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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어머니 詩/cafe.daum.net/creativeessay

어머니 詩 10편]

1, 송수권/자수
2, 엄마의 품/박철
3, 바다에 가면 엄마가 있다/곽성숙
4,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일근
5, 법성암/공광규
6, 옻닭/이창수
7, 나는 뒤통수가 없다/정영애
8, 정채봉/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9, 저녁 한때/임길택
10,어머니의 언더라인/박목월



자수/송수권


어머님 한 땀씩 놓아가는 수틀 속에선
밤새도록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매운 선비 군자란 싹을 내듯
어느새 오동꽃도 시벙글었다
太史신과 꽃신이 달빛을 퍼내는 북전계하
말없이 잠든 초당 한 채
그늘을 친 오동꽃 맑은 향 속에
누가 唐音을 소리내어 읽고 있다
그려낸 먹붓 폄을 치듯
고운 색실 먹여 아뀌 틀면
어머님 한삼 소매끝에 지는 눈물
오동잎새에 막 달이 어린다
한 잎새 미끄러뜨리면 한 잎새 받아올리고
한 잎새 미끄러뜨리면 한 잎새 받아올리고
스르릉스르릉 달도 거문고 소리 낸다
어머님 치마폭엔 한밤내 수부룩이 오동꽃만 쌓이고....
2]
엄마의 품/ 박철/바우솔/2015

장마 였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장마철 사이사이 햇살이 비치면
엄마는 논으로 피사리를 나가셨다.
빗속에 잡초들 역시 쑥쑥 키를 세웠으니까....

수업을 마친 나는
더위 속 일하는 엄마를 위해
작은 물주전자에 시원한 우물물을 떠서
들길로 물심부름을 나갔다.

논둑길 위로 고추잠자리가 앞서 나가고
메뚜기는 볏잎 속에서 숨바꼭질하고
내 주머니 안엔 속이 하얀 크림빵도 하나 있었다.
멀리 신작로의 버스 뒤로 일어나는 먼지를 바라보며
논길을 걸어 들판의 반쯤 걸어왔을 때다.

'어, 하늘 얼굴 색이 이상하다?'
파란 하늘이 갑자기 잿빛으로 바뀌면서
멀리 행주강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온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어쩌나?'
덜컥 겁이났다.
돌아보니 벌써 한참을 걸어와 마을은 이미 산 밑에 납작이 몸을 낮추고 있었다. 구름보다 먼저 몰려온 것은 검은 하늘 속에 빗줄기.

툭툭 한두 방을 내리던 비는
대지를 적시며 갑자기 물세례를 쏟았다.
인적 하나 없는 들판에 어둠이 내리고,
장대비가 쏟아지고
논길에선 주먹만 한 참개구리들이 놀란 듯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서둘러 논길을 걸었다.
미끈거리는 고무신이 자꾸 발바닥을 벗어났다.
가슴이 조여 오고 몸이 젖을수록 겁이 났다.
비는 더욱 거칠게 쏟아졌다.

'어쩌지?'
세상이 요동치는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며
한동안 앞뒤를 살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엄마를 향해 달려가야 하나?'

그러나 방황은 잠시였다.
나는 얼굴 가득 빗물을 뒤섞으며
엄마를 향해 내달렸다.
엄마 모습만 떠올랐다.

한참을 달리다 이쯤이다 싶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온통 빗줄기만 휘청거릴 뿐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아, 엄마……."
먹구름과 비바람과 장대비가 무서워
있는 힘을 다해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두려움에 떨며 한동안 소리를 지를 때였다.
엄마가 작은 수로 다리 밑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며 몸을 일으켰다.
"엄마……."
나는 주전자 뚜껑이 열리는 것도 모르고 엄마를 향해 달렸다.

"철이야? 아이고, 이놈아.
이 빗속에 집으로 내달려야지 이리로 오면 어떻게 해. 이놈아!"
엄마는 대뜸 내 등짝부터 내리쳤다.
그리고 옷자락을 들어 젖은 내 얼굴을 닦고 또 닦았다.

엄마는 볼을 비비고 바라보다 나를 꼭 안았다.
추위에 떨던 나는 엄마 품에 안기자 비가 그치는 것 같았다.
세상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엄마는 새로 낳은 달걀처럼 맑아진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감싸고 다시 한 번 안아 주었다.

우리는 곧 다리 밑으로 들어가
빵과 주전자의 물을 나누어 먹었다.
"왜 엄마한테 왔어?"
"응? 그럼 어디로 가?"
마을로 가지 않고 엄마한테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엄마도 속으론 내가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달려가 안긴 엄마의 품이
얼마나 넓고 따뜻했는지……
빗줄기처럼 거친 비바람 속에도
엄마의 품에만 안기면 무서울 게 없었다.

엄마의 품에는
세상 모든 따사로운
햇살이 다 담겨 있다.
3]
바다에 가면 엄마가 있다/차꽃 곽성숙


해질녘 돌머리 해변에 서본 적이 있는가
그 쓸쓸한 해넘이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나를 낳아 준 어미의 튼 배를 보고 목놓아 울었으리

바다에 가면 엄마가 있다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를 낳아 키운
착한 엄마가 있다
엄마, 부르기만 하면
무릎걸음으로라도 달려와 줄 엄마,
엄마, 손 내밀면
온 몸으로 밀고 와 줄 엄마,
거센 물결을 감싸 안아 줄 엄마가 온다

바다에 가면 엄마의 튼 배가 있다
나를 그 몸에 품었을 때
제 살 쩌억 갈라진 고운 배가,
여러 갈래 길을 낸 채 있다

바다에 가면,
부드럽고 황홀한 그녀의 맨몸이 있다.



4]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 정일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판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5]
옻닭/이창수


장터에서 마스크를 쓴 어머니를 만났다
옻닭이 위장에 좋다는 말을 듣고
옻닭을 먹고 옻이 올랐다고 했다
가려움이 심해 병원으로 가던 질이라며
주사를 맞으면 금방 나을 거라 하셨다
옻이 옮을지도 모르니 가까이 오지 말라며
마스크를 쓴 어머니는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사라졌다

겨우내 위장을 앓던 나에게 친구가 옻닭을 끓여주었다
옻닭을 먹은 다음 날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젊은 의사는 미련한 짓이라며 다시는 먹지 말라고 했다
위장병은 가난한 어머니가 나에게 보내준 김치통 같은 것
어머니는 마스크로 얼룩을 가리고 계셨다



6]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7]
나는 뒤통수가 없다/정영애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셔다 놓고
영금정 앞바다 파도가 몇 차례 바위가 뺨을 후려쳤다
누워만 있다는 이유로
똥오줌을 받아내야 한다는 이유로
충분히 모실 수 있었지만
충분히 모실 수 없는 이유를 백 가지쯤 만들어
헌 보따리처럼 요양병원에 맡겨 놓았다
맡겨 놓는다는 것은 언젠가 찾을 일이지만
생의 마지막이 아니고서야 찾지 않을 것임을
혼자만 아는 비밀처럼 꼬깃꼬깃 쥐고
매달 어머니의 보관비를 카드로 긁었다
같잖게 가끔 마음 아파서 들여다보는 병문안이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 확인하는 것 같아
화들짝 부끄러워 아기가 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본다
항문에 똥 한 덩어리 달고서도
내 손을 놓지 않는 천진난만한 어머니를 재우고
요양병원 나서는데
바람이 자꾸 내 뒤통수에 불어대
아예 뒤통수를 버렸더니
병상에 누운 어머니
오늘은 내 뒤통수를 쓰다듬고 계신다




8]
저녁 한때/임길택


뒤뜰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는 무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셨다.

말할 힘 조차 없는지
무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으시는데
환히 드러난 아버지 이마에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어두워진 산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하셨겠지.

불 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9]
어머니의 언더라인/박목월



유품으로는 그것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파주의 잔디를 덮고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니의 유품은
그것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마다
헐어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이순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지고하신 분을 뵙게 한다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 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10]
법성암/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갔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 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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