雩游
옛사람 즐긴 풍류 아득하지만 / 古人雖已遠
그 즐거움 지금도 찾아볼 만해 / 此樂今可求




아래 글은 김창환(서울대학교 중등교육연수원 교수)의 글은 인용하였습니다.



철학을 생활화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동진(東晋)과 송(宋)의 왕조 교체기를 살았다.1) 후한(後漢) 말기 이래의 정치ㆍ사회적 혼란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기간에도 계속되었고 위(魏)를 이은 서진(西晋)은 전쟁과 대립으로 얼룩졌던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황제들의 무능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단기간에 막을 내렸다.2)


이민족에게 중원을 빼앗긴 채 남쪽 건업(建業)에 도읍한 동진은 혼란이 극심하여 100여 년 동안에 크고 작은 반란과 전쟁 그리고 농민 봉기가 계속되었다. 도연명이 살던 시기에 재위했던 동진의 제왕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이 폐위되거나 살해당한 사실이 이러한 혼란을 대변한다. 그리하여 결국 유유(劉裕)에게 멸망당했던 것이다.


도연명은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과 사회를 중시하는 유가와, 자연과 개인을 강조하는 도가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조화해 낸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유가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은거 생활을 한 후에는 도가에 경도되었으며 특히 장자(莊子)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도연명의 사상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 그의 생사관과 자연관을 들 수 있다. 도연명은 생사를 자연의 운행에 따른 한 과정으로 보고 삶에 연연해 하거나 죽음에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는 생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장자에게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장자는, "기(氣)가 변하여 형체(形體)가 있게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다. 지금 다시 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는 교대로 춘하추동의 사시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하여 죽음이란 '자연에 순응하는' 한 과정임을 설파하였다. 도연명의 「잡시(雜詩)」 제7수에는 이러한 생사관이 잘 나타나 있다


내 집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나는 떠나가야 할 나그네 같구나.
떠나가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
남산에 본래의 집이 있다네.3)


생전에 살던 집은 잠시 머무는 여관이니 때가 되면 옛 집, 즉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안연지는 도연명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여, "죽는 것을 돌아가는 듯이 여겼다"고 하였다.


도연명의 자연관은 도가의 무위(無爲)4)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도가에서 본 자연은 만물의 주재자(主宰者)가 아니다. 만물은 원래 그러한 이치대로 스스로 생성, 소멸한다. 다음 시구에서 도연명의 도가적 자연관을 살필 수 있다.


조물주는 사사로이 힘씀이 없어,
만물이 저절로 성대히 드러난다.5)
-「형영신(形影神) 신석(神釋)」




'대균(大鈞)'은 자연의 다른 이름이다. 만물은 도(道)의 구체화(具體化)로서 저절로 번성한다. 이는 장자가 말한, "하늘은 사사로이 (만물을) 덮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땅은 사사로이 (만물을) 실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철리(哲理)를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도연명은 생활면에서는 '안빈낙도(安貧樂道)', '고궁(固窮)'6) 등 유가에서 획득한 진지함으로 도가의 말류인 방탄(放誕)7)이나 신선 추구에 빠지지 않았다. 즉 노동을 중시하고 생활을 위한 근면을 강조하였다. 정신면에서는 '순응자연(順應自然)', '달관(達觀)' 등 도가에서 획득한 지혜로 유가의 말류인 허위적 명교(名敎)8)나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 즉 유가, 도가의 철학을 선별적으로 취사하여 자신의 인격과 사상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순응자연의 실천
도연명은 전원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그 감회를 시로 표현해 내었다. 「고향집에 돌아옴」 5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제1수에서, 전원으로 돌아와 느끼는 해방감과 만족감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젊어서부터 세속에 맞는 기질이 없고,
본성이 원래 산을 좋아하였다.
잘못하여 진세(塵世)의 그물에 떨어져,
단번에 30년을 보내 버렸구나.
매인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갇힌 물고기는 옛 연못을 생각한다지.
남쪽 들에서 거친 밭 일구고,
졸박함을 지키고자 전원으로 돌아왔다.


···
집 뜰에는 세상의 잡다함 없고,
빈방에는 한가로움이 넉넉하다.
오랫동안 새장 안에 갇혀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9)




전원으로 돌아오니 갇혀 있던 새가 풀려난 것 같은 자유를 느낀다. 벼슬살이에 구속되어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와서 바뀐 것은 더러움과 번잡함이 없는 외부 환경이자 또한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내면의 심경이다. 자연과 융화된 모습이다. 도연명은 벼슬길에 나선 것이 자신의 본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연으로의 복귀이다. 여기에서의 자연은 도가에서 말하는 '원래 그러한 상태'와 그 상태가 구현된 공간, 즉 '전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은거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초월과 달관의 자유인
도연명은 도가에서 말하는 '달관(達觀)'을 체득했다. 그의 시에는 세속적 욕망을 초월한 달관의 자세, 즉 천진(天眞)에 대한 추구를 보이는 시들이 많다. 「술을 마시며」 제1수에서, 인생에서 곤궁과 영달(榮達)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곤궁에 초조해하거나 영달에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쇠락과 영달은 정해져 있는 곳 없이,
서로가 교대하며 함께 하는 것이다.
소생(邵生)의 오이밭 일이,
어찌 동릉후(東陵侯)로 있을 때와 같으리오.
추위와 더위가 갈마듦이 있듯이,
사람의 사는 길도 언제나 그렇다.
통달한 사람들은 그 이치를 아니,
아아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
홀연히 한잔 술을,
해 저무는 저녁 기분 좋게 든다.10)




동릉후로 영화를 누리던 소생(邵生)이란 사람도 곤궁해지자 오이를 길러 생계를 유지하였다. 추위와 더위가 교대로 바뀌듯이 인생의 쇠락과 영달도 이렇게 바뀐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자라면 그 때문에 마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착으로부터의 초월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도 그렇다. 도연명은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그런대로 자연의 변화를 따라 생을 마감할 것이며/ 천명을 즐길 따름이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하고 읊는다. 자연의 이치는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을 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를 깨닫고 그것을 '말을 잊음'으로 증명해 보인 시가 「술을 마시며」 제5수이다.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집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다.
묻노니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초원(超遠)하니 땅은 절로 외떨어진다.
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보게 되었다.
산의 모습이 저녁 되어 아름다운 가운데,
새들과 더불어 돌아간다.
이 가운데에 참뜻이 있으니,
따져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다.11)




마음이 담담하면 외적 조건은 자연히 초월(超越)된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세계가 자연의 외물(外物)과 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12)이자 달관의 경지이다. 국화, 남산, 날아다니는 새, 시인 자신이 모두 하나가 된 경지이다. 도연명의 위대함은 바로 농촌에서 그저 진실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도(道)를 체득한 점에 있다. 말없는 가운데 자연의 본질을 체득하고 순응하는 것이 도가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도연명은 노자와 장자가 말로 전하고자 했던 도를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소나무와 국화를 좋아했던, 지조의 상징
도연명은 혼란기를 살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역사적으로, 지조를 위해 곤궁함을 감내하거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긴 이들을 높이고 기렸다. 은(殷)ㆍ주(周) 교체기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자기를 알아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형가(荊軻), 늙어서도 고궁(固窮)의 절개를 견지했던 영계기(榮啓期) 등이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며」 제2수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선한 일 많이 하면 보답이 있다는데
백이, 숙제는 서산에서 살았네.
선과 악이 진실로 보답 받지 못한다면,
무슨 일로 부질없이 그런 말을 내세웠나.
영계기는 90에도 새끼 띠 하였는데,
하물며 젊은 시절의 굶주림과 추위쯤이야.
고궁(固窮)의 절개를 믿지 않는다면,
백대 후에 장차 누가 전해 주리오.13)




상단의 4구와 하단의 4구에서 의미가 반전되고 있다. 상단에서는 백이, 숙제 같은 사람이 굶어 죽고 영계기 같이 도를 깨달은 이들이 추위에 고생했으니 적선(積善)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그러나 하단에서 이를 반전시켜서, 어려움 속에서도 굳게 절개를 지켜 훌륭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은ㆍ주의 왕조 교체기를 맞아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따르고자 죽음도 개의치 않았다. 진(晋)ㆍ송(宋)의 교체기를 살았던 그는 이 때문에 더욱 백이, 숙제와 같이 절의를 지킨 사람들에게 경도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절개를 소나무, 국화 등 자연물에 빗대어 드러내곤 한다.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듯이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데서 변함없는 절개를 상징하였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며」 제4수에서,




홀로 선 소나무를 만나게 되어,
날개 거두고 멀리에서 돌아왔다.
거센 바람에 무성한 나무 없는데,
이 그늘만이 유독 쇠하지 않았다.14)




라고 하여 소나무가 풍파에 지친 자신에게 의지처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귀거래사」에서는, 동산의 오솔길은 거칠어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래도 남아서 자신을 반기고 있음을 읊는다.15) 도연명은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국화에 대해서도 어려움에 굽히지 않는 절개를 배우고자 하였다. 「화곽주부(和郭主簿)」 제2수에서,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 있는 국화를 소나무와 함께 칭송하여 '서리 아래의 호걸'이라는 것이다.




향기로운 국화는 숲에 피어 빛나고,
푸른 소나무는 바위산 위에 늘어서 있다.
이 곧고 빼어난 모습을 간직한 채,
우뚝하니 서리 아래 호걸이 되었구나.16)




다른 꽃들은 시들어 떨어지는 계절에,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국화 및 푸른 잎이 지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을 칭송하고 있다. 힘든 시대를 살았던 도연명에게 소나무와 국화는 바로 마음이 서로 통한 벗이었다.




도연명의 시는 평생에 걸쳐 이룩한 그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연명은 유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잘 조화시켜 삶을 영위한 전형적 예이다. 이렇게 조화된 인격에서 깊고도 감성이 풍부한 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도연명 시의 가치
끝으로 도연명 시의 문학적 성취가 중국 문학, 나아가 세계 문학에서 지니는 의의를 살펴보자.




첫째는, 오언고시(五言古詩)17)의 완성이다. 오언고시는 한(漢)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민가체(民歌體)의 시, 즉 악부(樂府)가 5언(言)으로 정형화하면서 나타난 시체이다. 도연명은 전원에서 체득한 삶의 이치를 담담히 그려냄으로써 5언시의 서정성과 예술성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도연명에 이르러 완성된 5언시를 바탕으로 남조(南朝)를 거치면서 형식적 기교가 강구되어 당(唐)나라 시대에 이르러 근체시가 출현한 점을 고려할 때, 도연명 시의 문학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하겠다.




둘째는, 전원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시경(詩經)』 이래 농사를 읊은 시가 많이 있었지만, 농사는 단순한 소재로 등장할 뿐이었다. 도연명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전원과 자연에 대한 감회를 써냄으로써 중국 문학사에 처음으로 '전원문학'을 등장시켰다. 이후 전원은 시인들에게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셋째는, 이상향(理想鄕)의 제시다. 도연명은 『도화원시(桃花源詩)』의 「병기(幷記)」에서, '도화원'이라는 이상향을 그려냈고 그때부터 도화원은 동양적 유토피아의 전형이 되었다.




넷째는, 후세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인격의 본보기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도연명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는데, 그것은 문학적 성취 못지않은 그의 인격과 절개 때문이었다. 송나라 때의 문호 소동파(蘇東坡)는, "내가 도연명에 대해 어찌 그의 시문만을 좋아하겠는가? 그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진실로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할 정도로 도연명의 시 못지않게 그의 인품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통(蕭統)은 도연명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최초로 도연명의 시문(詩文)을 모아 『도연명집(陶淵明集)』을 편찬하였다. 또한 직접 「도연명집서문(陶淵明集序文)」과 「도연명전(陶淵明傳)」을 썼다. 도연명보다 1세기 정도 뒤에 살았던 소통은,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황태자-양나라 무제(武帝) 소연(蕭淵)의 장자-로서, 유명한 시문총집(詩文總集)인 『문선(文選)』18)의 편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도연명의 시가 소개된 것은 삼국 시대로 추정되는 『문선(文選)』의 전래를 통해서이다. 이후 우리 선인들은 도연명의 시문과 그의 인격을 애호하였다. 특히 고려시대 말기에 그 정도가 심하였는데, 이는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왕조 교체기에 처했던 지식인들이 도연명에게서 그 인품과 절개를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여말삼은(麗末三隱)'이라고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 도은(陶隱) 이숭인, 목은(牧隱) 이색이다. 이색(李穡)은 조선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은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의 생애와 문학은 도연명과 공통되는 점이 많다. 그는 「독귀거래사(讀歸去來辭)」라는 시에서, "흰머리 되어 길게 읊조리니 나도 이젠 끝이련가./ 문 닫고 그저 「귀거래사」나 읽으리라" 하고 읊었다. 도연명의 삶의 자세를 본받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중국 근세의 문예이론가인 유희재(劉熙載)는 그의 대표적 저서 『예개(藝槪)』에서, "시의 품격은 사람의 품격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도연명의 문학이 후대에 끼친 영향과 도연명의 인격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높은 문학적 성취는 고상하고 위대한 인격에서 나왔던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들

1.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도연명이 유가적 이상에 따라 벼슬길에서 영달하였다면,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형상화한 훌륭한 시들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2. 지혜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부질없는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3.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지조를 버리고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할 것인가, 절개의 견지를 위해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판단은 평소의 수양된 인격에서 나온다. 인격 수양의 방법은 도연명같은 선현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이다.




각주
1) 동진은 317년부터 420년까지, 송나라는 420년부터 479년까지 이어졌다.
2) 위는 220년부터 265년까지, 서진은 265년부터 317년까지 존속했다.
3) 家爲逆旅舍, 我如當去客. 去去欲何之, 南山有舊宅.
4) 인위적 조작이 없는 상태이다.
5) 大鈞無私力, 萬物自森著.
6) 곤궁함에 꿋꿋하여 마음에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7) 사회 질서나 규율을 무시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8) 명분(名分)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가르침을 일컫는다.
9)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誤落塵網中, 一去三十年. 羈鳥戀舊林, 池魚思故淵. 開荒南野際, 守拙歸田園. ··· 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閑. 久在樊籠裏, 復得返自然.
10) 衰榮無定在, 彼此更共之. 邵生瓜田中, 寧似東陵時. 寒暑有代謝, 人道每如玆. 達人解其會, 逝將不復疑. 忽與一觴酒, 日夕歡相持.
11)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
12) 자연 속에서 상대와 나에 대한 분별을 초월한 경지이다.
13) 積善云有報, 夷叔在西山. 善惡苟不應, 何事空立言. 九十行帶索, 飢寒況當年. 不賴固窮節, 百世當誰傳.
14) 因値孤生松, 斂翮遙來歸. 勁風無榮木, 此蔭獨不衰.
15) 三逕就荒, 松菊猶存.
16) 芳菊開林耀, 靑松冠巖列. 懷此貞秀姿, 卓爲霜下傑.
17) 중국 고전시의 한 장르로, 칠언고시(七言古詩)와 함께 고체시(古體詩)를 대표하는 시의 형식이다.
18) 『문선』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문총집으로 모두 30권이다. 선진(先秦) 시대에서 양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130인의 작품, 700여 편의 시문을 수록하였는데, 역대로 문인ㆍ학자들의 애호를 받았다. 주석본으로 당(唐)나라 시대 이선(李善)의 『문선주(文選注)』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