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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풍악산(楓岳山)遊覽-이율곡/cafe.daum.net/jangdalsoo

비로봉(毗盧峯)에 올라서


낙민 주) 이 시는 율곡 선생 19세~21세 즈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율곡 선생의 연보를 보면 19세때 금강산을 유람하고 강릉으로 갔다가 21세에 서울로 돌아 왔고 그해 한성시에 장원하고 다음해에 星州 牧使 盧慶麟의 딸과 혼인을했고,그 후 관직에 나가 한가하게 금강산을 유람 할시간이없었다.


지팡이 끌고서 산꼭대기에 오르니,

긴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푸른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파란 바단 손바닥의 술잔이네.

내가 풍악산(楓岳山) ※을 유람하면서도 게을러 시(詩)를 짓지 않았다가, 유람을 마치고 나서 이제야 들은 것 또는 본 것들을 주워 모아 3천 마디의 말을 구성하였다. 감히 시(詩)라 할 것은 못되고 다만 경력(經歷)한 바를 기록했을 뿐이므로, 말이 더러 속되고 운(韻)도 더러 중복되었으니, 보는 이들은 비웃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혼돈 상태 ※로 아직 갈라지기 전에는,〔混沌末判時〕
하늘과 땅 구별할 수 없었다네.〔不得分兩儀〕
음·양이 서로 움직이고 고요함이여!〔陰陽互動靜〕
누가 그 기틀을 잡고 있는가.〔孰能執其機〕
만물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化物不見迹〕
미묘한 이치는 기이하고도 기이해라.〔妙理奇乎奇〕
하늘과 땅이 개벽되고 나서야,〔乾坤旣開闢〕
위 아래가 여기서 나눠졌네.〔上下分於斯〕
그 중간에 만물의 형태가 있지만,〔中間萬物形〕
일체 다 이름 붙이기 어렵도다.〔一切難可名〕
물은 하늘과 땅의 피가 되고,〔水爲天地血〕
흙은 하늘과 땅의 살이 되었건만,〔土成天地肉〕
흰 뼈가 쌓이고 쌓인 그 곳이,〔白骨所積處〕
저절로 드높은 산을 이룩했으리!〔自成山崒嵂〕
특히 맑은 기운이 모인 산을,〔特鍾淸淑氣〕
이름 붙여 개골(皆骨) ※이라 하였다네.〔名之以皆骨〕
아름다운 명칭이 사해에 떨쳤기에,〔佳名播四海〕
모두가 우리 나라에 태어나길 원했다오.〔咸願生吾國〕
【세속 말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이 이르기를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친히 금강산을 보았으면[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 운운 하였다.” 한다.】

공동산(崆峒山) 부주산(不周山) 따위는,〔崆峒與不周〕
여기에 비하면 다 보잘 것 없네.〔比此皆奴僕〕
내가 「지괴(志怪)」 ※에서 들으니,〔吾聞於志怪〕
하늘의 형상도 다 이 돌이라더라.〔天形皆是石〕
그러므로 옛날 여와씨(女媧氏) ※가,〔所以女媧氏〕
돌을 다듬어 그 이지러진 곳을 때웠다네. ※〔鍊石補其缺〕
이 산이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졌지,〔玆山墜於天〕
속세에서 생긴 물체가 아니리!〔不是下界物〕
나아가면 눈을 밟는 듯하고,〔就之如踏雪〕
바라보면 늘어선 구슬 같아라.〔望之如森玉〕
이제야 알겠노라. 조물주의 솜씨가,〔方之造物手〕
여기에 ※와서 그 힘을 다한 줄을.〔向此盡其力〕
이름만 들어도 사모하게 되거늘,〔聞名尙有慕〕
하물며 멀지 않은 지역에 있음에랴.〔況在不遠域〕
나는 평생에 산수를 좋아하기에,〔余生愛山水〕
일찍이 발걸음을 한가로이하지 않았네.〔不曾閒我足〕
지난번 꿈에 보았을 적에도,〔夙昔夢見之〕
그 먼 곳이 잠자리로 옮겨 왔었지.〔天涯移枕席〕
오늘 아침에 호연(浩然) ※히 당도하니,〔今朝浩然來〕
천릿길이 곧 지척이로다.〔千里同咫尺〕
처음이라 어떤 떠돌이 스님을 따라,〔初從行脚僧〕
그 우뚝한 뭇 산을 다 거쳐.〔過盡千山禿〕
점차 아름다운 경계에 들어가니,〔漸漸入佳境〕
걷는 오솔길에 지루함도 잊었었네.〔渾忘行逕永〕
참 모습을 보기 위해,〔欲見眞面目〕
곧장 단발령을 오르고 보니.〔須登斷髮嶺〕
【산에까지 30리를 못 가서 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단발령이다. 올라가 바라본즉, 망월산(望月山)의 전체가 우뚝 솟아 마치 하늘을 버티고 있는 듯, 삼연히 공경할 만하였다.】

1만 2천의 봉우리가,〔一萬二千峯〕
눈길 닿는 데마다 모두 맑기만 하여라.〔極目皆淸淨〕
떠 있는 안개 긴 바람에 흩어지고,〔浮嵐散長風〕
우뚝한 형세는 푸른 허공 버티었네.〔突兀撑靑空〕
바라만 보아도 이미 기쁜데,〔遠望已可喜〕
하물며 산 속에서 유람함이랴.〔何況遊山中〕
흔연히 지팡이를 잡았으나,〔欣然曳靑藜〕
산길은 다시 끝이 없어라.〔山路更無窮〕
시냇물은 두 갈래로 흘러가는데,〔溪分兩派流〕
골짜기는 어이 그리도 길디 긴고.〔出谷何悠悠〕
【동구(洞口)에 두 시냇물이 흘러 하나는 비로봉(毗盧峯) 물의 딴 갈래이고, 하나는 1만 2천봉 물인데, 두 갈래 물이 합류하여 흘러간다.】

위태로운 다리에 그 몇 번 정강이 시큰거렸나,〔危橋幾酸股〕
이끼 핀 바위에 자주 멈춰 쉬었네.〔苔石頻就休〕
맨처음 장안사(長安寺)를 들어서자,〔最初入長安〕
동구에 구름이 잠깐 걷히었다.〔洞口雲乍收〕
절 집은 화재를 당한 뒤라,〔琳宮値火後〕
새로 범종루를 세우는데.〔新起梵鍾樓〕
【산 동구에 있는 장안사(長安寺)가 몇 해 전에 화재를 당하였으므로, 그 절 스님들이 범종루를 중창(重創)하는 중이었다.】

그 절 스님들이 산길에 흩어져,〔居僧散樵徑〕
나무 베는 소리에 산은 더욱 그윽하네.〔伐木山更幽〕
문 곁에 서 있는 사천왕(四天王)은,〔天王入門側〕
성낸 눈 사람을 놀라게 하고,〔怒眼令人愕〕
【장안사(長安寺)와 유점사(楡岾寺)에 다 천왕상(天王像)이 있다.】

뜰 앞엔 무엇이 있는가 하면,〔庭前何所有〕
두어 포기 붉은 작약 꽃이 피었구려.〔數叢紅芍藥〕
참선(參禪)하는 평상에 두 발을 뻗고,〔禪床展兩足〕
하룻밤 묵으면서 피로 풀었네.〔困疲留一宿〕
내일 아침엔 어디로 가야 하나,〔明朝向何許〕
구불구불 천만 굽이의 길이구려.〔路轉千萬曲〕
금장암(金藏菴)과 은장암(銀藏菴)은,〔金藏與銀藏〕
푸르른 절벽 곁을 높이 차지하였네.〔高占蒼崖旁〕
【금장(金藏), 은장(銀藏) 두 암자는 장안사(長安寺) 동편에 있다.】

보이는 곳이 점차 뛰어나게 기이하여,〔所見漸奇秀〕
냇물이고 산등성이고 마구 오가며 걸었네.〔出入行澗岡〕
높은 봉우리가 내 앞에 우뚝 서니,〔高峯立我前〕
칠보로 단장 한 듯하고.〔七寶爲其粧〕
【한 봉우리가 두 암자 동편에 있어, 그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마치 영락(瓔珞) 구슬이 드리워진 것 같으므로, 산승(山僧)이 칠보장엄(七寶莊嚴)이라 일컫는다.】

갑자기 유점사 근처에 다다르니,〔忽近楡岾寺〕
소나무 회나무가 줄지어 울창해라.〔松檜鬱成行〕
날을 듯한 누각이 냇물에 걸쳐 있어,〔飛樓跨澗水〕
물에 비친 그림자가 푸른 산 빛을 가리고.〔暎奪靑山光〕
【절문 앞의 누각이 냇물에 걸쳐 있으므로, 이름을 산영루(山暎樓)라 하였다.】

절의 문 앞 넓은 평지에는,〔門前平地濶〕
모래 풀이 봄 맞아 푸르르네.〔沙草逢春綠〕
문에 들어서자 놀래어 땀이 솟아으니라,〔入門駭汗出〕
양편에 신장(神將)이 마주섰네.〔神將相對立〕
푸른 사자와 큰 코끼리 형상으로,〔靑獅與白象〕
입을 벌리고 두 눈을 부릅떴네.〔呀口瞋雙目〕
【문에 서 있는 신장(神將)이 사자와 코끼리 상이었고, 그 얼굴이나 눈이 다 영악(獰惡)하여 놀랄 만하였다.】

종 소리 따라 천 손가락이 합장(合掌)하는데,〔撞鍾千指迎〕
소매를 둘러싼 향 연기가 가볍게 피어오르고.〔繞袖香煙輕〕
뜰 복판엔 높은 탑이 우뚝 솟아,〔庭中聳高塔〕
풍경 소리가 땡그랑땡그랑하네.〔風鐸聲琮琤〕
날을 듯한 삼매궁(三昧宮)은,〔翬飛三昧宮〕
규모 어이 그리도 웅장한고.〔結搆何其雄〕
마루 가운데 오래된 불상은,〔堂中古佛像〕
먼지에 흐릿한 금빛 얼굴이네.〔塵埃暗金容〕
멀리 천축(天竺)으로부터 올 때,〔遠自天竺來〕
바다를 타고 황룡에 업히어.〔駕海隨黃龍〕
이암(尼巖)과 계방(憩房)에,〔尼巖與憩房〕
낱낱이 그 발자취를 남겼다나.〔一一留其蹤〕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는 없지만,〔眞贗不可辨〕
그 일이야말로 「제해(齊諧)」 ※와 같도다.〔事與齊諧同〕
【절 기사(記事)에 실려 있기를, “천축 사람이 불상 53구(軀)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더니, 황룡(黃龍)이 이 불상을 업고서 이 산에 도착하였다. 고성(高城)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불상을 찾다가, 길 가에 작은 사람 발자취가 있는 것을 보고 곧 산중으로 들어가니, 석가모니가 돌에 걸터앉아 그 불상이 있는 곳을 가리키므로, 거기에 유점사(楡岾寺)를 지어 안치하였는데, 후인들이 석가모니가 걸터앉은 돌이라 하여 이를 이암(尼巖)이라 하고, 그 발자취 본 곳을 이름하여 계방(憩房)이라 하였다…” 하였다.】

명적암(明寂菴)은 그 서편에 있고,〔明寂【菴】在其西〕
흥성암(興聖菴)은 그 동편에 있어.〔興聖【菴】在其東〕
그윽한 곳을 찾느라 잠시도 쉬고 않고,〔尋幽暫不閒〕
짙은 연하 속으로 흥겨웁게 들어갔네.〔興入煙霞濃〕
고요한 두운암(斗雲菴)에는,〔寂寥斗雲菴〕
구름 속에 물방아가 저절로 방아 찧고.〔雲碓水自舂〕【두운암은 유점사의 북쪽에 있다.】
냇물에 다다라 돌다리를 건너니,〔臨溪渡石矼〕
활기찬 물소리 끝이 없구나.〔活水聲淙淙〕
성불암(成佛菴)은 높은 봉우리에 기대 섰고,〔成佛倚高峯〕
큰 바다가 그 동편에 있네.〔滄溟在東窓〕
【성불암이 두운암의 동북편에 있어 불정대(佛頂臺)와 서로 연이었는데, 동해(東海)가 내려다 보인다.】

우뚝하여라 불정대(佛頂臺),〔嵯峨佛頂臺〕
그 절경은 다시 둘도 없구려.〔孤絶更無雙〕
내가 와서 아침 해돋이를 바라보니,〔我來看朝曦〕
눈부시게 붉은 구름을 헤치고 나오네.〔滿目紅雲披〕
물과 하늘은 둘 다 끝이 없고,〔水天兩無際〕
불 기운은 풍이(馮夷) ※를 놀라게 하네.〔火氣驚馮夷〕
백전면(白巓面)으로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擧頭白巓面〕
열 두 폭포 하늘에서 큰 띠 드리운듯.〔十二天紳垂〕
【백전면(白巓面)에 열두 폭포가 있는데, 불정대(佛頂臺)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시 옛적 길을 찾아드니,〔回尋舊時路〕
가는 데마다 모두가 기쁘기만.〔到處皆可怡〕
위 아래의 두 견성암(見性菴)은,〔上下二見性〕
길 가에 우뚝 날으는 듯하고,〔臨路危甍飛〕
【불정대(佛頂臺)에서 서편으로 가면 상견성(上見性) 하견성(下見性) 두 암자가 다 두운암(斗雲菴)의 북쪽에 있다.】

축수(竺修)라 부르는 석굴은,〔石窟名竺修〕
냇물 가에 자리잡아 깨끗하기도 하며,〔瀟灑澗之湄〕
【하견성암(下見性菴) 서편에 있는데, 앞에는 물이고 뒤에는 바위로, 그 맑은 경치가 사랑스럽다.】

영대암(靈臺菴)과 영은암(靈隱菴)에는,〔靈臺與靈隱〕
구름과 안개가 뜰에 피어오르기도.〔雲霧生階墀〕【두 암자는 축수굴(竺修窟) 서남쪽에 있다.】
험악한 길이라 오르내리기 힘겨워,〔崎嶇勞涉險〕
두 다리를 스스로 가누기 어려웠네.〔兩脚難自持〕
다리가 부서진 데서는 뗏목으로 건너고,〔橋摧臥古槎〕
길이 끊긴 데서는 나무 가지를 더위잡았다.〔路斷攀樹枝〕
흐르는 여울은 귀를 따갑게 하고,〔流湍亂我耳〕
뿌리는 물방울은 옷자락을 씻어 주기도.〔濺沫灑人衣〕
깊고 그윽한 구연동(九淵洞)에는,〔幽深九淵洞〕
풀만 우거져 사람 자취 드물구나.〔草合人迹微〕
【구연동은 영은암(靈隱菴) 서편에 있는데, 그윽하고 깊으며 맑기 그지없다.】

보현암(普賢菴)을 배회하다가,〔徘徊普賢菴〕
쳐다보니 봉우리 아스라하다.〔仰見峯巒危〕
진견성(眞見性) ※에 흥미를 붙여,〔寄傲眞見性【菴】〕
떠나려다 그대로 머뭇거렸네.〔欲去仍留遲〕【두 암자는 다 구연동(九淵洞) 안에 있다.】
비를 무릅쓰고 향로암(香爐菴) 찾아드니,〔冒雨入香爐〕
인기척 없고 사립문도 닫혔는데.〔人靜關柴扉〕【향로암은 구연동 남쪽에 있다.】
하늘은 컴컴하고 밤 기운이 감돌아,〔天陰與夜氣〕
온 산에 가득히 부슬비만 내리었네.〔滿山同霏霏〕
내원암(內院菴)에서 반나절 머무는 동안,〔內院半日留〕
선탑(禪榻)에 기대어 속세를 잊었네.〔禪榻學忘機〕
【내원암은 향로암 서북쪽에 있는데, 여기서부터 점차 깊은 경내로 들어간다.】

다시 미륵봉(彌勒峯)을 찾아드니,〔更尋彌勒峯〕
산을 즐기기 굶주림과 목마름 같아라.〔愛山如渴飢〕
봉우리머리 돌이 부처님과 같아서,〔峯頭石如佛〕
이 때문에 미륵봉이라 이름 붙였다네.〔得名良在玆〕
【미륵봉은 내원암(內院)의 서편에 있는데, 봉우리 위의 돌 모양이 미륵불과 같다.】

쓸쓸한 남초암(南草菴)이지만,〔蕭條南草菴〕
스님은 신선 자태 있어라.〔居僧有仙姿〕【암자가 미륵봉 남쪽에 있는데 가장 깊은 곳이다.】
나를 보자 산중의 반찬 차려 주어,〔見我薦山羞〕
향기로운 나물로 허기를 면하기도.〔香蔬療我饑〕【이 산골에 산나물이 매우 많다.】
이 산골 깊이가 얼마인 지를,〔此洞深幾許〕
산에 사는 스님도 모른다나.〔山僧亦不知〕
세속의 시비 들리지 않는데,〔是非聲不至〕
뭐 수고롭게 귀를 씼으랴. ※〔何須勞洗耳〕
저녁이면 흰 원숭이와 함께 읊고,〔暮共白猿吟〕
아침에는 푸른 학을 따라 일어나도다.〔朝隨蒼鶴起〕
발길을 돌려 만경대(萬景臺)에 오르니,〔還登萬景臺〕
사방이 활짝 눈 앞에 보이네.〔四方皆洞視〕
【도로 동구(洞口)를 향해 이 만경대에 올랐다. 만경대는 남초암(南草菴)의 동북편에, 영은암(靈隱菴)의 서북편에 위치하고 있다.】

양진(養眞)이란 동굴이 있는데,〔有窟名養眞〕
너무 맑아서 오래 머물기 어려웠고.〔過淸難久止〕【만경암의 서북편에 있다.】
속세와 격리된 딴 천지라,〔人寰隔霄壤〕
세상 피하는 선비가 살 만한 곳이었네.〔宜居避世士〕
뒷날 다시 오기로 기약하고,〔他時期再來〕
산골을 나오면서 자주 머리를 돌리었네.〔出洞頭屢回〕【이 산골의 암석이 다른 곳보다 희다.】
스님은 말하기를, 안 산이 좋지,〔僧言內山好〕
밧산은 마치 천한 하인 같다하네.〔外山同輿儓〕
밧산이 이미 이렇게 수려할진대,〔外山已如此〕
하물며 저 안 산이랴.〔況彼內山哉〕
재빨리 선경에 들어가서,〔急須入仙境〕
먼지 속에 찌든 병을 씻어야겠네.〔以滌塵中病〕
【산의 동남쪽을 밧산이라 하고, 서북쪽을 안산이라 하는데, 안산이 더욱 기묘하게 뛰어났고 암석도 보다 희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 속을 계속 걷노라니,〔行行樹陰中〕
저녁 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네.〔晩風吹不定〕
【영은암(靈隱菴)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안산까지 당도할 수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이,〔山禽不知名〕
제 멋대로 두세 마디 우는구나.〔自呼三兩聲〕
작은 냇물로 통하는 외나무 다리가,〔小溪通略彴〕
기울어져 건너갈 수 없어라.〔敧側不可行〕
옷 벗고 맑은 물결 희롱하니,〔解衣弄淸泚〕
형체와 그림자 서로 어울려.〔形影聊相戲〕
한 몸은 바위 위에 있고,〔一身在巖上〕
한 몸은 물 속에 있네.〔一身在水裏〕
너는 지금 내가 아니고,〔爾今不是我〕
내가 지금 도리어 너이로세.〔我今還是爾〕
흩어지면 수 많은 동파(東坡) ※가 되었다가,〔散爲百東坡〕
경각간에 다시 여기에 있구려.〔頃刻復在此〕
물 속에 있는 사람아,〔好在水中人〕
가는 데마다 물들거나 닳아짐 ※없게 하라.〔到處無緇磷〕
선암(禪菴)인 묘길상(妙吉祥) ※은,〔禪菴妙吉祥〕
주변이 말끔하여 티끌 하나 없고.〔面戶淸無塵〕【내산(內山)에서 최초로 보는 암자이다.】
그 곁에 있는 문수암(文殊菴)은,〔其旁有文殊【菴】〕
도린결이라 찾아가기 어려웠다.〔地秘人難臻〕
오르고 또 올라 불지암(佛地菴)에 왔거니,〔登登到佛地【菴】〕
험악한 산비탈을 몇 번이나 거쳤던고.〔幾經山磷峋〕【묘길상(妙吉祥)의 서편에 있다.】
조그만 암자가 바위 밑에 있는데,〔小菴在巖下〕
그 이름이 계빈(罽賓) ※이었다.〔厥號爲罽賓〕【계빈은 굴(窟) 이름인데, 불지암 서편에 있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금전(金殿)은,〔萬樹衛金殿〕
그 이름이 마하연(摩訶衍) ※이다.〔是名摩訶衍〕
【불지암 서편에 있다. 이 암자가 산의 한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주봉(主峯)이 바로 비로봉(毗盧峯)이다.】

웅장한 봉우리가 그 뒤에 솟아 있고,〔雄峯峙其後〕
높은 재가 그 앞에 마주 보고 있다.〔峻嶺當其面〕
서리고 두른 산세 천연으로 이뤄져,〔環回天所成〕
앞서 본 것보다 경치가 뛰어나라.〔絶勝前所見〕
여기저기 울창한 아름다운 기운에,〔佳氣鬱葱葱〕
마음이 놀래어 얼굴빛이 변하였네.〔心驚顔爲變〕【사방으로 둘러싼 산세(山勢)가 천연으로 이뤄진 것 같다.】
아! 가장 신비스러운 이 땅이,〔吁嗟最靈地〕
천년 동안 헛되이 버려졌구려.〔千載空虛棄〕
용렬한 중들이 운하(雲霞)를 더렵혔으니,〔庸僧汙雲霞〕
이제 한탄한들 어찌할 수 있으리!〔感歎知奈何〕
지나온 산중의 그 많은 암자,〔山中所歷菴〕
이루 다 품평할 수 없고.〔多少難爲科〕
자세히 적으려 하나 그럴 수도 없어,〔欲詳不可得〕
내 시험삼아 그 대략만 말하리!〔我試言其略〕
【산중의 암자가 백이 넘을 정도로 많아, 다 들 수 없기에 우선 그 대개 만을 기재할 뿐이다.】

묘봉암(妙峯菴)과 사자암(獅子菴)은,〔妙峯與獅子〕
마하연(摩訶衍) 곁에 가까이 있고.〔近在摩訶側〕【두 암자는 마하연 서편에 있다.】
만회암(萬回菴)과 백운암(白雲菴),〔萬回與白雲〕
선암(船菴)과 가섭암(伽葉菴).〔船菴與迦葉〕
묘덕암(妙德菴)과 능인암(能仁菴),〔妙德與能仁〕
원통암(圓通菴)과 진불암(眞佛菴).〔圓通與眞佛〕
수선암(修善菴)과 기기암(奇奇菴),〔修善與奇奇〕
개심암(開心菴)과 천덕암(天德菴).〔開心與天德〕
천진암(天津菴)과 안심암(安心菴),〔天津與安心〕
돈도암(頓道菴)과 신림암(神林菴).〔頓道與神林〕
이엄암(利嚴菴)과 오현암(五賢菴),〔利嚴與五賢〕
안양암(安養菴)과 청련암(靑蓮菴).〔安養與靑蓮〕
운점암(雲岾菴)과 송라암(松蘿菴)이,〔雲岾與松蘿〕
차례로 기라성처럼 나열해 있네.〔次第如星羅〕
【이상은 다 암자 이름인데, 만회암은 마하연 북쪽에 있고, 백운암은 만회암 북쪽에 있으며, 선암은 백운암 서북쪽에 있고, 묘덕암은 능인암 서쪽에 있으며, 능인암은 원통암 북쪽에 있고,원통암은 진불암 남쪽에 있으며, 진불암은 선암(船菴) 서남쪽에 있고, 수선암과 기기암은 선암동 남쪽에 있으며, 개심암과 천덕암은 원통암 서쪽에 있고, 천진암과 안심암은 개심암 북쪽에 있으며, 돈도암은 표훈암(表訓菴) 동남쪽에 있고, 신림암은 표훈암 서쪽에 있으며, 이엄암과 오현암은 돈도암 동북쪽에 있고, 안양암과 청련암은 장안(長安) 동쪽에 있는데, 다 그 협운(協韻)을 취하였기 때문에 순서가 없이 적었다.】

혹은 최고 봉우리에 기대고 있어,〔或倚最高峯〕
손으로 은하수를 어루만질 성싶고.〔手可捫銀河〕
혹은 쏟아지는 폭포를 굽어보아,〔或枕急流瀑〕
고요한 속에서도 요란히 시끄럽고.〔靜中喧聒聒〕
혹은 바위 기슭에 있어,〔或在巖石下〕
머리를 숙여야 겨우 드나들고.〔低頭僅出入〕
혹은 붉거나 푸른 봉우리를 마주 대하여,〔或對紫翠峯〕
석양 빛이 문에 비춰 아롱거리고.〔暮色來排闥〕
혹은 큰 바위 위를 차지하여,〔或占大巖上〕
가느다란 길을 겨우 걸어갈 수 있고.〔綫路纔容迹〕
혹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或隱幽邃處〕
아주 속세와는 격리되었는가 하면.〔永與塵勞隔〕
비록 외부 나그네가 오지 않더라도,〔雖無外客來〕
속삭일 땐 산울림 메아리치고.〔小語山已答〕
혹은 수목 속에 묻혀 있어서,〔或秘樹木中〕
짙은 그늘이 햇빛을 가려 주고.〔濃陰遮日色〕
혹은 낭떠러지 끝에 자리 잡아,〔或據斷崖頭〕
뜰에 가득 온통 괴석뿐.〔滿庭皆怪石〕
그 기이한 형상과 특이한 모습을,〔奇形與異狀〕
기록으로 끝내 다할 수 없고.〔記之終難悉〕
눈으로 보았으나 입으론 말하기 어려워,〔眼看口難言〕
만에 하나쯤 겨우 적어 둔다오.〔漏萬纔掛一〕
나는 표훈사(表訓寺)를 사랑하노니,〔我愛表訓寺〕
그 울창함 숲 기슭을 의지했네.〔鬱鬱依林麓〕【개심사(開心寺) 남쪽에 있다.】
스님은 한가롭고 단청 집은 비었는데,〔僧閒畵殿空〕
한낮이어라 누각 그늘 직선을 이루었네.〔日午樓陰直〕
나는 정양사(正陽寺)를 사랑하노니,〔我愛正陽寺〕
천 길 되는 구릉이 내려다 보이네.〔俯臨千丈壑〕【표훈사 위에 있다.】
옷을 걷고 뜰에서 산책하다가,〔褰衣步庭除〕
사방을 돌아보니 산이 쌓인 것 같았네.〔四顧山如積〕
나는 수미대(須彌臺)를 사랑하노니,〔我愛須彌臺〕
겹겹이 쌓인 돌들 높은 대를 이루었네.〔疊石成崔嵬〕【진불암(眞佛菴) 서북쪽에 있다.】
그지없이 깨끗하기 선경 같아서,〔淸絶似仙區〕
봉래산(蓬萊山)을 찾을 필요 없겠더라.〔不必求蓬萊〕
나는 망고대(望高臺)를 사랑하노니,〔我愛望高臺〕
사방에 먼지 한점 없어라.〔四面收黃埃〕【장안사(長安寺) 북쪽, 표훈사(表訓寺) 남쪽에 있다.】
그 높이 얼마인지 알고 싶은가,〔欲知高幾何〕
퉁소소리 천상에서 들려온다네.〔笙簫天上來〕
구름 헤치며 오르는 것이 쾌활하긴 하나,〔凌雲縱快活〕
쇠줄 잡기 정말로 위태로왔네.〔執鎖誠危哉〕
【망고대(望高臺)를 올라갈 때, 길이 끊어진 곳에는 드리워져 있는 쇠줄을 더위잡아야 올라갈 수 있다.】

나는 시왕동(十王洞)을 사랑하노니,〔我愛十王洞〕
산 형세가 다 빙 둘리었어라.〔山勢皆盤回〕
【장안사(長安寺)의 동북편에 있어 가장 깊은 곳이고, 사람들이 이르지 않는 곳에 옛탑이 있다.】

연대를 알 수 없는 옛탑 하나가,〔古塔不記年〕
낭떠러지 가에 우뚝 서 있었네.〔兀立懸崖邊〕
나는 만폭동(萬瀑洞)을 사랑하노니,〔我愛萬瀑洞〕
날을 듯한 폭포 푸른 수은이 쏟아지는 듯.〔飛流瀉靑汞〕
【표훈암(表訓菴) 동편이자 사암(獅菴) 서편에 있는데, 순전히 암석으로 이뤄진 곳이다.】

온통 암석이 몇 리를 연이어,〔一巖連數里〕
미끄럽고 깨끗해 기대기 어려워라.〔滑淨難所倚〕
구불구불 산골 어귀에 이르기까지,〔逶迤至洞口〕
온 산골이 죄다 흐르는 물이었네.〔滿洞皆流水〕
깊은 곳은 오목하게 못이 되어,〔坎處陷爲淵〕
그 밑에 화룡연(火龍淵)이 있고.〔下有火龍眠【淵名】〕
경사진 곳엔 거센 여울이 되어,〔傾處激爲湍〕
천둥 같은 소리 빈 산을 진동하며〔鳴雷振空山〕
판판한 곳은 맑기만 하고 흐르지 않아,〔平處湛不流〕
거울처럼 내 얼굴을 비춰 주기도.〔如鏡鑒吾顔〕
맑은 바람이 좌우에서 불어와,〔淸風左右至〕
더운 열기가 추한기로 변해라.〔炎熱變爲寒〕
옷깃을 헤치고 나무 아래 앉아,〔披襟坐樹下〕
신세가 한가함을 비로소 알았네.〔始知身世閒〕
나는 보덕굴(寶德窟)을 사랑하노니,〔我愛寶德窟〕
구리쇠 기둥이 천 자 이상이라.〔銅柱盈千尺〕
【골짝 복판에 있는 동굴로서 날을 듯한 누각이 허공에 걸쳐 있는데, 3면은 바위를 의지했고, 1면은 구리기둥으로 떠받친 것이 백 자에 가까워 그지없이 기이하다.】

허공에 걸려 있는 날을 듯한 누각은,〔飛閣在虛空〕
하늘의 조화이지 사람솜씨 아니리.〔天造非人力〕
멀리 바라볼 적엔 그림 같았는데,〔未至望如畵〕
막상 오르고 보니 땀이 목욕한 듯하네.〔旣登汗如沐〕
참선하는 스님은 뭇 인연 후리쳐 버려,〔禪僧萬緣虛〕
종이 포대에 솔잎만 담아 두었구려.〔紙帒儲松葉〕
만약 이 곳에 와서 살려거던,〔若欲捿此地〕
응당 곡식 끊기부터 배워야 하리!〔應須學絶粒〕
떠나야겠네 이곳엔 머무를 수 없으니,〔去矣不可留〕
내 장차 산을 돌면서 유람이나 하리!〔我將巡山遊〕
사자를 닮은 바윗돌 하나가,〔有石類獅子〕
봉우리 꼭대기에 우뚝 서 있고.〔屹立乎峯頭〕
【사자암(獅子菴) 앞에 있다.】
쌓인 성 비슷한 암자도 있었으나,〔有菴似築城〕

그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不知誰所營〕【사자암 곁에 있다.】
이 세상에 동방삭과 짝할 이 없어,〔世無方朔儔〕
기괴한 일 물어 볼 곳 막연하였네.〔怪事問無由〕
안산에서 열흘을 머물은 동안,〔內山留十日〕
볼 만한 곳은 대략 두루 보았네.〔尋遊略已周〕
동쪽으로 걸어서 상원에 도착하니,〔東行到上院〕
길 가에 층층 봉우리 멀리 보여라.〔路旁層巒遠〕
【여기에서 백전(白巓)으로 가는데, 상원(上院)이 길 가에 있다.】

적멸암(寂滅菴)에서 개심암(開心菴)으로 올라가니,〔寂滅【菴】上開心【菴】〕
비낀 구름이 마침 걷히지 않아.〔橫雲時未捲〕
【두 암자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적멸암에서는 동해를 볼 수 있다.】

창문 열자 무엇이 보이는가 하면,〔開窓何所見〕
붉은 바다가 비단처럼 판판하였네.〔赤海平如練〕
산 사람들이 백전(白巓)을 가리켜,〔山人指白巓〕
속세의 도솔천(兜率天) ※이라네.〔人間兜率天〕
【백전을 도솔이라 하는 것은 대개 깨끗한 명승이기 때문이다.】

여러 암자가 푸른 빛 속에 널려 있어,〔諸菴列翠徵〕
종소리 북소리가 번갈아 들린다.〔鍾鼓聲相連〕
성문(聲聞)이라 일컫는 그 골짝엔,〔有洞名聲聞〕
수석이 어이 그리 어수선한지.〔水石何紛紜〕
바라보긴 해도 찾아갈 수 없어,〔可望不可尋〕
청학동(靑鶴洞)과 형제가 될 만하였네.〔靑鶴爲弟昆〕
【적멸암(寂滅菴) 밑에 성문동(聲聞洞)이 있는데, 내려다 보면 바위가 기이하고 물이 맑기는 하나 들어갈 길이 없어 지리산(智異山)의 청학동(靑鶴洞)과 같다.】

발연사(鉢淵寺)를 마주 대한 그 절벽은,〔鉢淵對絶壁〕
천공(天工) ※으로 갈고 깎았나 봐.〔天工所磨削〕
한 줄기 긴 무지개같은 폭포를 뿜어내니,〔一條噴長虹〕
그 밑엔 맑은 못이 푸르기도 해라.〔其底澄潭碧〕
산 스님들이 아무 하는 일 없어,〔山僧無一事〕
굴러 내림을 부질없이 낙으로 삼네.〔轉下聊爲樂〕
베틀에 북처럼 급히 몸을 던지면,〔投身急如梭〕
엎치락뒤치락 아찔함을 헤아릴 수 없었네.〔顚倒眩莫測〕
【발연사(鉢淵寺) 위치는 적멸암의 동편인데, 폭포가 아주 깊고 암석이 극히 미끄러워 산승이나 속인들이 와서 구경하는 자는 다 옷을 벗고 바위에 올라가 폭포를 따라 굴러 내리면서 장난하기 일쑤이다. 비록 엎치락뒤치락 굴러 내리어도 끝내 다치지는 않는다.】

구정봉(九井峯)을 돌아 오르니,〔回登九井峯〕
우거진 계수나무 꺾을 수 있고.〔桂樹森可析〕
【적멸암 북쪽에 있는 매우 높고 험준한 봉우리로서 계수나무가 있다.】

부상(扶桑) ※도 손으로 잡을 수 있어,〔扶桑手可挹〕
한밤중에 해 돋는 것을 보았네.〔夜半看日出〕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려고 하니,〔欲見九龍淵〕
스님이 말하기를, 길이 험하여.〔僧言路險惡〕
만약 소나기라도 만나게 되면,〔若遇驟雨來〕
죽느냐 사느냐가 경각에 달렸으니〔死生在頃刻〕
【구룡연은 비로봉(毗盧峯) 동편에 있는데, 가장 기절하고 화려한 곳이다. 다만 길이 험하고 돌이 미끄러워 비를 만나면 정말 죽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나는 두려워서 가지 않았다.】

차라리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不如上高峯〕
날으는 신선 발자취나 밟음이 나으리다.〔以躡飛仙蹤〕
이 말대로 정말 그럴까 하다가,〔斯言定信乎〕
비로봉에 오를 뜻을 결정하였네.〔決意登毗盧〕
솔 뿌리가 돌 모서리에 얽히어,〔松根絡石角〕
손으로 더위잡아야 발을 붙일 수 있었네.〔手攀足可踏〕【비로봉이 이 산의 절정이다.】
어떤 스님이 내 앞을 인도하면서,〔有僧導我前〕
날더러 내려다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戒我勿俯矚〕
아스라히 높은 곳에 다다라 만약 내려다 보면,〔臨危若俯矚〕
눈이 아찔하여 정신을 못차릴 것이오.〔目眩神必惑〕
또는 산 형세를 보고 싶더라도,〔若欲見山形〕
최고 봉우리엔 올라 가지 마시오.〔莫上最高嶽〕
만약 최고 봉우리에 올라 간다면,〔若登最高嶽〕
보이는 것이 모두 아물아물 때문이지요.〔所見皆怳惚〕【너무 높으면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이 말을 나의 스승으로 삼아,〔此言爲我師〕
조심조심 게으르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勉旃無怠忽〕
하루 낮 하루 밤을 지나고서야,〔一經晝與宵〕
비로소 산 중턱에 이르러.〔始及山之腰〕
피곤해서 반석 위에 누었으니,〔困臥盤石上〕
위나 아래가 모두 아득하기만 해라.〔廓落迷俯仰〕
마음이 안정되어 머리를 치켜드니,〔心定始擡首〕
수 많은 봉우리가 죄다 나에게로 향하는데.〔衆峯皆我向〕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산들이,〔高低與遠近〕
한결같이 다 깎아 세운 듯이 하얗네.〔一槪皆削粉〕
백리 거리가 한 자도 채 못되어,〔百里不盈尺〕
큰 것 작은 것이 모두 숨김없이 보이더니.〔鉅細皆無隱〕
갑자기 흰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 올라,〔忽然蒸白霧〕
시야가 흐려져 멀리 볼 수 없어라.〔澒洞失遠覯〕
처음에는 한 골짝에서 피어 일더니,〔初依一谷生〕
차츰 뭇 산을 뒤덮어 가면서.〔漸蔽羣山走〕
끝내는 산들을 아스라하게 만들고,〔遂使山蒼蒼〕
다시 바다까지 아득하게 만들기도.〔飜作海茫茫〕
넓고도 넓은 하나의 기운이건만,〔浩浩同一氣〕
아득하여 측량하기 어려웠네.〔漠漠難爲量〕
듣건대 태극 이전에는,〔吾聞太極前〕
모든 조화를 드러내지 않았다는데.〔萬化不開張〕
이제 산신령은 무슨 뜻으로,〔山靈意何如〕
나에게 만물의 시초를 보여 주는고.〔示我物之初〕
바람이 없자 안개가 점차 흩날려,〔無風漸飄散〕
반은 걷치고 반은 자욱하네.〔半卷還半舒〕
수려한 두어 곳이 비로소 드러나,〔始露數點秀〕
외롭기 하늘에 있는 산봉우리 같아라.〔孤如天上岫〕
짙은 청색으로 긴 눈썹을 그린 듯,〔濃靑畵脩眉〕
바다에서 목욕하는 붕새 부리를 치켜든 듯.〔浴海褰鵬噣〕
갑자기 놀랍게도 거센 바람 일더니,〔俄驚疾風起〕
속도가 마치 달리는 천리마와 같아.〔駛若驊騮驟〕
경각간에 한 점의 띠끌도 없어,〔須曳無點滓〕
시야가 모두 환히 열리더군.〔眼力皆通透〕
혹은 칼끝처럼 뾰죽하기도 하고,〔或尖若劒鋒〕
혹은 대바구니나 접시처럼 둥글기도 하며.〔或圓若籩豆〕
혹은 달아나는 뱀처럼 길기도 하고,〔或長若走蛇〕
혹은 누워 있는 짐승처럼 짧기도 하며.〔或短若臥獸〕
혹은 존귀한 만승(萬乘) 천자가,〔或如萬乘尊〕
대궐문 활짝 열고 조회 받을 때.〔朝會開天門〕
만조 백관들이 엄숙하게 시립하여,〔衣冠儼侍立〕
구름처럼 모여 있는 거마(車馬) 같기도.〔車馬如雲屯〕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或如釋迦佛〕
중생을 거느리고 영취산에 계실 때.〔領衆依靈鷲〕
오랑캐 군주나 귀신 우두머리들이,〔蠻君與鬼伯〕
앞다투어 나오는 머리 같기도.〔競進頭戢戢〕
혹은 오기(吳起)나 손빈(孫臏) ※이〔或如吳與孫〕
북을 치면서 삼군으로 돌진할 때.〔擊鼓陳三軍〕
철마로 창 칼을 휘두르며,〔鐵馬振刀鎗〕
장사들이 앞을 다퉈 추격하는 듯.〔壯士爭追奔〕
혹은 짐승의 왕 사자가,〔或如獅子王〕
온갖 짐승 떼를 제압하는 듯도.〔威壓百獸羣〕
혹은 비를 내리는 용이,〔或如行雨龍〕
갈기를 날리며 검은 구름을 뿜는 듯도.〔奮鬣噴陰雲〕
혹은 바위에 기댄 호랑이가,〔或如靠巖虎〕
돌아보면서 길 복판에 쭈그려 앉은 것 같기도.〔顧眄當路蹲〕
혹은 첩첩이 쌓아놓은,〔或若文書積〕
업후(鄴侯) ※의 3만 권 책과도 같고.〔鄴侯三萬軸〕
혹은 승려들이 쌓아 올린,〔或若建浮圖〕
소량(蕭梁) ※의 9층탑 같기도 하며.〔蕭梁九層塔〕
혹은 다닥다닥 연이은 무덤에,〔或若纍纍塚〕
정령위(丁令威) ※가 고국을 찾은 듯도.〔令威尋故國〕
혹은 앞을 향해 읍하고 물러서는 듯도,〔或向如捐讓〕
혹은 등을 돌려 독기를 품은 듯도.〔或背如抱毒〕
혹은 서먹서먹 서로 피하는 듯도,〔或踈若相避〕
혹은 오손도손 서로 친한 듯도.〔或密若相狎〕
혹은 얌전한 새아씨,〔或如窈窕女〕
깊은 규방에서 정숙을 지키는 듯도.〔深閨守貞淑〕
혹은 글 읽는 선비가,〔或如讀書儒〕
머리 숙여 책을 펼치는 듯도.〔低頭披簡牘〕
혹은 힘센 분·육(賁育) ※의 무리들이,〔或如賁育徒〕
용기를 뽐내어 호통치는 듯도.〔賈勇氣咆勃〕
혹은 앉아 참선하는 스님들이,〔或如坐禪僧〕
명아주 평상에 무릎을 꿇은 듯도.〔藜牀穿兩膝〕
혹은 토끼를 잡아채는 새매와도 같고,〔或若搏兎鷹〕
혹은 새끼를 안은 사슴과도 같으며.〔或若抱兒鹿〕
혹은 놀란 오리 풀쩍 날듯,〔或翔若驚鳧〕
혹은 우뚝 서 있는 고니와 같기도.〔或峙若立鵠〕
혹은 거만하게 자세를 부리기도 하며,〔或偃然肆志〕
혹은 힘 없이 굽히기도.〔或靡然自屈〕
혹은 뿔뿔이 흩어져 합쳐지지 않은 모양도 있고,〔或散而不合〕
혹은 연이어져 끊기지 않은 모양도 있어.〔或連而不絶〕
온갖 형상이 각기 다른 자태라서,〔萬象各異態〕
탐내어 구경하느라 발걸음 옮길 줄을 잊었네.〔貪翫忘移足〕
그러나 중도에 그만 둘 수 없어,〔不可廢半道〕
그 높은 절정에까지 오르려 하니.〔我欲窮其高〕
온 몸을 둘러싼 것이 무엇이냐 하면,〔繞身是何物〕
가끔 지나가는 외로운 구름이었고.〔時有行雲孤〕
지나가는 구름도 못 미치는 곳엔,〔行雲不及處〕
강한 바람만 세차게 불고.〔肅肅剛風號〕
날으는 솔개나 깃드리는 새매도,〔飛鳶與捷鶻〕
내 발걸음을 따라오지 못하였네.〔莫能追我翶〕
곧장 최상의 절정에 올라가,〔直到無上頂〕
상쾌히 읊고 자유로히 유람하니.〔朗詠聊遊遨〕
숲 끝엔 아침 해가 솟아 오르고,〔林端拂朝日〕
바위 위엔 저녁 달이 떠올라라.〔石頭礙夜月〕
어수선한 소리 귀 기울여 보니,〔俯聽蟻動聲〕
산 중턱에 벼락이 친 듯 하건만.〔山腰起霹靂〕
모호하여 분별할 수 없도다.〔糢糊不可辨〕
아무리 큰 것도 언덕과 비슷하고,〔大者類丘垤〕
작은 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네.〔小者視不見〕
비록 이루(離婁) ※의 눈을 가졌더라도,〔縱有離婁目〕
어찌 성곽을 분별할 수 있으랴.〔安能辨城郭〕
호연히 긴 휘파람을 불어,〔浩然發長嘯〕
그 소리 상제(上帝)의 궁궐에 들어갔으니.〔聲入淸都闕〕
신선들도 정말 이상하게 여기고,〔仙侶定駭愕〕
옥황(玉皇)도 필경 놀라 힐문했으리!〔玉皇應驚詰〕
상제의 궁궐이 비록 멀지 않지만,〔天官縱不遠〕
그 도근(道根)이 얕은데야 어찌하리!〔其奈道根淺〕
듣건대 하늘의 신선들도,〔吾聞上界仙〕
그 관부(官府)가 한가롭지 못하다더군.〔官府未得閒〕
세속을 초월한 사람이이라 해도,〔何如方外人〕
신선과 범부(凡夫) 사이에 있지 않겠는가.〔不在仙凡間〕
마음만 텅 비면 만사는 하나이고,〔心虛萬事一〕
기운이 어귀차면 우주도 비좁아라.〔氣大六合窄〕
곤륜산은 손에서 벗어난 공이고,〔崑崙脫手毬〕
큰 바다는 발에 바르는 기름이라오.〔大海塗足油〕
내 가슴 속에 산수가 있으니,〔胸中有山水〕
여기 금강산에 머물게 없네.〔不必於此留〕
한 번 유람으로 만족할 줄 안다 해서,〔一覽便知足〕
조물주가 나를 꾸짖지는 않을테지.〔造物不我尤〕
그런데 스님이 말하기를 이 산 경치는,〔僧言此山景〕
사철 내내 다 맑고 좋다오.〔四時皆淸勝〕
더웁고 서늘함이 세상과는 달라서,〔炎凉異世間〕
차가운 기운 봄에도 기세 부리니.〔陰氣春猶盛〕
범상한 꽃들이야 어찌 꽃송이를 피우겠소,〔浮花豈吐蘂〕
겨울 매화에만 꽃이 핀다오.〔只有寒梅瑩〕
산중이라 4월, 5월쯤 되어야,〔山門四五月〕
비로소 봄 흥취를 찾을 수 있지요.〔始有尋春興〕
천만 길이나 되는 층층 낭떨어지에,〔層崖千萬丈〕
붉은 철쭉꽃이 서로 비추어.〔蹢躅花相暎〕
대지(大地)가 붉은 화로 속으로 들어가도,〔大地入紅鑪〕
스님은 오히려 차가움에 시달린다오.〔衲僧猶苦冷〕
으례 속세 인연이야 침범하지 않지만,〔撲緣不侵人〕
쉬파리는 그림자도 볼 수 없다오.〔蒼蠅絶形影〕
가을 바람은 왜 그리 일찍 오는지,〔秋風來苦早〕
낙엽이 돌 길을 다 메워버리고.〔落葉塡石逕〕
봉우리는 앙상하게 모가 나는데,〔峯巒瘦生稜〕
흰 달은 유달리 휘영청 밝으며.〔素月增耿耿〕
한편 솔숲 사이 단풍나무는,〔松林間楓樹〕
붉은 빛 푸른 빛 수 없이 요란하고.〔紅碧紛無數〕
물이 줄자 높은 바위 드러나고,〔水落露危巖〕
흐르는 물소리 거세게 들린다오.〔激激波聲怒〕
추운 겨울엔 수관(水官) ※이 교만을 부려,〔冬寒水官驕〕
쌓인 눈이 천주(天柱) ※보다 높고.〔積雪高天柱〕
연기 나는 곳엔 절 있는 줄 알지만,〔煙生知有寺〕
문이 막혀 드나들기 어려웠다오.〔門礙難開戶〕
마치 딴 세상 같아서,〔譬如別世界〕
온 국토가 흰 은빛이며.〔白銀爲國土〕
푸르른 전나무가 줄줄이 늘어 서서,〔翠檜列幾行〕
수염 같은 잎들이 물결을 드리운다오.〔鬚髮垂滄浪〕
그대는 왜 이런 것들을 보지 않고서,〔君胡不見此〕
도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하나요.〔反思歸故鄕〕【기록한 것이 사철 경치로서 모두 산중의 실사(實事)이다.】
이 산에 우인(羽人) ※이 있어,〔此山有羽人〕
바람 타고 마구 허공을 나는데.〔馭風凌空行〕
푸른 머리털을 연기처럼 휘날리면서,〔綠髮飄若煙〕
바위 구멍에 그 몸을 감춘다오.〔巖竇藏其形〕
천년 동안 송진만 먹어서라,〔千年食松脂〕
번뇌에서 벗어나 오래 살면서.〔蟬蛻得長生〕
사람을 보고도 말붙이진 않지만,〔見人不接言〕
그 얼굴 수려하고 모난 눈도 맑다오.〔顔秀方瞳淸〕
그대 어째서 이 사람을 보지 않는고,〔君胡不見此〕
속세 벗어나고 싶은 마음 없는가봐.〔似無物外情〕
【산중에 어떤 사람이 솔잎만 먹고 사는데, 오랜 세월에 몸이 가벼워 공중으로 오가고 온 몸에는 푸른 털이 났다. 산승(山僧)이 땔나무를 베고 나물을 캘 때 가끔 만나보았다 한다.】

이 산에는 또 이상한 짐승이 있는데,〔此山有異獸〕
호랑이도 아니고 시랑도 아니면서.〔非虎非豺狼〕
우람한 몸집은 산처럼 커다랗고,〔雄形大如山〕
성낸 눈초리는 거울처럼 빛나.〔怒眸若鏡光〕
가끔 큰 나무에 몸을 문지르면,〔有時磨大木〕
그 푸른 털이 백척 높이에 걸리고.〔翠毛掛百尺〕
발자국은 수레바퀴처럼 넓어,〔足跡廣如輪〕
진정 범상한 짐승 종류가 아니라오.〔諒非凡獸匹〕
그대 어째서 이것을 보지 않고서,〔君胡不見此〕
마치 겁내어 피해 가듯 하는고.〔避去如畏怯〕【산중에 어떤 짐승이 이 시(詩)의 기록과 같은 것이 있다 한다.】
이 산에는 또 선학(仙鶴)이 있는데,〔此山有仙鶴〕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날개와 같아.〔大如垂天翼〕
흰 구름 위로 훨훨 날아 다니다가,〔翶翔白雲上〕
해가 저물면 돌아와 푸른 벽에 서식하고.〔暮還棲翠壁〕
때로는 수컷 암컷이 춤을 추면,〔有時舞雌雄〕
두 그림자가 봉우리 앞에 비친다오.〔雙影峯前落〕
고상한 사람도 그와 친하지 못한데,〔高人尙不親〕
하물며 억지로 반가히 대해 주길 구하랴.〔況求對以臆〕
그대 어째서 이것을 보지 않는고,〔君胡不見此〕
마음이 속세를 벗어나지 못했구려.〔胸次未免俗〕
【산중에 어떤 새가 있는데, 두루미보다 크고 푸른 바탕에 붉은 이마를 지닌 한 쌍이 날아다녀 사람들이 두루미라 한다.】

내 이 스님의 말을 듣고나서,〔我聞此僧言〕
돌아 오려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將還更回躅〕
끝내는 반년 동안 머물렀는데,〔遂作半歲留〕
앞서 들은 것이 헛된 말이 아니었네.〔所聞非虛說〕
스님이 말하기를, 이 산의 이름은,〔僧言此山名〕
금강산 또는 지달산인데.〔金剛與怾怛〕
수 많은 보배가 합쳐 이뤄졌고,〔衆寶所合成〕
담무갈(曇無竭) ※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오.〔中有曇無竭〕
나는 반문하기를 불경 속에서는,〔我言佛書中〕
조선국이란 것을 보지 못했고.〔不見朝鮮國〕
또 금강산이 바다 가운데 있다 했으니,〔又云在海中〕
이 산과는 동일하지 않는 것이라네.〔不與此山同〕
【산승이 이르기를, “불경에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어 담무갈(曇無竭)이란 성인이 그곳에 머물었다.’했는데, 바로 이 산이다…” 한다. 그러나 이 산이 어찌 바다 속에 있는 산이겠는가.】

아마도 용백국(龍伯國) ※의 호걸이,〔我疑龍伯豪〕
한 번에 여섯 마리 자라를 연달아 낚았는데.〔一釣連六鰲〕
삼산에서 드디어 방향을 잃어,〔三山遂失所〕
바다에 떠서 신선들을 놀라게 하고.〔泛海驚仙曺〕
정처없이 떠돌다가 우리 강토에 이르러,〔漂流到我彊〕
수 많은 산중에 제일 가는 산이 되었나봐.〔作此羣山王〕
또 아마 서하의 오강(吳剛) ※이,〔又疑西河吳〕
계수나무 곁으로 도끼를 메고 가〔荷斧桂樹旁〕
계수나무를 베어 이 땅에 떨어뜨렸는데,〔斫桂落此地〕
만고토록 쉬는 때가 없자.〔萬古無時停〕
옥같은 계수나무 줄기가 돌로 화하여,〔玉幹化爲石〕
높이 쌓여 푸른 하늘에 솟았는가.〔高積巉靑冥〕
허위와 진실을 그 누가 분별하여,〔虛實竟誰分〕
어떤 이가 산경(山經)을 만들려나.〔何人作山經〕
이번에 자유로운 유람을 하고부터,〔自從作天遊〕
비로소 우리 인생 허무함 깨달았네.〔始覺吾生浮〕
산에서 내려와 골짝을 나오려 하자,〔下山將出洞〕
산신령이 나를 대해 걱정하더니.〔山靈向我愁〕
꿈속에 나타나 나를 보고는,〔夢中來見我〕
요구할 것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네.〔自言所有求〕
천지 사이에 생겨난 만물은,〔物生天宇間〕
사람을 만나야만 이름이 빛나게 되나니.〔因人名乃休〕
만약 여산(廬山)에 이백(李白) ※이 없었던들,〔廬山無李白〕
누가 그 폭포를 읊었겠으며.〔誰能詠其瀑〕
난정에 왕일소(王逸少) ※가 없었던들,〔蘭亭無逸少〕
누가 그 자취를 오래 전했겠는가.〔誰能壽其跡〕
두자미(杜子美) ※는 동정에서 시를 썼고,〔子美題洞庭〕
소동파(蘇東坡) ※는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으니.〔東坡賦赤壁〕
모두가 큰 솜씨의 붓을 빌어서,〔咸因大手筆〕
훌륭한 이름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네.〔令名垂不滅〕
그대도 이젠 내 금강산에 노닐어,〔君今遊我山〕
풍경을 남김 없이 다 구경했거늘.〔風景皆收拾〕
어찌 이에 대한 시를 읊지 않고,〔胡爲不吟詩〕
도리어 입 다물고 말이 없는가.〔反作緘口默〕
부디 그대의 큰 붓 휘둘러,〔請君揮巨杠〕
금강산의 빛을 더해 주게나.〔庶使山增色〕
나는 대답하길, 자네가 잘못일세.〔我言子過矣〕
자네 부탁은 나의 가능한 바 아니네.〔子言非我擬〕
나는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주 없거니,〔我無錦繡腸〕
앞의 두어 분을 어떻게 따르겠는가.〔安能追數子〕
온 가슴이 오직 옹졸함 뿐이어서,〔滿腔惟一拙〕
시를 읊어본들 남들이 기뻐하지 않을 걸세.〔吐出人不喜〕
자네가 구슬 같은 시를 얻고 싶다면,〔子欲得瓊琚〕
가장 값진 솜씨를 찾아가서 구하오.〔往求無價手〕
이에 산신령이 기뻐하지 않는 낯빛으로,〔山靈色不悅〕
곁에 서서 오랫 동안 지켜 보더니.〔側立久凝視〕
혀를 차면서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咄咄指我言〕
그대 같이 고약한 손은 없을거야.〔惡賓無汝似〕
내 끝내 사양할 수 없음을 알고,〔我知不能辟〕
부족한 글이나마 짓기로 허락하노니.〔遊許撰荒鄙〕
얼굴은 마치 술을 깬 것 같고,〔形開如酒醒〕
들은 것은 모두가 황당한 일 뿐일세.〔所聽皆慌爾〕
그러나 약속한 걸 저버릴 수 없어,〔有約不可負〕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런대로 적어 둔다오.〔聊以記終始〕






[역주:39권78] 풍악산(楓岳山)
가을의 금강산을 가리킨다.
[역주:39권79] 혼돈 상태
하늘과 땅이 나뉘기 이전의 원기(元氣) 미분(未分) 상태를 말한다.
[역주:39권80] 개골(皆骨)
겨울의 금강산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역주:39권81] 공동산(崆峒山)
중국 전설상에 전해 오는 산 이름이다. ≪讀史方輿紀要≫
[역주:39권82] 부주산(不周山)
중국의 곤륜산(崑崙山) 서북쪽에 있다는 산 이름이다. ≪山海經 大荒西經≫
[역주:39권83] 「지괴(志怪)」
괴이한 것을 기록한 책.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제해(齊諧)는 괴이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齊諧者 志怪者也]” 하였다.
[역주:39권84] 여와씨(女媧氏)
상고 때의 제명(帝名)이다.
[역주:39권85] 돌을 다듬어 그 이지러진 곳을 때웠다네.
상고 때 여와씨(女媧氏)가 5색의 돌을 다루어 하늘을 보수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三皇傳≫
[역주:39권86] 여기에
금강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주:39권87] 호연(浩然)
「맹자」 공손추(公孫丑) 상의, “나는 잘도 나의 호연의 기운을 기른다.[吾善養吾浩然之氣]”란 데서 온 말인데, 여기에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온 것을 형용한다.
[역주:39권88] 「제해(齊諧)」
전주(前註) 39권83 참조.
[역주:39권89] 풍이(馮夷)
물 귀신을 가리킨 말이며, 또는 양후(陽侯)라고도 한다. ≪故事成語考 地輿≫
[역주:39권90] 진견성(眞見性)
암자 이름
[역주:39권91] 뭐 수고롭게 귀를 씼으랴.
상고 때 요(堯)가 천자의 자리를 허유(許由)에게 물려 주려고 하자, 허유는 은자(隱者)인 자신이 본분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 후,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씻었다는 고사가 있다. ≪高士傳≫
[역주:39권92] 동파(東坡)
물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여럿으로 나누어진 것을 말한다. 「동파집(東坡集)」 범영시(泛潁詩)에, “채색배에서 거울 같은 물을 굽어보며, 물속의 그림자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출렁출렁 물결이 일더니, 내 수염과 눈썹을 흩뜨리고, 여러 동파(東坡)로 분산시켰다가, 경각간에 다시 제자리에 있게 하누나.[畫般俯明鏡 笑問汝爲誰 忽然生麟甲 亂我鬚與眉 散爲百東坡 頃刻復在玆]” 하였다.
[역주:39권93] 가는 데마다 물들거나 닳아짐
자세가 확고하여 제아무리 나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論語)」 양화(陽貨) 편에,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갈아도 엷어지지 않는다. 희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검게 물들어도 검어지지 않는다.[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라고 하였다.
[역주:39권94] 묘길상(妙吉祥)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의 역명(譯名)이다.
[역주:39권95] 계빈(罽賓)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인데, 이것으로 암자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역주:39권96] 마하연(摩訶衍)
대법승(大法乘)이란 뜻인데, 이것으로 전(殿)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역주:39권97] 도솔천(兜率天)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욕계 육천(慾戒六天)의 넷째 하늘을 말한다.
[역주:39권98] 천공(天工)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진 재주를 말한다.
[역주:39권99] 부상(扶桑)
해가 뜨는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는 신목(神木)이다.
[역주:39권100] 오기(吳起)나 손빈(孫臏)
다 같이 전국시대 병법가(兵法家)로 오기(吳起)는 위(魏) 나라 사람이고, 손빈(孫臏)은 제(齊) 나라 사람이다.
[역주:39권101] 업후(鄴侯)
당(唐) 나라 이비(李泌)의 봉호(封號). 그는 장서(藏書)가 2만여 권에 이르렀다.
[역주:39권102] 소량(蕭梁)
남조(南朝)의 양(梁) 나라를 소씨(蕭氏)가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칭호. 양무제(梁武帝)가 사탑(寺塔)을 세우고 불도(佛道)를 독신하였다. ≪梁書 武帝記≫
[역주:39권103] 정령위(丁令威)
한(漢) 나라 요동(遼東) 사람인데, 영허산(靈虛山)에서 도(道)를 배운 뒤 학(鶴)으로 변화하여 요동에 돌아와 공중에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집을 떠난 지 천년 만에 돌아오니 성곽(城郭)은 여전한데 사람은 그렇지 않구나. 어째서 신선(神仙)이 되는 것을 배우지 않고 무덤들이 다닥다닥하느냐” 하였다. ≪搜神後記≫
[역주:39권104] 분·육(賁育)
분(賁) 은 맹분(孟賁)을, 육(育) 은 하육(夏育)을 가리키는데, 다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용사(勇士)이다.
[역주:39권105] 이루(離婁)
옛날에 눈이 밝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역주:39권106] 수관(水官)
물을 맡은 신(神)을 가리킨다.
[역주:39권107] 천주(天柱)
하늘을 괴고 있다는 기둥. 「신이경(神異經)」에 의하면, “곤륜산(崑崙山)에 구리 기둥이 있는데,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아 이를 천주라 한다.[崑崙之山 有銅柱焉 其高入天 所謂天柱也]”고 하였다.
[역주:39권108] 우인(羽人)
신선 또는 도사(道士)를 두고 하는 말. 우사(羽士)라고도 한다. ≪楚辭 遠遊≫
[역주:39권109] 담무갈(曇無竭)
당(唐) 나라 때 고승(高僧)이다.
[역주:39권110] 용백국(龍伯國)
옛날에 거인(巨人)들이 살았다는 나라 이름.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용백국에 거인이 있는데, 두어 걸음도 떼지 않고서 오산(五山)에 이르러 한 번 낚시질로 여섯 마리의 자라[鰲]를 연달아 잡았다.”는 고사가 있다.
[역주:39권111] 서하의 오강(吳剛)
한(漢) 나라 서하(西河) 사람인데, 신선(神仙)을 배우다가 잘못을 저질러 달 속으로 귀양가 계수나무를 베는 일을 했다는 고사가 있다. ≪酉陽雜著 天咫≫
[역주:39권112] 여산(廬山)에 이백(李白)
당(唐) 나라 시인(詩人) 이태백(李太白)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중국 강서성(江西省)에 위치한 여산(廬山)에 노닐면서 이곳에 있는 폭포를 두고 시를 지었다. ≪李白, 望廬山瀑布詩≫
[역주:39권113] 왕일소(王逸少)
진(晋) 나라 때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자이다. 그는 영화(永和) 9년(353)에 당시의 명사(名士) 41인과 더불어 회계산음(會稽山陰)의 난정(蘭亭)에 모여 시회(詩會)를 가졌는데, 왕희지가 난정의 서문을 지었다. ≪晋書 王羲之傳≫
[역주:39권114] 두자미(杜子美)
당(唐) 시인 두보(杜甫)의 자이다. 그는 중국 호남성(湖南省)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에서 지은 시가 있다. ≪柱甫, 登岳陽樓詩, 長沙送李十一銜詩≫
[역주:39권115] 소동파(蘇東坡)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그는 원풍(元豊) 5년(1082)에 적벽강(赤壁江)에 노닐면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는데, 전적벽부(前赤壁賦)는 이 해 7월에, 후적벽부(後赤壁賦)는 10월에 각각 지었다. ≪東坡年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